'정견망'에 해당되는 글 60건

정견망

글/ 금궁(金弓)

속담 중에 ‘심원의마’(心猿意馬 역주: 마음은 원숭이와 같고 생각은 말과 같아서 집중하기 어렵다는 뜻)라는 성어(成語)가 있는데 흔히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거나 생각이 너무 많을 때 사용된다. 《서유기》에서는 또 손오공(원숭이)과 백룡마(말)를 지칭하는데 이는 현장의 수련에서 그들(잡념)을 몰아낼 수 없음을 암시한다. 속인공간에서 표현되는 것은 바로 입정(入定)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으로 청정심(淸淨心)이 부족한 것이다. 다른 한 공간에서의 표현은 바로 현장이 자신의 집착심을 없애지 못했거나 혹은 손오공의 집착심을 제거하지 못해 사도(司徒)가 잠시 이별하게 되는 것이다.

오공이 당승과 처음 여행에 나섰을 때 소위 말하는 여섯 강도가 길을 막고 나선다. 이들은 수련인이라면 반드시 제거해야 할 6가지 마음인 희(喜)・로(怒)・애(哀)・사(思)・욕(慾)・우(憂)를 대표한다. 오공이 그 뿌리를 제거하려 하자 현장은 오히려 참지 못하고 오공을 가르치려 든다. 현장은 본래 좋은 말로 권하면서 오공에게 선을 닦는 도리를 말하려 했다.

하지만 첫째, 이 여섯 도적은 사실 다른 공간에서 집착심이 체현된 것으로 업력과 마찬가지라 정(情)을 남겨둠을 허용하지 않았고 둘째, 현장이 가르치는 중에 아주 강한 걱정하는 마음이 드러났고 순정하고 선량한 마음이 아니었으며 게다가 오공이 비록 악을 징벌하고 선을 드러냈지만 집착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원래 이 원숭이는 평생 남이 화내는 걸 견디지 못해(原來這猴子一生受不得人氣)〈서유기14회〉” 사도 두 사람이 처음으로 헤어지게 된다. 즉 첫 번째로 마음원숭이가 풀려난 것이다.

다행히 오공의 오성이 좋은데다 용궁(龍宮)에서 이교삼진리(圯橋三進履 역주: 이교에서 장량이 황석공에게 세 차례나 신발을 주어다 바쳤다는 일화) 이야기에 감화되어 다시 돌아가 당승을 보호하고 계속해서 수련할 결심을 내렸다. 한편 당승은 관음보살로부터 손오공을 제압할 수 있도록 금고(金箍)와 긴고주(緊箍咒)를 전수받았다. 과연 오공이 돌아왔을 때 당승이 긴고주를 외우자 오공의 머리가 심하게 아파와 오만한 마음을 거두고 얌전히 서천으로 향하게 된다. 한편 현장의 ‘악행에 대해 선을 행하려는(對惡行善)’ 마음은 이후 서천으로 가는 길에서 여러 차례 고생을 겪게 만든다.

나중에 용마(龍馬)를 굴복시킨 후 오공의 방자하고 오만한 마음이 다시 치솟았다. 오공은 상대와 통성명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용(龍) 태자와 싸워 공연히 어려움을 하나 추가했다. 나중에 보살의 도움을 받아 용을 항복시킨 후에야 비로소 이 이치를 말해주었고 현장 역시 ‘생각이란 말(意馬)’을 거두게 했다.

오공은 처음에 과시심 때문에 수보리 조사로부터 사문에서 쫓겨났는데, 관음원(觀音院)에서 또 사람들에게 금란가사를 자랑하다 큰 손실을 보았다. 검은 곰요괴가 가사를 훔쳐간 것이다. 동시에 겉으로는 좋은 말만 하지만 속은 마귀와 같은 금지장로(金池長老)도 자신을 해치고 남을 해쳐 목숨으로 배상해야 했으며 중도에 수련을 폐기하고 윤회로 떨어졌다. 정말이지 집착심이 일어나기만 하면 즉각 마를 초래하게 된다.

보살이 오공을 따라 곰 요괴를 항복시키러 갈 때 오공의 제안에 따라 능허자란 신선 모습의 요괴로 변신하자 오공은 “요괴가 보살이 된 겁니까? 보살이 요괴가 된 겁니까?”라며 말한다. 그러자 보살이 “보살이나 요괴는 모두 한마음(一念)에서 나온 것이다”라며 오공을 깨우쳐준다. 즉 부처로 수련 성취되거나 마로 추락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 자신의 주장에 따른다. 일념의 차이로 서로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편, 저팔계는 당승의 제자가 된 후에도 색심(色心)을 바꾸지 않았다. 먹을 것을 탐하고 게으름을 피우며 늘 불평불만이 가득해 전혀 수련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사오정은 유사하(流沙河)에서 귀의해 취경의 길에 동참한다.

당승 일행의 마음이 얼마나 견정한지 시험해보기 위해 여산노모(黎山老姆)와 세 분 대보살(관음 보현 문수)이 부자집 과부와 딸로 변신했다. 여산노모는 과부로 변신해 데릴사위를 찾는다고 제안하자 사도 각 사람의 마음이 즉각 드러났다.

삼장은 경을 얻으려는 마음이 반석처럼 굳건했지만 두려운 마음과 걱정하는 마음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고, 오공은 태어날 때부터 색심이나 음욕이라곤 전혀 없었으며 게다가 이번 일은 보살이 각 사람의 마음을 시험해보기 위한 안배임을 잘 알았기 때문에 더욱 다른 생각이 없었다.

사승은 신통에도 한계가 있고 근기도 평범했지만 수련하려는 마음은 확고부동했다. 오직 팔계만이 색욕이 남아있는데다가 부귀를 탐하고 최종적으로 크게 곤두박질쳤다.

오장관에서 또 큰 겁난을 겪지만 집착심이 없어지지 않은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장관 관주(觀主)는 도가에서 수행이 아주 깊고 아주 높은 층차의 진인(真人)이었다. 하지만 오공이 그의 말을 따르지 않고 처음부터 오만방자하게 굴어 화근을 심었다. 아울러 삼장의 두려운 마음과 걱정하는 마음 역시 도화선이 되었다. 왜냐하면 견문이 좁아 인삼과를 사람으로 오인해 감히 먹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도제들이 인삼과를 훔치게 했기 때문이다.

팔계의 식탐은 불에 기름을 부어 오공을 부추겨 결국 인삼과를 훔치게 했다. 기왕 인삼과를 훔쳤다면 세 사람은 본래 머리 숙여 사과를 해야 했고 삼장이 선한 말로 오공에게 마음을 돌려 잘못을 인정하게 했지만 인삼과의 숫자를 착각해 도동들이 큰 꾸지람을 듣게 했다. 사실 근본원인은 오공의 인내심이 너무 낮아 작은 굴욕조차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니 만약 오공에게 이런 집착이 없었다면 어찌 난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나중에 선근(仙根)을 잘라버려 죄를 가중하고도 책임지지 않고 도망치려 했다. 진원자(鎮元子)가 돌아온 후 이치대로 하자면 네 사람을 잡아 처벌해야했다. 여기서 한마디 설명해야 할 것은 진원자는 득도한 진인으로 TV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처음부터 화를 내며 삼장일행에게 복수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동(道童)의 말을 듣고는 허허 웃으면서 화를 내거나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또한 그가 한 행동 역시 상리(常理)에 부합했으니 잘못을 저질렀으면 갚아야하고 선근을 뽑았으면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다만 자신이 있는 그 층차 경지를 수호하는 이치에 따랐으며 속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지 않았다. 오공이 관음보살의 법력을 빌려 나무를 살려낸 후에는 즉각 약속을 이행해 오공과 의형제를 맺었고 오공에게 참지 못하는 것의 엄중한 후과를 분명히 알려주었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36158

정견망

글/ 금궁(金弓)

오공이 항복시킨 후 관음보살은 불타(佛陀)의 명을 받들어 남섬부주로 가서 경을 가지러 갈 사람(取經人)을 찾는다. 표면공간에서 반영된 것은 바로 대승불교가 중토(中土)에서 발전해야 했다. 보살은 가는 도중 전세에 죄를 지은 권렴대장(卷簾大將), 천봉원수(天蓬元帥), 백룡태자(白龍太子)와 오공 등에게 취경인을 기다려 죄를 벗고 함께 서천에 가도록 권고한다. 또 서천에 가서 경을 얻고자 한 현장법사 역시 불법을 태만히 여기다 하계로 쫓겨난 전생의 여래제자 금선자(金蟬子)였다.

여기서 본인은 이 다섯 명을 표면공간의 현장법사와 다른 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5명의 부원신으로 보는데 주원신이 인도에 가서 경을 얻는 기회를 이용해 공동으로 수련해 정과를 얻는 것이다.

책에서는 또 당태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쩌면 다른 공간에서 발현된 진실한 상황이거나 아니면 우리 이 공간에서 발생한 역사였을지 모른다. 다만 도덕이 미끄러져 내려온 후인들이 믿지 못해 정사(正史)에서 삭제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본인은 이것을 진실한 이야기라고 믿는다.

경하(涇河)용왕은 단지 쟁투심으로 인간세상의 고인(高人)인 원수성(袁守誠 ‘추배도(推背圖)’의 저자 흠천감 원천강의 숙부)과 비가 내리는 시간과 양을 놓고 다투다 상계(上界)의 규정을 어기고 머리가 잘리는 처벌을 받게 된다. 표면적으로 보면 용왕은 하늘이 규정한 비가 내리는 양과 시간을 위반한 것이지만 사실 이것은 용왕의 심성(心性)이 이미 그 한 층차의 표준에 부합하지 못해 마땅히 층차가 내려가야 하는 것을 반영한다.

위징(魏徵)이 명을 받들어 용의 목을 쳐야 했는데 이 때문에 용왕은 당태종의 꿈에 나타나 위징더러 사정을 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태종이 용왕의 부탁에 따라 위징을 불러 함께 바둑을 두면서 용왕이 이 겁난을 피해가게 하려 했지만 이것은 하늘이 정한 운명이라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위징이 꿈에서 죄를 지은 용을 참수하자 용은 자신과의 약속을 어겼다며 염라전에 태종을 고발한다. 태종은 이 일 때문에 결국 놀라서 붕어하게 된다.

태종이 이때 붕어한 것 역시 본래 하늘이 정한 것으로 생사부(生死薄)의 기록과 같았다. 하지만 최판관이 그의 수명을 고쳐 20년을 늘려준다. 사실 천지는 본래 무사(無私)한 것으로 태종의 수명이 늘어난 것은 결코 책에서 묘사된 것처럼 옛 신하의 사사로운 정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태종의 덕이 높고 성망이 큰데다 불교를 널리 홍보했고 취경인을 파견하는 역사적 사명을 지녔기 때문에 이승의 수명을 늘릴 수 있었다.

이후 책에서 서술한 유전(劉全)이 목숨을 버리고 저승에 과일을 진상하고 그 아내의 영혼이 태종 여동생의 몸을 빌려 환생한 이야기와 개봉부의 상량(相良)이 태종이 준 금은보화를 사절하고 대상국사(大相國寺) 건축에 썼다는 등의 소소한 이야기들은 당시 세인들의 인심과 도덕이 비교적 높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다. 또한 태종이 신용을 지키고 개명하며 활달하고 덕이 높았음을 드러낸다. 어쩌면 불타는 당시 사람들의 인심이 아직 선념(善念)이 존재하고 명군(明君)에게 덕행이 있음을 보았기 때문에 비로소 당시 대승불교를 널리 전파할 곳으로 중토를 선택했는지 모른다.

현장은 전세에 불법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하계로 쫓겨 왔고 첫 출생부터 운명이 순탄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수련하려는 마음이 아주 강했으며, 서천에 가는 도중에 험악한 일에 봉착해도 조금도 위축되거나 물러나지 않고 의연히 서천에 가서 부처님을 뵙고 경전을 구하고자 했다. 이런 수련의 마음은 몹시 소중한 것이다.

아울러 신불(神佛)이 한 가지 일을 안배할 때는 단지 한 가지 결과만을 낳는 것이 아니다. 이번 서천 여행은 금선자가 원만을 이루고 회귀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가는 길에 요마(妖魔)들을 제거해 백성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들을 제거했다. 더욱이 오공 등이 단련되어 최종적으로 정과를 얻게 했고, 중토에 대승불교가 흥성하게 했으며 후인들에게 수련의 간고함과 현묘함을 보여주는 귀감이 되어 대법 전파를 위해 수련의 문화적 기초를 다지게 했다.

물론 현장은 수련을 막 시작한 수련인이라 가는 길에 각종 집착심이 폭로되었다. 요마를 만나면 두려운 마음이 아주 강했고, 난을 만나면 툭하면 눈물을 흘리곤 했다. 현장이 신통을 수련해냈거나 또는 공능이 있건 상관없이 취경(取經)의 일은 불타가 안배한 것이라 반드시 성취되는 것이며 하늘이 결정한 것이다. 때문에 그가 어떤 곤란에 봉착하든지 심지어 생명이 위험할지라도 늘 호법신과 다른 신들이 그를 보호했다.

이 다섯의 부원신 또는 다섯 수련인 중에서 오공은 오성이 가장 좋았다. 오행산에 눌려 있을 때 그는 진작 후회했다. 때문에 관음보살이 현장을 도와 경을 얻어오면 정과를 얻을 수 있다고 했을 때 기쁜 마음으로 응했던 것이다. 현장이 자신을 구해준 후에는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왜냐하면 자신의 죄업을 갚아야 하고 심성도 닦아야 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장은 불문(佛門)에 입문한 지 오래되어 불경을 깊이 알았고 심성수련에서도 확실히 가르쳐줄 수 있었다.

동시에 오공은 또 현장의 전세 인연을 알았고 매 한 차례 난(難)의 원인도 알고 있었지만 천기를 누설하지 않는다. 오직 한마음으로 그를 보호해 요마귀괴(妖魔鬼怪)들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했다. 오공은 5백 년 전에 자신이 하늘만큼 큰 죄를 짓게 된 원인이 쟁투심과 오만방자한 마음이 너무 컸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이번 수련은 시작부터 그더러 신통이라곤 전혀 없는 평범한 수련인을 스승으로 모시게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는 그의 오만방자한 마음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천봉원수는 본래 삼계내의 신이었으나 정(情) 속에서 또 색념(色念)을 일으켜 항아를 희롱해 가장 중대한 음란죄(淫邪罪)를 저질렀다. 태백금성의 간언으로 옥제는 그를 주살하는 대신 하계로 쫓아 보냈고 사람 몸조차 얻지 못해 돼지 몸을 얻었다. 이를 통해 보자면 색욕(色欲)이란 죄의 후과가 얼마나 엄중한 지 알 수 있다! 하늘은 자비로 그에게 공을 세워 죄를 갚을 기회를 주었고 현장을 보호해 서천에 가게 했다. 하지만 그는 근기가 얕고 심성도 낮아서 불문에 귀의할 생각을 갖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요정 노릇에 미련을 갖는다. 보살이 좋은 말로 권고해 생각을 바꿔 서천에 가는 일에 참여하긴 했지만 나중에 정과를 얻지 못하는 복선을 깔아놓았다.

권렴대장이 유리잔을 깨뜨린 것은 얼핏 그리 큰 문제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만물에는 모두 영(靈)이 있으니 천계의 유리잔이 깨졌다면 그 생명이 죽은 것과 같지 않은가? 게다가 그 경계 중에서 그의 심성이 그 층차에 부합했다면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뜻을 얻고 형체를 잊거나 혹은 마음에 두지 않거나 혹은 꼼꼼하지 못해서 속인의 마음이 나왔기 때문에 이런 잘못을 저질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전히 같은 말인데, 심성이 표준에 부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계로 쫓겨난 것이다. 비록 근기는 손오공만 못하고 심성은 현장만 못했지만 그래도 한마음으로 현장을 보호해 서천에 갔고 정과로 수련하려는 의지가 아주 굳건했기 때문에 그는 금신나한이 될 수 있었다.

백룡태자는 대전에 불을 질러 명주(明珠)를 태운 죄로 부친인 서해용왕에 의해 하늘 법정에 고발되었다. 본래 죽어 마땅한 죄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神)은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 하늘의 법규를 어기지 않음을 볼 수 있는데 다시 말해 심성에 대한 요구가 확실히 아주 엄격하다. 보살이 그를 구한 후 현장의 발이 되게 했고 고생을 겪어 업을 갚게 만들어 나중에 정과를 얻을 수 있도록 기약하게 했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36145

정견망

글/ 금궁(金弓)

들어가는 말

《서유기》는 사람들에게 중국 고대 4대 명작의 하나로 줄곧 불려왔으며, 생동감 있는 언어와 스릴 넘치는 이야기들은 후인들에게 판타지소설의 집대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필자는 어려서부터 《서유기》 줄거리에 빠져 지냈고 흥미로운 곳을 볼 때면 손에서 책을 내려놓지 못할 정도로 애호해왔다. 이제 파룬따파 수련인이 되어 다시 이 책을 읽어보니 마음속으로 더욱 흥미진진함을 느끼지만 전에 속인이었을 때 깨달을 수 없었던 수많은 진정한 현기(玄機)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많은 동수들이 이미 이 책에 대한 독특한 견해들을 발표했는데 읽어본 후 본인 역시 적지 않은 수익을 얻었다. 먼저 시험 삼아 본서에 대해 몇 가지 내용을 자세히 분석해보았으니 독자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기왕에 대법 수련인이 되었으니 법(法) 속에서 느끼고 깨닫는 것이 자못 많다. 소위 정사(正史) 속에 묘사된 현장법사라는 인물과 그 행적은 언급하지 말고 전적으로 《서유기》에 묘사된 내용만을 말해보고자 한다. 수련인으로서 우리는 모두 다른 공간의 존재와 아울러 다른 공간의 생명도 그의 수련방식이 있음을 알고 있다. 본인은 이 책에서 서술한 내용이 바로 다른 공간 속에서 현장법사의 수련과정이라고 본다.

개막편에서는 소우주(小宇宙)의 내원 및 더 큰 공간의 우주구조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면서 천하의 4대 부주에 대해 명확히 서술하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돌원숭이는 바로 동승신주 중에서 10주의 주맥인 화과산(花果山) 중의 한 선석(仙石)에서 양육되고 생성되었다. 즉 나중에 여래가 말한 것처럼 영명(靈明)한 돌원숭이다. 다시 말해 돌원숭이는 천지가 화육하고 생성한 신령한 태(胎)로 자연히 태어나면서부터 우주특성에 부합했으니, 다시 말해 근기가 아주 높았다.

또 자신의 몸을 희생해 솔선해서 수렴동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여러 원숭이들의 왕이 되는 것을 보면 그가 평범한 부류와는 다름을 알 수 있다. 나중에 삼백년에서 오백년의 향락을 누린 후 미후왕(美猴王)이 자연스레 생명의 무상을 느끼는 것은 그의 오성이 높음을 더 명확히 보여준다. 그는 긴팔원숭이가 알려준 것에 따라 왕위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향락도 탐하지 않고 의연히 결심을 내려 멀리 바다를 건너 도를 구하러 간다. 산 넘고 물을 건너 마침내 서우하주(西牛賀洲)에서 수보리(須菩提)조사를 찾아 이름과 휘를 얻고 진정한 스승으로 모신다.

비록 책 전체는 물론이고 다른 도가 자료를 다 뒤져봐도 수보리 조사가 어떤 인물인지는 찾아낼 수 없다. 조사가 돌원숭이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을 보면 그가 과거 현재 미래를 통찰하는 능력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조사는 도가의 진선(眞仙)이지만 오히려 돌원숭이에게 불가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오공(悟空)’이란 이름을 지어주는데 마치 돌원숭이가 최종적으로 불가에서 정과(正果)를 얻게 됨을 암시하는 것 같다.

나중에 오공이 입문한지 6~7년이 될 때까지 조사는 예의범절과 노동만을 알려줄 뿐 수련에 대해서는 단 한글자도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공은 이런 현상을 편안히 여기고 근면하고 간절하게 마음을 비우고 조금이라도 섭섭해 하거나 다투는 마음이 없었다. 아마도 조사는 그의 근기가 심후하고 심성이 높은 것을 보았을 것이다. 오공은 나중에 조사가 단에 올라가 도를 설법할 때 오성이 총명함을 분명히 보여준다. 가령 조사가 ‘술(術)’ ‘류(流)’ ‘정(靜)’ ‘동(動)’ 네 가지 세간소도(世間小道)로 그의 마음을 시험해보지만 오공은 전일하게 수련하려는 마음을 드러낸다. 때문에 조사는 그에게 비밀리에 진리를 전해주고 그를 자신의 진전제자(真傳弟子)로 삼는다.

아마도 조사는 본래 천지를 두루 통하는 신통을 지녔기 때문에 이미 오공이 장래 큰 재앙에 빠져 하늘에 사무치는 큰 죄를 지을 것을 알았을 것이다. 오공이 어느 정도 신통이 나올 정도로 수련한 후 과시심을 드러낸 것을 구실로 삼아 사문에서 축출하면서 그 누구에게도 스승의 이름을 발설하지 못하게 했다. 생각해보면 이는 오공이 영명한 돌원숭이의 천성적인 근기와 심성 때문에 비로소 이런 신통을 수련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마 연분이나 타고난 숙명 또는 대도(大道) 수련의 현기를 사람들에게 쉽사리 드러낼 수 없었기 때문에 오공은 도가수련 중에서는 진정으로 심성을 수련하지 못했고 이후 재앙을 묻어둔다.

오공이 고향에 돌아온 후 즉각 마를 제거하는 일을 만나지만 타고난 심성의 한계 때문에 꽤 많은 공능은 지녔지만 조사와 한 약속에서 멀어졌고, 심성이 점차 떨어져 내려왔다. 소술(小術)인 공능을 이용해 오래국에서 무기를 훔치고 동해 용궁에 들어가 신철(神鐵 여의봉)을 강제로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또 남의 옷과 신발을 강탈했으니 이는 세간에서도 범죄가 된다.

오공은 또 72가지 변화술로 하늘의 겁난(天劫)을 피하고 장생(長生)을 얻었지만 이런 소능소술로는 정과(正果)를 얻을 수 없음을 몰랐다. 언젠가는 윤회로 떨어지기 마련이라 이 때문에 염라왕에게 혼이 끌려가게 된다. 이에 야성이 크게 폭발한 오공이 음부(陰府 저승)의 법을 어지럽히고 생사부에서 원숭이 부류의 이름을 단번에 지워버렸으니 이는 또다시 죄를 더한 것이다.

옥제(玉帝)는 본래 야생 원숭이를 무력으로 항복시키려 했지만 태백금성(太白金星)이 설득해서 자발적으로 오게 하자고 간언한다. 바른 신(正神)의 본래 생각은 무력을 쓰지 않고 야생원숭이를 감화시켜 그 본성을 갈무리하고 마음을 바로잡아 정법(正法)으로 되돌아오게 하려던 것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오공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필마온이란 벼슬에 만족하지 않고 기어코 하늘을 능멸하는 제천대성(齊天大聖)이 되고자 했다.

탁탑천왕마저 그를 제압하지 못하자 금성은 또 그의 망령된 마음에 따라 생명을 해치거나 무력을 쓰지 않고 하늘로 데려와 제천대성으로 삼도록 건의했다. 다만 명칭만 있고 봉록은 주지 않았다. 금성은 진실로 좋은 마음이었겠지만 심성 수련은 조금도 소홀히 해선 안 되는 것을 몰랐다. 결국 오공은 또 반도를 훔쳐 먹고 금단(金丹)을 먹고 어주(御酒)를 마시고는 하늘궁전을 소란케 하고는 하계로 내려갔다.

이때 오공은 이미 마도(魔道)로 떨어진 것으로 심성이 아주 심하게 떨어졌다. 비록 십만 천병이 일시에 내려와도 그를 어쩌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필경 천궁의 한 겁난이거나 혹은 뭇신들을 위한 하나의 난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비록 태상노군이 금강탁으로 그를 쳐내려 화로에서 칠칠 사십구일을 단련했지만 오히려 도가의 수리(數理)를 잘 알고 있던 오공이 바람이 들어오는 손괘(巽卦) 위치에 숨어 있다가 화겁(火劫)을 피해 도망친 후 결국 다시 천궁에 가서 큰 소란을 피워 하늘에 사무치는 큰 죄를 짓게 된다.

여기서 한 마디를 덧붙이자면 《서유기》에 나오는 여래(如來)는 대체 어떤 부처님인지 책에서는 시종 명확히 표시하지 않는다. 단지 여래가 오공을 항복시키기 전에 자칭 “나는 서방극락세계 석가모니존자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게 말했다. 기왕에 뒤에 나오는 취경 도중에 시종일관 관음보살이 일행을 보호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마땅히 아미타불이라고 함이 옳을 것이다. 어쩌면 작가가 일부러 중요한 대목에서 시치미를 떼는 것일지 모른다.

여래가 오공을 항복시킨 것은 많은 말이 필요 없고 바로 ‘마가 1자 높아지면 도는 1길 높아진다’는 것이다. 불타는 필경 자비롭기 때문에 오공이 하늘에 사무치는 큰 죄를 저질렀음에도 여전히 그의 성명(性命)을 해치지 않았다. 다만 오행산 아래에 눌러놓아 업을 갚게 했고 장래 취경(取經)에 참여해 불가에 귀의하기 위한 기초를 다져주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6123


정견망

글/ 찬란한 5천년 신전문화의 천고영웅인물 연구팀

4. 서유기의 선원(仙源)

중국은 신전문화(神傳文化)의 고향이자 오천년 문명이 누적된 곳으로 도처에 고풍(古風)이 흘러넘친다. 하지만 서양에서 건너온 붉은 재앙은 이 휘황한 역사를 부정하고 문화혁명으로 수천 년 문물고적들을 불태워버려 중생들이 뿌리를 찾고 하늘로 돌아갈 길을 끊어버리려 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봉폐(封閉)가 가장 심각했던 문화대혁명 때조차도 명나라 오승은(吳承恩)이 지은 《서유기(西遊記)》는 중국 민간에 여전히 가가호호 존재했다.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백룡마(白龍馬)가 당승(唐僧 삼장법사)를 호위해 서천(西天)으로 경전을 찾으러 떠나는 이 이야기는 중국인들의 귀에 여전히 익숙하면서 심령 깊은 곳에서 반본귀진(返本歸真)하려는 감응을 발동시켰다.

손오공은 화안금정(火眼金睛 역주: 진짜와 가짜를 가려낼 수 있는 예리한 안목)에 72가지 변화술을 지녀 하늘 위로 오르고 땅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천궁(天宮)에 가서 큰 소란을 피울 정도의 신통을 지녔다. 저팔계는 원래 옥황상제의 천봉원수(天蓬元帥)였으며 또 용과 호랑이를 항복시키는(降龍伏虎) 능력을 지녔다. 오승은의 붓끝에서 나온 손오공과 저팔계가 선(仙)을 닦은 경력은 본래 장삼풍이 시문(詩文)에서 묘사한 금단(金丹)이론 및 수련과정에서 기원한 것이다.

여기서는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우선 《서유기》 제2회에서 손오공이 어려운 수수께끼를 풀고 보리의 진정한 묘리를 철저히 깨닫자 스승인 보리조사(菩提祖師)가 마침내 그에게 장생(長生)의 도를 전수한다.

현교와 밀교에 두루 통달하는 진정한 묘결은
성명(性命)을 아끼고 닦을 뿐 다른 설이 없느니라.
모든 것은 다 정기신(精氣神)이니
삼가 단단히 감춰두고 누설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누설을 멈추고 몸속에 간직하면
네게 전수한 도가 스스로 창성할 것이다.
구결을 외워두면 유익함이 많을 것이며
삿된 욕심을 제거하면 청량함을 얻으리라.
청량함을 얻으면 빛이 맑고 깨끗해져
단대(丹台 신선이 사는 곳)에서 명월을 감상하리라.
달은 옥토끼 해는 까마귀를 감췄으니
거북과 뱀이 저절로 서로 서려 있네.
서로 서리면 성명이 튼튼해져
불속에서 금련(金蓮)을 심을 수 있으리라.
오행을 모아 전도해서 쓰면
공이 이뤄짐에 따라 부처도 되고 신선도 되리라.

顯密圓通真妙訣(현밀원통진묘결)
惜修性命無他說(석수성명무타설)
都來總是精氣神(도래총시정기신)
謹固牢藏休漏泄(근고뇌장휴누설)
休漏泄(휴누설) 體中藏(체중장)
汝受吾傳道自昌(여수오전도자창)
口訣記來多有益(구결기래다유익)
摒除邪欲得清涼(병제사욕득청량)
得清涼(득청량),光皎潔(광교결)
好向丹台賞明月(호향단대상명월)
月藏玉兔日藏烏(월장옥토일장오)
自有龜蛇相盤結(자유구사상반결)
相盤結(상반결) 性命堅(성명견)
卻能火裏種金蓮(각능화리종금련)
攢簇五行顛倒用(찬족오행전도용)
功完隨作佛和仙(공완수작불화선)

또 《서유기》 제17회에서 손오공이 웅비요괴(熊羆怪)와 싸울 때 자신의 내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려서부터 신통과 재간이 높아 바람 따라 영웅호걸로 변화했네.
오랫동안 수진양성(修眞
養性)하며 고생을 겪어
윤회를 뛰쳐나와 운명을 벗어났네.
일찍이 진실한 마음으로 도를 찾다가
영대산 위로 약초 캐러 올랐었지.
그 산에 신선이 계셨으니
그분의 나이는 십만 팔천 세가 넘었더라.
형님이 그분을 사부님으로 모시고
장생의 길을 가리켜달라 했노라.
그분께선 몸 안에 단약(丹藥)이 있으니
밖에서 채취함은 헛수고라 하셨네.
대품(大品) 천선(天仙) 비결을 전수받는다 해도
근본이 없다면 실로 어렵다 하셨지.
빛을 되돌려 안으로 마음자리를 비추면
몸속에서 일월과 감리가 사귄다네.
만사에 완전히 할 생각 말고 욕심 줄이면
육근이 청정해지고 몸이 단단해지네.
반로환동(返老還童)은 쉬 얻을 수 있고
범부를 뛰어넘어 성인 되는 길도 멀지 않다네.
삼년 간 누락이 없으면 선체(仙體)를 이루고
속세의 무리처럼 고통 받지 않는다네.
십주(十洲)와 삼도(三島 신선의 세계)를 두루 노닐고
바다멀리 하늘 끝도 몸 돌리면 가는도다.

自小神通手段高(자소신통수단고)
隨風變化逞英豪(수풍변화영영호)
養性修真熬日月(진성수진오일월)
跳出輪回把命逃(도출윤회파명도)
一點誠心曾訪道(일점성심증방도)
靈台山上采藥苗(영대산상채약묘)
那山有個老仙長(나산유개노선장)
壽年十萬八千高(수년십만팔천고)
老孫拜他爲師父(노손배타위사부)
指我長生路一條(지아장생로일조)
他說身內有丹藥(타설신내유단약)
外邊采取枉徒勞(외변채취왕도로)
得傳大品天仙訣(득전대품천선결)
若無根本實難熬(약무근본실난오)
回光內照寧心坐(회광내조녕심좌)
身中日月坎離交(신중일월감리교)
萬事不思全寡欲(만사불사전과욕)
六根淨清體堅牢(육근정청체견뢰)
返老還童容易得(반로환동용이득)
超凡入聖路非遙(초범입성로비요)
三年無漏成仙體(삼년무루성선체)
不同俗輩受煎熬(부동속배수전오)
十洲三島還遊戲(십주삼도화유희)
海角天涯轉一遭(해각천애전일조)

《서유기》 제19회에서 손오공이 운잔동(雲棧洞)의 저팔계를 항복시키는데 이때 저팔계가 다음과 같이 자신의 내력을 말한다.

어려서부터 심성이 우둔해
한가하고 끝없이 나태하길 좋아했었네.
일찍이 수진하거나 양성도 없이
흐리멍덩하게 고통의 세월을 보냈네.
어느 날 문득 진선(眞仙)을 만나니
앉아서 안부를 묻자마자 말씀 하셨네.
나더러 마음 돌려 속세에 떨어지지 말라 권하시며
살생은 끝없는 죄를 만든다 하셨지.
어느 날 수명이 다할 때면
팔난과 삼도(三途)에서 후회해도 소용없다 하셨네.
그 말씀 듣고 수행할 생각 일으켜
마음을 되돌릴 묘한 구결 구했네.
인연 있어 곧장 사부님으로 모시니
천관(天關)과 지궐(地闕)을 알려주셨네.
구전대환단(九轉大還丹)을 전수받아
밤낮 쉬지 않고 공부했다네.
위로는 정수리 니환궁에 이르고
아래로는 발바닥 용천혈에 이르네.
신수(腎水)를 두루 돌아 화지(華池 혀 밑)에 들어가니
단전이 보해져서 뜨거워졌네.
영아와 차녀가 음양에 배합하고
납과 수은이 뒤섞여 일월이 나눠졌네.
이룡(離龍)과 감호(坎虎)를 조화롭게 사용하니
영구(靈龜)가 금오(金烏)의 피를 모두 빨아들였네.
삼화취정(三花聚頂)하여 귀근(歸根)을 얻고
오기조원(五氣朝元)으로 투철히 통했노라.
공을 이뤄 원만하여 하늘로 날아올라가니
천선(天仙)들 쌍으로 나와 영접하더라.
기쁘게도 발아래 채색구름 생기더니
몸이 가볍고 튼튼해져 금궐(金闕 하늘 궁궐)에 조회했네.
옥황상제 신선들의 연회를 베푸시니
각기 품급을 나눠 반열에 따라 배치하셨네.

自小生來心性拙(자소생래심성졸)
貪閑愛懶無休歇(탐한애라무휴헐)
不曾養性與修真(부증양성여수진)
混沌迷心熬日月(혼돈미심오일월)
忽然閑裏遇真仙(홀연한리우진선)
就把寒溫坐下說(취파한온좌하설)
勸我回心莫墮凡(권아회심막타범)
傷生造下無邊孽(상생조하무변얼)
有朝大限命終時(유조대한명종시)
八難三途悔不喋(팔난삼도회불첩)
聽言意轉要修行(청언의전요수행)
聞語心回求妙訣(문어심회구묘결)
有緣立地拜爲師(유연입지배위사)
指示天關並地闕(지시천궐병지궐)
得傳九轉大還丹(득전구전대환단)
工夫晝夜無時輟(공부주야무시철)
上至頂門泥丸宮(상지정문니환궁)
下至腳板湧泉穴(하지각판용천혈)
周流腎水入華池(주류신수입화지)
丹田補得溫溫熱(단전보득온온열)
嬰兒姹女配陰陽(영아차녀배음양)
鉛汞相投分日月(연홍상투분일월)
離龍坎虎用調和(리용감호용조화)
靈龜吸盡金烏血(영구흡진금오혈)
三花聚頂得歸根(삼화취정득귀근)
五氣朝元通透徹(오기조원통투철)
功圓行滿卻飛升(공원행만각비승)
天仙對對來迎接(천선대대래영접)
朗然足下彩雲生(낭연족하채운생)
身輕體健朝金闕(신경체건조금궐)
玉皇設燕會群仙(옥황설연회군선)
各分品級排班列(각분품급배반열)

5. 《금단시(金丹詩)》

장삼풍은 《현기직강(玄機直講)》과 도정시 등을 남겨 단도(丹道)수련의 비결을 설명한 외에도 또 《금단시(金丹詩)》 36수를 남겨 다른 공간에서 신체(神體)가 연화되는 현묘한 과정을 상세히 언급했다. 여기서는 그중 13수만 선별해서 감상해본다.

양도귀진(養道歸真)

강호에서 낙담한 지 수십 년
사부님 만나 철만두를 물어뜯었네.
너무나 좋은 맛에 누가 꿀을 넣었나?
한밤중 꺼지려는 등불에 기름을 넣었네.
도를 믿어 형신(形神)이 오묘함에 들어가니
바야흐로 성명을 완전히 닦아야 함 알았네.
이것을 얻은 후에야
인간세상 온갖 시름 잊어버렸네.

落魄江湖數十秋(낙백강호수십추)
逢師咬破鐵饅頭(봉사교파철만두)
十分佳味誰調蜜(십분가미수조밀)
半夜殘燈可著油(반야잔등가저유)
信道形神堪入妙(수도형신감입묘)
方知性命要全修(방지성명요전수)
目俯會得些兒後(목부회득사아후)
忘卻人間萬斛愁(망각인간만곡수)

이진귀은(離塵歸隱)

한 가닥 한가한 마음으로 속세의 먼지 끊고
세상에 적정(寂靜)하게 정신을 기른다네.
소금(素琴)을 연주하니 하늘가에 달이 지고
현주(玄酒)를 기울이니 옹기 밑이 봄이로다.
오기조원이 날마다 자라나고
삼화취정은 수시로 새로워라.
대약을 연마해 범인을 벗어나니
자세히 시로 남겨 후인에게 경계하노라.

一片閑心絕世塵(일편한심절세진)
寰中寂靜養精神(환중적정양정신)
素琴彈落天邊月(소금탄락천변월)
玄酒傾殘甕底春(현주경잔옹저춘)
五氣朝元隨日長(오기조원수일장)
三花聚頂逐時新(삼화취정축시신)
煉成大藥超凡去(연성대약초범거)
仔細題詩警後人(자세제시경후인)

일구현관(一求玄關)

현관이란 구멍에는 길이 있으니
심(心)도 아니고 신(腎)도 아닌 가장 깊고 그윽한 곳
요도나 항문은 찾아봐야 헛수고요
비위나 니환도 함부로 찾지 말라.
신기(神氣)의 근기는 늘 황홀하니
허무굴 속에서 자세히 찾아야하네.
원래 다만 영명한 곳에서
환단을 이뤄 학을 타고 노니네.

一孔玄關要路頭(일공현관요로두)
非心非腎最深幽(비심비신최심유)
膀胱穀道空勞索(방광곡도공노색)
脾胃泥丸莫漫搜(비위니환막만수)
神氣根基常恍惚(신기근기상황홀)
虛無窟裏細探求(허무굴리세탐구)
原來只是靈明處(원래지시영명처)
養就還丹跨鶴遊(양취환단화학유)

후천축기(後天築基)

기혈이 쇠퇴하니 보해서 이음이 마땅한데
밝은 스승님 친히 구결을 전하셨네.
화지(華池) 옥액 수시로 삼키고
도오(桃塢 복사꽃 언덕)의 경장을 날마다 흡수하네.
근심 끊고 생각 잊은 천진한 마음으로
귀근복명은 신선의 일이라네.
단전이 따뜻해져 동안을 되찾고
완고한 공이 눈과 같음을 소리 내어 웃노라.

氣敗血衰宜補接(기패혈쇠의보접)
明師親授口中訣(명사친수구중결)
華池玉液逐時吞(화지옥액축시탄)
桃塢瓊漿隨日吸(도오경장수일흡)
絕慮忘思赤子心(절려망사적자심)
歸根覆命仙人業(귀근복명선인업)
丹田溫暖返童顏(단전온완반동안)
笑煞頑空頭似雪(소살완공두사설)

연기득약(煉己得藥)

연기공부 축기(築基)를 이으니
마음의 온갖 생각 이미 잊었네.
한 바퀴 둥근 달빛이 동반하니
한밤 우레 소리에 홀로 아누나.
고요한 가운데 눈발이 휘날리고
싹은 허 속에서 누런 가지로 자랐네.
그 양기를 빼앗아 돌려보내 잉태하면
천년 학을 타는 아이를 낳네.

煉己功夫繼築基(연기공부계축기)
心頭萬慮已忘之(심두만려이망지)
一輪月色相爲伴(일륜월색상위반)
五夜雷聲獨自知(오야뇌성독자지)
雪向靜中飛白點(설향정중비백점)
芽從虛裏長黃枝(아종허리장황지)
奪他陽氣歸來孕(탈대양기귀래잉)
產個千年跨鶴兒(산개천년과학아)

선천정기(先天鼎器)

홍몽의 구멍을 간파한 후부터
건곤의 조화로(造化爐)를 알았네.
신공(神功)을 쓰지 않고 수화를 조절하면
영기가 자연스레 기부(肌膚)를 지나리라.
아침마다 황학은 금정(金鼎)을 감추고
밤마다 은두꺼비가 옥호에 물을 대네.
금단이 시작하는 일을 알고 싶다면
태어나기 전 자리에서 공부에 착수하라.

一從識破鴻蒙竅(일종식파홍몽규)
認得乾坤造化爐(인득건곤조화로)
不用神功調水火(불용신공조수화)
自然靈氣透肌膚(자연영기투기부)
朝朝黃鶴藏金鼎(조조황학장금정)
夜夜銀蟾灌玉壺(야야은섬관옥호)
要識金丹端的事(요식금단단적사)
未生身處下功夫(미생신처하공부)

인약채취(認藥采取)

바다 속엔 붉은 해 산위엔 달
영산회상에서 가지색을 찾아라.
꽃 피고 새우는 어느 봄날에
용의 침을 전도해 범의 피와 짝하네.
신광(神光)이 옥호의 밭으로 들어가고
곤신(坤申 서남방) 자오구결을 자주하네.
도규(刀圭)가 백일이면 대단을 이루고
단이 이뤄지면 영원히 봉래의 신선이 되리라.

日紅海底山頭月(일홍해전산두월)
靈山會上尋茄色(영산회상심가색)
花開鳥唱一天春(화개조창일천춘)
顛倒龍涎配虎血(전도용연배호혈)
神光射入玉壺田(신광사입옥호전)
密數坤申子午訣(밀수곤신자오결)
刀圭百日大丹成(도규백일대단성)
丹成永做蓬萊客(단성본주봉래객)

구전대환(九轉大還)

구전환단에 착수하는 공부는
산 아래 샘이 있는 몽괘(蒙卦)를 알아야 하네.
안로(安爐)의 묘한 쓰임은 곤토에 의지하고
화를 운용하는 공부는 바람을 빌린다네.
범과 용이 비로소 혼합하고
감남(坎男)과 이녀(離女)가 더욱 하나로 화합하네.
사상(四象)이 중(中)으로 돌아간 후에야
조화의 기함(機緘)이 내 몸에 있구나.

九轉還丹下手功(구전환단하수공)
要知山下出泉蒙(요지산하출천몽)
安爐妙用憑坤土(안로묘용빙곤토)
運火功夫借巽風(운화공부차손풍)
兌虎震龍才混合(태호진룡재혼합)
坎男離女更和同(감남이녀경화동)
自從四象歸中後(자종사상귀중후)
造化機緘在我躬(조화기함재아궁)

탈태신화(脫胎神化)

단이 이뤄지면 내 명은 하늘이 정하지 않으니
산과 골짜기도 그에 따라 변천하네.
영욕도 상관없이 도처에서 즐거우니
이익과 명예에 걸리지 않고 수시로 전도되네.
단지 병 안에 건곤의 풍경 있음을 알뿐
누가 인간세상 갑자년을 기억하랴.
어느 곳으로 돌아가는지 묻는다면
취해 소요하며 흰구름 주변을 가리킬 뿐.

丹成我命不由天(단성아명불유천)
陵谷隨他有變遷(능곡수타유변천)
榮辱無干隨處樂(영욕무간수처락)
利名不掛遂時顛(이명불괘수시전)
但知壺內乾坤景(단지호내건곤경)
誰記人間甲子年(수기인간갑자년)
欲問歸蹤何處是(욕문귀종하처시)
醉中遙指白雲邊(취중요지백운변)

면벽구년(面壁九年)

9년 면벽으로 신체(神體)를 기르니
묵묵히 아득한 것이 연기(煉己)와 같다네.
아무런 구속 없이 자유를 얻어
연분에 따르며 멈춤을 아네.
마음이 일월과 같아 큰 빛을 발하니
내가 건곤과 표리가 되네.
허공을 타파함은 한가하지 않으니
6합을 서미(黍米) 하나에 거둬들이네.

九年面壁養神體(구년면벽양신체)
默默昏昏如煉己(묵묵혼혼여연기)
無束無拘得自由(무속무구득자유)
隨緣隨分能知止(수연수분능지지)
心同日月大輝光(심동일월대휘광)
我與乾坤爲表裏(아여건곤위표리)
打破虛空不等閑(타파허공부등한)
收拾六合一黍米(수습육합일서미)

수련천원(修煉天元)

천원 단품 누가 아나 묻노니
무(無)에서 유(有) 생김은 세상에 드물구나.
천지가 화로됨이 진짜 조화요
음양으로 약 만들기 현미(玄微)에서 시작되네.
닭이 먹으면 학으로 변해 푸른 구름 떠나고
개가 먹으면 용이 되어 대낮에 날아오르네.
이에 이르러 고묘함이 지극하다 할 수 있으니
그대와 손 맞잡고 함께 돌아가길 허하노라.

天元丹品問誰知(천원단품문수지)
有自無生世所稀(유자무생세소희)
天地爲爐真造化(천지위로진조화)
陰陽作藥自玄微(음양작약자현미)
雞餐變鶴青雲去(계찬변학청운거)
犬食成龍白晝飛(견식성룡백주비)
到此方稱高妙極(도차방칭고묘극)
許君攜手一同歸(허군휴수일동귀)

소쇄우유(瀟灑優遊)

도인은 오래 전에 이목을 잃었나니
소탈하고 자유롭게 구속을 벗어났네.
아침이면 해 뜨는 부상(扶桑)에서 일어나
저녁이면 곤륜의 구름 속에서 잔다네.
푸른 소가 관을 나간 지 몇 해나 되었는가?
이 도(道)는 분명 눈앞에 있구나.
어젯밤 거문고를 3차례 연주한 후
하루 종일 서늘한 바람에 달이 아름답구나.

道人久已泯耳目(도인구이민이목)
瀟灑自如脫拘束(소쇄자여탈구속)
朝從扶桑日頭起(조종부상일두기)
暮去昆侖雲腳宿(모거곤륜운각숙)
青牛過關知幾年(청우과관지기년)
此道分明在眼前(차도분명재안전)
昨夜瑤琴三疊後(작야요금삼첩후)
一天風冷月娟娟(일천풍냉월연연)

요도도인(了道度人)

철 피리 쌍으로 불며 새벽안개 깨뜨리니
서로 만난 지 또 몇 년이 되었는가.
일찍이 물 바깥에서 무위의 일을 하나니
붓으로는 다 전할 수 없구나.
몇 가닥 흰머리에 그대 이미 늙었으니
푸른 구름 몇 번이나 나를 앞장세웠나
세간을 궁구해도 다만 이와 같을 뿐
어찌 함께 노닐며 동천(洞天)에 돌아감과 같으랴?

鐵笛雙吹破曉煙(철적쌍취파효연)
相逢又隔幾多年(상봉우격기다년)
曾將物外無爲事(증장물외무위사)
付在毫端不盡傳(부재호단부진전)
白髮數莖君已老(백발수경군이로)
青雲幾度我當先(청운기도아당선)
世間窮究只如此(세간궁구지여차)
何若同遊歸洞天(하약동유귀동천)

맺는 말

아득히 먼 옛날 창궁(蒼穹)이 시작될 때 창세주(創世主)의 은혜로 건곤(乾坤)을 만드셨으니 그 자비는 홍대하고 끝이 없었다. 창세주께서는 말겁 시기 우주 중생들이 고해(苦海)에서 벗어나 구도 받을 수 있도록 끝없는 지혜와 법력으로 특별히 삼계(三界)를 만드셨다. 사람들이 미혹의 길에서 선천적인 원시생명의 내원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주신 것이다.

혼돈(混沌)이 처음 나뉘어 창세주께서 세상을 개창하고 하늘을 여실 때 중토(中土)를 선택해 상계(上界) 중생들이 세상에 내려오는 문호(門戶)로 삼으셨다. 신주(神州) 대지의 천문(天門)이 활짝 열리자 각 창궁의 주(主)들이 자기 세계의 중생들을 이끌고 속세로 내려와 창세주와 인연을 맺었으며 아울러 오천년 휘황한 신전문화라는 거대한 역사극을 표현했다.

상계의 중생은 속세로 내려오면서 기억이 지워진 후 미혹의 인간세간에 진입한다. 천고 이래 창세주께서는 줄곧 중화자손들을 보호해오셨고 천신(天神)을 안배하여 신력(神力) 또는 반신반인(半神半人)의 형식으로 중화자손들을 이끌며 그들이 생존하는 공간과 물질세계를 인식하고 적응케 하셨다.

동시에 창세주께서는 각기 다른 시기에 각기 다른 각자(覺者)를 배치해 세상에 내려 보내 법(法)을 전하고 도(道)를 말해 수련문화를 남겨놓게 하셨다. 이를 통해 사람이 신불도(神佛道)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수련해서 되돌아 올라가고 반본귀진(返本歸真)하는 사유방식을 건립하셨다. 그 목적은 사람들더러 자신이 세상에 온 초심을 잊지 말고 순진(純眞)함을 보존하며, 말겁 시기에 도덕의 제고를 기초로 우주대법을 인식하고 우주대법에 동화해 선보(善報)를 얻고 복과 장수를 얻으며 영예를 누리거나 직접 수련해서 원만에 이를 때까지 진정하게 도를 얻은 각자가 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원명(元明)의 전성기 때에 이르러 이번 차례 인류는 오천년 문명 중에서 이미 4천년을 넘게 지나왔다. 도가(道家)에서는 노자가 도를 전한 지 이미 1800년이 넘었고 불교가 동쪽으로 전해진 것 역시 천년이 넘었다. 역사상 불도(佛道)의 논쟁은 한쪽이 이기면 다른 쪽이 지는 방식으로 불교와 도교는 여러 차례 법난(法難)을 겪었다.

원나라 때는 각종 종교가 뒤죽박죽 섞였으며 다양한 종교사상이 멋대로 전파되었다. 소도(小道), 방사(方士), 요승(妖僧 요사한 승려), 남유(濫儒 함부로 하는 선비)와 같은 부류가 출현했다. 이 모든 것들은 정교(正敎)에 대한 사람들의 신앙을 흔들어 중화 천고의 수련문화에 대해 의심하게 했으며 사람의 바른 신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바로 이런 때에 장삼풍이 인간 세상에 나타나 미혹의 안개를 걷고 음산한 찌꺼기들을 쓸어버렸다. 그는 우선 사람의 진아(眞我)는 원래 신불(神佛)의 세계에서 동토 신주로 내려왔고 미혹의 인간 세상에 내려왔음을 알려주었다.

“옛날 영산을 떠난 이래 혼돈이 처음 나뉠 때 세간에 내려왔네. 서방에 근본이 있으나 근원을 잃어버렸네. 동토에 와서는 성명이 속세에 떨어졌구나. 애초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기 전부터 길을 잃었네.

(自從離了古靈山,混沌初分下世間。西方有本,丟下根原。來在東土,性命落凡。失迷了,老母當初未生前)”(《구경도정(九更道情)》)

장삼풍은 인간세상에서는 최초로 여러 수련 법문이 모두 보다 높은 대도(大道)에서 연원했음을 분명히 밝혔다. 이 대도는 인간이 알고 있는 유(儒), 석(釋), 도(道) 각 법문을 모두 포함한다.

“유교가 이 도에서 떨어지면 유교가 될 수 없고 불교가 이 도에서 떨어지면 불교가 될 수 없으며 도교가 이 도에서 멀어지면 신선이 될 수 없다. 선가에서는 특별히 도문이라 하며 더욱이 도로 자임하니 또 무슨 말을 하리오.

(儒離此道不成儒,佛離此道不成佛,仙離此道不成仙,而仙家特稱爲道門,是更以道自任也,複何言哉)”(《대도론(大道論)》)

또 “고금에는 두 종교가 있을 뿐 삼교는 없다. 어떤 두 종교인가? 바로 정(正)과 사(邪)다.”

소위 불도(佛道)의 논쟁은 말싸움에 불과한 것으로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각각의 수련법문은 모두 공통의 근원인 보다 높은 대도에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각가(各家) 법문의 수련의 길이 된 것이다.

장삼풍은 수련이란 수심(修心 마음 닦음)을 핵심으로 하며 속세야말로 가장 좋은 수련장소라고 지적했다.

“귀하거나 천하거나 어질거나 어리석거나 늙고 쇠약하거나 젊고 건강하거나를 막론하고 오직 평소에 음덕(陰德)을 행하고 인자하고 자비로우며 충성스럽고 효도하며 성실하고 신뢰가 있으면 된다. 인도(人道)를 완전히 하면 선도(仙道)는 자연히 멀지 않다.”(《대도론》)

장삼풍은 또 태극의 이치를 오묘하게 활용해 태극신권(太極神拳)을 창립했으며 외재적인 공부와 내재적인 수련을 연계시켜 무(武)를 연마하는 사람들이 수련하고 제고하는 길로 향하도록 인도했다. 이를 통해 정통 무술문화를 만들어냈고 중화대지에 신속하게 태극권 이론에 기반한 내가공부(內家功夫)를 형성했다. 장삼풍을 조사로 하는 내가권(內家拳)은 그 제자가 아주 많다.

장삼풍은 화광동진(和光同塵)하며 중국의 절반이 넘는 여러 지역에 수많은 신선의 자취를 남겨놓았다. 귀주(貴主) 사람들은 고대 복천(福泉)문화를 삼풍문화라 부르는데 복천을 신화의 세계라 칭한다. 또 운남(雲南)에서 장삼풍은 오래된 민족을 고통과 재난에서 구해준 대신선이다. 섬서성 보계의 금대관은 장삼풍의 조묘가 되었으며 감숙성 장액에는 장삼풍의 신물(神物)을 남겨놓았다. 사천에서는 장삼풍이 “촉에서 노닐며 촉에 돌아온 듯”하며 “도처에 현풍(玄風)을 퍼뜨렸다.”

장삼풍 조사가 무당산에 있을 때 대명(大明) 왕조에서는 도를 닦는 열풍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일부 성내(城內)에서는 가가호호 거의 모든 집이 정(鼎)을 설치하고 단(丹)을 연마했으며 거의 모든 이들이 도(道)를 향하고 신을 공경하며 수련에 대한 바른 믿음을 수립했다.

사실 장삼풍은 여러 차례 인간 세상에 윤회한 적이 있다. 그는 《적벽회고(赤壁懷古)--적벽에서 옛일을 회고하며》에서 이렇게 썼다.

가파른 석벽이 물굽이를 누르니
천하가 셋으로 나뉜 일 이곳에서 열렸구나.
다투던 용과 호랑이는 지금 어디 있느뇨?
청명한 달밤에 내가 다시 왔노라.
도도한 저 장강은 밤낮없이 흘러
망망한 전루(戰壘)에 폭풍처럼 부딪치네.
흥에 취하니 파선(坡仙 동파) 데려다 휘파람 불고
피리 불고 배에 올라 함께 돌아가고파라.
비가 되고 구름 됨이 가장 신묘하나니
속세의 꿈으로 진인을 헤아리지 말라.
선환(仙環 신선의 고리)이 공중에서 은은히 내려오니
한 조각 은고(恩膏)에 한 조각 봄이로구나.

石壁巉巉壓水隈(석벽참참압수외)
三分事業此間開(삼분사업차간개)
龍爭虎鬥今安在(용쟁호투금안재)
月白風清我又來(월백풍청아우래)
滾滾長江淘日夜(곤곤장강도일야)
茫茫戰壘激風雷(망망전루격풍뢰)
興酣欲拉坡仙嘯(흥감욕랍파선소)
吹笛乘舟共往回(취적승주공왕회)
爲雨爲雲最有神(위우위운최유신)
莫將塵夢擬真人(막장진몽의진인)
仙環隱隱從空下(선환은은종공하)
一片恩膏一片春(일편은고일편춘)

한편 장삼풍의 저술은 명청(明淸) 시기 창작된 《서유기》나 《봉신연의(封神演義)》 등의 소설에도 아주 큰 영향을 끼쳤다. 소설 도처에 등장하는 신언(神言)과 신적(神跡)은 모두 말겁시기 사람마음의 근저에 있는 순진한 선념(善念)을 일깨웠으며 청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

우주대법(宇宙大法) 아래에서 불도(佛道)라는 두 큰 수련체계는 원만하게 상계(上界)의 수많은 중생들과 대응된다. 장삼풍은 원명 교체 기간에 진인대도(真人大道)를 풀어내 수승하고 진귀한 보배를 남김없이 드러내어 영원히 끊어지지 않게 했다.

하지만 장삼풍은 후인들에게 태극권의 심법(心法)을 남겨두지 않았다. 이는 천고의 큰 수수께끼이자 천고의 탄식이자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아득히 멀고 심오한 역사 속에서 그는 먼 앞날을 미리 알고 세인들에게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장차 최고의 법(法) 최고의 도(道)가 찬란히 나타나 사람을 깨우고 세상을 각성시켜 함께 천국으로 돌아가야 함을 알려주려 했던 것은 아닐까?

 《무근수(無根樹)》1수 《탄세(歎世)》

뿌리 없는 나무여, 꽃이 그윽하구나!
부귀영화를 탐내는 것 뉘라서 쉴 수 있으리?
부평 같은 인생사 고해의 배는
이리저리 쓸리며 자유롭지 못하구나.
끝이 없고 대안 없어 정박하기 어려운데
늘 어룡의 위험 속에 노니네.
돌아보면 분명 대안이 있으리니
풍파에 배가 부서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無根樹(무근수),花正幽(화정유)
貪戀榮華誰肯休(탐련영화수긍휴)
浮生事(부생사),苦海舟(고해주)
蕩去漂來不自由(탕거표래부자유)
無邊無岸難泊系(무변무안난박계)
常在魚龍險處遊(상재어룡험처유)
肯回首(긍회수),是岸頭(시안두)
莫待風波壞了舟(막대풍파괴료주)

《무근수》23수 《언진공법상(言真空法相)》

뿌리 없는 나무여, 꽃이 붉구나.
붉은 꽃을 다 따버리니 나무가 비었구나.
공(空)이 색(色)이요 색(色)은 공(空)이니
진공(眞空)은 색(色) 중에 있음을 간파하네.
진공은 색상(色相)이 없음을 깨달으니
법상(法相)이 오래 존재해 공으로 떨어지지 않노라.
원통(圓通)이라 부르고 대웅(大雄)이라 칭하나니
구대 할아비까지 천궁(天宮)에 왕생하네.

無根樹(무근수) 花正紅(화정홍)
摘盡紅花一樹空(적진홍화일수공)
空即色(공즉색) 色即空(색즉공)
識破真空在色中(식파진공재색중)
了了真空無色相(요료진공무색상)
法相長存不落空(법상장존불락공)
號圓通(호원통) 稱大雄(칭대웅)
九祖超升上天宮(구조초승상천궁)
 
주요참고문헌

李西月,《張三豐先生全集》,清
編者不詳,《張三豐太極煉丹秘訣》,清
任自垣,《敕建大嶽太和山志》,明
黃宗羲,《王征南墓志銘》,清
曹秉仁,《寧波府志‧張松溪傳》,清
黃百家,《內拳家法》,清
劉道明,《正統道藏‧武當福地總真集》,元
令狐德棻,《周書》,唐
道宣,《廣弘明集》,唐
周暉,《金陵瑣事》,明
劉瑾之,阿桂,《欽定盛京通志‧仙釋》,清
孫天仁,《三豐張真人神速萬應方》,明
張廷玉等,《明史》,清
宋濂等,《元史》,明
杜光庭等,《正統道藏‧洞神部‧天壇王屋山聖跡記》,唐
司馬遷,《史記》,漢
列禦寇,《列子‧湯問》,戰國
脫脫等,《宋史》,元
吳承恩,《西遊記》,明
朱權,《太和正音譜》,明
 
원문위치 : http://www.epochtimes.com/gb/16/10/17/n8406244.htm





정견망

글/ 찬란한 5천년 신전문화의 천고영웅인물 연구팀

3. 삼풍 도정

중원무대 특유의 한 조대의 천자(一朝天子) 한 조대의 신하(一朝臣) 한 조대의 문화(一朝文化)라는 특징은 문자기록 및 구두로 전하는 형식으로 전승되었다. 이중에서 도정(道情)은 설창(說唱)예술의 일종으로 도가의 선가도곡(仙歌道曲)에서 내원한다. 유전되는 과정 중에 각 조대(朝代)별로 다양한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

당나라 때는 《승천(承天)》, 《구진(九真)》 등 궁중의 도락(道樂)이 있었고, 남송 시기에는 어고(漁鼓), 간판(簡板) 등의 악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도정어고(道情漁鼓)라 불렀다. 원나라 잡극 중에서 도정은 설창곡목이었고 명청(明淸) 시기에 들어와서는 민간에서 널리 전파되고 즐기는 형식이 되었다.

예를 들어 《서유기》 제44회에서는 “대성(大聖 손오공)이 구름을 당겨 군성(郡城) 아래로 가더니 몸을 한번 비틀어 운수전진(雲水全真)으로 변신하더니 왼쪽 팔뚝 위에 수화람(水火籃)을 걸고 손으로 어고를 두들기며 입으로는 도정의 가사를 노래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도정은 노래로 마음의 뜻을 읊은 것으로 세속을 벗어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명 태조 주원장의 열일곱째 아들 영헌왕(寧獻王) 주권(朱權)은 《태화정간보(太和正間譜)》에서 “도가에서 부르는 노래는 하늘을 날아오르고 태허(太虛)를 유람하며 팔굉(八紘)을 내려다보는데 그 뜻이 텅 비어 담담한 위에 있고 우주 사이를 오시(傲視)하는 내용을 부쳐 도를 즐기고 유유자적하는 정을 담았기 때문에 도정이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장삼풍의 도정은 기존 것과는 달라서 “도정은 평범한 정(情)이 아니니 이미 천기를 알기에 경시할 수 없다(道情非是等閑情,既識天機不可輕)”(장삼풍《도정가》)고 했다.

“이 책이 있는 곳은 신물(神物)이 수호하고 지키고 있어 만약 인연이 없는 하류배가 본다면 장님이 부르는 가사에 불과할 뿐이다.”(장삼풍 《등천지미설(登天指迷說)》)

이렇듯 삼풍의 도정은 천기를 내포하고 있으며 근기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야 깨달을 수 있다.

사서에는 장삼풍이 귀주 평월에서 《무근수(無根樹)》를 노래할 때 그 목소리가 구소(九霄)를 진동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삼품이 평월(平越)에 있을 때 매번 《무근수》 사(詞)를 노래할 때면 그 소리가 난새와 봉황 같아서 위로 운소(雲霄)를 꿰뚫었다.”(《검낭(黔囊)》,청나라 단췌(檀萃))

장삼풍은 대도에서 진인으로 성취한 후 때때로 구름 밖을 소요하면서 답가(踏歌 역주: 발을 구르며 박자에 맞춰 노래하는 것) 소리가 서서히 들려왔고 때로는 어고(漁鼓)로 박자를 맞춰가며 《진해창량지곡(塵海蒼涼之曲)》을 부르곤 했다. 이처럼 선계와 인간계를 누비면서 제자들과 함께 노래했다.

“(장삼풍이) 낙엽삿갓을 쓰고 구름 밖에서 소요했다. 어느 날 답가(踏歌) 소리가 구름 속에서 들려와 여러 사람들이 들어보니 대개 대도(大道)를 전하기 어려움과 황관(黃冠)을 쓴 무리들이 해와 달을 혼탁하게 함을 슬퍼한 것이다. 그 가사는, ‘시간은 빨리 빨리 도 공부는 느릿느릿. 물 흐르는 빈 산에 홀로 걸으며 생각하네. 오직 눈앞의 광경만 두려워하면 삽시간에 인후의 기가 끊겨 꿈처럼 아무것도 모른다네.’”

(光陰快快,學道遲遲。流水空山,獨步尋思。只怕眼前光景,霎時間喉中氣斷,夢夢無知)(《장삼풍선생전집》권8 《수석한담》)

《수석한담》에는 장삼풍이 한선(韓仙 한씨 성의 신선)의 어고를 두드리며 노래한 ‘진해창량지곡(塵海蒼涼之曲)’이 나온다.

진해창량지곡(塵海蒼涼之曲)

나는 용이 하늘에서 노니네.
입을 열면 충효에서 벗어나지 않고 오가는 곳은 신선이 사는 영주라네.
도를 전하려 사람을 찾아도 곳곳에서 인연을 만나지 못함 탄식하고
인생에 몇 번이나 되돌아볼까 탄식하네.
바람 앞의 등불이라 쉬 꺼지고 물 위에 뜬 배라 아래로 떠내려가기 쉽네.
권세 있는 집안이라도 그 누가 오래가리? 자손과 친한 벗들 결국에는 원수 되네.
눈 깜빡할 새에 어찌할 수 없는 곳에 떨어져 무덤위엔 거친 연기와 무성한 풀뿐.
나무꾼이 나무하러 오거나 목동이 비석을 갈다가 이곳이 누구 묘인지 물어볼 뿐.
몇 마디 말을 해도 몰라 몰라 귀신은 눈물만 흘리누나.
오호라! 학을 탄 신선은 돌아가서 쉬누나.

飛龍子,在天遊.
開口不離忠孝,往來盡是瀛洲.
欲傳道,把人求歎因緣處處不偶,歎人生幾個回頭.
風前燭,水上舟,容易燃,往下流.
勢利家園誰個久?兒孫交好盡成仇.
轉眼便落無常手,荒煙蔓草埋骷髏.
樵人伐木往來走,牧童磨壞碑石頭,問野人,此是誰家墓?
道幾句不知不知,鬼淚啾啾,噫嘻乎!騎鶴仙人歸去休.

(《장삼풍선생전집》권8 《수석한담》)

“장삼풍이 청미천계(清微天界)에서 나와 담담히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자 제자 여럿이 팽천(烹泉)에서 정성을 다했다. 선생이 이르길 내가 지금 ‘혼원선곡(混元仙曲)’을 원양(圓陽)에게 주니 중생이 나를 위해 노래한다면 임천(林泉)에 아름다운 일화를 더하리라. 이때 이산초(李山樵)가 구죽(龜竹 검은빛 나는 대나무)을 두드리고 양계사(楊屆士)는 거문고를 뜯고 유야인(劉野人)은 행운판(行雲板)을 두드리며 마침내 선생을 위해 노래했다.

‘원양도사가 진실로 유희하니
도를 찾아 헌신짝처럼 관직을 버렸구나

圓陽道士真遊戲
訪道拋官如敝屣…….’”

(《수석한담》)

《장삼풍선생전집》에는 《도정가(道情歌)》, 《오경도정(五更道情)》, 《구경도정(九更道情)》, 《탄출가도정(歎出家道情)》, 《천변월도정(天邊月道情)》, 《일소광도정(一掃光道情)》, 《무근수도정(無根樹道情)》, 《사시도정(四時道情)》, 《청양궁유제도정(青羊宮留題道情)》 등 1백여 수의 도정 시사(詩詞)가 수록되어 있다.

이중 《사시도정》에서 장삼풍은 한 폭의 그림으로 천상과 인간세상의 사계절을 그려냈다. 이 속에서 왕자진(王子晉 신선)이 생황을 불고, 여동빈과 종리권이 구름을 타고, 엄군평(嚴君平)이 점을 치고, 한상자가 한유를 구도하며, 임화정(和靖)이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식으로 삼고 홀로 산을 지키고, 장삼풍이 거문고를 연주하고 바둑을 두며 책을 보고 매화를 그린 이야기들을 볼 수 있다.

《사시도정》

봄 색이 좋구나 좋아, 복숭아꽃 살구꽃 새로 활짝 피었네.
산과 정원의 풍물이 예뻐 바라보아도 슬픔과 근심 없어라.
신선이 좋아하는 동부에 가서 봄놀이를 하니 왕자진 선생이 옥으로 만든 생황을 부네.
옥생황을 불며 지음과 들었네.
나는 한가할 때 향을 한 대 사르고 거문고를 연주하네.

春色可人可人,桃杏花開滿眼新。
山園風物嫩,看來到也無憂悶。
仙喜的是洞府去遊春,子晉先生吹玉笙,玉笙吹與知音聽。
俺則道閑來時,焚一炷香,撫一曲琴。

여름에 연꽃 못을 관상하니 두 마리 원앙이 수면 위로 나는구나.
쌍쌍이 열을 지어 시원한 바람 부는 달밤에 한가로이 노니누나.
신선이 좋아하는 여조(여동빈)가 종리권을 만나니
두 노인이 장생지를 남겨두고 종남산에서 구름 타고 떠나갔네.
나는 도가 한가할 때면 향을 한 대 사르고 바둑 한판 두네.

夏賞荷池荷池,兩個鴛鴦水面飛。
擺列成雙對,清風有月閑遊戲。
仙喜的是呂祖遇鍾離,二翁留下長生地,終南山上乘雲去。
俺則道閑來時,焚一炷香,下一盤棋。

가을 경치 구름이 흐르고 흐르니 먼 산에 단풍들고 나뭇잎은 말랐구나.
밤에 은하수를 보니 견우가 직녀를 찾아왔구나.
신선이 좋아하는 것은 성도에 숨은 점쟁이 군평 선생.
손에 옥호로를 들고 하루 백전을 벌면 술을 사서 마셨네.
나는 도가 한가할 때면 향을 한 대 사라고 책 한권을 본다네.

秋景雲疏雲疏,遠岫蒼黃木葉枯。
夜看銀河布,牛郎到把織女度。
仙喜的是賣卜隱成都,君平先生挈玉壺,日得百錢把酒沽。
俺則道閑來時,焚一炷香,看一卷書。

겨울 경치 눈이 날리고 날려 만 리 관산이 옥처럼 쌓였구나.
화정이 오두막에 숨어 잠에 취하니 싸늘한 날씨에 학만이 외로운 산속을 지키네.
신선이 좋아하는 한유를 구도한 한상자.
여러 차례 수련을 권해도 응하지 않다 남관에서 길이 막힌 후에야 비로소 만났네.
나는 도가 한가할 때면 향을 한 대 사르고 매화 한 그루를 그린다네.

冬景雪飛雪飛,萬里關山似玉堆。
和靖掩廬睡,天寒鶴守孤山內。
仙喜的是湘子度文公,屢勸回頭不肯回,藍關路上才相會。
俺則道閑來時,焚一炷香,畫一樹梅。

도정 4수는 바로 내가 종남산에서 은거할 때 스스로 부르던 것이다. 모두 《죽지(竹枝)》와 같은 형식으로 절마다 단절되어 이어지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서로 잇는 묘미가 있다.

장삼풍은 또 《천변월도정(天邊月道情)》과 《무근수(無根樹)》에서 다른 공간의 신체(神體 신의 몸)와 선체(仙體 신선의 몸)가 형성되는 과정을 자세히 서술하고 안정설로(安鼎設爐), 채약연단(採藥煉丹), 주천순환(周天循環) 등의 현묘한 현상들을 묘사했다. 이는 명청(明淸) 시기 수도인들이 모두 떠받든 극히 뛰어난 작품으로 광범위하게 전해져 널리 불렸다.

장삼풍은 《추야여제생부집헌연대(秋夜與諸生複集軒然台)--가을 밤 제생들과 다시 헌연대에 모여》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을 밤 제생들과 다시 헌연대에 모여》

이런 즐거움 올해는 적으니 오늘 밤을 저버리지 말라.
바람소리 듣고 또 비 소리 들으며 도를 논하고 가사를 말하네.
각기 무근수를 부르나니 격식에 맞는 시라 자랑하지 말라.
법률에 억매이지 않고 큰 소리로 노래하니 절로 즐겁구나.

此樂今年少,今宵莫負之
聽風兼聽雨,談道複談詞
各唱無根樹,休誇限韻詩
不拘諸法律,高詠自怡怡

《천변월도정(天邊月道情)》(일부분)

하늘가의 달, 달그림자 밝구나.
엎어진 동이 같은 인간세상 환히 비추니
엎어진 동이에 얼마나 많은 억울한 집들 있으랴.
여러 겁을 닦아 비로소 사람 몸 얻었거늘
잃는다면 만겁에도 찾기 어려우니
만겁에도 팔보(八寶)같은 진여 본성 찾기 힘들도다.
처자식을 탐하면 호랑이 무리 속에 들어간 양이요
부귀를 과시하고 세력 믿어 가난한 자 무시하네.
가난한 자 무시하면 하늘의 보응 받으리니
홍진(紅塵)을 뛰쳐나오는 것만 못하도다.
밝은 스승 모시고 빨리 수행에 나서면
그 때 선가의 인연 저절로 있으리라.

天邊月(천변월),月影明(월영명)
照見人間似覆盆(조견인간사복분)
覆盆多少冤家陣(복분다소원가진)
累劫修才得人身(누겁수재득인신)
失卻了萬劫難尋(실각료만겁난심)
難尋八寶真如性(난심팔보진여성)
貪妻子羊伴虎群(탐처자양반호군)
誇富貴倚勢欺貧(과부귀의세기빈)
欺貧還有天報應(기빈환유천보응)
到不如跳出紅塵(도불여도출홍진)
拜明師早去修行(배명사조거수행)
那時自有仙家分(나시자유선가분)

하늘가의 달, 달그림자 그윽하구나.
영화를 탐하는 일 그 누가 그만둘까?
그만 두지 않고 어찌 신선의 인연 모일 수 있으랴?
묶여 있는 외로운 배와 같은 세인들을 탄식하나니,
마치 물 위에 뜬 거품과 같아서
거품이 흩어지면 의지할 곳 없어지네.
빨리 되돌아 밝은 스승 모시고
푸른 소를 거꾸로 타는 것만 못하도다.
공이 쌓이고 덕행이 누적되어 단을 이룬 후에는
뜻을 지킬 때는 천하를 운유하고
뜻을 얻을 때는 영주에 올라가리니
그때에야 비로소 금계단 위에 이름을 올리리라.

天邊月(천변월),月影幽(월영유)
貪戀榮華誰肯休(탐련영화수긍휴)
不休那得仙緣湊(불휴나득선연주)
歎世人(탄세인),系孤舟(계고주)
好一似水上浮漚(호일사수상부구)
浮漚散卻難依就(부구산각난의취)
到不如早早回頭(도불여조조회두)
拜明師倒跨青牛(배명사도과청우)
積功累行丹成後(적공누행단성후)
守志時四海雲遊(수지시사해운유)
得志時步上瀛洲(득지시보상영주)
那時節姓名才上金階奏(나시절성명재상금계주)

하늘가의 달, 달그림자 차갑구나.
신선이 되는 것 역시 어렵지 않네.
어렵지 않으려면 삼시(三尸)를 베어야 하네.
용을 항복시키는 발우 입에서 입으로 전하고
범을 굴복시키는 묘한 비결 말로하기 어렵구나.
말로 하기 어려우니 비인(匪人 바르지 못한 사람)에게 드러내지 말라.
큰 신통의 불 속에 연꽃을 심고
뛰어난 장인이 물을 거슬러 배를 모나니
물 거슬러 배를 몰 땐 어지럽지 말아야 하네.

주인옹이 돛단배를 장악하고
거센 물결 속에서 진연(真鉛)을 채취하면
그때에야 바야흐로 영소전에 나아가네.

天邊月(천변월),月影寒(월영한)
要做神仙也不難(요주신선야불난)
不難要把三尸斬(불난요파삼시참)
降龍缽口口相傳(항룡발구구상전)
伏虎盂妙訣難言(복호우묘결난언)
難言莫與匪人顯(난언막여비인현)
大神通火裏栽蓮(대통신화리재련)
高匠手逆水撐船(고장수역수탱선)
逆水撐船休要亂(역수탱선휴요난)
主人翁掌定風帆(주인옹장정풍범)
浪滾中采取真鉛(낭곤중채취진연)
那時方赴靈霄殿(나시방부영소전)

하늘가의 달, 달그림자 높구나.
작교(鵲橋)를 타는 신선 있으니
작교의 길은 크고 험난하구나.
황정궁에서 약의 싹을 채취해
은하수 안에 오랫동안 물이 밀려드네.
물이 밀려들면 현묘한 가운데 오묘함이 드러나네.
견우가 천조(天曹)에서 내려오면
저 직녀의 손길 바빠지며
견우직녀가 함께 즐겁게 웃는구나.
원컨대 하늘이 황파를 하사해
좋은 인연으로 황홀하게 서로 사귀고
공 이루고 덕행이 원만하면 천서로 부르리라.

天邊月(천변월),月影高(월영고)
有個神仙駕鵲橋(유개신선가작교)
鵲橋路險大難到(작교로험대난도)
黃庭宮采取藥苗(황정궁채취약묘)
銀河內長有水潮(은하내장유수조)
水潮方顯玄中妙(수조방현현중묘)
有牛郎降下天曹(유우랑강하천조)
那織女忙把手招(나직녀망파수초)
牛郎織女同歡笑(우랑직녀동환소)
願上天賜一個黃婆(원상천사일개황파)
好姻緣恍惚相交(호인연황홀상교)
功完行滿天書詔(공완행만천서조)

 하늘가의 달, 달그림자 외롭구나.
수행인은 대장부라
대장부라야만 수행의 길에 들어서네.
장선고(張仙姑)가 일찍이 여조(여동빈)를 모시고
용녀(龍女)가 보주(寶珠)를 헌상했네.
보주를 끌어안고 항아가 보호하네.
니환궁에서 경수(瓊酥)가 내려오니
마치 구슬 같은 귤로 제호를 빚은 것 같아서
입에 들어온 제호 감로와 같구나.
진양화(進陽火)를 했으면 퇴음부(退陰符)를 해야 하니
단전에 넣고 단단히 봉고해야 하네.
그때가 되면 하늘과 통하는 길이 저절로 생기리라.

天邊月(천변월),月影孤(월영고)
修行人(수행인),大丈夫(대장부)
大丈夫才入修行路(대장부재입수행로)
張仙姑曾拜呂祖(장선고증배여조)
有龍女獻上寶珠(유용년헌상보주)
寶珠擁出嫦娥護(보주홍충항아호)
泥丸宮降下瓊酥(니환궁강하경수)
如珠橘釀酒醍醐(야주귤양주제호)
醍醐到口如甘露(제호도구여감로)
進陽火要退陰符(진양화요퇴음부)
入丹田牢牢封固(입단전뢰뢰봉고)
那時自有通天路(나시자유통천로)

하늘가의 달, 달그림자 날리누나.
어떤 신선이 옥피리를 부는데
옥피리를 부니 천규와 통하네.
지천태(地天泰)로 동요하지 않으며
전도(顚倒)는 수단이 높아야 하니
수단이 높아야 현묘한 가운데 오묘함이 드러나네.
흰 눈이 구소(九霄) 위로 날아오르니
황아(黃芽)가 자라고 자라 영묘(靈苗)가 되는구나.
선천의 오묘함 뉘라서 알리오.
곤반주(滾盤珠)는 그리거나 묘사하기 어려우니
모니전을 단단히 지키고 지켜야 하네.
그때가 되면 바야흐로 은사님께 보답하리라.

天邊月(천변월),月影飄(월영표)
有個神仙品玉簫(유개신선품옥소)
玉簫品出通天竅(옥소품출통천규)
地天泰不動不搖(지천태부동불요)
顛倒用手段要高(전도용수단요고)
手段高方顯玄中妙(수단고방현현중묘)
白雪飛飛上九霄(백설비비상구소)
黃芽長長就靈苗(황아장장취영묘)
先天奧妙誰知曉(선천오묘수지효)
滾盤珠難畫難描(곤반주나화난묘)
牟尼殿緊固堅牢(모니전긴고견뢰)
那時方把師恩報(나시방파사은보)

하늘가의 달, 달그림자 낮구나.
18제자가 모니를 희롱하니
모니가 마침내 장생지로 들어가네.
서쪽에서 온 뜻 취한 듯 어리석은 듯.
관자재의 청정무위는
무위의 오묘한 쓰임 유위에서 일어나네.
납을 수은에 나투면 수명이 하늘과 같고
수화(水火)가 교류하면 영원히 근심 없으리니
삼시가 머리를 웅크리고 마왕이 도망가네,
연수주는 잔이 필요 없으니
꿀처럼 달아 조금만 마셔도
훈훈하게 반도회(蟠桃會 신선의 모임)에 간 것 같다네.

天邊月(천변월),月影低(월영저)
十八弟子戲牟尼(십팔제자희모니)
牟尼竟入長生地(모니경입장생지)
西來意如醉如癡(서래의여취여치)
觀自在清淨無爲(관자재청정무위)
無爲妙用有爲起(무위묘용유위기)
鉛投汞壽與天齊(연투홍수여천제)
水火交永保無虞(수화교영보무우)
三屍縮首魔王避(삼시축수마왕피)
延壽酒(연수주),不用杯(불용배)
甜如蜜(첨여밀),自飲刀圭(자음도규)
醺醺去赴蟠桃會(훈훈거부반도회)

하늘가의 달, 달그림자 원만하구나.
고송 아래에서 진현(眞玄)을 깨달으니
진현은 오직 자신만이 볼 수 있네.
난새와 봉황이 높은 산으로 날아오르고
앵무새는 노래하며 니환을 지키니
니환에서 영아의 얼굴을 보는구나.
머금은 달빛 뒤도 아니고 앞도 아니며
해를 안고 자는데 땅도 없고 하늘도 없네.
하늘은 없지만 도리어 영롱전이 되네.
하늘이 맑은 안개 내려주시길 원하며
서미(黍米)를 안고 구름 끝에 오르면
그때에야 바야흐로 영소전에 나아가네.

天邊月(천변월),月影圓(월영원)
古松樹下悟真玄(고송수하오진현)
真玄只許自家見(진현지허자가견)
鸞鳳飛騰在高山(난봉비등재고산)
鸚鵡唱守在泥丸(앵무창수재니환)
泥丸得見嬰兒面(니환득견영아면)
銜月華不後不前(함월화불후부전)
抱日眠無地無天(포일면무지무천)
無天反做玲瓏殿(무천반주영롱전)
願上天賜陣清煙(원상천사진청연)
抱黍米升上雲端(포서미승상운단)
那時方赴靈霄殿(나시방부영소전)

하늘가의 달, 달그림자 없구나.
상(相)도 없고 형(形)도 없어 그리기 어렵구나.
그리기 어려움이 수행에 들어가는 계보로다.
성도 이름도 없지만 오히려 부름을 받고
방체(方體)가 없으니 누가 친소(親疏)를 확인하리?
친소의 오묘한 쓰임은 전부 드러내지 않음에 있네.
무념(無念)일 때 무슨 공부를 사용하리
무상처(無想處)는 본체가 여여(如如)하니
여여해야만 비로소 어머니를 낳는 길이 되네.
무색계에 진짜 길이 있으니
아무 근심 없어짐에 선도(仙都)가 있구나,
그때에야 비로소 채색구름을 걷노라.

天邊月(천변월),月影無(월영무)
無相無形難畫圖(무상무형난화도)
畫圖難入修行譜(화도난입수행보)
無名姓卻聽招呼(무명성각청초호)
無方體誰認親疏(무방체수인친소)
親疏妙用全不露(친소묘용전불로)
無念時何用工夫(무념시하용공부)
無想處本體如如(무상처본체여여)
如如才是娘生路(여여재시낭생로)
無色界有條真路(무색계유조진로)
無掛礙有個仙都(무괘애유개선도)
那時才把彩雲步(나시재파채운보)

《무근수(無根樹)》(일부분)

뿌리 없는 나무여, 꽃이 치우쳤구나.
음양을 벗어나면 도가 완전하지 못하도다.
금(金)이 목(木)과 떨어지고 수은이 납과 떨어져
양은 적고 음이 외로워 각각 한편에 치우치네.
세상의 음양은 남녀를 짝하여
아들 낳고 손자 낳고 대대로 전해지니,
이를 따르면 범인이 되고 거스르면 신선이 되나니
오직 중간 전도에 달려있도다.

無根樹(무근수),花正偏(화정편)
離了陰陽道不全(이료음양도부전)
金隔木(금격목),汞隔鉛(홍격연)
陽寡陰孤各一邊(양과음고각일변)
世上陰陽男配女(세상음양남배여)
生子生孫代代傳(생자생손대대전)
順爲凡(순위범),逆爲仙(역위선)
只在中間顛倒顛(지재중간전도전)

뿌리 없는 나무여, 꽃이 무성하구나.
아름다운 외모와 예쁜 얼굴 분단(粉團)을 다투네.
원숭이와 말(뜻)을 방비함에 낮고 더욱 완고해야 하니
처녀에게 철면(鐵面)을 보이네.
청룡의 진짜 보검 들어
담장 끝에 나온 꽃들을 모조리 따내네.
순풍에 돛단 듯 가득 싣고 돌아오니
어찌 보배 산을 헛되이 지나칠 수 있으랴!

無根樹(무근수),花正繁(화정번)
笑貌嬌容賽粉團(소모교용새분단)
防猿馬(방원마),劣更頑(열경완)
掛起娘生鐵面顏(괘기낭생철면안)
提出青龍真寶劍(제출청룡진보검)
摘盡牆頭朵朵鮮(적진장두타타선)
趁風帆(진풍범),滿載還(만재환)
怎肯空行到寶山(즘긍공행도보산)

뿌리 없는 나무여, 꽃이 원만하구나.
열매 맺어 수확하니 그 맛이 완벽하구나.
붉은 귤 같고 총알과 같으니
제방을 지켜 한가히 열지 말라.
초목의 수두법(收頭法)을 배우면
복명귀근하여 본원을 되돌리리라.
영지(靈地)를 선택해 도의 집을 짓고
선천에서 회합해 크게 돌아오리라.

無根樹(무근수),花正圓(화정원)
結果收成滋味全(결과수성자미전)
如朱橘(여주귤),似彈丸(사탄환)
護守堤防莫放閑(호수제방막방한)
學些草木收頭法(학사초목수두법)
覆命歸根返本元(복명귀근반본원)
選靈地(선영지),結道庵(결도암)
會合先天了大還(회합선천료대환)

뿌리 없는 나무여, 꽃이 많구나.
도처에 꽃이 필 때 애정의 강에 막혔구나.
잡아당겨 꺾기 힘드니 이를 어이하리.
걸음걸음마다 용과 호랑이 굴이로다.
황화(黃花)를 채취해 굴로 돌아가면
자부(紫府 신선세계)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이름을 새기리라.
즐겁게 웃으며 흰 구름 속에 노닐며
대라천선(大羅天仙)이 될 하늘 사다리를 준비하네.

無根樹(무근수),花正多(화정다)
遍地開時隔愛河(편지개시격애하)
難攀折(난반절),怎奈何(즘내하)
步步行行龍虎窩(보보행행용호와)
采得黃花歸洞去(채득황화귀동거)
紫府題名永不磨(자부제명영불마)
笑呵呵(소가가),白雲阿(백운아)
准備天梯上大羅(준비천제상대라)

뿌리 없는 나무여, 꽃이 선명하구나.
부화(符火)로 수은과 납을 서로 달이네.
화로에 임할 때는 장면이 앞에 나타나리니
채취는 전적으로 법선(法船)에 의지해야하네.
배를 모는 장수(匠手)가 키를 단단히 잡고
큰 파도에 맡기면 바다 밑이 뒤집어지리.
삼관을 지나고 니환에 오르면
일찍이 온몸의 구규(九竅)가 통하네.

無根樹(무근수),花正鮮(화정선)
符火相煎汞與鉛(부화상전홍여연)
臨爐際(임로제),景現前(경현전)
采取全憑渡法船(채취전빙도법선)
匠手高強牢把舵(장수고강뢰파타)
一任洪波海底翻(일임홍파해저번)
過三關(과삼관),透泥丸(투니환)
早把通身九竅穿(조파통신구규천)

뿌리 없는 나무요, 꽃이 어여쁘구나.
하늘에선 별에 응하고 땅에선 조수에 응하네.
도룡검, 박호조로 용호를 다스리고
천강(天罡 별 이름)을 운전하고 두표(斗杓 북두칠성의 세 별)를 알선하네.
한 화로에서 진짜 해와 달을 단련하며
삼천육백 가지 방문(旁門)을 말끔히 쓸어내네
운소(雲霄)를 거닐며 마음껏 소요하니
죄의 때와 속세 먼지 단번에 사라지네.

無根樹(무근수),花正嬌(화정교)
天應星兮地應潮(천응성혜지응조)
屠龍劍(도룡검),縛虎絛(박호조)
運轉天罡斡斗杓(운전천강알두표)
鍛煉一爐真日月(단련일로진일월)
掃盡三千六百條(소진삼천육백조)
步雲霄(보운소),任逍遙(임소요)
罪垢凡塵一筆消(죄구범진일필소)

뿌리 없는 나무여, 꽃이 없구나.
그림자도 없고 형체도 없으니 그리기 어렵구나.
이름도 성도 없는데 오히려 들을 수 있구나.
중간의 조화로에 잡아들이고
주천삼매의 화를 운기(運氣)하여
진공(眞空)을 단련해 태무(太無)로 돌아가네.
신선의 도읍에 아뢰고 천부(天符)를 받으면
비로소 남아대장부라 할 수 있도다.

無根樹(무근수),花正無(화정무)
無影無形難畫圖(무영무형난화도)
無名姓(무명성),卻聽呼(각청호)
擒入中間造化爐(금입중간조화로)
運起周天三昧火(운기주천삼매화)
鍛煉真空返太無(단련진공반태무)
謁仙都(알선도),受天符(수천부)
才是男兒大丈夫(재시남아대장부)
 
원문위치 : http://www.zhengjian.org/node/155287




정견망

글/ 찬란한 5천년 신전문화의 천고영웅인물 연구팀

2. 신선시 품평

장삼풍 대도(大道)는 진인이 된 후 천지와 우주를 맘껏 노닐며 뭇신들과 구소(九霄 9층 하늘) 구름 밖에서 모임을 갖고 동천(洞天)과 복지(福地)의 여러 신선들을 찾아다녔다. 또 영주(瀛洲) 선산(仙山)의 신선들을 탐방해 시사(詩詞)를 짓고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지냈다.

시(詩)란 신(神)의 영성(靈性)이 흘러나온 것이다.

장삼풍은 《시담(詩談)》[《장삼풍선생전집》8권 《수석한담(水石閑談)》의 일부]에서 여동빈(呂洞賓), 한상자(韓湘子), 남채화(藍采和), 곤륜마고(昆侖麻姑), 이백(李白 청일선인清逸仙人), 시신(詩神) 소식(蘇軾 소동파), 소옹(邵雍 소강절), 구처기(邱處機 장춘진인), 진단(陳摶) 등 여러 진인(真人)과 신선들의 오묘한 구절을 기록하고 다양한 천국의 다채로운 선풍(仙風)과 시운(詩韻)에 대해 품평했다.

여동빈(여옹 呂翁)은 도호(道號)가 순양자(純陽子) 별호는 회도인(回道人 또는 회옹回翁)이다. 여동빈은 장안에서 진인 종리권(鍾離權)을 만나 ‘황량일몽’(黃粱一夢)을 꾼 후 각성해서 도를 닦았다. 수많은 고험을 거쳐 진인이 되었으며 ‘여동빈의 10가지 시험’(十試呂洞賓)이란 전설을 남기기도 했다. 도장(道藏)에는 여동빈이 황학루(黃鶴樓)에서 하늘로 날아올라갔다는 기록이 있다. 나중에 원 세조(元世祖 쿠빌라이)는 지원(至元) 6년(1340년) 여동빈을 ‘순양연정경화진군’(純陽演正警化真君)에 봉했다.

한상자는 자(字)가 청부(清夫)다. 《한선전(韓仙傳)》에 따르면 어려서부터 도를 좋아했고 여동빈의 제도를 받아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한상자는 삼촌인 한유(韓愈 당나라의 대문호로 당송팔대가의 하나)를 제도하고 싶어 여러 차례 신통을 펼쳐보였지만 끝내 믿게 할 수 없었다. 나중에 한유가 조정에서 바른 말을 하다 조주(潮州)자사로 쫓겨난 후 남관진령(藍關秦嶺)을 넘어갈 때였다. 갑자기 폭설이 내려 말을 타고 갈 수 없었는데 고독하고 절망적인 이 순간에 한상자가 나타나 한유를 구해주었다. 그는 ‘눈 깊은 남관에서 내년에 다시 봅시다(藍關雪深處,來歲更相逢)’라는 말을 남겼다. 한유는 그제야 비로소 신선의 일을 믿게 되었다.

남채화(藍采和)는 남당(南唐)의 심분(沈汾)이 쓴 《속선전(續仙傳)》에 기록이 있는데 이름이나 출신 등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술에 취하면 늘 발을 구르며 노래를 불렀는데 그 후렴구가 ‘답답가남채화’(踏踏歌,藍采和)라서 남채화로 불렸다.

발 구르며 노래하네 남채화
세상에 있을 날 얼마나 되랴?
젊은 얼굴은 봄철 나무요
흐르는 세월은 한 번의 베틀 북 질이네.
옛 사람들 도도히 떠나 돌아오지 않고
지금 사람들 분분히 오는 이 더 많아졌네.
아침에 난새와 봉황 타고 푸른 하늘에 이르렀는데
저녁에 보니 뽕나무밭에 흰 파도 이네.
길게 뻗친 밝은 빛은 허공에 있고
금은(金銀) 궁궐은 깎아지른 산처럼 높구나.

踏踏歌藍采和(답답가남채화)
世界能幾何(세계능기하)
紅顔一春樹(홍안일춘수)
流年一擲梭(유년일척사)
古人混混去不返(고인혼혼거불반)
今人紛紛來更多(금인분분래갱다)
朝騎鸞鳳到碧落(조기난봉도벽락)
暮見蒼田生白波(모견창전생백파)
長景明暉在空際(장경명휘재공제)
金銀宮闕高嵯峨(금은궁궐고차아)

나중에 어떤 사람이 그가 주루(酒樓)에서 술을 마시다 어디선가 생소(笙簫 생황과 퉁소) 소리가 들리자 채화가 학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 서서히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마고(麻姑)는 도가의 고대 신선이다. 갈홍의 《신선전(神仙傳) 왕원편》에는 마고가 방평(方平 왕원의 자)과 만날 때 자신을 언급하며 “그대를 만난 후 이미 동해 바다가 세 번 뽕나무밭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시선 이백(李白)도 여러 차례 마고에 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이백 《有所思 이런 생각이》

내가 그리는 신선은
바로 푸른 바다 동쪽에 있네.
바다는 차고 하늘 바람 몰아치니
산처럼 줄지은 흰 파도가 봉래산을 뒤엎네.
큰 고래 물 뿜으며 솟구쳐 건널 수 없으니
마음을 달래 봐도 막막하여 구슬 같은 눈물뿐.
서쪽에서 온 청조(青鳥) 동쪽으로 날아갈 제
원컨대 편지 한 통 마고신선께 보냈으면.

我思仙人(아사선인)
乃在碧海之東隅(내재벽해지동우)
海寒多天風(해한다천풍)
白波連山倒蓬壺(백파연산도봉호)
長鯨噴涌不可涉(장경분용불가섭)
撫心茫茫淚如珠(무심망망루여주)
西來青鳥東飛去(서래청조동비거)
愿寄一書謝麻姑(원기일서사마고)

이백 《단가행(短歌行)--짧은 노래》

밝은 대낮은 어이 그리 짧은지
인생 백 년 탈도 많구나.
창궁은 끝없이 아득하고
만겁 세월에도 태극은 여전한데
마고신선 늘어뜨린 양 살쩍도
태반이 벌써 서리가 내렸구나.

白日何短短(백일하단단)
百年苦易滿(백년고이만)
蒼穹浩茫茫(창궁호망망)
萬劫太極長(만겁태극장)
麻姑垂兩鬢(마고수양빈)
一半已成霜(일반이성상)

소옹(邵雍)은 자가 요부(堯夫), 호는 강절(康節)이며 총명하고 지혜로웠다. 송나라 인종(仁宗) 및 신종(神宗) 시기 조정에서 여러 차례 관직을 하사했지만 받지 않았다. 소옹은 “읽지 않은 책이 없었고” 사방을 두루 다니며 배웠다. 소옹은 《하도》, 《낙서》 등에 근거해 자신의 우주변화체계를 창조해냈으며 《황극경세(皇極經世)》를 저술했다. 또 그가 지은 《매화시(梅花詩)》는 이후 천년에 걸친 중국 역사의 변화를 정확히 예언했다.

백옥섬(白玉蟾)은 남송(南宋) 시기 사람으로 우화등선한 후 ‘자청명도진인’(紫清明道真人)에 봉해졌고 세상에서는 흔히 ‘자청선생(紫清先生)’으로 불렸다.

장모(張模)는 자가 군범(君範), 호는 자경진인(紫瓊真人)이다. 전진파 도인(道人)인데 원나라 초기에 득도했다.

장백단(張伯端)은 북송 사람으로 자가 평숙(平叔) 호는 자양(紫陽)이다. 사람들은 흔히 ‘오진(悟眞)선생’ 또는 자양진인(紫陽真人)이라 불렀다. 성도(成都)에서 신선을 만나 도를 전수받았으며 나중에 도를 이루고 날아올라갔다.

진단(陳摶)은 자가 도남(圖南)으로 무당산에서 20여 년 간 도를 닦았다. 또 화산 운대관(雲台觀)에 은거해 칩룡법(蟄龍法)을 얻어 매번 눕기만 하면 백여 일을 일어나지 않았다. 송 태조 때 ‘백운선생’(白雲先生)이란 호를 하사했고 또 ‘희이선생’(希夷先生)이란 호를 하사했다. 여기서 희(希)란 보여도 보지 않는 것(視而不見)을 말하고 이(夷)란 들어도 듣지 않는 것(聽而不聞)을 말한다. 그의 선천도설(先天圖說)은 송나라 이학(理學 성리학)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비하선자(飛霞仙子)는 명나라 때 강남의 갑부이자 장삼풍의 제자였던 심만삼의 외손녀로 장삼풍의 제도를 받았다. 심만삼 일가족과 함께 곤명지(昆明池)에서 하늘로 날아올라갔다.

《시담》 전문은 아래와 같다.

(역주: 이 부분은 삼풍진인이 역대 신선들의 시를 모아 품평한 것으로 전거가 없고 중간에 해석이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 이런 경우 무리하게 해석하기보다는 원문만이라도 올려 독자들에게 자료로 제공한다. 한국 독자여러분들의 양해를 바란다.)

(1) 장자(張子 역주: 여기서는 장삼풍을 지칭한다)는 말한다.

《상서(書)》에서는 “시는 뜻을 말한다(詩言志)”라고 했다. 주(注)에서 “마음에 있으면 뜻(志)이 되고 말로 표현하면 시가 된다.(在心爲志,發言爲詩)”고 했다. 이에 뜻이란 바로 사람 마음 속의 영성이며 시(詩)란 영성이 특별히 흘러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신선의 칠반구환(七返九還)은 이 허령(虛靈)하고 오묘한 성(性)을 연마해 만고에 죽지 않는 곡신(谷神)을 이루는 것이다. 일월(日月)의 빛 바깥에 드러나면 유상(有象)이 되고 일월의 빛 속에 숨으면 무형(無形)이 된다. 신(神)이 이르러 발하면 시(詩)가 되는데 노래와 시는 다르며 영성에도 각기 차이가 있다. 나는 일찍이 여러 신선들과 광야에서 왕래하고 연하(煙霞 선경)에서 출몰하면서 매번 정말 오묘한 구절을 볼 때마다 마음속에 기억했다가 붓으로 남겨 《수석한담(水石閑談)》에 편입시켰다.

(2) 여옹(呂翁)의 시는 문필의 수준이 높고 읽어보면 가장 낭랑해서 유행하는 구절이 극히 아름답다. 지금 몇 수를 기록해 선생의 영성(靈性)이 사람들과 같지 않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여동빈 《칠석유악운선원(七夕遊嶽雲仙院)--칠석에 악운선원에서 노닐다》

 구산의 잔치 비로소 끝내고
옛 절에 다시 와서 노니네.
오동나무 정원에 바람이 불고
이슬비 맞은 콩 꽃은 가을이로다.
멀리 높은 산엔 구름이 걸리고
먼 하늘 안개는 잠시 거두는데
지금 서늘한 기운 이와 같으니
옥피리는 고루에 기대어 있노라.

始罷緱山宴 시파구산연
重來古寺遊 중래고사유
疏風梧葉院 소풍오엽원
細雨豆花秋 세우두화추
遠嶂雲初斂 원장운초렴
長天霧乍收 장천무사수
新涼今若此 신량금약차
玉笛倚高樓 옥적의고루

《과무창성루(過武昌城樓)--무창 성루를 지나며》

우뚝 솟은 무창성은 그대로인데
물가 가까운 곳에 초나라 인가.
난간 밖 장강은 밤낮 물결 이는데
각(閣) 속의 장검은 구름하늘에 기대네.
사인(詞人)이 남쪽 누각에 앉아 휘파람 부니
어부의 노래 서쪽 연기 속에서 되돌아오네.
피리 부는 노인은 더욱 한가한데
낭랑히 읊조린 곡 여운이 천년을 가네.

武昌城郭敞依然 무창성곽창의연
楚國人家近水邊 초국인가근수변
檻外大江淘日夜 함외대강도일야
閣中長劍倚雲天 각중장검의운천
詞人坐嘯南樓月 사인좌소남루월
漁父歌回西塞煙 어부가회서새연
吹笛老翁閑更甚 취적노옹한경심
朗吟一曲響千年 낭음일곡향천년

《동한청부유광려육절구(同韓清夫遊匡廬)--한상자와 여산을 노닐다》 6수

제1수

구름 밖의 여산은 아홉 겹 푸르고
창 열고 봉우리 마주해 황정경을 읽노라.
그 속에 있는 경치 뉘라서 알리오?
책 덮고 몸 일으켜 취병에 오르네.

雲外廬山九疊青 운외여산구첩청
開窗對嶂讀黃庭 개창대장독황정
個中有景何人識 개중유경하인식
拋卷翻身入翠屏 포권번신입취병

제2수

비온 후 죽순의 녹음 사람에게 스며드는데
좁은 길 따라 깊이 들어가 속세를 피하노라.
한상자는 생황 여옹은 피리를 쌍쌍이 연주하니
선음(仙音)은 하나지만 화신은 둘이로다.

雨後新笙綠浸人 우후신생녹침인
逕趨深處避紅塵 경추심처피홍진
韓笙呂笛雙雙度 한생여적쌍쌍도
一樣仙音兩化身 일양선음양화신

제3수

마음이 즐거우니 어딘들 즐겁지 않으리?
땅에서 소요함이 하늘과 같구나.
폭포는 삼백 장을 거꾸로 흐르니
일시에 맑은 기운 벼랑 가에 가득하네.

陶然何處不陶然 도연하처불도연
在地逍遙似在天 재지소요사재천
瀑布倒流三百丈 폭포도류삼백장
一時清氣滿崖邊 일시청기만애변

제4수

입 열면 노래가 되고 손을 들면 시가 되니
이끼를 제거하니 푸르름에도 높낮이가 있네.
아득한 연기 속에 문득 범고 소리 들리니
울창한 숲속에서 호계를 건넜구나.

信口歌成信手題 신구가성신수제
剔殘苔蘚翠高低 척잔태선취고저
忽聞梵鼓來煙際 홀문범고래연제
林木蔥籠過虎溪 임목총롱과호계

제5수

한 글자에 시가 되고 한 글자에 날아가니
하늘가의 황학이 나를 싣고 돌아가네.
단 앞에 손님 있어도 날 잡긴 어려우니
마음은 한가한 구름 같고 사람은 산색이로다.

一字詩成一字飛 일자시성일자비
天邊黃鶴載余歸 천변황학재여귀
壇前有客難留我 단전유객난유아
心似閑雲人翠微 심사한운인취미

제6수

자는 용을 깨워 바다 문을 나서니
눈 깜짝할 새 하늘가에 비가 쏟아지네.
가없는 하늘에 일검이 다시 나는데
동남을 바라보니 나무그림자 어둡구나.

喚起眠龍出海門 환기면룡출해문
須臾天際雨翻盆 수유천제우번분
長空一劍又飛去 장공일검우비거
潘看東南樹影昏 반간동남수영혼

이처럼 여옹의 시는 모두 청랑하고 사랑스럽다.

(3) 성령(性靈)이 여옹과 가까운 사람 중에는 한청부(韓清夫 한상자) 선생 같은 이가 없다. 가령 《한음(閑吟)》에서는 이렇게 읊었다.

《한음(閑吟)》

조용히 현 없는 거문고 끌어안고
구멍 없는 피리를 나직이 부네.
한 번 거문고 타면 천지가 맑아지고
한 번 피리 불면 천지가 트이네.
한 번 불고 또 한 번 타니
모두 신선의 곡이로구나.

靜抱沒弦琴 정포몰현금
細吹無孔笛 세취무공적
一彈天地清 일탄천지청
一吹天地闊 일취천지활
一吹複一彈 일취부일탄
盡是神仙曲 진시신선곡

《여조에게(和呂祖)》

문 앞엔 호랑이 오두막엔 학이 있는데
옥으로 만든 생황 완연히 피리와 같구나.
나는 구름 산의 객으로 온 게 아니니
상수(湘水)의 흐름은 사연 많은 편지로다.

虎在門而鶴在廬 호재문이학재려
瑤笙宛轉笛相如 요생완전적상여
我來不是雲山客 아래불시운산객
湘水之流曲折書 상수지류곡절서

이처럼 말이 모두 웅장하면서도 활달하다.

(4) 남채화는 자호(自號)를 장소(長嘯)선생이라 했다.

《답인문선거(答人問仙居)--신선의 거처를 묻는 이에게 답하다》

답답가 잔편상승
악산에 긴 휘파람 부는 옛 선생.
근래 어디서 거처하는지 내게 묻네
천상의 신선은 옥경(玉京 선계의 궁궐)에 산다오.

踏踏歌殘便上升 답답가잔편상승
嶽山長嘯古先生 악산장소고선생
問余近日居何處 문여근일거하처
天上神仙住玉京 천상신선주옥경

(5) 일찍이 한상자, 남채화, 조국구, 하선자의 《관중답가연구(關中踏歌聯句)》를 본 적이 있는데 정말이지 한번 부르면서 세 번을 감탄케 하는 음악이었다.

건곤은 마치 경호처럼 큰데
박판으로 한가히 노래하는 장부 하나.
비바람 부는 장안에는 봄이 이미 저물었는데
낙화(洛花) 가득한 곳에서 어슬렁거리며 걷누나.

乾坤偌大似瓊壺 건곤약대사경호
拍板閑吟一丈夫 박판한음일장부
風雨長安春已暮 풍우장안춘이모
落花滿地步于于 낙화만지보우우

(6) 곤륜마고는 자호가 벽성선자(碧城仙子)인데 그 시의 운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풍부하다.

《제악운단(題嶽雲壇) 절구 3수》

봉황과 난새 타고 벽성에 내려와
웃으며 구름 밖 맑은 달빛 바라보네.
곤륜 만 리에 하늘 바람 보내며
옥환을 흔드니 옥패 소리 들리네.

跨鳳驂鸞下碧城 과봉참란하벽성
笑看雲外月光清 소간운외월광청
昆侖萬里天風送 곤륜만리천풍송
搖曳瓊環玉珮聲 요예경환옥패성

푸른 구름 밟으며 바다 산을 건너며
옥피리 손에 드니 뜻이 한가하구나.
구름 속에 황금노을 치마 나타나니
맑은 노래 부르며 이곳까지 왔노라.

足履青雲過海山 족리청운과해산
瑤笙在手意閑閑 요생재수의한한
雲中現出金霞帔 운중현출금하피
一路清吟到此間 일로청음도차간

악운단상 위에서 회옹(回翁 여동빈)을 방문하니
제자 두 셋이 도통을 두드리네.
바람 소리 몰아치니 구름 소리 가늘어
누각의 밝은 등 밤을 붉게 비추네.

嶽雲壇上訪回翁 악운단상방회옹
子弟兩三敲道筒 자제양삼고도통
風聲蕩漾雲聲細 풍성탕양운성세
樓閣明燈照夜紅 누각명등조야홍

또 《보허(步虛)》 3수가 있다.

《보허(步虛)》 3수

나는 본래 곤륜의 여 산선(散仙)
일찍이 바다가 뽕밭으로 변하는 것 보았지.
팔극(八極)에 신통을 펼치며 한가로이 노니는데
옥고리와 노리개 소리 하늘가에 울리네.

我本昆侖女散仙 아본곤륜여산선
曾看海水變桑田 증간해수변상전
神通八極閑遊戲 신통팔극한유희
環珮聲搖碧落邊 환패성요벽락변

상투머리 높이 아름다운 금꽃 꽂고
서지(西池)에서 모친께 절하며 이별했네.
산들산들 하늘 바람에 소매 나부끼며
허공 밟고 자운거 속에 완전히 잠겼구나.

髻頭高插美金華 계두고삽미금화
拜別西池阿母家 배별서지아모가
嫋嫋天風吹袖帶 요뇨천풍취수대
步虛全伏紫雲車 보허전복자운거

장생주 빚기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손안의 영단에 의지할 뿐.
나는 본래 하늘의 선녀
항아와 함께 취해 은하수에서 잔다오.

醞釀長生酒不難 온양장생주불난
只憑手內有靈丹 지빙수내유영단
阿儂本是天仙子 아농본시천선자
醉共嫦娥宿廣寒 취공항아숙광한

(7) 벽성선고(碧城仙姑)는 늘 막고신인(藐姑神人)을 스승으로 모셨다. 어느 날 스승과 허공을 걷다가 금강에 내려와 어른을 모셨다.

신인이 먼저 시를 읊었다.

강과 호수 바라보니 기세가 광활한데
산구름 흔드니 맑고 화창하도다.
강 건너 등 그림자 깜빡이는데
한 폭 새로운 노래가 붓에 오르네.
거닐고 싶어 수레 열고 바라보니
이곳 정자가 아주 맑고 상쾌하구나.

看江潮,勢蒼莽 간강호 세창망
搖得山雲淡蕩 요득산운담탕
隔河燈影有無中 격하등영유무중
一幅新詞來筆上 일폭신사래필상
意徘徊,開軒望 의배회 개헌망
這亭兒甚清爽 자정아심청상

그러자 선고가 이에 화답했다.

물은 망망하고 산은 울창한데
수레 앞의 산수는 넓고 끝이 없어라.
비 내린 후 개구리 소리 시끄러운데
물결 소리 들리는 가운데 달이 처음 뜨는구나.
달이 뜨는 모습 구름 가에서 바라보니
저녁바람 서늘하니 뜻이 맑고 상쾌하네.

水茫茫,山莽莽 수망망 산망망
山水軒前浩蕩 산수헌전호탕
雨餘蛙鼓鬧堂堂 우여와고뇨당당
一路潮聲月初上 일로조성월초상
月中來,雲邊望 월중래 운변망
晚風涼意清爽 만풍량의청상

(8) 청일선인(清逸仙人)은 당나라 때 시의 대가로 성령(性靈)이 표일(飄逸)했는데 일찍이 세상에 내려왔다. 《수설절강쌍청각(修褉節降雙清閣)》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독서는 천고를 뛰어넘었고 검 들고 제후들을 편력했네.
작은 일은 안중에 두지 않고 크게 취해 술집에 숨었노라.
황제에서 요임금까지 그리 멀지 않으니 진한(秦漢)은 급류와 같구나.
눈앞의 일일랑 가벼이 보니 혼연하여 근심거리 없도다.
청산에 노래 읊은 지 오래되었지만 사선루를 자못 사랑하노라.
10만 수의 시를 지어 천지에 부쳐 남기나니
내 진정한 주인이 된 이래 호연히 영주로 돌아갔네.
오늘 수설(修褉 물에 지내는 제사)을 말하니 아득히 사발 하나에 부치네.
죽편 잡고 해선(海仙)을 부르니 바람 따라 십주를 지났네.
동쪽 삼신산으로 가니 뭇 신선들 함께 맘껏 노니네.
한 번에 오천 말을 마시니 배가 터질 듯 문자가 흐르누나.
무하유의 고향에서 길게 휘파람불며 바다 끝으로 가노라.

讀書邁千古, 攜劍干諸侯
瑣瑣不中意, 大醉隱糟邱
黃唐原不遠, 秦漢如急流
忽忽眼前事, 渾然無所愁
青山行吟老, 頗愛謝宣樓
題詩十萬首, 付與天地留
我自有真宰, 浩乎歸瀛洲
今日談修褉, 茫茫付一甌
海仙執簡招, 隨風過十州
東行三神仙, 群真同遨遊
一飲五千斗, 撐腸文字流
無何有之鄉, 長嘯去海頭

《동천가(洞天歌)》

해산(海山)에서 영약을 찾지만 영약은 해산에서 구하는 게 아니오
건곤이 탁약(橐籥 풀무)을 운행하지만 탁약은 건곤의 깍지가 아니라네.
금단은 원래 내 집의 물건이오 신선은 모두 영웅이 되어야 하네.
밤에 왕모 앞에 술 마시러 오니 구름길에 반도는 이미 익었구나.
태백이 안기의 노래 길게 휘파람부니 일시에 뭇신선들 나를 어쩌지 못하누나!
내 장차 규룡 타고 육합을 노닐 터이니 허공이 텅 비어 눈 자국조차 없으리라.
큰 바람 북쪽에서 불어와 찬 구름 불어 일으켜 첩첩이 열리네.
어디서 비 같은 술을 얻어 하늘에서 무한히 마실 수 있을까
어디서 샘 같은 술을 얻어 땅에 앉아 하늘 바라보며 마실 수 있을까.
미친 듯이 노래하고 박수 치며 어깨를 으쓱하니 누가 이청련인지 내게 묻는구나!

海山尋靈藥,靈藥不自海山求;
乾坤運橐籥,橐籥不是乾坤韝。
金丹原是吾家物,神仙都要英雄作。
夜來飲酒王母前,雲道蟠桃今已熟。
太白長嘯安期歌,一時群仙莫我何!
吾將跨虯遊六合,虛空寥寥無雪跡。
大風自北來,吹起寒雲疊疊開。
安得酒如雨,從空飲之無盡取;
安得酒如泉,坐地飲之眼朝天。
狂吟拍手聳方肩,問我何人李青蓮!

(9) 동파선생의 선재(仙才)는 이태백과 나란히 할 만하다. 바람을 타고 달을 노래하니 영성(靈性)이 길이 존재한다.

《강남송추(江南送秋)》

조각조각 가을구름은 멀리 있고
망망한 가을 강엔 물이 많구나.
푸른 산 붉은 나무 밖에
멀리 떠나는 기러기 관하에 아득하구나.
계북(薊北 장성 이북)은 추위가 더욱 심하지만
강남에는 기후가 이미 온화하네.
소양(少陽)의 봄이 막 도래하니
보내고 맞음이 서로 왕래하누나.

片片秋雲遠 편편추운원
茫茫秋水多 망망추수다
青山紅樹外 청산홍수외
征雁渺關河 정안묘관하
薊北寒逾峭 계북한유초
江南氣已和 강남기이화
小陽春甫到 소양춘보도
迎送兩相過 영송양상과

《제한청부소상(題韓清夫小像)》

禦殿承香吏,分胎吏部家。
閑心忘富貴,總角趣煙霞。
缽種長生果,園栽不老花。
八仙同壽考,萬劫抱丹砂。
首叩藍關馬,胸藏赤火鴉。
千秋賢叔侄,儒道兩無涯。

《자제입극도(自題笠屐圖)》

山人故態本狂奴,醉寫田間笠屐圖。
好句有時堪作畫,閑心無日不提壺。
樓頭賞月邀禪客,穀口沖煙訪釣徒。
自去自來隨自得,一聲長嘯入林樞。

《과동봉(過東峰)》

동봉에 못 온지 오래지만
강산은 여전히 전과 같구나.
떨어진 파초 지면에 가득하니
눈이 내릴 듯한 날씨는 참선하기 좋아라.

不到東峰久 부도동봉구
江山仍似前 강산잉사전
芭蕉落滿地 파초낙만지
雪意好參禪 설의호참선

《유호구점(遊湖口占)》

“細細疏煙瑟瑟波,水心亭外畫船多。瑤笙十裏誰家舫?聽得紅兒唱棹歇。”

“風斜雨細葛衫輕,三兩銀刀出水明。我愛芰荷香不斷,竹西深處有人行。”

《영마도우(詠磨刀雨)》

“荊州灑遍雨如膏,竟爲英雄礪寶刀。最是武昌城下水,千秋鳴咽卷雷濤。”

《영백래(詠白萊)》

“清於雪水白於霜,老圃天寒一味香。卻笑山僧長茹素,和脂煮出不能嘗。”

《자증(自贈)》

“平生不作愁眉事,今日東坡作散仙。解向江山留勝跡,長將姓字掛雲煙。”

《유청도심산방(遊清道心山房)》

“氣慧神清道在,山空人靜琴幽。一榻茶煙嫋嫋,三分酒意悠悠。”

또 《사사어(些些語)》란 사(詞)에서는 이렇게 노래했다.

“清陰繞,繞落花,窗外鳥聲小。鳥聲小,修竹一枚斜處好。翠羽嚶嚶啼徹曉,剛眠一覺。”

맑고 곱게 이어진 글이 그때의 영성이 조금도 줄지 않았으니 진선(眞仙)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10) 소요부(邵堯夫)는 유선(儒仙)이다. 일찍이 그의 재능이 드러난 《관역음(觀易吟)》을 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읊었다.

庖曦大聖人 포희대성인
畫卦傳萬古 획괘전만고
陰陽變化機 음양변화기
乾坤爲易祖 건곤위역조
吾隱安樂窩 오은안락와
天地乃同伍 천지내동오
窺破聖賢心 규파성현심
恬淡自得所 염담자득소

복희씨는 위대한 성인이니
팔괘를 그려 만고에 전하셨네.
음양은 변화의 기틀이오
건곤은 역의 조상이라.
나는 안락한 곳에 은거하니
천지가 한 무리라네.
성현의 마음을 엿보아 타파하니
스스로 얻은 바에 편안하고 담담하네.

넓고 큰 것이 《격양(擊壤)》편에 넣어도 차이가 없다.

(11) 백옥섬은 선가(仙家)의 재주꾼으로 유명한 산 비문에 남긴 글이 아주 많다. 매번 고인(高人)이나 일사(逸士)를 만날 때마다 반드시 시를 써서 선물로 주곤 했다.

《제거이당(題居易堂)》

林下風瀟瀟 窗前竹密密 임하풍소소 창전죽밀밀
難得素心人 共話新秋夕 난득소심인 공화신추석
把酒醉茅堂 焚香讀周易 파주취모당 분향독주역
瓊山到此來 賓主興無極 경산도차래 빈주흥무극

《증원양산인(贈圓陽山人)》

歸山隱跡話長生 日逐閑雲自在行 귀산은적화장생 일축한운자재행

處處回光來返照 朝朝對景要忘情 처처회광래반조 조조대경요망정

掃除塵土勞人夢 署起乾坤散客名 소제진토노인몽 서기건곤산객명

莫道幽居研煉苦 遊心冥漠自空清 막도유거연련고 유심명막자공청

(12) 장자경(張紫瓊)은 요주(饒州) 사람으로 원나라 초기에 득도했는데 빼어나고 굳센 시를 많이 지었다.

《자증(自贈)》

마음은 눈 내린 밤의 종소리 같고
모습은 서리 내린 매화의 품격 같구나.
흰 구름 깊은 곳에서 한가로이 행하노라면
선가(仙家)의 광일(曠逸)함을 알게 되리라.

心如雪夜鍾聲 심여설야종성
貌似霜天梅格 모사상천매격
白雲深處閑行 백운심처한행
那識仙家曠逸 나식선가광일

《영태식(詠胎息)》

오묘한 호흡은 돕지 않고 잊지 않으니
수행하려면 모름지기 이 공부를 알아야 하네.
두 기를 조정해 태식이 생기면
다시 중간에 정로를 설치하라.

非助非忘妙吸呼 비조비망묘흡호
修行要解這功夫 수행요해저공부
調停二氣生胎息 조정이기생태식
再向中間設鼎爐 재향중간설정로

(13) 구장춘은 《청추과악운루(清秋過嶽雲樓)》에서 이렇게 읊었다.

드넓은 하늘 바람 불어 누각에 가득하니
봉우리 속 구름기운 숲 언덕에 밀려오네.
빗소리 울리는 곳에 처마 방울 섞이니
방장이 숙연하니 뜰이 온통 가을이로다.

浩浩天風吹滿樓 호호천풍취만루
峰中雲氣湧林邱 봉중운기용림구
雨聲響處簷鈴雜 우성향처첨령잡
方丈蕭然一院秋 방장숙연일원추

준일(俊逸)한 운치가 풍부하다.

(14) 장자양(張紫陽)은 《자수(自壽)》에서 이렇게 읊었다.

海籌萬古計芒辰 해주만고계망진
得道年來八百春 득도연래팔백춘
分個孩兒騎鶴去 분개해아기학거
虛空粉碎見全身 허공분쇄현전신

상진(上真 높은 진인)이 아니면 쓸 수 없다.

(15) 희이노조(希夷老祖)는 《답인문성(答人問姓)》이란 오언절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기운이 고금을 이니
음양의 조화는 기이하구나.
내 성과 이름을 물으니
잠자는 한나라 노인 희이라네.

一氣淘今古 일기도금고
陰陽造化奇 음양조화기
問余名與姓 문여명여성
睡漢老希夷 수한로희이

(16) 내 스승님이신 화룡선생께서는 시 짓기를 좋아하지 않으셨고 명예에 대해 담담하셨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우음(偶吟)》이란 칠언절구다.

도호가 우연히 정화룡과 같지만
성과 이름은 태허 속에 숨겼노라.
장삼풍을 제도한 이후로는
약수 동쪽 봉래로 돌아왔노라.

道號偶同鄭火龍 도호우동정화룡
姓名隱在太虛中 성명은재태허중
自從度得三豐後 자종도득삼풍후
歸到蓬萊弱水東 귀도봉래약수동

(17) 비하선자(飛霞仙子)는 여십사의 딸이다. 신단을 먹고 하늘로 날아갔다. 일찍이 운남 자소관(紫霄觀)에 내려와 절구를 하나 남기고는 ‘비하(飛霞)’라는 낙관을 찍고 떠난 적이 있다.

요지 벽옥루에 오래 머물다
문득 채학(彩鶴 화려한 무늬의 학) 타고 영구에 내려오니
세인이 비하의 성을 물으려 한다면
일찍이 금단 안고 목후를 모셨다네.

久住瑤池碧玉樓 구주요지벽옥루
忽騎彩鶴下靈邱 홀기채학하영구
世人欲問飛霞姓 세인욕문비하성
曾抱金丹侍沐侯 증포금단시목후

(18) 육잠허(陸潛虛)는 회해(淮海)사람이다. 가정(嘉靖) 연간에 여동빈 조사를 만나 득도했다. 평생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노자원람(老子元覽)》2권,《음부경측소(陰符經測疏)》1권,《참동계측소(參同契測疏)》1권,《금단취정편(金丹就正篇)》1권,《자양4백자측소(紫陽四百字測疏)》1권,《방호외사(方壺外史)》8원,《남화부묵(南華副墨)》8권이 있다. 최근 동문 중에 백백자(白白子)가 있어 《도덕경》에 주를 달아 《동래정의(東來正義)》라 이름 지었다. 잠허가 그 제목에 다음과 같이 썼다.

一注能將道奧開,重看紫氣自東來。
彈琴度笛真名士,說法談經大辨才。
我坐方壺玩滄海,君登圓嶠壓篷萊。
今朝共坐江亭上,口誦南華自笑呆。

주 하나로 도의 오묘함 열 수 있나니 자기가 동쪽에서 온 것을 중시했구나.
거문고 타고 피리 부는 진짜 명사로 법을 설하고 경을 담론함에 뛰어난 변재로다.
나는 방호에 앉아 창해를 즐기나니 그대는 원교에 올라 봉래를 누르는구나.
오늘 함께 강가 정자 위에 앉아 남화경을 외면서 어리석음 스스로 비웃네.

역주: 방호, 원교 봉래는 모두 바다 가운데 신선이 산다는 전설의 산들이다.

백백자가 《원교외사(圓嶠外史)》, 《도규담(道竅談)》, 《오진참동잡해(悟真參同雜解)》 등의 여러 서적을 썼기 때문이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5238









정견망

글/ 찬란한 5천년 신전문화의 천고영웅인물 연구팀

혜안으로 사람을 판단하다(慧眼品人)

사람은 미혹 속에 있기 때문에 문제를 보는 수준이 그의 도덕 층차에 따라 달라진다. 장삼풍은 《인품편(人品篇)》에서 자신의 독특한 품인(品人)이론을 전개한다.

“사람의 성품은 비슷한 것 같지만 구별이 있으니 명확히 하지 않을 수 없다.

(人品近似之界,不可不明)”

“어떤 사람은 스스로 정기가 존재해 무리를 떠나서도 홀로 선다. 남들은 오만하다고 하지만 나는 굳세다고 본다.(有人焉,正氣自存,離群特立,人以爲傲也,吾以爲毅)”

“어떤 사람은 겸허함을 자처해 세상과 차이가 없다. 남들은 시류에 따른다고 하지만 나는 조화롭다고 본다.(有人焉,謙光自處,與世無殊,人以爲流也,吾以爲和)”

“어떤 사람은 유유자적하며 천진하다. 남들은 나태하다고 하지만 나는 편안하다고 본다.(有人焉,優遊自適,率乎天真,人以爲惰也,吾以爲安)”

“어떤 사람은 자유롭게 말하고 노래하며 천명에 따른다. 남들은 미쳤다고 하지만 나는 활달하다고 본다.(有人焉,嘯詠自如,由乎天命,人以爲狂也,吾以爲達)”

“어떤 사람은 정중하게 지조를 지키고 매사에 원칙을 따진다. 남들은 교만하다고 하지만 나는 자신에게 엄격하다고 본다.(有人焉,鄭重持身,豐裁峻節,人以爲驕也,吾以爲嚴)”

“어떤 사람은 순박하고 성실하며 성격이 고집스럽다. 남들은 그를 서툴다고 하지만 나는 순박하다고 본다.(有人焉,渾厚立己,性格堅蒼,人以爲拙也,吾以爲樸)”

“어떤 사람은 의리(義利)가 분명하고 사리사욕은 전혀 도모하지 않는다. 남들은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하지만 나는 강직하다고 본다.(有人焉,義利分明,一私莫著,人以爲矯也,吾以爲介)”

“어떤 사람은 흉금이 남달리 넓어서 친인이라고 편애하지 않는다. 남들은 그를 괴팍하고 냉정하다 하지만 나는 고상하다고 본다.(有人焉,襟懷卓異,一塵不親,人以爲僻也,吾以爲高)”

“어떤 사람은 온화하고 조화롭지만 글을 모른다. 남들은 속되다고 하지만 나는 선비로 본다.(有人焉,雍和滿著,不識文詞,人以爲俗也,吾以爲儒)”

“어떤 사람은 청정함에 공을 들이나 경전이나 예불 형식은 모른다. 남들은 어리석다고 하지만 나는 각자라고 본다.(有人焉,清淨爲緣,不知經懺,人以爲愚也,吾以爲覺)”

“어떤 사람은 음식이 속인과 다르지 않지만 기후가 나빠도 재앙에 걸리지 않는다. 남들은 괴이하다고 하지만 나는 신선으로 본다.(有人焉,飲食無異,寒暑不災,人以爲怪也,吾以爲仙)

“현명하고 어리석음이 뒤섞여 나타나고 때로는 서로 유사하지만 사실은 다른 것이 있으니 세밀하게 살피지 않을 수 없다.(賢否錯出之間,有相似而實不同者,不可不細觀也)”

손해보는 게 복

지금 사람들은 손해를 보면 대부분 화를 내면서 불평을 참지 못한다. 하지만 장삼풍은 《능양편(能讓篇)》에서 사람들에게 인내와 양보를 중시하라고 권했다.

“도덕과 수양을 중시하는 가문에서는 서쪽 벽이나 동쪽 거실에 격언이 걸려 있게 마련이다.”

“가령 손해 보는 한 조목을 예로 들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평한다. 내가 참고 양보할 수 있다면 자신에겐 수양이 되고 자손에게는 두터운 덕을 쌓는 일임을 모른다. 지금 성인이나 신(神), 어진 선비들의 지극한 이치가 담긴 명언 몇 구절을 적어 사람들에게 경계로 남기는 바이다.”

“남을 편안히 하면 자신이 편해지고 남을 배려하면 내가 배려 받는다. 내가 편하면 남이 불편해지고 나를 배려하면 남을 배려하지 않게 된다.(便人乃自便,宜人乃自宜,我便人不便,我宜人不宜)”

“손해를 보는 사람은 두터운 복이 많고 돈벌이가 가득 찰 때는 늘 손해를 본다.

(吃得虧人多厚福,賺得盈時總是虧 돈벌이에만 급급하다 보면 장기적으로 보다 중요한 것들을 잃게 된다는 의미)”

“사람마다 다 승리하려 한다면 인간세상에서 누가 손해를 보겠는가?

(若使人人皆得勝,人間誰合受虧人)”

“건곤 두 글자에 가득 참과 텅 빔이 정해져 있으니 고생을 다 겪고 나면 겁난은 이미 사라진다.(乾坤兩字盈虛定,吃盡虧時劫已除)”

”나는 또 ‘내가 손해를 많이 볼 때면 하늘이 참지 못하고 하늘이 분명 나를 편하게 해준다.’(虧我多時天不忍,老天定與我便宜)라고 말하는 바이다.”

“여러분은 힘쓸 지어다! 손해 보는 사람이 결국에는 손해를 보지 않는 법이다.”

허무는 실유다(虛無實有)

《허무편(虛無篇)》은 장삼풍이 도(道)와 불(佛)을 초월해 허심(虛心)으로 사람을 깨닫게 할 수 있고 집착을 내려놓으면 무(無) 속에서 유(有)가 생길 수 있음을 명확히 설명한다.

“허무(虛無)란 노자와 석가가 동시에 전한 뜻이다.

허(虛)란 무엇인가? 마음을 비움(虛心)이다. 마음이 비었기 때문에 신(神)이 맑아지고 신이 맑아졌기 때문에 성(性)이 지혜롭게 되어 큰 초탈과 큰 깨달음이 이로부터 생겨난다.

무란 무엇인가? 무아(無我)이다. 내가 없기 때문에 남이 없고 남이 없기 때문에 욕심이 없어지니 대청정과 대환희를 이로부터 얻게 된다.

(虛無者,老、釋同傳之旨也。虛者何?虛心也。心虛故神清,神清故性慧,大超脫、大解悟從此生矣。無者何?無我也。無我故無人,無人故無欲,大清淨、大歡喜從此得也。)”

“지금 너희 문인들은 허무(虛無)를 모르면서 단지 실유(實有)만 탐구한다. 실유란 두 글자는 그 이름은 아름답지만 필경 미혹에 빠지는 자들이 부지기수다. 매일 실(實)을 구하면서 금석(金石 역주: 연단에 사용하는 광물성 약재)을 담론하지만 하나도 얻음이 없고 매일 유(有)를 구하면서 참선과 독경 하지만 육진(六塵 역주: 불가에서 말하는 생 성 향 미 촉 법 6가지 경계)을 만들 뿐이다.

(今汝兩門人,不明虛無,只探實有。實有二字,其名亦佳,究竟入迷者如穀之數。日求實而談金石,無一得也,日求有而參禪偈,生六塵也)”

“무량한 항하의 모래알 같이 많은 중에 그 누가 제일(第一) 바라밀인가? 내 어리석은 너희를 불쌍히 여겨 너희들의 지혜를 열어주노라. 마음이 빈 것을 관하여 성이 지혜로움에 이르러야 하며 허를 알면 실을 취할 수 있노라. 무아(無我)를 관하여 무욕(無欲)에 이르면 무가 능히 유를 포함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노라.

(無量恒河沙,誰是第一波羅密哉?吾憫爾等愚,吾開爾等智。觀心虛而至性慧,知虛之能取實也;觀無我而至無欲,知無之能包有也)”

양생술

수진(修眞)의 도는 흔히 양생술과 혼동되곤 한다. 장삼풍은 《양생편(養生篇)》에서 수진은 생사윤회를 초월할 수 있는 반면 양생은 연년익수(延年益壽 수명을 늘리고 장수하는 것)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사람의 욕망 중에 삶(生)보다 큰 게 없으니 그 삶을 얻으려면 모름지기 생명을 중시해야 하며 생명을 중시하려면 절대 생명을 경시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태평한 세상을 만났다면 귀하거나 천하거나 상관없이 충과 효를 다한다면 나라의 엘리트가 되고 세간의 뛰어난 인물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생명을 살리는 자는 양생을 몰라서는 안 된다. 양생의 이론은 수진(修眞)과는 다르다. 수진은 겁수(劫數)를 벗어날 수 있는 도(道)이고 양생은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술(術)이다.”

“그러므로 양생하면서 고금과 천인(天人)의 이치를 모른다면 끝내 효험 있는 방법을 모을 수 없다. 상고시대 백성들은 풍속이 순박하고 사려(思慮)가 적었으며 말이 적고 웃음도 적고 보는 것과 듣는 것이 적었다. 거친 옷에 거친 밥을 먹으며 의식적으로 알려 하거나 분별함이 없었다. 때문에 그 진(眞)을 온전히 지켜 장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백성들은 실속 없이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생각과 걱정이 많으며 말이 많고 웃음도 많으며 보고 듣는 것도 많은데다 의식이 풍요로워 뜻과 정신이 방탕해졌다. 때문에 그 본성을 해쳐 요절하기에 이른다.

(然養生而不明古今天人之理,亦終無集驗之方。上古之民,渾樸爲風,寡慮寡思,寡言寡笑,寡視寡聽,粗衣糲食,不識不知,故能保全其真,以永眉壽;近今之民,浮華日啟,多慮多思,多言多笑,多視多聽,豐衣厚食,蕩志蕩神,故嘗伐其性,以致夭亡)”

“천도(天道)의 태(泰)는 다시 회복(復)할 수 있음에 달렸다. 해는 기울어져도 다시 뜨고 달은 이지러져도 다시 둥글어진다. 비가 그치면 해가 뜨며 봄에는 천둥 치고 겨울이면 들어간다. 그러므로 해지지 않는 신(神)을 남길 수 있고 하늘의 운행에 따라 늘 새로워진다.

(天道之泰,在乎能復。日昃又中,月缺又圓,雨漏又晴,雷鳴又蟄,故能留不敝之神,以綿天運於常新)”

“반면 인도(人道)는 비(否)라 주로 박(剝)이 많다. 함부로 정을 배설하고 기를 소모하며 끊임없이 신을 움직이고 형을 요동하기 때문에 이미 병든 몸을 되돌리기 힘들며 인간세상에 머물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人道之否,在乎多剝,精任其泄,氣任其虧,神運不停,形搖不守,故難回已憊之身,聊居人世於朝暮)”

“그러므로 양생하는 사람은 약과 음식을 뒤로 하고 보호를 우선으로 해야 하며 천도(天道)를 배우는 것이 좋고 고인(古人)을 배우는 것이 좋다.

(然則養生者,藥食爲後,保護爲先,學天道可也,學古人可也)”

생사의 초탈

장삼풍은 《오겁편(五劫篇)》에서 사람에게는 생로병사의 고통이 있고 윤회전생 중에 업력의 윤보가 있는바 이를 초탈하는 도는 선(善)을 닦고 복(福)을 쌓아 반본환원(返本還元)하는 데 달려 있다고 했다.

“오호라 슬프구나! 범부(凡夫)에게는 5가지 겁이 있다. 오겁이란 무엇인가? 바로 생(生), 로(老), 병(病), 사(死), 고(苦)다.”

“그렇다면 사람이 태어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이왕 태어났다면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야 하며 거짓으로 살아선 안 된다. 성현(聖賢)으로 태어나신 분은 요절했을지라도 오히려 살아있는 것이니 신령한 영혼이 세상에 남아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향기를 남기니 선불(仙佛)과 다를 게 무엇인가? 반면 유독 악하게 태어난 자는 태어나면서부터 폭력적이고 잔혹한데 일생을 마친 후에 반드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아니며 또 반드시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끊임없이 이어진 생명 속에서 모두 악취(惡趣 역주: 육도윤회 중에서 천도와 인도를 제외한 나머지)로 들어가 끝없는 죄를 받게 되니 비록 태어나고 싶지 않아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생(生)은 하나의 겁(劫)이다.

(人豈不必生?但當直而生,正而生,不可罔而生也。生爲聖賢,夭猶生也,英靈在世,聲名在世,馨香在世,與仙佛何異焉?獨有生而惡,生而暴,生而酷者,一生之後,必不複生,不必不與生,正當與之生,綿綿劫劫,皆入惡趣,受無間罪,雖欲不生,不可得也。生,一劫也)”

“만약 세상에 매몰되어 인간세상에서 곤경과 재앙을 겪어도 회향할 줄 모르며 변천할 줄 모르며 헛되이 늙어가니 이것이 또 하나의 겁이다.

(如是而沉淪世上,困厄人間,不知回向,不識變遷,悠悠老矣,又一劫也)”

“이렇게 정(精)이 소모되고 형체가 말라버리며 신(神)이 사라지고 기(氣)가 고갈되면 약으로도 보할 수 없고 양생으로도 돌이킬 수 없어 병들어 비실거리니 또 하나의 겁이다.

(如是而精耗形枯,神亡氣竭,藥不能補,養不能回,懨懨病矣,又一劫也)”

“만약 무상(無常 역주: 저승사자)이 문득 이르러 수명이 다하면 몸이 어디 있고 처자는 누구인지 모르면서 총총히 죽으니 또 하나의 겁이다.

(如是而無常忽至,大限已臨,身家何處,妻子何人,匆匆死矣,又一劫也)”

“만약 악을 지으면 반드시 보응을 받고 과실이 있어도 반드시 보응을 받는다. 저승으로 옮겨가서 심판을 받으니 이는 극심한 고통이다. 이것이 또 하나의 겁니다.

(如是而有惡必報,有過必報,轉徙陰曹,瞅瞅啼泣,是極苦矣,又一劫也)”

“다행히 언젠가 다시 태어나는 날이 있다 해도 혹 병란(兵亂)을 겪거나 혹 물이나 불의 재앙을 겪거나 혹 질병에 걸리거나 혹 각종 곤경에 처해 여전히 오겁(五劫) 속에 윤회하면서 끝이 없으니 굳이 도산지옥(刀山地獄)을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이 겁(劫)에 떨어지는 것은 인과(因果 역주: 전생에 쌓은 선업)가 없고 덕(德)과 공(功)이 없어서 그 죄를 소멸할 수 없기 때문이다.(幸而托生有日,或命帶刀兵,或命帶水火,或命帶諸疾難,或命帶諸困窮,仍將流連於五劫之中而無底止,不必說到刀山地獄間也。墮此劫者,非有因果,非有德功,不能消其罪戾)”

“그러므로 사람의 일생이란 모름지기 선을 닦고 덕을 쌓아 반본환원(返本還元) 해야만 춘대(春台 신선의 무대)에 오르고 극락에 갈 수 있다. 태어났다면 장생하고 장생했다면 태어나지 말아야 하는데 태어나지 않아야 불멸(不滅)할 수 있고 불멸해야만 초탈(超脫)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여 힘쓸지어다!

(故人之一生,須要修善積福,返本還元,庶可同上春台,咸登極樂。有生長生,長生不生,不生故不滅,不滅故超脫也。人其勉諸)”

경신(敬神)의 핵심

《경신편(敬神篇)》에서 장삼풍은 사람들에게 인간세상의 만사만물은 모두 신불(神佛)의 장악 하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또 신을 공경하는데 대도(大道)와 소도(小道)가 있으며 간사함을 감춘 사람들에게 혁심(革心 잘못을 알고 마음을 고치는 것)을 봉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신(神)이란 만물을 묘하게 함을 이르는 말이다. 상제(上帝)는 신도(神道)로 가르침을 베풀었기 때문에 신은 실제로 선악을 관장한다. 무릇 총명하고 정직한 사람은 모두 신이 권한을 준 것이다. 무릇 천신(天神)을 신이라 하며 만물의 일으킴을 주관하고 지신(地神)은 기(祇)라 하는데 만물의 배양을 주관한다. 이 신의 덕은 넓고 넓지만 백성들은 매일 받으면서도 모른다. 물론 오직 사람의 본분을 다하면 천지에 부합한다 할 수 있다.”

“무릇 산과 하천 교외의 제단, 사찰과 사원 및 그 사이에 세운 비석과 입상(立像)은 고대의 정신을 떨치지 않는 것이 없다. 만약 사찰 건물이 웅장하고 명성이 높아진다면 이를 바라보는 자마다 엄숙하고 공경하지 않음이 없다. 하지만 향불이 치성할수록 복을 구하는 자들이 많아졌고 기도가 번잡해질수록 복을 청하는 사람이 늘어났으니 신이 어찌 사람 때문에 어리석어질 수 있겠는가!”

“상사(上士)는 품은 마음이 바르고 커서 공행(功行)을 세우고 지극한 뜻이 심오해서 거처하는 사이에도 신이 감찰할까 두려워하며 복이 있고 경사가 있어도 곧 신의 뜻으로 돌린다. 이 사람은 비록 사찰에 들어와 향이나 초를 사르지 않을지라도 이미 신을 공경하는 대도(大道)를 얻은 것이다.”

“중사(中士)는 품은 마음이 삼가고 공경해 상제나 하늘을 말하면 몸이 더욱 떨리고 선념(善念)이 생기기 때문에 신의 격려를 받는다. 공(功)이 있고 덕(德)이 있으니 신의 가호를 받는다. 이 사람은 목욕재계하거나 예배에 참여하는 보살로 신을 공경하는 소도(小道)라 할 수 있다.”

“겉으로는 조심하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사특하고 초하루 보름에 사찰을 자주 드나들지만 신장(神將)이 ‘네가 왔는가, 내 마침 너를 찾고 있었다! 내게 아첨하지 말고 나를 모독하지 말라. 네가 사르는 향은 내가 자물쇠를 채워놓았다. 돌아가서 마음을 진정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헛수고에 불과하다.’라고 한다.”

선을 쌓고 사람을 사랑해야

《애인편(愛人篇)》에서 장삼풍은 세간 만물 중에서 오직 사람만이 가장 신령하다면서 인연이 있어 서로 모였다면 마땅히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도와주어야 하며 사람을 해치지 않고 선량해야만 하늘의 보우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만물이 태어남에 오직 사람만이 가장 신령하다. 기왕 사물보다 신령하니 모름지기 그 생명을 사랑해야 한다. 몰래 음모를 꾸며 사람을 해치거나 날카로운 무기로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약물로 사람을 중독 시키거나 권세를 이용해 사람을 압박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세인들에게 권하나니 서로 태어나서 서로 모였으니 서로 다투고 해치지 말아야 한다. 출입하거나 왕래할 때 마땅히 남의 명예를 아끼고 남의 명예를 완성시킬 것을 생각해야 하며, 남의 공을 사랑하고 남의 공을 완성시킬 것을 생각해야 하며, 남의 일을 사랑하고 남의 일을 완성시킬 것을 생각해야 하며, 남의 이익을 사랑하고 남의 이익을 완성시킬 것을 생각해야 한다. 무릇 남의 명예를 이루게 하면 자신의 명예도 이뤄지고, 남의 공을 이루게 하면 자신의 공도 이뤄지며, 남의 일을 이루게 하면 자신의 일도 이뤄지며, 남의 이로움을 이루게 하면 자신의 이로움도 이뤄지나니 모두 사랑이다.”

“오호라, 하늘이 억조창생(億兆蒼生)을 냄에 어진 사람에게는 어짊을 베풀 땅을 주고 선한 사람에게는 선을 쌓을 마당을 준다. 만약 이 마음을 넓히고 확대한다면 모든 백성을 보호하고 양육할 수 있을 것이다. 부귀하면서도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부귀함이 후손에게 이를 것이요, 가난하고 천하면서도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름을 날리고 벼슬이 높아질 것이다. 하늘이 선(善)을 보우하고 상제(上帝)께서 사람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이다. 자고이래로 이런 사례가 아주 많고 또 매우 신속하다. 그러니 처세(處世)의 도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나는 여전히 남을 사랑하라고 권하는 바이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5222




정견망

글/ 찬란한 5천년 신전문화의 천고영웅인물 연구팀

제5장 시문으로 세상을 일깨우고 남몰래 중생을 돕다

1. 천구편에서 인생을 말하다

장삼풍은 새로운 하늘, 새로운 땅으로 천하가 하나로 통일된 새로운 시대에 세상에 내려왔다. 칭기즈칸(成吉思汗)은 천명(天命)을 받고 거친 초원에서 일어나 뛰어난 무용(武勇)으로 역사상 유례가 없는 광활한 영역을 차지했다. 칭기즈칸의 조손(祖孫) 3대는 3차례에 걸친 서역 원정을 통해 멀리까지 중원문화를 전파했으며 유라시아대륙에 4개의 한국(漢國)을 건설했다.

“서역을 아우르고 서하를 평정했으며 여진을 멸망시키고 고려를 신복(臣服)시켰으며 남조(南詔 운남 지방에 버마족이 세운 나라)를 정벌하고 강남으로 내려와 천하를 통일했다.”(《원사(元史)》)

또 그의 손자 쿠빌라이(忽必烈)는 중원의 주인이 되어 대도(大都 지금의 북경)에 도읍을 정하고 대원(大元)을 건립해 다민족으로 구성된 세상을 통치했다. 이 당시 각종 다양한 문화와 신앙이 앞을 다퉈 중국에 들어왔으며 화려하고 다채로운 양상을 보였다.

홍진(紅塵 속세)에 깊이 미혹되어 서로 근기도 다르고 오성도 다르며 내원도 다른 중생을 상대해 장삼풍은 《천구(天口)》라는 문장을 지었다. 이 글에서 그는 미혹을 건널 수 있는 나루를 알려주었다. 또 사람 몸의 소중함과 수련하면 귀진(歸真)할 수 있다는 것, 사람이 되었다면 마땅히 덕(德)을 중시하고 선(善)을 행해야 하며, 손해를 보는 것이 오히려 복이 됨을 알려주었다. 또 하늘의 운행과 인심(人心), 신을 공경하는 핵심 등의 진기(眞機)를 알려주며 세상을 일깨우고 백성들을 교화했다.

“선인들이 말씀하시길 ‘성인은 하늘의 입(聖爲天口)’이라 했다. 내 생각에 성인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늘을 대신해 말을 세울 수 있겠는가? 특히 하늘의 상제께서는 몰래 아래 백성들을 도와주신다. 귀머거리를 떨쳐 분발하게 하심은 내려다보시는 아름다운 뜻에 근본 한다! 선을 권하고 허물을 규제하는 것 역시 널리 제도하는 좋은 인연이 된다. 내 비록 말을 잘하지 못하고 근기가 둔함에도 천하의 수많은 이들이 내 말을 간절히 청한다. 이에 훈계하는 문장 몇 편을 써서 천구(天口)라 이름 한다. 대개 벽옹(碧翁 하느님)을 숭상하고 기리려는 뜻일 뿐이다. 통현진인 장삼풍이 쓰노라.

향불(向佛)의 뜻

석가모니 부처님은 왕위를 포기하고 출가 수련하셨고 보리수 아래에서 개공(開功)개오(開悟)한 후 끊임없이 승화되었으며 49년간 설법한 후 열반에 드셨다. 관세음보살은 또 관음대사(觀音大士)라고 부르는데 아미타불(阿彌陀佛),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과 함께 서방삼성(西方三聖 서방의 세 성인)으로 불린다.

중국에서는 송나라 이후 “집집마다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것이 보편적인 추세가 되었다. 장삼풍은 《선지편(禪旨篇)》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사람들에게 사람 몸을 포함한 일체 집착을 포기하도록 가르쳤고 관세음보살은 사람들에게 부처님을 공경하고 부처님을 구하도록 일깨워 중생을 깨닫게 하셨다고 명확히 지적했다.

“그럼 석(釋)이란 무엇을 이르는가? 석가모니는 ‘나는 석(釋)을 좋아하기 때문에 석으로 가르침을 열고 온갖 인연을 없앤다는 의미로 석을 취했다.’라고 했다.

그럼 또 불(佛)이란 무엇인가? 대사(大士 관세음보살)는 ‘나는 불(佛)을 좋아하기 때문에 불로 가르침을 펼쳤으며 깨달은 중생이란 뜻으로 취했다.’고 했다.

내 들으니 석(釋)이란 세상을 떠남에 주안을 두고 불(佛)이란 세상을 깨달음에 주안을 둔다. 수많은 경전이 속세를 초탈해 깊은 미혹에서 깨닫게 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석가모니의 청정(淸靜)이 또 대사의 청정을 얻는다. 석가모니가 그 청정을 총괄한다면 대사는 그 청정을 널리 보급했다. 그 청정에 집착함이 없고 그 청정을 무너뜨림도 없고 그 청정을 아끼는 것도 없으며 또는 청정이 없거나 청정이 아님에 이른다. 청정이 아니면서도 청정하니 이것이 바로 대(大)청정이자 원만한 청정이다.”

“사람이 불경을 읽고 외울 수 있으면 반드시 청정심을 얻고 반드시 반야심을 얻는다.”

선품의 구별(仙品之分)

장삼풍은 《현음편(玄音篇)》에서 도가 수련은 마땅히 덕(德)을 근본으로 삼아야 함을 직접 지적했고 서로 다른 수련단계에 대응하는 서로 다른 선품(仙品)에 대해 논술했다. 또 만약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면 최상승법을 전해 그가 반본귀진하고 원만해서 되돌아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겠노라고 했다.

“현학(玄学)은 공덕(功德)을 체(體)로 하고 금단(金丹)을 용(用)으로 한 후에 신선이 될 수 있다.(玄學以功德爲體,金丹爲用,而後可以成仙)”

“인선(人仙)이란 원정(元精)을 연마하고 원기(元氣)를 보충해 이미 신선 수련의 근본을 배양한 것으로 건강해질 순 있지만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니 이는 사람 속의 선이다.(人仙者,煉元精而補元氣,已培修仙之本,然能養健,不離生死,此人中仙也)”

“지선(地仙)이란 원기(元氣)를 연마해 내단(內丹)을 맺어 새어나가는 우환은 이미 사라졌지만 지상에서 생활하며 속세를 벗어날 수 없으니 이는 땅 속의 선이다.(地仙者,煉元氣而結內丹,已無漏通之患,然可陸行,不離塵坱,此地中仙也)”

“신선(神仙)이란 원기를 연마하고 원신(元神)을 변화시켜 이미 신통의 오묘함을 갖춰 물과 불이 해를 끼칠 수 없으며 또 수선(水仙)이라고도 한다.(神仙者,煉元氣而化元神,已有神通之妙,水火無害,又名水仙)”

“연신환허(煉神還虛)하면 곧 천선(天仙)이다.”

“귀(鬼)는 순음(純陰)이고 선(仙)은 순양(純陽)이며 사람은 반음반양(半陰半陽)을 얻은 즉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절반의 음이 없어지면 선(仙)을 이루고 절반의 양이 없어지면 귀(鬼)가 된다.(鬼者純陰,仙者純陽,人得半陰半陽,則不離乎生死,缺陰之半則成仙,缺陽之半則成鬼)”

“그러므로 사람은 선(仙)도 되고 귀(鬼)도 되는 중간에 있는데 잠시 선도 되고 귀도 되는 중간에 있다. 이를 벗어나려면 마땅히 천선(天仙)이나 신선(神仙) 가운데 머물러야 한다.(故人在可仙可鬼之中,亦暫在可仙可鬼之中,欲逃出可仙可鬼之中,即當住天仙、神仙之中)”

“고개를 돌리면 피안을 알 수 있고 손만 뻗으면 속세를 벗어날 수 있다. 단경(丹經)의 수많은 말이 모두 자신에게 달려있으니 자신을 남으로 알면 곧 방문(旁門)으로 떨어진다.(回頭識岸,撒手離塵,丹經萬言,總在自己,認己爲他,即落旁門)”

“내게 진전(真傳)이 있으나 함부로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에게 진정(眞情)이 있다면 역시 문을 닫진 않을 것이다. 널리 음공(陰功)을 쌓으면 비로소 선품(仙品 신선의 품계)이 될 수 있고, 널리 방편을 행하면 비로소 선(仙)의 기초를 다질 수 있고, 널리 인과를 닦으면 비로소 선근(仙根)을 갖출 수 있다. 만약 이를 갖춘 사람이 나의 도(道)를 구한다면 나는 그와 더불어 최상승(最上乘)의 법을 말해주고 가장 미묘한 부분도 명확히 지적해 반드시 운무를 걷어내고 푸른 하늘을 보게 할 것이며 긴 휘파람을 불며 (신선이 되어) 떠나가게 할 것이다.(我有真傳,不敢妄言;人有真情,亦不閉門。廣積陰功,始爲仙品;廣行方便,始是仙基;廣修因果,始是仙根。若得是人而求吾道,吾願與說最上乘法,指點微言,必如 撥雲霧而見青天,長嘯而去。)”

사람 몸과 오행

오행학설에서는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가 세상의 만사만물을 구성한다고 본다. 장삼풍은 《오덕편(五德篇)》에서 목, 금, 화, 수, 토를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과 간(肝), 폐(肺), 심(心), 신(腎), 비(脾)와 대응하는 관계라고 했다.

“인생에 오덕(五德)이 있으니 내가 시험 삼아 천지의 오행으로 비유해보겠다. 사람 몸의 오경(五經)은 인(仁)은 목에 속하니 간(肝)이고, 의(義)는 금에 속하니 폐(肺)요, 예(禮)는 화에 속하니 심(心)이고, 지(智)는 수에 속하니 신(腎)이요, 신(信)은 토에 속하니 비(脾)가 된다. 그러므로 오덕에 하나라도 없어선 안 되니 이는 마치 오경에서 어느 하나라도 끊어질 수 없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오행의 어느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인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양육하려는 생각이 없으니 그 간(肝)이 이미 끊어져서 목(木)이 말라버린다.(無仁者,必無養育之念,其肝己絕,而木爲之槁枯矣)”

“의가 없는 사람은 반드시 권의(權宜 공평하게 처리함)의 생각이 없으니 그 폐(肺)가 이미 끊어져서 금(金)이 무뎌진다.(無義者,必無權宜之思,其肺已絕,而金爲之 朽鈍矣)”

“예가 없는 사람은 반드시 광명의 색이 없으니 그 심(心)이 이미 끊어져서 화(火)가 쇠퇴해진다.(無禮者,必無光明之色,其心已絕,而火爲之衰熄矣)”

“지가 없는 사람은 반드시 맑고 깨끗한 뜻이 없으니 그 신(腎)이 끊어져서 수(水)가 어둡고 말라버린다.(無智者,必無清澄之意,其腎已絕,而水爲之昏涸矣)”

“신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상호신뢰(交孚)의 정이 없기에 그 비(脾)가 이미 끊어져 토(土)가 갈라지고 무너진다.(無信者,必無交孚之情,其脾已絕,而土爲之分崩矣)”

“그러므로 사람된 자는 반드시 먼저 마음에 오덕이 있은 후에야 몸에 오경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인(仁)이 끊어지지 않으면 간기가 생하고 의(義)가 끊어지지 않으면 폐기가 평탄하고 예(禮)가 끊어지지 않으면 심기가 밝아지고 지(智)가 끊어지지 않으면 신기가 신령해지며 신(信)이 끊어지지 않으면 비기가 깨어난다.(是知爲人者,必先有心之五德,而後有身之五經。仁不絕肝氣生,義不絕肺氣平,禮不絕心氣明,智不絕腎氣靈,信不絕脾氣醒)”

“덕(德)은 몸을 끌어안고 몸은 마음을 끌어안으니 몸은 마음의 쓰임이 되고 마음은 덕으로 밝아진다. 그러므로 몸이 바로 마음이 되고 마음이 바로 몸이 되니 오덕이 바로 오경이 된다. 덕을 잃으면 경을 잃고, 덕이 이뤄지면 몸이 이뤄지며, 몸이 이뤄지면 경이 이뤄지고, 그런 후에야 천지 오행의 조화에 참여할 수 있다.(德包乎身,身包乎心,身爲心用,心以德明。是身即心,是心即身,是五德即五經。德失經失,德成身成,身成經成,而後可以參贊天地之五行)”

온갖 악 중에 음란이 으뜸(萬惡淫爲首)

기독교의 《성경》에서는 신이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하고 중국 전설에서는 여와(女媧)가 진흙으로 중국인을 만들었다고 한다. 신은 사람의 생활방식을 규범 지었다. 인류 사회에서 부부생활은 인류가 후손을 번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하지만 부부가 아니면서 성관계를 가지는 것은 인륜도덕을 패괴(敗壞)하는 것이다. 장삼풍은 《음악편(淫惡篇)》에서 세인들에게 음란이 악보(惡報)와 천벌을 초래한다고 일깨워주었다.

“계궁(桂宮 한나라 때 궁궐) 기둥에 만 가지 악 중에서 음란이 으뜸(萬惡淫爲首)이라는 대련이 붙어 있었다. 그러므로 악보(惡報)가 많다지만 음란에 대한 보응만큼 추한 것은 없으며 기기묘묘한 하늘의 형벌이 있다. 남의 처를 유혹하면 자기 처가 남의 유혹에 빠지고, 남의 딸을 유인하면 자기 딸이 남에게 유인 당한다. 혹은 간통으로 죽임을 당하고 혹은 간통으로 후손이 끊긴다. 혹은 집안이 기울고 재산을 탕진하며 혹은 공명을 빼앗기거나 수명이 줄어든다. 혹은 자손이 천(賤)해지고 혹은 남에게 속아 재산을 잃거나 공명이나 목숨을 빼앗긴다. 음란에 대한 보응은 지극히 다양해서 일일이 다 언급하기도 힘들다.”(《음악편》)

천운(天運)과 인심(人心)

《역(易)》에서는 “하늘의 운행이 굳건하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스스로 굳세고 쉬지 않는구나. 땅의 세력이 곤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덕을 두터이 하고 사물을 싣는구나.(天行健,君子以自強不息;地勢坤,君子以厚德載物)”라고 했다.

장삼풍은 《영휴편(盈虧篇)》에서 국가의 운명(氣數)이 인심(人心)과 관계가 있다면서 위정자들에게 편안할 때에도 위태로움을 생각하고 선을 닦으며 덕을 기름을 중시할 것을 권했다.

“천하국가의 일은 흥망성쇠와 어둡고 밝음이 있으니 한번 차면 한번 기운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천운(天運)이지만 도를 아는 선비가 보면 인심(人心 사람마음)으로 귀결된다. 이 말은 이치가 진실로 바르고 언사가 진실로 순수해 굳이 내가 따로 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세상에는 완전히 규칙에 따르지 않고 가득 차기도 전에 기울거나 기울어져야 함에도 오히려 다시 가득 차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일과 그렇게 되는 이유에 대해 내가 자세히 밝혀 세상 사람들에게 권고하노라.”

“나라의 기세는 편안함이 극에 달하면 위태로움이 시작된다. 어떤 경우는 그 주기가 아주 짧아서 한 세대 후에 변고가 생겨 후대에 위망(危亡)을 탄식하기도 한다. 왜 이지러졌다가 왜 또 중흥하는가? 아직 차지도 않았는데 왜 또 갑자기 큰 난(難)의 싹이 자라는가? 이런 것들은 모두 어진 인재를 가까이 하지 않고 간사한 영웅이 정치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시(詩)와 예(禮)를 두터이 하지 않아 자손이 사치하며 거리낌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태평한 때에는 마땅히 위험을 생각해야 하며 환란을 미리 예방할 것을 생각해야 한다. 군자는 마땅히 경각심을 가져야 하며 이를 통해 하늘의 역수(曆數)를 가급적 모두 누려야 한다. 하지만 하늘 역시 정한 수를 다하지 않을 때가 있다. 사람이 가득 찬 상태를 조심스레 지켜나간다면 만만년(萬萬年)이라도 유지할 수 있다.”

“나라의 기기(氣機)는 혼란이 극에 달하면 다스림이 시작된다. 이에 운(運)이 쇠했다가 다시 성대해지고 기세가 조금 내려가면 다시 상승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쇠퇴하지 않았음에도 위기에 봉착하거나 이미 쇠퇴했음에도 다시 편안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는 대개 절벽 앞에서 말고삐를 잡아채 위기를 모면했거나 암초에 부딪치기 직전 뱃머리를 돌리는 것과 같다.”

“사람의 정(情)은 잔치를 벌이는 작은 일에서도 오히려 즐거움을 끝까지 추구함을 어려워해야 한다. 작은 일에서 큰일을 알 수 있으니 군자는 마땅히 맹렬히 각성해야 한다. 그래야만 하늘의 겁수(劫數)를 피할 수 있다. 또 하늘 역시 겁수의 조짐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날마다 위태로움을 두려워한다면 태평함이 오래 갈 것이다. 아, 하늘의 마음은 사람의 일(人事) 속에 있으니 사람이 어찌 선(善)에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5191


1 2 3 4 5 6 7 8
블로그 이미지

파룬궁(法輪功)으로 잘 알려진 法輪大法(파룬따파)는 리훙쯔(李洪志)선생께서 창시하신 고층차의 불가(佛家)수련법이다.

8648h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