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망

글/ 금궁(金弓)

오공이 항복시킨 후 관음보살은 불타(佛陀)의 명을 받들어 남섬부주로 가서 경을 가지러 갈 사람(取經人)을 찾는다. 표면공간에서 반영된 것은 바로 대승불교가 중토(中土)에서 발전해야 했다. 보살은 가는 도중 전세에 죄를 지은 권렴대장(卷簾大將), 천봉원수(天蓬元帥), 백룡태자(白龍太子)와 오공 등에게 취경인을 기다려 죄를 벗고 함께 서천에 가도록 권고한다. 또 서천에 가서 경을 얻고자 한 현장법사 역시 불법을 태만히 여기다 하계로 쫓겨난 전생의 여래제자 금선자(金蟬子)였다.

여기서 본인은 이 다섯 명을 표면공간의 현장법사와 다른 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5명의 부원신으로 보는데 주원신이 인도에 가서 경을 얻는 기회를 이용해 공동으로 수련해 정과를 얻는 것이다.

책에서는 또 당태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쩌면 다른 공간에서 발현된 진실한 상황이거나 아니면 우리 이 공간에서 발생한 역사였을지 모른다. 다만 도덕이 미끄러져 내려온 후인들이 믿지 못해 정사(正史)에서 삭제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본인은 이것을 진실한 이야기라고 믿는다.

경하(涇河)용왕은 단지 쟁투심으로 인간세상의 고인(高人)인 원수성(袁守誠 ‘추배도(推背圖)’의 저자 흠천감 원천강의 숙부)과 비가 내리는 시간과 양을 놓고 다투다 상계(上界)의 규정을 어기고 머리가 잘리는 처벌을 받게 된다. 표면적으로 보면 용왕은 하늘이 규정한 비가 내리는 양과 시간을 위반한 것이지만 사실 이것은 용왕의 심성(心性)이 이미 그 한 층차의 표준에 부합하지 못해 마땅히 층차가 내려가야 하는 것을 반영한다.

위징(魏徵)이 명을 받들어 용의 목을 쳐야 했는데 이 때문에 용왕은 당태종의 꿈에 나타나 위징더러 사정을 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태종이 용왕의 부탁에 따라 위징을 불러 함께 바둑을 두면서 용왕이 이 겁난을 피해가게 하려 했지만 이것은 하늘이 정한 운명이라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위징이 꿈에서 죄를 지은 용을 참수하자 용은 자신과의 약속을 어겼다며 염라전에 태종을 고발한다. 태종은 이 일 때문에 결국 놀라서 붕어하게 된다.

태종이 이때 붕어한 것 역시 본래 하늘이 정한 것으로 생사부(生死薄)의 기록과 같았다. 하지만 최판관이 그의 수명을 고쳐 20년을 늘려준다. 사실 천지는 본래 무사(無私)한 것으로 태종의 수명이 늘어난 것은 결코 책에서 묘사된 것처럼 옛 신하의 사사로운 정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태종의 덕이 높고 성망이 큰데다 불교를 널리 홍보했고 취경인을 파견하는 역사적 사명을 지녔기 때문에 이승의 수명을 늘릴 수 있었다.

이후 책에서 서술한 유전(劉全)이 목숨을 버리고 저승에 과일을 진상하고 그 아내의 영혼이 태종 여동생의 몸을 빌려 환생한 이야기와 개봉부의 상량(相良)이 태종이 준 금은보화를 사절하고 대상국사(大相國寺) 건축에 썼다는 등의 소소한 이야기들은 당시 세인들의 인심과 도덕이 비교적 높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다. 또한 태종이 신용을 지키고 개명하며 활달하고 덕이 높았음을 드러낸다. 어쩌면 불타는 당시 사람들의 인심이 아직 선념(善念)이 존재하고 명군(明君)에게 덕행이 있음을 보았기 때문에 비로소 당시 대승불교를 널리 전파할 곳으로 중토를 선택했는지 모른다.

현장은 전세에 불법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하계로 쫓겨 왔고 첫 출생부터 운명이 순탄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수련하려는 마음이 아주 강했으며, 서천에 가는 도중에 험악한 일에 봉착해도 조금도 위축되거나 물러나지 않고 의연히 서천에 가서 부처님을 뵙고 경전을 구하고자 했다. 이런 수련의 마음은 몹시 소중한 것이다.

아울러 신불(神佛)이 한 가지 일을 안배할 때는 단지 한 가지 결과만을 낳는 것이 아니다. 이번 서천 여행은 금선자가 원만을 이루고 회귀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가는 길에 요마(妖魔)들을 제거해 백성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들을 제거했다. 더욱이 오공 등이 단련되어 최종적으로 정과를 얻게 했고, 중토에 대승불교가 흥성하게 했으며 후인들에게 수련의 간고함과 현묘함을 보여주는 귀감이 되어 대법 전파를 위해 수련의 문화적 기초를 다지게 했다.

물론 현장은 수련을 막 시작한 수련인이라 가는 길에 각종 집착심이 폭로되었다. 요마를 만나면 두려운 마음이 아주 강했고, 난을 만나면 툭하면 눈물을 흘리곤 했다. 현장이 신통을 수련해냈거나 또는 공능이 있건 상관없이 취경(取經)의 일은 불타가 안배한 것이라 반드시 성취되는 것이며 하늘이 결정한 것이다. 때문에 그가 어떤 곤란에 봉착하든지 심지어 생명이 위험할지라도 늘 호법신과 다른 신들이 그를 보호했다.

이 다섯의 부원신 또는 다섯 수련인 중에서 오공은 오성이 가장 좋았다. 오행산에 눌려 있을 때 그는 진작 후회했다. 때문에 관음보살이 현장을 도와 경을 얻어오면 정과를 얻을 수 있다고 했을 때 기쁜 마음으로 응했던 것이다. 현장이 자신을 구해준 후에는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왜냐하면 자신의 죄업을 갚아야 하고 심성도 닦아야 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장은 불문(佛門)에 입문한 지 오래되어 불경을 깊이 알았고 심성수련에서도 확실히 가르쳐줄 수 있었다.

동시에 오공은 또 현장의 전세 인연을 알았고 매 한 차례 난(難)의 원인도 알고 있었지만 천기를 누설하지 않는다. 오직 한마음으로 그를 보호해 요마귀괴(妖魔鬼怪)들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했다. 오공은 5백 년 전에 자신이 하늘만큼 큰 죄를 짓게 된 원인이 쟁투심과 오만방자한 마음이 너무 컸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이번 수련은 시작부터 그더러 신통이라곤 전혀 없는 평범한 수련인을 스승으로 모시게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는 그의 오만방자한 마음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천봉원수는 본래 삼계내의 신이었으나 정(情) 속에서 또 색념(色念)을 일으켜 항아를 희롱해 가장 중대한 음란죄(淫邪罪)를 저질렀다. 태백금성의 간언으로 옥제는 그를 주살하는 대신 하계로 쫓아 보냈고 사람 몸조차 얻지 못해 돼지 몸을 얻었다. 이를 통해 보자면 색욕(色欲)이란 죄의 후과가 얼마나 엄중한 지 알 수 있다! 하늘은 자비로 그에게 공을 세워 죄를 갚을 기회를 주었고 현장을 보호해 서천에 가게 했다. 하지만 그는 근기가 얕고 심성도 낮아서 불문에 귀의할 생각을 갖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요정 노릇에 미련을 갖는다. 보살이 좋은 말로 권고해 생각을 바꿔 서천에 가는 일에 참여하긴 했지만 나중에 정과를 얻지 못하는 복선을 깔아놓았다.

권렴대장이 유리잔을 깨뜨린 것은 얼핏 그리 큰 문제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만물에는 모두 영(靈)이 있으니 천계의 유리잔이 깨졌다면 그 생명이 죽은 것과 같지 않은가? 게다가 그 경계 중에서 그의 심성이 그 층차에 부합했다면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뜻을 얻고 형체를 잊거나 혹은 마음에 두지 않거나 혹은 꼼꼼하지 못해서 속인의 마음이 나왔기 때문에 이런 잘못을 저질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전히 같은 말인데, 심성이 표준에 부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계로 쫓겨난 것이다. 비록 근기는 손오공만 못하고 심성은 현장만 못했지만 그래도 한마음으로 현장을 보호해 서천에 갔고 정과로 수련하려는 의지가 아주 굳건했기 때문에 그는 금신나한이 될 수 있었다.

백룡태자는 대전에 불을 질러 명주(明珠)를 태운 죄로 부친인 서해용왕에 의해 하늘 법정에 고발되었다. 본래 죽어 마땅한 죄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神)은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 하늘의 법규를 어기지 않음을 볼 수 있는데 다시 말해 심성에 대한 요구가 확실히 아주 엄격하다. 보살이 그를 구한 후 현장의 발이 되게 했고 고생을 겪어 업을 갚게 만들어 나중에 정과를 얻을 수 있도록 기약하게 했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36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