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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지성

[SOH] 인생에 단(段)이 있다면 나는 몇 단 쯤 될까?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나는 고수인가, 아니면 하수인가?

산에는 고저(高低)가 있고 물에는 심천(深淺)이 있으며, 힘에는 강약(强弱)이 있고 재주에는 장단(長短)이 있다. 같은 사람이라고 능력까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희비와 승패가 있는 것이 인생살이이니 고수와 하수의 차이가 없을 리 없다. 정치9단, 경제9단이라는 표현이 흔히 쓰이듯이 분야마다 누구나 인정하는 빼어난 고수들이 존재한다.

중국 송(宋)나라 때 학자 장의(張擬)가 지은 바둑경전 《기경(棋經)》은 초단에서 9단까지의 아홉 품계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 수졸 (守拙・초단)= 졸렬하나마 스스로를 지킬 줄 안다.

□ 약우 (若愚・2단)= 어리석어 보이지만 나름대로 움직인다.

□ 투력 (鬪力・3단)= 힘이 붙어 비로소 싸울 만하다.

□ 소교 (小巧・4단)= 약간이나마 기교를 부릴 줄 안다.

□ 용지 (用智・5단)= 힘과 기교뿐 아니라 지혜도 쓸 줄 안다.

□ 통유 (通幽・6단)= 바둑의 그윽한 경지를 엿보게 됐다.

□ 구체 (具體・7단)= 두루 갖추어 바둑의 요체를 터득했다.

□ 좌조 (坐照・8단)= 앉아서도 모든 변화를 훤히 내다본다.

□ 입신 (入神・9단)= 승부를 초탈해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기경》은 말한다. “고수는 교만함이 없고, 하수는 겁이 없다.” 고수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지만, 하수는 하늘 높은 줄을 모른다. 그래서 고수는 하수인 양 실력을 감추지만, 하수는 고수인 양 자신을 드러낸다.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장자》 추수(秋水)편은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를 모르고, 여름 매미는 눈과 얼음을 모른다”고 가르친다.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하수들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아는 자는 말이 없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知者不言 言者不知)”라고 일깨운다. 고수는 자신이 모른다고 생각하고, 하수는 자신이 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수는 교만함이 없고, 하수는 겁이 없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야말로 하수들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참 용사는 힘을 자랑하지 않고, 참 부자는 재산을 자랑하지 않으며, 진짜 지혜로운 자는 지혜를 자랑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고수는 감추고 하수는 뽐낸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 안자(晏子)와 마부의 일화도 그런 고수와 하수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안자는 관중(管仲)과 비견되는 뛰어난 재상으로 정직하고 근면하여 백성들의 신망이 높았다. 하지만 겸손하게 처신하여 길거리의 낡은 집에서 살며 헌 가마와 작은 수레를 타고 다녔다.

아내는 비단옷을 입지 않았으며 식사는 반찬 하나에 국 한 그릇이 전부였다. 안자는 키가 작고 볼 품 없었지만 지혜와 담력은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그의 비범함을 보여주는 일화 가운데 이런 게 있다. 안자가 사신이 되어 초나라로 갔을 때의 일이다.

초나라 왕이 키 작은 그를 조롱하고자 성문 대신에 개구멍으로 들어오게 했다. 이에 안자가 호통을 쳤다. “개들의 나라나 개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초나라는 개 나라란 말인가!”

이런 안자에게는 키가 훤칠하고 용모가 번듯한 마부가 있었다. 마부는 안자의 수레를 끌며 자기가 재상이라도 된 양 몹시 의기양양해 했다. 어느 날 이를 본 마부의 아내가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며 이렇게 말했다.

“안자는 키가 6척도 안되지만 제후들 사이에 명성이 자자합니다. 그런데도 무척 겸손합니다. 당신은 키가 8척인 장부이면서도 기껏해야 안자의 말이나 몹니다. 그런데도 만족스러워서 거만한 태도까지 취합니다. 저는 그런 졸장부의 아내로 살기는 싫습니다.”

이 말에 크게 반성한 마부는 겸손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달라진 것을 본 안자는 그를 천거해 대부(大夫)로 입신시켜 주었다.

안자와 마부의 일화에서 보듯이 고수는 자신을 낮추고, 하수는 자신을 높인다. 고수의 눈에는 자신의 부족함이 들어오지만 하수의 눈에는 자신의 잘난 점만 보이기 때문이다.

고수는 자신이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하수는 자신이 안다고 생각한다. 위기구품으로 표현되는 고수와 하수의 차이도 여기에서부터 비롯된다.

인생이라는 승부에서 고수가 되려면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한다. 노자는 자신을 아는 사람은 현명하며(自知者明),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강하다(自勝者强)고 가르친다. 자기를 아는 것이 승리의 첫걸음이다. 《여씨춘추》 계춘기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그러므로 남을 이기려는 자는 반드시 먼저 자신을 이겨야 하고,

남을 논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자신을 논해야 하며,

남을 알려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한다.”

그대는 스스로를 몇 단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는 자는 떠들지 않고, 떠드는 자는 알지 못하는 법이다. 노자 말을 잣대로 삼아 자신을 한번 재어보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자랑이라 여겼던 것들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입신(入神)으로 향해 가는 길고 보람찬 여정은 시작된다.

/ 이코리아뉴스


디지털뉴스팀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희망지성


[SOH] 어느 날 한 거지가 사찰 안으로 느릿느릿 걸어들어 오더니 부처님께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고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부처님, 저는 당신이 가장 부럽습니다. 하루 종일 넓은 불당(佛堂) 위에 앉아만 계셔도 수많은 신도들이 스스로 찾아와 향불이며 음식을 바치니까요. 하지만 저는 매일 사람들의 욕을 먹을 뿐만 아니라 또 배고픔을 참고 견뎌야 하니 이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막 이 말을 마치자 부처님이 모습을 드러내셨다!

속에 불만이 가득하고 끊임없이 불평하는 거지를 보신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세간의 모든 것에는 다 인과(因果)가 있느니라. 네가 기왕 내가 부럽다고 하니 그럼 우리 둘이 하루만 신분을 바꿔서 네가 부처가 되고 내가 거지가 되어보자.”

거지가 보기에 이는 너무 좋은 일이라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부처님은 그에게 바로 응답하는 대신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네가 부처가 된 하루 동안 그 어떤 신도가 방문하더라도 네가 그 어떤 것을 보고 들을지라도 절대 끼어들지 말아야 한다.”

탁자 위에 있는 공양물을 본 거지는 이미 참지 못하고 빨리 부처님더러 떠나시라고 했다. 부처님이 막 떠나시자 거지는 곧 공양 탁자에 앉아 배불리 먹고는 막 몸을 좀 움직이려고 했다. 이때 화려한 옷을 차려 입은 한 원외(員外)가 들어왔다.

원외는 예물을 바치고 향을 올리고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좀 있으면 제 나이 벌써 50인데 슬하에 아직 자식이 없습니다. 부디 부처님께서 제게 아들을 하나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거지가 막 입을 열려다가 부처님이 떠나기 전에 하신 그 어떤 일에도 끼어들지 말라는 당부가 생각나 가까스로 참았다.

원외가 기도를 마치고 나갈 때 그만 몸에 차고 있던 돈주머니가 공양 탁자 옆에 떨어졌다. 원외가 문을 나가자마자 곧 소박한 차림의 한 서생이 들어왔는데 얼핏 봐도 가난해 보였다.

서생은 땅에 무릎을 꿇고 잇따라 절을 올리며 말했다.

“부처님 한 달 후 서울에 가서 시험을 봐야 합니다. 10년간 어렵게 공부했으니 부처님 보우하사 이번 시험에 합격하게 해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절을 하려고 고개를 숙일 때 원외가 떨어뜨린 돈주머니가 눈에 띄었다. 서생은 이는 부처님이 영험해서 자신이 서울에 갈 때 여비가 없는 것을 아시고 특별히 하사하신 것이라 여겼다. 이에 급히 부처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 후 돈주머니를 들고는 총총히 떠났다.

이어서 세 번째로 복을 구하러 온 사람은 어부였다. 이번에 어로를 위해 바다로 나가는 까닭에 부처님께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바로 이때 원외가 돌아와서는 돈주머니를 찾았다. 당시 사찰 안에 오직 어부 한사람뿐인 것을 본 원외는 그가 돈을 가져갔다면서 고집을 부렸다.

두 사람이 반나절을 다투다 원외가 기어코 어부를 관아로 끌고가려 했다. 이때 거지가 더 이상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는 원외에게 나타나 말했다.

“네 돈주머니는 어부가 아니라 서생이 가져갔느니라.”

결국 원외는 서생이 있는 곳에 가서 돈주머니를 찾고 어부를 놓아주었다. 거지는 속으로 자신이 좋은 일을 했다고 여기며 득의양양해 했다. 이때 부처님이 돌아와 그에게 애초 약속을 어기고 사람의 일에 끼어들었으니 생생세세 소나 말로 태어나고 사람으로 전생할 수 없는 징벌을 내리셨다.

거지는 자신은 잘못한 일이 없다며 승복하지 않았다. 부처님은 그가 진심으로 승복하게 하고자 거지를 데리고 미래로 데려갔다. 미래의 서생은 비록 돈주머니를 원외에게 돌려주긴 했지만 도둑이란 죄명을 썼고 앞길을 완전히 망쳤다.

서생의 앞길을 훼손한 원외 역시 자신에게 재앙을 초래했다. 아들을 구하고자 빌었지만 실현할 수 없었고 줄곧 혼자 외롭게 늙어갔으며 가업도 쇠퇴해져 계승할 사람이 없었다.

셋 중 가장 비참한 것은 어부였다. 거지가 당시 개입해 그의 무고함을 입증했지만 이튿날 예정대로 바다에 나갔다가 폭풍을 만나 바다에서 죽는 바람에 시신조차 보존하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거지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어부는 관아에 잡혀가 이번 폭풍이란 큰 겁난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 사람의 미래를 직접 목격한 거지는 자책하며 고개를 떨궜다.

부처님이 그에게 말했다.

“세간의 일체는 모두 인과가 있으니 아주 작은 일이라도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때로는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것이 오히려 가장 좋은 것이다.” / 正見網


편집부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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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선(善)은 인류가 가진 천성의 하나로 본능이나 관념과는 다르다. 선량한 사람은 알지 못하는 사람이나 동물이 고통을 겪는 것을 볼 때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며 심지어 눈물까지 흘린다. 이러한 과정은 사고와 판단을 거치지 않는다. 선은 사람의 기본적 천성 중 하나이기 때문에 사람은 대부분 많든 적든 어느 정도의 선량함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 ‘이해관계’가 발생할 때, 이 선량함은 흔히 뒷전으로 밀린다. 만약 자신의 적(敵)이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본다면 동정을 느끼기보다 ‘고소함’이나 ‘통쾌함’을 느끼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왜 선량함이 작용하지 못할까? 그것의 원인은 사람의 사욕(私慾)에 있다. 사욕은 이해관계에서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챙기게 한다. 이 사욕이 극단적으로 팽창하면 선량한 천성은 아주 작아져, 자신을 막는 사람에게 노기충천하게 되며 육친조차도 알아보지 못한다.


속담에 “사람이 성현이 아닌데 어찌 과오가 없겠는가?”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해 성현은 ‘과오’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만약 어디서나 선한 의념을 일관적으로 견지한다면 시간이 갈수록 그 선량한 일면은 매우 강해져, 명리나 사욕이 그의 판단과 행위를 좌우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인은 고상한 덕을 겸비한 사람을 군자라고 부른다. 군자는 성현의 책을 필독해야 하는 데 그것은 성현이 군자보다 높은 층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현보다 더 높은 경지도 존재할까? 있다면 어떤 상태일까? 만약 사람의 마음에 사욕이 완전히 없고 선척적인 본성만 존재한다면 선(善)과 사(私)의 모순이 없어진다. 이런 경지를 도가에서는 ‘반본귀진’이라고 하며, 불가에서는 ‘집착이 없다’고 한다. 다른 말로 도가는 ‘진인, 불가는 ’부처‘라고 부른다.


일부 사람들은 과학과 신(神), 불(佛)을 대립적인 개념으로 여긴다. 하지만 과학은 근본적으로 신이 존재하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과학은 실증의 방식이기 때문에 실증을 거치지 못한 현상 등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실험을 통하여 가짜가 증명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선 부인하지 않는다. 과학과 유신론의 구별은 사물에 대한 인식 방법이고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한 문제에서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신을 믿는 사람은 과학적인 검증이나 어떤 증거 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서양의 많은 과학자들은 종교 신앙자로서 과학적인 방법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 했는데, 그 내용들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러므로 과학으로 신, 불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완전한 논리적인 착오이다.


사람들은 천성을 잃은 자를 ‘짐승’, 보통사람을 “속인”, 선을 쌓고 덕행이 좋은 사람을 “성인”, “반본귀진”, 집착심이 없는 사람을 “불·도·신”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각각의 층차를 구분하는 것은 ‘마음(心)’인 바, 관건은 어떻게 덕(德)을 쌓고 마음을 닦는가 하는 것이다.


고금중외의 정통 종교, 예를 들면 불교, 도교, 기독교 등은 모두 사람들이 마음을 닦고 도덕을 중시하며 생명의 층차를 승화할 것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화하면서 종교는 사람들에 대한 구속력을 잃게 됐다.


이전의 장엄과 신성은 없어지고 수련의 전당이 유람승지로, 사교(社交) 장소를 변했으며, 수련을 가르치는 신, 불은 어느 때부터인가 강압적으로 사람에게 복을 가져다 주어야 하는 입장이 됐다. 사람들이 신, 불을 찾는 것은 복과 보호를 빌고 자신의 사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으로, 신, 불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과 정반대가 되었다.


현대인들은 법률을 인간의 행위를 단속하는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과학이 인류를 더욱 편안하고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면서, 도덕은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폐물이 됐다. 법률은 더 이상  사람의 마음을 구속하지 못하며 과학기술 또한 여전히 양날의 칼이다.


탐욕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의 본성을 잃어버리게 했고 원한은 그들로 하여금 미쳐 날뛰게 하고 있다. 아무리 법률의 재제가 엄격하더리도, 아무리 더러운 일이라 하더라도 많은 돈만 내걸기만 하면 곧 가서 하려고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마약을 피우는 사람이 있으면 마약장사를 하는 사람이 있고 살인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곧 청부살인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요즘의 사람들은 필요한 일체를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


과학은 양날의 칼이다. 인류의 삶을 보다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는 힘도 주었기 때문이다. 현재 인류는 지구를 백번 이상 파괴할 수 있는 양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에도 다양한 종류의 신식 대규모 살상 핵무기가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으며 여기에 컴퓨터의 기술까지 결합되어, 인류의 생존은 이미 스위치 단추의 통제 하에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과학이 발달 할수록 사람에 대한 도덕에 대한 요구 조건이 더 높아진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아마 믿지도 않을 것이다. 과거에는 몇 명의 악인이 나쁜 짓을 해도 인류에 큰 영향이 없었으나 지금은 몇 사람의 작용만으로도 인류에게 큰 재난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과학 기술은 또 국력이 약한 국가에게도 전 지구를 훼멸시킬 수 있게 하는 무서운 위력을 지니게 했다. 오늘날 각국의 팽팽한 이익 충돌은 전 세계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종족간의 모순, 지역적인 충돌, 테러조직의 활동들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인류가 덕을 중시하지 않으면 결국 과학으로 인해 파멸될 것이다.


과학은 줄곧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도덕’에 대한 사람들의 중시는 날로 쇠퇴하고 있다. 과학기술과 도덕의 이 같은 장기적인 양극 분열은 인류의 생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인류에게 비극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해법은 인류의 도덕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것이지 법률이나 기타 방법 및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류 역사상 오늘날과 같이 ‘도덕 수준의 전체적인 제고’가 요구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현재 인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인류 문명의 초기에 나타난 석가모니, 노자, 예수 등은 각자의 자비로서 덕을 수행하는 진리를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인류의 자아 단속이 보편적으로 내려간 오늘, 누군가가 수천만 사람들의 도덕 수준을 제고 할 수만 있다면 그는 사실상 사람들을 물과 불에서 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중생을 제도 하고 있는 것이다. (자료: 明慧網)



곽제연 기자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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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잠재능력으로 불리는 신비한 ‘인체부양’


▲ 다른 불가사의한 현상과 똑같이 '인체 부양'도 현재까지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SOH]그동안 전설에서는 어떠한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땅에서 떠오를 수 있는 등의 인류의 비범한 능력에 대해 전해져 왔다. 역사 기록과 최근의 사례에 따르면 부양자는 마치 지구 인력을 극복하고 자신의 몸을 천천히 부양할 수 있는 비범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대 심리학자들도 이러한 부양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 아직 밝혀 내지 못했다. 요가 수행자의 힌두교 선정 대사로 불리는 사람들도 부양을 할 수 있다.

1986년 미국 워싱턴에서 유가 수행자의 비행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공개적으로 진행되었다.

약 20명의 요가 수행자들이 겨루었고, 그들은 최소 60센티미터에서 최대 1미터까지 떠올랐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에서 온 승려들도 가볍게 몸을 떠올릴 수 있다고 한다. 현재 과학자들은 인간의 몸이 어떻게 지구 인력을 벗어나 공중으로 떠오를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 인체 부양술에 대한 연구

인도 물리학자 싱거와제바 박사는 인체 부양술에 대해 수년 동안 조사와 연구를 진행해 왔고, 실제로 부양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 왔다. 여기서 그가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세간 생활과는 단절한 채, 깊은 산속에 은닉하여 살고 있었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은 현대 사회와는 완전히 달랐고, 그들이 말하는 공중부양을 하는 방법은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싱거와제바 박사는 물리 탐지기로 미세한 것까지 탐색해 보았지만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다.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이것은 신비한 신화 같았고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싱거와제바 박사는 “인도 군사학가는 이 인체 부양술을 군사적으로 사용하려 했지만, 그것은 불가사의한 환상에 불과했다. 이 수수께끼를 풀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인류의 과학기술이 인체 내에 잠재된 특수한 기능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것을 풀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체 공중부양 사용을 원했던 인도의 군사학가는 공중 부양이 가능한 초인 군부대를 만들 수 있다면 탱크, 폭탄, 지뢰로부터의 공격에서 자유롭고, 언제든지 적의 기지를 공격 할 수 있어 군사 비용을 대폭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인도의 여러 학자들은 현재까지도 "많은 과학자들이 어떻게 공중부양을 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정확히 밝히지 못했으므로 이런 가설은 실현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4가지의 에너지 중력과 자기력, 두 종류의 핵에너지 외에 '다섯 번째 에너지'가 존재한다고 가설을 세울 수밖에 없다. 이 다섯 번째 에너지는 어떻게 인체에서 발생되는 것일까? 또한 어떻게 인체를 공중에 띄울 수 있었을까? 이것은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만약 인체부양이 정말로 존재 한다면 물리학 법칙은 철저히 뒤바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인체부양을 하는 사람은 외부의 힘이나 도구를 사용해 떠오르거나, 마술 같은 기법으로 사람들에게 환각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사례

인도 북부의 나미뤄얼이라는 외진 시골마을에는 60살이 넘은 바자 미첼이라는 노인이 있다. 그는 40년 동안 요가를 수행하여, 산 위에서 마치 신선과 같이 공중 부양을 할 수 있었다.

미국 물리학자 카라이만쓰 교수는 인도에서 몇 년간 거주 하면서 이 “초인”을 만나보기로 결심했다. 그와 함께한 사람은 인도의 저명한 생물학자 싱거미빠얼과 인체형 기능학자 레만얼 그리고 미국 <과학과 생활>잡지의 기자 등이었다. 나미뤄얼 마을은 굉장히 멀고 가는 길이 험해 차 대신 말을 타야 했고, 또 10일 정도를 걸어야 도착 할 수 있었다. 그곳은 세상과 거의 단절된 곳이었다.

카라이만쓰 교수 일행은 이곳에 도착한 후 바자 미첼 노인을 만났다. 이 노인은 길고 짙은 은색 머리와 수염을 기르고 있었으며, 짙은 눈썹 아래에 예리한 눈을 하고 있어 위엄 있는 철학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카라이만쓰 교수가 노인에게 그의 '초인'적인 능력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승낙했다.

그 노인은 교수 일행이 도착한 둘째 날 아침 태양이 떠오르는 시간에 자신이 거주하는 모옥에서 공중 부양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약속한 날 아침, 카라이만쓰 교수 일행은 사진기와 각종 탐측기를 가지고 노인의 모옥 앞에 모였다. 바자 미첼은 가부좌를 하고 깔개 위에 앉아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사람들의 눈빛, 카메라의 렌즈, 각종 탐측기는 노인의 몸을 향하고 있었다. 약 2~3분 후 노인의 몸은 서서히 위로 떠올랐고, 약 10미터 정도 올라갔을 때 그는 가부좌 자세를 바꿔 두 팔을 내리 뻗었는데, 이것은 마치 새가 비상하려는 동작처럼 보였다. 공중으로 떠 있는 노인의 모습은 무아지경에 빠진 것 같아 보였다.

이 같은 광경에 사람들은 매우 놀랐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약 30분 정도 공중에 떠 있던 미첼 노인은 몸이 조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수평 자세로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카메라는 당시 그의 모든 동작을 촬영했다. 현장에 있던 과학자들은 미첼 노인이 땅으로 내려온 후 그의 몸이 솜사탕처럼 부드러워진 것을 발견했다. 미첼 노인이 공중으로 뜰 때, 탐색기는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류를 탐지했다. 80 킬로그램이 넘는 사람을 뜨게 하려면 굉장히 큰 힘이 필요하다. 과학자들은 이 같은 기류와 에너지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미국 잡지 <과학과 생활> 편집인 스미스는 실제로 존재하는 ‘초인’을 만난 후, 마치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던 것처럼 마음이 굉장히 들떴다. 스미스는 바자 미첼에게 거금을 제안하면서 미국 공연에 초대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첼 노인은 정중히 사양하며 “나는 경건한 힌두교 신자로 요가를 수련한지 40년이 되었다. 산림에서의 조용한 생활로 돈과 명예에 대한 욕심은 이미 오래전에 없어졌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이 그에게 공중부양술을 어떻게 익혔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그것은 엄격한 정신 훈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육체적인 훈련은 더욱 힘들다. 정신이 고도로 집중돼야 인체 내 잠재된 거대한 ‘마력’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그의 대답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인체 내에 잠재 되어 있는 ‘마력’이 도대체 무엇일까? 어떻게 물리학상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깰 수 있었던 것일까?

인체 공중 부양에 대해 카라이만쓰 교수와 인도의 몇몇 과학자들은 인도의 고서인 <불경>에서 이러한 기록을 발견하였다. 2천 년 전에 불교의 승려들은 마음껏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었다. 그들이 날 때 볼 수 있는 경관을 거대 그림으로 표현했다. 인도 고고학자들은 한 거대한 석고조각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2천 년 전 인도의 갠지스강 부근의 만달 평원의 경관이었다. 굉장히 높은 곳에서 바라본 조감이었다. 또한 당시에는 비행기도 없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 고도의 제작을 할 수 있었던 걸까? 과학자들은 인도 고서인 <불경>중의 기록을 신화로 보았는데, 지금 그들이 실제로 인체부양을 본 이상 그것이 사실에 근거한 기록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 인체부양에 관한 기록

1910년 영국의 탐험가 피터는 미얀마 북부의 산림을 탐험했다. 당시 그는 깊은 산 속의 절에서 수행 중인 한 노승을 알게 됐다. 이 노승은 매일 아침 절 앞에서 좌선을 했는데, 가부좌한 자세로 10분 간 있은 후, 천천히 위로 부양했다. 그 후 공중을 한 바퀴 돈 후 천천히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피터는 이 광경에 너무 놀라 사진기로 노승이 공중부양 하는 모든 각도를 카메라에 담았고, 귀국 후 잡지 <가디언>에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 일부 과학자들은 그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부인에 대해 피터는 자신의 사진은 진실이며, "사진을 찍을 당시 자신의 상태도 아주 정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또 "그 노승은 피터에게 보여주기 위해 공중 부양한 것이 아니고 자신이 우연히 본 것이기 떄문에 어떠한 속임수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1912년 프랑스의 탐험가 올런아니는 네팔과 티벳 경계로 있는 히말라야산 일대를 조사했다. 당시 티벳 라마가 그를 안내했는데, 그 라마는 길을 걸을 때 마치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히말라야 산맥의 일대는 눈이 깊게 쌓여 있어 올런아니가 앞으로 내딛을수록 발은 눈에 파묻혀 걷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하지만 이 라마는 걸을 때 발에 눈이 묻지 않았고 굉장히 가볍게 걸었다.

올런아니가 가장 놀랐던 것은 라마가 그를 데리고 협곡을 지날 때였다. 이 협곡은 200미터 정도로 깊고, 100미터 정도로 넓었다. 이곳은 걷기에 매우 위험한 지형이었기 때문에 이곳을 통과하려면 최소 반나절의 시간이 필요했다. 올런아니가 그곳을 통과할지에 대해 잠시 고민중 일 때, 라마는 그를 업으면서 "잠시 눈을 감고 있으라"고 말했다. 올런아니가 자신이 공중을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눈을 뜨자 라마가 그를 업고 공중을 날고 있었다. 그들은 불과 몇 분 만에 협곡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는 황량한 설산에 이처럼 놀라운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

올러아니는 프랑스로 돌아간 후, 라마가 공중에 떠있던 사진과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파리일보>에 실었다. 하지만 많은 독자들이 이것을 믿지 않았으며, "‘천일야화’와 같은 허구의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인체 부양과 관련된 기록 중 가장 유명한 것은 40년 동안 인체 부양을 공연한 기록을 가진 ‘흄’의 사례이다. 그가 최대 24m까지 부양했는데, 그는 이 같은 능력으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초인’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 종교와는 무관한 것일까?

인체 부양에 성공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종교에 깊은 신앙심이 있거나 수행주의나 심령주의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관련된 사람은 다음과 같다.

흄: 영국영매 (심령주의자), 공중부양술과 예언능력이 있었다.

세인트조지프 : 이탈리아 기독교 신자, 매우 격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 종교적으로 극도의 흥분을 느끼면 공중부양 할 수 있었다.

아이웨이 : 스페인의 성녀, 공중부양을 했지만 스스로 통제하진 못했다. 예지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신비의 티벳인 : 정확한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이 사람은 티벳의 수련자로, 당시 티벳에서 비버를 연구하던 프랑스 탐험가 노니의 부인에 의해 발견됐다. 이 남성은 옷을 전혀 걸치지 않았으며, 몸이 부양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온 몸에 무거운 족쇄를 매달았다.

샤바야 푸라파 : 인도의 요가수행 승려. 1936년 6월 6일 Illustrated London News는 푸라파의 공중 부양 사진을 실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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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는 어려워 !

한 서당에서 학문을 익힌 두 친구,
열심히 학문을 연마해 한 친구가
먼저 벼슬 길에 올랐고
그로부터 몇 년 뒤 다른 한 친구도
관직을 얻어 임지로 가게 되었습니다.
뒤에 관직을 얻은 친구는 임지로 가기 전
친구들을 위해 연회를 베풀었는데
그 자리에 함께 학업을 한 친구도 참석했습니다.
그는 이제 막 임지로 떠나는 친구에게
꼭 해줄 말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겪어보니 관직이란게 쉽지만은 않네.
앞으로 많은 일을 참아야 할 것이네"
"알겠네. 자네의 충고를 잊지 않겠네."

시간이 흘러 연회가 끝나갈 무렵,
친구가 다시 그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어떤 경우를 당하더라도 참아야 하네."
"허허, 알겠네. 꼭 그렇게 하지."

연회가 끝나고 친구들이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는 대문을 나서며 또 당부했습니다.
"꼭 명심하게. 참고 또 참아야 하네."
"아니, 이 친구가.....,
지금 날 놀리는 건가?
알았다는데 왜 같은 말을 몇 번씩이나 하나?"

그 말에 친구는 실망스런 얼굴로 중얼거렸습니다.
"그것 보게나. 이제 같은 말을 겨우
세 번 했을 뿐인데 그것도 참아내지 못했지 않나?
인내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세."
그는 친구의 말에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습니다.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에서 보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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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1초 전, 무엇을 보고 들을 수 있을까?


[SOH] 생로병사는 인류생명의 일부분이다. 사람들은 사후세계를 영원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죽음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준다. 인류가 죽기 전 감각이 있을 수 있을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을까? 미국의 심리학자는 사람이 죽기 1초 전, 14가지 죽음에 직면하는 체험을 시도했다.


유명한 미국의 심리학자 레이먼드 무디 박사는 150명의 ‘임사’ 체험자들의 사례를 연구해 죽음의 진상을 밝혀냈다. 그가 밝힌 ‘죽기 직전 체험’을 한 사람들이 느낀 괴이한 14가지 느낌을 살펴보자!•


1. 죽은 것을 확실히 안다; 그들은 의사 혹은 현장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사망을 명확히 선포하는 것을 직접 듣는다. 그는 기력 감퇴가 생리적으로 한계에 도달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 유쾌하고 기쁜 체험: ‘임사체험’ 의 초기에는 어떤 온화함과 편안함, 사람을 유쾌하게 하고 기쁘게 하는 느낌을 준다. 먼저 고통을 느낄 수 있지만, 이러한 고통 감각은 찰나에 그치며, 이후 자신은 하나의 어두운 차원에서 떠다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전에 체험하지 못한 제일 편안한 감각이 곧 그를 감싼다.


3. 괴상한 소리: ‘죽기 직전’ 혹은 ‘사망’할 때 괴상한 소리가 마구 떠돌아 다닌다. 한 젊은 여성은 악곡을 들었는데 미묘한 멜로디였다고 말했다.


4. 검은 동굴로 진입: 어떤 사람은 그들이 갑자기 어두운 공간에 끌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때부터 좀 인식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마치 공기가 없는 원통처럼 건너갈 지대로 한쪽은 지금 세상이고 다른 쪽은 이국적인 지역이다.


5. 영혼이 빠져 나온다: 자신이 체외의 어떤 곳에 서서 자신의 육체를 관찰하는 것을 발견한다. 물에 빠진 한 남자의 기억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신체를 이탈한 후 어느 한 공간에 놓여졌고 마치 깃털같았다고 말했다.


6 언어 제한: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이 처한 곤경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려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그들의 말을 듣지 못한다. 한 여성은 다른 사람들에 말을 걸었지만 아무도 들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7. 시간이 사라진다: 이탈한 상태에서 시간에 대한 느낌이 사라졌다. 어떤 사람은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육체를 끊임없이 출입했다고 회상했다.


8. 감각기관이 예민해진다: 시각, 청각이 이전보다 더욱더 예민하다. 한 남성은 이전에 이렇게 똑똑히 보이고 시력 수준이 불가사의하게 좋아진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9. 고독하다: 그 후 강렬한 고립감과 고독감이 나타날 수 있다. 한 남성은 어떻게 노력하든지를 막론하고 모두 다른 사람과 교류할 방법이 없어 ‘나는 아주 외로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10. 그 ‘사람’과 동행한다: 이때 주위에는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 이 ‘사람’은 안전하게 죽음의 나라로 넘어가는 것을 돕거나 그들에게 죽음의 종소리가 아직 울리지 않았으니 먼저 돌아가서 다시 한동안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알려주는 사람이다.


11. 밝은 빛이 나타난다: ‘임사체험’의 최후 시각에 밝은 빛이 나타날 수 있다. 이 빛은 어떤 ‘인간의 본성’, 아주 명확한 ‘인간의 본성’을 구비하고 있다.


12. 인생을 뒤돌아 본다: 이때 당사자는 자신의 일생에 대해 파노라마 회고를 한다. 한 장면, 한 장면씩 이어가는데, 일이 발생한 순서에 따라 이동하며 화면이 함께 나타날 수도 있는데, 당시의 일부 감각과 정감이 모두 다시 새롭게 체험된다.

 
13. 경계선이 격리: 이때 사람은 ‘가장자리’ 혹은 ‘한계’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물건과 만날 수 있다. 이 물건은 당신을 격리시켜 다른 곳으로 가게 한다. 그것의 형태는 여러 가지로, 한 무더기의 물, 한 뭉치의 연기와 안개, 문 한 짝, 넓은 들판의 울타리, 혹은 한 갈래 선으로 나타난다.


14. 생명이 돌아온다: 만약에 행운이 있으면 살아날 수 있는데 ‘죽기 직전 체험’에서 어느 정도 진행된 후 사람들은 반드시 ‘돌아온다’. 제일 먼저 시작할 때 많은 사람들은 모두 빨리 신체에 들어갈 것으로 생각하지만, 임사체험이 깊어짐에 따라 그는 원래의 신체로 돌아오는 것을 배척하기 시작하며, 만약에 빛의 존재를 만나게 되면 이러한 정서는 더욱 강렬하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사이에 당신은 곧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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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禍)와 복(福)은 수시로 바뀐다

글/서옥림(徐玉琳)

[SOH] 루이스는 나의 오랜 환자로 머리가 아프고 열이 나기만 하면 한방치료부터 한다. 아울러 온 가족이 다 한의학을 신뢰하고 어디가 불편하기만 하면 일단 한약, 침, 뜸부터 생각한다. 오랫동안 이렇게 하자 나는 그녀의 생활과 각종 방면에 대해 상세히 알게 되었다.
  
그녀는 식당을 운영하는데 하루 종일 장시간 일하는 관계로 아주 고생스럽다. 루이스는 아주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끊임없이 바쁘게 지낸다. 이렇게 한 결과 작은 집이 큰 집으로 바뀌고, 낡은 차가 새 차로 바뀌었으며, 조그마한 음식점이 큰 식당으로 변모할 수 있었다. 줄곧 이런 아름다운 소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십수 년간 고생스런 날들을 잘 넘길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형편이 좀 나아질 무렵이 되자 그녀의 나이는 이미 중년에 접어들었고 갑자기 예상치 못했던 풍파가 밀어닥쳐 소리소문 없이 잔혹한 현실이 되었다.
 
그녀는 췌장암에 걸렸는데 그것도 말기였다. 수술 후 의사는 그녀에게 당장 식당 문을 닫거나 팔라고 충고했다. 그녀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과 며칠 만에 식당 확장을 위해 부지를 찾고 대출을 알아보던 사람이 갑자기 문을 닫고 영업을 중단하자, 부동산 중개인과 대출업자도 모두 정신이 멍해졌다.
  
그녀는 비참한 표정으로 나를 찾아왔다. 비록 남편이 그녀에 대한 연민 때문에 자신이 외도한 사실을 잠시 알리지 않으려 했지만 막 수술을 끝낸 그녀를 속일 순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 남편의 외도는 설상가상이었다.
 
“선생님, 나는 지금 망망대해에 떠 있는 외롭고 초라한 배처럼 느껴져요. 당장이라도 이 생명을 끊고 싶지만 또 생각해보면 좀 부질없는 것 같아요. 원래 그리 길지 않을 거라면 왜 하필 촛불이 다 타버린 마지막 찰나에 다시 바람을 불어넣을까요? 병원에서는 항암치료를 받으라고 하는데 저는 마치 계속 벌을 받는 것처럼 느껴져요. 앞으로 남은 매 순간이 더 이상 편안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까지 듣고 나니 내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불과 며칠 사이에 활짝 웃던 그녀의 얼굴이 이렇게 곤혹스런 표정으로 변한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루이스, 당신은 스스로 곧 세상을 떠날 거라고 믿나요?”
  
“아니요.”
 
“당신은 더 이상의 노력을 포기하고 더는 질병에 맞서고 싶지 않은가요?”
  
“아니요.”
 
“봄날 산등성이에 활짝 핀 작은 꽃송이를 보신 적이 있나요? 그 작은 꽃송이 역시 엄동설한의 고통을 겪어낸 후 피어난 것이랍니다. 산골짜기의 작은 시냇물을 본 적이 있나요? 그 시냇물도 얼음과 눈 속에서 조금씩 녹아내려 이뤄진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곤경과 어려움에 처해 있고, 목숨이 위태로운 준엄한 고비에 처해 있어요.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당신에게 진정한 용기가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요? 사람의 가장 큰 성공은 식당을 크게 여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 중에서 자신과 싸워 이기고 곤란에 맞서 진정으로 자신이 사람이 된 의미를 깨닫는 것이 아닐까요?”
나는 마치 자신에게 독백하듯이 가볍게 말을 꺼냈다.
 
그녀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선생님, 그럼 우리의 생명은 궁극적으로 대체 누가 통제하고 있을까요? 대체 누가 사람의 수명을 결정하는 걸까요?” 루이스의 어두웠던 안색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고 눈빛 속에 한 가닥 희망이 드러났다.
  
“글쎄요, 과연 누굴까요? 그것은 바로 당신 자신이 아닌가요? 당신의 생생세세, 당신의 업력의 보응, 당신의 인과순환 등은 정말이지 당신 자신의 것이랍니다.” 나는 참지 못하고 다시 말을 꺼냈다.
  
“….”
 
침묵 속에서 루이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지금도 바로 잡을 수 있을까요? 다시 새롭게 하기에는 이미 늦은 건 아닐까요? 이 병은 복(福)일까요, 아니면 화(禍)일까요? 어쩌면 제 생명은 이제야 비로소 시작된 것이 아닐까요?” 그녀는 마치 과거의 건강한 상태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나는 떠나는 그녀의 그림자를 보면서 선인들의 말씀을 떠올렸다.
“화란 복이 의지하는 것이요, 복이란 화가 잠복된 것이다(禍兮福所倚,福兮禍所伏).”
사실 세상에 절대적인 화와 복이란 없으며 모두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 모든 것은 당신 자신이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려 있다. 애석한 것은 사람은 종종 단지 눈앞의 작은 것만을 본다는 것이다.

[ 對중국 단파라디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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