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망

글/ 금궁(金弓)

속담 중에 ‘심원의마’(心猿意馬 역주: 마음은 원숭이와 같고 생각은 말과 같아서 집중하기 어렵다는 뜻)라는 성어(成語)가 있는데 흔히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거나 생각이 너무 많을 때 사용된다. 《서유기》에서는 또 손오공(원숭이)과 백룡마(말)를 지칭하는데 이는 현장의 수련에서 그들(잡념)을 몰아낼 수 없음을 암시한다. 속인공간에서 표현되는 것은 바로 입정(入定)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으로 청정심(淸淨心)이 부족한 것이다. 다른 한 공간에서의 표현은 바로 현장이 자신의 집착심을 없애지 못했거나 혹은 손오공의 집착심을 제거하지 못해 사도(司徒)가 잠시 이별하게 되는 것이다.

오공이 당승과 처음 여행에 나섰을 때 소위 말하는 여섯 강도가 길을 막고 나선다. 이들은 수련인이라면 반드시 제거해야 할 6가지 마음인 희(喜)・로(怒)・애(哀)・사(思)・욕(慾)・우(憂)를 대표한다. 오공이 그 뿌리를 제거하려 하자 현장은 오히려 참지 못하고 오공을 가르치려 든다. 현장은 본래 좋은 말로 권하면서 오공에게 선을 닦는 도리를 말하려 했다.

하지만 첫째, 이 여섯 도적은 사실 다른 공간에서 집착심이 체현된 것으로 업력과 마찬가지라 정(情)을 남겨둠을 허용하지 않았고 둘째, 현장이 가르치는 중에 아주 강한 걱정하는 마음이 드러났고 순정하고 선량한 마음이 아니었으며 게다가 오공이 비록 악을 징벌하고 선을 드러냈지만 집착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원래 이 원숭이는 평생 남이 화내는 걸 견디지 못해(原來這猴子一生受不得人氣)〈서유기14회〉” 사도 두 사람이 처음으로 헤어지게 된다. 즉 첫 번째로 마음원숭이가 풀려난 것이다.

다행히 오공의 오성이 좋은데다 용궁(龍宮)에서 이교삼진리(圯橋三進履 역주: 이교에서 장량이 황석공에게 세 차례나 신발을 주어다 바쳤다는 일화) 이야기에 감화되어 다시 돌아가 당승을 보호하고 계속해서 수련할 결심을 내렸다. 한편 당승은 관음보살로부터 손오공을 제압할 수 있도록 금고(金箍)와 긴고주(緊箍咒)를 전수받았다. 과연 오공이 돌아왔을 때 당승이 긴고주를 외우자 오공의 머리가 심하게 아파와 오만한 마음을 거두고 얌전히 서천으로 향하게 된다. 한편 현장의 ‘악행에 대해 선을 행하려는(對惡行善)’ 마음은 이후 서천으로 가는 길에서 여러 차례 고생을 겪게 만든다.

나중에 용마(龍馬)를 굴복시킨 후 오공의 방자하고 오만한 마음이 다시 치솟았다. 오공은 상대와 통성명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용(龍) 태자와 싸워 공연히 어려움을 하나 추가했다. 나중에 보살의 도움을 받아 용을 항복시킨 후에야 비로소 이 이치를 말해주었고 현장 역시 ‘생각이란 말(意馬)’을 거두게 했다.

오공은 처음에 과시심 때문에 수보리 조사로부터 사문에서 쫓겨났는데, 관음원(觀音院)에서 또 사람들에게 금란가사를 자랑하다 큰 손실을 보았다. 검은 곰요괴가 가사를 훔쳐간 것이다. 동시에 겉으로는 좋은 말만 하지만 속은 마귀와 같은 금지장로(金池長老)도 자신을 해치고 남을 해쳐 목숨으로 배상해야 했으며 중도에 수련을 폐기하고 윤회로 떨어졌다. 정말이지 집착심이 일어나기만 하면 즉각 마를 초래하게 된다.

보살이 오공을 따라 곰 요괴를 항복시키러 갈 때 오공의 제안에 따라 능허자란 신선 모습의 요괴로 변신하자 오공은 “요괴가 보살이 된 겁니까? 보살이 요괴가 된 겁니까?”라며 말한다. 그러자 보살이 “보살이나 요괴는 모두 한마음(一念)에서 나온 것이다”라며 오공을 깨우쳐준다. 즉 부처로 수련 성취되거나 마로 추락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 자신의 주장에 따른다. 일념의 차이로 서로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편, 저팔계는 당승의 제자가 된 후에도 색심(色心)을 바꾸지 않았다. 먹을 것을 탐하고 게으름을 피우며 늘 불평불만이 가득해 전혀 수련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사오정은 유사하(流沙河)에서 귀의해 취경의 길에 동참한다.

당승 일행의 마음이 얼마나 견정한지 시험해보기 위해 여산노모(黎山老姆)와 세 분 대보살(관음 보현 문수)이 부자집 과부와 딸로 변신했다. 여산노모는 과부로 변신해 데릴사위를 찾는다고 제안하자 사도 각 사람의 마음이 즉각 드러났다.

삼장은 경을 얻으려는 마음이 반석처럼 굳건했지만 두려운 마음과 걱정하는 마음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고, 오공은 태어날 때부터 색심이나 음욕이라곤 전혀 없었으며 게다가 이번 일은 보살이 각 사람의 마음을 시험해보기 위한 안배임을 잘 알았기 때문에 더욱 다른 생각이 없었다.

사승은 신통에도 한계가 있고 근기도 평범했지만 수련하려는 마음은 확고부동했다. 오직 팔계만이 색욕이 남아있는데다가 부귀를 탐하고 최종적으로 크게 곤두박질쳤다.

오장관에서 또 큰 겁난을 겪지만 집착심이 없어지지 않은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장관 관주(觀主)는 도가에서 수행이 아주 깊고 아주 높은 층차의 진인(真人)이었다. 하지만 오공이 그의 말을 따르지 않고 처음부터 오만방자하게 굴어 화근을 심었다. 아울러 삼장의 두려운 마음과 걱정하는 마음 역시 도화선이 되었다. 왜냐하면 견문이 좁아 인삼과를 사람으로 오인해 감히 먹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도제들이 인삼과를 훔치게 했기 때문이다.

팔계의 식탐은 불에 기름을 부어 오공을 부추겨 결국 인삼과를 훔치게 했다. 기왕 인삼과를 훔쳤다면 세 사람은 본래 머리 숙여 사과를 해야 했고 삼장이 선한 말로 오공에게 마음을 돌려 잘못을 인정하게 했지만 인삼과의 숫자를 착각해 도동들이 큰 꾸지람을 듣게 했다. 사실 근본원인은 오공의 인내심이 너무 낮아 작은 굴욕조차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니 만약 오공에게 이런 집착이 없었다면 어찌 난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나중에 선근(仙根)을 잘라버려 죄를 가중하고도 책임지지 않고 도망치려 했다. 진원자(鎮元子)가 돌아온 후 이치대로 하자면 네 사람을 잡아 처벌해야했다. 여기서 한마디 설명해야 할 것은 진원자는 득도한 진인으로 TV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처음부터 화를 내며 삼장일행에게 복수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동(道童)의 말을 듣고는 허허 웃으면서 화를 내거나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또한 그가 한 행동 역시 상리(常理)에 부합했으니 잘못을 저질렀으면 갚아야하고 선근을 뽑았으면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다만 자신이 있는 그 층차 경지를 수호하는 이치에 따랐으며 속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지 않았다. 오공이 관음보살의 법력을 빌려 나무를 살려낸 후에는 즉각 약속을 이행해 오공과 의형제를 맺었고 오공에게 참지 못하는 것의 엄중한 후과를 분명히 알려주었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36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