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망

글/ 찬란한 5천년 신전문화의 천고영웅인물 연구팀

8. 제세선방(濟世仙方)

2010년 중국대륙에서 이미 실전된 《삼풍장진인신속만응방(三豐張真人神速萬應方)》이란 책이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에서 발견되어 그 사본이 중국에 돌아왔다. 《삼풍장진인신속만응방》은 모두 4권으로 명나라 때 손천인[孫天仁, 용산(容山) 탐현자(探玄子)]이 수집한 도가 의학 전적이다.

이번에 발견된 도쿄 국립박물관 소장본은 에도시대(1603~1867년) 초기에 손으로 베껴 쓴 책이다. 명나라의 대의학자 이시진(李時珍)은 《본초강목(本草綱目)》을 편집할 때 이 책을 참고했고 그중 60여 처방을 인용해 수록하기도 했다.

《삼풍장진인신속만응방》 제1권은 《장삼풍진인비전선방(張三豐真人秘傳仙方)》이다. 이 책에 기록된 내용은 장삼풍이 원나라 때 천태산을 주유하다 석갑(石匣 돌상자) 속에서 얻은 ‘1권의 약방(藥方 한약 처방집)으로 24개 처방이 기록되어 있다.

명나라 영락 20년(1424년) 9월 호영주(胡濴奏)가 무당산에서 삼풍진인으로부터 ‘비오이십사방(秘奧二十四方)’을 받았다고 한다. 《본초강목》에는 이중 신선실소산(神仙失笑散), 종리제세산(鍾離濟世散), 자화지정고(紫花地丁膏), 신선마노병(神仙瑪瑙餅)과 진인벽설고(真人碧雪膏)를 수록했다.

24선방 외에도 《장삼풍진인비전선방》에는 ‘오행론’에 관한 기록이 있어 도가의 오행학설과 사람 몸의 오장 간의 상생상극 관계를 언급하고 있다. 또 ‘용호(龍虎)’ ‘황아(黃芽)’ 등 도가연단에 관련된 술어들이 나오고 이외에도 ‘인내(忍耐)’, ‘존덕(存德)’ 등 수심양성(修心養性)의 도가수련내용이 들어 있다.

《삼풍장진인신속만응방》 2권 《외과세계절요(醫科世系節要)》에는 의덕(醫德)과 관련된 논술이 장삼풍의 《의약편(醫藥篇)》과 같이 나온다.

의약편(醫藥篇)

“의도(醫道)는 나라를 살릴 수 있지만 나라를 병들게 할 수 있다. 또 세상의 약은 사람을 살릴 수 있지만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러니 그 술(術)을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醫之爲道也,能活國亦能病國;藥之於世也,能活人亦能殺人。不可不慎其術也)”

“중(中)에 이치가 있으니 배움에 끝이 없고 행함에 끝이 없다(中有理焉,學之無盡,行之無窮).”

“약은 군신좌사(君臣佐使)로 나뉘고 병은 허실(虛實)과 신구(新舊)로 나뉘는데 평범한 의사들도 모두 말할 수 있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성현의 학문에 정통할수록 뜻은 더욱 낮아야 하며 도덕이 높을수록 마음이 더욱 겸손해야 하니 기황(岐黃 역주: 기백과 황제로 전통 한의학을 말함)를 다루는 자 역시 이와 같다.(聖賢學問精而志氣益下,道德高而心懷益謙,操歧黃者亦宜如是)”

“자신을 소홀히 해선 안 되며 자신을 오도해도 안 되고 자신을 기만해도 안 된다. 자신을 속이면 남을 속이게 되고 자신을 오도하면 남을 오도하게 되며 자신을 소홀히 여기면 남을 소홀히 여기게 되는데 그 죄가 몸에 집중된다. 그러므로 이 도(道)는 공을 세우긴 쉽지만 허물을 얻기도 쉽다. 복을 쌓기는 어렵지만 재앙을 부르는 건 어렵지 않다. 만약 공이 있으면서 허물이 없고 복은 있으면서 재앙이 없으려면 반드시 조심스럽게 자제해야 하는데 맥의 이치는 미세해서 얕은 학문으로는 알기 어렵다.(不可自輕,不可自誤,不可自欺。自欺欺人,自誤誤人,自輕輕人,其罪集於乃躬也。故此道立功易,取過亦易,積福難,招禍不難。欲求有功無過,有福無禍,則必兢兢自持,脈理微細,淺學難知)”

“지금 의사에게 권하노니 환자의 병상에 들어가면 우선 (병이 생긴) 연유를 묻되 약을 가지고 함부로 사람을 시험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환자에게 권하노니 의사를 만나기 전에 먼저 그 원인을 알아야 하며 함부로 목숨을 걸고 의사를 시험하지 말아야 한다. 목숨을 걸고 의사를 시험하면 그 허물은 자신에게 있고 약으로 사람을 시험하면 그 허물은 의사에게 있다.(今勸爾醫士,入病人之榻,先問從來,勿以藥試人也;今勸爾病家,對醫士之前,先明原故,勿以命試醫也。以命試醫咎在己,以藥試人咎在醫)”

“더욱이 위급한 사람을 도움에 몸값을 높이지 말며 곤궁한 사람을 구함에 돈이나 재물을 따지지 말아야 한다. 그 증후를 환히 볼 수 있는 사람은 곧장 구해야 하며 그 증후를 볼 수 없는 사람은 (자신보다) 고명한 의사를 기다림이 온당하고 성실한 선(善)을 쌓는 것이다. 더욱이 그대 유학자 무리들에게 권하노니 신령한 처방을 많이 생각하고 의학의 뜻을 세밀히 연구하되 감추거나 함부로 하지 말며 자신을 이롭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하라.(更宜扶危急莫高身價,救困窮莫計金貲。能洞見其症候者,即行拯拔,不能見其症候者,以候高明,則積穩誠之善也。更勸汝儒學者流,多考靈方,細研醫旨,勿秘勿妄,利己利人)”(《장삼풍전집‧의약편》)

장삼풍은 또 신통을 드러내 세상을 구했는데 명나라 주휘(周暉)가 지은 《금릉쇄사(金陵瑣事)》에 “삼풍의 도롱이와 삿갓”에 관한 신기한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장삼풍전집》에는 또 증각서옹(贈角黍翁), 금박교휘(金箔交輝), 몽리전방(夢裏傳方) 일화가 수록되어 있다.

삼풍사립(三豐蓑笠 장삼풍의 도롱이와 삿갓)

장삼풍이 기양왕[岐陽王, 명나라 개국공신 이문충(李文忠)]의 집에 놀러갔다가 도롱이와 삿갓을 남기고는 그에게 말했다. “당신 집에 천일 안에 횡액이 닥쳐와 온가족이 먹을 게 없어질 겁니다. 위난이 닥쳤을 때 나의 도롱이와 삿갓을 쓰고 정원을 맴돌며 내 이름을 부르세요.” 기양왕은 속으로 의심이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의 도롱이와 삿갓을 보관했다.

2년이 지나자 조정에서 갑자기 대대적인 옥사(獄事)를 일으켰고 기양왕 역시 연루되었다. 기양왕의 전 가족이 왕부(王府)에 감금되었고 식량을 주지 않았다. 집안에 남은 식량을 보이는 대로 먹었다. 기양왕이 장삼풍의 말을 상기해 그가 시킨 대로 하면서 장삼풍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정원과 저택의 빈 땅에 모두 벼가 자라기 시작했고 한 달이 못되어 다 자랐다. 온가족이 이 쌀에 의지해 겨우 굶어죽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 쌀을 다 먹자 조정에서 사람이 와서 기양왕의 가족들에게 쌀을 공급하게 했다. 이후 기양왕이 다시 장삼풍의 이름을 불렀지만 이번에는 곡식이 자라지 않았다.

이때부터 기양왕은 장삼풍이 준 사립을 신물로 여겼다. 사람에게 병이 있으면 도롱이 위의 종려털을 물에 달여 마시게 하면 병이 바로 좋아졌다. 나중에 동창(東廠 역주: 명나라 때 황제 직속의 사찰기관)을 관장하던 한 태감이 이질에 걸리자 자신의 권력을 믿고 도롱이와 삿갓을 빼앗아갔다. 종려털을 달여 마셨지만 도리어 이질이 더 심해져서 바로 죽어버렸다. 나중에 이 도롱이와 삿갓은 황궁의 수장품이 되었다.

증각서옹(贈角黍翁 쫑쯔 노인에게 주다)

명나라 영종 천순(天順) 연간에 검주(劍州)에 한 노인이 종자(粽子 중국어로는 쫑쯔라 하며 찹살 떡의 일종)를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노인은 가난한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 종자를 하나 주곤 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이유를 묻자 그는 “(이 행인들은) 모두 아주 피곤하고 배가 고픕니다. 나는 매일 종자를 팔면서 원가에 약간의 이익만 남기면 충분합니다. 많이 남으면 모두 사람들에게 주는데 이런 작은 은혜가 뭐 언급할 거리나 되나요?”라고 했다.

어느 날 오후 3시쯤 종자를 아직 팔지 못했는데 갑자기 한 도인(道人)이 와서는 종자 하나를 달라고 했다. 노인이 하나를 주자 다 먹고는 하나를 더 달라고 했다. 노인이 하나를 더 주자 이번에도 다 먹고는 연달아 수십 번을 달라고 했다. 노인은 그때마다 원하는 대로 다 주었다.

도인이 크게 웃으면서 “당신은 정말 인심이 후하군. 내게 다른 기술은 없고 꾸러미 안에 자색 구슬이 하나 있으니 집에 가져가서 단 아래에 두고 이튿날 열어보면 그 속에 아주 기묘한 것이 있을 게요.”라고 했다.

말을 마친 도인이 표연히 사라지자 노인은 자색 구슬을 갖고 집에 돌아왔다. 도인이 일러준 대로 쌀통 안에 놓았다. 당시 통 안에는 쌀이 아주 조금 남아있었지만 이튿날 열어보니 통안 가득 쌀이 차 있었다. 노인은 웃으면서 “도인이 말씀하신 기묘한 것이 원래 이런 거였구나.”라고 했다.

이에 쌀통의 쌀을 퍼서 종자를 만들었고 3개를 팔면 7개를 나눠주었다. 이튿날 보니 또 쌀이 통안에 가득했다. 이렇게 매일 종자를 팔았는데 그 은혜를 입은 행인들이 모두 노인의 선량함을 찬탄했다.

이렇게 오래되자 노인은 이에 대해 놀랍고 기이하게 느껴 쌀통을 뒤집어 찾아보니 자주색 구슬은 보이지 않았다. 이후 쌀통에서는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도인이 또 와서는 노인에게 말했다. “나는 장삼풍이라네. 그대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이미 아주 많으니 세상을 나서 도를 닦아볼 생각이 있는가?”

하지만 노인은 수도할 생각이 없었다.

장삼풍이 단약(丹藥)을 하나 꺼내 노인에게 주면서 “이 단을 삼키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네.”라고 분부했다. 노인이 단을 삼키자 폐부가 전부 시원해짐을 느꼈다. 장삼풍이 떠난 후 노인은 1백여 살을 살았고 죽을 때 단정히 앉아서 서거했다.

금박교휘(金箔交輝 금박이 서로 빛내다)

명 태조 홍무 초년(初年) 평양(平陽)에 한 도인이 있었는데 진선(真仙) 장금박(張金箔)이라 했다. 그는 금박지를 만드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금박으로 삼았다. 장금박은 도술(道術)을 깊이 숨기고 인간세상을 노닐었으며 늘 금박으로 약을 만들어 사람들의 병을 치료했는데 기이한 효과가 나지 않는 경우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또 한 명의 도인이 나타나 자신을 장금점(張金點)이라 하면서 몸에 연한 남색 도포를 입고 있었다. 도포 가득 금점(金點)이 붙어 있어서 옷이 밝고 화려해서 금점을 호로 삼았다. 금점은 사람들에게 “병이 있는 사람이 내 도포 위의 금점을 하나 먹으면 질병 하나가 완전히 치유된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 시험해보니 과연 신기한 효험이 있었다. 장금점은 이렇게 병을 치료하고도 돈을 받지 않았다.

당시 남부지방에 온역(溫疫 유행성 전염병)이 아주 많았는데 장금점은 매일 사람들더러 도포 위의 금점을 전부 떼어가게 했다. 이튿날 장금점이 또 시장에 나오면 금점이 전과 같았다. 이에 사람들이 그를 신선으로 숭배했다.

한 달 후 온역이 통제되자 금점이 “내 일은 다 끝났으니 운산(雲山)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금점 도포를 벗자 사람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다퉜다. 장금점은 금빛으로 변해서 하늘로 날아올라갔다. 후인들이 듣고는 “이분은 장삼풍이 틀림없고 금점이라 한 것은 장금박과 서로 빛나게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몽리전방(夢裏傳方 꿈에 전한 처방)

명나라 때 연주(兗州)에 주생(朱生)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성품이 인자하고 효성스러웠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눈병이 생겨 물건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밤낮으로 하늘에 절을 올리며 신에게 자신의 병을 치료해달라고 빌었다.

어느 날 꿈에 한 금색신인(金色神人)이 나타났는데 창 모양의 긴 수염에 도인처럼 홀연히 나타나서는 그를 불렀다.

“너의 공경하는 마음이 진실하니 한 가지 묘한 처방을 전해주겠다. 눈에 넣으면 곧 좋아질 것이다.”

주생이 깨어난 후 꿈속의 기이한 신인을 회상하며 꿈속에서 신인이 알려준 대로 치료하자 이튿날 눈병이 좋아져 다시 볼 수 있었다. 주생은 신인의 묘방(妙方)이 영험한 것에 감사하며 하늘을 향해 향을 사르고 성심껏 예배를 올렸다.

어느 날 주생이 연성(袞城)에 가는 길에 장선관(張仙觀 장삼풍 신선을 모신 도관)에 들렀다. 주생이 들어가서 고개를 들어보고는 문득 장삼풍 신선의 얼굴이 꿈속에 봤던 신인과 똑같음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숙연히 일어나 공경하면서 장삼풍이 전한 신묘한 선방을 세상에 널리 알릴 것을 발원했다. 지금 이 선방(仙方)이 《본초강목》에 기재되어 있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5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