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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 정보센터

파룬궁은 무엇인가요?

파룬궁(法輪功)은 고대로부터 전승된 불가의 심신 수련법입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라고도 합니다.

고요히 내면을 탐색하는 명상, 천천히 움직이는 동작 수련, 진선인(真善忍)을 원칙으로 하는 도덕적 가르침을 결합했습니다. 수련자들은 몸과 마음을 건강히 하면서 일상을 충실하게 보내며 이러한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수련은 중국의 오랜 전통문화 중 한 가지입니다. 심신을 닦아 높은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자기 수양 방법입니다. 기(氣)수련, 기공 수련, 기공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 왔지만 원래 취지에 가장 맞는 이름은 수련입니다.

파룬궁은 다른 기공 수련에 비해 도덕성과 인격, 덕의 수양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파룬궁의 역사

파룬궁을 이해하려면 먼저 중국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수행을 통해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세속의 유혹과 고통을 벗어나 자유를 얻기 위해 명상 수행을 통해 몸과 마음을 개선했습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한 많은 수련법이 생겨났고 대다수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오랜 세월 스승에서 제자로 조용히 계승됐습니다.

파룬궁은 이러한 계보를 잇고 있습니다. 리훙쯔 선생은 불가와 도가의 스승들을 사사해 고대 수련법을 계승했고 이를 현대인의 생활 방식에 맞춰 ‘파룬궁’으로 정리해 1992년 일반에게 공개했습니다. 따라서 파룬궁 창시인은 리훙쯔 선생이지만 파룬궁에 담긴 수련의 전통은 긴 세월을 전승해 온 것입니다.

수련자들은 파룬궁을 수련하면 우선 건강이 좋아진다고 말합니다. 심각한 질환을 극복한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파룬궁은 엄격한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건강을 증진할 부담 없는 운동법이자, 맥이 끊겼던 심신 수련의 전통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참신한 문화적 체험이기도 했습니다.

1998년, 일반에 소개되고 7년 만에 수련자 수는 정부 추산 7천만~1억 명으로 급증했습니다. 파룬궁은 중국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한 가장 대중적인 기공 수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처음에는 건강을 위해 시작했지만, 많은 수련자가 얼마 지나지 않아 파룬궁에 그 이상의 것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중국의 오래되고 좋은 것들”이라는 한 퇴직 관리의 말처럼 한때 중국에 번성했던 도가의 참됨과 강직함, 불가의 자비와 선량함, 유가의 의로움과 관용을 사람들은 기억해 내기 시작했습니다.

수련을 통해 잊혔던 옛 지혜와 미덕들을 되찾을 수 있었기에 중국 전역에서 파룬궁이 일으킨 반향은 매우 거대했습니다.

파룬궁의 가르침과 믿음


고대 중국에서는 하늘과 땅(자연), 사람이 조화를 이루면 안녕과 번영이 찾아온다고 믿었고, 사람 역시 우주가 운행하는 이치를 따르면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복되며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러한 우주의 이치, 가장 근본적 특징을 세 글자로 요약하면 쩐·싼·런, 즉 진실 선량 인내(관용)라는 게 파룬궁의 핵심적인 가르침입니다.

수련자들은 이 세 가지 원칙을 일상생활에서 지침으로 삼습니다. 매일 이 원칙에 따라 살면서 더욱 진실하고 선량하며 인내심 있는(관용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파룬궁 서적

파룬궁의 핵심 서적인 ‘전법륜’ 중국어판과 한국어판 표지.

파룬궁은 여러 권의 책이 있는 데 가장 중요한 책은 ‘전법륜’과 ‘파룬궁’입니다.

‘전법륜’은 파룬따파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책으로 리훙쯔 선생이 1992~1994년, 중국에서 한 현지 강연을 엮은 것입니다. 수련의 기원, 질병의 원인, 도덕성의 중요성 등 심오한 이치를 알기 쉬운 언어로 설명해 1996년 중국 전역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파룬궁’은 기공을 처음 접하는 사람을 위한 입문서 성격입니다.

파룬궁의 공식 서적들은 50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 출간됐습니다. 책과 동영상을 포함한 모든 교육 자료는 파룬궁 공식 홈페이지(FalunDafa.org)에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출판된 파룬궁 서적은 법원서점(FaYuanBooks.com), 한글판은 톈티북스(TiantiBooks.org)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파룬궁 소개 영상 (6분)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것의 의미

파룬궁 수련은 진실, 선량, 인내로 자신의 마음과 정신을 고상하게 하고 건강에 해로운 습관과 충동을 버리는 과정입니다. 파룬궁은 고난을 겪거나 갈등을 겪을 때 남을 탓하는 대신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습니다. 남과 맞서 싸우는 대신 인내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고 이를 통해 자신을 개선하라고 가르칩니다.

일반적인 기공 수련은 특수한 성취를 강조하지만, 파룬궁의 성취는 인격의 향상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심성(心性) 수련과 함께 에너지 흐름을 강조하는 운동법, 명상을 통해 건강을 증진하고 내면의 평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수련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깊은 통찰력을 얻어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

파룬궁에서는 사람의 본성을 선량하다고 여기며, 이런 의미에서 수련을 참된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으로 보기도 합니다.


파룬궁 동작 수련 5가지

기공 수련은 동양의 전통적인 인체 과학으로 서구에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학문입니다.

중국 전통의학을 비롯해 동양에서는 수천 년 동안 인체의 생명 에너지(기·氣)가 특정한 경로로 순환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연구해 왔습니다. 생명 에너지의 흐름을 이해하고, 그 흐름이 원활하지 않거나 막힐 경우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동양의 전통적인 치유 체계를 이루는 중요한 축입니다.

기공 수련은 같은 맥락에서 신체의 생명 에너지를 다루고 내부 순환을 개선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이 에너지를 더욱 순수하고 강력한 에너지(공·功)로 변환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기공이라는 이름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서양과는 다른 방식의 과학 체계를 거쳤기에 기공 수련은 그 움직임에서도 매우 대조적입니다. 천천히 움직이고 때로는 그대로 멈춰있기도 합니다. 파룬궁 역시 팔을 뻗었다가 거둬들이거나 멈춰 있거나 위아래로 교차하거나 천천히 둥글게 움직이는 동작 수련(4가지)과 앉아서 하는 명상 수련(1가지)으로 구성됩니다.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 선생이 미국 시카고의 한 공원에서 열린 단체 수련 행사에서 한 수련자의 동작을 바로 잡아주고 있다.

파룬궁의 효과

수련자들은 파룬궁의 효과로 활력 증진, 피로 감소, 면역력 향상, 수면 개선, 심리적 안정, 긍정적인 가치관, 가정·직장 내 관계 개선 등을 말합니다.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영적 성숙을 경험했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중국, 미국, 호주 등 여러 국가에서 시행한 임상 연구, 동료 학자 검증 논문에서도 건강 개선 효과가 제시됐습니다.

상장과 감사패

파룬궁은 세계 여러 국가와 지역에서 정부, 단체, 개인으로부터 다양한 상과 감사 인사를 받아왔습니다. 이러한 상장 중에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직장이나 지역사회에서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은 감사패도 포함됩니다.

창시인 리훙쯔 선생은 노벨 평화상 후보에 네 차례 올랐고 유럽의회가 수여하는 사하로프상 후보에도 지명됐습니다. 미국 인권단체 프리덤 하우스로부터는 국제 종교 자유상을 받았습니다.


파룬궁과 수련자들은 1999년 중국공산당의 박해가 시작되기 이전까지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을 뿐만 아니라 정부 기관과 단체, 심지어 해외 중국 대사관으로부터 환영을 받았습니다. 탄압이 장기화하면서 이러한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리훙쯔 선생은 1995년 3월 중국 대사관 초청으로 파리 강습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앞서 1993년 9월 중국 공안부 발행 신문인 ‘인민공안보’는 “중국인의 전통적인 범죄 퇴치 미덕을 장려하고 사회 질서와 안전을 지키며 사회의 정직성을 증진하는 데 기여했다”며 리훙쯔 선생에게 감사의 뜻을 밝혔습니다.

1999년 2월 미국 시사주간지 ‘US뉴스 앤 월드리포트’는 “파룬궁과 다른 기공으로 인해 1인당 연간 의료비를 1000위안 절감할 수 있다”는 중국 국가체육총국 관계자의 발언을 전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주룽지 총리도 이를 매우 기뻐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세계 속의 파룬궁

파룬궁은 중국에서 처음 일반에게 공개됐지만 오늘날 한국, 대만,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와 미국, 캐나다 등 북미와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외에도 중동과 남미, 아프리카에 걸쳐 전 세계 100개여 국에서 사람들이 수련하고 있습니다.

중국 전통문화와의 깊은 연결성에도 불구하고 파룬궁은 언어와 민족을 뛰어넘어 많은 이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특별한 도구 없이 맨손으로 시작할 수 있는 파룬궁은 아프리카의 교외 지역이나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캠퍼스에서나 모두 똑같이 수련할 수 있습니다.


파룬궁을 시작하려면

파룬궁 공식 홈페이지(falundafa.org)를 방문하세요. 동영상을 통해 파룬궁을 배울 수 있고 파룬궁 서적을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 있는 파룬궁 수련지점(주로 공원 등 야외)을 방문해, 기꺼이 가르쳐 줄 자원봉사자들을 만나는 것도 파룬궁을 시작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홈페이지에서 각국 수련지점을 찾아보세요.

온라인 강습반도 열립니다(LearnFalunDafa.org). 미국, 유럽, 아시아뿐 아니라 아프리카 지역까지 세계 어디서나 신청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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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파룬궁의 가르침과 신념은 무엇인가요?

파룬궁의 핵심은 진(真)·선(善)·인(忍)입니다. 중국어로는 쩐, 싼, 런이라고 읽습니다. 이는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이므로 수련자들은 매일의 일상생활 속에서 이에 따르려 노력합니다. 또한 태극권과 비슷한 동작 수련과 명상법으로 신체와 정신을 단련합니다.

파룬궁은 종교인가요?

파룬궁은 수련을 위해 가입해야 할 조직이 없으며 회원 자격, 등급, 비용도 없습니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비용을 들이지 않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자기 집에서 수련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수련을 신체 단련의 측면으로만 이해하지만, 고대로부터 수련은 종교와 일맥상통하는 정신적 가르침과 신념 체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숭고한 도덕성, 영적 각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종교로 분류되는 집단과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부분 서방 국가에서 파룬궁은 종교 혹은 신앙으로 간주하며 종교 및 신앙의 자유 보장 원칙에 따라 보호를 받는 신념 체계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파룬궁은 제도화된 종교가 지니는 공식적인 절차와 입문, 예배와 교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파룬궁은 정치적이지 않으며 영리적인 사업도 아닙니다. 모든 교육 자료는 인터넷에서 무료로 공개돼 있으며, 수련을 돕는 사람들은 모두 보수를 받지 않는 자원봉사자들입니다.

파룬 – 파룬따파의 상징 휘장

파룬따파는 ‘파룬(法輪)’을 상징으로 삼고 있습니다. 파룬을 간단히 풀이하면 ‘법의 수레바퀴’라는 의미입니다. 파룬 휘장에서는 도가의 음양(혹은 태극), 불가의 만(卍)자 부호를 볼 수 있습니다. 영미권에서 스와스티카(swastika)로 볼 수 있는 이 부호는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사용하기 훨씬 이전, 수천 년 전부터 여러 문화권에서 행운의 상징으로 사용돼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파룬궁은 누가 수련하나요?

파룬궁은 1992년 중국에서 처음 공개돼 널리 인기를 얻었으며 현재는 전 세계 100여 개국 이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수련하고 있습니다. 파룬궁 서적은 50개 언어로 번역됐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파룬궁을 수련하나요?

1999년 초, 중국 정부와 관영매체는 파룬궁 수련 인구를 7천만 명에서 1억 명으로 추산했습니다. 중국공산당은 이후 파룬궁을 말살하기 위해 박해를 가하기 시작했지만, 국제 인권단체들은 지금도 중국 전역에서 수천만 명이 여전히 수련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파룬궁 수련자들은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있지만 회원 가입 제도가 없어 정확한 수치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파룬궁은 누가 시작했나요?

파룬궁은 중국 창춘 출신의 기공강사 리훙쯔 선생에 의해 처음 공개됐습니다. 90년대 중반, 파룬궁의 해외 보급을 위해 미국으로 이주한 리훙쯔 선생은 노벨 평화상 후보에 네 차례 올랐으며 유럽의회에서 사하로프상 후보로 지명됐습니다. 프리덤 하우스가 수여하는 국제 종교 자유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에서 파룬궁이 금지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파룬궁은 1990년대 내내 중국 정부에 의해 널리 알려지고 공개적으로 찬사를 받았지만, 1999년에 중국공산당의 최고 권력 집단에 의해 ‘국가의 적’으로 규정됐습니다. 파룬궁의 큰 인기와 도덕적 삶, 중국 전통문화를 강조하는 요소가 중국을 공포로 통치하는 공산주의 무신론 정권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 외신은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이 시기심과 정치적 야욕으로 인해 독단으로 박해를 결정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파룬궁과 파룬따파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파룬따파와 파룬궁은 사실 같은 이름입니다. 파룬따파는 공식적인 명칭이고, 파룬궁은 공개 초기 중국에서 널리 사용된 구어체 표현입니다.

희망지성

이제 마지막 여덟 번째인 조국구(曺國舅) 신선 편을 만나보고자 한다. 팔선도를 보면서 팔선(八仙) 중에 장유(長幼)를 논하다 보면 사람들은 흔히 한상자, 남채화 혹은 하선고가 가장 젊고 나이가 적다고 생각한다. 사실 연령으로 말한다면 조국구(曺國舅)가 가장 막내에 해당한다. 조국구는 송(宋)나라 때 출생하였으므로 자연히 득도(得道)가 가장 늦었고, 전해 내려오는 기록과 전설이 가장 적다. 기록을 보면 그의 이름은 '우(友)', 자는 '경휴(景休)'이고 조후(曺后)의 동생이라고 한다. 여기서 나오는 조후(曺后)는 송나라 인종의 계후(繼后)이며, 송나라 영종과 신종 시기에 16년간 황태후와 태황태후(太皇太后)를 지낸 여인이다. 그런 연고로 흔히 습관적으로 '조태후'라고 부르며, 송나라 개국공신 조빈(曺彬)의 후예라고 한다. 

조국구 아래로는 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 이름은 조이(曺二)로 황실과 친척이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남의 전답을 빼앗고, 남의 부녀(婦女)를 간음하고, 악이란 악을 짓지 않음이 없었다고 한다. 


동생의 악행을 보다 못한 조국구는 여러 차례 동생을 타일렀으나 조이는 형의 말을 듣고 회개하기는커녕 형제간 반목하여 원수가 되었다고 한다. 

조국구 : “(탄식하면서) 아~ 선을 쌓은 자는 창성하고, 악을 쌓은 자는 멸망한다. 동생 조이는 이와 같이 온갖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보니 반드시 천벌을 받을 것이다. 때가 되면 나 또한 재앙을 모면할 수 없을 것이다. 스스로 재촉하는 종국을 생각해보니 수치스러울 뿐이구나!”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조국구는 집안의 재물을 다 털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아무런 미련도 없이 홀로 표연히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풍진을 벗어나 도문에 들어, 진력으로 수도에 전념할 뿐이었다. 

조이가 쌓은 악(惡)이 산과 같은데 어찌 가려 덮을 수 있겠는가? 세상에 비난이 쌓이면 무쇠도 녹이고, 많은 사람의 입을 막을 수 없다. 황후인 조후(曺后)가 죽고 뒤를 봐주던 사람들도 없어져 세력이 다했을 때, 세상인심은 돌변하기 마련, 동생 조이는 그간의 죄업으로 사형을 당하고 재산은 몰수되고 가족들은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멸문(滅門)이 되었다고 한다. 

조국구가 심산에 홀로 은거하면서 수행한 지 수년이 지났다. 어느 날, 두 사람의 세외 이인(異人)이 찾아왔다. 한 사람은 머리가 둥글고 이마가 넓으며 눈이 깊숙하고 입이 장방형을 한 충후(忠厚)한 장자(長者)와 같았고, 또 한 사람은 호랑이 몸채에 용의 뺨을 한 도골선풍으로 무척이나 멋스러웠다. 이 두 분이 바로 팔선 중의 종리권과 여동빈이었다. 

두 신선은 조국구가 전심으로 수도하는 것을 보고는 물었다. 

두 신선 :“도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조국구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두 신선 ;“하늘은 어디에 있는가?”

조국구는 손가락으로 가슴을 가리켰다.

두 신선이 빙그레 웃으신다.

두 신선 :“마음이 곧 하늘이고, 하늘이 곧 도이다. '도'에 대한 너의 이해는 참으로 투철하구나!”

두 신선은 조국구를 제자로 삼아 신선이 되는 수련을 지도하여 조국구도 드디어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여덟 번째 신선이 팔선에 합류하여 같이 백일비승(白日飛昇)하게 되었다. 이 신선들이 바로 세상에 회자되고 있는 철괴리, 장과로, 종리권, 여동빈, 하선고, 남채화, 한상자, 조국구, 여덟 신선은 모두 도를 이루었다. 더 없이 쾌청하고 좋은 날을 택해 드디어 승천하였다. 그 날, 원시천존, 태상노군, 요지 서왕모, 구천현녀, 기타 신선 영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옥황상제를 모시고 하늘의 조회를 갖게 되었다. 옥황상제께서 팔선을 위해 잔치를 베풀어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고 작위를 내렸다. 

작위를 내린 후, 옥황상제께서는 팔선 개개인 신선들에게 머물곳(洞府), 하나씩을 선처해 주었다. 태백금성(太白金星) 이장경(李長庚)을 특별히 파견하여 하늘의 장인들을 데리고 가서 천하의 여덟곳 명산에 머물곳(洞府)을 건축하게 하였다. 그래서 천하 명산 여덟 곳에 공중누각을 세우고 여덟 신선이 그곳에 각각 머물게 하였다. 

철괴리는 화산(華山)의 자운동(紫雲洞)에 동부를 지어 머물게 되었으며, 장과로를 위하여 무당산(武當山) 백로암(白露巖)에 궁전이 지어졌다. 남채화는 왕옥산(王屋山) 추운곡(추雲谷)에, 여동빈은 아미산(峨眉山) 견운애(견雲崖)에 머물게 되었다. 하선고는 여산(廬山) 옥실동(玉室洞)에 한상자는 숭산(嵩山) 벽운봉(碧雲峰)에 거처하게 되었으며, 종리권은 종남산(終南山) 일선천(一線天)에 조국구는 형산(衡山) 오묘봉(五妙峰)에 각각 머물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팔동(八洞 )에 거주하고 계시는 신선"인 '팔동신선(八洞神仙)이시다. 



後記, 팔선내력 


전해 내려오는 기록에 따라 팔선의 내력에 대해 소략해 보겠는 바, 장과로는 천지가 개벽할 때 한 마리 쥐였는데 공덕을 쌓아서 승화하여 박쥐(선복:仙, 박쥐 복)가 되었다가 몇 생을 거쳐 사람이 되었고 마침내 선과(仙果)를 이루었다고 한다. 

철괴리는 원래 옥황상제의 사향리(司香吏)였는데 직무를 태만히 하여 인간세상으로 떨어져 여러 생을 거쳤으나 본성이 어둡지 않아 마침내 태상노군에게 제도되어 팔선의 영수가 되었다. 

하선고는 원래 옥황상제의 사화녀(司花女)였는데 잘못을 저질러 인간으로 전생하여 현녀랑랑(玄女娘娘)이 되었다가 제도되어 신선의 반열에 올랐다. 

종리권은 태상노군의 청우동자(靑牛童子)였는데 노는데 정신이 팔려 청우가 하계로 달아나 요괴가 되었기에 벌을 받고 인간세상에 귀양왔다고 한다. 후에 동화제군(東華帝君)에게 제도되어 신선이 되었다. 한편 동화제군은 일체 범속을 제도하겠다는 뜻을 세워 선계의 영수 지위를 버리고 인간세상에 투생하였는데 전생하기 전에 종리권과 서로 스승과 제자가 되기로 약조하였다고 한다. 동화제군이 전생한 사람이 바로 여동빈이라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여동빈은 종리권에 의해 제도되어 선계에 올랐다. 

남채화는 피발대선(披髮大仙)이 전생하여 신선이 되었다고 하며 한상자는 옥황상제 전각의 비서랑(秘書郞)이었는데 전당강(錢塘江) 조수, 다스림을 소홀히 하여 그 죄로 상수(湘水)의 백학(白鶴)으로 환생하였다가 종리권과 여동빈 두 신선의 제도를 받았다고 한다. 조국구는 진한귀사(秦漢鬼師) 왕일지의 후생으로 철괴리의 제도를 받았다고 한다. 

이상 여덟 분 신선이 모두 전세의 업을 다 갚고 신선이 되어 책봉을 받고 천하 명승지 팔동(八洞)에 각기 거주하면서 이 어지러운 세상을 떠나지 않고 때때로 세상을 순행하며 권선징악(勸善懲惡)을 행하고 있다 한다. 

희망지성


팔선도(八仙圖)에서 퉁소를 불고 있거나 혹은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는 미장부가 한상자(韓湘子)이다. 이름은 상(湘), 존칭으로 이름자 뒤에 자(子)를 붙여 한상자라고 한다. 잔해 내려오는 기록으로는 자(字)는 청부(淸夫)이며 당나라 때 대문장가이며 유학자로 유명한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의 조카이다. 

한상자의 아버지 한회(韓會)는 한상자가 어린 시절부터 과분할 만큼 총명한 것을 알았다.

부친 : “이 아이는 타고난 재질이 뛰어나 장래 큰 재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훌륭한 선생을 초청해 공부시키는 게 어떨까?”

한유 : “형님, 제가 상의 스승을 수소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숙부인 한유는 결국 훌륭한 스승을 모셔 한상자에게 단독으로 학문을 전수케 하였다. 그러나 어린 한상자는 태어나면서 전생의 지혜를 가지고 있어, 어느 경서를 막론하고 한번 보기만 하면 암송하였고, 선생의 도움 없이도 그 경서의 깊고 현묘한 이치를 철저히 깨달았다. 경서 중의 어떤 부분은 선생도 해석할 수 없는 곳이 있었지만 한상자는 경전과 전고를 인용하여 그 도리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곤 하였다. 가르치는 선생조차 탄식하며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한상자가 12~13세쯤 되었을 때, 이미 4~5명의 이름난 스승을 바꾸어가면서 학문을 닦았다. 한상자가 신동이라는 소문이 원근, 수백 리에 퍼졌다. 

어떤 기록에는 한상자가 12~13세쯤 되었을 때,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때부터 한상자는 숙부인 한유와 함께 살게 되었다. 공부와는 거리가 먼 불량한 생활을 하여 숙부인 한유의 속을 무던히도 상하게 하였다. 더는 학문을 닦지 않고 술 마시기를 즐기면서 무위도식하였다고 한다.

한유 : “상아, 언제까지 허송세월로 보낼 셈이냐? 너의 타고난 능력을 무엇에 쓰려고 이러는 게냐? 이제 학문 수양에 힘써야 하지 않겠니?”

한상자 : “숙부님 더는 마음 쓰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공부하는 것은 숙부님과 같지 않습니다. 또한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밖의 공부일 따름입니다.”

이 말을 들은 한유는 화가 나서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한상자는 걸핏하면 술을 마시고 외박하는 일이 많았다. 20여 세 때에는 낙양으로 친척을 만나러 간다고 하며 집을 나갔는데 거의 20년 동안 소식이 끊겼었다. 

당나라 헌종 원화 년에 한상자는 돌연, 장안에 나타나 숙부 한유 집으로 돌아왔다. 몸에 걸친 의복은 남루하기 짝이 없고 얼굴에는 땟물이 흘렀다. 이를 본 한유는 마음이 불쾌했으나 막 집에 돌아온 한상자를 꾸짖을 수는 없었다.

한유는 한상자에게 밖에서 있었던 몇 가지 근황을 물어본 후, 집안에서 운영하고 있던 서당으로 가 글공부를 하도록 하였다. 다른 형제들이 글공부에 빠져있을 때, 한상자는 시서(詩書)를 가까이하지 않고 혼자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마치 그 형상이 나무 인형과도 같았다. 

때로는 서당을 나와 집안의 심부름꾼 아이들을 찾아 노름을 하거나 혹은 술을 마시고 크게 취하여 외양간의 풀더미 위에 누워 자기도 하였다. 한번 잠을 자면 3일에서 5일 정도 지속되었다고 한다. 때로는 갑자기 밖에서 며칠을 보내고 나타나기도 했다, 한유는 한상자가 밖에서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르지 않을까 염려하면서 시간을 내어 종종 한상자를 타일렀다. 그러나 한상자는 건성으로 예~ 예~ 하면서 얼버무릴 뿐이었다. 

한상자는 숙부인 한유 집에 기거하다가 한 번씩 사라지곤 하였다. 집에 나타나서 숙부에게 선도를 배울 것을 권했다가 노여움을 산 때도 많이 있었다. 한번은 숙부 한유의 팔순 생일잔치가 열리는 날, 한상자가 모처럼 나타났다. 한상자도 손님으로 초청된 당대의 기라성 같은 벼슬아치들과 섞여서 술을 권하면서 담화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은 한상자의 시원한 풍모와 달변에 매료되었다. 하는 얘기마다 장생(長生)의 도(道)요 늙음을 늦추는 방법 등이었다. 한상자의 언변은 도도하여 좌중을 압도하였고 생활속에서 실천을 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을 유익하게 하는 법을 전수하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당대의 잘나가는 손님들은 모두 한상자가 신선 공부를 제대로 한 진인(眞人)이라고 여겼다. 

이러한 사태를 지켜보던 유학자인 한유는 발끈하면서 나무랐다.

숙부 : “어디 내 앞에서 이러한 사설(邪說)을 늘어놓는가? 너의 구변은 현하의 달변이나, 이 자리에 참석한 어른들 면전에서 무슨 해괴한 망언이냐? 도대체 너는 요즘 밖에서 무슨 공부를 하였는가?”

한상자 : “제게 밖에서 배운 것을 물으신다면 이 자리에서 이 조카가 그 개황을 시(詩)로 지어 올리겠습니다. 숙부님 제가 읊는 시를 한번 음미해 보십시오.”

 말을 끝내며 천천히 다음과 같이 시를 낭랑하게 읊었다. 

靑山雲水隔 청산운수격       푸른 산은 구름과 물에 막혀있고 
此地是吾家 차지시오가       이 땅은 나의 집일세 
終日餐雲液 종일찬운액       종일 구름의 진액을 먹고 
淸晨啜落霞 청신철낙하       맑은 새벽에는 떨어지는 노을을 맛본다 
琴彈碧玉調 금탄벽옥조       거문고로 벽옥같은 가락을 타며 
爐煉百朱砂 노련백주사       노에서는 백주사를 단련한다 
寶鼎存金虎 보정존금호       보배 솥에는 황금 호랑이가 있고 
芝田養白鴉 지전양백아       지초밭에서는 하얀 까마귀를 기른다 
一瓢藏造化 일표장조화       표주박 하나에 조화가 감춰져 있고 
三尺斬妖邪 삼척참요사       석 자 검으로 요사한 것들을 벤다 
解造逡巡酒 해조준순주       준순주를 즉석에서 만들고 
能開頃刻花 능개경각화       능히 순간에 꽃을 피울 수 있다 
有人能學我 유인능학아       나를 따라 배우는 사람이 있다면 
共同看仙葩 공동간선파       함께 신선의 꽃송이를 볼 것이다 


이 시를 다 듣고 난 한유.

한유 : (노여워하며)“이런 미치광이 같은 말이 어디 있는가?”

손님들 : “이미 큰소리 쳤으니 반드시 무슨 재주가 있을 것이다. 조카로 하여금 기이한 재주를 한번 보이게 하여 우리가 친히 볼 기회를 주시오. 한상자가 이러한 신통을 보여 우리에게 안목을 넓힐 기회를 주려고 하는데 그대는 어찌 방해하는가?”

한유 : “그렇다면 너는 능히 술을 만들고 즉석에서 꽃을 피우게 한다고 하였으니 이 자리에서 한번 시험해 보라.”

숙부 한유의 생일잔치에 참석한 당대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은 한상자의 시(詩) 중 ‘해조준순주(解造逡巡酒), 능개경각화(能開頃刻花)’ 부분을 보더니 한번 해 보라고 하였다. 

한상자 : “(웃으면서)이것은 단지 작은 술법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대도와는 무관합니다. 삼가 명을 받들어 술을 만들어 숙부님을 축수(祝壽)하고 꽃을 피워 손님들을 즐겁게 하겠습니다. 다만 이러한 자그마한 술법이 숙부님을 현혹하게 한다면 진실로 불경할 따름입니다.”

한유 : “네가 말로만 백번을 떠들어도 소용이 없다. 어찌 빨리 해 내지 않는것이냐?”

한상자 : “이보게 마당쇠야. 빈 항아리 하나를 가져와 마당에 놓고 뚜껑을 덮어주게나.”

그리고는 손가락 세 개를 튕기면서 몇 마디 주문을 외듯, 중얼거린 후 곧 덮개를 벗기니 항아리 안에는 미주(美酒)가 가득하였다. 한상자는 우선 한유에게 한 잔 올리고, 뒤이어 그 자리에 참석한 많은 손님에게 한 잔씩 권하였다.

한상자 : “(웃으며)이 자리에 계신 대인 여러분! 빈도(貧道)가 권한 이 술은 흔히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선들이 사는 곳(仙府)의 옥액(玉液)입니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한 잔만 마시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고 평생의 고질병도 고칠 수 있습니다.”

이 말에 뭇 손님들은 서로 다투어 가면서 마셨다. 
한상자는 상석에 앉은 몇 분의 손님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한상자 : “존체에 어떠어떠한 병이 있었는데 이제 다 나았습니다.”

이때 그들 중 유(劉)모 대인이라는 손님은 심한 천식에 평생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이 술 한 잔이 뱃속으로 들어가자 곧 담이 제거되고 기가 평안해지면서 가슴속이 편안해졌다.

유모 대인 : “(큰소리로)한대인, 당신의 조카는 진실로 도를 갖춘 신선이십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한상자가 준 한잔의 선주(仙酒)로 소제의 반평생 고질병이 즉시 다 없어졌습니다. 이 어찌 신선의 묘도(妙道)가 아니란 말입니까!”

사실 한유도 워낙 나이가 많아 신체는 날로 쇠약해지고, 항상 요통과 동통이 떠나지 않았으며 귀가 잘 들리지 않고 눈이 침침하였던 터다. 이 술을 한잔 마시자 즉시 눈이 밝아지고 귀가 잘 들리며 허리뼈가 시원한 것이 전과 비교할 바 없이 편안해졌지만, 마음속으로 기뻐할 뿐이었다.

유대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한상자는 도리어 웃으면서 

“자. 그러면 꽃을 피우는 법을 보여드려 이 자리에 계신 대인들의 자리를 빛내드리겠습니다. 자리에 계신 분들은 무슨 꽃을 보고 싶으십니까?”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이미 때가 지난 다양한 꽃들을 요구했다. 

한상자 : “이러한 꽃들은 때가 지난 꽃들입니다. 짧은 시간에 어디 가서 구해오라는 것입니까?”

한유 : “내 보아하니 네가 큰소리만 쳤지, 절반은 허황한 말뿐이로구나.” 

한상자 : “(웃으면서)숙부님 너무 급하실 필요 없습니다. 오늘이 숙부님의 생일잔치이오니 조카가 어찌 힘든 일이 있더라도 사양하겠습니까? 세상에는 주문하신 꽃들이 없습니다. 다만 서왕모의 정원에 가서 빌려 오겠습니다.” 

한유 : “서왕모의 정원이 이곳에서 얼마나 멀지?”

한상자 : “만약 노정으로 말하자면 구름을 타고 가면 3 ~ 5년 걸리고, 보통사람이 걸어서 가면 2 ~ 3천 년 걸립니다. 다만 신선의 경계와 형상은 작위(作爲)가 없는 것으로 실제로는 비어있는 것과 같습니다. 신령스러운 산은 곧 영대(靈臺)에 있고 선경(仙境)은 한 마디(方寸)에 불과 합니다. 조카가 보건대 세계 밖, 세계 가운데가 눈앞에 있습니다. 서왕모의 정원도 다만 문 밖과 문 안에 있을 따름입니다.”

말을 끝내고는 뜰로 나와서 공중을 향하여 한번 외치자 어디선가 새 소리가 들려오는데 무수히 많은 흰 학(白鶴)이 날아온다.

한상자 : “(웃으면서)너무 놀라진 마십시오. 이 자리에 계신 높으신 분들께는 허황하게 들리겠지만 이 흰 학들은 제 전생의 도우(道友)들입니다. 이제 그들이 꽃을 빌리러 갈 것입니다.” 

한상자가 한 무리의 학에게 몇 마디 분부하자 공중으로 높이 날아올라 구름 속으로 사라지면서 순간 보이지 않았다.

 한상자는 자리에 앉아 손님들과 잠시 술을 마시고 있는데 밖에서 학의 울음소리가 요란했다. 모두들 정원으로 나와 고개를 들어보니 무수한 학들이 수십 종의 기화요초를 물고 온 것이 아니었던가!

한상자 : “이것은 서왕모가 빈도에게 특별히 배려해주신 덕분입니다. 제가 보낸 학들이 꽃을 가져오기에 충분치 않아 특별히 서왕모 정원의 선학(仙鶴)들이 같이 가져온 겁니다.”

말이 채 끝나지 않아 한 무리의 학이 정원에 모여들면서 땅에 내려앉자 한 마리 한 마리씩 선학이 눈썹이 빼어나고 미모가 청수한 동자들로 변하더니 가져온 꽃을 들고 대청으로 들어온다. 이 자리에 있던 손님들이 보니 각 지방의 유명한 꽃들로서 피는 계절이 각기 다른 꽃들이며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꽃들이 대부분이었다. 색깔이 화려하기 그지없고, 맑은 향기가 온 집안에 가득하니 생일잔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킬 따름이었다. 

예전에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유 : “너는 학문수련은 하지 않고 빈둥거리면서 신선도를 수련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별난 재주라도 있느냐?”

때마침 뜰에는 흰 목단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한상자 : “저는 이 꽃의 색깔을 바꿀 수 있습니다.”

한유 : “그렇다면 네가 한번 꽃의 색깔을 바꿔 보아라.” 

한상자는 품속에서 무슨 약을 꺼내더니 흰 목단꽃 뿌리 밑에 그것을 묻고는, 이렇게 말했다. 

“내년 봄에 이 한 무더기 흰 목단꽃이 다시 필 때 반드시 푸른색 꽃으로 변해 있을 것입니다. 또한 꽃의 네 면에는 다섯 가지 색깔이 서로 뒤섞여 있을 것입니다.”

한유는 내년이 되어야만 한상자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한상자의 말이 황당무계하게 발뺌하는 말이라며 의심하였다. 그 자리에서는 더 거론하지 않고 그냥 웃어넘기고 말았다. 며칠이 지난 후, 한상자는 집을 떠나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리고는 한동안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자 숙부인 한유는 한상자가 꽃의 색깔을 바꾸겠다는 그 말을 한층 더 못 믿게 되었다. 꽃이 필 때쯤, 난처하게 될 것을 우려해 몰래 달아났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때가 마침 당 헌종이 사신을 봉상에 파견해 천축국으로부터 오는 부처사리를 맞아 오게 하고 또, 장안에 사리가 도착하였을 때는 헌종이 어전 누각에 친히 올라 의식에 참관하고 일반 백성들도 경축 퍼레이드에 참가하게 하는 등 성대하기가 그지없었다. 상가를 철시하고 식음을 전폐할 정도였다. 헌종이 이렇게까지 하자 유학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이에 한유도 상소를 올려 이를 직간하다가 황제인 헌종의 노여움을 샀다. 헌종은 한유를 조주(潮州)자사로 강등시켜 당장 임지로 출발토록 하였다.

귀양길에 올라 상산(商山)에 도착했을 때 홀연 짙은 먹장구름이 사방에서 일어나더니 차가운 바람이 갑자기 몰아쳤다. 어지럽게 눈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한유는 말을 타고 눈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갔으나 가면 갈수록 눈이 많이 내려 앞길도 보이지 않고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말을 세워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인적도 인가도 끊기고 진퇴양난에 빠졌다. 이곳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가하고 생각하니 장탄식이 절로 나오던 그때, 홀연 멀리서 한 사람이 눈바람 속에서 다가왔다. 이 사람이 말 앞까지 다가왔을 때 한유는 비로소 그가 한상자임을 알았다. 한상자는 눈이 내리는 길에서 한유에게 총총히 안부를 묻고 말고삐를 붙잡아 길을 인도했다. 한유와 길벗이 되어 인근 남관(藍關)역참까지 와 함께 투숙하였다. 한유는 조카 한상자의 도움으로 추위와 굶주림을 면하게 되자 비로소 한상자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다음날 눈이 그치고 한상자는 또 한유와 길벗이 되어 함께 길을 출발해 정주까지 가서 이별을 고하였다.

한상자 : “숙부님! 저의 스승님께서 저와 함께 현호(玄扈) 의제봉(倚帝峰)에 가기위해 지금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는 더는 숙부님을 모시고 갈 수 없습니다.”

이때서야 한유는 조카 한상자가 기이한 인연을 만났다는 것을 알고 더 붙잡지 않고 즉석에서 7언 율시 아침에 구중궁궐 황제께 올린 상서 한 수 시(詩)를 지어 한상자에게 주며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하였다. 
  
一封朝奏九重天 일봉조주구중천 

夕貶潮陽路八千 석폄조양로팔천 
저녁에 조양으로 팔천리 귀양길에 올랐구나 
本爲聖朝除弊事 본위성조제폐사 
상소는 원래 조정을 위해 그릇된 일을 바로잡기 위함이었는데 
豈將衰朽惜殘年 기장쇠후석잔년 
늙고 쇠잔한 몸으로 귀양길에 올랐으니 어찌 말년이 애석하지 않은가 
雲橫秦嶺家何在 운횡진령가하재 
구름 빗긴 고갯길(진령)위에 서니 고향은 어디메뇨 
雪擁藍關馬不前 설옹남관마불전 
눈이 남관을 가로막아 말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知汝遠來應有意 지여원래응유의 
네(한상자)가 멀리서 온 뜻이 응당 있을 터이니 
好收吾骨瘴江邊 호수오골장강변 
풍토병이 있는 이곳 강가에서 (내가 죽거든)나의 뼈를 잘 수습해 다오 

한유의 귀양지에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해 봄, 집에서 보낸 편지가 조양에 닿았는데, 한유에게 기이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 내용은,

‘집 마당에 있던 그 흰 목단꽃이 금년 봄에 피었는데 그 색깔이 전부 푸른색(碧色)이며 또한 꽃의 네 면에는 다섯 가지 색깔이 섞여있습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것은 그 푸른색 목단 꽃의 매 꽃잎 위에는 모두 파리 머리만 한 작은 해서 글씨로 14자가 씌어져 있습니다. 그 14글자는 "雲橫秦嶺家何在 (운횡진령가하재) 雪擁藍關馬不前 (설옹남관마불전)"인데 새겨진 글자는 천의무봉한 서법으로 정교하여 능히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 편지를 받은 한유는 비로소 한상자가 기연을 만나 이미 신선이 되었음을 인정하였다. 만약 신선이 아니라면 어떻게 능히 금년에 지을 시(詩)를 작년에 미리 알 수 있단 말인가? 아울러 시구를 꽃잎 위에 나타낼 수 있다니! 

일설로는, 이런 일이 있고 나서 한유도 일심으로 도문에 들었다고 한다. 한상자는 한유를 인도하여 팔선의 일원인 종리권, 여동빈 두 분 스승을 만나게 했다. 두 신선께서 한유에게 전생의 일을 설명해 주었다. 한유는 높은 학식과 지혜가 있고 또한 태어나면서 도가와 선연(仙緣)이 있어, 자연스럽게 오도(悟道)했다고 한다. 수도한 지 불과 10년 만에 심성을 확철대오하였다. 후에 하남 숭산 소실산에서 득도하고 태백성군(太白星君)의 인도하에 하늘에 올라 옥황상제를 알현하고 원래의 천직(天職)을 찾았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세상에 전해지고 있는 "한상자가 문공 한유를 제도한 일장 고사"이다. 

희망지성

[SOH]

종리권은 팔선 중의 우두머리로서 순양자 여동빈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한나라때 사람으로 도복을 입고 가슴과 배를 드러내고 부채, 주로 파초선을 들고 있다.


종리권(鍾離權). 성은 종리(鍾離), 이름은 권(權), 자(字)는 운방(雲房)이다. 경조 함양(지금의 협서) 출신으로 후에 이름을 각(覺)으로 고쳐 종리각(鍾離覺)으로 바꾸었으며 자(字)도 적도(寂道)라 하였고 도호(道號)를 정양자(正陽子)라고 하였다.


원나라 시대에 전진도(全眞道)에서는 정양(正陽)조사로 받들어 모시었다. 종리권의 부친은 한(漢)나라 때 열후의 벼슬에 봉해져 중군태수(中郡太守)까지 올랐다고 한다.


종리권이 태어날 때, 산모가 거처하던 지붕 위 하늘에는 기이한 빛이 수 미터 솟구쳐, 그 모양이 작렬하는 불빛과 같아 인근 사람들은 솟구치는 화염 때문에 불이 난 것으로 오인할 정도였다.


그는 태어날 때, 두개골이 둥글고 이마가 넓고, 눈은 오목하고 코가 높았으며, 귀는 크고 두터우며 눈썹은 짙고도 길었다. 얼굴은 붉고 기골이 남달라서, 마치 세 살 정도 된 아이와 같았다고 한다. 더욱 괴상한 것은 태어난 후 며칠 동안 울지 않고 젖도 먹지 않더니, 7일째가 돼서야 비로소 침상에서 뛰어 내려오면서 외치길


종리권 : “몸은 자부(선계)에서 놀았고, 이름은 옥경(옥황상제가 계시는 곳)에 올라있다(身遊 紫府, 名書玉京)”

그 목소리가 너무 맑고 깨끗하여 마치 종을 두드리는 것과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뛰어다닐 수 있었는데 어른처럼 빨라 아이들이 쫓아갈 수 없을 정도였고, 다 큰 아이들처럼 말을 하고 밥을 먹었다고 한다.


종리권은 벼슬에 나아가, 관직이 간의(諫議)대부에 올랐다. 간관 업무를 수행하던 중 모함을 받아서 좌천되어 강남으로 귀양 간 적도 있었다.


귀양에서 돌아온 종리권은 진(晉)의 장군으로 복직했고 대장군이 되어 전군을 호령하게 되었다. 그 당시 토번이 국경을 넘어 침입해 들어와, 종리권은 군사를 거느리고 출전했다. 어느 날, 양쪽 군대가 대치하여 일진일퇴 교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고 바람이 불면서 하늘과 땅이 캄캄해졌다. 앞뒤 분간이 어려워지고 양쪽 군대 모두 더는 싸움을 할 수 없었다. 군사들은 자기 몸 가누기도 어려워 군대의 대오가 스스로 붕괴해가는 형국이 되었다.


종리권이 타고 있던 말 또한 겁을 먹고 미친 듯이 날뛰었다. 비바람이 한바탕 지나간 후, 종리권은 단기필마로 자기 혼자만 남아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꾸불꾸불한 험난한 깊은 산골이어서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종리권은 말을 몰아 산골짜기를 벗어나 자기가 지휘해온 군대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으나 그 계곡을 벗어나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하면서 빙빙 돌 뿐이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나무가 무성한 숲속이라 골짜기에는 어두움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하룻저녁 묵을 인가조차 보이지 않자, 종리권은 말을 세우고 어찌하면 좋을지 망설이고 있었다. 이때 저 멀리 산모퉁이에서 스님(胡僧) 한 분이 나타났다. 멀리서 바라보니 그 호승은 푸른 눈에 높은 코, 헝클어진 머리칼을 눈썹 부위까지 흐트러뜨리고, 몸에는 풀로 짠 옷을 걸치고 손에는 죽장을 짚고 있었다. 그 스님은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종리권 앞으로 걸어왔다.


종리권은 서둘러 말에서 내려 호승에게 물었다.


종리권 : “하룻저녁 잠을 자고 갈 만한 곳이 어디 있을런지요?”


그 말을 들은 호승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없이 종리권을 인도하여, 몇 리를 걸어가 작은 집으로 안내했다. 그제야 호승이 그 산골 집을 가리키면서 한마디 하였다.


호승 : “이곳은 동화선생이 도를 이룬(成道)곳이다. 장군은 잠시 이곳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요.”


말을 마친 후 호승은 작별 인사를 하고 제 갈 길을 가버렸다.


* 동화제군(東華帝君) : 도교의 神 이름으로 성씨는 王, 이름은 현보(玄甫)이고 한나라때 산동(山東)인이다. 백운상진(白雲上眞)을 스승으로 모셨고, 호를 화양(華陽)진인이라고 한다. 후에 신부(神符), 비법(秘法 ), 금단대도(金丹大道)를 종리권에게 전했다고 한다. 원나라때 전진도(全眞道)에서는 북 오조(北五祖)중 제1조로 받들었다.


종리권은 말에서 내려 그 집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산속의 모옥(茅屋)은 비록 크지 않았으나 깨끗하면서 아취가 있고, 속기가 없는 듯 정갈하였다. 귀를 기울였으나, 집 안은 고요하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종리권은 집안의 사람이 놀라지 않도록, 한동안 대문 밖에 서 있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흐르자, 돌연 대문 안쪽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인 : “그 괴상하고 눈 푸른 오랑캐 중은 쓸데없이 말이 너무 많아.”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대문이 열리면서 몸에 흰 사슴 털가죽 옷을 입고, 손에는 푸른색 명아주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걸어 나왔다.


밖으로 나온 그 노인은 종리권을 보자 큰소리로 물었다.


노인 : “너는 대장군 종리권이 아니냐?”


종리권 : “저는 사실 종리권입니다. 그런데 노인장께서는 어떻게 저를 알고 계십니까?”


노인 : “자자, 그러고 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와 요기라도 하게. 많이 지치고 배고픈 상태 아닌가! 여기 검은 깨로 된 밥을 먹어 보도록 하게나.”


부엌에서 종리권이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 그 노인은 옆에 앉아 눈을 조용히 아래로 드리운 채 말이 없다. 종리권은 밥을 먹으면서, 조용히 앉아 있는 노인의 형색과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노인에게는, 세상을 떠난 듯 조용하고도 엄숙한 기운이, 온몸 전체에 가득 흐르고 있었다.


종리권은 노인의 그러한 분위기에 동화된 듯, 부지불식간에, 세상에서 자신의 영화와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투었던 그 마음이, 봄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세상을 벗어나서 도(道)를 닦겠다는 마음이 구름처럼 일어났다.


종리권 : “흠흠, 저 어르신 묻고 싶은 게 있사온데 수도해서 신선이 되는 법(修道成仙之法)을 아십니까?”


노인은 종리권의 질문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음을 머금고 종리권에게 한마디 했다.


노인 : “선문(仙門)에 들기 위해서는 인연이 있어야 한다. 그대도 선도를 배우고 싶은가?”


종리권 : “仙道를 배우겠습니다. 저를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종리권은 노인에게 예를 올리고는 스승으로 모셨다.

이때부터 그 산골짜기에서 종리권은 선도 수련을 시작했다. 그 도인은 종리권에게 장생진결(長生眞訣), 금단비결(金丹秘訣), 청룡검법(靑龍劍法) 등을 일일이 전수하였다.



종리권은 산골짜기 모옥에서 지내면서 바깥세상을 잊고, 무명의 도인에게 仙道비술을 전수 받았다. 이때부터 종리권은 옛날의 속인 복장을 벗어 던지고 도복으로 갈아입었다. 머리는 빗어 올려 쌍상투를 틀었고 손에는 불진(拂塵:먼지털이)을 들고 다녔다. 바야흐로 대장군에서 도사로 변신한 것이다. 선도의 도력이 점차 높아지자 구름 따라 발길 가는 대로 천하를 노닐었다.


그렇게 발길 따라 구름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공동산에 닿았다. 산을 한 바퀴 둘러보다가 기운이 생동하고 경치가 좋은 자금사호봉(紫金四皓峰)에 머물며 신선도를 더욱 깊게 공부하게 되었다. 어느 하루 아주 우연히 신선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신선 :“자네는 나를 따라서 와라.”


신선은 어느 동굴 속으로 들어가더니 옥으로 만든 함을 주었다.


노인 :“자 이 함을 한번 열어보도록 하게나”


종리권이 뚜껑을 열어보니 속에는 신선비결(神仙秘訣)이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종리권은 이때부터 이 신선비결을 통해 선도의 깊이를 더하게 되었다.


당나라 회창 연간에 여동빈이 과거에 세 번 응시하였으나 낙방하고 실의에 차 있는 것을 종리권이 인도하여 선도를 수련케 하였다 종리권은 여동빈을 데리고 장안 서쪽 중원 오악의 하나인 화산 학정봉으로 갔다.


그곳에서 여동빈에게 선도비술을 전수하고, 여동빈의 선도가 깊이를 더하여 갈 때쯤,


종리권 : “여동빈아! 머지않아 천하 십주(十洲)의 모든 신선들이 천계에 가서 옥황상제를 배알하고, 자기가 베푼 공덕을 아뢴다. 나 또한 상제를 뵈러 가려고 하니, 너는 이 동굴에서 오래 머물지 않아도 된다. 적당한 때에 동굴을 나와 구름 따라 세상에서 노닐도록 하여라. 10년 후 너는 동정호에서 나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종리권은 붓을 들어 석벽 위에 초서로 다음과 같이 썼다.


종리권 : “주일고명(晝日高明)

          야월원청(夜月圓淸)

          음양혼신(陰陽魂神)

          혼합상승(混合上昇)


인체 가운데 혼(魂)은 陽에 속하고 백(魄)은 陰에 속한다. 네가 만약 양기를 보전하여 魂을 잘 응결시키자면 양혼(陽魂)을 음백(陰魄)과 결합해야만 음양이 능히 서로 합하게 되고, 혼백(魂魄)이 참(眞)을 이루고, 수련하여 진인(眞人)으로 된다.  앞으로 세상에 나아가서 운유할 때 너는 덕을 널리 베풀고 공덕을 많이 쌓아라. 네가 공을 이루고 원만하게 되면 너와 나는 천상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꼭 이것을 기억하라.”


잠시 후 홀연히 다섯가지 색깔로 상서로운 구름이 피어오르고 청아한 음악(仙樂)이 들리는데, 종리권이 거처하고 있는 동굴로 점차 다가왔다. 구름 속에서 선학을 탄 신선이 동굴 문 앞까지 날아서 내려왔다. 손에는 금간영부(金簡靈符)를 받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신선 :“옥황상제께서 종리권을 부르신다. 그리고 전생의 신선 직위를 회복시켜 주셨다.”


그 신선이 금간옥책(金簡玉冊)을 종리권에게 전해주니 종리권은 오색영롱한 봉황을 타고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당(唐)나라 말기 '시견오'란 사람이 종리권과 여동빈 사이에 문답한 선도(仙道)관련 내용을 모아 편찬한 "종여전도집"(鍾呂傳道集)이 오늘까지 세간에 전해지고 있다.


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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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판(拍板)은 옛날 사람들이 노래를 부를 때 박자를 맞추기 위해 두드리던 악기로, 팔선도(八仙圖)에서 석 자 길이의 긴 박자판(拍板)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이 남채화(藍采和)다.


남채화는, 원래 그의 이름이 아니며 그가 노래를 부를 때, 후렴처럼 화음을 맞추는 뜻이 없는 소리였다. 그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답답가 남채화'(踏踏歌 藍采和)라고 외치며 장단을 맞추었으므로 그 당시 사람들은 그를 남채화(藍采和)라고 불렀다.


남채화가 박자판을 두드리고 노래하며 거리를 활보할 때마다 한 무리의 남녀노소가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손뼉을 치며 웃었고 한편으로는 그와 장난을 치곤하였다. 남채화가 노래하지 않을 때는, 그에게 농담을 거는 자들에게 한 마디씩 입에서 나오는 대로 던지는 말이 풍자와 재치가 있어 사람들이 포복절도하게 했다고 한다.


남채화가 거리를 활보하면서 불렀던 노래는 매우 다양했다고 한다. 그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답답가(踏踏歌) 남채화(藍采和)'로 시작하는 노래이다.


답답가(踏踏歌)        
-  남채화(藍采和)


世界能幾何(세계능기하)               세계가 그 얼마이던가?

紅顔一春樹(홍안일춘수)               붉은 얼굴 한 그루 봄나무

流年一擲梭(유년일척사)               흐르는 세월은 한 번의 북질

古人混混去不返(고인혼혼거불반)      옛사람들은 혼돈 속에서 가고
                                돌아오지 않는데

今人紛紛來更多(금인분분래갱다)      지금 사람들 분분히 오는 이
                                       많더라

朝騎鸞鳳到碧落(조기난봉도벽락)      아침에 난새와 봉황을 타고
                                      하늘에 오르고

暮見蒼田生白波(모견창전생백파)      저녁에 바다를 보니
                            
흰 파도가 인다

長景明暉在空際(장경명휘재공제)      햇볕은 하늘가에 오래도록
                                      밝게 빛나는데

金銀宮闕高嵯峨(금은궁궐고차아)      금은궁궐은 높아 우뚝하구나


노래를 부르며 성 안을 다니다 보면 그에게 돈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남채화는 그 돈을 긴 끈에 꿰어 끌고 다녔는데 가끔 돈이 떨어져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길을 가다가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줄에 꿴 돈을 전부 다 주었다. 돈 쓸 곳이 없으면 그 돈으로 술을 사서 마셨다고 한다. 당나라 말기, 오대의 사람들은 그가 헤져서 너덜너덜한 남색 긴 장삼을 걸치고 성안과 사람들이 모이는 시장에 나타나는 것을 자주 보았다고 한다. 남색 장포를 입고 세 치나 되는 넓은 허리띠를 둘렀는데 그 허리띠를 자세히 다가가서 보면 먹으로 검게 물들인 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남채화는 한쪽 발에는 비교적 괜찮은 가죽 장화를 신었으나, 다른 쪽은 양말조차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고 한다. 또한 보통 사람들과 달랐던 점은 작열하는 무더운 여름에는 남색 장포 안에 솜을 가득 넣어 두껍게 입고 다녔으나 삭풍이 몰아치는 엄동설한에는 너덜너덜한 홑겹의 장삼을 입고 다녔는데, 더 이상한 것은 여름에는 땀을 흘리지 않았고 겨울에는 도리어 온몸에서 열기가 솟아올랐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어릴 때의 남채화를 보았고, 그들이 노인이 된 후에도 그를 보았지만, 용모는 여전히 옛날과 같았다고 하며 조금도 노쇠한 기색이 없었다고 한다.


어느 날, 남채화가 주루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 사람들 눈에 띄었다. 남채화가 술에 취해 있는데 홀연히 퉁소와 생황소리가 하늘에서 울려 퍼지며 하늘로부터 선학(仙鶴) 한 마리가 술집 창문을 통해 남채화 옆으로 날아와 앉았다.


술을 마시던 남채화는 술잔을 놓고 손뼉을 치며 큰 소리로 웃으면서 “왔구나! 왔구나!”를 두어 번 반복하고는 몸을 날려 선학의 등 위에 올라타니 선학은 길게 한번 울고는 남채화를 등에 태우고 공중으로 사라졌다. 이때부터 거리에서 "답답가 부르는 남채화"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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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선고는 팔선 중 유일한 여선(女仙)으로 팔선도에서 연꽃을 들고 있는 아름다운 궁장여인이다. 고대로부터 선고(仙姑)는 선녀 또는 여도사라고 하는 의미가 있고 선도(仙道)에서는 도고(道姑)라고 하고 민간에서는 선랑(仙娘)이라고 한다.


전해져 내려오기로 하선고는, 당나라 사람으로 광주 남해군 증성현 출신이다. 원래 이름이 하수고(何秀姑)였다고 하며 하태(何泰)의 딸로서 당나라 측천무후 시절에 출생하였다는 설이 있다. 태어날 때 자주색 구름이 집을 감싸고 흩어지지 않아, 상서로움을 더했다고 한다.


하선고의 고향 인근 산에는 운모가 많이 산출되었다고 한다. 흐르는 개울물에는 운모 조각이 뒹굴면서 물을 따라 흘러 내려왔지만, 사람들은 떠내려오는 운모 조각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선고가 14~5세 쯤 되었을 때,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신선이 나타나


신선 : “너는 운모 가루를 항상 먹도록 하라, 그러면 몸이 가벼워지고 수명도 연장될 것이다.”


하선고는 꿈속 계시를 믿어 의심치 않았고 매일 운모 가루를 복용하였으니, 그녀의 신체는 가볍기가 제비와 같았으며, 젊음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인근 사람들은 너도나도 앞다투어 운모 가루를 찾아 먹었지만, 일부 사람만이 다소 효력을 보았을 뿐, 대부분은 효력이 없었다고 한다. 운모 가루를 먹겠다는 사람이 많아져 시간이 지나자, 시냇가에서는 그 많던 운모 조각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 운모(雲母) : 운모과 광석의 총칭으로서 결정체, 색깔에 따라 성분이 다르며, 옛날 사람은 운모를 구름의 뿌리라고 하여 운모(雲母)라 이름하였다. 얇은 조각으로 잘 쪼개지며 빛을 투과하거나 거울로도 사용 가능하며 약으로도 쓴다. <도경연의본초>에는 “그 맛이 달고 평이하며 독이 없다. 몸에 사기를 제거하고, 오장을 편하게 하고 오로칠상과 허로를 다스리고 설사를 멎게 한다. 오래 복용하면 몸이 가볍고 수명을 연장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하선고가 어느덧 성장하여 시집갈 나이가 되자, 부모는 혼처를 구하면서 하선고가 결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러나 하선고는 결혼 따위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으로 멀리 외출하였을 때, 팔선 중의 철괴리(鐵拐李)와 남채화(藍采和) 두 신선을 만나 벽곡의 비결을 전수 받았다.


* 벽곡(벽穀) : 음식이나 물을 전혀 먹거나 마시지 않고 사는 것.


하선고는 아침 일찍 외출하여 밤늦게 돌아왔는데, 매번 돌아올 때마다 두 손에는 산에서 나는 큼직한 과일 한 아름을 가져왔다. 이 큼직한 산 과일은, 그 고장에서 나지 않는 과일로, 색이 곱고 신선하며 맛이 좋아 보통 과일과는 달랐다.


부모 : “애야, 이 과일은 어디서 가져왔느냐?”


하선고 : “이곳으로부터 천리 밖, 오령(五嶺)에서 따온 거예요.”


부모는, 이때서야 비로소 하선고가 근기가 높은 수행자임을 알게 되었고, 하선고는 날이 갈수록 수련의 깊이를 더해 가, 부모도 더는 하선고에게 시집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월이 흐른 후, 팔선 중에서 순양진인 여동빈을 만나 선도(仙桃)복숭아 하나를 얻어먹은 후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게 되고, 인사(人事)와 길흉화복을 훤히 알게 되니 자못 그 영험함이 대단하여 고향 사람들이 신령하다고 받들어 모셨다. 점차 하선고의 도력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당나라 측천무후도 하선고의 신통함과 기이한 행적을 듣고 관리를 파견하여 하선고를 장안으로 불렀지만, 관리 일행과 함께 장안으로 오던 중 하선고는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관리들이 백방으로 찾았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실망하여 궁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측천무후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당나라 중종 경룡(景龍) 년간에 신선 철괴리가 하선고를 인도하여 백일비승(白日飛昇)하여 신선의 반열(仙班)에 들었다. 후에 당나라, 송나라 때 하선고는 장안 승선관(昇仙觀), 강서 마고단(痲姑壇)에서 현신하였다고 한다.


여자로서 성선(成仙)한 신선이 드문 가운데 하선고는 호남과 광저우 일대에서 대부분 활동하며, 자연히 부녀(婦女)에게 전도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당광정이라는 여자는 몸에 혈질(血疾)이란 병으로 8~9명의 아이를 낳았으나 모두 요절했다. 당광정은 스스로 전세의 죄업이 무거움을 알고 남편에게 수도하겠다는 뜻을 전한 후, 집을 떠나 천릿길도 멀다 하지 않고 하선고를 찾아와 제자가 되었다.


또 송나라 때 이정신의 처가 임신을 했는데 출산일이 되었어도 아이가 나오지 못하고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선고를 청해 도움을 받게 되었다.


하선고 : “당신은 일찍이 임신한 여종 한 사람을 학대하여 죽게 한 사실이 있다. 이제 그 업보를 받고 있는 것이다.”


하선고가 법술을 써서 아이를 낳게 하였으나 세상에 나온 아이는 죽어 있었다. 아이 몸 위에는 채찍 흔적이 가득하였다고 한다.


사실 하선고의 도술이나 신선으로서 자취들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많지 않다. 또 하선고의 출신에 대한 기록도 분분하여 사실을 쉽게 구분하기도 어렵다. 하선고의 본관이 광주(廣州)가 아니고 순주(循州), 영주(永州)라는 설도 있다. 어떤 기록에는 하선고의 성이 조(趙), 이름은 하(荷)라고 적혀있다. 이름 하(荷)자(팔선도 그림 속에는 손에 연꽃을 들고 있으므로)가 잘못 와전되어 하(何)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어떤 기록에는 하선고의 이름이 이랑(二娘)이고 신발을 짜서 생업으로 삼고 스스로 수련하여 도를 얻었다고 한다. 당나라 현종 개원 연간에 사자를 파견하여 장안으로 다시 초청했다. 이 초청이 그녀를 희롱한다는 생각이 들자 장안으로 오는 도중에 사라졌다고 한다.



당나라, 송나라 연간에 여덟 신선이 모두 다 나타나지 않았을 때는 하선고는 그 팔선의 행렬에 들지 못했다. 누가 팔선에 속하는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었으나 명나라 이후가 되어서야 팔선이 정해졌다. 이때부터 여자 신선 하선고와 7명의 남성 신선들 즉 팔선에 대한 고사 전설이 부단히 더해지게 되었으며 제각기 자기 재간을 나타내게 되어 그 내용이 더욱 풍부하고 다채롭게 되었다.


한편, 현재 중국 광주 증성현(增城縣)에는 하선고의 사당이 있고, 매년 음력 3월 7일 하선고의 탄생일이 돌아오면 4만여 읍민들이 모여 기념 창극을 하고 경축행사를 올리는 것이 풍속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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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선도 그림에서 철괴리(鐵拐李)는 절름발이로 어느 시대 사람인지 명확하지 않으나 표주박과 지팡이를 들고 서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철괴리의 본명은 이현(李玄).


가장 먼저 도를 성취하여 신선이 되었기에 팔선 중에서 철괴리를 수상으로 받든다. 그러나 철괴리가 신선이 된 후, 늘 헝클어진 머리칼과 때가 낀 얼굴을 한 절름발이 거지 형상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났고, 언제나 쇠목발 하나를 짚고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은 '철괴리'(鐵拐李)라고 불렀다. 철괴리의 진짜 이름을 아는 사람은 사실 드물다.


예부터 전해져 오는 구전으로는 신선이 되기 전에 철괴리는 체구가 매우 크고 훤칠한 대장부로 글 읽는 선비였다고 한다.


철괴리는 수많은 문적을 읽어도 늘 마음 한구석이 미진하였고 부와 권력에 뜻이 없었으며 홍진 세상의 덧없음을 깊이 느끼고 현실 탈출을 모색하던 어느 날, 독서와 공부를 더 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자 학업을 중단하고 가족과 작별하고 수도하기 위해 혼자 깊은 산속으로 떠났다.  철괴리는 집을 떠난 후 맑고 깨끗한 산골짜기를 찾아 바위굴속에 머물기로 하였다. 깊은 골짜기 동굴을 찾아 풀로 자리를 만들고 돌을 쌓아 문을 만들었다. 매일 바위 동굴 속에서 마음을 맑게 하고 생각을 고요하게 하였다. 기(氣)를 마시고 신체를 단련하였다. 세상에 유전되고 있는 도장경을 보면서 단전호흡, 벽곡, 무술 등 혼자 수련할 수 있는 모든 수련법을 수년에 걸쳐 수련하였으나 아무런 진전을 느끼지 못하였다.


철괴리 : “이름난 스승(明師)의 가르침이 없고, 홀로 자신만 믿고 수련한다는 것은 마치 대나무통 구멍으로 하늘을 보는 것 같구나. 내겐 스승님이 필요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철괴리는 홀연 태상노군(太上老君) 이이(李耳: 노자)가 떠올랐다.  이이 즉 노자는 자기와 성씨가 같은 동족의 신선이며, 민간에서 구전해 내려오는 말로는 화산(華山: 중국 서쪽을 대표하는 중원 오악의 하나로 장안 동쪽 약 160km에 있음. 흔히 동 태산, 북 항산, 남 형산, 중앙 숭산을 중원오악이라 함)에 거주하고 있다고 들었다. 철괴리는 화산으로 가 찾아 뵙고, 노자를 스승으로 모시기로 결심하였다. 달빛을 머리에 이고 별빛을 받으며 밤낮으로 풍찬노숙하며 마침내 화산 입구에 닿았다. 머리를 들어 화산을 올려다보니 과연 화산은 험준하고도 높으며 그 기세와 위용이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그 수려한 경치와 빼어남이 과연 중원 오악이라 할 만하였다.


철괴리 : “우뚝 솟은 만학천봉이 구비구비 수려하고 안개구름이 산을 싸고돌면서 휘감고, 소나무와 잣나무는 더없이 푸르고, 물소리와 폭포소리는 구슬이 부딪치는 소리와 같으니, 실로 장관이로구나! 아름다운 곳이 많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노라.”


철괴리는 정처 없이 발길이 가는 대로 감상하면서 이곳저곳 기웃거렸다. 문득 이 넓은 화산 어디에서 태상노군 노자님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이 일어났다. 이때 두 동자가 앞에서 다가오면서 물었다.


동자 : “당신이 李선생입니까?”


철괴리 : “그렇다. 너희들은 어떻게 나를 아는가?”


동자 : “(웃으며)당신이 화산에 온 것은 바로 태상노군을 찾아온 것이 아닌가요? 우리는 태상노군께서 당신을 영접해 오라셔서 이렇게 모시러 왔습니다.”


철괴리 : ‘태상노군께서 나를 알아보고, 또한 사람을 보내 나를 영접하는 것을 보니 나는 노자와 크나큰 연분이 있는 사람이다.’


태상노군이 자기를 영접해 오라고 두 동자를 보낸 것을 알자 기쁘기 그지없었던 철괴리는 두 동자의 뒤를 따라 꼬불꼬불한 산길을 오르며 어딘지도 모르는 깊은 산중으로 들어갔다.  동자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이윽고 노자가 은거하여 수도하고 있는 그윽한 초당에 도착했다. 초당 안에 들어가니 노자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비록 수염과 머리칼은 하얗게 세었으나, 피부는 젊은 처녀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정신은 충만하고 넘치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와 같았다.


노자 옆에는 푸른 눈에 눈썹이 빼어나게 가지런한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노자 : “이 분은 팽조의 스승이신 완구 선생이시라네. 예를 갖추시게나.”


여기에서 잠시 팽조와 완구선생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팽조(彭祖) : 고대선인, 전설에 따르면 성(姓)은 전(錢)이고 본명(本名)은 갱(鏗)이다. 열선전에 의하면 ‘5제 중의 한 분인 전욱의 현손이고 육종씨(陸終氏)의 가운데 아들이며, 하나라로부터 은나라 말까지 약 800여세를 생존, 항상 계지(桂芝)를 먹고, 도인행기(導引行氣)를 잘했다고 하며, 민간에서는 방중술과 관련 소녀경에 등장’하고 있다.


완구(宛九)선생 : 고대선인, 洞仙傳에 완구선생은 제명환(制命丸)을 먹고 득도했다고 하며, 은나라 말년에 그의 나이는 이미 천 여세였다. 그는 비술을 제자인 강약춘 등에게 전했는데, 선약을 복용 후 삼백 년이나 살았는데 마치 15세 동자와 같았다고 한다. 팽조도 일찍이 완구선생을 사부로 모시고 수도하였다.


철괴리 : “저, 이 현. 두 분 스승님께 절을 올립니다. 대도의 요결에 대해 가르침을 청하옵니다.”


노자와 완구선생은 대도요결에 대해 한바탕 강의를 하고 나선 이 현에게 되돌아가 지금 가르쳐준 법에 따라 열심히 수련하라고 당부했다.


화산에서 돌아와 두 신선의 가르침에 따라 수련을 하면서 하나하나 몸소 자세히 체득해 나갔다. 지난번보다 힘써 공부하면서 더욱 부지런히 수련하였는데 점차 음신(陰神)이 마음대로 육체를 떠났다가 되돌아오는 경지까지 수련되었다. 오래 수련해 나가다보니 이 현의 도가 높고 깊은 경지까지 갔다는 소문이 원근에 점차 알려지게 되었다. 이때 양자(楊子)라는 젊은이가 찾아왔다.


양자 : “스승님으로 모시고 도를 배우고자 합니다.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철괴리 :“그대를 보아하니 도를 향한 마음이 가상하고 자질도 괜찮아 보여 내 제자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어느 하루 산 위를 산보하고 있는데 홀연히 상서로운 구름이 멀리서 피어올랐다. 노을빛 같은 연하가 빙빙 돌면서 올라오는데, 공중에서 두 사람이 학을 타고 오고 있었다. 가까이 가 살펴보니, 학 위에 탄 두 사람은 바로 태상노군과 완구선생이었다. 이 현은 황망히 앞으로 나아가 절하면서 두 신선을 영접하였다. 이곳까지 찾아온 두 스승을 보자, 그 기쁨과 반가움을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노자 : “나는 곧 서역 여러 나라를 유람하고자 하니, 너도 함께 가자꾸나. 10일 후에 육신은 여기 두고 혼만 빠져나와 내가 있는 화산으로 오너라. 잊지 말고 약속을 지키도록 해라.”


말을 마치자 노자는 완구선생과 함께 학을 타고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철괴리 : “스승님과 약속한 10일이 되었다. 나의 혼이 육체를 떠나 태상노군을 만나러 멀리 화산으로 간다. 육신을 이곳에 남겨두고 가니, 네가 잘 지키도록 하라. 만약 나의 혼이 7일이 지난 후에도 돌아오지 않으면 너는 나의 육신을 화장해 버리도록 하라.”


스승이 가부좌하고 혼이 육신을 떠나자 제자 양자는 스승의 명령대로 스승의 육신 옆에서 호법하였다. 양자는 이 현의 육신 곁을 떠나지 않고 조심해서 잘 지켰다. 스승의 혼이 돌아오기 하루 전인 6일째 되던 날, 느닷없이 양자의 친척이 말을 몰고 찾아왔다.


친척 : “양자야, 너의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 목숨이 경각에 달렸구나. 네 어머니 임종을 지키고 마지막 살아계신 모습을 보자면 지금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양자는 이 급보를 듣고 상심하여 눈앞이 캄캄해지고 눈물이 쏟아졌다.


양자 : ‘이곳에서 스승의 육신을 지켜야 하고, 어머님이 위독하시다는데 집으로 가지 않을 수도 없고,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친척 : "어서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는데 뭘 그리 망설이고 있는 게냐?"


양자 : "내 스승님의 혼이 육신을 떠난 지 6일째다.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는데 만약 내가 이곳을 떠난다면 누가 스승님을 호법할 것인가?"


친척 :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 하물며 너의 스승은 죽은 지 이미 6일이나 되었으니 신체 안의 내장은 벌써 부패하였을 것이다. 어떻게 떠나간 혼이 되돌아 올 수 있단 말이지? 도대체 정신이 어떻게 된 게 아니냐? 스승이 아무리 중하다 한들, 너를 낳고 길러주신 모친보다 더 중하단 말이더냐? 만약 너의 모친이 너를 보지 못하면 한을 품고 죽을 것이다. 그러면 아마 너도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빨리 이 자리에서 결단을 내려라. 네 스승의 육신을 화장해 버리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자."


말을 마치자 다짜고짜 육신을 화장하기 위해 마른 나뭇가지를 옮겨오기 시작했다. 양자는 모친의 병이 중병이라는 소식에 마음이 혼란스러워 제대로 판단이 서지 않았다.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어찌할 도리 없이, 친척과 함께 스승의 육신을 화장하기 위해 움직였다. 양자는 스승의 육신 위에 마른 장작을 가득 쌓아 초라한 제물을 차려놓고 곡을 한바탕 한 후, 두 번 절하고 제사를 올렸다. 제사를 마친 후 마른장작에 불을 붙이고 스승의 육신이 타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대성통곡을 한 후 친척과 함께 그곳을 떠났다.


한편, 이 현의 혼은 화산으로 가서 노자를 만났다. 스승을 따라, 서쪽으로 천축국 여러 나라를 두루 둘러보았다. 또 봉래, 방장산을 지나 36 동천복지를 유람하고 화산으로 돌아왔다. 태상노군께 작별인사를 하는데, 노군께서 빙그레 웃으면서, 이 현에게 작별 시 하나를 선사한다.


벽곡불벽맥   辟穀不辟麥  
거경로역숙   車輕路亦熟  
욕득구형해   欲得舊形骸  
정봉신면목   正逢新面目
  

곡식을 먹지 않았다고 하나 보리마저 피한 게 아니고
수레는 가볍고 길은 또한 익숙하구나
옛날 모습을 찾으려 하는데
정작 새로운 얼굴을 만나리라


이 현은 노군께서 하사한 시를 그 뜻도 모른 채, 한번 읽어보곤 곧 제자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제자가 있는 곳으로 왔으나 정작 자기의 육신은 보이지 않고 제자 양자도 어디 갔는지 없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니 무엇을 불태운 듯한, 괴괴한 정적만 흐를 뿐이었다. 비로소 자기의 신체가 화장된 것을 알았다.  이것이 어찌 된 일일까? 주저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근처 산등성이에 거지 시체가 한 구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거지의 시체를 보자 태상노군께서 하사하신 시구절이 갑자기 떠올랐다.


철괴리 : "옛날 모습을 찾으려 하는데 정작 새로운 얼굴을 만난다.

           아아~ 이것이 나의 새로운 얼굴이구나."


갈 곳 없던 그의 혼이 거지의 육체 속으로 들어가고, 이때부터 이 현은 헝클어진 머리카락, 때에 찌든 얼굴, 드러낸 배에 다리를 절뚝거리는 모양이 되었다.


그 후 이 현은 수련에 매진, 원만하여 학을 타고 등선한 신선이 되었다. 이미 변화의 술법을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었으나 더는 자신의 모습을 고치지 않았다. 항상 쇠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다녔다.

이때부터 철괴리(鐵拐李: 쇠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이씨라는 의미)라 불렸으며 후세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희망지성

[SOH]

그 당시 장안에는 ‘야광안(夜光眼 )’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신선 요괴 등 온갖 것을 다 볼 수 있었다. 현종은 장과로가 곁에 있을 때 그 야광안을 불러 장과로의 내력을 보게 하였다. 그 야광안이 정전 안으로 들어와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망연한 듯 현종에게 물었다.

야광인 : “황상폐하! 제가 보고자 하는 장과로는 어디 있습니까?”


장과로는 현종 옆에 줄곧 앉아 있었고 한 번도 몸을 움직인 적이 없었다. 그 야광안은 근본적으로 장과로를 볼 수 없었고 하물며 장과로의 내력을 알아낸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였다.


또 그 당시 사람의 운명을 정확하게 맞추는 점술에 달통한 형화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형화박은 다른 사람의 운명을 볼 때 그 사람의 성명, 본적도 필요 없이 단지 점치는 산가지 몇 개를 벌려 놓기만 하면 곧 그 사람의 성명, 내력, 선악, 수요, 화복, 길흉 등을 분명하게 추산하였다.


형화박이 수천 명의 운명을 점쳤는데 정확하고 빠짐이 없었으며 영험하기가 신과 같았다. 현종은 진작부터 형화박의 신기한 점술을 알고, 그를 불러 장과로의 운명을 점쳐보게 하였다. 불려온 형화박은 탁자 위에 점치는 산가지를 벌려놓았다. 한동안 점을 쳐보았으나 점을 치면 칠수록 기가 꺾였다. 형화박은 장과로의 나이조차도 점쳐내지 못하였는데 기타 장과로의 다른 것에 대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위 두 가지 일로 현종은 장과로가 더욱 고심막측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다 어느 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주변을 따르는 태감 고역사를 바라보면서 탄식하였다.


현종 : “수련해서 이미 신선이 된 사람은 추위와 더위가 그 신체를 침범하지 못하고, 바깥 물건이 그 몸을 범할 수 없다고 들었다. 지금 장과로, 이 사람은 점술가도 그 나이를 알 수 없고, 귀신 보는 사람도 그 진상을 볼 수 없으니 진짜 신선이란 말인가?”


“신선이 과연 현실에 있을까? 혹시 가짜가 아닌가? 내가 듣기에는 술에 짐새 독을 넣고 고기를 오랑캐꽃에 삶아서 보통 사람이 먹으면 즉사한다는데, 신선만이 그것을 먹어도 죽지 않고 무사하다고 한다. 장과로에게 짐새 독주와 오랑캐꽃에 삶은 고기를 먹게 하여 죽는지 사는지 시험해 보아 신선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자.”


고역사 : “영명하십니다. 황제폐하. 그 방법이 또한 극히 묘합니다.”


때마침 하늘에서 큰 눈이 내렸고, 날씨는 매우 추웠다. 현종은 혹독한 추위를 몰아낸다는 구실로 장과로에게 짐새 독주와 오랑캐꽃으로 삶은 고기를 내렸다.


장과로는 술과 고기를 받자 그 자리에서 먹었다. 독 술을 단번에 석 잔을 마시자 온몸이 훈훈하고 얼굴에는 취기가 올랐다.


장과로 : “이 술은 그 맛이 좋지 않다. 침상에 누워 잠이나 자야겠구나.”


잠에서 깨어나자 장과로는 홀연 몸을 벌떡 일으켜 거울을 가져오게 하여 자기의 이를 보니 하얗던 치아가 언제인지 모르게 이미 새까맣게 변했다. 장과로는 곧 시종에게 쇠로 된 집게를 가져오게 하여 이를 하나하나 두드린 후 천천히 그 이들을 전부 빼버렸다. 그리고 품속에서 빛나고 투명한 붉은빛 가루약을 꺼내 바른 후 장과로는 다시 침상 위에 누워서 오랫동안 잠을 잤다. 이윽고 잠에서 깨어나서 장과로가 거울을 보니 치아가 다시 자라서 입안 가득하였다. 새로 자라난 그 이는 이전의 이보다 더욱 하얗게 빛났다.


현종은 장과로가 짐새 독주와 고기를 먹고도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말을 듣고 기쁨과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말했다.


현종 : “보아하니 장과로 선생은 신선임이 분명하구나! 이에 내 직접 조서를 내리노라. 항주에 사는 장과로 선생은 방외 지사이다. 행위는 고상하고, 지식은 깊고도 현묘하다. 세상을 피해 은거한 지 오래인데 조정에서 불러 장안에 왔다. 그 나이를 아는 사람이 없고, 단지 오랜 세월을 누렸음을 추측할 뿐이다. 황제가 道를 물으면 그 지극한 이치까지 대답하였다. 장과로 선생에게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관직과 아울러 통현(通玄)선생이라는 호를 내린다.”


어느 날 현종이 함양으로 사냥을 나가서 보통 사슴보다 훨씬 큰 사슴 한 마리를 사로잡았다. 궁궐로 돌아와 그 사슴을 잡아서 요리하려고 하는데 마침 장과로가 그것을 보았다.


장과로 : “이 사슴은 선록(仙鹿)이고, 그 수명이 이미 천년이 넘었습니다. 한(漢)나라 원수 5년(기원전 118년)에 제가 한무제와 함께 상림원에서 사냥하던 중, 산 채로 잡았다가 놓아주었던 바로 그 사슴입니다.”


현종 : “산과 들에는 사슴이 많다. 한무제와 그대가 놓아준 그 사슴이라면 한나라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천년인데 아마 다른 사냥꾼들에게 붙잡혔을 것이다. 그대는 어떻게 이 사슴이 한무제가 잡은 사슴임을 아는가?”


장과로 : “한무제는 이 사슴을 놓아줄 때 왼쪽 뿔 밑에 동으로 만든 패찰 하나를 붙여놓았습니다. 그것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현종 : “과연 사슴의 왼쪽 뿔 밑 부분에 패찰 하나가 붙어있구나. 그 위에 새겨진 문자는 오랜 세월이 흘러 녹이 슬었고 분명하지 않다. 이 사슴을 생포했을 때가 간지(干支)로 어느 해이고 지금으로부터 얼마나 흘렀는가?”


장과로 : “바로 계해(癸亥)년, 한무제가 곤명지(昆明池)를 열었던 그 해입니다. 지금은 갑술(甲戌)년이니까, 이미 825년이 지났습니다.”


현종은 역사를 관장하는 태사(太史)에 명해 역서를 대조해 보게 하였는데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그 때서야 현종은 장과로의 말이 허튼소리가 아님을 알았다.



현종 때 장과로 이외에 정통한 법술을 갖춘 엽법선(葉法善)이라는 도사가 있었다.


현종 : “장과로의 내력이 불분명하고 궁금하다. 그대는 장과로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알고 있는가?”


엽법선 : “신이 알기는 하오나 만약 장과로의 내력을 말한다면 그 말을 끝내자마자 곧 죽게 됩니다. 그래서 감히 입을 열 수 없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제가 죽은 후, 황제의 모자를 벗고 맨발로 장과로에게 가서 살려달라고 하신다면 저는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종 : “내 그리하겠다.”


엽법선 : “장과로는 천지가 처음 나누어질 때 태어난 흰 박쥐의 정령입니다!”


말을 끝내자마자 과연 엽법선은 일곱 군데에서 피를 흘리며, 땅에 고꾸라져 죽었다. 현종은 곧바로 황제의 모자를 벗고 맨발로 장과로의 처소로 찾아가서 사죄하였다.


현종 : “모든 것은 나의 잘못이니 엽법선을 살려주시게.”


장과로 : “이 어린아이는 뽐내면서 천기를 누설하였습니다. 만약 엄하게 벌하지 않으면 큰 일을 망칠까 두렵습니다.”


현종이 여러차례 간곡하게 청하니, 장과로가 맑은 물을 한입 물고 엽법선의 얼굴에 뿜자, 그때서야 엽법선은 정신을 차리고 살아났다.


궁궐에 머물던 장과로는 스스로 나이가 많고 병을 핑계대면서 여러 차례 항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였다. 현종이 말려도 어쩔 수 없자 현종은 비단 백 필을 하사하고 가마와 시종 두 명을 딸려 보냈다. 항주에 도착한 후 시종 한 명은 장안으로 가고 나머지 한 명은 장과로를 따라 입산했다. 천보(天寶) 초(742년) 현종이 다시 사자를 보내 장과로를 조정에 나오게 하였으나 장과로는 그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제자가 장과로의 장례를 중조산에서 치르고, 현종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였다. 현종은 믿을 수 없어서 사람을 시켜 장과로의 무덤을 파게 했는데, 관은 비어있었다. 현종은 장과로 무덤자리에 ‘서하관’(棲霞觀)이란 도관을 세우고 장과로에게 제를 올리도록 하였다.


후세 사람들은 장과로가 나귀를 거꾸로 타고 가는 그림 위에 다음과 같이 詩를 썼다.


擧出多少人   거출다소인  
많은 사람을 들어보아도

無如這老漢   무여저노한  
이 늙은이 같은 이 없네.

不是倒騎驢   불시도기려   나귀를 거꾸로 탄 게 아니라

萬事回頭看   만사회두간  
모든 일을 되돌아보기 위해서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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