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금궁(金弓)
백골정(屍魔)이 당승(唐僧)을 3번 희롱한 후 당승은 또 마음원숭이(心猿)를 쫓아낸다. 첫째는 그의 선심(善心)이 순수하지 못해 시비를 분별하지 못했고 그의 운명 중에 이 난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며 둘째는 색심을 제거하지 못한 팔계가 질투심으로 옆에서 바람을 넣었기 때문이다. 셋째는 오공은 이 겁난을 통해 오만방자한 마음을 없애야 했기 때문이다.
수련의 길에서 수련인(오공)이 이렇게 큰 굴욕을 당했는데 분명히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악을 없애고 선(善)을 널리 알렸음에도 오히려 이렇게 불공평한 대접을 받고도 여전히 수련하려는 마음이 확고부동해 남을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않으며 자신을 연마할 수 있는가? 오공은 비록 당승에게 끝내 쫓겨나긴 했지만 마음속에 수련하려는 마음이 남아 있었고 이후 다시 서천으로 갈 길을 준비했다. 또 마침 화과산 옛집이 겁난을 당해 나쁜 사냥꾼들을 소탕하고 옛 땅을 다시 회복했는데 생각해보면 이 역시 하늘이 정한 운명이었다.
그 후 당승이 흑송령(黑松嶺)에서 난을 당하자 여러 사람들이 속수무책이었다. 용마(龍馬)는 팔계더러 다시 오공을 찾아가 당승을 구해줄 것을 요청하게 했다. 팔계를 만난 오공은 지난 허물을 탓하지 않고 교만하고 오만한 마음을 거둬들였다. 오공이 이 심성관을 넘고 현장 역시 한차례 고생을 겪고 나서 최종적으로 이 관을 넘어섰다.
또 당승이 서천으로 경을 얻으러 떠나기 전 여러 승려들이 노정의 험악함을 들며 저지하려 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마음이 생기면 각종 마가 생겨나고 마음이 멸하면 각종 마가 사라진다(心生,種種魔生,心滅,種種魔滅)”
이를 통해 본다면 당승은 불경(佛經)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 여정에 오르고 관문마다 마를 만나 성명(性命)이 위험에 처할 때면 속인 마음이 남김없이 폭로되어 나왔다. 이렇게 보자면 수련이란 다만 이론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반드시 착실한 수련 중에서 진정으로 이런 마음을 닦아내야 한다. 다행히 오공이 여러 차례 그를 점화해주고 보호해주며 그 뜻을 격려했기 때문에 일부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 후 오계국(烏雞國)에서 요괴군주의 항복을 받고 진짜 군주를 다시 세울 때 본문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요괴가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 역시 인연관계가 없다면 허용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이 임금이 수년 전 문수보살의 화신인 승려를 사흘간 물속에 가두어두었기 때문에 이번에 3년간 우물 속에 잠기는 재앙을 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 공평했으니 비록 임금을 징벌하고 사자요괴로 하여금 그의 지위를 3년간 차지하게 했지만 기후가 순조로워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했다. 심지어 비빈들도 모두 손가락 하나 더럽히지 않았으며 인륜을 파괴하지 않았다.
한번은 당승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집착심을 드러내자 손오공은 즉각 “공을 들여야 자연히 성공한다(功到自然成)”는 이치를 점오해준다. 비록 과거 관음의 화신이 동토에 와서 취경인을 찾을 때 2~3년이면 서방정토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어쩌면 이 말 자체가 취경인에 대한 고험일지 모른다. 원만의 시간에 대한 집착이 있는 것은 아닌가? 지름길을 찾으려는 것은 아닌가?
수련 과정은 바로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니 마음을 빨리 제거하면 원만도 그만큼 빨라지고 마음을 제거함이 느리면 원만 역시 느려져 기약할 수 없는 법이다. 때문에 인위적으로 빨리 진경(眞經)을 얻으려 생각한다면 이는 헛수고로 심성수련은 조금이라도 대충할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만약 당승 일행이 정말로 집착심을 내려놓기 시작하고 굳은 결심으로 서천으로 떠났다면 그럼 아마 2~3년만에 도달할 수 있었을런지 모른다.
그 후 수많은 관(關)과 난(難)은 직접적으로 취경인을 겨냥해 온 것만은 아니었다. 때로는 백성들이 난을 당하거나 때로는 승려들이 집단으로 겁난을 당했다. 이런 것을 보고 수련인으로서 수수방관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필경 인명(人命)은 하늘에 달린 것이라 이들이 만약 상관하지 않고 곧장 서천으로 갔다면 어쩌면 이에 해당하는 심성관을 넘지 못했을 것이다.
당승이 또 다시 마음원숭이를 추방했는데 이번은 가장 심각하고 마지막 한차례였다. 오공이 악을 미워해 한 무리 강도들을 때려죽이자 당승은 끊임없이 긴고주를 외워 오공이 또 다시 달아나게 했다. 오공이 관음보살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자 보살은 공정하고 바른 말로 살생이 죄악이 됨을 설명했다. 하지만 오공은 이번에 수련을 중단할 마음이 일어나 화과산으로 돌아가 속인이 되려고 했다.
서유기에서 비록 이 상황에 대한 언급이 많지는 않고 평론도 아주 적지만 수련하려 하지 않으려는 이 마음은 사실 가장 엄중하고 마땅히 존재하지 말아야 할 수련인의 큰 금기다. 일단 정말로 이런 마음이 생겨나면 곧 사문을 배반하는 큰 죄를 짓게 되는데 어쩌면 영원히 더 이상 수련할 수 없는 엄중한 후과를 낳았을 것이다. 오공은 다행히 정말 물러나지 않았지만 이 때문에 치른 대가는 몹시 컸다. 바로 육이미후(六耳獼猴)가 가짜 손오공으로 변장해 천지를 암흑으로 만든 것이다. 사실 표면공간에서의 표현은 바로 견정하게 수련하려는 불심(佛心)과 수련을 포기하려는 마심(魔心) 사이의 격렬한 투쟁이었다. 최후에 여래불에 의해 이 난이 겨우 해소되었다. 이를 통해 이런 마음이 생기면 얼마나 큰 난을 조성할 수 있는지 볼 수 있다.
화염산(火焰山) 단락은 묘사가 아주 굉장해서 마치 서천으로 가는 길이 가로막힌 것 같다. 다시 말해 사도 4인이 수련하려 생각한다면 반드시 이 관을 넘어야 했다. 오공은 파초선을 얻게 되자 환희심이 생겨나 속임수에 넘어갔다. 이 마음을 닦아 없앤 후에야 비로소 우마왕(牛魔王)에게서 파초선을 회수해 화(火)의 근원을 끊어버리고 청정심을 얻게 된다.
한편 금선자(金蟬子)는 본래 불법(佛法)을 태만히 여긴 죄로 쫓겨났기 때문에 미혹 중에서 수련할 때도 여전히 깨달음이 있었고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모든 절에서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만나게 되는 모든 탑을 청소하려는 소원을 발했다. 즉 처음 시작부터 경불(敬佛)하고 경법(敬法)하려는 마음이 아주 순정하고 확고했던 것이다.
나중에 목선암(木仙庵)에서 시를 담론하는 난을 만난 것은 사실 당승이 안일함을 구하는 마음을 제거하지 않아 초래된 것이다. 당승은 여러 나무요정들과 시를 담론하면서 즐거움을 찾아 즐기려는 속인의 마음에 빠져 있었고 또 여러 요괴들이 떠받드는 가운데 더욱 의기양양해져서 그의 원양을 파괴하려는 살구요정을 불러왔다. 다행히 색심(色心)을 제거하려는 의지가 아주 확고했기 때문에 마치 꿈에서 깨어나듯 비로소 이 난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속인이 안일을 구하는 마음은 수련인이 원만을 구하는 마음으로 연장되어 나중에 소뇌음사(小雷音寺)에서 큰 곤경에 처하게 된다.
불타(佛陀)가 다섯 사람을 위해 안배한 난은 매번 심성을 제고한 후에야 넘을 수 있었고 다섯 사람의 목적지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당승의 두려운 마음은 매 차례 요마에게 묶였다 풀려난 후 점차 줄어들었고 목적지에 가까워진 몇 회에서는 요마가 당승의 고기를 먹으려고 조성한 난이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나중에 오공 등이 도제를 거두고 남의 ‘스승(師)’이 되려다가 ‘사자(獅, 師와 발음이 같다)’요괴를 초래했으니 남의 스승이 되려는 것이 얼마나 큰 저애인지 알 수 있다.
물론 원인은 역시 오공 등이 병기(兵器)와 떨어진 것은 법(法)에서 떨어진 것에 해당하기 때문에 사자요괴가 병기를 훔쳐가게 한 것이다. 수련인은 시시각각 법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번거로운 일이 생김을 알 수 있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36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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