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금궁(金弓)
들어가는 말
《서유기》는 사람들에게 중국 고대 4대 명작의 하나로 줄곧 불려왔으며, 생동감 있는 언어와 스릴 넘치는 이야기들은 후인들에게 판타지소설의 집대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필자는 어려서부터 《서유기》 줄거리에 빠져 지냈고 흥미로운 곳을 볼 때면 손에서 책을 내려놓지 못할 정도로 애호해왔다. 이제 파룬따파 수련인이 되어 다시 이 책을 읽어보니 마음속으로 더욱 흥미진진함을 느끼지만 전에 속인이었을 때 깨달을 수 없었던 수많은 진정한 현기(玄機)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많은 동수들이 이미 이 책에 대한 독특한 견해들을 발표했는데 읽어본 후 본인 역시 적지 않은 수익을 얻었다. 먼저 시험 삼아 본서에 대해 몇 가지 내용을 자세히 분석해보았으니 독자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기왕에 대법 수련인이 되었으니 법(法) 속에서 느끼고 깨닫는 것이 자못 많다. 소위 정사(正史) 속에 묘사된 현장법사라는 인물과 그 행적은 언급하지 말고 전적으로 《서유기》에 묘사된 내용만을 말해보고자 한다. 수련인으로서 우리는 모두 다른 공간의 존재와 아울러 다른 공간의 생명도 그의 수련방식이 있음을 알고 있다. 본인은 이 책에서 서술한 내용이 바로 다른 공간 속에서 현장법사의 수련과정이라고 본다.
개막편에서는 소우주(小宇宙)의 내원 및 더 큰 공간의 우주구조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면서 천하의 4대 부주에 대해 명확히 서술하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돌원숭이는 바로 동승신주 중에서 10주의 주맥인 화과산(花果山) 중의 한 선석(仙石)에서 양육되고 생성되었다. 즉 나중에 여래가 말한 것처럼 영명(靈明)한 돌원숭이다. 다시 말해 돌원숭이는 천지가 화육하고 생성한 신령한 태(胎)로 자연히 태어나면서부터 우주특성에 부합했으니, 다시 말해 근기가 아주 높았다.
또 자신의 몸을 희생해 솔선해서 수렴동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여러 원숭이들의 왕이 되는 것을 보면 그가 평범한 부류와는 다름을 알 수 있다. 나중에 삼백년에서 오백년의 향락을 누린 후 미후왕(美猴王)이 자연스레 생명의 무상을 느끼는 것은 그의 오성이 높음을 더 명확히 보여준다. 그는 긴팔원숭이가 알려준 것에 따라 왕위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향락도 탐하지 않고 의연히 결심을 내려 멀리 바다를 건너 도를 구하러 간다. 산 넘고 물을 건너 마침내 서우하주(西牛賀洲)에서 수보리(須菩提)조사를 찾아 이름과 휘를 얻고 진정한 스승으로 모신다.
비록 책 전체는 물론이고 다른 도가 자료를 다 뒤져봐도 수보리 조사가 어떤 인물인지는 찾아낼 수 없다. 조사가 돌원숭이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을 보면 그가 과거 현재 미래를 통찰하는 능력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조사는 도가의 진선(眞仙)이지만 오히려 돌원숭이에게 불가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오공(悟空)’이란 이름을 지어주는데 마치 돌원숭이가 최종적으로 불가에서 정과(正果)를 얻게 됨을 암시하는 것 같다.
나중에 오공이 입문한지 6~7년이 될 때까지 조사는 예의범절과 노동만을 알려줄 뿐 수련에 대해서는 단 한글자도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공은 이런 현상을 편안히 여기고 근면하고 간절하게 마음을 비우고 조금이라도 섭섭해 하거나 다투는 마음이 없었다. 아마도 조사는 그의 근기가 심후하고 심성이 높은 것을 보았을 것이다. 오공은 나중에 조사가 단에 올라가 도를 설법할 때 오성이 총명함을 분명히 보여준다. 가령 조사가 ‘술(術)’ ‘류(流)’ ‘정(靜)’ ‘동(動)’ 네 가지 세간소도(世間小道)로 그의 마음을 시험해보지만 오공은 전일하게 수련하려는 마음을 드러낸다. 때문에 조사는 그에게 비밀리에 진리를 전해주고 그를 자신의 진전제자(真傳弟子)로 삼는다.
아마도 조사는 본래 천지를 두루 통하는 신통을 지녔기 때문에 이미 오공이 장래 큰 재앙에 빠져 하늘에 사무치는 큰 죄를 지을 것을 알았을 것이다. 오공이 어느 정도 신통이 나올 정도로 수련한 후 과시심을 드러낸 것을 구실로 삼아 사문에서 축출하면서 그 누구에게도 스승의 이름을 발설하지 못하게 했다. 생각해보면 이는 오공이 영명한 돌원숭이의 천성적인 근기와 심성 때문에 비로소 이런 신통을 수련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마 연분이나 타고난 숙명 또는 대도(大道) 수련의 현기를 사람들에게 쉽사리 드러낼 수 없었기 때문에 오공은 도가수련 중에서는 진정으로 심성을 수련하지 못했고 이후 재앙을 묻어둔다.
오공이 고향에 돌아온 후 즉각 마를 제거하는 일을 만나지만 타고난 심성의 한계 때문에 꽤 많은 공능은 지녔지만 조사와 한 약속에서 멀어졌고, 심성이 점차 떨어져 내려왔다. 소술(小術)인 공능을 이용해 오래국에서 무기를 훔치고 동해 용궁에 들어가 신철(神鐵 여의봉)을 강제로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또 남의 옷과 신발을 강탈했으니 이는 세간에서도 범죄가 된다.
오공은 또 72가지 변화술로 하늘의 겁난(天劫)을 피하고 장생(長生)을 얻었지만 이런 소능소술로는 정과(正果)를 얻을 수 없음을 몰랐다. 언젠가는 윤회로 떨어지기 마련이라 이 때문에 염라왕에게 혼이 끌려가게 된다. 이에 야성이 크게 폭발한 오공이 음부(陰府 저승)의 법을 어지럽히고 생사부에서 원숭이 부류의 이름을 단번에 지워버렸으니 이는 또다시 죄를 더한 것이다.
옥제(玉帝)는 본래 야생 원숭이를 무력으로 항복시키려 했지만 태백금성(太白金星)이 설득해서 자발적으로 오게 하자고 간언한다. 바른 신(正神)의 본래 생각은 무력을 쓰지 않고 야생원숭이를 감화시켜 그 본성을 갈무리하고 마음을 바로잡아 정법(正法)으로 되돌아오게 하려던 것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오공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필마온이란 벼슬에 만족하지 않고 기어코 하늘을 능멸하는 제천대성(齊天大聖)이 되고자 했다.
탁탑천왕마저 그를 제압하지 못하자 금성은 또 그의 망령된 마음에 따라 생명을 해치거나 무력을 쓰지 않고 하늘로 데려와 제천대성으로 삼도록 건의했다. 다만 명칭만 있고 봉록은 주지 않았다. 금성은 진실로 좋은 마음이었겠지만 심성 수련은 조금도 소홀히 해선 안 되는 것을 몰랐다. 결국 오공은 또 반도를 훔쳐 먹고 금단(金丹)을 먹고 어주(御酒)를 마시고는 하늘궁전을 소란케 하고는 하계로 내려갔다.
이때 오공은 이미 마도(魔道)로 떨어진 것으로 심성이 아주 심하게 떨어졌다. 비록 십만 천병이 일시에 내려와도 그를 어쩌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필경 천궁의 한 겁난이거나 혹은 뭇신들을 위한 하나의 난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비록 태상노군이 금강탁으로 그를 쳐내려 화로에서 칠칠 사십구일을 단련했지만 오히려 도가의 수리(數理)를 잘 알고 있던 오공이 바람이 들어오는 손괘(巽卦) 위치에 숨어 있다가 화겁(火劫)을 피해 도망친 후 결국 다시 천궁에 가서 큰 소란을 피워 하늘에 사무치는 큰 죄를 짓게 된다.
여기서 한 마디를 덧붙이자면 《서유기》에 나오는 여래(如來)는 대체 어떤 부처님인지 책에서는 시종 명확히 표시하지 않는다. 단지 여래가 오공을 항복시키기 전에 자칭 “나는 서방극락세계 석가모니존자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게 말했다. 기왕에 뒤에 나오는 취경 도중에 시종일관 관음보살이 일행을 보호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마땅히 아미타불이라고 함이 옳을 것이다. 어쩌면 작가가 일부러 중요한 대목에서 시치미를 떼는 것일지 모른다.
여래가 오공을 항복시킨 것은 많은 말이 필요 없고 바로 ‘마가 1자 높아지면 도는 1길 높아진다’는 것이다. 불타는 필경 자비롭기 때문에 오공이 하늘에 사무치는 큰 죄를 저질렀음에도 여전히 그의 성명(性命)을 해치지 않았다. 다만 오행산 아래에 눌러놓아 업을 갚게 했고 장래 취경(取經)에 참여해 불가에 귀의하기 위한 기초를 다져주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6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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