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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원시보

그가 내게 한 짓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를 용서할 수 없어요!”

“그 사람을 용서하라고요? 말도 안 됩니다.”

35년 경력의 정신건강 전문가이자 심리상담가인 그레고리 얀츠(Gregory L. Jantz)는 의뢰인과 상담할 때 이런 말들을 수없이 많이 들어왔다.

누군가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의뢰인에게 그레고리 얀츠는 항상 이렇게 조언을 건넨다.

“상처를 붙잡고 있는 것은 마음과 영혼에 독이 됩니다. 물론 용서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용서하는 법을 배우면서 우리는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한층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레고리 얀츠는 “최근 들어 정서 불안,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대부분의 경우 정신적 고통은 다른 사람과의 갈등, 감정적 상처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자신에게 피해를 입히고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그레고리 얀츠의 설명에 따르면, 용서의 본질은 타인의 잘못을 눈감아 주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다.

용서의 이점(利點)

용서와 신체적, 정신적 건강의 상관관계를 입증하는 연구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미국심리학회(APA)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용서하는 행위는 심리적 안정감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레고리 얀츠 박사 공식 홈페이지

해당 논문은 “용서는 불안, 우울증, 트라우마 등의 정서 장애를 극복하도록 도와주고 장기적으로 정신건강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용서의 신체적 건강상 이점도 증명됐다.

존스홉킨스대학교 연구진들은 ‘Forgiveness: Your Health Depends On It’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용서하는 행위는 혈압, 콜레스테롤 수치, 심장마비 위험을 낮추고 숙면을 도와주는 등 건강에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수록 용서와 건강의 연관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그레고리 얀츠도 저서 ‘트라우마 극복하기(Triumph Over Trauma)’에서 “타인을 향한 분노와 관계의 갈등은 심리적, 신체적 건강을 해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라며 “타인을 용서할 때 비로소 그 장애물을 극복하고 건강해지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면죄부’는 용서가 아니다

그레고리 얀츠는 “우리가 용서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과분한 면죄부’를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피해를 받은 만큼 되갚아 주는 것만이 정의(正義)라고 생각하는 건 옳지 않다”며 “오히려 스스로를 갉아먹는 행위”라고 전했다.

또 “누군가는 용서를 ‘나약함의 상징’으로 여긴다. 하지만 용서한다고 해서 약해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레고리 얀츠에 따르면 용서는 타인에게 잘못을 따지지 않고, 책임을 묻지 않으려는 것과 거리가 멀다.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냄으로써 자기 자신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용서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즉, 용서의 주체와 객체는 모두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진정한 용서란 무엇인가

그레고리 얀츠는 용서가 감정이 아닌 ‘선택’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용서는 분명하고 의도적인 선택에서 시작된다”며 “감정적인 상처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잠식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건강한 삶을 되찾겠다는 개인적인 결심이 바로 용서”라고 설명했다.

이어 “분노, 고통, 상처 등 감정적인 요인에 휘둘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들로부터 벗어나려면 의도적으로 반응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레고리 얀츠는 “용서는 평화와 치유를 향한 길”이라며 “용서하는 법을 익히면서 심리적, 신체적 건강이 개선되는 사례를 실제로 여러 차례 확인했다”고 밝혔다.

끝으로 “용서는 온전함을 향한 거대한 발걸음이며, 그것은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김연진

[출처] 에포크타임스 - kr.theepochtimes.com


불가고사: 혜공과 혜원

중국 남북조 시기 익주(益州 지금의 사천성)의 모 사찰에 두 명의 승려가 있었다. 한 사람은 법명이 혜공(慧恭)이었고 또 한 사람은 혜원(惠遠)이라 했다. 혜공 화상은 나중에 형주(荊州), 양주(揚州) 일대를 행각하며 수련을 계속했다. 반면 혜원 화상은 장안으로 선발되어 불경을 학습했다. 세월이 흘러 눈 깜짝할 사이에 30년이 지나 세상은 이미 수(隋)나라의 천하가 되었다.

​전에 장안에서 불경을 공부했던 혜원은 이미 불교경전에 정통한 승려가 되었다. 그는 학문에서 성취를 이룬 후 익주로 돌아와 널리 불경을 강의하며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혜원은 막 행각에서 돌아온 혜공을 만났다. 혜원은 너무 기쁜 나머지 그를 자신의 거처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지난 30여 년 동안 자신이 배우고 느낀 것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혜원의 말은 막힘없이 도도했으며 며칠 밤을 새워도 그칠 줄 몰랐다. 혜공은 줄곧 그의 말을 경청했다.

​드디어 혜원이 말을 끝낸 후 혜공이 아무 말도 없는 것을 보고는 물어보았다. “우리가 헤어진 지 이렇게 오래되었고 천만다행으로 어렵사리 만났는데 자네는 왜 아무 말도 없는가?”

​혜공이 대답했다. “자네가 언급한 그런 경전들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자연히 할 말이 없는 것이네.”

​혜원이 다시 물었다. “불경을 강론할 수 없다면 그럼 자네가 외울 수 있는 경전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러자 혜공은 “겨우 한권뿐이라네.”라고 대답했다.


혜원은 이 말을 듣고는 아주 엄숙한 표정으로 “그 경전은 어린 아이들도 외울 수 있지 않은가! 아주 오랜 기간이 지났네. 자네는 나와 함께 수련하여 반드시 정과(正果)를 얻겠다고 맹세하지 않았는가? 설마 지난 30여 년간 겨우 이 한권의 경전만 외웠단 말인가! 이것은 우둔한 것이 아니라 나태한 것일세. 자네가 이렇게 한심한 사람이라니 내 더 이상은 자네와 사귀고 싶지 않네. 더는 이곳에 머물지 말고 빨리 떠나주게나.”라고 말했다.

​그러자 혜공이 대답했다. “경전이 비록 작다해도 역시 부처님 말씀이라네. 존경하는 자는 무량한 복이 있을 것이요 업신여기는 자는 무량한 죄를 얻게 된다네. 부디 노여움을 가라앉히게나. 일단 내가 한번 경을 외운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세.”

​혜원은 크게 비웃으며 “이 경전은 내가 그동안 수백 번도 넘게 강의한 것인데 나더러 자네가 외우는 경을 들어보란 말인가?”라고 말했다.

혜공은 “자네가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들어본다면 나를 우습게 여긴다는 이유로 내가 외는 불법을 함부로 할 순 없다네.”라고 했다.

​그리고는 마당에 단(壇)을 설치한 후 단 위에 높은 의자를 놓았다. 부처님께 예를 올린 다음 자리에 앉아 경을 외웠다. 혜원은 그가 이렇게 공경하게 경을 외우는 것을 보고는 잠시 처마 밑 큰 의자에 앉아 그의 독경을 들었다.

혜공이 경전의 제목을 읽을 때 갑자기 한 가닥 기이한 향내가 나더니 방안을 가득 채웠다. 또 본문을 읽을 때는 천상에서 오묘한 음악이 울리더니 4가지 종류의 천화(天花)가 떨어져 내려왔다. 하늘의 음악(天樂)은 맑고 깨끗하게 공중에 울려 퍼졌고 천화는 비처럼 땅위에 내렸다. 혜공이 독경을 마친 후 자리에서 내려오자 천화와 천악(天樂)이 비로소 사라졌다.

​혜원은 이때 이미 깜짝 놀라 혜공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고는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했다. “저 혜원을 당신과 비교하면 정말이지 냄새나는 시체와 같습니다. 부디 잠시 머무르시며 가르침을 주시길 청합니다.”

혜공은 “이는 나의 능력이 아니라 부처님의 힘이라네.”라고 말하고는 혜원을 향해 길게 읍을 한 후 어디론가 사라졌다.

​* * *

이 고사에서 혜원화상은 불교경전에 정통해 여러 가지 불경을 강론할 수 있었지만 혜공화상은 오로지 한권의 경만을 암송할 수 있었다. 속인이 보기에는 혜원이 혜공보다 훨씬 훌륭하게 보이겠지만 사실상 혜공은 이미 수련 성취한 고승이었다.

​이 고사를 본 후 나는 몇 가지 느끼는 바가 있었다.

​첫째, 속인의 관념으로 대법수련을 가늠해선 안 되며 속인이 지식을 학습하는 심태로 대법을 배워서는 안 된다.

​둘째, 수련은 전일(專一)을 중시하는 것으로 어느 한 법문에서 수련하든 절대적으로 그 한 법문의 경전을 읽어야 한다. 이 고사에서 최후에 수련 성취한 것은 한 문(門)의 경전만 오로지 외운 혜공이었다.

​셋째, 혜공화상이 공경하게 불경을 외는 모습은 우리에게 사존과 대법에 대해 반드시 공경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료출처:《고승전》)

- 정견망 -​

[불가고사(佛家故事)] 구화산 고승의 일화

옛날 중국 구화산(九華山)에는 원적 후에도 육신이 썩지않는 대덕고승이 많이 나타났는데, 청나라 말에 태어난 대흥(大興)스님도 그 중의 한 분이다. (대흥스님 원적 후 항아리에 넣었다가, 3년 후에 항아리를 열었어도 신체는 여전히 부드럽고 얼굴 모습도 생전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자선하였고 관대하고 후덕하였다. 괴로움을 참고 힘든 일을 견디며 고생을 꾹 참고 수행하였다. 아래에 적힌 일화는 대흥스님이 치욕을 참아가며 무거운 짊을 지는데 있어서 속인을 초월한 이야기이다.

​구화산 아래에 부유한 한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이 집에는 금지옥엽 귀한 딸이 하나 있었다. 아가씨는 부모의 명령에 순종하여 어울리는 가문의 공자(公子)와 혼인을 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정식으로 결혼하기 3년 전에 딸은 집에서 아이를 낳았다. 부모님의 엄격한 추궁과 강박에 못이겨 아가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구화산에 올라가 절에서 향을 사르고 참배를 올릴 때 대흥화상에게 겁간을 당했으며 이후에 임신하여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가씨의 부친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힘센 장정들을 데리고 절로 뛰어들어가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흥스님을 때리고 욕하며 모욕했다. 그리고는 아이를 스님에게 떠넘겼다. 대흥스님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침착했으며, 하는 수 없이 아이를 받아 안았다. 그리고는 대수롭지 않게 “선재(善哉)라, 아미타불!”하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이 지방에서 오랫동안 명성을 누렸던 대흥스님의 위신은 단번에 땅바닥에 떨어졌고 평판이 아주 나빠졌으며, 도처에서 사람들에게 조소와 멸시를 받았다. 사람들은 “파계승” 이라며 그를 욕했다. 그러나 스님은 이런 것들을 마음 속에 두지않고 매일 산을 내려가 마을 사람들한테 아이를 위한 젖동냥을 했다. 스님의 정성스런 보살핌아래 아이는 점점 성장해서, 살도 포동포동해지고 총명하고 영리하게 자랐다.

​이렇게 시간은 어느덧 3년이 지났다…….

아가씨는 정식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신혼 첫날밤에 신랑은 아이의 행방을 물었다.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처음부터 끝까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이튿날 젊은 부부는 사실대로 부모님께 알렸다. 원래 이 아이는 그들의 친 혈육이었으나 대흥스님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모함을 했던 것이다. 3일 째 친정에 돌아온 기회에 아가씨는 또한 사실대로 친정 부모에게도 알렸다. 친정부모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경악을 금할 수 없었으며 후회가 막급했다.

​양가 부모는 젊은 부부를 데리고 절에 와서는, 대흥스님 앞에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잘못을 인정하고 정중히 사죄하면서 절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아이를 돌려 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대흥스님은 기뻐하면서 아이를 안아 공손하게 엄마 품에 안겨주었다. 스님은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게 허허 웃으면서 “데리고 가십시오! 아미타불!” 두 손을 합장하면서 말하고는 만면에 웃음을 띄며 몸을 돌려 선방(禪房)으로 돌아갔다.

​이때부터 많은 승려들과 백성들은 대흥스님을 더욱 우러러 받들고 존경하게되었다.

- 정견망 -​



대기원시보

고전회화는 사람의 내면에 무엇을 남기는가

에릭 베스

성서의 이야기를 작품화했던 바로크시대 초기 대표적 이탈리아 화가인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는 1600년 티베리오 체라시(Tiberio Cerasi) 추기경의 의뢰로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개종한 사도 바울을 그렸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나서 이름을 바울로 사용했던 사울은 소아시아 타르수스 출신의 바리새인(유대교의 한 분파)이었다. 그는 바리새인으로서 사후의 삶과 유대 전통의 중요성을 믿고 히브리 성경을 깊이 연구했다.

독실한 유대교인이었던 사울은 당시 새로운 종교 운동이었던 그리스도교를 박해했다. 사울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유대인의 전통을 존중하지 않고 비유대인들과 지나치게 자유롭게 어울린다고 믿었을 것이다.

사울은 그리스도교인들을 체포하고 욕보이고 배척했다.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인 유대인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여겼던 그는 박해받는 그리스도교인들을 돕던 스데반의 투석형(돌을 던져 사람을 죽이는 형벌)을 목격하고는, 스데반에게 돌 던지는 군중들을 지지하기도 했다.

그러던 사울은 그리스도교인들을 박해하기 위해 다마스쿠스로 가던 도중 자신을 질책하는 예수의 환영을 보고 놀라 말에서 떨어진다. 성경은 이 이야기를 사도행전 9:1-5에서 전하고 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려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아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울의 곁에 있던 사람들은 사울이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성경은 사울이 예수의 환영을 본 후 눈이 멀고 사흘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고 전한다.

이어 예수는 제자 아나니아에게 나타나 ‘선택된 도구’인 사울을 만나보라고 했다. 아나니아는 사울을 만나 그의 눈을 만져 뜨게 했다. 사울은 그에게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해 로마식 이름 사울을 히브리어 바울로 바꿨다.

 

카라바조(Caravaggio)의 ‘다메섹 도상에서의 개종’, 1601년, 캔버스에 유채, 이탈리아 로마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 체라시 예배당 | Public Domain

카라바조의 그림

화가 카라바조는 사울이 말에서 떨어져 신의 환영을 보는 순간을 묘사했다. 이 예술가는 격렬한 명암대조 기법인 테네브리즘(Tenebrism)을 사용했다. 테네브리즘은 우울한 어둠과 강렬한 빛을 이용, 작품 속 드라마와 감정을 전달하는 미술 기법이다.

이 작품 속의 세 형상은 어두운 배경 속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빛은 작품의 구성에서 계층적 요소를 부각시킨다. 예를 들어, 그림의 뒤편에 있는 마부는 빛을 가장 조금 받는 그러니까 가장 덜 중요한 요소다. 이에 비해, 말은 더 많은 빛을 받고 대비가 높으며 우리에게 더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울은 그중 가장 강렬한 빛을 받고 있다.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걸 의미한다.

마부는 그림의 오른쪽으로 말을 이끌고 있다. 마부는 또한 땅을 가리키고 있다. 땅에는 사울이 메시아의 환영을 보면서 그의 두 팔을 펼쳐 높이 뻗고 눈을 감고 누워있다. 마치 신의 환영을 붙잡고 절대 놓지 않으려는 것만 같다.
그러나 말과 마부 모두 사울의 추락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들은 평소처럼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말은 마부가 이끄는 대로 그저 사울을 넘어 지나갈 것만 같다. 사울은 일생 최고의 경험을 하고 있는데, 그림 속 아무도, 그 어느 것도 그것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카라바조는 왜 사울이 그의 환영을 보고 있을 때, 말과 마부가 전혀 동요하지 않는 것으로 묘사했을까? 사울의 환상이 개인적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걸까? 아니면 세속(世俗)에서 그가 분리됐음을 말하려는 것이었을까? 예수의 ‘선택된 도구’인 사울은 더 이상 그의 이전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는 것일까?

말과 마부는 넘어져 있는 사울을 그냥 지나갈 수도 있지만, 우리가 그를 그저 지나치는 것은 어려운 일 같다. 그 구성은 너무 타이트해 세 개의 형상은 작품을 가득 채우고 있고, 카라바조는 사울의 몸을 포어쇼트닝(단축법)을 사용, 우리와 공간을 거의 공유하도록 만들었다.

포어쇼트닝(foreshortening·단축법)은 원근법의 한 형태로, 물체가 실제보다 더 짧게 나타나 압축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회화기법이다. 그림의 깊이와 치수를 극대화하는 데 탁월한 표현 기법이다.

미술 사학자 스티븐 주커와 베스 해리스(Steven Zucker and Beth Harris)는 이 정도 수준의 단축법과 명암대비 묘사는 카라바조가 신을 세상에 내놓기 위한 시도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매우 많은 단축기법이 사용됐다. 사울의 몸이 단축됐을 뿐만 아니라 칼도 단축되고 말도 단축됐다. 그리고 모든 것이 우리에게 매우 가깝다. 르네상스에서 우리는 종종 인간의 세계와 신의 영역 사이의 거리를 보았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사울은 우리 세상에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우리는 종종 인간의 세계와 신의 영역 사이의 거리를 보았다. 그러나 사울은 우리 세상에 나타나 있다. 카라바조는 마치 사울이 우리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정밀하고 생생한 묘사를 위해 단축법을 사용했다.

카라바조는 그 이미지를 실제처럼 보이게 해 우리가 신과 더 가까워지기를 원했던 걸까? 그가 명암과 단축법으로 그림을 실물처럼 그리고, 마치 신이 우리와 공간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신

오늘날 모든 사람이 종교적인 것은 아니지만, 종교적 가르침은 때때로 종교를 넘어 모든 사람에게 도덕적 교훈을 제공한다. 사울의 개종은 우리가 우리의 성품을 고양시키는 면에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우리 모두가 자랑스럽지 않은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상기 시켜 준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먼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할 이유를 찾으려고 하기 쉽다. 그러나 바라건대, 우리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우리는 자신이 조성한 타인의 고통에 대해 깊이 후회하고 반성하는 방식으로 먼저 인식해야 한다.

사울이 그리스도교인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신의 개입이 필요했다. 신의 개입은 예수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Why do you persecute me?)”고 묻는 것으로 시작됐다.

“왜”라는 질문부터 시작해 우리 자신의 행동에 의문을 제기할 때,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왜 내가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 거지?” 어쩌면 이 질문은 우리를 해로운 습관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 비록 세상은 변함없이 흘러가겠지만, 우리 각자는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생각과 행동들로부터 분리할 수 있다.

우리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는 것은 우리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게 할 수 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카라바조의 그림처럼 신이 우리의 공간을 공유할 수 있도록 그에 필요한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은 나와 이것을 보는 모든 사람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과거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으며 미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인간의 경험에 대해 무엇을 제안하는가?”라고 질문할 수 있다. 이것들은 내가 ‘내면으로 접근하기: 전통 예술이 마음에 전해 주는 것’ 시리즈를 위해 살펴본 몇 가지 질문이기도 하다.


에릭 베스(Eric Bess)는 현재 비주얼 아트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젊은 화가 겸 예술전문 기고가다. 고전회화를 중심으로 예술 작품 큐레이션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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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원시보


파룬궁(法輪功)으로 알려진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진(眞)ㆍ선(善)ㆍ인(忍)을 원리로 하는 중국의 전통적인 심신수련법이다. 파룬따파는 단순한 명상이나 기공을 넘어서 자신을 도덕적으로 승화시키고,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을 갖도록 몸과 마음을 동시에 수련하는 것을 중시한다.

파룬궁은 오랜 기간 단독으로 전수되어 오다가 1992년 창시자 리훙쯔(李洪志) 선생에 의해 처음으로 대중에 전파됐다. 당시 중국에는 운동, 무술, 명상, 호흡 수련법 등이 급속하게 확산되는 ‘기공 열풍’이 불고 있었다. 파룬궁은 다른 기공과는 달리 회비나 등록비가 없고, 동작이 간단하고 배우기 쉬우며, 수련 효과가 뛰어나 별도의 광고 선전 없이 자발적으로 확산됐다.

1992년과 1993년 베이징 동방건강박람회에서 리훙쯔 선생은 연속 명예상과 최고인기 기공사상을 수상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1998년 중국 국가체육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7천만 이상의 중국인들이 매일 아침 공원에서 파룬궁을 수련했다. 일반인 뿐만 아니라 베이징 현역 군 장성, 국무원 관리, 고위 당위원 등 각계각층 수많은 사람들이 파룬궁을 배우고 연마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중국 정부는 탁월한 건강 증진 효과를 인정하며 파룬궁 수련을 적극 장려했지만, 수련인 수가 크게 늘어나자 공산당 정부와 정보기관은 파룬궁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1999년 4월 25일, 언론의 왜곡보도에 항의하던 파룬궁 수련자들이 톈진에서 무고하게 체포되자 전국 수련자들은 합법적인 수련 환경과 수련의 자유를 요구하기 위해 베이징에서 평화 청원을 열게 된다. 3개월 후인 7월 20일, 당시 공산당 총서기 장쩌민은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독으로 파룬궁 탄압을 결정했고 중국공산당은 문화대혁명처럼 파룬궁에 대한 왜곡선전과 소멸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후 지금까지 중국에서 수많은 수련생들이 고문, 감금, 강제노동, 강제 장기적출 등 반인륜적인 박해를 받고 있다. 한편 미국, 캐나다, 호주, EU, 대만 등 세계 각국 정부와 의회, 인권 단체, 언론, 의사회 등은 공개적으로 파룬궁을 지지하며 박해를 반대하고 있다.

몸과 마음을 함께 수양

파룬궁의 정식 명칭은 파룬따파(法輪大法: Falun Dafa)이며 자기 자신을 닦는 심신 수련법이다. 신체를 단련하는 5가지 공법과 파룬궁 서적 ‘전법륜(轉法輪)’을 통한 인격 수양으로 몸과 마음을 함께 닦는다.

파룬궁과 다섯 가지 공법

파룬궁의 수련 원리는 진(眞)ㆍ선(善)ㆍ인(忍)에 근거하며 성실히 수련하는 사람은 신체의 건강, 스트레스 감소, 안정된 마음과 도덕성 향상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얻을 수 있다.

파룬궁 공법은 서서 행하는 동공(動功) 4가지와 앉아서 가부좌하는 정공(靜功) 한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 다섯 가지 공법은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독특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동작이 간단하고 부작용이 없으며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

파룬궁 서적과 비디오를 포함한 모든 자료는 인터넷 사이트에 무료로 공개되어 있다.

http://www.FalunDafa.or.kr (한국어)
http://www.FalunDafa.org (다국어)

대기원시보


김명국의 달마도.(위키피디아)

불교 선종(禪宗)의 초조(初祖)이자 소림무술 쿵푸의 창시자인 달마(達磨)의 행적에는 많은 신통과 파격적인 이야기가 전해진다.
달마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올 때 강변에 있던 갈대 하나를 꺾어서 그 위에 올라타고 강을 건넜다고 한다.

중국으로 건너온 달마는 양무제를 만났으나 아직 그의 선종(禪宗) 수행법을 전할 시기가 성숙되지 않았음을 깨닫고 소림사 오유봉 동굴에서 9년 면벽(面壁) 용맹정진 수행에 들어갔다.

당시 나름 높은 경지에 도달했다고 자부한 그도 선정(禪定) 중 쏟아지는 졸음에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천근만근 눈꺼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슨 방법을 찾지 못한 달마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의 속눈썹을 뽑고 손톱으로 눈꺼풀을 잘라내 뜰에 던져버린 것이다.

이 눈꺼풀이 던져진 자리에 신기하게도 한 그루 나무가 자랐는데 그것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주변으로 퍼졌다. 달마가 그 나뭇잎을 따 물에 우려 마시자 정신이 깨어나고 머리가 맑아져 그 후로 더는 수마(睡魔)의 교란을 받지 않고 수행에 정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나무가 차나무였다는 것이 달마의 ‘차 기원설’의 요지로 신농(神農)의 ‘차 기원설’과 함께 전해온다.

이후의 많은 불교 수행자들이 졸음을 쫓고 머리를 맑게 해주는 효능을 지닌 차를 가까이하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제다(製茶)와 음다(飮茶) 행위 자체를 수행 방편으로 삼으며 '다선일여(茶禪一如)'의 경지로 승화시켰다.

지금도 소림사에는 ‘달마영석(影石)’이라는 신기한 바위가 있는데, 선정 수행 중인 달마의 그림자가 돌에 스며들어 어렴풋하게 그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또 눈꺼풀을 잘라 버린 까닭에 달마도에는 눈꺼풀이 없고, 눈썹 바로 아래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부리부리한 큰 눈의 모습으로 그려지게 됐다고 한다.

이상목 기자

<에포크타임스>

대기원시보

 

 

포토그래퍼 성관해

<에포크타임스>
대기원시보

한 네덜란드 기자가 독특한 중국 지폐를 갖고 있다. 겨우 10위안짜리지만, 이 기자가 가진 것 중 "가장 귀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기자는 신비하긴 하지만 '실제 가치는 없는' 지폐를 몇 년 전 중국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손에 넣게 되었다.

“돈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중국에서 내가 가진 이 지폐는 도대체 뭘까? 스탬프로 문구가 찍혀있는 이 지폐는 상점에서 아무도 받지 않는다. 그러니 실제 효용 가치도 없다.” 마이커 블록이 Vice.com에 게시한 글에서 말한다.

그날 블록은 상하이 지역 식당에서 기자들과 피자를 먹고 있었다.

“음식값을 계산할 때 우리는 모두 현금을 내놓았고 안내하던 중국 학생 에이미가 모아서 웨이트리스에게 넘겼다.“

 

에이미는 바로 그 10위안짜리 지폐를 손에 들고 돌아왔다. ‘안 좋은 문구’ 때문에 레스토랑에서 그 지폐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왜 식당이 지폐를 안 받으려고 했는지 에이미에게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중에, 나중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에이미가 기자들에게 원하는 사람에게 ‘안 좋은 문구’가 적힌 지폐를 주겠다고 했고, 블록이 얼른 그것을 챙겼다.

블록은 주의 깊게 그 ‘안 좋은 문구’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독재자 마오쩌둥의 초상 옆에 중국어 문장이 스탬프로 찍혀져 있다.

 

"이것은 공산당 반대 문구입니다. 자유를 위해서 탈당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요"라고 에이미가 말했다.

중국 공산당에 대한 어떠한 형태의 반항도 중국에서는 곧바로 감옥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블록에게 이 지폐는 수수께끼처럼 느껴졌다.

예를 들어 트위터의 중국어 버전 웨이보를 보자. 중국 공산당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는 내용이 웨이보에서 500회 이상 리트윗되면, 그는 몇 년간 감옥살이하게 된다.

이 엄혹한 독재 환경에서, 누가 이런 대담한 메시지를 지폐에 넣을 수 있단 말인가? 이상하게도 중국에서는 블록이 가지고 있는 이 지폐에 대해 누구도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확실히 특별했다.

중국에서 돌아온 블록은 이 지폐에 숨겨있는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암스테르담 차이나타운에 갔다. 그녀는 중국 침술원의 남자에게 그 지폐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흰 가운을 입은 남자는 메모를 자세히 살펴보더니 블록을 노려보며 지폐를 얼굴에 던졌다.

그가 말했다. "이것은 좋지 않아요. 중국 공산당에 대항하는 나쁜 운동입니다" "이것은 파룬궁입니다.“

그 남자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블록은 중국 식당에 가서 중년의 중국인에게 그 지폐에 관해 질문해 보았다.

 

10위안짜리 지폐를 들여다본 후, 그 남자는 말했다. “이거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규칙입니다. 공산당 규칙이죠. 중국에서는 지켜야죠.“

"그는 분명 파룬궁에 관해 말하는 것을 불편해했다"고 블록은 말했다.

파룬궁이란 무엇인가? 지폐에 찍힌 문구의 의미는 무얼까?

“나는 중국 사람이 모두 두려워하는 저주 받은 중국 지폐를 가지고 있군.”

라이덴 대학교의 중국 학자 스테판 란즈버거의 도움으로 마침내 블록은 그 메세지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란즈버거는 10위안 지폐에 찍힌 글자들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 "얼마나 많은 예언자가 경고했는가 / 인류는 이 큰 난을 알고 있다 / 중국 공산당에서 탈당해 / 대법이 평화를 주는 순간을 기다리라“

시구 형식인 그 문구는 사람들에게 공산당을 탈당하라고 권하는 내용이었다. 1999년 이래 중국에서 불법이 돼버린 고대 명상 파룬궁의 장점을 전하는 내용도 있었다.

‘대법’은 파룬궁의 또 다른 이름으로, 파룬따파라고도 한다.

파룬궁 수련생들이 2017년 5월 11일 뉴욕시 유니언 스퀘어에서 열린 세계 파룬따파의 날 행사에서 명상하고 있다.(에포크 타임스/사미라 보아우)

파룬궁은 진실(眞), 선함(善), 인내(忍)의 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고대의 심신 수련이다. 서서 천천히 움직이는 동작과 앉아서 하는 명상을 포함한다. 사람들의 건강을 향상하고 도덕을 승화시키는 이 수련은 1992년 5월 중국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1999년까지 중국인 수천만 명이 파룬궁 수련을 하고 있었다. 대중들에게 너무 인기가 높아서 권력에 위협이 되었다"고 블록이 말한다.

중국에서 파룬궁 수련자가 7천만 명에서 1억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될 정도로 인기를 끌자, 중국 공산당은 파룬궁 출현을 독재 지배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1999년 7월 20일 파룬궁을 근절하기 위해 잔인한 박해를 시작했다.

출처=명해망

파룬따파 정보 센터(Falun Dafa Information Centre)에 따르면 파룬궁 수련자는 노동수용소, 감옥 및 기타 구류 시설에서 불법으로 잡혀 신앙을 포기하도록 고문당했다.

"많은 사람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문당했고, 중국 정부는 라디오, 텔레비전, 인쇄물을 통해 대대적인 반파룬궁 선전을 시작했다"고 블록은 적었다.

가장 끔찍한 것은 2001년 1월 23일 천안문 광장 ‘분신’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끊임없이 TV에 방송되어 파룬궁 성토에 이용됐다. 게다가 중국에서는 살아있는 양심수, 주로 파룬궁 수련생들에게서 대량으로 장기를 강제 적출해 판매한다는 의혹이 2006년 드러났다.

"중국 대사관은 국내외 파룬궁 수련자들 탄압에 익숙한 것 같다. 차이나타운에서 만난 두 사람의 반응으로 알 수 있다"고 블록이 말했다.

그러나 왜 파룬궁 수련생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지폐에 "파룬따파가 좋다"는 문구를 넣는가?

파룬궁 박해 정보 센터 밍후이(Minghui.org)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이 전국의 모든 매체를 활용, 파룬궁 비방에 열을 올리던 당시 파룬궁의 진실과 박해의 악독함을 알리는 방법으로 처음 이용됐다.

사진=Epoch Times

"그 지폐를 사용한 것은 수년 전 파룬따파에 대한 중국의 중상모략 선전이 중국 전역을 뒤덮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많은 중국 사람이 이 파룬따파 메시지가 인쇄된 지폐를 통해 파룬따파에 관한 진실을 알았다“고 한 중국인 파룬궁 수련자가 밍후이에서 말했다.

"지폐는 한때 '글이 적힌 지폐'로 불렸지만, 이제는 '진실이 있는 화폐'라고도 불린다."

"중국 어딘가에서 남몰래 "누군가가 아직도 지폐에 그 과감한 메시지를 찍고 있을까?“ 블록은 궁금했다.

한 헤이룽장 통신원이 “사실 그런 지폐의 양이 지난 몇 년 동안 많이 늘었다"고 밍후이에 썼다.

중국 내에서는 파룬궁 박해에 대한 진실은 물론 중국 지도자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어떤 언론 매체도 보도하지 않는다.

"중국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알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출처=명해망

따라서, 진실을 바로 알고, “옳고 그름을 구별하여 파룬궁 박해에 참여하지 않을 권리와 기회“가 중국 사람들에게는 필요하다.

"사람들은 이 지폐를 소중히 하고 그 메시지가 퍼지도록 도와야 한다. 좋은 행동과 의로운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이 내릴 것"이라고 그 통신원은 주장한다.

이 특별한 지폐는 중국 사람들의 양심을 각성시켜 공산주의 선전에서 벗어나 정의를 선택하도록 만드는 ‘진실을 알리는’ 매체 역할을 하고 있다.

 

NTDIN.TV

<대기원시보>
대기원시보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파룬궁(파룬따파) 수련자 약 5400여 명이 24일 대만 국립 중정기념당(中正紀念堂) 자유광장에서 영어 전법륜 책을 인각으로 표현했다.(대기원)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파룬궁(파룬따파) 수련자 약 5400여 명이 24일 대만 국립 중정기념당(中正紀念堂) 자유광장에서 대규모 인각(人刻:사람들이 모여 글자나 이미지를 새김)을 펼쳐 보였다.

이번 인각의 주제는 영뮨판 「전법륜(轉法輪)」 서적이다. 전법륜은 파룬궁을 수련하는 지침서로 세계 40여 국가 언어로 번역돼 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영문 번역 버전은 가장 널리 알려져 이번 인각의 테마로 선정됐다.

건축 디자이너 우칭샹(呉清祥) 씨는 2000년부터 시작된 인각활동에 19차례에 걸쳐 매번 인각 다자인을 담당하고 있다. 중문 대기원의 취재에 응한 우 씨는 자신도 파룬궁 수련을 하고 있다고 했다. 착상에서 설계 완성까지 몇 달이 걸렸다며 “인각의 표현을 통해 파룬궁의 아름다움을 세계인에게 전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파룬궁(파룬따파) 수련자 약 5400여 명이 24일 대만 국립 중정기념당(中正紀念堂) 자유광장에서 영어 전법륜 책을 인각으로 표현했다.(대기원)

 

충칭에서 관광차 대만에 온 남성 진 씨는 “중국은 경제가 많이 발전하고 고층 빌딩이 잇달아 건설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냉정하다. 그에 비해 대만 사람들은 친절하고 따뜻하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우연히 자유광장에 왔는데 많은 사람이 참여해 만든 글자의 웅장함에 압도됐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진 씨는 “저의 친척도 파룬궁을 수련하는데 건강하고 장수하고 있다. 많은 중국인은 파룬궁에 대한 중국 정부의 선전을 믿지 않는다”며 “파룬궁의 정신인 진·선·인(眞善忍)은 사회가 안정되는 데 중요한 정신이다. 정부가 이를 탄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각 제작 현장을 지키고 있는 대만 경찰을 보고 “중국에서 만약 이처럼 큰 이벤트를 한다면 경찰이 총동원해 참가자들을 쫓아낼 것이다.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며 감개무량해 했다.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 라이 씨는 처음 본 파룬궁 수련자의 대형 인각 장면에 매우 놀라워하며 스마트폰으로 계속 촬영했다. 라이 씨는 “매우 중요한 장면이다. 어떤 신앙도 존중돼야 한다.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지적인 파룬궁 수련생은 사회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 중국 공산당의 선전과 전혀 다르다. 공산당의 박해는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라이 씨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인 대만과 신앙의 자유도 민주주의 선거도 없는 중국 본토가 너무 달라 충격을 받았다며 “공산당 일당 지배는 인원이 많은 단체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자유로운 공간은 공산당에 의해 축소됐다”고 지적했다.

파룬궁 수련자들의 연공 풍경.(대기원)

 

전통 심신수련법 파룬궁은 1992년에 리훙쯔(李洪志) 선생에 의해 창시됐으며, 7년 만에 수련자가 1억 명에 달하자, 이를 두려워한 공산당 정권에 의해 1999년 7월 탄압이 시작됐다.

대만 파룬따파 학회에 따르면, 현재 수십만 명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대만은 중국 본토 이외에 세계에서 파룬궁 수련자가 가장 많은 나라다.

2000년부터 대만 자유광장에서 해마다 펼쳐지는 대규모 인각은 대만 파룬궁 수련자들을 중심으로 전 세계 파룬궁 수련자들이 참여한다. 18년 동안 파룬궁 수련자들은 이런 인각 활동을 통해 수련의 아름다움과 올바름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이 인각 활동은 많은 사람에게 파룬궁을 소개하는 특색있는 방법이 됐으며, 파룬궁 창시자 리훙쯔 선생에게 감사의 표현을 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특히 이러한 활동은 중국의 심각한 인권 침해에 대한 전 세계인의 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된다. 대만의 자유로운 파룬궁 수련과는 달리, 중국에서의 파룬궁 박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 수많은 수련자가 체포되고 구금되며 고문을 당하고 있다.

 

이상숙 기자

<대기원시보>

 

 

 

 

 

대기원시보


젊은 스님은 물 긷고, 불 지피고, 밥하고, 청소하는 등 매일 부지런히 일해야 했다.(쑨밍궈 일러스트 / 에포크타임스)


어느 산사에 노스님과 젊은 스님이 함께 수도하고 있었다. 노스님이 탁발하러 마을로 내려갈 때마다 젊은 스님도 따라갔다. 두 사람은 어디를 가든 함께했다.

젊은 스님은 어렸을 때 불가(佛家)에 들어와 노스님을 따라 수행했다. 그는 물을 긷고, 불을 지피며, 밥하고, 청소를 하는 등 매일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했지만, 전혀 힘들어하지 않고 아주 즐겁게 일하며 생활했다.

젊은 스님의 질문

어느 날 젊은 스님이 불당 바닥을 쓸면서 불상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나는 오랜 세월 경을 읽고 스님과 함께 참선을 했는데, 도대체 부처란 뭘까?'

그는 빗자루를 내려놓고는 노스님께 가서 부처가 무엇인지 여쭈었다.

노스님은 온화하게 일러주었다. "부처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다. 좋지 않은 환경에서도 타락하지 않으며, 재앙으로 소멸하지도 않는다. 그는 다리 없이도 움직이며 비추지 않아도 빛나지."

젊은 스님이 기뻐하며 물었다. "어떻게 하면 불과(佛果, 불도 수행으로 얻는 부처의 경지)를 얻을 수 있을까요?"

노스님은 미소 지으며 답했다. "좋은 일을 하고 나쁜 일을 하지 말거라. 어떤 생각도 품지 않으면, 불과를 얻을 것이다.”

젊은 스님은 "스님, 저는 오래전에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경험하신 가르침을 더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간청을 드렸다.

이에 노스님은 "네가 매일 해온 일이 무엇인지 말해보아라"라고 했다.

젊은 스님은 잠시 생각하며 말했다. "탁발하러 마을에 가면 사람들이 스님을 비난할 때도, 스님은 그것을 괘념치 않으시잖아요. 전 그것을 본보기로 삼아, 누군가가 저를 비방할 때도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스님이 다른 사람들을 널리 도우시는 것을 보고 저도 사람들을 도와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려고 합니다."

늙은 승려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너를 가르치지만, 나를 따르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내 습관과 행동을 따라 할 수는 있지만 내 의식구조를 모방할 수 있겠느냐?"

젊은 스님이 웃으며 답했다. "그건 쉽지 않습니다.“

배고픔을 참고 견디다

노스님은 제자에게 면벽참선을 시켰다. 하루가 다 지나도록 젊은 스님은 여전히 가부좌를 흐트러트리지 않았다. 그런데 끼니때가 되어도 아무도 그에게 음식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노스님께서 잊어버리셨을지도 모르겠구나.’ 제자는 아무 원망 없이 배고픔을 견디며 참선 수행을 계속하기로 했다.

그러나 다음 날에도 아무도 그에게 음식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젊은 스님은 "스승님이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계신다. 스승님이 나를 보살피고 계신 거야. 화내지 말아야지."

그는 스승님께 보답하기 위해 더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었다.

노스님이 밖에서 그를 관찰하고 있었다. 젊은 스님이 아무런 원망심을 표출하지 않는 것을 보고 노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좋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다른 사람의 실수를 보지도 않는다. 조용히 집중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지."

노스님은 그에게 참선을 그만하라고 말씀하셨다. "너는 사소한 일로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한마음으로 할 수 있겠구나. 나와 함께 가자." 그는 재빨리 노스님을 따라나섰다.

노스님은 그를 선방으로 데려가셨다. 선방에 놓인 상 위에는 쌀 한 그릇, 차 한 잔, 스님의 겉옷, 젓가락 한 벌, 구리 동전 세 개가 있었다. 노스님이 그에게 말했다. "며칠 전, 너는 어떻게 마음을 닦고 불법을 널리 펼 것인가에 대해 나에게 묻지 않았느냐? 구리 동전 세 개를 가지고 탁발하러 산 아래로 내려가거라. 수행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걸인을 돕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젊은 스님은 거지를 만났다. 그는 아무도 거지에게 음식을 주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젊은 스님은 "그는 덕이 너무 부족하구나!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가난한 중일 뿐. 어떻게 그를 도울까?" 젊은 스님은 이미 이틀을 굶은 상태였다. 거지가 딱했지만 도울 방법이 없었다.

그는 가게를 찾아 빵 두 개를 샀다. 그는 빵을 들고는 "이건 나 혼자 먹기에도 충분치 않구나"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차마 두 개를 모두 자신이 먹을 수는 없었다. 거지에게 그중 하나를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인생은 짧고 앞일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지. 이번에 내가 거지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다시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다시 기회가 찾아오고 내가 준비될 때까지 아무도 나를 기다려 주지 않을걸. 난 지금 배가 몹시 고프지만, 베푸는 일이 지금 내 분수에 넘친다는 핑계를 대면서 나누어 주지 않으려는 것은 좋지 않은 마음이야. 나는 이 마음을 다스려야겠어. 살덩어리인 이 몸을 잃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지만 나의 자비로운 마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야." 젊은 스님은 이제 배가 고프지 않았다. 대신, 그는 마음이 밝고 기쁨으로 가득 찼다. 그는 걸인에게 빵을 두 개 다 주었다.

나방에 대한 동정

젊은 스님은 불성이 충만한 고요함에 들었다.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한 경지에 이르렀다. 그의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한 그 순간, 나방 한 마리가 그를 향해 날아와 피할 겨를도 없이 눈을 쳤다. 몹시 아팠다.

고통에 시달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나는 불과를 얻겠다고 서원했다. 눈을 쳤다는 이유로 나방에게 화를 낸다면 일체중생을 구도하기는커녕 나 스스로 깨달음에 이를 수조차 있겠는가? 화내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나방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나방이 다치지 않았어야 할 텐데…”

마음을 가라앉히자 고통도 사라졌다. 그의 마음은 다시 환희로 가득 찼다. "나방은 나의 성불을 도우러 여기에 왔다. 곤충들이 나를 해치더라도 나는 그대로 받아들여 감사해야 한다. 그들이 나를 위해 여기에 왔기 때문이다."

깨달음을 얻다

노스님은 젊은 스님을 멀리서 지켜보았고 그의 모든 생각을 관찰했다. 그가 인생의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음을 알았다. “자비심이 생기니 모든 중생을 소중히 여길 것이요. 마음에 걸림이 없으니 마음을 닦기 위해 노력할 동기가 충분하다.”

젊은 스님은 저녁에 절로 돌아가 스승께 인사드리며 말했다. "스승님, 저는 몇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거지를 만나면 음식을 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보면 돈과 옷을 주어야 합니다. 다친 사람을 보면 적시에 도와야 합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며, 저는 언제든지 다 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들 감탄했지만, 노스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는 종이를 꺼내 “한 점 불성이 없다”라고 글씨를 남기고는 방을 나가셨다.

다른 스님들이 모두 수군거렸다. 젊은 스님은 의아했다. “밝음과 기쁨으로 가득한 하루였는데... 스승님은 왜 ‘한 점 불성이 없다’고 말씀하셨을까?” 그는 그 상황을 해석하기 위해 자신을 돌아보았다. "스승님은 늘 자비하셨다. 특히 나에게 그러셨다. 내가 무슨 잘못된 말을 했을까?”

그는 스승에게 말하는 자신의 사고방식과 태도를 생각하다가 갑자기 깨달았다. "나는 계속 내 감정을 강조했구나. 스승님은 나에게 화난 것이 아니고 나를 시험하고 계신다. 내가 부처처럼 말하기를 바라시는 게 아니야. 진정으로 부처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어야겠구나!"

자신이 말한 것을 회상하다가 그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아무 잘못도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내 마음이 순수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자비롭고 친절한지 모두에게 과시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높은 경지에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건 내가 갈 길이 아니다. 자아에만 몰두하고 마음이 순정하지 않은 순간, 내게는 한 점 불성이 없다.”

노스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생각은 순수하다. 그는 언제나 산만한 생각을 떨쳐버리며 모든 것에 대해 자비심이 있다. 그는 순정한 부처 세계로 갈 자격이 있다."

그 순간 젊은 스님 눈앞에 이 세상이 아닌 빛나는 부처 세계가 펼쳐졌다. 그는 연꽃 위에 앉아 올라가고 있었다.


쑤린
<대기원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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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法輪功)으로 잘 알려진 法輪大法(파룬따파)는 리훙쯔(李洪志)선생께서 창시하신 고층차의 불가(佛家)수련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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