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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견망


원형(源馨)

【정견망】

불경에서는 마음에 72상(相)이 있다고 말한다. 상(相)이 있다면 그럼 다른 사람이 보거나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소사미(小沙彌 역주: 출가했지만 아직 20세 미만이라 정식 비구가 되지 못한 남자 승려를 말함)가 마음을 닦은 작은 이야기에 큰 의미가 담겨 있다.

어느 노화상(老和尙)이 어린 사미(沙彌)를 데리고 행각했다. 아무리 끝없이 광활한 숲을 가든 또는 산을 넘고 계곡을 건너든 노화상은 늘 자유롭게 앞에서 걸었지만 소사미는 등에 짐을 지고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가는 내내 서로 보살펴주며 서로 짝이 되었다.

소사미가 한참을 걷다가 속으로 생각했다

‘사람 몸을 얻기 힘들다지만 얻어도 겨우 수십 년에 불과하고 또 생로병사를 겪어야 하며 육도윤회을 거쳐야 하니 사람이란 정말 고생스럽구나! 그러나 기왕 수행(修行)을 했으면 뜻을 세우고 자비심을 내어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나는 나태해져선 안 되며 다그쳐서 정진해야 한다!’

막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앞에서 걷던 노화상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오너라, 내가 짐을 메마. 네가 앞장서서 걸어라.”

소사미는 비록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노화상의 지시에 따라 짐을 내려놓고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한참을 걷다보니 사미는 정말 가볍고 자유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불경에서는 중생을 구도하려면 각종 보시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건 정말로 너무나 고생스럽구나! 하물며 천하에 중생이 이렇게 많은 고생을 겪고 있으니 대체 언제나 구도를 끝낼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내 한 몸만 깨끗이 하면서 이렇게 자유롭게 사는 게 낫지 않을까!”

막 이런 염두가 나오자마자 노화상이 아주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멈춰라!”

소사미가 뒤로 돌아 노화상의 엄숙한 표정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노화상이 그에게 짐을 넘겨주면서 말했다.

“짐을 메고 뒤에서 따라오너라.”

소사미는 생각했다.

‘사람 노릇하기란 정말 고생스럽구나! 방금 그렇게 즐거웠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이렇게 힘들게 변하다니. 사람의 마음은 정말 불안정하구나! 범부(凡夫)의 마음은 이렇게 흔들리기 쉬우니 그래도 수행을 잘해야 한다. 최소한 고난에 처한 중생을 마주해 많은 사람들과 선(善)한 인연을 맺고 내가 할 수 있는 본래 일을 잘하도록 하자.’

막 이렇게 생각하자마자 노화상이 다시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그를 부르더니 또 자신이 짐을 메고 그더러 앞에서 가게 했다.

소사미는 이렇게 반복적으로 마음을 냈다가 마음을 거뒀는데[退心 역주: 수행해서 진보하려는 마음을 거두고 움츠러드는 것] 3번째 다시 마음을 거둘 때 노화상이 다시 엄한 태도로 그를 대했다.

소사미가 마침내 더는 참지 못하고 마음속 의혹을 물어보았다.

“사부님, 오늘 왜 저더러 잠시 앞서 가라고 하셨다가 또 잠시 후 뒤에서 가라고 하시는 겁니까, 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러자 노화상이 말했다.

“너는 비록 수행하려는 마음은 있지만 아직은 도심(道心)이 견고하지 못하다. 마음에 감동을 받을 때면 곧 큰 서원을 발하지만 그러고는 또 곧 도심이 움츠러든다. 이렇게 나아가고 물러남을 반복해서야 언제 성취할 수 있단 말이냐?”

노화상의 이런 말을 들은 후 소사미는 곧 깊이 참회했다. 그가 다시 보리심을 내었을 때 노화상이 그에게 앞에서 가라고 했지만 감히 앞에서 가지 못했다.

그는 말했다.

“사부님, 이번에 저는 진정으로 마음을 냈으니 만장(萬丈) 높은 건물이 평지 위에 우뚝 선 것처럼 마음에 큰 소원을 내어 도의 기틀로 삼고 착실히 정진하며 나태하지 않겠습니다.”

노화상이 이 말을 듣고는 아주 기뻐했다. 두 사람은 이렇게 줄곧 대화하고 웃으면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갔다.

마음을 비우면 사람 역시 가뿐해지는데 세상 사람들은 모두 신선을 부러워한다. 인생은 짧고 고달프니 도심(道心)이야말로 가장 소중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소사미가 느낀 것처럼 심상(心相)의 기복이 안정되지 않아 정념을 지켜내기란 쉽지 않다. 고험은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마(磨鍊)의 실질은 마음에 있는 것으로 마음이 움직이면 주위 사람이나 사물 역시 상응해서 변화가 발생한다.

어떻게 우리의 마음이란 원숭이를 가둬 착실하게 매 한 걸음을 걸어갈 것인지가 흔히 아주 중요한데 마음을 닦는 기초를 점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나태해지면 곧 방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손오공의 말을 빌려서 표현하자면 “오직 스승님께서 견성(見性 성불)하려는 정성이 있으시면 생각을 돌리는 곳이 바로 영산(靈山)입니다.”

[역주: 이 말은 서유기 제24회에서 당승이 목적지인 뇌음사(雷音寺)가 얼마나 먼지 물은 것에 대해 오공이 당승에게 한 대답의 일부다.]

정견망

중국 대법제자 화간소인(花間素人)
【정견망】

1.

나는 1950년대 말에 태어났는데 당시로서는 행운아라고 말할 수 있다. 행운을 말하자면 나는 가정에서 득을 얻어 일부 고전명작들과 중국 및 외국 소설들을 읽을 수 있었다. 그때 학교에서는 정상적인 수업이 없어서 독서할 시간이 많았다. 전통문학 작품은 모두 당시 비판대상이었는데, 책을 많이 읽자 사회에서 선양하는 것과 학교에서 강조하는 것이 전통문화와는 모두 배치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독서는 나로 하여금 이 시기를 충실하게 만들어주었다.

문학작품 외에도 나는 또 일부 과학책들을 읽었는데 가령 《10만 가지 왜 그럴까?》 등이다. 또 《우주의 신비》라는 책에도 심취했다. 이 안에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신기한 숫자와 신기한 현상들로 가득한데 이 세상은 정말 오묘하기 그지없었다.

책을 읽으니 자연히 사상이 넓어졌고 매사에 늘 자신의 주관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 연대에는 진실을 말할 수 없었는데, 소위 군자는 위험한 담벼락에는 가까이 가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시사를 알아야 준걸이었다. 그러나 그 황당했던 시대에 일부 일을 알고 경험한 것이 내게 인생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게 했다.

나는 부모님과 인연이 좋았다. 특히 어머니는 늘 아무런 대가 없이 이웃이나 동료 친구들에게 옷을 만들어주셨고, 자투리 재료들을 모아 방석을 만들어 나눠주곤 하셨다.

문화혁명 시기 우리 집을 수색할 때 수색한 것이 큰 차로 하나가 나왔는데 이튿날 일부를 다시 돌려주었다. 외가는 원래 대자본가 집안이라 어머니가 결혼하면서 많은 혼수품들을 가져오셨다. 되돌아온 것은 옷과 일부 정교한 생활용품들이었고 남은 것은 다 돈이 되는 금은이나 보석 등이었다. 어머니는 금은 재화는 모두 몸 밖의 물건이니 먹거나 마실 수 없고 이런 것들은 살아가는데 쓸 수 있고 옷은 고쳐서 너희들이 입을 수 있다고 하셨다. 또 그들이 이렇게나마 사정을 봐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셨다.

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입었던 옷은 전부 어머니가 혼수품으로 해온 옷들을 수선한 거였다.

한편 부친은 중의사(中醫)이자 독실한 도교(道敎)신자셨다. 일찍이 현지의 독실한 동료들과 함께 도덕회(道德會)를 만들고 사숙(私塾 사설 학교)을 만드셨으며 학생이 돈이 있든 없든 모두 받으셨다. 시간이 오래 지나자 수입이 지출을 감당할 수 없었고 도덕회가 무너지게 되었다.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서 또 부친 형제들의 학비를 대기 위해 아버지는 끊임없이 재산을 파셨다.

어떤 사람은 우리 아버지더러 집안을 망쳤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좋은 일을 많이 했으니 반드시 복을 받을 거라고 했다. 1949년 공산화가 되자 집에 그나마 남은 거라곤 우리가 살던 집과 약간의 토지뿐이었다. 그래서 출신성분을 분류할 때 우리는 빈농(貧農)으로 분류되었다. 아버지는 늘 덕을 쌓고 선을 행하며 고생을 겪는 것은 복이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아버지가 남기신 재산이었다.

부모님은 우리들에게 늘 재물은 몸 밖의 물건이지만 머릿속에 담은 것은 영원히 자기 것이 될 수 있으니 언제든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 시대에 비록 사는 게 어렵긴 했지만 가정 교육은 또 내게 아무런 증오도 남기지 않게 했으며 나더러 세상에는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알게 했다.

《서유기》에 당승(唐僧)은 구구 81난을 거치며 진경(真經)을 얻고 정과를 얻어 부처가 된다. 나는 늘 이것이 진짜라고 여겼고 수련해서 부처가 되면 장생불사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다 1970년대 말~80년대 초 대륙에서는 기공열풍이 일었다. 나는 1982년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에서 조교로 있었다. 대학은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는 곳이었는데 중의학, 기공, 특이공능 등 과학으로 해석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확실히 객관적으로 존재했다. 당시 학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기공과 특이공능을 연구했고 모두들 깊은 흥미를 갖고 있었다.

당시 나도 기공에 대한 흥미가 있었고 심지어 내 전공보다 더 관심이 있었다. 나는 거의 늘 학교 도서관에서 기공 관련 책을 보았는데 이런 종류의 서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흐릿하게나마 이것은 부처를 수련하고 도(道)를 닦는 것과 관련이 있음을 알았다. 한동안 나는 특히 티베트불교를 알아보고 싶다는 관심이 생겼고 또 티베트에 가서 일을 하려는 생각도 했다. 때문에 나는 몇 달간 도서관에서 티베트발전사를 공부하기도 했다.

나중에야 티베트 문화의 연원과 발전 및 형성, 종교는 완전히 티베트인들 스스로 체계를 이룬 것이라 언어를 모르면 깊이 들어갈 수 없음을 알고는 이에 이런 생각을 포기했다.

1980년대에 나는 줄곧 비교적 영향력이 큰 몇몇 기공문파에 관심을 가졌고 기공잡지를 수집했다. 하지만 기공계의 일부 현상에 나는 또 아주 미혹되었다. 당시 사회적으로 아주 유명했던 어떤 기공사는 연속으로 몇 차례 기공보고회를 가졌고 사람들에게 기를 내보내 병을 치료해주었는데 그 후 피를 토하고 머리가 빠졌다. 또는 한바탕 크게 앓거나 심지어 1년에 4명의 가족을 잃기도 했다. 나중에 이 기공사는 곧 소리 없이 사라졌다.

당시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공법(功法)이 있었기에 나는 시종 어떤 것이 적합한지 찾아내지 못했다. 우리 연구실에 몇몇 교수들은 무슨 공을 연마하는지 모르겠지만 자발공(自發功) 동작이 나타나 학교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나는 이런 연마법은 그리 고상해보이지 않았고 모양이 말이 아니라고 여겼다.

나중에 한 중의사가 쓴 문장을 보니 일종의 참장공(站樁功)을 소개했다. 저녁에 나는 곧 연구실에서 어떤 사람에게 이 공을 배웠는데 참장을 한 후 몸이 아주 가볍고 편해졌다. 하지만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떻게 연마하는지 전혀 몰랐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중순까지 10여 년간 나는 수많은 공법을 접촉했지만 대개는 사이비였다. 내가 보기에 오직 이 가장 간단한 참장만이 그래도 괜찮았다.

1989년 졸업생들을 데리고 실습하면서 나는 직접 북경에서 6.4를 겪었고 마음이 몹시 답답했다. 당시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중에 어떻게 하다 보니 포기했다. 그러나 6.4를 겪은 후 대학은 온통 잿빛이었고 걸핏하면 정치학습으로 사람을 피곤하게 했다. 게다가 사람의 감정도 뜻대로 되지 않자 환경을 바꿔보고 싶었다. 그러다 1990년대 초 나는 대학을 떠나 연해 도시의 어느 국가직속 직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업무환경은 변했지만 기공에 대한 나의 관심을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1980년대 전학삼(錢學森)이 인체과학연구회를 주관하면서 인천(人天)과학에 대한 개념을 제출했다. 나는 기공은 특이공능을 포함하며 이 안에는 분명 사람들이 모르는 아주 많은 것들이 있다고 여겼다. 때문에 그것을 연구하려는 생각을 줄곧 포기하지 않았다.

당시 우리 직장에도 기공 애호가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저녁에 모두에게 연공을 가르쳐주었다. 그가 연마한 것은 바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족제비가 달에 비는 것이었는데 한편으로는 연마하면서 또 말을 했다. 나는 진작에 이 공을 알았지만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많은 동료들이 모두 그를 따라 연마했고 모두들 나를 끌어들였다. 체면 때문에 나도 두어 번 그들을 따라 배웠다. 의외로 불과 두 번 따라했을 뿐이었지만 내게는 막대한 고통을 초래했다.

다년간 간절한 바람 이후 내 신체에 이상이 나타났다. 이것은 아주 특별했는데 본래 점잖았던 내가 밤만 되면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쳤다.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독방으로 쫓겨났다. 직장 숙소에서도 나는 독방에 살았다. 청소부가 이른 아침 거실을 청소할 때 내가 미친 듯이 소리 지르는 것을 들었다. 이렇게 오래 지나자 늘 온몸이 무기력하고 피로하기 그지없었다. 매달 나는 정신을 안정시켜주는 중약(中藥)을 샀지만 아무 효과도 없었다. 동료들도 내가 날마다 말라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날마다 억지로 버텨가면서 일을 했지만 내 몸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자신도 장담할 수 없었다. 나는 자신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잘 몰랐다. 동료와 친구들도 모두 나 때문에 큰 타격을 받았다.

한 대학 친구는 주역을 연구했는데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마(魔)에게 포위된 것이라 약으로는 치료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번은 한 학교친구가 나를 보러 와서는 저녁에 나를 데리고 옥상에 가서 바람을 쐬었다. 나는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사실 죽는 게 낫겠다 싶었고 뛰어내리면 모든 번뇌가 끝날 거라고 했다. 그가 놀라서 나를 바라보자 나는 안심하라고 하면서 쉽게 죽진 않으며 다만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또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2.

1996년 5월 어느 날,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건물에서 내려와 슈퍼에 물건을 사러 갔다. 슈퍼에 가는 길에 작은 서가가 있었는데 낡은 잡지들이 있었다. 잡지 중에 남색표지의 한 책이 아주 특별해서 내가 가서 한 권을 들어보니 제목이 《전법륜》이었고 또 음양어(陰陽魚 태극을 의미)가 있었다?

나는 신속히 목록을 한번 훑어보았고 또 〈논어〉를 빨리 읽어보았다.

“불법은 가장 정심한 것으로…….”

나는 곧 머릿속이 쾅 울렸다. “불법(佛法)!!!” 나는 곧 책을 들고 12위안을 주고 한 권을 샀다. 기숙사에 돌아와서는 밤을 새워가면서 단번에 읽었다. 밤새 눈 한번 붙이지 않았는데 뜻밖에도 전혀 피로하지 않았다.

낮에 근무하다가 시간이 나면 나는 또 이어서 《전법륜》을 읽었다. 책을 볼 때는 매 구절마다 다 아는 것 같았지만 책을 덮기만 하면 머릿속이 온통 공백이었다. 책에서 말한 것은 다 전에 내가 접촉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연속으로 3번을 보고 나서 일부 개념이 서서히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기공은 수련이고 파룬궁은 불법(佛法)이며 고층차로 사람을 이끄는 것으로 “고층차로 공을 전함은 무슨 문제인가? 그것은 곧 사람을 제도하는 것이 아닌가?”(《전법륜》)

오직 부처님만이 사람을 제도할 수 있다. 그럼 이는 진짜 부처님이 세상에 내려오셨단 말인가! 사람이 된 목적은 반본귀진(返本歸真)이며 또 어떤 사람은 연공해도 병이 낫지 않는가? 후과는 무엇인가? 이때 나는 마치 큰 꿈에서 막 깨어난 것 같았는데 다년간 품었던 의혹과 바람이 모두 이 책 속에 답이 있었다.

나는 곧장 슈퍼로 다시 가서 가족들을 위해 몇 권을 사려고 했다. 그러자 슈퍼 직원은 이 한 권뿐이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어디서 책을 가져왔는지 물으며 몇 권 더 주문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직원은 우리 슈퍼에서는 책을 팔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일순간 멍해졌다. 이 《전법륜》은 그럼 바로 나를 위해 준비된 거란 말인가? 나는 평소 직장에 출근하는 것 외에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는다. 만약 아래층 슈퍼에 이 책이 없었다면 내가 어디에 가서 책을 구한단 말인가? 몇 년이 지난 후 매번 내가 법을 얻은 경력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곤 한다.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당신에게 문 앞까지 가져다주었다.”(《전법륜》)

《전법륜》이란 이 천서(天書)를 얻은 후부터 나는 날마다 책을 보았다. 대략 20여 일을 본 후 어느 날 낮의 일이다. 내가 여전히 《전법륜》을 펼쳐 읽는데 막 몇 페이지를 보던 중 온몸이 마치 무언가에 묶인 것 같았다. 이때 나는 아주 분명하게 고양이 크기의 2개의 검은 그림자가 내 몸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 나서 나는 머리를 떨구고 잠이 들었다.

또 일주일 정도 지난 후 역시 한낮이었는데 나는 전처럼 《전법륜》을 펼쳤다. 몸이 또 뭔가에 묶인 것 같은 상황이 나타났는데 이때 내 몸에서 또 돼지보다는 크고 소보다는 작은 한 검은 그림자가 나갔고 나는 또 머리를 떨구고 잠이 들었다.

그 후로 나는 일을 하고 밥 먹는 시간 외에는 거의 전부 잠에 취했다. 낮에는 《전법륜》을 봐도 졸리지 않았지만 퇴근해서 다시 《전법륜》을 보기만 하면 졸렸고 마치 신생아처럼 잠이 들었다.

약 석 달간 자고 나서 나는 비로소 정상적인 휴식시간을 회복했다. 동료들도 내가 풍만해진 것을 보았고 모두들 다 신수가 좋아졌고 기력이 넘쳐 보인다고 했다.

《전법륜》이란 이 천서를 읽고 나는 속인들이 알지 못하는 아주 많은 이치를 알게 되었으며 아주 많은 천기(天機)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나는 고생스레 십여 년간 찾아왔고 도를 구하다 도리어 부체(附體)를 초래해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이 부체는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

“만약 그것이 당신 몸에서 일찍 떠난다면 당신은 곧 사지가 무력해질 것이다.”(《전법륜》)

“만약 그것이 당신 몸에서 늦게 떠난다면 당신은 곧 식물인간으로서 후반생에 당신은 오직 숨만 남아 침대에 누워있을 것이다.”(《전법륜》)

“사람은 모두 자신의 이 관념이 옳지 않고 마음이 바르지 않기 때문에 번거로움을 불러온다.”(《전법륜》)

이 한 층의 이치를 알고 나서 나는 다년간 지니고 있었던 주변의 기공서적과 기공잡지를 전부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전에 먹던 약과 보조제 2서랍도 모두 버렸고 이후 더는 필요하지 않았다.

“천년에 정법을 얻지 못할지언정 하루라도 야호선(野狐禪)은 닦지 않는다.”(《전법륜》)

그러나 사람은 육안범태(肉眼凡胎)를 지녀 두 눈이 가려지면 어디 가서 진짜와 가짜를 알겠는가! 오직 수련하려는 바람만 있다고 해도 충분하지 않다. 금생금세(今生今世)에 정법수련을 얻을 수 있는 이것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행운이다.

3.

1996년 11월 즉 《전법륜》이란 천서를 얻은 지 반년이 지난 후 나는 연공장을 찾아갔고 처음으로 단체연공에 참여했다. 첫날 동작을 배우는데 익숙하지 못했고 나중에 나 혼자 연습했다. 3장 관통양극법(貫通兩極法)을 연마할 때 아랫배부위에 뭔가 휙휙 돌아가는 것을 느꼈고 나는 사부님께서 내게 파룬(法輪)을 넣어주셨음을 알았다. 나도 사부님이 계신다, 나를 인생이란 늪에서 빠져나와 하늘로 이끌어주시는 대도(大道) 사부님이 계신다. 이후 법공부와 연공은 나의 일상이 되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후 인생과 물질세계에 대한 나의 인식이 완전히 변했다.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는 인류가 줄곧 탐색해왔지만 아직 답을 얻지 못한 궁극적인 문제지만 《전법륜》을 배우자 쉽사리 해결되었다.

《전법륜》에서는 아주 명확하게 “물질과 정신은 일성(一性)”이라고 했고 심성(心性)수련이 생명의 층차를 제고하는 관건이라고 했다.

《전법륜》은 또 나로 하여금 진정한 수련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수련하는지 명백히 알려주었다.

“당신에게 한 가지 진리를 알려주겠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수련중의 매 걸음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 어떤 문제를 만나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책속에선 조금의 모호함도 없이 똑똑히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가장 쉽고 평범한 언어로 사람이 어떻게 성불(成佛)하는지 고심한 도리와 천기를 남김없이 말씀하셨다.

도가는 무위(無爲)를 중시하고 《도덕경(道德經)》에서는 무위로 다스림을 말한다. 그러나 무위의 원인은 무엇인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리는 나로 하여금 물질세계 속의 일체는 다 정해진 운명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크게는 우주・천체 및 세계의 변화에서부터 작게는 세간에서 조대(朝代)의 교체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사람의 일생에 무엇을 겪는지 등 이 일체의 일체는 다 사람이 좌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 인연관계에 의해 촉성된 것이다.

만약 우주 진선인(真善忍) 특성에 동화해 개인의 사욕(私慾)이 없고 개인의 바람이 없다면 그것이 바로 무위다. 반대로 인위적인 것이 많아지면 곧 고급생명의 배치를 교란해 업(業)을 짓게 된다. 업을 지으면 곧 갚아야 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고난이 있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그러므로 수련에서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르라고 거듭 말하는 것이 바로 이 이치다. 왜냐하면 당신이 노력을 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래 당신의 생명 중에 이것이 없는데 사회 중에서 본래 다른 사람에게 속한 것을 당신이 얻는다면, 당신은 남에게 빚을 지는 것이다.”(《전법륜》)라고 말씀하셨다.

남의 것을 빚졌으면 업을 지은 것으로 업을 지었으면 곧 갚아야 한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업무에서든 개인감정에서든 도처에서 나는 어떠어떠해야 한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이다 라고 하는데 이는 완전히 욕망에 이끌리고 명리(名利)에 납치된 것이다. 바로 늪에 발이 빠진 것처럼 빠질수록 더 깊어진다. 파룬따파 수련은 나로 하여금 처음으로 명백히 살게 했고 또 사는 것이 가뿐하게 해주었다.

수련 후 나의 가장 큰 변화라면 더는 소위 시사에 관심이 없어졌다. 우리 직장의 일인자는 퇴직한 대학총장인데 많은 직원들이 그를 찾아왔다. 석사나 박사 경력자가 비교적 많았고 대학교수도 몇 명 있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문화혁명을 거쳤고 젊은 사람들은 6.4를 거쳤다. 모두들 함께 잡담하며 마음속 불만과 시국에 대한 견해를 발설하곤 했다.

수련 후 나는 이런 것들에 대해 흥미를 잃었다. 나는 그저 대법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닦고 내가 맡은 업무를 잘하면 그만이었다. 동료들이 나를 보면 늘 한 권의 책을 들고 있으니 모두 무슨 책을 읽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에 여러 사람들에게 파룬궁을 소개했다.

업무 중에서 나는 힘껏 대법의 요구에 따라 했고 늘 자신을 수련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직장 직원들은 거의 모두 외지에서 왔기 때문에 기숙사에 산다. 때문에 장거리 전화를 걸지 않을 수 없다. 직장에서는 매년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 한해 사적인 통화도 회사에서 비용을 부담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평소 사적인 전화는 자신이 요금을 부담해야 한다. 자기 부담이라곤 하지만 따로 영수증을 끊지도 않고 또 돈을 받는 사람도 없었다. 수련 후 나는 매번 개인통화를 하면 기록을 남기고 영수증을 끊고 경리에게 돈을 내곤 했다. 또 대법자료 복사가 필요하면 밖에 나가 내 돈을 주고 출력했고 회사 장비를 이용하지 않았다.

수련 후 나의 업무태도에도 변화가 발생했다. 나는 직장에서 비교적 중요한 부서를 주관했는데 일찍이 직장 법률고문과 협조해 두 차례 소송을 진행한 적이 있다. 일반적인 이치에 따르자면 직장을 대신해서 하는 소송이라면 완전히 회사 이익의 입장에서 다퉈야 한다. 하지만 수련 후 나는 자발적으로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 실사구시(實事求是)했다. 성의를 갖고 상대방과 소통했고 매사에 적정한 선에서 멈추며 지나치게 하지 않았다. 나중에 두 소송은 모두 쌍방이 화해해서 종결되었고, 나는 소송 상대방 및 그 변호사와 좋은 친구가 되었으며 직장 상사도 만족했다.

비록 일 자체가 수련은 아니지만 수련인의 경지는 업무 속에서 표현되어 나온다. 내게는 명확한 인생목표가 있으니 업무 중에서 사람과 사람 간의 마찰이나 쟁투하며 다투는 일들이 자연히 아주 줄어들었다. 동시에 또 남을 위해 생각하는 즐거움을 체험했고 선(善)과 인(忍)의 힘을 체험했다.

우리 직장 총재 비서는 줄곧 내 자리를 노려왔다.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자 동료들 사이에 나에 관한 험담을 늘어놓았다. 그는 내가 늘 미국과 편지를 주고받는 걸 봤다면서 거짓말을 했고 내가 원래 사생아로 친부가 미국에 있다는 등이었다. 어느 날 출근하니 동료들이 나를 보는 눈빛에 일종 기이한 미소가 있었다. 어떤 동료가 내게 그가 나를 웃음거리로 삼았다고 알려주었지만 나는 마음에 두지 않았다.

며칠 후 우리 직장에서 일하던 그의 처제에게 갑자기 위급한 증상이 생겨 바르톨린선 수술을 받아 병원에 한달 정도 입원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입원한 지 처음 3일 사이에 직장의 여자 동료들이 모두 병원으로 그녀를 보러 갔다. 4일째 되는 날 남은 것은 나와 사무실 주임 둘 뿐이었다. 주임은 내게 이 일은 하루나 반나절의 일이 아니니 그녀의 가족에게 연락해 사람을 불러오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집에서 사람이 오려면 휴가를 내야하고 또 왕복 비행기 값을 지불해야 하지만, 우리가 가까이서 그녀를 돌보면 큰 번거로움이 없다고 했다. 하루 두 끼 정도는 회사 식당에서 제공하면 되고 빨래는 직장 세탁기를 쓰면 되니 그리 힘들지 않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매일 두 차례 병원을 오가며 그녀를 도와주었고 그녀가 식당 밥에 질려하면 좋아하는 음식을 사다주곤 했다. 그녀가 퇴원할 때까지 이렇게 했다. 나중에 그녀의 언니(총재 비서의 아내)가 따로 내게 전화를 걸어 감사인사를 전했다. 이 일을 거친 후 총재 비서는 내게 사과했고 이후 업무에서도 나와 협력해 도와주기 시작했다. 직장 동료들도 모두 나의 자질이 좋고 도량이 크다고 했다.

나는 또 수련을 통해 대법의 신기(神奇)를 체험했다. 파룬따파는 기점(基點)이 높아서 올라오자마자 대주천(大周天)이 통한다. 나는 연공한 지 얼마 후 건곤주천(乾坤周天)과 묘유주천(卯酉周天)이 모두 통해 정공(靜功)을 연마할 때 머리가 흔들렸다.

한번은 퇴근 후 숙소에 가니 10여분 정도 시간이 남아 관통양극법을 연마했다. 연공을 끝낸 후 몸이 곧 공중에 떴는데 무게감이 없었고 마치 신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입구로 걸어가자 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밖으로 나왔고 그 후 돌아올 때도 문을 열고 들어올 필요가 없었다. 나가려고 생각만 하면 나갔는데 사실 오직 일념(一念)이 나오기면 하면 돌아왔고 아울러 걷는 느낌도 없었다. 전체 과정에 신체의 존재가 없었지만 나는 자신의 신체가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사부님께서는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은 모두 이런 신체가 존재하지 않고, 그는 떠오를 수 있으며, 그는 또 크게 변하거나 작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공간에서는 사람에게 이런 신체, 우리 이 육신이 있게 했다. 이 신체가 있은 후, 추워도 안 되고, 더워도 안 되며, 힘들어도 안 되고, 배고파도 안 되는데, 어쨌든 고생이다.”(《전법륜》)라고 말씀하셨다.

원래 신체가 없으면 이렇게 아름답고 오묘한 것으로 나는 한 차례 아주 착실하게 신기한 느낌을 체험했다. 사람이 부처로 성취됨은 이렇게 아름다운 일인데 내가 이를 만났으니 버리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4.

1999년 이후 나는 프리랜서가 되었다. 한 중학교 동창이 내 상황을 알고는 내게 이렇게 나무라듯이 말했다.

“과거에 우리 중학교에서 대학에 들어가고 또 교수가 된 사람은 너뿐이라서 동창들이 모두 너를 부러워했어. 그런데 무슨 파룬궁을 연마하다가 직장마저 잃었니. 네가 보기에 네가 함부로 사는 게 아니니?”

하지만 나는 속으로 ‘네가 어떻게 내가 무엇을 얻었는지 알겠니!’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흔히 자신이 추구하는 것은 모두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고층차에서 보면 모두 속인 중에서 이미 얻은 조그마한 이익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종교 중에서는 말한다. ‘당신이 돈이 아무리 많고 벼슬이 아무리 높다 해도 몇 십 년이라, 태어날 때 가지고 오지 못하며 죽을 때 가지고 가지 못한다.’ 이 공은 왜 이렇게 진귀한가? 바로 그것이 직접 당신의 元神(왠선) 몸에서 자라 태어날 때 가지고 오고, 죽을 때 가지고 갈 뿐만 아니라, 그것이 직접 당신의 과위(果位)를 결정하기 때문인데, 그래서 수련하기가 쉽지 않다. 즉 말해서, 당신이 버리는 것은 좋지 못한 것인데, 이래야만 비로소 당신으로 하여금 반본귀진(返本歸真)하게 할 수 있다. 얻는 그것은 무엇인가? 바로 층차를 제고하고, 최후에 정과를 얻어 공성원만(功成圓滿)에 이르는 것으로서, 해결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다.”(《전법륜》)

“인류가 세간에서의 대법의 표현에 대해 마땅히 있어야 할 경건(虔誠)과 존중을 체현할 수 있으면, 사람과 민족 혹은 국가에 행복 또는 영예(榮耀)를 가져다줄 것이다. 천체ㆍ우주ㆍ생명ㆍ만사만물은 우주 대법이 개창(開創)한 것인바, 생명이 그에 어긋나면 곧 진정한 패괴(敗壞)이고, 세인이 그에 부합할 수 있으면 진정 좋은 사람이며 동시에 선보(善報)와 수복(福壽)이 따를 것이다. 수련인으로서 그에 동화하면 당신은 바로 득도자(得道者) ⎯⎯ 신(神)이다.”(《전법륜》)

박해가 발생한 후 나는 매년 인연 있는 사람을 이끌어 대법수련에 들어오게 하거나 또는 진상을 명백히 알고 복을 얻게 했다.

한번은 97년에 태어난 고등학생을 수련으로 이끈 적이 있다. 당시 그녀는 겨우 16살이었다. 공부를 아주 열심히 했으며 철이 일찍 들었다. 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부친이 장애가 있는데다 도박을 좋아했고 엄마는 시내에 나가서 삼륜차를 몰았는데 친척의 도움을 받아서야 겨우 그녀와 동생의 학비를 댈 수 있었다.

나는 그녀의 안색이 아주 나쁜 것을 보고 어디 불편한 데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눈물을 흘리며 원래 생리가 끊어진 지 이미 석 달이 지났지만 어머니가 걱정할까봐 말조차 꺼내지 못했고 설령 말을 꺼내도 치료할 돈이 없다고 했다. 나는 이에 파룬궁을 한번 수련해보라고 권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 세대 학생들은 파룬궁에 대한 왜곡된 사설(邪說)을 많이 주입당해 직접적으로 말하면 놀라자빠질 게 뻔했다.

이에 주말마다 우리 집으로 불러 먹을 것을 해주곤 했다. 동시에 일부 공부방법을 좀 알려주었고 교과서에서는 배울 수 없는 중국 근대사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녀는 원래 교과서에서 말한 것들이 거의 다 진실이 아님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이어서 나는 파룬궁 진상을 들려주었다.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진상을 받아들였다. 당시 그녀는 시내 중점고교에서 다녔는데 성적이 거의 꼴찌로 반에서 50위권이라고 울면서 말했다. 집에 돈은 없고 몸까지 아프니 졸업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설령 대학시험을 치른다고 해도 학교에 다닐 형편이 못되었다. 나는 네가 나를 따라 파룬궁을 배우면 모든 것이 좋아질 거라고 하자 그녀는 몹시 배우고 싶어 했다. 이에 나는 그녀와 함께 연공하고 법을 공부하는 시간을 배치했다.

우선 저녁에 자습을 끝내고 모두들 잠 들면 그녀는 몰래 욕실에 들어가서 동공을 연마했고 이어서 침대 위에서 이어폰을 꽂고 한 시간 설법을 듣는다. 이렇게 약 12시 30분쯤에 잠이 들었고 아침에 일어나 정공을 연마한다. 6시 정각에 다른 학생들과 함께 일어나 아침 체조를 한다. 그녀는 이 일정을 아주 잘 버텨냈다.

일주일 후 우리 집에 온 모습을 보니 완전히 선녀처럼 변해 있었다. 마치 12~3세 아가씨처럼 피부도 희고 고와졌고 전에 뚱뚱한 몸매에 누렇게 뜬 피부를 지녔다고는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그녀는 안경을 끼고 내게 말하길 콧 위의 붉은 점이 지워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그 붉은 점은 체내의 독소가 나오는 것으로 소업(消業)이라고 했다. 꾸준히 견지하면 갈수록 좋아질 거라고 하자 아주 기뻐하면서 미래에 대한 신심으로 가득했다.

한 달 후 월경이 돌아왔다. 몸이 건강해지자 정력도 충만해졌으며 대법을 수련해 지혜가 열리자 성적도 단번에 올라갔다. 수학은 늘 반에서 1등이었고 종합성적도 10등 안으로 들어갔다. 학교에서는 또 그녀만 유일하게 특별히 생활이 어려운 학생이란 명목으로 1년에 2천위안의 보조금을 주기로 했다.

나는 그녀에게 혼자 법을 얻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부모님께 진상을 알리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여름방학에 집에 돌아가서 부모님이 네 변화가 아주 큰 것을 보면 진실을 알려주라고 했다. 뜻밖에도 부친은 그녀가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것을 알고는 크게 화를 내며 무슨 분신자살이요 자살을 언급하면서 파룬궁을 연마하지 말라면서 만약 계속 연마하면 부녀관계를 끊겠다고 했다.

그녀는 나를 찾아와 울면서 하소연했다. 나는 우리는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니 너의 선(善)과 인(忍)으로 부친에게 진상을 알리고 네가 아는 진실한 파룬궁과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것이 같지 않다고 말해주라고 했다. 부모님이 닭과 오리를 키우느라 힘들었는데 그녀는 매일 부모님의 일을 도와주었고 인내심을 갖고 《전법륜》이란 책에서는 원래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얘기했다고 말해 주었다. 엄마는 서서히 TV에서 한 말이 전부 가짜임을 믿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친은 아무리 말해도 깨닫지 못했다. TV에서 한 말이 어떻게 가짜일 수 있겠느냐면서 좋은 거라면 왜 연공하지 못하게 하느냐고 했다.

하지만 꾸준히 견지하자 나중에 부친도 서서히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또 어머니가 매일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자 집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그 이후 매년 약 10만 위안의 수입이 생겼고 이전의 궁핍했던 생활과는 천양지차가 되었다.

그녀는 졸업성적이 반에서 2등이었다. 내가 전공 선택을 도와 성(省)에서 가장 좋은 대학에 진학했고 지금은 이미 대학을 졸업해서 순조롭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또 70대 한 기독교 여자 신자가 있었는데 걸음걸이가 불편했다. 한번 앉으면 일어나기 힘들어 계단을 내려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녀는 내가 젊은 사람들보다 동작이 가벼운 것을 보고 몹시 부러워했다. 내가 파룬궁을 연마한다고 소개하자 그녀는 자신은 TV에서 하는 말이 옳지 않다고 말했다. 파룬궁이 그렇게 나쁘다면 왜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가 그들이 다 바보란 말인가? 라고 말했다.

그녀는 내게 얼마나 오래 배워야 효과를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건 당신의 성의를 보아야 하며 만약 마음을 들여 배우고 날마다 책을 본다면 동작은 내가 가르쳐줄 수 있는데 《전법륜》을 다 배우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당장 나를 따라 배우겠다고 했다. 그녀의 퇴직한 남편도 같이 배웠다.

나는 저녁에 두 부부와 함께 법을 공부하고 또 연공동작을 가르쳐주었다. 2강을 읽고 나서 제1장 공법을 가르쳤는데 그녀에게 곧장 소업반응이 나타났다. 밤에 두 차례 화장실에 가서 물 설사를 했다. 이튿날 나를 만나서는 기뻐하면서 설사를 하고 나서 몸에 힘이 나서 아침에 미음을 많이 먹었다고 했다.

그녀의 남편은 영문을 몰라 하며 설사하면 당연히 힘이 빠져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 그녀는 힘이 빠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정신이 났다. 나는 파룬궁은 불가(佛家)의 대법으로 진정한 불법(佛法)은 사람을 제도하며 속인의 이치에 따라 볼 수 없다고 했다. 《전법륜》을 여러 번 보면 그 안에 모든 답안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오성이 좋았다. 그녀는 어제 읽은 책에서 스승님께서 신체를 청리해준다고 하셨다고 했다. 남편도 기뻐하면서 그럼 이 설사는 일반적인 식중독과는 다른 일이며 이것이 신체를 청리한 거라고 했다. 또 TV에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병이 있어도 약을 먹지 않는다고 하더니 이걸 보면 그들이 파룬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기뻐서 큰 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는 왜 당신들이 이 공을 연마하는지 알 것 같아요. 내 나이에 병도 없고 자식들을 연루시키지도 않고 향을 올리면 되잖아요. 나는 배워야겠어요.”

나는 많은 수련생들이 설사 감옥에 들어가거나 생명을 잃을지언정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이렇게 7일 만에 《전법륜》을 다 읽었고 연공은 겨우 3장까지 배웠는데 그녀 혼자 계단을 내려갈 수 있게 되었다.

파룬따파가 세상에 전해진 지 이미 30년이 되었다. 사실 대법 진수제자(真修弟子)마다 모두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무릇 사람 몸을 얻기 어렵고 중토에 태어나기 어려우며 정법을 만나기 어렵다. 이 세 가지를 겸비한다면 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서유기》)

역사적인 기록에 따르면 오직 석가모니부처만이 세상에서 사람의 형상으로 불법(佛法)을 전했을 뿐이다. 지금 말법(末法)시기의 말겁(末劫)시기에 사존께서는 다시 한 번 사람의 형상으로 세간에서 우주대법(宇宙大法)을 전파해 세인을 구도하시니 이는 신불(神佛)의 무량한 자비이다!

이 자리에서 제자는 다시 한번 사존의 자비하신 고도(苦度)에 감사드립니다!

(끝)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6240

求道不成反招附体 人生无望天降正法 | 法轮大法正见网

一 我出生于五十年代末,算是那个年代的幸运儿。说幸运是我得益于家庭,读了一些古典名著、中外小说。那时的学校不正常上课,我便有了大量时间看书。传统文学作品都是当时被批判的东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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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견망

글/ 육문(陸文)

인류 역사상 모든 성인(聖人)과 선지자(先知者)들은 모두 공경하고 겸손하며 남을 높이며 자신은 낮췄다.

공자는 “세 사람이 지나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라고 했다.

예수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라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내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바로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점이다.”라고 했다.

중국 전통문화에서 《역경》 ‘겸괘(謙卦)’에서는 “겸손한 군자는 자신을 낮춰 스스로 기른다”(謙謙君子,卑以自牧)고 했다.

각자(覺者)는 창우(蒼宇)를 통찰하고 지혜가 무한해서 하늘 밖에 하늘이 있고 사람 밖에 또 사람이 있음을 잘 알고 또한 자신이 먼지처럼 보잘것없다는 것을 잘 안다. 각자(覺者)가 보기에는 신명(神明)이 제일 위에 있고 남이 그 다음이며 자신은 마지막에 위치한다.

석가모니는 왕자 출신임에도 전혀 부귀를 자랑하거나 남에게 함부로 하지 않았으며 늘 예의 바르고 겸손하며 선량했다. 그는 중생을 자기 부모나 부처님처럼 보았고 다양한 교화를 펼쳤으며 누구든 가리지 않고 베풀었다.

어느 날 석가모니가 선방(禪房)을 지나다가 한 연로한 비구가 침대에 병들어 누워있는데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았다. 이에 대야를 들고 가서는 병자의 얼굴을 직접 씻겨주었다. 석존은 또 노 비구를 부축해 앉히고는 손으로 가볍게 그의 앞가슴과 등을 두들겨주었다. 노 비구가 기침하다가 가래를 뱉는 바람에 석존의 얼굴과 몸에도 튀었다. 하지만 석존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했다. 노 비구가 너무 죄송해하자 석존은 자비롭게 웃으며 위로했다. “별일 아니고 이는 아무 일도 아닙니다. 우리는 다 출가인이니 노인이나 어려운 사람을 사랑하고 병자를 돌봐야 합니다. 이는 출가인이 당연히 할 일이니 그대는 개의치 마시오. 가래가 나왔으니 좀 편해졌을 테니 빨리 물을 마시고 다시 누워 쉬도록 하시오.”

예수는 비록 신(神)의 아들이지만 아랫사람에게 묻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허심탄회하게 가르침을 구했다. 예수는 또 자신을 신으로 자처하지 않았고 요한의 세례를 받았으며 당시 예의를 따랐다. 예수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었고 신적을 발휘해 문둥병환자를 치료하고 천국의 복음을 펼쳤지만 한 번도 자신을 과시하지 않았고 모든 영광을 아버지 하나님께 돌렸다.

대법 사존께서는 왕 중의 왕이시지만 허세라고는 전혀 없으시다. 어디를 가든 늘 남을 고려하시며 민중들과 괴리되어 오만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낮은 자세로 겸허하고 상냥하며 친근하셨다. 잠도 작은 여관에서 주무셨고 라면을 드셨지만 운전기사에게는 통닭을 사주셨다. 누가 무시하거나 오해해도 웃어 넘기셨고 한 번도 남을 야단치지 않으셨다.

우리는 대법의 제자다. 사부님께서는 “겸허(謙虛)해야 하며 그래야만 일을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성망(聲望)은 법 학습을 잘함으로써 수립되는 것이다. 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어찌 잘못이 없을 수 있겠는가?”[1]라고 하셨다.

내 생각에 수련과정 중에 우리는 반드시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겸손한 사람은 내심에서부터 사부님이 위대하고 법이 위대함을 알아야 하며 자신이 부처님의 은혜를 입어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났다고 알아야 한다. 자신이 아무리 많이 배웠든 다 창해일속(滄海一粟 푸른 바다의 한 알의 좁쌀)일 뿐이다. 자신이 얼마나 일을 했든지 모두 미미해서 말할 나위조차 없다. 자신이 얼마나 깨달았든지 모두 작은 피모(皮毛)에 불과하다. 자신이 아주 많은 방면에서 무지하고 무능함을 승인해야 하며 자신이 아주 많은 때 잘못을 범했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겸손한 사람은 또 이렇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우선 대화할 때 말투가 느리고 조용조용해야 하며 큰소리로 명령하듯이 하지 말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일 처리 중의 어투, 선한 마음, 도리(道理)를 더하면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으나 명령은 영원히 할 수 없다!”[2]라고 하셨다. 또 일을 할 때 자신을 내려놓고 정체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일을 할 때 모르는 것이 있으면 겸허하게 여러 사람들과 함께 탐구하고 토론해야 한다.”[1]라고 하셨다. 교류할 때 허심탄회하게 건의를 받아들이고 안으로 자신을 찾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저도 여러분과 같은 수련자이기에 일을 하는 중 잘못을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일은 제가 잘못했으니, 그럼 바르게 하도록 하겠습니다.”[1]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진정으로 착실한 수련 중에서 잘 수련한 동수일수록 더욱 겸손하고 선량하다. 속담에 “부처님의 손은 솜처럼 부드럽고 입으로는 연꽃을 토(吐)한다”고 했다.

수련이란 오만을 닦아 버리고 겸손을 닦아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가 말을 하거나 일을 할 때 사부님을 지극히 높이고 중생을 부각시키며 자신은 낮춘다면 겸손으로 나아가고 성숙으로 나아가며 천국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정진요지》<어떻게 보도할 것인가>
[2] 리훙쯔 사부님 저작:《정진요지》<청성>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6142

정견망

글/ 송명(宋明)

【정견망】

이 시리즈 문장의 후기를 쓰던 날 아침 나는 큰 거리에서 대기원(大紀元)에서 발표한 두 장의 정중성명 스티커를 연속으로 보았다. 두 번째 스티커가 부착된 옆에 한 여성이 걸어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읽고 있었다. 나는 이 좋은 기회를 이용해 그녀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키려고 생각했다. 내가 막 그녀에게 다가가려던 순간 그 여인은 신속히 손톱으로 스티커에서 글자를 파내고는 신속히 자리를 떴다.

내가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그녀는 성명에서 “이 사악한 당, 마교(魔敎)는 역사적으로 중생에 대해 신불(神佛)에 대해 하늘에 사무치는 큰 죄를 저질렀다. 신(神)은 반드시 이 악마를 청산할 것이다”에서 ‘불(佛)’이란 글자를 긁어냈다.

나는 아주 이상했는데 이 여인의 행동은 완전히 비정상이 아닌가? 만약 대기원 정중성명을 인정하지 못하겠으면 그냥 돌아서거나 심지어 스티커 전체를 찢어버리면 그만인데 하필이면 겨우 한 글자를 파낸단 말인가? 또 만약 정중성명을 인정한다면 불(佛)이란 글자를 파낼 필요는 더욱 없다.

이는 신불(神佛)을 믿지 못하는 표현이다.

반대로 신불을 아주 믿는 이들도 있다. 어느 날 모친(동수)이 볼일을 보러 밖에 나갔다가 큰 거리에서 한 40대 장애인 남성이 자기 모친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모친이 그 여인과 대화를 나눠보니 아들이 십여 년 전에 넘어진 후 장애가 생겨 행동이 불편하며 좌측으로 ‘반신마비’ 증상이 나타났지만 정신은 멀쩡하다고 했다.

모친이 ‘호신부(護身符)’를 하나 꺼내서 주자 그 남자는 “대법을 선하게 대하라(善待大法)”는 구절을 읽더니 약간 쉰 목소리로 “당신은 보살님이세요, 보살님!”이라고 했다.

모친이 웃으면서 나는 보살이 아니니까 우리 사부님께 감사 드리세요! 라고 했다. 그러면서 호신부 위에 적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 9자 진언(真言)을 늘 외우면 복을 받을 거라고 했다.

그러자 그 남자는 곧 큰 소리로 따라 읽었다. 모친이 볼일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이 모자를 또 만났다.

모친이 그에게 물었다. “아직도 9글자를 기억하나요?”

그러자 그 남자는 곧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라고 했다.

모친이 또 집에서 TV를 보냐고 묻자 옆에 있던 그의 모친이 본다고 대답했다. 이에 모친이 마침 션윈(神韵)공연 CD가 있는데 아주 좋으니 집에 가서 잘 보라고 했다. 이 말이 나오자마자 그 남자는 곧 오른손을 뻗어서는 CD를 달라고 하면서 또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보살님이세요, 보살님.”

모친이 돌아와서 내게 이 일을 말했을 때 나는 그가 정상인들보다 훨씬 총명하다며 감탄했다.

오늘날의 중국인들은 장기간 공산사당의 당문화(黨文化)에 독해되어 많은 이들이 민족의 역사나 중국 신전문화에 대해 모르거나 또 분리되어 있다. 특히 중공사당(中共邪黨)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래 전체 중국사회의 도덕이 심각하게 미끄러져 내려가, 오늘날 많은 이들의 도덕수준이 극히 낮아지게 했으며 신불을 믿는 최저선 역시 아주 낮아졌다.

마치 서문에서 언급했던 그 상인이나 방금 언급한 글자를 파낸 여인과 같다. 전자는 눈에 보이는 사실마저도 믿지 않고 후자는 이지가 없는 행동을 했다. 그렇다면 이런 세인들을 마주하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불(神佛)은 무량한 지혜가 있어 부동한 형식으로 세인들에게 구도 받을 기연을 펼쳐내 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본래 신불을 잘 믿으니 그럼 신불의 직접적인 구도를 감수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예술을 좋아하니 그럼 순선순미(純善純美)한 션윈(神韵) 공연을 보여주고, 어떤 이는 정의감이 있으니 그럼 중공이 도대체 얼마나 사악한지 들려주고, 또 어떤 이는 마음이 선량하니 ‘진선인(真善忍)’을 늘 마음에 기억하라고 알려줄 수 있다.

또 어떤 이가 인과응보를 믿지 않으면 그럼 당신은 현세현보(現世現報)를 믿는가, 또 어떤 이는 신불에 대해 악담을 하지만 신불의 자비로 결국에는 그의 마음에 선념(善念)을 생기게 할 수 있을 것이며, 또 어떤 이는 완고한 돌처럼 고집스러운데 그럼 이렇게 반복해서 당신을 위해 밝은 하늘을 열어줄 수 있다.

그러나 정말로 십악불사(十惡不赦)한 사람도 있는데 그럼 그를 기다리는 것은 바로 신불의 무상(無上)한 위엄(威嚴)이다.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자들이 오늘날 하는 일체는 우주정법(宇宙正法)의 거대한 홍세(洪勢)와 신불의 자비로운 구도를 받들어 한 차례 한 차례 세인을 위해 온 것이다. 파룬따파가 세상에 전해진 지 20여 년이 되었고 박해에 반대하며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는 가운데 신불이 구도한 사례는 수없이 많고 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역사의 오늘날 우리가 이 일체를 되돌아보면서, 역사상의 중화신전수련문화를 회고해보고, 우리가 지나온 무수한 세월의 여정을 회고해보는 것은, 기존의 고난과 휘황함을 거슬러 추적하려는 게 아니라 진실한 역사를 환원해 오늘날 세인들이 진상을 알 수 있도록 큰 문을 열어주고 또한 역사의 이 관건적인 시각에 신불이 구도하는 기연을 잘 파악하게 하려는 것이다.

파룬따파가 중생을 구도한 은혜는 그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으며, 리훙쯔(李洪志) 대사가 중생을 구도하신 홍대한 은혜는 그 어떤 언어로도 감격을 표현할 수 없다.

오늘의 역사를 견증하는 이것은 역사라는 이 유유한 세월 속에서 아마 창상(滄桑)이 한순간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한창 발생하고 있는 일, 당신과 나 또는 그가 경험한 하나하나의 순간 모두 당신이 믿든 믿지 않든 하나의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것은 바로 신불(神佛)은 이미 인간 세상에 와 있고 신불은 바로 당신을 위해 와 있다는 점이다.

(전체 시리즈 종결)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118478

정견망

글/ 송명(宋明)

【정견망】

중국 고대에는 승려든 도사든 그가 오직 출가하기만 하면 세인들은 그를 ‘반신(半神 역주: 절반은 신이고 절반은 사람이란 의미)’으로 간주했고 더 이상 평범한 사람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역사상의 불교와 도교는 비록 한가지 수련형식에 불과했지만 그 속에서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다.

부처 수련을 말하면 최후의 목표는 바로 초과나한(初果羅漢)에서 시작하는 부동한 정과(正果)의 과위를 얻는 것이고, 수도(修道)를 말하면 소위 장생하는 도에서 최후에는 진인(真人)으로 수련성취 되는 등이다. 다시 말해 이는 불도(佛道) 양대 체계의 차이가 조성한 각기 다른 표현이다.

한 평범한 사람이 신불(神佛)처럼 그런 위대한 생명으로 수련 성취되는 이것은 신불이 중생에게 개창해준 일종의 개인해탈을 목적으로 하는 생명을 구도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이 수련자에 대해 말하자면, 분명한 것은 인류라는 이런 생명형식을 초월한, 보다 높은 표준과 요구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출가인을 ‘반신(半神)’으로 간주하게 된 하나의 원인이다.

또 다른 원인이라면 역사상의 수련은 어느 가(家) 어느 문(門)을 막론하고, 첫 시작부터 대부분 사람 신체의 가장 표면에서부터 시작해서 개변하는 것으로 이렇게 하면 일부 신통한 공능이 나오기가 아주 쉽다. 그렇다면 세인들은 곧 그를 ‘신(神)’으로 여기게 된다. 사실 수련의 각도에서 말하자면 그는 겨우 방금 입문한 것에 불과하며 아울러 정법문(正法門) 수련은 모두 공능이나 신통 따위를 중시하지 않는 것으로 대도(大道)와 불법(佛法)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왜 ‘반신’인가? 왜냐하면 필경 수련인에게 잘 닦지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인데, 잘 닦이지 못한 그 일면은 바로 사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중국 고대, 특히 주(周)나라 이전 고대 역사 속에서, 당시의 인류사회는 도덕표준이 상대적으로 비교적 높았기 때문에 한편으론 세인들에게 아주 쉽게 펼쳐낼 수 있었고 또 다른 한편으론 사람이 신(神)에 대해 이런 바른 믿음(正信)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수련 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람과 신이 함께 하던(人神同在) 시기였다. 우리는 《봉신연의》 속에서 당시의 그런 구체적인 표현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해나감에 따라 인류의 사상 역시 갈수록 복잡해졌으니 바로 사람마음이 갈수록 더 자사(自私)하게 변한 후 전체 사회도덕 역시 아래로 더욱 빨리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렇다면 신불(神佛)은 더는 쉽사리 사람에게 현현할 수 없게 되었다. 또 사람 역시 신불에 대해 갈수록 믿지 못하게 되었고 또한 도덕이 계속해서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소위 세상 기풍이 날로 저락해 인심이 예전과 같지 않은데 이런 전반적인 표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불은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람에게 경고하고, 선을 향하도록 권고해, 생명이 진정으로 구도 받을 수 있는 기연을 기다릴 수 있도록 했다.

“고개를 들면 석 자 머리 위에 신령이 있다.”

“사람 사이의 비밀스런 말도 하늘은 우레처럼 듣는다.”

“사람마음에 일념(一念)이 생겨나면 천지가 모두 안다.”

“선악은 언젠가는 보응이 있으며 단지 빠르고 늦은 차이일 뿐이다.”

그렇다면 인간세상이란 이런 미혹의 환경 속에서 신불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고, 신불에 대한 바른 믿음이 있을 수 있는가 여부는, 사람에게 있어 하나의 아주 관건적인 문제가 되었다.

왜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만약 신(神)이 정말로 사람을 만들었다면 그럼 신과 사람은 아주 깊고 끊으려 해도 끊어버릴 수 없는 연원관계가 있는 것이다. 만약 한 사람이 신을 믿지 않거나 심지어 신을 배신한다면 그럼 이 사람은 어떤 방향으로 가겠는가? 이는 몹시 두려운 후과(後果)가 아닌가?

중공 사당의 사악함을 말하자면 그것은 사람이 신불을 배반하게 만들어 사람을 뿌리가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으며 사람이 진정으로 신의 구도를 받을 수 있는 희망을 단절시켰다. 바로 그것이 무신론(無神論)을 선양해 조성한 사악한 범죄의 하나다.

세계적으로 많은 민족의 문화 속에는 서로 다른 신이 사람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고 또한 역사적으로 오늘날 신이 돌아온다는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성경에서는 신이 장차 돌아와 사람에 대해 최후의 심판을 진행한다고 한다. 불경에는 우담바라 꽃이 활짝 피어날 때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세상에 내려와 법을 전하고 사람을 구도한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의 예언은 이보다 더욱 체계적이고 더욱 다양한데 거의 매 조대(朝代)마다 하나의 체계적인 예언을 후인들에게 남겨주었다. 그것들은 모두 역사상 오늘날 한 가지 큰 사건이 발생한다고 예언하는데 그중 한 가지 표현이 바로 사람이 신과 함께 하는 시기다.

이상 수많은 사례와 예언들이 모두 다음 한 가지 사실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바로 지금 억만의 사람들이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는 현상과 중공사당의 사악한 탄압 및 이 때문에 생겨난 파룬궁 수련자들이 반박해(反迫害) 중에서 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하는 활동이다.

파룬궁은 또 파룬따파(法輪大法)라고도 불리는 불가(佛家)의 상승수련대법이다. 1992년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이 중국에서 전하셨고 우주 최고의 특성 ‘진선인(真善忍)’을 지도로 삼아 불과 7년 만에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방식으로 수련인 수가 억 명에 달했다. 하지만 1999년 7월 20일 중공사당이 당파의 이익을 위해 잔혹한 탄압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중단되지 않고 있다.

파룬궁이 대표하는 ‘진선인(真善忍)’과 공산당이 대표하는 사악(邪惡)이 보여준 지난 십수년간의 박해와 반박해란 심각하고 선명한 대비는 파룬궁 진상을 알 기회가 있는 매 세인에게 각기 다른 정도로 내심 깊이 충격을 주었고 세인들에게 진일보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파룬궁은 대체 무엇인가? 공산당은 왜 이렇게 사악한가? 왜 이번 박해가 있을 수 있는가? 이번 박해에 직면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번 박해가 비록 사악하고 또 관련된 사람의 수가 아주 많으며 박해의 표현 역시 대단히 잔혹하지만 억만 파룬궁 수련자들은 모두 신의 길 위에서 걸어가는 수련인들이다. 그들은 반신(半神)이며 그들은 잘 닦인 신(神)의 일면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역사상의 수련자들과는 같지 않다. 그들은 생명의 가장 미시적인 곳부터 개변이 시작되기에 표면적으로는 큰 면적으로 신통한 공능을 표현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은 신(神)을 박해할 수 없는 것으로 진정한 파룬궁 수련자는 모두 장차 원만해서 귀위(歸位)할 것이니 박해자의 끝장은 생각해보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박해받는 것은 사실 세인들이다. 세인은 진상을 모르기 때문에 중공사당이 날조한 거짓말을 듣고 믿거나 또는 이번 박해는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여기면서 사실을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모두 자신의 생명을 진정한 위기 속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이 위기는 바로 정의(正義)와 사악(邪惡)의 사이에서 당신이 정의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곧 사악을 따라갈 것이며 사악의 끝장, 공산사당의 끝장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스스로 파룬궁을 박해하기로 선택한 그 날부터, 우주대법 ‘진선인(真善忍)’과 대립면에 선 그때부터, 그것의 끝장은 이미 잘 정해진 것이다.

동서고금에 무수한 사람들이 신불(神佛)을 찾아왔고 신불이 걸었던 길을 찾아왔다. 하지만 신불의 출현은 오직 신불의 의지에 따라 출현할 수 있을 뿐 사람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세간에서 행하고 사람의 언어로 법리(法理)를 알려야 하니”(《정진요지 2》〈신(神)의 서약은 실행 중이다〉) 신불의 귀래(歸來)는 오늘날의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사람이 진정으로 구도받을 수 있는 기연(機緣)이 도래한 것이다.

세인이 깨달을 수 있는가 여부, 믿을 수 있는가 여부는 그가 구도 받는데 있어 지극히 중요한 조건이자 또한 구체적인 표준이 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려줄 때, 당신이 한 장의 전단지나 CD를 볼 때,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신불이 이미 인간 세상에 있다고 알려줄 때, 당신의 태도가 장차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전세계 순회공연을 하고 있는 예술의 성대한 축제인 ‘션윈(神韵)’을 본 관객들이 공연이 끝난 후 집에 돌아가는 것조차 잊게 만드는 이유는 진정한 수련인이 연기하는 예술의 표현력 때문이자 또한 진정으로 신불이 무대 위에서 인간 세상에 왔노라고 펼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어떤 관중은 정말로 신불(神佛)이 내려왔다고 경탄하고, 어떤 이는 그것은 신불의 자비로운 구도라면서 감동한다. 역사가 오늘날 이 한 페이지를 넘길 때면 미래의 사람들은 대법 수련자의 위대함을 보게 될 것이며 파룬따파(法輪大法)와 파룬따파를 중생에게 가져다주신 리훙쯔(李洪志) 대사님의 큰 은혜에 더욱 감사하게 될 것이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118477

정견망

글/ 송명(宋明)

【정견망】

무엇이 수련인가?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은 《전법륜》에서 한구절로 간단하게 “당신에게 한 가지 진리를 알려주겠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라고 언명하셨다. 이 말은 듣기에는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실천하자면 정말로 쉽지 않은데 특히 세속을 벗어나지 않는 이런 대법수련의 형식 속에 깊은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 오직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만이 절실히 체험할 수 있다.

높은 계단 천척길을 오르나니
가파른 굽이굽이 발걸음이 더디네
고개를 돌리니 마치 정법수련을 보는 듯
반공중에 멈추면 제도받기 어렵도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만근다리 옮기나니
괴로움을 참고 정진하며 집착을 버리네
천백만 대법제자
공성원만하여 높은 곳에 있도다

이 시는 리훙쯔 선생님이 1996년 4월 15일 발표하신 《홍음》〈태산에 올라〉로 파룬따파 수련자들에게 정진의 나침반을 주신 것이자 또 세인들에게 파룬따파 수련자들의 수련과정을 이해하도록 형상화시키신 것이다.

자고로 유전되어 내려왔거나 또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수련방식과 달리 대법수련은 사찰에 들어가지 않으며 또한 산에 들어가 수련하지도 않는다. 수련자는 더욱이 나이, 성별, 인종, 사회계층이나 직업 등을 따지지 않는다. 직접 사람마음을 가리키는 ‘진선인(真善忍)’ 우주근본대법은 마치 밝은 등불처럼 세간에서 미혹의 안개를 타파했다. 다시 말해 수련에 뜻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진정한 수련으로 들어갈 수 있는 큰 문을 열어주셨다.

“대법(大法)을 널리 전하니, 소문을 들은 자는 찾고, 얻은 자는 기뻐하는바, 수련자가 날로 많아져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정진요지》〈사부를 모시다〉)

1992년 파룬따파가 공개적으로 전해진 후 불과 7년 사이에 인연 있는 사람들이 잇따라 찾아와 파룬따파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방식으로 신속하게 1억 명에게 전해졌다. 지금 사람들은 일부 역사사진과 파룬따파 수련심득체험을 통해 당시의 성대했던 상황을 볼 수 있다.

비록 당시 중국사회는 표면적인 형식은 평온했지만 억만 파룬따파 수련자들이 수련을 통해 심신이 건강해지고 도덕이 제고되어 가져온 거대한 변화가 사회 각 방면에 끼친 영향은 오히려 아주 감동적이고 심원한 것이다. 수련자들은 수련을 통해 심성(心性)이 승화된 후 각종 사적(事跡)・신적(神跡)을 통해 그들 주변의 수많은 세인들을 감동시켰다.

하지만 1999년 7월 노스트라다무스가 《제세기》 예언에서 언급한 것처럼 파룬따파 수련자들을 겨냥한 사악한 박해가 발생했다. 우주 중의 낡고 패괴된 세력은 그것들의 위사(爲私)한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대법과 대법제자를 고험한다는 구실로 인간세상의 중공사당을 조종해 한차례 전례 없는 거대한 겁난을 발동시켰으며 그 사악한 정도는 전 세계를 뒤덮었다. 당시 상황을 되돌아보면 검은 구름이 온 도시를 짓눌러 마치 질식시킬 것 같은 느낌이었고 천지를 뒤덮을 듯이 닥친 사악한 탄압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기억에 깊이 남아 있다.

바로 소위 이번 사악한 고험이 가장 암담할 때인 2000년 5월 22일 리훙쯔 선생님은 《심자명(心自明)》이란 시를 발표하셨다.

법은 중생을 제도하고 사부가 인도하나니
돛 하나 오르자 억만 돛이 나부끼네
집착을 내려놓으면 가벼워진 배 빠를 것이요
인심이 무거우면 바다 건너기 어렵도다
풍운이 돌변하여 하늘을 무너뜨릴 듯
산을 밀어내고 바다를 뒤엎을 듯 거친 파도 이네
대법수련 견정히하고 사부를 바짝 따라야 하나니
집착이 크면 방향을 잃으리라
배가 뒤집히고 돛은 찢겨 살려고 도망가나니
흙모래 깨끗이 씻기면 금빛 나타나리라
생사란 큰소리 쳐서 될 일이 아니니
될 수 있는가 없는가는 진상을 보아야 하리라
훗날에 가서 원만할 때
진상이 크게 나타나 천하는 끝없이 펼쳐지리라

하늘까지 닿을 듯한 거대한 난을 마주해 어느 것을 따르고 어느 것을 버릴 것인가? 모든 진정한 대법수련자들은 모두 자신이 직접 겪은 실천을 통해 동일한 대답을 내놓았다.

중국 역사상 모든 수련은, 어떤 수련이든 모두 개인의 해탈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세인이 수련자를 어떻게 대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수련자는 세간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또 세인의 일에 관여하지도 않았고 세인의 좋고 나쁨은 그들을 따라갈 뿐이었다.

역사상 수련의 더욱 실질적인 목적은 바로 오늘날 사람이 대법을 인식할 수 있도록 문화를 다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대법수련에서 이런 ‘대도무형(大道無形)’의 수련형식은 역사적으로 참조할 모델이 없는 것이다. 어떻게 박해에 반대하는 가운데 대법제자의 수련을 완성하고, 어떻게 진정으로 박해받는 사람들(중공의 거짓과 기만에 속은 광대한 민중들)을 구도할 것인가는 곧 대법수련자 앞에 놓인 하나의 진정한 고험이 되었다.

이번 사악의 박해는 오만방자한 허장성세로 시작했지만 박해 중에서 중공사당은 또 의도적으로 사악한 범죄를 은폐시켰다. 더욱이 대법수련자들이 박해 속에서 표현해낸 평화적이고 이성적인 대선대인(大善大忍)이 더해졌기 때문에 중국사회는 표면적으로 무슨 거대한 파동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사람들은 대법수련자들이 뿌리박은 불법진리(佛法真理)의 대선대인(大善大忍)을 감수할 수 있었고, 그들이 묵묵히 치른 거대한 감당과 사심 없는 대가 및 이를 통해 중국사회에 가져다준 심각한 영향을 감수할 수 있었다.

박해가 시작된 두 달 후 대법수련자들은 당시 겹겹의 봉쇄를 뚫고 북경에서 성공적인 외신기자회견을 열어 실명으로 파룬따파 수련자가 사악한 박해를 받은 실제 상황을 전 세계에 최초로 알려 큰 주목을 받았다. 당시 기자회견에 참가했던 대법수련자들은 나중에 중공사당의 광적인 보복 중에서 여럿이 체포되었고 특히 재기발랄했던 대법 여제자 정연(丁延 딩옌)은 1년 후 하북 승덕(承德) 여자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중공사당은 중국민중을 겨냥해 한 차례 한 차례 끊임없이 파룬따파를 비방하는 거짓과 기만 을 날조해냈다. 특히 2001년 1월 중공사당이 정교하게 꾸며낸 ‘천안문 분신자살사기극’은 민중들이 파룬따파를 증오하도록 대대적으로 선동했다.

2002년 3월 5일 길림성 장춘 케이블TV 8개 채널에서는 동시에 파룬따파 진상을 알리는 《분신자살인가 아니면 사기극인가(是自焚還是騙局)》, 《파룬따파가 세계에 널리 전해지다(法輪大法洪傳世界)》 등의 삽입영상이 방송되었다. 방송시간은 약 4~50분에 달했고 수십만 명이 시청했으며 영상을 통해 많은 민중들이 파룬따파가 모함받고 박해받은 진상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진상방송에 성공한 것은 오히려 수많은 파룬따파 수련자들의 거대한 희생을 대가로 한 것이다. 강택민(江澤民 장쩌민)은 “무조건 죽여라”는 비밀명령을 내려 5천여 명의 파룬따파 수련자들을 불법으로 체포했고 적어도 7명이 맞아 죽고 15명의 파룬따파 수련자들이 불법으로 4년에서 20년이란 무거운 판결을 받았다.

박해가 시작된 후 지금까지 명혜망(明慧網 밍후이왕)에서 각종 채널을 통해 2013년까지 수집한 자료(역주: 이 시리즈 문장은 2013년 작성되었다)에 따르면 파룬궁 수련자들이 박해로 사망한 3643건의 사건을 찾아낼 수 있다. 또 보다 많은 박해치사 사건은 중공사당의 집단학살정책에 따라 정확한 수를 알 수 없는데 2005년 이후 관련자들의 폭로에 따르면 중국에는 대량의 강제수용소가 존재해 파룬따파 수련자들을 감금한 후 산 사람의 몸에서 장기를 적출하는 경천동지할 흑막이 있었다. 이는 인류도덕과 양지(良知)의 최저선을 초월한 것으로 “이 별에서 전례 없는 사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엄혹한 형세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많은 파룬따파 수련자들이 걸어 나와 다양한 방식으로 진상을 알리고 조사정법(助師正法)과 중생을 구도하는 수련의 길을 걷고 있다. 당시의 힘겨웠던 세월을 돌아보면, 천안문광장이든 다양한 거리나 골목에서든, 그 어떤 곳이든 중국인들이 나타나는 곳이기만 하면, 세계 도처에서 파룬따파 수련자들이 꾸준히 진상을 알리고 박해를 제지하며 중생을 구한 일들을 볼 수 있었다.

정의(正義)를 신장하고 이를 통해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2000년 8월 29일 홍콩 파룬따파 수련자 주가명(朱柯明 주커밍)과 북경 파룬따파 수련자 왕걸(王傑 왕제)은 중국최고검찰원에 강택민을 처음으로 고발했다. 지난 14년간 파룬따파를 박해한 원흉인 강택민에 대한 소송은 중국대륙은 물론 홍콩, 대만을 포함해 20여개 나라는 물론 심지어 유엔에까지 제기되었다. 2009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법원은 강택민, 나간(羅幹 뤄간) 등이 파룬따파를 박해하며 저지른 반인류죄 혐의로 아르헨티나 경찰국 국제형사부에 두 중공 관원을 체포하라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2004년 《구평(九評)공산당》의 발표는 전면적이고 계통적으로 공산당의 사악한 본질에 대해 최초로 깊은 분석을 진행한 것이다. 또한 공산당의 사악한 본성을 폭로하는 각도에서, 왜 파룬따파 수련자를 겨냥한 이번 사악한 박해가 발생했는지 설명해주었다. 또 수련의 각도에서 보자면, 파룬따파를 겨냥한 이번 박해를 역사적으로 정교(正敎)가 받은 많은 박해와 비교해보면 무슨 차이가 있는가?

박해의 표현형식은 같지만 대법수련자가 펼쳐낸 자비로운 거동은 오히려 역사적인 모든 표현과는 전혀 다르다. 박해에 반대하는 가운데 대법을 견정하게 수련하고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해 조사정법이란 역사사명을 완수한다. 이런 수련과정은 역사상의 일체 수련과정을 초월한 것으로, 이런 수련과정만이 대법수련자에게 부여된 진실한 수련과정 즉 정법수련(正法修煉)이다.

2006년 ‘션윈(神韵)’ 예술단이 창단되었다. 중화신전문화(中華神傳文化)를 부흥하고 널리 알리는 것을 사명으로 삼아 춤과 노래 기악으로 정통예술형식을 표현해 중화 5천년 신전문화의 정수를 최초로 세계무대에 펼쳐놓았다. 그동안 전 세계 순회공연 중에 수많은 관중들을 불러모았고 가는 곳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관중들이 순선순미(純善純美)한 중화신전문화를 감상할 때 또한 신불(神佛)의 표현을 진실하게 형상화시켜 펼쳐냈고 파룬따파 및 정법수련자의 위대함을 더욱 분명히 밝혔다.

사악이 박해하는 역사는 장차 우주정법(宇宙正法)의 홍대한 기세가 인간세상으로 들어오면서 끝날 것이며 중생 역시 장차 각자 부동한 선택 속에서 부동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다. 사람마음은 장차 반드시 올바르게 돌아갈 것이며 이 천지가 개벽된 이래 만고에도 만나기 힘든 대법수련(大法修煉)의 기연(機緣)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유일무이한 것으로 장차 인류 역사 속에 깊이 각인되어 대대로 전해지며 찬양받을 것이다.

(계속)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118476

정견망

글/ 송명(宋明)

【정견망】

유석도(儒釋道) 삼가(三家)의 사상학설 및 그것이 구체적으로 사회에 표현된 형식인 유석도 삼교(三敎)는 중화신전문명(中華神傳文明)의 주류를 대표하며, 중화 역사의 긴 흐름 속에서 줄곧 공생하면서 또 서로 다투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왔다. 이런 표현들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 한무제의 ‘독존유술(罷黜百家,獨尊儒術 백가를 물리치고 유학만을 존숭하는 것)’ 및 삼무일종(三武一宗)의 ‘멸불(滅佛)’이다.

도가(道家) 사상은 근원이 아주 길고 오래되어 위로 반고(盤古)가 천지를 개벽한 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져져 있다시피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 근원한다.

공자(孔子)의 유가사상은 선진(先秦)시기 ‘백가쟁명(百家爭鳴)’이란 휘황한 시대에 탄생했고 한무제 때 이르러 제왕의 치국요소에 부합했기 때문에 이후 제왕통치의 정통사상이 되었고 2천여 년 간 중국 역대 왕조의 교체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도가와 유가는 자고로 천 갈래 만 갈래로 연계되었고 공자는 또 일찍이 노자를 찾아가 예(禮)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도가와 유가는 대체 어떤 관계일까? 학자들은 흔히 사상이나 학설의 각도에서 다양한 인식이 있을 수 있지만 이 문제는 오직 수련의 각도에서 보아야지만 그 실질을 알 수 있다.

《사기》〈노자한비열전〉에는 노자가 공자에게 한 말이 기록되어 있다.

“그대가 말하는 사람들은 그 육신과 뼈가 모두 이미 썩어버리고 단지 그 말만 남아 있을 뿐이오. 또한 군자는 그 때를 만나면 관직에 나아가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이리저리 날려 다니는 쑥대처럼 굴러다니는 신세가 될 것이오. 내가 듣기에 뛰어난 상인은 물건을 깊이 숨겨두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이 보이고, 군자는 훌륭한 덕을 간직하고 있으나 외모는 어리석게 보인다고 들었소. 그대의 교만한 기색과 탐욕, 태도를 꾸미는 것과 지나친 욕망을 버리도록 하시오. 그런 것들은 모두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오. 내가 그대에게 말할 것은 단지 이것뿐이오.”

이 단락 대화는 얼핏 듣기엔 아주 간단해서 마치 그리 깊은 이해가 필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팔선득도전》에서 여동빈이 한 말이 이 대화에 대한 좋은 주석이 될 것이다.

​“성인 공자(孔子)의 학문은 입세(入世)의 정도(正道)이니 그 말이 평이 하고 인정(人情)에 가깝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범으로 삼을 수 있으며 사람마다 모두 이렇게 되면 천하는 일시적으로 태평해질 것이다. 그러나 영구적이고 항상된 치도(治道)는 아니다. 출세(出世)의 오묘한 뜻에 이르자면 노군(老君 노자)의 《도덕경》 안에 있는데 사람마다 모두 익히면 만년이 지나도 영원히 어지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 이 속의 지극한 이치는 바로 내가 순응하고 복종하는 것이나 지금 사람들은 오히려 홀시하면서 이단의 가르침으로 여긴다. 또 수많은 현문(玄門)의 요지(要旨)가 있으니 도술(道術)의 정종(正宗)이요 모두 인생 최고의 학문이다. 지금 스스로 통달한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은 도리어 천시하고 말하지 않는다. 이는 대도(大道)가 행해지지 않기 때문에 천하가 늘 어지러운 것이다.”

한편,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 대사님은 설법에서 아주 간단하고 명백하게 양자 간의 실질을 언급하셨다.

“유교 수련이 극히 높은 층차에 이르면 그것은 도가에 귀속된다.”[1]

“공자가 말한 것은 사람이 되는 도리이지 수련을 말한 것이 아니다.”[2]

“노자가 말한 것은 수련의 방법이다. 그러나 중국 사람은 실제로 유가사상과 도가사상을 한데로 합쳤다.”[3]

그러므로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역사상 진시황의 ‘분서갱유’나 또 후세 제왕이 도를 숭상하고 부처를 숭상하는 행위가 일시적으로 유교를 억제했다 해도 사실 모두 유가사상 및 유교의 정통을 단절시킬 수는 없었다. 비록 역사적으로 발생한 이민족이 한족(漢族) 국가를 침입한 몇 차례 시기에도 결국에는 모두 유가 정통사상의 영향을 받아 이민족의 문화를 융합시켰다.

중국 불교는 역사상 4차례 큰 법난(法難)이 있었다. 북위(北魏) 태무제(太武帝)의 폐불(廢佛) 6년은 문성제(文成帝)가 제위를 잇자마자 불법을 회복시키라는 조서를 내렸다. 북주(北周) 무제의 멸불(滅佛) 5년은 선제(宣帝)・정제(靜帝)가 뒤를 이운 후 다시 불법이 흥성해졌다. 당나라 무종(武宗) 회창(會昌) 연간의 6년 멸불은 선종(宣宗)이 즉위하자마자 불교가 다시 부흥했다. 후주(後周) 세종(世宗)의 멸불 4년은 송나라가 주(周)를 대신해 일어난 후 불교가 다시 부흥했다.

이렇게 몇 차례 불교의 법난을 둘러보면 이미 불도(佛道)가 서로 다투는 요소가 있었다. 가령 북위 태무제나 당 무종은 도(道)를 좋아했고 북주 무종은 불교와 도교를 억제하고 오직 유가만을 존중했다. 주 세종은 대체적으로 황로학(黃老學)에 통달했다.

하지만 수련의 각도에 서서 보자면 이 역시 후세인들에게 정법에 대한 박해는 필연적으로 박해자에게 악보를 가져다준다는 반면(反面) 교훈을 남겨준 것이다. 4차례 멸불은 짧으면 4년에서 길어도 6년을 넘지 못했고 불교는 늘 박해를 주도한 사람이 사망한 후 아주 신속하게 부활했다. 이는 표면적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것을 말하자면 소멸시킨 것은 사실 종교의 형식에 불과한 것으로 사찰을 파괴하고 승려를 환속시키는 등이다. 불법(佛法) 자체는 세속의 수단으로 소멸시킬 수 없었다. 중국 역사상 불교의 이런 전승과정은 사실 후인들에게 오늘날 정법(正法)을 인식할 수 있도록 참고로 남겨준 것이다.

또 다른 각도에서 말하자면 사실 도교와 불교는 세인들이 잘 아는 수련의 2가지 형식에 불과할 뿐이다. 불교는 8만 4천 법문이 있다고 하는데 모두 부처 수련을 할 수 있고 도교에서는 3천 6백 법문을 말하는데 모두 도(道)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민간에는 부동한 층차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또 다른 수련형식이 줄곧 존재해 왔으며 역조(歷朝)역대(歷代)로 단절된 적이 없었다.

고대의 수련인들은 세간 일에 관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세간 일 역시 그들의 신상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수련이야기는 오히려 줄곧 민간에 존재해왔고 부동한 층차에서 구두로 전해지거나 또는 비밀스런 방식으로 유전해 내려왔으며 또한 세인들의 연역(演繹)을 거쳐 신화나 민간전설로 형성되었다.

중국인들은 내심 깊은 곳에 모두 부처를 향하고 도(道)를 향하는 뿌리 깊은 마음이 있으니 이는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유전되며 끊이지 않고 전승해 온 신전문화(神傳文化)에 근원한다. 그러나 최근 1백년간 무신론을 선양하는 공산사당(共產邪黨)이 중화 대지에서 멋대로 잔학한 짓을 일삼으며 중국인들이 생존과 발전을 유지해온 신전문화를 전면적으로 파괴했다. 아울러 이를 통해 중국인들에게 심각한 재난을 가져다주었다.

이 방면에 관해서는 《구평공산당(九評共產黨)》에서 이미 전면적이고 깊이 있게 논단하고 있으니 이곳에서 부연하진 않겠다.

그렇다면 이렇게 유석도 삼교를 모두 소멸시키고 오로지 마르크스레닌주의만을 독존(獨尊)하면서 중화신전문화의 전승은 진정으로 단절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바로 이때 1992년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이 불가(佛家)의 기점 위에서 우주근본대법을 전하고 ‘진선인(真善忍)’ 우주 최고특성을 전하여 전승이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던 중화신전문화에 새로운 생기(生機)를 넣어주셨고 또한 중생들에게 생명이 진정으로 구도 받을 수 있는 희망을 가져다주셨다.

하지만 우주 중의 낡고 패괴(敗壞)된 생명들은 고집스레 정법(正法)에 대해 소위 고험을 진행한다면서 인간세상의 중공사당을 조종해 유사이래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거대한 겁난(劫難)을 발동시켰다. 이 겁난은 단지 중국인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법을 위해 온 모든 중생을 겨냥한 거대한 난이었다.

이번 박해는 1999년 7월 20일부터 지금까지 줄곧 지속되고 있으며 그것은 중국사회의 도덕과 양지(良知)를 훼멸한 재난적인 것이자 또한 직접적으로 사회를 전면적으로 패괴되게 했다. 또한 국제사회에 대한 영향 역시 다방면이었고 아울러 이미 인류 도덕과 양지의 마지노선을 뛰어넘은 것이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불법(佛法)이니 중공사당이 제아무리 창궐할지라도 사람이 불법을 박해할 수는 없는 것이며, 파룬따파 수련자들이 그 어떤 잔혹한 박해를 받았을지라도 그들은 모두 신(神)의 길 위에서 걷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번 박해의 진정한 박해대상은 사실 세인들이며 세인들이 이번 박해를 추종하거나・마비되거나・무시하면서 진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자신의 생명에 진정한 위기를 가려다줄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역사적으로 정법을 박해한 모든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파룬궁 수련자들을 겨냥한 이번 박해는 장차 더는 지탱할 방법이 없는 가운데 끝장날 것이며 박해 원흉과 악의 우두머리들은 반드시 마땅히 있어야 보응을 받으며 퇴장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의 마음은 장차 선(善)으로 돌아갈 것이며, 대법 수련자들은 조사정법(助師正法)과 중생구도라는 자신들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고 원만해서 본래 위치로 되돌아갈 것이다. 신불(神佛)이 크게 나타나면서 역사는 또 신기원(新紀元)으로 들어갈 것이며 아울러 ‘진선인(真善忍)’ 우주대법의 인도 하에 미래 인류에 속할 새로운 신전문화를 개창해줄 것이다.

(계속)

주:
[1] 리훙쯔 선생님 저서 《전법륜》〈제5강〉
[2] 리훙쯔 선생님 저서 《전법륜 2》〈사람을 제도함에 설법하지 연출을 하지 않는다〉
[3] 리훙쯔 선생님 저서 《전법륜 2》〈도(道)를 닦지 않아도 이미 도(道) 속에 있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118475

정견망

글/ 송명(宋明)

【정견망】

중국인들은 예부터 신주(神州)라 불린 이 땅 위에서 번성하고 대를 이어 전승해가면서 5천 년간 휘황찬란한 중화신전문명(中華神傳文明)을 창조했다. 지금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자신의 역사를 돌아볼 때면 사서(史書)에서 우리가 볼 수 있다시피, 특히 최근 2천여 년간 조대(朝代)가 어떻게 교체되고, 세상일이 어떻게 변천했든, 화하(華夏)문명은 경탄스러울 정도로 완정하고 연속적이며 풍부하고 다원적인 형식으로 전승해 내려왔다.

비록 역사의 장하(長河) 속에서 때로 잃어버린 것도 있었지만 문자기록, 역사유적, 음악이나 회화, 건축과 복식, 민간전설 등의 방면에서 우리의 뼛속 내심 깊은 곳에 문화 내함(內涵)이 스며들었고 오늘날 중국인들이 여전히 중화신전문화에 대해 높이 우러러보고 동경하며 자부심을 갖게 한다.

신전문화의 핵심인 수련문화(修煉文化) 역시 대대로 전승되어 중국인들의 다양한 각종 생활방면에 영향을 끼친 것은 물론이고 내심의 정신세계에 훨씬 깊은 영향을 끼쳤다.

선진(先秦 진나라 이전) 시기의 중국은 사람이 신(神)과 함께 하는 시기였으나 점차 예악(禮樂)이 붕괴되고 도덕이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신에 대한 바른 믿음이 사라져버렸다. 신(神) 역시 더는 쉽게 드러낼 수 없게 되었고 세인들 역시 신을 찾기 위해 보다 많은 노력을 들여야 했다.

때문에 우리가 역사 속에서 진시황(秦始皇)・한무제(漢武帝) 두 제왕은 신선의 약초를 구하기 위해 사람을 파견했다는 황당한 이야기에서 볼 수 있다시피 위에서 하면 아래에서 무조건 추종하는 도(道)를 추구하는 분위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후한 명제(明帝) 때 불교가 중국에 들어왔는데, 《위서(魏書)·석로지(釋老志)》에는 명제가 꿈에 금인(金人)을 보고 사신을 파견해 부처를 찾게 했고 나중에 낙양에 백마사를 건립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중국 불교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한 순제(順帝) 때 장도릉(張道陵)은 또 오두미교(五斗米敎)를 창립했으니 중국 본토의 도교(道敎)는 여기서부터 흥성했다.

삼국시대에는 또 도인양성술(導引養性術)이 있어서 많은 사대부들 사이에 큰 유행이 되었다. 위진(魏晉)시기에는 자연을 숭상하고 청담(淸淡)을 좋아해 선비들이 오석산(五石散 역주: 5가지 돌을 재료로 만든 가루약으로 주로 연단에 사용됨)을 즐겨 먹었고 도가 외단술(外丹術)의 기원이 되었다.

남북조(南北朝) 시기에는 불교가 번창해서 오늘날의 돈황, 용문, 운강 마애석굴에 새겨진 조상(造像)을 보면 당시 불교가 얼마나 성대했는지 알 수 있다. 소위 ‘남조(南朝) 680사’란 말이 있었으니 남조에만 큰 절이 680개나 있어 당시 불교를 믿는 백성들이 아주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달마가 서쪽에서 와서 선종(禪宗)을 창립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당대(唐代)는 중화신전문명의 전성시기이자 포용하는 도량이 커서 불도(佛道) 양대교(兩大敎) 모두 크게 발전했다. 황족이나 사대부는 물론이고 일반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부처를 믿고 도를 믿는 분위기가 크게 성했다. 당나라 현장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는 진짜 경전을 구해온 공(功)을 말했고 특히 당태종이 직접 쓴 서문은 정교(正敎)의 덕(德)을 널리 드러냈다. 또 이 시기에 《추배도(推背圖)》 예언이 세상에 전해졌고 손사막(孫思邈)과 같은 약왕(藥王)이 있었으며 해와 달 및 뭇별이 빛을 내듯이 각자의 장점을 드러냈다.

송나라 태조는 화산(華山)에서 진단(陳摶)이란 도사를 만났고 금나라 때의 도사 구처기(丘處機)는 새외에서 칭기즈칸을 만났으니 도교가 흥성할 때였다. 아울러 명조(明朝)에서는 또 한 번 도교가 정상에 올랐으니 지금 사람들이 잘 아는 태극권은 명대 도사 장삼풍(張三豐)이 전한 것이다.

청대(淸代)에 이르러 불교, 특히 티베트 불교가 큰 발전을 보이며 전파되었다. 강희제의 부친인 순치제(順治帝)는 젊은 나이에 제위를 버리고 출가해 승려가 되었고 강건성세(康乾盛世 역주: 청나라 강희제에서 건륭제에 이르는 시기)는 당나라 태종의 정관(貞觀)성세나 현종의 개원(開元)성세와 비교할 수 있는 중국 역사상 최후의 태평성세였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설명해야 할 것은 종교 자체는 수련이 아니며 신불(神佛) 역시 종교 형식은 중시하지 않고 오직 사람 마음만 본다는 점이다. 물론 종교 중에서, 특히 원시 불교나 도교 중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종교라는 수련형식을 통해 공을 이뤘지만 근대에 이르러, 특히 중공이 나라를 훔치고 정권을 잡은 이후로는 종교의 부패상이 잇따라 드러났고 종교는 더 이상 수련인이 깨끗하게 닦는 곳이 아니다.

그렇다면 역사상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련을 했을까? 이 숫자를 따지는 것은 사실 오늘날 사람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여기서는 일단 선진(先秦) 시기는 논외로 하고, 그것도 우리가 잘 아는 역사인물에 국한해서 말해보자.

진(秦)나라 이후 누구에게나 익숙한 서한 초기 개국공신 삼인방(역주: 한신, 소하, 장량) 중에서 장량(張良)은 결국 도를 닦으러 떠났다. 앞서 언급한 장도릉은 바로 장량의 8대손이자 중국 도교의 창시인이다.

제갈량 역시 도가 인물로 《마전과(馬前課)》란 예언을 남겼다. 위진 시기 죽림칠현(竹林七賢)으로 유명한 혜강(嵇康)은 도인술(導引之術)에 능했다. 당나라의 대 시인 중 청련거사(青蓮居士) 이백은 도를 좋아한 도사였고 향산거사(香山居士) 백거이는 부처수련을 좋아했으며 왕유(王維)는 호가 마힐(摩詰)거사일 정도로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송대의 소옹(邵雍 소강절)은 역수(易數)를 깊이 연구해 하늘과 사람을 연구했으며 미래를 예지할 수 있었다. 《매화시(梅花詩)》는 바로 그가 남겨놓은 예언이다. 명나라의 유백온(劉伯溫)은 태조 주원장이 천하를 차지하는 것을 도왔고 또한 후세를 겨냥해 《소병가(燒餅歌)》와 《금릉탑비문(金陵塔碑文)》 등의 예언을 남겨놓았다. 역사적으로 불교의 고승대덕은 셀 수 없이 많았으면 후인들에게 4부의 《고승전(高僧傳)》을 남겨놓았다.

이상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 외에도 다양한 업종마다 수많은 인물들이 존재한다. 어떤 이는 늘 우리 귀에 익숙하고 또 어떤 이는 그 생애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설속에 유전된 인물도 있다.

가령 목장(木匠)의 조사(祖師)라 할 수 있는 노반(魯班)은 전설에 따르면 하늘을 나는 나무새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또 그림의 성인인 화성(畫聖)으로 불리는 오도자(吳道子)는 그림이 실물과 너무나도 똑같이 닮았고 또 그의 화풍을 가리켜 오대당풍(吳帶當風)이라 불리는 여예를 누렸다. 신불(神佛)의 두광(頭光)을 단번에 한 붓으로 그려내도 모습이 아주 생생했다.

또 음악의 성인인 악성(樂聖)으로 불리는 사광(師曠)은 그가 ‘청치(清徵)’를 연주하면 검은 학이 내려와서 대열을 이뤄 춤을 추웠고 ‘청각(淸角)’을 연주하면 비바람이 몰아쳐 휘장을 찢고 기와까지 날라 갔다고 한다.

또 유명한 의사 편작과 화타는 세상에서 신의(神醫)로 불렸다.

이외에 손빈(孫矉), 방연(龐涓), 소진(蘇秦), 장의(張儀), 모수(毛遂), 서복(徐福) 등의 제자를 배출한 귀곡자(鬼谷子)는 민간에서 왕선노조(王禪老祖)로 불리는데 풍수지리의 조사로 불린다.

이원행(梨園行 역주: 현종이 만든 일종의 종합예술단)의 조사라 할 수 있는 명황(明皇) 당현종(唐玄宗)과 양귀비의 뜨거운 사랑이야기는 백거이의 손을 거쳐 《장한가(長恨歌)》로 불리며 천년이 넘게 전해지고 있는데 이 역시 신선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또한 중국 각지에 널리 퍼진 역사문화유적이나 고대의 건축예술, 고대 불교 조상, 가령 돈황 막고굴(莫高窟)의 비천(飛天)선녀와 같은 수많은 마애석굴의 조상들은 장인들의 정교한 공예를 반영하지 않음이 없다. 소위 ‘기예는 도에 가깝다(技近乎道)’고 하는데 다시 말해 신불(神佛)에 대한 바른 믿음으로부터 걸출한 예술적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학생을 유생(儒生)이라고 불렀는데, 수업 전에 모두 가부좌하여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을 조용히 한 후에야 책을 보았다. 과거에는 이랬는데, 옛날 중국의 각 분야에서는 거의 다 호흡을 조절하고 마음을 조용히 함을 중시했다. 이런 상태에서 평소에 하지 못하는 많고도 많은 일들을 해내게 되었는데, 이는 바로 기공 수련과 아주 근접한 것이다. 옛 중국인의 사상관념 속에는 줄곧 이런 문화가 관통하고 있었다.”(《싱가포르 불학회 설립식 설법》)

13세기 말부터 시작해 16세기에 흥성한 르네상스 시기에 유럽에서는 단테,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으로 대표되는 뛰어난 인물들이 용솟음치듯이 나타나 오늘날 인류문명에 전해지는 불후의 걸작들을 창조해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경건한 정교(正敎) 신도였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근대에 들어와 서양에서 건너온 공산사령(共產邪靈)의 통제 하에서 무신론을 선양하는 공산사당이 중화신전문화에 대해 약 1세기에 가까운 전면적이고 훼멸적인 파괴와 중국인들의 육체와 정신에 잔혹한 박해를 가한 후 중화신전문화는 전승이 거의 단절될 지경에 이르렀다.

다행스러운 점은 파룬궁(法輪功 또는 파룬따파라고도 한다)이 전해져 나와 중화신전문명의 부흥을 위한 진정한 희망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역사가 곧 이 한 페이지를 넘길 때면 모든 중국인들은 반드시 선택에 직면해야 한다. 염황(炎黃 신농과 황제)의 전인(傳人)이 될 것인가 아니면 마르크스레닌의 자손이 될 것인가? 또한 모든 사람이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 대체 이 모든 비극의 근원은 무엇인가? 중공의 사악한 박해는 왜 중화대지 위에서 오늘날까지 자행되고 있는가?

또한 이를 통해 사람과 신불(神佛)・천지・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새롭게 수립해야 하며 더 나아가 우리가 대대로 전승할 만한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찾아내야만 한다.

현재 세계 순회공연을 펼치고 있는 션윈(神韵) 예술단의 성대한 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션윈이 펼쳐낸 중화5천년 신전문화의 정수에 감동하지 않는 이가 없다. 마치 신불이 직접 인간 세상에 강림한 것처럼 보이는 생생한 스크린과 순선(純善)순미(純美)한 예술표현이 세인들을 감동시켰고, 사람들 역시 점차적으로 이는 신불(神佛)의 회귀이자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간절히 고대해왔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계속)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118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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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法輪功)으로 잘 알려진 法輪大法(파룬따파)는 리훙쯔(李洪志)선생께서 창시하신 고층차의 불가(佛家)수련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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