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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견망

글/ 정련(淨蓮)

【정견망】

작은 돌멩이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져 도자기 그릇에 떨어지면 도자기는 소리를 내며 박살이 난다. 하지만 같은 돌이 바다에 떨어지면 바다는 여전히 바다일 뿐 아무런 파동도 일지 않는다.

생활이 힘겹고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음은 마치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작은 돌멩이가 떨어지는 것과 같다. 하지만 우리는 하늘의 뜻을 바꿀 수 없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늘의 뜻을 받아들일 우리의 용기와 믿음뿐이다. 우리는 도자기 그릇처럼 박살나지 말고 대양처럼 만물을 포용하는 넓은 흉금을 가져야 한다.

만약 엄마가 세상에 살아 있다면 분명 자식들이 매일 건강하고 즐겁게 사는 것을 보고 싶어 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아직도 건강의 비결을 찾지 못했다면 그럼 우선 자신부터 즐거워져야 한다.

우리가 만약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지혜와 능력이 없다면 그럼 우선 자신부터 변해야 한다.

스스로 매일 진솔하고 선량하며 포용하고 참아보자. 자신을 햇빛처럼 따스하게 만들어 주변에 온기를 퍼뜨리며 주변의 단단한 얼음들을 녹여보자. 자신이 변화로 주변을 따스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주위환경을 변화키시고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키면 세상도 더 따스해질 것이다.

생명이란 아주 짧아 눈 깜짝하면 곧 백년이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일들을 미소로 대하고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것에 감사하고 살아가면서 함께 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자. 우리 자신이 다양한 인생 경험을 통해 인생이란 우리의 여행이 외롭지 않게 하자.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5901

정견망

관명(贯明)

사람이 마음속의 집착과 잡념을 내려놓지 못할 때 그 마음은 들뜨게 되어 침착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주변 일에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고 냉정하게 이지적으로 사고하거나 대처하지 못하게 된다. 이에 비해 수련하는 사람은 가부좌로 명상에 잠겨 일체 잡념을 제거한 후 청정(清静)한 상태에 이른 후에는 곧 기묘한 아름다운 감각이 전신을 돌게 된다.

이는 진정으로 마음이 비어 조용할 때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다. 마음을 진정하게 되면 비로소 지혜가 생기는 바, 마음을 조용히 진정시켰을 때의 사유는 당연히 그의 영혼이 승화된 뒤 지혜의 결정체인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개인 이익의 득실에 미혹되어 칠정육욕을 담담하게 내려놓을 수 없다. 그러다보니 정에서 나온 원한과 희로애락을 없앨 방법이 없고 마음이 조용한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다. 수련인은 우주의 진리를 장악한 후 공명리록을 아주 담담하게 보고 관용할 수 있으며, 양보할 수 있다. 그 흉금과 도량이 일반인을 훨씬 초과하므로 비교적 쉽게 마음이 진정한 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 혼탁한 속세에서 심령의 수양을 통해 담담하고 조용한 경지에 도달한다. 곧 일반인들에게는 없는 많은 지혜를 장악할 수 있는 것이다.

시끄럽고 혼잡한 거리를 지날 때 오색은 사람의 눈길을 흐리게 하고, 조급한 행위는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하며, 희귀한 물건은 사람들의 욕심을 끌어내니 속세의 일체는 사람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이러니 수련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고요한 마음에 이를 수 있겠는가?

불가에서 말하는 “계에서 정하고 정에서 지혜가 나온다” (由戒而定,定能生慧) 곧 조용한 진정에서 정(定力)이 산생하고 정에서 지혜가 생긴다.

조용한(静)마음은 불가가 사선팔정(四禅八定)의 경지에 도달하고 개혜(开慧), 개오한다. 도가에서 말하기를 “혼탁한 것을 막을 수 있는데 조용하면 깨끗이 청리할 수 있고 오래 안정이 되고, 동하면 또 생겨 난다”(孰能浊以止,静之徐清;孰能安以久,动之徐生。)

진정(静)은 도가수련에서는 입정에 이른 뒤 금단대도에 성취하게 한다. 유가에서는 말하기를 “제지시킨 후 정(定)할 수 있고 ,정(定)후에 진정되고 여과되는데 여과된 후는 얻을 수 있다” 정함으로써 유가는 지혜를 얻고 몸을 닦고 집을 정돈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천하의 인생계단을 만든다.

조용한 것은 일종 수양뿐만 아니라 지혜의 일종이다. 일에 부딪히거나 위험에 처할 때도 흔들리지 않고 자연히 무한한 지혜가 생겨 곤란을 해결할 수 있다. 마음이 들떠있는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일을 망가뜨리고 만다.

인생의 번뇌는 분에 넘치는 욕망과 여러 가지 유혹으로 마음에 문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폭력, 색정이 넘치는 텔레비전 프로가 성행하여 청소년은 그 영향을 심하게 받아 조용하지 못하고 불안하다. 몇 마디 쟁론에 주먹과 발길질이 오가는 것을 사내대장부의 용감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필부가 싸움하면 칼을 뽑는 것은 필부의 용맹인 것이다.

마음이 조용한 묘함을 아는 사람에게는 필부의 용맹은 볼 수 없을 것이며, 위험에 부딪혀도 혼란하지 않고 진정할 수 있는 바, 얼굴색이 변하지 않고 평정하며, 상서로운 심태로 사람을 대하고 사태에 대처한다.

진정하고 침착하니 냉정하게 사고하고 이성적인 사유를 산생한다. 이래야만 혼잡한 중에서도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다.

<<삼국연의》중의 제갈량은 가정(街亭)을 잃은 후 사마의가 15만 군대를 이끌고 현성을 공격해왔다. 이때 그의 손에는 이천오백 명의 병사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경황 실색한 것이 아니라 어린 동자 둘을 앞세워 향불을 피우면서 조용히 거문고를 치게 했다. 평화롭고도 상서로운 거문고 소리를 들은 사마의를 의심케 하여 물러나게 했다. 이처럼 제갈량은 침착하여 초상적인 지혜로 자신들의 패군을 구해냈던 것이다.

이처럼 태산이 허물어져도 놀라지 않고 우레와 천둥을 쳐도 꿈쩍 않는 초상적인 기개는 일반인들은 영원히 가닿지 못하는 것이다. 오색이 분분한 세상에서 마음을 진정시키면 높은 태산마냥 마음이 우뚝 서 움직이지 않으나, 조급한 심정은 마치 물위의 잡초같이 파도에 떠밀려 오가는 것이다.

마음이 조용해야 정신을 안정하고 시끄러운 환경에서 듣고도 못들은 척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아무리 파도치고 우레가 쳐도 나의 마음은 반석같이 견고하여 어떤 시기에도 심중의 조용함을 개변하지 못한다. 마음이 조용하니 기도 정화되어 인생은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정견망

글/청운

(1), 동일한 사정이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느낌으로 다르게 대하는 방식이 있다.

예를 들어 빈궁해 졌을 때 어떤 사람은 원한을 품고, 어떤 사람은 몰래 훔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노력을 통해 개선하려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은 태연하다.

마찬가지로 재물이 있는 어떤 사람은 돈을 마음대로 쓰며 향수하고, 어떤 사람은 자손을 위해 준비하며, 어떤 사람은 그것으로 더 많은 재산을 모으려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은 담담하게 대한다.

때로 생활은 한 장의 시험지 같아서 자기 손에 왔을 때 어떻게 답을 적는지 보는 것 같다.

(2), 생각해보면 자신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인생은 하나의 수수께끼이다.

그러나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행위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바 타인에게 기쁨이나 고통을 가져다 준다. 우리의 행위는 정면적이든 부면적이든 자신의 장래에 영향을 준다. 다시 말하면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당연히 어떤 일은 조성한 영향이 일시에 표현되어 나오지 않으며 몇 년 이후 심지어 더욱 먼 미래에 비로소 반영되어 나온다.

고인은 말한다. “자기가 가지지 않으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말라.” (맹자)

만약 이 한 점을 생각할 수 있다면 마음으로 타인의 입장을 좀 더 헤아릴 것으로, 이는 사람과 자신에게 모두 유익하다. 다시 말하면 선유선보이다.

(3), 이러한 고통과 불행을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옛날에 석가모니는 태자로 있으면서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렸다. 그러나 그는 사람이 노쇠하고 빈궁하고 병들어 사망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윤회의 고통을 벗어나는 길을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인생의 길에 어릴 때는 부모를 위해, 학업을 위해 공부를 하며, 자라서는 혼인을 위하고 가족을 이루고 생계를 위해 바쁘게 쫓아다닌다. 사는 중 적지 않은 즐거움이 있으나 많은 괴로움과 지울 수 없는 유감도 있다.

어쩌면 한번씩 한번씩의 파란을 겪어 우리의 심령이 이미 마비되어 다시는 어떠한 희망이 없을지 모른다. 어쩌면 어느 날 사실 생명은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고 영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돌연 의식할 수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수련이다.

(4), 생명 중 내내 기다려왔던 것은, 꿈을 깨는 이 날일지 모른다.

우리 생명에게 진정한 아름다움을 가져다 주는 게 아마 우리 주변에 있을런지 모른다.
“천지가 망망한데 내가 누구인가
얼마나 윤회했는지 알 수 없네
고난 중 도움없이 미혹에 빠졌고
기대하는 마음 이같이 힘들어
어두운 밤 흘리는 것은 창상의 눈물이네
내가 진상을 보는 그 순간까지
….

나는 누군지 알았네
나는 신의 길에서 힘차게 일어나 쫓아가리

心路随笔:梦醒 | 法轮大法正见网

(一) 同一件事情,在不同人可能会有不同的感受和对待方式。 比如面对贫穷,有的人抱怨,有的人去偷抢,有的人想通过自身努力来改变,也有的人坦然处之...... 同样面对财富,有的人挥霍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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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견망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미국의 뉴센추리(New Century) 필름에서 제작한 것이다. 인터넷 사이트에 처음 공개된 후 지금까지 이미 34개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했고 또 여러 나라 극장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영화 줄거리:

 

유명한 영화배우 왕오신(王浩晨 왕하오천)은 인기를 믿고 멋대로 방자하게 굴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무상의 낭떠러지에 도달했다. 갑자기 불치병에 걸려 바닥까지 떨어져버린 것이다.

 

그는 이렇게 비참하게 생명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이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생명의 마지막 90일간의 여행에 올라 수백만 누리꾼들과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함께 나누려 했다.

 

그런데 이 여행과정 중에 인연에 이끌려 뜻밖에도 옛날 여자 친구를 만나게 된다. 인생이란 거친 풍랑 속에서 이번 재회가 과연 얼마 남지 않은 왕호신의 생명에 삶의 희망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0712

정견망

글/ 김선(金先)

본문에서 서술하는 것은 20세기 도가의 한 기공사에 관련된 사적(事跡)이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필자가 먼저 밝힐 필요가 있다. 이 글을 쓰는 주요 목적은 특정 기공사 자신이나 그의 공파를 선전하려는 것이 아니며 이 기공사의 사례를 통해 세 가지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첫째, 공산당이 선전하는 유물론 무신론의 영향을 받아 전통 수련문화와 바른 믿음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반례 들고자 한다.

둘째, 이 기공사의 경험을 통해 일찍이 공산사당(共產邪黨)이 얼마나 진정한 수련인을 박해하고 또 그들의 명성을 이용한 통일전선으로 자신들을 미화하고 금칠을 했으며 또 계속해서 정신(正信)수련을 파괴했는가?

셋째, 이 기공사는 다른 정파(正派) 기공사처럼 그들이 세간에 나온 진정함 목적은 오늘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위해 길을 깔기 위함이다. 그렇지 않고 만일 우리가 본말을 뒤바꾸면 이 기공사의 진정한 사명을 위배하는 것이 된다.

1. 도가의 기인

이 기공사는 1984년 시해(尸解)로 세상을 떠났는데 인간세상에서 104세를 살았다. 풍우가 몰아친 청나라 말기와 전쟁으로 세상이 혼란했던 민국시기 및 붉은 마귀가 설치던 공산사악주의의 여러 차례 정치운동을 거쳤고 20세기 기공 열조 중에 기공을 위한 길을 까는데 열중했고 마지막에 자신의 사명을 완성한 후 제때 산으로 돌아가 나중에 대법이 전해지는데 방해가 되지 않게 했다.

그의 성이 이(李) 씨이므로 우리는 그를 간단히 이도장(李道長)이라 부르겠다.

1990년대 초 내가 아직 어릴 때, 고향에 가보면 현지 농촌의 많은 집 거실에 모두 이도장의 상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수도인이었기 때문에 80이 넘은 노인들도 모두 그를 “도인 어르신”이라 불렀다.

이도장은 젊었을 때 글공부를 했으며 재능이 뛰어나지만 문약한 수재(秀才)였다. 하지만 약혼녀가 그곳의 비관(匪官 도적같은 관리)에게 해를 당하자 원수를 갚기 위해 외지에 나가 무예를 배웠다. 돌아와서 원수를 직접 제거한 후 속세를 등지고 현문(玄門 도가 수련)으로 들어갔다. 전통 도가수련 중에서는 대부분 운유(雲遊)를 해야 하는데 이도장 역시 한때 천하를 주유했다. 그의 말로 하자면 “천강소자(天降小子)가 오주(五洲)를 돌아다녔다.”

동시에 도가에서는 많은 경우 내외겸수(內外兼修)를 하는데 운유 중에 그는 일신에 고강한 무예를 배웠을 뿐 아니라 수련에서 수많은 기적을 만났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화룡진인(火龍真人)의 진정한 전수를 받았다고 했다. 나중에 현지로 돌아와 또 도가의 정심한 의술로 많은 사람을 구제했으며 사람들에게 평화를 말하고 도덕을 엄격히 지키라고 가르쳤다. 여기서는 일부 사례를 들어 기이한 점을 설명한다.

1950년대 성유철도(成渝鐵路 성도에서 중경을 잇는 철도)를 건설할 때 현지에서 인부를 모집하자 이도장도 참가했다. 이도장의 이런 거동은 현지인들이 보기에 “사회를 위한 공헌”으로 여겨졌다. 사실 그의 목적은 그곳 백성들의 마음속에 수련인의 기이함을 남겨놓으려는 것이었다. 예컨대 당시 그가 등록할 때 나이가 이미 70이 되어 온 머리와 수염이 이미 허옇게 되었다. 그래서 젊은 담당자들은 그를 뽑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그들과 팔씨름을 제의했고 결과 70킬로그램이 넘는 일꾼들이 그의 손에 매달려 두 발이 땅에서 떨어졌으나 이도장의 팔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다 신기하다고 전했다.

밤에 잠을 잘 때 그는 늘 흙을 나르는 광주리를 매우 높이 쌓아놓고 그 위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심지어 어떤 때는 가부좌 중에 머리카락까지 다 곤두섰다.(도사들은 모두 장발을 한다) 사람들은 그에게 어떻게 하느냐고 다 경탄해마지 않았다. 그는 이런 각종의 기이한 일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수련하는 사람은 비범한 능력이 있다는 인상을 남겨주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도장이 당시 사람들에게 남겨 준 인상은 늘 도포를 입었는데 겨울에도 옷을 더 껴입지 않고 여름에도 옷을 줄이지 않고 늘 같은 옷을 입었으며 엄동설한에도 난로를 때지 않았고 삼복더위에도 부채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또 잠을 잔 적이 없으며 밤이면 침상에 혼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가뭄이 심했던 해에는 측백나무 열매로 허기를 때웠다. 어떤 사람은 그가 물속에서 오랫동안 숨을 쉬지 않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미 익사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 물 위로 올라왔다.

이 도장의 숙명통 공능 역시 아주 강했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그때 그 촌에 매우 가난한 목공이 있었는데 마을 사람을 찾아와서 돈 2위안을 빌리러 왔다. 하지만 그가 나중에 갚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하여 아무도 빌려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이도장은 이 목공은 “재물신”이므로 나중에 돈을 빌릴 일이 있으면 그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나중이 이 목공은 노점상으로 약을 팔아 돈을 벌었으며 나중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대형 제약회사 이사장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살아 있다.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이도장이 한때 한 사람을 데리고 순간 이동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그는 한 사람을 데리고 성도에 가서 연극을 보았는데 그 사람에게 반드시 눈을 감으라고 하며 절대 떠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옷자락을 단단히 잡으라고 했다. 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자 그는 그 자리에서 서 있었는데 눈을 감자마자 귀에서 휙휙하는 바람 소리를 들었다. 잠시 후 이도장이 됐다고 해서 눈을 떠보니 이미 성도의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돌아올 때 그 사람이 갑자기 기발한 생각이 들어 이도장이 그를 데리고 가는 중에 눈을 떠서 어찌된 일인지 보고 싶었다. 그는 귀에서 바람 소리가 울리는 것이 들릴 때 갑자기 눈을 떴다. 그러자 그는 단번에 공중에서 떨어져 내렸으며 그곳과 성도 중간에 떨어져 내렸다. 그래서 그는 구걸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도장은 한때 운남(雲南)에서 운유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 어느 군벌이 하늘에서 내린 큰 가뭄 때문에 백성들이 매우 어려움을 느끼자 특별히 이도장을 찾아가 비를 내려줄 수 있는지 부탁했다. 이도장은 그 군벌의 마음씨가 선량한 것을 알고 정말 그 지역에 한바탕 비를 내려주었다. 비를 내리게 한 도중에 이도장은 텔레비전의 그런 도사처럼 무슨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 아니라 군벌에게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권한 후 돌아가라고 했다. 그러자 그 군벌이 가는 길에 비가 내렸다.

또 많은 기이한 일이 있는데 여기서 일일이 말하지 않겠다.

이도장은 1984년 세상을 떠났다. 당시 이도장은 그의 동문들을 불러 후사를 부탁했다. 그리고 문을 닫고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늘 실내에서 주먹으로 벽을 치며 매우 상심한 듯 말했다. “조얼(造孽), 조얼......”이라고 했다. “조얼”은 그 지역 사투리로 ‘가련하다’는 의미였다. 어쩌면 이도장이 당시나 이후에 일부 슬픈 일이 일어날 것을 알았는지 아니면 그의 중생에 대한 연민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10월 23일 날 그는 한수의 시를 읊었다. 그리고 가부좌하여 두 눈을 감더니 조용히 떠나갔다.

철도와 기선이 오대주를 다니고
천강소자가 오주를 노닌다.
유불도 역시 동화해 열리고
노나라 말(魯語) 주나라 풍습이 도처를 구한다.

鐵路輪船遍五洲
天降小子五洲遊
儒佛道也同化開
魯語周風遍地救

사람들이 곧 이도장의 시신을 장례 지냈다. 그러나 이어서 매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상여가 나가는 날 관이 갈수록 무거워졌는데 나중에 누가 발견했는데 그 속에는 온통 벽돌이 들어 있었다. 나중에 외지인이 돌아와 말하기를 외지 어느 어느 곳에서 이도장을 보았다고 했다. 사실 이것은 바로 도가에서 세상을 떠날 때 늘 사용하는 방법으로 ‘시해’라고 한다. 진정한 수도인은 결코 죽지 않으며 지물화물(指物化物)하여 그의 형상을 만들어 내어 그곳에 앉아서 보통 사람처럼 죽는다. 하지만 진정한 그는 자기의 역사 사명을 완성하고 진작 떠나갔다.

2. 엄격한 심성 요구

이도장은 수십 년간 정심어린 길을 닦았기 때문에 현지에서 명성이 아주 컸다. 그러나 종래 자기의 공능이나 명성으로 돈을 벌거나 무슨 세력 단체를 이끌거나 세운 적이 없었다. 그는 늘 혼자였으며 허름한 작은 집에 살았다. 실내는 극히 간단하고 누추했으며 그저 화로 하나에 탁자 하나였다. 탁자에는 밥공기와 수저 몇 벌이 놓여 있었고 침상이 있었는데 침상은 바로 나무판자 한 장뿐이었으며 이불이나 요도 깔려 있지 않았다. 그는 한 번도 눕지 않았고 가부좌로 잠을 대신 했기 때문이었다. 그 외 다른 것은 없었다. 그는 이렇게 그곳에서 수십 년을 살았다. 만일 실내에 다른 것이 있다면 아마 일부 약초였을 것이다. 그는 사람에게 병을 고쳐주며 기본적인 생활 물자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도장은 비록 공능이 아주 강했지만 그곳 사람들은 그가 직접 공능을 사용하여 병 고쳐주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가 유일하게 공능으로 병을 고쳐준 한 가지 일은 매우 오래전인데 이도장의 모친이 세상을 떠나기 전 안질을 앓았다. 그가 집에 돌아가 공능으로 모친의 안질을 고쳤다. 이후 그가 공능으로 병치료하는 것을 본 사례는 거의 없다.

그가 사람을 치료하는 것은 모두 의술을 사용했다. 또 그의 의술은 극히 뛰어나 무슨 난치병이든지 그는 늘 최소한의 약과 가장 평범하고 저렴한 약으로 고쳐주었다. 또한 그가 약을 쓰는 것은 격식에 구애받지 않아서 천지간에 어떤 것이든 그의 손에 오기만 하면 약이 되었으며 결코 약초에 한정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병을 고쳐주고 돈을 받지 않았으며 대부분 자기 생활에 쓸 약간의 쌀이나 밀가루만 받았다. 병을 고치러 온 사람이 병이 아무리 엄중하더라도, 아무리 먼 곳에서 온 사람이라도 치료한 후에는 모두 돈을 받지 않았다. 이것은 오늘날 중국 병원에서 환자를 볼 때 돈을 벌려고 하는 풍조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이런 능력을 갖춘 사람이 돈을 벌려고 마음만 먹으면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태 이런 것으로 명리를 구한 적이 없었다. 이것은 속세에 빠져 사오한 사람, “조용히 돈을 버는” 정치 스님, 정치 도사들과는 완전히 다른 길이다.

3. 공산당에게 난을 당하다

공산당의 본질은 하나의 마(魔)다. 그것은 단지 세인을 박해할 뿐만 아니라 진정한 수도인에 대해서는 더욱 뼈에 사무치게 미워한다. 이도장은 1958년 공산당의 잔혹한 박해를 여러 차례 받았다. 그는 차례로 공산당에 의해 “일관도(一貫道)”, “역사반혁명”, “살인범”, “현행 관제분자(管制分子)”, “봉건미신두목” 등의 혐의로 모함을 받았다. 여러 번 지독하게 얻어맞았고 머리카락이 깎이고 수염이 뽑혔으며 이빨이 맞아 부서졌고 팔도 부러졌다. 한번은 그가 어느 지주의 고아를 동정(그 집 식구는 모두 박해로 죽었다)해 약간의 밀가루를 보내주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심한 구타를 당했다.

또 한번은 현지 공산당 간부에 의해 커다란 보리수나무에 매달려 강철 끌로 심하게 맞아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당 간부는 그가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그를 던져놓고 상관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가 집으로 돌아가 보니 자기의 모친이 다른 사람에게 시달림을 받아 누워 이미 거의 다 죽어가고 있었다. 그가 이도장을 한 대씩 때린 것이 모두 자기 모친의 몸으로 이전된 것 같았다. 이것은 공산당이 수련인을 박해할 때 현세보응에 대한 경고였다.

내가 어릴 때 고향에 돌아가면 이도장이 매달려 얻어맞았다던 그 나무가 아직 있었다. 그 아래 찻집이 하나 생겼는데 이름이 바로 보리수 찻집(黃桷茶園)이었다. 현지 사람들은 이 나무를 언급하기만 하면 곧 그때의 이야기를 안다.

또 한번은 공사(公社)의 사당 간부가 이도장을 잡아 단상에 올리고 “투쟁”하라고 시켰다. 죄명은 “사술을 이용해 사람을 속였다”는 것이었다. 이도장은 사당 간부에게 물었다. 그는 단지 사람의 병을 고쳐주었을 뿐이고 돈도 받지 않았는데 어찌 사술이란 말이오? 하물며 당신같은 공산당원도 세간에 사술이 존재한다고 믿소?

그러자 당간부가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많은 사람의 병을 치료해주었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당신을 찾아와 병을 보니 분명 당신은 사술이 있소! 당신이 사술이 없으면 어찌 그리 많은 사람을 속일 수 있소?”

이도장이 그래서 말했다.

“사술이 만약 병을 고칠 수 있다면 국가에서 왜 더 많은 사술 병원을 열어서 군중들의 병을 치료해주지 않는 것이오?” 당간부는 곧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즉시 이 도장을 주먹과 발을 이용하여 죽도록 때렸다.

이 사건으로부터 공산사당이 수련인을 박해할 때 얼마나 시비가 전도되고 이지를 상실하는지 볼 수 있다. 심지어 무료로 환자를 치료해주는 착한 일을 하는 것조차 ‘사술’이란 명목을 덮어 씌워 박해를 가했으니 그 행위가 이미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은 나중에 1999년 공산사당이 진선인(真·善·忍)을 신봉해 좋은 사람이 되려는 파룬궁 수련자들을 박해한 것과 아주 유사하다. 시대는 변해도 사당의 사악함은 시종 변하지 않았으니 그것은 여전히 악마 그대로다.

또 한 번은 이도장이 공사의 사당 간부에게 심하게 얻어맞아 거의 다 죽어가고 있었다. 당시 모든 사람들이 그가 살아날 수 없을 것이라 여겨 그를 그의 처소에 들여놓고는 문을 잠그고 가버렸다. 며칠 후 사람들은 이 나이 많은 노인이 분명 이미 죽은 지 오래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이도장의 집 앞을 지나갈 때 보니 그는 평소처럼 아무 일도 없었고 심지어 몸에 상처조차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더니 이도장이 말했다. “내게 숨이 남아 있기만 하면 스스로를 고칠 수 있네.”

4. 인연 있는 이들이 대법수련에 들어올 길을 깔다

이도장은 스스로 제자를 거의 거두지 않았고 설사 몇 명 제자에게 가르쳐준 것도 모두 일부 의약(醫藥)분야의 것이었다. 필자가 알기에 이는 도가 문파의 특징일 뿐 아니라 이도장에게는 더 깊은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진정으로 수련할 수 있는 대법을 얻는데 장애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부친이 젊었을 때 이도장의 “도인 어르신”이란 큰 명성을 듣고 선도(仙道) 수련 등의 일에 대해 몹시 동경하셨다. 어느 날 그는 일백여 리의 길을 걸어 도장이 사는 곳으로 찾아가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배우려 했다. 그러나 이도장은 다만 자기 일만 하면서 그를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부친은 그곳에 멋쩍게 서 있다가 그냥 돌아와야 했다.

한번은 부친이 또 이도장이 있는 곳을 찾아가자 그가 의자를 가져와 부친에게 앉으라고 권했다. 부친은 즉시 매우 놀라면서 기뻐했다. 왜냐하면 그는 거의 어떤 경우에도 직접 의자를 옮겨 권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유명하거나 부자라도 마찬가지였다. 앉은 후 이도장은 부친 앞에 서서 몸을 굽혀 두 손으로 의자를 만지며 마치 어린이처럼 기뻐했고 때로는 어린이처럼 머리를 숙이고 웃으며 말했다. “응, 정말 그렇군!” 부친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나중에 이도장은 향을 한줌 가져와 피우려 했다. 부친은 이도장은 ‘이미 득도한 사람인데 아직도 향을 올리는가. 그럼 이 도장 위에 더 높은 선도(仙道)가 있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친이 즉시 일어나서 역시 향을 한줌 집어 이도장처럼 더 높은 선도에게 향을 올리려 했다. 하지만 이 도장은 부친 수중의 향을 빼앗으며 말했다. “당신은 향을 올리면 안됩니다. 그들이 감당하지 못할 겁니다.”

“그들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부친은 놀라서 펄쩍 뛰었다. 설마 자신이 도인 어르신 위의 그런 선도보다 더 높단 말인가? 이 문제를 부친은 당시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나중에 이도장이 또 부친에게 한마디 했다. “당신은 이후에 나보다 나을 겁니다.” 부친은 그 말을 듣고 또 영문을 알 수 없어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랐다. 부친은 이도장이 이미 도를 이룬 신선이라고 생각했으며 세간의 부귀와 권세도 다 그와 비할 수 없는데 이후에 그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하니 무슨 뜻일까? 당시 부친 생각에 아마 이도장은 부친이 근기가 좋다고 느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도장에게 선도를 연마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이도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부친은 운이 좋아 대법을 수련하게 되었다. 이도장이 그때 그에게 한 말과 행동을 생각하고는 마침내 알았다. 현재 수련인이 더욱 중대한 사명이 있고 더욱 높은 과위를 성취하려는 것이구나. 그래서 설사 이도장이라도 감히 이런 인연이 있는 사람을 가르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들의 오늘의 수련을 교란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이도장이 의자를 옮겨와서 앉게 하고 향을 올리지 못하게 하며 “그들이 감당하지 못할 겁니다”, “당신은 이후에 나보다 나을 겁니다” 등의 말을 한 것은 모두 일종의 격려이자 암시였다. 부친이 이후에 더 높은 대법을 수련할 것임을 암시한 것이다.

한번은 모친이 이도장 집이 있는 길을 지나다 한 중년 부인을 만났다. 그녀는 닭 한 마리를 들고 있었는데 역시 이도장의 집으로 간다고 했다. 그 부녀는 우리 모친에게 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 도장의 성질이 기괴하여 걸핏하면 사람을 욕하니 먼저 물건을 좀 주어 야단을 미리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모친은 “나는 아무 생각하지 않고 빈손으로 왔는데 이미 다 왔으니 먼저 가서 이야기하세요.” 그러자 간 후에 이도장은 직접 의자를 가져와서 모친에게 앉으라 하였으며 닭을 들고 온 그 중년부인은 전혀 거들떠보지 않았다. 게다가 또 욕을 하면서 그녀를 몹시 난처하게 만들었다.

모친은 앉아 기다렸는데 이 도장은 직접 몇 마디 했다. 뜻밖에 이 간단한 말은 모친에게 일생 매우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첫마디는 “가난을 미워하지 말게.”였다. 당시 모친은 부친과 결혼하려 했지만 집이 너무 가난한데다 형제들 중에서도 부친이 가장 불쌍했다. 이런 사람은 당시 이치에 따르면 결혼을 생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 도장은 모친에게 “가난을 미워하지 말게”라고 일깨워 주었다. 나중에 모친은 부친과 결혼한 후 확실히 매우 간고한 세월을 지냈다. 하지만 어쨌든 지나왔으며 또 운 좋게 두 분 다 파룬따파 수련 속으로 들어왔다.

이 도장이 모친에게 해준 두 번째 말은 “자네는 가서 지과등(地瓜藤-고구마와 유사한 덩쿨식물)을 팔아보게. 치료하는 사람마다 다 나을 걸세.” 지과등은 그곳에 보편적으로 자라는 식물인데 약으로 썼다. 모친은 본래 시골 사람으로 의술을 배운 적이 없었다. 하지만 ‘도인 어르신’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에 대담하게 지과등을 사서 팔았다. 첫날 일 위안을 팔았는데 나중에 믿음이 생겨서 점점 의사 노릇을 하게 되었고 하는 과정에서 정말 한 사람씩 고치게 되었다. 심지어 어떤 때는 약이 없어 마음대로 집어 사용해도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부친의 약은 아무리 정확해도 약효가 없었다. 우리 집이 매우 가난했기 때문에 우리 집 5식구(삼남매를 포함)는 태어나서 공부하기까지 기본적으로 의술로 돈을 번 것이다. 우리 집은 언니 한 명 외에 모두 수련한다. 특히 1999년 이후 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고 부모님이 박해를 받아 유리실소했다. 나와 오빠는 학교를 다녀야 했기에 돈이 필요했다. 부모님은 떠돌이 생활을 하시는 중에도 매일 시골에 가서 좌판을 펼치고 병을 고쳐 돈을 벌었으며 우리 가족이 생활하고 학교를 다니는데 충분했다.

이도장의 세 번째 말은 “만일 사람의 손발이 탈구되면 두어 번 잡아당기면 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아이를 받아주면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영험하지 않게 된다.”였다. 모친은 그전에 접골을 배운 적이 없다. 하지만 이도장이 이 말을 한 후 그녀는 탈구된 사람에게 접골을 시도했고 정말 쉽게 붙었다. 아울러 나중에 후유증도 없었다. 내가 어렸을 때 놀다가 팔이 세 번 빠진 적이 있었는데 모친이 다 붙여 주었다. 하지만 나중에 모친이 외숙모의 아이를 받아준 후 다시는 이렇게 해도 잘 되지 않았다.

나중에 수련한 후에 나는 깨달았다. 당시 이도장은 사실 말로 모친에게 의술을 전수해준 것이다. (진정한 도인의 전수는 매우 간단하여 속인처럼 이렇게 몇십 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핵심적인 한마디 말만 전해준다) 그 후 모친이 아이를 받은 후 이 능력을 잃은 것은 필연임을 알았다. 왜냐하면 이런 전수는 일종의 정보인데 그녀는 대법을 수련해야 했기에 더 이상 이전의 정보가 교란해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이런 정보는 미리 제거해야 하는 것이었다.

내 생각에 우리 가족이 수련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어릴 때 환경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우리 가족은 불도(佛道) 양가를 믿었으며 세상에는 선도(仙道)와 신불(神佛)이 있고 사람은 마땅히 신불을 숭배해야 하며 인과응보가 존재함을 믿었다. 때로는 늘 불도 양가의 일부 신기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비록 학교, 신문, 텔레비전에서는 늘 소위 “봉건미신을 반대한다” 또는 과학을 믿어야 한다고 방송했고 신불을 믿는 사람은 매우 우매하다는 이런 선전환경 하에 있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신불과 수련에 바른 믿음이 있었고 이런 환경 하에서 파룬따파 수련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도장은 다른 정전(正傳) 기공사들과 마찬가지로 아마 많은 사람들을 도와 중공 사당의 무신론, 유물론 등이 유행하는 환경에서 진정한 대법 수련으로 걸어 들어오도록 했을 것이다.

5. 중공 사당에 이용당하다

현지에서 이도장의 영향력은 매우 커서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공산당은 ‘통일전선’을 위해 이도장에 대해 많은 왜곡을 가했고 그를 이용하는데 힘을 쏟았다.

첫째는 자기의 죄악을 덮는 것이었다. 이도장은 세상에 있을 때 사당 간부의 지독한 몰매와 박해를 받은 적이 있고 그것들이 씌운 악독한 누명을 썼다. 하지만 문화혁명이 끝난 후 중공 사당은 이도장이 당시 박해당한 정황을 묘사할 때 일부 소수의 극히 개별적인 간부의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중공 사당의 일관된 거짓말이다. 세상 사람들은 중공의 박해에는 지시, 명령, 조직, 지도사상이 있으며 또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전국적이고 보편적 운동임을 다 알고 있다. 그것은 일부 사람에게 죄를 미루는 수법으로 그것의 정체적인 ‘위광정(偉光正: 위대하고 광명하며 정확함)’ 형상을 유지하려 했다.

이 역시 중공사당은 전혀 그것의 박해가 잘못임을 인식하지 못한 것을 설명하며 세인들에게 자신은 잘못이 없고 아래 사람이 스스로 주장하여 범한 잘못임을 극력 알리려고 했다. 이 역시 파룬궁을 박해하는 사당 기층의 구성원들에게 중공 사당이 돈을 잠시 주어 천리를 해치는 죄악을 범하게 한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중공 사당은 원래 이용이 끝나면 당신들을 버리고 수시로 당신들을 잡아 방패로 삼는데 이는 그것의 일관된 특성이다.

둘째는 이도장의 명성을 이용해 자기의 추한 모습을 감추고 분칠한 것이다. 중공 사당은 전국의 종교 신앙을 자기 수중에 통제하기 위해 이른바 “애국애교” 한다는 “삼자교회-중공이 인가한 교회-역자 주”를 만들어 나라를 사랑하고 공산당을 사랑한다고 선전하며 공산당 두목을 지지하는 등의 일을 했다. 그때 중공 사당 당국은 전문적으로 사람들을 조직해 민중의 소문을 채집하고 이도장의 당시의 일부 언행을 수집하여 모아 책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책속에는 많은 엉터리 일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이도장이 모 주석을 위해 효도복을 입고 사람들에게 모 주석을 사랑하고 옹호하라고 가르쳤으며 공산당이 제국주의를 몰아내었으며 우리는 제국주의가 난리를 피우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 또 등소평의 정책이 좋고 등소평이 제대로 판단했으며 등소평 동지의 건강과 장수를 위해 기도했다는 등이었다.

이런 언론은 완전히 모순됨은 말할 것이 없고 전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가령 이런 말 자체만 보아도 사당 간부의 극에 이른 세뇌선전처럼 징그러운데 선풍도골의 느낌이 어디에 있는가?

중공사당의 깡패 근성으로 볼 때 이렇게 시비를 전도하고 세상을 속이는 말은 책을 쓴 사람의 정치 임무이며 중공 사당이 “거짓으로 폭력에 기름칠을 한다”는 사악한 수단이다. 자고이래로 중국의 수도자는 모두 마음을 세상 밖에 두고 세간의 부귀권력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설사 몸이 겁난을 당해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하물며 수련에 성취한 이도장이 어찌 그런 ‘주선율(主旋律)’을 나타낼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중공 사당이 ‘구시기’에 폭력으로 불도의 정신(正信)을 박해한 후 또 ‘신시기’의 부패와 거짓으로 정치 승려, 정치 도사를 개조해 공산당을 따라 빌붙고 아부하게 하기 위함이다.

필자는 여기서 또 다른 일이 하나 생각나는데 중국 근현대 국학대사(國學大師) 중에 오복(吳宓)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동서양 학문에 모두 통달하여 청화대학에 국학원 설립을 주도했고 명성이 높은 “국학 사대금강(四大金剛 역주: 양계초, 왕국유, 진인각, 조원임 등 민국초기 저명한 국학대사 4인을 지칭)”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모셔왔다.

문화혁명 중 오복 역시 마찬가지로 재직하던 학교에서 공산당의 박해를 받았고 심지어 얻어맞아 다리가 부러졌다. 하지만 나중에 오복이 있던 학교의 모 공산당 간부는 염치도 없이 많은 교사와 학생들에게 오복은 근본적으로 공산당에 찬동했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오복이 그때 중공에 의해 심하게 구타당한 까닭은 그가 공산당 이론에 찬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산당 이론을 찬성한 그런 자들은 모두 오복을 박해해서 때린 하수인과 한패들이었다.

셋째는 이도장을 계속 이용해 민중을 우롱했다. 주지하다시피 중공 사당의 CCTV에 민중을 우롱하고 전 국민을 모욕하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는데 바로 ‘과학에 가까이 간다(走近科學)’는 것이다. 그것은 과학의 이름으로 민간에서 발견한 초상적이거나 신기한 일을 전부 견강부회(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함)하며 무단으로 자연현상이라고 해석한다. 매 편마다 늘 소위 전문가나 원사(院士 과학원 회원) 등을 한 무리 초청해 강단에 세웠는데 나중에는 방송이 중지되었다.

누리꾼들이 늘 ‘과학에 가까이 간다’ 프로그램의 내용으로 유물주의를 뒤집는 우스갯소리로 삼자 ‘과학에 가까이 간다’ 프로 및 ‘전문가’ ‘원사’ 이런 이름들이 현재 중국에서는 이미 권위가 땅에 떨어져 버렸다.

이런 비열한 선전 수단은 이도장을 서술하는 책에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이 책에는 여전히 이도장이 당시 나타낸 신기한 일과 초상적인 일을 무지막지하게 자연현상이라 해석하거나 혹은 당사자의 환각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하지만 어느 한 가지 사건은 그 책에서도 인정했는데 이도장이 미래의 일을 점친 것이다.

이도장이 어느 날 전신에 효도복을 입고 주위 민중에게도 입으라고 하며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을 때 곧 소식이 전해져 왔는데 바로 모 주석이 세상을 떠났다는 말이 들려온 것이었다. 중공 사당은 초상적인 공능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데 공산당 수괴를 선전하기 위해서는 초상적인 공능의 존재를 짜깁기해서 만들어 내었다. 이 책을 쓴 사람의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착각과 분열이 있겠는가?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필자는 ‘9평 공산당’ 속의 하나의 이치가 생각난다. 절대 공산당이 잘못을 바로 잡을 것이라는 환상이 있어서는 안 된다. 수련인에 대해서든 아니든 공산당은 이런 속임수를 이미 여러 차례 해왔다. 공산당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할 때는 아마 그것에 대한 총알받이들의 희생이 진행되고 있을 때이며 동시에 다음 차례의 우롱하는 운동을 시작할 때일 것이다. 먼저 잘못을 바로잡아 당신이 눈물을 흘리고 감격하도록 만들고 그 후에 책임을 극소수의 ‘속죄양들’에게 덮어씌우며 그 후 잘못을 은폐하고 계속 분칠을 하면서 최후에 또 계속해서 속이고 우롱할 것이다. 공산당의 사악한 본성은 고칠 수 없으니 오로지 해체할 뿐이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8396


 

정견망

작자/ 무명

중국 대륙에 생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신론과 유물론의 영향을 받아 ‘기공’이라는 말만 들으면 미신이라고 느낀다. 특히 청소년들은 소위 현대과학기술만 믿으며 역사상 존재했던 고심한 것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이는 지식인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배운 지식에 제한을 받아 자기 인식을 벗어난 과학은 심하게 거부하며 탐구하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한때 나도 이런 우물 안 개구리 같은 견식이 있었다. 중국 교육의 세뇌를 받아 자신은 고등교육을 받고 현대적인 젊은 사람을 따라 늘 ‘과학을 숭상하고 미신을 반대’했다. 하지만 생활 속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내가 아는 과학으로는 해석할 수 없었다. 점차 현대과학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난제들이 많아졌고 미신으로 오해받던 것이 오히려 이해하기가 더 쉬움을 느꼈다.

내가 직접 경험한 한 가지 사례를 말해보겠다. 내가 중학생 때의 일이다. 마침 백중날(음력 7월 15일)이었다. 어른들은 이 날을 귀신의 절기라 한다. 매년 이때가 되면 저승에서 이승으로 통하는 문이 열려 귀신들이 자유로이 출입하며 자신이 세상에 있을 때 못 다한 것을 완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돌아가신 분들에게 제사를 지낸다. 동시에 많은 지전(紙錢)을 불살라 망자에게 준다. 나는 이 절기에 관한 민간전설을 그리 믿진 않았지만 매번 이날이 되면 마음이 그리 자유롭지 못했다.

어느 해 백중날 가족들과 밥을 먹은 후 배가 아프고 온몸에 열이 나면서 설사와 구토를 했다. 약을 먹어도 낫지 않자 가족들은 나를 병원에 보냈다. 의사는 아마 급성 장염일거라며 주사와 링거를 맞췄다. 하지만 하루 종일 시달려도 증상이 좋아지지 않았다. 그러자 의사는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큰 병원에 입원하고 장염 치료를 했지만 낫지 않고 더 나빠졌다. 의사는 식중독으로 의심하며 식중독 치료도 했지만 여전히 효과가 없었다. 나는 여전히 매일 아파서 밥도 못 먹고 잠도 이루지 못했으며 진통주사를 맞으며 버텨야 했다. 주사를 많이 맞다보니 손목, 팔뚝에도 놓을 곳이 없어 발에 찌르기도 했다.

그때 나는 겨우 15살이었다. 매일 아파 병원에 누워 있었는데 하루가 너무 길었다.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의사는 심전도 등 전신 검사를 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진단이 안 되니 약을 쓸 수도 없어 그저 소염진통제를 투여할 뿐이었다. 돈도 꽤 많이 썼고 나도 많이 시달렸다. 그러나 모두 소용이 없었다. 이때 나는 병원에 대한 실망이 극에 달했다. 동시에 내가 숭배하던 현대과학에 대해 회의가 생겼다. 급한 나머지 나는 퇴원을 결정했고 식구들에게 아파 죽더라도 병원에서 죽지 않겠다고 했다.

집에 돌아온 후 엄마는 내가 너무 불쌍해 대법서적을 읽어보라고 주셨다. 엄마는 이 책은 귀한 책인데 신체에 병이 없게 할뿐 아니라 사람에게 수련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그때 나는 이런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중학생일 뿐이었다. 나는 그저 교과서 속에서 배운 지식만 믿었다. 모친은 대법을 수련했는데 나의 얕은 인식으로 엄마가 심심하니 기공을 연마한다고만 여겼다. 비록 속으로 대법의 신기함을 믿진 않았지만 병이 너무 심해서 마지못해 책을 펼쳐 보았다. 당시 나의 자질과 심태로는 당연히 책 속의 고심한 법리를 보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책을 볼 때는 배가 아프지 않았고 신체의 불편함이 없어졌다. 하루 동안 책을 보자 정상적으로 먹을 수 있었고 설사와 구토가 없어졌다. 잠도 잘 수 있었다. 하루가 더 지나자 신체가 완전히 나았다.

이에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병원에서 10여 일을 시달리며 돈도 많이 썼고 신체적으로도 많은 고생을 겪었다. 그래도 내 병을 고치지 못했는데 내가 겨우 이틀간 대법 책을 읽었을 뿐인데 약도 안 먹고 돈 한 푼 안 쓰고 완전히 낫다니! 더 우스운 것은 나중에 식구들이 내게 병원의 병력을 주었는데 의사들이 대체 무슨 병인지 몰랐다고 한다. 그들도 결국 확진을 하지 못했다. 한 전문가는 장염이라 했고 다른 사람은 식중독이라 했지만 그들은 확진하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숭배하는 현대의학이다.

이것은 고심한 기공 수련에 비해 너무나 초라하다. 사실 나는 내심 늘 이런 느낌이 있었다. 내가 이번에 병이 난 건 어쩌면 ‘귀신절기’가 깨끗하지 못한 것들을 불러왔기 때문인 것 같다. 결국 대법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이런 사악한 것들을 쫓아내신 것이다. 이후 나는 전에 맹목적으로 믿었던 과학에 대한 회의가 더 많아졌다. 대신 기공처럼 몰랐던 것에 대해 더 경외심이 생겼고 파룬따파에 대해 더욱 감격했다. 단지 당시 오성이 너무 낮아 수련에 들어오진 못했다.

10여 년의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운 좋게 파룬따파 수련으로 들어왔다. 내 생명을 구해준 보서 <전법륜>을 두 번째 받쳐 들었을 때 나는 깊은 법리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인간에게 병이 생기는 연유를 알았고 기공은 사전문화이며 불법(佛法)수련이 보다 높은 과학임을 알았다. 또한 나는 독서와 사색을 좋아했기 때문에 동서고금의 수많은 경전(철학, 천문학, 물리학, 신학, 문학)에서 제시한 내포가 모두 파룬따파에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중국과 서양 선지자의 철학 이론은 마치 파룬따파의 과학성과 합리성을 입증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또 신변에 발생한 많은 불가사의한 일들은 파룬따파의 박대정심(博大精深)함과 신기함을 더욱 실증해주었다. 아래에 몇 가지 예를 든다.

(1) 시들어도 죽지 않은 장미꽃

내가 근무하는 직장에서는 환경 미화를 위해 모든 직원이 한 송이씩 장미를 사서 자기 책상에 둔다. 문제는 장미의 수명이 짧아 꽃이 피는 기간도 짧고 피고 나면 곧 죽는다. 얼마 후 동료들의 화분은 곧 말라 죽었다. 하지만 내 책상의 화분은 상대적으로 오래 피었고 더욱 선명했다. 하지만 점차 시들어갔다.
만물에는 영혼이 있다고 한다. 나는 이 생명이 짧은 시간에 시들어가는 것을 보고 애석함을 금할 수 없었다. 때로는 물을 주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 보면 헛수고라 생각하겠지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으로 쳤다.

나중에 신기하게도 이 장미꽃이 내 마음을 감지한 것처럼 뜻밖에 시든 가지에서 새싹이 돋아났다. 새로 난 싹에서 또 꽃봉오리가 나왔는데 봉오리가 점점 피어났다. 그래서 사무실 전 직원들이 아래쪽 잎은 시들었는데 위에 새로 꽃이 핀 것을 보고 박수를 치며 신기하다고 했다. 이 ‘불합리적인 현상’을 보고 나는 이상하게 느끼지 않았다. 왜냐하면 수련 후에 나는 대법 법리로부터 많은 속인의 면을 초월하는 과학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시들어도 죽지 않는 장미는 바로 그 증거다. 생명이 있고 사상이 있는 그 어떤 것이라도 수련인의 의념은 어느 정도 작용을 일으킨다.

(2) 나의 자기장

얼마 전 직장에서 신체검사를 했는데 심전도 항목이 있었다. 내가 이 검사를 할 때 기계에 연결하자마자 삐익하며 무슨 간섭이 있다고 나타냈다. 검사원은 내게 무슨 교란하는 금속이 있느냐고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나중에 검사결과가 비록 정상으로 나왔지만 심전도 기계에는 아주 강한 교란신호가 나타났다. 하지만 검진센터에서 원인을 찾지 못했다. 나는 내심으로 아마 내 몸에 자기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한다. 수련하는 사람들은 다 알다시피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에게는 공이 존재한다. 이 공은 다른 공간에서 확실하게 고에너지 물질로 존재한다. 다만 지금의 과학기술 수준으로 완전히 측정할 수 없을 뿐이다.

(3) 동료의 병이 부지불식간에 낫다

사무실에 한 동료가 있는데 아주 어릴 때 말하기 곤란한 부인과 병에 걸렸다. 몇몇 병원에 가보았고 양약, 한약도 많이 먹었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의지력으로 병마를 이겨보라고 권했다. 한참 시간이 지나 그녀는 약을 다 먹은 후에 더 이상의 약을 사지 않았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병이 천천히 낫기 시작했다.

신체검사를 다시 받은 후 완치되었다고 기쁘게 말했다. 그러나 어떻게 나았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아마 대법의 빛에 영향을 받아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전법륜>에서는 말한다. “우리는 자신을 제도하고 남을 제도하며 중생을 널리 제도함을 말한다. 그러므로 法輪(파룬), 그가 안으로 돌 때는 자신을 제도하고, 밖으로 돌 때는 남을 제도할 수 있다. 밖으로 돌 때는 그가 에너지를 내보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이득을 보게 한다. 이렇게 하면 당신의 에너지장(能量場)에 덮인 범위 내에 있는 사람은 모두 이득을 볼 수 있어 그는 아마 아주 편안한 감을 느낄 것이다. 당신이 거리에서 다니든, 직장이나 집에서든 모두 이런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당신은 무의식중에 당신의 장(場) 범위 내에 있는 사람, 그의 신체를 조정해 줄 수 있는데, 이런 장은 일체 바르지 않은(不正確) 상태를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신체는 마땅히 병이 없어야 한다. 병이 있다는 것은 바로 바르지 않은 상태에 속하기에 그것은 이런 바르지 않은 상태를 바로잡을 수 있다.”

나는 그녀에 대해 매우 위안이 되는 동시 다시 파룬따파의 위대함과 신기함에 감사를 느낀다.
이상 몇 가지 사례는 모두 내가 직접 겪은 일이다. 이 외에도 더 많은 이런 신기한 일들이 있다. 파룬따파 수련자들에게는 현대과학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많다. 아인슈타인, 뉴턴 등 위대한 과학자들이 무엇 때문에 마지막에 신학으로 갔는가? 그들은 그것이 더 높은 과학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기공이란 수련에 대한 일종의 현대식 호칭으로 사실 수불(修佛)수도(修道) 방법이다. 파룬궁은 불가의 상승 수련 방법으로 그 고심하고 막측한 내포는 현대과학이 절대 따라가지 못한다.

수불수도라는 말만 들으면 많은 무신론자와 현대과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미신이라 할 것이다. 사실 아니다. 중국에는 자고로 신선을 수련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중국 고대에 많은 기인들의 사적이 <수신기> <채근담> <열미초당필기> <위로야화>등 고서에 남아 있다. 또 ‘부처’의 내포는 <전법륜>에서 설명하기를 원래 고대 인도의 언어로 범어에 속한다. 원래는 ‘불타佛陀’라고 불렀는데 번역하면 바로 ‘수련을 통하여 깨달은 사람’으로 조금도 미신 색채가 없다.

전에 딴 마음을 품은 사람이 파룬궁을 모함해 파룬궁은 사람이 병을 보지 못하게 하고 약도 먹지 못하게 한다고 모함했다. 진상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믿고 그때부터 파룬궁에 대한 오해가 생겼다. 하지만 진정으로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다 안다. 파룬궁은 일반적으로 병을 치료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는 진정으로 사람을 고층차로 수련하도록 지도하는 고덕(高德)대법(大法)이다. 진정한 수련자는 일단 문에 들어서면 사부가 도와 신체를 청리해주며 병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게 한다. 더 수련하면 공이 나온다. 인체의 층층의 입자는 모두 공이며 병이 없고 따라서 치료할 필요가 없다.
아울러 왜 지금의 많은 병을 치료하지 못하는가. 병의 근본 원인은 다른 공간에 있기 때문이다. 현대과학 수단으로는 전혀 치료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많은 질병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람 신체는 분자로 구성되어 있다. 때문에 질병을 견뎌내지 못한다. 현대 의학의 치료 수단 역시 분자과학 층면에 머물러 있다. 병이 생기는 원인은 사람의 업력이며 병이 나고 괴로운 것은 모두 소업이다. 하지만 자기가 업력을 없앨 수 없을 때 사망한다. 하지만 연공인은 오히려 사부가 도와 소업을 하므로 질병을 뿌리째 제거할 수 있다.

기공이 포함하는 과학은 일찍이 현대 실증과학의 범위를 벗어났다. 진정으로 과학을 숭상하려면 마땅히 과학적 수단을 써서 탐측하고 미지의 진리를 증명해야 한다. 그런 과학이야말로 발전하고 사회가 진보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의 현재 성과를 맹목적으로 믿으면 안 된다. 무엇 때문에 현대의학이 피를 뽑아서 사람의 많은 것을 측정하는가 생각해보자. 사람의 세포 DNA 층층이 모두 자기의 모습이며 개체의 특징을 갖고 있다. 그래서 사람 혈액 속에도 전부 미시적인 자기 정보가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 구조로 보면 인체 역시 소우주와 유사하다. 왜 전 세계 많은 고대유적 중에 다양한 시기의 사전(史前)문명이 발견되는가? 무엇 때문에 과학자 박스터는 거짓말 탐지기로 식물의 감정과 사유를 측정해낼 수 있었는가? 현대과학이 해석할 수 없는 이런 현상은 수련 중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기공은 더욱 높은 과학이다.

맺는말

지금 많은 사람들은 세속에서 이익을 추구한다. 중국에서 많은 이들이 공산당에 입당하는 것은 모두 보호 우산을 찾자는 것이다. 소위 조류를 따르고 줄을 잘 서자는 것이지 진정으로 그것을 믿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공은 불법(佛法)을 헐뜯고 나쁜 일을 많이 저질렀기에 역사 발전의 법칙에 따라 곧 말로가 있고 반드시 하늘의 재앙을 당할 것이다. 그럼 총명한 사람은 수련을 선택하고 대법을 선하게 대할 것이 아닌가? 창세주, 신과 부처보다 더 믿을 만한 언덕이 어디에 있는가? 그런 미신에 대해 소위 과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더 높은 과학을 숭상해야 하지 않겠는가?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37785


정견망

글/ 금궁(金弓)

당승(唐僧)이 겉으로 드러낸 가장 뚜렷한 마음은 두려운 마음과 걱정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제거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그를 두렵게 하는 요사(妖邪)는 더욱 그의 고기를 먹고 싶어 하고 그 본성을 어지럽게 만든다.

한번은 당승이 문득 높은 산 험한 길을 보고는 요괴가 있을까 두려워했다. 오공은 이곳은 서천(西天)에 이미 가까운 곳으로 부처님 계신 곳이 근방이라 절대 요괴가 없을 거라면서 안심시켰다. 하지만 당승은 저번에 다른 절의 승려가 천축까지 2천 리가 남았다고 했다면서 여전히 근심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자 오공이 당승에게 아직도 ‘심경(心經)’을 외우고 있는지 묻는다. 당승은 당연히 잊지 않았고 늘 외우고 있다고 대답한다.

오공은 단지 외기만 했지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고층차 상의 법리는 언어로는 말해낼 수 없는 것이다. 경문(經文)을 능숙히 암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진정으로 현실 속에서 법리의 요구에 따라 할 수 있는가 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즉 “일마다 대조하여 해 내어야 수련이로다(事事對照 做到是修)”(홍음 ‘착실한 수련’ 중에서)

당승 사도 네 사람과 용마가 서방정토를 눈앞에 두고 마지막으로 겪은 난은 우리가 한번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요마(妖魔)가 길을 막는 것도 아니고 또 혼군(昏君)이 멸불(滅佛)한 것도 아니어서 겉으로 보면 하찮고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사소한 일’이었다.

도중에 선행을 베풀길 좋아하고 만 명의 승려에게 보시하려는 소원을 낸 구원외(寇員外)를 만난 것이다. 공교롭게도 당승 일행 4명을 더하면 만(萬)이란 숫자를 채우게 된 원외는 더욱 정성껏 일행을 접대한다. 게다가 팔계는 시종 음식을 탐하는 마음을 제거하지 못했고 원외가 만류하자 먹는데 정신이 팔려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반면 다른 취경인들의 마음은 영산에 가있어 하루 속히 길을 나서려 했다.

결국 당승이 팔계를 꾸짖으며 길을 나서려 하자 원외는 성대하고 거창한 환송연을 베풀어준다. 결과적으로 이 일은 그 지역 강도들을 끌어들였고 한밤중에 구원외의 집을 약탈해 원외를 죽여 버린다. 원외의 처는 분노에 눈이 멀어 당승 일행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다.

이 억울한 옥사에 대해 오공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는 본래 당승이 겪어야만 할 난(難)이었다. 만약 속인이 이런 난을 당했다면 진상을 모르는 사람은 분명 선악에는 보응이 따른다는 천리(天理)를 의심하고 원외가 만 명의 승려를 대접했는데 도리어 불의의 해를 입어 죽었다고만 여길 것이다.

때문에 취경인이 이 난을 해결하자면 천하에 진상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었다. 사실 원외의 선행은 이미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속인은 사실 마땅히 미혹과 윤회 속에서 고통을 받아야 한다. 만약 원외가 부처님을 공경하고 승려에게 보시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운명은 아마 사후 계속해서 업력윤보 중에서 전세(轉世)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선념과 선행은 그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재난을 미리 도래하게 했고 앞당겨 좋은 곳으로 가게 했다. 지장보살은 그를 선연부(善緣簿)를 관장하는 책임자로 삼았다.

동시에 삼장에게 여전히 물건에 집착하는 마음이 있었으니 금란가사를 너무 중히 여기는 것이다. 오공은 이 기회를 이용해 당승이 이런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게 했다. 또 관부에 이 물건을 보여주어 취경인들의 신분이 평범하지 않음을 알려주고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이다. 결국 원외의 혼이 이승으로 돌아와 사건의 진상이 크게 드러났고 또 선악에는 보응이 따른다는 천리를 입증했고 당승 일행은 다시 여정에 올랐다.

뒤이어 서천에서 접인불(接引佛)이 바닥이 없는 무저선(無底船)에 이들을 태워준다. 오공은 당승이 생사의 집착에서 벗어나 육신을 벗고 환골탈태하도록 도왔다. 여기서 금란가사에 대한 집착은 사람의 관념과 정으로 각자(覺者)를 대하는 것을 상징하고 자금(紫金)발우에 대한 집착은 속인 중의 군주에 대한 충성을 상징한다.

물론 속인에게는 당연히 이런 윤리 관념이 있어야 하지만 수련인이 되었다면 그것에 집착해선 안 된다. 진경(眞經)은 얻기 어려우니 사람들에게 그 진귀함을 알게 하고 물건에 대한 당승의 집착을 제거하기 위해 당승은 글자가 없는 무자경을 만나는 난을 겪어야 했고 최후에야 비로소 진경을 얻는다.

본래 마땅히 원만해야 했지만 관음보살이 조사해보니 난(難) 하나가 부족했다. 이에 하나를 보충해 취경인들이 물에 빠지는 난을 겪게 한다. 경을 햇빛에 말리는 과정에 몇 페이지가 손상되자 당승이 이를 애석하게 여긴다. 이때 오공이 그를 일깨워준다.

“천지가 완전하지 않은데 이 경전이 완전했기 때문에 이제 바위에 붙어 찢어진 것입니다. 바로 불완전한 경전이 불완전한 것에 대응하는 오묘한 뜻이 깃든 일이니 어찌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즉 겉으로만 보면 보살과 여래가 마지막 한 난의 보충을 소홀히 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여전히 각자(覺者)의 장악 속에 있었던 것이다. 또한 대법수련자라면 더욱 구우주(舊宇宙)의 흠결과 부족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사존께서 항고에 있어본 적 없는 원용하고 여의한 법리를 세간에 가져오지 않으셨다면 구우주는 제아무리 노력을 다한다 해도 자신을 구할 방법이 없다.

이때 당승 일행의 심성은 이미 그들이 닦아야 할 최고 표준에 도달했고 다만 세간에 아직 다 처리하지 못한 일만이 남았다. 바로 진경을 중토 대당(大唐)에 가져가는 것이다. 팔계도 전처럼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이 심하지 않았고 오공 역시 마음을 비우고 심성을 거두어 예의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경전을 전하는 일을 마친 후 이제는 귀위(歸位)할 때가 되었다. 각자의 심성 높이에 따라 각기 다른 과위를 얻었다. 당승은 전단공덕불에 봉해졌고 손오공은 투전승불이 되었으며 사승은 금신나한 용마는 팔부천룡, 팔계는 정단사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오공이 전체 수련과정 중에서 심성과 오성이 가장 높았고 현장과 차이가 많았음에도 최종적으로 두 사람의 과위가 같은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오공의 수련은 거의 미혹이란 문제가 존재하지 않고 무엇이든 다 일목요연했다. 반면 현장은 근기가 아주 좋고 내력이 상당했지만 미혹이 아주 심해서 사실상 고생을 크게 겪어야 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아무 것도 들을 수 없었으며 아무 것도 모르면서도 오직 일편단심 자신을 수련했는데 이런 미혹 속에서 표현된 심성 역시 낮지 않았고 겪은 고생은 더욱 많았다. 때문에 원만한 후에 과위가 높은 것이다.

사오정은 근기와 오성에 한계가 있었지만 견정하게 수련했고 원망이나 후회가 없었으며 심성 수련 역시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나한의 정과를 얻게 된다.

용마는 내내 비록 가장 고생스러웠지만 심성상의 수련을 거의 겪지 않았고 마치 심산속의 사람이 오랫동안 고생을 겪으며 공을 자라게 하는 것과 같아서 수련이 늦고 과위도 높지 않아 최종적으로 삼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편 팔계는 심성을 닦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본성이 너무 미혹되었고 또 색심과 질투심도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과를 얻지 못한 게 당연한 이치였다.

여기에 이르러 각자의 수련이 결속되었고 수많은 은혜와 원한의 연원도 다 평형되었다. 또 이 과정에 사람을 해치는 수많은 요정들을 제거했고 무도한 혼군들을 징벌했으며 선악에 보응이 있다는 천리를 분명히 드러냈으며 정교를 널리 알렸다. 장차 대승불교가 중원에 널리 전해지게 했으며 또한 박대정심(博大精深)한 수련문화가 중국인들의 영혼 깊은 곳에 대대손손 깊이 뿌리내리게 했으며 장래 대법이 널리 전해지기 위해 부처님을 믿고 하늘을 공경하는 문화기초를 다져주었다.

비록 중공악당의 피비린내 나는 수십 년 통치 아래 모든 역사와 윤리도덕이 다 왜곡되었고 서유기 역시 겁난을 피하기 어려웠지만 정법의 형세가 변화함에 따라 장래 사람들은 모두 진정한 역사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중에는 서유기 이야기에 대한 이해와 평가도 포함된다.

본인은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자이자 서유기 애호가로서 서유기의 수련이야기에 대해 개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간단한 주석을 달아보았다. 분명 층차에 한계가 있을 것이니 보다 박대한 내함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명시해주기 바란다.
(전문완결)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36209

정견망

글/ 금궁(金弓)

백골정(屍魔)이 당승(唐僧)을 3번 희롱한 후 당승은 또 마음원숭이(心猿)를 쫓아낸다. 첫째는 그의 선심(善心)이 순수하지 못해 시비를 분별하지 못했고 그의 운명 중에 이 난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며 둘째는 색심을 제거하지 못한 팔계가 질투심으로 옆에서 바람을 넣었기 때문이다. 셋째는 오공은 이 겁난을 통해 오만방자한 마음을 없애야 했기 때문이다.

수련의 길에서 수련인(오공)이 이렇게 큰 굴욕을 당했는데 분명히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악을 없애고 선(善)을 널리 알렸음에도 오히려 이렇게 불공평한 대접을 받고도 여전히 수련하려는 마음이 확고부동해 남을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않으며 자신을 연마할 수 있는가? 오공은 비록 당승에게 끝내 쫓겨나긴 했지만 마음속에 수련하려는 마음이 남아 있었고 이후 다시 서천으로 갈 길을 준비했다. 또 마침 화과산 옛집이 겁난을 당해 나쁜 사냥꾼들을 소탕하고 옛 땅을 다시 회복했는데 생각해보면 이 역시 하늘이 정한 운명이었다.

그 후 당승이 흑송령(黑松嶺)에서 난을 당하자 여러 사람들이 속수무책이었다. 용마(龍馬)는 팔계더러 다시 오공을 찾아가 당승을 구해줄 것을 요청하게 했다. 팔계를 만난 오공은 지난 허물을 탓하지 않고 교만하고 오만한 마음을 거둬들였다. 오공이 이 심성관을 넘고 현장 역시 한차례 고생을 겪고 나서 최종적으로 이 관을 넘어섰다.

또 당승이 서천으로 경을 얻으러 떠나기 전 여러 승려들이 노정의 험악함을 들며 저지하려 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마음이 생기면 각종 마가 생겨나고 마음이 멸하면 각종 마가 사라진다(心生,種種魔生,心滅,種種魔滅)”

이를 통해 본다면 당승은 불경(佛經)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 여정에 오르고 관문마다 마를 만나 성명(性命)이 위험에 처할 때면 속인 마음이 남김없이 폭로되어 나왔다. 이렇게 보자면 수련이란 다만 이론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반드시 착실한 수련 중에서 진정으로 이런 마음을 닦아내야 한다. 다행히 오공이 여러 차례 그를 점화해주고 보호해주며 그 뜻을 격려했기 때문에 일부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 후 오계국(烏雞國)에서 요괴군주의 항복을 받고 진짜 군주를 다시 세울 때 본문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요괴가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 역시 인연관계가 없다면 허용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이 임금이 수년 전 문수보살의 화신인 승려를 사흘간 물속에 가두어두었기 때문에 이번에 3년간 우물 속에 잠기는 재앙을 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 공평했으니 비록 임금을 징벌하고 사자요괴로 하여금 그의 지위를 3년간 차지하게 했지만 기후가 순조로워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했다. 심지어 비빈들도 모두 손가락 하나 더럽히지 않았으며 인륜을 파괴하지 않았다.

한번은 당승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집착심을 드러내자 손오공은 즉각 “공을 들여야 자연히 성공한다(功到自然成)”는 이치를 점오해준다. 비록 과거 관음의 화신이 동토에 와서 취경인을 찾을 때 2~3년이면 서방정토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어쩌면 이 말 자체가 취경인에 대한 고험일지 모른다. 원만의 시간에 대한 집착이 있는 것은 아닌가? 지름길을 찾으려는 것은 아닌가?

수련 과정은 바로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니 마음을 빨리 제거하면 원만도 그만큼 빨라지고 마음을 제거함이 느리면 원만 역시 느려져 기약할 수 없는 법이다. 때문에 인위적으로 빨리 진경(眞經)을 얻으려 생각한다면 이는 헛수고로 심성수련은 조금이라도 대충할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만약 당승 일행이 정말로 집착심을 내려놓기 시작하고 굳은 결심으로 서천으로 떠났다면 그럼 아마 2~3년만에 도달할 수 있었을런지 모른다.

그 후 수많은 관(關)과 난(難)은 직접적으로 취경인을 겨냥해 온 것만은 아니었다. 때로는 백성들이 난을 당하거나 때로는 승려들이 집단으로 겁난을 당했다. 이런 것을 보고 수련인으로서 수수방관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필경 인명(人命)은 하늘에 달린 것이라 이들이 만약 상관하지 않고 곧장 서천으로 갔다면 어쩌면 이에 해당하는 심성관을 넘지 못했을 것이다.

당승이 또 다시 마음원숭이를 추방했는데 이번은 가장 심각하고 마지막 한차례였다. 오공이 악을 미워해 한 무리 강도들을 때려죽이자 당승은 끊임없이 긴고주를 외워 오공이 또 다시 달아나게 했다. 오공이 관음보살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자 보살은 공정하고 바른 말로 살생이 죄악이 됨을 설명했다. 하지만 오공은 이번에 수련을 중단할 마음이 일어나 화과산으로 돌아가 속인이 되려고 했다.

서유기에서 비록 이 상황에 대한 언급이 많지는 않고 평론도 아주 적지만 수련하려 하지 않으려는 이 마음은 사실 가장 엄중하고 마땅히 존재하지 말아야 할 수련인의 큰 금기다. 일단 정말로 이런 마음이 생겨나면 곧 사문을 배반하는 큰 죄를 짓게 되는데 어쩌면 영원히 더 이상 수련할 수 없는 엄중한 후과를 낳았을 것이다. 오공은 다행히 정말 물러나지 않았지만 이 때문에 치른 대가는 몹시 컸다. 바로 육이미후(六耳獼猴)가 가짜 손오공으로 변장해 천지를 암흑으로 만든 것이다. 사실 표면공간에서의 표현은 바로 견정하게 수련하려는 불심(佛心)과 수련을 포기하려는 마심(魔心) 사이의 격렬한 투쟁이었다. 최후에 여래불에 의해 이 난이 겨우 해소되었다. 이를 통해 이런 마음이 생기면 얼마나 큰 난을 조성할 수 있는지 볼 수 있다.

화염산(火焰山) 단락은 묘사가 아주 굉장해서 마치 서천으로 가는 길이 가로막힌 것 같다. 다시 말해 사도 4인이 수련하려 생각한다면 반드시 이 관을 넘어야 했다. 오공은 파초선을 얻게 되자 환희심이 생겨나 속임수에 넘어갔다. 이 마음을 닦아 없앤 후에야 비로소 우마왕(牛魔王)에게서 파초선을 회수해 화(火)의 근원을 끊어버리고 청정심을 얻게 된다.

한편 금선자(金蟬子)는 본래 불법(佛法)을 태만히 여긴 죄로 쫓겨났기 때문에 미혹 중에서 수련할 때도 여전히 깨달음이 있었고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모든 절에서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만나게 되는 모든 탑을 청소하려는 소원을 발했다. 즉 처음 시작부터 경불(敬佛)하고 경법(敬法)하려는 마음이 아주 순정하고 확고했던 것이다.

나중에 목선암(木仙庵)에서 시를 담론하는 난을 만난 것은 사실 당승이 안일함을 구하는 마음을 제거하지 않아 초래된 것이다. 당승은 여러 나무요정들과 시를 담론하면서 즐거움을 찾아 즐기려는 속인의 마음에 빠져 있었고 또 여러 요괴들이 떠받드는 가운데 더욱 의기양양해져서 그의 원양을 파괴하려는 살구요정을 불러왔다. 다행히 색심(色心)을 제거하려는 의지가 아주 확고했기 때문에 마치 꿈에서 깨어나듯 비로소 이 난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속인이 안일을 구하는 마음은 수련인이 원만을 구하는 마음으로 연장되어 나중에 소뇌음사(小雷音寺)에서 큰 곤경에 처하게 된다.

불타(佛陀)가 다섯 사람을 위해 안배한 난은 매번 심성을 제고한 후에야 넘을 수 있었고 다섯 사람의 목적지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당승의 두려운 마음은 매 차례 요마에게 묶였다 풀려난 후 점차 줄어들었고 목적지에 가까워진 몇 회에서는 요마가 당승의 고기를 먹으려고 조성한 난이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나중에 오공 등이 도제를 거두고 남의 ‘스승(師)’이 되려다가 ‘사자(獅, 師와 발음이 같다)’요괴를 초래했으니 남의 스승이 되려는 것이 얼마나 큰 저애인지 알 수 있다.

물론 원인은 역시 오공 등이 병기(兵器)와 떨어진 것은 법(法)에서 떨어진 것에 해당하기 때문에 사자요괴가 병기를 훔쳐가게 한 것이다. 수련인은 시시각각 법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번거로운 일이 생김을 알 수 있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36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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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法輪功)으로 잘 알려진 法輪大法(파룬따파)는 리훙쯔(李洪志)선생께서 창시하신 고층차의 불가(佛家)수련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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