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망'에 해당되는 글 60건

정견망

글/ 송명(宋明)

【정견망】

기억이 인생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이라면 사서(史書)란 한 민족문명을 전달하는 매체가 된다. 그러나 고달픈 인생은 불과 백년을 넘지 못하고 또 어릴 때 직접 경험한 것도 나이가 들면 모두 다 기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상하 5천년이란 유유한 세월이 흘렀음에랴!

중국은 세계적으로 신뢰할만한 역사기록이 가장 길고 또 가장 완벽한 나라로 휘황한 25사(史)에는 약 오천년에 달하는 중화신전문명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사서 역시 중화민족의 모든 문화를 다 담아낼 수는 없는데 특히나 진(秦)나라 이후 3천년에 이르는 역사가 그렀다. 오늘날 후인(後人)들은 사서에서 볼 수 있는 단편적인 말들은 당시 사회의 극히 일부 편린(片鱗)만을 엿볼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정사(正史) 외에 또 야사(野史)가 있고 종교서적이나 민간전설 이야기가 있는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역사적 사실과 일화들 및 이를 바탕으로 창작된 시사(詩詞), 곡부(曲賦), 소품(小品), 전기, 우언, 소설 등의 문예작품들이 있다. 이것은 중화민족이 다른 생활예술 부문에서 창조한 문화와 함께 공동으로 후인들에게 풍부하고 다원적으로 신전문화(神傳文化)의 나라인 화하신주(華夏神州)를 드러내준다.

그렇다면 고인들은 왜 이런 기록들을 남겨놓았을까? 아울러 세계적으로 다른 민족이나 문명에 비교해서, 중국의 고인들은 왜 이렇게 많은 기록을 남겨놓았을까? 이는 아주 많은 학자들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다. 문장이란 도(道)를 싣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데 그것은 바로 후인들에게 남겨 보여주는 것으로 특히 오늘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을 보여주는가? 역사상 어떤 일들이 발생했는가, 부동(不同)한 문화와 어휘 부동한 관념이 표현하는 내함(內涵)은 무엇인가, 고인들은 부동한 일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가, 어떤 것이 정면적인 교훈이고 어떤 것이 반면적인 경고인가, 또 어떤 것이 의미 있는 예언인가 등등이다. 이런 문화는 후인들의 사상을 풍요롭게 만듦과 아울러 은연중에 사람의 부동한 관념과 구체적인 행동을 형성하게 하는데 다시 말해 후인들이 참조할 수 있는 하나의 번영한 문명을 남겨주었다.

또 다른 각도에서 말하자면 사람은 쉽게 망각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일깨워줄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사람은 또 끊임없이 같은 문제에 직면해 계속해서 똑같은 잘못을 저질러왔다. 그렇다면 역사의 존재가 후인들에게 주는 계시 역시 다방면일 것이다. 당태종은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흥망성쇠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부동한 사람에 대해 부동한 각도에서 부동한 계발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는 그중에서도 신화전설만을 말해보자.

신화전설은 정사(正史)에서는 보기 드물고 주로 야사나 민간고사 또는 소설작품에서 볼 수 있다. 사실 이는 신(神)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세상은 신계(神界)가 아니라서 믿는가 믿지 않는가? 깨달을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양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은 바로 미혹의 고생 속에 있기 때문에 비로소 수련할 수 있고 비로소 신불(神佛)이 사람을 위해 수련의 길이란 한 가닥 천기(天機)를 남겨놓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신불은 무엇인가? 무엇이 수련인가? 수련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수련은 어떠한가? 어떤 사람이 수련을 하는가? 등등 이런 것들은 과거 수련계에서 비밀리에 전수한 천기에 속했고 쉽사리 알려주거나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쉽게 얻으면 또 쉽사리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이에 신화전설이란 이런 방식으로 펼쳐내 후인들에게 남겨준 것인데,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동시에 또한 사람이 신불을 인식하고 수련의 문화를 인식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져준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바로 《서유기》, 《봉신연의》, 《팔선득도전(八仙得道傳)》이 그것이다.

이 세 부의 신화소설은 명청(明淸) 시대에 잇따라 창작되었는데 《서유기》 저자 오승은(吳承恩)의 생평을 고찰할 수 있는 것 외에 《봉신연의》를 쓴 허중림(許仲琳)이나 《팔선득도전》의 작가 무구도인(無垢道人)에 대해서는 알려지거나 고찰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실정이다. 사실 수련의 각도에서 인식하자면 이 세 부의 소설은 모두 수련인이 쓴 것이다.

오승은은 자호(自號)가 사양산인(射陽山人)이고 허중림은 자호가 종산일수(鐘山逸叟)이며 무구도인은 직접적으로 자신이 도인이라고 했고 또한 자서(自序)에서도 자신을 어려서부터 성도(成都) 청운관(青雲觀)에서 출가 수행했고 28년 만에 성취가 있었다고 했다. 이 《팔선득도전》은 바로 유가의 계몽교재와 마찬가지로 후인들에게 수련에 입문하는 참고로 남겨준 것이다.

《서유기》는 하나의 완전하고 살아 숨 쉬는 불가(佛家)의 수련과정을 표현한다. 그중 수많은 어휘들이 모두 오늘날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면서도 잘 모르는 것인데 사실 모두 수련과 연원이 있다. 예를 들면 심원의마(心猿意馬 역주: 마음은 원숭이 같고, 뜻은 말이 날뛰는 것과 같다는 뜻)나 영대방촌(靈臺方寸 역주: 역시 마음을 의미), 사월삼심(斜月三心 역주: 마음 心 글자를 파자한 것으로 역시 마음을 의미)이 반영하는 것은 모두 수련에서 심성(心性)을 중시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또한 당승 사도 4인이 구구팔십일난을 거치면서 경전을 얻어 오는데 성공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이 자리잡았다. 저팔계의 법명은 오능(悟能)이고 사화상은 오정(悟淨)이며 손행자는 오공(悟空)이고 당현장은 법명이 삼장이다. 이들이 경전을 얻어오는데 성공해 수련에서 과위를 증득한 이야기가 아주 생동감 있게 수련의 부동한 표준 및 표현을 드러냈다. 또한 후인들에게 하나의 광활한 신불의 세계를 펼쳐 보여주었다.

《봉신연의》는 후인들에게 최소한 주(周)나라 개국 무렵 중국에서는 아직 사람과 신(神)이 함께 하는 시기였음을 알려준다. 연의 속에 표현된 다양한 전고들, 가령 강태공이 곧은 낚시바늘로 사람을 낡길 기다리고, 문왕이 유리옥에 감금되어 주역을 연구하고, 신선들이 겁난을 겪으면서 겁난을 위해 출산하거나 천운에 따라 태어나는 등등 부동한 각도에서 부동한 수련의 내함을 반영한다. 아울러 사람들 역시 소설의 생동감 있는 묘사를 통해 도가(道家) 신선체계의 개념을 완정하게 세울 수 있었다.

《팔선득도전》은 멀리 대우(大禹)가 물을 다스릴 때부터 시작해 중국인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팔선(八仙)이 도(道)를 얻은 이야기들을 서술한다. 가장 먼저 하나라와 상나라 교체기에 도를 얻은 철괴리(鐵拐李)에서 부터 송나라 때 마지막으로 도를 얻은 조국구(曹國舅)에 이르기까지 몇천 년의 문화를 관통한다.

팔선은 각각 남녀(男女)・노소(老少)・부귀(富貴)・빈천(貧賤)을 대표하는데 후인들에게 수련이란 성별이나 연령, 직업이나 사회계층은 가리지 않고 오직 사람마음만 본다는 것을 생생하게 알려준다. 아울러 몇천 년을 관통하는 이런 신화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또 중국인들에게 익숙한 두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고, 맹강녀가 남편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항아가 달나라로 날아가고, 동방삭이 반도(蟠桃)를 훔쳐오고, 비장방(費長房)이 귀신을 잡고, 백낭자(白娘子)가 금산(金山)을 물바다로 만들고, 개가 여동빈을 물고, 왕태(王泰)가 산을 갈라 모친을 구하고, 한상자(韓湘子)가 9번에 걸쳐 한유(韓愈)를 제도하는 등 널리 인구에 회자되는 일화들 및 맹파탕(孟婆湯), 소라껍질 안에 도장(道場)을 만든 이야기나 잉어가 용문을 뛰어오르고 전당강의 한사리 등의 전고와 기이한 경관의 내력 및 수련의 연원을 말한다. 이 역시 다른 한 방면에서 신전문화가 진실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예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신화소설이 유전되었는지 막론하고, 믿는 자는 늘 믿고 믿지 않는 자는 관념을 바꾸기가 아주 어렵다. 사실 사람은 각기 자신의 뜻이 있기에 종래로 억지로 수련을 추구한다는 그런 설이 없었다. 단지 사람은 신(神)이 만든 것이고 사람은 또 내원이 있는 것이라, 수련의 각도에 입각해 사람이 이런 미혹의 홍진(紅塵) 속에서 계속해서 아래로 가라앉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자비심에서 우러나와 선을 권할 따름이다. 이를 통해 사람의 선념(善念)을 보존할 수 있다면 장차 기연(機緣)을 남겨놓을 수 있다. 신화소설 중에서는 대부분 이런 관점을 표현한다.

사실 신불(神佛)에 대한 바른 믿음과 사회전체의 도덕수준은 서로 연관되는데 사회전체의 도덕수준이 높을수록 사람은 더욱 신불을 믿으며 신불 역시 더 많이 드러낼 수 있다. 반대로 도덕수준이 저하될수록 사람 역시 더욱 더 신불을 믿지 못하고 신불 역시 드러내기가 더욱 쉽지 않으며 수련 역시 더욱 어려워진다.

하지만 현재 신화전설은 이미 한가로운 주제로 전락했고 사람들이 신불을 언급하면서 존경의 뜻을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이 역시 사회전체의 도덕이 패괴(敗壞)된 후의 표현이다.

“관리들이 나라살림은 돌보지 않고 오직 뇌물만 압니다. 공공연히 뇌물을 주니 한밤중에 몰래 선물을 줄 필요도 없습니다. 마치 귀혼(鬼魂)이 밥과 국을 빼앗아가는 상황입니다. 일반 백성들도 효도(孝道)는 없앨 수 있지만 음란한 풍속은 이끌 수 있습니다. 오직 자신에게 이롭기만 하면 예의염치 따위는 따지지도 않습니다.

또한 귀신이 무심한 것처럼 제멋대로 나쁜 일을 저지르고 남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런 귀신의 마음, 귀신의 술책과 귀신의 지혜는 장차 반드시 산사람들에게 전해질 겁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과 귀신의 구별이 없어지고 대우주(大宇宙)가 진실로 귀신의 세계가 될 것이니 이는 모두 장래의 일입니다. 빈도(貧道)가 살펴보건대 대략 지금으로부터 1천5백년 안에 이런 상황이 될 것입니다.”

이상은 《팔선득도전》 제80회에서 장과로가 한 예언으로 후인들을 일깨워주는 경고가 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역사는 오늘에 이르렀고 사람들은 마치 신불에서 이미 아주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이때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신불(神佛)은 이미 인간 세상에 있다고 알려준다면 어떤 이는 아주 격동해서 마치 마음이 탁 트이고 오래전에 심어놓은 기연과 연결되는 것처럼 여길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아무런 느낌도 없고 선(善)을 권하는 것을 보고도 못본 체 한다. 어떤 이는 아마 크게 웃고 비웃으며 무지한 미신이라고 배척할 것이다.

역사는 또 장차 이 모든 것을 충실히 기록할 것이며 장차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위대함과 정법시기 신화전설을 영원토록 이야기할 것이다.

(계속)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118473


정견망

글/ 송명(宋明)

【정견망】

사람이 살면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마땅히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이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수한 사람들이 제기하고 사색해왔고 더욱이 무수한 이야기들을 연기해왔다. 어떤 이는 드높은 기세로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자신의 소임으로 삼고, 어떤 이는 청빈(淸貧)하게 분수를 지키면서 농사짓고 독서하며 대대로 전했고, 어떤 이는 사치와 욕망을 추구하다가 좋지 않은 결말을 맞았고, 어떤 이는 표연히 속세를 벗어나 우화등선(羽化登仙)했다.

인간의 욕망은 명예・이익・정 세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데 제왕(帝王) 특히 고대의 제왕은 마치 최대한도로 인간의 욕망을 누린 사람처럼 보인다. 소위 “온천하가 왕의 영토가 아닌 곳이 없고 온 세상에 왕의 신하가 아닌 이가 없다”는 것이다. 제왕은 천하를 소유하고 또한 이미 인간세상에서 권력의 정점에 서있는데 그럼 이 일보에 이르러 그들이 여전히 추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중국 역대 왕조의 황제들은 모두 ‘천자(天子)’라고 불렸는데 천하에 임금으로 군림해 제(帝)라고 불렸다. 군권(君權)은 신(神)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으로 자신이 하늘을 대신해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을 표시한다. 다시 말해 황제 역시 가장 높은 존재가 아니며 제왕 위에는 또 천제(天帝)・신선(神仙)이 있다. 전설에 나오는 신선은 장생불로하기에 제왕이 만세(萬歲)만대(萬代)토록 영원불변하게 제왕의 권세를 추구하려는 망상의 대상이 되었다.

진시황(秦始皇)이 방사를 파견해 선약(仙藥)을 구해오게 했고 한무제(漢武帝)가 동방삭에게 명령해 반도(蟠桃)를 따오게 한 일들은 모두 정사(正史)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울러 그들이 이렇게 한 자체가 옳고 그른지 여부는 막론하고, 사실 제왕 역시 수중의 권력을 이용해 신(神)을 찾으려 노력한 것이다. 단지 이런 노력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당신이 제왕이라고 하여 상응하는 요구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이 입증하다시피 제왕의 이런 노력은 종종 엉뚱한 결과를 낳는 헛수고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들의 실패경험에는 또 정면(正面)적인 의미도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인간세상의 욕망은 사람이 집착하고 추구해야 할 가치 있는 목표가 아니란 것이다.

제왕의 수련 이야기를 말한다면, 역사적으로 양무제(梁武帝)처럼 재위 시 대대적으로 불사(佛事)를 일으키고 지존한 제왕의 신분으로 출가한 인물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사(政事)를 황폐화시켰고 나중에 후경(侯景)의 난 속에 굶어죽어야 했다. 일찍이 양무제는 또 달마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는 사찰을 짓고 승려에게 보시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공덕이 있는지 물었다. 달마는 아무런 공덕이 없다고 대답했다. 양무제의 의기양양한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았고 또 대화가 통하지 않자 달마는 또 강을 건너 떠나버렸다. 애석하게도 양무제는 불심(佛心)이 아주 깊었지만 오히려 수련을 이해하지 못했고 때문에 불법(佛法)을 스쳐지나가고 말았다.

명나라의 가정(嘉靖)황제는 도교를 숭상해 단을 연마해 장생을 추구하고자 했으나 역시 수련을 이해하지 못하여 많은 어리석은 일들을 저질렀다. 더욱이 자신을 무슨 진인(真人)이니 진군(真君)이니 선옹(仙翁)라고 칭했고 심지어 제군(帝君)의 도호(道號)까지 자칭해 천고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명나라 역시 가정제 이후 패망의 길로 나아간다.

제왕이 부처를 구하고 도(道)를 구하다 웃음거리가 된 사례는 이외에도 적지 않다. 한편으로는 사실 제왕 역시 일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욕구가 있음을 표현한다. 그렇다면 수련에 대해 말하자면, 수련의 표준 역시 사회계층의 높낮이에 따라 바뀔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수련은 오직 사람마음만 본다고 하는 것이다.

둘째로 제왕들이 왜 잇따라 이런 일을 하게 되는가? 사람마다 모두 불도(佛道)를 추구하는 마음이 있는 것 외에 제왕은 모종의 의미에서 말하자면 명리정(名利情)에 대한 걱정을 훨씬 쉽게 포기하고 수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고귀한 제왕의 신분이라 일반 백성들이 모르는 많은 일들을 쉽게 알 수 있고 특히 수련계의 일에 대해서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제왕이 끊이지 않고 수련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 중 일원이 된 것은, 다시 말해 수련과 사람의 연원관계 및 진법(真法)과 대도(大道)에 대한 동경을 말하고 이것이 얻기 힘든 것을 말한다.

또한 그들의 황당한 이야기 역시 이후 수련자들에게 경계가 되고 이 역시 신전수련문화(神傳修煉文化)의 일부분이다. 정면(正面)적인 것도 있고 반면(反面)적인 것도 있으며, 성공한 이도 있고 실패한 이도 있으니, 한 막 한 막 풍부한 이야기들이 마치 연극처럼 후인들이 보도록 펼쳐지는데 특히 오늘날 사람들이 보도로 남겨진 것이다.

물론 정면적으로 표현된 제왕도 있으니, 정법(正法)을 구하기 위해 왕위나 제위마저도 버린 경우도 있다. 석가모니는 출가 전에 고귀한 왕자였고 청나라 순치제는 황위를 포기하고 불법(佛法)을 닦았다. 역사적으로 공인된 명군인 한문제, 당태종, 강희제 등도 재위 기간에 백성들을 위해 근면히 정사를 돌보는 황제의 신분 외에도 또 예외 없이 정법(正法)종교(宗敎)에 대한 포용과 지지 및 긍정을 나타냈으며 자연히 국태민안의 태평성세가 되었다.

황제로서 좋은 황제가 되는 것은 그의 본분이다. 또 좋은 황제인 동시에 수련해서 신선이 되고 부처가 되는 것은 마치 두 가지를 병립하기 힘든 것처럼 보인다. 역사적으로 황제(黃帝)가 천하를 잘 다스린 후 하늘에 올라가 신선이 된 일이 후대 제왕 중에는 더 이상 나타나기 힘들었다. 제왕의 위에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푸른 하늘(靑天)로 올라가는 것이다.

도가(道家) 전적 중에 종종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수련의 길에 비유한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제왕만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이다. 노자의 《도덕경》 5천자와 장자의 〈응제왕(應帝王)〉과 같은 편은 표면적으로는 직접 나라를 다스리는 왕도(王道)를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모두 어떻게 수련할 것인가를 말한 것이다. 단지 보고도 이해하는 이가 많지 않을 뿐이다.

2011년 션윈(神韵) 합창음악회에서 발표된 《인생은 무엇을 위해》란 가곡은 천백 년간 사람들이 고생스레 찾아온 그 답안에 대해 말한다.

인생 백년 누구를 위해 바쁜가
명리친정(名利親情)에 애간장 태우누나
연극이 끝나가는데 누가 나인가
창천은 말이 없고 아득하기만 하여라
주위에 대법이 널리 전해지니
진상을 알고 방향을 바로잡네
깨어난 중생들 선악을 분명히 하니
자아를 찾아 천당(天堂)으로 돌아가네

(《홍음 3》〈인생은 무엇을 위해〉)

파룬따파(法輪大法)는 바로 당신과 나 우리 옆에 있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118472

정견망

글/ 송명(宋明)

【정견망】

오늘날의 중국인들은 많든 적든 수련의 다양한 형식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데 가령 출가해서 도를 닦는 도사나 출가 수행하는 승려들이다. 이외에도 몇 가지 신화소설 속의 이야기들을 다 아는데 예를 들면 ‘팔선과해(八仙過海)’나 ‘서천취경(西天取經)’ 등이다.

다시 말해 불도신(佛道神) 및 수련의 개념에 대해 오늘날 사람들이 믿든 믿지 않든 모두 들어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 많은 운운중생(芸芸眾生) 중에서 대체 어떤 사람만이 문을 열고 들어와 수련의 길에 들어설 수 있는가? 또는 신불(神佛)은 대체 어떤 사람을 선택해 제자로 삼는 걸까?

《삼국연의》 제68회에서 “좌자(左慈)가 조조를 희롱한” 수련신화 이야기가 나온다. 좌자가 아미산에서 30년간 도를 배우고 3권의 천서(天書) 얻었다. 그는 조조와 인연이 있어 그에게 수행을 권고하러 가서는 이렇게 권한다.

“대왕께서는 신하로서 최고의 지위에 오르셨는데 왜 물러나지 않으십니까? 빈도(貧道)와 함께 아미산에 들어가 수행하시죠? 3권의 천서를 전수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조조는 권력에 미련이 남아 그의 말을 믿고 배우려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좌자를 해치려고 했다. 나중에 좌자가 여러 차례 점화해주었지만 어떻게 해도 결국에는 깨닫지 못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팔선득도전(八仙得道傳)》 제95회와 96회에는 한상자(韓湘子)가 숙부인 한유(韓愈)를 점화하라는 여동빈의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한유는 한상자가 돌아와 다년간 도를 배우러 떠나 있었다는 말을 듣고는 크게 화를 낸다. 나중에 한상자가 비록 여러 차례 한유의 전생 내원에 대해 일깨워주고 신령한 감응까지 보여주었지만 한유는 “세속의 생각이 너무 강해 대도(大道)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끝내 따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불골(佛骨)에 대한 간언으로 황제에게 죄를 지어 멀리 수자리를 살기 위해 영남 조주(潮州)지방으로 귀양을 떠났다. 가는 길이 험해 온갖 고생을 다 겪고 마침내 남관(藍關)에 이르러서야 명리에 대한 마음이 담담해져서 마침내 대도를 믿게 되었다.

한상자는 이에 탄식하면서 말한다. “세인들은 명예와 이익을 위해 허둥지둥 뒤쫓다가 결국에는 다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는 너무나 뻔한 결말이다. 어찌 가련하지 않은가?”

한편 한유는 《좌천지남관시질손상(左遷至藍關示侄孫湘)-조주로 좌천되어 가는 도중 남관에서 질손 상에게 보이다》라는 시에서 “진령에 구름 걸렸으니 집은 어디에 있고 남전관에선 눈이 막혀 말도 나가지 못하네(雲橫秦嶺家何在,雪擁藍關馬不前)”라는 천고의 명구를 남겼다. 여기서 종손 상(湘)은 바로 한상자를 가리킨다. 이 시는 바로 한유가 당시 마음을 돌려 도를 깨닫기 직전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명리에 대한 마음이 너무 무거운 사람은 수련의 길이 있어도 문으로 들어올 수 없다. 마치 옛날에 어떤 사람이 “나는 허리에 10만 관(貫)의 돈을 두르고, 학을 타고 양주로 날아가고 싶다(腰纏十萬貫 騎鶴上楊州)”는 소원을 발한 것과 같은데 수련을 잘 모르는 세인들의 어리석은 망상이다.

[역주: 이 말은 양주학(楊州鶴) 고사에 유래한다. 옛날에 네 사람이 각자 자기의 소원을 말하는데 한 사람은 양주자사(楊州刺史)가 되고 싶다고 하고, 한 사람은 많은 재물을 얻기를 원하고, 한 사람은 학을 타고 하늘로 오르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이 말을 듣고 있던 나머지 한 사람이 “나는 허리에 10만 관(貫)의 돈을 두르고, 학을 타고 양주로 날아가고 싶다”고 했다. 즉 사람은 욕심이 많아서 명예도 갖고 싶고 이익도 취하고 싶고 거기다 수련해서 고층차로 갈 생각도 있는데 이 모든 것을 움켜쥐고 놓지 않으니 수련의 길에 입문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도가(道家)에서는 사부가 도제(徒弟)를 찾는데 대체적으로 만 명 중에 한 명 꼴로 고르는게 흔하다. 세인들에게 있어 이는 마치 아득히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반면 불가(佛家)에서는 널리 제도함[普度]을 중시하므로 이보다는 기회가 많은 것이 아닌가? 불경에서는 석가모니 당시에 “도를 얻은 사람이 숲처럼 많았다”고 하는데 이는 불가의 제자에 대한 요구가 그리 엄격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부동한 층차의 수련표준은 법문이 다르다고 해도 일정하게 정해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지금보다 수련하기 쉬웠던 게 아닌가?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석가모니 부처 역시 당시 인도가 오독(五毒)이 가득한 세상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사실 수련에 대해 말하자면 도가에서 말하는 사부가 도제를 고르는 일이든, 불가에서 말하는 것처럼 수련할 수 있으면 누구나 수련하는 것이든, 전제는 다 대도(大道) 또는 불법(佛法)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는가, 수련 자체에 대해 인식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당신이 인식할 수 있으면 그럼 수련하고 인식할 수 없다면 그럼 수련을 언급할 필요도 없다. 또는 당신이 형식적으로는 수련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수련을 모른다면 역시 수련해 올라갈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수련 자체를 인식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진정으로 대도와 불법을 인식할 기회가 있을 수 있는가?

사람은 신(神)이 만든 것으로 신은 사람을 만든 후 사람에게 사람이 되는 도리와 표준을 남겨주었다. 중국에서는 이것이 바로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도리인데 예의염치(禮義廉恥)와 삼강오륜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초월해 올라가고 보다 높은 경계의 생명이 되려면 자연히 보다 높은 요구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부동한 층차에서 수련의 표준이다. 그렇다면 사람에 합당하려면 진정한 의미에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또한 사람이 수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구이다. 또 가늠하는 표준을 말하자면 사람의 각도에 설 수 없다. 또는 인류가 끊임없이 미끄러져 내려왔기에 자신이 아는 도덕수준으로 평판하기도 쉽지 않다.

“真(쩐)ㆍ善(싼)ㆍ忍(런)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1]

“인류의 도덕표준마저 비뚤어졌고 변화가 일어났으며,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마저도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것은 속인 중의 일이다. 이 우주의 특성 真(쩐)ㆍ善(싼)ㆍ忍(런)의 표준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으로서, 그는 변하지 않는다.”[1]

“사람으로서 우주의 真(쩐)ㆍ善(싼)ㆍ忍(런), 이 특성에 순응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좋은 사람이고, 이 특성에 어긋나게 행하는 사람은 진정 나쁜 사람이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당신을 나쁘다고 할 수 있지만 당신이 꼭 정말로 나쁜 것은 아니며, 어떤 사람이 당신을 좋다고 해서 당신이 꼭 정말로 좋은 것도 아니다. 수련자로서, 이 특성에 동화하면 당신은 곧 도(道)를 얻은 사람인데, 바로 이렇게 간단한 이치다.”[1]

1992년 파룬궁(法輪功)[또는 파룬따파(法輪大法)]이 중국에서 전해져 나왔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파되는 방식으로 1억 명이 파룬궁 수련으로 들어왔다. 특히 1999년 7월 20일 중공사당(中共邪黨)이 파룬궁을 불법으로 잔혹하게 박해한 이후 파룬궁은 오히려 세계로 진출했다. 파룬궁은 비단 굴복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평화적이고 이성적인 반박해로 지금까지 걸어왔다.

지금 세상에서 파룬궁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며 그것은 하나의 사실로 되었다. 중국 대륙에서 무고하게 중공사당의 박해를 받는 외에도 파룬궁은 이미 세계 1백여 개 나라와 지역에 전파되었고 파룬궁 관련 서적은 이미 40여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지난 몇 십 년간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표창을 받았다.

이렇게 세상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던 데에서 억만 명이 파룬궁을 인식할 때까지 그 가운데 얼마나 많은 힘겹고 고달픈 일들이 있었고 얼마나 많은 신기한 견증이 있었겠는가! 억만 파룬궁 수련자들은 지금 자신들이 직접 겪은 경험으로 현재 발생 중인, 겉으로는 아주 평온하고 일상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거대하고 웅장한 현대의 수련신화(修煉神話)를 말하고 있다.

이 신화는 만고(萬古)이래 인류의 오랜 역사를 초월하고 관통하는 것이다. 과거에 무쇠 신이 닳을 때까지 도를 찾으며, 수없이 많은 윤회 속에서 희망이 없는 가운데 기다려온 것은 바로 지금 파룬따파다. 이 우주대법은 이미 매 사람의 눈앞에 와있다.

바로 다음과 같다.

만고의 천문이 열리니
중생은 법을 위해 왔노라
천하에 복음을 전하니
누가 아직도 배회하는가?

萬古天門開,
眾生為法來。
福音傳天下,
誰人還徘徊?

(계속)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118471

정견망

글/ 송명(宋明)

【정견망】

중국의 수많은 명산에는 ‘일선천(一線天)’이란 특이한 경관이 존재한다. 쉽게 말해 양쪽으로 절벽이 있고 가운데 좁은 틈이 있으면 일선(一線)과 같은 하늘만 보이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수련계에서는 흔히 천기(天機)가 아득해서 오직 한 가닥의 희망만 남아 있는 것을 형용할 때 사용한다. 자고로 도를 구하는 사람은 소털처럼 많았지만 도를 얻은 사람은 봉황의 털이나 기린의 뿔처럼 극소수였으니 다시 말해 수련의 어려움을 형용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수련의 어려움은 우선적으로 법을 얻기 어려운 것으로 표현된다. 소위 “진짜 전수 한 마디에 가짜 전수는 만권의 책(真傳一句話,假傳萬卷書)”이란 말이 있다. 도장(道藏)이나 대장경(大藏經)에는 얼마나 많은 경서가 있는가? 그 중 어느 구절이 대도(大道)인가? 어느 구절이 진법(真法)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백발이 될 때까지 가난하게 살면서도 단 한 가지 방법도 생각해내지 못한다. 《서유기》에서는 당승(唐僧)의 서천취경(西天取經)을 말하면서 구구81난이 있다고 하는데 그래도 이것은 정법문(正法門) 수련이다.

하지만 정법을 스쳐 지나가버리면 오히려 회한만이 남게 된다. 예를 들어 팔선(八仙) 중에 당나라 때 도를 얻은 한상(漢相)자는 사실 동한(東漢)의 비장방(費長房)이 신선이 될 인연을 잃어버린 후 오랫동안 뜻을 버리지 않다가 마침내 대도(大道)로 돌아온 것이다. 그가 만약 기로에 떨어져 ‘야호선(野狐禪)’을 닦았다면 심지어 회한을 품을 기회마저도 없었을 런지 모른다.

수련의 두 번째 어려움은 수련의 표준이 엄격해서 두 차례 잘못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수많은 신화와 전설 속에서 한 차례 고험을 넘기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한 후 평생 후회한 사례들 역시 적지 않다.

세 번째 어려움은 바로 일세(一世)에 정과(正果)를 성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시 당승을 이야기하자면 10세(世)의 수행을 거쳐서야만 비로소 불과(佛果)를 증득할 수 있었다.

네 번째 어려움은 윤회의 고통으로 수련의 기연을 찾기 힘든 것이다. 왜냐하면 일세에 수련성취하지 못하면 윤회전생(輪迴轉生)해야 하는데 만약 사람 몸을 얻지 못한다면 정법을 수련하기 어렵다. 설사 어렵게 사람 몸을 얻었다 해도 전생(轉生) 중에 기억이 봉폐되고 머리가 씻기고 나면 또 종종 홍진(紅塵) 속에서 본성을 잃기 쉽고, 이를 통해 업력이 너무 커져서 몸을 봉폐해버리면 다시 수련할 기연을 잃을 수 있다. 소위 “사람 몸을 얻기 어렵고 중토(中土)에서 태어나기 힘들며 정법(正法)을 만나기 힘드니 이 3가지를 모두 얻을 수 있다면 더 큰 행운이 없다(人身難得,中土難生,正法難遇,全此三者,幸莫大焉)”는 말은 이후 수련자들이 경계로 삼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고로 비록 수련은 한 가닥 천기(天機)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껏 이때문에 도를 구하고 도를 지향하는 사람의 마음이 단절된 적은 없었다. 《팔선득도전(八仙得道傳)》 첫 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선은 본래 속인이 되는 것으로 단지 속인의 뜻이 굳세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다.”(神仙們本是凡人做,只怕凡人心不堅) 또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은 중국인들이 성현(聖賢)의 도를 추구하면서 한 맹서로 대를 이어가며 전승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역사 속에서 불교 선종(禪宗)의 2조 혜가(慧可)가 자신의 팔을 잘라 법을 구한 이야기나 밀종(密宗) 백교(白敎)의 밀라레빠 존자가 일세(一世)에 고생스레 수련해 마침내 불과(佛果)를 성취한 이야기에서 큰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속세 깊은 곳에 떨어져
돌아갈 길 모르고
천백 년을 구르다
다행히 사존의 보도(普度)를 만나
구도 받았네 구도 받았네
절대 다시는 기연을 잃지 마시오

落入紅塵深處
迷失不知歸途
輾轉千百年
幸遇師尊普度
得度,得度
切莫機緣再誤

(《여몽령(如夢令)·득도(得度)》)

이 노래는 한 파룬궁 수련자가 도를 듣고 법을 얻은 후 내심 깊은 곳에서 표현한 마음의 소리다. 한 수련인이 무쇠 신발바닥이 닳을 정도로 도를 찾다가 실망과 절망을 거치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후에야 마침내 정법을 얻은 기쁨을 노래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수많은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들마다 각기 도를 듣고 법을 얻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존재하는데 비록 인연은 각기 다를지라도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사부님의 자비하신 구도에 대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와 은혜를 표현한다.

역사적으로 도가(道家)는 수진(修真)을 강조하는데 진정한 수련은 모두 사부가 도제를 선발한 것으로, 당신이 수련하려고 생각해도 사부가 당신이 자격이 있는지 또는 능력이 되는지 여부를 보아야 한다.

불가(佛家)에서는 선(善)을 닦고 널리 제도함을 강조하는데 석가모니는 고인도에서 이미 2500여 년 전에 열반했다. 하지만 그가 전한 불법(佛法)은 이미 말법(末法)에 들어갔고 말법시기의 승려들은 자신을 제도하는 것조차 어려운데 누가 와서 사람을 구한단말인가? 또 어떻게 널리 제도하는가? 세상 어디에 널리 제도하는 정법(正法)이 있는가? 대체 어느 때라야 즉신성불(卽身成佛)할 수 있는 정법이 있을 수 있는가? 이런 끊임없는 호소와 기대 속에서 역사는 눈 깜짝할 사이에 2천년이 지나갔다.

“드넓은 하늘 문이 만고(萬古)에 열리니 몇이나 돌아가고 몇이나 왔는가?(蕩蕩天門萬古開,幾人歸去幾人來)”

이 구절은 수련의 한 가닥 천기가 역사의 긴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부침하면서, 신불(神佛)의 배치 하에서, 수련인이 위아래로 추구하고 모색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세인들에게 신불을 인식하고 수련을 인식하며 수련의 서로 다른 형식과 다양한 표준을 인식할 수 있는 문화를 다져주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가 기다려왔던 대법이 전해지던 그 날, 이 한 가닥의 천기는 더 이상 한 가닥의 천기가 아니게 되었고, 예부터 지금까지 최초로 진정하게 사람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도록 남겨준 한부의 사다리인 《전법륜(轉法輪)》이 되었다.

(계속)

원문위치: http://big5.zhengjian.org/node/118470

정견망

글/ 유여(劉如)


1. 만년에 가부좌하고 도를 닦다

고경성은 《이시진전》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내가 어릴 때 선생에 관한 일화를 들은 적이 있는데 부모님께 효성스럽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었으며 또 덕행이 아주 깊으셨다. 만년에는 증조큰할아버지를 따라 노닐면서 배웠는데 책을 읽으면 해가 뜨면 시작해서 해가 질 때가 되어서야 휴식하셨다. 밤에는 정좌(靜坐)하고 도(道)를 닦으셨다. 때문에 어려서부터 자신을 신선으로 자처한 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물론 이시진이 남들이 모르는 상황에서, 부친이 꿈에 본 신선(역주: 철괴리)으로부터 의술을 전수받았는지, 또한 그가 어릴 때부터 신선으로부터 가부좌와 수도(修道)의 가르침을 받았지만 만년에 들어와서야 사람들에게 도술(道術)을 지닌 것이 발견되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본인만이 알 수 있을 뿐이다.

2. 책을 써서 신선의 의술을 남기려 하다

하지만 이시진은 《본초강목(本草綱目)》외에도 《기경팔맥고(奇經八脈考)》와 《빈호맥학(瀕湖脈學)》 등 경맥(經脈)에 관해 연구한 여러 권의 책을 남겼다. 고대에 수련계(修煉界)에서는 늘 언급되어왔지만 일반 의사들이 육안으로 볼 수 없었던 기경팔맥(奇經八脈)을 논술하면서 그는 의사가 만약 이 부분의 의술을 모른다면 진정으로 병의 이치를 알고 병 치료를 할 수 없다고 보았다.

때문에 그는 《기경팔맥고》에서 의사가 되거나 신선을 수련하려는 자는 반드시 기경팔맥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의사가 이것을 모르면 병의 기전을 탐구할 수 없고 신선이 이것을 모르면 화로(火爐)와 정(鼎)을 안치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단락에서 그는 한 가지 천기(天機)를 드러냈는데 그것은 바로 고대의 의술은 원래 수도자(修道者)에게 유래한 것으로 본래 일체였다. 다만 수련 경계(境界)의 차이에 따라 도(道)를 모르는 사람은 오직 속인 층차의 일반 의술에 머물러 심층의 병리(病理)를 장악한 신의(神醫)가 될 수 없었을 뿐이다.

인체수련은 속인의 경계를 초월할 수 없기에 기경팔맥의 진상을 볼 수 없으며 이 부분에 존재하는 다른 공간의 경맥을 볼 수 없어 인체의 신비를 장악할 수 없다. 때문에 의사가 도를 닦지 않으면 진정한 지식[真知]을 알기 어렵고 병리(病理)를 명확히 탐구할 수 없다. 또 수도하는 사람이라도 안정설로(安鼎設爐)와 연단(煉丹)의 원리와 진법(眞法)을 알기 어렵다. 그러니 일반인이 진기(眞機)를 얻지 못하면서 제멋대로 단(丹)을 연마하고 단을 복용한다면 속인은 이 로 인해 기로(岐路)에 잘못 빠지거나 중독되어 몹시 위험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경팔맥은 대체 어찌 된 일인가? 그는 《빈호맥학》의 한 단락에서 북송의 도인 장자양(張紫陽)이 기경팔맥에 관해 설명한 것을 인용했다.

​“자양팔맥경에 기록된 경맥은 의가들의 설명과는 좀 다르다. 하지만 ‘내경수도(內景隧道)’는 오직 반관자(反觀者) 만이 밝게 관찰할 수 있는 것으로 그 말에는 분명코 잘못이 없다.”

이시진은 이 단락에서 신선 수련자가 도를 얻은 후 관찰한 기경팔맥과 일반 의사가 인지하는 것이 왜 다른가하는 비밀을 설명하면서 수도(修道)하는 사람은 다른 공간의 눈을 통해, 다시 말해 도를 닦은 후 열린 천목(天目)을 통해(마치 스캐너처럼) 직접 자신의 경맥을 반관(反觀)하고 밝게 관찰할 수 있다고 했다.

천목의 층차가 다르면 보는 것 역시 다르니 일반인의 육안으로 어찌 볼 수 있겠는가? 때문에 온갖 설이 분분하고 역대 의가들 사이에 정해진 결론이 없었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으로 장자양의 주장이 옳다고 인정했다. 이것은 그가 이미 수련을 통해 기경팔맥의 진실한 모습을 직접 봤음을 입증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책들은 대부분 실전(失傳)되었고 고층(高層)의 의술 역시 자연스레 실전되었다. 아마 인간세간을 초월한 학문과 기술이라 보통의 덕행(德行)을 지닌 속인에게 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그가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속인의 층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본초강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대한 저서는 세계적으로 ‘고대의학의 백과전서’로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그속에 담긴 방대한 의학지식만으로도 후세인들의 찬사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이시진이 당시 후인들에게 남기려 했던 것일지 모른다. 이 거대한 저서를 완성한 후에 다시 말해 그의 생애에서 자신의 사명을 완성한 후에 그는 신선이 되어 떠나갔다(仙逝).


원문위치: zhengjian.org/node/270474

정견망

글/ 유여(劉如)


이시진이 출생할 때 그 이름의 내력과 관련해 아주 신기한 전설이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명나라 때 유명한 문호(文豪) 고경성(顧景星)이 쓴 《이시진전(李時珍傳)》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시진이 어려서부터 신선을 자처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1. 돌멩이가 말을 하고 신선이 이름을 주다

이시진은 명나라 무종(武宗) 정덕(正德) 3년(1518년) 7월 3일 호북 기춘현(蘄春縣)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의술에 종사했으며 부친인 이언문(李言聞)은 당시 유명한 의사로 일찍이 황궁 태의원(太醫院)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시진이 태어나던 당일 이언문은 웬일인지 마음이 울적해져서 우호(雨湖)로 낚시를 나갔다. 평소 운이 좋으면 꽤 많은 수확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몇 번이나 그물을 던졌지만 모두 허탕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물을 던졌는데 마침내 묵직한 느낌이 들어 대어를 낚은 것이라 여겨 기뻐했다. 하지만 막상 그물을 건져보니 큰 돌멩이 하나만 들어있었다.

이언문이 순간적으로 상심해서 탄식하며 말했다.

“돌멩이야 돌멩이야 나는 너와 무슨 원수진 게 없는데 오늘 왜 나를 농락하며 내게 시름을 더하는 것이냐?”

그런데 뜻밖에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돌멩이가 말을 한 것이다.

“돌멩이가 기쁜 소식을 전해주러 왔습니다. 당신 아내가 곧 해산하는데 무엇을 또 구한단 말입니까?” 그러면서 돌멩이는 자신을 우호의 신(神)이라고 소개했다.

이언문이 깜짝 놀라 급히 집에 돌아가 보니 집에서 마침 이시진이 태어났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진귀한 돌멩이란 의미로 ‘석진(石珍)’이라 지었다.

[역주: 석진(石珍)은 시진(時珍)과 중국어 발음이 같다.]

한편 이언문은 또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팔선 중 철괴리(鐵拐李)가 눈앞에 나타나 기쁘게 말했다.

“시진(時珍) 시진, 백병을 치료할 수 있으니, 내 뛰어난 제자로 나의 명성을 전하리라.”

만약 이 전설이 사실이라면 이시진의 이름과 의사로서의 삶은 모두 신선이 정해준 것이고, 그의 의술 역시 편작(扁鵲)과 마찬가지로 신선이 전수해준 셈이다. 또 전설에서 어떻게 말했든 그 자신이 어려서부터 신선을 자처했으며 만년에 가부좌하고 도를 닦은 것은 진실이다.

2. 흰 사슴이 방에 들어와 스스로 신선을 자처

고경성은 자신이 쓴 《이시진전》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이시진은 자가 동벽(東璧)이고 기주(冀州) 사람이다. 조부는 모모이고 부친은 언문인데 대대로 효성스럽고 우애가 있었으며 의업에 종사했다. 시진이 출생하자 흰 사슴이 방에 들어왔고 보라색 영지가 뜰에 나타났으며 어려서부터 신선을 자처했다.”

즉, 이시진이 태어날 때 “흰 사슴이 방에 들어왔고 보라색 영지가 뜰에 나타났으며 어려서부터 신선을 자처했다”고 기록했다. 전설에 따르면 흰 사슴과 보라색 영지는 모두 신선계(神仙界)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처럼 이시진은 어려서부터 스스로 신선이 세상에 내려온 것이라고 여겼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아마 여러분들이 책을 쓴 고경성이 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이시진 가정사의 이런 비밀스런 일까지 알고 있을까 궁금할 것이다. 고경성은 이시진과 동향인 호북 기춘현 사람으로 대대로 선비집안에서 태어났다. 증조부인 고궐(顧闕)과 동생인 고문(顧問)은 모두 멀리까지 이름을 떨친 유명한 성리학자이자 교육자였으며 고문은 또 한때 이시진의 스승이기도 했다.

게다고 고경선 본인 역시 당대의 기재(奇才)로 평생 430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이중 122권이 《사고전서(四庫全書)》에 편입되었다. 그는 선조들과의 이런 인연 때문에 이시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당시 《이시진전》을 지을 때도 이시진 및 그 일가족의 상황에 대해 아주 상세히 알고 있었고 또 《본초강목》 전서(全書)를 통독한 바 있다. 그는 이시진을 몹시 존경했으며 글을 쓰는 태도 역시 아주 근엄했다.(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0423

정견망

글/ 유여(劉如)

명나라 때 대(大) 의학자 이시진(李時振)은 본초학에 관한 방대한 서적인 《본초강목(本草綱目)》을 통해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사람들은 그를 존중해 ‘약성(藥聖 약의 성인)’ 또는 ‘의성(醫聖 의학의 성인)’이라 부르며 역대 신의(神醫)인 화타, 편작 및 장중경과 더불어 중국 고대의 4대 명의(名醫)로 꼽는다. 그는 약물학에 대한 조예가 깊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 의술도 뛰어나서 민간에 ‘관 뚜껑을 열고 사람을 살리고’ ‘죽어가는 사람을 기사회생’시킨 일화들이 널리 전해지고 있다.

1. 관 뚜껑을 열고 사람을 구하다

중국 고대에 죽은 사람이 일단 관 속에 들어가 장지로 보내면 일반적으로 더는 관을 열어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시 보면 아주 불길하다고 여겼고 동시에 또 망자(亡者)에 대해서도 불경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아에서 시신을 검사하는 경우가 아니면 여간해서는 관 뚜껑을 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시진은 감히 장례 행렬을 멈추고 죽은 사람을 살린 적이 있다.

어느 날 이시진이 호구(湖口)에 갔는데 공교롭게도 한 무리 사람들이 막 관을 메고 장지로 가 고 있었다. 이건 본래 무슨 드문 일이 아니지만 그는 예민하게도 관속에서 끊임없이 밖으로 피가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곧장 달려가서 자세히 관찰해보니 흘러나온 피는 어혈(瘀血)이 아닌 선혈(鮮血)이었다.

깜짝 놀란 이시진은 자신의 안위따위는 돌보지 않고 장례행렬을 가로막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빨리 멈추시오, 관속에 든 사람은 아직 살릴 수 있소!”

여러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는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누구도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관 뚜껑을 여는 것은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시진은 여러 사람들이 주저하는 것을 보고는 사람을 살리자면 서둘러야 했기에 반복해서 권고했다. 그러자 마침내 상주가 그럼 한번 관을 열어보자고 했다.

원래 관속에는 난산으로 죽은 임산부가 누워있었다. 이시진이 먼저 안마를 하고 가슴 부위 오목한 곳에 침을 놓았다. 잠시 후 관 속에 누워있던 부인이 가벼운 신음을 내더니 마침내 정신이 돌아왔다.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환호성을 질렀다. 잠시 후 이 여인은 순조롭게 아들을 낳았다. 이에 이시진은 은침(銀鍼) 하나로 두 사람의 목숨을 살렸고 그가 기사회생의 의술을 지녔음이 단번에 널리 퍼졌다. 이때부터 그는 화타와 마찬가지로 민간에서 더욱 추앙받는 신의가 되었다.

2. 산 사람의 사망을 예단하다

소위 산 사람을 죽었다고 진단한다는 말은 멀쩡히 살아 숨 쉬는 사람을 진단해서 그 사람이 언제 죽을지 예언한다는 뜻이다. 이런 능력에 대해서는 아마 들어본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일찍이 신의 편작과 화타는 모두 이런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 병을 치료하다가 진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시진은 당시 아무 병도 없이 멀쩡히 살아 있던 사람의 가족들에게 그가 6시간 안에 사망한다고 예고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전설에 따르면 이시진이 관 뚜껑을 열고 두 모자를 살려낸 후 모두들 그가 어디에서 진료한다는 말만 듣고는 찾아오곤 했다. 심지어 병이 없는 사람들도 모두 그의 명성을 듣고 한번이라도 신의의 얼굴을 보려고 몰려들곤 했다.

어느 날 한 약방집 사장 아들이 카운터에서 실컷 먹고 마시다가 죽은 사람도 기사회생시키는 이시진이 마침 병을 봐준다는 말을 듣고는 호기심이 생겨 자신도 구경하러 갔다. 그가 어렵게 여러 사람들을 뚫고 지나가 마침내 이시진 앞에 다가가서는 물었다.

“선생님 보시기에 저는 어떤 병이 있습니까?”

이시진이 눈을 들어 그를 자세히 바라보니 이 사람의 기색(일반인은 보아낼 수 없었고 본인도 그 어떤 신체적인 고통이 없었다)이 나쁜 것을 보고 급히 진맥을 했다. 잠시 후 아주 애석하다는 듯이 탄식하며 말했다.

“젊은이, 애석하게도 아직 한창 나이이긴 하지만 앞으로 6시간을 넘기지 못할 걸세.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나. 그래야 가족들이 자네를 찾으러 다니는 수고를 덜 수 있겠네.”

이때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이시진의 말을 듣고는 믿기지 않아 했다.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 젊은이에게 어찌 금방 죽는다는 저주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모두들 의사가 이 사람을 놀라게 했다고 비난했다! 약방집 아들은 더욱 화를 내며 욕을 그치지 않았다. 나중에 여러 사람들이 말린 후에야 겨우 씩씩거리며 떠났다.

하지만 누가 생각이나 했으랴! 그는 집에 돌아온 후 6시간이 못되어 정말로 죽어버렸다. 사람들은 그제야 반응했고 놀라서 사망원인을 물어보았다. 원래 이 사람이 과식한 후 몸을 함부로 움직여 창자가 끊어졌던 것이다. 내장이 손상을 입었기 때문에 의사로서도 치료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이 일로 인해 사람들은 이시진의 신기한 의술에 더욱 경탄과 탄복을 금치 못했다. (계속)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70385

정견망

【정견망】

스베틀라나(Svetlana)는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올해 48세 여성이다. 그녀에게는 지금 유치원 교사라는 새로운 직업이 있다. 아마 그녀 자신도 이런 일을 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겠지만 아마 운명 속의 한차례 필연이 그녀로 하여금 생명이 복잡한 데서 순진(純眞)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녀는 정신적인 추구에 집착하는 사람으로 도를 찾기 위해 온갖 우여곡절을 다 겪었다. 그녀는 일찍이 수도원에 들어간 적이 있고 또 대학에 진학해 심리학을 배우기도 했다. 나중에는 또 인도로 건너갔는데 그녀가 이렇게 한 목적은 오직 생명의 답안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끊임없이 배우고 찾았으며 한때 기업 연수원의 강사, 요가 강사를 했고 심지어 나중에는 일부 추종자들까지 있었다. 하지만 그녀 자신은 어땠을까? 내심 깊은 곳에서 여전히 귀의할 곳을 찾지 못했고 또 그녀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 초조와 미망이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처럼 늘 따라다녔다.

그러다 2009년에 이르러 우연히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만난 그녀는 마침내 생명이 회귀할 수 있는 곳을 찾게 되었다. 활연히 크게 깨달은 그녀는 “이것이야말로 내가 찾던 것이다! 나는 심령이 승화되는 수행방법을 찾기 위해 무려 17년이나 찾아다녔다!”라고 외쳤다.

평생 도를 찾아 헤매다 끝내 생명이 회귀하는 길을 찾은 러시아 수련생 스베틀라나

그녀의 생명은 대법으로 인해 개변되고 환골탈태했다. 그녀는 어둠에서 철저히 벗어나 밝은 태양으로 향했고 단번에 사는 게 즐겁고 가뿐해졌다.

그녀는 “지금 대법은 제 내심의 가장 큰 정신적 지주랍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법을 찾는 과정에 그녀는 대체 어떤 일들을 겪었던 것일까?

1. 역경 속에서 법을 찾다

스베틀라나는 러시아 출생으로 모친은 엔지니어고 부친은 건축업에 종사했는데 전형적인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전통적인 여성교육을 받았고 삶과 가정을 사랑했던 그녀는 19세에 결혼했다. 하지만 첫 번째 결혼은 몹시 불행했다. 남편은 퇴역군인이었는데 아프가니스탄에 참전한 후 전쟁후유증으로 성격이 난폭해졌고 화를 잘 냈다. 때문에 가정 분위기는 늘 긴장되었고 마치 살얼음판 위를 딛는 것 같았다. 그녀가 비록 남편 일을 최대한 도와주며 회계사며 비서 역할도 하면서 남편의 압력을 줄여주기 위해 노력해 결국 중소기업 사장으로 만들긴 했지만 여전히 좋은 결과를 얻진 못했다. 젊은 그녀가 늘 발버둥치고 아무리 노력하고 희생해도 남편은 여전히 폭군처럼 굴었다. 고통과 실망 속에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운명을 바꾸기 위해 정신적으로 의지할 곳을 찾았다.

“그때 저는 결혼에 실패했다고 생각해서 수도원에 들어가려 했죠. 의식적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진지하게 ‘성경’을 연구했어요.”

그녀는 종교가 결혼에 실패한 자신을 구원할 방편이라 여겼다. 그녀는 종교로 들어가서 신의 속죄를 받고 정신적인 고통에서 벗어나 마장(魔障)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스베틀라나는 수도원에 들어가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교회에 가서 참회했고 자신의 이해에 따라 기독교 계율을 준수하려 노력했다. 그녀는 아주 진지하게 학습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녀의 심령은 종교에 교화되는 중에도 개선되지 못했다.

“그때는 정말 두렵고 초조했어요. 교회에서 때로는 일종의 선량하고 자비로운 상태를 느낄 수 있었지만 제가 보기에 종교의식의 배후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종교를 배웠지만 마음속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끊임없이 사고하면서 자신에게 고통을 초래한 원인을 찾고자 했다. 이것이 근본문제였다. 그녀는 답안을 얻지 못했고 이에 심리학을 배워보기로 했다. 남편은 그녀가 공부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했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 그녀는 남편을 떠나야 했고 결국 이혼으로 끝이 났다.

스베틀라나는 러시아 교육대학에 들어가 낮에는 일하면서 밤에 공부를 했다.

1990년대 초기의 모스크바는 유럽이나 미국과 마찬가지로 동양 철학사상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고 영성에 대한 탐구, 가부좌, 요가, 태극권, 기공 등 동양적인 것들이 서양인들을 사로잡았다. 신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더 이상 전통적인 하나의 종교형식 내부에 국한되지 않았다. 이런 개방적인 사상은 ‘새로운 시대사상’이라 불렸다. 이 기간에 그녀는 대량의 철학서적을 읽게 된다.

“처음으로 요가를 알게 되었고 또 아주 많은 책을 읽었는데 ‘마하바라타’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녀는 독서를 통해 동양문화에 심취했다. 마하바라타는 인도의 유명한 서사시로 인도철학과 종교에 큰 영향을 끼친 책이다. 여기서 그녀는 동양철학사상을 연구하고 실천하기 시작했으며 원래의 종교에 대한 탐색을 내려놓았다.

“수많은 수도원을 다녀본 후 더 이상 가지 않기로 했어요. 제가 본 많은 종교들은 다 좋지 않았고 너무 부패했거든요. 꿈속에 교회에서 목사들이 어떻게 종교의식을 돈으로 계산하고 교회에서 필요한 수입을 판매하는지 봤어요. 저는 또 지구가 유독한 기체로 가득 찬 것을 봤는데 오염과 중독을 피하자면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어요. 저는 사람들 속에는 인류가 아닌 것들이 다니는 것도 봤어요….”

그녀는 일반인이 느낄 수 없는 것들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녀는 아주 민감하고 영성이 풍부했다. 이것이 그녀로 하여금 더욱 제고할 방법 정신을 승화시킬 것을 찾게 했다. 그녀는 심리훈련을 시작했다.

이 심리훈련은 개인교습이 필요했다. 이곳에서 그녀는 절실하게 동양신앙의 진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또 마침 이 새로운 시대사조에 올라탔다. 그녀는 한마음으로 정신적인 제고방법을 찾고 싶었다. 7년의 실천을 거쳤지만 결과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았다. 그녀는 이 길도 근본적으로 통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참을성이 아주 강해서 마치 이런 고통을 겪기 위해 태어난 것 같았다. 정신적인 것을 찾기 위해 그녀는 생활의 모든 향수를 포기할 수 있었다.

그때 그녀는 이미 상당히 안정적인 직업이 있었는데 기업연수원 강사로 활약했다. 기업 직원과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업무며 수입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영성(靈性)에 대한 추구가 줄곧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저는 늘 생각했어요, 나는 아직 가장 높은 수련법문과 최고의 사부님을 찾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론 희망이 있었죠, 반드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2007년 그녀는 인도로 갔다.

2. 인도에서

“저는 계속 스승님과 법을 찾았고 쿤달리니 요가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쿤달리니 요가로 유명한 스승의 강습반에도 참가했어요. 나중에는 제가 쿤달리니 요가를 가르치는 스승이 되었죠.”

인도에서 요가를 배우는 동시에 그녀는 종교도 연구했다. 그녀는 종교 연구에 집착하는 가운데 유명한 스승들과 요가사들의 각종 강습반에도 참가했다.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그녀는 또 실망해야 했다.

“저는 명리와 금전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보았고 허위라고 느껴졌어요. 제가 보기에 정신적인 추구란 돈을 중시해선 안 되거든요. 그곳에서 저는 또 미망에 빠져 실망하고 낙담했죠.”

인도는 불교가 탄생한 곳으로 세계 각국의 구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스베틀라나는 그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자 조용한 곳을 찾아가 머무르고 싶었다. 자신에게 도피할 곳이 필요함을 의식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녀가 실의에 빠져있을 때 또 강도를 당해 돈과 여권 귀국할 비행기 표까지 모조리 강탈당했다. 이게 무슨 암시일까?

그날 그녀는 빈털터리가 되어 뉴델리로 돌아왔고 우연히 부근에 있던 중앙공원에서 대만에서 온 한 군악대를 보게 된다. 그녀가 그들의 음악에 이끌려 다시 보니 악단 사람들이 한 가지 공법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몹시 평온하고 자비로운 마당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가 현수막을 보니 위에 ‘천국악단(天國樂團)’이라 쓰여 있었다. 이 장면이 줄곧 그녀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3. 대법을 얻다

스베틀라나는 도를 찾고 법을 얻으려는 마음이 아주 강했다. 그녀는 전후 2년에 걸쳐 인도에서 공부했고 요가 강사가 되었다. 그녀는 또 이집트, 터키 등에서 현지 강습회를 개최했으며 요가연합회에서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쿤달리니 요가학습반에서는 내부규정상 참가비를 받는 것이 필수였다. 하지만 요가 강사로서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자신마저 답안을 찾지 못했는데 또 어떻게 이 학생들을 이끌 수 있겠는가? 그녀는 늘 자신이 학생들을 기만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때 제 마음속은 혼란스러웠죠. 한 공법이 다른 공법을 교란했고 개인생활도 그리 순조롭지 못했어요.”

그 한 해 그녀는 아주 엉망이었고 늘 울고 싶었다. 내심은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했다. 아주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고 다만 하늘에 대고 기도하며 구했을 뿐이었다. ‘왜 저는 진정한 스승을 만나지 못하는 겁니까?’ 나중에 그녀는 공능이 있는 한 수도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그의 몸에 아주 정직하고 깨끗한 마당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제6감이라고 불리는 영감이 아주 예민했기 때문이다.

“제가 보니 당신 몸에서 파란색 빛이 발산되네요. 단번에 흥미가 생겼는데 저랑 말씀 좀 하시겠어요?”

그는 승려였는데 사람들은 베다 승려라 불렀다. 그가 있는 수도원은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녀가 그곳까지 찾아가자 그는 자신이 사원과 스승을 소개시켜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들에는 흥미가 없었다.

“지구상에 진정한 상사(上師)가 계시나요?”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는 아주 진지하게 그녀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말했다.

“한분을 알아요. 그분보다 높은 사람은 없고 그분은 진정한 선생님입니다. 그분의 수준은 내가 알 수 있는 게 아니고 무변(無邊)한 상사랍니다.”

“그분이 누구죠””

“리훙쯔(李洪志)!”

리훙쯔? 그녀는 전에 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고 그녀에겐 너무나 새롭고 낯설었다. 그녀는 작은 종이 위에 이 이름을 적었다.

“또 ‘전법륜(轉法輪)’이란 책이 있어요.”

스베틀라나의 예상과 달리 이 수도사는 사원에서 비밀리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고 있었다. 그의 상사도 그의 이런 비밀을 몰랐다. 그는 또 그녀에게 수도원의 승려들이 많은 인도 공법의 수련을 섞었고 서로 다른 서적을 읽는다고 했다. 그는 비록 수많은 인도 수련방법과 도가의 방법도 배웠지만 그 어느 종교도 사람을 구하지 못했고 오직 한 가지 길 바로 파룬따파 뿐이라고 했다! 그의 말은 아주 의미심장했고 또 그녀의 마음속 깊이 들어왔다.

집에 돌아온 후 그녀는 종이에 적은 것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았고 마침내 ‘전법륜’을 찾아냈다. 이 책은 이미 약 40여개 언어로 번역되어 있었고 또 독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다 공개되어 있었고 돈을 받지 않았으며 인터넷에 교공(教功) 비디오까지 공개되어 있었다.

그녀는 곧 ‘전법륜’을 읽었고 단번에 빨려 들어갔다. 책 속에는 그녀가 묻고 싶었지만 답을 얻지 못했던 모든 문제들에 대한 답이 있었고 그녀로 하여금 마치 제호(醍醐 아주 좋은 음료수)로 관정(灌頂)한 것과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이거야말로 제가 찾던 거였죠! 저는 심령을 승화하는 수행방법을 17년이나 찾아왔거든요.”

그녀는 감탄했다! 그동안 겪어온 우여곡절과 인생에서 가장 좋은 17년을 그녀는 고생스럽게 법을 찾고 도를 구하느라 육체적인 고생과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 마침내 대법을 찾은 것이다! 그녀는 고통의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파룬따파의 가르침에 대조해 그녀는 자신의 문제를 찾아냈다.

“저는 제게 많은 집착과 옳지 않은 관념들이 있음을 발견했어요. 저는 아주 이기적이고 경쟁적이며, 화를 잘 내고, 관용하지 못하며, 민감하고, 강렬한 색욕의 집착이 있음을 알게 되었죠. 한번은 제가 내 몸에 있는 집착을 써내려갔는데 숫자가 약 80~90개에 이르렀어요, 닦아 없애야 할 집착이 이렇게 많았던 거죠.”

그녀는 수련이란 생활 곳곳에서 오직 ‘진선인(真·善·忍)’ 원칙에 따라 해야만 비로소 높은 층차로 수련할 수 있고 심지어 초능력이 나타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또 ‘불이법문(不二法門)’의 도리를 분명히 알게 되었고 종전에 수련했던 것들을 모두 내려놓아야 했다. 이전의 공법을 내려놓기란 쉽지 않았지만 그녀는 결심을 내리고 요가반 문을 닫아버렸다.

“대법에 진입하려면 진정으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명예와 이익과 감정에 대한 집착이었죠. 저는 이것이 제 생명에서 가장 중요한 한걸음이자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때부터 시작해서 진정으로 정신적 승화를 느낄 수 있었고 심신이 아주 가벼워졌어요.”

그녀는 이렇게 순정(純淨)한 마음으로 단호하게 대법수련으로 걸어 들어왔고 이것은 또한 그녀로 하여금 대법의 초상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했다.

“처음 수련할 때부터 저는 파룬(法輪)이 뱃속에서 도는 것과 또 다른 곳에서 도는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어요. 저는 선생님께서 제 뱃속에서 흑색 물건을 꺼내시는 것을 보았어요. 한번은 척추 뼈가 어떻게 제자리를 잡는지 들을 수 있었는데 황금색 에너지가 제 척추를 뚫고 내려왔어요.”

소업과 신체 청리는 대법 수련 중에서 바로 신체를 정화하는 것이다. 그녀의 몸에서도 진실하게 표현되어 나왔다. 수련을 시작하자마자 그녀는 곧 심한 두통과 구토 증상이 나타났다. 그녀는 사부님께서 자신을 관할하시는 것임을 분명히 알았다. 그녀의 신체 정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너무나 많은 문파의 것들로 들어차 있었다.

“그날 밤 저는 내내 구토했고 온전히 두 발로 서 있을 수 없었어요. 너무 어지러웠고 침대에서 일어나려 하자 방안이 흐릿해서 보이지 않았고 빙빙 돌면서 메스껍고 구토가 났어요. 그 후 잠에 빠졌죠. 그리고 또 계속해서 선생님의 설법을 들었어요. 다음 날 제 상태는 점차 호전되었고 조금씩 마시거나 먹을 수 있게 되었어요. 또 하루가 지나자 저는 몸이 아주 가볍고 청명한 것을 느꼈는데 사부님께서 제 내장을 청리해주신 것을 느꼈죠. 그 후 저는 전신에 힘이 넘쳐났고 또 아주 경쾌한 느낌이 들었어요.”

일체가 다 진실이었다. 몸이 개선되었고 정신도 활달해졌으며 그녀는 정말로 변했다. 주변의 친척과 친구들도 모두 그녀의 변화를 볼 수 있었다. 모두들 그녀가 아주 친절하고 아주 평온하며 아주 인내심 있고 남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 변모했다고 했다. 그녀가 수련을 했기 때문에 친지들도 파룬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파룬궁에 가까이 다가왔다. 모두들 자발적으로 서명하고 중공의 파룬궁 박해를 비난했다.

그녀의 수련은 완전히 정면적인 반응을 이끌어냈고 모든 이들이 그녀를 지지했다.

“전에 저는 늘 인내하지 못하고 정서가 불안했어요. 이기적이고 자신만 알았으며 나태해서 가정에서도 모순과 충돌을 가져왔어요. 지금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부족을 찾고 또 고치고 있어요.”

2010년 그녀가 법을 얻은 지 9개월 후 그녀는 미국 뉴욕에서 열린 국제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에 참석했다. 이것은 그녀가 처음으로 이런 대형법회에 참가한 것으로 6천여 명의 세계 각지에서 온 파룬궁 수련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녀에겐 평생 잊기 힘든 일이었다.

“제 기억에 그 법회에서 수련생들의 교류를 듣던 중 갑자기 극히 거대한 자비를 느꼈고 눈물이 단번에 쏟아져 나오며 제 마음이 확장되는 것을 느꼈어요. 5분 후 사부님께서 나타나셨고 회의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났습니다. 오랫동안 찾아오다 마침내 위대한 사부님과 위대한 법을 만나게 된 거죠. 사부님께서 단상에서 설법하실 때도 제 눈물은 줄곧 멈추지 않았어요.”

“저는 운이 좋아서 여러 번 사부님을 뵈었어요. 세세한 것까지 모두 기억할 수 있는데 그것은 제 마음속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입니다. 저는 사부님의 무한한 자비를 느낄 수 있었죠. 매번 뵐 때마다 저는 늘 한 가지 이야기를 쓰곤 했는데 지금은 다 제 마음속에 저장해놓았어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부님 저를 지옥에서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진법(眞法)을 얻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리고 당신의 제자로 받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수련에 정진해 제 서약을 이행하겠습니다.’라는 것입니다.”

스베틀라나의 마음은 갈수록 더 순정해졌다. 그녀는 매일 업무에서도 늘 순진함을 품고 자신의 인내, 선량과 사랑을 펼치려 노력하고 있다. 유치원에서 일하는 가운데 아이들은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의 따스하고 선량함으로 또 많은 학부모들의 신뢰를 얻었다. 그녀 자신의 가정도 더 화목해졌고 친지들도 그녀로 인해 파룬따파에 대해 아주 좋은 인식을 갖게 되었다.

스베틀라나는 늘 자신은 행운아이며 진정으로 대법 속에서 되돌아 올라갈 수 있다고 느낀다.

(명혜망에서 전재)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19/11/2/395325.html

1 2 3 4 5 ··· 8
블로그 이미지

파룬궁(法輪功)으로 잘 알려진 法輪大法(파룬따파)는 리훙쯔(李洪志)선생께서 창시하신 고층차의 불가(佛家)수련법이다.

8648h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