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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의 뱃속에서는 배도 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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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중국] 중국에서는 도량이 큰 인물을 빗대 ‘재상의 뱃속에서는 배도 저을 수 있다(宰相肚里能撑船)’는 말이 있다. 좋은 지도자는 정확한 지도력과 행동력, 그리고 큰 인내력과 너그러움을 겸비한 인물일 것이다. 이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변치 않는 덕목이다.

 

중국 송나라 시기, 세 명의 황제를 보필한 부필(富弼)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도량이 넓고 너그러웠다. 그는 ‘송사(宋史)’에 의하면 다음과 같았다.

 

“검소하고 예의 바르며, 타인에게 이야기할 때는 비록 상대가 자기보다 젊고 사회적 지위가 낮더라도 똑같이 상대를 존중하며 이야기했다. 그는 침착성이 있으며 공손하고 분별없이 화내지 않았다. 그의 천성은 선량하고 악을 싫어했다.”

 

부필은 타인에게 욕을 먹어도 욕설이 귀에 닿지 않았다. 마치 욕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인근에 있던 지인이 말했다. “어떤 사람이 당신을 욕하고 있습니다.” 부필은 말했다. “아마, 다른 사람을 욕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인은 다시 부필에게 말했다. “그 남자가 당신의 이름을 외치고 있습니다.”

 

부필은 조용히 “이름이 같은 사람은 많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결국 큰 소리로 욕하던 사람은 부필의 말을 듣고 부끄러워 조용히 물러났다.

 

부필은 아들들에게도 항상 타일렀다. “관용은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만약 정직하고 검소하며 친절하면 그 인물은 무엇이든 완수할 수 있다.”

 

한편 명나라 시대 원료범(袁了凡)은 분노에 대한 대처법을 남겼다. “만약 분노가 폭발하면 스스로 타일러라. 모든 사람에게는 결점이 있다. 다른 사람이 예의가 부족해도 왜 거기에 자신이 움직이는가? 분개하는 이유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디. 만약 타인의 태도가 적절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은 자신의 덕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자신을 바로잡아 그에게 모범을 보이면 좋다.”

 

“만약 타인이 자신을 욕하고 험담해도 화낼 필요는 없다. 넓은 하늘로 향해 타오르는 불도 언젠가는 사라져 버리기 마련이다. 만약 비방 중상을 받았을 때 자신을 방어하려 하면, 그것은 마치 누에가 비단을 토해내 누에고치를 만들어 내듯 결국 자신을 껍질에 가두어 버리게 된다. 분노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단지 자기 자신에게 해만 끼칠 뿐이다.”



허민 sscn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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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과연 실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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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용의 해를 맞아 인터넷에 공개된 용 모양의 구름

 

[시사중국] 올해 설날, 세계 각지 중국인들은 임진년 ‘용의 해’를 성대하게 축하했다. 중국에서는 용의 해에 보통 출산율이 큰 폭으로 증가한다. ‘망자성용(望子成龍-아이가 용에 되길 바란다)’는 말처럼 중국인들은 용을 출세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神)과 공존하는 시대

 

중국인은 고대부터 용을 천국에서 신과 공존하는 고상함과 엄숙성을 갖춘 신성하고 불가사의한 생물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황제는 자신을 ‘진룡천자(眞龍天子)’로 자칭했고 용 모양이 새겨진 ‘용포’를 입고 용으로 장식된 의자나 장식물 등을 사용했다.

 

또, 불교나 도교 수행자가 수련 성취할 때 용을 타고 하늘에 오른다는 말처럼 중국 불교나 도교 사원에는 용 장식이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용은 중국 전통문화와 공존하고 있으며 중국인들은 어딜 가든지 자신을 ‘용의 후예’라고 말할 정도로 그들 마음속 깊이 살아있다. 그러나 근대 무신론이 출현하면서부터 많은 사람들은 용을 그저 믿을 수 없는 한 가지 이야기로 치부하고 있다.

 

용은 실존하는가

 

▲용을 쏴 떨어뜨렸다는 요태조 야율아보기

중국에서는 옛부터 많은 서적에 인간 세상에 모습을 나타낸 용의 기록이 있다.

 

대표적인 것인 요(遼)나라 태조 (耶律阿保磯)의 이야기다. ‘요사・태조본기하(遼史・太祖本記下)’에 따르면 야율아보기가 어느 날 아침 눈을 뜨자 수십 척의 검은 용이 하늘을 선회하고 있었다. 그가 그 용을 겨냥하고 화살을 쏘자 명중했지만 재빨리 도망쳐버렸다. 용은 그 후 대략 1500리 떨어진 곳에서 포획됐는데 크기가 몇 척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금나라 대학자 원호문(元好問)도 ‘속위견지(續夷堅志)’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요나라 신책(神冊) 5년 3월, 검은 용이 예날산(拽剌山) 남쪽 강가에 나타났다. 요나라 태조는 달려 가 그것을 사살했다. 용의 꼬리는 길고 다리는 짧았다. 길이는 5척, 혀 길이는 2치반이다. 창고에 보관하도록 명해 정우(貞祐-1214년) 남도(南渡)때까지 보존되어 있었다.”

 

고대 기록 뿐 아니라 근대에서도 용을 보았다는 화제는 끊어지지 않는다.

 

중국의 용 목격담

 

1944년 8월 헤이룽장성 무단강 남쪽강변에 위치한 진가위자촌(陳家圍子村)에 용이 땅에 떨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농민들은 용이 땅에 떨어진 후 숨이 곧 끊어질 듯했지만 몸에 물을 끼얹어 구명했다고 한다. 당시 목격자는 이 동물은 머리에 긴 뿔이 있었고 몸에는 비늘이 있었으며 또 비린내가 아주 강해 대량의 파리가 들끓었다고 증언했다.

 

최근에도 중국에선 용에 관한 많은 보도가 있다. 2005년 한 사진작가가 티베트 상공에서 찍은 용의 사진이라며 인터넷에 한 사진을 올렸다. 그는 2004년 6월 22일 티베트 청장철도 착공식에 참가하고 비행기로 돌아오는 도중 이 사진을 찍었다며 이 물체에 ‘티베트 용’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 한 사진작가가 비행기에서 찍은 '티베트의 용'

 

이 사진을 보고 미국 코네티컷주 한 화교는 자신의 큰아버지가 중국에서 직접 용을 목격했다는 소식을 제보하기도 했다. 그녀의 큰 아버지는 항일전쟁시기 산속에서 한 청룡이 상처를 입고 땅에 떨어진 것을 보았는데 3칸짜리 집만큼 길었다고 전했다. 현지 주민들은 이 용을 위해 천막을 치고 구더기가 들끓는 상처를 씻어주었다. 주민들은 향을 피우고 하루빨리 청룡이 승천하길 빌었다. 약 3일후 큰 비가 내렸으며 이 청룡은 갑자기 사라졌다.

 

2004년 6월 16일 랴오닝성 잉커우(營口)시의 81세 노인 쑨정런(孫正仁)는 자신이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용골(龍骨)을 내놓았다. 1934년 여름 잉커우시에는 연속 40여일간 큰 비가 내려 강물이 불어나 갈대밭이 전부 물에 잠겼는데 어떤 사람이 그곳에서 용모양의 거대한 괴물을 발견했다. 이 괴물은 두 번이나 나타났으며 두 번째 발견했을 때는 죽어서 골격만 남아 있었다.

 

2005년 8월 중국 핸드폰에 찍혀 화제가 됐다. 8월 8일, 길림대학의 리(李)모 군은 자신이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사지와 꼬리를 완벽히 갖춘 용 모양을 한 물체가 보인다. 리군의 증언에 의하면 이 물체는 길이는 십여 미터로 비행 고도는 비행기와 비슷했으나 무척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고 한다.

 

▲지린(吉林)대학 하늘에서 용 모양의 비행물체

 

2007년 7월, 쓰촨성 청두(成都)시의 청강화원(淸江花園) 아파트 단지 야간 감시카메라에 용을 닮은 생물이 지나가는 신비로운 영상이 찍혔다. 이 신비로운 생물은 2초 남짓 화면에 나타났다 자취를 감췄다.

 

2008년에는 장쑤성 가오유호(高郵湖) 호수면에 ‘용오름(龍吸水)’이라는 일종 회오리가 나타났다. 그런데 단순히 ‘용오름’ 현상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용을 닮은 검은 그림자가 재빨리 승천하는 영상이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을

 

용에 관한 역사적 기재나 회화가 많이 남겨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증을 중요시하는 현대 과학계에서는 용은 여전히 상상속 동물로 치부하곤 한다. 왜냐하면 그 통설을 뒤집을 가능성이 있는 ‘과학적인 증거’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단지, 현대 과학의 ‘기호’에 맞는 증거가 없다고 그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현대 과학과는 다른 새로운 시점으로부터 용의 존재를 찾으면, 그것을 해명하는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역대문헌의 기재 중에서 ‘용’의 출현은 인간세상에서 왕조의 변천과 관계가 있다고 전해지며, 신앙인들은 용의 출현이 무신론에 빠진 사람들에게 우주의 진상을 끊임없이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허민 sscn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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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종류의 말(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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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중국] 어느 날 석가모니는 제자들을 모아 네 종류 말에 대한 설법을 시작했다. 첫 번째 말은 매우 영민하고 재빨라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다. 주인이 채찍을 치켜 든 순간 달릴 것인지 멈출 것인지 인식할 수 있다. 즉, 주인의 생각을 순식간에 인식해 실수가 없다. 이것이 일류의 말이다.

 

두 번째 말도 좋은 말이다. 이 종류의 말은 주인이 채찍을 치켜 들면 반응하지 않지만 채찍이 몸에 닿는 순간 인식한다. 신체도 강건하고 빠른데 좋은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말은 보통 말이다. 주인이 채찍으로 건드려도 듣지 않으며 주인이 크게 화를 내고 격렬하게 때려서야 겨우 달리기 시작한다.

 

네 번째 말은 나쁜 말이다. 주인이 아무리 격렬하게 채찍을 휘둘러도 반응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주인은 더욱 강하게 채찍을 휘두를 수밖에 없으며 말은 큰 상처를 입어서야 겨우 달려야 함을 인식한다.

 

다음 날, 석가모니는 네 종류의 사람에 대해 말했다. 첫 번째 사람은 이 세상의 무상함을 재빨리 깨닫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며 수행에 정진한다. 이 사람은 첫 번째 말과 닮았다.

 

두 번째 사람은 첫 번째 사람만큼 민감하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인생이 무상하다는 사실을 곧 깨닫고 수행의 길에 들어오게 된다. 이 사람은 두 번째 말을 닮았다.

 

세 번째 사람은 비교적으로 괴로운 길을 걸으며 시간이 지연시킨다. 가족의 불행이나 자신에게 닥친 재난 등으로 괴로워하다가 간신히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수행의 길로 들어온다. 이 사람은 세 번째 말을 닮았다.

 

네 번째 사람은 불치병에 걸리고 수명이 다 해갈 무렵 간신히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는다. 그는 일생 동안 범한 많은 실수를 고치고 바른 길로 다시 가고 싶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정진 sscn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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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성 낙산대불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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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성 러산에 위치한 거대한 미륵 대불상인 ‘낙산대불’

 

[시사중국] 대자연에는 매우 많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신상(神像)이 있다. 그 중 하나인 천연 와불(臥佛-누워있는 불상)은 쓰촨성 러산(樂山)에 있는데 이 와불 심장부에는 대불상(일명 낙산대불)이 위치하고 있다. 낙산대불의 묘한 위치는 마음(心)을 수련해야 곧 부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천기를 나타낸다.


낙산대불은 당대(唐代)시기 우수한 예술작품 중 하나로 미륵불을 의미한다. 당시 왜 이처럼 거대한 미륵불을 만들었을까. 당나라 시기와 미륵불 숭배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불교 교의에 따르면, 미륵불은 3대 부처님 중 미래 부처님으로 그는 미래세계의 광명과 행복을 상징한다. 미륵불은 석가모니 부처 사후 몇 년 후에 부처 지위를 대신할 것이고, 우화림원(于華林園)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널리 불교 교리를 전하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불경에는 미륵이 태어나면 ‘천하가 태평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연히 그가 되도록 빨리 인간세계에 찾아올 것을 갈망한다. 또 3천년 마다 한번씩 피는 꽃인 우담바라가 피면 미륵불이 도래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중국 당나라 무주(武周) 시기, 여황제 측천무후는 일찍이 ‘대운경소(大雲經疏)’를 편찬하도록 명령해 그녀 자신이 미륵이 환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백성들의 미륵 숭배 관념에 따라해 그녀가 남존여비 시대에 제위에 오르는 것을 도와주었다.

 

측천무후의 강력한 미륵불 제창은 결국 전국 예술가들에게 미륵불 제작 풍조를 일으켰다. 측천무후 시대 20여 년 후, 당나라 유명 스님 해통(海通) 역시 낙산대불을 조성할 때 자연스럽게 미륵불을 선택했다.

 

어떤 사람이 아마도 한가지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왜 낙산대불의 미륵불은 보통 절에서 볼 수 있는 뚱뚱하고 배가 나온 일반 미륵불상과 다른가?

 

▲ 미륵불이 환생한 것으로 알려진 계차스님, 늘 포대를 매고 동냥해 포대화상으로도 불린다.

이 미륵불은 중국 당나라말 계차(契此)스님 외모에 근거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늘 포대를 하나 짊어지고 동냥을 했다고 해서 ‘포대화상(布袋和尙)’이라고도 불리는 계차스님은 절강성 봉화(奉化)현 사람이다. 그는 늘 선행을 즐겨하고 날씨와 사람의 길흉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는 입적 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륵 진실한 미륵이여(彌勒眞彌勒), 천백 억의 몸으로 나타나(化身千百億), 수시로 세인들에게 나타나니(時時示世人), 세상 사람들은 절로 모르니라(世人自不識)” 그래서 이후 사람들은 모두 그가 미륵불의 화신이라고 여겼다. 항상 웃고, 넓은 마음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포대화상은 이후부터 미륵불을 상징하게 됐다.

 

사실은 중국 불교문화 중에 미륵불상 모양은 여러번 큰 변화를 거쳤다. 첫 번째 단계는 인도에서부터  전해져 들어온 것이며, 두 번째는 ‘중국 특색’의 고대 미륵불이다. 세 번째는 현재 보통 절에서 볼 수 있는 포대화상 미륵이다.

 

낙산대불은 이 중에 ‘중국 특색’을 갖고 있는 미륵불이다. 낙산대불 전체 외모는 세속을 초월한 모습으로, 머리 위에 상투, 넓은 양어깨, 높고 긴 눈썹, 둥글고 곧은 콧구멍은 모두 전통 불교 규정에 따라 디자인됐지만 그의 표정은 한족의 특징을 갖고 있다.

 

어깨가 넓지만 가는 허리를 가진 조기 인도불상 형태 역시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대신 튼튼한 양어깨와 풍만한 가슴 등은 통통한 체형이 미적기준이 된 당나라 시기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또 낙산대불이 앉아 있는 모양도 인도 불상의 ‘가부좌’식과 다르다. 낙산대불은 물을 다스리는 큰 부처의 이미지에 맞춰 제작됐는데 이 안정된 자세는 당시 배를 젓는 사람이 부처님을 믿고 험난한 격류를 돌파할 수 있는 자신감을 부여했을 것이다.

▲ 낙산대불은 사진에서 보이는 천연 와불 심장부에 위치하고 있다.

 

중국 수당(隋唐)시기는 불교가 가장 흥성했던 시기로 많은 불상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문화대혁명 기간 절대다수 불상이 모두 홍위병들에게 파괴됐다. 불상 뿐 아니라 염제능(炎帝陵)으로부터 절, 도교 사원, 공자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전통문화 유산이 소실됐다. 낙산대불 뒤에 있는 오우사(烏尤寺)의 5백 나한 역시 홍위병이 하나하나 깨뜨려 현재는 모두 머리가 없는 채로 남아 있다.

 

오직 낙산대불만은 이 같은 위기를 모면했는데 강을 끼고 위치해있으며 높이가 무려 70미터에 달해 홍위병들이 감히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운좋게 낙산대불의 장관을 볼 수 있고 이 불상이 위치한 심장 부위를 기준으로 더 큰 낙산 천연와불이 존재하는 의미를 알게 됐다.



허민 sscn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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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팔계의 ‘팔계’는 무슨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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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류지싱(劉繼興)

 

[시사중국] 서유기에서 옥황상제 수하에서 천하를 다스리는 천봉원수(天蓬元帥)는 술에 취해 항아(嫦娥)를 희롱한 죄로 천상에서 축출된다. 인간 세상에 태어나게 됐지만 그만 실수로 돼지 몸에서 태어나 돼지와 비슷한 얼굴을 갖게 된다.

 

그는 운전동(雲棧洞)에서 ‘저강렬(豬剛鬣)’로 자칭한다. 저강렬은 이후에 보살의 계행을 받고 5훈3염(5葷3厭)을 끊는다. 삼장법사(당의 고승인 현장, 당승이라고도 부름)는 이에 근거해 그에게 ‘팔계(八戒-8가지 계율)’라는 별호를 지어준다. 저팔계는 36가지 변신술을 갖고 있으며 구름을 타고 다니며 구치정바(九齒釘耙)라는 무기를 쓴다. 삼장법사가 서역에 경을 가지러 가던 도중 손오공은 고로장에서 저팔계를 굴복시킨다. 그후부터 저팔계는 손오공을 도와 삼장법사를 보호해 서역으로 경을 구하러 간다.

 

삼장법사는 무엇 때문에 저강렬에게 ‘팔계’라는 별호를 지어주었을까? ‘팔계’에는 어떤 함의가 있을까? ‘팔계’는 불교용어로 ‘팔재계(八齋戒)’의 약칭이다. 불교에서는 집에서 수련하는 남녀 신도들을 위해 8가지 계율을 제정했다. 즉 살생, 도둑질, 음탕, 망언, 음주, 치장과 가무, 화려한 침대, 탐식을 가리킨다.

 

불도합일인 서유기에서 ‘팔계’는 불교의 ‘팔재계’와 공통점이 있는 동시에 다른 점도 있다. 저팔계는 결점과 문제투성이지만 마지막에는 여래불에 의해 ‘정단사자’로 봉해진다. 이는 저팔계가 자신의 결점을 고친 것과 관계된다. 처음에 저팔계는 계율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지만 여러 신선들의 지도와 삼장법사, 손오공, 사오정의 감독과 관리를 통해 점차적으로 계율을 지키게 된다.

 

1. 식탐: 식탐 때문에 저팔계는 서역에 가는 길에서 많은 시련을 겪는다. 손오공이 제때에 저지하지 않으면 저팔계는 여러 요괴들의 음식으로 됐을 것이다. 저팔계가 수박을 먹는 장면에서 그의 식탐은 적나라하게 표현됐다. 이후에 저팔계는 천천히 탐식 습관을 버렸고 “이전에는 사탕을 주는 군자에게 속은 적이 있지만 지금은 입이 단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명언까지 말하는 차원에 이르렀다.

 

2. 색욕: 서역에 가는 초기에 저팔계는 미녀만 보면 침을 흘리고 동서남북을 가리지 못했다. 다행히 삼장법사의 끝없는 교육 및 손오공과 사오정의 선의적인 조롱으로 차츰 불량한 행위를 고치게 된다. 특히 4명의 보살의 점화을 받아 저팔계는 자신의 문제점을 철저히 느끼고 그후부터는 아름다운 요정을 보아도 무기로 공격한다.

 

3. 재물: 서역에 경을 얻으러 가는 도중, 강한 요괴를 만나 손오공도 어쩔 도리가 없게 되면 저팔계는 언제나 사오정이 들고 다니는 짐 속의 공동재산을 나눈 후 각자 제갈 길을 갈 것을 제의한다. 손오공의 욕설과 사오정의 꾸지람을 들은 후 겨우 재산을 나눌 생각을 없앤다.

 

4. 고자질: 저팔계는 요괴들 앞에서는 어쩌지 못하지만 삼장법사 앞에서 고자질하는 재간은 뛰어났다. 다행히 삼장법사가 현명하고 손오공과 사오정이 제때에 책망했기에 저팔계의 음모는 수포로 돌아간다. 저팔계는 천천히 이 결점을 극복해 단결과 협력의 정신을 받아들이게 된다.

 

5. 거짓말: 저팔계는 수많은 우스꽝스러운 거짓말을 저질렀다. 이런 행위에 대해 손오공은 저팔계를 추적하는 방법을 사용해 제때에 잘못을 시정했고 삼장법사의 정확한 결정에 확실한 자료를 제공했다. 또 저팔계가 거짓말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6. 게으름: 손오공이 삼장법사에게 축출당한 시기, 저팔계가 잠을 탐해 삼장법사는 또 한번 요괴한테 붙잡힌다. 또 삼장법사가 저팔계에게 동냥을 명하면 저팔계는 숲에서 잠을 잔다. 매번 저팔계가 게으름을 피우면 손오공은 벌레 따위로 변신해 저팔계를 조롱한다. 그러자 겁이 난 저팔계는 더 이상 게으름을 피우지 못한다.

 

7. 두려움: 경을 취하러 가는 길은 산이 높고 물이 깊으며 수많은 요괴가 있기 때문에 그 험난함을 헤아릴 수 없다. 고난에 직면할 때마다 저팔계는 도망치려고 한다. 삼장법사, 손오공, 사오정의 고무격려를 받은 후 저팔계는 경을 가지러 가는 일에 헌신하고 고난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제거하게 된다.

 

8. 공명심: 저팔계의 무공은 별로 높지 않아서 요괴를 만나도 크게 싸우지 못하고 도망치거나 기껏해야 겨우 상대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저팔계는 공명심이 강해 남의 공적을 자기 앞으로 옮겨 놓기를 잘한다. 삼장법사, 손오공, 사오정의 도움을 받은 후 저팔계는 차츰 이 결점 역시 극복하게 된다.

 

서유기의 주인공은 보통 손오공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필자는 경을 가지러 가는 과정에서 저팔계가 천천히 ‘팔계’를 실행해 여래불에 의해 ‘정단사자’로 봉해지는 과정이 서유기가 가장 나타내고 싶었던 주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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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도 믿을 수 없는 돌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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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중국] ‘균형감각의 대가’ 빌 단이 창작한 ‘돌탑’은 그야말로 일반인들의 눈으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하다. 사람들은 그를 예술가이자 마법사 같다고 말한다.

 

빌은 몇 분 이내에 이 같은 ‘돌탑’ 하나를 만들 수 있다. 그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따로 재료를 구할 필요없다. 늘 현장에 있는 돌들을 이용해 자신의 작품을 창작한다.

 

인도네시아 출신인 빌은 하와이 맨발 여행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의 여행친구는 이르는 곳마다 돌을 쌓아 기념으로 남겼다. 거기서 영감을 얻은 빌은 그후 15년 동안 자신의 기예를 갈고 닦아  결국 이 작업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빌은 초보자에게 건의한다. “당신이 이 작업에 매우 흥미를 가진다면 혼자서도 시작해볼 수 있다. 시험삼아 처음에 2~3개의 돌을 쌓아보라, 사실 결코 어렵지 않다. 처음 시작할 때는 돌과 돌 사이 접촉면이 비교적 넓겠지만, 천천히 당신의 기술이 성장함에 따라 접촉면도 점차 작게 변할 것이다.”

 

▲ 빌은 만들기 불가능해 보이는 ‘돌탑’ 작품을 재빨리 만든다.

 

▲ 여행시 가는 곳마다 ‘돌탑’ 작품을 선사하는 빌

 

▲ 돌탑의 완벽한 균형성과 안정성을 검증해주는 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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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고향에 돌아올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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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낭콩 꽃

글/ 류지룽(劉繼榮)

 

[시사중국] 엄마는 이제 완전히 나이가 들어 아이처럼 변한 것 같았다. 전화로 언제나 기쁜 듯 “언제 고향에 돌아올거야?”라고 물어본다.

 

엄마가 혼자 살고 있는 고향은 천리 이상 떨어져 있고 3번이나 환승을 해야 한다. 나는 직장과 아이 돌보기만으로도 지쳐서 고향에 돌아갈 여유가 없었다. 귀가 어두운 엄마에게 나는 인내심 있게 설명하지만 그녀는 몇 번이나 다시 물어본다. “언제 고향에 돌아올 수 있어?”

 

내가 결국 참지 못하고 큰 소리를 내서야 엄마는 입을 다물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며칠도 못가서 엄마는 또 물어본다. 그러나 이번은 왠지 어조가 가라앉았다. 무엇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처럼 아무 안 된다고 해도 계속 조른다. 나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내가 마음이 평정되면 엄마는 기쁜 듯이 고향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응, 뒷마당의 석류나무는 전부 꽃이 피었고 수박도 곧 익게 돼. 그러니까 빨리 돌아와.”

 

“엄마, 난 바쁘고 휴가 내는 것도 어려워.” 나는 조금 곤란한 듯 대답했다. 그러자 엄마는 화제를 돌렸다. “만약 내가 암에 걸려 앞으로 반년 밖에 살 수 없다면...” 내가 막 엄마를 나무라자 엄마는 호호 하하 웃었다. 나는 어린 시절에 비가 내리면 학교에 가기 싫어서 배가 아프다고 꾀병을 부렸지만 그 때마다 엄마에게 간파당한 적이 있다. 지금은 엄마가 오히려 딸에게 꾀병을 부리다니. 나는 웃음이 나왔다.

 

이러한 실랑이를 몇 번이나 반복하자 나는 지쳐서 다음 달 반드시 고향에 가겠다고 말했다. 전화 저편에 엄마는 기쁜 나머지 눈물이 나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언제나 바쁜 나는 결국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다.

 

그 후에도 엄마는 빈번히 재촉하는 전화를 걸었다. “포도도 익었어. 그러니까 빨리 돌아와 먹어.” 나는 재빠르게, “포도가 희귀한 것도 아니고 여기서도 팔고 있어요. 언제라도 많이 먹을 수 있어”라고 대꾸했다. 엄마가 조금 기분이 상한 것 같아서 나는 말했다. “그렇지만, 여기서 파는 것은 화학 비료나 농약을 사용했기 때문에 엄마가 재배한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지.” 이 말을 들은 엄마는 다시 웃었다.

 

매우 찌는듯한 토요일 오후, 갑자기 엄마가 큰 봉투를 짊어지고 우리집으로 찾아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져온 것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엄마의 손은 핏대가 서 있었으며 10손가락 모두 반창고를 휘감고 손등에는 상처 자국이 있었다. “빨리 먹어봐. 이거 전부 내가 골라 딴거야.” 엄마는 나를 재촉했다.

 

고향을 멀리 떠난 적이 없는 엄마는 고향 포도가 좋겠다는 내 한마디 말 때문에 이 먼 길을 왔던 것이다. 차비를 아끼기 위해 가장 싼 에어콘 없는 버스를 타고 왔지만 포도는 매우 신선했다. 엄마가 어떻게 올 수 있었는지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다. 단지 이 세상에 엄마들이 있는 장소에는 반드시 기적이 일어난다고 느꼈다.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고 또 아이도 돌봐야 하는 나를 보면서도 도시 주방에 익숙하지 않는 엄마는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었다. 단지 3일간 머무르다 엄마는 남몰래 표를 예약해 혼자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와서 1주일이 지나자 엄마는 또 나를 만나고 싶다고 재촉했다. “엄마, 좀 더 참아”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숙모로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가 아프신 것 같아. 바로 오렴!” 나는 당황해서 울면서 역까지 달려가 막차에 뛰어 올라탔다.

 

차안에서 나는 계속 빌었다. “엄마의 설교를 듣고 싶어. 엄마가 만들어 준 요리를 먹고 싶어. 엄마 병문안에도 가고 싶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울컥거리고 벅찼다. 그 때 나는 ‘사람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머니가 필요하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버스가 마을에 도착하자 만면에 웃음을 띤 엄마가 종종걸음으로 왔다. 나는 엄마를 꼭 껴안고 “하나도 안 아프자나?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라고 엄마를 나무랐다. 엄마는 그런데도 계속 기뻐하고 있었다. 엄마는 단지 나를 만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엄마는 기쁜듯 식사를 준비하고 맛있는 것을 가득 만들어 테이블 위에 늘어놓아 나의 칭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가차 없이 비판했다. “죽은 너무 탔고 만두피가 너무 두꺼워. 고기 맛은 짜네….” 엄마의 웃는 얼굴이 금새 굳어졌고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마음 속으로 몰래 웃었다. ‘일단 내가 무엇인가 맛있다고 하면 엄마는 반드시 가득 먹일 것이고 그럼 또 나는 다이어트에 실패하니까.’

 

나는 엄마에게 요리에 대해 천천히 이야기를 했으며 엄마는 가만히 애정이 가득찬 눈길로 나를 응시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엄마는 기쁜듯 귀를 기울여 들었다. 낮잠을 잘 때도 엄마는 침대 겨드랑이에 앉아 싱글벙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내가 소중하면 왜 함께 살지 않아?”라고 물으면 엄마는 “도시 생활에 익숙하지 않아서”라고만 대답했다.

 

며칠 지났다. 나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지만 엄마는 나에게 하루만 더 있어달라고 했다. 숙모집으로부터 돌아오자 엄마는 마음을 담아 요리를 준비해두었다. 하지만 잘 보니 물고기에는 비늘이 남아 있고, 닭고기에도 몇 가닥 털이 남아 있었다. 버섯 요리에는 머리카락도 들어 있었다. 고기 요리도 야채 요리도 별로 먹을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엄마는 젊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역시 나이가 들어 야무지지 못하게 된 것 같았다. 엄마는 내가 젓가락을 잘 놀리지 않는 것을 보자 나를 심야버스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엄마와 나는 매우 어두운 길을 팔짱을 끼고 걸었다. “넌 시골길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엄마는 내가 승차할 때까지 여러 가지를 돌봐주었다. 버스가 막 떠나려하자 엄마는 서둘러 버스에서 내리다가 옷이 버스문에 걸려 넘어질뻔 했다. 나는 놀라서 버스 창문으로 외쳤다. “엄마, 엄마, 조심해!” 엄마는 버스를 쫓으면서 외쳤다. “나는 화 안났어! 네가 바쁜 것을 아니까!”

 

연말이 되어 숙모에게서 또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가 아프신 것 같아. 곧바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저께 엄마는 전화로 “난 건강하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아”라고 했는데 설마 또 거짓말을?

 

하지만 미적거리는 나에게 숙모는 끊임없이 빨리 오도록 재촉했다. 믿을 수 없었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튀김떡을 사갖고 친가에 달려갔다.

 

이번엔 버스가 마을 입구에 도착해도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후 숙모가 진실을 가르쳐 주었다.

 

숙모가 나에게 전화를 걸자마자 엄마는 곧 숨을 거두었다. 매우 조용하게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반년 전부터 엄마는 암 진단을 받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평소와 같이 건강하게 일하며 자신의 사후도 모두 준비하셨다고 한다. “네 엄마는 오래전부터 눈병에 걸렸지. 시력이 약해져 잘 보이지 않으셨어.”

 

튀김떡을 안은 내 가슴은 찢어질 것 같았다. 엄마는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끊임없이 나에게 전화를 거신 것이었다. 나를 만나고 싶고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먹지 않았던 요리는 엄마가 약해진 시력으로 열심히 만든 것이었다. 나는 바보였던 것일까. 내가 돌아간 그날 밤, 엄마는 어떻게 집까지 도착한 것일까. 도중에 넘어지거나 다치지 않으셨을까.

 

마지막에 만났을 때 엄마는 즐거운 듯이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강낭콩 꽃 색깔은 네가 어린 시절에 입었던 보라색 옷 같아.” 엄마는 나에 대한 사랑과 온기를 남기고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다.

 

엄마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에 대해 화내지 않는 사람이며, 유일하게 영원히 나를 기다렸던 사람이다. 이 깊은 사랑을 받으면서도 나는 엄마를 오래 기다리게 했다.

 

“엄마, 미안해요. 난 그렇게 바쁘지 않았는데...”



허민 sscn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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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중국
‘화성소년의 예언과 중국의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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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비밀을 폭로한 에드가 미첼 박사

글/ 쉬루(許茹ㆍ중화권시사평론가)

 

[시사중국] 미국 우주항공국(NASA)은 외계인이나 UFO의 존재를 줄곧 시인하지 않고 있지만 달 표면에 도착한 여섯 번째 미국인이자 아폴로 14호 비행사였던 에드가 미첼(Edgar Mitchell) 박사는 얼마전 언론을 통해 이 점을 부인했다.

 

한 영국 언론에 따르면, 그는 미국의 한 라디오방송과의 가진 인터뷰에서 “외계인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비행접시들이 지구를 방문하고 있다. 또 일부 나사 관계자들은 인류와 외계인의 직접 접촉을 진행하고 있다”라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켰다.

 

미첼 박사는 일찍이 외계인을 접촉했던 나사 관계자의 말을 빌어 “외계인의 실제 모습은 작은 체격에 큰 눈과 머리를 지녔으며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아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외계인의 과학기술은 고도로 발달해 인류의 과학기술은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외계인들은 인류에 대해 적의가 없다”고 덧붙였다.

 

영국 언론에서 미첼 박사의 발언 내용을 다룬 ‘외계인이 전에 지구를 방문했다’는 보도가 나오기 전에 러시아의 ‘프라우다’지는 화성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한 소년의 예언을 보도한 적 있다.

 

이 소년의 이름은 보리스카로 현재 14세다. 보리스카는 4년 전, 자신이 화성에서 왔다고 밝히고 화성에서의 생활, 화성인들이 지구를 방문한 신기한 경험들을 들려주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는 소년을 만난 후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소년이 화성에서 왔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의 우주와 천문에 대한 지식은 나의 상상을 초월했다. 나는 세계의 권위 있는 과학자들이 모두 소년이 제출한 우주론과 미래세계에 대한 예언을 소홀히 할 수 없을 것으로 믿는다.”

 

▲ 보리스카의 어릴 당시 모습

프라우다 보도에 따르면 보리스카는 1996년 1월 볼고그라드의 즈히리노브스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인 나데즈흐다는 의사이며 부친은 군인이다.

 

나데즈흐다의 기억에 따르면 보리스카는 생후 15일만에 스스로 고개를 들 수 있었고 18개월 때 신문 제목을 읽을 수 있었다. 또 아무도 가르쳐준 적이 없었지만 한자(漢字)를 쓸 수 있었다. 2살이 된 후에는 뛰어난 기억력으로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새로운 지식을 습득했다. 또 신비한 모종 장소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했다.

 

나데즈흐다에 따르면 그는 때로 가부좌를 틀고는 화성, 행성계, 아득히 먼 문명 등 황당한 것들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는 매일 무슨 경전을 읽듯이 우주와 다른 세계의 무궁무진한 이야기들 및 아득히 먼 공간에 대해 말하곤 했다.

 

그때부터 보리스카는 부모에게 자신이 전생에 화성에서 살았다고 끊임없이 말했다. 과거 화성에는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한 차례 대재난이 발생한 후 대기가 사라졌다. 때문에 당시 화성인들은 어쩔 수 없이 지하로 들어가야 했다. 그때부터 그는 늘 무역과 다른 연구를 위해 지구를 방문하곤 했다. 보리스카는 혼자 우주선을 타고 다녔는데 그가 지구에 온 목적은 중국에서 탄생한 한 사람을 찾기 위한 사명 때문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사명을 지니고 왔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언급하지 않았다.

 

2008년 보리스카는 보다 많은 ‘화성인’들이 지구에서 출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왜냐하면 지구에 장차 큰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외에 2009년에 지구 대륙에 첫 번째 큰 재난이 발생할 것이며 이 재난은 신앙이 없는, 신을 믿지 않는 국가에 대한 경고라고 했다. 두 번째 더 큰 재난은 2013년에 닥치는데 신국(神國)의 신들이 관여해 지구상의 모든 오염을 제거한다고 한다. 이는 ‘신국’의 위대한 ‘영적 지도자’를 위해 모든 장애를 제거하고 신앙이 없는 나라의 인류가 위대한 영적 지도자의 감화를 받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2008년 중국 원촨(汶川)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지진이 바로 보리스카가 말한 예언과 일치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중국은 세계적인 인구대국이지만 전 국민의 1%만이 신앙을 갖고 있을 정도로 무신론이 범람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보리스카는 자신이 언급한 ‘영적 지도자’가 예수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2010년에 들어 전 세계적으로 ‘2012년 세계종말’에 관한 예언이 널리 성행하고 있다. 하지만 보리스카는 지구에서 2011년 3차례 큰 재난이 발생하지만 이는 단지 지구의 한 대륙에서만 발생할 뿐이라고 엄숙히 경고했다. 물난리를 제외하고 또 전염병이 크게 퍼져 중국에서만 약 100만 명이 사망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류가 거주하는 지구에 대한 신국의 정화입니다. 인류는 관건적인 시각이 도달하기 전에는 각성하지 못하며 지상에는 늘 폭력과 전쟁이 존재할 것입니다. 당신들이 생명의 합일과 사랑의 힘 및 그 중요성을 알게 될 때라야만 비로소 우리의 모든 행동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는 또 “종말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그 때가 꼭 2012년은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중국에서 탄생한 위대한 영적 지도가가 신국으로 돌아가는 그날 비로소 발생할 것입니다. 최후의 재난, 최후의 말일이 도래하기 전까지 당신들 중 일부는 평화와 사랑의 중요한 의미 및 자신이 지구에서 기다려 온 사명이 무엇인지 영원히 모를 것입니다. 하지만 지혜가 있고 선량하며 지식을 탐구하는 사람들은 장차 그 해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속으로부터 답을 찾아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경고했다.

 

“중국에서 탄생한 위대한 영적 지도가가 누구인가”하는 문제에 대해 보리스카는 명확히 누구라고 지적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는 지금 아주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으며 또 수많은 신들이 그를 따라 함께 지구로 환생했다고 말했다.

 

외계인의 지구 방문과 화성에서 왔다는 보리스카의 우주에 대한 이해 및 놀라운 예언은 역사적으로 남겨진 다른 많은 예언들과 서로 맞아떨어진다.

 

가령 유명한 마야예언에서는 일찍이 “이때 태양계는 은하계 중에서 이미 5천여 년의 대주기를 끝내게 된다. 대주기가 끝난 후 우주는 장차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마야예언에서는 이를 ‘은하계에 동화’한다고 지칭한다. 마야예언에 따르면 1992년부터 2012년까지 이 20년의 시기는 바로 지구가 대주기의 최후단계에 진입하는 ‘지구갱신기’다. 이 시기에 지구는 완전히 ‘정화’될 것이며 갱신기를 거친 후 지구는 장차 은하계에 동화되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허민 sscn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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