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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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리권은 팔선 중의 우두머리로서 순양자 여동빈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한나라때 사람으로 도복을 입고 가슴과 배를 드러내고 부채, 주로 파초선을 들고 있다.


종리권(鍾離權). 성은 종리(鍾離), 이름은 권(權), 자(字)는 운방(雲房)이다. 경조 함양(지금의 협서) 출신으로 후에 이름을 각(覺)으로 고쳐 종리각(鍾離覺)으로 바꾸었으며 자(字)도 적도(寂道)라 하였고 도호(道號)를 정양자(正陽子)라고 하였다.


원나라 시대에 전진도(全眞道)에서는 정양(正陽)조사로 받들어 모시었다. 종리권의 부친은 한(漢)나라 때 열후의 벼슬에 봉해져 중군태수(中郡太守)까지 올랐다고 한다.


종리권이 태어날 때, 산모가 거처하던 지붕 위 하늘에는 기이한 빛이 수 미터 솟구쳐, 그 모양이 작렬하는 불빛과 같아 인근 사람들은 솟구치는 화염 때문에 불이 난 것으로 오인할 정도였다.


그는 태어날 때, 두개골이 둥글고 이마가 넓고, 눈은 오목하고 코가 높았으며, 귀는 크고 두터우며 눈썹은 짙고도 길었다. 얼굴은 붉고 기골이 남달라서, 마치 세 살 정도 된 아이와 같았다고 한다. 더욱 괴상한 것은 태어난 후 며칠 동안 울지 않고 젖도 먹지 않더니, 7일째가 돼서야 비로소 침상에서 뛰어 내려오면서 외치길


종리권 : “몸은 자부(선계)에서 놀았고, 이름은 옥경(옥황상제가 계시는 곳)에 올라있다(身遊 紫府, 名書玉京)”

그 목소리가 너무 맑고 깨끗하여 마치 종을 두드리는 것과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뛰어다닐 수 있었는데 어른처럼 빨라 아이들이 쫓아갈 수 없을 정도였고, 다 큰 아이들처럼 말을 하고 밥을 먹었다고 한다.


종리권은 벼슬에 나아가, 관직이 간의(諫議)대부에 올랐다. 간관 업무를 수행하던 중 모함을 받아서 좌천되어 강남으로 귀양 간 적도 있었다.


귀양에서 돌아온 종리권은 진(晉)의 장군으로 복직했고 대장군이 되어 전군을 호령하게 되었다. 그 당시 토번이 국경을 넘어 침입해 들어와, 종리권은 군사를 거느리고 출전했다. 어느 날, 양쪽 군대가 대치하여 일진일퇴 교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고 바람이 불면서 하늘과 땅이 캄캄해졌다. 앞뒤 분간이 어려워지고 양쪽 군대 모두 더는 싸움을 할 수 없었다. 군사들은 자기 몸 가누기도 어려워 군대의 대오가 스스로 붕괴해가는 형국이 되었다.


종리권이 타고 있던 말 또한 겁을 먹고 미친 듯이 날뛰었다. 비바람이 한바탕 지나간 후, 종리권은 단기필마로 자기 혼자만 남아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꾸불꾸불한 험난한 깊은 산골이어서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종리권은 말을 몰아 산골짜기를 벗어나 자기가 지휘해온 군대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으나 그 계곡을 벗어나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하면서 빙빙 돌 뿐이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나무가 무성한 숲속이라 골짜기에는 어두움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하룻저녁 묵을 인가조차 보이지 않자, 종리권은 말을 세우고 어찌하면 좋을지 망설이고 있었다. 이때 저 멀리 산모퉁이에서 스님(胡僧) 한 분이 나타났다. 멀리서 바라보니 그 호승은 푸른 눈에 높은 코, 헝클어진 머리칼을 눈썹 부위까지 흐트러뜨리고, 몸에는 풀로 짠 옷을 걸치고 손에는 죽장을 짚고 있었다. 그 스님은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종리권 앞으로 걸어왔다.


종리권은 서둘러 말에서 내려 호승에게 물었다.


종리권 : “하룻저녁 잠을 자고 갈 만한 곳이 어디 있을런지요?”


그 말을 들은 호승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없이 종리권을 인도하여, 몇 리를 걸어가 작은 집으로 안내했다. 그제야 호승이 그 산골 집을 가리키면서 한마디 하였다.


호승 : “이곳은 동화선생이 도를 이룬(成道)곳이다. 장군은 잠시 이곳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요.”


말을 마친 후 호승은 작별 인사를 하고 제 갈 길을 가버렸다.


* 동화제군(東華帝君) : 도교의 神 이름으로 성씨는 王, 이름은 현보(玄甫)이고 한나라때 산동(山東)인이다. 백운상진(白雲上眞)을 스승으로 모셨고, 호를 화양(華陽)진인이라고 한다. 후에 신부(神符), 비법(秘法 ), 금단대도(金丹大道)를 종리권에게 전했다고 한다. 원나라때 전진도(全眞道)에서는 북 오조(北五祖)중 제1조로 받들었다.


종리권은 말에서 내려 그 집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산속의 모옥(茅屋)은 비록 크지 않았으나 깨끗하면서 아취가 있고, 속기가 없는 듯 정갈하였다. 귀를 기울였으나, 집 안은 고요하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종리권은 집안의 사람이 놀라지 않도록, 한동안 대문 밖에 서 있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흐르자, 돌연 대문 안쪽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인 : “그 괴상하고 눈 푸른 오랑캐 중은 쓸데없이 말이 너무 많아.”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대문이 열리면서 몸에 흰 사슴 털가죽 옷을 입고, 손에는 푸른색 명아주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걸어 나왔다.


밖으로 나온 그 노인은 종리권을 보자 큰소리로 물었다.


노인 : “너는 대장군 종리권이 아니냐?”


종리권 : “저는 사실 종리권입니다. 그런데 노인장께서는 어떻게 저를 알고 계십니까?”


노인 : “자자, 그러고 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와 요기라도 하게. 많이 지치고 배고픈 상태 아닌가! 여기 검은 깨로 된 밥을 먹어 보도록 하게나.”


부엌에서 종리권이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 그 노인은 옆에 앉아 눈을 조용히 아래로 드리운 채 말이 없다. 종리권은 밥을 먹으면서, 조용히 앉아 있는 노인의 형색과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다. 노인에게는, 세상을 떠난 듯 조용하고도 엄숙한 기운이, 온몸 전체에 가득 흐르고 있었다.


종리권은 노인의 그러한 분위기에 동화된 듯, 부지불식간에, 세상에서 자신의 영화와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투었던 그 마음이, 봄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세상을 벗어나서 도(道)를 닦겠다는 마음이 구름처럼 일어났다.


종리권 : “흠흠, 저 어르신 묻고 싶은 게 있사온데 수도해서 신선이 되는 법(修道成仙之法)을 아십니까?”


노인은 종리권의 질문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음을 머금고 종리권에게 한마디 했다.


노인 : “선문(仙門)에 들기 위해서는 인연이 있어야 한다. 그대도 선도를 배우고 싶은가?”


종리권 : “仙道를 배우겠습니다. 저를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종리권은 노인에게 예를 올리고는 스승으로 모셨다.

이때부터 그 산골짜기에서 종리권은 선도 수련을 시작했다. 그 도인은 종리권에게 장생진결(長生眞訣), 금단비결(金丹秘訣), 청룡검법(靑龍劍法) 등을 일일이 전수하였다.



종리권은 산골짜기 모옥에서 지내면서 바깥세상을 잊고, 무명의 도인에게 仙道비술을 전수 받았다. 이때부터 종리권은 옛날의 속인 복장을 벗어 던지고 도복으로 갈아입었다. 머리는 빗어 올려 쌍상투를 틀었고 손에는 불진(拂塵:먼지털이)을 들고 다녔다. 바야흐로 대장군에서 도사로 변신한 것이다. 선도의 도력이 점차 높아지자 구름 따라 발길 가는 대로 천하를 노닐었다.


그렇게 발길 따라 구름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공동산에 닿았다. 산을 한 바퀴 둘러보다가 기운이 생동하고 경치가 좋은 자금사호봉(紫金四皓峰)에 머물며 신선도를 더욱 깊게 공부하게 되었다. 어느 하루 아주 우연히 신선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신선 :“자네는 나를 따라서 와라.”


신선은 어느 동굴 속으로 들어가더니 옥으로 만든 함을 주었다.


노인 :“자 이 함을 한번 열어보도록 하게나”


종리권이 뚜껑을 열어보니 속에는 신선비결(神仙秘訣)이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종리권은 이때부터 이 신선비결을 통해 선도의 깊이를 더하게 되었다.


당나라 회창 연간에 여동빈이 과거에 세 번 응시하였으나 낙방하고 실의에 차 있는 것을 종리권이 인도하여 선도를 수련케 하였다 종리권은 여동빈을 데리고 장안 서쪽 중원 오악의 하나인 화산 학정봉으로 갔다.


그곳에서 여동빈에게 선도비술을 전수하고, 여동빈의 선도가 깊이를 더하여 갈 때쯤,


종리권 : “여동빈아! 머지않아 천하 십주(十洲)의 모든 신선들이 천계에 가서 옥황상제를 배알하고, 자기가 베푼 공덕을 아뢴다. 나 또한 상제를 뵈러 가려고 하니, 너는 이 동굴에서 오래 머물지 않아도 된다. 적당한 때에 동굴을 나와 구름 따라 세상에서 노닐도록 하여라. 10년 후 너는 동정호에서 나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종리권은 붓을 들어 석벽 위에 초서로 다음과 같이 썼다.


종리권 : “주일고명(晝日高明)

          야월원청(夜月圓淸)

          음양혼신(陰陽魂神)

          혼합상승(混合上昇)


인체 가운데 혼(魂)은 陽에 속하고 백(魄)은 陰에 속한다. 네가 만약 양기를 보전하여 魂을 잘 응결시키자면 양혼(陽魂)을 음백(陰魄)과 결합해야만 음양이 능히 서로 합하게 되고, 혼백(魂魄)이 참(眞)을 이루고, 수련하여 진인(眞人)으로 된다.  앞으로 세상에 나아가서 운유할 때 너는 덕을 널리 베풀고 공덕을 많이 쌓아라. 네가 공을 이루고 원만하게 되면 너와 나는 천상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꼭 이것을 기억하라.”


잠시 후 홀연히 다섯가지 색깔로 상서로운 구름이 피어오르고 청아한 음악(仙樂)이 들리는데, 종리권이 거처하고 있는 동굴로 점차 다가왔다. 구름 속에서 선학을 탄 신선이 동굴 문 앞까지 날아서 내려왔다. 손에는 금간영부(金簡靈符)를 받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신선 :“옥황상제께서 종리권을 부르신다. 그리고 전생의 신선 직위를 회복시켜 주셨다.”


그 신선이 금간옥책(金簡玉冊)을 종리권에게 전해주니 종리권은 오색영롱한 봉황을 타고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당(唐)나라 말기 '시견오'란 사람이 종리권과 여동빈 사이에 문답한 선도(仙道)관련 내용을 모아 편찬한 "종여전도집"(鍾呂傳道集)이 오늘까지 세간에 전해지고 있다.


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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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판(拍板)은 옛날 사람들이 노래를 부를 때 박자를 맞추기 위해 두드리던 악기로, 팔선도(八仙圖)에서 석 자 길이의 긴 박자판(拍板)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이 남채화(藍采和)다.


남채화는, 원래 그의 이름이 아니며 그가 노래를 부를 때, 후렴처럼 화음을 맞추는 뜻이 없는 소리였다. 그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답답가 남채화'(踏踏歌 藍采和)라고 외치며 장단을 맞추었으므로 그 당시 사람들은 그를 남채화(藍采和)라고 불렀다.


남채화가 박자판을 두드리고 노래하며 거리를 활보할 때마다 한 무리의 남녀노소가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손뼉을 치며 웃었고 한편으로는 그와 장난을 치곤하였다. 남채화가 노래하지 않을 때는, 그에게 농담을 거는 자들에게 한 마디씩 입에서 나오는 대로 던지는 말이 풍자와 재치가 있어 사람들이 포복절도하게 했다고 한다.


남채화가 거리를 활보하면서 불렀던 노래는 매우 다양했다고 한다. 그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답답가(踏踏歌) 남채화(藍采和)'로 시작하는 노래이다.


답답가(踏踏歌)        
-  남채화(藍采和)


世界能幾何(세계능기하)               세계가 그 얼마이던가?

紅顔一春樹(홍안일춘수)               붉은 얼굴 한 그루 봄나무

流年一擲梭(유년일척사)               흐르는 세월은 한 번의 북질

古人混混去不返(고인혼혼거불반)      옛사람들은 혼돈 속에서 가고
                                돌아오지 않는데

今人紛紛來更多(금인분분래갱다)      지금 사람들 분분히 오는 이
                                       많더라

朝騎鸞鳳到碧落(조기난봉도벽락)      아침에 난새와 봉황을 타고
                                      하늘에 오르고

暮見蒼田生白波(모견창전생백파)      저녁에 바다를 보니
                            
흰 파도가 인다

長景明暉在空際(장경명휘재공제)      햇볕은 하늘가에 오래도록
                                      밝게 빛나는데

金銀宮闕高嵯峨(금은궁궐고차아)      금은궁궐은 높아 우뚝하구나


노래를 부르며 성 안을 다니다 보면 그에게 돈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남채화는 그 돈을 긴 끈에 꿰어 끌고 다녔는데 가끔 돈이 떨어져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길을 가다가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줄에 꿴 돈을 전부 다 주었다. 돈 쓸 곳이 없으면 그 돈으로 술을 사서 마셨다고 한다. 당나라 말기, 오대의 사람들은 그가 헤져서 너덜너덜한 남색 긴 장삼을 걸치고 성안과 사람들이 모이는 시장에 나타나는 것을 자주 보았다고 한다. 남색 장포를 입고 세 치나 되는 넓은 허리띠를 둘렀는데 그 허리띠를 자세히 다가가서 보면 먹으로 검게 물들인 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남채화는 한쪽 발에는 비교적 괜찮은 가죽 장화를 신었으나, 다른 쪽은 양말조차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고 한다. 또한 보통 사람들과 달랐던 점은 작열하는 무더운 여름에는 남색 장포 안에 솜을 가득 넣어 두껍게 입고 다녔으나 삭풍이 몰아치는 엄동설한에는 너덜너덜한 홑겹의 장삼을 입고 다녔는데, 더 이상한 것은 여름에는 땀을 흘리지 않았고 겨울에는 도리어 온몸에서 열기가 솟아올랐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어릴 때의 남채화를 보았고, 그들이 노인이 된 후에도 그를 보았지만, 용모는 여전히 옛날과 같았다고 하며 조금도 노쇠한 기색이 없었다고 한다.


어느 날, 남채화가 주루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 사람들 눈에 띄었다. 남채화가 술에 취해 있는데 홀연히 퉁소와 생황소리가 하늘에서 울려 퍼지며 하늘로부터 선학(仙鶴) 한 마리가 술집 창문을 통해 남채화 옆으로 날아와 앉았다.


술을 마시던 남채화는 술잔을 놓고 손뼉을 치며 큰 소리로 웃으면서 “왔구나! 왔구나!”를 두어 번 반복하고는 몸을 날려 선학의 등 위에 올라타니 선학은 길게 한번 울고는 남채화를 등에 태우고 공중으로 사라졌다. 이때부터 거리에서 "답답가 부르는 남채화"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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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선고는 팔선 중 유일한 여선(女仙)으로 팔선도에서 연꽃을 들고 있는 아름다운 궁장여인이다. 고대로부터 선고(仙姑)는 선녀 또는 여도사라고 하는 의미가 있고 선도(仙道)에서는 도고(道姑)라고 하고 민간에서는 선랑(仙娘)이라고 한다.


전해져 내려오기로 하선고는, 당나라 사람으로 광주 남해군 증성현 출신이다. 원래 이름이 하수고(何秀姑)였다고 하며 하태(何泰)의 딸로서 당나라 측천무후 시절에 출생하였다는 설이 있다. 태어날 때 자주색 구름이 집을 감싸고 흩어지지 않아, 상서로움을 더했다고 한다.


하선고의 고향 인근 산에는 운모가 많이 산출되었다고 한다. 흐르는 개울물에는 운모 조각이 뒹굴면서 물을 따라 흘러 내려왔지만, 사람들은 떠내려오는 운모 조각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선고가 14~5세 쯤 되었을 때,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신선이 나타나


신선 : “너는 운모 가루를 항상 먹도록 하라, 그러면 몸이 가벼워지고 수명도 연장될 것이다.”


하선고는 꿈속 계시를 믿어 의심치 않았고 매일 운모 가루를 복용하였으니, 그녀의 신체는 가볍기가 제비와 같았으며, 젊음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인근 사람들은 너도나도 앞다투어 운모 가루를 찾아 먹었지만, 일부 사람만이 다소 효력을 보았을 뿐, 대부분은 효력이 없었다고 한다. 운모 가루를 먹겠다는 사람이 많아져 시간이 지나자, 시냇가에서는 그 많던 운모 조각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 운모(雲母) : 운모과 광석의 총칭으로서 결정체, 색깔에 따라 성분이 다르며, 옛날 사람은 운모를 구름의 뿌리라고 하여 운모(雲母)라 이름하였다. 얇은 조각으로 잘 쪼개지며 빛을 투과하거나 거울로도 사용 가능하며 약으로도 쓴다. <도경연의본초>에는 “그 맛이 달고 평이하며 독이 없다. 몸에 사기를 제거하고, 오장을 편하게 하고 오로칠상과 허로를 다스리고 설사를 멎게 한다. 오래 복용하면 몸이 가볍고 수명을 연장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하선고가 어느덧 성장하여 시집갈 나이가 되자, 부모는 혼처를 구하면서 하선고가 결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러나 하선고는 결혼 따위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으로 멀리 외출하였을 때, 팔선 중의 철괴리(鐵拐李)와 남채화(藍采和) 두 신선을 만나 벽곡의 비결을 전수 받았다.


* 벽곡(벽穀) : 음식이나 물을 전혀 먹거나 마시지 않고 사는 것.


하선고는 아침 일찍 외출하여 밤늦게 돌아왔는데, 매번 돌아올 때마다 두 손에는 산에서 나는 큼직한 과일 한 아름을 가져왔다. 이 큼직한 산 과일은, 그 고장에서 나지 않는 과일로, 색이 곱고 신선하며 맛이 좋아 보통 과일과는 달랐다.


부모 : “애야, 이 과일은 어디서 가져왔느냐?”


하선고 : “이곳으로부터 천리 밖, 오령(五嶺)에서 따온 거예요.”


부모는, 이때서야 비로소 하선고가 근기가 높은 수행자임을 알게 되었고, 하선고는 날이 갈수록 수련의 깊이를 더해 가, 부모도 더는 하선고에게 시집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월이 흐른 후, 팔선 중에서 순양진인 여동빈을 만나 선도(仙桃)복숭아 하나를 얻어먹은 후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게 되고, 인사(人事)와 길흉화복을 훤히 알게 되니 자못 그 영험함이 대단하여 고향 사람들이 신령하다고 받들어 모셨다. 점차 하선고의 도력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당나라 측천무후도 하선고의 신통함과 기이한 행적을 듣고 관리를 파견하여 하선고를 장안으로 불렀지만, 관리 일행과 함께 장안으로 오던 중 하선고는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관리들이 백방으로 찾았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실망하여 궁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측천무후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당나라 중종 경룡(景龍) 년간에 신선 철괴리가 하선고를 인도하여 백일비승(白日飛昇)하여 신선의 반열(仙班)에 들었다. 후에 당나라, 송나라 때 하선고는 장안 승선관(昇仙觀), 강서 마고단(痲姑壇)에서 현신하였다고 한다.


여자로서 성선(成仙)한 신선이 드문 가운데 하선고는 호남과 광저우 일대에서 대부분 활동하며, 자연히 부녀(婦女)에게 전도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당광정이라는 여자는 몸에 혈질(血疾)이란 병으로 8~9명의 아이를 낳았으나 모두 요절했다. 당광정은 스스로 전세의 죄업이 무거움을 알고 남편에게 수도하겠다는 뜻을 전한 후, 집을 떠나 천릿길도 멀다 하지 않고 하선고를 찾아와 제자가 되었다.


또 송나라 때 이정신의 처가 임신을 했는데 출산일이 되었어도 아이가 나오지 못하고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선고를 청해 도움을 받게 되었다.


하선고 : “당신은 일찍이 임신한 여종 한 사람을 학대하여 죽게 한 사실이 있다. 이제 그 업보를 받고 있는 것이다.”


하선고가 법술을 써서 아이를 낳게 하였으나 세상에 나온 아이는 죽어 있었다. 아이 몸 위에는 채찍 흔적이 가득하였다고 한다.


사실 하선고의 도술이나 신선으로서 자취들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많지 않다. 또 하선고의 출신에 대한 기록도 분분하여 사실을 쉽게 구분하기도 어렵다. 하선고의 본관이 광주(廣州)가 아니고 순주(循州), 영주(永州)라는 설도 있다. 어떤 기록에는 하선고의 성이 조(趙), 이름은 하(荷)라고 적혀있다. 이름 하(荷)자(팔선도 그림 속에는 손에 연꽃을 들고 있으므로)가 잘못 와전되어 하(何)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어떤 기록에는 하선고의 이름이 이랑(二娘)이고 신발을 짜서 생업으로 삼고 스스로 수련하여 도를 얻었다고 한다. 당나라 현종 개원 연간에 사자를 파견하여 장안으로 다시 초청했다. 이 초청이 그녀를 희롱한다는 생각이 들자 장안으로 오는 도중에 사라졌다고 한다.



당나라, 송나라 연간에 여덟 신선이 모두 다 나타나지 않았을 때는 하선고는 그 팔선의 행렬에 들지 못했다. 누가 팔선에 속하는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었으나 명나라 이후가 되어서야 팔선이 정해졌다. 이때부터 여자 신선 하선고와 7명의 남성 신선들 즉 팔선에 대한 고사 전설이 부단히 더해지게 되었으며 제각기 자기 재간을 나타내게 되어 그 내용이 더욱 풍부하고 다채롭게 되었다.


한편, 현재 중국 광주 증성현(增城縣)에는 하선고의 사당이 있고, 매년 음력 3월 7일 하선고의 탄생일이 돌아오면 4만여 읍민들이 모여 기념 창극을 하고 경축행사를 올리는 것이 풍속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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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선도 그림에서 철괴리(鐵拐李)는 절름발이로 어느 시대 사람인지 명확하지 않으나 표주박과 지팡이를 들고 서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철괴리의 본명은 이현(李玄).


가장 먼저 도를 성취하여 신선이 되었기에 팔선 중에서 철괴리를 수상으로 받든다. 그러나 철괴리가 신선이 된 후, 늘 헝클어진 머리칼과 때가 낀 얼굴을 한 절름발이 거지 형상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났고, 언제나 쇠목발 하나를 짚고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은 '철괴리'(鐵拐李)라고 불렀다. 철괴리의 진짜 이름을 아는 사람은 사실 드물다.


예부터 전해져 오는 구전으로는 신선이 되기 전에 철괴리는 체구가 매우 크고 훤칠한 대장부로 글 읽는 선비였다고 한다.


철괴리는 수많은 문적을 읽어도 늘 마음 한구석이 미진하였고 부와 권력에 뜻이 없었으며 홍진 세상의 덧없음을 깊이 느끼고 현실 탈출을 모색하던 어느 날, 독서와 공부를 더 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자 학업을 중단하고 가족과 작별하고 수도하기 위해 혼자 깊은 산속으로 떠났다.  철괴리는 집을 떠난 후 맑고 깨끗한 산골짜기를 찾아 바위굴속에 머물기로 하였다. 깊은 골짜기 동굴을 찾아 풀로 자리를 만들고 돌을 쌓아 문을 만들었다. 매일 바위 동굴 속에서 마음을 맑게 하고 생각을 고요하게 하였다. 기(氣)를 마시고 신체를 단련하였다. 세상에 유전되고 있는 도장경을 보면서 단전호흡, 벽곡, 무술 등 혼자 수련할 수 있는 모든 수련법을 수년에 걸쳐 수련하였으나 아무런 진전을 느끼지 못하였다.


철괴리 : “이름난 스승(明師)의 가르침이 없고, 홀로 자신만 믿고 수련한다는 것은 마치 대나무통 구멍으로 하늘을 보는 것 같구나. 내겐 스승님이 필요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철괴리는 홀연 태상노군(太上老君) 이이(李耳: 노자)가 떠올랐다.  이이 즉 노자는 자기와 성씨가 같은 동족의 신선이며, 민간에서 구전해 내려오는 말로는 화산(華山: 중국 서쪽을 대표하는 중원 오악의 하나로 장안 동쪽 약 160km에 있음. 흔히 동 태산, 북 항산, 남 형산, 중앙 숭산을 중원오악이라 함)에 거주하고 있다고 들었다. 철괴리는 화산으로 가 찾아 뵙고, 노자를 스승으로 모시기로 결심하였다. 달빛을 머리에 이고 별빛을 받으며 밤낮으로 풍찬노숙하며 마침내 화산 입구에 닿았다. 머리를 들어 화산을 올려다보니 과연 화산은 험준하고도 높으며 그 기세와 위용이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그 수려한 경치와 빼어남이 과연 중원 오악이라 할 만하였다.


철괴리 : “우뚝 솟은 만학천봉이 구비구비 수려하고 안개구름이 산을 싸고돌면서 휘감고, 소나무와 잣나무는 더없이 푸르고, 물소리와 폭포소리는 구슬이 부딪치는 소리와 같으니, 실로 장관이로구나! 아름다운 곳이 많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노라.”


철괴리는 정처 없이 발길이 가는 대로 감상하면서 이곳저곳 기웃거렸다. 문득 이 넓은 화산 어디에서 태상노군 노자님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이 일어났다. 이때 두 동자가 앞에서 다가오면서 물었다.


동자 : “당신이 李선생입니까?”


철괴리 : “그렇다. 너희들은 어떻게 나를 아는가?”


동자 : “(웃으며)당신이 화산에 온 것은 바로 태상노군을 찾아온 것이 아닌가요? 우리는 태상노군께서 당신을 영접해 오라셔서 이렇게 모시러 왔습니다.”


철괴리 : ‘태상노군께서 나를 알아보고, 또한 사람을 보내 나를 영접하는 것을 보니 나는 노자와 크나큰 연분이 있는 사람이다.’


태상노군이 자기를 영접해 오라고 두 동자를 보낸 것을 알자 기쁘기 그지없었던 철괴리는 두 동자의 뒤를 따라 꼬불꼬불한 산길을 오르며 어딘지도 모르는 깊은 산중으로 들어갔다.  동자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이윽고 노자가 은거하여 수도하고 있는 그윽한 초당에 도착했다. 초당 안에 들어가니 노자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비록 수염과 머리칼은 하얗게 세었으나, 피부는 젊은 처녀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정신은 충만하고 넘치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와 같았다.


노자 옆에는 푸른 눈에 눈썹이 빼어나게 가지런한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노자 : “이 분은 팽조의 스승이신 완구 선생이시라네. 예를 갖추시게나.”


여기에서 잠시 팽조와 완구선생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팽조(彭祖) : 고대선인, 전설에 따르면 성(姓)은 전(錢)이고 본명(本名)은 갱(鏗)이다. 열선전에 의하면 ‘5제 중의 한 분인 전욱의 현손이고 육종씨(陸終氏)의 가운데 아들이며, 하나라로부터 은나라 말까지 약 800여세를 생존, 항상 계지(桂芝)를 먹고, 도인행기(導引行氣)를 잘했다고 하며, 민간에서는 방중술과 관련 소녀경에 등장’하고 있다.


완구(宛九)선생 : 고대선인, 洞仙傳에 완구선생은 제명환(制命丸)을 먹고 득도했다고 하며, 은나라 말년에 그의 나이는 이미 천 여세였다. 그는 비술을 제자인 강약춘 등에게 전했는데, 선약을 복용 후 삼백 년이나 살았는데 마치 15세 동자와 같았다고 한다. 팽조도 일찍이 완구선생을 사부로 모시고 수도하였다.


철괴리 : “저, 이 현. 두 분 스승님께 절을 올립니다. 대도의 요결에 대해 가르침을 청하옵니다.”


노자와 완구선생은 대도요결에 대해 한바탕 강의를 하고 나선 이 현에게 되돌아가 지금 가르쳐준 법에 따라 열심히 수련하라고 당부했다.


화산에서 돌아와 두 신선의 가르침에 따라 수련을 하면서 하나하나 몸소 자세히 체득해 나갔다. 지난번보다 힘써 공부하면서 더욱 부지런히 수련하였는데 점차 음신(陰神)이 마음대로 육체를 떠났다가 되돌아오는 경지까지 수련되었다. 오래 수련해 나가다보니 이 현의 도가 높고 깊은 경지까지 갔다는 소문이 원근에 점차 알려지게 되었다. 이때 양자(楊子)라는 젊은이가 찾아왔다.


양자 : “스승님으로 모시고 도를 배우고자 합니다.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철괴리 :“그대를 보아하니 도를 향한 마음이 가상하고 자질도 괜찮아 보여 내 제자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어느 하루 산 위를 산보하고 있는데 홀연히 상서로운 구름이 멀리서 피어올랐다. 노을빛 같은 연하가 빙빙 돌면서 올라오는데, 공중에서 두 사람이 학을 타고 오고 있었다. 가까이 가 살펴보니, 학 위에 탄 두 사람은 바로 태상노군과 완구선생이었다. 이 현은 황망히 앞으로 나아가 절하면서 두 신선을 영접하였다. 이곳까지 찾아온 두 스승을 보자, 그 기쁨과 반가움을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노자 : “나는 곧 서역 여러 나라를 유람하고자 하니, 너도 함께 가자꾸나. 10일 후에 육신은 여기 두고 혼만 빠져나와 내가 있는 화산으로 오너라. 잊지 말고 약속을 지키도록 해라.”


말을 마치자 노자는 완구선생과 함께 학을 타고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철괴리 : “스승님과 약속한 10일이 되었다. 나의 혼이 육체를 떠나 태상노군을 만나러 멀리 화산으로 간다. 육신을 이곳에 남겨두고 가니, 네가 잘 지키도록 하라. 만약 나의 혼이 7일이 지난 후에도 돌아오지 않으면 너는 나의 육신을 화장해 버리도록 하라.”


스승이 가부좌하고 혼이 육신을 떠나자 제자 양자는 스승의 명령대로 스승의 육신 옆에서 호법하였다. 양자는 이 현의 육신 곁을 떠나지 않고 조심해서 잘 지켰다. 스승의 혼이 돌아오기 하루 전인 6일째 되던 날, 느닷없이 양자의 친척이 말을 몰고 찾아왔다.


친척 : “양자야, 너의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 목숨이 경각에 달렸구나. 네 어머니 임종을 지키고 마지막 살아계신 모습을 보자면 지금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양자는 이 급보를 듣고 상심하여 눈앞이 캄캄해지고 눈물이 쏟아졌다.


양자 : ‘이곳에서 스승의 육신을 지켜야 하고, 어머님이 위독하시다는데 집으로 가지 않을 수도 없고,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친척 : "어서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는데 뭘 그리 망설이고 있는 게냐?"


양자 : "내 스승님의 혼이 육신을 떠난 지 6일째다.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는데 만약 내가 이곳을 떠난다면 누가 스승님을 호법할 것인가?"


친척 :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 하물며 너의 스승은 죽은 지 이미 6일이나 되었으니 신체 안의 내장은 벌써 부패하였을 것이다. 어떻게 떠나간 혼이 되돌아 올 수 있단 말이지? 도대체 정신이 어떻게 된 게 아니냐? 스승이 아무리 중하다 한들, 너를 낳고 길러주신 모친보다 더 중하단 말이더냐? 만약 너의 모친이 너를 보지 못하면 한을 품고 죽을 것이다. 그러면 아마 너도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빨리 이 자리에서 결단을 내려라. 네 스승의 육신을 화장해 버리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자."


말을 마치자 다짜고짜 육신을 화장하기 위해 마른 나뭇가지를 옮겨오기 시작했다. 양자는 모친의 병이 중병이라는 소식에 마음이 혼란스러워 제대로 판단이 서지 않았다.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어찌할 도리 없이, 친척과 함께 스승의 육신을 화장하기 위해 움직였다. 양자는 스승의 육신 위에 마른 장작을 가득 쌓아 초라한 제물을 차려놓고 곡을 한바탕 한 후, 두 번 절하고 제사를 올렸다. 제사를 마친 후 마른장작에 불을 붙이고 스승의 육신이 타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대성통곡을 한 후 친척과 함께 그곳을 떠났다.


한편, 이 현의 혼은 화산으로 가서 노자를 만났다. 스승을 따라, 서쪽으로 천축국 여러 나라를 두루 둘러보았다. 또 봉래, 방장산을 지나 36 동천복지를 유람하고 화산으로 돌아왔다. 태상노군께 작별인사를 하는데, 노군께서 빙그레 웃으면서, 이 현에게 작별 시 하나를 선사한다.


벽곡불벽맥   辟穀不辟麥  
거경로역숙   車輕路亦熟  
욕득구형해   欲得舊形骸  
정봉신면목   正逢新面目
  

곡식을 먹지 않았다고 하나 보리마저 피한 게 아니고
수레는 가볍고 길은 또한 익숙하구나
옛날 모습을 찾으려 하는데
정작 새로운 얼굴을 만나리라


이 현은 노군께서 하사한 시를 그 뜻도 모른 채, 한번 읽어보곤 곧 제자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제자가 있는 곳으로 왔으나 정작 자기의 육신은 보이지 않고 제자 양자도 어디 갔는지 없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니 무엇을 불태운 듯한, 괴괴한 정적만 흐를 뿐이었다. 비로소 자기의 신체가 화장된 것을 알았다.  이것이 어찌 된 일일까? 주저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근처 산등성이에 거지 시체가 한 구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거지의 시체를 보자 태상노군께서 하사하신 시구절이 갑자기 떠올랐다.


철괴리 : "옛날 모습을 찾으려 하는데 정작 새로운 얼굴을 만난다.

           아아~ 이것이 나의 새로운 얼굴이구나."


갈 곳 없던 그의 혼이 거지의 육체 속으로 들어가고, 이때부터 이 현은 헝클어진 머리카락, 때에 찌든 얼굴, 드러낸 배에 다리를 절뚝거리는 모양이 되었다.


그 후 이 현은 수련에 매진, 원만하여 학을 타고 등선한 신선이 되었다. 이미 변화의 술법을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었으나 더는 자신의 모습을 고치지 않았다. 항상 쇠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다녔다.

이때부터 철괴리(鐵拐李: 쇠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이씨라는 의미)라 불렸으며 후세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희망지성

[SOH]

그 당시 장안에는 ‘야광안(夜光眼 )’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신선 요괴 등 온갖 것을 다 볼 수 있었다. 현종은 장과로가 곁에 있을 때 그 야광안을 불러 장과로의 내력을 보게 하였다. 그 야광안이 정전 안으로 들어와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망연한 듯 현종에게 물었다.

야광인 : “황상폐하! 제가 보고자 하는 장과로는 어디 있습니까?”


장과로는 현종 옆에 줄곧 앉아 있었고 한 번도 몸을 움직인 적이 없었다. 그 야광안은 근본적으로 장과로를 볼 수 없었고 하물며 장과로의 내력을 알아낸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였다.


또 그 당시 사람의 운명을 정확하게 맞추는 점술에 달통한 형화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형화박은 다른 사람의 운명을 볼 때 그 사람의 성명, 본적도 필요 없이 단지 점치는 산가지 몇 개를 벌려 놓기만 하면 곧 그 사람의 성명, 내력, 선악, 수요, 화복, 길흉 등을 분명하게 추산하였다.


형화박이 수천 명의 운명을 점쳤는데 정확하고 빠짐이 없었으며 영험하기가 신과 같았다. 현종은 진작부터 형화박의 신기한 점술을 알고, 그를 불러 장과로의 운명을 점쳐보게 하였다. 불려온 형화박은 탁자 위에 점치는 산가지를 벌려놓았다. 한동안 점을 쳐보았으나 점을 치면 칠수록 기가 꺾였다. 형화박은 장과로의 나이조차도 점쳐내지 못하였는데 기타 장과로의 다른 것에 대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위 두 가지 일로 현종은 장과로가 더욱 고심막측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다 어느 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주변을 따르는 태감 고역사를 바라보면서 탄식하였다.


현종 : “수련해서 이미 신선이 된 사람은 추위와 더위가 그 신체를 침범하지 못하고, 바깥 물건이 그 몸을 범할 수 없다고 들었다. 지금 장과로, 이 사람은 점술가도 그 나이를 알 수 없고, 귀신 보는 사람도 그 진상을 볼 수 없으니 진짜 신선이란 말인가?”


“신선이 과연 현실에 있을까? 혹시 가짜가 아닌가? 내가 듣기에는 술에 짐새 독을 넣고 고기를 오랑캐꽃에 삶아서 보통 사람이 먹으면 즉사한다는데, 신선만이 그것을 먹어도 죽지 않고 무사하다고 한다. 장과로에게 짐새 독주와 오랑캐꽃에 삶은 고기를 먹게 하여 죽는지 사는지 시험해 보아 신선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자.”


고역사 : “영명하십니다. 황제폐하. 그 방법이 또한 극히 묘합니다.”


때마침 하늘에서 큰 눈이 내렸고, 날씨는 매우 추웠다. 현종은 혹독한 추위를 몰아낸다는 구실로 장과로에게 짐새 독주와 오랑캐꽃으로 삶은 고기를 내렸다.


장과로는 술과 고기를 받자 그 자리에서 먹었다. 독 술을 단번에 석 잔을 마시자 온몸이 훈훈하고 얼굴에는 취기가 올랐다.


장과로 : “이 술은 그 맛이 좋지 않다. 침상에 누워 잠이나 자야겠구나.”


잠에서 깨어나자 장과로는 홀연 몸을 벌떡 일으켜 거울을 가져오게 하여 자기의 이를 보니 하얗던 치아가 언제인지 모르게 이미 새까맣게 변했다. 장과로는 곧 시종에게 쇠로 된 집게를 가져오게 하여 이를 하나하나 두드린 후 천천히 그 이들을 전부 빼버렸다. 그리고 품속에서 빛나고 투명한 붉은빛 가루약을 꺼내 바른 후 장과로는 다시 침상 위에 누워서 오랫동안 잠을 잤다. 이윽고 잠에서 깨어나서 장과로가 거울을 보니 치아가 다시 자라서 입안 가득하였다. 새로 자라난 그 이는 이전의 이보다 더욱 하얗게 빛났다.


현종은 장과로가 짐새 독주와 고기를 먹고도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말을 듣고 기쁨과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말했다.


현종 : “보아하니 장과로 선생은 신선임이 분명하구나! 이에 내 직접 조서를 내리노라. 항주에 사는 장과로 선생은 방외 지사이다. 행위는 고상하고, 지식은 깊고도 현묘하다. 세상을 피해 은거한 지 오래인데 조정에서 불러 장안에 왔다. 그 나이를 아는 사람이 없고, 단지 오랜 세월을 누렸음을 추측할 뿐이다. 황제가 道를 물으면 그 지극한 이치까지 대답하였다. 장과로 선생에게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관직과 아울러 통현(通玄)선생이라는 호를 내린다.”


어느 날 현종이 함양으로 사냥을 나가서 보통 사슴보다 훨씬 큰 사슴 한 마리를 사로잡았다. 궁궐로 돌아와 그 사슴을 잡아서 요리하려고 하는데 마침 장과로가 그것을 보았다.


장과로 : “이 사슴은 선록(仙鹿)이고, 그 수명이 이미 천년이 넘었습니다. 한(漢)나라 원수 5년(기원전 118년)에 제가 한무제와 함께 상림원에서 사냥하던 중, 산 채로 잡았다가 놓아주었던 바로 그 사슴입니다.”


현종 : “산과 들에는 사슴이 많다. 한무제와 그대가 놓아준 그 사슴이라면 한나라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천년인데 아마 다른 사냥꾼들에게 붙잡혔을 것이다. 그대는 어떻게 이 사슴이 한무제가 잡은 사슴임을 아는가?”


장과로 : “한무제는 이 사슴을 놓아줄 때 왼쪽 뿔 밑에 동으로 만든 패찰 하나를 붙여놓았습니다. 그것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현종 : “과연 사슴의 왼쪽 뿔 밑 부분에 패찰 하나가 붙어있구나. 그 위에 새겨진 문자는 오랜 세월이 흘러 녹이 슬었고 분명하지 않다. 이 사슴을 생포했을 때가 간지(干支)로 어느 해이고 지금으로부터 얼마나 흘렀는가?”


장과로 : “바로 계해(癸亥)년, 한무제가 곤명지(昆明池)를 열었던 그 해입니다. 지금은 갑술(甲戌)년이니까, 이미 825년이 지났습니다.”


현종은 역사를 관장하는 태사(太史)에 명해 역서를 대조해 보게 하였는데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그 때서야 현종은 장과로의 말이 허튼소리가 아님을 알았다.



현종 때 장과로 이외에 정통한 법술을 갖춘 엽법선(葉法善)이라는 도사가 있었다.


현종 : “장과로의 내력이 불분명하고 궁금하다. 그대는 장과로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알고 있는가?”


엽법선 : “신이 알기는 하오나 만약 장과로의 내력을 말한다면 그 말을 끝내자마자 곧 죽게 됩니다. 그래서 감히 입을 열 수 없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제가 죽은 후, 황제의 모자를 벗고 맨발로 장과로에게 가서 살려달라고 하신다면 저는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종 : “내 그리하겠다.”


엽법선 : “장과로는 천지가 처음 나누어질 때 태어난 흰 박쥐의 정령입니다!”


말을 끝내자마자 과연 엽법선은 일곱 군데에서 피를 흘리며, 땅에 고꾸라져 죽었다. 현종은 곧바로 황제의 모자를 벗고 맨발로 장과로의 처소로 찾아가서 사죄하였다.


현종 : “모든 것은 나의 잘못이니 엽법선을 살려주시게.”


장과로 : “이 어린아이는 뽐내면서 천기를 누설하였습니다. 만약 엄하게 벌하지 않으면 큰 일을 망칠까 두렵습니다.”


현종이 여러차례 간곡하게 청하니, 장과로가 맑은 물을 한입 물고 엽법선의 얼굴에 뿜자, 그때서야 엽법선은 정신을 차리고 살아났다.


궁궐에 머물던 장과로는 스스로 나이가 많고 병을 핑계대면서 여러 차례 항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였다. 현종이 말려도 어쩔 수 없자 현종은 비단 백 필을 하사하고 가마와 시종 두 명을 딸려 보냈다. 항주에 도착한 후 시종 한 명은 장안으로 가고 나머지 한 명은 장과로를 따라 입산했다. 천보(天寶) 초(742년) 현종이 다시 사자를 보내 장과로를 조정에 나오게 하였으나 장과로는 그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제자가 장과로의 장례를 중조산에서 치르고, 현종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였다. 현종은 믿을 수 없어서 사람을 시켜 장과로의 무덤을 파게 했는데, 관은 비어있었다. 현종은 장과로 무덤자리에 ‘서하관’(棲霞觀)이란 도관을 세우고 장과로에게 제를 올리도록 하였다.


후세 사람들은 장과로가 나귀를 거꾸로 타고 가는 그림 위에 다음과 같이 詩를 썼다.


擧出多少人   거출다소인  
많은 사람을 들어보아도

無如這老漢   무여저노한  
이 늙은이 같은 이 없네.

不是倒騎驢   불시도기려   나귀를 거꾸로 탄 게 아니라

萬事回頭看   만사회두간  
모든 일을 되돌아보기 위해서라네.




희망지성

팔선도에서 장과로는 당나라때 방사(方士)로 늙은이의 모습이며 나귀를 거꾸로 탔거나 혹은 어고간자(漁鼓簡子 : 죽통(竹筒))를 든 모습으로, 때로는 박쥐를 동반하기도 하며, 원래 이름은 장과(張果)이다. 존칭으로 노(老)자를 뒤에 붙여 장과로로 세상에 알려져 있다.


장과로는 늘 하얀색 나귀를 타고 다녔는데, 나귀가 필요할 때 종이 뭉치를 꺼내어 입에 맑은 물 한입을 물고 그 위에 뿜으면 곧 한 마리 키가 크고 건장한 하얀 나귀로 변하였다고 한다. 나귀를 타지 않을 때는 곧, 나귀를 접어서 보관했는데 그 건장한 나귀가 순식간에 얇은 비단 종이로 변했다고 한다. 나귀로 변한 비단 종이는 접으면 조그마한 종이 한 꾸러미가 되었으며, 상자 속에 넣어 두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나귀를 타고 하루에 만 리, 중국 천하를 주유하고 다녔다 한다.


당태종ㆍ고종이 황제로 있을 때 조정에서도 이미 장과로가 장생불로의 비술을 터득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여러 차례 황제의 조서를 내려 불렀으나 장과로는 사양하고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측천무후가 황제에 즉위한 후 반드시 장과로를 불러오도록 명령했다. 황제의 사자들이 역참의 말을 갈아타고 서둘러 항주에 도착하니 장과로는 사자들이 도착하기 하루 전, 중조산의 투녀묘(妬女廟) 앞에서 죽었다. 죽었을 때가 마침 푹푹 찌는 무더운 여름으로 황제의 사자들이 확인하니 장과로의 시체는 이미 부패하여 냄새가 코를 찔렀고 시체가 진물러 구더기가 시체를 타고 오르내리고 있었다.


사자들이 장안으로 돌아와 측천무후에게 전말을 보고하자 장과로가 이미 죽은 것으로 여기고 그를 더는 조정으로 불러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얼마 안있어 사람들은 항주의 숲 속에서 장과로를 보았다. 사람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장과로가 거짓 죽음으로 황제의 부름을 피했다는 것을 알았다.


당 현종 개원23년(735년) 통신사인 배오를 항주에 파견해서 장과로를 낙양으로 모셔오게 하였다. 장과로와 배오가 마주앉아 이야기를 하다가 돌연 장과로가 기절해서 죽었다. 배오는 측천무후 때 장과로가 죽음을 가장해서 조정의 부름을 피했다는 옛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장과로의 시체 앞에서 향을 사르고 기도하면서 황제의 정성스럽게 갈구하는 구도의 마음을 설명했다.


과연 얼마 되지 않아, 장과로는 점차 깨어나더니 다시 살아났다. 살아나서는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오는 감히 다시 낙양으로 가자고 권할 수 없어서 역마를 타고 낙양으로 되돌아 와 그간의 사정을 현종에게 아뢰었다.


현종은 상세한 전후 사정을 듣고, 잠시 깊이 생각하다가 다시 중서사인 서교에게 명령했다. 황제의 옥쇄가 찍힌 정식 조서를 가지고 항주에 가서 장과로를 모셔 오도록 하였다. 이렇게까지 하자 장과로는 마침내 황제의 성의에 감동받아 사자인 서교를 따라 낙양으로 왔다. 이때가 현종이 ‘개원의 치(개원23년, 735년)를 펴던 시절로 바야흐로 태평성세였다. 그 당시 현종은 동쪽 수도인 낙양에 머무르고 있었다. 장과로가 낙양에 도착한 후, 그는 현종 때 만든 집현전(集賢殿) 서원으로 모셔졌다. 연후에 가마를 타고 입궁하여 황제를 알현하였다. 얼굴을 마주하자 당 현종은 장과로에게 공경스럽게 예를 표했다.


현종 : “선생은 득도한 고인이라고들 합니다. 어찌하여 머리털과 이빨이 이리도 노쇠했습니까?”


장과로는 현종의 이 질문이 자신을 의심한다는 뜻이 있음을 알아채고, 조금도 동요함이 없이 웃었습니다.


장과로 : “하하하. 산에 사는 신은 이미 쇠로의 나이에 들었고, 몸에는 의지할 만한 도술이 없습니다. 머리털이 하얗고 이빨이 흔들리는 것이 폐하를 혐오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을 혐오스럽게 만드는 이 이빨과 머리털은 없애버리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말을 마치고 현종의 면전에서 손을 들어 얼마 남지 않은 희끗희끗한 머리털을 깨끗이 뽑아버리고, 또 입안에 남아있는 치아를 전부 뽑아버리자 입안이 피로 가득하였다.


현종은 설마 장과로가 면전에서 이러한 일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깜짝 놀라면서 :“선생은 어찌 이렇게 잔악하십니까? 우선 좀 쉬다가 잠시 후 다시 봅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현종은 장과로를 다시 청했다. 다시 보았을 때는 현종은 또 한번 놀라게 되었다. 장과로의 머리에는 새까만 머리가 이미 길게 자라있었고, 입안에는 새하얀 이빨이 새로 나 있었다. 나이가 40대 정도로 젊어진 것 같았다.


현종 : “아.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니로군요. 날 이리 놀라게 하시다니 내 그대를 인정하고 또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입궁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를 청합니다.”


어느 날, 태상시 소화, 비서감 왕형질이 함께 장과로를 방문하였다. 장과로와 이들이 한담하고 있는데 돌연 장과로가 크게 웃으면서 뚱딴지같이 한마디 던집니다.


장과로 : “핫하하. 공주를 처로 둔다면 그것은 정말이지 두려운 일이야!”


소화ㆍ왕형질 : “아니 이 사람아!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세 사람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는데, 이때 태감이 찾아왔다.


태감 : “현종황제께서 옥진(玉眞) 공주가 어려서부터 도교를 독실하게 믿으니 옥진 공주를 선생님께 시집보내려고 하는데 선생님의 뜻은 어떠하신지 모르겠습니다.”


장과로 : “(크게 웃으며) 나는 이미 나이가 대단히 많은 고령자이고, 권세 있는 사람에게 아부할 수 없으며, 공주의 청춘을 그르칠 수 없으니 사양하겠네.”


심부름 온 태감은 궁으로 돌아가 현종에게 그대로 아뢸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현종은 공주를 장과로에게 시집보내기로 혼자 마음먹었고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소화ㆍ왕형질 : “ 이제야 비로소 장과로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군.”


“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귀신같은 사람이로구먼.”


장과로 : “나는 요(堯) 임금 때 (B.C. 2300년경) 출생한 사람일세. 나는 상고 삼황오제시절 요(堯)임금 때 병자(丙子)년에 태어나서 요임금과 함께 정사를 보면서 시중의 벼슬을 지냈다네.”


이러한 여러 가지 신기한 일들이 알려지자, 조정의 공경백관들은 장과로가 신기막측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장과로를 찾아와 인사를 하였다. 이들은 장과로의 출생ㆍ경력 등을 알고 싶어 했고, 도술수련의 요결을 가르쳐 줄 것을 요청했다.


도술에 대해서 장과로는 일률적으로 얼버무리는 등 사람들이 그 오묘함을 모르도록 하였다.


장과로의 나이는 약 3,000세 정도였다고 추정되었다. 장과로는 찾아오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어떨 때는 위엄을 갖추고 어떨 때는 해학적이어서 듣는 사람들이 그의 말이 진짜인지 혹은 웃기려고 하는 말인지를 분간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많은 사람은 장과로의 일거수일투족이 신기해서 장과로 신변의 시종들에게 장과로가 평소에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고사는지 등을 몰래 물어보았다.


시종들 : “장과로 주인님은 늘 氣를 막고 삼키는(閉氣呑咽) 태식(胎息)의 술법을 연마하여 며칠씩 음식을 먹지 않으며, 설사 음식을 먹을 때에도 불과 미주(美酒) 한 잔과 무슨 재료로 만들었는지 모르는 황색 환약 3알을 복용합니다.”


하루는 현종이 장과로를 내전으로 불러 술을 하사하였다.


장과로 : “폐하, 산에 사는 신은 주량이 적어 불과 2되입니다. 지금 이미 주량을 넘었습니다. 다만 저에게는 제자 하나가 있는데 술 한 말을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제자를 불러 폐하를 모시고 함께 술을 마시고 싶습니다.”


현종 : “오호 그래. 어서 그 제자를 불러오게 하라.”


장과로 : “멀리에 있지 않고 그는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말을 끝내고 전각 밖을 향해 손을 들자 과연 한 명의 어린 도사가 전각 처마에서 몸을 날려 내려왔다. 얼굴을 보니 나이는 16~17세 눈썹이 짙고 눈이 청수하고 우아하면서도 외관과 내실이 잘 조화를 이루었다. 어린 도사는 전각으로 들어와 현종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를 하는데, 그 말씨가 유창하고 행동거지와 예절이 주도면밀하여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받을 만하였다.


현종 : “너는 이리 와 내 옆에 앉도록 해라.”


장과로 : “그는 나의 제자이오니, 응당 곁에 서서 있어야 합니다. 폐하께서는 그에게 앉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현종이 다시 눈을 들어 그 어린 도사를 자세히 살펴보는데 보면 볼수록 즐거워졌다. 현종은 장과로의 어린 제자가 술을 흔쾌히 마시는 것을 보자, 술 한 되, 한 되 부단히 그에게 마시기를 권하였다. 부지불식간에 술 한말을 다 마셨다. 현종이 계속해서 어린 제자에게 술을 마시게 하자,


장과로 : “내 제자의 주량은 오직 술 한 말입니다. 폐하께서는 더는 그에게 술을 마시게 할 수 없습니다. 술을 더 마시면 추태를 부리니 결국 꼴불견을 보게 됩니다.”


현종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어린 제자에게 다시 술 한 되를 더 마시게 하였다. 어린 제자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권하는 그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고 나자 어린 제자 머리 위로 술이 솟구쳐 오르고 머리 위의 도관(道冠: 도사들이 쓰는 모자) 또한 솟구쳐 오르더니 이내 땅으로 떨어졌다. 도관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하나의 술그릇으로 변하였다. 그 자리에 있던 어린 제자는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다. 어린 제자가 서 있던 곳에는 쇠로 만든 술그릇이 하나 놓여있었다.


현종과 좌우에 있던 비빈들 모두 깜짝 놀랐다. 시종더러 쇠로 만든 술그릇을 가져오게 하여 살펴보니 술그릇 안에는 조금 전에 하사한 술이 가득 차 있었고, 술그릇의 용량은 정확히 한 말이었다. 술 그릇 위에는 ‘집현전(集賢殿)’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원래 집현전 서원의 술그릇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장과로가 법술을 부려서 그러한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 놀랍고 신기하였다. 장과로가 이렇게 현종 앞에서 펼쳐보이던 각종 선법도술이 많아서 다 열거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장과로의 도술이 사람들을 놀라게 할수록 그의 내력은 더욱더 수수께끼였다.


현종 : “장과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 방도가 없는 건가? 뭐 이리 베일에 가려진 것 같은 건지 정말로 궁금하구나. 참, 장안에 야광안이라 불리는 자가 있질 않았던가? 그를 불러 물어봐야겠구나.”


과연 야광안은 장과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낼 수 있을까요?


다음 시간을 기대해주세요.


[SOH]

희망지성

여동빈은 세상에서 백여 세까지 지내다가 무창 황학루 3층 누각 위에서 신선이 되어 올라갔다고 한다. 신선이 된 후 여동빈은 걸핏하면 인간 세상에 나타났다고 한다. 역대로 그가 인간 세상에 와서 놀다가 세상과 사람을 제도한 전설이 너무 많아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중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다.

宋 경력 4년(1044년), 등자경은 중앙 정치무대에서 쫓겨나 파릉군 태수가 되었다. 부임한 다음 해 그가 다스리던 파릉군은 정치를 잘하여 백 가지 폐단이 바로 서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이때 등자경은 당나라 때 연국공 장열(張說)이 세웠던 악양루가 낡아 보수를 하였다. 악양루 보수가 끝난 날 큰 잔치를 열어 연회가 막 시작되려고 하는데 등자경은 문득 이름만 적힌 명첩 하나를 받았다. 그 위에는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고 다만 ‘화주(華州)도사가 삼가 문후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등태수는 사람을 보내 그 도사를 악양루 위로 올라오게 하였다. 얼굴을 보니 긴 수염이 가슴까지 드리웠고 등 뒤에는 장검을 메고 있는데 그 모습이 청수하고 기이한 도사였다. 도사는 누각 위로 올라와 등태수와 마주하여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아 호쾌하게 술을 마시고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좌중을 압도하였다. 악양루 중창 경축연에 참석한 사람들은 술에 취한 후 각자 붓을 들고 시와 글을 짓기 시작했다. 화주도사 또한 붓을 들어 다음과 같이 시를 지었다.

화주도사 :

朝游東海暮蒼梧   조유동해모창오
袖裏靑蛇膽氣粗   수리청사담기조
三醉岳陽人不識   삼취악양인불식
郞吟飛過洞庭湖   랑음비과동정호

아침에 동해에서 놀다가 저물어 창오군(광서성)으로 간다
소매 속 들어있는 단검(푸른 뱀)은 담력과 기력이 더욱 호쾌하다
악양루에서 크게 세 번 취했으나 사람들은 내가 여동빈인 것을 모르는데
낭랑히 시를 읊으면서 동정호를 날아서 지나갔다

등자경 : “ 화주도사의 시가 범상치 않다. 화공은 어디 있느냐? 즉시 화주도사의 취한 모습을 급히 그리거라. 화주도사께 감히 존함을 듣고자 하옵니다.”

화주도사 : “성은 ‘여’요 이름은 ‘암’이라고 하오.”

그 말을 마치고 큰 소리로 웃으면서 작별을 고하고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등자경과 그 자리에 있던 문사들은 이때서야 비로소 그 도사가 당나라 때의 유명한 도사 여동빈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일화를 기리기 위해 이 악양루 우측에는 삼취정(三醉亭)이 세워져 있다. 이 삼취정은 청나라 건륭 40년(1775년)에 세워졌고, 그곳에는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는 모양의 여동빈 상과 그가 쓴 시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앞에서 나온 詩 ‘수리청사담기조’(袖裏靑蛇膽氣粗:소매 속 들어있는 단검(푸른 뱀)은 담력과 기력이 더욱 호쾌하다)에서 청사(靑蛇)와 관련하여 고사가 전해져 온다. 일찍이 파릉현(현재 악양) 성 남쪽 백학산에는 큰 호수가 두 개 있었는데, 그 호수 가운데 이무기가 있어 민간에 피해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던 여동빈이 법술로 이무기를 다스려 단검으로 만들어 항상 소매 속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남송 때 비릉시에는 점을 잘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머리에는 푸른 두건을 메고 몸에는 누런 도복을 입고 있었다. 스스로 지명(知名)선생이라 하였다. 비릉군 태수 호도는 지명선생이 점을 기가 막히게 잘 친다는 소문을 듣고, 지명선생을 청해서 점을 쳤다.

지명선생 : “당신의 수명은 매우 길고, 곧 당신의 관직에 변동이 있다. 변동 시기는 청명절 전 5일 또는 청명 후 7일이다.”

고을 태수 호도는 청명 5일 전에 과연 그가 자리를 바꾸어 형문군 태수로 간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청명 후 7일이 되자 정식으로 이동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호도는 지명선생의 신기막측한 점술에 탄복하여 사람을 보내 그를 찾았으나 이미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호도는 후에 형문군 태수가 된 후 친구한테 남경의 석각에 새겨진 여동빈 상을 탁본한 그림을 받았다. 지명선생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 이때서야 지명(知名) 두 글자 중에는 지(知)자에 ‘口’, 명(名)자에 ‘口’가 있어 두 구(口)자를 합한즉 ‘여(呂)’자가 아닌가? 호도는 그가 친히 겪은 이 일을 자기 문집에 남겨 놓았다.

여동빈이 하루는 구름 따라 북방으로 갔다. 하루는 거지 한 명이 길바닥에서 굶주려 아사 직전까지 간 것을 보았다. 이미 거의 숨이 끊어질 듯하였다. 불쌍한 중생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여동빈은 법술을 사용해서 거지를 구해냈다.

여동빈 : “자, 내가 여기 돌을 금으로 만들어 줄테니 이걸로 살아가도록 하게나.”
뜻밖에 황금을 얻은 거지는 기쁘기 그지없었지만, 곧 그 거지는 욕심이 발동하여 떼를 썼다,

거지 : “차라리 도와줄거면 돌을 황금으로 만드는 손을 주쇼.”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인간의 욕심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니!

또 한번은 여동빈이 기름장사로 변신하여 기름을 팔면서 악양에 갔다. 기름을 사는 사람들마다 더 달라고 요구했다. 다만 한 노파만 기름을 사면서 더 달라고 하지 않았다. 여동빈은 그녀가 신선공부를 할 만하다고 생각하고 제도하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가서 한 줌의 쌀을 우물 속에 던져 넣었다.

여동빈 : “당신은 이 우물물을 팔면 부자가 될 것이네.”

그 노파는 여동빈이 간 후 우물속의 물이 전부 미주(美酒)로 변한 것을 알았다. 그 노파는 우물속의 술을 팔아 일년 후에 부자가 되었다. 그 후 어느 날 여동빈은 그 노파 집에 갔는데 마침 노파가 없고 그녀의 아들이 집에 있었다.

여동빈 : “당신들 집은 지난 일년 동안 술을 팔아 부자가 되었는데, 느낌이 어떠한가?”

노파의 아들 : “좋기는 좋은데 단지 돼지 먹일 술 찌꺼기가 없어서 힘들다.”

여동빈 : “( 탄식하면서) 정령 인심이 탐욕스러워 부끄러움도 모르는구나.”

그는 손을 들어 우물 속의 쌀을 거두어 들이곤 고개를 흔들며 갔다. 노파가 외출에서 돌아와서야 우물속의 술이 모두 물로 변한 것을 알았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가?
인간들에게 실망하면서 여동빈은 구름처럼 천지(天地)를 내 집으로 삼아 운유(雲遊)하였다 한다.

중생들이여, 시간을 아껴 수행하라
여동빈은 중생들이 명리재색(名利財色)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헛되이 죽음으로 가는 것을 경계한 듯,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겨 후학을 경계하게 하였다.

순양여조시(純陽呂祖詩)

人身難得道難明 인신난득도난명
塑此人心訪道根 진차인심방도근
此身不向今生度 차신불향금생도
再等何時度此身 재등하신도차신

순양자 여동빈 조사가 이르시기를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도 밝히기도 어려워라
사람마음 따라 도의 뿌리를 찾나니
이 몸을 이 생애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려 이 몸을 제도하리요

이 인간의 몸 받기가 정녕 어려운데 중생들이여, 정법을 만나 수행을 통해 윤회의 사슬을 벗어나시라! 간절히 희망하면서 신선 여동빈 편을 마칩니다.

희망지성

노인 : “노란 조밥이 아직 익지도 않았는데 꿈이 끝났네. 자네 오십 년 부귀영화도 절정까지 갔다가 이렇게 끝나지 않았는가?”

여동빈은 본래 도를 향한 마음이 있었는데, 단지 지난 10년간 어려운 고난이 있었고 그 고난에 대한 소득이 없어서 불만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생생하게 꿈속에서 점화(點火)되었고, 갑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깨닫게 되자 세상에 미련을 버리고 수도하고자 결심하였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운방(雲房)선인 종리권에게 절하고 스승으로 모셨다.

노인 : “천부적인 너의 좋은 자질을 보건대 세상을 제도하는 선(仙)술을 닦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오욕칠정에 물든 인간의 마음을 제거하기가 어려워 신선이 되기는 어렵다. 너의 공행(功行)을 다 채우지 않아서 설사 신선이 되는 신선술을 배웠다 하더라도 실제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다. 그러니 내가 너에게 쇠를 금으로 만들고, 납을 은으로 만드는 황백술(黃白術)을 전수하는 것보다 못하다. 너는 이 황백술로 세상을 제도하고 사람을 이롭게 하라. 삼천 가지 공덕이 차고 팔백 가지 선행을 마치고 나면 내가 다시 와서, 그때, 너를 제도하겠다.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사제의 예가 끝난 후 선인 종리권은 여동빈의 손을 끌고서 장안교외로 갔다. 그곳에서 순간적으로 공간이동을 하여 종남(終南)산 학정(鶴頂)봉 위의 동굴 밖에 도착했다. 동굴에 들어가니 햇빛이 비추어 들어오는데 포근하기가 봄날과 같았다.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이 큰 반석 위에 마주앉아 원화주(元和酒)를 석잔 마시고 있는데, 비취빛 저고리에 붉은 바지를 입은 사람이 구름을 밟고 기이한 향기를 풍기면서 하늘로부터 내려와 선인 종리권에게 봉래산 천지회 모임에 같이 가자고 초대한다.

종리권은 수련서인 현결(玄訣)을 남겨놓고, 자주색 구름을 타고 하늘 저 멀리로 사라졌다. 며칠이 지난 후 종리권이 동굴로 되돌아 왔을 때 여동빈은 스승이 남겨놓고 간 현결(玄訣)을 숙독해서 경지가 전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스승과 함께 수행하고 있는 동안 청계선인 정사원과 태화선인 시호부가 선인 종리권을 만나러 왔다. 여동빈은 두 분의 선인에게 절을 하고 가르침을 받았다. 그 당시 때는 바야흐로 봄이라 새들이 다투어 울고 시절이 호시절이라 선인 종리권은 흥에 겨워 시를 읊조렸다.

春氣塞空花露滴   춘기색공화로적
朝陽拍海岳雲歸   조양박해악운귀
봄기운이 공중에 가득하고 꽃에 이슬이 맺혀 떨어지는데
아침 해가 바다에서 솟아오르니 산 구름이 흩어지더라

노인 : “ 이 시를 동굴 입구에 새겨 놓아라. 나는 하늘의 옥황상제를 배알하러 가려고 한다. 너는 이 동굴에서 오래 머물 필요는 없다. 십 년 후 동정호 악양루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말을 마치고 영보부법(靈寶符法)이라는 도가 비전의 수련서를 주고, 삼원삼보(三元三寶)에 관한 설법을 하였다. 설법을 마치자 두 명의 천사가 금첩(황금으로 만든 초대장)을 받들고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이어서 하늘에서 봉황과 난새가 출현하고 선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선인 종리권은 두 천사와 함께 천천히 하늘로 날아올라 사라져갔다.

스승 종리권이 떠난 후 여동빈은 동굴에서 몇 년을 머물렀다. 수련을 한 동굴이 거대한 암석 가운데 있어 여동빈은 동굴을 집으로 삼았다. 그래서 이름을 경(瓊)에서 암(岩)으로 고치고 자(字)를 동빈(洞賓: 동굴속의 손님)이라 하였다. 또 동빈은 이곳에서 도가의 진전(眞傳)을 모두 얻었고, 수도하여 몸속에 음의 기운(塵陰)을 모두 몰아내었으며, 순양(純陽: 순수한 양의 기운)만 몸에 남아 도호를 순양자(純陽子)라고 하였다.

종남산 학정봉 동굴을 나온 후 동빈은 누런 모자에 도사복장을 하고 호(號)를 회도인(回道人)이라 바꾸었다. 회(回)자는 크고 작은 두 개의 口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암암리에 여(呂)자로 姓이 여(呂씨, 여동빈)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때부터 동빈은 흘러가는 구름처럼 천하를 노닐면서 사해를 집으로 삼았다. 스승 종리권과 만날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동빈은 동정호로 갔다. 악양루에 올라 10년만에 스승 종리권과 해후하였다. 종리권은 동빈을 데리고 자기의 스승 고죽진군(苦竹眞君)을 알현하였다. 고죽진군은 동빈에게 도가의 비전인 일월교병지법(日月交幷之法)을 전수하였다.

그 후 동빈은 스승과 사조와 헤어진 후 양자강 하류 지역에 있는 천하명산 여산(廬山)에 놀러갔다가 화룡진인(火龍眞人)을 만나 수련하게 되었다. 이 여산이야말로 일찍이 마조대사가 예언한 우여즉거(遇廬則居:여를 만나면 머문다)가 아닌가?

동빈은 여산에서 화룡진인에게서 천둔검법(天遁劍法)의 진수를 배웠다. 이때부터 동빈이 강호상에 노닐 때 항상 몸에 보검을 차고 다녔다. 선인 여동빈은 이 칼로 수많은 요마(妖魔)를 제거하고 허다한 공덕을 쌓았으므로 항상 등에 칼을 찬 모습으로 신선도(神仙圖)에 등장한다.

하루는 여동빈이 구름을 따라 노니면서 무창 황룡산으로 갔다. 멀리서 바라보니 산중 절위에 자주색 구름이 가득 덮여 있어 이인(異人)이 있음을 알고 문득 절 안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 이름을 떨치던 유명한 황룡선사가 마침 법당에서 설법을 시작하려는 중이었다.

여동빈도 설법을 듣기 위해 사람 무리들 속에 묻혀 함께 법당으로 들어갔다.

황룡선사 : “오늘 여기에 법을 훔치려는 사람이 있는데, 이 늙은 중은 설법을 하지 않겠다.”

여동빈은 곧 자기를 가리키는 것을 알고 군중 속에서 나와 예를 취하면서 말하였다.

여동빈 : “화상에게 묻겠습니다.

一粒粟中藏世界   일립속중장세계
半升金當內煮山川   반승당내자산천

한알의 조 알갱이 속에 세계가 감춰져 있고
반 되 들이 솥으로 산천을 삶는다는 이 한 마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황룡선사 : “하하하. 원래 당신은 시체 같은 죽지 않은 귀신이구나!”

여동빈 : “화상은 내가 늙어도 죽지 않는 것을 조롱하지 말라. 나의 호주머니 안에는 장생불사의 약이 있는데 어찌하면 좋겠는가?”

황룡선사 :  

饒究經得八萬劫   요니경득팔만겁
難免一朝落空亡   난면일조락공망

당신이 설사 팔만 겁을 지내왔더라도
하루아침에 공망에 떨어지는 것을 면할 수 없다.

여동빈은 황룡선사가 기지와 총명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 황룡선사의 법력이 얼마나 고명한가를 시험해 보고 싶어서 등에 차고 있는 보검을 꺼내면서 말하였다.

여동빈 : “이 검은 내가 휴대하고 다니는 신령한 보검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능히 되는데 검을 칼집에서 나오라고 하면 곧 빠져 나오고, 칼집에 들어가라고 하면 곧 들어간다. 선사께서는 능히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황룡선사 : “(웃으며)비록 영물이지만 그것이 도력 있는 사람의 명령을 들어야 가능할 것 같은데, 당신이 먼저 한번 시험해 보시오.”

여동빈은 보검한테 칼집에서 나오라고 외치자 그 검은 칼집에서 스스로 나와 은빛을 뿌리며 절 대웅전 기둥으로 날아가 검 끝이 똑바로 나무로 깎은 용의 눈에 박혔다.

황룡선사가 가볍게 웃으면서 오른손을 들어 올리면서 가운데 손가락으로 기둥에 박힌 보검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황룡선사 : “내가 보건대 네가 이 검을 능히 칼집에서 끄집어낼 수는 있으나 다시 꼽을 수는 없다.”

여동빈 : “(큰소리로 웃으면서) 칼집으로 들어가라.”

그러나 보검은 기둥에 박힌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검은 여동빈이 여산에서 검술을 배우고 하산한 후 줄곧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대로 할 수 있어서 신령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제 더는 주인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여동빈이 그 황룡선사의 도와 법이 높고 깊음에 탄복하고 그 자리에서 절하여 사과하면서 불법을 가르쳐 줄 것을 청하였다. 황룡선사는 여동빈의 마음이 진심과 성의가 있음을 알아보았다.

황룡선사 : “당신은 이미 반 되들이 솥으로 산천을 삶고 또 어떻게 한 알의 조 알 속에 세계를 감출 수 있는가를 듣지 않았는가? 내가 말한다면, 그 뜻은 즉 먼저 마음속에 아무런 물건(욕심)이 없어야만 능히 삼라만상을 둘러싸 안을 수 있다.”

여동빈은 황룡선사의 깊은 뜻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오도송을 지었다.

棄却瓢囊擊碎琴  기각표낭격쇄금
從今不戀汞中金  종금불연홍중금
自從一見黃龍後  자종일견황룡후
始覺當年錯用心  시각당년착용심

하나있는 표주박 주머니도 버리고, 거문고도 깨뜨려 버렸다.
이제부터 불사약(금단)에 더는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네
이제 황룡선사를 한번 만나본 후
비로소 그 당시 마음 잘못 쓴 것을 깨달았다네

여동빈은 낭랑히 오도송을 읊으면서 황룡선사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고 표연히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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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法輪功)으로 잘 알려진 法輪大法(파룬따파)는 리훙쯔(李洪志)선생께서 창시하신 고층차의 불가(佛家)수련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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