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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지성

팔선도에서 장과로는 당나라때 방사(方士)로 늙은이의 모습이며 나귀를 거꾸로 탔거나 혹은 어고간자(漁鼓簡子 : 죽통(竹筒))를 든 모습으로, 때로는 박쥐를 동반하기도 하며, 원래 이름은 장과(張果)이다. 존칭으로 노(老)자를 뒤에 붙여 장과로로 세상에 알려져 있다.


장과로는 늘 하얀색 나귀를 타고 다녔는데, 나귀가 필요할 때 종이 뭉치를 꺼내어 입에 맑은 물 한입을 물고 그 위에 뿜으면 곧 한 마리 키가 크고 건장한 하얀 나귀로 변하였다고 한다. 나귀를 타지 않을 때는 곧, 나귀를 접어서 보관했는데 그 건장한 나귀가 순식간에 얇은 비단 종이로 변했다고 한다. 나귀로 변한 비단 종이는 접으면 조그마한 종이 한 꾸러미가 되었으며, 상자 속에 넣어 두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나귀를 타고 하루에 만 리, 중국 천하를 주유하고 다녔다 한다.


당태종ㆍ고종이 황제로 있을 때 조정에서도 이미 장과로가 장생불로의 비술을 터득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여러 차례 황제의 조서를 내려 불렀으나 장과로는 사양하고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측천무후가 황제에 즉위한 후 반드시 장과로를 불러오도록 명령했다. 황제의 사자들이 역참의 말을 갈아타고 서둘러 항주에 도착하니 장과로는 사자들이 도착하기 하루 전, 중조산의 투녀묘(妬女廟) 앞에서 죽었다. 죽었을 때가 마침 푹푹 찌는 무더운 여름으로 황제의 사자들이 확인하니 장과로의 시체는 이미 부패하여 냄새가 코를 찔렀고 시체가 진물러 구더기가 시체를 타고 오르내리고 있었다.


사자들이 장안으로 돌아와 측천무후에게 전말을 보고하자 장과로가 이미 죽은 것으로 여기고 그를 더는 조정으로 불러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얼마 안있어 사람들은 항주의 숲 속에서 장과로를 보았다. 사람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장과로가 거짓 죽음으로 황제의 부름을 피했다는 것을 알았다.


당 현종 개원23년(735년) 통신사인 배오를 항주에 파견해서 장과로를 낙양으로 모셔오게 하였다. 장과로와 배오가 마주앉아 이야기를 하다가 돌연 장과로가 기절해서 죽었다. 배오는 측천무후 때 장과로가 죽음을 가장해서 조정의 부름을 피했다는 옛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장과로의 시체 앞에서 향을 사르고 기도하면서 황제의 정성스럽게 갈구하는 구도의 마음을 설명했다.


과연 얼마 되지 않아, 장과로는 점차 깨어나더니 다시 살아났다. 살아나서는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오는 감히 다시 낙양으로 가자고 권할 수 없어서 역마를 타고 낙양으로 되돌아 와 그간의 사정을 현종에게 아뢰었다.


현종은 상세한 전후 사정을 듣고, 잠시 깊이 생각하다가 다시 중서사인 서교에게 명령했다. 황제의 옥쇄가 찍힌 정식 조서를 가지고 항주에 가서 장과로를 모셔 오도록 하였다. 이렇게까지 하자 장과로는 마침내 황제의 성의에 감동받아 사자인 서교를 따라 낙양으로 왔다. 이때가 현종이 ‘개원의 치(개원23년, 735년)를 펴던 시절로 바야흐로 태평성세였다. 그 당시 현종은 동쪽 수도인 낙양에 머무르고 있었다. 장과로가 낙양에 도착한 후, 그는 현종 때 만든 집현전(集賢殿) 서원으로 모셔졌다. 연후에 가마를 타고 입궁하여 황제를 알현하였다. 얼굴을 마주하자 당 현종은 장과로에게 공경스럽게 예를 표했다.


현종 : “선생은 득도한 고인이라고들 합니다. 어찌하여 머리털과 이빨이 이리도 노쇠했습니까?”


장과로는 현종의 이 질문이 자신을 의심한다는 뜻이 있음을 알아채고, 조금도 동요함이 없이 웃었습니다.


장과로 : “하하하. 산에 사는 신은 이미 쇠로의 나이에 들었고, 몸에는 의지할 만한 도술이 없습니다. 머리털이 하얗고 이빨이 흔들리는 것이 폐하를 혐오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을 혐오스럽게 만드는 이 이빨과 머리털은 없애버리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말을 마치고 현종의 면전에서 손을 들어 얼마 남지 않은 희끗희끗한 머리털을 깨끗이 뽑아버리고, 또 입안에 남아있는 치아를 전부 뽑아버리자 입안이 피로 가득하였다.


현종은 설마 장과로가 면전에서 이러한 일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깜짝 놀라면서 :“선생은 어찌 이렇게 잔악하십니까? 우선 좀 쉬다가 잠시 후 다시 봅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현종은 장과로를 다시 청했다. 다시 보았을 때는 현종은 또 한번 놀라게 되었다. 장과로의 머리에는 새까만 머리가 이미 길게 자라있었고, 입안에는 새하얀 이빨이 새로 나 있었다. 나이가 40대 정도로 젊어진 것 같았다.


현종 : “아.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니로군요. 날 이리 놀라게 하시다니 내 그대를 인정하고 또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입궁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를 청합니다.”


어느 날, 태상시 소화, 비서감 왕형질이 함께 장과로를 방문하였다. 장과로와 이들이 한담하고 있는데 돌연 장과로가 크게 웃으면서 뚱딴지같이 한마디 던집니다.


장과로 : “핫하하. 공주를 처로 둔다면 그것은 정말이지 두려운 일이야!”


소화ㆍ왕형질 : “아니 이 사람아!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세 사람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는데, 이때 태감이 찾아왔다.


태감 : “현종황제께서 옥진(玉眞) 공주가 어려서부터 도교를 독실하게 믿으니 옥진 공주를 선생님께 시집보내려고 하는데 선생님의 뜻은 어떠하신지 모르겠습니다.”


장과로 : “(크게 웃으며) 나는 이미 나이가 대단히 많은 고령자이고, 권세 있는 사람에게 아부할 수 없으며, 공주의 청춘을 그르칠 수 없으니 사양하겠네.”


심부름 온 태감은 궁으로 돌아가 현종에게 그대로 아뢸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현종은 공주를 장과로에게 시집보내기로 혼자 마음먹었고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소화ㆍ왕형질 : “ 이제야 비로소 장과로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군.”


“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귀신같은 사람이로구먼.”


장과로 : “나는 요(堯) 임금 때 (B.C. 2300년경) 출생한 사람일세. 나는 상고 삼황오제시절 요(堯)임금 때 병자(丙子)년에 태어나서 요임금과 함께 정사를 보면서 시중의 벼슬을 지냈다네.”


이러한 여러 가지 신기한 일들이 알려지자, 조정의 공경백관들은 장과로가 신기막측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장과로를 찾아와 인사를 하였다. 이들은 장과로의 출생ㆍ경력 등을 알고 싶어 했고, 도술수련의 요결을 가르쳐 줄 것을 요청했다.


도술에 대해서 장과로는 일률적으로 얼버무리는 등 사람들이 그 오묘함을 모르도록 하였다.


장과로의 나이는 약 3,000세 정도였다고 추정되었다. 장과로는 찾아오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어떨 때는 위엄을 갖추고 어떨 때는 해학적이어서 듣는 사람들이 그의 말이 진짜인지 혹은 웃기려고 하는 말인지를 분간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많은 사람은 장과로의 일거수일투족이 신기해서 장과로 신변의 시종들에게 장과로가 평소에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고사는지 등을 몰래 물어보았다.


시종들 : “장과로 주인님은 늘 氣를 막고 삼키는(閉氣呑咽) 태식(胎息)의 술법을 연마하여 며칠씩 음식을 먹지 않으며, 설사 음식을 먹을 때에도 불과 미주(美酒) 한 잔과 무슨 재료로 만들었는지 모르는 황색 환약 3알을 복용합니다.”


하루는 현종이 장과로를 내전으로 불러 술을 하사하였다.


장과로 : “폐하, 산에 사는 신은 주량이 적어 불과 2되입니다. 지금 이미 주량을 넘었습니다. 다만 저에게는 제자 하나가 있는데 술 한 말을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제자를 불러 폐하를 모시고 함께 술을 마시고 싶습니다.”


현종 : “오호 그래. 어서 그 제자를 불러오게 하라.”


장과로 : “멀리에 있지 않고 그는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말을 끝내고 전각 밖을 향해 손을 들자 과연 한 명의 어린 도사가 전각 처마에서 몸을 날려 내려왔다. 얼굴을 보니 나이는 16~17세 눈썹이 짙고 눈이 청수하고 우아하면서도 외관과 내실이 잘 조화를 이루었다. 어린 도사는 전각으로 들어와 현종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를 하는데, 그 말씨가 유창하고 행동거지와 예절이 주도면밀하여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받을 만하였다.


현종 : “너는 이리 와 내 옆에 앉도록 해라.”


장과로 : “그는 나의 제자이오니, 응당 곁에 서서 있어야 합니다. 폐하께서는 그에게 앉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현종이 다시 눈을 들어 그 어린 도사를 자세히 살펴보는데 보면 볼수록 즐거워졌다. 현종은 장과로의 어린 제자가 술을 흔쾌히 마시는 것을 보자, 술 한 되, 한 되 부단히 그에게 마시기를 권하였다. 부지불식간에 술 한말을 다 마셨다. 현종이 계속해서 어린 제자에게 술을 마시게 하자,


장과로 : “내 제자의 주량은 오직 술 한 말입니다. 폐하께서는 더는 그에게 술을 마시게 할 수 없습니다. 술을 더 마시면 추태를 부리니 결국 꼴불견을 보게 됩니다.”


현종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어린 제자에게 다시 술 한 되를 더 마시게 하였다. 어린 제자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권하는 그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고 나자 어린 제자 머리 위로 술이 솟구쳐 오르고 머리 위의 도관(道冠: 도사들이 쓰는 모자) 또한 솟구쳐 오르더니 이내 땅으로 떨어졌다. 도관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하나의 술그릇으로 변하였다. 그 자리에 있던 어린 제자는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다. 어린 제자가 서 있던 곳에는 쇠로 만든 술그릇이 하나 놓여있었다.


현종과 좌우에 있던 비빈들 모두 깜짝 놀랐다. 시종더러 쇠로 만든 술그릇을 가져오게 하여 살펴보니 술그릇 안에는 조금 전에 하사한 술이 가득 차 있었고, 술그릇의 용량은 정확히 한 말이었다. 술 그릇 위에는 ‘집현전(集賢殿)’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원래 집현전 서원의 술그릇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장과로가 법술을 부려서 그러한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 놀랍고 신기하였다. 장과로가 이렇게 현종 앞에서 펼쳐보이던 각종 선법도술이 많아서 다 열거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장과로의 도술이 사람들을 놀라게 할수록 그의 내력은 더욱더 수수께끼였다.


현종 : “장과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 방도가 없는 건가? 뭐 이리 베일에 가려진 것 같은 건지 정말로 궁금하구나. 참, 장안에 야광안이라 불리는 자가 있질 않았던가? 그를 불러 물어봐야겠구나.”


과연 야광안은 장과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낼 수 있을까요?


다음 시간을 기대해주세요.


[SOH]

희망지성

여동빈은 세상에서 백여 세까지 지내다가 무창 황학루 3층 누각 위에서 신선이 되어 올라갔다고 한다. 신선이 된 후 여동빈은 걸핏하면 인간 세상에 나타났다고 한다. 역대로 그가 인간 세상에 와서 놀다가 세상과 사람을 제도한 전설이 너무 많아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중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다.

宋 경력 4년(1044년), 등자경은 중앙 정치무대에서 쫓겨나 파릉군 태수가 되었다. 부임한 다음 해 그가 다스리던 파릉군은 정치를 잘하여 백 가지 폐단이 바로 서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이때 등자경은 당나라 때 연국공 장열(張說)이 세웠던 악양루가 낡아 보수를 하였다. 악양루 보수가 끝난 날 큰 잔치를 열어 연회가 막 시작되려고 하는데 등자경은 문득 이름만 적힌 명첩 하나를 받았다. 그 위에는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고 다만 ‘화주(華州)도사가 삼가 문후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등태수는 사람을 보내 그 도사를 악양루 위로 올라오게 하였다. 얼굴을 보니 긴 수염이 가슴까지 드리웠고 등 뒤에는 장검을 메고 있는데 그 모습이 청수하고 기이한 도사였다. 도사는 누각 위로 올라와 등태수와 마주하여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아 호쾌하게 술을 마시고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좌중을 압도하였다. 악양루 중창 경축연에 참석한 사람들은 술에 취한 후 각자 붓을 들고 시와 글을 짓기 시작했다. 화주도사 또한 붓을 들어 다음과 같이 시를 지었다.

화주도사 :

朝游東海暮蒼梧   조유동해모창오
袖裏靑蛇膽氣粗   수리청사담기조
三醉岳陽人不識   삼취악양인불식
郞吟飛過洞庭湖   랑음비과동정호

아침에 동해에서 놀다가 저물어 창오군(광서성)으로 간다
소매 속 들어있는 단검(푸른 뱀)은 담력과 기력이 더욱 호쾌하다
악양루에서 크게 세 번 취했으나 사람들은 내가 여동빈인 것을 모르는데
낭랑히 시를 읊으면서 동정호를 날아서 지나갔다

등자경 : “ 화주도사의 시가 범상치 않다. 화공은 어디 있느냐? 즉시 화주도사의 취한 모습을 급히 그리거라. 화주도사께 감히 존함을 듣고자 하옵니다.”

화주도사 : “성은 ‘여’요 이름은 ‘암’이라고 하오.”

그 말을 마치고 큰 소리로 웃으면서 작별을 고하고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등자경과 그 자리에 있던 문사들은 이때서야 비로소 그 도사가 당나라 때의 유명한 도사 여동빈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일화를 기리기 위해 이 악양루 우측에는 삼취정(三醉亭)이 세워져 있다. 이 삼취정은 청나라 건륭 40년(1775년)에 세워졌고, 그곳에는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는 모양의 여동빈 상과 그가 쓴 시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앞에서 나온 詩 ‘수리청사담기조’(袖裏靑蛇膽氣粗:소매 속 들어있는 단검(푸른 뱀)은 담력과 기력이 더욱 호쾌하다)에서 청사(靑蛇)와 관련하여 고사가 전해져 온다. 일찍이 파릉현(현재 악양) 성 남쪽 백학산에는 큰 호수가 두 개 있었는데, 그 호수 가운데 이무기가 있어 민간에 피해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던 여동빈이 법술로 이무기를 다스려 단검으로 만들어 항상 소매 속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남송 때 비릉시에는 점을 잘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머리에는 푸른 두건을 메고 몸에는 누런 도복을 입고 있었다. 스스로 지명(知名)선생이라 하였다. 비릉군 태수 호도는 지명선생이 점을 기가 막히게 잘 친다는 소문을 듣고, 지명선생을 청해서 점을 쳤다.

지명선생 : “당신의 수명은 매우 길고, 곧 당신의 관직에 변동이 있다. 변동 시기는 청명절 전 5일 또는 청명 후 7일이다.”

고을 태수 호도는 청명 5일 전에 과연 그가 자리를 바꾸어 형문군 태수로 간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청명 후 7일이 되자 정식으로 이동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호도는 지명선생의 신기막측한 점술에 탄복하여 사람을 보내 그를 찾았으나 이미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호도는 후에 형문군 태수가 된 후 친구한테 남경의 석각에 새겨진 여동빈 상을 탁본한 그림을 받았다. 지명선생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 이때서야 지명(知名) 두 글자 중에는 지(知)자에 ‘口’, 명(名)자에 ‘口’가 있어 두 구(口)자를 합한즉 ‘여(呂)’자가 아닌가? 호도는 그가 친히 겪은 이 일을 자기 문집에 남겨 놓았다.

여동빈이 하루는 구름 따라 북방으로 갔다. 하루는 거지 한 명이 길바닥에서 굶주려 아사 직전까지 간 것을 보았다. 이미 거의 숨이 끊어질 듯하였다. 불쌍한 중생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여동빈은 법술을 사용해서 거지를 구해냈다.

여동빈 : “자, 내가 여기 돌을 금으로 만들어 줄테니 이걸로 살아가도록 하게나.”
뜻밖에 황금을 얻은 거지는 기쁘기 그지없었지만, 곧 그 거지는 욕심이 발동하여 떼를 썼다,

거지 : “차라리 도와줄거면 돌을 황금으로 만드는 손을 주쇼.”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인간의 욕심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니!

또 한번은 여동빈이 기름장사로 변신하여 기름을 팔면서 악양에 갔다. 기름을 사는 사람들마다 더 달라고 요구했다. 다만 한 노파만 기름을 사면서 더 달라고 하지 않았다. 여동빈은 그녀가 신선공부를 할 만하다고 생각하고 제도하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가서 한 줌의 쌀을 우물 속에 던져 넣었다.

여동빈 : “당신은 이 우물물을 팔면 부자가 될 것이네.”

그 노파는 여동빈이 간 후 우물속의 물이 전부 미주(美酒)로 변한 것을 알았다. 그 노파는 우물속의 술을 팔아 일년 후에 부자가 되었다. 그 후 어느 날 여동빈은 그 노파 집에 갔는데 마침 노파가 없고 그녀의 아들이 집에 있었다.

여동빈 : “당신들 집은 지난 일년 동안 술을 팔아 부자가 되었는데, 느낌이 어떠한가?”

노파의 아들 : “좋기는 좋은데 단지 돼지 먹일 술 찌꺼기가 없어서 힘들다.”

여동빈 : “( 탄식하면서) 정령 인심이 탐욕스러워 부끄러움도 모르는구나.”

그는 손을 들어 우물 속의 쌀을 거두어 들이곤 고개를 흔들며 갔다. 노파가 외출에서 돌아와서야 우물속의 술이 모두 물로 변한 것을 알았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가?
인간들에게 실망하면서 여동빈은 구름처럼 천지(天地)를 내 집으로 삼아 운유(雲遊)하였다 한다.

중생들이여, 시간을 아껴 수행하라
여동빈은 중생들이 명리재색(名利財色)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헛되이 죽음으로 가는 것을 경계한 듯,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겨 후학을 경계하게 하였다.

순양여조시(純陽呂祖詩)

人身難得道難明 인신난득도난명
塑此人心訪道根 진차인심방도근
此身不向今生度 차신불향금생도
再等何時度此身 재등하신도차신

순양자 여동빈 조사가 이르시기를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도 밝히기도 어려워라
사람마음 따라 도의 뿌리를 찾나니
이 몸을 이 생애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려 이 몸을 제도하리요

이 인간의 몸 받기가 정녕 어려운데 중생들이여, 정법을 만나 수행을 통해 윤회의 사슬을 벗어나시라! 간절히 희망하면서 신선 여동빈 편을 마칩니다.

희망지성

노인 : “노란 조밥이 아직 익지도 않았는데 꿈이 끝났네. 자네 오십 년 부귀영화도 절정까지 갔다가 이렇게 끝나지 않았는가?”

여동빈은 본래 도를 향한 마음이 있었는데, 단지 지난 10년간 어려운 고난이 있었고 그 고난에 대한 소득이 없어서 불만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생생하게 꿈속에서 점화(點火)되었고, 갑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깨닫게 되자 세상에 미련을 버리고 수도하고자 결심하였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운방(雲房)선인 종리권에게 절하고 스승으로 모셨다.

노인 : “천부적인 너의 좋은 자질을 보건대 세상을 제도하는 선(仙)술을 닦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오욕칠정에 물든 인간의 마음을 제거하기가 어려워 신선이 되기는 어렵다. 너의 공행(功行)을 다 채우지 않아서 설사 신선이 되는 신선술을 배웠다 하더라도 실제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다. 그러니 내가 너에게 쇠를 금으로 만들고, 납을 은으로 만드는 황백술(黃白術)을 전수하는 것보다 못하다. 너는 이 황백술로 세상을 제도하고 사람을 이롭게 하라. 삼천 가지 공덕이 차고 팔백 가지 선행을 마치고 나면 내가 다시 와서, 그때, 너를 제도하겠다.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사제의 예가 끝난 후 선인 종리권은 여동빈의 손을 끌고서 장안교외로 갔다. 그곳에서 순간적으로 공간이동을 하여 종남(終南)산 학정(鶴頂)봉 위의 동굴 밖에 도착했다. 동굴에 들어가니 햇빛이 비추어 들어오는데 포근하기가 봄날과 같았다.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이 큰 반석 위에 마주앉아 원화주(元和酒)를 석잔 마시고 있는데, 비취빛 저고리에 붉은 바지를 입은 사람이 구름을 밟고 기이한 향기를 풍기면서 하늘로부터 내려와 선인 종리권에게 봉래산 천지회 모임에 같이 가자고 초대한다.

종리권은 수련서인 현결(玄訣)을 남겨놓고, 자주색 구름을 타고 하늘 저 멀리로 사라졌다. 며칠이 지난 후 종리권이 동굴로 되돌아 왔을 때 여동빈은 스승이 남겨놓고 간 현결(玄訣)을 숙독해서 경지가 전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스승과 함께 수행하고 있는 동안 청계선인 정사원과 태화선인 시호부가 선인 종리권을 만나러 왔다. 여동빈은 두 분의 선인에게 절을 하고 가르침을 받았다. 그 당시 때는 바야흐로 봄이라 새들이 다투어 울고 시절이 호시절이라 선인 종리권은 흥에 겨워 시를 읊조렸다.

春氣塞空花露滴   춘기색공화로적
朝陽拍海岳雲歸   조양박해악운귀
봄기운이 공중에 가득하고 꽃에 이슬이 맺혀 떨어지는데
아침 해가 바다에서 솟아오르니 산 구름이 흩어지더라

노인 : “ 이 시를 동굴 입구에 새겨 놓아라. 나는 하늘의 옥황상제를 배알하러 가려고 한다. 너는 이 동굴에서 오래 머물 필요는 없다. 십 년 후 동정호 악양루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말을 마치고 영보부법(靈寶符法)이라는 도가 비전의 수련서를 주고, 삼원삼보(三元三寶)에 관한 설법을 하였다. 설법을 마치자 두 명의 천사가 금첩(황금으로 만든 초대장)을 받들고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이어서 하늘에서 봉황과 난새가 출현하고 선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선인 종리권은 두 천사와 함께 천천히 하늘로 날아올라 사라져갔다.

스승 종리권이 떠난 후 여동빈은 동굴에서 몇 년을 머물렀다. 수련을 한 동굴이 거대한 암석 가운데 있어 여동빈은 동굴을 집으로 삼았다. 그래서 이름을 경(瓊)에서 암(岩)으로 고치고 자(字)를 동빈(洞賓: 동굴속의 손님)이라 하였다. 또 동빈은 이곳에서 도가의 진전(眞傳)을 모두 얻었고, 수도하여 몸속에 음의 기운(塵陰)을 모두 몰아내었으며, 순양(純陽: 순수한 양의 기운)만 몸에 남아 도호를 순양자(純陽子)라고 하였다.

종남산 학정봉 동굴을 나온 후 동빈은 누런 모자에 도사복장을 하고 호(號)를 회도인(回道人)이라 바꾸었다. 회(回)자는 크고 작은 두 개의 口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암암리에 여(呂)자로 姓이 여(呂씨, 여동빈)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때부터 동빈은 흘러가는 구름처럼 천하를 노닐면서 사해를 집으로 삼았다. 스승 종리권과 만날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동빈은 동정호로 갔다. 악양루에 올라 10년만에 스승 종리권과 해후하였다. 종리권은 동빈을 데리고 자기의 스승 고죽진군(苦竹眞君)을 알현하였다. 고죽진군은 동빈에게 도가의 비전인 일월교병지법(日月交幷之法)을 전수하였다.

그 후 동빈은 스승과 사조와 헤어진 후 양자강 하류 지역에 있는 천하명산 여산(廬山)에 놀러갔다가 화룡진인(火龍眞人)을 만나 수련하게 되었다. 이 여산이야말로 일찍이 마조대사가 예언한 우여즉거(遇廬則居:여를 만나면 머문다)가 아닌가?

동빈은 여산에서 화룡진인에게서 천둔검법(天遁劍法)의 진수를 배웠다. 이때부터 동빈이 강호상에 노닐 때 항상 몸에 보검을 차고 다녔다. 선인 여동빈은 이 칼로 수많은 요마(妖魔)를 제거하고 허다한 공덕을 쌓았으므로 항상 등에 칼을 찬 모습으로 신선도(神仙圖)에 등장한다.

하루는 여동빈이 구름을 따라 노니면서 무창 황룡산으로 갔다. 멀리서 바라보니 산중 절위에 자주색 구름이 가득 덮여 있어 이인(異人)이 있음을 알고 문득 절 안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 이름을 떨치던 유명한 황룡선사가 마침 법당에서 설법을 시작하려는 중이었다.

여동빈도 설법을 듣기 위해 사람 무리들 속에 묻혀 함께 법당으로 들어갔다.

황룡선사 : “오늘 여기에 법을 훔치려는 사람이 있는데, 이 늙은 중은 설법을 하지 않겠다.”

여동빈은 곧 자기를 가리키는 것을 알고 군중 속에서 나와 예를 취하면서 말하였다.

여동빈 : “화상에게 묻겠습니다.

一粒粟中藏世界   일립속중장세계
半升金當內煮山川   반승당내자산천

한알의 조 알갱이 속에 세계가 감춰져 있고
반 되 들이 솥으로 산천을 삶는다는 이 한 마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황룡선사 : “하하하. 원래 당신은 시체 같은 죽지 않은 귀신이구나!”

여동빈 : “화상은 내가 늙어도 죽지 않는 것을 조롱하지 말라. 나의 호주머니 안에는 장생불사의 약이 있는데 어찌하면 좋겠는가?”

황룡선사 :  

饒究經得八萬劫   요니경득팔만겁
難免一朝落空亡   난면일조락공망

당신이 설사 팔만 겁을 지내왔더라도
하루아침에 공망에 떨어지는 것을 면할 수 없다.

여동빈은 황룡선사가 기지와 총명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 황룡선사의 법력이 얼마나 고명한가를 시험해 보고 싶어서 등에 차고 있는 보검을 꺼내면서 말하였다.

여동빈 : “이 검은 내가 휴대하고 다니는 신령한 보검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능히 되는데 검을 칼집에서 나오라고 하면 곧 빠져 나오고, 칼집에 들어가라고 하면 곧 들어간다. 선사께서는 능히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황룡선사 : “(웃으며)비록 영물이지만 그것이 도력 있는 사람의 명령을 들어야 가능할 것 같은데, 당신이 먼저 한번 시험해 보시오.”

여동빈은 보검한테 칼집에서 나오라고 외치자 그 검은 칼집에서 스스로 나와 은빛을 뿌리며 절 대웅전 기둥으로 날아가 검 끝이 똑바로 나무로 깎은 용의 눈에 박혔다.

황룡선사가 가볍게 웃으면서 오른손을 들어 올리면서 가운데 손가락으로 기둥에 박힌 보검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황룡선사 : “내가 보건대 네가 이 검을 능히 칼집에서 끄집어낼 수는 있으나 다시 꼽을 수는 없다.”

여동빈 : “(큰소리로 웃으면서) 칼집으로 들어가라.”

그러나 보검은 기둥에 박힌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검은 여동빈이 여산에서 검술을 배우고 하산한 후 줄곧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대로 할 수 있어서 신령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제 더는 주인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여동빈이 그 황룡선사의 도와 법이 높고 깊음에 탄복하고 그 자리에서 절하여 사과하면서 불법을 가르쳐 줄 것을 청하였다. 황룡선사는 여동빈의 마음이 진심과 성의가 있음을 알아보았다.

황룡선사 : “당신은 이미 반 되들이 솥으로 산천을 삶고 또 어떻게 한 알의 조 알 속에 세계를 감출 수 있는가를 듣지 않았는가? 내가 말한다면, 그 뜻은 즉 먼저 마음속에 아무런 물건(욕심)이 없어야만 능히 삼라만상을 둘러싸 안을 수 있다.”

여동빈은 황룡선사의 깊은 뜻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오도송을 지었다.

棄却瓢囊擊碎琴  기각표낭격쇄금
從今不戀汞中金  종금불연홍중금
自從一見黃龍後  자종일견황룡후
始覺當年錯用心  시각당년착용심

하나있는 표주박 주머니도 버리고, 거문고도 깨뜨려 버렸다.
이제부터 불사약(금단)에 더는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네
이제 황룡선사를 한번 만나본 후
비로소 그 당시 마음 잘못 쓴 것을 깨달았다네

여동빈은 낭랑히 오도송을 읊으면서 황룡선사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고 표연히 떠나갔다.

희망지성



[SOH]  

팔선열전[八仙列傳]에 들어가며......

팔선은 중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기행(奇行)과 속세를 초월한 것으로 알려진 8명의 신선으로 여동빈ㆍ장과로ㆍ철괴리ㆍ한상자ㆍ종리권ㆍ조국구ㆍ남채화ㆍ하선고(女神仙)를 말한다.

이들은 당나라와 송나라 문헌에 나타나다가 원나라 때부터 팔선으로 정리된 듯하며, 중국의 소설, 희곡, 회화, 건축 등 여러 분야에 나타나고 민간에 널리 유전되어 오는 수많은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이제 이들 팔선의 출생 비화, 수도 과정, 부명재색(富名財色)을 초월한 행위, 신통 자재한 인생항로, 시공을 초월한 기행(奇行)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八仙列傳] 제 1화 (상)  여동빈(呂洞賓)편



팔선도 그림에 여동빈(呂洞賓)은 당나라 때 사람으로 종리권의 제자로 등에 칼을 차고 손에는 불자(佛子)를 들고 있다.  



     자영(自詠)   스스로 읊노라

獨上高樓望八都  독상고루망팔도  
墨雲散盡月輪孤  묵운산진월륜고  
茫茫宇宙人無數  망망우주인무수  
幾個男兒是丈夫  기개남아시장부  

홀로 높은 누각에 올라 팔방을 바라보니
검은 구름 흩어지고 둥근 달만 중천에 외롭게 떠있다.
망망한 우주에 사람은 많고도 많은데
사내대장부라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당나라 시대, 어느 날 동정호에 달이 휘영청 뜬 밤, 여동빈이 홀로 악양루에 올라 시를 읊으니,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한한 우주공간까지 이어지는 기개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그 당시 황소(黃巢)의 난으로 세상이 뒤숭숭할 때였기에 혹자들은 이 시에서 여동빈이 황소의 난을 평정할 사람 하나 없는 현실을 탄식한 것으로도 해석한다.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개가 여동빈을 보고 짖다니, 좋은 사람을 몰라본다”(狗咬呂洞濱, 不識好人心)고 할 정도로 여동빈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여동빈은 당나라 덕종 정원(貞元) 12년(797년) 4월 14일에 출생했다고 한다.
그의 모친이 여동빈을 낳을 때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고 자주색 구름이 하늘을 덮었으며, 한 마리 선학(仙鶴)이 하늘에서 날아 내려와 침상으로 날아들다가 돌연 사라졌다고 한다.

여동빈의 본명은 경(琼)이고, 자(字)는 백옥(伯玉)이며 또 다른 이름은 소선(紹先)이다.

출가 이후에는 이름을 암(岩)으로 고쳤고, 자는 동빈(洞賓)이다. 그는 당나라 후대, 관서 하중부 낙현사람이다. 현재 지명은 산서성 영락현이며, 그곳에 그가 태어난 것을 기념해서 만수궁(萬壽宮)을 세웠다.

여동빈은 태어나면서부터 관상이 보통 사람과는 달랐다고 한다.  양쪽 눈썹이 길고 비스듬히 구레나룻과 이어졌고, 봉황의 눈매에 광채가 나며, 코는 높고 단정하며 왼쪽 눈썹과 왼쪽 눈 아래 검은 점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부친은 이렇게 기이한 조짐을 갖고 태어난 이 아이를 매우 총애하였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교롭게도 불교 선종 6조 혜능대사의 손(孫)제자인 마조화상이 그의 집을 방문했다.

동빈의 부친 : “마조 대사님! 강보에 싸인 이 아이의 앞날이 어떨는지 한 번 봐주시겠소이까?”

마조대사 : “음. 이 아이의 운명은 풍모가 맑고 기이하며, 골상 또한 평범하지 않으니, 풍진을 벗어난 뛰어난 인물이다. 아이가 성장한 후 우여즉거(遇廬則居, 여를 만나면 머물고)하고, 우종즉고(遇鍾則叩, 종을 만나면 두드려라)하라. 이 여덟 자를 평생 꼭 기억하라.”

여기에서 마조도사에 대해 잠시 알아보자

*마조 도일(馬祖 道一) : 당나라때 승려로 750년 전후로 활약하였으며 속성은 마(馬)씨, 통칭 마조도일, 사천성 출신으로 19세 때 출가하여 선종 6조 혜능 문하의 남악 회양(南岳 懷讓)의 법을 이었다. 강서성 홍주를 중심으로 교화하였기 때문에 그 일파를 홍주종(洪州宗)이라고도 한다. 널리 알려진 문하생이 백장, 대매, 남천 등이며 남악의 종풍이 일시에 융성하였으며, 후일 임제종(臨濟宗)으로 발전하였다.
  
마조 천하라하여 마조의 선풍이 온 세상을 덮었으며, 일상생활 속에서 선(禪)을 실천하는 새로운 선종이 이 무렵 시작되었다고 한다. *

여동빈은 어린 시절 남달리 총명해 하루에 글자 만 자를 암송하고 말이 입에서 나오면 문장이 되었다고 한다. 성장 후, 신장은 8척 2촌에 목덜미는 기다랗고 이마는 넓었으며, 봉황의 눈과 광채가 나는 눈썹에 행동은 당당했다고 한다. 성격은 소박하였으나 말주변이 없었으며, 언사가 능숙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성년이 되어 김씨를 아내로 맞아 자녀 넷을 두었고, 당나라 무종(회창) 연간에 여동빈은 두 차례나 장안에 가서 과거를 보았으나 두 번 다 낙방하였다고 한다.

여동빈이 두 번째로 장안에 가서 과거에 응시하였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46세였다. 과거에 낙방하고 낙심한 가슴속에 쌓인 울적한 그 심정은 보지 않아도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오후 울적한 마음을 풀기 위해 발길이 가는 대로 걷다가 어느 작은 술집에 들어가 자작하면서 홀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심정은 마치 바람 따라 거리를 떠도는 가을 낙엽처럼 의지할 바 없이 쓸쓸하였다. 바로 그때, 술집으로 긴 수염에 빼어난 눈썹, 안색이 붉으레하게 빛나는 도사복장을 한 노인이 들어와 여동빈의 맞은편 빈자리에 앉았다. 세간의 다툼이 없는 듯 사리사욕이 없고, 온화함이 넘치는 듯한 그 노인의 풍모는 여동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坐臥常携酒一壺   좌와상휴주일호  
不敎雙眼識皇都   불교쌍안식황도  
乾坤許大無名姓   건곤허대무명성  
疏散人間一丈夫   소산인간일장부  

앉으나 누우나 언제나 한 호로의 술을 가지고 다녔고
두 눈으로는 황도(세상일)의 일을 모르도록 했다네
하늘과 땅은 이렇게 큰데 성도 이름도 없이
한낱 인간세상을 떠도는 한 사내일 뿐일세.

술잔을 돌리며 서로의 심사를 한마디씩 토로한 후, 풍채 좋은 노인은 돌연 시심이 크게 일어난 듯, 즉석에서 시를 읊으며 붓을 들어 술집 벽 위에 써내려 갔다. 여동빈은 시를 음미해 보고는 노인의 시풍이 표일하고 호방함을 깊이 찬탄하고는 두 손을 맞잡고 가슴까지 올려 절을 하고난 후 노인에게 물었다.

여동빈 : “비록 하늘과 땅이 이렇게 큰데 성도 이름도 없다고 하였지만, 후배인 저로서는 도장께서도 칭호가 있을 것 같아 묻사옵니다. 도장의 성명 삼자를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노인 : “허허허. 나의 성은 종리(鍾離)이고 이름은 권(權)이요.”

여동빈 : ‘아니, ‘종리(鍾離)’라면, 옛날 부모님이 늘 말씀하셨던 ‘마조(馬祖)선사의 예언’ “우여즉거(遇廬則居)하고 우종즉고(遇鍾則叩)하라” (廬를 만나면 머물고, 鍾을 만나면 두드려라)가 아니던가!‘

여동빈은 지금 내 앞에 앉은 이 기이한 노인이 내가 마땅히 두드려야 하는 종(鍾)이라는 예언이 적중한 사실을 알곤 순간 멍하니 있게 되었다.

노인 : “자, 우리 술 한잔합시다. 자네도 시 한 수 짓는 게 어떠한가?”

生在儒家遇太平   생재유가우태평  
懸纓垂帶布衣輕  현영수대포의경  
誰能世上爭名利   수능세상쟁명리  
欲侍玉皇歸上淸   욕시옥황귀상청  

유가 집안에 태어나 태평시대를 만났건만
갓 끈을 걸어두고 허리띠를 벗어 놓았으니 삼베옷이 가볍다
(벼슬하지 않은 포의를 비유)
누가 세상과 더불어 명예와 이익을 다투겠는가?
옥황상제를 모시러 상청경으로 되돌아갈까 한다.

노인 : “흐음, 자네의 시는 말일세. 하하하하”
“공자는 이미 도를 향하는 마음이 있는데, 나를 따라 세상을 버리고 입산하지 않겠소?”

여동빈 : “(머리를 흔들며) 집안에 아내와 자식을 생각하니 아무래도 속세를 떠나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노인 : “음, 그렇단 말이지! 그대와 나는 곧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니, 지금은 우선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내일 당신은 여기 적혀 있는 이 여관의 주소로 나를 찾아오시게.”

종리권과 헤어진 다음 날, 여동빈은 종리권이 준 주소를 들고 장안 근처 여관으로 찾아갔다. 마침 때가 정오여서 선인 종리권은 마침 방안에서 작은 화롯불을 피워놓고 부채질을 하면서 노란 조밥을 짓고 있었다. 서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여동빈은 갑자기 졸음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노인 : “자네는 이미 피곤에 지쳐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니 저기 내 침상에 올라가 조금 자게나. 내게는 작은 베개가 있는데, 이름을 여의침(如意枕)이라고 하네, 자네는 여의침을 베고 자면서, 여의몽(如意夢)이나 한번 꾸게나.”

여동빈이 여의침을 베고 눕자마자 몽롱해지더니 하염없이 잠속으로 곯아떨어져 꿈꾸었다. 여동빈은 젊어서 장안에 가서 진사시험을 보았다. 과거에서 장원급제하여 한림학사가 되었다. 그 후 권문세가의 여자를 아내로 맞아 장가들고, 자식도 여럿 낳았다. 인간 세상의 부귀영화가 한몸에 모이듯이 출세 가도를 달렸다. 평생의 소원을 크게 이루었다고 기뻐하였다. 바야흐로 만사가 순조로워 인생의 최고조를 만난 듯 득의양양할 때, 재앙이 하늘에서 내려오듯이 홀연 다른 당파의 모함에 걸려들었다. 천자의 노여움이 하늘을 찔러, 감찰기관으로 하여금 죄를 다스리게 하여 재산을 전부 몰수하였고, 아내와 자식들도 다 흩어졌으며, 그 자신도 재판을 받아 강제로 멀고 먼 변방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그 자신 혈혈단신, 그 고초는 이루 형언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 인생의 무상함을 크게 탄식하다가 홀연 꿈에서 깨어났다.

여동빈 :  ‘그 수십 년의 인생살이에서 부귀영화가 정녕 한바탕 꿈에 불과하다는 것인가? 인생은 한낱 꿈이란 말인가?’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니, 낮잠에 들기 전처럼 선인 종리권이 지금까지도 화롯가에 쭈그리고 앉아 노란 조밥을 짓고 있었는데 그 조밥은 아직 익지도 않았다.

인생의 무상함을 탄식하다가 홀연 꿈에서 깨어난  여동빈!
다음 시간에는 어떤 일이 생길지 기대해주세요.



정견망


원형(源馨)

【정견망】

불경에서는 마음에 72상(相)이 있다고 말한다. 상(相)이 있다면 그럼 다른 사람이 보거나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소사미(小沙彌 역주: 출가했지만 아직 20세 미만이라 정식 비구가 되지 못한 남자 승려를 말함)가 마음을 닦은 작은 이야기에 큰 의미가 담겨 있다.

어느 노화상(老和尙)이 어린 사미(沙彌)를 데리고 행각했다. 아무리 끝없이 광활한 숲을 가든 또는 산을 넘고 계곡을 건너든 노화상은 늘 자유롭게 앞에서 걸었지만 소사미는 등에 짐을 지고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가는 내내 서로 보살펴주며 서로 짝이 되었다.

소사미가 한참을 걷다가 속으로 생각했다

‘사람 몸을 얻기 힘들다지만 얻어도 겨우 수십 년에 불과하고 또 생로병사를 겪어야 하며 육도윤회을 거쳐야 하니 사람이란 정말 고생스럽구나! 그러나 기왕 수행(修行)을 했으면 뜻을 세우고 자비심을 내어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나는 나태해져선 안 되며 다그쳐서 정진해야 한다!’

막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앞에서 걷던 노화상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오너라, 내가 짐을 메마. 네가 앞장서서 걸어라.”

소사미는 비록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노화상의 지시에 따라 짐을 내려놓고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한참을 걷다보니 사미는 정말 가볍고 자유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불경에서는 중생을 구도하려면 각종 보시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건 정말로 너무나 고생스럽구나! 하물며 천하에 중생이 이렇게 많은 고생을 겪고 있으니 대체 언제나 구도를 끝낼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내 한 몸만 깨끗이 하면서 이렇게 자유롭게 사는 게 낫지 않을까!”

막 이런 염두가 나오자마자 노화상이 아주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멈춰라!”

소사미가 뒤로 돌아 노화상의 엄숙한 표정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노화상이 그에게 짐을 넘겨주면서 말했다.

“짐을 메고 뒤에서 따라오너라.”

소사미는 생각했다.

‘사람 노릇하기란 정말 고생스럽구나! 방금 그렇게 즐거웠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이렇게 힘들게 변하다니. 사람의 마음은 정말 불안정하구나! 범부(凡夫)의 마음은 이렇게 흔들리기 쉬우니 그래도 수행을 잘해야 한다. 최소한 고난에 처한 중생을 마주해 많은 사람들과 선(善)한 인연을 맺고 내가 할 수 있는 본래 일을 잘하도록 하자.’

막 이렇게 생각하자마자 노화상이 다시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그를 부르더니 또 자신이 짐을 메고 그더러 앞에서 가게 했다.

소사미는 이렇게 반복적으로 마음을 냈다가 마음을 거뒀는데[退心 역주: 수행해서 진보하려는 마음을 거두고 움츠러드는 것] 3번째 다시 마음을 거둘 때 노화상이 다시 엄한 태도로 그를 대했다.

소사미가 마침내 더는 참지 못하고 마음속 의혹을 물어보았다.

“사부님, 오늘 왜 저더러 잠시 앞서 가라고 하셨다가 또 잠시 후 뒤에서 가라고 하시는 겁니까, 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러자 노화상이 말했다.

“너는 비록 수행하려는 마음은 있지만 아직은 도심(道心)이 견고하지 못하다. 마음에 감동을 받을 때면 곧 큰 서원을 발하지만 그러고는 또 곧 도심이 움츠러든다. 이렇게 나아가고 물러남을 반복해서야 언제 성취할 수 있단 말이냐?”

노화상의 이런 말을 들은 후 소사미는 곧 깊이 참회했다. 그가 다시 보리심을 내었을 때 노화상이 그에게 앞에서 가라고 했지만 감히 앞에서 가지 못했다.

그는 말했다.

“사부님, 이번에 저는 진정으로 마음을 냈으니 만장(萬丈) 높은 건물이 평지 위에 우뚝 선 것처럼 마음에 큰 소원을 내어 도의 기틀로 삼고 착실히 정진하며 나태하지 않겠습니다.”

노화상이 이 말을 듣고는 아주 기뻐했다. 두 사람은 이렇게 줄곧 대화하고 웃으면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갔다.

마음을 비우면 사람 역시 가뿐해지는데 세상 사람들은 모두 신선을 부러워한다. 인생은 짧고 고달프니 도심(道心)이야말로 가장 소중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소사미가 느낀 것처럼 심상(心相)의 기복이 안정되지 않아 정념을 지켜내기란 쉽지 않다. 고험은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마(磨鍊)의 실질은 마음에 있는 것으로 마음이 움직이면 주위 사람이나 사물 역시 상응해서 변화가 발생한다.

어떻게 우리의 마음이란 원숭이를 가둬 착실하게 매 한 걸음을 걸어갈 것인지가 흔히 아주 중요한데 마음을 닦는 기초를 점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나태해지면 곧 방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손오공의 말을 빌려서 표현하자면 “오직 스승님께서 견성(見性 성불)하려는 정성이 있으시면 생각을 돌리는 곳이 바로 영산(靈山)입니다.”

[역주: 이 말은 서유기 제24회에서 당승이 목적지인 뇌음사(雷音寺)가 얼마나 먼지 물은 것에 대해 오공이 당승에게 한 대답의 일부다.]

기타

옛날 먼 옛날.
설산이라는 산에서 수행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설산동자(雪山童子)라고 불렀습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는 존귀한 가르침을 알고 싶다.” 설산동자는 항상 이렇게 생각하면서 조용하고 착실하게 수행했습니다.

어느 날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어디서 미묘한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제행무상 시생멸법(諸行無常 是生滅法) ‘모든 것은 무상하여 영원한 것이 없나니 이는 나고 죽는 법칙이라네.’」 설산동자는 그 뒤에 무엇이
이어지는 노랫소리가 더 있을 것 같은데 끝내 노랫소리가 없어, 노랫소리가 난 곳으로 찾아가 보니 ‘나찰(羅刹)’ 한 분이 허기가 져서 누워
있었습니다.

설산동자가 뒷 구절을 마저 말씀해 달라고 하자, 나찰은 배가 고파서 할 수 없다 합니다. 설산동자가 뒷 구절을 불러주면 자신의 몸을 먹이로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제 서야 나찰이 나머지 구절을 불러 주었지요.

「생멸멸이 적멸위락(生滅滅已 寂滅爲樂) ‘나고 죽는 일이 함께 사라지면 이를 일러 고요한 즐거움이라 하네.’」  이 게송을 듣고 난
설산동자는 깨달음을 이루고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혼자만 알고 목숨을 마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생각이 들어 여기 저기 바위벽에다 써서 두고
나무 위로 올라가 아래로 몸을 던져 버렸습니다. 이때 나찰은 제석천(帝釋天)으로 변하여 동자의 몸을 받아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게 했습니다.

설산 동자 이야기(동영상)

선어에 '백척간두(百尺竿頭) 진일보(進一步)'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 척은 대략 30미터가 되는 높이며, 간두(竿頭)는 빨래 줄을 높이 올리는 긴 막대기나 장대의 끝을 말합니다.

백 척의 장대 끝에 있다는 말은 깨달음의 세계에 안주하는 것을 의미하고 허공에서 한 걸음 더 내 딛으라는 것은 깨달음마저도 떨쳐버려
무심해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거상 임상옥이 홍삼을 중국 상인들 앞에서 불에 태우는 장면(동영상)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이 많은 인삼을 싣고 북경에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북경 상인들은 임상옥의 인삼을 싸게 사려고 담합(談合)하여 그의 인삼(人蔘)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와 상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가 지나도 그의 숙소에는 파리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고 귀국할 날짜만 점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북경 상인들은 뒷전에서 히득거리며 그의 인삼을 헐값으로 인수해 낼 수 있다고 좋아들 하고
있었습니다.
자칫 빈털터리가 될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때마침 북경에 머물던 추사 김정희를 찾아갑니다. “지금 어떤 사람이 백척간두에 올라서 있다.
오도가도 할 수 없이 죽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내려올 수 있겠나?” 그러자 추사는 “내려올 수 없다”고 답합니다. 최인호의 소설 ‘상도’의
한 대목입니다.

당혹스러워하는 임상옥에게 추사는 일필휘지로 한 구절 내밉니다. “백척간두진일보 시방세계현전신(百尺竿頭進一步 十方世界現全身)” 의아해하는
임상옥에게 추사는 “죽음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죽음뿐”이라고 말합니다.

문득 깨달은 임상옥은 가져온 인삼을 모아놓고 불을 지릅니다. 몰래 동정을 엿보던 상인들이 달려와 허겁지겁 인삼에 붙은 불을 껐습니다. 이
인삼이 잿더미가 된다면 중국에는 인삼 공황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대체할 방안은 없었습니다. 인삼에 붙은 불을 끄고 난
뒤 중국의 인삼 상인들은 임상옥의 배짱에 놀라서 그에게 거듭 사과했고 인삼 값도 부르는 대로 쳐주었습니다.

이렇게 극단적인 처방을 통하여 임상옥의 이름은 더욱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의 상술은 더욱 빛났고, 재산도 나날이 불어났습니다.

이 ‘백척간두…’는 원래 중국 선종의 큰스님 남전보원(南泉普願)의 제자 장사경잠(長沙景岑)의 게송(偈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百尺竿頭坐底人(백척간두좌저인)
백척간두에 주저앉은 사람이여,
雖然得入未爲眞(수연득입미위진)
비록 도를 깨쳤지만 참다움에 미치지 못하니,
百尺竿頭進一步(백척간두진일보)
백척간두 그곳에서 한 걸음 더 내 딛어야,
十方世界是全身(시방세계시전신)
시방세계 그대로 부처님의 온몸이다.


공부가 백척간두(百尺竿頭)까지 갔으니 이미 공부가 상당히 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거기까지 가서 머물러 버린 사람, 백척간두에
올라가서 거기에 걸려 버린 사람은 비록 깨달았다 하더라도 아직 참다운 것은 못 되며, 한 걸음 더 나아가야 비로소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때로는 막다른 곤경에 처하거나, 극한의 위기에 놓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를 하면, 우리는
두려움이나 집착을 버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직장이나 가정에서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피하거나
탓하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깨달음은 때로는 자만이나 안주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럴 때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를 하면, 우리는 깨달음에 대한 집착을 놓고,
더욱 노력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했을 때, 그것을 자랑하거나 만족하기보다는, 더 배우고 연습하는 것입니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의 결과로, 우리는 자유와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자유란,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평화란, 어떤 갈등이나 분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마음이 평온하고 안정된 것입니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며,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는 우리의 삶과 깨달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선어입니다. 이 선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용기와 끈기, 겸손과 개방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자신을 도전하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 나은 삶과 깨달음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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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사 영화 〈당신을 위해 왔습니다〉

NTDTV(캐나다)와 뉴 신경계 스튜디오에서 명품 영화를 감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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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法輪功)으로 잘 알려진 法輪大法(파룬따파)는 리훙쯔(李洪志)선생께서 창시하신 고층차의 불가(佛家)수련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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