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지성

[SOH] 인생에 단(段)이 있다면 나는 몇 단 쯤 될까?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나는 고수인가, 아니면 하수인가?

산에는 고저(高低)가 있고 물에는 심천(深淺)이 있으며, 힘에는 강약(强弱)이 있고 재주에는 장단(長短)이 있다. 같은 사람이라고 능력까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희비와 승패가 있는 것이 인생살이이니 고수와 하수의 차이가 없을 리 없다. 정치9단, 경제9단이라는 표현이 흔히 쓰이듯이 분야마다 누구나 인정하는 빼어난 고수들이 존재한다.

중국 송(宋)나라 때 학자 장의(張擬)가 지은 바둑경전 《기경(棋經)》은 초단에서 9단까지의 아홉 품계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 수졸 (守拙・초단)= 졸렬하나마 스스로를 지킬 줄 안다.

□ 약우 (若愚・2단)= 어리석어 보이지만 나름대로 움직인다.

□ 투력 (鬪力・3단)= 힘이 붙어 비로소 싸울 만하다.

□ 소교 (小巧・4단)= 약간이나마 기교를 부릴 줄 안다.

□ 용지 (用智・5단)= 힘과 기교뿐 아니라 지혜도 쓸 줄 안다.

□ 통유 (通幽・6단)= 바둑의 그윽한 경지를 엿보게 됐다.

□ 구체 (具體・7단)= 두루 갖추어 바둑의 요체를 터득했다.

□ 좌조 (坐照・8단)= 앉아서도 모든 변화를 훤히 내다본다.

□ 입신 (入神・9단)= 승부를 초탈해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기경》은 말한다. “고수는 교만함이 없고, 하수는 겁이 없다.” 고수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지만, 하수는 하늘 높은 줄을 모른다. 그래서 고수는 하수인 양 실력을 감추지만, 하수는 고수인 양 자신을 드러낸다.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장자》 추수(秋水)편은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를 모르고, 여름 매미는 눈과 얼음을 모른다”고 가르친다.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하수들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아는 자는 말이 없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知者不言 言者不知)”라고 일깨운다. 고수는 자신이 모른다고 생각하고, 하수는 자신이 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수는 교만함이 없고, 하수는 겁이 없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야말로 하수들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참 용사는 힘을 자랑하지 않고, 참 부자는 재산을 자랑하지 않으며, 진짜 지혜로운 자는 지혜를 자랑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고수는 감추고 하수는 뽐낸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 안자(晏子)와 마부의 일화도 그런 고수와 하수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안자는 관중(管仲)과 비견되는 뛰어난 재상으로 정직하고 근면하여 백성들의 신망이 높았다. 하지만 겸손하게 처신하여 길거리의 낡은 집에서 살며 헌 가마와 작은 수레를 타고 다녔다.

아내는 비단옷을 입지 않았으며 식사는 반찬 하나에 국 한 그릇이 전부였다. 안자는 키가 작고 볼 품 없었지만 지혜와 담력은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그의 비범함을 보여주는 일화 가운데 이런 게 있다. 안자가 사신이 되어 초나라로 갔을 때의 일이다.

초나라 왕이 키 작은 그를 조롱하고자 성문 대신에 개구멍으로 들어오게 했다. 이에 안자가 호통을 쳤다. “개들의 나라나 개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초나라는 개 나라란 말인가!”

이런 안자에게는 키가 훤칠하고 용모가 번듯한 마부가 있었다. 마부는 안자의 수레를 끌며 자기가 재상이라도 된 양 몹시 의기양양해 했다. 어느 날 이를 본 마부의 아내가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며 이렇게 말했다.

“안자는 키가 6척도 안되지만 제후들 사이에 명성이 자자합니다. 그런데도 무척 겸손합니다. 당신은 키가 8척인 장부이면서도 기껏해야 안자의 말이나 몹니다. 그런데도 만족스러워서 거만한 태도까지 취합니다. 저는 그런 졸장부의 아내로 살기는 싫습니다.”

이 말에 크게 반성한 마부는 겸손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달라진 것을 본 안자는 그를 천거해 대부(大夫)로 입신시켜 주었다.

안자와 마부의 일화에서 보듯이 고수는 자신을 낮추고, 하수는 자신을 높인다. 고수의 눈에는 자신의 부족함이 들어오지만 하수의 눈에는 자신의 잘난 점만 보이기 때문이다.

고수는 자신이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하수는 자신이 안다고 생각한다. 위기구품으로 표현되는 고수와 하수의 차이도 여기에서부터 비롯된다.

인생이라는 승부에서 고수가 되려면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한다. 노자는 자신을 아는 사람은 현명하며(自知者明),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강하다(自勝者强)고 가르친다. 자기를 아는 것이 승리의 첫걸음이다. 《여씨춘추》 계춘기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그러므로 남을 이기려는 자는 반드시 먼저 자신을 이겨야 하고,

남을 논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자신을 논해야 하며,

남을 알려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한다.”

그대는 스스로를 몇 단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는 자는 떠들지 않고, 떠드는 자는 알지 못하는 법이다. 노자 말을 잣대로 삼아 자신을 한번 재어보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자랑이라 여겼던 것들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입신(入神)으로 향해 가는 길고 보람찬 여정은 시작된다.

/ 이코리아뉴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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