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망

글/ 송명(宋明)

【정견망】

사람이 살면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마땅히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이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수한 사람들이 제기하고 사색해왔고 더욱이 무수한 이야기들을 연기해왔다. 어떤 이는 드높은 기세로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자신의 소임으로 삼고, 어떤 이는 청빈(淸貧)하게 분수를 지키면서 농사짓고 독서하며 대대로 전했고, 어떤 이는 사치와 욕망을 추구하다가 좋지 않은 결말을 맞았고, 어떤 이는 표연히 속세를 벗어나 우화등선(羽化登仙)했다.

인간의 욕망은 명예・이익・정 세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데 제왕(帝王) 특히 고대의 제왕은 마치 최대한도로 인간의 욕망을 누린 사람처럼 보인다. 소위 “온천하가 왕의 영토가 아닌 곳이 없고 온 세상에 왕의 신하가 아닌 이가 없다”는 것이다. 제왕은 천하를 소유하고 또한 이미 인간세상에서 권력의 정점에 서있는데 그럼 이 일보에 이르러 그들이 여전히 추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중국 역대 왕조의 황제들은 모두 ‘천자(天子)’라고 불렸는데 천하에 임금으로 군림해 제(帝)라고 불렸다. 군권(君權)은 신(神)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으로 자신이 하늘을 대신해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을 표시한다. 다시 말해 황제 역시 가장 높은 존재가 아니며 제왕 위에는 또 천제(天帝)・신선(神仙)이 있다. 전설에 나오는 신선은 장생불로하기에 제왕이 만세(萬歲)만대(萬代)토록 영원불변하게 제왕의 권세를 추구하려는 망상의 대상이 되었다.

진시황(秦始皇)이 방사를 파견해 선약(仙藥)을 구해오게 했고 한무제(漢武帝)가 동방삭에게 명령해 반도(蟠桃)를 따오게 한 일들은 모두 정사(正史)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울러 그들이 이렇게 한 자체가 옳고 그른지 여부는 막론하고, 사실 제왕 역시 수중의 권력을 이용해 신(神)을 찾으려 노력한 것이다. 단지 이런 노력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당신이 제왕이라고 하여 상응하는 요구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이 입증하다시피 제왕의 이런 노력은 종종 엉뚱한 결과를 낳는 헛수고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들의 실패경험에는 또 정면(正面)적인 의미도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인간세상의 욕망은 사람이 집착하고 추구해야 할 가치 있는 목표가 아니란 것이다.

제왕의 수련 이야기를 말한다면, 역사적으로 양무제(梁武帝)처럼 재위 시 대대적으로 불사(佛事)를 일으키고 지존한 제왕의 신분으로 출가한 인물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사(政事)를 황폐화시켰고 나중에 후경(侯景)의 난 속에 굶어죽어야 했다. 일찍이 양무제는 또 달마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는 사찰을 짓고 승려에게 보시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공덕이 있는지 물었다. 달마는 아무런 공덕이 없다고 대답했다. 양무제의 의기양양한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았고 또 대화가 통하지 않자 달마는 또 강을 건너 떠나버렸다. 애석하게도 양무제는 불심(佛心)이 아주 깊었지만 오히려 수련을 이해하지 못했고 때문에 불법(佛法)을 스쳐지나가고 말았다.

명나라의 가정(嘉靖)황제는 도교를 숭상해 단을 연마해 장생을 추구하고자 했으나 역시 수련을 이해하지 못하여 많은 어리석은 일들을 저질렀다. 더욱이 자신을 무슨 진인(真人)이니 진군(真君)이니 선옹(仙翁)라고 칭했고 심지어 제군(帝君)의 도호(道號)까지 자칭해 천고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명나라 역시 가정제 이후 패망의 길로 나아간다.

제왕이 부처를 구하고 도(道)를 구하다 웃음거리가 된 사례는 이외에도 적지 않다. 한편으로는 사실 제왕 역시 일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욕구가 있음을 표현한다. 그렇다면 수련에 대해 말하자면, 수련의 표준 역시 사회계층의 높낮이에 따라 바뀔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수련은 오직 사람마음만 본다고 하는 것이다.

둘째로 제왕들이 왜 잇따라 이런 일을 하게 되는가? 사람마다 모두 불도(佛道)를 추구하는 마음이 있는 것 외에 제왕은 모종의 의미에서 말하자면 명리정(名利情)에 대한 걱정을 훨씬 쉽게 포기하고 수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고귀한 제왕의 신분이라 일반 백성들이 모르는 많은 일들을 쉽게 알 수 있고 특히 수련계의 일에 대해서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제왕이 끊이지 않고 수련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 중 일원이 된 것은, 다시 말해 수련과 사람의 연원관계 및 진법(真法)과 대도(大道)에 대한 동경을 말하고 이것이 얻기 힘든 것을 말한다.

또한 그들의 황당한 이야기 역시 이후 수련자들에게 경계가 되고 이 역시 신전수련문화(神傳修煉文化)의 일부분이다. 정면(正面)적인 것도 있고 반면(反面)적인 것도 있으며, 성공한 이도 있고 실패한 이도 있으니, 한 막 한 막 풍부한 이야기들이 마치 연극처럼 후인들이 보도록 펼쳐지는데 특히 오늘날 사람들이 보도로 남겨진 것이다.

물론 정면적으로 표현된 제왕도 있으니, 정법(正法)을 구하기 위해 왕위나 제위마저도 버린 경우도 있다. 석가모니는 출가 전에 고귀한 왕자였고 청나라 순치제는 황위를 포기하고 불법(佛法)을 닦았다. 역사적으로 공인된 명군인 한문제, 당태종, 강희제 등도 재위 기간에 백성들을 위해 근면히 정사를 돌보는 황제의 신분 외에도 또 예외 없이 정법(正法)종교(宗敎)에 대한 포용과 지지 및 긍정을 나타냈으며 자연히 국태민안의 태평성세가 되었다.

황제로서 좋은 황제가 되는 것은 그의 본분이다. 또 좋은 황제인 동시에 수련해서 신선이 되고 부처가 되는 것은 마치 두 가지를 병립하기 힘든 것처럼 보인다. 역사적으로 황제(黃帝)가 천하를 잘 다스린 후 하늘에 올라가 신선이 된 일이 후대 제왕 중에는 더 이상 나타나기 힘들었다. 제왕의 위에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푸른 하늘(靑天)로 올라가는 것이다.

도가(道家) 전적 중에 종종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수련의 길에 비유한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제왕만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이다. 노자의 《도덕경》 5천자와 장자의 〈응제왕(應帝王)〉과 같은 편은 표면적으로는 직접 나라를 다스리는 왕도(王道)를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모두 어떻게 수련할 것인가를 말한 것이다. 단지 보고도 이해하는 이가 많지 않을 뿐이다.

2011년 션윈(神韵) 합창음악회에서 발표된 《인생은 무엇을 위해》란 가곡은 천백 년간 사람들이 고생스레 찾아온 그 답안에 대해 말한다.

인생 백년 누구를 위해 바쁜가
명리친정(名利親情)에 애간장 태우누나
연극이 끝나가는데 누가 나인가
창천은 말이 없고 아득하기만 하여라
주위에 대법이 널리 전해지니
진상을 알고 방향을 바로잡네
깨어난 중생들 선악을 분명히 하니
자아를 찾아 천당(天堂)으로 돌아가네

(《홍음 3》〈인생은 무엇을 위해〉)

파룬따파(法輪大法)는 바로 당신과 나 우리 옆에 있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1184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