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망

글/ 송명(宋明)

【정견망】

유석도(儒釋道) 삼가(三家)의 사상학설 및 그것이 구체적으로 사회에 표현된 형식인 유석도 삼교(三敎)는 중화신전문명(中華神傳文明)의 주류를 대표하며, 중화 역사의 긴 흐름 속에서 줄곧 공생하면서 또 서로 다투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왔다. 이런 표현들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 한무제의 ‘독존유술(罷黜百家,獨尊儒術 백가를 물리치고 유학만을 존숭하는 것)’ 및 삼무일종(三武一宗)의 ‘멸불(滅佛)’이다.

도가(道家) 사상은 근원이 아주 길고 오래되어 위로 반고(盤古)가 천지를 개벽한 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져져 있다시피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 근원한다.

공자(孔子)의 유가사상은 선진(先秦)시기 ‘백가쟁명(百家爭鳴)’이란 휘황한 시대에 탄생했고 한무제 때 이르러 제왕의 치국요소에 부합했기 때문에 이후 제왕통치의 정통사상이 되었고 2천여 년 간 중국 역대 왕조의 교체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도가와 유가는 자고로 천 갈래 만 갈래로 연계되었고 공자는 또 일찍이 노자를 찾아가 예(禮)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도가와 유가는 대체 어떤 관계일까? 학자들은 흔히 사상이나 학설의 각도에서 다양한 인식이 있을 수 있지만 이 문제는 오직 수련의 각도에서 보아야지만 그 실질을 알 수 있다.

《사기》〈노자한비열전〉에는 노자가 공자에게 한 말이 기록되어 있다.

“그대가 말하는 사람들은 그 육신과 뼈가 모두 이미 썩어버리고 단지 그 말만 남아 있을 뿐이오. 또한 군자는 그 때를 만나면 관직에 나아가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이리저리 날려 다니는 쑥대처럼 굴러다니는 신세가 될 것이오. 내가 듣기에 뛰어난 상인은 물건을 깊이 숨겨두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이 보이고, 군자는 훌륭한 덕을 간직하고 있으나 외모는 어리석게 보인다고 들었소. 그대의 교만한 기색과 탐욕, 태도를 꾸미는 것과 지나친 욕망을 버리도록 하시오. 그런 것들은 모두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오. 내가 그대에게 말할 것은 단지 이것뿐이오.”

이 단락 대화는 얼핏 듣기엔 아주 간단해서 마치 그리 깊은 이해가 필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팔선득도전》에서 여동빈이 한 말이 이 대화에 대한 좋은 주석이 될 것이다.

​“성인 공자(孔子)의 학문은 입세(入世)의 정도(正道)이니 그 말이 평이 하고 인정(人情)에 가깝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범으로 삼을 수 있으며 사람마다 모두 이렇게 되면 천하는 일시적으로 태평해질 것이다. 그러나 영구적이고 항상된 치도(治道)는 아니다. 출세(出世)의 오묘한 뜻에 이르자면 노군(老君 노자)의 《도덕경》 안에 있는데 사람마다 모두 익히면 만년이 지나도 영원히 어지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 이 속의 지극한 이치는 바로 내가 순응하고 복종하는 것이나 지금 사람들은 오히려 홀시하면서 이단의 가르침으로 여긴다. 또 수많은 현문(玄門)의 요지(要旨)가 있으니 도술(道術)의 정종(正宗)이요 모두 인생 최고의 학문이다. 지금 스스로 통달한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은 도리어 천시하고 말하지 않는다. 이는 대도(大道)가 행해지지 않기 때문에 천하가 늘 어지러운 것이다.”

한편,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 대사님은 설법에서 아주 간단하고 명백하게 양자 간의 실질을 언급하셨다.

“유교 수련이 극히 높은 층차에 이르면 그것은 도가에 귀속된다.”[1]

“공자가 말한 것은 사람이 되는 도리이지 수련을 말한 것이 아니다.”[2]

“노자가 말한 것은 수련의 방법이다. 그러나 중국 사람은 실제로 유가사상과 도가사상을 한데로 합쳤다.”[3]

그러므로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역사상 진시황의 ‘분서갱유’나 또 후세 제왕이 도를 숭상하고 부처를 숭상하는 행위가 일시적으로 유교를 억제했다 해도 사실 모두 유가사상 및 유교의 정통을 단절시킬 수는 없었다. 비록 역사적으로 발생한 이민족이 한족(漢族) 국가를 침입한 몇 차례 시기에도 결국에는 모두 유가 정통사상의 영향을 받아 이민족의 문화를 융합시켰다.

중국 불교는 역사상 4차례 큰 법난(法難)이 있었다. 북위(北魏) 태무제(太武帝)의 폐불(廢佛) 6년은 문성제(文成帝)가 제위를 잇자마자 불법을 회복시키라는 조서를 내렸다. 북주(北周) 무제의 멸불(滅佛) 5년은 선제(宣帝)・정제(靜帝)가 뒤를 이운 후 다시 불법이 흥성해졌다. 당나라 무종(武宗) 회창(會昌) 연간의 6년 멸불은 선종(宣宗)이 즉위하자마자 불교가 다시 부흥했다. 후주(後周) 세종(世宗)의 멸불 4년은 송나라가 주(周)를 대신해 일어난 후 불교가 다시 부흥했다.

이렇게 몇 차례 불교의 법난을 둘러보면 이미 불도(佛道)가 서로 다투는 요소가 있었다. 가령 북위 태무제나 당 무종은 도(道)를 좋아했고 북주 무종은 불교와 도교를 억제하고 오직 유가만을 존중했다. 주 세종은 대체적으로 황로학(黃老學)에 통달했다.

하지만 수련의 각도에 서서 보자면 이 역시 후세인들에게 정법에 대한 박해는 필연적으로 박해자에게 악보를 가져다준다는 반면(反面) 교훈을 남겨준 것이다. 4차례 멸불은 짧으면 4년에서 길어도 6년을 넘지 못했고 불교는 늘 박해를 주도한 사람이 사망한 후 아주 신속하게 부활했다. 이는 표면적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것을 말하자면 소멸시킨 것은 사실 종교의 형식에 불과한 것으로 사찰을 파괴하고 승려를 환속시키는 등이다. 불법(佛法) 자체는 세속의 수단으로 소멸시킬 수 없었다. 중국 역사상 불교의 이런 전승과정은 사실 후인들에게 오늘날 정법(正法)을 인식할 수 있도록 참고로 남겨준 것이다.

또 다른 각도에서 말하자면 사실 도교와 불교는 세인들이 잘 아는 수련의 2가지 형식에 불과할 뿐이다. 불교는 8만 4천 법문이 있다고 하는데 모두 부처 수련을 할 수 있고 도교에서는 3천 6백 법문을 말하는데 모두 도(道)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민간에는 부동한 층차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또 다른 수련형식이 줄곧 존재해 왔으며 역조(歷朝)역대(歷代)로 단절된 적이 없었다.

고대의 수련인들은 세간 일에 관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세간 일 역시 그들의 신상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수련이야기는 오히려 줄곧 민간에 존재해왔고 부동한 층차에서 구두로 전해지거나 또는 비밀스런 방식으로 유전해 내려왔으며 또한 세인들의 연역(演繹)을 거쳐 신화나 민간전설로 형성되었다.

중국인들은 내심 깊은 곳에 모두 부처를 향하고 도(道)를 향하는 뿌리 깊은 마음이 있으니 이는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유전되며 끊이지 않고 전승해 온 신전문화(神傳文化)에 근원한다. 그러나 최근 1백년간 무신론을 선양하는 공산사당(共產邪黨)이 중화 대지에서 멋대로 잔학한 짓을 일삼으며 중국인들이 생존과 발전을 유지해온 신전문화를 전면적으로 파괴했다. 아울러 이를 통해 중국인들에게 심각한 재난을 가져다주었다.

이 방면에 관해서는 《구평공산당(九評共產黨)》에서 이미 전면적이고 깊이 있게 논단하고 있으니 이곳에서 부연하진 않겠다.

그렇다면 이렇게 유석도 삼교를 모두 소멸시키고 오로지 마르크스레닌주의만을 독존(獨尊)하면서 중화신전문화의 전승은 진정으로 단절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바로 이때 1992년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이 불가(佛家)의 기점 위에서 우주근본대법을 전하고 ‘진선인(真善忍)’ 우주 최고특성을 전하여 전승이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던 중화신전문화에 새로운 생기(生機)를 넣어주셨고 또한 중생들에게 생명이 진정으로 구도 받을 수 있는 희망을 가져다주셨다.

하지만 우주 중의 낡고 패괴(敗壞)된 생명들은 고집스레 정법(正法)에 대해 소위 고험을 진행한다면서 인간세상의 중공사당을 조종해 유사이래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거대한 겁난(劫難)을 발동시켰다. 이 겁난은 단지 중국인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법을 위해 온 모든 중생을 겨냥한 거대한 난이었다.

이번 박해는 1999년 7월 20일부터 지금까지 줄곧 지속되고 있으며 그것은 중국사회의 도덕과 양지(良知)를 훼멸한 재난적인 것이자 또한 직접적으로 사회를 전면적으로 패괴되게 했다. 또한 국제사회에 대한 영향 역시 다방면이었고 아울러 이미 인류 도덕과 양지의 마지노선을 뛰어넘은 것이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불법(佛法)이니 중공사당이 제아무리 창궐할지라도 사람이 불법을 박해할 수는 없는 것이며, 파룬따파 수련자들이 그 어떤 잔혹한 박해를 받았을지라도 그들은 모두 신(神)의 길 위에서 걷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번 박해의 진정한 박해대상은 사실 세인들이며 세인들이 이번 박해를 추종하거나・마비되거나・무시하면서 진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자신의 생명에 진정한 위기를 가려다줄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역사적으로 정법을 박해한 모든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파룬궁 수련자들을 겨냥한 이번 박해는 장차 더는 지탱할 방법이 없는 가운데 끝장날 것이며 박해 원흉과 악의 우두머리들은 반드시 마땅히 있어야 보응을 받으며 퇴장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의 마음은 장차 선(善)으로 돌아갈 것이며, 대법 수련자들은 조사정법(助師正法)과 중생구도라는 자신들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고 원만해서 본래 위치로 되돌아갈 것이다. 신불(神佛)이 크게 나타나면서 역사는 또 신기원(新紀元)으로 들어갈 것이며 아울러 ‘진선인(真善忍)’ 우주대법의 인도 하에 미래 인류에 속할 새로운 신전문화를 개창해줄 것이다.

(계속)

주:
[1] 리훙쯔 선생님 저서 《전법륜》〈제5강〉
[2] 리훙쯔 선생님 저서 《전법륜 2》〈사람을 제도함에 설법하지 연출을 하지 않는다〉
[3] 리훙쯔 선생님 저서 《전법륜 2》〈도(道)를 닦지 않아도 이미 도(道) 속에 있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118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