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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견망

글/ 송명(宋明)

【정견망】

중국 고대에는 승려든 도사든 그가 오직 출가하기만 하면 세인들은 그를 ‘반신(半神 역주: 절반은 신이고 절반은 사람이란 의미)’으로 간주했고 더 이상 평범한 사람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역사상의 불교와 도교는 비록 한가지 수련형식에 불과했지만 그 속에서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다.

부처 수련을 말하면 최후의 목표는 바로 초과나한(初果羅漢)에서 시작하는 부동한 정과(正果)의 과위를 얻는 것이고, 수도(修道)를 말하면 소위 장생하는 도에서 최후에는 진인(真人)으로 수련성취 되는 등이다. 다시 말해 이는 불도(佛道) 양대 체계의 차이가 조성한 각기 다른 표현이다.

한 평범한 사람이 신불(神佛)처럼 그런 위대한 생명으로 수련 성취되는 이것은 신불이 중생에게 개창해준 일종의 개인해탈을 목적으로 하는 생명을 구도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이 수련자에 대해 말하자면, 분명한 것은 인류라는 이런 생명형식을 초월한, 보다 높은 표준과 요구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출가인을 ‘반신(半神)’으로 간주하게 된 하나의 원인이다.

또 다른 원인이라면 역사상의 수련은 어느 가(家) 어느 문(門)을 막론하고, 첫 시작부터 대부분 사람 신체의 가장 표면에서부터 시작해서 개변하는 것으로 이렇게 하면 일부 신통한 공능이 나오기가 아주 쉽다. 그렇다면 세인들은 곧 그를 ‘신(神)’으로 여기게 된다. 사실 수련의 각도에서 말하자면 그는 겨우 방금 입문한 것에 불과하며 아울러 정법문(正法門) 수련은 모두 공능이나 신통 따위를 중시하지 않는 것으로 대도(大道)와 불법(佛法)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왜 ‘반신’인가? 왜냐하면 필경 수련인에게 잘 닦지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인데, 잘 닦이지 못한 그 일면은 바로 사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중국 고대, 특히 주(周)나라 이전 고대 역사 속에서, 당시의 인류사회는 도덕표준이 상대적으로 비교적 높았기 때문에 한편으론 세인들에게 아주 쉽게 펼쳐낼 수 있었고 또 다른 한편으론 사람이 신(神)에 대해 이런 바른 믿음(正信)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수련 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람과 신이 함께 하던(人神同在) 시기였다. 우리는 《봉신연의》 속에서 당시의 그런 구체적인 표현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해나감에 따라 인류의 사상 역시 갈수록 복잡해졌으니 바로 사람마음이 갈수록 더 자사(自私)하게 변한 후 전체 사회도덕 역시 아래로 더욱 빨리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렇다면 신불(神佛)은 더는 쉽사리 사람에게 현현할 수 없게 되었다. 또 사람 역시 신불에 대해 갈수록 믿지 못하게 되었고 또한 도덕이 계속해서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소위 세상 기풍이 날로 저락해 인심이 예전과 같지 않은데 이런 전반적인 표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불은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람에게 경고하고, 선을 향하도록 권고해, 생명이 진정으로 구도 받을 수 있는 기연을 기다릴 수 있도록 했다.

“고개를 들면 석 자 머리 위에 신령이 있다.”

“사람 사이의 비밀스런 말도 하늘은 우레처럼 듣는다.”

“사람마음에 일념(一念)이 생겨나면 천지가 모두 안다.”

“선악은 언젠가는 보응이 있으며 단지 빠르고 늦은 차이일 뿐이다.”

그렇다면 인간세상이란 이런 미혹의 환경 속에서 신불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고, 신불에 대한 바른 믿음이 있을 수 있는가 여부는, 사람에게 있어 하나의 아주 관건적인 문제가 되었다.

왜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만약 신(神)이 정말로 사람을 만들었다면 그럼 신과 사람은 아주 깊고 끊으려 해도 끊어버릴 수 없는 연원관계가 있는 것이다. 만약 한 사람이 신을 믿지 않거나 심지어 신을 배신한다면 그럼 이 사람은 어떤 방향으로 가겠는가? 이는 몹시 두려운 후과(後果)가 아닌가?

중공 사당의 사악함을 말하자면 그것은 사람이 신불을 배반하게 만들어 사람을 뿌리가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으며 사람이 진정으로 신의 구도를 받을 수 있는 희망을 단절시켰다. 바로 그것이 무신론(無神論)을 선양해 조성한 사악한 범죄의 하나다.

세계적으로 많은 민족의 문화 속에는 서로 다른 신이 사람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고 또한 역사적으로 오늘날 신이 돌아온다는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성경에서는 신이 장차 돌아와 사람에 대해 최후의 심판을 진행한다고 한다. 불경에는 우담바라 꽃이 활짝 피어날 때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세상에 내려와 법을 전하고 사람을 구도한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의 예언은 이보다 더욱 체계적이고 더욱 다양한데 거의 매 조대(朝代)마다 하나의 체계적인 예언을 후인들에게 남겨주었다. 그것들은 모두 역사상 오늘날 한 가지 큰 사건이 발생한다고 예언하는데 그중 한 가지 표현이 바로 사람이 신과 함께 하는 시기다.

이상 수많은 사례와 예언들이 모두 다음 한 가지 사실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바로 지금 억만의 사람들이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는 현상과 중공사당의 사악한 탄압 및 이 때문에 생겨난 파룬궁 수련자들이 반박해(反迫害) 중에서 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하는 활동이다.

파룬궁은 또 파룬따파(法輪大法)라고도 불리는 불가(佛家)의 상승수련대법이다. 1992년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이 중국에서 전하셨고 우주 최고의 특성 ‘진선인(真善忍)’을 지도로 삼아 불과 7년 만에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방식으로 수련인 수가 억 명에 달했다. 하지만 1999년 7월 20일 중공사당이 당파의 이익을 위해 잔혹한 탄압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중단되지 않고 있다.

파룬궁이 대표하는 ‘진선인(真善忍)’과 공산당이 대표하는 사악(邪惡)이 보여준 지난 십수년간의 박해와 반박해란 심각하고 선명한 대비는 파룬궁 진상을 알 기회가 있는 매 세인에게 각기 다른 정도로 내심 깊이 충격을 주었고 세인들에게 진일보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파룬궁은 대체 무엇인가? 공산당은 왜 이렇게 사악한가? 왜 이번 박해가 있을 수 있는가? 이번 박해에 직면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번 박해가 비록 사악하고 또 관련된 사람의 수가 아주 많으며 박해의 표현 역시 대단히 잔혹하지만 억만 파룬궁 수련자들은 모두 신의 길 위에서 걸어가는 수련인들이다. 그들은 반신(半神)이며 그들은 잘 닦인 신(神)의 일면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역사상의 수련자들과는 같지 않다. 그들은 생명의 가장 미시적인 곳부터 개변이 시작되기에 표면적으로는 큰 면적으로 신통한 공능을 표현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은 신(神)을 박해할 수 없는 것으로 진정한 파룬궁 수련자는 모두 장차 원만해서 귀위(歸位)할 것이니 박해자의 끝장은 생각해보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박해받는 것은 사실 세인들이다. 세인은 진상을 모르기 때문에 중공사당이 날조한 거짓말을 듣고 믿거나 또는 이번 박해는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여기면서 사실을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모두 자신의 생명을 진정한 위기 속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이 위기는 바로 정의(正義)와 사악(邪惡)의 사이에서 당신이 정의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곧 사악을 따라갈 것이며 사악의 끝장, 공산사당의 끝장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스스로 파룬궁을 박해하기로 선택한 그 날부터, 우주대법 ‘진선인(真善忍)’과 대립면에 선 그때부터, 그것의 끝장은 이미 잘 정해진 것이다.

동서고금에 무수한 사람들이 신불(神佛)을 찾아왔고 신불이 걸었던 길을 찾아왔다. 하지만 신불의 출현은 오직 신불의 의지에 따라 출현할 수 있을 뿐 사람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세간에서 행하고 사람의 언어로 법리(法理)를 알려야 하니”(《정진요지 2》〈신(神)의 서약은 실행 중이다〉) 신불의 귀래(歸來)는 오늘날의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사람이 진정으로 구도받을 수 있는 기연(機緣)이 도래한 것이다.

세인이 깨달을 수 있는가 여부, 믿을 수 있는가 여부는 그가 구도 받는데 있어 지극히 중요한 조건이자 또한 구체적인 표준이 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려줄 때, 당신이 한 장의 전단지나 CD를 볼 때,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신불이 이미 인간 세상에 있다고 알려줄 때, 당신의 태도가 장차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전세계 순회공연을 하고 있는 예술의 성대한 축제인 ‘션윈(神韵)’을 본 관객들이 공연이 끝난 후 집에 돌아가는 것조차 잊게 만드는 이유는 진정한 수련인이 연기하는 예술의 표현력 때문이자 또한 진정으로 신불이 무대 위에서 인간 세상에 왔노라고 펼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어떤 관중은 정말로 신불(神佛)이 내려왔다고 경탄하고, 어떤 이는 그것은 신불의 자비로운 구도라면서 감동한다. 역사가 오늘날 이 한 페이지를 넘길 때면 미래의 사람들은 대법 수련자의 위대함을 보게 될 것이며 파룬따파(法輪大法)와 파룬따파를 중생에게 가져다주신 리훙쯔(李洪志) 대사님의 큰 은혜에 더욱 감사하게 될 것이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118477

정견망

글/ 송명(宋明)

【정견망】

무엇이 수련인가?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은 《전법륜》에서 한구절로 간단하게 “당신에게 한 가지 진리를 알려주겠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라고 언명하셨다. 이 말은 듣기에는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실천하자면 정말로 쉽지 않은데 특히 세속을 벗어나지 않는 이런 대법수련의 형식 속에 깊은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 오직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만이 절실히 체험할 수 있다.

높은 계단 천척길을 오르나니
가파른 굽이굽이 발걸음이 더디네
고개를 돌리니 마치 정법수련을 보는 듯
반공중에 멈추면 제도받기 어렵도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만근다리 옮기나니
괴로움을 참고 정진하며 집착을 버리네
천백만 대법제자
공성원만하여 높은 곳에 있도다

이 시는 리훙쯔 선생님이 1996년 4월 15일 발표하신 《홍음》〈태산에 올라〉로 파룬따파 수련자들에게 정진의 나침반을 주신 것이자 또 세인들에게 파룬따파 수련자들의 수련과정을 이해하도록 형상화시키신 것이다.

자고로 유전되어 내려왔거나 또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수련방식과 달리 대법수련은 사찰에 들어가지 않으며 또한 산에 들어가 수련하지도 않는다. 수련자는 더욱이 나이, 성별, 인종, 사회계층이나 직업 등을 따지지 않는다. 직접 사람마음을 가리키는 ‘진선인(真善忍)’ 우주근본대법은 마치 밝은 등불처럼 세간에서 미혹의 안개를 타파했다. 다시 말해 수련에 뜻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진정한 수련으로 들어갈 수 있는 큰 문을 열어주셨다.

“대법(大法)을 널리 전하니, 소문을 들은 자는 찾고, 얻은 자는 기뻐하는바, 수련자가 날로 많아져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정진요지》〈사부를 모시다〉)

1992년 파룬따파가 공개적으로 전해진 후 불과 7년 사이에 인연 있는 사람들이 잇따라 찾아와 파룬따파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방식으로 신속하게 1억 명에게 전해졌다. 지금 사람들은 일부 역사사진과 파룬따파 수련심득체험을 통해 당시의 성대했던 상황을 볼 수 있다.

비록 당시 중국사회는 표면적인 형식은 평온했지만 억만 파룬따파 수련자들이 수련을 통해 심신이 건강해지고 도덕이 제고되어 가져온 거대한 변화가 사회 각 방면에 끼친 영향은 오히려 아주 감동적이고 심원한 것이다. 수련자들은 수련을 통해 심성(心性)이 승화된 후 각종 사적(事跡)・신적(神跡)을 통해 그들 주변의 수많은 세인들을 감동시켰다.

하지만 1999년 7월 노스트라다무스가 《제세기》 예언에서 언급한 것처럼 파룬따파 수련자들을 겨냥한 사악한 박해가 발생했다. 우주 중의 낡고 패괴된 세력은 그것들의 위사(爲私)한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대법과 대법제자를 고험한다는 구실로 인간세상의 중공사당을 조종해 한차례 전례 없는 거대한 겁난을 발동시켰으며 그 사악한 정도는 전 세계를 뒤덮었다. 당시 상황을 되돌아보면 검은 구름이 온 도시를 짓눌러 마치 질식시킬 것 같은 느낌이었고 천지를 뒤덮을 듯이 닥친 사악한 탄압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기억에 깊이 남아 있다.

바로 소위 이번 사악한 고험이 가장 암담할 때인 2000년 5월 22일 리훙쯔 선생님은 《심자명(心自明)》이란 시를 발표하셨다.

법은 중생을 제도하고 사부가 인도하나니
돛 하나 오르자 억만 돛이 나부끼네
집착을 내려놓으면 가벼워진 배 빠를 것이요
인심이 무거우면 바다 건너기 어렵도다
풍운이 돌변하여 하늘을 무너뜨릴 듯
산을 밀어내고 바다를 뒤엎을 듯 거친 파도 이네
대법수련 견정히하고 사부를 바짝 따라야 하나니
집착이 크면 방향을 잃으리라
배가 뒤집히고 돛은 찢겨 살려고 도망가나니
흙모래 깨끗이 씻기면 금빛 나타나리라
생사란 큰소리 쳐서 될 일이 아니니
될 수 있는가 없는가는 진상을 보아야 하리라
훗날에 가서 원만할 때
진상이 크게 나타나 천하는 끝없이 펼쳐지리라

하늘까지 닿을 듯한 거대한 난을 마주해 어느 것을 따르고 어느 것을 버릴 것인가? 모든 진정한 대법수련자들은 모두 자신이 직접 겪은 실천을 통해 동일한 대답을 내놓았다.

중국 역사상 모든 수련은, 어떤 수련이든 모두 개인의 해탈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세인이 수련자를 어떻게 대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수련자는 세간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또 세인의 일에 관여하지도 않았고 세인의 좋고 나쁨은 그들을 따라갈 뿐이었다.

역사상 수련의 더욱 실질적인 목적은 바로 오늘날 사람이 대법을 인식할 수 있도록 문화를 다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대법수련에서 이런 ‘대도무형(大道無形)’의 수련형식은 역사적으로 참조할 모델이 없는 것이다. 어떻게 박해에 반대하는 가운데 대법제자의 수련을 완성하고, 어떻게 진정으로 박해받는 사람들(중공의 거짓과 기만에 속은 광대한 민중들)을 구도할 것인가는 곧 대법수련자 앞에 놓인 하나의 진정한 고험이 되었다.

이번 사악의 박해는 오만방자한 허장성세로 시작했지만 박해 중에서 중공사당은 또 의도적으로 사악한 범죄를 은폐시켰다. 더욱이 대법수련자들이 박해 속에서 표현해낸 평화적이고 이성적인 대선대인(大善大忍)이 더해졌기 때문에 중국사회는 표면적으로 무슨 거대한 파동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사람들은 대법수련자들이 뿌리박은 불법진리(佛法真理)의 대선대인(大善大忍)을 감수할 수 있었고, 그들이 묵묵히 치른 거대한 감당과 사심 없는 대가 및 이를 통해 중국사회에 가져다준 심각한 영향을 감수할 수 있었다.

박해가 시작된 두 달 후 대법수련자들은 당시 겹겹의 봉쇄를 뚫고 북경에서 성공적인 외신기자회견을 열어 실명으로 파룬따파 수련자가 사악한 박해를 받은 실제 상황을 전 세계에 최초로 알려 큰 주목을 받았다. 당시 기자회견에 참가했던 대법수련자들은 나중에 중공사당의 광적인 보복 중에서 여럿이 체포되었고 특히 재기발랄했던 대법 여제자 정연(丁延 딩옌)은 1년 후 하북 승덕(承德) 여자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중공사당은 중국민중을 겨냥해 한 차례 한 차례 끊임없이 파룬따파를 비방하는 거짓과 기만 을 날조해냈다. 특히 2001년 1월 중공사당이 정교하게 꾸며낸 ‘천안문 분신자살사기극’은 민중들이 파룬따파를 증오하도록 대대적으로 선동했다.

2002년 3월 5일 길림성 장춘 케이블TV 8개 채널에서는 동시에 파룬따파 진상을 알리는 《분신자살인가 아니면 사기극인가(是自焚還是騙局)》, 《파룬따파가 세계에 널리 전해지다(法輪大法洪傳世界)》 등의 삽입영상이 방송되었다. 방송시간은 약 4~50분에 달했고 수십만 명이 시청했으며 영상을 통해 많은 민중들이 파룬따파가 모함받고 박해받은 진상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진상방송에 성공한 것은 오히려 수많은 파룬따파 수련자들의 거대한 희생을 대가로 한 것이다. 강택민(江澤民 장쩌민)은 “무조건 죽여라”는 비밀명령을 내려 5천여 명의 파룬따파 수련자들을 불법으로 체포했고 적어도 7명이 맞아 죽고 15명의 파룬따파 수련자들이 불법으로 4년에서 20년이란 무거운 판결을 받았다.

박해가 시작된 후 지금까지 명혜망(明慧網 밍후이왕)에서 각종 채널을 통해 2013년까지 수집한 자료(역주: 이 시리즈 문장은 2013년 작성되었다)에 따르면 파룬궁 수련자들이 박해로 사망한 3643건의 사건을 찾아낼 수 있다. 또 보다 많은 박해치사 사건은 중공사당의 집단학살정책에 따라 정확한 수를 알 수 없는데 2005년 이후 관련자들의 폭로에 따르면 중국에는 대량의 강제수용소가 존재해 파룬따파 수련자들을 감금한 후 산 사람의 몸에서 장기를 적출하는 경천동지할 흑막이 있었다. 이는 인류도덕과 양지(良知)의 최저선을 초월한 것으로 “이 별에서 전례 없는 사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엄혹한 형세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많은 파룬따파 수련자들이 걸어 나와 다양한 방식으로 진상을 알리고 조사정법(助師正法)과 중생을 구도하는 수련의 길을 걷고 있다. 당시의 힘겨웠던 세월을 돌아보면, 천안문광장이든 다양한 거리나 골목에서든, 그 어떤 곳이든 중국인들이 나타나는 곳이기만 하면, 세계 도처에서 파룬따파 수련자들이 꾸준히 진상을 알리고 박해를 제지하며 중생을 구한 일들을 볼 수 있었다.

정의(正義)를 신장하고 이를 통해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2000년 8월 29일 홍콩 파룬따파 수련자 주가명(朱柯明 주커밍)과 북경 파룬따파 수련자 왕걸(王傑 왕제)은 중국최고검찰원에 강택민을 처음으로 고발했다. 지난 14년간 파룬따파를 박해한 원흉인 강택민에 대한 소송은 중국대륙은 물론 홍콩, 대만을 포함해 20여개 나라는 물론 심지어 유엔에까지 제기되었다. 2009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법원은 강택민, 나간(羅幹 뤄간) 등이 파룬따파를 박해하며 저지른 반인류죄 혐의로 아르헨티나 경찰국 국제형사부에 두 중공 관원을 체포하라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2004년 《구평(九評)공산당》의 발표는 전면적이고 계통적으로 공산당의 사악한 본질에 대해 최초로 깊은 분석을 진행한 것이다. 또한 공산당의 사악한 본성을 폭로하는 각도에서, 왜 파룬따파 수련자를 겨냥한 이번 사악한 박해가 발생했는지 설명해주었다. 또 수련의 각도에서 보자면, 파룬따파를 겨냥한 이번 박해를 역사적으로 정교(正敎)가 받은 많은 박해와 비교해보면 무슨 차이가 있는가?

박해의 표현형식은 같지만 대법수련자가 펼쳐낸 자비로운 거동은 오히려 역사적인 모든 표현과는 전혀 다르다. 박해에 반대하는 가운데 대법을 견정하게 수련하고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해 조사정법이란 역사사명을 완수한다. 이런 수련과정은 역사상의 일체 수련과정을 초월한 것으로, 이런 수련과정만이 대법수련자에게 부여된 진실한 수련과정 즉 정법수련(正法修煉)이다.

2006년 ‘션윈(神韵)’ 예술단이 창단되었다. 중화신전문화(中華神傳文化)를 부흥하고 널리 알리는 것을 사명으로 삼아 춤과 노래 기악으로 정통예술형식을 표현해 중화 5천년 신전문화의 정수를 최초로 세계무대에 펼쳐놓았다. 그동안 전 세계 순회공연 중에 수많은 관중들을 불러모았고 가는 곳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관중들이 순선순미(純善純美)한 중화신전문화를 감상할 때 또한 신불(神佛)의 표현을 진실하게 형상화시켜 펼쳐냈고 파룬따파 및 정법수련자의 위대함을 더욱 분명히 밝혔다.

사악이 박해하는 역사는 장차 우주정법(宇宙正法)의 홍대한 기세가 인간세상으로 들어오면서 끝날 것이며 중생 역시 장차 각자 부동한 선택 속에서 부동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다. 사람마음은 장차 반드시 올바르게 돌아갈 것이며 이 천지가 개벽된 이래 만고에도 만나기 힘든 대법수련(大法修煉)의 기연(機緣)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유일무이한 것으로 장차 인류 역사 속에 깊이 각인되어 대대로 전해지며 찬양받을 것이다.

(계속)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118476

정견망

글/ 송명(宋明)

【정견망】

유석도(儒釋道) 삼가(三家)의 사상학설 및 그것이 구체적으로 사회에 표현된 형식인 유석도 삼교(三敎)는 중화신전문명(中華神傳文明)의 주류를 대표하며, 중화 역사의 긴 흐름 속에서 줄곧 공생하면서 또 서로 다투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왔다. 이런 표현들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 한무제의 ‘독존유술(罷黜百家,獨尊儒術 백가를 물리치고 유학만을 존숭하는 것)’ 및 삼무일종(三武一宗)의 ‘멸불(滅佛)’이다.

도가(道家) 사상은 근원이 아주 길고 오래되어 위로 반고(盤古)가 천지를 개벽한 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져져 있다시피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 근원한다.

공자(孔子)의 유가사상은 선진(先秦)시기 ‘백가쟁명(百家爭鳴)’이란 휘황한 시대에 탄생했고 한무제 때 이르러 제왕의 치국요소에 부합했기 때문에 이후 제왕통치의 정통사상이 되었고 2천여 년 간 중국 역대 왕조의 교체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도가와 유가는 자고로 천 갈래 만 갈래로 연계되었고 공자는 또 일찍이 노자를 찾아가 예(禮)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도가와 유가는 대체 어떤 관계일까? 학자들은 흔히 사상이나 학설의 각도에서 다양한 인식이 있을 수 있지만 이 문제는 오직 수련의 각도에서 보아야지만 그 실질을 알 수 있다.

《사기》〈노자한비열전〉에는 노자가 공자에게 한 말이 기록되어 있다.

“그대가 말하는 사람들은 그 육신과 뼈가 모두 이미 썩어버리고 단지 그 말만 남아 있을 뿐이오. 또한 군자는 그 때를 만나면 관직에 나아가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이리저리 날려 다니는 쑥대처럼 굴러다니는 신세가 될 것이오. 내가 듣기에 뛰어난 상인은 물건을 깊이 숨겨두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이 보이고, 군자는 훌륭한 덕을 간직하고 있으나 외모는 어리석게 보인다고 들었소. 그대의 교만한 기색과 탐욕, 태도를 꾸미는 것과 지나친 욕망을 버리도록 하시오. 그런 것들은 모두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오. 내가 그대에게 말할 것은 단지 이것뿐이오.”

이 단락 대화는 얼핏 듣기엔 아주 간단해서 마치 그리 깊은 이해가 필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팔선득도전》에서 여동빈이 한 말이 이 대화에 대한 좋은 주석이 될 것이다.

​“성인 공자(孔子)의 학문은 입세(入世)의 정도(正道)이니 그 말이 평이 하고 인정(人情)에 가깝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범으로 삼을 수 있으며 사람마다 모두 이렇게 되면 천하는 일시적으로 태평해질 것이다. 그러나 영구적이고 항상된 치도(治道)는 아니다. 출세(出世)의 오묘한 뜻에 이르자면 노군(老君 노자)의 《도덕경》 안에 있는데 사람마다 모두 익히면 만년이 지나도 영원히 어지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 이 속의 지극한 이치는 바로 내가 순응하고 복종하는 것이나 지금 사람들은 오히려 홀시하면서 이단의 가르침으로 여긴다. 또 수많은 현문(玄門)의 요지(要旨)가 있으니 도술(道術)의 정종(正宗)이요 모두 인생 최고의 학문이다. 지금 스스로 통달한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은 도리어 천시하고 말하지 않는다. 이는 대도(大道)가 행해지지 않기 때문에 천하가 늘 어지러운 것이다.”

한편,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 대사님은 설법에서 아주 간단하고 명백하게 양자 간의 실질을 언급하셨다.

“유교 수련이 극히 높은 층차에 이르면 그것은 도가에 귀속된다.”[1]

“공자가 말한 것은 사람이 되는 도리이지 수련을 말한 것이 아니다.”[2]

“노자가 말한 것은 수련의 방법이다. 그러나 중국 사람은 실제로 유가사상과 도가사상을 한데로 합쳤다.”[3]

그러므로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역사상 진시황의 ‘분서갱유’나 또 후세 제왕이 도를 숭상하고 부처를 숭상하는 행위가 일시적으로 유교를 억제했다 해도 사실 모두 유가사상 및 유교의 정통을 단절시킬 수는 없었다. 비록 역사적으로 발생한 이민족이 한족(漢族) 국가를 침입한 몇 차례 시기에도 결국에는 모두 유가 정통사상의 영향을 받아 이민족의 문화를 융합시켰다.

중국 불교는 역사상 4차례 큰 법난(法難)이 있었다. 북위(北魏) 태무제(太武帝)의 폐불(廢佛) 6년은 문성제(文成帝)가 제위를 잇자마자 불법을 회복시키라는 조서를 내렸다. 북주(北周) 무제의 멸불(滅佛) 5년은 선제(宣帝)・정제(靜帝)가 뒤를 이운 후 다시 불법이 흥성해졌다. 당나라 무종(武宗) 회창(會昌) 연간의 6년 멸불은 선종(宣宗)이 즉위하자마자 불교가 다시 부흥했다. 후주(後周) 세종(世宗)의 멸불 4년은 송나라가 주(周)를 대신해 일어난 후 불교가 다시 부흥했다.

이렇게 몇 차례 불교의 법난을 둘러보면 이미 불도(佛道)가 서로 다투는 요소가 있었다. 가령 북위 태무제나 당 무종은 도(道)를 좋아했고 북주 무종은 불교와 도교를 억제하고 오직 유가만을 존중했다. 주 세종은 대체적으로 황로학(黃老學)에 통달했다.

하지만 수련의 각도에 서서 보자면 이 역시 후세인들에게 정법에 대한 박해는 필연적으로 박해자에게 악보를 가져다준다는 반면(反面) 교훈을 남겨준 것이다. 4차례 멸불은 짧으면 4년에서 길어도 6년을 넘지 못했고 불교는 늘 박해를 주도한 사람이 사망한 후 아주 신속하게 부활했다. 이는 표면적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것을 말하자면 소멸시킨 것은 사실 종교의 형식에 불과한 것으로 사찰을 파괴하고 승려를 환속시키는 등이다. 불법(佛法) 자체는 세속의 수단으로 소멸시킬 수 없었다. 중국 역사상 불교의 이런 전승과정은 사실 후인들에게 오늘날 정법(正法)을 인식할 수 있도록 참고로 남겨준 것이다.

또 다른 각도에서 말하자면 사실 도교와 불교는 세인들이 잘 아는 수련의 2가지 형식에 불과할 뿐이다. 불교는 8만 4천 법문이 있다고 하는데 모두 부처 수련을 할 수 있고 도교에서는 3천 6백 법문을 말하는데 모두 도(道)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민간에는 부동한 층차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또 다른 수련형식이 줄곧 존재해 왔으며 역조(歷朝)역대(歷代)로 단절된 적이 없었다.

고대의 수련인들은 세간 일에 관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세간 일 역시 그들의 신상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수련이야기는 오히려 줄곧 민간에 존재해왔고 부동한 층차에서 구두로 전해지거나 또는 비밀스런 방식으로 유전해 내려왔으며 또한 세인들의 연역(演繹)을 거쳐 신화나 민간전설로 형성되었다.

중국인들은 내심 깊은 곳에 모두 부처를 향하고 도(道)를 향하는 뿌리 깊은 마음이 있으니 이는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유전되며 끊이지 않고 전승해 온 신전문화(神傳文化)에 근원한다. 그러나 최근 1백년간 무신론을 선양하는 공산사당(共產邪黨)이 중화 대지에서 멋대로 잔학한 짓을 일삼으며 중국인들이 생존과 발전을 유지해온 신전문화를 전면적으로 파괴했다. 아울러 이를 통해 중국인들에게 심각한 재난을 가져다주었다.

이 방면에 관해서는 《구평공산당(九評共產黨)》에서 이미 전면적이고 깊이 있게 논단하고 있으니 이곳에서 부연하진 않겠다.

그렇다면 이렇게 유석도 삼교를 모두 소멸시키고 오로지 마르크스레닌주의만을 독존(獨尊)하면서 중화신전문화의 전승은 진정으로 단절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바로 이때 1992년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이 불가(佛家)의 기점 위에서 우주근본대법을 전하고 ‘진선인(真善忍)’ 우주 최고특성을 전하여 전승이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던 중화신전문화에 새로운 생기(生機)를 넣어주셨고 또한 중생들에게 생명이 진정으로 구도 받을 수 있는 희망을 가져다주셨다.

하지만 우주 중의 낡고 패괴(敗壞)된 생명들은 고집스레 정법(正法)에 대해 소위 고험을 진행한다면서 인간세상의 중공사당을 조종해 유사이래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거대한 겁난(劫難)을 발동시켰다. 이 겁난은 단지 중국인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법을 위해 온 모든 중생을 겨냥한 거대한 난이었다.

이번 박해는 1999년 7월 20일부터 지금까지 줄곧 지속되고 있으며 그것은 중국사회의 도덕과 양지(良知)를 훼멸한 재난적인 것이자 또한 직접적으로 사회를 전면적으로 패괴되게 했다. 또한 국제사회에 대한 영향 역시 다방면이었고 아울러 이미 인류 도덕과 양지의 마지노선을 뛰어넘은 것이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불법(佛法)이니 중공사당이 제아무리 창궐할지라도 사람이 불법을 박해할 수는 없는 것이며, 파룬따파 수련자들이 그 어떤 잔혹한 박해를 받았을지라도 그들은 모두 신(神)의 길 위에서 걷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번 박해의 진정한 박해대상은 사실 세인들이며 세인들이 이번 박해를 추종하거나・마비되거나・무시하면서 진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자신의 생명에 진정한 위기를 가려다줄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역사적으로 정법을 박해한 모든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파룬궁 수련자들을 겨냥한 이번 박해는 장차 더는 지탱할 방법이 없는 가운데 끝장날 것이며 박해 원흉과 악의 우두머리들은 반드시 마땅히 있어야 보응을 받으며 퇴장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의 마음은 장차 선(善)으로 돌아갈 것이며, 대법 수련자들은 조사정법(助師正法)과 중생구도라는 자신들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고 원만해서 본래 위치로 되돌아갈 것이다. 신불(神佛)이 크게 나타나면서 역사는 또 신기원(新紀元)으로 들어갈 것이며 아울러 ‘진선인(真善忍)’ 우주대법의 인도 하에 미래 인류에 속할 새로운 신전문화를 개창해줄 것이다.

(계속)

주:
[1] 리훙쯔 선생님 저서 《전법륜》〈제5강〉
[2] 리훙쯔 선생님 저서 《전법륜 2》〈사람을 제도함에 설법하지 연출을 하지 않는다〉
[3] 리훙쯔 선생님 저서 《전법륜 2》〈도(道)를 닦지 않아도 이미 도(道) 속에 있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118475

정견망

글/ 송명(宋明)

【정견망】

중국인들은 예부터 신주(神州)라 불린 이 땅 위에서 번성하고 대를 이어 전승해가면서 5천 년간 휘황찬란한 중화신전문명(中華神傳文明)을 창조했다. 지금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자신의 역사를 돌아볼 때면 사서(史書)에서 우리가 볼 수 있다시피, 특히 최근 2천여 년간 조대(朝代)가 어떻게 교체되고, 세상일이 어떻게 변천했든, 화하(華夏)문명은 경탄스러울 정도로 완정하고 연속적이며 풍부하고 다원적인 형식으로 전승해 내려왔다.

비록 역사의 장하(長河) 속에서 때로 잃어버린 것도 있었지만 문자기록, 역사유적, 음악이나 회화, 건축과 복식, 민간전설 등의 방면에서 우리의 뼛속 내심 깊은 곳에 문화 내함(內涵)이 스며들었고 오늘날 중국인들이 여전히 중화신전문화에 대해 높이 우러러보고 동경하며 자부심을 갖게 한다.

신전문화의 핵심인 수련문화(修煉文化) 역시 대대로 전승되어 중국인들의 다양한 각종 생활방면에 영향을 끼친 것은 물론이고 내심의 정신세계에 훨씬 깊은 영향을 끼쳤다.

선진(先秦 진나라 이전) 시기의 중국은 사람이 신(神)과 함께 하는 시기였으나 점차 예악(禮樂)이 붕괴되고 도덕이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신에 대한 바른 믿음이 사라져버렸다. 신(神) 역시 더는 쉽게 드러낼 수 없게 되었고 세인들 역시 신을 찾기 위해 보다 많은 노력을 들여야 했다.

때문에 우리가 역사 속에서 진시황(秦始皇)・한무제(漢武帝) 두 제왕은 신선의 약초를 구하기 위해 사람을 파견했다는 황당한 이야기에서 볼 수 있다시피 위에서 하면 아래에서 무조건 추종하는 도(道)를 추구하는 분위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후한 명제(明帝) 때 불교가 중국에 들어왔는데, 《위서(魏書)·석로지(釋老志)》에는 명제가 꿈에 금인(金人)을 보고 사신을 파견해 부처를 찾게 했고 나중에 낙양에 백마사를 건립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중국 불교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한 순제(順帝) 때 장도릉(張道陵)은 또 오두미교(五斗米敎)를 창립했으니 중국 본토의 도교(道敎)는 여기서부터 흥성했다.

삼국시대에는 또 도인양성술(導引養性術)이 있어서 많은 사대부들 사이에 큰 유행이 되었다. 위진(魏晉)시기에는 자연을 숭상하고 청담(淸淡)을 좋아해 선비들이 오석산(五石散 역주: 5가지 돌을 재료로 만든 가루약으로 주로 연단에 사용됨)을 즐겨 먹었고 도가 외단술(外丹術)의 기원이 되었다.

남북조(南北朝) 시기에는 불교가 번창해서 오늘날의 돈황, 용문, 운강 마애석굴에 새겨진 조상(造像)을 보면 당시 불교가 얼마나 성대했는지 알 수 있다. 소위 ‘남조(南朝) 680사’란 말이 있었으니 남조에만 큰 절이 680개나 있어 당시 불교를 믿는 백성들이 아주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달마가 서쪽에서 와서 선종(禪宗)을 창립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당대(唐代)는 중화신전문명의 전성시기이자 포용하는 도량이 커서 불도(佛道) 양대교(兩大敎) 모두 크게 발전했다. 황족이나 사대부는 물론이고 일반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부처를 믿고 도를 믿는 분위기가 크게 성했다. 당나라 현장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는 진짜 경전을 구해온 공(功)을 말했고 특히 당태종이 직접 쓴 서문은 정교(正敎)의 덕(德)을 널리 드러냈다. 또 이 시기에 《추배도(推背圖)》 예언이 세상에 전해졌고 손사막(孫思邈)과 같은 약왕(藥王)이 있었으며 해와 달 및 뭇별이 빛을 내듯이 각자의 장점을 드러냈다.

송나라 태조는 화산(華山)에서 진단(陳摶)이란 도사를 만났고 금나라 때의 도사 구처기(丘處機)는 새외에서 칭기즈칸을 만났으니 도교가 흥성할 때였다. 아울러 명조(明朝)에서는 또 한 번 도교가 정상에 올랐으니 지금 사람들이 잘 아는 태극권은 명대 도사 장삼풍(張三豐)이 전한 것이다.

청대(淸代)에 이르러 불교, 특히 티베트 불교가 큰 발전을 보이며 전파되었다. 강희제의 부친인 순치제(順治帝)는 젊은 나이에 제위를 버리고 출가해 승려가 되었고 강건성세(康乾盛世 역주: 청나라 강희제에서 건륭제에 이르는 시기)는 당나라 태종의 정관(貞觀)성세나 현종의 개원(開元)성세와 비교할 수 있는 중국 역사상 최후의 태평성세였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설명해야 할 것은 종교 자체는 수련이 아니며 신불(神佛) 역시 종교 형식은 중시하지 않고 오직 사람 마음만 본다는 점이다. 물론 종교 중에서, 특히 원시 불교나 도교 중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종교라는 수련형식을 통해 공을 이뤘지만 근대에 이르러, 특히 중공이 나라를 훔치고 정권을 잡은 이후로는 종교의 부패상이 잇따라 드러났고 종교는 더 이상 수련인이 깨끗하게 닦는 곳이 아니다.

그렇다면 역사상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련을 했을까? 이 숫자를 따지는 것은 사실 오늘날 사람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여기서는 일단 선진(先秦) 시기는 논외로 하고, 그것도 우리가 잘 아는 역사인물에 국한해서 말해보자.

진(秦)나라 이후 누구에게나 익숙한 서한 초기 개국공신 삼인방(역주: 한신, 소하, 장량) 중에서 장량(張良)은 결국 도를 닦으러 떠났다. 앞서 언급한 장도릉은 바로 장량의 8대손이자 중국 도교의 창시인이다.

제갈량 역시 도가 인물로 《마전과(馬前課)》란 예언을 남겼다. 위진 시기 죽림칠현(竹林七賢)으로 유명한 혜강(嵇康)은 도인술(導引之術)에 능했다. 당나라의 대 시인 중 청련거사(青蓮居士) 이백은 도를 좋아한 도사였고 향산거사(香山居士) 백거이는 부처수련을 좋아했으며 왕유(王維)는 호가 마힐(摩詰)거사일 정도로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송대의 소옹(邵雍 소강절)은 역수(易數)를 깊이 연구해 하늘과 사람을 연구했으며 미래를 예지할 수 있었다. 《매화시(梅花詩)》는 바로 그가 남겨놓은 예언이다. 명나라의 유백온(劉伯溫)은 태조 주원장이 천하를 차지하는 것을 도왔고 또한 후세를 겨냥해 《소병가(燒餅歌)》와 《금릉탑비문(金陵塔碑文)》 등의 예언을 남겨놓았다. 역사적으로 불교의 고승대덕은 셀 수 없이 많았으면 후인들에게 4부의 《고승전(高僧傳)》을 남겨놓았다.

이상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 외에도 다양한 업종마다 수많은 인물들이 존재한다. 어떤 이는 늘 우리 귀에 익숙하고 또 어떤 이는 그 생애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설속에 유전된 인물도 있다.

가령 목장(木匠)의 조사(祖師)라 할 수 있는 노반(魯班)은 전설에 따르면 하늘을 나는 나무새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또 그림의 성인인 화성(畫聖)으로 불리는 오도자(吳道子)는 그림이 실물과 너무나도 똑같이 닮았고 또 그의 화풍을 가리켜 오대당풍(吳帶當風)이라 불리는 여예를 누렸다. 신불(神佛)의 두광(頭光)을 단번에 한 붓으로 그려내도 모습이 아주 생생했다.

또 음악의 성인인 악성(樂聖)으로 불리는 사광(師曠)은 그가 ‘청치(清徵)’를 연주하면 검은 학이 내려와서 대열을 이뤄 춤을 추웠고 ‘청각(淸角)’을 연주하면 비바람이 몰아쳐 휘장을 찢고 기와까지 날라 갔다고 한다.

또 유명한 의사 편작과 화타는 세상에서 신의(神醫)로 불렸다.

이외에 손빈(孫矉), 방연(龐涓), 소진(蘇秦), 장의(張儀), 모수(毛遂), 서복(徐福) 등의 제자를 배출한 귀곡자(鬼谷子)는 민간에서 왕선노조(王禪老祖)로 불리는데 풍수지리의 조사로 불린다.

이원행(梨園行 역주: 현종이 만든 일종의 종합예술단)의 조사라 할 수 있는 명황(明皇) 당현종(唐玄宗)과 양귀비의 뜨거운 사랑이야기는 백거이의 손을 거쳐 《장한가(長恨歌)》로 불리며 천년이 넘게 전해지고 있는데 이 역시 신선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또한 중국 각지에 널리 퍼진 역사문화유적이나 고대의 건축예술, 고대 불교 조상, 가령 돈황 막고굴(莫高窟)의 비천(飛天)선녀와 같은 수많은 마애석굴의 조상들은 장인들의 정교한 공예를 반영하지 않음이 없다. 소위 ‘기예는 도에 가깝다(技近乎道)’고 하는데 다시 말해 신불(神佛)에 대한 바른 믿음으로부터 걸출한 예술적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학생을 유생(儒生)이라고 불렀는데, 수업 전에 모두 가부좌하여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을 조용히 한 후에야 책을 보았다. 과거에는 이랬는데, 옛날 중국의 각 분야에서는 거의 다 호흡을 조절하고 마음을 조용히 함을 중시했다. 이런 상태에서 평소에 하지 못하는 많고도 많은 일들을 해내게 되었는데, 이는 바로 기공 수련과 아주 근접한 것이다. 옛 중국인의 사상관념 속에는 줄곧 이런 문화가 관통하고 있었다.”(《싱가포르 불학회 설립식 설법》)

13세기 말부터 시작해 16세기에 흥성한 르네상스 시기에 유럽에서는 단테,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으로 대표되는 뛰어난 인물들이 용솟음치듯이 나타나 오늘날 인류문명에 전해지는 불후의 걸작들을 창조해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경건한 정교(正敎) 신도였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근대에 들어와 서양에서 건너온 공산사령(共產邪靈)의 통제 하에서 무신론을 선양하는 공산사당이 중화신전문화에 대해 약 1세기에 가까운 전면적이고 훼멸적인 파괴와 중국인들의 육체와 정신에 잔혹한 박해를 가한 후 중화신전문화는 전승이 거의 단절될 지경에 이르렀다.

다행스러운 점은 파룬궁(法輪功 또는 파룬따파라고도 한다)이 전해져 나와 중화신전문명의 부흥을 위한 진정한 희망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역사가 곧 이 한 페이지를 넘길 때면 모든 중국인들은 반드시 선택에 직면해야 한다. 염황(炎黃 신농과 황제)의 전인(傳人)이 될 것인가 아니면 마르크스레닌의 자손이 될 것인가? 또한 모든 사람이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 대체 이 모든 비극의 근원은 무엇인가? 중공의 사악한 박해는 왜 중화대지 위에서 오늘날까지 자행되고 있는가?

또한 이를 통해 사람과 신불(神佛)・천지・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새롭게 수립해야 하며 더 나아가 우리가 대대로 전승할 만한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찾아내야만 한다.

현재 세계 순회공연을 펼치고 있는 션윈(神韵) 예술단의 성대한 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션윈이 펼쳐낸 중화5천년 신전문화의 정수에 감동하지 않는 이가 없다. 마치 신불이 직접 인간 세상에 강림한 것처럼 보이는 생생한 스크린과 순선(純善)순미(純美)한 예술표현이 세인들을 감동시켰고, 사람들 역시 점차적으로 이는 신불(神佛)의 회귀이자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간절히 고대해왔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계속)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118474

정견망

글/ 송명(宋明)

【정견망】

기억이 인생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이라면 사서(史書)란 한 민족문명을 전달하는 매체가 된다. 그러나 고달픈 인생은 불과 백년을 넘지 못하고 또 어릴 때 직접 경험한 것도 나이가 들면 모두 다 기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상하 5천년이란 유유한 세월이 흘렀음에랴!

중국은 세계적으로 신뢰할만한 역사기록이 가장 길고 또 가장 완벽한 나라로 휘황한 25사(史)에는 약 오천년에 달하는 중화신전문명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사서 역시 중화민족의 모든 문화를 다 담아낼 수는 없는데 특히나 진(秦)나라 이후 3천년에 이르는 역사가 그렀다. 오늘날 후인(後人)들은 사서에서 볼 수 있는 단편적인 말들은 당시 사회의 극히 일부 편린(片鱗)만을 엿볼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정사(正史) 외에 또 야사(野史)가 있고 종교서적이나 민간전설 이야기가 있는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역사적 사실과 일화들 및 이를 바탕으로 창작된 시사(詩詞), 곡부(曲賦), 소품(小品), 전기, 우언, 소설 등의 문예작품들이 있다. 이것은 중화민족이 다른 생활예술 부문에서 창조한 문화와 함께 공동으로 후인들에게 풍부하고 다원적으로 신전문화(神傳文化)의 나라인 화하신주(華夏神州)를 드러내준다.

그렇다면 고인들은 왜 이런 기록들을 남겨놓았을까? 아울러 세계적으로 다른 민족이나 문명에 비교해서, 중국의 고인들은 왜 이렇게 많은 기록을 남겨놓았을까? 이는 아주 많은 학자들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다. 문장이란 도(道)를 싣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데 그것은 바로 후인들에게 남겨 보여주는 것으로 특히 오늘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을 보여주는가? 역사상 어떤 일들이 발생했는가, 부동(不同)한 문화와 어휘 부동한 관념이 표현하는 내함(內涵)은 무엇인가, 고인들은 부동한 일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가, 어떤 것이 정면적인 교훈이고 어떤 것이 반면적인 경고인가, 또 어떤 것이 의미 있는 예언인가 등등이다. 이런 문화는 후인들의 사상을 풍요롭게 만듦과 아울러 은연중에 사람의 부동한 관념과 구체적인 행동을 형성하게 하는데 다시 말해 후인들이 참조할 수 있는 하나의 번영한 문명을 남겨주었다.

또 다른 각도에서 말하자면 사람은 쉽게 망각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일깨워줄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사람은 또 끊임없이 같은 문제에 직면해 계속해서 똑같은 잘못을 저질러왔다. 그렇다면 역사의 존재가 후인들에게 주는 계시 역시 다방면일 것이다. 당태종은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흥망성쇠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부동한 사람에 대해 부동한 각도에서 부동한 계발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는 그중에서도 신화전설만을 말해보자.

신화전설은 정사(正史)에서는 보기 드물고 주로 야사나 민간고사 또는 소설작품에서 볼 수 있다. 사실 이는 신(神)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세상은 신계(神界)가 아니라서 믿는가 믿지 않는가? 깨달을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양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은 바로 미혹의 고생 속에 있기 때문에 비로소 수련할 수 있고 비로소 신불(神佛)이 사람을 위해 수련의 길이란 한 가닥 천기(天機)를 남겨놓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신불은 무엇인가? 무엇이 수련인가? 수련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수련은 어떠한가? 어떤 사람이 수련을 하는가? 등등 이런 것들은 과거 수련계에서 비밀리에 전수한 천기에 속했고 쉽사리 알려주거나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쉽게 얻으면 또 쉽사리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이에 신화전설이란 이런 방식으로 펼쳐내 후인들에게 남겨준 것인데,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동시에 또한 사람이 신불을 인식하고 수련의 문화를 인식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져준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바로 《서유기》, 《봉신연의》, 《팔선득도전(八仙得道傳)》이 그것이다.

이 세 부의 신화소설은 명청(明淸) 시대에 잇따라 창작되었는데 《서유기》 저자 오승은(吳承恩)의 생평을 고찰할 수 있는 것 외에 《봉신연의》를 쓴 허중림(許仲琳)이나 《팔선득도전》의 작가 무구도인(無垢道人)에 대해서는 알려지거나 고찰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실정이다. 사실 수련의 각도에서 인식하자면 이 세 부의 소설은 모두 수련인이 쓴 것이다.

오승은은 자호(自號)가 사양산인(射陽山人)이고 허중림은 자호가 종산일수(鐘山逸叟)이며 무구도인은 직접적으로 자신이 도인이라고 했고 또한 자서(自序)에서도 자신을 어려서부터 성도(成都) 청운관(青雲觀)에서 출가 수행했고 28년 만에 성취가 있었다고 했다. 이 《팔선득도전》은 바로 유가의 계몽교재와 마찬가지로 후인들에게 수련에 입문하는 참고로 남겨준 것이다.

《서유기》는 하나의 완전하고 살아 숨 쉬는 불가(佛家)의 수련과정을 표현한다. 그중 수많은 어휘들이 모두 오늘날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면서도 잘 모르는 것인데 사실 모두 수련과 연원이 있다. 예를 들면 심원의마(心猿意馬 역주: 마음은 원숭이 같고, 뜻은 말이 날뛰는 것과 같다는 뜻)나 영대방촌(靈臺方寸 역주: 역시 마음을 의미), 사월삼심(斜月三心 역주: 마음 心 글자를 파자한 것으로 역시 마음을 의미)이 반영하는 것은 모두 수련에서 심성(心性)을 중시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또한 당승 사도 4인이 구구팔십일난을 거치면서 경전을 얻어 오는데 성공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이 자리잡았다. 저팔계의 법명은 오능(悟能)이고 사화상은 오정(悟淨)이며 손행자는 오공(悟空)이고 당현장은 법명이 삼장이다. 이들이 경전을 얻어오는데 성공해 수련에서 과위를 증득한 이야기가 아주 생동감 있게 수련의 부동한 표준 및 표현을 드러냈다. 또한 후인들에게 하나의 광활한 신불의 세계를 펼쳐 보여주었다.

《봉신연의》는 후인들에게 최소한 주(周)나라 개국 무렵 중국에서는 아직 사람과 신(神)이 함께 하는 시기였음을 알려준다. 연의 속에 표현된 다양한 전고들, 가령 강태공이 곧은 낚시바늘로 사람을 낡길 기다리고, 문왕이 유리옥에 감금되어 주역을 연구하고, 신선들이 겁난을 겪으면서 겁난을 위해 출산하거나 천운에 따라 태어나는 등등 부동한 각도에서 부동한 수련의 내함을 반영한다. 아울러 사람들 역시 소설의 생동감 있는 묘사를 통해 도가(道家) 신선체계의 개념을 완정하게 세울 수 있었다.

《팔선득도전》은 멀리 대우(大禹)가 물을 다스릴 때부터 시작해 중국인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팔선(八仙)이 도(道)를 얻은 이야기들을 서술한다. 가장 먼저 하나라와 상나라 교체기에 도를 얻은 철괴리(鐵拐李)에서 부터 송나라 때 마지막으로 도를 얻은 조국구(曹國舅)에 이르기까지 몇천 년의 문화를 관통한다.

팔선은 각각 남녀(男女)・노소(老少)・부귀(富貴)・빈천(貧賤)을 대표하는데 후인들에게 수련이란 성별이나 연령, 직업이나 사회계층은 가리지 않고 오직 사람마음만 본다는 것을 생생하게 알려준다. 아울러 몇천 년을 관통하는 이런 신화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또 중국인들에게 익숙한 두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고, 맹강녀가 남편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항아가 달나라로 날아가고, 동방삭이 반도(蟠桃)를 훔쳐오고, 비장방(費長房)이 귀신을 잡고, 백낭자(白娘子)가 금산(金山)을 물바다로 만들고, 개가 여동빈을 물고, 왕태(王泰)가 산을 갈라 모친을 구하고, 한상자(韓湘子)가 9번에 걸쳐 한유(韓愈)를 제도하는 등 널리 인구에 회자되는 일화들 및 맹파탕(孟婆湯), 소라껍질 안에 도장(道場)을 만든 이야기나 잉어가 용문을 뛰어오르고 전당강의 한사리 등의 전고와 기이한 경관의 내력 및 수련의 연원을 말한다. 이 역시 다른 한 방면에서 신전문화가 진실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예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신화소설이 유전되었는지 막론하고, 믿는 자는 늘 믿고 믿지 않는 자는 관념을 바꾸기가 아주 어렵다. 사실 사람은 각기 자신의 뜻이 있기에 종래로 억지로 수련을 추구한다는 그런 설이 없었다. 단지 사람은 신(神)이 만든 것이고 사람은 또 내원이 있는 것이라, 수련의 각도에 입각해 사람이 이런 미혹의 홍진(紅塵) 속에서 계속해서 아래로 가라앉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자비심에서 우러나와 선을 권할 따름이다. 이를 통해 사람의 선념(善念)을 보존할 수 있다면 장차 기연(機緣)을 남겨놓을 수 있다. 신화소설 중에서는 대부분 이런 관점을 표현한다.

사실 신불(神佛)에 대한 바른 믿음과 사회전체의 도덕수준은 서로 연관되는데 사회전체의 도덕수준이 높을수록 사람은 더욱 신불을 믿으며 신불 역시 더 많이 드러낼 수 있다. 반대로 도덕수준이 저하될수록 사람 역시 더욱 더 신불을 믿지 못하고 신불 역시 드러내기가 더욱 쉽지 않으며 수련 역시 더욱 어려워진다.

하지만 현재 신화전설은 이미 한가로운 주제로 전락했고 사람들이 신불을 언급하면서 존경의 뜻을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이 역시 사회전체의 도덕이 패괴(敗壞)된 후의 표현이다.

“관리들이 나라살림은 돌보지 않고 오직 뇌물만 압니다. 공공연히 뇌물을 주니 한밤중에 몰래 선물을 줄 필요도 없습니다. 마치 귀혼(鬼魂)이 밥과 국을 빼앗아가는 상황입니다. 일반 백성들도 효도(孝道)는 없앨 수 있지만 음란한 풍속은 이끌 수 있습니다. 오직 자신에게 이롭기만 하면 예의염치 따위는 따지지도 않습니다.

또한 귀신이 무심한 것처럼 제멋대로 나쁜 일을 저지르고 남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런 귀신의 마음, 귀신의 술책과 귀신의 지혜는 장차 반드시 산사람들에게 전해질 겁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과 귀신의 구별이 없어지고 대우주(大宇宙)가 진실로 귀신의 세계가 될 것이니 이는 모두 장래의 일입니다. 빈도(貧道)가 살펴보건대 대략 지금으로부터 1천5백년 안에 이런 상황이 될 것입니다.”

이상은 《팔선득도전》 제80회에서 장과로가 한 예언으로 후인들을 일깨워주는 경고가 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역사는 오늘에 이르렀고 사람들은 마치 신불에서 이미 아주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이때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신불(神佛)은 이미 인간 세상에 있다고 알려준다면 어떤 이는 아주 격동해서 마치 마음이 탁 트이고 오래전에 심어놓은 기연과 연결되는 것처럼 여길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아무런 느낌도 없고 선(善)을 권하는 것을 보고도 못본 체 한다. 어떤 이는 아마 크게 웃고 비웃으며 무지한 미신이라고 배척할 것이다.

역사는 또 장차 이 모든 것을 충실히 기록할 것이며 장차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위대함과 정법시기 신화전설을 영원토록 이야기할 것이다.

(계속)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118473


정견망

글/ 송명(宋明)

【정견망】

사람이 살면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마땅히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이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수한 사람들이 제기하고 사색해왔고 더욱이 무수한 이야기들을 연기해왔다. 어떤 이는 드높은 기세로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자신의 소임으로 삼고, 어떤 이는 청빈(淸貧)하게 분수를 지키면서 농사짓고 독서하며 대대로 전했고, 어떤 이는 사치와 욕망을 추구하다가 좋지 않은 결말을 맞았고, 어떤 이는 표연히 속세를 벗어나 우화등선(羽化登仙)했다.

인간의 욕망은 명예・이익・정 세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데 제왕(帝王) 특히 고대의 제왕은 마치 최대한도로 인간의 욕망을 누린 사람처럼 보인다. 소위 “온천하가 왕의 영토가 아닌 곳이 없고 온 세상에 왕의 신하가 아닌 이가 없다”는 것이다. 제왕은 천하를 소유하고 또한 이미 인간세상에서 권력의 정점에 서있는데 그럼 이 일보에 이르러 그들이 여전히 추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중국 역대 왕조의 황제들은 모두 ‘천자(天子)’라고 불렸는데 천하에 임금으로 군림해 제(帝)라고 불렸다. 군권(君權)은 신(神)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으로 자신이 하늘을 대신해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을 표시한다. 다시 말해 황제 역시 가장 높은 존재가 아니며 제왕 위에는 또 천제(天帝)・신선(神仙)이 있다. 전설에 나오는 신선은 장생불로하기에 제왕이 만세(萬歲)만대(萬代)토록 영원불변하게 제왕의 권세를 추구하려는 망상의 대상이 되었다.

진시황(秦始皇)이 방사를 파견해 선약(仙藥)을 구해오게 했고 한무제(漢武帝)가 동방삭에게 명령해 반도(蟠桃)를 따오게 한 일들은 모두 정사(正史)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울러 그들이 이렇게 한 자체가 옳고 그른지 여부는 막론하고, 사실 제왕 역시 수중의 권력을 이용해 신(神)을 찾으려 노력한 것이다. 단지 이런 노력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당신이 제왕이라고 하여 상응하는 요구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이 입증하다시피 제왕의 이런 노력은 종종 엉뚱한 결과를 낳는 헛수고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들의 실패경험에는 또 정면(正面)적인 의미도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인간세상의 욕망은 사람이 집착하고 추구해야 할 가치 있는 목표가 아니란 것이다.

제왕의 수련 이야기를 말한다면, 역사적으로 양무제(梁武帝)처럼 재위 시 대대적으로 불사(佛事)를 일으키고 지존한 제왕의 신분으로 출가한 인물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사(政事)를 황폐화시켰고 나중에 후경(侯景)의 난 속에 굶어죽어야 했다. 일찍이 양무제는 또 달마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는 사찰을 짓고 승려에게 보시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공덕이 있는지 물었다. 달마는 아무런 공덕이 없다고 대답했다. 양무제의 의기양양한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았고 또 대화가 통하지 않자 달마는 또 강을 건너 떠나버렸다. 애석하게도 양무제는 불심(佛心)이 아주 깊었지만 오히려 수련을 이해하지 못했고 때문에 불법(佛法)을 스쳐지나가고 말았다.

명나라의 가정(嘉靖)황제는 도교를 숭상해 단을 연마해 장생을 추구하고자 했으나 역시 수련을 이해하지 못하여 많은 어리석은 일들을 저질렀다. 더욱이 자신을 무슨 진인(真人)이니 진군(真君)이니 선옹(仙翁)라고 칭했고 심지어 제군(帝君)의 도호(道號)까지 자칭해 천고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명나라 역시 가정제 이후 패망의 길로 나아간다.

제왕이 부처를 구하고 도(道)를 구하다 웃음거리가 된 사례는 이외에도 적지 않다. 한편으로는 사실 제왕 역시 일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욕구가 있음을 표현한다. 그렇다면 수련에 대해 말하자면, 수련의 표준 역시 사회계층의 높낮이에 따라 바뀔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수련은 오직 사람마음만 본다고 하는 것이다.

둘째로 제왕들이 왜 잇따라 이런 일을 하게 되는가? 사람마다 모두 불도(佛道)를 추구하는 마음이 있는 것 외에 제왕은 모종의 의미에서 말하자면 명리정(名利情)에 대한 걱정을 훨씬 쉽게 포기하고 수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고귀한 제왕의 신분이라 일반 백성들이 모르는 많은 일들을 쉽게 알 수 있고 특히 수련계의 일에 대해서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제왕이 끊이지 않고 수련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 중 일원이 된 것은, 다시 말해 수련과 사람의 연원관계 및 진법(真法)과 대도(大道)에 대한 동경을 말하고 이것이 얻기 힘든 것을 말한다.

또한 그들의 황당한 이야기 역시 이후 수련자들에게 경계가 되고 이 역시 신전수련문화(神傳修煉文化)의 일부분이다. 정면(正面)적인 것도 있고 반면(反面)적인 것도 있으며, 성공한 이도 있고 실패한 이도 있으니, 한 막 한 막 풍부한 이야기들이 마치 연극처럼 후인들이 보도록 펼쳐지는데 특히 오늘날 사람들이 보도로 남겨진 것이다.

물론 정면적으로 표현된 제왕도 있으니, 정법(正法)을 구하기 위해 왕위나 제위마저도 버린 경우도 있다. 석가모니는 출가 전에 고귀한 왕자였고 청나라 순치제는 황위를 포기하고 불법(佛法)을 닦았다. 역사적으로 공인된 명군인 한문제, 당태종, 강희제 등도 재위 기간에 백성들을 위해 근면히 정사를 돌보는 황제의 신분 외에도 또 예외 없이 정법(正法)종교(宗敎)에 대한 포용과 지지 및 긍정을 나타냈으며 자연히 국태민안의 태평성세가 되었다.

황제로서 좋은 황제가 되는 것은 그의 본분이다. 또 좋은 황제인 동시에 수련해서 신선이 되고 부처가 되는 것은 마치 두 가지를 병립하기 힘든 것처럼 보인다. 역사적으로 황제(黃帝)가 천하를 잘 다스린 후 하늘에 올라가 신선이 된 일이 후대 제왕 중에는 더 이상 나타나기 힘들었다. 제왕의 위에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푸른 하늘(靑天)로 올라가는 것이다.

도가(道家) 전적 중에 종종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수련의 길에 비유한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제왕만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이다. 노자의 《도덕경》 5천자와 장자의 〈응제왕(應帝王)〉과 같은 편은 표면적으로는 직접 나라를 다스리는 왕도(王道)를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모두 어떻게 수련할 것인가를 말한 것이다. 단지 보고도 이해하는 이가 많지 않을 뿐이다.

2011년 션윈(神韵) 합창음악회에서 발표된 《인생은 무엇을 위해》란 가곡은 천백 년간 사람들이 고생스레 찾아온 그 답안에 대해 말한다.

인생 백년 누구를 위해 바쁜가
명리친정(名利親情)에 애간장 태우누나
연극이 끝나가는데 누가 나인가
창천은 말이 없고 아득하기만 하여라
주위에 대법이 널리 전해지니
진상을 알고 방향을 바로잡네
깨어난 중생들 선악을 분명히 하니
자아를 찾아 천당(天堂)으로 돌아가네

(《홍음 3》〈인생은 무엇을 위해〉)

파룬따파(法輪大法)는 바로 당신과 나 우리 옆에 있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118472

정견망

글/ 송명(宋明)

【정견망】

오늘날의 중국인들은 많든 적든 수련의 다양한 형식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데 가령 출가해서 도를 닦는 도사나 출가 수행하는 승려들이다. 이외에도 몇 가지 신화소설 속의 이야기들을 다 아는데 예를 들면 ‘팔선과해(八仙過海)’나 ‘서천취경(西天取經)’ 등이다.

다시 말해 불도신(佛道神) 및 수련의 개념에 대해 오늘날 사람들이 믿든 믿지 않든 모두 들어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 많은 운운중생(芸芸眾生) 중에서 대체 어떤 사람만이 문을 열고 들어와 수련의 길에 들어설 수 있는가? 또는 신불(神佛)은 대체 어떤 사람을 선택해 제자로 삼는 걸까?

《삼국연의》 제68회에서 “좌자(左慈)가 조조를 희롱한” 수련신화 이야기가 나온다. 좌자가 아미산에서 30년간 도를 배우고 3권의 천서(天書) 얻었다. 그는 조조와 인연이 있어 그에게 수행을 권고하러 가서는 이렇게 권한다.

“대왕께서는 신하로서 최고의 지위에 오르셨는데 왜 물러나지 않으십니까? 빈도(貧道)와 함께 아미산에 들어가 수행하시죠? 3권의 천서를 전수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조조는 권력에 미련이 남아 그의 말을 믿고 배우려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좌자를 해치려고 했다. 나중에 좌자가 여러 차례 점화해주었지만 어떻게 해도 결국에는 깨닫지 못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팔선득도전(八仙得道傳)》 제95회와 96회에는 한상자(韓湘子)가 숙부인 한유(韓愈)를 점화하라는 여동빈의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한유는 한상자가 돌아와 다년간 도를 배우러 떠나 있었다는 말을 듣고는 크게 화를 낸다. 나중에 한상자가 비록 여러 차례 한유의 전생 내원에 대해 일깨워주고 신령한 감응까지 보여주었지만 한유는 “세속의 생각이 너무 강해 대도(大道)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끝내 따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불골(佛骨)에 대한 간언으로 황제에게 죄를 지어 멀리 수자리를 살기 위해 영남 조주(潮州)지방으로 귀양을 떠났다. 가는 길이 험해 온갖 고생을 다 겪고 마침내 남관(藍關)에 이르러서야 명리에 대한 마음이 담담해져서 마침내 대도를 믿게 되었다.

한상자는 이에 탄식하면서 말한다. “세인들은 명예와 이익을 위해 허둥지둥 뒤쫓다가 결국에는 다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는 너무나 뻔한 결말이다. 어찌 가련하지 않은가?”

한편 한유는 《좌천지남관시질손상(左遷至藍關示侄孫湘)-조주로 좌천되어 가는 도중 남관에서 질손 상에게 보이다》라는 시에서 “진령에 구름 걸렸으니 집은 어디에 있고 남전관에선 눈이 막혀 말도 나가지 못하네(雲橫秦嶺家何在,雪擁藍關馬不前)”라는 천고의 명구를 남겼다. 여기서 종손 상(湘)은 바로 한상자를 가리킨다. 이 시는 바로 한유가 당시 마음을 돌려 도를 깨닫기 직전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명리에 대한 마음이 너무 무거운 사람은 수련의 길이 있어도 문으로 들어올 수 없다. 마치 옛날에 어떤 사람이 “나는 허리에 10만 관(貫)의 돈을 두르고, 학을 타고 양주로 날아가고 싶다(腰纏十萬貫 騎鶴上楊州)”는 소원을 발한 것과 같은데 수련을 잘 모르는 세인들의 어리석은 망상이다.

[역주: 이 말은 양주학(楊州鶴) 고사에 유래한다. 옛날에 네 사람이 각자 자기의 소원을 말하는데 한 사람은 양주자사(楊州刺史)가 되고 싶다고 하고, 한 사람은 많은 재물을 얻기를 원하고, 한 사람은 학을 타고 하늘로 오르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이 말을 듣고 있던 나머지 한 사람이 “나는 허리에 10만 관(貫)의 돈을 두르고, 학을 타고 양주로 날아가고 싶다”고 했다. 즉 사람은 욕심이 많아서 명예도 갖고 싶고 이익도 취하고 싶고 거기다 수련해서 고층차로 갈 생각도 있는데 이 모든 것을 움켜쥐고 놓지 않으니 수련의 길에 입문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도가(道家)에서는 사부가 도제(徒弟)를 찾는데 대체적으로 만 명 중에 한 명 꼴로 고르는게 흔하다. 세인들에게 있어 이는 마치 아득히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반면 불가(佛家)에서는 널리 제도함[普度]을 중시하므로 이보다는 기회가 많은 것이 아닌가? 불경에서는 석가모니 당시에 “도를 얻은 사람이 숲처럼 많았다”고 하는데 이는 불가의 제자에 대한 요구가 그리 엄격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부동한 층차의 수련표준은 법문이 다르다고 해도 일정하게 정해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지금보다 수련하기 쉬웠던 게 아닌가?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석가모니 부처 역시 당시 인도가 오독(五毒)이 가득한 세상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사실 수련에 대해 말하자면 도가에서 말하는 사부가 도제를 고르는 일이든, 불가에서 말하는 것처럼 수련할 수 있으면 누구나 수련하는 것이든, 전제는 다 대도(大道) 또는 불법(佛法)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는가, 수련 자체에 대해 인식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당신이 인식할 수 있으면 그럼 수련하고 인식할 수 없다면 그럼 수련을 언급할 필요도 없다. 또는 당신이 형식적으로는 수련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수련을 모른다면 역시 수련해 올라갈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수련 자체를 인식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진정으로 대도와 불법을 인식할 기회가 있을 수 있는가?

사람은 신(神)이 만든 것으로 신은 사람을 만든 후 사람에게 사람이 되는 도리와 표준을 남겨주었다. 중국에서는 이것이 바로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도리인데 예의염치(禮義廉恥)와 삼강오륜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초월해 올라가고 보다 높은 경계의 생명이 되려면 자연히 보다 높은 요구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부동한 층차에서 수련의 표준이다. 그렇다면 사람에 합당하려면 진정한 의미에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또한 사람이 수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구이다. 또 가늠하는 표준을 말하자면 사람의 각도에 설 수 없다. 또는 인류가 끊임없이 미끄러져 내려왔기에 자신이 아는 도덕수준으로 평판하기도 쉽지 않다.

“真(쩐)ㆍ善(싼)ㆍ忍(런)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1]

“인류의 도덕표준마저 비뚤어졌고 변화가 일어났으며,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마저도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것은 속인 중의 일이다. 이 우주의 특성 真(쩐)ㆍ善(싼)ㆍ忍(런)의 표준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으로서, 그는 변하지 않는다.”[1]

“사람으로서 우주의 真(쩐)ㆍ善(싼)ㆍ忍(런), 이 특성에 순응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좋은 사람이고, 이 특성에 어긋나게 행하는 사람은 진정 나쁜 사람이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당신을 나쁘다고 할 수 있지만 당신이 꼭 정말로 나쁜 것은 아니며, 어떤 사람이 당신을 좋다고 해서 당신이 꼭 정말로 좋은 것도 아니다. 수련자로서, 이 특성에 동화하면 당신은 곧 도(道)를 얻은 사람인데, 바로 이렇게 간단한 이치다.”[1]

1992년 파룬궁(法輪功)[또는 파룬따파(法輪大法)]이 중국에서 전해져 나왔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파되는 방식으로 1억 명이 파룬궁 수련으로 들어왔다. 특히 1999년 7월 20일 중공사당(中共邪黨)이 파룬궁을 불법으로 잔혹하게 박해한 이후 파룬궁은 오히려 세계로 진출했다. 파룬궁은 비단 굴복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평화적이고 이성적인 반박해로 지금까지 걸어왔다.

지금 세상에서 파룬궁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며 그것은 하나의 사실로 되었다. 중국 대륙에서 무고하게 중공사당의 박해를 받는 외에도 파룬궁은 이미 세계 1백여 개 나라와 지역에 전파되었고 파룬궁 관련 서적은 이미 40여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지난 몇 십 년간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표창을 받았다.

이렇게 세상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던 데에서 억만 명이 파룬궁을 인식할 때까지 그 가운데 얼마나 많은 힘겹고 고달픈 일들이 있었고 얼마나 많은 신기한 견증이 있었겠는가! 억만 파룬궁 수련자들은 지금 자신들이 직접 겪은 경험으로 현재 발생 중인, 겉으로는 아주 평온하고 일상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거대하고 웅장한 현대의 수련신화(修煉神話)를 말하고 있다.

이 신화는 만고(萬古)이래 인류의 오랜 역사를 초월하고 관통하는 것이다. 과거에 무쇠 신이 닳을 때까지 도를 찾으며, 수없이 많은 윤회 속에서 희망이 없는 가운데 기다려온 것은 바로 지금 파룬따파다. 이 우주대법은 이미 매 사람의 눈앞에 와있다.

바로 다음과 같다.

만고의 천문이 열리니
중생은 법을 위해 왔노라
천하에 복음을 전하니
누가 아직도 배회하는가?

萬古天門開,
眾生為法來。
福音傳天下,
誰人還徘徊?

(계속)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118471

정견망

글/ 송명(宋明)

【정견망】

중국의 수많은 명산에는 ‘일선천(一線天)’이란 특이한 경관이 존재한다. 쉽게 말해 양쪽으로 절벽이 있고 가운데 좁은 틈이 있으면 일선(一線)과 같은 하늘만 보이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수련계에서는 흔히 천기(天機)가 아득해서 오직 한 가닥의 희망만 남아 있는 것을 형용할 때 사용한다. 자고로 도를 구하는 사람은 소털처럼 많았지만 도를 얻은 사람은 봉황의 털이나 기린의 뿔처럼 극소수였으니 다시 말해 수련의 어려움을 형용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수련의 어려움은 우선적으로 법을 얻기 어려운 것으로 표현된다. 소위 “진짜 전수 한 마디에 가짜 전수는 만권의 책(真傳一句話,假傳萬卷書)”이란 말이 있다. 도장(道藏)이나 대장경(大藏經)에는 얼마나 많은 경서가 있는가? 그 중 어느 구절이 대도(大道)인가? 어느 구절이 진법(真法)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백발이 될 때까지 가난하게 살면서도 단 한 가지 방법도 생각해내지 못한다. 《서유기》에서는 당승(唐僧)의 서천취경(西天取經)을 말하면서 구구81난이 있다고 하는데 그래도 이것은 정법문(正法門) 수련이다.

하지만 정법을 스쳐 지나가버리면 오히려 회한만이 남게 된다. 예를 들어 팔선(八仙) 중에 당나라 때 도를 얻은 한상(漢相)자는 사실 동한(東漢)의 비장방(費長房)이 신선이 될 인연을 잃어버린 후 오랫동안 뜻을 버리지 않다가 마침내 대도(大道)로 돌아온 것이다. 그가 만약 기로에 떨어져 ‘야호선(野狐禪)’을 닦았다면 심지어 회한을 품을 기회마저도 없었을 런지 모른다.

수련의 두 번째 어려움은 수련의 표준이 엄격해서 두 차례 잘못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수많은 신화와 전설 속에서 한 차례 고험을 넘기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한 후 평생 후회한 사례들 역시 적지 않다.

세 번째 어려움은 바로 일세(一世)에 정과(正果)를 성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시 당승을 이야기하자면 10세(世)의 수행을 거쳐서야만 비로소 불과(佛果)를 증득할 수 있었다.

네 번째 어려움은 윤회의 고통으로 수련의 기연을 찾기 힘든 것이다. 왜냐하면 일세에 수련성취하지 못하면 윤회전생(輪迴轉生)해야 하는데 만약 사람 몸을 얻지 못한다면 정법을 수련하기 어렵다. 설사 어렵게 사람 몸을 얻었다 해도 전생(轉生) 중에 기억이 봉폐되고 머리가 씻기고 나면 또 종종 홍진(紅塵) 속에서 본성을 잃기 쉽고, 이를 통해 업력이 너무 커져서 몸을 봉폐해버리면 다시 수련할 기연을 잃을 수 있다. 소위 “사람 몸을 얻기 어렵고 중토(中土)에서 태어나기 힘들며 정법(正法)을 만나기 힘드니 이 3가지를 모두 얻을 수 있다면 더 큰 행운이 없다(人身難得,中土難生,正法難遇,全此三者,幸莫大焉)”는 말은 이후 수련자들이 경계로 삼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고로 비록 수련은 한 가닥 천기(天機)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껏 이때문에 도를 구하고 도를 지향하는 사람의 마음이 단절된 적은 없었다. 《팔선득도전(八仙得道傳)》 첫 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선은 본래 속인이 되는 것으로 단지 속인의 뜻이 굳세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다.”(神仙們本是凡人做,只怕凡人心不堅) 또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은 중국인들이 성현(聖賢)의 도를 추구하면서 한 맹서로 대를 이어가며 전승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역사 속에서 불교 선종(禪宗)의 2조 혜가(慧可)가 자신의 팔을 잘라 법을 구한 이야기나 밀종(密宗) 백교(白敎)의 밀라레빠 존자가 일세(一世)에 고생스레 수련해 마침내 불과(佛果)를 성취한 이야기에서 큰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속세 깊은 곳에 떨어져
돌아갈 길 모르고
천백 년을 구르다
다행히 사존의 보도(普度)를 만나
구도 받았네 구도 받았네
절대 다시는 기연을 잃지 마시오

落入紅塵深處
迷失不知歸途
輾轉千百年
幸遇師尊普度
得度,得度
切莫機緣再誤

(《여몽령(如夢令)·득도(得度)》)

이 노래는 한 파룬궁 수련자가 도를 듣고 법을 얻은 후 내심 깊은 곳에서 표현한 마음의 소리다. 한 수련인이 무쇠 신발바닥이 닳을 정도로 도를 찾다가 실망과 절망을 거치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후에야 마침내 정법을 얻은 기쁨을 노래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수많은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들마다 각기 도를 듣고 법을 얻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존재하는데 비록 인연은 각기 다를지라도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사부님의 자비하신 구도에 대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와 은혜를 표현한다.

역사적으로 도가(道家)는 수진(修真)을 강조하는데 진정한 수련은 모두 사부가 도제를 선발한 것으로, 당신이 수련하려고 생각해도 사부가 당신이 자격이 있는지 또는 능력이 되는지 여부를 보아야 한다.

불가(佛家)에서는 선(善)을 닦고 널리 제도함을 강조하는데 석가모니는 고인도에서 이미 2500여 년 전에 열반했다. 하지만 그가 전한 불법(佛法)은 이미 말법(末法)에 들어갔고 말법시기의 승려들은 자신을 제도하는 것조차 어려운데 누가 와서 사람을 구한단말인가? 또 어떻게 널리 제도하는가? 세상 어디에 널리 제도하는 정법(正法)이 있는가? 대체 어느 때라야 즉신성불(卽身成佛)할 수 있는 정법이 있을 수 있는가? 이런 끊임없는 호소와 기대 속에서 역사는 눈 깜짝할 사이에 2천년이 지나갔다.

“드넓은 하늘 문이 만고(萬古)에 열리니 몇이나 돌아가고 몇이나 왔는가?(蕩蕩天門萬古開,幾人歸去幾人來)”

이 구절은 수련의 한 가닥 천기가 역사의 긴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부침하면서, 신불(神佛)의 배치 하에서, 수련인이 위아래로 추구하고 모색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세인들에게 신불을 인식하고 수련을 인식하며 수련의 서로 다른 형식과 다양한 표준을 인식할 수 있는 문화를 다져주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가 기다려왔던 대법이 전해지던 그 날, 이 한 가닥의 천기는 더 이상 한 가닥의 천기가 아니게 되었고, 예부터 지금까지 최초로 진정하게 사람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도록 남겨준 한부의 사다리인 《전법륜(轉法輪)》이 되었다.

(계속)

원문위치: http://big5.zhengjian.org/node/118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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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法輪功)으로 잘 알려진 法輪大法(파룬따파)는 리훙쯔(李洪志)선생께서 창시하신 고층차의 불가(佛家)수련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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