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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견망

글/ 송명(宋明)

【정견망】

중국의 수많은 명산에는 ‘일선천(一線天)’이란 특이한 경관이 존재한다. 쉽게 말해 양쪽으로 절벽이 있고 가운데 좁은 틈이 있으면 일선(一線)과 같은 하늘만 보이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수련계에서는 흔히 천기(天機)가 아득해서 오직 한 가닥의 희망만 남아 있는 것을 형용할 때 사용한다. 자고로 도를 구하는 사람은 소털처럼 많았지만 도를 얻은 사람은 봉황의 털이나 기린의 뿔처럼 극소수였으니 다시 말해 수련의 어려움을 형용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수련의 어려움은 우선적으로 법을 얻기 어려운 것으로 표현된다. 소위 “진짜 전수 한 마디에 가짜 전수는 만권의 책(真傳一句話,假傳萬卷書)”이란 말이 있다. 도장(道藏)이나 대장경(大藏經)에는 얼마나 많은 경서가 있는가? 그 중 어느 구절이 대도(大道)인가? 어느 구절이 진법(真法)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백발이 될 때까지 가난하게 살면서도 단 한 가지 방법도 생각해내지 못한다. 《서유기》에서는 당승(唐僧)의 서천취경(西天取經)을 말하면서 구구81난이 있다고 하는데 그래도 이것은 정법문(正法門) 수련이다.

하지만 정법을 스쳐 지나가버리면 오히려 회한만이 남게 된다. 예를 들어 팔선(八仙) 중에 당나라 때 도를 얻은 한상(漢相)자는 사실 동한(東漢)의 비장방(費長房)이 신선이 될 인연을 잃어버린 후 오랫동안 뜻을 버리지 않다가 마침내 대도(大道)로 돌아온 것이다. 그가 만약 기로에 떨어져 ‘야호선(野狐禪)’을 닦았다면 심지어 회한을 품을 기회마저도 없었을 런지 모른다.

수련의 두 번째 어려움은 수련의 표준이 엄격해서 두 차례 잘못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수많은 신화와 전설 속에서 한 차례 고험을 넘기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한 후 평생 후회한 사례들 역시 적지 않다.

세 번째 어려움은 바로 일세(一世)에 정과(正果)를 성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시 당승을 이야기하자면 10세(世)의 수행을 거쳐서야만 비로소 불과(佛果)를 증득할 수 있었다.

네 번째 어려움은 윤회의 고통으로 수련의 기연을 찾기 힘든 것이다. 왜냐하면 일세에 수련성취하지 못하면 윤회전생(輪迴轉生)해야 하는데 만약 사람 몸을 얻지 못한다면 정법을 수련하기 어렵다. 설사 어렵게 사람 몸을 얻었다 해도 전생(轉生) 중에 기억이 봉폐되고 머리가 씻기고 나면 또 종종 홍진(紅塵) 속에서 본성을 잃기 쉽고, 이를 통해 업력이 너무 커져서 몸을 봉폐해버리면 다시 수련할 기연을 잃을 수 있다. 소위 “사람 몸을 얻기 어렵고 중토(中土)에서 태어나기 힘들며 정법(正法)을 만나기 힘드니 이 3가지를 모두 얻을 수 있다면 더 큰 행운이 없다(人身難得,中土難生,正法難遇,全此三者,幸莫大焉)”는 말은 이후 수련자들이 경계로 삼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고로 비록 수련은 한 가닥 천기(天機)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껏 이때문에 도를 구하고 도를 지향하는 사람의 마음이 단절된 적은 없었다. 《팔선득도전(八仙得道傳)》 첫 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선은 본래 속인이 되는 것으로 단지 속인의 뜻이 굳세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다.”(神仙們本是凡人做,只怕凡人心不堅) 또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은 중국인들이 성현(聖賢)의 도를 추구하면서 한 맹서로 대를 이어가며 전승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역사 속에서 불교 선종(禪宗)의 2조 혜가(慧可)가 자신의 팔을 잘라 법을 구한 이야기나 밀종(密宗) 백교(白敎)의 밀라레빠 존자가 일세(一世)에 고생스레 수련해 마침내 불과(佛果)를 성취한 이야기에서 큰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속세 깊은 곳에 떨어져
돌아갈 길 모르고
천백 년을 구르다
다행히 사존의 보도(普度)를 만나
구도 받았네 구도 받았네
절대 다시는 기연을 잃지 마시오

落入紅塵深處
迷失不知歸途
輾轉千百年
幸遇師尊普度
得度,得度
切莫機緣再誤

(《여몽령(如夢令)·득도(得度)》)

이 노래는 한 파룬궁 수련자가 도를 듣고 법을 얻은 후 내심 깊은 곳에서 표현한 마음의 소리다. 한 수련인이 무쇠 신발바닥이 닳을 정도로 도를 찾다가 실망과 절망을 거치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후에야 마침내 정법을 얻은 기쁨을 노래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수많은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들마다 각기 도를 듣고 법을 얻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존재하는데 비록 인연은 각기 다를지라도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사부님의 자비하신 구도에 대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와 은혜를 표현한다.

역사적으로 도가(道家)는 수진(修真)을 강조하는데 진정한 수련은 모두 사부가 도제를 선발한 것으로, 당신이 수련하려고 생각해도 사부가 당신이 자격이 있는지 또는 능력이 되는지 여부를 보아야 한다.

불가(佛家)에서는 선(善)을 닦고 널리 제도함을 강조하는데 석가모니는 고인도에서 이미 2500여 년 전에 열반했다. 하지만 그가 전한 불법(佛法)은 이미 말법(末法)에 들어갔고 말법시기의 승려들은 자신을 제도하는 것조차 어려운데 누가 와서 사람을 구한단말인가? 또 어떻게 널리 제도하는가? 세상 어디에 널리 제도하는 정법(正法)이 있는가? 대체 어느 때라야 즉신성불(卽身成佛)할 수 있는 정법이 있을 수 있는가? 이런 끊임없는 호소와 기대 속에서 역사는 눈 깜짝할 사이에 2천년이 지나갔다.

“드넓은 하늘 문이 만고(萬古)에 열리니 몇이나 돌아가고 몇이나 왔는가?(蕩蕩天門萬古開,幾人歸去幾人來)”

이 구절은 수련의 한 가닥 천기가 역사의 긴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부침하면서, 신불(神佛)의 배치 하에서, 수련인이 위아래로 추구하고 모색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세인들에게 신불을 인식하고 수련을 인식하며 수련의 서로 다른 형식과 다양한 표준을 인식할 수 있는 문화를 다져주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가 기다려왔던 대법이 전해지던 그 날, 이 한 가닥의 천기는 더 이상 한 가닥의 천기가 아니게 되었고, 예부터 지금까지 최초로 진정하게 사람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도록 남겨준 한부의 사다리인 《전법륜(轉法輪)》이 되었다.

(계속)

원문위치: http://big5.zhengjian.org/node/118470

명혜망

글/ 송명(宋明)

【정견망】

수련의 연원을 말하다

화인(華人)을 포함한 중국인들은 통상적으로 자신을 ‘염황(炎黃)의 자손’이라 부르며 염제(炎帝)와 황제(黃帝)는 또 화하(華夏)민족의 인문초조(人文初祖)로 불린다. 황제가 살던 시대는 현존 사료에 따르면 대략 기원전 5천년 무렵으로 추정되는데 《황제내경》의 기록에 따르면 황제가 살던 시대에 앞서 상고(上古)와 중고(中古)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연대가 너무 오래 되어 고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역사에 남겨진 단편적인 언어 속에서 우리는 당시는 사람과 신(神)이 함께 존재했던 시기로 전반 사회도덕이 고상(高尙)한 시기였음을 엿볼 수 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황제내경》을 현대과학의 각도에 입각해 단지 고대의 의학저서로만 간주하고 연구하지만 중국 고유의 토종 종교인 도교(道敎)의 입장에서 보면 《도장(道藏)》에 포함된 경전의 하나이며 황제는 노자와 함께 도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황제내경》 첫편인 〈상고천진론(上古天真論)〉에서는 “옛날에 황제가 계셨는데 나면서부터 신령했으며 어려서 말을 잘 했고, 유년에는 가르침을 잘 따라 행실이 가지런했으며, 자라서는 덕이 두텁고 행동이 민첩하셨는데, 성인(成人)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셨다.”라고 했다. 여기서 “하늘에 올라가셨다(登天)”는 말은 황제가 수련에서 원만한 후 백일비승(白日飛昇)했다는 것이다.

《장자·외편·재유(在宥)》에는 또 황제가 광성자(廣成子)를 찾아가 도를 묻고 마침내 대도(大道)를 얻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렇다면 여기서 광성자는 누구일까? 명대의 유명한 소설 《봉신연의》에서는 광성자를 원시천존(元始天尊)의 제자이자 도교 12대 금선(金仙)의 하나로 본다. 그런데 원시천존과 태상노군(太上老君)은 기본적으로 중국신화전설 속에서 사람들이 알 수 있는 도가 체계에서 가장 높은 신선들이다.

수련(修煉)이란 무엇인가? 황제의 전설에서 보자면 한 사람이 신(神)이 되는 과정 그것이 바로 수련이다. 도가에서는 수련을 통해 도를 얻으면 진인(真人)이 된다고 하는데 다시 말해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인식하는 신선이란 개념이다.

그렇다면 수련(修煉)・연단(煉丹)은 도교 중의 명사이고 중국 역사상 도교 외에 또 불교가 있다. 불교에서는 선정(禪定)수행을 말하고 최후에 나한・보살에서 직접 부처의 과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과(正果)로 수련 성취된다.

도교의 진인(真人)과 불교의 정과 과위는 어떤 대응관계가 있을까? 《봉신연의》에서 우리는 대체적으로 도교에서 말하는 금선이 기본적으로 불교의 보살과위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도교에서 말하는 수련・연단이라도 좋고 불교에서 말하는 선정수행이라도 좋은데 최후에는 모두 비슷한 성취를 이룰 수 있다. 다만 도교와 불교는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각기 ‘도(道)’와 ‘법(法)’을 사용해 우주 진리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를 만들어낸 것이다.

만약 신(神)이 사람을 만들었다고 한다면 신불(神佛)은 또한 각기 다른 수련형식과 방법을 남겨놓았고 수련을 통하는 것만이 사람이 신을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렇게 말하자면 수련의 역사는 아주 오래고 먼 것이다.

신선계의 역사는 얼마나 되는가? “천상에서는 겨우 하루가 지났지만 지상에서는 이미 천년이 지났다”거나 “산 속에는 갑자(甲子)가 없으니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는 말이 있다. 불경(佛經)에서 말하는 시공의 개념 중에서는 겁(劫 겁은 수억 년에 해당한다)이나 억겁(億劫)과 같은 천문학적인 숫자를 말한다.

그렇다면 이번 차례 인류의 문명역사 중에서, 특히 중국에 문자기록이 존재한 이후, 신불과 수련의 문화는 줄곧 유전되어 내려왔으며 아울러 중국인들의 생활 속 각종 방면에 관통되어 있다.

오늘날 중국인들에 대해 말하자면 수련을 알게 된 것은 문화대혁명 중후기(中後期)의 ‘기공열풍’에서 시작된 것으로, 웅대한 기공열조가 약 20년간 지속되었고 약 2천여 종의 기공문파가 있었지만 그 누구도 수련의 역사연원을 진정으로 명백하게 말하진 못했다. 그러다가 1992년 파룬궁(法輪功)이 전해져 나온 후에야 사람들은 비로소 수련의 진정한 역사연원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기공은 사전문화다”, “기공은 바로 수련이다”[1]

파룬궁은 파룬따파(法輪大法)라고도 불리며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이 전하신 것이다.

“파룬불법(法輪佛法)은 불가의 상승(上乘)수련대법으로 우주 최고특성 진선인(真善忍)에 동화하는 것을 근본으로 우주 최고특성을 지도로 삼아 우주의 연화원리에 따라 수련하기 때문에 우리가 닦는 것은 대법(大法)대도(大道)이다.”

《전법륜》에서는 명확하게 불도양가(佛道兩家) 수련방법의 실질 및 파룬궁과 불도양가 수련의 근본차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도가(道家)는 真(쩐)ㆍ善(싼)ㆍ忍(런)을 수련함에 진(真)을 중점적으로 수련한다. 그러므로 도가에서는 수진양성(修真養性)을 말하는데, 참말을 하고, 참된 일을 하고, 참된 사람이 됨으로써 반본귀진하여 최후에 진인(真人)으로 수련 성취한다. 그러나 인(忍)도 있고 선(善)도 있는데, 중점을 진(真)에 두고 수련한다. 불가(佛家)는 真(쩐)ㆍ善(싼)ㆍ忍(런)에서 선(善)에 중점을 두고 수련한다. 선을 수련하기 때문에 대자비심(大慈悲心)을 수련해 낼 수 있는데, 자비심이 나오기만 하면 중생이 모두 고생스러움을 보게 되므로 곧 소원을 품어 중생을 널리 제도하려 한다. 그러나 진(真)도 있고 인(忍)도 있는데, 선(善)에 중점을 두고 수련한다.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 이 한 법문은 우주의 최고 표준-真(쩐)ㆍ善(싼)ㆍ忍(런)을 동시에 수련하므로, 우리가 연마(煉)하는 공(功)은 대단히 크다.”

리훙쯔 선생님은 이후 설법 속에서 진일보로 오늘날 파룬궁 수련과역사상의 수련의 차이를 드러내셨다.

“석가모니, 노자(老子), 예수의 출현은 비로소 사람들로 하여금 오늘날 무엇이 바른 믿음(正信)이고, 수련(修煉)이며, 무엇이 불(佛)・도(道)・신(神)인지 이 일체를 진정하게 인식시켰다. 역사적으로는 오늘날 인류의 사상을 풍부하게 했고 사람으로 하여금 법을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게 했으며 법을 얻을 수 있게 했다. 인류의 일체 역사과정에서 모두 이러한 기초를 다졌다. 다시 말해서 대법을 전하기 위해 사람과 사람의 문화를 육성했는바, 법은 인류의 문화에 부합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며 인류 문화의 산물은 더욱 아니다.”[2]

“당신들은 역사상 그러한 종교수행과 신앙이 유일한 수련이라고 여기는가? 만약 삼계와 인간의 역사상 일체가 모두 우주의 정법을 위해 배치된 것이라면, 그럼 역사란 단지 대법을 위해 역사 과정 중에서 중생과 인류 및 사람의 사상방식과 문화를 육성했을 뿐이다. 이리하여 대법이 널리 전해질 때 사람의 사상으로 하여금 능히 법을 이해하고 무엇이 법이고 무엇이 수련이며 무엇이 중생을 구도하는 것인가 하는 등등과 각종 수련형식을 알게 하였다. 만약 이렇다고 한다면, 역사상의 일체 수련과 신앙 그것은 우주가 장래에 세간에서의 정법을 위해 문화를 다져놓은 것이 아닌가? 무엇이 사람이 신으로 되는 길인가? 하늘의 신들은 내가 사람에게 하늘로 올라가는 한 부의 사다리를 놓아주었다고 모두 말하고 있다.”[3]

수련하지 않거나 수련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있어 앞서 리훙쯔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하기란 아주 어렵겠지만 진정한 수련자가 본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천기(天機)다.

유구한 중화역사에서 무수한 신전문화(神傳文化)를 남겨놓았다. 반고(盤古)가 천지를 개벽하고 여와(女媧)가 사람을 만든 것에서, 신농(神農)이 백가지 약초를 맛보고 대우(大禹)가 큰물을 다스렸다. 창힐(蒼頡)이 문자를 창조하자 하늘에서 좁쌀이 비처럼 내리고 귀신들이 밤에 울었다. 노자의 자기(紫氣)는 동쪽에서 온 것과 황제(黃帝)의 백일비승 등등.

또 《봉신연의》와 《팔선득도전(八仙得道傳)》 및 《서유취경(西遊取經) 서유기》 등 자고로 지금까지 각종 신화와 전설이 유전되어 왔고 또 일부 수련인들은 각종 신적(神跡)을 펼쳐내기도 했다. 또한 매 중국인들의 뼛속 내심 깊은 곳에 신불(神佛)을 동경하는 종자를 심어놓았다. 이 종자는 역사의 봉폐된 먼지 속에서 어쩌면 줄곧 오늘을 기다려왔을지 모르는데 진정한 수련의 기연(機緣)이 도래하길 기다려왔는지 모른다.

수련의 연원을 한마디로 설파하는 파룬궁(法輪功)은 어쩌면 우리에게 진정으로 위로 신을 탐색하고 추구할 수 있는 근본대법일지 모른다. 인연이 있는 사람들은 법을 듣고 도를 얻으며 뜻이 있는 사람은 마침내 정과를 얻어 원만할 것이다.

(계속)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북미순회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다시 방할하노라(也棒喝)》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118469

명혜망

글/ 송명(宋明)

【정견망】

서문을 대신해서: 신불(神佛)은 인간세상에 있다

자고로 중국인들은 천지와 신불(神佛)에 대한 정통신앙을 지녀왔다. 이는 단순히 중국에 유구한 신전문화가 존재하기 때문만은 아니며 중국인들이 역사적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은연중에 감화되어 이미 뼛속까지 들어가 심령(心靈) 깊은 곳에서 신불을 동경하는 씨앗을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역사적으로 신불에 대한 신앙이 경건하고 또 아주 깊이 각인(刻印)되었으며 풍부하고 다차원적이었다. 정사(正史)나 야사(野史)는 물론이고 민간 전설이나 회화, 음악, 건축, 조소(彫塑) 등 인류가 생활하는 여러 방면에서 모두 셀 수 없이 많은 기록들을 찾을 수 있다.

이런 전승(傳承)은 문자 표현이나 실물(實物)의 형상 내지는 구전(口傳)의 방식으로 대대로 끊이지 않고 전승되어 왔다. 이런 전승은 비록 중공이 나라를 찬탈한 수십 년에 걸친 무신론(無神論) 선전과 중화신전문화에 대한 심각한 파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단절되지 않았다. 일단 시기(時機)가 무르익기만 하면 이 씨앗은 곧 뿌리를 내려 싹을 틔울 것이며 또 이를 계기로 아득히 오래전부터 신불의 진정한 구도를 갈망해오던 만고(萬古)의 기연(機緣)에 접속될 것이다.

현재 중국사회의 중국인들 중에는 신불에 대한 신앙표현에서 두 가지 극단적인 부패현상이 나타났다. 하나는 사원 중에서 번성하는 향연기가 마치 권력과 돈이 있는 사람들을 보우하고 재난을 막으며 승진하고 돈을 벌게 해주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중에는 소위 무신론자를 자칭하는 각급 중공관원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 민간의 대부호 등 다양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로 진흙으로 빚은 불상(佛像)에 대고 소위 향을 올리면서 사리사욕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조건으로 삼았다.

또 다른 방면에서는 완전히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면서 어디 신불이 있는가? 라고 선전하는데 이런 말을 할 때면 그 자신도 어딘지 모르게 믿음이 부족하다.

어떤 사람은 신불이 나타나는 걸 자신에게 보여주면 믿겠노라고 말한다. 사실 신불은 도처에 다 나타나지만 다만 당신이 보고도 믿지 못할 뿐이며 또한 고유의 협애한 관념의 영향으로 설사 진짜 당신 앞에 신불이 나타난다 해도 당신은 아마 다른 구실을 찾으며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현재 크고 작은 사찰에서 모두 불상을 볼 수 있는데 당신은 불상이 왜 그런 형상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아마 어떤 사람이 (천목으로)보았을 수 있는데 그리고 나서 예술형식을 통해 표현해냈을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무신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저 사람의 상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한걸음 양보해서 만약 단순히 인간의 상상이라고 하자. 그럼 왜 지금이 불상과 같은 그런 형상만을 상상하고 다른 형상은 상상하지 못하는가? 당신이 보지 못한다 하여 다른 사람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볼 수 있든 없든 신불은 늘 존재하는 것으로 이는 마치 당신이 전자기파를 보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다양한 형식으로 신불의 형상을 펼쳐낸 것 외에도 인간 세상에는 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신적(神跡)이 남겨져 있다. 이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신불의 존재를 계시해주기에 충분하다. 우리와 아주 가깝고 또 언제든 검증할 수 있는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다.

2002년 6월 귀주성(貴州省) 평당현(平塘縣) 장보향(掌步鄉) 도파촌(桃坡村)에서 글자가 적힌 바위가 하나 발견되었는데 위에는 “중국공산당망(中國共産黨亡)”이란 여섯 글자가 적혀 있었다. 권위 있는 전문가들의 고증을 통해 이 바위는 2억 7천만 년 전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현지 정부에서는 이를 ‘구성석(救星石)’으로 포장해 관광지로 만들고 관방 사이트에도 관련 소개를 볼 수 있다.

물론 이들은 다만 앞 5글자만 말했지만 관광지 티켓은 물론이고 직접 현장에 가본 사람들은 모두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6글자를 볼 수 있다. 아울러 이 6개 글자 중에 국(國)과 산(産)은 모두 번체였는데 만약 자연적으로 이런 모양으로 생성된 것이라면 이것만으로도 이미 불가사의한 확률인데 이게 신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렇게 명백한 사실을 앞에 두고서도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믿지 못한다. 어떤 상인은 이 말을 듣고 굳이 현지에 가서 조사를 해봐야 한다고 우겼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현지 정부의 관방사이트에서 진상을 본 후에도 아마 현지 정부가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조작했을 거라고 주장했다. 역사적으로 진후주(陳後主)가 작곡한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를 망국의 음악이라고 하는데 만약 그의 말대로 현지 정부 스스로 조작한 것이라면 이는 아마도 신이 그들의 손을 이용해 멸망의 징조를 드러낸 것이다.

신불(神佛)에 대한 신앙은 지금껏 모두 믿음(信)이 먼저고 깨달음(悟)이 먼저였다. 왜냐하면 인류의 기성 지식에 비해 미지의 것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가 이미 알고 있는 실증과학은 맹인이 코끼리를 만지는 식으로 물질・생명・우주를 인식하는 한가지 방식에 불과할 뿐이며 그것도 아주 협애한 것이다. 동시에 현대과학은 도덕을 인식할 수 없다는 타고난 제한 때문에 신불의 존재를 실증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신불을 인식할 수 있는 또 다른 수단은 없는 것일까? 사실 중화신전문화의 역사 속에는 일찍부터 존재해왔으니 그것이 바로 수련(修煉)이다.

사상계에서 철학자들은 인류에게 소위 3가지 궁극의 질문이 있다고들 한다. 바로 사람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곳에는 무엇을 하러 왔는가? 또 장차 어디로 가는가? 이다.

사실 사람은 신(神)이 만든 것으로 이는 세계 여러 민족의 역사 속에 모두 이런 전설이 존재한다. 가령 동방에서는 여와(女媧)가 사람을 만들었고 서방에서는 여호와가 사람을 만들었다는 등이다. 그렇다면 이는 사람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은 이곳에 무엇을 하러 왔는가? 또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 좀 더 깊이 탐구하자면 신은 대체 왜 사람을 만들었을까? 이는 마치 위 아래로 탐색해보아도 해답을 얻을 수 없는 문제처럼 보인다.

고대부터 ‘신주(神州)’라 불린 중국 이곳에서는 수많은 제왕(帝王)장상(將相), 큰 부호, 명인(名人)과 이인(異人)들 및 수많은 일반 백성들이 공동으로 중화 신전문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수련문화를 풀어내왔고 나아가 서로 다른 방면에서 오늘날 인류가 진정으로 신불을 인식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져주었다.

1992년 파룬궁(法輪功)이 기공(氣功)의 형식으로 중국에서 전해져 나오면서 사람들은 거의 최초로 수련의 내함(內涵)을 진정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이 수련인가? 수련의 역사적 연원은 무엇인가? 수련의 목적은 무엇인가? 수련과 신불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를 통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또한 이미 인류 사회 여러 방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역사현상인 파룬궁 수련(法輪功修煉)을 이끌어냈다. 지금까지 파룬궁 수련자들은 세계무대 위에 진실과 선량 및 도덕의 승화를 펼쳐보였다. 특히 1999년 중공의 잔혹한 탄압이 시작된 이후 진행된 반박해(反迫害) 중에서 평화와 이성 및 견인불굴(堅韌不屈) 대선대인(大善大忍)의 정신을 표현해내어 파룬궁 수련자들이 받드는 진선인(真善忍) 우주진리를 더 직접적으로 인간세상에 체현하고 진일보로 수련의 실질을 드러냈다.

파룬궁은 수련이지만 또 단지 수련에 불과한 것만은 아니다. 역사가 오늘날까지 걸어오면서 우리는 반드시 수련문화의 각도에서 신불과 우리의 역사를 새로 인식하고 이 관건적인 역사시각에 기연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동시에 억만 파룬궁 수련자들의 수련 실천은 또한 인류에게 새로운 수련문화를 개창해주었으니 이 모든 것들은 또 사람들이 점차적으로 알게 될 사실인 신불이 이미 인간세상에 도래한 것을 지향한다.

【중화신전수련문화를 바로 말하다】는 9편의 시리즈 문장으로 중국역사 속에서 수련문화현상을 설명하는데 특히 현재 파룬궁 수련현상을 쉽고 명백한 언어로 표현해 오늘날 사람들에게 파룬궁을 인식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하고 파룬궁을 인식한 바탕위에서 더 나아가 우리에게 심각한 계시를 가져다주는 것이 목적이다. 때문에 이 시리즈는 통상적인 학술이나 문화연구와는 다르며 한 파룬궁 수련자로서 심신수련에서 승화된 후의 새로운 인식을 말한다.

흔히들 “여산의 진면목을 모르는 이유는 몸이 산속에 있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수련은 인류의 기존 지식 전부를 초월한 것으로서 수련을 제대로 인식하자면 진정으로 수련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저 짙은 안개 속에서 꽃을 감상하는 것처럼 흐릿해서 만질 수도 없고 제대로 알 수도 없다.

신불(神佛)이 이끄는 수련의 길을 따라 위로 신(神)을 추구해야 하는데 신불은 바로 인간세상에 있다.

(계속)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118455

정견망

글/ 유여(劉如)


1. 만년에 가부좌하고 도를 닦다

고경성은 《이시진전》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내가 어릴 때 선생에 관한 일화를 들은 적이 있는데 부모님께 효성스럽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었으며 또 덕행이 아주 깊으셨다. 만년에는 증조큰할아버지를 따라 노닐면서 배웠는데 책을 읽으면 해가 뜨면 시작해서 해가 질 때가 되어서야 휴식하셨다. 밤에는 정좌(靜坐)하고 도(道)를 닦으셨다. 때문에 어려서부터 자신을 신선으로 자처한 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물론 이시진이 남들이 모르는 상황에서, 부친이 꿈에 본 신선(역주: 철괴리)으로부터 의술을 전수받았는지, 또한 그가 어릴 때부터 신선으로부터 가부좌와 수도(修道)의 가르침을 받았지만 만년에 들어와서야 사람들에게 도술(道術)을 지닌 것이 발견되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본인만이 알 수 있을 뿐이다.

2. 책을 써서 신선의 의술을 남기려 하다

하지만 이시진은 《본초강목(本草綱目)》외에도 《기경팔맥고(奇經八脈考)》와 《빈호맥학(瀕湖脈學)》 등 경맥(經脈)에 관해 연구한 여러 권의 책을 남겼다. 고대에 수련계(修煉界)에서는 늘 언급되어왔지만 일반 의사들이 육안으로 볼 수 없었던 기경팔맥(奇經八脈)을 논술하면서 그는 의사가 만약 이 부분의 의술을 모른다면 진정으로 병의 이치를 알고 병 치료를 할 수 없다고 보았다.

때문에 그는 《기경팔맥고》에서 의사가 되거나 신선을 수련하려는 자는 반드시 기경팔맥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의사가 이것을 모르면 병의 기전을 탐구할 수 없고 신선이 이것을 모르면 화로(火爐)와 정(鼎)을 안치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단락에서 그는 한 가지 천기(天機)를 드러냈는데 그것은 바로 고대의 의술은 원래 수도자(修道者)에게 유래한 것으로 본래 일체였다. 다만 수련 경계(境界)의 차이에 따라 도(道)를 모르는 사람은 오직 속인 층차의 일반 의술에 머물러 심층의 병리(病理)를 장악한 신의(神醫)가 될 수 없었을 뿐이다.

인체수련은 속인의 경계를 초월할 수 없기에 기경팔맥의 진상을 볼 수 없으며 이 부분에 존재하는 다른 공간의 경맥을 볼 수 없어 인체의 신비를 장악할 수 없다. 때문에 의사가 도를 닦지 않으면 진정한 지식[真知]을 알기 어렵고 병리(病理)를 명확히 탐구할 수 없다. 또 수도하는 사람이라도 안정설로(安鼎設爐)와 연단(煉丹)의 원리와 진법(眞法)을 알기 어렵다. 그러니 일반인이 진기(眞機)를 얻지 못하면서 제멋대로 단(丹)을 연마하고 단을 복용한다면 속인은 이 로 인해 기로(岐路)에 잘못 빠지거나 중독되어 몹시 위험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경팔맥은 대체 어찌 된 일인가? 그는 《빈호맥학》의 한 단락에서 북송의 도인 장자양(張紫陽)이 기경팔맥에 관해 설명한 것을 인용했다.

​“자양팔맥경에 기록된 경맥은 의가들의 설명과는 좀 다르다. 하지만 ‘내경수도(內景隧道)’는 오직 반관자(反觀者) 만이 밝게 관찰할 수 있는 것으로 그 말에는 분명코 잘못이 없다.”

이시진은 이 단락에서 신선 수련자가 도를 얻은 후 관찰한 기경팔맥과 일반 의사가 인지하는 것이 왜 다른가하는 비밀을 설명하면서 수도(修道)하는 사람은 다른 공간의 눈을 통해, 다시 말해 도를 닦은 후 열린 천목(天目)을 통해(마치 스캐너처럼) 직접 자신의 경맥을 반관(反觀)하고 밝게 관찰할 수 있다고 했다.

천목의 층차가 다르면 보는 것 역시 다르니 일반인의 육안으로 어찌 볼 수 있겠는가? 때문에 온갖 설이 분분하고 역대 의가들 사이에 정해진 결론이 없었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으로 장자양의 주장이 옳다고 인정했다. 이것은 그가 이미 수련을 통해 기경팔맥의 진실한 모습을 직접 봤음을 입증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책들은 대부분 실전(失傳)되었고 고층(高層)의 의술 역시 자연스레 실전되었다. 아마 인간세간을 초월한 학문과 기술이라 보통의 덕행(德行)을 지닌 속인에게 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그가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속인의 층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본초강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대한 저서는 세계적으로 ‘고대의학의 백과전서’로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그속에 담긴 방대한 의학지식만으로도 후세인들의 찬사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이시진이 당시 후인들에게 남기려 했던 것일지 모른다. 이 거대한 저서를 완성한 후에 다시 말해 그의 생애에서 자신의 사명을 완성한 후에 그는 신선이 되어 떠나갔다(仙逝).


원문위치: zhengjian.org/node/270474

정견망

글/ 유여(劉如)


이시진이 출생할 때 그 이름의 내력과 관련해 아주 신기한 전설이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명나라 때 유명한 문호(文豪) 고경성(顧景星)이 쓴 《이시진전(李時珍傳)》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시진이 어려서부터 신선을 자처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1. 돌멩이가 말을 하고 신선이 이름을 주다

이시진은 명나라 무종(武宗) 정덕(正德) 3년(1518년) 7월 3일 호북 기춘현(蘄春縣)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의술에 종사했으며 부친인 이언문(李言聞)은 당시 유명한 의사로 일찍이 황궁 태의원(太醫院)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시진이 태어나던 당일 이언문은 웬일인지 마음이 울적해져서 우호(雨湖)로 낚시를 나갔다. 평소 운이 좋으면 꽤 많은 수확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몇 번이나 그물을 던졌지만 모두 허탕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물을 던졌는데 마침내 묵직한 느낌이 들어 대어를 낚은 것이라 여겨 기뻐했다. 하지만 막상 그물을 건져보니 큰 돌멩이 하나만 들어있었다.

이언문이 순간적으로 상심해서 탄식하며 말했다.

“돌멩이야 돌멩이야 나는 너와 무슨 원수진 게 없는데 오늘 왜 나를 농락하며 내게 시름을 더하는 것이냐?”

그런데 뜻밖에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돌멩이가 말을 한 것이다.

“돌멩이가 기쁜 소식을 전해주러 왔습니다. 당신 아내가 곧 해산하는데 무엇을 또 구한단 말입니까?” 그러면서 돌멩이는 자신을 우호의 신(神)이라고 소개했다.

이언문이 깜짝 놀라 급히 집에 돌아가 보니 집에서 마침 이시진이 태어났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진귀한 돌멩이란 의미로 ‘석진(石珍)’이라 지었다.

[역주: 석진(石珍)은 시진(時珍)과 중국어 발음이 같다.]

한편 이언문은 또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팔선 중 철괴리(鐵拐李)가 눈앞에 나타나 기쁘게 말했다.

“시진(時珍) 시진, 백병을 치료할 수 있으니, 내 뛰어난 제자로 나의 명성을 전하리라.”

만약 이 전설이 사실이라면 이시진의 이름과 의사로서의 삶은 모두 신선이 정해준 것이고, 그의 의술 역시 편작(扁鵲)과 마찬가지로 신선이 전수해준 셈이다. 또 전설에서 어떻게 말했든 그 자신이 어려서부터 신선을 자처했으며 만년에 가부좌하고 도를 닦은 것은 진실이다.

2. 흰 사슴이 방에 들어와 스스로 신선을 자처

고경성은 자신이 쓴 《이시진전》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이시진은 자가 동벽(東璧)이고 기주(冀州) 사람이다. 조부는 모모이고 부친은 언문인데 대대로 효성스럽고 우애가 있었으며 의업에 종사했다. 시진이 출생하자 흰 사슴이 방에 들어왔고 보라색 영지가 뜰에 나타났으며 어려서부터 신선을 자처했다.”

즉, 이시진이 태어날 때 “흰 사슴이 방에 들어왔고 보라색 영지가 뜰에 나타났으며 어려서부터 신선을 자처했다”고 기록했다. 전설에 따르면 흰 사슴과 보라색 영지는 모두 신선계(神仙界)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처럼 이시진은 어려서부터 스스로 신선이 세상에 내려온 것이라고 여겼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아마 여러분들이 책을 쓴 고경성이 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이시진 가정사의 이런 비밀스런 일까지 알고 있을까 궁금할 것이다. 고경성은 이시진과 동향인 호북 기춘현 사람으로 대대로 선비집안에서 태어났다. 증조부인 고궐(顧闕)과 동생인 고문(顧問)은 모두 멀리까지 이름을 떨친 유명한 성리학자이자 교육자였으며 고문은 또 한때 이시진의 스승이기도 했다.

게다고 고경선 본인 역시 당대의 기재(奇才)로 평생 430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이중 122권이 《사고전서(四庫全書)》에 편입되었다. 그는 선조들과의 이런 인연 때문에 이시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당시 《이시진전》을 지을 때도 이시진 및 그 일가족의 상황에 대해 아주 상세히 알고 있었고 또 《본초강목》 전서(全書)를 통독한 바 있다. 그는 이시진을 몹시 존경했으며 글을 쓰는 태도 역시 아주 근엄했다.(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0423

정견망

글/ 유여(劉如)

명나라 때 대(大) 의학자 이시진(李時振)은 본초학에 관한 방대한 서적인 《본초강목(本草綱目)》을 통해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사람들은 그를 존중해 ‘약성(藥聖 약의 성인)’ 또는 ‘의성(醫聖 의학의 성인)’이라 부르며 역대 신의(神醫)인 화타, 편작 및 장중경과 더불어 중국 고대의 4대 명의(名醫)로 꼽는다. 그는 약물학에 대한 조예가 깊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 의술도 뛰어나서 민간에 ‘관 뚜껑을 열고 사람을 살리고’ ‘죽어가는 사람을 기사회생’시킨 일화들이 널리 전해지고 있다.

1. 관 뚜껑을 열고 사람을 구하다

중국 고대에 죽은 사람이 일단 관 속에 들어가 장지로 보내면 일반적으로 더는 관을 열어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시 보면 아주 불길하다고 여겼고 동시에 또 망자(亡者)에 대해서도 불경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아에서 시신을 검사하는 경우가 아니면 여간해서는 관 뚜껑을 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시진은 감히 장례 행렬을 멈추고 죽은 사람을 살린 적이 있다.

어느 날 이시진이 호구(湖口)에 갔는데 공교롭게도 한 무리 사람들이 막 관을 메고 장지로 가 고 있었다. 이건 본래 무슨 드문 일이 아니지만 그는 예민하게도 관속에서 끊임없이 밖으로 피가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곧장 달려가서 자세히 관찰해보니 흘러나온 피는 어혈(瘀血)이 아닌 선혈(鮮血)이었다.

깜짝 놀란 이시진은 자신의 안위따위는 돌보지 않고 장례행렬을 가로막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빨리 멈추시오, 관속에 든 사람은 아직 살릴 수 있소!”

여러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는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누구도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관 뚜껑을 여는 것은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시진은 여러 사람들이 주저하는 것을 보고는 사람을 살리자면 서둘러야 했기에 반복해서 권고했다. 그러자 마침내 상주가 그럼 한번 관을 열어보자고 했다.

원래 관속에는 난산으로 죽은 임산부가 누워있었다. 이시진이 먼저 안마를 하고 가슴 부위 오목한 곳에 침을 놓았다. 잠시 후 관 속에 누워있던 부인이 가벼운 신음을 내더니 마침내 정신이 돌아왔다.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환호성을 질렀다. 잠시 후 이 여인은 순조롭게 아들을 낳았다. 이에 이시진은 은침(銀鍼) 하나로 두 사람의 목숨을 살렸고 그가 기사회생의 의술을 지녔음이 단번에 널리 퍼졌다. 이때부터 그는 화타와 마찬가지로 민간에서 더욱 추앙받는 신의가 되었다.

2. 산 사람의 사망을 예단하다

소위 산 사람을 죽었다고 진단한다는 말은 멀쩡히 살아 숨 쉬는 사람을 진단해서 그 사람이 언제 죽을지 예언한다는 뜻이다. 이런 능력에 대해서는 아마 들어본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일찍이 신의 편작과 화타는 모두 이런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 병을 치료하다가 진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시진은 당시 아무 병도 없이 멀쩡히 살아 있던 사람의 가족들에게 그가 6시간 안에 사망한다고 예고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전설에 따르면 이시진이 관 뚜껑을 열고 두 모자를 살려낸 후 모두들 그가 어디에서 진료한다는 말만 듣고는 찾아오곤 했다. 심지어 병이 없는 사람들도 모두 그의 명성을 듣고 한번이라도 신의의 얼굴을 보려고 몰려들곤 했다.

어느 날 한 약방집 사장 아들이 카운터에서 실컷 먹고 마시다가 죽은 사람도 기사회생시키는 이시진이 마침 병을 봐준다는 말을 듣고는 호기심이 생겨 자신도 구경하러 갔다. 그가 어렵게 여러 사람들을 뚫고 지나가 마침내 이시진 앞에 다가가서는 물었다.

“선생님 보시기에 저는 어떤 병이 있습니까?”

이시진이 눈을 들어 그를 자세히 바라보니 이 사람의 기색(일반인은 보아낼 수 없었고 본인도 그 어떤 신체적인 고통이 없었다)이 나쁜 것을 보고 급히 진맥을 했다. 잠시 후 아주 애석하다는 듯이 탄식하며 말했다.

“젊은이, 애석하게도 아직 한창 나이이긴 하지만 앞으로 6시간을 넘기지 못할 걸세.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나. 그래야 가족들이 자네를 찾으러 다니는 수고를 덜 수 있겠네.”

이때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이시진의 말을 듣고는 믿기지 않아 했다.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 젊은이에게 어찌 금방 죽는다는 저주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모두들 의사가 이 사람을 놀라게 했다고 비난했다! 약방집 아들은 더욱 화를 내며 욕을 그치지 않았다. 나중에 여러 사람들이 말린 후에야 겨우 씩씩거리며 떠났다.

하지만 누가 생각이나 했으랴! 그는 집에 돌아온 후 6시간이 못되어 정말로 죽어버렸다. 사람들은 그제야 반응했고 놀라서 사망원인을 물어보았다. 원래 이 사람이 과식한 후 몸을 함부로 움직여 창자가 끊어졌던 것이다. 내장이 손상을 입었기 때문에 의사로서도 치료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이 일로 인해 사람들은 이시진의 신기한 의술에 더욱 경탄과 탄복을 금치 못했다. (계속)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70385

정견망

【정견망】

스베틀라나(Svetlana)는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올해 48세 여성이다. 그녀에게는 지금 유치원 교사라는 새로운 직업이 있다. 아마 그녀 자신도 이런 일을 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겠지만 아마 운명 속의 한차례 필연이 그녀로 하여금 생명이 복잡한 데서 순진(純眞)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녀는 정신적인 추구에 집착하는 사람으로 도를 찾기 위해 온갖 우여곡절을 다 겪었다. 그녀는 일찍이 수도원에 들어간 적이 있고 또 대학에 진학해 심리학을 배우기도 했다. 나중에는 또 인도로 건너갔는데 그녀가 이렇게 한 목적은 오직 생명의 답안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끊임없이 배우고 찾았으며 한때 기업 연수원의 강사, 요가 강사를 했고 심지어 나중에는 일부 추종자들까지 있었다. 하지만 그녀 자신은 어땠을까? 내심 깊은 곳에서 여전히 귀의할 곳을 찾지 못했고 또 그녀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 초조와 미망이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처럼 늘 따라다녔다.

그러다 2009년에 이르러 우연히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만난 그녀는 마침내 생명이 회귀할 수 있는 곳을 찾게 되었다. 활연히 크게 깨달은 그녀는 “이것이야말로 내가 찾던 것이다! 나는 심령이 승화되는 수행방법을 찾기 위해 무려 17년이나 찾아다녔다!”라고 외쳤다.

평생 도를 찾아 헤매다 끝내 생명이 회귀하는 길을 찾은 러시아 수련생 스베틀라나

그녀의 생명은 대법으로 인해 개변되고 환골탈태했다. 그녀는 어둠에서 철저히 벗어나 밝은 태양으로 향했고 단번에 사는 게 즐겁고 가뿐해졌다.

그녀는 “지금 대법은 제 내심의 가장 큰 정신적 지주랍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법을 찾는 과정에 그녀는 대체 어떤 일들을 겪었던 것일까?

1. 역경 속에서 법을 찾다

스베틀라나는 러시아 출생으로 모친은 엔지니어고 부친은 건축업에 종사했는데 전형적인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전통적인 여성교육을 받았고 삶과 가정을 사랑했던 그녀는 19세에 결혼했다. 하지만 첫 번째 결혼은 몹시 불행했다. 남편은 퇴역군인이었는데 아프가니스탄에 참전한 후 전쟁후유증으로 성격이 난폭해졌고 화를 잘 냈다. 때문에 가정 분위기는 늘 긴장되었고 마치 살얼음판 위를 딛는 것 같았다. 그녀가 비록 남편 일을 최대한 도와주며 회계사며 비서 역할도 하면서 남편의 압력을 줄여주기 위해 노력해 결국 중소기업 사장으로 만들긴 했지만 여전히 좋은 결과를 얻진 못했다. 젊은 그녀가 늘 발버둥치고 아무리 노력하고 희생해도 남편은 여전히 폭군처럼 굴었다. 고통과 실망 속에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운명을 바꾸기 위해 정신적으로 의지할 곳을 찾았다.

“그때 저는 결혼에 실패했다고 생각해서 수도원에 들어가려 했죠. 의식적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진지하게 ‘성경’을 연구했어요.”

그녀는 종교가 결혼에 실패한 자신을 구원할 방편이라 여겼다. 그녀는 종교로 들어가서 신의 속죄를 받고 정신적인 고통에서 벗어나 마장(魔障)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스베틀라나는 수도원에 들어가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교회에 가서 참회했고 자신의 이해에 따라 기독교 계율을 준수하려 노력했다. 그녀는 아주 진지하게 학습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녀의 심령은 종교에 교화되는 중에도 개선되지 못했다.

“그때는 정말 두렵고 초조했어요. 교회에서 때로는 일종의 선량하고 자비로운 상태를 느낄 수 있었지만 제가 보기에 종교의식의 배후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종교를 배웠지만 마음속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끊임없이 사고하면서 자신에게 고통을 초래한 원인을 찾고자 했다. 이것이 근본문제였다. 그녀는 답안을 얻지 못했고 이에 심리학을 배워보기로 했다. 남편은 그녀가 공부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했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 그녀는 남편을 떠나야 했고 결국 이혼으로 끝이 났다.

스베틀라나는 러시아 교육대학에 들어가 낮에는 일하면서 밤에 공부를 했다.

1990년대 초기의 모스크바는 유럽이나 미국과 마찬가지로 동양 철학사상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고 영성에 대한 탐구, 가부좌, 요가, 태극권, 기공 등 동양적인 것들이 서양인들을 사로잡았다. 신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더 이상 전통적인 하나의 종교형식 내부에 국한되지 않았다. 이런 개방적인 사상은 ‘새로운 시대사상’이라 불렸다. 이 기간에 그녀는 대량의 철학서적을 읽게 된다.

“처음으로 요가를 알게 되었고 또 아주 많은 책을 읽었는데 ‘마하바라타’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녀는 독서를 통해 동양문화에 심취했다. 마하바라타는 인도의 유명한 서사시로 인도철학과 종교에 큰 영향을 끼친 책이다. 여기서 그녀는 동양철학사상을 연구하고 실천하기 시작했으며 원래의 종교에 대한 탐색을 내려놓았다.

“수많은 수도원을 다녀본 후 더 이상 가지 않기로 했어요. 제가 본 많은 종교들은 다 좋지 않았고 너무 부패했거든요. 꿈속에 교회에서 목사들이 어떻게 종교의식을 돈으로 계산하고 교회에서 필요한 수입을 판매하는지 봤어요. 저는 또 지구가 유독한 기체로 가득 찬 것을 봤는데 오염과 중독을 피하자면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어요. 저는 사람들 속에는 인류가 아닌 것들이 다니는 것도 봤어요….”

그녀는 일반인이 느낄 수 없는 것들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녀는 아주 민감하고 영성이 풍부했다. 이것이 그녀로 하여금 더욱 제고할 방법 정신을 승화시킬 것을 찾게 했다. 그녀는 심리훈련을 시작했다.

이 심리훈련은 개인교습이 필요했다. 이곳에서 그녀는 절실하게 동양신앙의 진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또 마침 이 새로운 시대사조에 올라탔다. 그녀는 한마음으로 정신적인 제고방법을 찾고 싶었다. 7년의 실천을 거쳤지만 결과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았다. 그녀는 이 길도 근본적으로 통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참을성이 아주 강해서 마치 이런 고통을 겪기 위해 태어난 것 같았다. 정신적인 것을 찾기 위해 그녀는 생활의 모든 향수를 포기할 수 있었다.

그때 그녀는 이미 상당히 안정적인 직업이 있었는데 기업연수원 강사로 활약했다. 기업 직원과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업무며 수입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영성(靈性)에 대한 추구가 줄곧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저는 늘 생각했어요, 나는 아직 가장 높은 수련법문과 최고의 사부님을 찾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론 희망이 있었죠, 반드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2007년 그녀는 인도로 갔다.

2. 인도에서

“저는 계속 스승님과 법을 찾았고 쿤달리니 요가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쿤달리니 요가로 유명한 스승의 강습반에도 참가했어요. 나중에는 제가 쿤달리니 요가를 가르치는 스승이 되었죠.”

인도에서 요가를 배우는 동시에 그녀는 종교도 연구했다. 그녀는 종교 연구에 집착하는 가운데 유명한 스승들과 요가사들의 각종 강습반에도 참가했다.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그녀는 또 실망해야 했다.

“저는 명리와 금전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보았고 허위라고 느껴졌어요. 제가 보기에 정신적인 추구란 돈을 중시해선 안 되거든요. 그곳에서 저는 또 미망에 빠져 실망하고 낙담했죠.”

인도는 불교가 탄생한 곳으로 세계 각국의 구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스베틀라나는 그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자 조용한 곳을 찾아가 머무르고 싶었다. 자신에게 도피할 곳이 필요함을 의식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녀가 실의에 빠져있을 때 또 강도를 당해 돈과 여권 귀국할 비행기 표까지 모조리 강탈당했다. 이게 무슨 암시일까?

그날 그녀는 빈털터리가 되어 뉴델리로 돌아왔고 우연히 부근에 있던 중앙공원에서 대만에서 온 한 군악대를 보게 된다. 그녀가 그들의 음악에 이끌려 다시 보니 악단 사람들이 한 가지 공법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몹시 평온하고 자비로운 마당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가 현수막을 보니 위에 ‘천국악단(天國樂團)’이라 쓰여 있었다. 이 장면이 줄곧 그녀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3. 대법을 얻다

스베틀라나는 도를 찾고 법을 얻으려는 마음이 아주 강했다. 그녀는 전후 2년에 걸쳐 인도에서 공부했고 요가 강사가 되었다. 그녀는 또 이집트, 터키 등에서 현지 강습회를 개최했으며 요가연합회에서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쿤달리니 요가학습반에서는 내부규정상 참가비를 받는 것이 필수였다. 하지만 요가 강사로서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자신마저 답안을 찾지 못했는데 또 어떻게 이 학생들을 이끌 수 있겠는가? 그녀는 늘 자신이 학생들을 기만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때 제 마음속은 혼란스러웠죠. 한 공법이 다른 공법을 교란했고 개인생활도 그리 순조롭지 못했어요.”

그 한 해 그녀는 아주 엉망이었고 늘 울고 싶었다. 내심은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했다. 아주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고 다만 하늘에 대고 기도하며 구했을 뿐이었다. ‘왜 저는 진정한 스승을 만나지 못하는 겁니까?’ 나중에 그녀는 공능이 있는 한 수도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그의 몸에 아주 정직하고 깨끗한 마당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제6감이라고 불리는 영감이 아주 예민했기 때문이다.

“제가 보니 당신 몸에서 파란색 빛이 발산되네요. 단번에 흥미가 생겼는데 저랑 말씀 좀 하시겠어요?”

그는 승려였는데 사람들은 베다 승려라 불렀다. 그가 있는 수도원은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녀가 그곳까지 찾아가자 그는 자신이 사원과 스승을 소개시켜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들에는 흥미가 없었다.

“지구상에 진정한 상사(上師)가 계시나요?”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는 아주 진지하게 그녀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말했다.

“한분을 알아요. 그분보다 높은 사람은 없고 그분은 진정한 선생님입니다. 그분의 수준은 내가 알 수 있는 게 아니고 무변(無邊)한 상사랍니다.”

“그분이 누구죠””

“리훙쯔(李洪志)!”

리훙쯔? 그녀는 전에 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고 그녀에겐 너무나 새롭고 낯설었다. 그녀는 작은 종이 위에 이 이름을 적었다.

“또 ‘전법륜(轉法輪)’이란 책이 있어요.”

스베틀라나의 예상과 달리 이 수도사는 사원에서 비밀리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고 있었다. 그의 상사도 그의 이런 비밀을 몰랐다. 그는 또 그녀에게 수도원의 승려들이 많은 인도 공법의 수련을 섞었고 서로 다른 서적을 읽는다고 했다. 그는 비록 수많은 인도 수련방법과 도가의 방법도 배웠지만 그 어느 종교도 사람을 구하지 못했고 오직 한 가지 길 바로 파룬따파 뿐이라고 했다! 그의 말은 아주 의미심장했고 또 그녀의 마음속 깊이 들어왔다.

집에 돌아온 후 그녀는 종이에 적은 것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았고 마침내 ‘전법륜’을 찾아냈다. 이 책은 이미 약 40여개 언어로 번역되어 있었고 또 독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다 공개되어 있었고 돈을 받지 않았으며 인터넷에 교공(教功) 비디오까지 공개되어 있었다.

그녀는 곧 ‘전법륜’을 읽었고 단번에 빨려 들어갔다. 책 속에는 그녀가 묻고 싶었지만 답을 얻지 못했던 모든 문제들에 대한 답이 있었고 그녀로 하여금 마치 제호(醍醐 아주 좋은 음료수)로 관정(灌頂)한 것과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이거야말로 제가 찾던 거였죠! 저는 심령을 승화하는 수행방법을 17년이나 찾아왔거든요.”

그녀는 감탄했다! 그동안 겪어온 우여곡절과 인생에서 가장 좋은 17년을 그녀는 고생스럽게 법을 찾고 도를 구하느라 육체적인 고생과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 마침내 대법을 찾은 것이다! 그녀는 고통의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파룬따파의 가르침에 대조해 그녀는 자신의 문제를 찾아냈다.

“저는 제게 많은 집착과 옳지 않은 관념들이 있음을 발견했어요. 저는 아주 이기적이고 경쟁적이며, 화를 잘 내고, 관용하지 못하며, 민감하고, 강렬한 색욕의 집착이 있음을 알게 되었죠. 한번은 제가 내 몸에 있는 집착을 써내려갔는데 숫자가 약 80~90개에 이르렀어요, 닦아 없애야 할 집착이 이렇게 많았던 거죠.”

그녀는 수련이란 생활 곳곳에서 오직 ‘진선인(真·善·忍)’ 원칙에 따라 해야만 비로소 높은 층차로 수련할 수 있고 심지어 초능력이 나타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또 ‘불이법문(不二法門)’의 도리를 분명히 알게 되었고 종전에 수련했던 것들을 모두 내려놓아야 했다. 이전의 공법을 내려놓기란 쉽지 않았지만 그녀는 결심을 내리고 요가반 문을 닫아버렸다.

“대법에 진입하려면 진정으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명예와 이익과 감정에 대한 집착이었죠. 저는 이것이 제 생명에서 가장 중요한 한걸음이자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때부터 시작해서 진정으로 정신적 승화를 느낄 수 있었고 심신이 아주 가벼워졌어요.”

그녀는 이렇게 순정(純淨)한 마음으로 단호하게 대법수련으로 걸어 들어왔고 이것은 또한 그녀로 하여금 대법의 초상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했다.

“처음 수련할 때부터 저는 파룬(法輪)이 뱃속에서 도는 것과 또 다른 곳에서 도는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어요. 저는 선생님께서 제 뱃속에서 흑색 물건을 꺼내시는 것을 보았어요. 한번은 척추 뼈가 어떻게 제자리를 잡는지 들을 수 있었는데 황금색 에너지가 제 척추를 뚫고 내려왔어요.”

소업과 신체 청리는 대법 수련 중에서 바로 신체를 정화하는 것이다. 그녀의 몸에서도 진실하게 표현되어 나왔다. 수련을 시작하자마자 그녀는 곧 심한 두통과 구토 증상이 나타났다. 그녀는 사부님께서 자신을 관할하시는 것임을 분명히 알았다. 그녀의 신체 정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너무나 많은 문파의 것들로 들어차 있었다.

“그날 밤 저는 내내 구토했고 온전히 두 발로 서 있을 수 없었어요. 너무 어지러웠고 침대에서 일어나려 하자 방안이 흐릿해서 보이지 않았고 빙빙 돌면서 메스껍고 구토가 났어요. 그 후 잠에 빠졌죠. 그리고 또 계속해서 선생님의 설법을 들었어요. 다음 날 제 상태는 점차 호전되었고 조금씩 마시거나 먹을 수 있게 되었어요. 또 하루가 지나자 저는 몸이 아주 가볍고 청명한 것을 느꼈는데 사부님께서 제 내장을 청리해주신 것을 느꼈죠. 그 후 저는 전신에 힘이 넘쳐났고 또 아주 경쾌한 느낌이 들었어요.”

일체가 다 진실이었다. 몸이 개선되었고 정신도 활달해졌으며 그녀는 정말로 변했다. 주변의 친척과 친구들도 모두 그녀의 변화를 볼 수 있었다. 모두들 그녀가 아주 친절하고 아주 평온하며 아주 인내심 있고 남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 변모했다고 했다. 그녀가 수련을 했기 때문에 친지들도 파룬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파룬궁에 가까이 다가왔다. 모두들 자발적으로 서명하고 중공의 파룬궁 박해를 비난했다.

그녀의 수련은 완전히 정면적인 반응을 이끌어냈고 모든 이들이 그녀를 지지했다.

“전에 저는 늘 인내하지 못하고 정서가 불안했어요. 이기적이고 자신만 알았으며 나태해서 가정에서도 모순과 충돌을 가져왔어요. 지금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부족을 찾고 또 고치고 있어요.”

2010년 그녀가 법을 얻은 지 9개월 후 그녀는 미국 뉴욕에서 열린 국제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에 참석했다. 이것은 그녀가 처음으로 이런 대형법회에 참가한 것으로 6천여 명의 세계 각지에서 온 파룬궁 수련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녀에겐 평생 잊기 힘든 일이었다.

“제 기억에 그 법회에서 수련생들의 교류를 듣던 중 갑자기 극히 거대한 자비를 느꼈고 눈물이 단번에 쏟아져 나오며 제 마음이 확장되는 것을 느꼈어요. 5분 후 사부님께서 나타나셨고 회의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났습니다. 오랫동안 찾아오다 마침내 위대한 사부님과 위대한 법을 만나게 된 거죠. 사부님께서 단상에서 설법하실 때도 제 눈물은 줄곧 멈추지 않았어요.”

“저는 운이 좋아서 여러 번 사부님을 뵈었어요. 세세한 것까지 모두 기억할 수 있는데 그것은 제 마음속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입니다. 저는 사부님의 무한한 자비를 느낄 수 있었죠. 매번 뵐 때마다 저는 늘 한 가지 이야기를 쓰곤 했는데 지금은 다 제 마음속에 저장해놓았어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부님 저를 지옥에서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진법(眞法)을 얻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리고 당신의 제자로 받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수련에 정진해 제 서약을 이행하겠습니다.’라는 것입니다.”

스베틀라나의 마음은 갈수록 더 순정해졌다. 그녀는 매일 업무에서도 늘 순진함을 품고 자신의 인내, 선량과 사랑을 펼치려 노력하고 있다. 유치원에서 일하는 가운데 아이들은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의 따스하고 선량함으로 또 많은 학부모들의 신뢰를 얻었다. 그녀 자신의 가정도 더 화목해졌고 친지들도 그녀로 인해 파룬따파에 대해 아주 좋은 인식을 갖게 되었다.

스베틀라나는 늘 자신은 행운아이며 진정으로 대법 속에서 되돌아 올라갈 수 있다고 느낀다.

(명혜망에서 전재)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19/11/2/395325.html

명혜망

글/ 중국 둥베이(​東北) 대법제자

[밍후이왕] 내가 이 진실한 이야기를 쓰려니 감사의 눈물이 쏟아졌다. 가슴 아프고 두려웠던 장면이 눈앞에 떠올랐다.

나는 1996년에 대법 수련으로 들어왔다. 그전에는 몸이 약하고 병이 많아서 어디에 가든지 위장병, 불면증, 간담병(肝膽病) 치료 약과 안정제, 소염 이담제 등 여러 가지 약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대법을 수련한 후에 여러 가지 병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완전히 사라졌으며, 모든 일에는 인연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인생의 의미를 ‘반본귀진(返本歸真)’으로 알게 되었으며,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 되는지를 알게 되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비범한 과학이며, 진선인(真·善·忍)은 보편적인 가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온 가족이 모두 기뻐했다.

우리 가족이 더욱더 감사하는 것은 파룬따파가 13살 외손자를 구해준 것이다! 이것은 정말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식구가 혜택을 본다”[1]는 말씀과 같다.

외손자가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다. 2019년, 아이가 5학년이 되었을 때부터 비정상적인 상태가 나타났다. 수업을 빼먹거나 학교에 가기 싫어하며 제시간에 숙제를 다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대들거나 친구들과 자주 충돌이 생겨서 선생님이 늘 딸에게 전화했다. 딸은 학교 선생님이 전화한 것을 보고 선뜻 받지를 못했다. 아이가 겨우 학교에 가더라도, 사흘 고기 잡고 이틀 그물 말리는 식으로 가다가 말다가 했기에 학교에 보내는 것이 매일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아이가 학교 입구에 도착하면 도망갈까 봐 겁이 났는데, 잡아당기려야 당길 수도 없었고, 심지어 책가방과 교복을 학교 근처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했다. 학교에 가려고 하지 않았고 집에 있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아무리 일깨우고 달래도 소용없었고,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나중에 우리는 아이의 행동이 점점 이상해지는 것을 발견했다. 욱하고 화를 잘 냈으며, 시도 때도 없이 미친 듯 소리 지르고 울며 떠들었다. 가끔은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멀지 않은 큰 상점에 가서 놀고 상점의 스크린 앞에서 애니메이션을 봤다. 상가의 휴대전화기 전문점에 가서 휴대전화기 샘플을 가지고 놀거나 서점에 가서 책을 읽거나 하면서, 온종일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가족들이 찾아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밤 9시에 상가 문을 닫아야 집에 돌아왔다.

아이는 집에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할 때 미친 듯 소리 지르고 심지어 사람을 때리고 욕하며 매일 새벽 3시가 좀 넘으면 일어났다. 아이가 일어나기만 하면 소란을 피워서 온 가족이 견딜 수 없었고, 이웃에게도 불편을 끼쳤다. 아이는 딸이 사 준 보온 내의를 위층에서 아래로 내던져 버렸고, 맞춰 준 안경은 내버리겠다고 말하고는 바로 내던져 버렸다. 아이를 찾기 편하도록 작은 시계를 사 주었으나, 며칠 후에 시계를 잃어버렸다. 물어보니 아이는 가족들이 자기를 쉽게 찾을 수 없도록 시계를 눈 더미 속에 버렸다고 했다.

아이는 가끔 건물에서 뛰어내리겠다거나 집을 나가겠다고 중얼거렸다. 가족들은 심신이 다 지쳐서 온종일 아이 때문에 조마조마했고, 언제 무슨 사고가 날지 몰라 몹시 두려웠다.

친지들도 아이의 상태를 걱정하면서 아이의 기분을 누그러뜨리는 방법을 마련해주며, 아이가 빨리 나아지기를 바랐다. 학교에서도 딸에게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검사받으라고 건의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등교할 때 학부모가 학교에 가서 공부를 봐줘야 한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아이를 휴학시킨 후, 아이를 데리고 전문 병원에 가서 진료받았으며, 유명한 심리 상담사를 찾아 1대1 수업을 받게 하고 심리 소통도 했다. 그 후에 친구의 소개로, 이런 학교의 환경이 아이에게 적합한지 알아보려고 전통 교육 및 중국어 교육과 관련된 교육 기관을 찾아가기도 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아이의 퇴폐적인 표정과 어두운 얼굴을 보니 정말 가슴이 찢어지고 초조했다. 온 가족이 고통에 빠졌다. 나는 이렇게 하루하루 질질 끌다가는 아이를 망칠 뿐만 아니라 가정도 망가진다는 것을 알았다.

대법제자인 나는 파룬따파만이 진정으로 이 아이를 구할 수 있고 다른 선택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대법 사부님께 이 불쌍한 아이를 구해달라고 빌었다! 나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는 글자가 새겨진 목걸이를 아이에게 걸어 주면서 “이 신기한 목걸이는 네게 행운을 가져다주고 너를 즐겁고 평안하며 건강하게 해줄 수 있다.”라고 했다. 나는 아이가 기뻐 울면서 “할머니, 저를 버리지 않으셔서 감사합니다. 어렸을 때처럼 매일 파룬따파하오를 읽고 싶었습니다.”라고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아이가 감격하여 흘리는 눈물을 본 순간 내 마음속의 돌 하나가 땅에 떨어졌다. 아이는 살았다!

이 신기한 목걸이를 걸고 나서 아이의 정서는 나날이 평온해져서, 좀처럼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을 때는 가족과 정상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었다. 집에서 매일 대법 음악 ‘보도’, ‘제세’를 틀어 놓았다. 왜냐하면, 순수하고 바르며 아름다운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정화하고 심신을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5학년 다음 학기가 되자 아이는 정상적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매일 학교가 끝나고 돌아와 숙제한 후에는 자기 엄마를 도와 집안일을 하기도 했다. 내 딸은 조그만 즉석식품 장사를 하는데, 아이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즐거이 분담했다.

아이는 이제 6학년이 되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그때의 아이는 정말 망가질 것 같았고, 아이 때문에 걱정되었다고 했다. 현재 이 아이는 문제가 없어져 초등학교를 순조롭게 졸업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매일 아이에게 마음속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성심성의껏 읽으라고 일깨워 주었다. 매일 아이를 학교 보내는 길에 함께 묵독하고, 매일 저녁에 씻고 나면 아이도 몇 번을 읽고 나서 잠을 잔다. 시간이 있으면 아이가 신전문화(神傳文化) 이야기를 듣도록 한다. 중화 5천 년 전통문화는 내포가 넓고도 심오하여, 사람의 선념(善念)을 계발하고 양지(良知)를 일깨우며, 아이에게 성실하고 신용을 지키며 너그럽고 겸손하게 양보하도록 가르친다. 우리는 가끔 아이에게 이런 전통문화를 이야기해 달라고 한다. ‘육척항(六尺巷)’, ‘학귀유항(學貴有恆)’, ‘맹모삼천’, ‘일낙천금(一諾千金)’ 등과 같은 작은 이야기는 아이의 선념을 계발해주고, 갈등을 바르게 처리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다.

아이의 변화를 보고 우리 가족과 친지들은 모두 흐뭇하게 여겼다. 병원에서 치료하지 못하고 정신과 의사가 해결하지 못하던 반항, 우울, 과다행동 장애 등의 문제는 모두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성심껏 외우는 중에 신기하게 사라졌다. 신변에서 일어난 이 신기함은 정말로 ‘파룬따파하오’를 증명했다! 대법의 비범함은 대법 사부님께서 세상을 구제하시고 사람을 구도하시는 무량한 자비를 증명했다!

이야기를 여기까지 쓰니 정말 감개무량하다! 파룬따파가 세상에 널리 전해진 지 20여 년이 되었다. 대법에서 혜택을 보고 심신 건강을 회복했다는 신기한 이야기는 비일비재하다. 정말 인간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도 우리 가족은 파룬따파에 대한 감사를 표현할 수가 없다! 사부님의 자비와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집에서 일어난 진실한 이야기가 독자 여러분을 깨우쳐주기를 바란다. 마음속에서 선량함을 지키고, 생명을 구하는 진언(真言)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마음속 깊이 새기면 당신은 평생 혜택을 받을 것이다.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10월 22일
문장분류: 문화채널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1/10/22/4327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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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法輪功)으로 잘 알려진 法輪大法(파룬따파)는 리훙쯔(李洪志)선생께서 창시하신 고층차의 불가(佛家)수련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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