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글/ 송명(宋明)

【정견망】

서문을 대신해서: 신불(神佛)은 인간세상에 있다

자고로 중국인들은 천지와 신불(神佛)에 대한 정통신앙을 지녀왔다. 이는 단순히 중국에 유구한 신전문화가 존재하기 때문만은 아니며 중국인들이 역사적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은연중에 감화되어 이미 뼛속까지 들어가 심령(心靈) 깊은 곳에서 신불을 동경하는 씨앗을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역사적으로 신불에 대한 신앙이 경건하고 또 아주 깊이 각인(刻印)되었으며 풍부하고 다차원적이었다. 정사(正史)나 야사(野史)는 물론이고 민간 전설이나 회화, 음악, 건축, 조소(彫塑) 등 인류가 생활하는 여러 방면에서 모두 셀 수 없이 많은 기록들을 찾을 수 있다.

이런 전승(傳承)은 문자 표현이나 실물(實物)의 형상 내지는 구전(口傳)의 방식으로 대대로 끊이지 않고 전승되어 왔다. 이런 전승은 비록 중공이 나라를 찬탈한 수십 년에 걸친 무신론(無神論) 선전과 중화신전문화에 대한 심각한 파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단절되지 않았다. 일단 시기(時機)가 무르익기만 하면 이 씨앗은 곧 뿌리를 내려 싹을 틔울 것이며 또 이를 계기로 아득히 오래전부터 신불의 진정한 구도를 갈망해오던 만고(萬古)의 기연(機緣)에 접속될 것이다.

현재 중국사회의 중국인들 중에는 신불에 대한 신앙표현에서 두 가지 극단적인 부패현상이 나타났다. 하나는 사원 중에서 번성하는 향연기가 마치 권력과 돈이 있는 사람들을 보우하고 재난을 막으며 승진하고 돈을 벌게 해주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중에는 소위 무신론자를 자칭하는 각급 중공관원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 민간의 대부호 등 다양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로 진흙으로 빚은 불상(佛像)에 대고 소위 향을 올리면서 사리사욕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조건으로 삼았다.

또 다른 방면에서는 완전히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면서 어디 신불이 있는가? 라고 선전하는데 이런 말을 할 때면 그 자신도 어딘지 모르게 믿음이 부족하다.

어떤 사람은 신불이 나타나는 걸 자신에게 보여주면 믿겠노라고 말한다. 사실 신불은 도처에 다 나타나지만 다만 당신이 보고도 믿지 못할 뿐이며 또한 고유의 협애한 관념의 영향으로 설사 진짜 당신 앞에 신불이 나타난다 해도 당신은 아마 다른 구실을 찾으며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현재 크고 작은 사찰에서 모두 불상을 볼 수 있는데 당신은 불상이 왜 그런 형상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아마 어떤 사람이 (천목으로)보았을 수 있는데 그리고 나서 예술형식을 통해 표현해냈을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무신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저 사람의 상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한걸음 양보해서 만약 단순히 인간의 상상이라고 하자. 그럼 왜 지금이 불상과 같은 그런 형상만을 상상하고 다른 형상은 상상하지 못하는가? 당신이 보지 못한다 하여 다른 사람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볼 수 있든 없든 신불은 늘 존재하는 것으로 이는 마치 당신이 전자기파를 보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다양한 형식으로 신불의 형상을 펼쳐낸 것 외에도 인간 세상에는 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신적(神跡)이 남겨져 있다. 이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신불의 존재를 계시해주기에 충분하다. 우리와 아주 가깝고 또 언제든 검증할 수 있는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다.

2002년 6월 귀주성(貴州省) 평당현(平塘縣) 장보향(掌步鄉) 도파촌(桃坡村)에서 글자가 적힌 바위가 하나 발견되었는데 위에는 “중국공산당망(中國共産黨亡)”이란 여섯 글자가 적혀 있었다. 권위 있는 전문가들의 고증을 통해 이 바위는 2억 7천만 년 전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현지 정부에서는 이를 ‘구성석(救星石)’으로 포장해 관광지로 만들고 관방 사이트에도 관련 소개를 볼 수 있다.

물론 이들은 다만 앞 5글자만 말했지만 관광지 티켓은 물론이고 직접 현장에 가본 사람들은 모두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6글자를 볼 수 있다. 아울러 이 6개 글자 중에 국(國)과 산(産)은 모두 번체였는데 만약 자연적으로 이런 모양으로 생성된 것이라면 이것만으로도 이미 불가사의한 확률인데 이게 신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렇게 명백한 사실을 앞에 두고서도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믿지 못한다. 어떤 상인은 이 말을 듣고 굳이 현지에 가서 조사를 해봐야 한다고 우겼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현지 정부의 관방사이트에서 진상을 본 후에도 아마 현지 정부가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조작했을 거라고 주장했다. 역사적으로 진후주(陳後主)가 작곡한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를 망국의 음악이라고 하는데 만약 그의 말대로 현지 정부 스스로 조작한 것이라면 이는 아마도 신이 그들의 손을 이용해 멸망의 징조를 드러낸 것이다.

신불(神佛)에 대한 신앙은 지금껏 모두 믿음(信)이 먼저고 깨달음(悟)이 먼저였다. 왜냐하면 인류의 기성 지식에 비해 미지의 것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가 이미 알고 있는 실증과학은 맹인이 코끼리를 만지는 식으로 물질・생명・우주를 인식하는 한가지 방식에 불과할 뿐이며 그것도 아주 협애한 것이다. 동시에 현대과학은 도덕을 인식할 수 없다는 타고난 제한 때문에 신불의 존재를 실증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신불을 인식할 수 있는 또 다른 수단은 없는 것일까? 사실 중화신전문화의 역사 속에는 일찍부터 존재해왔으니 그것이 바로 수련(修煉)이다.

사상계에서 철학자들은 인류에게 소위 3가지 궁극의 질문이 있다고들 한다. 바로 사람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곳에는 무엇을 하러 왔는가? 또 장차 어디로 가는가? 이다.

사실 사람은 신(神)이 만든 것으로 이는 세계 여러 민족의 역사 속에 모두 이런 전설이 존재한다. 가령 동방에서는 여와(女媧)가 사람을 만들었고 서방에서는 여호와가 사람을 만들었다는 등이다. 그렇다면 이는 사람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은 이곳에 무엇을 하러 왔는가? 또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 좀 더 깊이 탐구하자면 신은 대체 왜 사람을 만들었을까? 이는 마치 위 아래로 탐색해보아도 해답을 얻을 수 없는 문제처럼 보인다.

고대부터 ‘신주(神州)’라 불린 중국 이곳에서는 수많은 제왕(帝王)장상(將相), 큰 부호, 명인(名人)과 이인(異人)들 및 수많은 일반 백성들이 공동으로 중화 신전문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수련문화를 풀어내왔고 나아가 서로 다른 방면에서 오늘날 인류가 진정으로 신불을 인식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져주었다.

1992년 파룬궁(法輪功)이 기공(氣功)의 형식으로 중국에서 전해져 나오면서 사람들은 거의 최초로 수련의 내함(內涵)을 진정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이 수련인가? 수련의 역사적 연원은 무엇인가? 수련의 목적은 무엇인가? 수련과 신불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를 통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또한 이미 인류 사회 여러 방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역사현상인 파룬궁 수련(法輪功修煉)을 이끌어냈다. 지금까지 파룬궁 수련자들은 세계무대 위에 진실과 선량 및 도덕의 승화를 펼쳐보였다. 특히 1999년 중공의 잔혹한 탄압이 시작된 이후 진행된 반박해(反迫害) 중에서 평화와 이성 및 견인불굴(堅韌不屈) 대선대인(大善大忍)의 정신을 표현해내어 파룬궁 수련자들이 받드는 진선인(真善忍) 우주진리를 더 직접적으로 인간세상에 체현하고 진일보로 수련의 실질을 드러냈다.

파룬궁은 수련이지만 또 단지 수련에 불과한 것만은 아니다. 역사가 오늘날까지 걸어오면서 우리는 반드시 수련문화의 각도에서 신불과 우리의 역사를 새로 인식하고 이 관건적인 역사시각에 기연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동시에 억만 파룬궁 수련자들의 수련 실천은 또한 인류에게 새로운 수련문화를 개창해주었으니 이 모든 것들은 또 사람들이 점차적으로 알게 될 사실인 신불이 이미 인간세상에 도래한 것을 지향한다.

【중화신전수련문화를 바로 말하다】는 9편의 시리즈 문장으로 중국역사 속에서 수련문화현상을 설명하는데 특히 현재 파룬궁 수련현상을 쉽고 명백한 언어로 표현해 오늘날 사람들에게 파룬궁을 인식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하고 파룬궁을 인식한 바탕위에서 더 나아가 우리에게 심각한 계시를 가져다주는 것이 목적이다. 때문에 이 시리즈는 통상적인 학술이나 문화연구와는 다르며 한 파룬궁 수련자로서 심신수련에서 승화된 후의 새로운 인식을 말한다.

흔히들 “여산의 진면목을 모르는 이유는 몸이 산속에 있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수련은 인류의 기존 지식 전부를 초월한 것으로서 수련을 제대로 인식하자면 진정으로 수련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저 짙은 안개 속에서 꽃을 감상하는 것처럼 흐릿해서 만질 수도 없고 제대로 알 수도 없다.

신불(神佛)이 이끄는 수련의 길을 따라 위로 신(神)을 추구해야 하는데 신불은 바로 인간세상에 있다.

(계속)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118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