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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명혜망
살인은 중공의 기혈(嗜血)본성에서 발원한 것
 
 글/ 미진(覓眞)
 
[밍후이왕] 최근 한 동안, 밍후이왕에 연속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수련생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한 만행 및 세계 각지에서 이러한 만행에 대한 강렬한 비난이 보도됐고 이를 제지하는 것은 전 세계가 인권을 수호하는 주제가 됐다. 사실 중공이 파룬궁수련생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하는 폭행 외, 마싼자, 완자, 가오양 등 악명 높은 노동교양소, 수백수천에 달하는 기타 감옥, 노동교양소, 구치소, 세뇌반, 정신병원에서 날마다 파룬궁수련생을 죽이고 불구로 만드는 끔찍한 일들이 얼마나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중공이 생겨난 이래 90여년 역사에서 어느 하루인들 그가 사람을 박해하지 않고 살인하지 않은 때가 있었는가? 이는 중공 살인의 본성으로부터 결정된 것으로 중공의 실질은 세상을 해치기에 충분한 사교다.
 
중공의 몇몇 사교 우두머리가 사람을 박해하고 살인하는 이 문제를 어떻게 말했는지 보도록 하자. 마오쩌둥은 말했다. “진시황이 다 뭔가? 그는 460명의 선비를 생매장 했지만 우리는 4만 6천 명의 선비를 생매장했다. 어떤 사람은 우리를 독재와 폭정이고 진시황이라고 욕하는데 실제로 우리는 다 시인한다. 아쉽게도 당신들은 다 말하지 못했으니 우리가 더 보충해야겠다.”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을 총결할 때 말했다. ‘천하대란은 천하대치(大治)에 도달해야 한다. 7~8년 후에 다시 한 번 해야한다.’ 다시 말해서 7~8년에 한 번씩 운동을 일으켜야 하고 7~8년에 한 번씩 다시 한 무리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뜻이다.”(9평공산당에서) 살인미치광이 마오쩌둥은 역대 운동 중에서만 해도 8천만 명을 비명횡사하게 했다. 덩샤오핑은 말했다. “20만을 죽여 20년 안정과 바꿔와야 한다.” 그래서 중공은 국내외를 경악케 한 89년 ‘6.4 천안문 학살사건’을 빚어내 수천수만의 무고한 학생이 참사를 당했다. 장쩌민은 말했다. 파룬궁에 대해서는 “육체를 소멸하고 명예를 실추시키며 경제를 파탄시켜라”, “3개월 내에 파룬궁을 소멸해 버리겠다.” 장쩌민의 소멸정책으로 중공의 파룬궁에 대한 유혈박해는 14년이나 지속되고 있다. 백만을 넘는 파룬궁수련생이 불법적으로 수감, 징역, 노동교양을 당했고, 박해로 사망하거나 불구가 되거나 또는 생체로 장기를 적출당해 사망했다.
 
중공은 ‘붉은기는 선혈로 물들었다’고 말한다. 항일전쟁 때, 국민당 정부 장병들은 전방에서 처절한 싸움을 해 전쟁터에서 사망한 장군만해도 200여명이나 된다. 중공은 후방에서 농민봉기, 노동자 파업, 학생 동맹휴업을 발동하고 사고를 일으키면서 실력을 키웠다. 항일전쟁이 막 종결되자 중공은 즉시 총 끝을 국민당에 돌려 해방전쟁을 발동했고 정권을 빼앗았는데 수천수만의 국민당 장병들과 인민의 선혈로 중공의 오성홍기를 새빨갛게 물들였다.
 
중공은 전권을 찬탈한 후에도 여전히 하루도 살인의 역사를 중단하지 않았다. 역대 운동 중에서 8천만 명이 비명횡사한 것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파룬궁에 대한 유혈박해는 오늘까지도 중단되지 않고 있다. 바로 ‘9평공산당’에서 말한 것처럼 “80여년 중공 역사를 살펴보면 그가 가는 곳엔 영원히 거짓말, 전쟁, 기근, 독재, 학살과 공포가 따른다. 전통적 신앙과 가치관은 공산당에 강력히 파괴되고 원래의 윤리 관념과 사회체계는 강제로 해체되고, 사람과 사람간의 관심과 사랑과 화목은 투쟁과 증오로 왜곡됐으며, 천지자연에 대한 존경과 소중함은 맹목적인 ‘하늘땅과 싸우는’ 것으로 변했다. 이로부터 가져오게 된 사회도덕과 생태체계의 전면적인 붕괴는 중화민족 나아가 전체 인류를 깊은 위기로 밀어 넣었다. 이 일체 재난은 모두 공산당의 세밀한 계획, 조직과 통제 하에서 발생했다.” “오늘날 테러는 문명과 자유세계의 첫 번째 원수로 변했다. 하지만 공산당의 폭력 테러주의는 국가를 운반체로 규모는 더욱 거대하고 지속시간은 더욱 길며 재난은 더욱 참혹하다.” 장장 14년에 달하는 파룬궁에 대한 유혈 탄압과 박해가 바로 가장 강력한 사례다.
 
여러분은 우화 중의 ‘농부와 뱀’과 ‘동곽 선생과 이리’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독사는 필경 사람을 물기 마련이고 이리도 사람을 잡아먹기 마련인데 이는 그것들의 본성이 결정한 것이다. 중공 역시 이렇다. 사람을 박해하고 죽이는 것은 그가 일삼는 일이다. 그것이 생겨난 이래의 90여년의 살인 역사는 사람을 깨닫게 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오늘날 여전히 유치하고 선량한 그런 일부 사람들은 그가 개량하기를 기대하고 그가 민주주의를 추진하기를 기대하며, 그가 좋게 변하기를 바라는데 사실 이는 어리석은 망상이다. 중공은 바로 그 뱀과 이리와 마찬가지로 하루를 존재하는 한 그는 사람을 박해하고 사람을 죽일 것이며, 그의 잔혹한 본성은 개변되지 않을 것이다. 중공을 제거하지 않으면 국가는 안녕한 날이 없을 것이고 이 지구도 안정하지 못할 것이므로 중공에 어떠한 환상도 품지 말아야 한다.
 
기뻐할만한 것은 현재 ‘9평공산당’이란 신기한 책이 중화대지에 널리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진상을 알고 사당에서 탈퇴하는 것은 이젠 일종의 유행이 됐으며 각성한 세인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사람들은 서서히 중공이 사람을 학살하는데 이골이 났으며 그것의 사악한 본질을 분명히 알게 됐다. 중공을 철저히 해체하고 박해를 빨리 종결하자는 호소는 세계를 휩쓸고 있으며, 전 국민 반(反)박해의 형세는 기본상 형성됐다. 보시라이, 구카이라이, 왕리쥔 등 파룬궁 박해와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생체장기적출, 시신을 판매한 하늘에 사무친 죄행이 잠시 감춰졌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2심 판결이고 잠시 얼버무렸을 뿐이다. 장쩌민, 뤄간, 저우융캉 부류들은 대심판을 맞게 될 것이다. 멀지않은 장래에 각성한 중국인들이 모두 중공을 버릴 때면 이번의 유혈 박해도 끝날 것이고 인류는 진정으로 평화, 자유, 행복과 아름다움을 누릴 것이다!
 
 
 
문장발표: 2013년 9월 29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명혜망
파룬궁 단체, 인도 서부에서 진상 전파
 
 
글/ 대만 파룬궁수련생
 
[밍후이왕] 대만, 일본 등 아시아 각국 140여명 파룬궁수련생들로 구성된 천국악단이 10월 4일부터 7일까지 열리는 인도 서부의 아메 다바드가 개최한 세계정신기구 축제의 초청을 받고 개막식에 참가했다. 천국악단은 공연과 동시에 파룬궁 5장 공법을 시연했고, 주최 측 역시 매 단원들에게 최고 영예의 기념상패 및 하다를 선물해 감사를 표시했다.
 
天国乐团会场内开幕演奏,该组织的电视台也做现场直播
천국악단이 회의장 내에서 개막식 연주를 했고 주최 측 TV방송국도 현장에서 생방송을 했다.
天国乐团在该组织称为“圣地”的纪念公园内演奏,吸引贵宾拍照
주최 측의 ‘성지’로 불리는 기념공원 내에서 연주하는 천국악단. 귀빈들은 관심을 갖고 사진을 찍었다.
天国乐团在园内踩街演奏
공원 내에서 퍼레이드하며 연주하는 천국악단
与会贵宾签名支持反对活摘器官
서명으로 생채장기적출 반대를 지지하는 귀빈들
天国乐团团员接受主办单位颁发荣誉纪念牌与哈达
천국악단 단원이 주최 측이 선물하는 영예기념패와 하다를 받고 있다.
天国乐团团员接受主办单位颁发荣誉纪念牌与哈达
천국악단 단원이 주최 측이 선물하는 영예기념패와 하다를 받고 있다.
 
 
이번 활동은 박사 출신이자 이 기구의 위원장인 한 인도인이 자발적으로 요청한 것이다. 2012년 12월 천국악단의 하이데라바드 시 ‘첫 번째 영적 지도자회의’ 개막식 연주 당시 그는 매우 기분이 좋았고 천국악단의 연주를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때문에 특별히 인도 파룬궁 수련생에게 천국악단을 초청하게 하여 이 기구의 연례 대회에 참여하게 했다.
 
아메 다바드는 뭄바이 북부에 위치하고 있고 인도의 일곱 번째 대도시로 유명 관광지인 마운트 아부가 있다. 2013년 이 세계정신기구 대회가 마운트 아부산 아래의 대형 공원 내에서 개최됐는데 현장에는 수천 명의 인도인과 세계 각지에서 온 박사, 의사, 회사CEO 및 이 조직 산하의 두 대학 교수 및 중학교, 초등학교 교사 등이 모였다. 대회는 천국악단이 연주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및 ‘불은성악(佛恩聖樂)’ 연주 중에서 개막됐다.
 
천국악단은 파룬따파 수련생들로 구성됐다는 인도 파룬궁수련생의 소개와 함께 ‘쑹바오(送寶)’, ‘파룬성왕(法輪聖王)’ 등 여러 음악을 연주했다. 20여 분간의 아름다운 음악은 전체 공연장에 울려 퍼졌고, 회의 사회자는 축사를 하며 “천국악단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런 천국에서 온 사자(使者)들이 우리들에게 신성한 정보를 가져다 주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인도 파룬궁수련생들은 회의 중 귀빈들에게 파룬따파(혹은 파룬궁)는 불가상승(佛家上乘) 수련대법으로 우주의 최고 특성인 ‘진선인(眞善忍)’을 근본 원칙으로 하며, 5가지 공법은 간단하고 배우기 쉽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중국대륙에서 파룬궁수련생들이 무고하게 중공의 박해를 당하고 있다는 것과 또한 생체장기적출 진상 등을 진술했다. 회의에 참가한 많은 귀빈들은 이같이 인권을 짓밟는 일이 아직도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불가사의하게 생각했고, 또한 회의가 끝난 후 ‘생체 장기적출 반대’를 위한 청원서에 서명해 정의의 지지를 표시했다.
 
둘째 날 대회에서 천국악단 단원들은 또 무대에 올라가 귀빈들에게 파룬궁 5장 공법을 시연했으며 평화로운 연공음악이 전체 회의장에 울려 퍼졌다. 회의장 밖의 한 나이가 지긋한 박사는 현지 수련생에게 인도 어디에서 ‘전법륜’ 등 관련 서적들을 찾을 수 있는지 조급하게 문의했다. 또한 많은 귀빈들이 야외에서 천국악단 단원들이 연공하는 파룬궁 5장 공법을 구경했다.
 
参加大会的人们都很有兴趣学炼法轮功
대회 참가자들 모두 매우 흥미롭게 파룬궁공법을 따라 배우고 있다.
 
与会贵宾向乐团团员学习炼法轮功
악단 단원에게서 파룬궁 공법을 배우는 귀빈
 
대만, 일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호주 등에서 온 140여명의 파룬궁수련생들로 구성된 아태 천국악단은 이번 대회에서 정례 공연 이외에 폐막 당일도 공원에서 퍼레이드 공연을 했다. 인도 수련생은 인도에는 퍼레이드 공연 풍속이 없어 이번 천국악단의 공연이 인도인들의 견문을 크게 넓혀주었다고 말했다.
 
폐막식 당일 아침, 대회 위원장은 특별히 천국악단 단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고 영어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Falundafa is good)’라고 밝혔다. 그는 또 “어떠한 사람도 폭력을 사용해 선량하고 평화적인 좋은 사람들을 박해해서는 안 되며 악인들은 머지않아 곧 최후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단원들이 차를 타로 공원을 떠날 때 회의에 참가한 많은 스탭들은 헤어지기 아쉬워하며 끊임없이 손을 흔들었다. 두 명의 교사는 큰 소리로 끊임없이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고 과자를 선물하며 모든 파룬궁수련생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문장발표: 2013년 10월 14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대기원시보
서양 한의사(洋中醫)

삽화 권미영

 

사람의 성장에는 여러 단계가 있는 것 같다.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겼던 시절도 있었지만, 나중에 돌아보니 부끄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젊은 시절엔 자존심을 세우느라 몰라도 아는 척, 다른 사람의 충고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특히 한의학을 처음 배울 때 그랬다. 미국에 유학 온 나는 미국인에게서 한의학을 배웠다.


한번은 임상실습을 하려고 중국에 돌아간 적이 있다. 내가 녹색 꽃무늬 비닐 포장에 담긴 일제 침을 꺼내자 평생 은침(銀鍼)만 사용한 어머니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 침은 어떻게 놓는 거니?”라고 물으며 손을 내밀어 합곡혈에 침을 놓아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침관과 침을 꺼내 툭툭 쳤고 침은 가볍게 들어갔다. 침을 뽑으며 득의양양해하는 내게 어머니는 “왜 아무 느낌도 없지?”라며 당신이 쓰시던 중국 침을 꺼내셨다. 그것은 보통 사용하는 침보다 몇 배는 더 굵었고 침관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나는 중국 침은 굵어서 외국인에게 맞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며 일제(日製) 침을 고집했다.


어머니는 내게 침을 놓는 자세를 보여달라고 하셨다. 옆에 있던 작은 오빠가 침을 맞겠다고 나섰다. 아마 내가 사용하는 침의 느낌을 확인해 보고 싶었나 보다. 어머니는 양릉천에 침을 놓아보라고 하셨다. 나는 격자무늬가 그려진 예쁜 고무 밴드로 작은 오빠의 다리에 한번 댔다. 미국 한의대 학생들은 신체 사이즈를 측정하는데 이런 고무 밴드를 사용한다. 위치를 정하고 침을 놓으려 하자 어머니는 엄한 목소리로 “뼈 위에 침을 놓을 작정이냐?”라며 꾸짖으셨다.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이 자리가 바로 방금 측정한 혈자리예요. 교과서에 나오는 것과 조금도 차이가 없다고요”라며 고집을 부렸다.


조심스럽게 혈자리에 침을 놓았지만 작은 오빠는 아프다며 펄쩍 뛰었다. 어머니는 웃으셨고 나는 속으로 부끄러웠다.


어머니는 “통증은 침의 굵기보다 침을 놓는 방법에 달려 있다. 내가 시범을 보여주마”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곧바로 독일산 이침(耳針) 탐측기를 꺼내 들고는 또 득의양양하게 “이 기계는 귀에서 병이 있는 부위를 찾아낼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기계를 작은 오빠에게 시험했고 기계는 잠시 소리를 내다 내지 않다가를 반복했다. 그런데 소리가 나는 위치는 오빠의 몸 상태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오빠는 “너 설마 내가 임신했는지 확인하려는 건 아니겠지? 설사 독일과 프랑스가 연합해 생산한 기계라 해도 이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분명해”라며 빈정거렸다.  


어머니는 내게 혈자리는 모두 외울 수 있는지 물어보셨다. 나는 “외울 필요 없어요, 외국에서는 그냥 번호로 말해요. 가령 방광경에 67개의 혈자리가 있지만 모두 번호로 표시한다고요”라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딸을 책망하지 않으려고 참았지만 내 대답에 당신의 인내력의 한계를 넘은 것 같았다. ‘서양에서 유학 중인 한의사’라는 타이틀은 멋있었지만 막상 임상에서 내가 배운 것은 전혀 쓸모가 없었다.


어머니는 “너 내일 아침 일찍 병원에 나와 실습하자. 이런 서양물건은 내버려두고 한 손으로 침을 놓고 침감(鍼感)을 느끼고 침으로 보(補)하고 사(瀉)하는 것을 배우거라. 또 불 부항을 뜨고 진맥하고 설상(舌象)을 보는 법을 배우되 경험 많은 중의사를 따라 처음부터 배워야 한다. 배울 때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여겨야 한다. 사실 너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니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배워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나는 십여 년간 의료업에 종사하면서 복잡하고 다양한 질병을 마주하게 되면 늘 자신이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고 여기면서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배운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 당시 실습하던 때가 내가 의학을 배운 이후 가장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삽화 권미영

 

미국 등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의사나 한의대생은 중국인보다 서양인이 더 많다. 오래전 내가 미국에서 한의과 대학 석사 과정을 밟을 때 30여 명의 학생 중 중국인은 겨우 두세 명 뿐이었다. 의사면허 시험을 볼 때도 시험장에 가득 들어찬 사람 중 검은 머리의 중국인은 역시 극소수였다. 전화번호만 뒤져봐도 미국에서 개업한 수많은 한의사 대부분이 서양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서양에서는 갈수록 많은 한의대가 설립되고 있고 심지어 박사과정을 설치한 곳도 있다.


하지만, 서양인이 한의학을 배우다 보니 전통 한의학 이론에 자신의 사유방식을 더한다. 그들은 우선 자신의 각도에서 한의학을 이해한 후 이를 임상 치료에 활용한다. 이들의 이런 특성 때문에 동양의 한의사와 다른 ‘서양한의사’가 탄생했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도 그리 크지 않지만, 동료한의사만 5명이 있다. 그들 중 한 서양한의사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의 진료실에 들어가면 ‘난득호도(難得糊塗 역주: 청대의 유명한 서예가인 정판교가 쓴 시 일부로 어리석은 척하기 힘들다는 의미)’라고 적힌 글자가 눈에 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그가 정판교(鄭板橋)의 시와 글자를 정말로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는 염소수염을 기르고 중국에서 1930-40년대에 유행하던 은색 실이 달린 안경을 꼈으며 쿵후 신발을 신었다. 종종 앞에는 용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뒤에는 거꾸로 찍힌 일본식 한자가 있는 옷도 입었다. 나는 속으로 좀 우스운 생각이 들어 “옷에 있는 글자는 중국어인가요 아니면 일본어인가요?”라고 물었다. 그는 “일본어 역시 예전 중국어에서 유래한 것입니다”라고 예상치 못한 대답을 했다. 그 후 나는 그를 다시 보게 됐다.


그는 비록 서양인이었지만 중국 문화를 진정으로 감상할 줄 알았고 또 몹시 숭배했다. 한번은 그가 내게 ‘심령신회(心領神會)’의 의미를 물은 적이 있어 내가 뜻을 자세히 설명해주자 그는 감동한 나머지 눈물마저 글썽거렸다. 가끔 의술에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토론을 벌이기도 했지만 우리는 좋은 동업자이자 동료로 서로 편안하게 의술에 대해 교류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중국에 다녀온 그가 의아해 하며 나에게 물었다. “대륙에서는 십수 년 전만 해도 중의사가 환자를 볼 때 맥을 짚고 설상을 보며 개업을 해도 전통적인 중약(中藥)처방을 했었어요. 비록 약을 달이는 것이 좀 번거롭긴 했지만 치료효과는 아주 좋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왜 중의사조차 청진기는 물론이고 환자에게 직접 주사를 놓나요? 또 중약 처방 속에 대량의 양약성분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죠?”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맥 보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하니 당신 스스로 느낌을 찾아보라고 하더군요. 나는 아무 느낌도 찾을 수 없어서 배우러 간 게 아닌가요!” 그는 좀 억울한 것 같았다.


“중국은 참 신기한 곳이에요. 한때는 내가 중국 사람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왜 이 모양이죠? 중의학의 정수는 아마 중국에서 곧 사라지게 될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는 나보다 더 조급해 보였다.
바로 이런 서양 한의사들의 노력이 있기에 한방요법은 미국에서 점차 인정받고 있다. 현재 의료보험에서 인정하는 정규치료방법의 하나로 진입했고 한의학을 무시하기만 하던 많은 양의사도 조금씩 생각을 바꾸고 있다. 한방 치료를 받아 본 사람들 역시 그 효과에 주목한다.


중국인도 돌아보지 않는 수천 년의 찬란한 유산을 노란 머리에 파란 눈을 한 서양인들이 진지하게 발굴하고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시선은 지금 ‘황제내경(黃帝內經)’ ‘상한론(傷寒論)’ ‘금궤요략(金匱要略)’ 등 전통 한의학 경전에 쏠리고 있다.                                     


글/자선(子仙·중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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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중국
용은 과연 실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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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용의 해를 맞아 인터넷에 공개된 용 모양의 구름

 

[시사중국] 올해 설날, 세계 각지 중국인들은 임진년 ‘용의 해’를 성대하게 축하했다. 중국에서는 용의 해에 보통 출산율이 큰 폭으로 증가한다. ‘망자성용(望子成龍-아이가 용에 되길 바란다)’는 말처럼 중국인들은 용을 출세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神)과 공존하는 시대

 

중국인은 고대부터 용을 천국에서 신과 공존하는 고상함과 엄숙성을 갖춘 신성하고 불가사의한 생물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황제는 자신을 ‘진룡천자(眞龍天子)’로 자칭했고 용 모양이 새겨진 ‘용포’를 입고 용으로 장식된 의자나 장식물 등을 사용했다.

 

또, 불교나 도교 수행자가 수련 성취할 때 용을 타고 하늘에 오른다는 말처럼 중국 불교나 도교 사원에는 용 장식이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용은 중국 전통문화와 공존하고 있으며 중국인들은 어딜 가든지 자신을 ‘용의 후예’라고 말할 정도로 그들 마음속 깊이 살아있다. 그러나 근대 무신론이 출현하면서부터 많은 사람들은 용을 그저 믿을 수 없는 한 가지 이야기로 치부하고 있다.

 

용은 실존하는가

 

▲용을 쏴 떨어뜨렸다는 요태조 야율아보기

중국에서는 옛부터 많은 서적에 인간 세상에 모습을 나타낸 용의 기록이 있다.

 

대표적인 것인 요(遼)나라 태조 (耶律阿保磯)의 이야기다. ‘요사・태조본기하(遼史・太祖本記下)’에 따르면 야율아보기가 어느 날 아침 눈을 뜨자 수십 척의 검은 용이 하늘을 선회하고 있었다. 그가 그 용을 겨냥하고 화살을 쏘자 명중했지만 재빨리 도망쳐버렸다. 용은 그 후 대략 1500리 떨어진 곳에서 포획됐는데 크기가 몇 척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금나라 대학자 원호문(元好問)도 ‘속위견지(續夷堅志)’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요나라 신책(神冊) 5년 3월, 검은 용이 예날산(拽剌山) 남쪽 강가에 나타났다. 요나라 태조는 달려 가 그것을 사살했다. 용의 꼬리는 길고 다리는 짧았다. 길이는 5척, 혀 길이는 2치반이다. 창고에 보관하도록 명해 정우(貞祐-1214년) 남도(南渡)때까지 보존되어 있었다.”

 

고대 기록 뿐 아니라 근대에서도 용을 보았다는 화제는 끊어지지 않는다.

 

중국의 용 목격담

 

1944년 8월 헤이룽장성 무단강 남쪽강변에 위치한 진가위자촌(陳家圍子村)에 용이 땅에 떨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농민들은 용이 땅에 떨어진 후 숨이 곧 끊어질 듯했지만 몸에 물을 끼얹어 구명했다고 한다. 당시 목격자는 이 동물은 머리에 긴 뿔이 있었고 몸에는 비늘이 있었으며 또 비린내가 아주 강해 대량의 파리가 들끓었다고 증언했다.

 

최근에도 중국에선 용에 관한 많은 보도가 있다. 2005년 한 사진작가가 티베트 상공에서 찍은 용의 사진이라며 인터넷에 한 사진을 올렸다. 그는 2004년 6월 22일 티베트 청장철도 착공식에 참가하고 비행기로 돌아오는 도중 이 사진을 찍었다며 이 물체에 ‘티베트 용’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 한 사진작가가 비행기에서 찍은 '티베트의 용'

 

이 사진을 보고 미국 코네티컷주 한 화교는 자신의 큰아버지가 중국에서 직접 용을 목격했다는 소식을 제보하기도 했다. 그녀의 큰 아버지는 항일전쟁시기 산속에서 한 청룡이 상처를 입고 땅에 떨어진 것을 보았는데 3칸짜리 집만큼 길었다고 전했다. 현지 주민들은 이 용을 위해 천막을 치고 구더기가 들끓는 상처를 씻어주었다. 주민들은 향을 피우고 하루빨리 청룡이 승천하길 빌었다. 약 3일후 큰 비가 내렸으며 이 청룡은 갑자기 사라졌다.

 

2004년 6월 16일 랴오닝성 잉커우(營口)시의 81세 노인 쑨정런(孫正仁)는 자신이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용골(龍骨)을 내놓았다. 1934년 여름 잉커우시에는 연속 40여일간 큰 비가 내려 강물이 불어나 갈대밭이 전부 물에 잠겼는데 어떤 사람이 그곳에서 용모양의 거대한 괴물을 발견했다. 이 괴물은 두 번이나 나타났으며 두 번째 발견했을 때는 죽어서 골격만 남아 있었다.

 

2005년 8월 중국 핸드폰에 찍혀 화제가 됐다. 8월 8일, 길림대학의 리(李)모 군은 자신이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사지와 꼬리를 완벽히 갖춘 용 모양을 한 물체가 보인다. 리군의 증언에 의하면 이 물체는 길이는 십여 미터로 비행 고도는 비행기와 비슷했으나 무척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고 한다.

 

▲지린(吉林)대학 하늘에서 용 모양의 비행물체

 

2007년 7월, 쓰촨성 청두(成都)시의 청강화원(淸江花園) 아파트 단지 야간 감시카메라에 용을 닮은 생물이 지나가는 신비로운 영상이 찍혔다. 이 신비로운 생물은 2초 남짓 화면에 나타났다 자취를 감췄다.

 

2008년에는 장쑤성 가오유호(高郵湖) 호수면에 ‘용오름(龍吸水)’이라는 일종 회오리가 나타났다. 그런데 단순히 ‘용오름’ 현상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용을 닮은 검은 그림자가 재빨리 승천하는 영상이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을

 

용에 관한 역사적 기재나 회화가 많이 남겨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증을 중요시하는 현대 과학계에서는 용은 여전히 상상속 동물로 치부하곤 한다. 왜냐하면 그 통설을 뒤집을 가능성이 있는 ‘과학적인 증거’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단지, 현대 과학의 ‘기호’에 맞는 증거가 없다고 그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현대 과학과는 다른 새로운 시점으로부터 용의 존재를 찾으면, 그것을 해명하는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역대문헌의 기재 중에서 ‘용’의 출현은 인간세상에서 왕조의 변천과 관계가 있다고 전해지며, 신앙인들은 용의 출현이 무신론에 빠진 사람들에게 우주의 진상을 끊임없이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허민 sscn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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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명동 한복판에 울려 퍼지는 외로운 외침
중국 당국의 파룬궁 탄압 알리려 투쟁하는 두 한국인
http://m.sisapress.com/articleView.html?idxno=61283 (시사저널 원문)

<시사저널>은 2013년 ‘제2회 시사저널 대학언론상’ 수상작 6편을 매주 한 편씩 연재합니다. 예비 언론인들의 풋풋한 열정이 담긴 작품들입니다. 이번 호에는 장려상을 받은 “파룬따파 하오(파룬궁 좋아요), 하오 하오!”를 싣습니다.

서울시 중구 명동 눈스퀘어 앞. 이곳에서는 9년째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노란 천막 사이로 갖가지 피켓을 걸어놓은 부스가 그것이다. 하정숙씨(57)와 서영희씨(58) 모습도 보였다. 이들은 매일 아침 10시쯤 집회에 필요한 도구를 챙겨 명동에 온다. 밤 8~9시까지 집회를 하는데, 거리에 사람이 많으면 11시까지 자리를 지키기도 한다. 두 사람 다 인상이 서글서글해 ‘집회’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무엇이 그들을 ‘직업 시위꾼’으로 만들었을까.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경제 대국 10위라는 대한민국이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인권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외면한다는 것이 부끄럽다.” 그들이 알리려는 것은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중국 공안의 탄압과 박해’다.

‘파룬궁’은 중국에서 리훙쯔가 창시한 연공 수련법의 일종이다. 중국 정부의 압력을 피해 창시자가 1996년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전 세계 60여 개국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파룬궁 수련자는 1억명에 달해 중국 공산당원 6000만명보다 많다. 중국 정부는 수련생들이 체제를 전복할 염려가 있다며 사교로 규정해 탄압하고 있다. 수련생들을 강제 노동수용소에 보내 고문한 사실도 드러났다. 2001년 중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탄압으로 인한 사망자가 1600명이었으나, 전문가들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한다.

하씨와 서씨가 처음 만난 것은 2004년 홍콩에서 열린 파룬궁 퍼레이드에서다. 나이도 비슷하고 둘 다 미혼이라 의기투합했고 지금은 함께 산다. 두 여성은 무직이다. 자비를 들여 시위를 하는데도 일부 중국인은 “특정 기관에서 월급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한다고 했다. ‘봉사’라는 개념이 생소해서 이해를 못한다는 것이다.


서울 명동에서 매일 열리는 파룬궁 관련 시위. 올해로 벌써 9년째를 맞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예수천국 불신지옥’과 불편한 동거도

이들은 9년째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무관심하다. 명동 파룬궁 집회 현장 근처 의류 매장의 보안 요원은 이들의 집회를 인근에서 열리는 기독교 포교 활동과 구분하지 못했다. 부스 바로 앞 통신회사 대리점 직원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잔혹하게 학대받는 사진과 중국어로 쓰인 피켓’이라고 설명하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파룬궁 탄압을 알리는 시위는 조용하면서 평화적이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지나가다 걸음을 멈추고 관심을 보이면 두 사람은 일부러 자리를 피한다. ‘감시’와 ‘통제’가 익숙한 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바로 옆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 캠페인을 펼치는 한 선교회 소속 시위자들과는 대조적이다. 선교단체는 확성기를 크게 틀어놓은 채 성경을 읽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억지로 붙잡고 얘기하는 등 공격적인 포교 활동을 펼친다. 하씨는 “그들과 갈등이 심했다. 초기에 어떤 목사는 주변을 십자가로 그으며 ‘예수 피, 예수 피’ 하며 돌기도 했다”며 “예수를 안 믿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이 파룬궁 수련생을 죽이는 것은 잘하는 것이라고도 했다”고 말했다. 현재 이 선교단체는 근처의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겼지만 불편한 동거는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파룬궁 사이비 종교 대책위원회(antifalungong.com)’라는 파룬궁을 반대하는 단체도 생겼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국내에서 파룬궁을 몰아내자는 취지의 책자를 발간했다. 중국 공산당이 파룬궁을 모함하는 말과 이들의 비방은 유사하다. 하씨는 “일단 사람이 죽어가는데 어떻게든 살릴 길을 찾아야지, 설령 사이비 종교라고 할지라도 이렇게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도 무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왜 (연락을) 안 해봤겠나. 국회의원 사무실을 부지런히 돌아다녀보았지만 별 관심이 없었다. 회피한다는 인상이 들었다”고 밝혔다. 2006년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의 박재완 의원이 관심을 갖고 이 문제 해결에 나섰다. 국내 수련생들도 기대를 많이 했지만 이듬해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고 박 의원이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되면서 유야무야됐다. 오히려 이명박 정권 때는 10명의 중국 국적 파룬궁 수련생이 중국으로 송환되기도 했다.

서방 국가 지도자들이 파룬궁 문제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과는 대비된다.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는 2008년 5월13일 ‘파룬궁의 날’을 맞아 축사를 보내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중국을 당황하게 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이 문제에 단호하다. 메르켈 총리는 올림픽이 열린 직후 방중 기간에 “경제와 인권을 맞바꿀 순 없다. 우리 국민이 그것을 원치 않는다”며 “우리는 나치와 같은 부끄러운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다. 앞으로 지구상에 이러한 참극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중국은 인권을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살아 있는 언론 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언론에서도 취재를 나온 적이 있으나 보도된 적은 없다. 5~6년 전 한 중앙 일간지 기자가 취재를 하고 데스크에 전화해보더니 미안하다며 돌아간 적이 있다고 했다. 한 방송 기자는 크리스마스 특집을 위해 취재를 나왔다가 “이렇게 중요한 인권 문제를 왜 보도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어휴, 너무 끔찍해서…”라며 자리를 떴다고 한다. 하씨는 “우리가 거리에서 진상을 알리는 것은 매일 신문을 배달하는 것과 같다. 언론사에서 이 문제를 안 다뤄주기 때문에 살아 있는 언론이 되기 위해 거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두 사람을 더욱 좌절시키는 것은 시민들의 반응이다. 요즘은 하루에 한 명의 서명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외국인들은 이곳에 아이를 데리고 나와 자료를 읽게 하고 아이에게 직접 설명해보라고 한다. 살아 있는 인권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잔인한 사진에 노출될까 싶어 아이의 눈을 가리고 발걸음을 재촉하기 일쑤다. 자기 아이가 놀랄 것을 먼저 걱정한다. “기분 좋게 쇼핑하러 명동에 나왔는데 눈 버렸다”며 중구청에 민원을 넣는 사람도 꽤 있었다.

집회 자체에 부정적인 사람도 있다. 이곳을 지나가던 김환근씨(23)는 “중국 문제로 왜 한국에서 시위하는지 모르겠다. 통행에 방해만 된다”고 말했다. 단국대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중국인 교환학생 짱하오(張浩·24)는 파룬궁에 대해 묻자 반감부터 드러냈다. “중국에서 파룬궁은 명백한 범죄 행위로 규정되어 있다. 중국인은 절대로 가입하면 안 된다. 한국인들도 믿지 마라”고 했다. 그 이유는 중국의 사상 교육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국에서 각각 14년, 11년을 거주했던 김형은씨(연세대 중어중문·24)와 권지연씨(연세대 중어중문·23)는 “중국 학교에서 파룬궁은 귀신에 홀려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단체라고 배웠다. 대다수 중국인이 파룬궁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변화하는 중국인들, 야유에서 호응으로

하씨와 서씨는 이곳에서 희망도 보았다. 후원금을 내고 자료를 나눠주겠다며 거드는 시민들 때문이다. 그들은 “여길 지나갈 때마다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힌 한 대학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명동 같은 관광특구에서 다른 나라의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자존심을 세우는 일이라는 것이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들의 태도가 차츰 변하는 것도 느껴진다. 몇 년 전만 해도 맹목적인 애국주의에 세뇌된 일부 중국인이 지나가며 야유를 했지만 요즘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수고한다고 격려해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행이 있어 눈치가 보이면 눈짓으로라도 인사를 건넨다고 했다. 실제로 취재 도중 수학여행을 온 한 무리의 중국 학생들이 ‘파룬따파 하오(파룬궁 좋아요)’라고 쓰인 피켓을 보고 “하오, 하오!” 하면서 호응을 하기도 했다. 주한 중국대사관에서는 공식적으로 항의는 하지 않지만 신분을 감추고 찾아와 이름 등을 묻는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두 사람은 못 들은 척하고 설명을 계속한다. 서씨는 “오래 하다 보니 대사관 직원을 알아볼 수 있다. 이들은 명동에 새 대사관이 옮겨 오면 (지금 자리에서) 시위를 계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언질을 간접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10년 가까이 이곳에서 인권 문제로 시위를 하고 있는데, 대사관이 온다고 해서 옮길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관할 남대문경찰서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에 의해 중국대사관을 직접 대상으로 하는 집회나 반경 100m 이내가 아니면 막을 근거가 없다. 집회는 신고제이기 때문에 제한 사항에 걸리지 않으면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외사계의 한 직원은 “명동 대사관 입주는 예정보다 늦어지는 걸로 안다”고 밝혔다. 기자는 중국대사관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십 차례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았다. 중국대사관은 공식적인 이메일 주소도 없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저널리즘)는 “중국에는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없다. 인권 탄압도 심하다. 파룬궁 자체도 불법이라 탄압받지만 이를 보도하는 언론도 없다”며 “중국이 경제적으로는 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국민의 기본권을 중시하는 선진국이 되려면 멀었다”고 말했다.

“이웃 나라 인권 문제에 경종 울려 뿌듯”
수상 소감

ⓒ 시사저널 최준필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면서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같은 문제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다. ‘부분적 언론 자유국’(프리덤하우스 선정)이라는 우리보다 ‘표현의 자유’가 박한 나라가 중국이다. 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적지 않은 중국인이 권위주의 체제에 길들여진 모습을 봤다. 그들은 여타 나라의 국민들처럼 자유롭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고, 민주주의나 티벳 영토 분쟁 등 민감한 이야기가 나오면 침묵하기 일쑤였다.


그런 와중에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수년째 명동을 지나다니면서 봐온 파룬궁 탄압 반대 집회가 그것.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그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이들이 집회를 하는 데 외부의 압력이나 애로는 없는지, 그들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무관심과 편견은 없는지 궁금했다. 의외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한국인이었고, 우리도 이제 이웃 나라의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내심 뿌듯했다. 정치인들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서방 국가의 지도자들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생겼다. 우리나라에서는 진보 정당 정치인들조차 중국 공산당의 인권 탄압을 규탄하는 것에 인색하다. 인권은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내 편, 네 편이 따로 없다고 믿는다.

올해 말 중국대사관이 명동으로 터를 옮긴다. 명동의 ‘인권 터줏대감’들이 계속 그 자리를 지킬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시사저널>, 기자의 꿈을 갖게 해주신 손태규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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