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원시보
“아이가 욕해도 부모는 경청해야”
「바라지 않아야 바라는 대로 큰다」 저자 신규진

유독 대한민국에는 다른 아이들보다 뒤쳐질까봐 걱정하는 부모가 많다. 영어 유치원 3년에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에 국·영·수 선행학습. 악기나 운동도 ‘아이가 학교 가서 기죽지 않게 하기 위해’ 가르친다. 업체의 이론은 자극적이고, 주변엄마들의 입김도 거세다.

 

그 틈바구니에서 휘말리다보면 가치판단이 흐려지는 법. 혹시 몰라 시켜본 공부에 내 아이가 따라주지 않으면 오만가지 걱정이 태산이다. 밑도 끝도 없는 거센 물살에 휩쓸려 있는 듯, 대한민국에서 부모 노릇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저자는 “걱정은 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교육은 ‘바라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15년간 4000여 명을 상담해온 현직과학교사 신규진 씨는 그 동안의 수많은 상담사례를 정리해 <바라지 않아야 바라는 대로 큰다>를 펴냈다. 고등학교 과학교사의 이야기라고 해서 청소년을 둔 부모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다. 부모와 아이, 상담교사의 상담 내용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자신의 모습이 거울같이 드러난다. 자신이 부모 혹은 청소년 중의 하나라고 느낄 만큼 보편적이고 사실적이기 때문이다.

 

'바라지 않아야 바라는 대로 큰다' 저자 신규진 씨. (전경림 기자)

 


“선생님, 00가 잘난 척해서 싫어요.”
“그래? 그럼 한번 웃어줘. 어깨에 힘주는 사람들은 영혼이 가난해서 속이 허한 거다. 누가 큰 소리 치면 웃어줘. 세신 분입니다 하고.”
“성적이 90점 밑으로 떨어졌어요.”
“잘했네. 그래봤자 90점 근처잖아.”
“문제를 틀리면 어떻게 해요?”
“틀리면 되지 뭐. 한두 문제가지고 뭘 그래.”
“장애가 있다고 애들이 괴롭혀요.”
“너는 1급수 물고기, 아이들은 3-4급수쯤 될 걸. 걔들은 무의식중에 순수한 니가 부러운 거야. 정상 아이들도 괴로움이 많아. 하지만 견뎌야지.”
“아이가 자퇴하면 어떡하죠?”
“인생 백년입니다. 학교 일 년쯤 쉬고 가도 늦지 않습니다. 조급하게 가봤자 길이 트여 있지 않다면 서두를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의욕 상실에 멘탈 붕괴에 빠진 아이가 상담실에 오면 가슴의 암 덩이가 눈 녹듯 사라진다. 일탈과 방탕 속에 헤매던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어두운 얼굴은 이내 생기를 얻는다. 저자는 ‘바라지 않아야 한다’며 마치 모든 걸 초탈한 도인처럼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것이 15년 상담 경험에서 추출한 엑기스였다. 자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하는 것, 그리고 생각을 전환하고 아이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바르게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가 가져야 할 기본자세라는 것이다.

 

혼내는 것과 화내는 것
체벌은 회피만 부를 뿐


하지 말라고 말했는데, 똑같은 행동을 연거푸 했을 때 부모는 가슴 속에서 뜨거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이를 위해서 한다지만 스스로 화를 참지 못해 매를 들고 훈육을 시도한다. 하지만, 저자는 화내는 것과 혼내는 것을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화를 낸다면 혼내는 과정에서 2차 갈등으로 점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아이가 진정으로 반성하고 변화되기 보다는 입을 딱 닫고 침묵하거나, 울상 짓고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하거나, 자질구레한 변명을 늘어놓거나, 퉁명스럽게 대꾸하거나, 때로 부모에 맞서 목청을 높이거나 등등이다. 저자는 “혼내거나 화내지 않을 때 아이 스스로 성장하게 된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는 ‘성장과정에서 부모로부터 자주 화풀이를 당하거나 혼난 아이들은 ‘베버의 법칙’에 따라 반응하는데, 동일한 자극이 지속되면 둔감해져서 반응하지 않고, 이전보다 더 큰 자극이 가해져야 반응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체벌과 호통으로 가르치면 아이들은 회피하는 법을 배울 뿐이라는 것. 그는 부모가 자녀보다 더 현명하다는 편견을 버려야  가르침을 뛰어넘어 학습하면서 발전하고 성숙한다고 말했다.

 

잔소리는 한 두 마디
반응은 세심 자상하게


“현장 경험에 의하면 강박증을 보이는 아이들의 경우 부모 또한 강박적이며 질릴 정도로 잔소리를 심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정도껏 하는 한 두 마디는 관심의 표명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잔소리는 그때마다 참기 어려운 고통을 준다”는 것이다. 
과잉보호를 하지 않겠다면서 세심함을 보이지 않는 부모의 아이 역시 존중받고 싶어서 떼쓰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저자는 아이에게 자상하게 설명하지 않는 부모의 태도가 아이의 떼쓰는 버릇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애정을 가지고 차분하게 설명하면 될 일을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귀찮아서가 아니라 아이에게 설명해줘야 한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자녀가 어릴수록 부모는 24시간 편의점이 돼주어야 합니다. 아이는 부모의 반응에서 본능적으로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죠. 존중받는 아이는 떼를 쓸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의도성 있는 칭찬은 금물
진정성있는 표현으로 충분


신 교사는 ‘고래를 춤추게 할 의도로 칭찬하는 것은 칭찬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의도성만 있을 뿐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진정성이 없다면 칭찬으로 자신을 조종하려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것.


“많은 아이들이 눈빛과 표정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전달받을 때 가장 좋아합니다. 말없이 어깨를 감싸준다던지, 머리를 쓰다듬고 간다든지, 따뜻한 물 한잔을 갖다 주는 등…. 입에 발린 말 몇 마디보다 진정성을 느낄 수 있죠.”

 

그는 무한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마치 손주를 그저 예쁘게만 바라봐주는 할머니처럼. 세상이 곧 무너질 것 같다는 학생도 신 교사 앞에선 무지개빛 희망을 품는다. 그는 부모가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손자에게 바라지 않고 허용하는 모습이 돼야 한다고 주문한다. 아이를 자유롭게 해야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손자 앉혀놓고 이야기 나누잖아요. 얘야, 어떻게 하고 싶어? 하는 것 처럼 말이죠. 엉뚱한 대답을 한다 해도 알고 보면 부모님이 몰라서 그럴 뿐 훌륭한 대답도 많습니다. 부모님이 알고 있는 가치관을 너무 많이 가르치다보면 절대 자신보다 아이가 훌륭해질 수 없죠. 그냥 둬야 나보다 더 큽니다.”

소통하려면 경청과 공감


문제 해결은 ‘독서’가 해답


“에잇, XX” 불쑥 튀어나온 아이의 욕설을 듣고 당황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저자 역시 자신 앞에서 이런 욕설을 하는 아이를 맞닥뜨린 적이 있다. OMR카드 기입이 늦은 아이가 종료 종소리를 듣고 시험지를 걷으라는 소리에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다. 권위적인 교사라면 분명 “너 지금 뭐라고 했어? XX?” 라며 화부터 낼 마당이지만, 신 교사는 “다 못썼니?”라며 기다려줬다.

 

교사는 기다려주기만 했을 뿐인데, 학생은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니가 나한테 욕한 게 아니고 스스로 낸 감탄사인데 뭘. 하지만 장소에 주의를 해야되는 건 맞지?”라고 타일렀다. 학생은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에 캔커피를 선생님 책상 위에 조용히 놓고 갔다. 저자는 “아이가 하는 욕도 경청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친구가 자신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면, 왜 무슨 일 있어? 라며 이야기를 들어주겠죠. 만약 부모가 참지 못하고 몇 배의 욕으로 강렬하게 보복한다면 앞에서는 굴복하지만, 힘을 가지면 성질내도 된다는 것을 배우고, 당신도 욕하는데, 어디 얼마나 할지 두고보겠다 생각하죠. 사람은 자기 품위를 지키려면 스스로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걸 깨우치게 마련입니다.”


그는 부모나 교사 모두 권위를 탈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책 속에서 많은 스승을 만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위대한 철학자와 성인의 이야기를 접하면 그 속에서 깨닫고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내담자와 상담할 때 마지막에 “결국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독서밖에 없다”고 맺는다.

 

신규진
홍익대학교병설 경성고등학교 상담교사이자 과학교사


[저서]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학교 상담

자퇴 상담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

한국일보, 여성시대 교육 칼럼 연재

가난하다고 실망하는 아이는 없다

나도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

 


조윤덕 기자 virtue@epoch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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