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낭콩 꽃 |
글/ 류지룽(劉繼榮)
[시사중국] 엄마는 이제 완전히 나이가 들어 아이처럼 변한 것 같았다. 전화로 언제나 기쁜 듯 “언제 고향에 돌아올거야?”라고 물어본다.
엄마가 혼자 살고 있는 고향은 천리 이상 떨어져 있고 3번이나 환승을 해야 한다. 나는 직장과 아이 돌보기만으로도 지쳐서 고향에 돌아갈 여유가 없었다. 귀가 어두운 엄마에게 나는 인내심 있게 설명하지만 그녀는 몇 번이나 다시 물어본다. “언제 고향에 돌아올 수 있어?”
내가 결국 참지 못하고 큰 소리를 내서야 엄마는 입을 다물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며칠도 못가서 엄마는 또 물어본다. 그러나 이번은 왠지 어조가 가라앉았다. 무엇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처럼 아무 안 된다고 해도 계속 조른다. 나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내가 마음이 평정되면 엄마는 기쁜 듯이 고향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응, 뒷마당의 석류나무는 전부 꽃이 피었고 수박도 곧 익게 돼. 그러니까 빨리 돌아와.”
“엄마, 난 바쁘고 휴가 내는 것도 어려워.” 나는 조금 곤란한 듯 대답했다. 그러자 엄마는 화제를 돌렸다. “만약 내가 암에 걸려 앞으로 반년 밖에 살 수 없다면...” 내가 막 엄마를 나무라자 엄마는 호호 하하 웃었다. 나는 어린 시절에 비가 내리면 학교에 가기 싫어서 배가 아프다고 꾀병을 부렸지만 그 때마다 엄마에게 간파당한 적이 있다. 지금은 엄마가 오히려 딸에게 꾀병을 부리다니. 나는 웃음이 나왔다.
이러한 실랑이를 몇 번이나 반복하자 나는 지쳐서 다음 달 반드시 고향에 가겠다고 말했다. 전화 저편에 엄마는 기쁜 나머지 눈물이 나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언제나 바쁜 나는 결국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다.
그 후에도 엄마는 빈번히 재촉하는 전화를 걸었다. “포도도 익었어. 그러니까 빨리 돌아와 먹어.” 나는 재빠르게, “포도가 희귀한 것도 아니고 여기서도 팔고 있어요. 언제라도 많이 먹을 수 있어”라고 대꾸했다. 엄마가 조금 기분이 상한 것 같아서 나는 말했다. “그렇지만, 여기서 파는 것은 화학 비료나 농약을 사용했기 때문에 엄마가 재배한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지.” 이 말을 들은 엄마는 다시 웃었다.
매우 찌는듯한 토요일 오후, 갑자기 엄마가 큰 봉투를 짊어지고 우리집으로 찾아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져온 것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엄마의 손은 핏대가 서 있었으며 10손가락 모두 반창고를 휘감고 손등에는 상처 자국이 있었다. “빨리 먹어봐. 이거 전부 내가 골라 딴거야.” 엄마는 나를 재촉했다.
고향을 멀리 떠난 적이 없는 엄마는 고향 포도가 좋겠다는 내 한마디 말 때문에 이 먼 길을 왔던 것이다. 차비를 아끼기 위해 가장 싼 에어콘 없는 버스를 타고 왔지만 포도는 매우 신선했다. 엄마가 어떻게 올 수 있었는지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다. 단지 이 세상에 엄마들이 있는 장소에는 반드시 기적이 일어난다고 느꼈다.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고 또 아이도 돌봐야 하는 나를 보면서도 도시 주방에 익숙하지 않는 엄마는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었다. 단지 3일간 머무르다 엄마는 남몰래 표를 예약해 혼자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와서 1주일이 지나자 엄마는 또 나를 만나고 싶다고 재촉했다. “엄마, 좀 더 참아”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숙모로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가 아프신 것 같아. 바로 오렴!” 나는 당황해서 울면서 역까지 달려가 막차에 뛰어 올라탔다.
차안에서 나는 계속 빌었다. “엄마의 설교를 듣고 싶어. 엄마가 만들어 준 요리를 먹고 싶어. 엄마 병문안에도 가고 싶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울컥거리고 벅찼다. 그 때 나는 ‘사람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머니가 필요하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버스가 마을에 도착하자 만면에 웃음을 띤 엄마가 종종걸음으로 왔다. 나는 엄마를 꼭 껴안고 “하나도 안 아프자나?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라고 엄마를 나무랐다. 엄마는 그런데도 계속 기뻐하고 있었다. 엄마는 단지 나를 만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엄마는 기쁜듯 식사를 준비하고 맛있는 것을 가득 만들어 테이블 위에 늘어놓아 나의 칭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가차 없이 비판했다. “죽은 너무 탔고 만두피가 너무 두꺼워. 고기 맛은 짜네….” 엄마의 웃는 얼굴이 금새 굳어졌고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마음 속으로 몰래 웃었다. ‘일단 내가 무엇인가 맛있다고 하면 엄마는 반드시 가득 먹일 것이고 그럼 또 나는 다이어트에 실패하니까.’
나는 엄마에게 요리에 대해 천천히 이야기를 했으며 엄마는 가만히 애정이 가득찬 눈길로 나를 응시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엄마는 기쁜듯 귀를 기울여 들었다. 낮잠을 잘 때도 엄마는 침대 겨드랑이에 앉아 싱글벙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내가 소중하면 왜 함께 살지 않아?”라고 물으면 엄마는 “도시 생활에 익숙하지 않아서”라고만 대답했다.
며칠 지났다. 나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지만 엄마는 나에게 하루만 더 있어달라고 했다. 숙모집으로부터 돌아오자 엄마는 마음을 담아 요리를 준비해두었다. 하지만 잘 보니 물고기에는 비늘이 남아 있고, 닭고기에도 몇 가닥 털이 남아 있었다. 버섯 요리에는 머리카락도 들어 있었다. 고기 요리도 야채 요리도 별로 먹을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엄마는 젊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역시 나이가 들어 야무지지 못하게 된 것 같았다. 엄마는 내가 젓가락을 잘 놀리지 않는 것을 보자 나를 심야버스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엄마와 나는 매우 어두운 길을 팔짱을 끼고 걸었다. “넌 시골길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엄마는 내가 승차할 때까지 여러 가지를 돌봐주었다. 버스가 막 떠나려하자 엄마는 서둘러 버스에서 내리다가 옷이 버스문에 걸려 넘어질뻔 했다. 나는 놀라서 버스 창문으로 외쳤다. “엄마, 엄마, 조심해!” 엄마는 버스를 쫓으면서 외쳤다. “나는 화 안났어! 네가 바쁜 것을 아니까!”
연말이 되어 숙모에게서 또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가 아프신 것 같아. 곧바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저께 엄마는 전화로 “난 건강하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아”라고 했는데 설마 또 거짓말을?
하지만 미적거리는 나에게 숙모는 끊임없이 빨리 오도록 재촉했다. 믿을 수 없었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튀김떡을 사갖고 친가에 달려갔다.
이번엔 버스가 마을 입구에 도착해도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후 숙모가 진실을 가르쳐 주었다.
숙모가 나에게 전화를 걸자마자 엄마는 곧 숨을 거두었다. 매우 조용하게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반년 전부터 엄마는 암 진단을 받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평소와 같이 건강하게 일하며 자신의 사후도 모두 준비하셨다고 한다. “네 엄마는 오래전부터 눈병에 걸렸지. 시력이 약해져 잘 보이지 않으셨어.”
튀김떡을 안은 내 가슴은 찢어질 것 같았다. 엄마는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끊임없이 나에게 전화를 거신 것이었다. 나를 만나고 싶고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먹지 않았던 요리는 엄마가 약해진 시력으로 열심히 만든 것이었다. 나는 바보였던 것일까. 내가 돌아간 그날 밤, 엄마는 어떻게 집까지 도착한 것일까. 도중에 넘어지거나 다치지 않으셨을까.
마지막에 만났을 때 엄마는 즐거운 듯이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강낭콩 꽃 색깔은 네가 어린 시절에 입었던 보라색 옷 같아.” 엄마는 나에 대한 사랑과 온기를 남기고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다.
엄마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에 대해 화내지 않는 사람이며, 유일하게 영원히 나를 기다렸던 사람이다. 이 깊은 사랑을 받으면서도 나는 엄마를 오래 기다리게 했다.
“엄마, 미안해요. 난 그렇게 바쁘지 않았는데...”
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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