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망

글/ 찬란한 5천년 신전문화의 천고영웅인물 연구팀 

6. 학이 귀주에 이르다

귀주(貴州) 중부 평월현(지금 귀주성 복천시)의 복천산(福泉山)은 역사가 유구한 곳이다. 한 무제가 차란국(且蘭國)을 평정한 후 이곳 야랑후(夜郎侯)를 야랑왕(夜郎王)에 봉했다. 장삼풍은 일찍이 이 산을 좋아해서 “숭산 곳곳이 선경이로다(崇山處處有仙鄉)”고 했다.

명나라 만력 연간에 출판된 《장선유사(張仙遺事)》는 많은 시부(詩賦)와 신선의 자취를 기록하고 있다. 복천산은 산 위에 샘이 하나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전설에 따르면 원래 ‘복천’의 샘물은 주민들이 마시기에 부족했지만 장삼풍이 첩취봉(疊翠峰)을 등진 어느 산에서 귀정(貴定)에 다녀온 후 복천산 위에 우물을 설치했다고 한다.

《야랑(夜郎)》

아침에 곤명을 떠나 야랑에 내려오니
숭산 곳곳이 선경(仙境)이로다.
어년(魚年)에 벽계산에서 신께 제를 올리니
높이 나는 새 길에 내 학도 힘겹구나.
좁은 길 멀리 관색령을 돌아가고
뭇 봉우리 무후강을 완연히 품었구나.
본래 나무가 많고 빽빽해 그윽한 땅인데
남쪽 사람 이곳에 사는 것 너무나 우습구나.

朝別昆明下夜郎(조별곤명하야랑)
崇山處處有仙鄉(숭산처처유선향)
魚年共賽神雞碧(어년공새신계벽)
鳥道高飛我鶴黃(조도고비아학황)
徑遙盤關索嶺(세경요반관색령)
諸峰宛抱武侯岡(제봉완포무후강)
由來木密多幽地(유래목밀다유지)
笑殺南人住此方(소살남인주차방)

《평월부지(平越府志)》에는 장삼풍이 복천산에서 수련하던 곳에 대해 “앞은 고진관(高真觀) 뒤는 예두정(禮斗亭)인데 정자 앞에 욕선지(浴仙池)가 있다. 이 못은 여름에는 넘치지 않고 겨울에는 마르지 않는데 병을 치료할 수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욕선지는 장삼풍이 짚신을 신고 한발로 밟아서 생겨났다고 한다.

《장선유사(張仙遺事)》에는 장삼풍이 고진관 뒤에 움막을 짓고 수련했다고 한다.

《평월복천산예두음(平越福泉山禮斗吟)》

이 산의 구름과 물 더없이 깨끗한데
밤마다 향을 피워 공경과 정성 표현했네.
머리에 연꽃 이고 북두칠성 향하니
성군(星君)이 나를 위해 장생을 드러내네.

此山雲水盡澄清(차산운수진징청)
夜夜焚香表恪誠(야야분향표각성)
首載蓮花朝北斗(수재연화조북두)
星君爲我著長生(성군위아저장생)

장삼풍은 또 수많은 신적(神跡)을 남겨놓았다. 예를 들면 복천 부근 무승관(武勝關)에 도마파(倒馬坡)가 있는데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백장 절벽 위에 장삼풍이 그림자를 남긴 바위가 있다. “머리에는 화양관(華陽冠)을 쓰고 옆으로 지팡이에 기대 걷는 모습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옆에는 ‘신이 우주를 남긴다(神留宇宙)’는 4글자가 있다. 나중에 현지인들은 복천의 고대문화를 가리켜 삼풍문화라 부르면서 복천을 신화의 세계라고 칭했다.

7. 벽사부정(辟邪扶正)

원명(元明)시기에 이르러 도덕이 아래로 미끄러지면서 역사상 다시 소도(小道), 방사(方士) 및 요승(妖僧)이 출현해 조야에 가득 차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사람들의 바른 신앙(正信)을 심각하게 교란했다. 장삼풍은 매번 이런 이들을 만날 때마다 술법을 이용해 희롱하거나 징벌하곤 했다.

당시 등상은(鄧常恩)이란 도사가 있었는데 요행으로 태상경(太常卿)이란 고관이 되었다. 그는 사람됨이 극히 음험하고 악독해서 심지어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음혼(陰魂)이 흩어지지 않고 마귀로 변화해 등 씨 집에서 장난을 친 것임은 아무도 몰랐다. 등 씨가 도사가 될 때 태항산 서쪽에 마선옹(馬仙翁 마씨 성의 신선)이 있었는데 신전사귀(神箭射鬼)를 부릴 수 있었다. 사람들이 그를 찾아가 구하면 영험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제자 진왜아(陳歪兒)를 보내 마선옹의 전술(箭術 화살을 쏘는 술법)을 구해오게 했다.

진왜아가 명령에 따라 길을 가다가 중도에 한 도인을 만났다. 신태(神態)가 비범하고 당당했는데 손에 긴 활을 들고 있었고 허리에는 7개의 화살을 꼽고 있었다.(긴 활의 長은 張을 의미하고 7개는 三丰의 이름 획수가 7인 것을 상징한다. 즉 장삼풍이 변신한 것.) 그는 자칭 활의 귀신(能射鬼)이라면서 백발백중이라고 자랑했다. 진왜아는 그에 대해 반신반의했지만 마침 가는 길이 같아서 동행하게 되었다. 저녁이 되자 어느 무너진 묘에서 밤을 지냈다. 숲속이라 어두운데다 달마저 어두워 죽림의 고목 속에서 “추추” 하는 귀신소리가 들려오자 진왜아는 깜짝 놀랐다.

그러자 도인이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나의 신전(神箭)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창틈으로 화살을 한발 날리자 그 귀신이 슬피 울부짖으며 달아나는 소리가 들렸다. 진 씨는 깜짝 놀라 탄복했다. 이튿날 새벽 머리를 조아리며 도인에게 법술을 전수해달라고 간청했다. 도인은 아주 흔쾌히 신전의 술법을 그에게 전해주었다.

진왜아가 되돌아와 사부를 보고는 말했다. “마선옹은 이미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부님의 복으로 길에서 우연히 신선을 만나 전술(箭術)을 전수받았습니다.” 상은이 이 말을 들은 후 크게 기뻐했다. 이날 밤 달빛이 환할 때 집 정원에 다시 귀신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급히 진 씨를 불러 술법을 펼치게 했다. 상은 자신은 회랑으로 몸을 돌려 반대편 누각 위에서 감시했다.

진왜아가 철저히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귀신 하나가 반대편 누각 위로 날아갔다. 급히 강궁을 당겨 화살을 하나 쏘자 화살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한마디 큰 소리가 들리더니 어떤 물건이 쓰러졌다. 불을 켜고 살펴보니 뜻밖에도 등상은이었다. 고개를 돌려 다시 진왜아를 찾아보니 이미 꽁무니가 빠지게 달아난 뒤였다.

명나라 헌종(憲宗) 성화(成化) 연간에 많은 방사(方士)들이 황제를 속이고 황제에 의해 진인으로 봉해졌다. 차파(劄巴)라는 이름의 한 승려도 황제의 총애를 얻어 대지혜불(大智慧佛)이란 칭호를 하사받았다. 그는 큰 수레를 타고 대궐을 출입하면서 권세와 부귀를 자랑하고 과시하면서 요란하게 거리를 누비곤 했다. 어느 날 차파가 사원에 돌아와 보니 문득 남루한 도포를 걸친 한 도인이 담벼락 위에 시를 적어 자신을 비웃고는 곤단보(坤斷補 곤괘가 끊어진 것을 잇는다는 뜻으로 丰이 된다.)라는 낙관을 남겼다. 차파가 이를 보고는 크게 화가 나 사병들을 시켜 도인을 잡아오게 했다. 갑자기 바람이 몰아치더니 도인의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이에 사람들은 모두 이것은 진선 장삼풍이 한 일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진정으로 수련하는 승려나 도사를 만나면 장삼풍은 칭찬하거나 선물을 주곤 했다. 장삼풍이 기부(夔府 지금의 중경 봉절) 개원사(開元寺)에서 광해(廣海)화상을 만나 7일간 의기투합했다. 헤어질 때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불도에 깊이 들어 속세의 정 끊으니
마치 사마타행(선정수행)과 상응하는 듯하네.
은은한 하늘 꽃 미묘한 상서로움 드러내니
낭랑한 나뭇잎 소리 대승경전 읊는구나.
한가한 낮 밀실에선 구름이 덮어주고
고요한 밤 빈 뜰에는 달빛이 등불 되네.
입정 속에 온갖 상(象)이 아무것도 없으리니
이곳에 온 그 누가 노승을 볼 수 있으랴?

深入浮屠斷世情(심입부도단세정)
奢摩他行恰相應(사마타행흡상응)
天花隱隱呈微瑞(천화은은정미서)
風葉琅琅詠大乘(풍엽낭랑영대승)
室密晝閑雲作蓋(실밀주한운작개)
庭空夜靜月爲燈(정공야정월위등)
定中萬象無何有(정중만상무하유)
到此誰能見老僧(도차수능견노승)

장삼풍은 또 광해화상에게 짚신 한 켤레와 약간의 침향(沈香 귀한 약재)을 남겨놓고 떠났다. 나중에 광해화상이 장삼풍이 남겨둔 짚신과 침향을 영락제에게 바치자 영락제가 상으로 옥환(玉環)과 천불가사(千佛袈裟)를 하사했다.(이상의 시와 기록은 《아미산지(峨眉山志)》에 나온다.)

《장삼풍전집》에는 이런 종류의 일화들을 수집해놓았다. 장삼풍이 방사와 요승을 희롱하며 도덕과 풍속을 만회한 이야기들이 민간에서 아주 생생하게 전해졌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5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