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망

글/ 찬란한 5천년 신전문화의 천고영웅인물 연구팀

4. 사량발천근(四兩撥千斤)

명나라 왕종악(王宗嶽)은 《태극권경(太極拳經)》에서 무술에 비록 아주 많은 문파가 있고 문파간에 구별이 있지만 대개 장대한 자가 약한 자를 깔보고 느린 자가 빠른 자를 피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렇게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를 때리고 손이 느린 자가 손이 빠른 자를 피하는 타법(打法)은 단지 일반 속인의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태극권은 그렇지 않다. 장삼풍은 《태극권가결(太極拳歌訣)》에서 손이 빠르기 때문도 아니고 손이 느리기 때문도 아니며 태극권이 능히 태극의 공능(功能)을 연마해낼 수 있다고 했다. 즉 의념으로 태극을 지휘해 공능으로 권법을 연마하기 때문에 사용할 때 아무런 힘도 쓸 필요가 없다. 때문에 사람들이 이를 보고 ‘사량발천근(四兩撥千斤 역주: 4냥이란 아주 적은 힘으로 천근이란 큰 힘을 발휘한다는 의미)’이라 했다.

장삼풍은 또 《태극권을 배우려면 반드시 신을 수렴하고 기를 모아야 한다는 주장(學太極拳須斂神聚氣論)》에서 “주먹이 도달하기 전에 의념이 먼저 도달하며 주먹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곳에도 의념이 도달할 수 있다. 의념(意)은 신(神)의 부림을 받는다.(拳未到而意先到,拳不到而意亦到。意者,神之使也)”라고 했다.

또 ‘의념을 쓰고 힘을 쓰지 않음(用意不用力)’이 태극권의 10가지 요소 중 하나다. 《태극권가(太極拳歌)》에서도 만약 어떻게 체(體)와 용(用)을 구별해야 하는지 묻는다면 그것은 바로 “의기의 임금이 오면 골육의 신하가 온다(意氣君來骨肉臣)”라고 했다. 즉 의기를 군왕으로 보고 신체골육이 힘쓰는 것을 따르는 신하로 보았으니 의념은 신(神)이 부리는 것이다.

“태극권이란 그 고요함이 마치 움직이는 것 같고 그 움직임이 마치 고요한 것 같다. 움직임과 고요함이 서로 이어져 끊이지 않으면 이기(二氣)가 서로 사귀어 태극의 상(象)을 만든다. 안으로 그 신(神)을 수렴하고 밖으로 그 기(氣)를 모은다. 주먹이 도달하기 전에 의념이 먼저 도달하며 주먹이 도달하지 않아도 의념이 도달한다. 의념이란 신의 부림을 받는다. 신기(神氣)가 이미 합쳐지면 태극의 위(位)가 정해진다. 그 상이 이미 이루어지고 그 위가 이미 정해지면 인온(氤氳)이 화생하는데 이를 칠이(七二)의 수라 한다.

태극권에는 모두 13가지 세(勢)가 있는데 붕(棚), 리(捋), 제(擠), 안(按), 채(採), 열(捩), 주(肘), 고(靠), 진보(進步), 퇴보(退步), 우고(右顧), 좌반(左盼), 중정(中定)으로 팔괘와 오행의 상생상극을 따른다.

그 허령(虛靈 자연스럽게 힘을 빼는 것), 함발(含拔 가슴을 안으로 품어 기를 단전에 가라앉히고 기를 등에 붙이는 것), 송요(鬆腰 허리를 느슨히 하는 것), 분허실(分虛實 허실을 나누는 것), 침추(沉墜 어깨와 팔꿈치를 아래로 느슨히 늘어뜨리기), 용의불용력(用意不用力 의념을 사용하고 힘을 사용하지 않는 것), 상하상수(上下相隨 위와 아래가 협동해서 같이 움직이는 것), 내외상합(內外相合 안과 밖이 서로 화합하는 것), 상련부단(相連不斷 서로 이어져서 끊임이 없는 것), 동중구정(動中求靜 움직임 속에서 고요함을 추구하는 것)은 태극권의 십요(十要)로 배우는 자들의 불이법문(不二法門)이다.”《태극권을 배우려면 반드시 신을 수렴하고 기를 모아야 한다는 주장》

장삼풍 《태극권가(太極拳歌)》

십삼세 권가(拳架)를 홀시하지 말라
생각의 근원은 허리에 있다네.
허실의 변화에 반드시 의념을 두어야
기가 온몸에 두루 퍼져 약간의 막힘도 없네.
고요한 가운데 움직이고 움직임이 고요함과 같아야
적이 변화에 따라 신기를 보일 수 있네.
자세마다 마음에 품고 의도를 헤아리면
공부가 헛되다고 느끼지 않으리라.
시시각각 허리 사이에 주의하고
뱃속을 느슨히 하면 기가 솟아오르네.
미려가 반듯해야 신(神)이 정수리를 관통하고
온몸이 가볍고 매끈해 정수리를 매단 듯하네.
자세히 주의 깊게 추구해야
굴신과 개합에 청경(聽勁 상대의 반응을 듣는 것)이 자유롭네.
입문에 드는 길은 반드시 구전 전수를 받아야 하고
공부가 쉼이 없어야 법이 스스로 닦으리라.
만약 체용을 말한다면 무엇이 표준인가?
뜻과 기가 임금이고 뼈와 살은 신하라네.
상세히 추구하는 의도는 결국 어디에 있나?
연년익수하며 청춘이 늙지 않음이라.
노래여 노래여 140글자는
글자마다 진실로 부합하고 뜻에 누락 없다네.
만약 이렇게 추구하지 않는다면
공부를 허비하고 탄식만 남기리라.
붕리제안을 반드시 진지하게 알아야 하고
위아래가 서로 따르면 남이 들어오기 어렵도다.
상대가 큰 힘으로 나를 쳐오더라도
사량을 이끌어 움직여 천근을 퉁기리라.
공에 떨어지게 이끌어 합하자마자 발출함은
점련첩수와 부주정(不丟頂 상대의 공격을 방치하지도 저항하지도 않는 것) 해야 하네.

十三總勢莫輕視(십삼총세막경시) 命意源頭在腰際(명의원두재요제)
變轉虛實須留意(변전허실수유의) 氣遍身軀不少滯(기편신구불소체)
靜中觸動動猶靜(정중촉동동유정) 因敵變化示神奇(인적변화시신기)
勢勢存心須用意(세세존심수용의) 得來不覺費功夫(득래불각비공부)
刻刻留心在腰間(각각유심재요간) 腹內鬆淨氣騰然(복내송정기등연)
尾閭中正神貫頂(미려중정신관정) 滿身輕利頂頭懸(만신경리정두현)
仔細留心向推求(자세유심향추구) 屈伸開合聽自由(굴신개합청자유)
入門引路須口授(입문인로수구수) 功夫無息法自修(공부무식법자휴)
若言體用何爲准(약언체용하위준) 意氣君來骨肉臣(의기군래골육신)
想推用意終何在(상추용의종하재) 益壽延年不老春(익수연년불로춘)
歌兮歌兮百四十(가혜가혜백사십) 字字真切義無遺(자자진절의무유)
若不向此推求去(약불향차추구거) 枉費功夫貽歎息(왕비공부이탄식)
棚捋擠按須認真(붕리제안수인진) 上下相隨人難進(상하상수인난진)
任他巨力來打我(임타거력래타아) 牽動四兩拔千斤(견동사량발천근)
引進落空合即出(인진낙공합즉출) 黏連貼隨不丟頂(점련점수부주정)

“쳐들면 더 높이고 숙이면 더 깊게 하며, 전진하면 더 길게 하고 후퇴하면 더 급박하게 한다. 깃털 하나도 더할 수 없고 파리도 앉을 수 없다. 남은 나를 모르지만 나만이 남을 안다. 영웅이 가는 곳마다 당할 자가 없음은 이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이 기예는 방문이 아주 많은데 비록 구별은 있을지라도 대개 힘센 자가 약한 자를 무시하고 느린 자가 빠른 자에게 양보할 뿐이다.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를 때리고 손이 느린 자가 손이 빠른 자에게 양보하는 것은 모두 선천적으로 자연적인 능력이지 힘을 배워서 하는 행동은 아니다. 사량발천근이란 구절을 살펴보면 분명히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칠팔십 노인이 여러 사람을 막아낼 수 있는 것을 보면 빠른 것이 또 무슨 작용을 하겠는가?”(仰之則彌高,俯之則彌深,進之則愈長,退之則愈促。一羽不能加,蠅蟲不能落。人不知我,我獨知人。英雄所向無敵,蓋由此而及也。斯技旁門甚多,雖是有區別,概不外壯欺弱,慢讓快耳。有力打無力,手慢讓手快,是皆先天自然之能,非關學力而有爲也。察四兩撥千斤之句,顯非力勝。觀耄耋能禦眾之形,快何能爲?)(왕종악 《태극권론(太極拳論)》)

《태극권가(太極拳歌)》에서 “홀연히 숨고 홀연히 드러남에 나아가면 길어지고 깃털 하나도 더하지 못하니 지극한 도에 감춘다(忽隱忽現進則長,一羽不加至道藏)”라고 했다. 태극권은 겉으로는 ‘느리고 완만하며 둥글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의념만큼이나 빠르다. 팔구십 노인이 많은 적을 물리칠 수 있는 것 역시 모두 태극권의 현묘하여 예측이 어렵기 때문이다. 태극권은 홀연히 숨었다고 홀연히 나타나는데 고심하기가 끝이 없고 나아가고 물러남에 시작과 끝이 없으며 깃털 하나 더할 수 없고 파리조차 내려앉을 수 없다.

태극권을 또 장권(長拳)이라고도 하는데 “장권이란 마치 장강이나 큰 바다처럼 도도하고 끊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이 공간에서 끝이 없다는 것은 공능이 다른 공간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은 나를 모르고 나만이 남을 알 수 있으며 영웅이 가는 곳마다 무적이 될 수 있다.

장삼풍은 《귀진(歸秦)》이란 시에서 “물(物) 밖에 소요하는 몸 그 누가 알랴(誰識逍遙物外身)?”라고 했다. 태극권을 성취한 사람은 몸 밖에 몸이 생기는데 옛날 사람은 오행을 벗어난 신체를 말했다. 겉보기엔 그곳에 있지만 사실 그곳에 있는 게 아니다.

장삼풍 《귀진》

촉에서 진으로 와 진을 떠나지 않고
서진에 오래 머무니 진 사람처럼 보이네.
보계 바위 이에 시 구절을 적으니
물 밖에 소요하는 몸을 그 누가 알랴?

自蜀來秦不避秦(자촉래진부피진)
西秦久住似秦人(서진구주사진인)
寶雞石上題詩句(보계석상제시구)
誰識逍遙物外身(수식소요물외식)

5. 구전심수와 불이문(不二門)

장삼풍은 《태극권을 배우려면 반드시 신을 수렴하고 기를 모아야 한다는 주장》에서 태극권을 배우는 사람에게 불이법문(不二法門 역주: 한 법문에서만 전일하게 수련함을 의미)을 엄격히 요구했다. 태극권은 다른 무술과 다르게 연마하는 것이 단지 근골이나 피부에 그치는 게 아니라 내외겸수의 내함과 기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불이법문’을 엄격하게 요구한다. 《대도론》에서 장삼풍은 유석도 3교 모두 정교(正敎)로 모두 우주의 보다 높은 대도(大道) 아래에서 방편적인 법문에 불과하다고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수련 중에서는 오직 한 법문만을 선정해야 하며 뒤섞어 수련할 수 없다.

장삼풍은 정공(靜功)은 태극권의 일부이며 “사려를 멈추고 정욕을 끊으며 진원을 지킬 수 있음(息思慮,絕情欲,保守真元)”이 심성 공부라고 말했다. 정공과 태극권은 마치 채약연단처럼 어느 하나도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정공이 없다면 “장생 대도에 오를 수 없다.(不能登長生大道)” 무림에서 “권법 연습은 연공이 아니며 늙으면 다 허사다(練拳不煉功,到老一場空)”라는 말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장삼풍은 《태극권가》에서 “입문에 드는 길은 반드시 구전 전수를 받아야 하고 공부가 쉼이 없어야 법이 스스로 닦으리라.(入門引路須口授,工夫無息法自修)”라고 했다. 태극권은 내수공법(內修功法)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사부의 구전심수를 받아야 한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꼿꼿이 앉아 사려를 멈추고 정욕을 끊으며 진원을 지키는 이것이 심공이다.(冥心兀坐,息思慮,絕情欲,保守真元,此心功也)”(《태극행공설(太極行功說)》)

“기왕 이 행공의 오묘한 구결을 얻었다면 모름지기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성실히 하며 마음을 조용히 하고 욕심을 끊어야 한다. 머리부터 해나가면 점차 상승하고 올라가 대도를 증오할 수 있다. 장생불로의 기초는 곧 여기에서 비롯된다.(既得此行功奧竅,還須正心誠意,冥心絕欲,從頭做去,始能逐步升登,證悟大道。長生不老之基,即胎於此)”(《태극행공설》)

“만약 태극권법을 얻었지만 행공의 오묘함을 몰라서 돌아보지 않는다면 이는 연단을 하는데 채약을 하지 않거나 채약은 했으나 연단을 하지 않는 것과 다름이 없다. 장생대도(長生大道)에 올라갈 수 없다면 외면 공부에 불과하며 결코 성취를 이룰 수 없다. 반드시 공권(功拳)을 함께 연마해야 한다. 대개 공(功)은 유(柔)에 속하고 권(拳)은 강(剛)에 속하며 권은 동에 속하고 공은 정에 속하니 강유(剛柔)가 서로 돕고 동정(動靜)이 서로 원인이 되어야 비로소 태극의 상을 이룰 수 있다. 서로 도와서 행한다면 실제로 사용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렇게 태극권을 연마하는 자는 반드시 행공(行功)의 묘한 쓰임을 먼저 알아야 하고 행공하는 자는 반드시 태극의 오묘한 도를 먼저 알아야 한다.”(若才得太極拳法,不知行功之奧妙,挈置不顧,此無異煉丹不采藥,采藥不煉丹,莫道不能登長生大道,即外面功夫,亦決不能成就。必須功拳並練,蓋功屬柔而拳屬剛,拳屬動而功屬靜,剛柔互濟,動靜相因,始成爲太極之象。相輔而行,方足致用。此練太極拳者所以必先知行功之妙用,行功者所以必先明太極之妙道也)(《태극행공설》)

“안심정성(安心定性), 염신취기(斂神聚氣)를 구하려면 가부좌를 빼놓을 수 없으니 행공(行功)의 법은 폐지할 수 없다.”

“심성(心性)과 신기(神氣)는 서로 따라서 작용하기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성이 안정되며 정신이 수렴되고 기가 모이면 일신(一身) 중의 태극이 이뤄지고 음양이 어우러지며 동정이 합해져서 전신의 팔다리와 백맥이 원활하게 유통되어 달라붙거나 막히는 곳이 없다. 그러면 나의 법을 전수할 수 있다.”(《태극권을 배우려면 반드시 신을 수렴하고 기를 모아야 한다는 주장》)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5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