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원시보

그가 내게 한 짓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를 용서할 수 없어요!”

“그 사람을 용서하라고요? 말도 안 됩니다.”

35년 경력의 정신건강 전문가이자 심리상담가인 그레고리 얀츠(Gregory L. Jantz)는 의뢰인과 상담할 때 이런 말들을 수없이 많이 들어왔다.

누군가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의뢰인에게 그레고리 얀츠는 항상 이렇게 조언을 건넨다.

“상처를 붙잡고 있는 것은 마음과 영혼에 독이 됩니다. 물론 용서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용서하는 법을 배우면서 우리는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한층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레고리 얀츠는 “최근 들어 정서 불안,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대부분의 경우 정신적 고통은 다른 사람과의 갈등, 감정적 상처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자신에게 피해를 입히고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그레고리 얀츠의 설명에 따르면, 용서의 본질은 타인의 잘못을 눈감아 주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다.

용서의 이점(利點)

용서와 신체적, 정신적 건강의 상관관계를 입증하는 연구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미국심리학회(APA)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용서하는 행위는 심리적 안정감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레고리 얀츠 박사 공식 홈페이지

해당 논문은 “용서는 불안, 우울증, 트라우마 등의 정서 장애를 극복하도록 도와주고 장기적으로 정신건강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용서의 신체적 건강상 이점도 증명됐다.

존스홉킨스대학교 연구진들은 ‘Forgiveness: Your Health Depends On It’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용서하는 행위는 혈압, 콜레스테롤 수치, 심장마비 위험을 낮추고 숙면을 도와주는 등 건강에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수록 용서와 건강의 연관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그레고리 얀츠도 저서 ‘트라우마 극복하기(Triumph Over Trauma)’에서 “타인을 향한 분노와 관계의 갈등은 심리적, 신체적 건강을 해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라며 “타인을 용서할 때 비로소 그 장애물을 극복하고 건강해지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면죄부’는 용서가 아니다

그레고리 얀츠는 “우리가 용서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과분한 면죄부’를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피해를 받은 만큼 되갚아 주는 것만이 정의(正義)라고 생각하는 건 옳지 않다”며 “오히려 스스로를 갉아먹는 행위”라고 전했다.

또 “누군가는 용서를 ‘나약함의 상징’으로 여긴다. 하지만 용서한다고 해서 약해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레고리 얀츠에 따르면 용서는 타인에게 잘못을 따지지 않고, 책임을 묻지 않으려는 것과 거리가 멀다.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냄으로써 자기 자신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용서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즉, 용서의 주체와 객체는 모두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진정한 용서란 무엇인가

그레고리 얀츠는 용서가 감정이 아닌 ‘선택’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용서는 분명하고 의도적인 선택에서 시작된다”며 “감정적인 상처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잠식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건강한 삶을 되찾겠다는 개인적인 결심이 바로 용서”라고 설명했다.

이어 “분노, 고통, 상처 등 감정적인 요인에 휘둘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들로부터 벗어나려면 의도적으로 반응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레고리 얀츠는 “용서는 평화와 치유를 향한 길”이라며 “용서하는 법을 익히면서 심리적, 신체적 건강이 개선되는 사례를 실제로 여러 차례 확인했다”고 밝혔다.

끝으로 “용서는 온전함을 향한 거대한 발걸음이며, 그것은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김연진

[출처] 에포크타임스 - kr.theepochtimes.com


불가고사: 혜공과 혜원

중국 남북조 시기 익주(益州 지금의 사천성)의 모 사찰에 두 명의 승려가 있었다. 한 사람은 법명이 혜공(慧恭)이었고 또 한 사람은 혜원(惠遠)이라 했다. 혜공 화상은 나중에 형주(荊州), 양주(揚州) 일대를 행각하며 수련을 계속했다. 반면 혜원 화상은 장안으로 선발되어 불경을 학습했다. 세월이 흘러 눈 깜짝할 사이에 30년이 지나 세상은 이미 수(隋)나라의 천하가 되었다.

​전에 장안에서 불경을 공부했던 혜원은 이미 불교경전에 정통한 승려가 되었다. 그는 학문에서 성취를 이룬 후 익주로 돌아와 널리 불경을 강의하며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혜원은 막 행각에서 돌아온 혜공을 만났다. 혜원은 너무 기쁜 나머지 그를 자신의 거처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지난 30여 년 동안 자신이 배우고 느낀 것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혜원의 말은 막힘없이 도도했으며 며칠 밤을 새워도 그칠 줄 몰랐다. 혜공은 줄곧 그의 말을 경청했다.

​드디어 혜원이 말을 끝낸 후 혜공이 아무 말도 없는 것을 보고는 물어보았다. “우리가 헤어진 지 이렇게 오래되었고 천만다행으로 어렵사리 만났는데 자네는 왜 아무 말도 없는가?”

​혜공이 대답했다. “자네가 언급한 그런 경전들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자연히 할 말이 없는 것이네.”

​혜원이 다시 물었다. “불경을 강론할 수 없다면 그럼 자네가 외울 수 있는 경전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러자 혜공은 “겨우 한권뿐이라네.”라고 대답했다.


혜원은 이 말을 듣고는 아주 엄숙한 표정으로 “그 경전은 어린 아이들도 외울 수 있지 않은가! 아주 오랜 기간이 지났네. 자네는 나와 함께 수련하여 반드시 정과(正果)를 얻겠다고 맹세하지 않았는가? 설마 지난 30여 년간 겨우 이 한권의 경전만 외웠단 말인가! 이것은 우둔한 것이 아니라 나태한 것일세. 자네가 이렇게 한심한 사람이라니 내 더 이상은 자네와 사귀고 싶지 않네. 더는 이곳에 머물지 말고 빨리 떠나주게나.”라고 말했다.

​그러자 혜공이 대답했다. “경전이 비록 작다해도 역시 부처님 말씀이라네. 존경하는 자는 무량한 복이 있을 것이요 업신여기는 자는 무량한 죄를 얻게 된다네. 부디 노여움을 가라앉히게나. 일단 내가 한번 경을 외운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세.”

​혜원은 크게 비웃으며 “이 경전은 내가 그동안 수백 번도 넘게 강의한 것인데 나더러 자네가 외우는 경을 들어보란 말인가?”라고 말했다.

혜공은 “자네가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들어본다면 나를 우습게 여긴다는 이유로 내가 외는 불법을 함부로 할 순 없다네.”라고 했다.

​그리고는 마당에 단(壇)을 설치한 후 단 위에 높은 의자를 놓았다. 부처님께 예를 올린 다음 자리에 앉아 경을 외웠다. 혜원은 그가 이렇게 공경하게 경을 외우는 것을 보고는 잠시 처마 밑 큰 의자에 앉아 그의 독경을 들었다.

혜공이 경전의 제목을 읽을 때 갑자기 한 가닥 기이한 향내가 나더니 방안을 가득 채웠다. 또 본문을 읽을 때는 천상에서 오묘한 음악이 울리더니 4가지 종류의 천화(天花)가 떨어져 내려왔다. 하늘의 음악(天樂)은 맑고 깨끗하게 공중에 울려 퍼졌고 천화는 비처럼 땅위에 내렸다. 혜공이 독경을 마친 후 자리에서 내려오자 천화와 천악(天樂)이 비로소 사라졌다.

​혜원은 이때 이미 깜짝 놀라 혜공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고는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했다. “저 혜원을 당신과 비교하면 정말이지 냄새나는 시체와 같습니다. 부디 잠시 머무르시며 가르침을 주시길 청합니다.”

혜공은 “이는 나의 능력이 아니라 부처님의 힘이라네.”라고 말하고는 혜원을 향해 길게 읍을 한 후 어디론가 사라졌다.

​* * *

이 고사에서 혜원화상은 불교경전에 정통해 여러 가지 불경을 강론할 수 있었지만 혜공화상은 오로지 한권의 경만을 암송할 수 있었다. 속인이 보기에는 혜원이 혜공보다 훨씬 훌륭하게 보이겠지만 사실상 혜공은 이미 수련 성취한 고승이었다.

​이 고사를 본 후 나는 몇 가지 느끼는 바가 있었다.

​첫째, 속인의 관념으로 대법수련을 가늠해선 안 되며 속인이 지식을 학습하는 심태로 대법을 배워서는 안 된다.

​둘째, 수련은 전일(專一)을 중시하는 것으로 어느 한 법문에서 수련하든 절대적으로 그 한 법문의 경전을 읽어야 한다. 이 고사에서 최후에 수련 성취한 것은 한 문(門)의 경전만 오로지 외운 혜공이었다.

​셋째, 혜공화상이 공경하게 불경을 외는 모습은 우리에게 사존과 대법에 대해 반드시 공경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료출처:《고승전》)

- 정견망 -​

[불가고사(佛家故事)] 구화산 고승의 일화

옛날 중국 구화산(九華山)에는 원적 후에도 육신이 썩지않는 대덕고승이 많이 나타났는데, 청나라 말에 태어난 대흥(大興)스님도 그 중의 한 분이다. (대흥스님 원적 후 항아리에 넣었다가, 3년 후에 항아리를 열었어도 신체는 여전히 부드럽고 얼굴 모습도 생전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자선하였고 관대하고 후덕하였다. 괴로움을 참고 힘든 일을 견디며 고생을 꾹 참고 수행하였다. 아래에 적힌 일화는 대흥스님이 치욕을 참아가며 무거운 짊을 지는데 있어서 속인을 초월한 이야기이다.

​구화산 아래에 부유한 한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이 집에는 금지옥엽 귀한 딸이 하나 있었다. 아가씨는 부모의 명령에 순종하여 어울리는 가문의 공자(公子)와 혼인을 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정식으로 결혼하기 3년 전에 딸은 집에서 아이를 낳았다. 부모님의 엄격한 추궁과 강박에 못이겨 아가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구화산에 올라가 절에서 향을 사르고 참배를 올릴 때 대흥화상에게 겁간을 당했으며 이후에 임신하여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가씨의 부친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힘센 장정들을 데리고 절로 뛰어들어가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흥스님을 때리고 욕하며 모욕했다. 그리고는 아이를 스님에게 떠넘겼다. 대흥스님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침착했으며, 하는 수 없이 아이를 받아 안았다. 그리고는 대수롭지 않게 “선재(善哉)라, 아미타불!”하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이 지방에서 오랫동안 명성을 누렸던 대흥스님의 위신은 단번에 땅바닥에 떨어졌고 평판이 아주 나빠졌으며, 도처에서 사람들에게 조소와 멸시를 받았다. 사람들은 “파계승” 이라며 그를 욕했다. 그러나 스님은 이런 것들을 마음 속에 두지않고 매일 산을 내려가 마을 사람들한테 아이를 위한 젖동냥을 했다. 스님의 정성스런 보살핌아래 아이는 점점 성장해서, 살도 포동포동해지고 총명하고 영리하게 자랐다.

​이렇게 시간은 어느덧 3년이 지났다…….

아가씨는 정식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신혼 첫날밤에 신랑은 아이의 행방을 물었다.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처음부터 끝까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이튿날 젊은 부부는 사실대로 부모님께 알렸다. 원래 이 아이는 그들의 친 혈육이었으나 대흥스님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모함을 했던 것이다. 3일 째 친정에 돌아온 기회에 아가씨는 또한 사실대로 친정 부모에게도 알렸다. 친정부모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경악을 금할 수 없었으며 후회가 막급했다.

​양가 부모는 젊은 부부를 데리고 절에 와서는, 대흥스님 앞에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잘못을 인정하고 정중히 사죄하면서 절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아이를 돌려 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대흥스님은 기뻐하면서 아이를 안아 공손하게 엄마 품에 안겨주었다. 스님은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게 허허 웃으면서 “데리고 가십시오! 아미타불!” 두 손을 합장하면서 말하고는 만면에 웃음을 띄며 몸을 돌려 선방(禪房)으로 돌아갔다.

​이때부터 많은 승려들과 백성들은 대흥스님을 더욱 우러러 받들고 존경하게되었다.

- 정견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