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에 해당되는 글 20건

명혜망
리훙쯔 사부님께서 중국고전무(中國古典舞)에
 대해 하신 말씀
 
 
[밍후이왕] 7월 5일, 리훙쯔(李洪志)사부님께서는 페이톈(飛天)대학의 교수법을 지도하시기 위해, 페이톈대학을 겨냥해, 친히 ⟪무엇이 중국고전무인가⟫라는 글 한편을 쓰셨다. 전체 문장은 아래와 같다.
 
무엇이 중국고전무인가
 
 
중국고전무는 5천년 역사로 다져진 방대한 중화문화의 예술체계 중에서 신체로 표현하는 예술형식의 하나이다.
 
1. 중국고전무의 특징
 
1). 중국고전무는 풍부한 무용동작이 있어 사람의 각종 정감을 표현할 수 있는데, 무릇 기쁨(高興), 슬픔(悲傷), 희(喜), 노(怒), 애(哀), 낙(樂), 헤어짐과 만남의 근심과 기쁨(憂歡離合), 발광(瘋), 착란(癲), 어리석음(癡), 병(病), 취기(醉意), 장엄(莊嚴), 비천(卑賤), 위용(偉岸), 정적인 연극(文戲), 무술활극(武戲) 등 인물의 성격과 이야기의 줄거리를 표현할 수 있다. 
 
2). 중국고전무는 뜻(意)으로 신체를 이끌어 나가는데, 즉 내심의 정서가 신체를 이끌어야만 비로소 충분히 펼쳐낼 수 있는 무용이다.
 
3). 중국고전무는 인체의 자연적인 능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필요한 근육을 인위적이고 단독적으로 훈련해낼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해 사람이 걷고, 달리고, 뛰고, 계단을 오르고, 자전거를 타는 등 자연적으로 형성된 근육능력인데, 상체 역시 직업상의 노동을 통해 자연적으로 형성된 근육능력이다. 훈련을 통해 이렇게 자연적으로 형성된 근육능력이 자연히 강화될 수 있다.
 
4). 중국고전무는 4개 부분의 훈련항목이 있다.
 
⑴ 신법(身法)훈련 (무용 조합과 기초 바 연습) 
⑵ 신운(身韻)훈련 (이것은 내재적인 특정한 정감을 신법을 통해 밖으로 표현하는 수법이다.)
⑶ 무용의 기교훈련 (즉 난이도가 큰 무용동작 훈련이다.)
⑷ 탄쯔궁(毯子功) 훈련 (주로 각종 텀블링(翻騰)과 기본기훈련을 말한다.)
5). 중국고전무는 무용극 공연 중에 또 무용 연기 부분이 있다. 무용 연기는 영화, 연극(話劇), 오페라(歌劇), 희곡(戲曲)과 미국 브로드웨이의 가무(歌舞) 연기와 다른바, 중국고전무의 연기는 표정과 신체동작이 서로 어우러져 증폭되는 표현방식이다.
 
2. 중국고전무의 기원과 전해진 과정
 
수천년 전 중국에는 이미 무술이 출현했다. 당시 매우 많은 신체 연기 예술이 모두 무술의 동작과 기교, 그리고 텀블링 동작의 영향을 받았는데 중국고전무의 많은 동작의 원형(原型)은 무술과 비슷하다. 단지 표현방식이 다르고, 요구가 다르다. 중국고전무는 후에 5천년 중화문화의 다져진 기초 중에서 끊임없이 풍부해졌는데 이것이 바로 중국고전무의 신운(身韻)이다. 이 또한 중국고전무가 전해지는 과정 중에서 형성된 풍격이다. 이러한 민족 풍취(風韻)의 형태에서 체현되는 신체동작의 특점에는 자연적으로 중화민족의 동작 운치를 지녔다. 하지만 실제로 가르치는 중에서 기타 민족도 신운과 신법의 훈련을 통해서 이와 같은 운치를 배워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중국고전무는 전해지는 과정 중에서 여러 가지 방식이 있었는데, 희극(戲劇)은 주요부분이며, 역대 궁정무용에는 모두 같지 않은 기술특점이 있었다. 민간에서 전해진 것은 주로 서로 배우고 모방하는 방식으로 전해졌고, 잡예(雜藝)중에서는 주로 무술기교를 위주로 하였다, 진(秦), 한(漢) 이전에 이미 체계적인 무술 동작으로 연기하는 예능인(藝人)이 있었다. 서커스 의 예능인은 주로 텀블링 동작을 위주로 했다. 당송(唐宋)시기의 많은 무용과 잡예(雜藝)는 모두 중국고전무의 초기의 기본 형태와 기술 및 기교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텀블링 부분은 거의 모든 잡예(雜藝)에서 모두 채용했는데, 이 또한 중화 대문화권 중에서 같지 않은 예술기교가 서로 영향을 준 것이다.
 
중국의 조대(朝代)와 기타 고대 민족의 왕국 개념은 같지 않다. 조대가 바뀜에 따라 문화의 특징도 바뀌었다. 한 왕조의 천자에 한 왕조의 사람과 한 왕조의 문화(一朝天子一朝新人、一朝文化)라, 중국고전무는 바로 이와 같은 역사문화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풍부해지고 끊임없이 완벽해졌다.
 
중국 고대에는 현대의 교수법과 같은 이런 지도방식이 없었다. 희극(戲劇) 중에서는 이전세대가 도제를 거느리는 방식으로 대대로 전해졌다. 도제는 소년 시절부터 스승을 모시고 기예를 배웠는데, 통상적으로 과반출신[科班出身-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궁정(宮廷) 무용은 자매(姐妹)가 서로 전하고 이끄는 방식으로 기예를 배웠고, 많은 잡예(雜藝)는 집안 대대로 전해내려 오는 것(家傳)을 위주로 하였으며, 무술부분은 조상 대대로 전해지거나(祖傳) 스승에게서 이어 받았으며(師傳), 종교 중에서는 제자가 출가한 후 불도(佛道) 양가 사부가 전수했다. 체계화된 현대 교수 방식으로 진입한 것은 1900년대 상반기부터 시작되었다. 
 
3. 중국고전무와 현대 신(新)무술의 구별
 
현대 무술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가 출현한 후, 많은 사람들이 무술동작을 겉으로만 그럴싸한 물건으로 미화시켰다. 영화와 드라마 스토리 중에서 표현되는 것은 보기에 꼭 무용과 같지만, 사실 그것과 중국고전무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근본 상에서 말해,
 
1) 중국고전무는 신체동작을 표현하는 것을 일차적인 것으로 하지만, 무술은 빠르고 맹렬한 동작 완성을 일차적인 것으로 여긴다. 무술은 빠를수록 더욱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2) 중국고전무의 신체동작은 내재적인 신운(身韵)과 서로 결합되어 있다.
 
3) 중국고전무는 일종의 신체언어로, 인물과 줄거리를 충분히 전달하고 표현하기 위해 신체를 최대한도로 길게 늘이고 충분히 펼쳐야 한다. 그러므로 무용반 학생을 선발할 때 가장 기본적인 조건으로 다리가 길 것을 요구한다. 이와 같이 길게 늘이는 것은 무술에서 맞붙어 싸울 때에는 위험하다.
 
4) 무술 또한 중국무처럼 그렇게 줄거리를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같지 않은 인물, 같지 않은 정서와 정감을 묘사할 수 없다.
 
5) 무술은 중국고전무가 요구하는 신운(身韵)이 없다.
 
 
4. 중국고전무가 다른 무용과 신체 기능에 미친 영향
 
중국고전무의 기술기교와 텀블링(翻騰)은 이른바 개혁개방에 따라 갑자기 세계무대에 출현했다. 특히 기교와 텀블링(翻騰)부분이 전 세계 무용계에 끼친 반향은 아주 크다. 발레도 이로 인해 일부 중국고전무의 기교동작을 채용했는데, 현대 발레는 더욱 대량으로 일부 중국고전무의 기교를 채용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기술의 표준요구를 알지 못해 규범에 맞지 않게 사용한 부분이 많았다. 이른바 거리무용(街舞)은 이러한 기술의 요구와 규범을 더욱 모르기에 중국고전무를 사용함에 아주 추한 것으로 만들었다.
 
 
중국고전무의 체육에 대한 영향도 아주 크다. 1970년대 이전에 마루운동, 평균대, 철봉, 평행봉은 단지 간단한 발레동작과 신체적인 예술훈련만 있었다. 중국 체조팀은 중국고전무의 기술기교와 텀블링(翻騰) 동작을 대량으로 체조항목에 응용했다. 1970년대 그것이 국제 경기에 출현하게 되자 각국 체조팀은 크게 놀랐다. 어떤 중국선수는 한번에 5개 전 종목 우승을 할 수 있었다. 각국 체조는 모두 중국고전무의 이러한 기교와 텀블링(翻騰)을 배우기 시작했고 단번에 체조종목을 더욱 높은 기술의 경기로 끌어올렸다.
 
사실 전 세계의 많은 무용종류, 신체예술과 운동종목은 모두 중국고전무의 기술기교와 텀블링(翻騰) 동작을 채용했는데 어떤 것은 좀 잘 모방했으나, 어떤 것은 아주 차하게 했으며 매우 정확하지 않고 또 표준적이지 않으며 심지어 추악하게 묘사했는데, 5천년의 정심한 문화를 왜곡한 것이다.
 
이것이 중국고전무에 대한 기본상식이다.
 
 
문장발표: 2013년 7월 7일
문장분류: 밍후이 편집부> 밍후이 통지> 경문 수정 통지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3/7/7/276383.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3/7/8/140927.html
명혜망
생명탐구(生命探究)/
만물은 영이 있다: 세 가지 이야기


작자: 장춘대법제자


1. 세탁기가 다시 작동하다

우리집 세탁기는 하이얼 제품인데 이미 십여 년을 사용했다. 2009년부터 회로판이 망가져서 사용할 수 없었다. 회사 직원이 와서 검사하더니 지금은 이런 구형 회로는 생산하지 않으니 수리할 수 없으며 버려야 한다고 했다.


나는 만물은 영이 있으니 그것과 한번 교류해보자, 어쩌면 다시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나는 세탁기 옆에 서서 말했다.

“세탁기야 네가 우리 집에서 일한 지가 십여 년이다. 너는 우리 가족들의 옷을 세탁하는 궂은 일을 맡아 가사노동을 줄여 내가 법을 실증할 시간이 나도록 도와주었다. 아직 정법이 끝나지 않았는데 네가 작동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니? 네가 대법제자 집에 있게 된 것도 연분인데 생명을 소중히 여기기 바란다. 계속 작동하면서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기억한다면 좋은 미래가 있을 것이다.”


다음 날 내가 다시 세탁기를 켜보니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고 모든 게 정상이었다. 회로판의 작은 불들이 다 들어와 아주 좋았다. 정말 만물은 영이 있다. 이때부터 나는 늘 그것과 소통했는데 몇 년이 지나도 잘 쓰고 있다. 이 일을 통하여 신사신법에 더욱 굳건해졌고 문제가 생겨도 늘 정념으로 대했다.


2. 전기 밥솥에 전기가 들어오다

어린 손녀가 작년 모(某) 시의 중점(重點) 중학교에 합격했다. 학교가 집에서 너무 멀어 학교 부근에 방을 하나 빌렸다. 그래서 집에서 쓰던 취사도구를 임대한 방에 갖다 놓았다.


작년 겨울 친척이 멀리서 원래 내가 살던 집에 왔다. 한참 이야기 나눈 후 나는 그들을 데리고 밖의 음식점에 가서 식사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집에서 먹자고 고집했다. 집에는 낡은 전기밥솥 하나뿐이었는데 소켓을 꽂으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어디가 망가졌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즉시 그것과 교류했다.

“밥솥아, 너도 법을 위해 온 생명인데 내가 과거에 너를 중시하지 않고 너를 놀게 했다. 언제 망가졌는지 모르지만 미안해, 용서를 빌께. 지금 급히 너를 써야겠다. 지금 대법제자 곁으로 돌아오고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기억하거라. 좋은 미래가 있을 거야.”

말을 마치고 5분도 안되어 다시 전원을 꽂았더니 전원이 들어왔다. 당시 매우 격동했으며 사부님에게 감사로 가득 찼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그 자리에 있던 몇 명 친척들은 모두 불가사의 하고 신기하다며 내가 말하는 진상을 받아들이고 삼퇴를 했다.


3. 바퀴 벌레가 사라지다

우리가 사는 건물은 비교적 낡아서 집집마다 바퀴가 있다. 낮에는 보이지 않다가 밤이면 매우 왕성하게 활약한다. 나와서 음식물을 먹는데 부엌에 탁자 위, 찬장 속에 빽빽하게 한 층이있다. 음식을 통을 닫거나 줄에 묶어 매달아도 다 기어 들어간다. 처리할 방법이 없어 고민이다. 속인은 약으로 죽이지만 잠시 뿐이며 또 나타나며 번식도 매우 빠르다. 손녀(동수)와 상의하여 바퀴벌레와 교류하기로 했다. 그것들의 살길을 가르쳐 주어 미래를 선택하도록 하자. 어느 날 우리가 주방에 서서 말했다.

“바퀴들아, 들어라. 이곳은 너희들 살 곳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이다.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기억해라. 좋은 미래가 있을 거야. 우리는 대법제자이니 너희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 여기서 멀리 떠나고 너희들의 친구들에게도 이곳에 오지 않도록 해라. 너희들이 살아야 할 곳을 찾으며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기억하여 좋은 미래를 선택하거라.”


며칠 후 우리집 바퀴는 정말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금까지 4-5년이 지났는데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세낸 집에도 바퀴와 개미가 있는데 같은 방법으로 진정으로 교류하자 바퀴와 개미 모두 순순히 떠났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중생을 널리 제도한다(普度眾生)”는 법리에 대해 어느 진일보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만물은 영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모두 동화되고 구도 받을 수 있다. 현재 대법제자는 다그쳐 사람을 구하는 동시에 주변의 만물도 구해야 한다. 그것이 대법제자의 책임이다.
 


발표시간: 2013년 4월 1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17730




명혜망
나의 수련 이야기  
 

 

작자: 흑룡강성 하얼빈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흑룡강성 하얼빈의 농촌 대법제자다. 배운 게 많지 않아 글을 쓸 줄 모르므로 오랫동안 투고를 한적 없었다. 사부님은 내 수련 이야기를 써내도록 점화하셔서 비로서 글 쓰는 법을 배웠으며 동수의 도움으로 정리해낸다.
 

 

특이했던 어린 시절:
 

우리 부모님은 전에 큰 부잣집에서 태어났고 양가의 기반이 아주 튼튼했다. 그러나 공산당이 집권한 이후 부친의 집은 가산을 모두 빼앗겼고 조부모님도 심한 구타를 당했다. 날마다 밖에 나가서 비판을 당해야 했다. 부모님은 그 옆에 서 있었다. 집안에 먹을 양식도 없어 친척들이 조금씩 도와주어 겨우 난관을 넘겼다.
 

 

내가 출생했을 때 집이 매우 곤란하여 내가 출생한 후 병이 있었는데 집에선 밤낮 반드시 불을 켜야 했으며 켜지 않으면 곧 시끄럽게 울어대었다. 밤이나 낮이나 잠을 자는데 방에 아무리 낮이 밝아도 불을 끄기만 하면 나는 즉시 일어나 앙앙 크게 울었다. 그 때 초가 매우 비쌌는데 부모님은 방법이 없어 기름통을 하나 만들어 심지를 꽂고 미약한 불빛을 붙여 지냈다. 내가 7살이 될 때까지 불을 붙였다. 집안 식구들은 내가 왜 이런 병을 얻었는지 고민했다.
 

 

할아버지는 도를 닦던 분이셨는데 많은 제자가 있었고 모두 공능이 있었으나 문화혁명 때 박해받아 환속했다. 아버지는 내가 이런 것을 보고 걱정이 되어 할아버지에게 아들이 어찌된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할아버지는 부처님의 등을 지키던 승려가 전생한 것이라고 하셨다. 부모님은 이렇게 해서 나의 특이한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고 내가 불을 끄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매우 선량했다. 벌레나 작은 동물을 죽이지 않고 성격도 내향적이며 다른 사람과 사귐을 좋아하지 않았다. 일을 해도 혼자 다니며 했다. 어떤 아이는 내가 그녀와 놀지 않는다고 욕을 했으나 나는 여자 아이들과 사귀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남자 아이들과 놀기를 좋아하고 나무에 기어오르는 등 매우 활동적이었다.
 

 

내가 말을 안 듣고 다루기 어렵게 되었을 때 부모는 내게 이야기를 해주셨다. 선악에 보응이 있으며 윤회전생 신선이 수도하는 이야기 등이었다. 그때 우리 아이들은 가장 조용했으며 가장 말을 잘 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매우 길었다. 어떤 때 하루저녁에 이야기를 다 마치지 못해 2,3일 걸려야 했다. 기억이 가장 깊은 것은 부모님이 할아버지 제자들의 이야기를 해주실 때였다.
 

 

할아버지의 제자 중 하늘에 오르고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한번은 아버지가 높은 배나무 꼭대기에 큰 배가 달려 있는 것을 보고 그 제자분에게 따 달라고 매달렸다. 그 제자는 너무 높아서 딸 수 없다고 했으나 아버지는 할 수 있다고 했다. 갑자기 그 제자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저쪽에 누가 오는가 봐?” 아버지가 고개를 돌리는 그 순간 커다란 배 두 개가 그 할아버지 제자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들은 공능이 있으나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그게 매우 유감이었다.
 

 

할아버지에게는 또 다른 제자가 있었는데 집에 와서 배가 고프다고 했다. 어머니는 나더러 밥을 갖다 주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는 그럴 필요가 없다면서 밀가루와 약간의 물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대로 했다. 그 도제는 물로 밀가루 반죽에 몇 번 튀기더니 면을 다리에 죽 펼치자 면이 곧 익어서 떡이 되었다.
 

 

어머니는 또 이런 제자를 보았다고 했다. 우리집에 와서 그는 한손으로 밥을 하며 다른 손은 소매 속에 숨겼는데 어머니가 그에게 두 번이나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세 번째 물었을 때 그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그는 자신이 삼세(三世)의 일을 안다고 했다.
 

하나는 부잣집 공자였는데 부친의 젊은 아내를 사랑하여 그녀와 몰래 도망쳐서 윤리를 흔드는 큰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목숨이 수명이 짧아져서 얼마 안되어 죽었고 지옥으로 가서 징벌을 받았다고 했다.
다시 태어났을 때 축생의 길로 들어서 돼지가 되었는데 영통하여 자기의 전생을 알았다. 잘 먹어서 살이 쪘으므로 주인은 이 돼지는 내년이 되면 200근이 될 테니 잡아먹어야겠다고 했다. 그는 살이 찌면 곧 잡혀죽는다는 말을 듣고 그때 이후부터 단식을 하여 그저 약간의 죽만 먹어 피골이 상접했고 주인은 너무 말라도 기를 수 없으니 잡아 죽여야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 말을 듣자 어떻게 해도 죽을 운명이니 실컷 먹자고 생각하여 먹기 시작했다. 죽을 때가 되어 주인의 솥에 물이 끓기 시작하자 그것을 묶으러 왔다. 주인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마구 도망치기 시작했고 주인은 쫓아왔다. 필사적으로 일백 여리를 달리자 움직일 수 없어서 어느 절로 들어갔다. 그곳에 공능이 있는 스님이 있는 것을 알고 그의 도움을 청하려고 생각했다. 불상의 뒤에 숨어 나오지 않았다. 주인은 숨을 헐떡거리며 이곳에 도착했다.
 

 

스님은 “이곳의 돈을 다 줄 테니 저 돼지를 죽이지 말라. 저 녀석은 사람이 전생한 것이므로 죽기를 두려워합니다”라고 말했다. 주인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았고 반드시 저놈을 잡아야겠다고 했다. “저놈은 너무 나쁩니다. 물이 다 끓었는데 도망쳤으며 이렇게 멀리 쳤으니 우리는 그것을 쫓아오느라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방법이 없자 스님은 돼지에게 말했다. “네 운명이 이럴 수밖에 없으니 이제 돌아가거라”고 말했다.
 

 

주인이 돼지를 메고 돌아갈 때 화가 나서 말하기를 몇 번이나 칼로 찔러 죽인다고 말했는데 너무나 두려웠다. 그러나 이 돼지는 돌아간 후 양순하게 탁자에 누워 있어서 주인이 매우 놀랐다. 피살될 때 매우 고통스러웠는데 돼지는 죽은 이후 원신이 바로 분리되지 않고 한칼 한칼 찔리며 죽는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줄곧 고기를 화로 가마 속에 넣어 익을 때까지 원신은 분리되지 않았다. 그는 수련하지 않는 사람도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고기를 먹으면 정말 큰 죄를 짓는다고 했다.
 

 

이렇게 죽은 후 다시 전생할 때 염라대왕이 말했다.
 

“이번에 너는 사람으로 될 수 있는데 하나의 기호를 남겨야 한다. 네 한손은 돼지 발굽의 모양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여 그는 또 비교적 괜찮은 집의 부호에 태어났다. 그들 부부는 줄곧 아들이 없었는데 중년이 되어 아들을 얻지 매우 기뻐했다. 아들은 이목구비가 뚜렷했는데 한쪽 손이 돼지 발굽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이를 버리지 않았고 성년이 되자 그들의 집의 가산을 이용하여 며느리를 맞아하도록 했다. 혼례하는 당일 신방에 들어가자 그는 돌연 인생의 의의를 알았고 의연히 집을 떠나 수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부모의 신화이야기 중에서 나는 천국 세계를 동경하며 늘 어머니에게 물었다. 사람은 죽어야 하나요 ? 나도 죽나요? 그렇게 물으면 어머니는 너는 언제나 끝없는 이야기를 묻느냐고 말씀하셨다.
 

 

우리집 큰 백구
 

학교에 들어가서 중학교에서 공부를 그만 두었다. 그때 학교는 매우 혼란했다. 당시 분위기가 매우 좋지 않고 많은 아이들이 연애만 하여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나무 심는 기술을 닦았다. 나무 기르기를 좋아했는데 집에 비닐하우스가 있었고 과수원이 있었다. 일이 없을 때면 줄곧 식물 기르기를 연구했다. 이 때문에 나는 그곳 농업 기술자가 되었다. 우리집에 큰 백구를 한 마리 길렀는데 일어서면 사람만큼 키가 컸고 체중이 60킬로가 넘었다. 그놈은 가장 좋은 친구인데 나는 어디를 가도 그녀석이 따라다녔고 따라다니지 못하게 해도 내가 돌아올 때가 되면 수백 미터를 마중하러 나왔다. 백구는 세번이나 나를 구했다.
 

한번 내가 과수원에 갔을 때 봄이었는데 정원의 과수나무에 꽃이 만개하고 향기가 코를 찔렀다. 나는 무릉도원같은 과수원에 누워 편안함을 즐겼다. 가다보니 나무 아래 큰 동굴이 있는데 무엇인지 모르고 큰 돌을 들어 입구를 막았다. 바로 이때 옆에서 반척 정도 되는 큰 쥐가 튀어나와 나에게 덮쳐왔으며 나를 물기 시작했다. 나는 발로 그것을 찼으나 찰수록 더 심하게 물었고 내가 도망가면 그놈은 따라왔다. 바지를 물고 놓지 않았다. 내가 급히 백구를 부르며 쥐가 나를 무니 빨리 와서 도와 달라고 했다. 백구는 내 말을 듣자마자 맹렬하게 달려오더니 쥐를 입에 물었다. 그 쥐는 죽은 후에도 물은 것을 놓지 않았다. 나는 쥐의 주둥이를 잡아 열었고 백구의 입에서도 선혈이 흘렀다. 나는 백구에게 덕분에 내가 살았다고 했다.
 

 

두 번째. 내가 밤에 자전거를 타고 언니네 집에서 돌아와 어느 집 입구를 지나는데 그 집에서 갑자기 두 마리 큰개가 달려 나와 한 마리가 한쪽씩 내 바지를 물며 나를 잡아당겼다. 내가 끌려가려는 그 손간 하얀 그림자가 번쩍 하더니 우리집 백구가 제때에 내 앞에 나타났다. 왕왕 두 번 짖자 그 개들은 놀라 도망갔다.
 

 

세 번째 시장에서 참외를 사서 돌아올 때 날이 이미 저물었고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거의 집에 도착했을 무렵 갑자기 길옆 풀섶에서 두 남자가 내 길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나를 며칠 지키고 있었으니 그들을 따라가자고 했다. 그들은 한 사람은 나를 끌고 다른 한 사람은 자전거를 끌고 갔다. 이 위급한 시각 백구가 또 내 앞에 나타났다. 그녀석이 미친 듯이 짖으며 두 부랑자에게 달려들었고 그들은 놀라서 멀리 줄행랑을 쳤다.
 

 

수련 후 나는 이것이 나와 백구의 인연이며 전세에도 내가 구해준 적이 있는데 은혜를 갚기 위해 우리집 개가 되어 나를 보호했던 것임을 알았다.
 

 

 

남편 이야기
 

내 성격이 독특해서 결혼을 할 나이가 되어도 나는 출가하지 않아 부모님은 매우 근심했다. 몇 군데 알아보았으나 늘 깨졌다. 한번은 거의 목숨을 잃을 뻔 했다. 나는 전기에 온몸이 감전이 되었다. 이런 정황은 이전에 노인들의 말에 따르면 내가 도를 범한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게 나는 곧 26-7이 되었다. 그때는 농촌에서 이 나이에 가정을 이루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 부친이 병이 났고 집에 일할 사람이 없어서 나는 시장에 나가서 채소를 팔고 있었다. 이때 큰 언니가 내게 사람을 하나 소개해주었는데 바로 지금의 남편이다. 내가 보니 이 사람은 키가 작고 평범하게 생긴데다 가정도 궁하고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나쁜 마음이 생겼다. 우선 결혼을 승낙하고 내 일을 좀 돕도록 한 다음 일이 끝나면 내가 차버리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그는 우리집에서 보름 이상 일을 열심히 했다. 그는 나를 좋아했고 일할 때 나를 보면 나는 그에게 보고 싶지 않으니 고개를 돌리라고 말했다. 마지막 그날 일하다 밤 10시가 넘었을 때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늦었는데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가면 안 되냐고 말했다. 나는 안 된다며 돌아가라고 했다. 다시 보고 싶지 않으니 이후에 영원히 올 필요 없다고 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모친은 이것을 보고 너는 어찌된 아이가 이러냐고 말했다.
 

 

나는 그와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했는데 열흘 후 그는 또 우리집에 와서 모친에게 사정을 구했다. 나에게 잘해주겠다고 했다. 모친은 그에게 설득당해 나를 권했다. 나는 그가 입에 거품을 물고 있는 것을 보고 불쌍한 마음에 차마 어쩌지 못해 며칠 더 있으라고 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는 결혼을 준비했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나의 외질녀, 모친은 언니 모두 함께 권했다. 나도 생각해보았다. 내 이전의 사귀던 그 몇 명의 남자는 백구가 보면 늘 왕왕 짖었는데 이번 남자가 오면 백구는 물지 않을 뿐 아니라 그와 매우 사이좋게 지냈다. 그가 백구의 발을 밟아도 백구는 물지 않으니 설마 우리가 정말 집안 식구란 말인가? 이렇다면 나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시집가기로 했다. 그러나 마음은 편안하지 않아 늘 우울했다. 온 몸에 질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법을 얻은 후 수련하다
 

내게 있어 기공이란 줄곧 길거리에서 무술을 연마하며 기예를 공연하는 그런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아이의 팔을 비틀었다 다시 붙이는 것을 보았는데 기공에 대해 좋은 인상이 없었다. 파룬궁이 전해 나와 어떤 사람이 매우 좋다고 해도 나는 그게 얼마나 좋은지 알지 못했다.
 

 

1999년 1월 5일 나와 넷째 언니가 상의하여 파룬궁 연공장에 가서 한번 보자하고 저녁에 우리가 연공장에 갔다. 당시 그는 우리에게 사부님의 녹음을 틀어주었는데 사부님의“논어”의 한마디인 ‘불법’은 가장 정심하다를 들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파룬궁은 불법 수련이구나. 어려서부터 신선세계를 동경했고 수련하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하는지 고뇌했지만 단번에 찾지 않았는가? 또 출가할 필요도 없으니 이것이 내가 찾고 있던 것이다. 당시 나는 마음속으로 격동했다.
 

 

이후 매일 아침에 연공하고 저녁에 법공부가 끊이지 않았다. 하루 종일 즐겁게 지냈다. 연공한지 보름이 안 되어 이전에 여러 해 시달렸던 병증과 식물과민성 증상 가래 심장병 등이 다 나았고 몸이 가볍고 힘이 들지 않았다. 성격도 좋아져서 교만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접근하기 쉬웠으며 특히 남편에게 태도가 좋아져서 이전에 늘 그를 못본체 하고 미소를 짓지 않았는데 이제 큰 변화가 있었다. 그도 이상하게 느껴 무슨 공법이 당신을 이렇게 변하게 하느냐고 말했다. 그럼 이 책은 천서이니 잘 보라고 했다. 남편도 이에 대법 수련으로 들어왔다. 식구들도 대법 수련으로 신체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오빠 숙모 언니 동생 등 모두 잇달아 법을 얻었다.
 

 

천목이 열리다
 
수련한지 며칠 안 되어 나는 천목이 열렸다. 어느 날 혼자 집에서 연공하는데 2장 공법을 할 때 바깥문에서 삐걱하는 소리를 들었다. 주의하지 않았는데 아마 남편이 왔나보다 했다. 이후 아무 소리가 없었고 나도 주의하지 않고 계속 연공했다. 이때 내 머리 위에 두정포륜 때 두 손이 좀 무거웠으며 누군가 위로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눈을 떠보니 세상에! 금색의 커다란 용 한 마리가 내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어찌된 일인지 알지 못했는데 매우 두려워 연공장에 동수에게 달려가서 말했다. 동수는 어쩌면 다른 공간의 마일지도 모른다 했으나 내 마음속으로 마같지 않았다.
 

 

나중에 어느 날 남편과 방안에 있는데 또 우리집 바닥에 두 마리의 큰 용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하나는 황금색이며 다른 하나는 백색이었다. 용의 비늘은 곡식 까부르는 키(簸萁)만큼 컸다 나는 집이 이렇게 작은데 어떻게 이렇게 큰 용이 앉을 수 있을 까 생각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것은 다른 공간에서 본 것이었다.
 

 

내가 본 바를 남편에게 알려주고 보라고 했더니 그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했다. 나는 조급하여 어째서 안보이냐 분명히 여기 있는데 라고 했다. 당시 두 마리 용이 어찌된 일인지 알지 못했는데 나중에 사부님의 설법을 보고서 비로소 대법 수련을 하면 천룡팔부가 호법을 하는 것임을 알았다. 알고 보니 내가 본 용은 바로 나의 호법신이었던 것이다.
 

 

나는 줄곧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는 줄로만 알았다. 알고 보니 사람마다 다 천목이 열리는 것이 아니었다. 사부님은 나를 점화 하셔서 왼손에 두 글자 “수구”를 보았으며 오른쪽에는 하나의 큰 눈이 있는 것을 보았다. 이후에 무엇을 보아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는 것임을 깨닫고 수구를 이해했다. 수련은 더욱 가치가 있고 대법은 진귀한 것임을 알고 수련에 정진했다.
 

 

법을 실증하고 박해에 반대
 

1999년 7월 중공이 파룬궁에 대해 진압을 하고 텔레비전에서 날마다 중공 일언당의 거짓을 방송하여 세인들을 독해시켰다. 당시 매우 괴로웠으며 이렇게 좋은 공법을 어떻게 왜 연마하지 못하게 할까? 이렇게 좋은 사부님이 모함을 당하는데 내가 좌시할 수 있는가. 나는 대법이 억울하며 사부님의 결백함을 믿었다. 7월 19일 나와 식구들이 성 정부에 가서 청원을 했고 다른 사람도 다 갔는데 나와 식구들만 파출소에 끌려가 밤 한시가 넘어서야 풀려났다.
 

 

2000년 10월 12일, 나는 언니, 동생, 올케, 남편과 북경에 가서 대법을 위해 파룬궁은 좋다는 바른 말을 하기로 했다. 우리집에 어머니 혼자 집에 남았으나 우리가 북경 가는 것을 매우 지지 했다. 나중에 어머니 말을 들으니 우리가 가던 그날 밤 사부님이 보러 오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비록 수련하지 않지만 사부님의 설법을 본적이 있어서 대법을 믿었고 줄곧 천목이 열려 있었다. 어머니는 놀랍게도 사부님이 오셨는데 말씀을 안 하시고 미소를 짓더니 가버렸다고 했다. 모친의 설명을 들으니 나는 눈물이 단번에 솟아났다. 사부님, 제자를 위해 이렇게 걱정을 하시는군요. 이 노인의 딸은 모두 북경으로 정법을 하러 떠났고 혼자 집에 남아 있는데 일부러 보러 오시다니요. 그렇게도 자비로우시군요.
 

 

우리 몇 명은 순조롭게 천안문 광장에 도착하여 여러 사람들과 함께 “파룬따파하오”를 외쳤다. 전국 각지에서 온 대법제자는 모두 이곳에서 경찰에게 한무리씩 잡혀 차에 올랐다. 우리 몇 명도 흩어졌다. 나와 언니, 올케는 경찰에 끌려 파출소 앞까지 끌려갔고 그곳에 많은 대법제자가 갇혀있었다. 당시 나는 대법에 대해 아직 똑똑하지 않았는데 어느 경찰에게 이끌려 어느 방으로 갔는데 경찰이 물었다. “뭐하러 왔어요?”
 

 

나는 “대법은 좋은 사람이 되고 도덕이 되돌아 올라오라고 하는데 왜 연마를 못하게 하는 거여?”라고 말했다. 그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며 오히려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정법하러 온거요, 호법하러 온거요?” 나는 정법도 하고 호법도 한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나를 데려갔다. 나중에 나와 올케는 성 사무처에 가는 도중 어느 작은 차가 우리를 맞이하러 왔는데 우리 경찰은 그녀들은 파룬궁이 아니며 놀러온 사람이라고 하여 이 마음씨 좋은 경찰은 우리를 놓아주었다.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은 또 북경에 들어갔다가 체포되었고 우리집은 수색 당했으며 경찰이 나더러 연마를 할 거냐고 물었다. 연마한다고 말하기만 하면 체포되었다. 나도 체포되어 간수소에 두 달 이상 갇혔다.
 

 

그때 이후 우리집은 늘 경찰이 소란을 피우고 뒤졌다. 2004년 1월 9일 하얼빈 자료점이 파괴되었고 체포된 동수가 견디지 못해 내 이름을 말했다. 나와 남편은 하얼빈 동력분국 남강분공 홍기 파출소 등에 끌려갔는데 잡혀갈 때 두 대의 차에 설흔여명의 경찰이 왔고 나는 앉아서 발정념을 하고 있었다. 다섯명의 경찰이 나를 들었으나 움직이지 못했다.
 

 

당시 아들이 울면서 경찰에게 말했다. 아저씨 우리 엄마를 놓아주세요. 엄마를 잡아가면 누가 나를 돌봐줘요? 내 마음은 매우 쓰렸다. 이때 경찰이 나를 들어 올렸다. 그들이 집을 뒤질 때 그들에게 진상을 말해주며 당신들은 인민의 경찰이 아니요 ? 어떻게 좋은 사람을 잡아 가는거요 라고 했다. 그들 중 한 악경이 말했다: “우리는 바로 강 모모가 돈을 주어 키운 토비(도적)이요.” 라고 했다. 그들이 나를 문밖으로 밀어낼 때 “파룬따파하오”라고 소리 질렀다.
 

 

그들은 내가 신은 양말을 벗겨 입을 틀어막고 나를 강제로 차에 태워 파출소로 데리고 갔다. 다음에 철제 의자에 묶었다. 두 악경이 나에게 진상자료는 누가 주었냐 돈을 얼마나 주었냐 등등을 물었으나 나는 대답하지 않자 그들은 때리기 시작했다. 내 머리를 잡아 힘껏 벽에 부딪쳐 마침내 나는 혼절했다. 처음 깨어났을 때 온몸에 물이었고 계속해서 나를 때렸다. 구두발로 나를 찼다. 나는 또 기절했다. 두 번째 깨어났을 때 나는 병원에 누워 있었고 네명 경찰이 지키고 있었다.
 

 

나는 여기에 있으면 안 되고 나는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네명의 경찰이 모두 잠들었으면 했다. 그러자 그들은 긴 침대로 문을 막더니 그곳에 누워 잠이 들었다, 나는 조용히 그들이 막은 침대를 옮겨 놓고 막 도망가려 했다. 바로 그때 옆방에서 다른 병자가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당시 다른 공간의 사악이 너무 많아 사악이 병자를 조종하여 소리를 내게 한 것이다) 그들이 깨었다. 내가 도망가려는 것을 알고 더욱 단단히 감시했다. 그들은 간수소로 나를 보내려고 했는데 두 번다 실패하자 그들은 가짜 심전도 등을 만들어 나를 노교소에 보내려고 했다. 당시 나는 구세력이 안배한 길을 걸었는데 속으로 노교소에 가면 얼마나 무서울까 라고 생각했다. 바로 이렇게 틈을 타게 되어 불법으로 노교소 3년 판결을 받았다. 악으로 가득한 만가(萬家) 노교소에서 많은 고통을 받았다.
 

 

노교소에서 “3서”를 쓰라고 하는 내가 쓰지 않자 벽돌 방에 꿇어앉게 했으며 그래도 쓰지 않자 벽에 묶어놓고 전기곤봉으로 감전시켰다. 사악이 나를 박해하는 온갖 수단에도 나는 고통을 느끼지 않았고 사부님이 나 대신 감당하셨다. 그들이 전기 곤봉으로 감전시킬 때 나는 눈도 뜰 수 없었다. 한번 갑자기 눈을 떠보니 곤봉에서 자색의 불꽃이 퍽퍽 튀고 있는 것을 보고는 나는 겁이 났다. 이때야 비로소 아픔을 느꼈다. 이때 나는 경찰에게 진상을 말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은 나를 작은 방에 집어넣었는데 나는 계속해서 말했으며 최후에는 가장 사악한 경찰도 나는 좋은 사람이라 하며 다시는 때리지 않았다. 이 기간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대신 삼서를 쓰게 하여 나의 손을 끌어다 손도장을 찍었다. 이렇게 수를 채워 전향율로 계산했다.
 

 

여기서 나는 다시 한번 발표한다. 사악이 나를 핍박하여 손도장을 누른 소위 각종의 3서는 모두 승인하지 않으며 폐기한다. 사부님의 말씀대로 할 것이며 사악의 안배는 원하지 않는다. 노교소에서 고생스러울 때 사부님의 법을 외웠으며 한번은 사부님이 멀리서 노교소에 오시는 것을 보았다. 우리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계셨는데 눈에는 눈물이 아니라 피가 흐르고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노교소에서 박해를 견디지 못해 전향된 수련생을 가슴 아파 하신다. 이것을 보고 나도 울었다. 그 간난의 세월, 나는 사부님의 법을 외워 자신을 격려하며 법에 대해 믿음에 의지하여 길고 긴 3년의 시간을 지나왔다.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
생사에 집착이 없나니
정법의 길은 탄탄하여라
 

《홍음2》 <정념정행>
 

 

노교소에서 만기가 되어 나올 때 그곳의 610은 불법으로 나를 심문했다. 연마할거냐 아니냐고. 나는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당신이 고치지 않으면 계속 고쳐야 할 것이라고 했으나 나는 당신들은 상관없으며 사부님의 말만 들을 것이라고 했다. 때가 되자 나는 다음날 오빠가 맞이하러 와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오자 파출소 악경이 놓아주지 않았다. 또 나를 세뇌반에 보내려고 해서 나는 한달 동안 떠돌아 다녔다. 집에 돌아오자 경찰은 소문을 듣고 또 소란을 피웠다. 나는 마음을 내려놓고 너희들 오너라, 진상을 말해주려고 했는데 왔으니 헛되이 돌아가지 않게 해주겠다. 그러면서 문을 활짝 열어놓아 그들을 뛰어나가 맞이했으며 예의로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들에게 무슨 과일을 먹겠느냐 우리 과수원에 와서 따가라고 했다.
 

 

그들은 대법제자가 경영하는 기업이 이렇게 좋은지 보고 좀 의외임을 느껴 당신 집에 과수원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하며 아니면 당신들이 나를 3년이나 노교소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 집을 더 관리 했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노교소에 그렇게 많은 고생을 해서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뻔 했는데 당신들은 아들 딸, 부모 형제도 없느냐? 우리는 집에서 잘 지내고 있는데 나를 박해했으니 이게 옳은가 생각해보라. 내가 연마할거냐 아니냐를 묻는데 이 질문을 하려면 나는 영원히 할거요. 나는 계속해서 진상을 알려주고, 문화혁명이 끝난 후 반대파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 않았느냐 위에서 당신들에게 시킨 일이 좋은 일이 아니다. 나중에 도망갈 길을 남겨 놓기 위해 좋은 사람을 박해하지 말라고 했다. 그들은 그럼 집에서 연마하라, 나가서 알리지 말라고 했다. 나는 무엇이 알리는 것이라고 하느냐? 당신들이 우리집에 와서 말하면 되느냐? 내가 우리 오빠 언니 집에 가서 알려도 안되는 것이냐? 그들은 된다 된다 하며 다시 오지 않겠다고 했다. 그때 이후 그들은 정말 다시는 우리집에 오지 않았다.
 

 

중생구도의 신적(神跡)
 

북경에서 돌아온 후 시내 구역의 일부 어느 동수와 연락이 되어 그곳에서 자료를 뿌리고 있었다. 우리 지역에는 십여 명의 동수가 있어 사람들은 2,3명씩 한조가 되어 자료를 나누어 주는 것은 도보로 했다. 먼 곳은 40여리 돌아오면 80여리 였다. 아들이 겨우 8,9세 되었는데 역시 어른과 함께 중생구도의 중임을 맡았다.
 

 

한번은 나는 아들과 한조가 되어 먼 길을 걸어갔다가 돌아올 때 아들이 엄마 나 걷기 힘들어, 차가 있으며 얼마나 줗을까 하고 말했다.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차 한대가 우리 옆에 섰다. 우리가 보니 먼 친척이었는데 차를 몰고 일을 보고가다 그곳을 지나는 길이었다. 그래서 그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 왔는데 사존의 감은을 표현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나와 아들이 어느 마을에서 자료를 뿌리다가 악인에게 뒤를 밟혔다. 아들이 내게 말하자 나는 두려워 말라하고는 우리가 하는 일은 가장 바른 일이다 하며 나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당신이 나를 뒤따라 뭐하는거요? 그는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그러면 나를 뒤따라 뭐하는거요? 하면서 계속 걸었는데 그 사람은 멍하게 그곳에 서서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어쩌면 정념으로 그를 고정시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또 한번 다른 사람에게 꼬리를 밟혔는데 나는 당신 뭐하러 가느냐고 물었다. 그는 소를 찾으러 왔다고 했는데, 소는 저기 있다 하면서 손으로 길을 가리키며 가보라고 했더니 그는 순순히 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또 한번은 언니 아들과 함께 어느 순찰차에게 종적이 밟혔다. 우리는 옥수수 밭으로 들어가 달렸다. 한참 달린 후 우리는 이랑에 엎드렸다. 왜냐하면 순찰차의 전조등이 옥수수 밭으로 향해 쓸며 비추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갈 때가 되어 우리는 비로소 울퉁불퉁한 옥수수 밭을 지나갔다. 내 신은 구멍이 나서 샜으며 두 발에는 이미 물집이 많이 생겼다. 나온 후 방향을 몰라 집을 찾지 못했다. 나는 TV 송신탑에 가로등이 있지 않느냐 밝게 비치는 곳이 우리집 방향이라고 했다. 내 생각이 이는 내가 두려운 마음에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들은 단순하여 아무 일도 없었다. 우리는 나는 듯이 달려 십여 리의 길을 우리 몇 명이 십분도 안 되어 정말로 정시 발정념 시각에 도착했다. 아무리 먼 곳도 우리는 늘 발정념 시각 이전에 돌아왔다. 우리가 신의 일을 할 때 정말 신이며 생각한대로 이루어진다. 동시에 사존이 항상 보호하심에 감사드린다.
 

 

농촌은 연말이면 집집마다 주련(柱聯)을 붙이는데 집안에 죽은 사람이 있을 때만 안 붙인다. 농촌에는 집집마다 대문이 있다. 최근 몇 년은 주련을 대주는 동수를 찾지 못해 대문에 주련을 붙이지 못했다. 나는 시장에 가서 속인을 찾아 겨우 붙였는데 마음이 불편했다. 정월 초오일에 대련이 떨어졌다. 사실 나는 속인의 대련이 시커먼 것을 볼 수 있는데 나는 정말 붙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금년은 어떻게 하지? 생각하니 사실 너무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서예를 하는 동수에게 한 폭을 써달라고 하자고 생각했다. 이때 동수에게서 이미 두 폭의 작은 주련을 가져왔고 정 안되면 이것이라도 붙이되 속인의 주련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 대련을 대충 상자 속에 넣고 다음날 열어서 붙이려 할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작은 주련 속에 큰 두루마리가 있었다. 주련을 넣은 상자는 내가 분명히 깨끗하게 청소하고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두루마리를 열어서 보니 뜻밖에 큰 대련이었고 거기에는 두 줄로 다음처럼 써져 있었다.
 

法正乾坤 日月增輝
(법이 우주를 바로잡고 일월이 더욱 밝다)
 

人心歸正 福祿臨門
(인심이 돌아오니 복록이 문에 임한다)
 

 

가로 폭에는
 

天賜洪福
(하늘에서 큰 복을 내려주네)
 

라고 적혀 있었다. 또 두 개의 큰 복(福)자가 있고 그 위에는 불광보조 예의원명(佛光普照,禮義圓明)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이 나의 급한 마음을 보고 보내준 것임을 알았다. 나는 사존께 무릎을 꿇고 몇 번이나 고개를 찧어 사존에 대한 감격을 표시했다. 그 대련은 금빛이 번쩍이며 길가는 행인이 길을 멈추고 쳐다보지 않는 사람이 없고 모두 매우 부러워했다. 여기서 하나 희망컨대, 능력이 있는 동수는 대련을 만들 때 일부 대문의 대련을 만들어 농촌 중생의 요구를 충족 시켰으면 한다.
 

 

중생 구도의 길에 사존의 자비로운 보호가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고 신기한 일은 너무나 많다. 자기가 잘 수련하여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하여야만 사도은에 보답할 수 있다.
 

 

 

안으로 찾아 병업관을 넘다
 

몇 년 전 언제인지 모르는데 집에서 창고에 쥐가 나타났다. 동수에게 물어보니 아마 어렸을 적에 동굴을 막아 비교적 큰 쥐가 나를 물었을 때 그 쥐가 아닌가 했다. 이 쥐는 우리집 창고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다 먹고 사람을 해를 끼쳤다. 나는 기분이 나빠 남편에게 쥐약을 사서 뿌리자고 했다. 큰 놈 두 마리, 작은 놈 4마리 다 합해 일가족 6마리였다. 당시 어쩐 일인지 모르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법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동시에 신당인의 연극 <달마전기>를 보고 있었는데 곧 병업의 반응이 오기 시작하여 오장 육부가 칼로 찌르는 듯이 아파왔다, 선혈을 토했다. 너무 아파 방바닥에서 굴렀다. 안으로 찾아보며 아마 TV를 보아서 그런가보다 했다.
 

 

나는 열려 수련하기 때문에 이런 장면을 본적이 있었다: 당나라 시대에 회창 년간에 불교를 없앨 때 500명의 스님을 모두 가두고 석가모니 부처를 믿는가 안믿는가 물었다. 믿는다고 하면 머리를 자르고 안 믿는다고 하면 놓아주었다. 나에게 물었을 때 나는 믿는다고 했고 그들은 나의 머리를 베었는데 현재의 사람 머리보다 몇배나 컸고 고통도 느꼈다.
 

 

내가 고통스럽게 시달리고 있을 때 몽롱한 중에 어떤 음성이 말했다.
“너는 석가모니의 제자이다. 석가모니의 제자는 모두 열반의 길을 걷는데 네가 원만하려면 열반해야 한다.” 나는 이때 단번에 깨어났다. “우리 대법은 열반의 길을 걷지 않는다. 이것은 마이다. 구세력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니 나는 너희들의 말을 듣지 않겠다.”
 

 

내가 또 잠들었을 때 나는 달마가 나를 따라가자 하면서 나를 데리고 가는 것을 보았다. 마치 TV연극 <달마전기>를 보는 것처럼 착각했다. 그러나 병업은 낫지 않았다. 그것은 근본 집착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다. 연후에 두 번 또 쥐를 보았는데 그때는 단번에 알았다. 내가 살생한 업이구나. 비로소 고통스러운 모습이 마치 쥐가 약을 먹고 감당하는 듯이 시달리는 것임을 알았다. 나는 사부님의 선해의 법을 외우며 이 쥐와 선해를 시작했다. 쥐들은 동의했고 나의 병증은 즉시 소실되었다. 또한 신체는 이전보다 훨씬 편안해졌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수련은 너무나 엄숙하다는 것을 느꼈다. 매 하나의 난관이 만일 사부님과 대법에 의지하지 않으면 정말 넘을 방법이 없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린다.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 법에 맞지 않은 곳이 있다면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발표시간: 2013년 3월 26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17613
명혜망


보시라이 녹음 폭로중공 은폐 검은 내막 드러나

 
 
[밍후이왕] (밍후이 허위기자 종합보도중국공산당(중공법원은 보시라이(薄熙來)에 대한‘1’ 재판에서 보시라이가 중공이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대규모 생체장기 적출을 자행한 사건에서 주요 추진자 중 한사람이었다는 핵심 죄악을 적극적으로 덮어 감추려고 했다이에 대한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들 중 한명인 바오광(鮑光가명)씨는 의분을 참지 못하고 2013년 8월 27, 2006년 당시 보시라이의 독일 방문 기간 중 본인 입으로 직접 파룬궁수련생 생체장기적출은 장쩌민이 명령한 것임을 승인한 녹음파일을 공개했다바오씨는 그러면서 다른 내막을 아는 자들도 자신을 위해양지와 중화민족의 미래를 위해 중공 죄악의 증거를 용감히 폭로할 것을 호소했다.
 
보시라이 폭로-장쩌민이 파룬궁(法輪功)수련생 생체장기적출 명령
 
2013년 8월 27바오광씨는 대기원시보에 녹음파일과 녹음에 대한 설명을 함께 제보해, 2006년 9월 13일 당시 상무부장에 있던 보시라이가 중공 원자바오총리를 수행해 독일 함부르크를 방문했을 때 독일 주재 중공대사관의 한 일등비서관과의 전화통화에서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생체장기적출 명령은 장쩌민이 하달한 것이라고 직접 승인했음을 폭로했다.
 
아래는 전화 녹음 대화 및 설명이다.
 
 
녹음보시라이장쩌민이 파룬궁수련생 생체장기적출을 명령했다고 스스로 폭로
 
보시라이에 대한 공개재판이 열렸지만 중공 고위층이 여전히 보시라이의 진정한 죄악을 감추고 있어 대중의 분노를 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2006년 9월 30일 당시 상무부장 자리에 있던 보시라이의 독일 함부르크 방문 시 녹음을 공개하는 바이다녹음에서 보시라이는 장쩌민이 살아있는 파룬궁수련생 몸에서 장기를 적출할 것을 명령했음을 승인했다보시라이 본인의 목소리가 확실한바 음성분석 관련 최고 검증기관의 검증을 통과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녹음 중 독일 주재 중공 대사관의 일등 비서관이라 자칭한 사람이 보시라이에게 누가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생체장기적출 명령을 하달했는가라고 질문한다아래는 전화녹음 기록이다.
 
전화 교환원안녕하세요(저녁인사). 함부르크 아틀란틱 캠핀스키(Atlantic Kempinski) 호텔입니다제 이름은 ×××(녹음에서는 독일어 David Monte 의 발음처럼 들림)입니다.
 
일급 비서관안녕하세요(저녁인사). 5번방을 연결해주세요아니 452호요.(녹음에서는 독일어 452 발음처럼 들림)
 
전화 교환원찾으시는 고객님 성은 무엇이죠?
 
일등 비서관보입니다.
 
전화 교환원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보시라이여보세요여보세요여보세요누구세요?
 
일등 비서관보시라이 부장님이세요?
 
보시라이당신은 누구세요?
 
일등 비서관대사관인데요저는 대사관 일등 비서관입니다.
 
보시라이.
 
일등 비서관긴급한 일이 좀 있어서요오늘 오후 독일 외교부에서 저희에게 한 가지 사실을 해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보시라이.
 
일등 비서관다름 아닌말하자면 당초 부장님께서 랴오닝성 성장 직에 있을 때왜냐하면 이것은 내일 회견과 관련되는 것이기에 그들은 규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즉 당신께서 애초 랴오닝성 성장 직에 있을 때 장쩌민 즉 장주석이 내린 명령인지아니면 당신께서 참여한 것인지요다시 말해 파룬궁수련생을 생체장기적출하는 일에 관해서입니다당신의 명령입니까 아니면 장쩌민의 명령인지요?
 
보시라이장 주석이야!
 
일등 비서관그들 독일외교부에서는 사실을 대조 확인하려 합니다다시 말해만약 당신께서 이 일에 참여했다면 그들은 일부 회견에 있어그들이 출석하는 규정에 대해 일부 변동이 있을 것입니다그것은 왜냐하면 파룬궁에서 자료 한부를 제출했기 때문에......(보시라이가 말을 끊음)
 
보시라이더 말하지 말라당신은 당신네 마대사(당시 독일 주재 중공대사 마찬룽을 지칭)를 찾아 말해.
 
일등 비서관아니이 일은 즉시 그들이 오늘 오후 금방 제출했고우리에게 각서를 보내왔는데요그래서요(또 한 번 보시라이가 말을 잘라 버림)
 
보시라이당신은 마대사를 찾아라나를 찾지 말고이 일을 그래 당신네 마대사가 처리할 수 없단 말인가?
 
만약 중앙 고위층에서 계속해 보시라이의 진정한 죄악을 은폐한다면 나는 사람을 더욱더 놀라게 하는 관련 증거를 공개할 것이다중국의 군대무장경찰병원공안감옥노동교양소정치법률위원회는 모두 파룬궁수련생의 생체장기적출 죄악에 가담했다가담한 자들이 매우 많은데 여기서 또 그러한 가담자와 내막을 아는 사람들이 양지를 위해자신과 중화민족의 미래를 위해 용감하게 증거를 폭로할 것을 호소하는 바이다!
 
바오광(鲍光)
 
 
파룬궁 박해의 최선봉에 서다
 
1999년 7월 장쩌민은 (), (), ()’을 수련하는 파룬궁 수련단체(群體)에 대해 집단학살적인 박해를 발동했다박해초기 중앙 고위층성위(省委), 부위(部委급 고위 관리로부터 각지 지방정부 관리를 포함한 일반 민중에 이르기까지 도리어 소극적인 대처와 저지의 태도를 보였다왜냐하면 사람들은 심신건강과 사회도덕의 승화에 이로움을 준 파룬궁의 공로에 대해 보편적으로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쩌민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만 했다같은 해 8그는 랴오닝 순방 시당시 다롄(大連시장에 재임 중인 보시라이에게 자신의 의도를 비쳤다. “자네가 파룬궁을 대함에 마땅히 강경한 표현을 보여야만 비로소 승진할 밑천이 있게 될 것이야.” 이리하여 보시라이는 다롄에서 대형 감옥과 노동교양소(이하 노교소)를 새롭게 확충하고 건설해베이징에 평화적 청원을 하러 갔다가 체포된 파룬궁수련생을 그곳에 대량 수용해 박해했다그는 일찍이 공안과 국가안전부 요원들에게 파룬궁에 대해 죽도록 호되게 족치라고 지령을 내린 바 있다보시라이는 또 다롄에서 솔선하여 생체장기적출과 시신가공을 진행해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육체를 소멸하라는 장쩌민의 집단학살 정책을 추진·실시함으로써 박해의 최선봉이 되었다.
 
파룬궁수련생들의 선혈을 밟고 보시라이는 랴오닝성위원회에 들어갔고 잇달아 성위부서기,대리 성장성장으로 발탁되었다그사이 그는 10억 위안을 투자해 전 성범위내에서 감옥개조를 진행했다이 중 선양(瀋陽마싼자(馬三家노교소에만 5억의 거액을 투자해 마싼자 노교소를 참혹하기 그지없는 혹형고문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사악의 간판모델로 만들었다선양은 또 파룬궁수련생 생체장기적출 죄악이 가장 창궐한 곳이었고 다롄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신가공기지이기도 하다.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박해와 무고한 인명을 수없이 살해한 죄과로 보시라이는 장쩌민에 의해 박해를 유지하고청산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획한 정변 후의 권력 후계자로 지목되었다하지만 이 음모는 도리어 2012년 2월 왕리쥔이 미국영사관에 도피하면서 폭로되었고 따라서 수포로 돌아갔다.
 
인간지옥마싼자 노교소
 
2013년 4월 6, 2만자에 달하는 마싼자를 걸어 나오다라는 조사보고가 대륙에서 전해졌다이 보고는 마싼자노교소 반인류 혹형의 검은 내막의 일각에 대해 폭로한 것이다비록 마싼자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기로 일찍부터 해외에서 악명이 자자했지만국내 매체에 의해 실증됨으로써 여전히 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했다. AP 통신, ‘뉴욕타임즈’, BBC, ‘캐나다 내셔널 포스트’, 미국의 소리프랑스 방송독일의 소리 등 국제 저명 매체가 잇달아 이를 질책하면서 마싼자는 독일 나치수용소와 마찬가지로 이미 역사의 치욕 기둥에 박혀 있다고 지적했다.
 
다롄 파룬궁수련생 왕윈제(王雲潔)는 일찍 노교소 1대대에서 각종 비인간적인 학대에 시달렸다그의 오른쪽 유방은 악독한 경찰에 의해 전기 방망이로 전기충격을 당해 상처가 짓물러져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그녀는 결국 2006년 7월 세상을 떠났다.
 
랴오닝 번시(本溪파룬궁수련생 신수화(信淑華)는 마싼자노교소 2(二所)의 죄악을 폭로한 바 있다악독한 경찰은 여성 파룬궁수련생을 강간한 후 발로 잔인하게 음부를 걷어찼다.칫솔 3개를 치모가 밖을 향하게 한데 묶은 후 파룬궁수련생 음부에 넣어 마구 쑤셨고 또 전기방망이까지 음부에 넣어 전기충격을 가했다.
 
뉴욕타임즈의 계약 촬영사 두빈(杜斌)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마싼자 노동교양소의 여인(小鬼頭上的女人)’에서 파룬궁수련생 류샤(劉霞)는 자신이 당한 불행을 진술했다. “혹서에 솜이불을 감고 뙤약볕에서 장시간 뛰도록 강요당하고혹한에는 홑옷을 입고 얼음위에서 장시간 쭈그리고 앉도록 강요당한다입에서 피가 흐르고 음부에서 피가 흐르며그야말로 피감옥(血牢)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혹형고문을 공로로 삼아 마싼자는 중공이 전국에서 파룬궁수련생을 전향시키는데 있어 우수단위로 선정되었다악행을 한 교도관들은 잇달아 장쩌민보시라이로부터 상장을 수여 받았다예를 들어 2소 소장 수징(蘇境)은 어느 한번 베이징으로부터 상금 5만 위안을 타왔고부소장 사오리(邵力)는 3만 위안을 탔다각 대대장들도 모두 상금을 받았는데 전체 감옥 교도관들은 단체 2급 영웅 모범으로 선정됐다마싼자 뿐만 아니라 보시라이 관할 하에 있는 다베이(大北)감옥장스(張士)교양원룽산(龍山)교양원다롄교양원 등도 모두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인간지옥이다.
 
솔선해 파룬궁수련생 생체장기적출 가담
 
보시라이는 다롄에서 솔선해 장기를 생체적출당한 파룬궁수련생의 장기매매를 진행했으며,아울러 시신를 훔쳐 팔았다그 후 이 죄악은 신속히 전국에로 만연되었다중공 군정치법률위원회 계통병원(군대무장경찰지방 병원 포함), 마피아 장기 브로커들의 연합 하에 각지의 군사시설집중영감옥노동교양소간수소와 임시 감금시설에서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파룬궁수련생의 장기를 생체적출하고 훔쳐 팔고 있는 죄악이 보편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보시라이의 유능한 인재라고 불렸던 왕리쥔의 공식 이력서에는 이러한 경력이 적혀 있다. “2003년 5월부터 2006년 6월까지 당시 진저우(錦州)시 공안국장으로 재직 중이었던 왕리쥔은 진저우시 공안국 현장 심리연구센터를 설립해 약물주사 후 장기이식과 상처 없는 해부등 연구를 진행했다. 2006년 9월 해당 연구센터는 중국 광화 과학기술 기금회 신기록 특별 공헌상을 수상했다왕리쥔은 당시 수상 축사에서 우리의 과학기술성과는 수천개의 현장 집약 결정체이자 아주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한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3년이 되지 않는 시간에 해당 센터는 수천 건의 장기이식과 인체실험을 완성했다!”
 
정부 측 데이터 발표에 따르면, 2000년 이전의 6년 간 중국은 1만 8천여 건에 달하는 이식수술을 진행했으나 2005년에는 겨우 1년 사이에 이미 2만 건에 달하는 이식수술을 진행했다. 2000년부터 2005년 사이에 이루어진 장기이식은 버섯구름 모양의 폭발적인 성장을 보였고 이는 중국을 단번에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장기이식 대국이 되게 했다
 
미국의 베테랑 탐사전문기자이자중공의 파룬궁수련생 생체장기적출을 폭로한 책 국가가 장기를 약탈하다의 저자 중 한명인 에단 구트만(Ethan Gutmann)의 독립조사에 의하면 중공이 살아있는 파룬궁수련생의 몸에서 장기를 강제 적출한 죄악은 2006년에 최고봉에 달했고 2008년에 이르러서는 최소한 6만 5천명의 파룬궁수련생들이 생체장기적출로 희생됐다.”고 밝혔다.
 
여러 국가에서 고소당해
 
하늘의 그물은 매우 넓고 성글지만 악한 짓을 저지른 자는 결코 법망을 벗어날 수 없다. 2003년 11, 6개 국가의 41명 파룬궁수련생들이 독일 연방 최고 검찰원에 제기한 형사고소에서 보시라이는 피고인의 명단에 올랐다그가 고소당한 죄명은 집단학살죄반인류죄혹형죄였다.
 
같은 해 4월 20보시라이는 상무부부장이 된 후 첫 해외방문으로 중공 부총리 우이(吳儀)를 수행해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다음날 국제 비정부 기구는 미국 국토안전부에 서한을 보내 보씨를 미국 국경 내에서 추방할 것을 요구했다셋째 날보시라이는 호텔에서 미국법원이 보낸 파룬궁박해 관련 고소장을 받아야 했다.
 
2007년 11월 5보시라이가 궐석한 채 진행된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주 고등법원 재판에서 법원은 피고 보시라이에게 패소판결을 내려 원고인 파룬궁 수련생의 손을 들어줬다.
 
2009년 11스페인 국가법원은 형사소송절차를 정식 적용해 집단학살죄’ 및 혹형죄로 장쩌민뤄간(羅幹), 보시라이자칭린(賈慶林), 우관정(吳官正등 5명의 파룬궁 박해 원흉들을 기소했다.
 
파룬궁 박해 원흉들은 거리를 지나는 쥐’ 신세가 되었다장쩌민저우융캉뤄간보시라이 등 30여명의 중공 고위 관리는 세계 수십 개 국가에서 파룬궁수련생들에 의해 반인류죄’, ‘혹형죄’, ‘집단학살죄’ 등의 혐의로 법정에 고소당했다또한 보시라이는 미국영국캐나다.독일아일랜드 등 30여개 국가에서 고소당했다.
 
설사 박해가 여전히 진행 중인 중국대륙이라 할지라도현재 보시라이구카이라이(谷開來),왕리쥔 등 일찍이 안하무인격이었던 박해자들은 잇달아 낙마 당하고 재판을 당하고 있다.
 
해외 분석가들은 보시라이와 장쩌민이 중공 국가기구를 이용해 파룬궁을 박해한 그 죄악은 이미 중공과 한데 묶어져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비록 중공 현임 공산당 집권자가 당 보위’ 차원에서 여전히 중공의 반인류 죄행을 감추고 있지만가로막을 수 없는 천상의 변화 하에 갈수록 많은 내막을 아는 자들이 걸어 나와 그 검은 내막을 폭로할 것이다중공은 현재 민중의 버림을 받으면서 최후의 멸망으로 걸어가고 있다무릇 용서 못할 죄를 저지른 박해자든 하늘에 사무치는 이 죄악에 대해 종용한 자든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역사의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이다.
 
 
 
문장발표: 2013년 8월 31
문장분류해외소식지역보도
 
희망지성


수도이야기

옛날 중국에 가현이라는 수행 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산 위 사원에서 수행하며 날마다 산 아래에 내려가서 행인들의 짐을 산 위까지 날라다 주었습니다.
그런 날들이 하루 1년 어느덧 2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날도 가현은 산 아래로 내려가 어느 노인의 짐을 대신 메고 산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산 중턱쯤 와서 가현이 힘이 들어 땀을 뻘뻘흘리고 있을 때
옆에서 걷던 노인이 물었습니다.
"자네 이름이 뭔가?"
"가현입니다."
몇 발짝 가지 않아 노인은 재차 물었습니다.
"자네 이름이 뭔가?"
"가현입니다."
노인은 몇 발짝 갈 때마다 똑같은 물음을 했습니다.
길은 가파르고 등의 짐은 무거워 한 발자국 내딛기도 힘든 상황에서 끊임없는 노인의 물음에 가현은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올라왔습니다.
"가현! 가현! 가현이오. 이제 알아듣겠소?"
그리고 나서 가현은 갑자기 어깨의 짐이 가벼워진 것을 느끼고, 뒤돌아보니 노인도 짐도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가현은 탄식하며, 자신이 참을 인을 실행하지 못해 원만의 기회를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9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가현은 어느 할머니의 보따리를 들고 산길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는 산 중턱에 왔을 때
"자네 이름이 뭔가?"라고 물었습니다.
"가현입니다."
몇 발자국 걷지 않아 할머니는 똑같은 물음을 했습니다.
가현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 이분은 저번에 만났던 신선이 아닌가?
이번엔 끝까지 잘 참고 해낼 것이다.'
이 마음이 든 순간, 할머니도 보따리도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가현은 자신의 집착이 또 원만의 기회를 잃게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후 가현은 집착도 기대도 없이 그저 묵묵히 힘든 사람을 도와 짐을 날라댜 주었습니다.
2년 뒤 가현은 백일승천하여 신선이 되었습니다.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에서 보내드렸습니다.

'희망지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극기복례(克己復禮)  (0) 2013.10.09
삼일 밤낮  (0) 2013.09.30
겉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하여 좋은 기회를 놓치다  (0) 2013.09.27
의식족즉지영욕(衣食足則知榮辱)  (0) 2013.09.26
종소리  (0) 2013.09.24
대기원시보
중국 내 강제 장기적출 대책 마련 간담회 열려


사진=전경림 기자

6일 국제장기이식윤리협회(IAEOT)가 인천 송도국제도시 쉐라톤 인천호텔에서 캐나다 국제 인권변호사 데이비드 메이터스(David Matas, 사진)를 초청해 중국 내 강제 장기적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간담회를 개최했다.

2006년부터 중국 내 강제 장기 적출을 조사해 온 메이터스 변호사는 강제 장기적출의 주요 배경인 중국 정치를 언급하며, 양심수 중 현재 탄압받고 있는 파룬궁 수련자가 주요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메이터스 변호사는 간담회에서 중국의 강제 장기적출을 종식하기 위해 ▲의료전문가들의 윤리성 제고, ▲제약회사의 면역억제제 임상실험에서 실험대상자에 대한 윤리적 투명성, ▲장기이식에 관한 각국의 법률 개선 등 다각도 노력을 제안했다.

그는 의료윤리를 바로잡는 것이 시급하다며 “세계 의학협회나 학회는 그 회원 자격을 장기이식에 관한 의료 윤리를 이행하는 전문가들로 제한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 의학저널 중 일부는 이미 중국의 강제 장기적출 중단을 위한 노력에 동참하고 있다며 “간 이식 수술(Liver Transplanation) 잡지와 미국 이식수술 저널(The American Journal of Translation)은 사형수의 장기를 사용한 보고서와 장기공급원의 출처가 불분명한 원고는 싣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해외 장기이식 수술 전문병원의 경우, 중국의사들에게는 장기이식 수술 연수를 제공하지 않는 것도 중국의 불법 장기이식을 없애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호주 퀸즈랜드주(洲) 장기이식 수술 전문병원인 프린스 찰스 병원(Prince Charles Hospital)은 중국 의사에게는 연수프로그램을 제공하지 않는다.

메이터스 변호사는 “중국 의사가 만약 연수를 받고 있는 병원들이 있다면, 병원 측은 중국의사에게 불법 장기이식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서면 동의를 받고 연수 후 중국 내 의사 활동을 추적 감시하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세계 제약회사들이 중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면역억제제 임상 실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메이터스 변호사는 의학 실험에 대한 윤리성을 촉구하며, “실험 대상자가 강제 장기적출 위험에 있는 사람들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2010년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의 촉구로, 제약회사 노바티스(Novatis)는 중국에서의 면역 억제제 임상실험 중단을 발표했다. 2012년 화이자 제약(Pfizer)은 임상실험에 대한 국제기준을 준수하기 위한 방침과 절차를 마련했다.

의학계와 제약회사의 윤리성 회복과 더불어, 세계 각국이 중국 원정 장기이식에 관한 법률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스라엘의 경우, 2008년 국내외의 장기 매매금지와 국외 장기이식에 대한 의료보험을 지급하지 않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호주는 국내외의 불법장기 이식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캐나다는 해외장기이식 관광을 금지하는 치외법을 발의했다. 대만의회는 2012년 의료기관과 의사들에게 해외 장기 이식을 받은 환자들은 그 국가명과 병원정보를 기록하고 건강보험신청 서류에 첨부할 것을 결의했다.

메이터스 변호사는 “중국장기이식학회에 계속 장기이식 숫자를 공개하라고 요청하지만 답변이 없다”며 “지금도 중국에서는 강제 장기 적출이 이뤄지고 있는 반증”이라고 설명했다. 또, “강제장기 적출을 주도자들이 현직에서 물러나고 있지만, 파룬궁은 여전히 탄압받고 있다며, 사형수 숫자는 줄어드는데 장기이식 숫자는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기증을 꺼리는 중국 문화 특성상, 자발적 기증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한국이 중국의 강제장기적출 문제와 관련해 그는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중국에서 장기이식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훨씬 많다”며 “이것은 설명돼야 할 부분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은 북한 문제로 중국과의 관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며 “한국은 중국을 비판하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이 문제에 나서기를 꺼린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작년 봄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하려고 했던 중국 강제 장기 적출 관련 기자회견이 중국 대사관의 압력으로 취소된 바 있다.

이번 간담회는 세계 NGO 단체인 강제장기적출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모임(DAFOH, 다포)에서 주최하는 ‘파룬궁 수련생 강제 장기 적출의 즉각적인 종식을 촉구하는 유엔 인권 고등판무관에 대한 청원’을 위한 전 세계 서명운동(8~11월 까지)에 한국인들의 적극적 동참을 이끌어 내기 위한 활동의 일환이다. 특히, 한국의 의료계와 법조계, 정치계 인사들에게 중국의 불법장기이식에 관한 관심과 적극적인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장이 됐다. 현재 우리나라는 다포의 협력단체인 국제장기이식윤리협회(IAEOT)가 중국의 강제장기적출 반대 서명운동을 인터넷과 주요 기차역(서울, 수원, 대전, 대구, 부산) 주변에서 실시하고 있다.

최윤미 기자

<저작권자 © 변화하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 [대기원(大紀元)].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대기원시보
행각승이 밝힌 외계인과 부처의 진실②

이 글은 중국에서 태어나 미얀마의 한 사찰에서 출가한 승려가 자신의 체험담을 글로 정리해 기고한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맞지 않을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편집자 주

두 외계인의 말에 따르면 지구밖엔 많은 외계인 문명이 존재한다. 어떤 문명은 역사가 유구하여 지구인의 상상을 크게 초월했는데 그들이 알고 있는 가장 오래된 시간은 지구 시간으로 계산하면 30억년 이상이다. 외계 문명의 과학기술도 인류를 훨씬 초과하여 불가사의할 정도로 높다. 하지만 역사가 아무리 유구한 외계문명도 그들의 과학기술이 일정한 정도에 이르면 더 진보할 수 없었다. 제일 주요한 점은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했다 해도 그들의 수명은 일정한 연한이 되면 죽게 된다는 것이다. 즉 어떤 과학기술 수단으로도 한 생명의 수명을 연장할 수 없었다.
  
사실 외계인은 바로 지혜와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동물이지만 그들 사회에는 과학기술만 있지 문명은 없었다. 당신은 반드시 외계인 그곳엔 미술, 음악, 문학과 철학, 더욱이 도덕 규범과 신에 대한 신앙이 없다는 것을 생각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외계인이 지구를 발견한 후 지구인의 신에 대한 신앙은 정확한 것이며 그들의 과학기술을 훨씬 초월한 것을 발견했다.

많은 사람들은 외계인의 과학기술이 그렇게 발달했으면 그들이 지구에 온 의도가 궁금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람이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그들이 탐낸 것은 바로 지구인의 문화와 예술이며 사람이 신에 대한 신앙을 배우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의 인류사회엔 사람을 놀랄 정도로 많은 외계인이 잠복하고 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외계문명에서 왔는데 그들의 과학기술의 발전 정도 및 걸어온 과학기술의 길은 천차만별이다. 그들이 지구에 온 목적은 다 같은 것으로 바로 문화예술과 사람의 도덕 규범, 그리고 사람의 신에 대한 신앙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이런 외계인은 그들의 과학기술을 인류에게 누설해 주기도 했다. 현재 소위 말하는 첨단기술, 예를 들면 핵폭탄, 컴퓨터, 클론 등 99%이상은 모두 이런 외계인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점을 어떤 사람은 벌써 알고 있다. 미국과학기술이 왜 그렇게 발달했는가? 바로 그들이 한 외계인의 비행선을 얻어 외계 과학기술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외계인이 갖은 방법을 다해 신불을 신앙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동물이기에 신은 그들을 제도하지 않는다. 외계인은 그들의 별나라에 지구인이 세운 것처럼 규모가 거대한 교회, 사찰 및 신불 조각상을 세웠지만 신불은 그들을 제도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많은 외계인은 지구에 와 인류로 위장하여 인류를 따라 배워 신불이 그들을 제도해 주기를 바랐다. 이는 아주 풍자적이지 않는가?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외계인은 있는 힘을 다 해 신불을 믿으려 하지만 원래 신을 신앙하던 지구인은 오히려 외계인의 과학기술을 신앙하고 있다.
  
그럼 외계인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또 어떻게 인류사회에 숨어 있을까? 외계인은 보편적으로 형태가 아주 추하다. 남녀를 막론하고 모두 아주 추하다. 그들 개념에는 인류처럼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의 구별이 없지만 외계인은 또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모양은 아니다. 큰 머리, 큰 눈, 가늘고 긴 목을 상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외계인의 신체는 낙지와 카멜레온과 같다. 그들 신체 형태, 색은 환경에 따라 무엇이나 변화할 수 있기에 지구에 온 후 그들은 지구인 모양으로 변해 당신을 미혹시킨다. 외모로만 봐서 당신은 분별하기 어렵다. 물론 외계인들 중에는 좋은 것도 있어 진심으로 인류 고대 문화예술을 배우려고 하지만 극히 적다. 내가 만난 이 둘은 괜찮은 편이었다. 외계인에 대해 이만큼 말하겠다.

우당산을 떠난 후 나는 한 가지 문제를 생각했다. 어디에 가면 법을 구할 수 있을까? 석가모니 부처의 법이 안 되고, 도가의 법도 안 되는데 대승 불교의 법은 어떨까? 우리 소승불교의 관점에 따르면 대승불교는 응당 ‘부불외도(附佛外道)’로 그들 속의 모든 법문은 모두 부불외도다. 예를 들면 정토종(淨土宗), 그들은 아미타불의 법호를 외우기만 하면 극락세계로 가는데 이는 석가모니 부처가 전한 계(戒), 정(定), 혜(慧)와는 아무 관계가 없기에 석가모니의 법이 아니다. 또 밀교(密宗)는 신(身) , 구(口), 의(意)를 수련하며 남녀쌍수가 있고 대일여래를 모시기에 계, 정, 혜와 별개다. 율종(律宗)은 200여 개 계율을 제정했는데 많은 계율은 사조가 전한 것이 아니기에 이것도 외도다. 선종(禪宗)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석가모니부처는 49년 동안 법을 전하면서 종래로 승려에게 무예를 가르친 적이 없으며 달마가 선종을 창립했을 땐 사조가 이미 열반한지 1000여 년이 됐기에 선종은 더욱 부불외도다. 대승불교 중의 법문은 하나하나 말하지 않겠다. 아무튼 어떻게 됐던 그들은 모두 부불외도로 모두 석가모니부처의 계, 정, 혜와 별개다.
  
하지만 사조는 종래로 “외도”가 불법이 아니라고 말한 적 없으며 더욱이 “외도”가 사법이라 말하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사조가 전한 계, 정, 혜는 팔만사천 법문 중의 하나임을 깨달았다. 대승불교 중의 그런 수행법문이 전한 것도 불법으로 응당 부처 수련의 팔만사천 법문 중의 하나로서 다만 석가모니부처가 전한 것이 아닐 뿐이다. 석가모니부처가 전한 법은 그 자신이 불법에 대한 증오(證悟)로 얻은 것으로 불법의 전부는 아니다. 지금은 말법시기라 만마(萬魔)가 세간을 교란하고 요괴가 횡행하고 외계인도 온 거리에 꽉 차 있다. 정과만 얻으면 외도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나는 대승불교의 4대 도량, 소위 말하는 불교 4대 명산을 고찰하기로 했다.
  
나는 이 글을 보고 있는 많은 사람이 웃거나 욕하면서 내 말을 믿지 않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는 다 정상이다. 과거에는 웃지 않으면 도가 아니라고 했는데 지금은 이미 욕하지 않으면 도가 아니다가 됐다. 하지만 불법은 허위적이 아닌 진실한 존재다. 나는 두 가지 예를 들겠는데 “미신”이라고 떠드는 사람들이 입을 다물 것이다. 하나는 사리이고 다른 하나는 육신보살이다.
  
당신은 사리를 결석이라 말하지 말라. 왜 불문의 고승이나 부처를 믿는 거사만이 화장을 하면 사리가 있는가? 그 사리는 왜 불에 타지 않을까? 어떤 과학자는 사리 성분을 몇 년 연구했지만 그 속의 오묘함을 연구해 내지 못했다. 화장한 일반인은 억 단위인데 왜 사리가 하나도 없을까? 그 불문의 고승은 열반한 후 육신이 썩지 않는데 어떻게 해석할까? 당신은 해석할 수 없지만 억지를 부리며 신불의 존재를 승인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선의적으로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옛날에 범진(范縝)이라는 저명한 무신론학자가 있는데 죽은 후 지옥에 갔다. 지옥에서 천년의 고통을 받은 후 연옥에 갔는데 그것은 지옥보다 더 무서운 곳이다. 지금까지도 그는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아마 영원히 환생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내가 천안으로 본 정황이다.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나는 누굴 속이려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지옥에 가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나는 다만 선의적으로 당신을 깨우칠 뿐이다. 당신이 신불을 믿지 않더라도 다른 생명의 신앙을 존중해 주길 바란다. 당신이 당신의 과학을 신앙할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신불을 신앙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은 당신을 강제로 어떻게 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당신이 알지 못한 사실에 대하여 입만 열면 욕하고 비웃지 말라. 사실 당신이 나를 욕한다 해도 나는 개의치 않으며 마음에 두지 않지만 당신은 이렇게 큰 죄업을 감당할 수 없다. 정말 감당할 수 없다. 나는 정말 당신을 위해서 한 말이다.
  
나는 이 글을 보는 사람 중엔 불교의 거사도 있고 마음에 아직 선한 일념과 불성이 있으며 불법을 확고하게 믿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기에서 나는 불법을 감히 해석하거나 더욱이 불법에 감히 정의를 내리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과시하려는 마음에 불경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불법을 함부로 논하는데 이것도 끝없는 죄업을 쌓는 것이다. 꼭 기억하라! 꼭 기억하라! 여기에서 나는 나 자신의 경력으로 불법에 대한 개인 증오(證悟)를 말하겠는데 당신에게 참고가 되길 바란다.

1993년 4월 중순, 나는 두 외계인을 데리고 행각하여 산시 오대산에 이르렀다.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도량이다. 하지만 산에는 절이 아주 많았고 종파가 많았다. 선종, 밀교, 천태, 화엄이 다 있었다. 내가 오대산으로 간 목적은 선종의 청양사를 고찰하기 위함이었다. 그날 아침 일찍 나는 판츠(繁峙)현에서 출발하여 도보로 오대산으로 향했다. 백리도 되지 않은 길이기에 나의 보행속도로는 응당 날이 저물기 전에 도착했을 것인데 길에서 어떤 일에 봉착해 나의 노정은 지체되었다.
  
당시 정오 즈음 나는 한 마을에 도착하여 탁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한 집에서 개를 잡고 있었다. 그 개는 일반 누런 개였다. 나무에 묶여 가련한 모양을 하고 있었고 약 30~40근이 돼 보였다. 개를 잡으려는 사람은 40살 좌우의 건장한 사나이다. 내가 천안으로 보니 이 건장한 사나이는 전생에 들개고 죽게 된 노란 개는 바로 전생에 그를 죽인 원수다. 이는 전생에 진 업을 갚기 위해 이 생에서 노란 개로 태어나 이런 봉변을 당함으로써 원한을 푸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일을 나는 관계하지 않는다. 내가 자비롭지 않음이 아니라 이는 숙원으로 이루어진 일로 응당 이렇게 돼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관계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관계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이 건장한 사나이가 개를 달아매고 찬물로 이 개를 질식해 죽이려 할 때 한 할머니가 나타나 백 위안으로 누런 개를 사 고통을 받지 않게 하려 했다. 그런데 건장한 사나이는 동의하지 않고 꼭 이 누런 개를 죽이려 했다.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돈을 200위안으로 올렸지만 이 사나이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돈 문제가 아니고 이 개를 죽여 고기를 먹어야 자신의 속이 풀리겠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말을 잘 하는 편이 아니라 이 사나이를 설득하지 못하고 돈만 자꾸 올려 이 사나이 마음을 움직여 보려 했다. 마지막에 할머니가 천 위안까지 올려서야 그 사나이는 노란 개를 풀어주겠다고 동의했지만 현금을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 할머니는 두말없이 집에 돈을 찾으러 갔다. 1993년 산시 시골은 그다지 부유하지 않아 천 위안은 작은 돈이 아니었다. 할머니가 이 누런 개를 구하는 전 과정에서 나는 그녀의 선량한 마음을 보았다. 그건 정말로 금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누런 개를 구한 후 할머니는 개를 마을 밖에 끌고 가 방생하려 했는데 내가 할머니를 말렸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하지 말고 누런 개를 집에 데리고 가 이 개가 죽을 때까지 키우라고 알려 주었다. 내가 이렇게 할머니에게 권한 것은 누런 개의 운명은 그렇게 배치돼 생명은 이미 죽을 때가 됐는데 할머니의 간섭으로 개가 죽지 못하게 되면 할머니는 반드시 개의 남은 생명 노정에 전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런 개가 이후에 한 모든 죄업은 모두 할머니가 한 것으로 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누런 개가 사람을 물었다거나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쳐 먹었다거나 혹은 다른 동물의 생명을 해쳤다면 이 죄업은 모두 할머니한테로 가게 되기 때문이다.
  
옛말에 좋은 사람이 되려면 끝까지 해야 하고 부처를 바래주려면 서쪽까지 바래줘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일반인은 그 속의 진정한 함의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이는 당신이 좋은 일을 하려면 반드시 시작이 있고 결말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끝까지 책임져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 좋은 일을 절반 하고 관계하지 않아 최후 결과가 나쁜 일로 변한다면 당신의 죄업은 증가 할 수 있다. 지금 소위 부처를 믿는다는 많은 사람들이 해마다 방생 활동을 하면서 공덕을 쌓아 복을 받는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아주 어렵다. 무엇 때문인가?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큰 가물치를 연못 방생하면서 그도 공덕을 쌓는다고 말한다. 나는 그가 공덕을 좀 쌓을 수도 있겠지만 이로 인한 죄업은 더 클 수 있다고 본다. 당신이 생각해 보라. 그 큰 가물치는 연못에 있는 작은 고기들을 다 먹어 버리지 않겠는가? 이는 호랑이를 산에 돌려보내 줌과 무슨 다들 바 있는가? 좋은 일을 함에 있어서 반드시 이성적이고 지혜롭게 해 결과를 생각하고 앞뒤를 재면서 해야 한다.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좋은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속이고 남을 기만하는 것으로 된다.
  
어떤 사람은 아마 의문이 있을 것이다. 누런 개의 생명이 이미 다 됐으면 왜 할머니가 개를 구한 후 그는 바로 죽지 않는가? 신은 사람의 선념(善念)을 보호하기 위해 누런 개 생명을 좀 연장해 준다. 하지만 길지는 않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칼끝에서 한 생명을 구했는데 돌아서니 죽어버린다면 이후 누가 또 좋은 일을 하려 하겠는가?
  
후에 할머니는 나의 건의를 받아들이고 또 누런 개를 집으로 데려가 키웠다. 할머니의 이 자선 행위는 공덕이 무량한 것으로 그의 노력과 지불로 한 단락 원연(怨緣)을 좋게 풀어 한차례 살육을 감소했다. 이것이 바로 불성이 나타난 것으로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부분이다. 나는 계속 오대산으로 향해 가 날이 저물어서야 오대산 기슭에 도착했다. 오대산은 주위가 500리로 나는 청양사가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는지 몰랐기에 길 옆 한 마을을 찾아 마을 사람에게 청량사 가는 길을 물으려 했다.
  
당시 내가 마을에 들어서자 한 마을 사람이 다가와 그들 마을에 사는 모 생불(生佛)을 찾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나는 청량사를 찾으러 왔지 모 생불을 찾으러 온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마을 사람은 모 생불이 바로 오늘 승천해 많은 라마, 스님이 송별하러 오기에 나도 모 생불을 송별하러 온 줄 알았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나도 마음이 동해 이 생불이 어떻게 승천하나 보고 싶어 그 생불의 거처를 알려달라고 했다.
  
이 생불은 마을 변두리에 있는 작은 절에 살고 있었는데 내가 도착해 보니 절 주위엔 이미 몇 백 명의 라마와 스님이 모여 있었다. 당시 이 생불은 절 앞의 돌 위에 좌선해 앉아 있었다. 몸에는 붉은 색 가사를 걸치고 눈을 감고 손에는 염주를 들고 있었는데 70~80세 돼 보였다. 내가 도착하자 이 생불은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이 나를 보고 있어 나는 놀랐다. 예의상 나는 합장을 하고 예를 올렸다.
  
이 생불은 살짝 머리를 끄덕이고 그도 나를 향해 합장을 함과 동시에 사유전감(思維傳感)으로 나에게 정보를 보냈다. 뜻은 대충 그는 밀교에서 마지막으로 수행해 도를 얻은 사람인데 이후로 밀교는 세간에 전해지지 않을 것이며 세상 사람들은 더 이상 밀교의 법으로 제도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법을 얻기 위해 오대산으로 온 것을 알고 있다면서 오대산엔 이미 구할 “법”이 없다고 했다. 내가 대승불교의 법은 사람을 제도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생불은 “대승불교의 법뿐만 아니라 창세해서 인류사회에 전한 모든 종교 및 비밀리에 전해진 법문은 모두 말법에 이르러 전할 법이 없는데 사람을 제도함을 어찌 논하겠는가” 라고 했다. 나는 매우 실망하여 어디에 법이 있으며 중생은 또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생불은 말법난세에 사악한 요괴가 정권을 잡고 세인들을 미혹하여 원래 구할 길이 없지만 하늘이 자비로워 이미 사람을 제도하는 사람이 세간에서 중생을 널리 구도하고 세인을 교화하고 있어 인연 있는 사람, 선한 마음이 아직 있는 사람은 자연히 법을 얻고 제도 받을 것이라 말했다.
  
여기까지 말하고 생불은 나와의 정보를 마치고 수인을 하기 시작했다. 아주 아름다운 각종 수인, 응당 밀교의 비밀리에 전해진 대수인이지만 나는 알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천안으로 생불이 수인을 할 때 무수한 금색 연꽃이 하늘에서 내려와 절 주위에 떨어짐을 보았다. 이 수인은 십 몇분을 했다. 마칠때 생불 주위에는 눈부신 붉은 빛을 발사했는데 그 빛은 매우 강해 하늘까지 닿았다. 강한 빛은 약 5~6분을 계속한 뒤 생불은 긴 무지개로 변해 하늘로 날아갔다. 생불이 앉았던 자리엔 많은 사리가 남아 있었는데 몇 백개는 되는 것 같았다. 색깔은 홍, 황, 백 세 가지였고 큰 것은 복숭아만 했고 작은 것은 쌀알만 했다.
  
천리를 마다하고 오대산에 와 법을 얻지는 못했지만 한 밀교의 大라마가 “법사”로 된 것을 본 것도 나의 기연이 옅지 않음을 설명한다. 다만 아주 유감스러운 것은 밀교의 법, 대승불교의 법은 모두 이미 말겁에 이른 것이다. 보아하니 나는 계속 행각해야 했다. 오대산을 떠난 후 이 몇 년간 나는 중국의 모든 명산대천을 다녔고 많은 인간세상 밖의 청수지사를 만났으며 또 나처럼 행각하면서 법을 찾는 사람도 만났으며 많은 대도시도 다 다녔다. 예를 들면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양, 우한, 선전, 난징 등을 모두 갔었다. 그 총망한 사람들 속에서 아마 당신과 나는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을 수도 있지만 당신은 주의하지 않아 모를 수 있다.

이렇게 많은 해를 지나 수만 리를 걸어오면서 세간에서 느낀 감수는 현실적 유혹이 너무 크고, 요괴도 너무 많아 신불을 믿는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 없고 지금의 세인들은 이미 좋고 나쁨, 선과 악,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 이런 제일 기본적인 것도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나 역시 많은 사람들이 애써 노력하며 발버둥치고 있는 것도 보았다. 그가 세간 미혹 속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고 희망은 보지 못해도 집에 가는 길(返本歸眞)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불경을 알아보지 못해도 불경을 들고 보길 좋아했고 많은 사람들이 과학을 신앙한다고 하지만 몸에는 신불 조각상을 달고 다니고 또 어떤 사람은 절에 가 부처를 공경하길 좋아했다. 그들이 부처에게 구하는 것은 그들의 현실 이익이긴 했지만 필경 그들 마음속에 부처가 있었다. 그 선량한 뿌리가 아직 죽지 않아 마음속 깊은 곳에 사람들은 자신이 왜 이 험악한 인간세상에 태어났는지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나는 또 많은 불교의 거사를 만났었는데 그들은 나에게 어떻게 불법을 수행하는가 물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참선하고 좌선하길 좋아하지만 앉으면 온 머리에 통제할 수 없는 혼란한 사유로 꽉 차 정말로 기세가 대단했고 만 마리 말이 달리는 듯해 아예 조용해 질 수 없었다. 그들은 그것의 원인과 어떻게 해야 그런 마음의 잡념을 없앨 수 있는지를 물었다. 또 어떤 사람은 많은 돈을 들여 집에 불당을 세우고 불상을 청해 아침 저녁으로 향을 피우고 모시면서 날마다 절을 하면서 예의를 올리지만 그들이 겁난을 받을 때 부처가 나타나지 않고 어떤 게시와 점화도 해 주지 않는다면서 왜 부처를 모셔도 효험이 없는가를 묻는다. 여기에서 나는 내가 천안으로 본 진실한 사실을 말하겠는데 혹 당신이 왜 부처가 인간의 손을 놓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반세기를 내려 오면서 99% 중국인은 소학교 때부터 소선대에 참가할 것을 요구하고 중학교에선 단원에 들게 하며 사회에 진출하면 이익 유혹에 어떤 사람은 당에 참여한다. 무릇 이상의 어떤 조직에 가입했던 간에 수속을 밟을 땐 그들은 가입자에게 이 조직에 자신의 생명을 바치겠다는 독한 선서를 하게한다.

여기에서 나는 이 조직이 신앙하는 사상이 무엇인가 묻겠다. 나는 당신이 알 것이라 믿는다. 무신론이다. 바로 신불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론이다. 당신들은 문화혁명시기에 “낡은 네 가지를 타파하자”는 운동을 알 것이다. 바로 어떤 당이 절, 수도원을 다 철수시켰다. 불상, 신상을 모두 부수고 태우며 중, 비구니, 도사, 수도사를 모두 강압적으로 사원, 사당, 궁, 관에서 쫓아낸 것이다. 혹 당신이 이런 일을 잘 모를 수 있지만 집에 가 노인에게 물으면 그들이 당신에게 당시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어떤 당이 어떤 일을 했는지 알려줄 것이다.

물어보겠는데 생명을 무신론 조직에 바치겠다고 맹세한 사람이 또 경을 읽고 참선하고 부처를 모시면서 부처에게 보호해 줄 것을 빈다면 이는 어떤 행위인가? 이는 양면파(兩面派, 말과 행동이 다른 두 얼굴의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신성하고 위대한 부처가 이런 양면파에게 게시해 줄 수 있겠는가? 없다. 인간세상에서도 양면파면 수치스럽고 비천한 행위다. 이런 이치가 아닌가? 99% 이상 중국인이 모두 거짓에 속아 이런 조직에 가입했기에 신불도 사람의 손을 놓고 떠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말법시대에 이르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며 사악한 마귀가 정권을 잡고 만마가 세상을 어지럽히게 된 진정한 함의다.

무엇이 마(魔)인가? “세뇌식 뉴스 선전”과 “주입식 교육 체제”, 거기에 “폭력 위협”과 “이익으로 유혹하여 기만”하는 방법으로 사람들의 “선념(선량한 의념)”을 타격하면서 좋고 나쁨을 뒤집으며 폭력 투쟁 철학을 선양하고 무신론을 선양하는데 그것이 마가 아니고 뭔가? 당신이 냉정하고 이지적으로 생각해 보라 내가 말한 것이 틀리는지?

신불이 사람을 관계하지 않으면 마가 사람을 관계한다. 그들은 공손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천안으로 본 것은 3가지 조직에 든 사람들은 단전과 니환궁에 모두 마의 봉인이 찍혀 있어 당신이 어떤 공법을 수련하던 어떤 신불을 신앙하던 모두 진정하게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신불도 당신을 관계하지 못하며 또 관계할 수도 없다. 그건 당신이 자신의 생명을 다른 사람에게 바치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에 신불은 강제로 당신을 관계할 수 없다. 억지로 관계하면 나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이 몸에 마의 도장이 찍히면 백년 후 어디로 가겠는가? 지옥 외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

어떻게 당신의 단전과 니환궁의 봉인을 지울 것인가? 아주 간단하다. 당신이 진심으로 앞에서 말한 이 세 가지 조직을 탈퇴하면 된다. 사람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신불도 어쩔 수 없다. 사람 마음이 움직여 사람의 선념이 나오기만 하면 시방세계를 진동한다. 부처는 대자대비하며 대 지혜의 신이다. 불법은 금강불괴, 원용하여 파괴되지 않는 진리기에 당신의 인과를 끊을 수 있으며 당신의 단전과 니환궁의 봉인을 제거할 수 있다. 아무리 어려워도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다. 믿기 어려우면 한번 실험해 보라. 그런 후 당신이 신에게 빌고 부처를 모신다면 반드시 다른 감수와 효과가 있을 것이다. 반드시!

어떤 사람은 내가 정치에 참여한다고 질책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흐리멍덩하다고 본다. 나는 사람들에게 정치에서 탈퇴할 것을 권하고 아직 불성이 있고 선념이 있는 사람, 아직 집으로 돌아 갈 희망이 있는 사람들에게 정치에서 탈퇴할 것을 권해 그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부처를 향하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깨달아 추구할 것이 없는 사람이며 신통력이 다 구비 되어 세속의 권세는 나에겐 아무 의미가 없으며 정치에 아무 요구 사항이 없는데 내가 정치를 해서 뭐 하겠는가? 이런 도리가 아닌가? 나는 단지 아직 선량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마지막 불성으로 악마의 손에서 벗어나길 바랄 뿐이다.

글/ 행각승(미얀마 사찰 출신)


<저작권자 © 변화하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 <大紀元>.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대기원시보
행각승이 밝힌 외계인과 부처의 진실①

이 글은 중국에서 태어나 미얀마의 한 사찰에서 출가한 승려가 자신의 체험담을 글로 정리해 기고한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맞지 않을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편집자 주

우선 내 소개부터 하겠다. 본인은 금년에 46세이며 출가하여 스님이 된지 이미 20여 년이 된다. 나의 고향은 윈난이지만 나는 미얀마 멀라의 어떤 사원에서 출가했다. 우리 고향은 불법(佛法)이 성행하여 거의 집집마다 모두 부처를 믿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출가하여 스님이 되려 하면 그의 가족은 모두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어머니 말에 따르면 나는 태어나서 한 달이 되자 불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1990년에 출가했는데 당시 25세였고 큰 아들은 8살이었다. 삭발하던 날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와서 나를 축복했고 나의 아내도 아주 기뻐했다. 우리 고향은 바로 이런 풍속이 있다. 가정이 있는 사람이 삭발하고 출가하면 그의 가족들은 아주 좋은 대우를 받는다.

내가 출가한 사원은 아주 작아 나를 포함해 10명도 되지 않았다. 나의 사부님은 늙은 스님인데 평소 말이 매우 적었지만 부근 촌민들은 그를 아주 존중했다. 사부님의 가르침 아래 나는 수행생활을 시작했다. 우리 사찰은 소승불교에 속하며 석가모니부처만을 조존(祖尊)으로 공양하고 있으며 기타 부처나 보살은 다 승인하지 않았다.  

수행생활은 농사짓고, 밥 먹고, 좌선하고 경문을 읽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글을 몰라 경문을 읽을 줄 몰랐다. 하지만 사부는 나에게 글을 알게끔 강요하지 않았다. 사부는 글을 모르는 것은 오히려 좋은 일로 불경을 볼 줄 모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라면서 계율을 엄수하고, 좌선하고 참선할 것만 요구하고 경문 읽는 것을 면해 주었다. 물론 후에 나도 글을 알게 됐지만 그것은 다른 기연으로 이루어졌다.
  
우리 소승불교는 계율로 마음을 다잡고 입정(入定)하며 개오(開悟)하는 것이다. 무슨 원인인지 모르지만 나의 사형과 사제 심지어 사부까지도 입정하기 어려워했다. 일 년 내 진정한 입정이 몇 번 되지 않았지만 나는 3개월 수행 후 늘 좌선하면 입정했다. 나는 집에 있는 많은 거사들도 좌선하지만 입정한 감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실 입정은 바로 이러하다. 당신이 거기에 가부좌하고 앉아 잡념이 점점 없어질 때면 당신은 일념이 하나도 없이 조용하다. 이런 고요함 속에서 인체 감각 기능이 전부 사라져 금방 몇 분을 지나거나 심지어 몇 초를 지난 감각이지만 출정(出定)하여 보면 몇 시간을 지나갔다. 사부는 내가 이렇게 입정할 수 있는 것은 글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91년 여름에 나는 출가한지 1년이 넘었다. 어느 날 밤, 사부는 우리 절에 있는 모든 중을 데리고 석가 법상 앞에 둘러앉아 좌선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또 입정했는데 이번 입정은 다른 때와 달리 1시간 좌우를 입정한 감각이 들었다. 하지만 출정한 후 사형들은 나에게 나는 이미 부처 앞에서 7일 동안 입정했다고 알려주었다. 이 7일 사이 나의 정수리 위에 줄곧 칠색 광영이 돌았는데 일반인의 육안으로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광영이 어디에서 온 건지 누구도 똑똑히 말하지 못했다.  

출정 후 며칠 지나 나는 우연히 눈을 감고도 물체를 볼 수 있음을 발견했는데 눈으로 본 것보다 더 뚜렷했다. 나는 사부에게 무슨 원인인가 물었는데 그는 이는 천안(天眼) 신통이 열린 것으로 좋은 일이라 말했다. 그 후부터 나는 더 부지런히 수행했다. 1992년 초의 어느 날 아침, 불상에 절을 올릴 때 나는 갑자기 석가 법상이 밝은 빛을 크게 발함과 동시에 불과 같은 열기가 나의 정수리에서 체내로 들어오면서 점점 온몸에 가득해짐을 발견했다. 나는 일종 흐리멍덩한 상태로 진입하면서 마치 시간이 정지 된 듯 했다. 그 감각은 아주 미묘하여 꿈속에서 더운 물에 목욕을 하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난 후 나는 갑자기 자신이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나는 문득 모든 것을 깨달은 감각이 들었고 동시에 나의 천안 신통은 한걸음 더 발전했다. 그 순간 나는 법상에 있는 석가모니 부처의 법신을 보았으며 또 나의 전생(前生) 전세(前世)의 많은 일이 기억났다.   

나는 과거 2세기에 모두 출가하여 수행한 중이었는데 생생세세 쌓은 죄업이 너무 커 장애가 겹겹이 쌓여 모두 정과(正果)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원적(圓寂)할 때마다 나는 다음 생에 계속 수행하려는 소원을 품었기에 이 생에 또 불문(佛門)에 들어와 전생의 인연을 계속했다. 앞 2세기 수행에서 나의 죄업은 이미 없어지고 또 공덕을 쌓았기에 이번 수행은 각별히 쉬웠으며 일반인에 비할 수 없었다.  

나의 이런 근기와 3생의 홍원(弘願)으로 나의 의지만 확고하다면 금세에 반드시 정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금방 전생의 일을 기억했을 때 석가 법신이 나에게 안타까운 사실을 개시해 주었다. 부처님은 자신이 전한 법은 이미 사람을 제도 할 수 없으며 더 이상 사람이 정과를 얻을 수 없으며 부처도 곧 세간에서 손을 떼고 인간의 일을 관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불길한 소식을 듣고 나는 비통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이 인간에게서 손을 떼고 가면 당신을 신봉하는 제자들은 누가 보호하고 제도하는가 물었다. 석가 법신은 한 사람이 가면 자연히 팔만사천 법문 중의 다른 한 사람이 와 당신들을 피안의 길로 제도할 것이라고 말하곤 사라졌다. 나는 부처님이 나에게 알려준 상황을 사부와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었다. 사부는 나에게 어떻게 할 타산인가 물었다. 나는 한참 생각해 보고 행각하여 열반의 피안으로 갈 수 있는 법을 찾으러 가겠다고 말했다.

1992년 3월 나는 사부와 사형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절을 떠났다. 한 푼도 지니지 않고 바리때 하나를 지니고 홀로 행각의 길에 나선 것이다. 뒤에서 나는 수행 중에 있었던 깨달음 및 이 몇 년간 행각하면서 보고 들은 사실을 말하겠다. 외계인에 대한 사실은 바로 내가 행각하면서 봉착했던 일로서 뒤에 자연히 알려 줄 것인즉 여러분은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길 바란다. 앞에서 나는 천안 신통이 있다고 말했는데 나는 많은 사람이 이런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있음을 알고 있다. 여기에서 말해 보겠다. 소위 말하는 천안은 사실 바로 사람의 송과선인데 도가에서 말하는 니환궁이다. 모든 사람은 다 송과선이 있는데 수련하여 에너지를 가강하면 천안이 다 열린다. 이는 신비로운 것이 아니다.   

천안으로 세계를 보는 것은 육안으로 보는 것과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서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육안으로 물건을 보면 한 방향, 한 방면만 볼 수 있지만 천안으로 보면 사면팔방, 입체적, 홀로그램으로 볼 수 있다. 즉 척 보면 사면팔방, 좌우아래, 안에서 밖에까지 모든 정보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을 볼 때 육안으로 보면 그의 한 측면, 표면만 보이지만 천안으로 보면 사람의 모든 세포를 모두 똑똑히 볼 수 있으며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똑똑하게 볼 수 있다. 천안이 열린 후 특히 나의 전생이 기억나자 나는 글도 알 수 있었는데 모두 중문 번체자였다. 하지만 지금의 간체자도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전 혹은 어떤 책을 가져다 놓으면 나는 펼치지 않아도 한번 훑어보면 다 알았다. 지금 소위 말하는 첨단기술은 나에 눈엔 어린애 장난같이 한눈에 다 꿰뚫어 볼 수 있다.  

불가(佛家)에서는 천안을 다섯 단계로 나눈다. 육안(肉眼), 천안(天眼), 혜안(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이다. 나는 천안이 갓 열렸을 땐 육안 단계였고 행각을 시작했을 땐 바로 법안 단계여서 나는 홀로그램으로 사람, 물체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한 생명의 지난 3세의 경력과 지난 3세의 부부 인연도 다 볼 수 있었다. 유감스러운 것은 나는 한 생명의 미래는 볼 수 없었다. 거기까지 보려면 불안까지 통해야 될 것 같다.  

사실 천안은 조금도 미신적인 것이 아니라 과학 이치로 완전히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육안은 보이는 빛만 볼 수 있다. X선, 감마선은 사람이 볼 수 없지만 감마선보다 경도가 강한 광선은 아주 많아 어디에나 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송과선은 이런 광선을 보거나 감지할 수 있기에 인체를 투시하고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본다. 일반인의 송과선은 봉쇄돼 있는데 수행하면 천천히 열려 물체를 볼 수 있게 한다.
  
그럼 나는 어떻게 다른 사람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 또 그 사람의 3세 혼인 인연을 알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은 대뇌 90% 좌우가 막혀있어 이용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둔한 사람은 많이 막혀 95%에 달하고 총명한 사람은 적게 막혀 아마 85%좌우일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뇌 절반을 잘라내도 아무 영향이 없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   

그럼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나온다. 남아 있는 그런 대뇌는 어디에 쓰는가?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는데 그것은 기억을 저장하는데 쓴다. 당신의 생생세세 모든 기억이 그 속에 다 저장돼 있다. 심지어 온 우주의 정보가 그 속에 다 있지만 막혀있기에 당신이 쓸 수 없을 뿐이다. 이런 정보는 천안으로 보면 모두 뚜렷하게 영화처럼 나타난다. 소리도 있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면 대뇌에 영상이 형성되기에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과거 경력을 나는 한눈에 다 볼 수 있다.   

천안이 열리면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외 일부 신선, 귀신, 요괴 등 영체도 볼 수 있으며 그들과 소통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나는 그들을 상대하지 않는다. 나는 불법을 들은 사람이기에 그런 층차 낮은 신령을 상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당신은 신선, 귀신, 요괴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호기심을 가질 것이다. 그 형식은 아주 많다. 각종 존재 방식이 다 있는데 정말 천태만상이다. 하지만 이런 것은 부처와 거리가 너무 멀어 비할 수도 없기에 나는 그들을 상대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아마 동물은 불법을 듣는 것을 허용하지 않음을 알 것이다.

그럼 사람과 동물의 본질적 차이는 무엇일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단전이고 다른 하나는 니환궁 즉 송과선이다. 단전에는 우주 중의 선천지기(先天之氣)가 저장돼 있는데 이런 기는 음양 양기를 초과하여 또 원기라고 한다. 이는 아주 진귀하다. 송과선은 대천세계의 축소판으로 당신의 영혼은 바로 여기에 찍혀있는데 이 역시 당신의 선량한 본성의 소재이다. 이 두 가지가 있어야만 사람은 수련할 수 있으며 불법을 들을 자격이 있다. 사람 몸이 진귀하다 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은 만물지령이라 하는데 사람의 몸에 부처가 남긴 도장이 있기 때문이다.  

동물은 송과선이 없으며 단전도 없기에 선량한 본성이 없어 불법을 듣지 못하게 한다. 믿기 어려우면 당신은 동물을 한번 해부해 보라. 어떤 동물이든 다 송과선이 없다. 이건 사람만 갖고 있다. 여기까지 말하니 나는 다윈의 진화론이 생각난다. 다윈은 원숭이가 천천히 사람으로 진화했다고 하는데 이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현대 의학, 현대 과학자들은 송과선을 인류의 퇴화된 3번째 눈이라 하는데 그럼 원숭이, 고릴라, 침팬지 등 모든 영장류 동물은 왜 3번째 눈이 없는가? 당신이 이런 동물을 해부하면 모두 송과선이 없다.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내가 천안으로 본 정황을 알려주겠다. 다윈은 사실 마왕이 인간세상에 전생한 것으로 인간세상에 재난과 변란을 주기 위해 태어났다. 그는 진화론을 내놓았는데 목적은 바로 사람들의 신불(神佛)에 대한 신앙을 흔들어 사람들이 자신을 원숭이에서 변해 온 것이라고 믿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의외로 정말 다윈의 궤변을 믿었다. 이는 정말 수치스럽고 우스운 일이다. 왜 석가모니가 인간에게서 손을 뗐을까? 원인은 대부분 사람들이 신불의 진실한 존재를 믿지 않기에 부처가 전한 법은 이런 사람을 제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처도 관계하지 못한다.   

신불은 매우 지혜로우며 자비롭고 최고 신통을 가지고 있지만 신불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 마음이다. 사람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신불도 방법이 없다. 현대인은 신불을 믿지 않으며 불법을 수련할 생각도 없지만 동물은 다르다. 동물은 송과선이 없기에 그의 영혼과 대뇌는 봉인이 없어 지혜는 완전히 열려 있다. 당신은 동물보다 총명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못하다. 동물은 무엇이나 다 알기에 천방백계로 인체를 얻어 수련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진실한 상황이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은 보기에 사람 형태이고 사람 말을 하지만 그는 벌써 사람이 아니다. 그는 사실 동물 영혼이 인체에 붙어 있는 것이다.   

지금 중국엔 기생이 특별히 많은데 어떤 기생은 생활의 압박, 다시 말하면 전생에 진 죄를 갚느라고 금세에 창기로 된 것이지만 또 많은 사람은 주동적으로 기생으로 되어 주동적으로 이런 제일 비천한 일을 해 생계를 유지한다. 이렇게 주동적으로 기생이 되는 사람은 99%가 여우 부체(附體)가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이런 방법으로 사람의 정혈을 절취해 간다. 이전에 베이징에서 천상인간이라는 기생집을 조사했다. 거기에서 매음하는 여인은 모두 여우 부체로 순수한 인류는 하나도 없었다. 천안으로 인간을 보면 정말로 요사한 기운이 하늘을 치솟는다. 왜 창기와 놀면 수명이 짧아지고 복을 잃는가? 바로 기생 중에 요괴가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 방법으로 사람의 정기를 훔쳐간다.   

여러분은 식물인간을 알고 있다. 그 육체는 완전하고 기능도 정상인데 왜 사상의식이 없을까? 그의 영혼은 벌써 윤회에 들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어떤 식물인간은 몇 년 후에 다시 깨는데 기억을 많이 상실하며 지력도 많이 떨어져 있다. 이런 정황은 기본상 모두 동물부체다. 어떤 동물은 수련한 시간이 짧고 도예가 옅어 아주 무지하다. 그 동물은 인체에 붙은 후 내려 올 줄 모르는데 그의 지혜도 막혀있기에 그가 인체에 붙으면 이 식물인간은 깨지만 지력은 크게 떨어진다. 물론 어떤 동물은 천~팔백년을 수련하여 아주 큰 신통을 얻게 되는데 이때 인체에 붙으면 이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다. 보기에 모든 것이 정상으로 보이고 일반인은 아예 발견하지 못한다.   

동북에나 또 남방 일부 산간지역에 어떤 집에선 일부 동물 위패를 모시면서 집 지키는 신이라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동물부체를 구하고 있는데 부체가 있는 걸 자랑으로 여긴다. 내가 보기엔 이런 사람들은 어리석기 그지없다. 동물이 당신 몸 뒤에 올랐다면 당신의 신체와 당신의 사상의식을 교란할 것이다. 그리고 그 놈은 당신 단전의 그 원기를 훔쳐간다. 만약 당신이 이 원기가 없으면 즉시 죽어버려 식물인간으로도 될 수 없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이런 부체는 당신에게 잠시 좋은 운을 가져다 줘 부자가 될 수 있지만 그는 이것을 미끼로 당신의 가장 진귀한 것을 가져간다. 아무튼 작은 이익을 위해 이런 동물을 숭배하는 것은 천리가 용납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 자신이 구한 것으로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 사람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신불도 방법이 없다.

행각을 막 시작했을 때 나는 석가모니 부처가 한 그의 법이 이미 안 된다는 말이 생각나 그럼 도교의 법은 사람을 제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런 생각으로 나는 중국에 들어 가 우당산 혹은 룽후산 등 저명한 도교 성지로 가 진법 진기를 얻고자 했다. 정과를 얻기만 하면 불가이든 도가이든 상관할 것 없었다. 손오공도 도가에서 불가로 입문하지 않았는가?   

몇 달 동안의 고생을 거쳐 1992년 가을에 나는 우당산에 다달았다. 당시 단쟝커우시 구역에 도착해 아직 산에 오르지 않았는데 큰길에서 도사 한 사람을 만났다. 내가 천안으로 보니 이 도사는 온 머리에 돈과 미녀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일반인이 머리속에 이런 일을 생각하고 있으면 비난할 바가 안 되지만 이 도사의 단전에는 태극도안이 있었다. 이는 그가 진수(眞修)를 받은 제자임을 설명한다. 진수를 얻은 한 현문 청수지사가 뜻밖에 온 머리속에 돈과 미녀뿐이니 묻지 않아도 그들 도교의 법도 의미가 없다고 봐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정황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나는 확신이 서지 않아 우당산 방향을 향해 엎드려 묵묵히 기도하면서 도가의 삼청조사가 개시해 줄 것을 바랐다. 한 시간 기도하니 삼청 법신이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소리가 들렸다. 삼청 중의 어느 분인지는 모르지만 대강의 뜻은 도교의 법도 확실히 되지 않아 사람이 정과를 얻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어디에 가면 진법 진사(진정한 사부)를 만날 수 있는지 알려 달라고 하자 내가 찾기만 하면 자연히 나를 제도해 줄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계속 행각을 하면서 하루 빨리 진법 진사를 만나길 바랐다.
  
내가 단쟝커우를 떠나려고 할 때 도로에서 남녀 한쌍를 만났다. 그들은 25~26세이고 모두 아주 예뻤으며 옷차림도 아주 현대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인류가 아니었으며, 일반 동물이 인체에 붙은 것도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이 두 ‘사람’은 사람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사람도 아니고 동물 부체도 아니어서 나는 그들이 지구의 인류가 아닌 외계인임을 알게 되었다.   

이 두 외계인은 내가 천안으로 그들을 탐사했음을 알고 아주 공포스러워했다. 그들은 내 앞에 엎드려 절을 하면서 그들의 비밀을 밝히지 말고 그들을 놔 줄 것을 요구했다. 나는 그들에게 “너희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나는 너희들 일을 관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들은 매우 기뻐하며 고마워했다. 원인을 알게 되자 나도 더 호기심이 없었고 더 이상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즉시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 이 두 외계인은 내 뒤를 따라 다니면서 자기들을 도제로 받아달라고 했다.  

엄격하게 말하면 외계인은 바로 동물이다. 그들도 송과선과 단전이 없어 선량한 본성이 없기에 불법을 들을 자격이 없다. 비록 그들이 불법 수련을 할 수 없었지만 나는 혼자 행각하는 것이 적적하고 고독하기에 두 친구가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을 도제로 받지는 않았지만 나를 따라 같이 행각하도록 했다. 이 두 외계인을 통해 나는 그들의 많은 내막을 알게 되었다. (②편에 계속)

글/ 행각승(미얀마 사찰 출신)


<저작권자 © 변화하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 <大紀元>. 무단전재-재배포금지>
1 2 3
블로그 이미지

파룬궁(法輪功)으로 잘 알려진 法輪大法(파룬따파)는 리훙쯔(李洪志)선생께서 창시하신 고층차의 불가(佛家)수련법이다.

8648h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