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장춘대법제자 성련(聖蓮)
【정견망】
나는 조용히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평소 단체 법공부 때 교류 외에 사람들과 수련 중의 일을 말한 적은 거의 없다. 자기의 수련이 매우 평범하고 많은 경우에 잘 못했다고 느낀다. 올해 5월 대법을 수련한지 20주년이 된다. 지난 20년을 돌이켜보면 매우 감개스럽고 마음이 울렁거린다. 법을 얻은 전후의 경험과 감수를 사부님과 동수들에게 보고하며 파룬따파의 박대정심함과 사부님의 구도 은혜는 하늘같이 높음을 실증하고자 한다.
1. 구법의 길
1980년대 중국에서는 기공 열풍이 불었다. 사부님의 고향이며 파룬따파의 발상지인 장춘은 기공이 공원, 광장 뿐 아니라 많은 대학 교정까지 들어왔다. 당시 적지 않은 교수 대학생들도 분분이 연공행렬로 들어왔다. 나는 직업학교 교사였다. 비록 전에 기공을 연마한 적은 없지만 한번 ‘기공’이란 말을 듣자 곧 신기하다고 느껴 흥미가 생겼다. 단 당시 일과 가정의 부담이 가장 심할 때라 연공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기공 서적을 빌리거나 스스로 기공서를 사보았다. 다 본 후 기공에 문파가 많지만 책의 내용이 매우 유사했는데 모두 공리나 공법 그런 것들이었다. 나는 몸에 무슨 병이 없었고 또 시간이 부족해 연공에 참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줄곧 기공을 잊지 않았다.
1994년이 되자 나는 또 장모씨의 기공서를 보았다. 바쁜 와중에 그의 기공반에 한번 가보았는데 그것이 내가 기공활동에 처음 참가한 것이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아이의 몸이 좋지 않았다) 막 강당에 들어가 앉았다. 기공사가 별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아마 내가 안보는 사이에 그가 공을 내보냈을지도 모른다. 회의장에 많은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울고 웃고 고함지르기도 하고 자발공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기공서적에서 말한 적이 없는 공포스러운 장면을 깜짝 놀라 바라보았다. 비록 그 뜻은 몰랐지만 그곳의 기의 장이 바르지 않다고 느꼈고 환경이 건강하지 않은 것 같아서 아이를 데리고 나왔고 다시는 그 학습반에 가지 않았다.
같은 해 또 인근에서 ‘소림보건공’학습반에 참가했다. 이번에는 처음 연공을 배우자마자 벽곡을 했다. 왜 벽곡을 하는지 몰라 기공사에게 묻자 그는 나를 보고 놀라더니 칭찬과 격려를 해주었다. 나도 효과가 매우 좋다고 느꼈다. 나는 기뻐하며 가급적 벽곡시간을 늘리려 했다. 한번은 멀리 출장을 갔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30여 일간 벽곡을 했다. 돌아오는 도중에도 단지 물만 마셨고 과일도 먹지 않았다. 결국 몸이 아주 쇠약해졌으며 신체에도 나쁜 반응이 나왔다. 집에 돌아오자 가족들도 내가 연마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나는 마지못해 또 한 차례 기공을 포기했다.
기공을 접촉하기 전 나는 불경이 매우 고심하다는 말을 들었다. 기공을 내려놓은 나는 또 도서관에 가서 불경을 찾았다. 하지만 학교 도서관에는 불경이 없었다. 성(省)이나 시 도서관에는 반드시 있을 거라 생각해 휴가를 받으면 반드시 도서관에 가서 불경을 찾아 끝까지 탐구해보리라 마음먹었다. 기다리는 동안에 나는 몇 차례 꿈에 북방의 천상을 보았다. 땅에서 멀지 않은 곳에 회색의 절과 같은 건물이 몇 개 있었다. 한번은 내가 입구까지 가보았는데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보지 못했다. 그곳은 신비한 듯 했고 꿈처럼 혼이 이끌린 듯했으며 오래된 곳을 바라보았다.
1997년 5월 초 어느 날 우리 학교에 내가 잘 아는 선생님이 한분 있었다. 책 한권을 들고 나를 찾아와서는 “이 공을 연마해보세요!”라고 했다. 나는 표지도 보지 않고 “시간이 없어요.”라고 했다. 속으로는 여전히 불경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료는 “이 공이 당신에게 매우 적합할 겁니다. 일단 책부터 보세요.” 하면서 책을 내 품에 밀어 넣었다. 호의를 거절하지 못해 껍질을 보니 <전법륜>이었으며 무슨무슨 공이 아니었다. 이에 나는 책을 가지고 돌아왔다.
낮에는 시간이 없어서 잠잘 때 침대에 엎드려 책을 읽었다. 목차 중 ‘벽곡’이란 내용이 있는지 없는지 얼른 찾아보았다. 찾아서 단숨에 다 봤지만 좀 실망스러웠다. 여기서 말하는 벽곡은 층차와 무슨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와 보니 제 첫구절은 “진정으로 고층차로 사람을 이끌다” “그가 최고 근본적인 불법이다” ... “우리 파룬따파 이 한문은 우주의 최고 표준인 진·선·인을 동시에 수련하며 우리가 연마하는 공은 매우 크다.” ... 나는 매우 놀랐고 이것이 기공서인가? 아니면 내가 찾으려던 불경인가? 많이 생각하기도 전에 나는 얼른 이어서 보았다. 1강을 다보기도 전에 약 30페이지를 보았을 때 아랫배 피부가 덜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시 내의만 입고 있어서 느낌이 매우 뚜렷했다.
이어서 아랫배 이하 두 다리까지 쉬익하며 냉기가 나가기 시작했는데 왼쪽 다리가 가장 서늘했다. (왼쪽 다리 무릎 관절염이 있었는데 전에는 상관하지 않았다.) 다음 날 책을 준 사람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사부님께서 파룬을 넣어주신 것임을 알았다. 냉기는 사부님이 다리의 병기를 없애주신 것이었다. 3~4일 정도 지나자 냉기는 점점 사라졌다. 나는 전에 무겁던 왼쪽 다리가 오른쪽과 마찬가지로 가벼워진 것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격동한 나머지 나는 전에 갖고 있던 각종 기공서와 연공테이프를 다 불태우고 팔건 팔아 깨끗이 청리했다. 동료에게 부탁해 파룬궁의 모든 서적과 자료를 한보따리 구해왔다. 이때부터 나는 집에서 가까운 법공부 팀을 찾았다. 마침 장춘에서 거행되던 ‘이홍지 사부 전법 5주년 전람회’에 참가했다. 전람회 참관이 끝나자 나는 꿈에서 막 깬 것처럼 소원을 이루었다.
2. 사은 난망
법을 얻었을 때 나는 이미 20여 년을 가르쳤고 전적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외에 일부 기타 방면의 서적을 보았다. 수십 년간 받아들인 것은 문화혁명 이후 일련의 정치사상교육이었다.
그러나 내가 마음을 조용히 하고 진지하게 <전법륜>을 두 번 보았을 때 다년간 막스 레닌주의 모택동 사상에 주입받은 공산당문화, 편집적이고 굳어진 사상 방식이 내 머리 속에서 붕괴되기 시작했다. 유물주의 인생관, 세계관, 무신론 등이 철저히 뒤집혀졌고 나의 사상은 완전히 바뀐 것 같았다.
나는 자신을 영혼을 만드는 엔지니어라고 여겼는데 이제 보니 오랫동안 우물안 개구리였다. 손바닥만한 하늘만 보았는데 사부님의 큰 손이 나를 땅위로 이끌어 넓은 천지를 보게 하신 것이다. 운 좋게 나는 불경을 찾을 필요도 없었고 위대한 불법이 이미 내 앞에 나타나 있었다. 나는 격동했다. 비록 사부님을 뵙지는 못했지만 자비로운 사부님은 이미 내 손을 이끌어 나를 수련의 길로 인도하셨다.
당시 나는 매우 바빠서 법공부만 하고 두 달이 지난 후에야 연공을 시작했다. 법공부한지 겨우 며칠만에 나의 신체는 큰 변화가 있었다. 법공부 소조에서 전신에 윙윙 열이 나고 어떤 때는 더워서 앉아 있지 못하고 공부를 다 마치기 전에 나가야 했다. <파룬궁> 책에서 말한 ‘공이 나온’ 상태였다. 나중에 연공을 거의 두 달 배웠는데 이마에는 <전법륜>에서 말한 것처럼 “천목이 부어 매우 아프고 태양혈도 붓고 눈도 안으로 꺼지는데, 계속 그것이 밀고 나와서는” 이런 상태가 나타났다. 때로는 너무 부어서 뼈를 도려내는 듯 괴로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법의 위력과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를 깊이 체험했다. 아무리 아파도 묵묵히 이를 악물고 견뎠으며 그로부터 불법수련의 현묘한 과정을 누렸다.
이마가 붓고 아픈 후 한 갈래 밝고 아름다운 장면-눈앞에서 파룬이 도는 장면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머릿속에서 돌았는데 나중에는 바깥과 머리 주변에 작은 파룬이 끊임없이 돌았다. 흰색, 회색, 금색이 다 있었다. 한번은 내가 집에 침대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부분적으로 겹쳐진 세 개의 큰 파룬이 집안에서 돌았다, 직경이 거의 2미터나 되어 온 방을 가득 채웠다. 나는 격동하여 몸을 일으켜 앉았는데 몇초 만에 큰 파룬은 사라졌다. 이 신기한 장면에 나는 격동해마지 않았다. 일찍이 정견망에 이런 노래 가사가 있는 것을 보았다 “
“내가 처음 책에서 당신을 보았을 때 비로소 이 세계에서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지 알았습니다. 당신이 처음으로 내 눈 앞에서 돌기 시작했을 때 나는 비로소 우주에서 가장 신기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 눈 앞에서 도는 파룬은 대략 1, 2 시간 있다가 보이지 않았고 파룬의 형상은 내 마음 속에 깊이 박혀 있다. 나중에 내가 감옥에 감금된 동안에도 매번 그 신성한 파룬을 생각하면 전신에 수련에 대한 믿음과 힘이 배가 되었다.
반년간 수련한 후 식구들은 대법의 위력을 견증했다. 남편은 몇 년간 연마하던 다른 공을 포기하고 아들과 함께 동시에 대법 수련으로 들어왔다. 우리 3가족은 동수들이 소분대라고 부르는데 매일 단체 법공부와 연공에 참가했고 아이 몸도 갈수록 좋아졌다.
1998년 7월 26일 사부님께서 고향에 돌아오셔서 장춘 보도원을 위해 설법을 해주셨다. 당시 나는 법회에 참가하지 않아 알지 못했다. 대략 20여 일이 지나 우리 보도원이 사부님께서 돌아와 설법하셨다고 말해주었다. 그날 밤 우리 부부 둘은 매우 우울했으며 약속이나 한듯이 생각했다. ‘사부님 고향의 제자로서 우리는 매우 굽은 길을 걸었다. 이 좋은 공법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사부님께서 지척에 계셨는데 우리는 사부님을 만나볼 인연이 없었을까?’ 당시 누구도 왜 이 일 때문에 우리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알지 못했다.
우리의 심신이 기쁘고 수련의 아름다움을 잘 누리고 있을 때 1999년 7. 20 사악의 탄압이 시작되었다. 파룬따파의 발상지 장춘은 순식간에 검은 구름과 피비린내의 도시가 되어 버렸다. 우리는 청원, 편지, 상방 등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시작했다. 우리는 두 차례 북경에 가서 상방했으며 나중 한차례는 불법으로 잡혀 2년 노동교양을 받았다. 노교소 인원이 만원이었기 때문에 신체검사를 통해 신체가 좋지 않은 몇 사람을 석방했다. 나는 배신자가 6, 7일간 연속 잠을 안 재우는 포위 공격 중에도 몸에 조금도 불편함이 없었지만 의외로 ‘고혈압’이 나타나 석방되었다. 2년의 노교였지만 노교소에 2주간 머물렀다.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거대한 마난을 녹여 주신 것에 충심으로 감사드린다.
노교소에서 돌아 온 후 나는 또 대규모로 소업하는 과정이 시작됐다. 2001년 초 어느 날 밤 머리를 제외하고 전신이 변한 것 같았다. 두 팔에 혹이 생기고 척추에도 큰 혹이 생겼다. 둔부와 두 다리에 큰 물집이 생기고 두팔, 손바닥의 피부가 부풀어 꽃처럼 일어났다. 열 개 손가락의 살이 매일 밤에는 물처럼 흐물흐물해졌으며 매일 아침 다시 살로 변했다. 몇 달간 세수와 세발을 할 수 없었다. 거의 일년간 손바닥에 작은 물집이 연이어 줄줄이 생겼다. 더욱 신기한 것은 아침에 일어나면 배꼽 등 쏙 들어간 곳에 사탕 같이 끈적한 검은 물질이 나타났다. 바로 이 공간에 있어서 식구들이 직접 보았다. 나 자신도 암암리에 사부님이 나의 죄를 위해 소업해주는 신기한 함을 느낄 수 있었다.
대법의 보육하에 나는 근무 중에도 가급적 眞善忍(진선인)으로 자기를 단속했다. 90년대 말 나는 반주임의 일을 겸했다. 우리 학급은 대부분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형편이 곤란한 학생들이었다. 학생이 병이 날 때마다 나는 집에서 환자에게 좋은 반찬을 만들어 주었다. 또 우리 아이도 먹지 못한 과일을 아픈 학생에게 갖다 주었다. 어떤 학생은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 “선생님, 댁의 과일은 사오신 거예요?” 매 공휴일이나 경축일이면 학생들은 학급단위로 자비로 회식이나 만두 등을 싸온다. 이때마다 나는 학생들에게 상징적으로 몇 위안씩만 내게 하고 나머지는 내가 다 부담했다. 매번 전반 비용의 반 이상을 내가 부담했다.
평소 학생이 돈이 부족하면 빌리러 오는데 나는 거의 빌려준다. 졸업할 때 갚지 않는 아이가 있어도 나는 달라고 하지 않았다. 더욱이 학생이 졸업 전에 돈을 모아 기념품을 주임선생에게 주는데 기념품 가치는 해마다 올라간다. 고급 자전거, 명품시계 등 매 학생들은 많은 돈을 내놓아야 한다. 나는 수련 전에도 학생들의 선물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노트, 앨범 따위의 작은 것은 받았다. 수련 이후 나는 일찍이 학생 간부에게 통지했다. 나는 어떤 기념품도 받지 않는다. 기념을 하려면 그저 너희들의 졸업앨범에 말로만 남기라고 했다. 몇 년후 우리는 글자를 보면 얼굴을 본 것 같고 말을 남김으로서 서로 격려가 되는데 이것이 진정한 기념이라고 했다.
이렇게 하여 전반 학생들은 졸업 앨범을 들고 줄을 서서 말을 남기려 했다. 반마다 3,4위안짜리의 노트를 사서 사람마다 노트에 선생님께 대한 축복과 감격의 말을 썼고 자기 이름을 사인해서 내게 주었다. 나중에 어떤 반 학생이 물었다. “너희 담임은 왜 그래?” 우리 반 학생들은 “우리 선생님은 파룬궁을 연마하고 마음이 착해져서 줄곧 학생들을 생각하셔.”라고 대답했다. 유감인 것은 점점 탄압이 심해짐에 따라 강단에서 쫓겨나 더 이상 학생들과 만날 수 없었다.
20년의 수련의 길에서 나는 절실히 느꼈다. ‘속세의 이 망망한 사람들 중 사부님께서 나를 끌어내어 씻어 주시고 수련의 길로 이끌어주셨다. 온몸의 죄업을 없애주시고 겹겹의 마난을 풀어주셨으며 풍우 중에 한 정거장씩 보내주셨다. 호탕한 사부님 은혜에 나는 보답할 길이 없다. 오직 사부님을 바짝 따라 어떤 위험이든 돌파하고 정진하여 조사정법의 신성한 사명을 원만하게 완수하는 수밖에 없다.
파룬따파가 세상에 전해진 지 25년 파룬따파 제자는 모두 호탕한 사부님 은혜를 절실히 느낀다. 무수한 사실이 충분히 증명하다시피 파룬따파는 심령을 정화하는 그릇이며 담배, 술, 도박, 탐욕 등 일체 불량한 버릇과 더러운 사상을 제거할 수 있으며 어리석은 자를 지혜롭게 하고 위대한 각자로 변하게 할 수 있다.
파룬따파는 영단묘약이며 사람의 완고한 고질병을 없애 죽음의 문턱에서 삶을 맞이할 수 있게 하고 인간세상의 기적을 무수히 창조한다.
파룬따파는 인류 고금의 모든 학문을 초월한 최고의 과학이다. 가는 곳마다 감로수가 내리듯이 중생을 윤택하게 한다. 유유한 만세에 이같이 위대한 것은 오직 파룬따파 밖에 없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38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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