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는 살아있는 생명체
1. 한자는 하나의 생명체 : 한자에도 이합집산(離合集散)과 성주괴멸(成住壞滅)이 있다
고대에 도(道)라는 글자는 늘 덕(德)과 함께 사용되었다. 사람들은 늘 "도덕(道德)이 높다", "도덕이 낮다"라고 담론했으며 노자(老子)가 쓴 도가의 정화(精華) 오천자도 《도덕경(道德經)》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 도와 덕은 이미 제갈 길로 갈라졌다. 도(道)는 로(路)와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아져서 사람들은 곳곳에서 "도로(道路)가 길다"거나 "도로가 짧다"는 말을 듣는다. 한편 덕은 도에 수반하는 기회를 상실한 대신 공(功)과 함께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현대인들은 공덕(功德)을 쌓는 것은 좋아하지만 도덕을 말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성(成)․주(住)․괴(壞)․멸(滅)을 말해보자. 세계 삼대 고문자(古文字) 중 바빌로니아의 설형문자와 이집트의 상형문자(聖書의 글자체)는 일찍이 역사의 무대에서 널리 두각을 나타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벌써 박물관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유독 중국의 한자(漢字)만은 삼천여 년의 온갖 시련 속에서 우여곡절을 겪었음에도 지금에 와서 도리어 노익장을 과시하며 원기왕성하게 세계무대로 뻗어나가 광채를 발하고 있다.
2. 미묘(美妙)한 한자 : 고문자 중에서 한자만 살아남은 이유는 아름답고 오묘하며 탐색할 가치가 있기 때문
(1) 한자는 신이 전한 문자
"창힐(倉頡)이 문자를 만들자 하늘에서는 조(粟, 곡식의 일종)로 된 비가 내렸고 귀신들은 밤새 통곡했다."는 기록은 과학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단지 머나먼 전설로만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문화인류학적으로 본다면 전설의 배후에는 사실 종종 보다 많은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 창힐은 황제(黃帝)의 사관(史官)으로 4개의 눈을 가졌다고 전해지는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인물이다.
당시 그가 천상에서 이 문자를 가져왔을 때 상천(上天)에서는 기뻐하며 축복했으며 아울러 곡식을 비처럼 뿌려 축하했다. 그러나 요마귀괴(妖魔鬼怪)는 인류에게 문자가 있으면 지혜가 생기게 되어 더 이상 마음대로 우롱하고 조종할 수 없게 된 까닭에 이전처럼 살아가기가 어렵게 되어 연일 밤마다 머리를 감싸고 통곡을 했다.
사람들은 창힐의 이런 공헌에 감사하는 의미로 남북조(南北朝)시기이래로 "지성선사공자(至聖先師孔子)"와 더불어 최상의 공경을 드렸다. 역사상 한자는 또한 신성한 지위를 부여받았으며, 민간에서는 한자를 쓴 작은 종이조차도 함부로 버릴 수 없었다. 오늘날까지도 대만에서는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곳이 비교적 많은데, 한자를 쓴 종이를 공경하고 아낀다는 의미의 "경석자지(敬惜字紙)"를 표명하는 경자루(敬字樓)를 도처에서 볼 수 있다.
(2) 한자의 한 필(筆) 한 획(劃)에는 모두 그 내포가 있다
한자는 종종 곧바로 하나의 박물관이다. 서양의 모든 병음문자(역주: 발음기호를 사용하여 표기하는 표음문자를 말한다.)는 영어, 러시아어, 라틴어 등을 막론하고 문자는 단지 소리를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소리가 없다면 곧 아무런 의미도 없게된다.
그렇지만 한자는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표의문자(表意文字)로서 한자의 한 필 한 획에는 극히 풍부한 정보가 담겨져 있다. 가령 글자를 만든 당시의 사회발전상황, 경제활동, 문화사조 등등 많고 많은 조상들의 비밀이 모두 한자의 필획 속에 감춰져있는데, 진실로 조상들의 생활면모를 보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자에 들어가는 것은 바로 중화문화의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으며 그 속에 푹 빠져 돌아가는 것을 잊을 정도로 된다. 아래에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어떤 사람들은 중국전통문화에서는 여성을 기시(歧視)한다고 여긴다. 그들의 근거라면 매우 많은 좋지 않은 많은 글자들에 모두 女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가령 간사할 간(奸), 요사할 요(妖), 간사할 간(姦) 등등이다. 그러나 이는 일면만을 본 단편적인 견해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성(姓), 혼(婚), 인(姻)이라는 세 글자에도 역시 女가 들어있다. 그렇다면 이 세 글자에는 어떤 공통의 특징이 있는가? 우리가 사람들에게 통성명을 할 때 사용하는 "귀성(貴姓)"이란 말에서 성(姓)은 사람의 내력과 출신을 대표하는 것이다. 지금은 보통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까닭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왜 女를 부수로 하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또 혼인(婚姻)이란 인륜지대사인데 두 글자 중 어디에도 남자를 의미하는 것이 왜 없는지 궁금할 것이다.
역사상 전설에 의하면 상고(上古)시대에는 단지 어머니만을 알았고 아버지는 몰랐다고 한다. 이는 아주 이른 초기의 사회인데 중국의 한자는 바로 이 시기의 문화를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안(安), 호(好), 타(妥) 와 앞에서 제기한 간(奸), 요(妖), 간(姦) 등을 비교해보면 좋고 나쁨이 뒤섞여 마치 모순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한자 역시 변화가 있었다. 상(商)나라시기 갑골문에서는 단지 안(安), 호(好), 타(妥)만 있었지 간(奸), 요(妖), 간(姦) 등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 세 글자는 나중에 남성들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에 만들어진 글자이다.
가령 사람을 나타내는 인(人)이라는 글자는 해서(楷書)의 人이나 삼천년 전 갑골문의 이나 단지 두 획에 불과하며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갑골문을 보면 비교적 진실한 사람과 유사한데 두 손을 가슴 앞에 늘어뜨리고 허리를 구부린 모습이다. 이것은 삼천년 전 중국인들의 人에 대한 기본관점을 표현하고 있으며 또 중국인의 인생철학이기도 하다.
사람은 가장 복잡한 것으로 심지어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조차 차라리 귀신을 그리는 것은 쉬워도 사람을 그리기는 어렵다고 한탄한다. 대만 속담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먹는 쌀은 똑같지만 사람은 모두 다르다[一樣米養百樣人]." 인간세상은 확실히 복잡하지만 그러나 인생의 진정한 요체도 그렇게 복잡할 것인가? 사람이란 글자는 이렇게 간단하고 간단한 2획에 불과한데 인생 역시 그렇지 않을까? 아무리 복잡한 문제라도 허리를 굽히고 예의를 갖춘다면 간단하게 변하지 않겠는가? 이 간단한 2획으로부터 당신은 또 보다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어의 human이란 단어에서 당신은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심지어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해본다 해도 역시 무언가를 찾아내기는 아주 어렵다!
또 집 가(家)라는 글자를 예로 들어보자. "집집마다 본래 어려운 점이 있지만 집안의 나쁜 일을 밖에 알리는 것은 듣기 싫다.[家家有本難唸經,家醜外揚不好聽]"는 말이 있는 것처럼 집에 대해 공통의 인식을 얻기는 쉽지 않다!
갑골문 로부터 보자면 겉에 있는 는 집을 상징하고 안에 있는 는 돼지를 상징한다. 집에는 물론 방이 있어야만 따스함을 얻을 수 있는데 돼지 한 마리를 놓고 도대체 무엇을 한단 말인가? 집이란 본래 돼지우리란 말인가?
사실 그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가(家)란 농업사회에서 단지 먹고 자는 곳만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경제생산단위로서 생산력이 있어야 가도(家道)가 흥성할 수 있었다. 소나 말은 일년에 기껏해야 한 마리밖에는 생산할 수 없지만 돼지는 한번에 12마리까지 낳을 수 있고 일년에 2번이상도 번식 할 수 있다. 그러므로 家에 돼지가 있는 것은 단지 생산력이 왕성하다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대대손손 자손이 끊이지 않고 번성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3) 한자는 공간과 시간의 간격을 초월할 수 있다
한자는 안정성이 가장 뛰어난 언어로, 병음문자에서 럼 소리가 변함에 따라 그 문자도 끊임없이 변천되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현재 영국의 대학생들은 이미 3백 년 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보기가 아주 어려워졌지만 중국의 초등학생들은 천여 년 전의 당시(唐詩)를 지금도 낭송할 수 있다. 1911년 양계초(梁啟超)란 사상가가 일제치하의 대만에 와서 항일문학가 임헌당(林獻堂)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임헌당이 문화로 항일한다는 사상에서 적지 않은 계발을 받았다. 그들은 한 사람은 광동어(역주 : 중국 남부 광동지방의 방언으로 홍콩영화에 나오는 억양이 심한 중국어)를 말하고 한 사람은 대만어를 말했지만 둘 사이에는 아무런 간격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자로 필담(筆談)을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자의 이런 특색은 한자로 하여금 말은 통하지 않아도 글을 통해 간격을 없앨 수 있는 평화의 메신저가 되게 하였다.
(역주: 대만뿐만 아니라 한국이나 일본, 월남 등의 한자 문화권 지식인들은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필담을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마음껏 표출할 수 있었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아도 한자라는 공통의 표현수단을 통해 동양의 지식인들은 아무런 간격없이 상호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4) 한자는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한자는 다양한 시대에 다양한 서체(書體) 형식을 가지고 있다. 어떤 것은 태산처럼 장중하고, 어떤 것은 용이 날고 봉황이 춤추듯 한데, 더욱이 역대로 무수한 서예가들은 한자 서법을 만드는데 노력하여 이미 순수한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 일본에서는 서예를 존칭하여 서도(書道)라고 부른다.
(5) 한자는 무한한 보물을 간직한 보고
한자는 중화문화의 교량으로 박대정심(博大精深)한 오천년 문화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한자로 진입해야만 중화문화의 심오한 전당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곳에서 당신은 지성선사(至聖先師) 공자의 정성스런 가르침을 들을 수 있으며, 당신이 만약 신기한 것을 좋아한다면 "백마는 말이 아니다"라는 춘추시대의 백가쟁명을 들어볼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문학을 좋아한다면 굴원(屈原)의 고독도 누려볼 수 있고, 몇 만에 달하는 당시(唐詩)와 송사(宋詞) 중에서 당신의 마음에 쏙 드는 것을 찾아낼 수도 있다. 또 과학과 철학의 요소를 모두 지닌 중의학이나, 신비하고 또 사람을 매혹시키는 천문지식 등등 오늘날 보다 더 풍부한 것들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얻으려면 한자로 진입해야만 한다.
(6) 한자의 변천은 시대사조의 반영
한자는 상나라 시기 갑골문부터 시작하여 오늘날의 해서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으며 자형(字型)이나 필획(筆劃)에도 변화가 있었다. 어떤 것은 간단해졌고 어떤 것은 복잡해졌으며 어떤 것은 날씬해졌는데 곳곳에서 각 시대의 각기 다른 사조를 반영하고 있다.
가령 갑골문에서 주(周)나라의 금문(金文)에 이르면서 일부 글자체는 끊임없이 간단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복잡하고 대칭미를 갖도록 변모되었다. 가령 집(集)과 치(齒)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集 : 갑골문 금문
齒 : 갑골문 금문
이런 변화는 바로 문채(文采)와 예의를 중시하는 주나라 사람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진(秦)나라 시대에는 수레바퀴와 글자체를 통일하였다. 각국에서 독자적으로 사용하던 문자를 금지시키고 모두 진나라의 소전(小篆)체로 표준을 삼게 했다. 이는 바로 진나라의 중앙집권화와 통일사상을 반영한 것으로 효율을 중시하는 정신의 산물이다.
한편, 예서(隸書)의 출현은 진나라의 준엄한 형벌과 법률에서 나왔다. 법이 많아지면 범법자도 많아지기 마련이며 관리들이 관리하는 예졸(隸卒, 역주: 심부름꾼)이나 문서왕래도 빈번해지게 된다. 그러므로 보다 빠른 문서작성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예서이다.
한당(漢唐)시대에 이르면 중화문화는 충분히 발전하여 문치(文治)와 무공(武功)이 극성기를 이루었다. 사방에서 멀리로부터 조공을 바쳤으며 문학예술 및 과학기술 역시 최고봉에 올랐다. 이때 등장한 방정(方正)하고 온중(穩重)한 해서(楷書)는 바로 대국(大國)의 풍모를 체현한 것이다. 해서는 당대이후에 고정되어 지금까지 일천년을 이어왔다.
비록 속자(俗字)나 간자(簡字) 변체자(變體字) 등이 끊임없이 만들어졌고 비록 간화(簡化)가 조류이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해서는 실제로 간화를 극소화했다. 왜냐하면 3천여 년에 이르는 한자의 변화과정에서 고험은 이미 성숙되었고 진선진미(盡善盡美)에 근접했기 때문이다. "해(楷)"는 바로 단정하고 본보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이 때문에 해서를 또한 정서(正書)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해서를 더 간단히 한다면 곧 한자의 정화를 손상시키게 될 것이다.
3. 변이된 간체자
灭, 圣, 义, 卫와 같은 간체자(簡體字) 한자들을 볼 때면 늘 어딘가 불편하고 불안한 느낌을 준다. 어떤 사람들은 간체자는 중공이 처음으로 창조한 것으로 여긴다. 사실 갑골문 시대에도 간체자는 존재했으며 태평천국시대에도 일찍이 백여 개의 간체자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민국(民國) 24년에는 교육부에서 423개의 간체자를 공고한 적이 있다. 그러나 반년도 못가서 다시 폐지하였다. 민국 42년에는 고시원 부원장이 다시 대만에서 간체자를 추진한 적이 있으나 찬반논쟁 끝에 결국 시행하지 못했다. 오늘에 이르러서도 매 개인마다 혹은 많게 혹은 적게 일부 간체자를 이용하고 있다.
간체자는 글을 쓰는 속도가 빠르기는 하지만 한자(漢字)의 정신을 결핍하고 있기에 정체(正體)한자를 대체할 순 없다. 그러나 지금 중국대륙에서 통용되는 간체자는 기존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몇 가지 방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1) 중국대륙에서 간체자 통용의 목적은 한자의 소멸에 있다
몇 천 년 동안 한자의 변화과정에서 그것을 복잡하게 하든 간단하게 하든 막론하고, 그 목적은 모두 한자의 내포를 충실히 하고 사람들이 사용하는데 편리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이를 통해 더 나아가 한자를 널리 발전시키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중공 간체자의 최종 목적은 철저하게 한자를 소멸하고 병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1951년 모택동은 "문자개혁은 세계문자의 공동방향인 병음화로 나아가야 한다.", "병음화를 실현하기 전에 먼저 한자를 간단하게 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그러므로 중공의 간체자는 단지 한자를 소멸하기 이전 과도시기에 사용하는 대용품에 불과한 것이다.
(2) 한자를 소멸하려는 목적은 중화문화의 전승을 단절시키려는 것이다
문화(文化)는 한 민족의 영혼으로 중화문화의 박대정심함은 한자에 담겨져 수천년 동안 하나의 맥으로 서로 전해왔다. 만약 한자를 잃는다면 중화문화 역시 의탁할 곳을 잃어버리게 된다. 전통문화와 사상이 없는 백성들은 바로 통치자가 조종하고 우롱하기 쉬운 대상이 된다. 예전에 일본이 대만을 통치할 때 대만사람들에게는 한자학습을 금지시켰는데 심지어 성명마저도 모두 일본식으로 바꾸게 했다. 통치자의 목적이란 바로 한자의 소멸을 통해 대만사람들과 중화문화의 연계를 끊어버려 그들을 정신적으로 텅 비게 만든 후 최후에 대만사람들을 노예화 하려는 것이었다.
중공은 계획적으로 중국의 전통문화 중 아름다운 일체를 모두 "뒤떨어지고" "수구적"이며 "미신"이라고 왜곡하였다. 지성선사(至聖先師) 공자마저도 "허위적이고 교활한 정치 사기꾼"으로 추악하게 만들었다. 만약 백성들이 모두 한자를 사용한다면 직접 중화전통문화의 풍부한 내포를 보고 곧 중공의 거짓말을 꿰뚫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자를 소멸하는 것은 중화문화에 대한 백성들의 이해와 인정을 차단할 수 있다. 전통문화를 잃어버린 백성은 곧 통치 권력에 의해 조종당하고 노예화하기 쉽다.
(3) 현재 통용되는 간체자는 가장 괴상한 문자이다
세계적으로 문자에는 양대(兩大) 체계가 있다. 하나는 표의문자(表意文字)로 문자의 필획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인데, 한자는 바로 현존하는 세계 유일의 표의문자이다. 또 하나는 표음문자(表音文字)로서 여기에서 문자는 단지 소리를 대표하는 것에 불과하며 소리를 표현하는 의미만 있지 문자 자체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불어, 일어 등은 모든 병음문자는 다 마찬가지이다.
한자의 필획은 함의가 있는 것으로 의미와 발음을 모두 표시한다. 그러나 간체자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소리를 대표하지도 못하므로 그것은 한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병음문자도 아닌데 단지 아무런 내포도 없는 도형에 불과할 뿐이다.
살 "매(買)"의 간체자인 "买"를 살펴보기로 하자. 买의 윗부분은 갈고리가 있는 칼이고 아랫부분은 사람의 머리이다. 즉, 칼을 머리위에 놓았으니 이런 매매(賣買)는 지극히 무서운 것이다.
이런 글자에는 진정한 내포가 전혀 없으며 또한 소리와 연계되어 있지도 않다. 진정한 한자인 매(買)는 위에 있는 글자가 그물을 나타내며 아래에 있는 글자는 고대에 화폐로 사용되었던 조개 패(貝)이다. 이렇게 글자만 봐도 의미가 명백해지는데 바로 그물로 고기를 담듯이 돈을 가지고 물건을 산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買 의 진정한 의미이다!
여기서 또 하나 지킬 "위(衛)"를 살펴보자. 이 글자의 간체자는 "卫"인데 여기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소리와 연결되지도 않는다. 정체(正體) "衛"는 원래 중간의 口를 중심으로 사방에서 경계를 서며 지키고 수호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금문 를 보면 더 명확한데 성(口) 주위를 돌고 있는 발자국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4) 주객이 전도되어 시비를 가리지 못한다
간체자는 역사상 과거에도 줄곧 존재해왔었다. 비록 그것이 쓰기에는 편리하지만 육서(六書 역주: 전통적인 한자 조성방법으로 형성, 지사, 회의, 가차, 전주, 상형 등 6가지 방법으로 한자를 만드는 것을 의미)의 조자(造字)방법에는 부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전까지 간체자는 줄곧 작은 범위에서 사적인 문서에 사용되어왔을 뿐이다. 이 때문에 일부 간체자는 비록 이미 천년이상 사용되어 왔음에도 한자라는 대아(大雅)의 전당에는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지금 중공에서 대규모로 간체자를 정식문자로 만들고자 한다면 이는 곧 주객이 전도되어 시비를 가리지 못하는 것이 된다.
4. 현재 통용되는 중공 간체자에는 무엇을 반영되었나?
문자는 살아있는 생명체이므로 문자의 변화는 시대사조를 반영한다. 금문(金門)의 대칭미는 주(周)나라 시대 사람들이 예의와 문채를 중시함을 반영한다. 해서(楷書)의 방정(方正)함은 한당성세(漢唐盛世 역주: 중국 역사상 가장 흥성했던 한나라와 당나라 시기를 말한다. 참고로 중국 역사상 3대 흥성기는 한대 "문경의 치", 당대 "정관의 치", 청대 "강건성세"를 꼽는다.)의 정정당당한 국풍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중공의 간체자는 도대체 무엇을 반영하고 있는가? 여기에 대답하기 전에 몇 가지 간체자를 살펴보기로 하자!
(1) 義 (갑골문자:)
중국인들은 의(義)라는 이 글자를 가장 중시하는데, 친구사이에 의리를 강조하고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는 도원에서 결의하여 의(義)의 전형이 되었다. 장사를 하고 물건을 매매할 때에는 신의(信義)를 강조하고 의리를 위해서라면 물불도 가리지 않는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면 강개하여 의를 따르고 의리상 사절할 수 없다. 중국인은 왜 줄곧 이렇게 이 의(義)를 중시해왔을까? 왜냐하면 고인(古人)들이 글자를 만들 때 이미 이런 내포들을 모두 이 글자 속에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갑골문에서 보면 이다. 이 글자의 위에 있는 羊은 갑골문에서 보면 이다. 이 글자의 위에 있는 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간체자 "义"를 살펴보자. 우선 두 개의 사선은 큰 갈퀴를 이루고 있으며 가운데 있는 한 점마저도 비스듬하게 찍혀있다. 이 3획 가운데 어디에서 정의(正義)와 관련된 내용을 찾을 수 있는가?
(2) 聖( 갑골문자"")
聖이란 글자는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아주 높은 지위가 있는데 "지성(至聖)"으로 통하는 공자(孔子)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또 당대(唐代)의 유명한 시인 두보(杜甫)는 시성(詩聖)으로 불린다. 갑골문으로 보면 "은 귀가 아주 큰 사람을 의미한다. 귀가 크다는 것은 듣는 것이 명백하다는 의미이다. 물론 귀가 있으면 누구나 다 들을 수 있지만 어떤 일이건 아주 명백하게 듣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은 귀가 아주 큰 사람을 의미한다. 귀가 크다는 것은 듣는 것이 명백하다는 의미이다. 물론 귀가 있으면 누구나 다 들을 수 있지만 어떤 일이건 아주
이란 반드시 명백하게 듣고 똑똑하게 말하는 것을 포함하는데 바로 아주 높은 경지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聖의 간체자인 "圣"을 보자. 한자의 필획에는 그 함의가 있지만 이 글자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한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발음을 표시하는 병음도 아닌데 설마 聖人을 괴상한 사람이라는 괴인(怪人)으로 이해하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4) 엽(葉) (갑골문자"")
또 ""이라는 글자를 살펴 보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다.", "추풍낙엽"에 등장하는 이 글자는 문학작품 중에서나 아니면 갑골문에 있어서도 모두 아름다운 시적인 정취가 담겨 있다.
갑골문 은 위에 초(草)가 없는 모양으로 과일나무를 의미한다. 나무에는 3갈래의 아름다운 잎이 달려있다.(여기서 3은 많다는 의미).
그러나 간체자 "叶"를 보면 열개의 입이라는 의미로 변질된다. 한자에서 하나의 口는 말하는 입을 말하고 세 개의 口는 품(品)이 되어 인구가 많다는 의미로 쓰인다. 만약 口가 네 개 모이면 시끄러울 효(囂)가 된다. 열개의 口가 모이면 古가 되는데 이는 고대를 의미하며 10명의 입을 거쳐 전달되었다는 뜻으로 이미 10대를 전해 와서 아주 오래된 일임을 뜻한다. 한자에는 매 하나의 글자마다 이렇게 분명한 뜻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간체자 叶은 十口가 나뭇잎이 된다는 것인데 여기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가?
5. 간체자의 후유증
사회에서 만약 많은 사람들이 위조지폐를 사용한다면 전체 경제에 손해를 끼칠 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믿음도 파괴하게 될 것이다. 한 국가에 만약 여러 사람이 모두 거짓문자를 사용한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대륙의 고문자 전문가 탕란(唐蘭) 선생은 문화대혁명 후 홍콩중문대학에 와서 "전에는 할 말이 있어도 감히 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해야겠다. 한자는 당연히 간체화시키지 말아야한다."고 했다.
하지 말아야할 일을 하게 되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간체자 사용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그로 인한 후유증은 점점 더 분명해질 것이다. 그 중 몇 가지 문제만 말해보기로 하자.
(1) 바꾸고 또 바꾸고 어지럽히고 또 어지럽힘
안정성은 한자의 큰 특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직접 공자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고 이태백과 두보의 당시를 읊조릴 수 있으며 안진경의 기세 높은 서예를 감상할 수도 있다. 해서(楷書)는 당나라이후 정형화되어 오늘날까지 이미 천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간단하게 변한 글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해서는 이미 가장 정교하고 간단하게 된 글자이기 때문이다. 측천무후는 그 총명한 두뇌로 15년에 걸쳐 겨우 18개의 새로운 글자만을 만들었음에도 지금은 그녀의 이름만 남았을 뿐 그녀가 만든 글자는 남겨지지 않았다. 이로써 보건대 글자를 만들거나 바꾸는 것이 얼마나 엄중하며 쉽지 않은가 알 수 있다.
그러나 중공은 1956년 단번에 2235개의 간체자를 만들었는데 기존 육서의 조자(造字)법칙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이론도 없었고 한자의 신성(神聖)한 내포도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병음문자처럼 간편하지도 않다. 심지어 간체자 사이에도 모순이 발생하는데 다음에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 분(賁)이란 글자는 文으로 간단히 할 수 있으므로 墳을 坟으로 간단히 쓸 수 있지만 "분노할 분(憤)"은 "힘쓸 민(忞)"으로 쓸 수 없으며 "뿜을 분(噴)"도 "呅"로는 쓰지 않는다.
○ "붓 필(筆)"의 간체자는 "笔"이므로 "율(聿)"의 간체는 "毛"가 된다. 그러나 "律"을 "彳毛"로 쓰거나 "肆"를 "镸毛"로 쓰지는 않는다.
○ "닭 계(鷄)"의 간체자가 "鸡"라면 "奚"를 "又"로 쓸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러나 "溪"를 "汉"로 쓰거나 "谿"를 "又谷"로 쓰지는 않는다. 등등
이상 몇 가지 예에서 이 글자를 이렇게 바꿨다면 저 글자는 왜 이렇게 바꿀 수 없는가? 간체자 조자의 근본원칙은 도대체 무엇인가? 정말이지 모든 백성들이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최후에 사람들이 문득 크게 깨달은 것은 바로 "하고 싶은 대로 자기 멋대로"라는 것이다. 백성들은 이 조자(造字)원리를 알고 난 후 갑자기 저것도 바꿀 수 있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에 사농공상(士農工商) 전 국민이 조자운동을 벌여 현대판 창힐이 도처에 널려났고 이렇게 여러 사람이 모두 한자개정에 참여하였다.
가령 "부러워할 선(羨)"은 본래 먹음직한 양고기를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아 부러워 군침을 흘린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침을 흘리기 때문에 삼수(三水)의 세 점이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간체자에서는 임의로 세 점을 2점인 "羡"이나 한 점인 "로 바꿨다. 글자가 이렇게 혼란스러워지자 어떤 사람들은 아예 정체(正體)한자를 사용하여 자신의 문화수준이 높음을 과시하였다.
그러므로 현재 중국 거리의 간판이나 편지는 정체(正體)한자로 쓴 것도 있고 법으로 정한 간체자를 쓴 경우도 있으며 사회에서 통용되는 간체자를 쓰거나 사사로이 만든 간체자를 쓰는 경우도 다 있어서 그야말로 백가쟁명(百家爭鳴)이다. 민간에서 바꾸고 정부에서 바꿨는데, 1956년~1986년까지 삼십년 동안 중국 정부에서는 이미 5차례에 걸쳐 큰 개정을 했고 작은 개정은 부지기수이다.
(2) 텅비고 텅빈 거짓말
위조지폐는 경제에 해악을 끼칠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사이의 신뢰마저도 파괴한다. 한자가 박대정심한 내포를 잃고 간화되어 일종 텅 빈 부호로 변해버리자 이 텅 빈 부호는 통치자의 기호와 정치적인 필요에 따라서 임의로 서로 다른 내용을 뒤집어 씌웠다. 그러므로 간체자는 이미 거짓의 텅 빈 문자로 되었으며 통치자의 세뇌도구로 전락했다.
가령 나아갈 진(進)을 보자. 원래 금문 에서는 의미가 아주 명백하다. 오른쪽에 한 마리 새가 날아오르고 있다.
중공은 늘 대만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도리어 수백 기의 미사일로 호시탐탐 대만을 노리고 있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이것은 이치에 어긋난 이지러진 사랑이지만 그러나 중공에 대해 말한다면 순리이자 법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랑 애(愛)"란 글자에서 "心"을 빼버렸기 때문이다. (역주: 간체자 "爱"는 번체자 "愛"에서 가운데 "心"을 뺀 모양이다.)
중공의 조자는 이렇게 거짓으로 날조된 것으로 내포마저도 거짓이다. 위에서 행하자 아래에서 따른 결과 중국 대륙의 전 국민들이 거짓을 만들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일찍이 국가부주석을 지낸던 임표(林彪)는 감개무량하게 다음과 같은 속내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큰일을 이룰 수 없다." 이렇게 중공은 이미 세계 최대의 거짓 국가로 변했다.
대기원시보 2005년 5월 23일 보도에 의하면 중국국가통계국장 이덕수(李德水)가"전국적으로 허위보고, 속임수보고, 위조, 통계자료를 뜯어고친 것이 60%에 달한다. 2004년 전국통계조사 중에서 발견한 것만 해도 호북성 한천시(湖北省漢川市)의 일인당 소득이 수십 배나 부풀려진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이것이 과장이긴 하지만 중공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리 심한 편은 아니다.
중공의 가장 심한 거짓날조는 바로 1958년에 있었던 대약진 운동이었다.
대약진은 원래 모택동의 "10년 안에 영국을 추월하고 15년 안에 미국을 추월한다."는 한마디 말에서 출발했다. 누가 알았으랴! 이 광인(狂人)의 한 마디 말이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거짓말들을 만들었을줄.
"공업생산" 분야에서는 어떻게 "대약진"을 했는가? 강철생산량을 날로 늘리기 위해 부족한 것은 창살이고 밥솥이고 가리지 않고 뜯어서 목표량을 채워야했다.
"농업생산"은 어떻게 "대약진"을 했는가? 거짓을 조작해서 허위로 보고해 달성하였다. 만약 이웃 현에서 식량을 한 배 증산했는데 당신이 달성하지 못하면 사사로이 식량을 착복한 것으로 간주되어 결국 허위보고 경쟁이 벌어졌다. 중앙정부에서는 아예 허위보고 된 수량대로 곡식을 징발하여 결국 농민들은 내년에 씨 뿌릴 종자마저 빼앗겨야했다. 다음해와 그 다음해에 전국적으로 풍년을 축하하며 한 무당 만근을 생산해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면서 모택동 주석의 위대한 역량을 찬양하는 소리가 높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굶어죽은 농민들은 산과 계곡을 가득 메웠다. 자고이래 천부의 곡창지대라고 여겨졌던 사천성의 성도 평원마저도 화를 면할 수 없었다.
나중에 3년간 대약진 기간에 대륙에서 굶어죽은 백성의 숫자는 약 3500만 명이상으로 조사되었다. 중국 역사상 물난리, 가뭄, 천재(天災) 중 큰 것을 합하면 약 203차례가 있었지만 그 총 사망자 수는 2991만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단지 모택동의 한 마디 거짓말에 의해 필경 수천만 명의 귀한 목숨을 잃어야했으니 진실로 인간세상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2005년 3월 미국무역대표부에서 제출한 연례무역보고서에서는 특별히 미국의 대외무역 중 가장 큰 두통거리인 중국대륙의 해적판과 짝퉁의 성행에 대해 강조하였다. "이는 중국 정부는 전혀 해적판에 대한 효과적인 단속을 통해 지적재산권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낸다."
대만에서 중국 대륙으로 친척방문을 개방하자마자 대륙의 유명한 술들이 대만 각 거리마다 넘쳐났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대만사람들이 술을 마시지 않아서 라기 보다는 원래 이런 명주(名酒)들의 90%이상이 모두 짝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짓문자를 사용하여 정통의 우수한 문화의 전승을 차단한 후유증이 이미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6. 결론 : 위기이자 전기(轉機)
창힐이 한자를 만든 이래 중국에서는 비록 끊임없는 왕조의 교체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외래문화는 나중에 모두 중화문화에 동화되었다. 이런 역사과정은 내포를 풍부하게 했으며 또한 무량한 내포과 조화를 완정하게 표현하였다.
그러나 중공의 집권에 이르러 공산당의 "무신론"과 "투쟁문화", "인간성을 희생하여 당성을 배양한다"는 교조는 중화문화의 "경천애인(敬天愛人)", "천인합일(天人合一)", 윤리를 중시하는 사상과 완전히 배치되었다.
중공은 인민들의 사상을 통일하기위하여 반드시 전통문화를 제거해야 했으며 한자를 소멸하는 것은 전통문화를 소멸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국가역량을 총 동원하여 간체자를 추진하고 더 나아가 병음화하여 철저하게 한자를 소멸시키려고 했다. 한자는 전에 없었던 미증유의 위기에 직면하였다.
비록 현재 간체자를 사용하는 사람의 수가 다수이긴 하지만 그들이 모두 좋아서 사용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정체(正體)한자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륙학계에서는 이미 점차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바로 오직 정체(正體)한자만이 학술연구의 요구에 부합된다는 것이다.
2004년 북경에서 열린 제3차 한문역사자료연구회에서 문학과 역사 전문가 허일민(許逸民)은 정중하게 "한문역사자료의 기본적인 학술요구는 바로 번체자이다."라고 제출하였다. 진정한 학술은 순수하고 바른 한자로 실려질 것을 요구하며 정체한자를 다시 널리 알리는 것은 필연적인 추세이다.
정체한자는 역사상 각종 고험을 겪으면서 그 활발한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현재 그 생명력은 어디로 갔는가? 2006년 미국에서는 장차 2400개의 고등학교에서 대학 중문학 예비수료과정을 개설할 예정인데 번체자와 간체자를 병행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하나의 전기이다. 전 세계에서 한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모두 정체한자의 아름다움과 내포 및 그것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도록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5/6/28/328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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