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인생
작자/ 순진
【정견망】
서양 철학사에 사람에게는 3가지 궁극적 철학 명제가 있다고 한다. 바로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가는가? 왜 사는가? 이다. 지금 중국문화에는 이런 철학적 명제는 형이상학적인 우스갯소리로 여긴다. 아무도 진지하게 사고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필자의 생각은 이런 도피적인 태도는 자기 생명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중국 사람들이 이런 명제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사고하는가? 대부분 사람은 어떻게 분투하고 명리를 취하고 향락을 즐기는가 등이다. 이런 인생철학은 사람들이 ‘당장 살아야 한다’는 미명으로 여기는데 사실 생명의 진실을 도피하는 것이다.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인들도 이런 문제에 대해 사고하지 않았던 게 아니다. 옛 사람들은 생명이 끝난 후 어디로 돌아가는가 하는 데 아주 몰두하여 연구했다. 그래서 중국 고대에 연단(煉丹), 음양(陰陽), 신선수련과 같은 방법이 나타났다. 사실 모두 생명의 무한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연단과 신선수련은 말할 필요도 없이 불로장생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오히려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음양과 풍수는 훨씬 더 보편적이다. 고대인은 그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였다. 우선 자기가 사는 곳의 풍수를 따져 살아서는 높은 벼슬을 하고 귀하게 됨을 보장받으려 했다. 사후에도 풍수를 말했는데 생전의 공명과 이록이 사후에도 계속되기를 희망했다. 사료로 보면 고대인의 ‘부장(部將)’ 풍속을 알 수 있는데 그 부장품은 대부분 금은보화다. 더욱이 고대의 고관대작들은 묘지가 바로 보물을 넣은 장소였다. 또 바로 이 때문에 왕왕 이런 묘지들이 고고학자나 도굴꾼에 의해 도굴된다. 아마 묘지 주인은 생명이 너무 짧다고 여겨 이런 식으로 자기 생전의 명리를 가져가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종의 일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오히려 도굴을 유도하여 사후에도 안녕을 얻을 수 없었다.
이것은 하나의 이치를 알려준다. 사람이 일생동안 분투하고 추구하던 공명이록은 마치 뜬구름처럼 남지 못한다. 사람의 생명이 끝날 때 이런 것은 전혀 상관이 없다. 사람은 이런 취약한 생명이기에 올 때 빈손이며 갈 때 한줌의 재다. 아마 그때 사람은 이런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거나 생각해도 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예 생각지 않고 매일 그럭저럭 지냈을 것이다.
그러면 한사람의 인생의 궁극적 명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단 말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만일 사람이 수련에 들어서면 그는 곧 이 세 가지 명제에 대한 답을 알게 된다. 아울러 가장 귀한 것은 그는 세속을 초월한 일종 물질을 얻는데 바로 공이다.
“그런데 공(功)은 왜 이처럼 진귀한가? 왜냐하면 직접 당신의 元神(왠선) 몸에 갖고 있어, 태어날 때 갖고 올 수 있으며, 죽을 때 갖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德(더)가 직접 공으로 연화(演化)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당신이 얼마나 높게 수련했든 바로 당신의 이 德(더)가 연화된 것이 아닌가? 그것은 직접 공으로 연화될 수 있다. 사람의 층차 고저, 공력의 대소를 결정하는 공은 바로 이런 물질이 연화되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당신이 말해 보라. 그것이 진귀한가 진귀하지 않은가? 그것은 확실히 태어날 때 갖고 올 수 있으며, 죽을 때 갖고 갈 수 있다.” 《전법륜》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들은 더욱이 세속의 명리 중에 빠져있어서는 안 된다. 이런 것들은 설사 일생을 분투하더라도 마지막에는 허무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연극에서 어떤 배역을 연기하는 것과 같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쌓인 재산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오직 연극 중에서만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지위가 아무리 높을지라도 연극 속의 역할에 불과할 뿐이다. 연출자가 연극을 끝내버리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연극 배역과 같은 운명이라면 슬프지 않은가? 연극같은 인생을 위해 분투하다 자기가 연극을 벗어날 기회를 잃어버리면 이것이야말로 정말 헛된 일이 아닌가?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6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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