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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혜망

글/ 중국 대법제자 리리(李莉), 유편(遺篇)

[밍후이왕] (전편에 이어)

집안 형편은 늘 몹시 어려웠고, 모든 식구가 불행한 환경에 시달렸다. 우리 부모님은 강인한 사람들로, 좌절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노래를 부르려 했으며, 특히 음악 교사였던 어머니는 병이 조금만 호전돼도 우리에게 ‘모처우(莫愁)’라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럴 때면 우리 집은 즐거움으로 가득했으며, 모든 번뇌를 잊을 수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대단히 선량한 사람들로, 고통을 참을 줄 알았고 낙관적이고 명랑했으며, 다른 사람을 도우려 했다. 사람의 도리 중에서 특별히 중요하게 본 것은 차라리 자신이 고생할지언정 다른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사람 됨됨이나 다른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문제에서는 우리에게 대단히 엄격히 요구했고, 그분들의 모범적인 언행은 내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한 가지 일이 기억난다. 문화혁명 중에 한 장교가 지역 관공서에 와서 근무했다. 그는 당시 관공서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 문화혁명이 끝나고 비판을 받은 다른 장교가 그에게 죄를 많이 뒤집어씌웠다. 우리 아버지는 그 장교를 보호하다 업무상 불이익을 받게 되었다. 바로 그때 그 장교가 중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자 다른 사람이 우리 아버지에게 제안하기를, 모든 것을 그 장교에게 미루면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모든 일을 죽은 사람에게 미룰 수는 없다며, 차라리 자신이 모든 것을 끌어안을지언정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는 지역기관 당 위원회 부서기 직에서 말단 방역소로 전근되었다. 당시 나는 강직하며 아첨하지 않는 아버지가 너무나 존경스러웠다. 중화민족의 전통 미덕은 그분들에게서 충분히 체현되었고, 수양에서부터 도덕, 사람 됨됨이가 모두 내게 아주 좋은 깨우침을 주었다. 그렇게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나는 오히려 그분들의 좋은 가르침을 받으며 내 인생 깊숙한 곳의 기초를 닦았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거취 문제에 직면했다. 내 몸이 불편했으므로 아버지는 내가 도시에 남아서 일하기를 바랐다. 나는 외부 세계에 나가서 한번 부딪혀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으며, 안일하게 도시에 남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를 설득한 후, 한창 선전하고 있던, 지방에서 노동하며 사상성을 높이는 길로 들어섰다. 나는 쑤이화신화(綏化新華) 인민공사 51대대로 들어갔으며, 나중에 쑤이링산(綏陵山) 아래의 ‘57간부학교’ 청년 거주지로 이동했다. 농촌은 정말 고생스러웠다. 땅을 파고 밀을 베는 등 온갖 일을 다 했다. 나도 고생을 감당할 수 있었고,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일을 잘했기에 한 초등학교 교사로 뽑혀 나갔다. 나는 꼬박 3년 동안 농촌의 온갖 환경에서 단련되어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출납에서부터 선전원, 숙박시설 요리사, 교사를 했고, 나중에는 또 칭안(慶安)강철공장 노사과로 차출되었다. 비록 몸은 농촌에 있었지만, 마음속에는 늘 한 가지 희망이 있었다. 계속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대학에 가려면 추천을 받아야 했고, 시험을 쳐서 대학에 가는 형식이 없었다. 내가 청년 거주지에서 두각을 나타냈기에 청년 거주지와 현지 ‘57간부학교’에서 단체 추천을 할 때 내가 받은 표가 가장 많았다. 그렇게 해서 나는 대학에 갈 기회를 얻어 헤이룽장대학 철학과에서 철학을 배웠다. 공농병(工農兵, 노동자·농민·군인) 대학생 중에서 많은 학생은 각 직장의 추천을 받아서 온 사람이었으며, 나이도 아주 많았다. 그들은 사회 경험이 아주 풍부했고, 사회적인 요소가 아주 많았으며, 사상도 비교적 복잡했다. 서로 비교해보면 시골 지식 청년의 사상이 그래도 좀 단순했다. 입학한 해에 아주 열심히 공부한 결과 기말 학습 성적이 우수했다. 대학교 공부를 한 가지 측면에서 말하자면, 현대화된 과학지식은 효과적으로 나의 시야를 넓히고, 견문을 넓혀 주었다. 그리고 변증법적인 사유 방식은 내가 문제를 여러모로 바라보는 능력을 갖추게 했다. 나는 자습을 비교적 잘했고, 강의 내용과 복습 과제의 제약을 받고 싶지 않았다. 늘 자유분방한 생각을 하거나, 내가 연구하고 싶은 문제를 적었고, 설령 시험을 치는 데 60분이 소요되어도 개의치 않았다. 겉으로는 내가 그런 형식으로 공부했지만, 다른 방면으로는 마음 깊은 곳에 오랫동안 포기하지 못한 심층의 생각이 있었다. ‘사람은 왜 사는가? 사람은 어떻게 구성된 것인가? 우주의 본원적인 것은 무엇인가? 세계는 대체로 같은 것인가? 나는 왜 사람이 살아가며 겪는 이런 곤란을 느껴야 할까?’ 많고 많은 문제와 당혹감이 나를 에워쌌다. 대학에 와서 지식을 배우기보다는 지식을 배움으로써 거꾸로 내가 과거에 줄곧 밝혀내지 못한 문제를 더 깊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런 온갖 생각으로 답도 없이 고뇌했지만, 나는 ‘하늘 밖에 하늘 있고, 사람 밖에 사람 있다(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많다는 뜻)’라는 말을 믿었다. 나는 당시 많고 많은 문제에 해답을 얻지 못했지만, 장래에 어떤 사람이 나를 깨닫도록 도와줄 것이라며 이 말을 위안으로 삼았다.

대학 생활도 몹시 힘들어 갈수록 몸이 나빠졌다. 가끔은 수업도 버틸 수 없어 온종일 병원에 있어야 했다. 의사는 또 내게 폐결핵, 신경쇠약, 내분비 교란 등의 진단을 내렸고, 원래 있던 병이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병이 생겼다고 했다. 수업은 늘 끝까지 견지할 수 없었고, 가끔은 아파서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나는 이런 몸으로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큰 절망과 고뇌에 빠졌다. 나는 그럴 때마다 자신에게 다른 사람은 자유자재로 사는데, 나는 사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까?’라고 물었다. 더구나 항상 나를 따라다니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다, 끝날 기미가 없고 하고 싶은 것들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정말 ‘꿈은 하늘보다 높지만, 팔자는 종잇장보다 얇은’ 것을 느꼈다. 의사에게서 폐결핵 진단을 받고 일주일 후에 다시 가서 검사를 받으니 의사는 “폐결핵이 굳어졌는데, 아주 심하네요.”라고 했다. 내가 언제 굳어졌는지 묻자 그는 이미 아주 오래되었다고 했다. 앞뒤가 맞지 않고 너무나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폐결핵 진단을 받고 단 일주일 만에 이미 오래되었다고 하니 나는 도대체 언제 폐결핵에 걸렸을까? 그나마 언제 좋아질까? 도대체 병이 있는지 없는지? 이것은 너무나 이상하지 않은가? 이전에 내게 나열해준 병들을 회상해보니 병원에서 스스로 모두 번복했고, 나 자신은 분명히 아파서 일어나지를 못했으니 모든 것이 수수께끼였다. 그때부터 나는 병원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마음대로 내게 모자를 씌운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라면 쓰고 벗으라면 벗기를 어려서부터 커서까지 반복했으니 정말 답답했다. 병원도 그런 것에 불과했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앞으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병원에 다시 오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공농병 대학의 학제가 3년이었으므로 다행히 1년을 더 공부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내 몸이 이미 극한에 다다른 것을 느꼈다.

남자가 크면 장가가고, 여자가 크면 시집가는데, 점점 나이를 먹고 졸업이 가까워지는 가운데 그곳에 이성 친구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급생 중에 한 사람이 나를 좋아했지만, 내 몸이 이런 것을 보고는 결국 눈물을 머금고 내게 “나한테는 사실 너를 건강하게 해 줄 능력이 없어.”라고 했다. 다른 사람의 소개로 상급생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미 우리 고향 지역의 당교(黨校)에 배치되었다. 그를 접촉한 지 며칠도 되지 않아 그는 고향에서 내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당신 몸이 좋지 않다고 우리 아버지가 동의하지 않아요. 당신이 우리 형수님처럼 저세상으로 가면 안 되겠죠.” 그의 형수는 많지 않은 나이에 병사했다. 나는 예의 없고 기분을 상하게 하는 편지를 보며 크게 상심했고, 그 편지를 우리 집으로 부쳤다. 편지를 본 부모님은 괴로워했다. 혼인 문제의 각종 장애와 정신적 자극으로 나는 이성 친구를 찾겠다는 생각부터 내려놓았다. 3년간의 학습 생활이 곧 끝나게 되었고, 나는 학습 노력과 사람 됨됨이로 동창들의 호평을 받았다. 내가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한 동창이 내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한 것이다. 그는 내게 “심지가 선량하고 의지가 굳세며,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으니 조금 소심한 거지.”라고 했다. 그의 평가에 마치 약간의 모순이 있는 것 같지만, 나는 그의 평가가 나의 내면을 아주 적절하게 설명한 것으로 생각했다. 특히 마지막의 약점은 그의 말이 맞았다. 나는 담이 작고, 나서는 일을 싫어했으며, 혼자 조용히 처리하기를 원했다.

나는 졸업하고 직장 배치를 받았다. 처음에는 치치하얼 사범대학 교수로 배치되었다가 나중에 하얼빈 체신전문대 교수로 배치되었고, 뒷거래한 동창에게 자리를 빼앗긴 후에는 헤이룽장성 인사청(人事廳)으로 밀려났다. 인사청은 마지막으로 나를 하얼빈 체육대학 마르크스 레닌 연구실 철학 교수로 배치했다. 체육대학은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학교로, 전공 교수가 모두 큰 체육대학을 졸업했거나, 재학 중인 대학생이었다. 내가 대학 인사처에 도착 보고를 할 때, 인사처장은 할머니였다. 그녀는 나를 한참 동안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몹시 불쾌한 표정으로 “새로 졸업해서 배치된 거야?”라고 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그녀는 “나는 왜 듣지 못했을까? 신체가 체육대학 업무에 적합하지 않은데.”라고 했다. 나는 “저는 성(省) 인사청에서 배치받았습니다. 전화해서 물어보셔도 됩니다. 저는 강의하러 온 것이지 체육을 하러 온 게 아닙니다.”라고 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수화기를 들고 인사청에 전화해서 나를 보냈는지 물었다. 그녀는 다시 불쾌하고 난처한 표정으로 “학교에는 지낼 곳이 없으니까 지낼 곳을 스스로 찾아.”라고 했다. 나는 내가 해결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나는 당시 그녀가 소개한 사람이 오지 않고 내가 배치되어 기분이 나빴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해서 나는 공식적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계속)

원문발표: 2021년 3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21/3/15/4216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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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혜망

글/ 중국 대법제자 리리(李莉), 유편(遺篇)

[밍후이왕]

1. 인생의 고달픔

나는 1954년 9월 17일, 몹시 추운 헤이룽장(黑龍江省)성 하이룬(海輪)현 룬허(倫河)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쩌면 운명적인 인연일지도 모르지만, 나의 출생지는 바다, 물과 연결이 돼 있고 이로써 나의 이 세상 인생의 여정이 열렸다.

부모님은 그 당시 마을에서 중학교, 초등학교 교사였고 어머니는 20살에 나를 낳았다. 출생한 몇 달 동안 나는 아주 건강했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후에 한 가지 일이 생겼는데 8개월 되었을 때 내가 병에 걸렸다고 한다. 경련을 일으켰는데 갈수록 더욱 심해져 거의 희망이 없었다고 했다. 부모님은 시계를 들고 밤낮으로 나를 간호했지만 나는 호전 되지 않았다. 어느 날 뜻밖에 70여 세의 흰 수염이 있는 노인이 왔는데 나의 병을 봐주었고 나에게 침구 치료를 한 후 부모님께 “만약 이 아이가 경련을 일으키는 간격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아질 겁니다. 그러나 커서 후유증이 생길 것인데 입과 눈이 비뚤어질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 노인이 병을 본 후 나는 진짜로 나아졌다. 그러나 그가 말한 후유증은 남지 않았고 부모님은 이 길 가던 노인이 나를 위해 병을 봐준 것에 대해 매우 감격했고 곳곳을 다니며 노인을 찾았지만 어떻게 찾아도 찾지 못했다.

내가 두 살 되었을 때 어머니는 또 여동생을 낳았고 후에 또 남동생과 막내 여동생이 생겼다. 우리 가족도 룬허 진에서 하이룬 현으로 이사 왔다. 아버지는 현 위원회에서 선전업무를 했다. 얼마 안 가서 아버지는 또 하얼빈 쑤이화 지역에서 업무를 보았고, 어머니는 여전히 현 초등학교에서 일했다. 부모님께서는 일 년 내내 일 때문에 함께 살지 못하고 별거하셨는데 나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도와 일부 집안일을 해야 했다. 동생들을 돌봐야 했고 8살 때부터는 밥을 짓기 시작했고, 좀 더 커서 나는 나가서 석탄을 줍고 밤에는 마구간에 가서 말이 먹다 남기거나 바닥에 떨어뜨린 풀을 주어서 밥을 지을 때의 연료로 사용했다. 나는 점차 매우 많은 일을 배웠고 모두 스스로 잘했다. 어머니는 나에 대해 아주 시름을 놓았고 내가 철이 들었다고 칭찬했다. 남동생과 여동생들은 모두 나를 의지했고 나는 늘 좋은 음식들은 남동생과 여동생한테 주고 나는 먹지 않았으며 이는 마땅한 것으로 생각했다.

3년간의 이른바 ‘자연재해’ 시기에 거의 양식을 먹지 못했고 나는 늘 감자, 비지, 술지게미를 먹었다. 부모님은 더욱 밥을 드실 수 없었거나 하루에 겨우 한 끼를 드셨다. 음식은 우리에게 주셨다. 무엇 때문인지를 모르겠는데 내가 기억할 때부터 나는 일종의 이름 모를 슬픔이 있었다. 내가 혼자일 때 늘 창틀에 기대서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가끔은 혼자서 강가(큰 물웅덩이)에 가서 물가에 앉아있었고, 물속에서 바람에 의해 일어나는 잔물결을 보면 슬퍼졌다. 가끔은 또 자신이 배에 앉아서 물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이때 늘 일부 가상을 일으켰는데 물이 변하고 물이 아주 크고 아주 넓게 변하고, 어떤 때는 자신이 배에 앉아서 바다에서 항해하는 것처럼 느꼈다. 나는 늘 혼자서 여기에 와서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것을 즐겼다. 이때가 바로 나에게 한 가닥 즐거움이었다.

내가 12살 될 때 아버지의 회사는 하얼빈에서 쑤이화 시로 이사 왔고 우리 온 가족도 같이 이사했다. 이때 막 호전된 살림에 새로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는데 어머니께서 동북지방 병에 걸렸다. 기관지 폐기종인데 아주 심각했다. 나의 신체도 늘 좋지 않았고 몸이 허약하고 왜소했으며 큰 병 작은 병이 수시로 나를 찾아왔다. 나는 아버지가 하얼빈에서 일하는 동안 늘 나를 데리고 하얼빈의 여러 큰 병원을 찾아다니며 신체검사를 한 것이 기억난다. 그 시기 병명은 선천성심장병, 늑막유착, 과민성 자반병, 급성간염, 빈혈 등등이었다. 큰 병은 나에게 한 무더기 병명을 주었고, 작은 병은 더욱이 끊이지 않았다. 늘 후두가 붓고 온종일 흐리멍덩하여 고통을 나는 말을 할 수 없었고, 열이 나는 것은 늘 다반사였다. 나의 몸은 바람을 맞아도 안 되었는데 학교 선생님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특별히 나를 돌봐주셨고 농촌에 가서 노동하고 등산 등등에 나를 참석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기어코 이런 활동에 참여했다. 부모님도 늘 나에게 관심을 기울였으며 모아둔 달걀로 나에게 특별식을 해주셨다. 건강이 너무나 안 좋아서 학교에 못 가, 할 수 없이 병가를 내기도 했다.

비록 이러할지라도 나는 어머니의 병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어머니는 병으로 사전에 퇴직했고 온종일 기침했으며 밤에는 누워서 잠을 잘 수 없어 베개를 높이 해서 벽 모퉁이에 반 정도 기대었다. 나는 늘 밤에 일어나서 어머니의 등을 두들겨주고 물을 마시도록 준비했다. 어머니가 병으로 눕자 집은 마치 마비된 듯했다. 남동생 여동생들은 학교에 가서 밥을 먹어야 했고, 또 병원에 가서 약을 짓고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야 했다. 아버지는 더욱 피곤해졌지만 계속 출근했다. 아버지의 정상적인 출근과 이 가정을 위해 나는 생활의 중임을 짊어졌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밥을 하고 물을 길었고 어머니를 돌보고 병원에 입원하면 간호하고 또 학교에 가는 등등을 했다. 나는 늘 피곤하고 괴로워 밤에 잠잘 때 잠꼬대를 하는 것도 몰랐는데 늘 어머니가 나를 깨웠다.

어머니는 병에 시달려 고통스럽기 그지없었고 성격도 점점 나빠졌다. 예를 들어 육체적 피로는 참을만하지만, 정신적인 억압은 가장 어려웠다. 집에 오랫동안 환자가 있어 공기와 생활은 마치 변화가 있는 것 같았는데 온종일 병마와의 투쟁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거의 반 정도는 의사가 되었다. 그러나 나의 피곤함과 고통, 인내, 헌신을 부모님은 보고 계셨고 부모님이 가만히 우리 네 명의 아이를 평가할 때 늘 나를 1순위에 놓는 것을 들었다. 큰애가 가장 좋고 가장 선량하고 가장 철이 들었다고 말씀하셨다. 부모님들은 나를 아주 적게 지적했고 또 모두 나를 가장 사랑해주었다. 나의 초등학교, 중학교는 바로 이런 환경 속에서 지나갔다. 내가 12살 때부터 어머니가 병에 걸렸고 20여 년 동안 거의 매년 모두 병원에 입원했다. 내가 32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때까지 지속하였다.

나의 성격은 내성적이고, 또 말을 잘 하지 않았고 혼자서 독립적으로 문제를 사고하고 독립적으로 일을 했다. 이 시기에(초등학교~중학교) 늘 혼자서 눈물을 흘렸는데 생활의 노고뿐만 아니라, 또 정신적인 고통을 참는 것만이 아니라 심적으로 고달팠고 사람이 되는 것이 고달팠고 사람이 살아가는 의미에 대해 막연했으며 마음은 늘 고달팠다. 더욱이 중학교 때 점점 철이 들면서 접촉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면서 나는 한가지 문제를 발견했는데 나는 그들과 달랐다. 그들은 표현에 능하고 말주변이 능했고 생활 속의 각종 지식을 더 많이 아는 것 같았다. 아울러 재밌는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나는 마치 그런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고 할 줄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전에 그들을 따라 해 보려고 시도했지만 배울 수 없었다. 그럼 배우지 말자, 나는 바로 나다. 아버지는 그 당시 내가 괴팍하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가장 잘 듣는 편이었는데 왜냐하면 아버지는 나를 쉽게 말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아주 엄중하고 주의해야 한다고 여겼다. 항상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을 수는 없다. 주의하는 것은 주의하는 것이고 되도록 그들과 어울리려고 했지만 나는 이것이 진정한 내가 아님을 알았다. 나의 본래 면모는 여전히 나의 특징이고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추구하는 것은 모두 달랐다. 이렇게 억지로 자신에게 사람들과 되도록 어울리게 하는 것은 사실 또한 일종의 고달픔이라고 느껴졌다.

나는 마치 오로지 착한 마음만 있는 것 같았고 누구에 대해서도 모두 같았다. 일부 동창생은 나를 깔보고 부모님이 나에게 특별하게 준비해주신 반찬을 가만히 훔쳐먹었다. 내가 집에서 요양할 때 일부 학생들은 내 집 문 앞을 지나가면서 터무니없이 나를 욕했다. “쉴수록 병은 커지고, 병이 커질수록 쉰다.” 나는 전혀 싸울 줄을 몰랐고 논쟁에 대해 말도 할 줄 몰랐으며 단지 마음속으로 ‘이 사람들은 어찌 이러한가?’라고 생각했다. 욕하려면 욕해라,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고 예전처럼 그들을 잘 대해주었다.

(계속)

원문발표: 2021년 3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3/8/4216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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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혜망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우리가 날아올라(Up We Soar)’


[밍후이왕] 무더운 여름밤, 모기가 윙윙대는 가로등 아래, 7살 푸야오(扶搖)는 학교 운동장 벤치에 어머니 다리를 베고 누워있다. 앞날이 어찌 될지 모르는 소녀. 뉴스진행자인 아버지는 노동교양소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교사인 어머니는 교권을 박탈당한 채, 푸야오는 어머니와 함께 예전에 어머니가 근무하던 학교에 연금된다.


캐나다 뉴렐름(新境界, NewRealm) 영화사와 NTD TV가 공동 제작 출시한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우리가 날아올라(Up We Soar)’의 첫 장면이다. 영화는 21세기 중국 북방 소도시에서 일어난 실화에 기반을 뒀다. 예쁘고 순수한 7살 푸야오, 그리고 부모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불법으로 감옥에 끌려가 박해당한 내용이 담겼다. 어린 나이에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늘 괴롭힘과 수모를 당하지만, 온갖 어려움과 시련에도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감옥에 갇혀있는 어머니에게 여러 가지 방식으로 따뜻한 마음을 전하려고 노력한다.

암흑의 국가 제도하에 어머니는 박해받아 높은 담장 안에 갇혀있다. 수시로 흉악한 죄수의 괴롭힘과 감옥 경찰의 폭행을 당했어도 어머니는 여전히 신앙의 힘에 의지해 사랑과 끈기로 딸 푸야오를 특별한 방법으로 양육하고 인도해 불안정한 청소년기를 헤쳐나가도록 도울 수 있었다.

굳센 소녀인 푸야오와 감옥에 있는 어머니는 모두 비할 바 없이 큰 용기로 폭력에 맞섰고, 남다른 방법을 통해 높은 벽을 뚫고 함께 성장했다.

감옥 경찰이 푸야오를 구치소에 데려가, 엄마에게 신앙을 버리게 권하라고 하는 장면이 있다. 푸야오는 몇 달 만에 엄마를 만난 것이었고, 엄마는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해 몹시 허약해져 있었다. 모녀가 애써 버티는 모습, 진실하고 애틋한 마음이 오가는 모습이 절묘한 애니메이션으로 유감없이 그려진다.


내레이션(푸야오): 자라는 과정에서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 과연 내가 버텨야 하는지 자신에게 묻기도 했었다.

감옥경찰: 엄마 생각이 나?

푸야오: 네.

감옥경찰: 엄마가 집에 돌아오게 하고 싶으면 나중에 엄마를 보거든 펑펑 울어, 알았어? 펑펑 울어야 해, 알아들어?

감옥경찰: 왕후이쥐안(王慧娟), 면회!

푸야오: 엄마!

후이쥐안: 푸야오!


내레이션(푸야오): 어머니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안에서 강박해서 음식을 드시지 못한 것인지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엄마는 매우 여윈 모습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나를 안아줄 때 참 포근했다. 엄마 품에 안겨 엄마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엄마는 돌아서 나를 돌려세우시더니 내 머리를 묶어주셨다. 그날 묶어주신 머리가 아까워서 풀지 않고 머리도 감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후이쥐안: 푸야오!

푸야오: 네?

후이쥐안: 엄마가 나가서 너를 돌봐주기 바라니, 아니면 엄마가 견지하기 바라니?

푸야오: 엄마가 견지하시면 좋겠어요.

후이쥐안: 혹시…… 엄마가 원망스럽지는 않니?

푸야오: 원망스럽지 않아요.

내레이션(푸야오): 훗날 엄마는 내게 말씀하셨다. 그때의 만남이 엄마에게 많은 격려가 되었고, 마음이 놓이셨다고.

영화를 본 한 네티즌은 이런 댓글을 달았다. “우리는 평생 무엇을 위해 견지했던가? 바람과 비를 피할 보금자리를 지키려고? 아니면 곤경에서 서로 의지하고 도울 친구를 찾기 위해서였나, 아니면 진흙 속에서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견지한 것인가? 그러나 좋은 사람이 되기가 그렇게 쉬운가. 순풍에 돛단 듯 할 때는 아주 쉬울 것이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 선량을 견지한다는 것은 그러한 성품이 뼛속까지 스며있어야 하고 수양해야 한다. 또 온갖 시련 속에서 진리와 바른 믿음을 굳게 지킬 수 있는 힘에서 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포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혹은 고민하고 있거나 좌절과 절망을 겪고 있다면 ‘우리가 날아올라(Up We Soar)’ 영화를 보시기 바란다. 난관을 돌파할 용기와 희망을 줄지 모른다.”

영화가 끝날 무렵, 푸야오는 어머니가 감옥에서 써서 보내주신 편지의 한 구절을 읽으며 은은한 사색의 여지를 남긴다.

“엄마와 함께 저 못에 가득한 연꽃을 감상하러 가보자. 모든 연씨가 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봉오리를 피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니? 씨앗이 진흙 속에 떨어지면, 어떤 씨앗은 진흙이 더럽다고 절망한단다. 그 씨앗은 더러운 진흙에서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아서, 점점 우울해지다 죽어버린단다. 또 어떤 씨앗은 더러운 진흙을 싫어해서 온종일 진흙과 싸우다가 나중에 꽃피는 계절을 놓쳐 점점 검게 변하고, 결국 진흙이 돼버린단다. 그러나 남은 씨앗은 진흙의 비웃음과 비난을 묵묵히 견디면서 진흙과 사이좋게 지내려 노력한단다. 그리고 끊임없이 진흙에서 양분을 흡수하면 언젠가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라고 믿는단다. 마침내 어느 날, 그 씨앗은 진흙을 헤치고 아름다운 연꽃을 피운단다. 진흙의 도움에 감사하기 위해 그 씨앗은 하얀 연근과 자신의 뿌리를 진흙에 남긴단다. 얘야, 연씨라도 마음가짐이 달라서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렴.”


네티즌 Linda chen: “너무 감동적입니다! 바른 믿음과 바른 생각이 햇살처럼 가득하네요! 아무리 암흑세계라도 마음을 굳게 먹은 사람은 진흙 속에 있는 연씨처럼 자라나 해를 향해 가장 아름다운 연꽃을 피우는군요.”

네티즌 ShunCha: “어떤 사악한 것이 이런 좋은 사람을 박해할 수 있을까요……. 보고 나니 말없이 눈물이 흐르네요.”

네티즌 YoEn: “진실한 이야기는 강직한 사람이 갈고 닦아서 나온 것이다!”

서양인 시청자 팻 라이엇(Pat Riot)은 영어로 피드백을 남겼다. “이 이야기는 6피트 8인치(약 203cm)의 키 큰 남자가 눈물을 흘리게 했다. 이 영화는 너무 좋다. 가능한 한 많은 분과 나누고 싶다. 내가 사는 미국 주택가 공원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평생 늘 그들을 볼 수 있었다. 지금도 그들에 대한 중공의 박해를 생각하면 정말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하다! 나는 그들 모두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이 세상의 범죄 세력은 너무 크다. 우리는 그 사악을 반드시 파헤쳐 백주대낮에 폭로해야 한다. 중국공산당은 너무 사악해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신은 중국인을 보호할 것이다.”

2020년 12월, ‘우리가 날아올라(Up We Soar)’는 로스앤젤레스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베스트 피처(Best Feature)’로 선정됐다. (발췌)



원문발표: 2021년 4월 20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4/20/423393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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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혜망

이 글은 오래전에 이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다시 읽어봐도 재미있고 신화같지만 실제 수련생이 겪은 수련 과정을 적어서 발표한 글입니다.


[명혜망] 나는 대법을 얻기 퍽 전에 이미 수련계와 연락이 닿았던 사람이다. 이 일단락의 과정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나는 법륜대법이야말로 만년에도 얻기 어려운 우주대법임을 더욱 확신하게 되며 나의 인생에 이런 대법을 만날 수 있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다.

내가 이 일단락의 이야기를 할 경우 나 같은 경력이 없는 사람은 아마 나의 말이 머리에 털이 난 후로 처음 듣는 이야기이자 신화보다도 더 허황한 얘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일체는 조금도 거짓이 없는 사실이었다.

내가 14살 되는 해는 중학교로 갓 들어간 소녀였다. 그때 사부가 나를 찾아와 수련을 시키느라고 했는데 사부의 연세가 5백살 넘었다. 그이는 늘 나에게 법을 가르쳤는데 한 문제를 몇 달 동안 가르쳤으나 나는 겨우 아는 둥 마는 둥 하였다. 첫 시작부터 나는 천목이 열려 일반 사람이 보지 못하는 많은 것을 보았는데 어떤 때는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예컨대 사찰마다 도처에 여우, 족제비, 뱀, 귀신 등 부체가 득실거리는 것을 보았으며 불상에는 전혀 부처가 없는 것을 보았다. 이런 무서운 광경은 늘 나를 굉장히 놀라게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늘 사부에게 나의 천목을 닫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럭저럭 10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후, 다른 사람들은 모두 북경으로 갔지만 26, 27살의 여자로서 나는 혼자서 아미산(峨眉山)으로 갔다. 나는 산 중턱의 한 사찰에서 70여 살의 늙은 주지스님을 알게 되었고 나는 그에게 여기에서 투숙하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자 늙은 주지스님은 "거사야, 자네는 방향을 잘못 들어섰네. 자네가 반드시 가야할 곳은 북쪽이니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다급히 "나는 방향을 잘못잡지 않았습니다. 북쪽은 속인들이 가야 할 곳이고 여기야말로 내가 와야 할 곳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주지스님은 이 말을 듣고 아주 기뻐하였으며 나와 그는 금방 마음이 통하였고 나중에는 막역지우로 되었다. 이틀 밤을 지낸 후 나는 아미산의 원숭이가 아주 영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는 주지스님에게 어떻게 원숭이를 불러오는가를 물었다. 주지스님은 네가 산골짜기에 대고 "삼아, 빨리 와서 소식을 먹어라" 라고 고함치면 된다고 하였다. 나는 소리가 메아리칠 수 있는 방향을 선택하여 산골짜기에 대고 소리쳤다. "삼아, 빨리 와서 소식을 먹어라". 그러자 얼마간 지나서 정말 수백 마리의 영성이 있는 원숭이들이 모여 왔다. 원숭이들은 나의 앞에서 기뻐서 곤두박질하고 나의 몸에 매달리면서 반갑다는 표시를 하였다. 가장 늙은 그 원숭이는 와서 나를 끌어안고 나의 얼굴에 줄곧 입을 맞추었으며 침마저 나의 얼굴에 흘렸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기 입에서 단(丹)을 뱉어 나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더럽다고 생각한 나는 먹지 않았다. 그러자 주지스님이 하시는 말이 "거사야, 네 마음속은 아직도 비지 못했구나. 이 단은 그가 수백 년을 수련해서야 수련해낸 것이니라." 라고 말하였다. 이 단은 그 원숭이가 수백 년 수련해낸 것이라는 것과 이처럼 소중한 것을 왜 나에게 주는지 나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윽고 원숭이 무리는 산골짜기의 이쪽에서 저쪽까지 자기들의 몸으로 다리를 만들었고(뒤의 원숭이의 손이 앞의 원숭이의 다리를 쥐고 하나씩 이어감), 그 늙은 원숭이는 나를 안고 그 원숭이 다리를 걸어갔는데 나는 너무 놀라 감이 눈을 뜨고 보지도 못하였다. 그런 다음 그들은 자기들의 분계선을 넘어 나를 다른 무리의 원숭이들한테 보냈다. 주지스님은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나에게 말하였다. "역사적으로 오로지 소동파(蘇東坡: 중국의 유명한 시인)의 (胡)씨 친구만이 이러한 대우를 받았고 너는 두 번째인데 게다가 너는 그보다 두 가지가 더 많았니라. 하나는 늙은 원숭이가 너한테 단을 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숭이가 너를 분계선을 넘어가게 하였는데 원숭이들은 일반적으로 분계선을 넘어가지 않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아미산에는 도를 닦는 사람이 아주 많았으며 일반사람들은 그들을 보아내지 못하였다. 그들은 모두 공능으로 자신이 있는 곳을 은페시켜 마치 신화이야기에서 나오는 말과 같았다. 이상하게도 산의 높이에 따라 수련 연도가 규정된 것처럼 돼 있었다. 산 중턱 아래는 모두 2, 3백년 수련한 사람들이고 가장 길어 5백년을 초과하지 않았다. 이 부류의 사람이 가장 많았다. 그들의 공기둥도 산 중턱에서 조금 위로 올라갔다. 수련계에서는 역대로부터 사부가 제자를 찾지 제자가 사부를 찾은 적은 여태껏 없다. 사람들이 그들을 찾는다는 것은 허황한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산 중턱에서 위로 올라가면 도를 닦는 사람들이 점차 적어지는데 그들의 도행(道行)도 역시 더욱더 높고 연세도 갈수록 더욱 길었다. 산 정수리에 이르면 불과 몇 사람이 안 되었다. 그들은 모두 2천여 년 수련하였으며 그들의 공기둥은 은하계를 벗어났다. 그 중 어떤 이는 이미 여래의 경지를 훨씬 능가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수련하고 있으며 아직도 원만으로 수련성취되지 못하고 있다. 그 속에는 나의 지난 사부님도 계셨다.

나중에 우리의 위대한 사부님 이홍지 선생님이 아미산에 오시자 아미산에 있는 전체 수련인들이 모두 나와 우리의 사부님을 영접하였다. 그들의 공기둥은 마치 화염과도 같이 오색찬란하게 하늘을 빛냈다.

청성산(靑城山)에는 4천여 년 수련한 도인이 있었다. 그는 나를 제자로 삼겠다고 하였으나 나는 완곡한 말로 나는 이미 사부가 있다고 거절하였다. 나는 몸을 갖고 부처로 수련되는 법문을 찾으려고 하였다. 그는 나에게 그가 석가모니, 예수, 노자 등이 언제 탈태해서 전생했는가를 보아왔고, 어떻게 법을 전하고 사람을 제도하는가를 보아왔다고 알려주었다. 이홍지사부님이 설법할 때 말씀하신 적 있다. 사천(四川)에서 서안(西安)으로 북상하는 도중에 산에서 도를 닦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사부님에게 문안을 드리고 나서 어찌하여 이 대법제자들이 이렇게 빨리 수련할 수 있는가 라고 우리 사부님께 문의하였다. 사부님은 그들에게 "이 제자들이 가장 오래 수련한 사람이 2년이고 가장 짧게 수련한 사람이 2개월인데 당신들과 비교하면 어떠한가?" 라고 하자, 그들은 "우리가 이와 비할 사람은 몇이 없습니다" 라고 공손히 대답하였다. 나중에 사부님은 그들이 사부님의 법을 들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는데 그 속의 한 사람이 바로 이 4천여 년 수련한 도인이었다.

문화대혁명이후 나는 다른 한 수련하는 사람과 같이 강장(康藏)지역으로 갔다. 밀종(밀교)에서 몸을 갖고 부처로 수련하는 법문을 찾기 위하여서였다. 수련계의 사람들은 모두 안다. 티베트(西藏)의 밀교는 일찍부터 정치와 교가 혼합되어 있었고 전혀 수련이 아니었으며 진정한 장밀(藏密)은 강장(康藏)에 있지 티베트에 있지 않았다. 우리가 도착하였을 때 장춘(長春) 등 지역으로부터 강장으로 정법을 찾아오는 사람을 만났다. 우리는 함께 다니며 사찰을 찾았는데 마침 대라마가 설법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자 이 대라마는 친히 우리를 그의 곁에 불러다 놓고 그의 설법을 듣게 하였다. 이는 장밀에서 아주 보기 드물고 얻기 힘든 큰 예의였다. 대라마는 우리에게 어찌하여 강장으로 법을 얻으러 왔는가 라고 물었고, 우리 내륙에는 이미 정법이 없다, 사찰에는 도처에 여우, 족제비, 뱀, 마귀의 부체 뿐이기 때문에 여기에 정법을 구하러 왔다고 하였다. 대라마는 조용히 생각하고 있다가 머리를 저으면서 말하였다. "그건 맞지 않다. 내륙에 얼마 후에는 만고이래 얻기 힘든 대법이 전하여 질 것이고, 게다가 장춘에서 전해질 터이니 자네들은 돌아가서 기다리거라." 라고 타일렀다. 나는 내륙에서 대법이 전하여진다는 말을 듣자 다급히 하산하였다. 나와 함께 갔던 사람들은 한 가지 약속을 하였다. 누가 먼저 대법을 얻으면 꼭 상대방에게 알려주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 장춘에서 온 사람은 믿지 않고 계속 강장에 남아 있었다. 만약 그가 장춘으로 돌아갔다면 우리 몇은 일찍이 대법을 얻었을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뒤늦어서야 대법을 만나게 되었다.

80년대 초기부터 전국에는 아주 많은 특이공능(特異功能)을 가진 아이들이 나타났고 어떤 애는 귀로 글을 읽고 어떤 애는 손바닥으로 글을 읽으며 어떤 애는 뒤통수로 글을 읽었다. 여러분은 그 시대의 인상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할 것이다. 우리 수련하는 사람들은 이 모두가 진실이란 것을 알고 있으나 이러한 공능은 함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많은 이러한 아이들을 찾아 그들의 부모에게 왜 아이들의 공능을 함부로 표현할 수 없는가 하는 것을 알려주었다. 결과 이렇게 보호된 아이들은 나중에 모두 법륜대법을 수련하게 되었지만, 그때 부모들이 데리고 각지에서 공능표현을 하였던 아이들은 나중에 모두 속인사회에 떨어졌고 사회에도 아주 좋지 못한 영향을 갖다 주었다. 왜냐하면 초상(超常)적인 것은 속인사회에서 마음대로 나타내지 못한다. 이른바 특이공능이 있는 사람을 밝히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신에게 이용을 당한 소인들이며 고층생명들이 이러한 소인들을 이용하여 속인사회에서 파괴하는 현상을 억제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신을 믿지 않으면 않을수록 신은 신의 조그마한 자취조차 사람들이 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만약 신이 허용한다면 머리를 서로 바꾸는 것 역시 아주 간단한 일인데 인간은 도리어 현재의 과학기술이 어떻게 대단하다고 느낀다. 왜 역사적으로 전 인류, 매 하나의 민족은 모두 유사한 신화와 같은 이야기가 있는가? 그때에는 현대화한 통신공구가 없었고 사람들이 갈수록 더욱 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신의 진실한 이야기는 곧 "신화와 같은 이야기"로 되어 버렸다. 그렇게 보호되었던 아이들은 그때에 나보고 "우주의 주장(主將)은 곧 지구를 구원할 것이다." 라고 말하여 실로 나를 놀라게 하였다.

90년대 초기에 이르러 나는 아직도 대법을 찾지 못한 일에 대하여 아주 괴로워하였다. 어느 하루, 나는 불상 앞에 꿇어앉아 소원을 품었다. "나는 반드시 하나의 성명쌍수로서 몸을 갖고 부처로 수련되는 정법, 중생을 제도하는 정법을 찾으리라". 그 날밤, 가부좌를 할 때 나의 주원신은 다른 공간에서 날아다녔다. 나의 주원신은 한 공간 한 공간씩 찾아다니면서 한 공간, 한 공간씩 물었다."진정한 성명쌍수로서 몸을 갖고 부처로 수련되는 정법이 없습니까?" 매 하나의 공간은 모두 많은 수련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여태껏 이렇게 좋은 공법이 있다는 것을 들어 본적이 없다고 했다. 그들은 오히려 모두 나에게 "당신이 만약 이렇게 좋은 정법을 찾으면 꼭 와서 우리에게 전하고 우리를 제도하여 달라." 라고 부탁하였다. 나중에 나의 공력은 모자라서 올라갈 수가 없었으나 나의 한 사부가 나에게 선학(仙鶴) 한 마리 주어 선학이 나를 태우고 계속 한 공간, 한 공간씩 찾아 올라갔고 한 공간, 한 공간씩 물었다. 줄곧 우리가 더는 올라가지 못하는 데까지 이르렀으나 아직도 찾지 못하였다. 매 하나의 공간에서 수련하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가 이렇게 좋은 정법을 찾으면 그들을 제도할 것을 바랐다.

바로 우리가 괴로워하고 절망에 빠져있을 때 갑자기 하늘로부터 연꽃 한 송이가 날아왔고 신속히 나를 금빛 찬란한 불전으로 안내하였다. 그 곳에 한 거대한 부처님이 설법을 하고 계셨고 그의 몸 주위에는 한 층 또 한 층의 부처가 그의 법을 듣고 있었고 부처님과 가장 가까운 부처의 몸 역시 아주 컸다. 다음은 한 층 한 층 멀어져 갈수록 작았고 가장 밖의 한 층의 부처는 여래부처였는데 몸도 아주 작았다. 나는 아주 많은 여래부처를 보았다. 그 속에는 노자, 공자 등도 있었는데 아주 신기한 것은 그 속에 예수도 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불전에 들어서자 법회는 바로 흩어졌다. 나의 마음은 정말로 괴로웠다. 마음속으로 왜 나는 이렇게도 연분이 없는가 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연꽃은 나를 데리고 거대한 부처님의 가슴 앞에 왔고 나의 몸은 불력(佛力)의 가지(加持)로 역시 이렇게 커졌다. 거대한 부처님은 나를 향하여 대수인(大手印)을 하였는데 일순간에 수만의 금빛이 발산되면서 그 수만의 금빛 속에서 하나의 금빛 찬란한 경서가 날아왔다. 나는 기쁨을 금치 못하며 두 손으로 그것을 공손히 받았는데 가장 먼저 받아 쥔 것은 바로 『전법륜』과 『중국법륜공 (수정본)』이었다. 나는 "내가 속인사회에서 어떻게 사부님을 찾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였는데 거대한 부처님은 즉시 이홍지 선생님이 『전법륜』책 속에서 양복을 입으신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나는 순식간에 인간의 육체로 돌아왔다.

인간에서 기다린다는 것은 급박하고 견디기 어려웠다. 1995년 나는 거리에서 예전에 나와 함께 강장으로 갔던 친구를 만났다. 내가 그녀의 좋은 얼굴빛을 보고 그녀에게 농담 삼아 말하였다. "아, 네가 아마 이미 정법을 얻은 것 같구나, 빨리 나를 데리고 가달라." 나는 그녀를 끌고 그녀의 집으로 향하였고 마음속에는 급박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녀의 집에 도착하자 나는 한 눈에 책상 위에 있는 『중국법륜공 (수정본)』을 보았다. 이는 그 거대한 부처님이 나에게 보여준 그 책이 아닌가! 내가 보는 즉시로 바로 이것인 것을 알았으며 즉시 그 책을 가슴에 얼싸 안았다. 그런데 나의 친구는 죽어도 나에게 주려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이 한 책뿐이라고 말하였다. 나는 네가 어디에서 산 것인지 알려달라고 하였다. 그녀는 나에게 어느 서점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때는 이미 퇴근 시간이 다 되었으나 나는 뛰다시피 그 서점에 도착하였다. 서점은 곧 문을 닫으려고 하였다. 내가 서점주인에게 『중국법륜공 (수정본)』이 없는가고 급히 묻자, 서점주인은 이미 다 팔렸다, 다음에 책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였다. 나는 더 기다릴 수 없었다. 아미산에서부터, 강장에서부터, 이 정법이 속인사회에 전해진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으면서 이 정법이 전해지기를 얼마나 학수고대하고 있었던가! 나는 당장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나는 오늘 이 대법을 얻어야 한다! 나는 스스로 서점에 뛰어 들어가 책을 이리 찾고 저리 찾았지만 끝내 찾지 못하였다. 나는 금방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마음속으로 나는 왜 이렇게 연분이 없는가! 라고 자신을 한탄했다.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아 서가의 서랍을 열자 안에는 금빛 찬란한 『중국법륜공(수정본)』이 있었다. 나는 즉시 그 책을 구입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중국법륜공(수정본)』을 단숨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 읽었다. 나는 내가 예전에 해명하기 어려웠던 모든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 나의 그렇게 많은 사부가 모두 나에게 설법한 그 무슨 대소주천, 현관설위, 천목, 숙명통 등등이 대관절 무엇인지, 어떤 문제는 1년이 넘도록 똑똑히 말하지 못하였었으나 『중국법륜공(수정본)』을 보고 금방 알 수가 있었다. 왜 사람들이 대법 경서를 보고 아주 높다고 생각하는가? 왜 사부님의 말씀이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가? 왜냐하면 이러한 것은 수련계에서 모두 비밀 중의 비밀로서 여태껏 그 어느 누가 똑똑히 말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사부님은 그것을 이처럼 간단명료하게 밝혀주었으나 오히려 사람의 대뇌가 용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부 신들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당연히 사부님의 말씀이 너무 크다고 한다. 어찌 자신이 처한 층차에서 대법을 가늠할 수 있는가? 나중에 수련생들이 나의 이 뒤 부분의 이야기를 시리즈 그림으로 그려서 사부님에게 보였다. 사부님은 "이것은 미래의 사람들로 놓고 말하면 신화와 같은 이야기에 불과하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미 대법을 얻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대법이 전해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강장에 가서 대법을 전했고 나의 보호를 받았던 아이들에게도 전하였다. 그리고 심산 속에서 수련하는 많은 수련인들에게 전하여 주었다. 그들은 지금 산으로부터 모두 속세에 돌아와 대법을 수련하고 있고, 그들의 어떤 이는 사제가 사형을 데리고 사형이 사부를 데리고 내려와 대법을 얻었다. 우리의 수련생들이 아미산에서 대법을 전할 때, 산 위에 있던 많은 스님들은 그날 밤 관음보살의 점화를 받아 아침 일찍이 산 아래에서 꿇어앉아 길가에서 『전법륜』을 영접하였다. 그 광경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사부님은 신도 내가 대법을 전하는 것을 모두 알고 있으나 다만 인간만이 모르고 있을 뿐이다 라고 하셨다.

나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가 하계하여 어디에서 환생한 것을 기록하여 두었다. 나는 그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대법을 전하여 주었다. 그러나 일부 사람은 속인 속에서 이미 너무나 미혹되어 법을 얻지 못하였는데 그 속에는 여러분이 불경 속에서 늘 보게 되는 "아난(阿難)"도 있었다. 대법은 확실히 사람들이 마음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몇 천년 수련하여도 아직도 원만하지 못한 사람도 그를 얻으려 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얻었다면 그것은 만고에도 만나기 힘든 기적적인 인연이다! 사람은 도리어 이렇게 위대한 우주의 대법을 알지 못한다!

모든 신은 다 알고 있다. 대법을 파괴하는 것은 그 죄가 극악무도하다는 것을. 내가 말한 이야기는 내가 몸소 겪은 경력의 10분의 1도 안 된다. 그러나 내가 대법수련 속에서 도리어 아주 보편적인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개개인의 경우는 다르며 그가 터득한 일체는 영원히 그 일개 수련자로서의 깨달음에 불과할 뿐이다.



해외 대법제자
2001년 2월 26일 원고
2001년 4월 4일 발표


명혜망

[밍후이왕]

뉴센추리필름이 제작한 파룬따파(法輪大法) 소개 동영상.

파룬궁(法輪功)으로도 알려진 파룬따파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삶의 일부가 된 정신 수련법이다. 불가에 바탕을 둔 파룬따파는 주로 법학습을 통해 층차를 제고하는 것과 완만한 연공 및 가부좌를 하는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파룬따파의 수련 체계는 심성 수련을 통해 정신적 제고를 가능하게 한다. 파룬따파의 가르침은 수련생들이 생활 속에서 우주 특성인 진선인(真·善·忍)에 동화하려는 노력을 통해 좋지 않은 집착을 버리게 한다.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들은 종종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한다. 많은 사람이 에너지가 충만해질 뿐만 아니라 극적으로 건강이 좋아지고, 정신이 맑아지고,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것을 경험했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이 파룬따파에서 매우 가치 있는 정신적 행로를 발견했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원문발표: 2020년 9월 28일
문장분류: 영상방송>밍후이영상
원문링크: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9/28/412364.html
영문링크: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20/9/29/186991.html

명혜망

글/미서명(未署名)

[밍후이왕] 중국 고대 사람들은 충직하고 후덕한 사람이라면 기필코 용감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인자한 자에겐 반드시 용기가 있을 것이다’[논어-헌문(憲問)] 그건 인의를 베푸는 길에서 가끔은 앞에 가시덤불이 가득하고 뒤에는 맹수들이 쫓아오기 때문이다. 만약 용기가 없고 용감하지 못하다면 꼼짝달싹 못 할 것이다.

2000년 전의 제(齊)나라에는 담이 작기로 유명한 사람이 있었고 그 이름은 진부점(陳不占)이었다. 당시 제나라 대신 최저(崔杼)와 환관 가거(賈舉)는 계략을 써 제장공(齊莊公)을 자기 집으로 오게 한 후 해치려고 꿍꿍이를 꾸몄다. 이 소식을 들은 진부점은 놀라 밥 먹던 숟가락을 땅에 떨어드렸고, 마차를 탈 때 부들부들 떨면서 마차에 오르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왕을 구하러 떠났다. 그가 보기에 왕을 구하러 가는 것은 도의이고, 담이 작은 것은 자기 문제이기에 두렵다는 이유로 신하의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인의(仁義)를 품었기에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역사의 차바퀴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고 세월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물욕이 흘러넘치고 인심이 각박한 오늘날, 옆의 사람이 어려움이나 위험에 처했을 때 그냥 지켜보는 사람이 많지, 정의를 위해 용감하게 뛰어드는 사람은 적다. 그럼 인자지용은 완전히 사라졌는가? 사실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다만 당신이 주의해 찾아보아야 할 뿐이다.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 웃으면서 당신에게 불법(佛法) 수련을 알려줄 때, 당신 집 문 앞에 정교한 파룬궁 소책자가 걸려있을 때, 당신이 마음이 따뜻해지는 진상 전화를 받았을 때 사실 이 모든 것이 박해, 탄압 하의 용감함이다. 수련자들이 왜 당신에게 진상을 똑똑히 알리려 하는가? 그건 중국공산당의 날조와 비방이 모든 중국 사람을 기만했기 때문이다. 만약 기만당한 중생이 불법(佛法)을 박해하는 데 참여한다면 그들은 부처님을 비방한 죄를 짓게 될 것이다. 역사상 3무1종(三武一宗)은 모두 구오지존(九五至尊: 황제를 말함)이지만 모두 불법을 박해했기에 악질에 걸려 죽고 나라가 망했다. 불법을 박해한 죄는 하늘만큼 산만큼 큰 죄이고 지옥으로 향해 나가는 길이기도 하다.

비록 수련자들은 자신이 엄중한 박해를 받고 있지만, 거짓말에 미혹된 중생을 구하기 위해 마음속의 두려움과 안일한 생활을 내려놓고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중국공산당의 탄압과 경찰의 추격으로 인해 어떤 사람은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체포되었고, 심지어 고문에 시달리다 사망하기도 했다. 전단을 나눠주었다는 이유로 어떤 수련자는 모함받고 어쩔 수 없이 떠돌이 생활하기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2019년 1월 바저우(巴州)구 법원은 스촨성 바중(巴中)시 9명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불법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그중 82세 장밍랑(張明朗)은 5년 판결, 89세 장신웨이(張新偉)는 3년, 70세 웨잉충(嶽映聰)은 4년, 70세 다이완이(代萬義)는 3년, 71세 주톈구이(祝天貴)는 2년 6개월 판결을 받았다. 그들은 모두 70~80세 노인들이고 모두 반혁명 진압(鎮反), 반혁명 분자 숙청(肅反) 운동을 목격했다. 그들은 문화대혁명을 겪었고 6·4 천안문사태 내막을 잘 알고 있으며 공산당의 잔인함과 악독함, 비겁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공포의 그림자는 오래도록 그들 마음속에 남아 있었고 그 끔찍한 날들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두려움 때문에 수수방관하거나 명철보신(明哲保身)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비롭고 강인한 의지로 나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억울한 심판 때문에 그들의 처지는 더욱더 설상가상이었다.

마음속에 중생을 품고 있었기에 머뭇거리지 않았고, 사람들의 위험을 마음에 두었기에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인자지용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크나큰 압력 아래서 어깨를 곧게 펴고, 폭력 앞에서 비굴하지 않으며, 두려움 속에서도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 세상에 두려움이 전혀 없고 무서움을 모르는 사람이 아주 적다. 이 인간 세상에서 두려움을 내려놓고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너무 소중하다. 진상이 당신 앞에 왔을 때 두려워하지 말고 거절하지 말기를 바란다. 진상은 당신에게 옳고 그름을 똑똑히 판단하게 할 것이고, 당신에게 미래와 희망을 가져다줄 것이다. 진상은 당신을 위해 왔고, 당신은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인자지용은 존중받아야 마땅하고, 사람을 기쁘게 하고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원문발표: 2019년 11월 14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14/395814.html

 

명혜망

글/한국 파룬궁(法輪功)수련생

[밍후이왕] 지난 7월 17일 서울 천제서점에서 열린 7월 파룬따파(法輪大法) ‘9일 학습반’이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 위치한 천제서점에서 원만히 끝났다. 파룬따파 천제서점 9일 학습반은 매월 한번씩,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비록 짧은 9일이었으나, 그사이 학습반에 참가한 40여 명 참가자들이 모두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변화를 느꼈다. 많은 이들이 이처럼 소중한 대법(大法)을 만남에 기쁨과 감사함을 표하며 반드시 정진하면서 끝까지 수련해나갈 것을 다짐했다.

조그마한 변화라면, 이번 학습반은 유튜브를 통해 파룬궁과 인연을 맺은 사람이 많이 있었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의 유명 유튜브 채널 두 곳에서 각기 한국파룬따파불학회 임원을 초대해 파룬궁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많은 주목과 호응을 받았다. 영상을 본 네티즌 중 일부는 파룬궁에 대한 관심이 생겨 수련하고자 천제서점을 찾아왔다.







독실한 불교신자, 돌고 돌아 겨우 찾은 파룬궁 “제대로 만났어요”

박승옥 씨는 40여 년간 불교 수행을 했고 기(氣)에도 관심이 많아 다양한 기공을 했었다. 어느 날 그는 불교가 더는 자신을 지도할 수 없음을 느꼈다. 교회와 다른 종교 단체에 가보고, 심지어 중국에 가서 기공도 배워봤지만 모두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때까지 해온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길을 찾았을 때, 파룬궁을 알게 되었다. 병원에 가던 도중 공원에서 한 수련생이 연공하는 모습을 본 박 씨는 ‘이것이 내가 한참 찾던 것이다’라며 간절한 소망이 올라왔다고 한다.

“당시 5월이었는데, 천제서점에 전화해보니 5월 9일 학습반은 이미 끝났고 6월은 없다고 해서 7월까지 기다려야 했어요. 얼마나 기다렸는지, (파룬궁을 만나) 너무 흥분됐지만 그 기다림이 너무 지루했어요.”

드디어 7월이 되어 9일 학습반에 참가하게 된 박 씨는 첫날 오전반에만 갔다가, 많이 듣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둘째 날부터 오전반과 저녁 반에 모두 참가했다.

전에는 신경이 예민해서 밤중에 화장실을 3~4번 가야 했고 대장도 좋지 않아 유산균을 3달간 먹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9일 학습을 시작하면서 화장실에 가는 횟수가 점점 줄더니 3일째부터 1번만 갔다. 잠자다가도 좋아서 연공 동작을 했다.

박 씨는 “연공음악 소리도 듣기 좋고 사부님이 마치 부모님 같고 스승 같아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제대로 만난 것 같아 정말 감사하다. 죽을 때까지 평생 해야겠다고 결심했다”라며 큰 감동을 전했다.

끝내 진법(眞法)을 찾다

인천 강화군 시설관리공단에서 근무하는 류언규 씨는 지인의 소개로 파룬궁을 알게 되어 이번 기 학습반에 참가했다. 그 또한 여태까지 몇십 년 동안 진법(眞法)을 찾아 헤맸다고 한다.

“이전에는 뭐든 해보면 하루 이틀 지나 회의가 들었어요. 길어도 3개월 이상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파룬궁을 접하고 나서 <전법륜(轉法輪)>을 이미 1달 이상 읽으면서 여러 가지 회의와 의문이 엷어졌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찾던 것임에 점점 확신이 드네요.”

그는 이어 “그래서 이번에는 술, 담배를 완전히 끊고 파룬궁 수련에 전념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전에는 술맛이 아주 좋았는데 이제 술맛도 점점 없어지고 별로에요. 파룬궁 수련 후 화도 참을 수 있게 됐어요.”라고 소개했다.

유튜브에서 대법을 만나다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편성윤 씨는 유튜브를 통해 파룬궁을 알게 되었고, 합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을 찾아봤는데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 중 97% 가 건강해졌다고 해서 관심을 가졌다며 9일간 학습반에 참가하면서 전체적으로 이해가 되었고 너무 좋은 것 같다고 감수를 전했다. 또한 좋은 것은 혼자 가질 수 없으니 나중에 주위에도 알리려고 생각한다면서 우선 자신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알리겠다고 했다.

그는 “일단 하루에 <전법륜(轉法輪> 1강씩 읽으려 하고, 내일부터 근처 연공장에 나가 연공하면서 열심히 수련하겠다. 지금까지 다른 것을 여러 개 해봤지만, 이번에는 정말 귀중한 공법을 만났으니 평생 동안 열심히 하려 한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경기도 부천에서 온 정순희 씨 역시 유튜브를 통해 파룬궁을 알게 됐다. 이후 근처 연공장에 나가 연공을 따라 배웠는데, 제2장 공법 파룬좡파(法輪樁法)를 할 때마다 평상시 아프던 오른쪽 팔에 열이 나면서 가벼워지는 듯 했고 일주일 지나니 아픔이 차츰차츰 없어지고 몸도 가벼워졌다며 매번 연공을 하고나면 불편하던 데가 하나하나 없어지는데 정말 너무 신기하고 감사하다고 했다.

그녀는 또 연공을 열심히 하면서 책도 같이 보며 심성을 닦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성명쌍수(性命雙修)공법인만큼 몸과 마음이 일치해야 한다면서 “죽을 때까지 열심히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퇴직공무원, “이건 정말 보통이 아니에요!”

35년 간 공무원 생활을 한 성남시 분당구의 김정미 씨는 6분짜리 유튜브 파룬궁 소개 영상을 보고 수련자들의 평화롭고 조화로운 모습에 이끌렸다고 한다. 유튜브에 소개된 미국에 있는 한 여자 수련생은 인터뷰를 하면서 자기가 예전에 중국에서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붙잡혀 고문을 당했는데, 당국의 거짓 선전에 속아 진상도 모른 채 고문을 한 경찰에 대해 불쌍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김 씨는 그 수련생의 그런 정신적 경지에 놀랐다고 했다. 그래서 파룬궁에 대한 많은 유튜브 동영상들을 검색하며 이해하다 보니 이 수련법이 해볼만하다고 생각하고 근처 연공장에 가서 수련생에게서 연공을 따라 배웠고 아울러 9일 학습에도 참가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1년 6개월간 병으로 고생하고 작년에 돌아가시고 나서 1년 동안 마음이 엄청 힘들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평생 좋은 사람으로 살면서 남에게 해를 끼친 일도 없었는데 나중에 그렇게 고생하고 돌아가신데 대해 이해가 잘 안됐던 것이다. 무슨 죄를 지어서 돌아가시면서 그렇게 고생해야 했나 하고 스스로 1년 동안 마음이 굉장히 아프고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전법륜(轉法輪)>을 읽고 나서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이 좀 바뀌었다”고 말하는 그녀는 “원래 사람들은 과거에 자신이 진 빚인 업력(業力)을 없애려고 그렇게 고통을 겪는 거라는 걸 알게 됐어요. 우리 아버지도 결국 좋은 곳으로 가시기 위해 그렇게 고생을 하셨구나 하고 생각하니 정신적으로 굉장히 편안해졌어요. 아버지에 대한 문제가 해결돼 너무 기뻐요.”

“또 저 자신에 대해 엄격하여 힘들고 긴장한 삶을 살면서 스트레스도 엄청 컸는데 파룬궁을 만나고 나서 마음이 한층 자유로워졌고 정신적으로 편안해졌어요. 이건 정말 보통이 아니구나,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네요.”

그녀는 또 “법공부를 하다 보니 구구절절 모든 내용이 다 나한테 말씀해주는 것 같았어요”라며 “처음에 책을 딱 펼쳤는데 보는 순간 에너지가 막 느껴졌어요. 굉장히 정신이 맑아지고 책만 봐도 저는 건강해질 것 같았어요. 이 책이 정말 보통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연공 음악으로부터도 에너지가 느껴졌고요.”라고 감탄했다.

이어 “파룬궁 수련은 심성을 닦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는데 정말 이것만 열심히 하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정말 착하고 너그럽고 너무 훌륭한 사람이 돼있을 것 같다”라면서 파룬궁을 금방 알고 나서 처음에 동네 연공장에 가서 연공동작을 배울 때 수련생의 지도를 받았는데 만난 분들이 하나 같이 모두 너무 모범적이고 반듯했다며 “정말 이 사람들만 봐도 야, 이게 뭐가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 수련생 몸에서 때 묻지 않고 순수하고 반듯한 심성이 보이고 또 열정도 많으셔서 야, 나도 이걸 하면 될 수 있겠구나, 오랜 세월 하면 꼭 성취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작가 “심성제고가 수련의 핵심”

경기도 군포시에 거주하는 41세의 젊은 작가 김민상 씨는 자신이 9일 학습반에 참가하게 된 과정을 소개했다. 이전에 길거리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이 진상을 알리는 것을 보고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는데 최근 유튜브에서 한국 파룬따파불학회 사무총장(오세열 박사)과 유명 인사의 대담 영상을 보고 좋은 생각을 가지게 됐다며, 그래서 파룬궁 기본 수련서 <전법륜(轉法輪)> 2권을 구매해 현재 아내와 함께 보고 있다고 했다.

김 작가는 “<전법륜(轉法輪)>을 보면서 수련에 대한 의문점이 근본부터 풀렸다”라며 “우리가 수련을 한다 했어도, 수련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잘 알지 못했던 것이 참 많았음을 깨달았다. 이 공법이 정말 훌륭한 것 같다”라고 말하며 격동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어 어릴 적부터 명상수련에 관심을 가졌고 정신세계와 명상에 관련된 책들도 많이 읽었으며 30세까지 다른 종교도 하면서 이전에도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올바르게 산다는 것이 수련과 심성을 닦는 것과 그렇게 연관돼 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전법륜(轉法輪)>을 읽기 전까지는 심성을 닦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어요. 모든 명상, 기수련이든, 종교든 여러 가치관이 많이 나오는데 심성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몰랐던 것이죠. 전부 다 간과해 버린 것 같아요.”

“<전법륜(轉法輪)>을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심성제고를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심성제고가 수련의 핵심으로, 심성을 말씀하시면서, 예를 들어 주화입마 등과 같이 이때까지 무협지 등에서도 나왔던 여러 개념들, 삐뚤어지고 잘못된 곁다리들을 한꺼번에 싹 다 정리해주시는 느낌이었어요. 결국 심성이 안 되면 아무것도 안 됨을 깨달았죠. 그래서 아내와 함께 책을 읽으며 같이 감동하고 있어요.”

그는 그러면서 사부님께 깊은 감사의 뜻을 전했다. “사부님께서 이렇게 좋은 것을 아무한테나 무료로 해주시는데 너무 고생이 많으실 것 같아요. 부족한 사람들을 처음부터 키워주시고 밀어주시며 조금 조금씩 스스로 올라올 수 있도록 단계를 밟아주시잖아요. 저희를 한 명 한 명 씩 인도해주시고 단계 단계 잡아주시며 끝까지 이끌어주시는, 뭐라 할까요, 아주 친절하고 섬세하면서도 배려심 많은 코치와 같다는 느낌이에요. 사부님께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전법륜>을 읽고 눈물이 흘렀어요”

정진홍 씨는 최근에 천제서점에 와서 <전법륜(轉法輪)>을 구매해 두 번 읽었다. 두 번째 읽었을 때 눈물이 마구 흘렀다.

“이렇게 구구절절 진실하게 말씀하시는 책은 처음 봤어요. 각종 서적, 불경이나 성서를 다 봤어도 이렇지는 않았어요.”

9일 학습 중에서는 특히 마지막 강의 때 나온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박 씨는 “전율이 올 정도로 감동 받았다”라면서 “인연을 잘 맺었으니 항상 고층차에서 수행하는 제자가 되자”라며 소망을 밝혔다.

“밝은 세계를 본 것 같아요”

경기도 고양시에서 온 김관식 씨는 평상시 심신수련을 하고 싶어 여러 가지를 많이 접해봤지만 제대로 된 수련법을 만나지 못했다. 최근 우연히 아침에 집근처 공원에서 연공하는 파룬궁 수련생들을 만났고 그들을 따라 동작을 배우고 수련하면서 파룬궁에 아주 심취했다고 한다.

현재 이미 <전법륜(轉法輪)>을 두 번 통독했고, 또 9일 학습반을 통해 많은 의문점이 풀렸으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면서 너무 좋은 것 같다고 했다.

“파룬궁을 만난 것이 정말 커다란 행복이에요. 지금까지 암흑세계에 살았다면 ‘전법륜’을 통해 밝은 세계를 본 것 같아요!”

또한 자신은 원래 폐가 안 좋아 호흡조차 힘들어 무척 고생했다면서, 평상시 뛰는 것도 잘 하지 못했을 뿐더러 더구나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찰 정도로 굉장히 힘들었는데, 파룬궁을 이제 2주정도 수련하고 나서 아침마다 전철역에서 계단을 뛰어 올라도 숨이 차지 않을 정도로 호흡이 좋아졌다며 대법에 감사해했다.

중국에서 온 사업가 부부, 파룬궁에 깊이 매료

중국 대륙 출신의 사업가인 이정봉 씨(가명)는 부인과 함께 학습반에 참가했다. 그는 사업 때문에 해외로 출장을 많이 다니는데 어디를 가나 좀 유명하다는 곳에 가면 거의 다 수련생들이 파룬궁을 홍보하고 있는 걸 봤다면서 “한번 두 번 보다 보니 저도 모르게 눈이 가고 이끌리며, 확실하게 뭔가 비전이 있는 것 같아 접촉하다보니 좋은 것임을 느끼게 됐다”라고 했다. 또 연공 후 신체가 건강해지고 거뿐해졌다며 9일 학습반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많이 터득했고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 씨의 부인은 9일 학습반을 마치고 감격에 북받쳐 흐느끼기도 했다. 그녀는 딸이 파룬궁을 수련하는데 수련이후 딸에게서 좋은 모습도 많이 나오고, 너무 좋은 것을 알아서 이걸 꼭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학습반에 참가하게 돼 너무 기쁘다고 했다.

한국 서울 천제서점(삼각지역 13번 출구 앞)에서는 파룬궁 수련 입문을 돕기 위해 매월 1회씩 ‘9일 학습반’을 운영하고 있다. ‘9일 학습반’은 하루에 2회씩(오전반 09:30~12:00, 저녁반 19:15~21:30) 9일 연속 진행되며 무료로 진행된다. 다음 '9일 학습반'은 8월 20일(화)~28(수)에 열릴 예정이다.



문장발표: 2019년 8월 11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8/11/391313.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9/8/14/178883.html


명혜망

글/한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9년 6월 5일, 제57회 ‘파룬따파(法輪大法) 9일 학습반’이 서울시 용산구 삼각지에 위치한 천제서점에서 원만히 끝났다. 천제서점 9일 학습반은 매월 한 번씩,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이날 학습반에 참가한 신 수련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동안 각자 수련을 통해 얻은 느낌과 심득체험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비록 짧은 9일이었으나, 그사이 거의 모든 참가자가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변화를 느꼈으며, 이들은 파룬궁의 수련 효과에 진심으로 감탄하며 대법(大法)에 감사함을 표했다.


오전학습반에 참가한 신 수련생들이 파룬궁 제5장 공법인 썬퉁쟈츠파(神通加持法)를 연마하고 있다.


오전학습반에 참가한 신 수련생들이 9일 간의 수련을 통해 얻은 느낌과 심득체험을 함께 나누고 있다.


저녁학습반에 참가한 신 수련생들이 파룬궁 제1장 공법인 포잔첸서우파(佛展千手法)를 연마하고 있다.


“이만한 치료효과를 가진 것은 없어요, 너무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경기도 의왕시에 거주하는 남기선 씨는 자연치유학 박사다. 그녀가 대법 수련에 걸어 들어온 계기는 그녀보다 한 달 먼저 파룬궁을 배우기 시작한 남편의 몸에서 나타난 신기한 변화 때문이다. 전 언론인인 그녀의 남편은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파룬궁 유튜브 소개영상을 보고 파룬궁을 알게 됐고, 바로 지난 5월에 열린 천제서점 9일 학습반에 참가하게 됐다. 남편은 학습반에 참가한 3일 후부터 이내 표정이 편안해지고 얼굴색이 좋아지는 느낌이었으며, 또 예전에는 화도 자주 냈었는데 9일 학습반에 다녀오더니 금세 화가 줄어들고 순식간에 사람이 온화하고 따뜻해진 느낌이었다. 9일 내내 평소와는 너무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 남편을 보며 그녀도 “이게 뭐지”라는 생각에 파룬궁에 호기심을 가지게 됐다.

“술이 없으면 못살 정도로 술을 좋아했던 남편이 9일 학습반을 시작하자마자 전과 다르게 술이 안 넘어간다고 했어요. 너무 신기했습니다. 생선이며 고기도 생각이 안 나고 음식도 아주 담백하게 먹어요.”

몸과 마음에서 가져온 남편의 변화를 지켜보던 그녀는 남편이 9일 학습반이 끝난 이튿날 아침 근처 연공장에 연공하러 간다고 했을 때 나도 같이 가겠다며 아무 망설임 없이 따라 나섰다. “9일간 지켜본 바로는 좋은 거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내의 갑작스런 결정에 당시 남편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원래 당뇨병을 앓고 있던 그녀는 평소 탄소화물 섭취량이 많았는데 한 달 동안 따라서 연공을 하는 가운데 섭취량이 저절로 줄어들었고, 몸도 좋아졌다고 했다. 그러다가 이번 6월 학습반이 열리기를 기다려 참가했다.

“9일 강의를 듣는 도중 5일째와 9일째 되는 날에, 배가 엄청 아파 참지 못하고 화장실에 갔어요. 몇 번이나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렸는데 평소에 아픈 그런 느낌과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이건 사부님께서 나의 몸을 청리(清理)해주시는 거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지요.”

자연치유학 박사인 그녀는 “자연치유에 관련된 연구도 많이 해보고, 자연치유 쪽에 많은 걸 접해봤지만 이만한 치료효과가 있는 것이 없다”면서 “너무나 좋은 수련법을 만나 요즘 너무 행복해서 감사함을 느끼고 살고 있어요. 또한 새로 태어난 느낌이에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등이 해소된 것 같고, 앞으로 욕심 없이 더 소박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 주위에 자연치유 전문가들이 많은데 지인들에게도 이 공법이 좋으니 꼭 해보라고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손도 대지 않고 병을 고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해요”

성완제 씨는 과거 허리를 다쳐 쓰지 못하게 됐는데 움직일 수 없어 병원에 일주일 정도 거의 죽다시피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다. 병원에서도 근육이 굳어져서 더 이상 치료가 어려우니 다른데 가보라고 했다. 그 후 다른 수련법으로 치료해봤는데 처음에는 좀 효과를 보는 듯하다가 어느 정도 가서는 더 이상 안 되는 한계에 부딪힘을 경험했다. 그러던 중에 전에 들어봤던 ‘파룬궁’이라는 공법이 생각나 “거기 찾아가면 무언가 이루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9일 학습반이 있다고 해서 참가하게 됐다.

“그런데 정말 연공한지 3일째 되는 날에 발끝에 불이 날 정도로 에너지가 강해 깜짝 놀랐어요. ‘야 희한하다!’ 그 이후에도 손발이 뜨거워서 주체를 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성 씨는 예전에 아팠던 허리 고통이 9일 강의를 듣는 중에 무릎까지 내려가는 걸 느낄 수 있었고, 9일째 되는 마지막 날은 너무 아파 앉아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사부님께서 자신의 몸을 뿌리부터 청리해주심을 느꼈다고 했다.

“이 공법이 정말 보통이 아니구나, 전에 많은 것을 찾아 다녔지만, 이처럼 손도 안대고 연공동작도 이렇게 간단하고 쉬운데 싹 나아질 정도라니, 게다가 안에서부터 병의 뿌리를 치료해주다니 정말 대단한 공법이다. 보통이 아니다. 야, 이거구나!’라고 생각했죠.”

파룬궁의 수련효과에 진심으로 감탄하는 그는 “많은 사람이 이렇게 좋은 걸 찾아다니느라 고생하겠지만, 진정 여기까지 들어온다는 자체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온 자체가 이미 한 단계 넘어선 거지요.”라며 “제 성격이 무엇이든 하면 끝까지 합니다. 잘 수련해보겠습니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정말로 빠르고 굉장히 좋은 수련법”

정보통신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송윤상 씨는 과거 수련 쪽에 줄곧 관심이 많았는데,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파룬궁을 접하게 됐고, 그래서 한번 배워보려는 마음으로 근처 양재동 연공장에 전화를 하여 이번 9일 학습반에 참가하게 됐다. 그는 처음에는 파룬궁이 뭔지 잘 몰랐는데, 9일 학습반이 끝나고 나니 “굉장히 좋은 수련법임을 알게 됐고, 또 정말로 빠른 수련법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전에 다양한 수행법을 배웠다는 그는 “이게 나에게는 마지막 수련법인 거 같다”며 “다른 수행법을 많이 해서 아는데, 다른 수행에서는 실제로 20년 걸리는 것을 여기서 실제로 해보니 딱 4일이 걸렸습니다. 제 자신이 실제로 이렇게 경험해보니 정말로 대단합니다. 정말로 빠르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감탄해마지 않았다.

그는 이어 “원래 좀 수행을 한 사람이면, 수행차원에서 봤을 때 좀 유명한 스님이라든가 보면 광환이 황금빛도 아니고 그냥 하얀 게 쪼금 있다. 그런데 9일 강의를 보면 사부님의 몸은 황금빛이 난다. 광환이 그려져 있고, 광환 주변으로 황금빛으로 빛이 나있다. 완전히 고차원 수행법이 맞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9일 학습반 동안 파룬(法輪)이 배안에서 돌고 있음을 느꼈고, 밤낮으로 파룬이 돌며 신체를 청리해줬는데, 몸에서 계속 열이 나고 무척 힘들 정도로 신체 청리가 강했다”라고 말했다.

송 씨는 마지막으로 “파룬궁이 1992년에 처음 전해져서 전파된 지 이미 20년이 됐다고 하는데, 잘 수련해서 좋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며 “정말 좋은 공법인 것 같다.”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말했다.

“몸이 건강해졌고, 또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서울 송파구에서 온 전영분 씨는 몸이 많이 안 좋아 병원에 자주 드나들었고, 허리디스크 때문에 설거지도 못해서 남편이 도와줬다고 했다. 친구 추천으로 파룬궁 수련을 시작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연공장에 나가 연공하는데 1시간도 서있지 못하고 주저앉았으나, 2개월 연공하고 나니 지금도 아프긴 하지만 이제는 1시간 서서 할 수 있게 됐다면서 “너무 기적”이라며 기뻐했다.

그녀는 40대 중반쯤에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는데, 병원에 가봤더니 원인이 없다고 해서 그저 참고 지내다가 어느 순간 없어졌다. 이번에 9일 학습반에 참가하면서 다시 목에서부터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하더니, 겨드랑이, 상반신, 허리 쪽까지 내려가며 확산되면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려웠다. 그러다가 지금은 점점 없어져 많이 좋아졌다. 그녀는 사부님께서 자신의 신체를 청리해주심에 감사해했다.

그녀는 또 예전에 절에 다니며 기타 수련법도 배웠었다. 그런데 항상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으면서도 그분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려 이곳에 오셨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것을 찾기 시작했다. 이번에 9일 학습반에 참가하고, 또 파룬궁 수련지침서인 ‘전법륜(轉法輪)’도 읽으면서 이제야 부처님이 우리한테 무엇을 가르치러 이 세상에 오셨는지 알게 됐다며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바로 ‘진정한 나’를 찾으러 왔습니다.”라고 자신의 깨달음을 밝혔다.

서울 불광동에서 온 장상훈 씨는 이번 9일 학습반에 참가하기 위해 3주를 기다렸다. 그는 파룬궁을 수련한지 통틀어 9일째 된다며 “예전에 높았던 혈압이 수치가 조금씩 떨어지고 얼굴색도 밝아졌으며, 좋은 점이 참 많은 것 같다”면서 내일부터 주위 연공장을 찾아 열심히 수련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수련서적을 읽으며 심성(心性)을 수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니, 오늘 저녁부터 당장 신 수련생 단체 법학습에 참가하겠다.”고 했다.



원문발표: 2019년 6월 19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6/19/38894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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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法輪功)으로 잘 알려진 法輪大法(파룬따파)는 리훙쯔(李洪志)선생께서 창시하신 고층차의 불가(佛家)수련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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