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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혜망
척추가 45도로 굽은 환자가 완쾌된 진실(사진)

[밍후이왕](밍후이기자 황위성 대만 대중 보도)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쓰쉬안은 올해로 이미 51세이다. 파룬궁을 수련한 지 12년이 된 그녀는 지난 수련과정 중의 일들을 회상했다. 열등감에 사로잡힌 곱사등이 노인에서 명랑하고 부드러운 사람으로 변한 모습에 사부님게 가슴깊이 감사드린다.

왼쪽 쓰쉬안(思璿)과 오른쪽 언니 슈메이(秀梅)


척추가 45도로 굽어 완치할 수 없다고 진단

12년 전 쓰쉬윈은 척추가 굽어 몸을 곧게 누울 수도 옆으로 누울 수도 없었고 가족의 도움을 받아야 몸을 뒤집을 수 있었다. 40여 세지만 모습은 할머니처럼 허리가 45도로 굽어 매번 5분 이상 걸어야 비로소 몸을 곧게 펼 수 있었다. 척추가 굽어진 후 5~7개의 척추가 무너졌고 의사선생님은 완치할 수 없다고 했다. 마치 비뚤어진 나무를 단단한 나무로 지탱하는 것처럼 오직 보조기구를 착용해야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부득이 보조기구를 착용한 후 쓰쉬윈은 집에 돌아와서 1시간쯤 평평하게 누워야 일어날 수 있었다. 허리를 곧게 펼 수 없어 가족을 위해 밥을 지을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당시 중학교 1학년인 딸이 밥을 해야 했다. 그녀는 정상적인 생활을 회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써보았다. 심지어 이름을 바꾸거나 중의와 양의를 다 찾아도 소용이 없었다.

척추는 더욱 굽어졌고 탈모까지 생겼으며 머리 부분의 피부가 동전 크기로 딱딱해져 그녀는 미용실을 감히 갈 수 없어 딸이 가위로 머리카락을 잘라 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머리카락이 난다는 요가도 해보았다.

하루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언니가 그녀에게 파룬궁의 9일 학습에 참가해보라며 그녀에게 ‘수련 이야기’라는 체험이 담긴 테이프를 주었다. 테이프에서 한 쌍의 부부가 수련해 아내가 더는 남편에게 집안일을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듣고 파룬궁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안정하게 수련하니 허리가 곧게 되다

9일 학습반이 한동안 중단되었다. 학습반에서 심하게 졸려 재빨리 안정한 수련상태로 들어가지 못했지만 쓰쉬윈은 수련하기로 했다. 타이베이(台北) 젠탄(劍潭)의 단체 법 공부 교류에 참가하고 수련생이 연공장에서 연공한 심득을 듣게 됐다. 집에 돌아온 후 쓰쉬윈은 연공장에 가서 연공을 하게 됐다. 그 후부터 법 공부를 할 때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안정된 수련환경이 정말 수련의 제고에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

굽어진 척추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펴졌다. 처음에 수련할 때 쓰쉬윈은 진통제 처방을 잊고 보름을 넘겼다. 그녀는 보름동안 약을 먹지 않았는데 몸의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약을 먹는 것도 귀찮고 게다가 연공을 하면 몸도 편안한데 계속 연공을 하자고 생각했다.

약 2년이 지나자 병업이 신체의 표면에 나타나 갑자기 그녀는 불편한 증상을 느꼈다. 3일을 일어날 수 없었다. 수련을 하지 않는 남편은 그녀를 병원에 데려가려 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했다. “사부님, 병업의 법리를 알고 있습니다. 내일 일어나지 못하면 남편이 나를 병원에 보냅니다. 이것은 몸을 정화시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병원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튿날 그녀는 일어나 연공장에 갔다. 남편은 집에 돌아온 후 그녀를 병원에 데려가려 했다. 그녀는 “다 나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상으로 걸어가며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남편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그 후부터 굽어진 허리는 아프지 않았고 옆으로도 잘 수 있었다. 이전에 불면증이 생길 정도로 몸을 뒤집을 때의 통증이 사라졌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그녀는 사부님의 자비에 매우 감사했다. 그녀는 “수련은 나의 생명에 생기를 주었습니다.”

성격이 활달하게 변하고 자신감이 생겼다

수련은 그녀의 신체 통증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성격까지 변화시켰다. 성장 후 신체가 굽어져 힘이 없어 말을 하지 못하고 말하기도 싫어했다. 가족과 말할 때 대부분 간단한 방식으로 대처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그다지 상대하기 쉽지 않은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나 대법에서 다시 기운을 차린 그녀는 친근감이 생기고 이렇게 좋은 공법을 다른 친척과 사람에게 소개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과 소통해야 하고 접촉하기 싫어하는 사람과 소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대법과 대법이 박해한 진상도 알려야 한다. 그러므로 그녀는 자신을 돌파하고 자신이 대법의 요구에 맞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그녀가 진상을 알리고 시민에게 서명을 요청할 때 처음에 소리가 작았다. 마치 자신에게 말하는 것 같았는데 법에서 승화를 통해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 그녀는 요고대(腰鼓隊)에 참가하며 의기양양하게 요고를 치며 자신감 넘치도록 대법의 아름다움을 시민에게 보여준다. 그녀는 자주 홍콩에 가서 법을 실증하며 자신이 할 만한 일을 하고 자신이 대법에서 얻은 것과 비기면 미미하다고 생각한다.

착실한 수련에서 집착심을 버리자 가족이 대법수련을 지지하다

진상을 알리는 것을 통해 그녀는 자신의 집착심을 느꼈다. 서명하는 과정에 그녀는 처음에 서명의 수를 중시하여 다른 사람과 언니가 자신보다 서명자 수가 많은 것을 보고 언짢게 느꼈다. 후에 법에서 이것은 질투심이라는 것을 체험했다.

그리고 쓰쉬윈은 작은딸로 태어나 교만한 습관이 있었다. 후에 결혼하고 남편은 장남이라 큰 며느리고 일체를 돌봐야 하며 게다가 몸도 좋지 않아 성격은 더욱 거칠어졌다. 그래서 심성을 지키기가 더욱 어려웠다.

수련 후 성격은 온순해지고 사부님의 말씀대로 ‘선타후아’에 따라 행동하고 안을 향해 찾으며 착실히 수련했다. 세상에 우연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심성은 많이 승화되었다. 그녀는 웃으며 지금 자신은 ‘성격이 없다’고 말했다. 수련하지 않는 남편은 자신이 더욱 많은 이익을 얻었다고 말했다. 파룬따파가 좋다고 말하고 그에게 부드럽고 건강한 아내가 있게 됐다고 했다. 쓰쉬윈이 대법을 실증하는 활동에 참가하면 남편은 그녀를 지지한다고 했다.

이런 변화는 수련해야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쓰쉬윈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수련은 끊임없이 자신의 집착심을 찾아서 아주 좋다. 수련하지 않으면 이런 잘못된 관념은 절대 고칠 수 없고 반대로 자신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쓰쉬윈은 단체 교류환경을 소중히 여긴다. 교류를 통해 환경을 순화시키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고 능동적으로 자신을 제고하게 되며 비학비수하고 공동제고하는 것이 정말 아주 소중하다고 했다.


문장발표: 2013년 9월 1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신수련생마당>병을 치료하고 몸을 건강하게 된 이야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9/12/279408.html
명혜망
파룬궁 입문 소개


 
 

[밍후이왕] 파룬따파(法輪大法)는 파룬궁(法輪功)이라고도 하며 리훙쯔(李洪志) 선생님께서 전하신 불가(佛家)의 상승(上乘) 수련대법이다. 파룬따파는 파룬불법대사(法輪佛法大師) 리훙쯔 선생님께서 창작하신 불가상승 수련대법으로, “우주 최고의 특성 ‘진(眞)·선(善)·인(忍)’에 동화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고 우주 최고의 특성을 지도로 삼아 우주의 연화(演化)원리에 따라 수련하므로 우리가 수련하는 것은 대법대도(大法大道)이다.”
 
리훙쯔 선생님께서 파룬따파를 논술한 공개발표된 저서는 ‘파룬궁’, ‘전법륜(轉法輪)’, ‘전법륜 2권(卷二)’, ‘파룬따파대원만법(法輪大法大圓滿法)’, ‘정진요지(精進要旨)’, ‘파룬따파 시드니법회 설법’, ‘파룬따파 미국법회 설법’, ‘전법륜법해(轉法輪法解)’ 등 44권이 있다. 전법륜은 이미 3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서 발행 중이다.
 
파룬따파는 ‘사람의 마음을 직접 겨냥하는 것(直指人心)’으로, “심성(心性)을 수련하는 것이 공(功)이 자라는 관건이고 심성이 높은만큼 공이 높다”고 명확히 말씀하셨다. 심성은 덕(德-일종의 백색물질)과 업(業-일종의 흑색 물질)의 전환을 포함하며, 참음(忍)과 깨달음(悟), 버림(捨-속인 중의 각종 욕망과 집착심을 버리는 것), 또 고생 중의 고생을 겪을 수 있어야 하는 등등 많은 것을 포함한다. 파룬따파는 또 명(命)을 닦는 부분이 있는데 그렇다면 연마할 동작이 있어야 한다. 동작은 한편으로는 공능(功能)과 기제(機制)를 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체에서 많은 생명체를 연화(演化)해 내야 한다. 완벽한 한 세트의 성명쌍수(性命雙修) 수련법은 수(修-마음을 닦음) 뿐만 아니라 또한 연(煉-육체를 연마)도 해야 하는 것으로서 수(修)가 먼저고 연(煉)이 나중이다. “심성을 닦지 않고 동작만 연마해서는 공이 자랄 수 없다.”
 
파룬따파는 하나의 파룬(法輪)을 수련한다. 파룬은 영성(靈性)이 있으며 회전하고 있는 고에너지 물체다. 리훙쯔 사부님께서 수련자 아랫배 부위에 넣어준 파룬은(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은 리 선생님의 책을 읽거나, 설법 동영상을 보거나, 설법 녹음을 듣거나, 대법 수련생을 따라 배우고 연마해도 파룬을 얻을 수 있다) 매일 24시간 회전하며 멈추지 않고 자동적으로 수련자의 연공을 돕는다. 다시 말해서 수련자가 항상 수련하지 못해도 파룬이 끊임없이 사람을 연마시킨다. “이는 오늘날 세계에 전해지고 있는 모든 수련법문 중에서 유일하게 ‘법이 사람을 연마함(法煉人)’에 도달할 수 있는 수련방법이다.”
 
“회전하는 파룬은 우주와 동일한 특성을 갖고 있으며 그는 우주의 축소판이다. 불가의 법륜(法輪), 도가의 음양, 시방세계의 일체가 파룬 속에 반영되지 않는 것이 없다. 파룬이 안으로(시계방향) 회전할 때는 자신을 제도하는데 우주 중에서 대량의 에너지를 흡수하여 ‘공(功)’으로 연화시키며, 파룬이 밖으로(반시계방향) 회전할 때는 남을 제도하는데 에너지를 내보내어 중생을 제도하고 일체 부정확한 상태를 바로잡아 줌으로써 수련자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이득을 본다.”
 
파룬따파는 “원용명혜(圓容明慧)하고 동작은 간결한바 대도는 극히 간단하고 극히 쉽다.” 파룬따파는 모든 다른 공법들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는 주로 다음 여덟 가지 특징이 있다.
 
(1) 파룬을 수련하고 단(丹)을 연마하지 않으며 단을 맺지 않는다. 
(2) 사람이 연공하지 않고 있어도 파룬이 사람을 연마한다. 
(3) 주의식(主意識)을 수련하여 자신이 공을 얻는다. 
(4) 성(性)을 닦을 뿐만 아니라 명(命)도 닦는다. 
(5) 다섯 가지 공법은 간단하고 배우기 쉽다. 
(6) 의념을 갖지 않고 편차가 생기지 않으며 공이 빨리 자란다. 
(7) 연공을 할 때 장소, 시간, 방위를 가리지 않으며 수공(收功 공을 거둠)하지 않는다. 
(8) 사부의 법신(法身)이 보호하므로 외사(外邪)의 침해가 두렵지 않다.
 
그러므로 파룬따파는 이론상 전통적인 수련방법과 완전히 다르며 각 가(家), 각 문파의 연단(煉丹) 학설과는 다르다.
 
파룬따파 수련은 처음부터 높은 기점에서 진행하므로 수련자나 수년간 수련해도 공이 자라지 않는 사람에게 가장 편리하고, 가장 빠르며, 가장 좋고, 또 가장 얻기 어려운 수련법문(法門)을 제공한다. “수련자의 공력과 심성이 일정한 층차에 도달한 후 세간에서 금강불괴지체(金剛不壞之體)로 수련 성취하고, 개공개오(開功開悟)에 도달하며, 최고 층차로 정체승화(整體昇華)한다. 큰 뜻을 품은 사람이 정법(正法)을 배우고, 정과(正果)를 얻으며, 심성을 제고하고, 집착을 제거해야만 비로소 원만(圓滿)할 수 있다.”
 
“소중히 여겨라! 불법(佛法)은 바로 여러분 앞에 있다.”
 
초보 수련생이 알아야 할 점(1)
 
파룬궁을 배우고 연마하기 시작하면 수련을 시작한 것이다. ‘수련’ 두 글자는 두 방면의 내용을 포함한다. 수(修)는 심성 수련이고 연(煉)은 연공(煉功)이다.
 
1. 법공부
 
마음을 닦으려면 상응하는 법리로 지도해야 한다. 파룬따파의 주요 서적 ‘전법륜’에는 수련 입문에서부터 수련원만까지의 모든 법리가 들어있다. 배우는 자는 반복적으로 ‘전법륜’을 읽으면 점차 수련에 필요한 많은 높고 깊은 함의를 깨달을 것이다.
 
转法轮
사진:1995년 첫 판본5年 转法轮 (전법륜)표지
 
파룬궁 수련생은 파룬따파 서적을 배우는 것을 ‘법공부’라고 한다.
 
법공부할 때 주의점
 
1. ‘전법륜’ 이 책은 통독해야지 일부 내용만 골라 읽거나 책의 순서를 바꿔 읽으면 안 된다.
2. 법공부할 때 어떠한 추구하는 마음도 있으면 안 되고 마음을 조용히 하고 반복으로 통독해야 ‘구하는 것이 없으니 저절로 얻게 된다.’

많은 학습자는 통독 중에서 앞 구절에서 나타난 문제를 뒤 구절에서 해결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첫 번째 통독할 때 나타난 문제를 흔히 두 번째 읽을 때 해결할 수 있다. 다시 읽으면 새로운 질문하고 싶은 문제가 나타날 것이며 계속 읽어나가면 역시 또 해답을 얻을 것이다. 이런 규칙이 있다.
 
인터넷 버전 ‘전법륜’ 무료 다운로드
(한글판: 
http://www.dafabooks.co.kr/book/HTML/zfl(111003).html
(중문판: 
http://falundafa.org/book/chigb/zfl.htm)
 
인쇄물을 구매하려면 천제(天梯)서점에 가면 된다.
(천제서점 한국사이트: 
http://www.skybooks.org)
(천제서점 중문사이트: 
http://www.tiantibooks.org)

2. 연공

法轮功功法
사진2: 미국의 초보수련생이 공원에서 파룬궁 공법을 배우고 있다
 
파룬따파는 성명쌍수(性命雙修) 공법이므로 연공을 해야 한다. 파룬따파는 5세트 공법이 있다. 리훙쯔 선생님의 저서 ‘파룬따파 대원만법’에 파룬따파 공법 특징에 대한 해석이 있다. 5세트 공법의 동작도해(圖解)와 동작설명이 있고 또 다음 4가지 부록이 있다. 1. 파룬따파 보도소에 대한 요구 2. 파룬따파 제자가 법을 전하고 공을 전함에 관한 규정 3. 파룬따파 보도원의 표준 4. 파룬따파 수련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점.
 
무료 다운로드: 인터넷 버전 ‘파룬따파 대원만법’
(한글판 
http://www.dafabooks.co.kr/book/HTML/dymf(120621).html)
(중문판: 
http://www.falundafa.org/book/chigb/dymf.htm)
 
인쇄물 구매는 역시 천제서점에서 하면 된다.
 
초보 수련생이 알아야 할 점(2)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가장 좋은 입문 방법은 즉시 마음을 조용히 하고 ‘전법륜’을 한 번 읽어보거나 파룬따파 수련생이 연 ‘9일 비디오 학습반’에 참가하는 것이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리훙쯔 선생님의 설법 동영상을 순서대로 본다(설법 녹음을 들어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음). 매일 동영상 설법을 본 후 연공 동작을 한 세트 배운다.

전법륜은 ‘논어’와 내용 9강으로 이루어져 있다. 설법 비디오와 녹음도 각각 9강씩이다.
 
세계 각지(특히 대도시)에는 파룬궁 수련생이 무료봉사하는 연공장이 있다. 배우고 싶은 사람은 파룬따파 사이트에서 가장 가까운 연공장을 찾아 참가할 ‘9일 비디오 학습반’이 있는지 확인하면 된다. 학습반은 일반적으로 하루에 1강을 보고 수련생이 동작을 가르쳐 준다. 9일학습반에 한번 참가해 모든 설법을 다 듣고 5세트 연공동작을 한번에 다 배우면 수련을 시작할 수 있는데 효과가 아주 좋다.
 
9일학습반에 참가할 조건이 안 되면 스스로 ‘전법륜’을 보고 연공장에 가서 공법동작을 배우면 된다. 연공장의 단체연공에 참가하면 좋은 점이 많다. 첫째는 동작을 빨리 익힐 수 있고, 둘째는 동작을 바로 잡아 주는 사람이 있으며, 셋째는 여럿이 함께 연공하면 게으름을 쉽게 극복하고 견지할 수 있어 효과가 좋다.
 
주위에 잠시 연공장이 없으면 리훙쯔 선생님이 직접 가르치신 연공동작 동영상을 보고 스스로 배우면 된다. 5세트 공법을 순서대로 배우면 매일 연공할 때 파룬따파 연공 음악에 따라 연공할 수 있다.
 
초보자 주의사항: 파룬따파의 어떠한 활동도 모두 파룬궁 수련생이 봉사하거나 무료로 제공한 것이다. 비디오 반, 동작 지도, 심득교류회(일반적으로 ‘법회’라고 부른다) 등등이다. 수련의 순정함을 보증하기 위해 돈을 받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연공장을 찾으려면 파룬궁 세계 각지 연공장을 참고하면 된다.
(
http://ko.falundafa.org/falun-dafa-global-contacts.html)

연공 음악, 동작지도 동영상, 사부님 설법 동영상, 더욱 많은 대법서적을 찾으려면 파룬따파 사이트(ko.falundafa.org)를 방문하라.
파룬궁 수련생의 수련 심득과 기타 문장을 찾으려면 밍후이왕(明慧網 www.minghui.or.kr)을 방문하기 바란다.
 
 
 
원문발표: 2004년 11월 5일
문장분류: 파룬따파 소개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html/articles/2010/12/19/122008.html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11/5/88463.html

 
명혜망
리훙쯔 사부님께서 중국고전무(中國古典舞)에
 대해 하신 말씀
 
 
[밍후이왕] 7월 5일, 리훙쯔(李洪志)사부님께서는 페이톈(飛天)대학의 교수법을 지도하시기 위해, 페이톈대학을 겨냥해, 친히 ⟪무엇이 중국고전무인가⟫라는 글 한편을 쓰셨다. 전체 문장은 아래와 같다.
 
무엇이 중국고전무인가
 
 
중국고전무는 5천년 역사로 다져진 방대한 중화문화의 예술체계 중에서 신체로 표현하는 예술형식의 하나이다.
 
1. 중국고전무의 특징
 
1). 중국고전무는 풍부한 무용동작이 있어 사람의 각종 정감을 표현할 수 있는데, 무릇 기쁨(高興), 슬픔(悲傷), 희(喜), 노(怒), 애(哀), 낙(樂), 헤어짐과 만남의 근심과 기쁨(憂歡離合), 발광(瘋), 착란(癲), 어리석음(癡), 병(病), 취기(醉意), 장엄(莊嚴), 비천(卑賤), 위용(偉岸), 정적인 연극(文戲), 무술활극(武戲) 등 인물의 성격과 이야기의 줄거리를 표현할 수 있다. 
 
2). 중국고전무는 뜻(意)으로 신체를 이끌어 나가는데, 즉 내심의 정서가 신체를 이끌어야만 비로소 충분히 펼쳐낼 수 있는 무용이다.
 
3). 중국고전무는 인체의 자연적인 능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필요한 근육을 인위적이고 단독적으로 훈련해낼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해 사람이 걷고, 달리고, 뛰고, 계단을 오르고, 자전거를 타는 등 자연적으로 형성된 근육능력인데, 상체 역시 직업상의 노동을 통해 자연적으로 형성된 근육능력이다. 훈련을 통해 이렇게 자연적으로 형성된 근육능력이 자연히 강화될 수 있다.
 
4). 중국고전무는 4개 부분의 훈련항목이 있다.
 
⑴ 신법(身法)훈련 (무용 조합과 기초 바 연습) 
⑵ 신운(身韻)훈련 (이것은 내재적인 특정한 정감을 신법을 통해 밖으로 표현하는 수법이다.)
⑶ 무용의 기교훈련 (즉 난이도가 큰 무용동작 훈련이다.)
⑷ 탄쯔궁(毯子功) 훈련 (주로 각종 텀블링(翻騰)과 기본기훈련을 말한다.)
5). 중국고전무는 무용극 공연 중에 또 무용 연기 부분이 있다. 무용 연기는 영화, 연극(話劇), 오페라(歌劇), 희곡(戲曲)과 미국 브로드웨이의 가무(歌舞) 연기와 다른바, 중국고전무의 연기는 표정과 신체동작이 서로 어우러져 증폭되는 표현방식이다.
 
2. 중국고전무의 기원과 전해진 과정
 
수천년 전 중국에는 이미 무술이 출현했다. 당시 매우 많은 신체 연기 예술이 모두 무술의 동작과 기교, 그리고 텀블링 동작의 영향을 받았는데 중국고전무의 많은 동작의 원형(原型)은 무술과 비슷하다. 단지 표현방식이 다르고, 요구가 다르다. 중국고전무는 후에 5천년 중화문화의 다져진 기초 중에서 끊임없이 풍부해졌는데 이것이 바로 중국고전무의 신운(身韻)이다. 이 또한 중국고전무가 전해지는 과정 중에서 형성된 풍격이다. 이러한 민족 풍취(風韻)의 형태에서 체현되는 신체동작의 특점에는 자연적으로 중화민족의 동작 운치를 지녔다. 하지만 실제로 가르치는 중에서 기타 민족도 신운과 신법의 훈련을 통해서 이와 같은 운치를 배워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중국고전무는 전해지는 과정 중에서 여러 가지 방식이 있었는데, 희극(戲劇)은 주요부분이며, 역대 궁정무용에는 모두 같지 않은 기술특점이 있었다. 민간에서 전해진 것은 주로 서로 배우고 모방하는 방식으로 전해졌고, 잡예(雜藝)중에서는 주로 무술기교를 위주로 하였다, 진(秦), 한(漢) 이전에 이미 체계적인 무술 동작으로 연기하는 예능인(藝人)이 있었다. 서커스 의 예능인은 주로 텀블링 동작을 위주로 했다. 당송(唐宋)시기의 많은 무용과 잡예(雜藝)는 모두 중국고전무의 초기의 기본 형태와 기술 및 기교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텀블링 부분은 거의 모든 잡예(雜藝)에서 모두 채용했는데, 이 또한 중화 대문화권 중에서 같지 않은 예술기교가 서로 영향을 준 것이다.
 
중국의 조대(朝代)와 기타 고대 민족의 왕국 개념은 같지 않다. 조대가 바뀜에 따라 문화의 특징도 바뀌었다. 한 왕조의 천자에 한 왕조의 사람과 한 왕조의 문화(一朝天子一朝新人、一朝文化)라, 중국고전무는 바로 이와 같은 역사문화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풍부해지고 끊임없이 완벽해졌다.
 
중국 고대에는 현대의 교수법과 같은 이런 지도방식이 없었다. 희극(戲劇) 중에서는 이전세대가 도제를 거느리는 방식으로 대대로 전해졌다. 도제는 소년 시절부터 스승을 모시고 기예를 배웠는데, 통상적으로 과반출신[科班出身-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궁정(宮廷) 무용은 자매(姐妹)가 서로 전하고 이끄는 방식으로 기예를 배웠고, 많은 잡예(雜藝)는 집안 대대로 전해내려 오는 것(家傳)을 위주로 하였으며, 무술부분은 조상 대대로 전해지거나(祖傳) 스승에게서 이어 받았으며(師傳), 종교 중에서는 제자가 출가한 후 불도(佛道) 양가 사부가 전수했다. 체계화된 현대 교수 방식으로 진입한 것은 1900년대 상반기부터 시작되었다. 
 
3. 중국고전무와 현대 신(新)무술의 구별
 
현대 무술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가 출현한 후, 많은 사람들이 무술동작을 겉으로만 그럴싸한 물건으로 미화시켰다. 영화와 드라마 스토리 중에서 표현되는 것은 보기에 꼭 무용과 같지만, 사실 그것과 중국고전무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근본 상에서 말해,
 
1) 중국고전무는 신체동작을 표현하는 것을 일차적인 것으로 하지만, 무술은 빠르고 맹렬한 동작 완성을 일차적인 것으로 여긴다. 무술은 빠를수록 더욱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2) 중국고전무의 신체동작은 내재적인 신운(身韵)과 서로 결합되어 있다.
 
3) 중국고전무는 일종의 신체언어로, 인물과 줄거리를 충분히 전달하고 표현하기 위해 신체를 최대한도로 길게 늘이고 충분히 펼쳐야 한다. 그러므로 무용반 학생을 선발할 때 가장 기본적인 조건으로 다리가 길 것을 요구한다. 이와 같이 길게 늘이는 것은 무술에서 맞붙어 싸울 때에는 위험하다.
 
4) 무술 또한 중국무처럼 그렇게 줄거리를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같지 않은 인물, 같지 않은 정서와 정감을 묘사할 수 없다.
 
5) 무술은 중국고전무가 요구하는 신운(身韵)이 없다.
 
 
4. 중국고전무가 다른 무용과 신체 기능에 미친 영향
 
중국고전무의 기술기교와 텀블링(翻騰)은 이른바 개혁개방에 따라 갑자기 세계무대에 출현했다. 특히 기교와 텀블링(翻騰)부분이 전 세계 무용계에 끼친 반향은 아주 크다. 발레도 이로 인해 일부 중국고전무의 기교동작을 채용했는데, 현대 발레는 더욱 대량으로 일부 중국고전무의 기교를 채용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기술의 표준요구를 알지 못해 규범에 맞지 않게 사용한 부분이 많았다. 이른바 거리무용(街舞)은 이러한 기술의 요구와 규범을 더욱 모르기에 중국고전무를 사용함에 아주 추한 것으로 만들었다.
 
 
중국고전무의 체육에 대한 영향도 아주 크다. 1970년대 이전에 마루운동, 평균대, 철봉, 평행봉은 단지 간단한 발레동작과 신체적인 예술훈련만 있었다. 중국 체조팀은 중국고전무의 기술기교와 텀블링(翻騰) 동작을 대량으로 체조항목에 응용했다. 1970년대 그것이 국제 경기에 출현하게 되자 각국 체조팀은 크게 놀랐다. 어떤 중국선수는 한번에 5개 전 종목 우승을 할 수 있었다. 각국 체조는 모두 중국고전무의 이러한 기교와 텀블링(翻騰)을 배우기 시작했고 단번에 체조종목을 더욱 높은 기술의 경기로 끌어올렸다.
 
사실 전 세계의 많은 무용종류, 신체예술과 운동종목은 모두 중국고전무의 기술기교와 텀블링(翻騰) 동작을 채용했는데 어떤 것은 좀 잘 모방했으나, 어떤 것은 아주 차하게 했으며 매우 정확하지 않고 또 표준적이지 않으며 심지어 추악하게 묘사했는데, 5천년의 정심한 문화를 왜곡한 것이다.
 
이것이 중국고전무에 대한 기본상식이다.
 
 
문장발표: 2013년 7월 7일
문장분류: 밍후이 편집부> 밍후이 통지> 경문 수정 통지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3/7/7/276383.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3/7/8/140927.html
명혜망
생명탐구(生命探究)/
만물은 영이 있다: 세 가지 이야기


작자: 장춘대법제자


1. 세탁기가 다시 작동하다

우리집 세탁기는 하이얼 제품인데 이미 십여 년을 사용했다. 2009년부터 회로판이 망가져서 사용할 수 없었다. 회사 직원이 와서 검사하더니 지금은 이런 구형 회로는 생산하지 않으니 수리할 수 없으며 버려야 한다고 했다.


나는 만물은 영이 있으니 그것과 한번 교류해보자, 어쩌면 다시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나는 세탁기 옆에 서서 말했다.

“세탁기야 네가 우리 집에서 일한 지가 십여 년이다. 너는 우리 가족들의 옷을 세탁하는 궂은 일을 맡아 가사노동을 줄여 내가 법을 실증할 시간이 나도록 도와주었다. 아직 정법이 끝나지 않았는데 네가 작동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니? 네가 대법제자 집에 있게 된 것도 연분인데 생명을 소중히 여기기 바란다. 계속 작동하면서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기억한다면 좋은 미래가 있을 것이다.”


다음 날 내가 다시 세탁기를 켜보니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고 모든 게 정상이었다. 회로판의 작은 불들이 다 들어와 아주 좋았다. 정말 만물은 영이 있다. 이때부터 나는 늘 그것과 소통했는데 몇 년이 지나도 잘 쓰고 있다. 이 일을 통하여 신사신법에 더욱 굳건해졌고 문제가 생겨도 늘 정념으로 대했다.


2. 전기 밥솥에 전기가 들어오다

어린 손녀가 작년 모(某) 시의 중점(重點) 중학교에 합격했다. 학교가 집에서 너무 멀어 학교 부근에 방을 하나 빌렸다. 그래서 집에서 쓰던 취사도구를 임대한 방에 갖다 놓았다.


작년 겨울 친척이 멀리서 원래 내가 살던 집에 왔다. 한참 이야기 나눈 후 나는 그들을 데리고 밖의 음식점에 가서 식사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집에서 먹자고 고집했다. 집에는 낡은 전기밥솥 하나뿐이었는데 소켓을 꽂으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어디가 망가졌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즉시 그것과 교류했다.

“밥솥아, 너도 법을 위해 온 생명인데 내가 과거에 너를 중시하지 않고 너를 놀게 했다. 언제 망가졌는지 모르지만 미안해, 용서를 빌께. 지금 급히 너를 써야겠다. 지금 대법제자 곁으로 돌아오고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기억하거라. 좋은 미래가 있을 거야.”

말을 마치고 5분도 안되어 다시 전원을 꽂았더니 전원이 들어왔다. 당시 매우 격동했으며 사부님에게 감사로 가득 찼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그 자리에 있던 몇 명 친척들은 모두 불가사의 하고 신기하다며 내가 말하는 진상을 받아들이고 삼퇴를 했다.


3. 바퀴 벌레가 사라지다

우리가 사는 건물은 비교적 낡아서 집집마다 바퀴가 있다. 낮에는 보이지 않다가 밤이면 매우 왕성하게 활약한다. 나와서 음식물을 먹는데 부엌에 탁자 위, 찬장 속에 빽빽하게 한 층이있다. 음식을 통을 닫거나 줄에 묶어 매달아도 다 기어 들어간다. 처리할 방법이 없어 고민이다. 속인은 약으로 죽이지만 잠시 뿐이며 또 나타나며 번식도 매우 빠르다. 손녀(동수)와 상의하여 바퀴벌레와 교류하기로 했다. 그것들의 살길을 가르쳐 주어 미래를 선택하도록 하자. 어느 날 우리가 주방에 서서 말했다.

“바퀴들아, 들어라. 이곳은 너희들 살 곳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이다.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기억해라. 좋은 미래가 있을 거야. 우리는 대법제자이니 너희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 여기서 멀리 떠나고 너희들의 친구들에게도 이곳에 오지 않도록 해라. 너희들이 살아야 할 곳을 찾으며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기억하여 좋은 미래를 선택하거라.”


며칠 후 우리집 바퀴는 정말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금까지 4-5년이 지났는데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세낸 집에도 바퀴와 개미가 있는데 같은 방법으로 진정으로 교류하자 바퀴와 개미 모두 순순히 떠났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중생을 널리 제도한다(普度眾生)”는 법리에 대해 어느 진일보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만물은 영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모두 동화되고 구도 받을 수 있다. 현재 대법제자는 다그쳐 사람을 구하는 동시에 주변의 만물도 구해야 한다. 그것이 대법제자의 책임이다.
 


발표시간: 2013년 4월 1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17730




명혜망
나의 수련 이야기  
 

 

작자: 흑룡강성 하얼빈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흑룡강성 하얼빈의 농촌 대법제자다. 배운 게 많지 않아 글을 쓸 줄 모르므로 오랫동안 투고를 한적 없었다. 사부님은 내 수련 이야기를 써내도록 점화하셔서 비로서 글 쓰는 법을 배웠으며 동수의 도움으로 정리해낸다.
 

 

특이했던 어린 시절:
 

우리 부모님은 전에 큰 부잣집에서 태어났고 양가의 기반이 아주 튼튼했다. 그러나 공산당이 집권한 이후 부친의 집은 가산을 모두 빼앗겼고 조부모님도 심한 구타를 당했다. 날마다 밖에 나가서 비판을 당해야 했다. 부모님은 그 옆에 서 있었다. 집안에 먹을 양식도 없어 친척들이 조금씩 도와주어 겨우 난관을 넘겼다.
 

 

내가 출생했을 때 집이 매우 곤란하여 내가 출생한 후 병이 있었는데 집에선 밤낮 반드시 불을 켜야 했으며 켜지 않으면 곧 시끄럽게 울어대었다. 밤이나 낮이나 잠을 자는데 방에 아무리 낮이 밝아도 불을 끄기만 하면 나는 즉시 일어나 앙앙 크게 울었다. 그 때 초가 매우 비쌌는데 부모님은 방법이 없어 기름통을 하나 만들어 심지를 꽂고 미약한 불빛을 붙여 지냈다. 내가 7살이 될 때까지 불을 붙였다. 집안 식구들은 내가 왜 이런 병을 얻었는지 고민했다.
 

 

할아버지는 도를 닦던 분이셨는데 많은 제자가 있었고 모두 공능이 있었으나 문화혁명 때 박해받아 환속했다. 아버지는 내가 이런 것을 보고 걱정이 되어 할아버지에게 아들이 어찌된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할아버지는 부처님의 등을 지키던 승려가 전생한 것이라고 하셨다. 부모님은 이렇게 해서 나의 특이한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고 내가 불을 끄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매우 선량했다. 벌레나 작은 동물을 죽이지 않고 성격도 내향적이며 다른 사람과 사귐을 좋아하지 않았다. 일을 해도 혼자 다니며 했다. 어떤 아이는 내가 그녀와 놀지 않는다고 욕을 했으나 나는 여자 아이들과 사귀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남자 아이들과 놀기를 좋아하고 나무에 기어오르는 등 매우 활동적이었다.
 

 

내가 말을 안 듣고 다루기 어렵게 되었을 때 부모는 내게 이야기를 해주셨다. 선악에 보응이 있으며 윤회전생 신선이 수도하는 이야기 등이었다. 그때 우리 아이들은 가장 조용했으며 가장 말을 잘 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매우 길었다. 어떤 때 하루저녁에 이야기를 다 마치지 못해 2,3일 걸려야 했다. 기억이 가장 깊은 것은 부모님이 할아버지 제자들의 이야기를 해주실 때였다.
 

 

할아버지의 제자 중 하늘에 오르고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한번은 아버지가 높은 배나무 꼭대기에 큰 배가 달려 있는 것을 보고 그 제자분에게 따 달라고 매달렸다. 그 제자는 너무 높아서 딸 수 없다고 했으나 아버지는 할 수 있다고 했다. 갑자기 그 제자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저쪽에 누가 오는가 봐?” 아버지가 고개를 돌리는 그 순간 커다란 배 두 개가 그 할아버지 제자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들은 공능이 있으나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그게 매우 유감이었다.
 

 

할아버지에게는 또 다른 제자가 있었는데 집에 와서 배가 고프다고 했다. 어머니는 나더러 밥을 갖다 주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는 그럴 필요가 없다면서 밀가루와 약간의 물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대로 했다. 그 도제는 물로 밀가루 반죽에 몇 번 튀기더니 면을 다리에 죽 펼치자 면이 곧 익어서 떡이 되었다.
 

 

어머니는 또 이런 제자를 보았다고 했다. 우리집에 와서 그는 한손으로 밥을 하며 다른 손은 소매 속에 숨겼는데 어머니가 그에게 두 번이나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세 번째 물었을 때 그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그는 자신이 삼세(三世)의 일을 안다고 했다.
 

하나는 부잣집 공자였는데 부친의 젊은 아내를 사랑하여 그녀와 몰래 도망쳐서 윤리를 흔드는 큰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목숨이 수명이 짧아져서 얼마 안되어 죽었고 지옥으로 가서 징벌을 받았다고 했다.
다시 태어났을 때 축생의 길로 들어서 돼지가 되었는데 영통하여 자기의 전생을 알았다. 잘 먹어서 살이 쪘으므로 주인은 이 돼지는 내년이 되면 200근이 될 테니 잡아먹어야겠다고 했다. 그는 살이 찌면 곧 잡혀죽는다는 말을 듣고 그때 이후부터 단식을 하여 그저 약간의 죽만 먹어 피골이 상접했고 주인은 너무 말라도 기를 수 없으니 잡아 죽여야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 말을 듣자 어떻게 해도 죽을 운명이니 실컷 먹자고 생각하여 먹기 시작했다. 죽을 때가 되어 주인의 솥에 물이 끓기 시작하자 그것을 묶으러 왔다. 주인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마구 도망치기 시작했고 주인은 쫓아왔다. 필사적으로 일백 여리를 달리자 움직일 수 없어서 어느 절로 들어갔다. 그곳에 공능이 있는 스님이 있는 것을 알고 그의 도움을 청하려고 생각했다. 불상의 뒤에 숨어 나오지 않았다. 주인은 숨을 헐떡거리며 이곳에 도착했다.
 

 

스님은 “이곳의 돈을 다 줄 테니 저 돼지를 죽이지 말라. 저 녀석은 사람이 전생한 것이므로 죽기를 두려워합니다”라고 말했다. 주인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았고 반드시 저놈을 잡아야겠다고 했다. “저놈은 너무 나쁩니다. 물이 다 끓었는데 도망쳤으며 이렇게 멀리 쳤으니 우리는 그것을 쫓아오느라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방법이 없자 스님은 돼지에게 말했다. “네 운명이 이럴 수밖에 없으니 이제 돌아가거라”고 말했다.
 

 

주인이 돼지를 메고 돌아갈 때 화가 나서 말하기를 몇 번이나 칼로 찔러 죽인다고 말했는데 너무나 두려웠다. 그러나 이 돼지는 돌아간 후 양순하게 탁자에 누워 있어서 주인이 매우 놀랐다. 피살될 때 매우 고통스러웠는데 돼지는 죽은 이후 원신이 바로 분리되지 않고 한칼 한칼 찔리며 죽는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줄곧 고기를 화로 가마 속에 넣어 익을 때까지 원신은 분리되지 않았다. 그는 수련하지 않는 사람도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고기를 먹으면 정말 큰 죄를 짓는다고 했다.
 

 

이렇게 죽은 후 다시 전생할 때 염라대왕이 말했다.
 

“이번에 너는 사람으로 될 수 있는데 하나의 기호를 남겨야 한다. 네 한손은 돼지 발굽의 모양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여 그는 또 비교적 괜찮은 집의 부호에 태어났다. 그들 부부는 줄곧 아들이 없었는데 중년이 되어 아들을 얻지 매우 기뻐했다. 아들은 이목구비가 뚜렷했는데 한쪽 손이 돼지 발굽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이를 버리지 않았고 성년이 되자 그들의 집의 가산을 이용하여 며느리를 맞아하도록 했다. 혼례하는 당일 신방에 들어가자 그는 돌연 인생의 의의를 알았고 의연히 집을 떠나 수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부모의 신화이야기 중에서 나는 천국 세계를 동경하며 늘 어머니에게 물었다. 사람은 죽어야 하나요 ? 나도 죽나요? 그렇게 물으면 어머니는 너는 언제나 끝없는 이야기를 묻느냐고 말씀하셨다.
 

 

우리집 큰 백구
 

학교에 들어가서 중학교에서 공부를 그만 두었다. 그때 학교는 매우 혼란했다. 당시 분위기가 매우 좋지 않고 많은 아이들이 연애만 하여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나무 심는 기술을 닦았다. 나무 기르기를 좋아했는데 집에 비닐하우스가 있었고 과수원이 있었다. 일이 없을 때면 줄곧 식물 기르기를 연구했다. 이 때문에 나는 그곳 농업 기술자가 되었다. 우리집에 큰 백구를 한 마리 길렀는데 일어서면 사람만큼 키가 컸고 체중이 60킬로가 넘었다. 그놈은 가장 좋은 친구인데 나는 어디를 가도 그녀석이 따라다녔고 따라다니지 못하게 해도 내가 돌아올 때가 되면 수백 미터를 마중하러 나왔다. 백구는 세번이나 나를 구했다.
 

한번 내가 과수원에 갔을 때 봄이었는데 정원의 과수나무에 꽃이 만개하고 향기가 코를 찔렀다. 나는 무릉도원같은 과수원에 누워 편안함을 즐겼다. 가다보니 나무 아래 큰 동굴이 있는데 무엇인지 모르고 큰 돌을 들어 입구를 막았다. 바로 이때 옆에서 반척 정도 되는 큰 쥐가 튀어나와 나에게 덮쳐왔으며 나를 물기 시작했다. 나는 발로 그것을 찼으나 찰수록 더 심하게 물었고 내가 도망가면 그놈은 따라왔다. 바지를 물고 놓지 않았다. 내가 급히 백구를 부르며 쥐가 나를 무니 빨리 와서 도와 달라고 했다. 백구는 내 말을 듣자마자 맹렬하게 달려오더니 쥐를 입에 물었다. 그 쥐는 죽은 후에도 물은 것을 놓지 않았다. 나는 쥐의 주둥이를 잡아 열었고 백구의 입에서도 선혈이 흘렀다. 나는 백구에게 덕분에 내가 살았다고 했다.
 

 

두 번째. 내가 밤에 자전거를 타고 언니네 집에서 돌아와 어느 집 입구를 지나는데 그 집에서 갑자기 두 마리 큰개가 달려 나와 한 마리가 한쪽씩 내 바지를 물며 나를 잡아당겼다. 내가 끌려가려는 그 손간 하얀 그림자가 번쩍 하더니 우리집 백구가 제때에 내 앞에 나타났다. 왕왕 두 번 짖자 그 개들은 놀라 도망갔다.
 

 

세 번째 시장에서 참외를 사서 돌아올 때 날이 이미 저물었고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거의 집에 도착했을 무렵 갑자기 길옆 풀섶에서 두 남자가 내 길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나를 며칠 지키고 있었으니 그들을 따라가자고 했다. 그들은 한 사람은 나를 끌고 다른 한 사람은 자전거를 끌고 갔다. 이 위급한 시각 백구가 또 내 앞에 나타났다. 그녀석이 미친 듯이 짖으며 두 부랑자에게 달려들었고 그들은 놀라서 멀리 줄행랑을 쳤다.
 

 

수련 후 나는 이것이 나와 백구의 인연이며 전세에도 내가 구해준 적이 있는데 은혜를 갚기 위해 우리집 개가 되어 나를 보호했던 것임을 알았다.
 

 

 

남편 이야기
 

내 성격이 독특해서 결혼을 할 나이가 되어도 나는 출가하지 않아 부모님은 매우 근심했다. 몇 군데 알아보았으나 늘 깨졌다. 한번은 거의 목숨을 잃을 뻔 했다. 나는 전기에 온몸이 감전이 되었다. 이런 정황은 이전에 노인들의 말에 따르면 내가 도를 범한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게 나는 곧 26-7이 되었다. 그때는 농촌에서 이 나이에 가정을 이루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 부친이 병이 났고 집에 일할 사람이 없어서 나는 시장에 나가서 채소를 팔고 있었다. 이때 큰 언니가 내게 사람을 하나 소개해주었는데 바로 지금의 남편이다. 내가 보니 이 사람은 키가 작고 평범하게 생긴데다 가정도 궁하고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나쁜 마음이 생겼다. 우선 결혼을 승낙하고 내 일을 좀 돕도록 한 다음 일이 끝나면 내가 차버리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그는 우리집에서 보름 이상 일을 열심히 했다. 그는 나를 좋아했고 일할 때 나를 보면 나는 그에게 보고 싶지 않으니 고개를 돌리라고 말했다. 마지막 그날 일하다 밤 10시가 넘었을 때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늦었는데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가면 안 되냐고 말했다. 나는 안 된다며 돌아가라고 했다. 다시 보고 싶지 않으니 이후에 영원히 올 필요 없다고 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모친은 이것을 보고 너는 어찌된 아이가 이러냐고 말했다.
 

 

나는 그와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했는데 열흘 후 그는 또 우리집에 와서 모친에게 사정을 구했다. 나에게 잘해주겠다고 했다. 모친은 그에게 설득당해 나를 권했다. 나는 그가 입에 거품을 물고 있는 것을 보고 불쌍한 마음에 차마 어쩌지 못해 며칠 더 있으라고 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는 결혼을 준비했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나의 외질녀, 모친은 언니 모두 함께 권했다. 나도 생각해보았다. 내 이전의 사귀던 그 몇 명의 남자는 백구가 보면 늘 왕왕 짖었는데 이번 남자가 오면 백구는 물지 않을 뿐 아니라 그와 매우 사이좋게 지냈다. 그가 백구의 발을 밟아도 백구는 물지 않으니 설마 우리가 정말 집안 식구란 말인가? 이렇다면 나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시집가기로 했다. 그러나 마음은 편안하지 않아 늘 우울했다. 온 몸에 질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법을 얻은 후 수련하다
 

내게 있어 기공이란 줄곧 길거리에서 무술을 연마하며 기예를 공연하는 그런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아이의 팔을 비틀었다 다시 붙이는 것을 보았는데 기공에 대해 좋은 인상이 없었다. 파룬궁이 전해 나와 어떤 사람이 매우 좋다고 해도 나는 그게 얼마나 좋은지 알지 못했다.
 

 

1999년 1월 5일 나와 넷째 언니가 상의하여 파룬궁 연공장에 가서 한번 보자하고 저녁에 우리가 연공장에 갔다. 당시 그는 우리에게 사부님의 녹음을 틀어주었는데 사부님의“논어”의 한마디인 ‘불법’은 가장 정심하다를 들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파룬궁은 불법 수련이구나. 어려서부터 신선세계를 동경했고 수련하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하는지 고뇌했지만 단번에 찾지 않았는가? 또 출가할 필요도 없으니 이것이 내가 찾고 있던 것이다. 당시 나는 마음속으로 격동했다.
 

 

이후 매일 아침에 연공하고 저녁에 법공부가 끊이지 않았다. 하루 종일 즐겁게 지냈다. 연공한지 보름이 안 되어 이전에 여러 해 시달렸던 병증과 식물과민성 증상 가래 심장병 등이 다 나았고 몸이 가볍고 힘이 들지 않았다. 성격도 좋아져서 교만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접근하기 쉬웠으며 특히 남편에게 태도가 좋아져서 이전에 늘 그를 못본체 하고 미소를 짓지 않았는데 이제 큰 변화가 있었다. 그도 이상하게 느껴 무슨 공법이 당신을 이렇게 변하게 하느냐고 말했다. 그럼 이 책은 천서이니 잘 보라고 했다. 남편도 이에 대법 수련으로 들어왔다. 식구들도 대법 수련으로 신체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오빠 숙모 언니 동생 등 모두 잇달아 법을 얻었다.
 

 

천목이 열리다
 
수련한지 며칠 안 되어 나는 천목이 열렸다. 어느 날 혼자 집에서 연공하는데 2장 공법을 할 때 바깥문에서 삐걱하는 소리를 들었다. 주의하지 않았는데 아마 남편이 왔나보다 했다. 이후 아무 소리가 없었고 나도 주의하지 않고 계속 연공했다. 이때 내 머리 위에 두정포륜 때 두 손이 좀 무거웠으며 누군가 위로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눈을 떠보니 세상에! 금색의 커다란 용 한 마리가 내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어찌된 일인지 알지 못했는데 매우 두려워 연공장에 동수에게 달려가서 말했다. 동수는 어쩌면 다른 공간의 마일지도 모른다 했으나 내 마음속으로 마같지 않았다.
 

 

나중에 어느 날 남편과 방안에 있는데 또 우리집 바닥에 두 마리의 큰 용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하나는 황금색이며 다른 하나는 백색이었다. 용의 비늘은 곡식 까부르는 키(簸萁)만큼 컸다 나는 집이 이렇게 작은데 어떻게 이렇게 큰 용이 앉을 수 있을 까 생각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것은 다른 공간에서 본 것이었다.
 

 

내가 본 바를 남편에게 알려주고 보라고 했더니 그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했다. 나는 조급하여 어째서 안보이냐 분명히 여기 있는데 라고 했다. 당시 두 마리 용이 어찌된 일인지 알지 못했는데 나중에 사부님의 설법을 보고서 비로소 대법 수련을 하면 천룡팔부가 호법을 하는 것임을 알았다. 알고 보니 내가 본 용은 바로 나의 호법신이었던 것이다.
 

 

나는 줄곧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는 줄로만 알았다. 알고 보니 사람마다 다 천목이 열리는 것이 아니었다. 사부님은 나를 점화 하셔서 왼손에 두 글자 “수구”를 보았으며 오른쪽에는 하나의 큰 눈이 있는 것을 보았다. 이후에 무엇을 보아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는 것임을 깨닫고 수구를 이해했다. 수련은 더욱 가치가 있고 대법은 진귀한 것임을 알고 수련에 정진했다.
 

 

법을 실증하고 박해에 반대
 

1999년 7월 중공이 파룬궁에 대해 진압을 하고 텔레비전에서 날마다 중공 일언당의 거짓을 방송하여 세인들을 독해시켰다. 당시 매우 괴로웠으며 이렇게 좋은 공법을 어떻게 왜 연마하지 못하게 할까? 이렇게 좋은 사부님이 모함을 당하는데 내가 좌시할 수 있는가. 나는 대법이 억울하며 사부님의 결백함을 믿었다. 7월 19일 나와 식구들이 성 정부에 가서 청원을 했고 다른 사람도 다 갔는데 나와 식구들만 파출소에 끌려가 밤 한시가 넘어서야 풀려났다.
 

 

2000년 10월 12일, 나는 언니, 동생, 올케, 남편과 북경에 가서 대법을 위해 파룬궁은 좋다는 바른 말을 하기로 했다. 우리집에 어머니 혼자 집에 남았으나 우리가 북경 가는 것을 매우 지지 했다. 나중에 어머니 말을 들으니 우리가 가던 그날 밤 사부님이 보러 오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비록 수련하지 않지만 사부님의 설법을 본적이 있어서 대법을 믿었고 줄곧 천목이 열려 있었다. 어머니는 놀랍게도 사부님이 오셨는데 말씀을 안 하시고 미소를 짓더니 가버렸다고 했다. 모친의 설명을 들으니 나는 눈물이 단번에 솟아났다. 사부님, 제자를 위해 이렇게 걱정을 하시는군요. 이 노인의 딸은 모두 북경으로 정법을 하러 떠났고 혼자 집에 남아 있는데 일부러 보러 오시다니요. 그렇게도 자비로우시군요.
 

 

우리 몇 명은 순조롭게 천안문 광장에 도착하여 여러 사람들과 함께 “파룬따파하오”를 외쳤다. 전국 각지에서 온 대법제자는 모두 이곳에서 경찰에게 한무리씩 잡혀 차에 올랐다. 우리 몇 명도 흩어졌다. 나와 언니, 올케는 경찰에 끌려 파출소 앞까지 끌려갔고 그곳에 많은 대법제자가 갇혀있었다. 당시 나는 대법에 대해 아직 똑똑하지 않았는데 어느 경찰에게 이끌려 어느 방으로 갔는데 경찰이 물었다. “뭐하러 왔어요?”
 

 

나는 “대법은 좋은 사람이 되고 도덕이 되돌아 올라오라고 하는데 왜 연마를 못하게 하는 거여?”라고 말했다. 그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며 오히려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정법하러 온거요, 호법하러 온거요?” 나는 정법도 하고 호법도 한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나를 데려갔다. 나중에 나와 올케는 성 사무처에 가는 도중 어느 작은 차가 우리를 맞이하러 왔는데 우리 경찰은 그녀들은 파룬궁이 아니며 놀러온 사람이라고 하여 이 마음씨 좋은 경찰은 우리를 놓아주었다.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은 또 북경에 들어갔다가 체포되었고 우리집은 수색 당했으며 경찰이 나더러 연마를 할 거냐고 물었다. 연마한다고 말하기만 하면 체포되었다. 나도 체포되어 간수소에 두 달 이상 갇혔다.
 

 

그때 이후 우리집은 늘 경찰이 소란을 피우고 뒤졌다. 2004년 1월 9일 하얼빈 자료점이 파괴되었고 체포된 동수가 견디지 못해 내 이름을 말했다. 나와 남편은 하얼빈 동력분국 남강분공 홍기 파출소 등에 끌려갔는데 잡혀갈 때 두 대의 차에 설흔여명의 경찰이 왔고 나는 앉아서 발정념을 하고 있었다. 다섯명의 경찰이 나를 들었으나 움직이지 못했다.
 

 

당시 아들이 울면서 경찰에게 말했다. 아저씨 우리 엄마를 놓아주세요. 엄마를 잡아가면 누가 나를 돌봐줘요? 내 마음은 매우 쓰렸다. 이때 경찰이 나를 들어 올렸다. 그들이 집을 뒤질 때 그들에게 진상을 말해주며 당신들은 인민의 경찰이 아니요 ? 어떻게 좋은 사람을 잡아 가는거요 라고 했다. 그들 중 한 악경이 말했다: “우리는 바로 강 모모가 돈을 주어 키운 토비(도적)이요.” 라고 했다. 그들이 나를 문밖으로 밀어낼 때 “파룬따파하오”라고 소리 질렀다.
 

 

그들은 내가 신은 양말을 벗겨 입을 틀어막고 나를 강제로 차에 태워 파출소로 데리고 갔다. 다음에 철제 의자에 묶었다. 두 악경이 나에게 진상자료는 누가 주었냐 돈을 얼마나 주었냐 등등을 물었으나 나는 대답하지 않자 그들은 때리기 시작했다. 내 머리를 잡아 힘껏 벽에 부딪쳐 마침내 나는 혼절했다. 처음 깨어났을 때 온몸에 물이었고 계속해서 나를 때렸다. 구두발로 나를 찼다. 나는 또 기절했다. 두 번째 깨어났을 때 나는 병원에 누워 있었고 네명 경찰이 지키고 있었다.
 

 

나는 여기에 있으면 안 되고 나는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네명의 경찰이 모두 잠들었으면 했다. 그러자 그들은 긴 침대로 문을 막더니 그곳에 누워 잠이 들었다, 나는 조용히 그들이 막은 침대를 옮겨 놓고 막 도망가려 했다. 바로 그때 옆방에서 다른 병자가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당시 다른 공간의 사악이 너무 많아 사악이 병자를 조종하여 소리를 내게 한 것이다) 그들이 깨었다. 내가 도망가려는 것을 알고 더욱 단단히 감시했다. 그들은 간수소로 나를 보내려고 했는데 두 번다 실패하자 그들은 가짜 심전도 등을 만들어 나를 노교소에 보내려고 했다. 당시 나는 구세력이 안배한 길을 걸었는데 속으로 노교소에 가면 얼마나 무서울까 라고 생각했다. 바로 이렇게 틈을 타게 되어 불법으로 노교소 3년 판결을 받았다. 악으로 가득한 만가(萬家) 노교소에서 많은 고통을 받았다.
 

 

노교소에서 “3서”를 쓰라고 하는 내가 쓰지 않자 벽돌 방에 꿇어앉게 했으며 그래도 쓰지 않자 벽에 묶어놓고 전기곤봉으로 감전시켰다. 사악이 나를 박해하는 온갖 수단에도 나는 고통을 느끼지 않았고 사부님이 나 대신 감당하셨다. 그들이 전기 곤봉으로 감전시킬 때 나는 눈도 뜰 수 없었다. 한번 갑자기 눈을 떠보니 곤봉에서 자색의 불꽃이 퍽퍽 튀고 있는 것을 보고는 나는 겁이 났다. 이때야 비로소 아픔을 느꼈다. 이때 나는 경찰에게 진상을 말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은 나를 작은 방에 집어넣었는데 나는 계속해서 말했으며 최후에는 가장 사악한 경찰도 나는 좋은 사람이라 하며 다시는 때리지 않았다. 이 기간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대신 삼서를 쓰게 하여 나의 손을 끌어다 손도장을 찍었다. 이렇게 수를 채워 전향율로 계산했다.
 

 

여기서 나는 다시 한번 발표한다. 사악이 나를 핍박하여 손도장을 누른 소위 각종의 3서는 모두 승인하지 않으며 폐기한다. 사부님의 말씀대로 할 것이며 사악의 안배는 원하지 않는다. 노교소에서 고생스러울 때 사부님의 법을 외웠으며 한번은 사부님이 멀리서 노교소에 오시는 것을 보았다. 우리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계셨는데 눈에는 눈물이 아니라 피가 흐르고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노교소에서 박해를 견디지 못해 전향된 수련생을 가슴 아파 하신다. 이것을 보고 나도 울었다. 그 간난의 세월, 나는 사부님의 법을 외워 자신을 격려하며 법에 대해 믿음에 의지하여 길고 긴 3년의 시간을 지나왔다.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
생사에 집착이 없나니
정법의 길은 탄탄하여라
 

《홍음2》 <정념정행>
 

 

노교소에서 만기가 되어 나올 때 그곳의 610은 불법으로 나를 심문했다. 연마할거냐 아니냐고. 나는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당신이 고치지 않으면 계속 고쳐야 할 것이라고 했으나 나는 당신들은 상관없으며 사부님의 말만 들을 것이라고 했다. 때가 되자 나는 다음날 오빠가 맞이하러 와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오자 파출소 악경이 놓아주지 않았다. 또 나를 세뇌반에 보내려고 해서 나는 한달 동안 떠돌아 다녔다. 집에 돌아오자 경찰은 소문을 듣고 또 소란을 피웠다. 나는 마음을 내려놓고 너희들 오너라, 진상을 말해주려고 했는데 왔으니 헛되이 돌아가지 않게 해주겠다. 그러면서 문을 활짝 열어놓아 그들을 뛰어나가 맞이했으며 예의로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들에게 무슨 과일을 먹겠느냐 우리 과수원에 와서 따가라고 했다.
 

 

그들은 대법제자가 경영하는 기업이 이렇게 좋은지 보고 좀 의외임을 느껴 당신 집에 과수원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하며 아니면 당신들이 나를 3년이나 노교소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 집을 더 관리 했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노교소에 그렇게 많은 고생을 해서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뻔 했는데 당신들은 아들 딸, 부모 형제도 없느냐? 우리는 집에서 잘 지내고 있는데 나를 박해했으니 이게 옳은가 생각해보라. 내가 연마할거냐 아니냐를 묻는데 이 질문을 하려면 나는 영원히 할거요. 나는 계속해서 진상을 알려주고, 문화혁명이 끝난 후 반대파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 않았느냐 위에서 당신들에게 시킨 일이 좋은 일이 아니다. 나중에 도망갈 길을 남겨 놓기 위해 좋은 사람을 박해하지 말라고 했다. 그들은 그럼 집에서 연마하라, 나가서 알리지 말라고 했다. 나는 무엇이 알리는 것이라고 하느냐? 당신들이 우리집에 와서 말하면 되느냐? 내가 우리 오빠 언니 집에 가서 알려도 안되는 것이냐? 그들은 된다 된다 하며 다시 오지 않겠다고 했다. 그때 이후 그들은 정말 다시는 우리집에 오지 않았다.
 

 

중생구도의 신적(神跡)
 

북경에서 돌아온 후 시내 구역의 일부 어느 동수와 연락이 되어 그곳에서 자료를 뿌리고 있었다. 우리 지역에는 십여 명의 동수가 있어 사람들은 2,3명씩 한조가 되어 자료를 나누어 주는 것은 도보로 했다. 먼 곳은 40여리 돌아오면 80여리 였다. 아들이 겨우 8,9세 되었는데 역시 어른과 함께 중생구도의 중임을 맡았다.
 

 

한번은 나는 아들과 한조가 되어 먼 길을 걸어갔다가 돌아올 때 아들이 엄마 나 걷기 힘들어, 차가 있으며 얼마나 줗을까 하고 말했다.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차 한대가 우리 옆에 섰다. 우리가 보니 먼 친척이었는데 차를 몰고 일을 보고가다 그곳을 지나는 길이었다. 그래서 그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 왔는데 사존의 감은을 표현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나와 아들이 어느 마을에서 자료를 뿌리다가 악인에게 뒤를 밟혔다. 아들이 내게 말하자 나는 두려워 말라하고는 우리가 하는 일은 가장 바른 일이다 하며 나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당신이 나를 뒤따라 뭐하는거요? 그는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그러면 나를 뒤따라 뭐하는거요? 하면서 계속 걸었는데 그 사람은 멍하게 그곳에 서서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어쩌면 정념으로 그를 고정시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또 한번 다른 사람에게 꼬리를 밟혔는데 나는 당신 뭐하러 가느냐고 물었다. 그는 소를 찾으러 왔다고 했는데, 소는 저기 있다 하면서 손으로 길을 가리키며 가보라고 했더니 그는 순순히 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또 한번은 언니 아들과 함께 어느 순찰차에게 종적이 밟혔다. 우리는 옥수수 밭으로 들어가 달렸다. 한참 달린 후 우리는 이랑에 엎드렸다. 왜냐하면 순찰차의 전조등이 옥수수 밭으로 향해 쓸며 비추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갈 때가 되어 우리는 비로소 울퉁불퉁한 옥수수 밭을 지나갔다. 내 신은 구멍이 나서 샜으며 두 발에는 이미 물집이 많이 생겼다. 나온 후 방향을 몰라 집을 찾지 못했다. 나는 TV 송신탑에 가로등이 있지 않느냐 밝게 비치는 곳이 우리집 방향이라고 했다. 내 생각이 이는 내가 두려운 마음에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들은 단순하여 아무 일도 없었다. 우리는 나는 듯이 달려 십여 리의 길을 우리 몇 명이 십분도 안 되어 정말로 정시 발정념 시각에 도착했다. 아무리 먼 곳도 우리는 늘 발정념 시각 이전에 돌아왔다. 우리가 신의 일을 할 때 정말 신이며 생각한대로 이루어진다. 동시에 사존이 항상 보호하심에 감사드린다.
 

 

농촌은 연말이면 집집마다 주련(柱聯)을 붙이는데 집안에 죽은 사람이 있을 때만 안 붙인다. 농촌에는 집집마다 대문이 있다. 최근 몇 년은 주련을 대주는 동수를 찾지 못해 대문에 주련을 붙이지 못했다. 나는 시장에 가서 속인을 찾아 겨우 붙였는데 마음이 불편했다. 정월 초오일에 대련이 떨어졌다. 사실 나는 속인의 대련이 시커먼 것을 볼 수 있는데 나는 정말 붙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금년은 어떻게 하지? 생각하니 사실 너무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서예를 하는 동수에게 한 폭을 써달라고 하자고 생각했다. 이때 동수에게서 이미 두 폭의 작은 주련을 가져왔고 정 안되면 이것이라도 붙이되 속인의 주련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 대련을 대충 상자 속에 넣고 다음날 열어서 붙이려 할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작은 주련 속에 큰 두루마리가 있었다. 주련을 넣은 상자는 내가 분명히 깨끗하게 청소하고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두루마리를 열어서 보니 뜻밖에 큰 대련이었고 거기에는 두 줄로 다음처럼 써져 있었다.
 

法正乾坤 日月增輝
(법이 우주를 바로잡고 일월이 더욱 밝다)
 

人心歸正 福祿臨門
(인심이 돌아오니 복록이 문에 임한다)
 

 

가로 폭에는
 

天賜洪福
(하늘에서 큰 복을 내려주네)
 

라고 적혀 있었다. 또 두 개의 큰 복(福)자가 있고 그 위에는 불광보조 예의원명(佛光普照,禮義圓明)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이 나의 급한 마음을 보고 보내준 것임을 알았다. 나는 사존께 무릎을 꿇고 몇 번이나 고개를 찧어 사존에 대한 감격을 표시했다. 그 대련은 금빛이 번쩍이며 길가는 행인이 길을 멈추고 쳐다보지 않는 사람이 없고 모두 매우 부러워했다. 여기서 하나 희망컨대, 능력이 있는 동수는 대련을 만들 때 일부 대문의 대련을 만들어 농촌 중생의 요구를 충족 시켰으면 한다.
 

 

중생 구도의 길에 사존의 자비로운 보호가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고 신기한 일은 너무나 많다. 자기가 잘 수련하여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하여야만 사도은에 보답할 수 있다.
 

 

 

안으로 찾아 병업관을 넘다
 

몇 년 전 언제인지 모르는데 집에서 창고에 쥐가 나타났다. 동수에게 물어보니 아마 어렸을 적에 동굴을 막아 비교적 큰 쥐가 나를 물었을 때 그 쥐가 아닌가 했다. 이 쥐는 우리집 창고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다 먹고 사람을 해를 끼쳤다. 나는 기분이 나빠 남편에게 쥐약을 사서 뿌리자고 했다. 큰 놈 두 마리, 작은 놈 4마리 다 합해 일가족 6마리였다. 당시 어쩐 일인지 모르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법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동시에 신당인의 연극 <달마전기>를 보고 있었는데 곧 병업의 반응이 오기 시작하여 오장 육부가 칼로 찌르는 듯이 아파왔다, 선혈을 토했다. 너무 아파 방바닥에서 굴렀다. 안으로 찾아보며 아마 TV를 보아서 그런가보다 했다.
 

 

나는 열려 수련하기 때문에 이런 장면을 본적이 있었다: 당나라 시대에 회창 년간에 불교를 없앨 때 500명의 스님을 모두 가두고 석가모니 부처를 믿는가 안믿는가 물었다. 믿는다고 하면 머리를 자르고 안 믿는다고 하면 놓아주었다. 나에게 물었을 때 나는 믿는다고 했고 그들은 나의 머리를 베었는데 현재의 사람 머리보다 몇배나 컸고 고통도 느꼈다.
 

 

내가 고통스럽게 시달리고 있을 때 몽롱한 중에 어떤 음성이 말했다.
“너는 석가모니의 제자이다. 석가모니의 제자는 모두 열반의 길을 걷는데 네가 원만하려면 열반해야 한다.” 나는 이때 단번에 깨어났다. “우리 대법은 열반의 길을 걷지 않는다. 이것은 마이다. 구세력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니 나는 너희들의 말을 듣지 않겠다.”
 

 

내가 또 잠들었을 때 나는 달마가 나를 따라가자 하면서 나를 데리고 가는 것을 보았다. 마치 TV연극 <달마전기>를 보는 것처럼 착각했다. 그러나 병업은 낫지 않았다. 그것은 근본 집착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다. 연후에 두 번 또 쥐를 보았는데 그때는 단번에 알았다. 내가 살생한 업이구나. 비로소 고통스러운 모습이 마치 쥐가 약을 먹고 감당하는 듯이 시달리는 것임을 알았다. 나는 사부님의 선해의 법을 외우며 이 쥐와 선해를 시작했다. 쥐들은 동의했고 나의 병증은 즉시 소실되었다. 또한 신체는 이전보다 훨씬 편안해졌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수련은 너무나 엄숙하다는 것을 느꼈다. 매 하나의 난관이 만일 사부님과 대법에 의지하지 않으면 정말 넘을 방법이 없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린다.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 법에 맞지 않은 곳이 있다면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발표시간: 2013년 3월 26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17613
명혜망


보시라이 녹음 폭로중공 은폐 검은 내막 드러나

 
 
[밍후이왕] (밍후이 허위기자 종합보도중국공산당(중공법원은 보시라이(薄熙來)에 대한‘1’ 재판에서 보시라이가 중공이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대규모 생체장기 적출을 자행한 사건에서 주요 추진자 중 한사람이었다는 핵심 죄악을 적극적으로 덮어 감추려고 했다이에 대한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들 중 한명인 바오광(鮑光가명)씨는 의분을 참지 못하고 2013년 8월 27, 2006년 당시 보시라이의 독일 방문 기간 중 본인 입으로 직접 파룬궁수련생 생체장기적출은 장쩌민이 명령한 것임을 승인한 녹음파일을 공개했다바오씨는 그러면서 다른 내막을 아는 자들도 자신을 위해양지와 중화민족의 미래를 위해 중공 죄악의 증거를 용감히 폭로할 것을 호소했다.
 
보시라이 폭로-장쩌민이 파룬궁(法輪功)수련생 생체장기적출 명령
 
2013년 8월 27바오광씨는 대기원시보에 녹음파일과 녹음에 대한 설명을 함께 제보해, 2006년 9월 13일 당시 상무부장에 있던 보시라이가 중공 원자바오총리를 수행해 독일 함부르크를 방문했을 때 독일 주재 중공대사관의 한 일등비서관과의 전화통화에서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생체장기적출 명령은 장쩌민이 하달한 것이라고 직접 승인했음을 폭로했다.
 
아래는 전화 녹음 대화 및 설명이다.
 
 
녹음보시라이장쩌민이 파룬궁수련생 생체장기적출을 명령했다고 스스로 폭로
 
보시라이에 대한 공개재판이 열렸지만 중공 고위층이 여전히 보시라이의 진정한 죄악을 감추고 있어 대중의 분노를 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2006년 9월 30일 당시 상무부장 자리에 있던 보시라이의 독일 함부르크 방문 시 녹음을 공개하는 바이다녹음에서 보시라이는 장쩌민이 살아있는 파룬궁수련생 몸에서 장기를 적출할 것을 명령했음을 승인했다보시라이 본인의 목소리가 확실한바 음성분석 관련 최고 검증기관의 검증을 통과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녹음 중 독일 주재 중공 대사관의 일등 비서관이라 자칭한 사람이 보시라이에게 누가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생체장기적출 명령을 하달했는가라고 질문한다아래는 전화녹음 기록이다.
 
전화 교환원안녕하세요(저녁인사). 함부르크 아틀란틱 캠핀스키(Atlantic Kempinski) 호텔입니다제 이름은 ×××(녹음에서는 독일어 David Monte 의 발음처럼 들림)입니다.
 
일급 비서관안녕하세요(저녁인사). 5번방을 연결해주세요아니 452호요.(녹음에서는 독일어 452 발음처럼 들림)
 
전화 교환원찾으시는 고객님 성은 무엇이죠?
 
일등 비서관보입니다.
 
전화 교환원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보시라이여보세요여보세요여보세요누구세요?
 
일등 비서관보시라이 부장님이세요?
 
보시라이당신은 누구세요?
 
일등 비서관대사관인데요저는 대사관 일등 비서관입니다.
 
보시라이.
 
일등 비서관긴급한 일이 좀 있어서요오늘 오후 독일 외교부에서 저희에게 한 가지 사실을 해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보시라이.
 
일등 비서관다름 아닌말하자면 당초 부장님께서 랴오닝성 성장 직에 있을 때왜냐하면 이것은 내일 회견과 관련되는 것이기에 그들은 규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즉 당신께서 애초 랴오닝성 성장 직에 있을 때 장쩌민 즉 장주석이 내린 명령인지아니면 당신께서 참여한 것인지요다시 말해 파룬궁수련생을 생체장기적출하는 일에 관해서입니다당신의 명령입니까 아니면 장쩌민의 명령인지요?
 
보시라이장 주석이야!
 
일등 비서관그들 독일외교부에서는 사실을 대조 확인하려 합니다다시 말해만약 당신께서 이 일에 참여했다면 그들은 일부 회견에 있어그들이 출석하는 규정에 대해 일부 변동이 있을 것입니다그것은 왜냐하면 파룬궁에서 자료 한부를 제출했기 때문에......(보시라이가 말을 끊음)
 
보시라이더 말하지 말라당신은 당신네 마대사(당시 독일 주재 중공대사 마찬룽을 지칭)를 찾아 말해.
 
일등 비서관아니이 일은 즉시 그들이 오늘 오후 금방 제출했고우리에게 각서를 보내왔는데요그래서요(또 한 번 보시라이가 말을 잘라 버림)
 
보시라이당신은 마대사를 찾아라나를 찾지 말고이 일을 그래 당신네 마대사가 처리할 수 없단 말인가?
 
만약 중앙 고위층에서 계속해 보시라이의 진정한 죄악을 은폐한다면 나는 사람을 더욱더 놀라게 하는 관련 증거를 공개할 것이다중국의 군대무장경찰병원공안감옥노동교양소정치법률위원회는 모두 파룬궁수련생의 생체장기적출 죄악에 가담했다가담한 자들이 매우 많은데 여기서 또 그러한 가담자와 내막을 아는 사람들이 양지를 위해자신과 중화민족의 미래를 위해 용감하게 증거를 폭로할 것을 호소하는 바이다!
 
바오광(鲍光)
 
 
파룬궁 박해의 최선봉에 서다
 
1999년 7월 장쩌민은 (), (), ()’을 수련하는 파룬궁 수련단체(群體)에 대해 집단학살적인 박해를 발동했다박해초기 중앙 고위층성위(省委), 부위(部委급 고위 관리로부터 각지 지방정부 관리를 포함한 일반 민중에 이르기까지 도리어 소극적인 대처와 저지의 태도를 보였다왜냐하면 사람들은 심신건강과 사회도덕의 승화에 이로움을 준 파룬궁의 공로에 대해 보편적으로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쩌민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만 했다같은 해 8그는 랴오닝 순방 시당시 다롄(大連시장에 재임 중인 보시라이에게 자신의 의도를 비쳤다. “자네가 파룬궁을 대함에 마땅히 강경한 표현을 보여야만 비로소 승진할 밑천이 있게 될 것이야.” 이리하여 보시라이는 다롄에서 대형 감옥과 노동교양소(이하 노교소)를 새롭게 확충하고 건설해베이징에 평화적 청원을 하러 갔다가 체포된 파룬궁수련생을 그곳에 대량 수용해 박해했다그는 일찍이 공안과 국가안전부 요원들에게 파룬궁에 대해 죽도록 호되게 족치라고 지령을 내린 바 있다보시라이는 또 다롄에서 솔선하여 생체장기적출과 시신가공을 진행해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육체를 소멸하라는 장쩌민의 집단학살 정책을 추진·실시함으로써 박해의 최선봉이 되었다.
 
파룬궁수련생들의 선혈을 밟고 보시라이는 랴오닝성위원회에 들어갔고 잇달아 성위부서기,대리 성장성장으로 발탁되었다그사이 그는 10억 위안을 투자해 전 성범위내에서 감옥개조를 진행했다이 중 선양(瀋陽마싼자(馬三家노교소에만 5억의 거액을 투자해 마싼자 노교소를 참혹하기 그지없는 혹형고문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사악의 간판모델로 만들었다선양은 또 파룬궁수련생 생체장기적출 죄악이 가장 창궐한 곳이었고 다롄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신가공기지이기도 하다.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박해와 무고한 인명을 수없이 살해한 죄과로 보시라이는 장쩌민에 의해 박해를 유지하고청산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획한 정변 후의 권력 후계자로 지목되었다하지만 이 음모는 도리어 2012년 2월 왕리쥔이 미국영사관에 도피하면서 폭로되었고 따라서 수포로 돌아갔다.
 
인간지옥마싼자 노교소
 
2013년 4월 6, 2만자에 달하는 마싼자를 걸어 나오다라는 조사보고가 대륙에서 전해졌다이 보고는 마싼자노교소 반인류 혹형의 검은 내막의 일각에 대해 폭로한 것이다비록 마싼자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기로 일찍부터 해외에서 악명이 자자했지만국내 매체에 의해 실증됨으로써 여전히 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했다. AP 통신, ‘뉴욕타임즈’, BBC, ‘캐나다 내셔널 포스트’, 미국의 소리프랑스 방송독일의 소리 등 국제 저명 매체가 잇달아 이를 질책하면서 마싼자는 독일 나치수용소와 마찬가지로 이미 역사의 치욕 기둥에 박혀 있다고 지적했다.
 
다롄 파룬궁수련생 왕윈제(王雲潔)는 일찍 노교소 1대대에서 각종 비인간적인 학대에 시달렸다그의 오른쪽 유방은 악독한 경찰에 의해 전기 방망이로 전기충격을 당해 상처가 짓물러져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그녀는 결국 2006년 7월 세상을 떠났다.
 
랴오닝 번시(本溪파룬궁수련생 신수화(信淑華)는 마싼자노교소 2(二所)의 죄악을 폭로한 바 있다악독한 경찰은 여성 파룬궁수련생을 강간한 후 발로 잔인하게 음부를 걷어찼다.칫솔 3개를 치모가 밖을 향하게 한데 묶은 후 파룬궁수련생 음부에 넣어 마구 쑤셨고 또 전기방망이까지 음부에 넣어 전기충격을 가했다.
 
뉴욕타임즈의 계약 촬영사 두빈(杜斌)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마싼자 노동교양소의 여인(小鬼頭上的女人)’에서 파룬궁수련생 류샤(劉霞)는 자신이 당한 불행을 진술했다. “혹서에 솜이불을 감고 뙤약볕에서 장시간 뛰도록 강요당하고혹한에는 홑옷을 입고 얼음위에서 장시간 쭈그리고 앉도록 강요당한다입에서 피가 흐르고 음부에서 피가 흐르며그야말로 피감옥(血牢)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혹형고문을 공로로 삼아 마싼자는 중공이 전국에서 파룬궁수련생을 전향시키는데 있어 우수단위로 선정되었다악행을 한 교도관들은 잇달아 장쩌민보시라이로부터 상장을 수여 받았다예를 들어 2소 소장 수징(蘇境)은 어느 한번 베이징으로부터 상금 5만 위안을 타왔고부소장 사오리(邵力)는 3만 위안을 탔다각 대대장들도 모두 상금을 받았는데 전체 감옥 교도관들은 단체 2급 영웅 모범으로 선정됐다마싼자 뿐만 아니라 보시라이 관할 하에 있는 다베이(大北)감옥장스(張士)교양원룽산(龍山)교양원다롄교양원 등도 모두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인간지옥이다.
 
솔선해 파룬궁수련생 생체장기적출 가담
 
보시라이는 다롄에서 솔선해 장기를 생체적출당한 파룬궁수련생의 장기매매를 진행했으며,아울러 시신를 훔쳐 팔았다그 후 이 죄악은 신속히 전국에로 만연되었다중공 군정치법률위원회 계통병원(군대무장경찰지방 병원 포함), 마피아 장기 브로커들의 연합 하에 각지의 군사시설집중영감옥노동교양소간수소와 임시 감금시설에서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파룬궁수련생의 장기를 생체적출하고 훔쳐 팔고 있는 죄악이 보편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보시라이의 유능한 인재라고 불렸던 왕리쥔의 공식 이력서에는 이러한 경력이 적혀 있다. “2003년 5월부터 2006년 6월까지 당시 진저우(錦州)시 공안국장으로 재직 중이었던 왕리쥔은 진저우시 공안국 현장 심리연구센터를 설립해 약물주사 후 장기이식과 상처 없는 해부등 연구를 진행했다. 2006년 9월 해당 연구센터는 중국 광화 과학기술 기금회 신기록 특별 공헌상을 수상했다왕리쥔은 당시 수상 축사에서 우리의 과학기술성과는 수천개의 현장 집약 결정체이자 아주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한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3년이 되지 않는 시간에 해당 센터는 수천 건의 장기이식과 인체실험을 완성했다!”
 
정부 측 데이터 발표에 따르면, 2000년 이전의 6년 간 중국은 1만 8천여 건에 달하는 이식수술을 진행했으나 2005년에는 겨우 1년 사이에 이미 2만 건에 달하는 이식수술을 진행했다. 2000년부터 2005년 사이에 이루어진 장기이식은 버섯구름 모양의 폭발적인 성장을 보였고 이는 중국을 단번에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장기이식 대국이 되게 했다
 
미국의 베테랑 탐사전문기자이자중공의 파룬궁수련생 생체장기적출을 폭로한 책 국가가 장기를 약탈하다의 저자 중 한명인 에단 구트만(Ethan Gutmann)의 독립조사에 의하면 중공이 살아있는 파룬궁수련생의 몸에서 장기를 강제 적출한 죄악은 2006년에 최고봉에 달했고 2008년에 이르러서는 최소한 6만 5천명의 파룬궁수련생들이 생체장기적출로 희생됐다.”고 밝혔다.
 
여러 국가에서 고소당해
 
하늘의 그물은 매우 넓고 성글지만 악한 짓을 저지른 자는 결코 법망을 벗어날 수 없다. 2003년 11, 6개 국가의 41명 파룬궁수련생들이 독일 연방 최고 검찰원에 제기한 형사고소에서 보시라이는 피고인의 명단에 올랐다그가 고소당한 죄명은 집단학살죄반인류죄혹형죄였다.
 
같은 해 4월 20보시라이는 상무부부장이 된 후 첫 해외방문으로 중공 부총리 우이(吳儀)를 수행해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다음날 국제 비정부 기구는 미국 국토안전부에 서한을 보내 보씨를 미국 국경 내에서 추방할 것을 요구했다셋째 날보시라이는 호텔에서 미국법원이 보낸 파룬궁박해 관련 고소장을 받아야 했다.
 
2007년 11월 5보시라이가 궐석한 채 진행된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주 고등법원 재판에서 법원은 피고 보시라이에게 패소판결을 내려 원고인 파룬궁 수련생의 손을 들어줬다.
 
2009년 11스페인 국가법원은 형사소송절차를 정식 적용해 집단학살죄’ 및 혹형죄로 장쩌민뤄간(羅幹), 보시라이자칭린(賈慶林), 우관정(吳官正등 5명의 파룬궁 박해 원흉들을 기소했다.
 
파룬궁 박해 원흉들은 거리를 지나는 쥐’ 신세가 되었다장쩌민저우융캉뤄간보시라이 등 30여명의 중공 고위 관리는 세계 수십 개 국가에서 파룬궁수련생들에 의해 반인류죄’, ‘혹형죄’, ‘집단학살죄’ 등의 혐의로 법정에 고소당했다또한 보시라이는 미국영국캐나다.독일아일랜드 등 30여개 국가에서 고소당했다.
 
설사 박해가 여전히 진행 중인 중국대륙이라 할지라도현재 보시라이구카이라이(谷開來),왕리쥔 등 일찍이 안하무인격이었던 박해자들은 잇달아 낙마 당하고 재판을 당하고 있다.
 
해외 분석가들은 보시라이와 장쩌민이 중공 국가기구를 이용해 파룬궁을 박해한 그 죄악은 이미 중공과 한데 묶어져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비록 중공 현임 공산당 집권자가 당 보위’ 차원에서 여전히 중공의 반인류 죄행을 감추고 있지만가로막을 수 없는 천상의 변화 하에 갈수록 많은 내막을 아는 자들이 걸어 나와 그 검은 내막을 폭로할 것이다중공은 현재 민중의 버림을 받으면서 최후의 멸망으로 걸어가고 있다무릇 용서 못할 죄를 저지른 박해자든 하늘에 사무치는 이 죄악에 대해 종용한 자든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역사의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이다.
 
 
 
문장발표: 2013년 8월 31
문장분류해외소식지역보도
 
명혜망
미국 매사추세츠주 화교 “우리는 파룬궁을 지지해요”


[밍후이왕] (밍후이 기자 청더 매사추세츠주 퀸시 보도) 2013년 8월 18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퀸 시는 연례 추수감사절 축제를 개최했다. 파룬궁수련생들이 활동에서 전시판을 설치하고 공법시연하며,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수련생들의 장기를 생체 적출한 사실을 폭로했는데 많은 관심을 끌었다. 시민들은 잇달아 서명으로 중공을 비난했고 이런 전대미문의 참상과 죄행을 저지할 것을 희망했다.


파룬궁수련생(오른쪽)이 행인에게 자신이 중국에서 당했던 박해 경험을 진술하고 있다


시민들이 서명으로 중국공산당의 생체장기 적출을 비난하고 있다


푸에르토리코에서 퀸시로 얼마 전 이사 온 한 젊은 여성은 파룬궁수련생에게 그녀는 현재 일종의 정신적 신앙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파룬궁에 매우 관심을 가졌고 전시판의 진상자료를 자세히 읽은 후 일부 자료를 선택하며 수련생에게 가격이 얼마냐고 물었다. 이런 자료들 모두는 수련생들이 자원적으로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공급하고 기증하는 것이라는 것을 듣고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믿기 어려워했다. 수련생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후 자신의 변화 및 파룬따파는 우주의 최고 특성인 ‘진선인 (眞, 善, 忍)’을 기본 원칙으로 하는 수련공법이라는 것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파룬궁수련생들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박해 및 생체장기적출 죄악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녀는 진상을 들은 후 즉시 중국공산당의 잔혹함을 비난하며 서슴없이 박해반대 청원서에 서명했고 동행한 남자 친구에게도 청원서에 서명하도록 격려했다.

한 인도 남성은 격동해서 파룬궁 부스에서 각종 자료를 찾았다. 그는 파룬궁수련생들이 파룬궁 진상을 전시한 것에 매우 감사했다.

여러 민족으로 이뤄진 한 무리 여성들은 파룬궁부스에 찾아와 공법시연을 구경한 후 평화로운 5장 공법에 매우 흥미를 느꼈고 파룬궁을 배우려 했으며 또한 연공장 장소를 문의했다. 수련생이 중공의 생체장기적출에 대한 사실을 진술 한 후 그녀들은 모두 서명으로 생체장기적출을 비난했다.

한 젊은 부부는 수련생에게 “우리는 일찍이 중국에서 거주한 적이 있기 때문에 생체장기 적출은 어떤 일인지를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청원서에 즉각 서명했다.

갈수록 많은 화교들이 파룬따파에 대해 바른 인식을 가졌다. 많은 화교 학생들은 수련생이 해설하는 박해사실을 들은 후 모두 서명으로 중국공산당의 폭행을 비난했다. 한 화교 여성은 서명한 후 말했다. “중국공산당은 매우 나쁩니다! 당신들이 힘내기를 바랍니다! 힘내세요!” 한 노년 화교 부부는 파룬궁부스를 지나며 두 손을 흔들며 “우리는 파룬궁을 지지합니다! 우리는 파룬궁을 지지합니다!”라고 말했다.


문장발표: 2013년 8월 23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8/23/278556.html
명혜망
【신전문화】 상유심생(相由心生)


글/약수(若水)정리


【명혜망 2009년 11월 26일】 ‘상유심생(相由心生)’이란 단어는 신전문화(神傳文化)에서 불도(佛道) 양가가 모두 사용하는 말이다. 여기서 ‘상(相)’이란 일반적으로 사물의 표면형식을 가리키는데 바로 사람들이 일상생활 중에 보게 되는 각종 사물의 표상(表象)이다. 이런 표상은 변화가 무쌍하며 모두 사람마음의 차이로 말미암아 서로 다른 표현 상태를 나타낸다.


불가에서 ‘상유심생’을 말하는 것은 주로 중생들에게 “눈으로 볼 수 있는 물건이 사실은 그런 물건이 아니며(可見之物,實爲非物)” “물과 일이 모두 텅빈 것으로 사실은 마음의 장애이다. 속인의 마음은 곳곳이 감옥(物事皆空,實爲心瘴,俗人之心,處處皆獄)”임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상(相)’은 가상(假相), 허상(虛相), 환상(幻相)이며 진상(眞相), 실상(實相)이 아니다. 때문에 사람들에게 ‘상’에 집착해 세간 만물에 얽매이지 말아야 하며 이곳에서 벗어나 행복의 피안에 도달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상술(相術 관상학)에서 ‘상(相)’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면상(面相 얼굴 관상)을 지칭하며 또 전체적인 모습을 지칭하기도 하는데 ‘상유심생’이란 바로 마음의 경지가 어떠하면 곧 그에 상응하는 면상(面相)이 있다는 것으로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얼굴 부위에 특징적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사고전서(四庫全書)》에서는 “사람의 상을 보기 전에 먼저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사람의 목소리를 듣기 전에 먼저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며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기 전에 먼저 사람의 마음을 관찰한다.”고 했다. 또한 ‘마음(心)’이 사람의 면상을 결정함을 강조했고 면상의 변화 역시 ‘마음’의 변화에 따라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배도(裴度), 배장(裴章)의 이야기가 가장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당나라 때 배도(裴度)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어릴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의기소침했다.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일행(一行) 선사를 만났다. 대사는 배도의 얼굴을 보니 그의 눈빛이 겉으로 떠 있고 세로주름이 입까지 연결되어 밖에서 걸식하다 굶어죽을 상이었다. 때문에 배도에게 열심히 노력해 선을 닦으라고 권고했다.


며칠 후 배도는 향산사(香山寺)에서 한 부인의 옥대(玉帶)를 주워 주인에게 돌려주었고 그녀 부친의 생명을 구해주었다.


며칠 후 또 우연히 일행선사를 만났는데 대사가 보니 배도의 눈빛이 맑았고 얼굴 상이 완전히 변해 있었다. 대사는 이에 장차 반드시 외직에 나가면 장군이요 들어오면 재상이 될 거라고 알려주었다. 배도는 일행선사가 자신에게 농담을 하는 거라고 여겼다. 일행선사는 “7척의 몸이 7촌의 얼굴만 못하고 7촌의 얼굴이 3촌의 코만 못하며 3촌의 코가 한 점 마음만 못하다.”라고 말하면서 그의 선행을 칭찬했다.


배도는 과연 헌종(憲宗), 목종(穆宗), 경종(敬宗), 문종(文宗) 4대에 걸쳐 조정의 중신이 되었다. 말 그대로 “문무를 겸비”해 당시 중국에서 공이 가장 높았으며 널리 사방에 명성이 퍼졌다. 사서(史書)에서는 그를 가리켜 “네 임금을 모시면서 시종 덕을 완전히 했으며”, “그 위엄과 명예가 곽자의(郭子儀 역주; 안록산의 난을 토벌하고 토번의 침략을 물리친 당나라 최고의 공신)와 비할만하다.”고 평가했다. 배도는 5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들 명성이 혁혁했고 큰 업적을 남겼다.


한편 배장(裴章)은 산서성(山西省) 하동(河東)사람이었다. 그의 부친은 신승(神僧) 담조(曇照)법사와 절친한 벗이었다. 법사는 관상에도 정통했는데 배장의 상을 보자 천정(天庭 이마)이 넓고 지각(地閣)이 둥글고 원만해 장차 공명과 사업을 이루고 큰 업적을 남길 것으로 보았다.


배장이 20세가 되었을 때 이(李)씨를 아내로 맞았다. 한 해가 지난 후 태원(太原)에서 관리가 되었으며 아내는 집에 남아 있었다. 수년이 지난 후 배장이 다시 담조 법사를 만났는데 법사는 그의 관상이 크게 변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천정이 기울어져 함몰되었고 지각은 예리하게 깎였으며 손바닥 가운데 검은 기가 에워싸고 있었다.


법사는 그에게 장차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이 닥칠 것임을 알려주고 마땅히 근신하며 방비하라고 했다. 아울러 대체 어떤 일을 저질러 덕을 손상시켰는지 물었다. 배장이 자신이 수년간 저지른 행동에 대해 돌아보니 오직 태원에서 다른 여인과 사사로이 정을 통한 것 외에는 뚜렷한 잘못이 없었다. 비록 윤리에 어긋난 일이긴 했지만 양심에 거리끼는 다른 일은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담조법사가 탄식하며 “너는 본래 밝은 미래가 있었지만 어쩌다 진중하지 못해 다른 여인과 음행을 저질렀구나. 네가 이렇게 스스로 복과 덕을 해치는 짓을 저질렀으니 실로 애석하기 그지없다.”라고 말했다. 얼마 후 배장은 정말 재앙을 만났다. 목욕 도중 그의 부하가 들어와 칼로 배를 찔렀다. 배장은 오장육부가 모두 배 밖으로 나와 사망했다.


고대에 한마디 속담이 있는데 “마음이 있으되 상이 없으면 상은 마음에서 생겨난다. 상이 있으되 마음이 없으면 상은 마음에 따라 멸한다.” 이 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한 사람의 외모는 그의 마음의 선악(善惡)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한의학과 현대 생리학, 심리학의 관점에서 볼지라도 ‘상유심생’의 도리는 아주 간단하다. 한 사람의 외모는 형(形)과 신(神) 두 부분으로 조성된다. 외형이 순전히 생리적인 특징에 속한다면 정신은 생리적인 요소를 포함하긴 하지만 후천적인 수양에 의해 결정된다. 생활 속의 일거일동(一擧一動) 일사일념(一思一念)을 오랫동안 유지하다 보면 사람의 얼굴에서 응고되는데 이를 일러 “안에 있는 것은 반드시 밖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한다.


마음에 생겨나면 반드시 신체에 작용하게 마련이다. 만약 내심이 평화롭고 안정적이며 정신이 맑고 상쾌하며 너그럽고 광명정대하다면 기혈이 조화를 이루고 오장이 편안해지며 기능이 정상화되어 신체가 건강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반드시 얼굴에 빛이 나고 표정이 밝아져 보는 사람들도 유쾌한 느낌을 주고 자연스레 친하게 사귀고 싶게 만든다.


이렇게 ‘상(相)’과 ‘심(心)’의 관계를 본다면 상(相)은 표(表)로 외부적인 표현이고 심(心)은 리(裏)로 내심의 활동이다. 상(相)은 환상적이며 실질적이지 못하며 피동적인 상태에 처한 것으로 심의 외재적 표현에 불과하다. 심이 어떤 상태이면 상도 그런 상태가 되는데 상은 심의 변화에 따라 변화한다. 이를 일러 “환경이 마음에 따라 변한다(境隨心轉)”, "상이 마음에 따라 변한다(相隨心遷)"라고 한다.


이로써 볼 수 있다시피 ‘심’은 ‘상’의 원인이며 ‘상’은 ‘심’의 결과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마음으로 스스로를 주재하지 못한다면 이는 피동적으로 외부 환경에 영향 받고 이끌려 “마음이 환경에 따라 변한” 것이다. 만약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럼 외부 환경에 변화가 발생하지 않도록 억제할 수 있다. 때문에 석가모니는 세간 만물은 모두 변화한 상(化相)이며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만물이 모두 움직이지 않고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만물이 모두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로써 보건대 환경이건 외모건 모두 자신의 ‘마음’이 결정하는 것으로 ‘상’은 ‘심’의 거울이다. 사람은 어떤 ‘마음’의 경지가 있어야 하는가? 순자(荀子)는 “형을 관찰함은 마음을 관찰하는 것만 못하며 마음을 논하는 것은 덕을 논하는 것만 못하다(相形不如相心,論心不如論德).”라고 했다.


고대에 가장 영향력이 컸던 관상서적인 《태청신감(太清神鑒)》에서는 “덕을 행하는 것이 우선이고 행동은 표가 된다”, “덕이 형보다 앞서고 형은 덕보다 나중에 위치한다”, “악을 없애고 선을 좇으면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사람 마음속에 ‘眞善忍’을 담고 진정으로 ‘眞善忍’에 따라 일을 행할 때면 주변 사람들도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명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독자 여러분들도 자신의 내심에 관심을 갖고 한번 공력을 들여 보는 것이 어떠한가?


문장발표 : 2009년 11월 26일

문장분류 : 천인사이>신전문화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11/26/213304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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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法輪功)으로 잘 알려진 法輪大法(파룬따파)는 리훙쯔(李洪志)선생께서 창시하신 고층차의 불가(佛家)수련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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