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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원시보
침묵에서 저지로 나설 때
中 강제장기적출반대서명 한국인 가장 많아

[스페인 국립장기이식기구 라파엘마테산즈 대표 인터뷰 읽어보기]

2일 경기도 안양역 부근에서 젊은 시민 2명이 UN청원을 위한 서명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전경림 기자)

 

“이렇게 심각한지 몰랐습니다. 슬프네요.” “생명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침묵에서 저지로서 나설 때입니다” “인류의 정의를 바로 잡읍시다” 중국 내 파룬궁 수련생들로부터의 강제장기적출을 막아야 한다는 각성의 소리가 국내외로 커져가고 있다.


국제의료인권단체 다포(DAFOH: Doctors Against Forced Organ Harvesting 강제장기적출에반대하는 의사들의 모임)와 공조해 활동하는 한국 내 단체  IAEOT (국제장기이식윤리협회회장 이승원)는 7월 20일부터 전국 20개 도시에서 강제장기적출 반대 서명운동을 온·오프라인에서 동시 진행 중이다.


지난 3개월여 동안 서명에 동참한 이들은 총 23만 3416명(11월 1일 기준)으로 전 세계 서명인원 수 50만여 명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다포에 가입한 한국인(의료인 포함)도 100명을 넘었다. 짧은 기간 높은 성과를 이뤄낸 한국인의 활발한 서명은 세계에서도 주목하는 상황이다. 의학박사 톨스턴 트레이(Torsten Trey) 다포 회장은 한국인의 높은 서명율에 대해 “서명에 대한 한국인들의 지지율은 아주 높으며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마치 한국인들의 정의와 윤리에 대한 가치 표준을 드러내는 성명서와 같다. 이는 우리 다포에 큰 격려가 되고 그외 다른 나라들의 귀감이 된다”고 밝혔다.

 

‘DAFOH’에 한국의사들도 가입 
의료인 서명 4천명 육박


서명인들 중 눈에 띄는 것은 많은 의료인들이 서명했다는 점이다. 한의사, 의사, 치과의사 등 서명운동에 참여한 의료인은 3885명(10월 29일 기준)에 달한다. IAEOT는 최근 의료계의 협조 속에 소화기내시경학회, 외과의사학회, 대한방사선종양학회,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비만학회 등 각종 학회 세미나와 공식행사 등에서 서명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의사들도 이런 흐름에 동참해 지난 9월 8일 열린 한의사 사원총회(5000여명 참여)에서의 열띤 호응에 이어, 지역 한의사 보수교육 현장에서도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예비의료인인 의과대학 학생들도 사회봉사 활동의 일환으로 서명 운동 참여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IAEOT 이승원 회장은 크고 작은 의사 회의에서 중국의 불법 강제 장기 적출 실상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이 회장은 “아직 많은 의료인들이 참여하지 못했지만, 실상을 더 많은 의료인들에게 알려서 자발적으로 서명에 동참할 수 있도록 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 역시 서명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노 회장은 올해 3월 캐나다 인권변호사 데이비드 킬고어 전 아태담당 국무장관의 방문을 받고 “최근 중국을 방문해 현지 전문가들로부터 매년 중국에서 시행되는 장기이식 수술 건수가 약 1만 건에 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기증자가 저렇게 많을 수 있나 의아했다”며 강제장기적출 반대 활동에 협력의 뜻을 밝혀왔다.

 

“서명용지 주세요. 받아 올게요”
시민들 직접 팔 걷고 나서


일반 시민들의 활동은 더 적극적이다. 자신의 서명 뿐 아니라 가족, 친지, 직장 동료에게 서명용지를 전달해 직접 받아오는 시민들도 부지기수다. IAEOT의 한 자원봉사자는 “본인이 서명하고 서명용지를 들고 가서 1000명에게 서명을 받아오신 분도 있었다”며 “의욕적으로 서명을 직접 받아오겠다고 하시는 분들은 매우 많다”고 말했다. 70~8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활동하는 길거리 서명 부스 뿐 아니라 자발적으로 무형의 부스가 속속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직장인 허 동(부천시, 49) 씨는 “서명부스에서 서명에 참여한 모 고등학교 학생회장은 학교 학생들에게 교내 방송을 통해 알리면서 직접 서명을 받고 있고, 서명부스를 직접 만들어 활동하고 싶다는 분도 계셨다”고 말했다. 


수원에서 서명운동을 접한 뒤 직접 서명용지를 들고 서명을 받으러 다녔다는 안광호(일산시·42) 씨는 “중국에서 파룬궁 수련자에 대해 생체장기적출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윤리 도덕적으로 세상이 각박하다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생명을 이용한 비윤리적 행태에 대해 경종을 울려야겠다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 씨는 의료인들을 찾아다니며 자발적으로 서명을 받으러 다녔고, 40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세계 32개국의 시민들이 참여한 서명은 9월 29일 현재 총계가 44만 3843명으로 집계됐다. 대륙 별로 살펴보면 아시아 27만 2136명, 호주 6600명, 유럽 9만 4803명, 북미 6만 7804명, 인터넷 2500명이다. 사진은 DAFOH로 도착한 세계 각국의 서명지들.(DAFOH 제공)


“강제장기적출반대”
한국인 정의감 살아나고 있다


DAFOH가 국제인권단체인만큼 이번 서명은 미국, 캐나다, 영국 등 32개국에서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온라인은 IAEOT 홈페이지(www.ethicalkorea.org)에서, 오프라인은 서울 강남역, 인사동, 남부터미널 등지와 부산, 대구 등 20여 개 지방 도시에 부스가 설치돼 있다.


IAEOT 이승원 회장은 “정의롭고 열정적인 한국인들이 이번 서명에 많이 동참하고 있다”며 “장기적출 사실을 많이 알려 자발적인 서명이 더 늘어나 남은 한 달 기간 동안 박차를 가해서 서명인원이 30만 명을 훌쩍 넘어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장기적출 사실에 대해 매스컴을 통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며, “언론에서 이 상황에 대해 더 잘 알릴 수 있다면 서명 숫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남은 한 달 동안 의료인 학술대회를 통해 서명운동을 촉진할 계획이다.


강제장기적출을 반대하는 UN 청원용 서명운동은 11월 30일까지 계속된다. DAFOH는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인 오는 12월 10일 서명을 비롯한 강제장기적출을 반대하는 청원을 제출할 계획이다.


한편, DAFOH(강제장기적출에반대하는 의사들의 모임)은 2007년부터 강제 장기적출에 반대하는 의사들을 주축으로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아일랜드, 노르웨이, 호주, 타이완, 인도 등에서 결성됐다.

 

DAFOH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제네바 선언, 헬싱키 선언 등 의료윤리 강령에 따라 최악의 의료 부정의(不正義)라 할 수 있는 강제장기적출을 막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오고 있다.

 

북한 인권운동가 ‘수잔 숄티’ 
“생체장기적출 절대적으로 믿는다”

 

북한 인권운동가 수잔 숄티 디펜스 포럼재단 대표가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중국의 생체장기적출에 대해 “(생체장기적출)이 실제 발생했을 것이라고 절대적으로 믿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월 28일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린 강연에서 수잔 숄티 대표는 탈북자 가족의 아이들이 장기이식 목적으로 중국인들에게 팔려 간다는 문제를 알고 있냐는 질문에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들었지만,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 됐다”고 밝혔다.


수잔 숄티 대표는 “파룬궁 수련자들에 대한 강제장기적출에 대해 그들이 제기하는 문서나 증거자료는 여러 해 계속 거론돼왔고, 사람들은 아닐 것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일어나고 있었다”며 “최근 미 국무부 보고서나 문서를 보며 그것이 절대 사실이라고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숄티 대표는 2년 전 중국에 관한 미 국무부 보고서에서 중국의 강제장기적출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문서가 있었다며, “그게 바로 여러 해 동안 파룬궁 수련자들이 주장했지만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았던 것들이고, 이제 우리는 그 모두가 완전한 사실이었음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한편, 중국의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생체강제장기적출은 파룬궁 박해가 시작됐던 1999년 이후 비정상적으로 치솟은 장기이식건수와 파룬궁 수련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의심돼 오다 2006년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캐나다 국제 인권변호사 데이비드 메이터스와 8선 의원인 데이비드 킬고어는 독립 조사단을 결성, 52가지 증거를 찾아 ‘중국 내 강제장기적출 의혹에 관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조사 수집한 증거를 토대로 ‘Bloody Harvest’가 출판되고, 이듬해인 2007년에는 국제 NGO 중국의 강제장기적출을 반대하는 의사들의 모임 다포(DAFOH)가 공식 출범했다. 지난 2월 국내에 출간된 ‘국가가 장기를 약탈하다: State  organs’는 이런 장기 약탈에 중국 국가기관이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최초로 밝힌 책이다.


조윤덕 기자 virtue@epoch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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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 변화하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 <大紀元>.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대기원시보
“아이가 욕해도 부모는 경청해야”
「바라지 않아야 바라는 대로 큰다」 저자 신규진

유독 대한민국에는 다른 아이들보다 뒤쳐질까봐 걱정하는 부모가 많다. 영어 유치원 3년에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에 국·영·수 선행학습. 악기나 운동도 ‘아이가 학교 가서 기죽지 않게 하기 위해’ 가르친다. 업체의 이론은 자극적이고, 주변엄마들의 입김도 거세다.

 

그 틈바구니에서 휘말리다보면 가치판단이 흐려지는 법. 혹시 몰라 시켜본 공부에 내 아이가 따라주지 않으면 오만가지 걱정이 태산이다. 밑도 끝도 없는 거센 물살에 휩쓸려 있는 듯, 대한민국에서 부모 노릇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저자는 “걱정은 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교육은 ‘바라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15년간 4000여 명을 상담해온 현직과학교사 신규진 씨는 그 동안의 수많은 상담사례를 정리해 <바라지 않아야 바라는 대로 큰다>를 펴냈다. 고등학교 과학교사의 이야기라고 해서 청소년을 둔 부모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다. 부모와 아이, 상담교사의 상담 내용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자신의 모습이 거울같이 드러난다. 자신이 부모 혹은 청소년 중의 하나라고 느낄 만큼 보편적이고 사실적이기 때문이다.

 

'바라지 않아야 바라는 대로 큰다' 저자 신규진 씨. (전경림 기자)

 


“선생님, 00가 잘난 척해서 싫어요.”
“그래? 그럼 한번 웃어줘. 어깨에 힘주는 사람들은 영혼이 가난해서 속이 허한 거다. 누가 큰 소리 치면 웃어줘. 세신 분입니다 하고.”
“성적이 90점 밑으로 떨어졌어요.”
“잘했네. 그래봤자 90점 근처잖아.”
“문제를 틀리면 어떻게 해요?”
“틀리면 되지 뭐. 한두 문제가지고 뭘 그래.”
“장애가 있다고 애들이 괴롭혀요.”
“너는 1급수 물고기, 아이들은 3-4급수쯤 될 걸. 걔들은 무의식중에 순수한 니가 부러운 거야. 정상 아이들도 괴로움이 많아. 하지만 견뎌야지.”
“아이가 자퇴하면 어떡하죠?”
“인생 백년입니다. 학교 일 년쯤 쉬고 가도 늦지 않습니다. 조급하게 가봤자 길이 트여 있지 않다면 서두를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의욕 상실에 멘탈 붕괴에 빠진 아이가 상담실에 오면 가슴의 암 덩이가 눈 녹듯 사라진다. 일탈과 방탕 속에 헤매던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어두운 얼굴은 이내 생기를 얻는다. 저자는 ‘바라지 않아야 한다’며 마치 모든 걸 초탈한 도인처럼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것이 15년 상담 경험에서 추출한 엑기스였다. 자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하는 것, 그리고 생각을 전환하고 아이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바르게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가 가져야 할 기본자세라는 것이다.

 

혼내는 것과 화내는 것
체벌은 회피만 부를 뿐


하지 말라고 말했는데, 똑같은 행동을 연거푸 했을 때 부모는 가슴 속에서 뜨거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이를 위해서 한다지만 스스로 화를 참지 못해 매를 들고 훈육을 시도한다. 하지만, 저자는 화내는 것과 혼내는 것을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화를 낸다면 혼내는 과정에서 2차 갈등으로 점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아이가 진정으로 반성하고 변화되기 보다는 입을 딱 닫고 침묵하거나, 울상 짓고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하거나, 자질구레한 변명을 늘어놓거나, 퉁명스럽게 대꾸하거나, 때로 부모에 맞서 목청을 높이거나 등등이다. 저자는 “혼내거나 화내지 않을 때 아이 스스로 성장하게 된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는 ‘성장과정에서 부모로부터 자주 화풀이를 당하거나 혼난 아이들은 ‘베버의 법칙’에 따라 반응하는데, 동일한 자극이 지속되면 둔감해져서 반응하지 않고, 이전보다 더 큰 자극이 가해져야 반응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체벌과 호통으로 가르치면 아이들은 회피하는 법을 배울 뿐이라는 것. 그는 부모가 자녀보다 더 현명하다는 편견을 버려야  가르침을 뛰어넘어 학습하면서 발전하고 성숙한다고 말했다.

 

잔소리는 한 두 마디
반응은 세심 자상하게


“현장 경험에 의하면 강박증을 보이는 아이들의 경우 부모 또한 강박적이며 질릴 정도로 잔소리를 심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정도껏 하는 한 두 마디는 관심의 표명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잔소리는 그때마다 참기 어려운 고통을 준다”는 것이다. 
과잉보호를 하지 않겠다면서 세심함을 보이지 않는 부모의 아이 역시 존중받고 싶어서 떼쓰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저자는 아이에게 자상하게 설명하지 않는 부모의 태도가 아이의 떼쓰는 버릇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애정을 가지고 차분하게 설명하면 될 일을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귀찮아서가 아니라 아이에게 설명해줘야 한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자녀가 어릴수록 부모는 24시간 편의점이 돼주어야 합니다. 아이는 부모의 반응에서 본능적으로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죠. 존중받는 아이는 떼를 쓸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의도성 있는 칭찬은 금물
진정성있는 표현으로 충분


신 교사는 ‘고래를 춤추게 할 의도로 칭찬하는 것은 칭찬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의도성만 있을 뿐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진정성이 없다면 칭찬으로 자신을 조종하려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것.


“많은 아이들이 눈빛과 표정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전달받을 때 가장 좋아합니다. 말없이 어깨를 감싸준다던지, 머리를 쓰다듬고 간다든지, 따뜻한 물 한잔을 갖다 주는 등…. 입에 발린 말 몇 마디보다 진정성을 느낄 수 있죠.”

 

그는 무한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마치 손주를 그저 예쁘게만 바라봐주는 할머니처럼. 세상이 곧 무너질 것 같다는 학생도 신 교사 앞에선 무지개빛 희망을 품는다. 그는 부모가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손자에게 바라지 않고 허용하는 모습이 돼야 한다고 주문한다. 아이를 자유롭게 해야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손자 앉혀놓고 이야기 나누잖아요. 얘야, 어떻게 하고 싶어? 하는 것 처럼 말이죠. 엉뚱한 대답을 한다 해도 알고 보면 부모님이 몰라서 그럴 뿐 훌륭한 대답도 많습니다. 부모님이 알고 있는 가치관을 너무 많이 가르치다보면 절대 자신보다 아이가 훌륭해질 수 없죠. 그냥 둬야 나보다 더 큽니다.”

소통하려면 경청과 공감


문제 해결은 ‘독서’가 해답


“에잇, XX” 불쑥 튀어나온 아이의 욕설을 듣고 당황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저자 역시 자신 앞에서 이런 욕설을 하는 아이를 맞닥뜨린 적이 있다. OMR카드 기입이 늦은 아이가 종료 종소리를 듣고 시험지를 걷으라는 소리에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다. 권위적인 교사라면 분명 “너 지금 뭐라고 했어? XX?” 라며 화부터 낼 마당이지만, 신 교사는 “다 못썼니?”라며 기다려줬다.

 

교사는 기다려주기만 했을 뿐인데, 학생은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니가 나한테 욕한 게 아니고 스스로 낸 감탄사인데 뭘. 하지만 장소에 주의를 해야되는 건 맞지?”라고 타일렀다. 학생은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에 캔커피를 선생님 책상 위에 조용히 놓고 갔다. 저자는 “아이가 하는 욕도 경청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친구가 자신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면, 왜 무슨 일 있어? 라며 이야기를 들어주겠죠. 만약 부모가 참지 못하고 몇 배의 욕으로 강렬하게 보복한다면 앞에서는 굴복하지만, 힘을 가지면 성질내도 된다는 것을 배우고, 당신도 욕하는데, 어디 얼마나 할지 두고보겠다 생각하죠. 사람은 자기 품위를 지키려면 스스로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걸 깨우치게 마련입니다.”


그는 부모나 교사 모두 권위를 탈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책 속에서 많은 스승을 만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위대한 철학자와 성인의 이야기를 접하면 그 속에서 깨닫고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내담자와 상담할 때 마지막에 “결국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독서밖에 없다”고 맺는다.

 

신규진
홍익대학교병설 경성고등학교 상담교사이자 과학교사


[저서]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학교 상담

자퇴 상담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

한국일보, 여성시대 교육 칼럼 연재

가난하다고 실망하는 아이는 없다

나도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

 


조윤덕 기자 virtue@epoch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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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원시보
침묵에서 저지로 나설 때
中 강제장기적출반대서명 한국인 가장 많아
2013.11.04 18:23 등록

2일 경기도 안양역 부근에서 젊은 시민 2명이 UN청원을 위한 서명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전경림 기자)

 

“이렇게 심각한지 몰랐습니다. 슬프네요.” “생명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침묵에서 저지로서 나설 때입니다” “인류의 정의를 바로 잡읍시다” 중국 내 파룬궁 수련생들로부터의 강제장기적출을 막아야 한다는 각성의 소리가 국내외로 커져가고 있다.


국제의료인권단체 다포(DAFOH: Doctors Against Forced Organ Harvesting 강제장기적출에반대하는 의사들의 모임)와 공조해 활동하는 한국 내 단체  IAEOT (국제장기이식윤리협회회장 이승원)는 7월 20일부터 전국 20개 도시에서 강제장기적출 반대 서명운동을 온·오프라인에서 동시 진행 중이다.


지난 3개월여 동안 서명에 동참한 이들은 총 23만 3416명(11월 1일 기준)으로 전 세계 서명인원 수 50만여 명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다포에 가입한 한국인(의료인 포함)도 100명을 넘었다. 짧은 기간 높은 성과를 이뤄낸 한국인의 활발한 서명은 세계에서도 주목하는 상황이다. 의학박사 톨스턴 트레이(Torsten Trey) 다포 회장은 한국인의 높은 서명율에 대해 “서명에 대한 한국인들의 지지율은 아주 높으며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마치 한국인들의 정의와 윤리에 대한 가치 표준을 드러내는 성명서와 같다. 이는 우리 다포에 큰 격려가 되고 그외 다른 나라들의 귀감이 된다”고 밝혔다.

 

‘DAFOH’에 한국의사들도 가입 
의료인 서명 4천명 육박


서명인들 중 눈에 띄는 것은 많은 의료인들이 서명했다는 점이다. 한의사, 의사, 치과의사 등 서명운동에 참여한 의료인은 3885명(10월 29일 기준)에 달한다. IAEOT는 최근 의료계의 협조 속에 소화기내시경학회, 외과의사학회, 대한방사선종양학회,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비만학회 등 각종 학회 세미나와 공식행사 등에서 서명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의사들도 이런 흐름에 동참해 지난 9월 8일 열린 한의사 사원총회(5000여명 참여)에서의 열띤 호응에 이어, 지역 한의사 보수교육 현장에서도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예비의료인인 의과대학 학생들도 사회봉사 활동의 일환으로 서명 운동 참여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IAEOT 이승원 회장은 크고 작은 의사 회의에서 중국의 불법 강제 장기 적출 실상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이 회장은 “아직 많은 의료인들이 참여하지 못했지만, 실상을 더 많은 의료인들에게 알려서 자발적으로 서명에 동참할 수 있도록 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 역시 서명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노 회장은 올해 3월 캐나다 인권변호사 데이비드 킬고어 전 아태담당 국무장관의 방문을 받고 “최근 중국을 방문해 현지 전문가들로부터 매년 중국에서 시행되는 장기이식 수술 건수가 약 1만 건에 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기증자가 저렇게 많을 수 있나 의아했다”며 강제장기적출 반대 활동에 협력의 뜻을 밝혀왔다.

 

“서명용지 주세요. 받아 올게요”
시민들 직접 팔 걷고 나서


일반 시민들의 활동은 더 적극적이다. 자신의 서명 뿐 아니라 가족, 친지, 직장 동료에게 서명용지를 전달해 직접 받아오는 시민들도 부지기수다. IAEOT의 한 자원봉사자는 “본인이 서명하고 서명용지를 들고 가서 1000명에게 서명을 받아오신 분도 있었다”며 “의욕적으로 서명을 직접 받아오겠다고 하시는 분들은 매우 많다”고 말했다. 70~8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활동하는 길거리 서명 부스 뿐 아니라 자발적으로 무형의 부스가 속속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직장인 허 동(부천시, 49) 씨는 “서명부스에서 서명에 참여한 모 고등학교 학생회장은 학교 학생들에게 교내 방송을 통해 알리면서 직접 서명을 받고 있고, 서명부스를 직접 만들어 활동하고 싶다는 분도 계셨다”고 말했다. 


수원에서 서명운동을 접한 뒤 직접 서명용지를 들고 서명을 받으러 다녔다는 안광호(일산시·42) 씨는 “중국에서 파룬궁 수련자에 대해 생체장기적출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윤리 도덕적으로 세상이 각박하다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생명을 이용한 비윤리적 행태에 대해 경종을 울려야겠다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 씨는 의료인들을 찾아다니며 자발적으로 서명을 받으러 다녔고, 40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세계 32개국의 시민들이 참여한 서명은 9월 29일 현재 총계가 44만 3843명으로 집계됐다. 대륙 별로 살펴보면 아시아 27만 2136명, 호주 6600명, 유럽 9만 4803명, 북미 6만 7804명, 인터넷 2500명이다. 사진은 DAFOH로 도착한 세계 각국의 서명지들.(DAFOH 제공)


“강제장기적출반대”
한국인 정의감 살아나고 있다


DAFOH가 국제인권단체인만큼 이번 서명은 미국, 캐나다, 영국 등 32개국에서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온라인은 IAEOT 홈페이지(www.ethicalkorea.org)에서, 오프라인은 서울 강남역, 인사동, 남부터미널 등지와 부산, 대구 등 20여 개 지방 도시에 부스가 설치돼 있다.


IAEOT 이승원 회장은 “정의롭고 열정적인 한국인들이 이번 서명에 많이 동참하고 있다”며 “장기적출 사실을 많이 알려 자발적인 서명이 더 늘어나 남은 한 달 기간 동안 박차를 가해서 서명인원이 30만 명을 훌쩍 넘어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장기적출 사실에 대해 매스컴을 통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며, “언론에서 이 상황에 대해 더 잘 알릴 수 있다면 서명 숫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남은 한 달 동안 의료인 학술대회를 통해 서명운동을 촉진할 계획이다.


강제장기적출을 반대하는 UN 청원용 서명운동은 11월 30일까지 계속된다. DAFOH는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인 오는 12월 10일 서명을 비롯한 강제장기적출을 반대하는 청원을 제출할 계획이다.


한편, DAFOH(강제장기적출에반대하는 의사들의 모임)은 2007년부터 강제 장기적출에 반대하는 의사들을 주축으로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아일랜드, 노르웨이, 호주, 타이완, 인도 등에서 결성됐다.

 

DAFOH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제네바 선언, 헬싱키 선언 등 의료윤리 강령에 따라 최악의 의료 부정의(不正義)라 할 수 있는 강제장기적출을 막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오고 있다.

 

북한 인권운동가 ‘수잔 숄티’ 
“생체장기적출 절대적으로 믿는다”

 

북한 인권운동가 수잔 숄티 디펜스 포럼재단 대표가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중국의 생체장기적출에 대해 “(생체장기적출)이 실제 발생했을 것이라고 절대적으로 믿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월 28일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린 강연에서 수잔 숄티 대표는 탈북자 가족의 아이들이 장기이식 목적으로 중국인들에게 팔려 간다는 문제를 알고 있냐는 질문에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들었지만,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 됐다”고 밝혔다.


수잔 숄티 대표는 “파룬궁 수련자들에 대한 강제장기적출에 대해 그들이 제기하는 문서나 증거자료는 여러 해 계속 거론돼왔고, 사람들은 아닐 것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일어나고 있었다”며 “최근 미 국무부 보고서나 문서를 보며 그것이 절대 사실이라고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숄티 대표는 2년 전 중국에 관한 미 국무부 보고서에서 중국의 강제장기적출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문서가 있었다며, “그게 바로 여러 해 동안 파룬궁 수련자들이 주장했지만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았던 것들이고, 이제 우리는 그 모두가 완전한 사실이었음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한편, 중국의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생체강제장기적출은 파룬궁 박해가 시작됐던 1999년 이후 비정상적으로 치솟은 장기이식건수와 파룬궁 수련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의심돼 오다 2006년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캐나다 국제 인권변호사 데이비드 메이터스와 8선 의원인 데이비드 킬고어는 독립 조사단을 결성, 52가지 증거를 찾아 ‘중국 내 강제장기적출 의혹에 관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조사 수집한 증거를 토대로 ‘Bloody Harvest’가 출판되고, 이듬해인 2007년에는 국제 NGO 중국의 강제장기적출을 반대하는 의사들의 모임 다포(DAFOH)가 공식 출범했다. 지난 2월 국내에 출간된 ‘국가가 장기를 약탈하다: State  organs’는 이런 장기 약탈에 중국 국가기관이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최초로 밝힌 책이다.


조윤덕 기자 virtue@epoch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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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원시보
서양 한의사(洋中醫)

삽화 권미영

 

사람의 성장에는 여러 단계가 있는 것 같다.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겼던 시절도 있었지만, 나중에 돌아보니 부끄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젊은 시절엔 자존심을 세우느라 몰라도 아는 척, 다른 사람의 충고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특히 한의학을 처음 배울 때 그랬다. 미국에 유학 온 나는 미국인에게서 한의학을 배웠다.


한번은 임상실습을 하려고 중국에 돌아간 적이 있다. 내가 녹색 꽃무늬 비닐 포장에 담긴 일제 침을 꺼내자 평생 은침(銀鍼)만 사용한 어머니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 침은 어떻게 놓는 거니?”라고 물으며 손을 내밀어 합곡혈에 침을 놓아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침관과 침을 꺼내 툭툭 쳤고 침은 가볍게 들어갔다. 침을 뽑으며 득의양양해하는 내게 어머니는 “왜 아무 느낌도 없지?”라며 당신이 쓰시던 중국 침을 꺼내셨다. 그것은 보통 사용하는 침보다 몇 배는 더 굵었고 침관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나는 중국 침은 굵어서 외국인에게 맞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며 일제(日製) 침을 고집했다.


어머니는 내게 침을 놓는 자세를 보여달라고 하셨다. 옆에 있던 작은 오빠가 침을 맞겠다고 나섰다. 아마 내가 사용하는 침의 느낌을 확인해 보고 싶었나 보다. 어머니는 양릉천에 침을 놓아보라고 하셨다. 나는 격자무늬가 그려진 예쁜 고무 밴드로 작은 오빠의 다리에 한번 댔다. 미국 한의대 학생들은 신체 사이즈를 측정하는데 이런 고무 밴드를 사용한다. 위치를 정하고 침을 놓으려 하자 어머니는 엄한 목소리로 “뼈 위에 침을 놓을 작정이냐?”라며 꾸짖으셨다.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이 자리가 바로 방금 측정한 혈자리예요. 교과서에 나오는 것과 조금도 차이가 없다고요”라며 고집을 부렸다.


조심스럽게 혈자리에 침을 놓았지만 작은 오빠는 아프다며 펄쩍 뛰었다. 어머니는 웃으셨고 나는 속으로 부끄러웠다.


어머니는 “통증은 침의 굵기보다 침을 놓는 방법에 달려 있다. 내가 시범을 보여주마”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곧바로 독일산 이침(耳針) 탐측기를 꺼내 들고는 또 득의양양하게 “이 기계는 귀에서 병이 있는 부위를 찾아낼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기계를 작은 오빠에게 시험했고 기계는 잠시 소리를 내다 내지 않다가를 반복했다. 그런데 소리가 나는 위치는 오빠의 몸 상태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오빠는 “너 설마 내가 임신했는지 확인하려는 건 아니겠지? 설사 독일과 프랑스가 연합해 생산한 기계라 해도 이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분명해”라며 빈정거렸다.  


어머니는 내게 혈자리는 모두 외울 수 있는지 물어보셨다. 나는 “외울 필요 없어요, 외국에서는 그냥 번호로 말해요. 가령 방광경에 67개의 혈자리가 있지만 모두 번호로 표시한다고요”라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딸을 책망하지 않으려고 참았지만 내 대답에 당신의 인내력의 한계를 넘은 것 같았다. ‘서양에서 유학 중인 한의사’라는 타이틀은 멋있었지만 막상 임상에서 내가 배운 것은 전혀 쓸모가 없었다.


어머니는 “너 내일 아침 일찍 병원에 나와 실습하자. 이런 서양물건은 내버려두고 한 손으로 침을 놓고 침감(鍼感)을 느끼고 침으로 보(補)하고 사(瀉)하는 것을 배우거라. 또 불 부항을 뜨고 진맥하고 설상(舌象)을 보는 법을 배우되 경험 많은 중의사를 따라 처음부터 배워야 한다. 배울 때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여겨야 한다. 사실 너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니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배워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나는 십여 년간 의료업에 종사하면서 복잡하고 다양한 질병을 마주하게 되면 늘 자신이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고 여기면서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배운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 당시 실습하던 때가 내가 의학을 배운 이후 가장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삽화 권미영

 

미국 등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의사나 한의대생은 중국인보다 서양인이 더 많다. 오래전 내가 미국에서 한의과 대학 석사 과정을 밟을 때 30여 명의 학생 중 중국인은 겨우 두세 명 뿐이었다. 의사면허 시험을 볼 때도 시험장에 가득 들어찬 사람 중 검은 머리의 중국인은 역시 극소수였다. 전화번호만 뒤져봐도 미국에서 개업한 수많은 한의사 대부분이 서양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서양에서는 갈수록 많은 한의대가 설립되고 있고 심지어 박사과정을 설치한 곳도 있다.


하지만, 서양인이 한의학을 배우다 보니 전통 한의학 이론에 자신의 사유방식을 더한다. 그들은 우선 자신의 각도에서 한의학을 이해한 후 이를 임상 치료에 활용한다. 이들의 이런 특성 때문에 동양의 한의사와 다른 ‘서양한의사’가 탄생했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도 그리 크지 않지만, 동료한의사만 5명이 있다. 그들 중 한 서양한의사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의 진료실에 들어가면 ‘난득호도(難得糊塗 역주: 청대의 유명한 서예가인 정판교가 쓴 시 일부로 어리석은 척하기 힘들다는 의미)’라고 적힌 글자가 눈에 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그가 정판교(鄭板橋)의 시와 글자를 정말로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는 염소수염을 기르고 중국에서 1930-40년대에 유행하던 은색 실이 달린 안경을 꼈으며 쿵후 신발을 신었다. 종종 앞에는 용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뒤에는 거꾸로 찍힌 일본식 한자가 있는 옷도 입었다. 나는 속으로 좀 우스운 생각이 들어 “옷에 있는 글자는 중국어인가요 아니면 일본어인가요?”라고 물었다. 그는 “일본어 역시 예전 중국어에서 유래한 것입니다”라고 예상치 못한 대답을 했다. 그 후 나는 그를 다시 보게 됐다.


그는 비록 서양인이었지만 중국 문화를 진정으로 감상할 줄 알았고 또 몹시 숭배했다. 한번은 그가 내게 ‘심령신회(心領神會)’의 의미를 물은 적이 있어 내가 뜻을 자세히 설명해주자 그는 감동한 나머지 눈물마저 글썽거렸다. 가끔 의술에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토론을 벌이기도 했지만 우리는 좋은 동업자이자 동료로 서로 편안하게 의술에 대해 교류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중국에 다녀온 그가 의아해 하며 나에게 물었다. “대륙에서는 십수 년 전만 해도 중의사가 환자를 볼 때 맥을 짚고 설상을 보며 개업을 해도 전통적인 중약(中藥)처방을 했었어요. 비록 약을 달이는 것이 좀 번거롭긴 했지만 치료효과는 아주 좋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왜 중의사조차 청진기는 물론이고 환자에게 직접 주사를 놓나요? 또 중약 처방 속에 대량의 양약성분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죠?”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맥 보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하니 당신 스스로 느낌을 찾아보라고 하더군요. 나는 아무 느낌도 찾을 수 없어서 배우러 간 게 아닌가요!” 그는 좀 억울한 것 같았다.


“중국은 참 신기한 곳이에요. 한때는 내가 중국 사람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왜 이 모양이죠? 중의학의 정수는 아마 중국에서 곧 사라지게 될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는 나보다 더 조급해 보였다.
바로 이런 서양 한의사들의 노력이 있기에 한방요법은 미국에서 점차 인정받고 있다. 현재 의료보험에서 인정하는 정규치료방법의 하나로 진입했고 한의학을 무시하기만 하던 많은 양의사도 조금씩 생각을 바꾸고 있다. 한방 치료를 받아 본 사람들 역시 그 효과에 주목한다.


중국인도 돌아보지 않는 수천 년의 찬란한 유산을 노란 머리에 파란 눈을 한 서양인들이 진지하게 발굴하고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시선은 지금 ‘황제내경(黃帝內經)’ ‘상한론(傷寒論)’ ‘금궤요략(金匱要略)’ 등 전통 한의학 경전에 쏠리고 있다.                                     


글/자선(子仙·중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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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장애 
"선생님! 저는 왜 이렇게 불행할까요?" 

진료실 안에서 낸시는 한편으로는 울면서 다른 한편 내게 최근 몇 달간 자신이 겪은 경험을 말해 주었다. 

"그때 마침 제 생일이었는데 검사 결과 말기 유방암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수술을 받아야 했어요. 그 기간에 있었던 모든 것들은 전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으로 발생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이 발생했고, 하필이면 저와 관련된 것들만 모두 문제가 생겼답니다. 가령 혈액검사를 할 때는 간호사가 제 정맥을 찾지 못했고, 그 후 저를 담당하던 의사 선생님이 중풍에 걸렸으며, 연속해서 제 수술을 위해 동부(東部)에서 부친 수술 도구가 어느 병원으로 갔는지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제 생활도 마치 목표를 잃은 것처럼 하는 일마다 방향이 어긋났어요. 결국, 우여곡절 끝에 수술을 했고 유방을 모두 잘라냈지만, 수술 부위가 완전히 아물지 않는 거에요. 그러다 제가 병원에 가는 도중에 또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그래서 다시 수술실에 들어가 아물지 않는 부위를 다시 꿰매는 수술을 받아야 했고……." 

이 말을 듣던 나도 멍해졌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모든 일이 발생한 원인은 무엇일까? 왜 이 환자의 회복은 이렇게 어렵고 풍파가 끊이지 않을까? 그녀에게 무언가 심리적인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이에 그녀에게 "당신 마음속에 어떤 중압감이나 혹은 풀지 못한 매듭이 있진 않나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이에 비로소 그녀가 수술 과정 중에 겪은 한 가지 사건을 내게 알려주었다. 

낸시를 수술하면서, 의사들은 그녀에게 전신마취를 했고 또 수면제를 사용하였기에 환자가 아무런 감각이나 청각이 없다고 여겼다. 이에 수술을 담당했던 두 의사는 거리낌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 환자의 암이 이미 너무 늦어서 수술이나 화학요법이 아무 효과가 없을 것 같습니다." 

"글쎄 말입니다. ……" 

그런데 이런 두서없는 대화를 아무런 지각이나 감각이 없어야 할 환자가 고스란히 들은 것이다. 

그녀는 의사가 말한 환자가 자기라고 여겼고 이 때문에 스스로 희망이 없으며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녀는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완전히 상실했다. 게다가 수술 전후의 과정도 아주 순탄하지 못했기에 더욱더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생명이 다했다고 믿게 만들었다. 그녀의 이런 심리 상태 때문에 상처가 쉬이 아물지 않았던 것이다. 

심리 상태가 질병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파룬궁(法輪功)을 창시한 이홍지 선생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진정으로 병을 얻는 것은 정신이 7이고 병이 3이다. 흔히 사람의 정신이 먼저 무너져 버려서 먼저 안 되고, 부담이 아주 중하여 병으로 하여금 갑작스러운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데, 흔히 모두 이러하다."(《전법륜》) 

상처가 아물지 않은 근본 원인을 찾아낸 후에 나는 그녀에게 직접 담당 의사와 한번 대화를 해보라고 권했다. 그녀는 처음에 망설이다가 나중에야 내 말에 동의하여 간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호사는 그녀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담당 의사를 연결하여 오해를 풀어 주었다. 원래 당시에 의사들이 말한 환자는 낸시가 아니라 다른 환자였던 것이다. 이에 낸시는 오해를 풀었고 그녀의 상처도 며칠만에 완전히 아물었다. 
원신(元神)이탈 
낸시의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낸시가 수술실에서 들은 이야기 때문에 상처부위가 아물지 않았다는 사례를 듣고는 깜짝 놀랐다. 며칠 후에 담당의사는 낸시에게 수술 당시 그녀가 경험했던 일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낸시는 다음과 같이 당시에 겪었던 과정을 말했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 저는 마음속으로 한가지 바람이 있었어요. 즉, 마취 상태로 수술하는 도중에 죽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었지요. 왜냐하면 저희 엄마, 아빠, 이모 모두 수술대 위에서 죽었기 때문에 제게는 이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었어요. 우리 가족들은 모두 마취약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였지만 아직까지 다른 치료 방법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일단 마취약이 몸속으로 주입되는 순간 잘못하면 즉시 죽을 수도 있습니다. 마치 페니실린에 대한 과민반응으로 인해 쇽크로 죽는 것과 비슷하지요. 그래서 저는 의사 선생님께 가능한 한 적은 양의 마취제를 사용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수술 중간에 완전히 의식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실제로 마취제가 주입된 후에 저는 제 몸이 완전히 죽은 사람과 같이 이미 모든 감각을 상실했음을 알게 되었어요. 수술하는 과정에 저는 제가 두 사람으로 느껴졌어요. 신체(身體)는 비록 수술대 위에 놓여있었지만 영혼(靈魂)은 오히려 공중으로 날아 올라 전체 수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선생님들이 제 유방을 한 칼 한 칼 절개한 후에 절개한 부위를 바늘로 꿰매는 것을 보았답니다. 당신들의 숙련된 동작과 수술 절차, 간호사들이 바쁘게 손을 놀리는 장면이 분명하게 기억이 나요. 당신들이 수술실에서 대화를 나눌 때, 저는 왜 본인이 있는 장소에서 병의 예후에 관한 나쁜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주 빨리, 저는 수술대 위에 있는 나는 병이 있는 낸시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제 가슴에 있는 세 층 근육을 바느질 할 때 매 한 층마다 모두 다른 방법을 사용하더군요. 또 물이 차거나 염증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다양한 규격의 플라스틱 관을 대 본 후에야 적당한 관을 골라 제 가슴에 삽입했습니다. 당시에 잘라낸 유방은 총 무게가 18파운드였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담당 의사는 이 말을 듣더니 안생이 창백해지면서 마치 쓰러질 것 같았으며, 즉시 물을 마시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밖으로 나갔다. 마치 환자 앞에서 졸도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의사는 한참 후에야 돌아와서 낸시에게 말했다. "오 하느님! 다행히 당신께서 지켜보고 계셨군요. 만약 하느님께서 현장에 계신 것을 알았더라면 저는 아마 상처를 제대로 마무리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낸시의 경험은 담당의사에게도 자신의 직업과 수술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나중에 낸시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꺼낸 적이 있다. 

만약 분명히 신(神)이 사람을 만들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저는 하루 종일 수술도(手術刀)를 들고 사람들의 신체를 잘라내면서도 자신이 잘 하고 있다고 여겨왔습니다. 만약 내생(來生)에 다시 태어난다면 어떻게 해야 함부로 신체를 잘라낸 업보를 피할 수 있을까요?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병과 업력
낸시는 북유럽 사람으로 체구가 크고 건장하여 걸을 때면 바람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걷는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자신에 대한 우월감과 남성적인 풍모가 드러나는데 마치 생활하면서 어떤 난관이건 별 어려움 없이 쉽게 해결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천만뜻밖에도 사람의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고 신(神)이 좌우하는 생명이란 문제에서는 그녀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암, 이것은 원인이 명확하지 않고 치료할 수 없는 질병으로서 그녀를 따라다니면서 쉽사리 그녀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마귀와 같은 존재였다. 비록 그녀가 상상할 수 있는 일체 가장 나쁜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시작할 때부터 온갖 예기치 않던 일들이 발생했다. 가령, 수술 중간에 정전이 되는가 하면, 지진이 일어나 천정에 있던 전등이 가슴에 떨어지는 등등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가장 충격이 컸던 일은 수술 중에 희망이 없다는 의사들의 대화를 듣고 자신을 말하는 것으로 착각하고는 마음이 약해져서 더 살고싶지 않다고 생각할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었다. 다행히 나중에 오해가 풀리고 나서 그녀의 병은 아주 빠른 속도로 좋아졌다. 이런 과정을 겪은 후에 그녀는 신체와 의식이 얼마나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가를 비로소 의식하게 되었고 병업과 정신의 상관관계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나중에 다시 내게 와서는,
"선생님, 저는 자신을 반성하고 비판하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래요?"
"저는 다른 사람에게 너무 가혹했던 것 같아요. 줄곧 아주 높은 표준을 다른 사람에게 요구했어요. 가령 어떤 사람이 대학에 가지 못했다면 저는 그가 너무 게을러서 그렇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또한 저는 지금까지 많은 의지할 곳 없는 아이들을 돕는 과정에서 수많은 엄마들을 감옥에 보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녀들이 엄마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저는 심지어 형제들하고도 갈등이 생겨서 몇 십년간 대화를 나누지 않고 있어요. 저를 담당하는 의사나 간호사들은 모두 저만 보면 긴장을 하는데 어떤 간호사는 심지어 너무 긴장해서 정맥혈관도 찾을 수 없을 정도였고……. 수술실에서 제 신체가 하나 하나 잘려나가는 것을 보았을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은 제 신체가 아니라 정신이었어요. 
신이 생명을 만드실 때 건강과 활력을 주셨지만, 저는 그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도리어 마치 함부로 모는 자동차와 같이 이리저리 상처만 입혔습니다. 의사들이 저를 치료할 때 각종 문제들이 발생한 것은 마치 신의 섭리에 따라 저를 징벌하는 것 같아요. 이제 저는 58년간 제 신체의 일부분이었던 유방이 없습니다. 완전히 유방을 제거한 지금에 와서야 저는, 비로소 여성을 상징하는 이 기관을 신께 되돌려 보냈음을 알게 되었답니다. 저는 지나치게 강했어요. 과거에 저는 자신이 남자였으면 하는 강렬한 바람이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그녀는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화학요법
낸시는 유방을 제거하는 엄청난 충격을 겪어냈으나 정작 그보다 더한 고통은 화학요법이었다. 화학치료를 받던 첫 주에 그녀의 촘촘하고 아름다웠던 금발이 빠지기 시작했다. 화학치료를 받은 다음날 아침, 그녀는 침대와 바닥에 온통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고 머리에는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발견하였다. 거울을 통해 그녀가 본 것은 할아버지의 모습―대머리에 눈빛은 불친절하고 쭈글쭈글한 얼굴―이었다. 낸시는 깜짝 놀랐다. 이것이 자신의 모습임을 의식했을 때 아마도 지금의 이 모든 것은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업력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할아버지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단지 군인이었는데 사람을 많이 죽였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정신이 아득한 가운데 그녀는 자신이 마치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곧 수면 위로 들려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학요법의 치료효과를 완전히 신뢰하는 의사는 단 한 사람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 누구도 화학요법을 반대하지 못했다. 의사들은 모두 이 치료과정이 환자로 하여금 사는 것이 죽느니만 못하게 만들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더 좋은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화학요법이란 곧 화학약물을 체내에 주사하는 것인데, 주입된 약물은 암세포를 죽이는 동시에 건강한 세포도 죽인다. 화학요법을 실시한 후에 낸시의 적혈구, 백혈구 수치는 최저한도로 떨어졌고 며칠이 지난 후에야 어렵사리 혈구수치가 겨우 올라갔다. 또 혈구수치가 최저한도로 떨어질 때까지 다시 화학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이런 식으로 여러 차례 계속해서 반복하였다. 그 결과 그녀의 건강은 날로 악화되었고 거의 죽기 직전까지 이르렀다. 

그녀는 먹기만 하면 곧 토해서 먹을 수 없고, 서기만 하면 곧 어지러워서 서 있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화학요법을 중단할 수도 없었는데 중단하면 암세포가 급증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적혈구 수치가 너무 낮아서 결국에는 화학치료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치료를 계속하면 생명이 위태로웠기 때문이다. 

낸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만약 그녀가 화학요법을 버텨낸다면 그 후에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방사선 치료와 레이저치료이다. 그것은 아마도 삶과 죽음의 투쟁에서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만약 레이저 치료까지 무사히 마친다면 평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는가? 낸시의 주치의는, 이렇게 해서도 생존확률은 겨우 30%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이야기
낸시 이야기는 실제 진행 중인 임상사례로서 그녀의 생명이 어떻게 될지는 현재 아무도 모른다. 그녀가 죽음의 문턱에서 걸음을 멈출 수 있을지 아니면 절망 속에서 다시 희망을 찾아 소생할 수 있을지, 사실 이 모든 것이 비록 그녀와 밀접한 관련이 있긴 하지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처럼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운명 속에서 다양한 인연관계와 그녀가 생생세세(生生世世) 쌓아온 업력 등이 한꺼번에 그녀에게 장부결산을 요구하는 것 같다. 의사로서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단지 그녀가 이해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선(善)을 권할 뿐이다. 

사람들은 늘 왜 암에 걸리는지 묻곤 한다. 대답은 당연히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는데, 가령 가계(家系) 유전이라든가, 생활습관(흡연, 음주 등)이라든가, 환경오염과 같은 객관적인 원인이라든가, 음식 기호라든가, 성격 등등이 있다. 사실 이런 것들은 화학실험 보고서의 자료들에 근거한 현대과학적인 해석과 설명이지만 다른 공간의 업력(業力) 근원에 대해서는 전혀 똑똑히 설명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들이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다른 공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낸시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나는 과거에 주의하지 않았던 한 가지 문제를 발견하였다. 이것은 내가 장기간 환자들과 접촉하면서 그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후에 비로소 서서히 밝혀낸 것이다. 

임상적으로 나는 많은 암환자들에게 한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바로 과거에 들은 좋지 않은 말을 잊지 못하고 장기간 쌓아두는 습관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일생 중에 모두 듣기 거북한 말을 매우 많이 듣게 되는데, 비록 많은 것들은 몸 밖에 있는 물건이라 쌓아둘 필요가 없음에도, 그들은 가슴속에 이런 것들을 쌓아두고 내려놓지 못한다는 것이다. 

낸시의 음식습관과 운동습관은 거의 교과서에 가까웠다. 그녀는 매일같이 열량을 계산하고 정확하게 측정해서 음식을 먹었으며 단백질과 비타민 섭취량도 저울로 재어 먹을 정도였다. 그녀는 또한 매일 몇 마일을 달렸는데, 이때도 심장 박동수가 기계에서 제시하는 표준에 도달할 때까지 하였다. 그녀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개인의 생명과 건강에 도대체 다른 어떤 표준이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일찍이 그녀에게 건강과 마음을 닦는 것의 관계를 이야기해 주면서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것과 생명의 의미에 대해 알려준 적이 있었다. 처음에 그녀는 화를 내고 불평하면서 말했다.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것이 어떻게 내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건지 나는 이해할 수 없고……." 

나는 그녀에게 되물었다. "내가 당신에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해 보라고 했을 때, 당신은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전에 잘못한 것이 없다면서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잖아요." 

이로부터 알 수 있다시피 낸시의 성격 중에는 너무나 뿌리 깊고 견고해서 사람들이 다가서기 힘든 무언가가 가로막고 있다. 그것은 화학요법이나 방사선 치료로는 다가갈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진정하게 자신의 생명의 근원을 빼앗아가려고 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 만든 것임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마치 단단한 껍질과도 같은 자아 관념에 가로막혀 이 업력이란 요소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낸시는 여전히 최고의 의사, 최고의 약물(藥物), 가장 좋은 치료방법과 가장 빠른 지름길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병원을 많이 다니면 다닐수록 의학에 대한 실망과 피로만 가중되었을 따름이다. 이렇게 근본적으로 운명이나 신에 대해 믿지 않았던 낸시의 관념은, 매번 치료가 실패로 돌아가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노력 속에서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 맞아! 어쩌면 업력이 병을 만든 것이고 신(神)이 정말 존재할지도 몰라……." 
화학요법 이후
낸시가 우리 한의원에 오지 않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추측컨대 그녀는 지금쯤 제1기와 2기 화학요법 치료를 끝냈을 것이다. 나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그녀는 지금쯤 회복단계에 있을 것이며 아마 머리도 다시 길게 자라고, 모든 것이 점점 좋아져서 이번 악몽을 무사히 넘겼으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마침 그녀의 모든 것이 빠르게 좋아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그녀가 다시 한의원에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전과는 달리, 그녀가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것이다. 그렇게 크고, 건장하고, 길을 걸으면 바람이 일 정도였던 그녀가 지금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니 이전보다 삼분의 일로 줄어든 것 같았다. 나는 하마터면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의 눈, 귀, 코에서 모두 조금씩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선혈(鮮血)은 그녀의 모든 이목구비에서 흘러내렸는데 피부에도 핏빛 땀방울과 같은 것이 보였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증상을 본 적이 없어서 즉각 그녀를 데려온 남편에게 빨리 응급실로 보내는 것이 낫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낸시가 즉각 허약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싫어요! 다시 돌아갈 순 없어요! 다시 그곳에 간다면 아마 영원히 나올 수 없을 거에요……." 그녀는 피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강하고 전혀 타협이라곤 모르던 사람이 지금 이렇게까지 나약해지다니! 이어서 그녀는 쉬지 않고 내게 어떻게 된 일인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이런 증상이 화학요법에 중독된 결과라고 하는 말에 나는 비로소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치료과정은 매번 약량(藥量)을 조금씩 늘려야 하며, 환자의 신체 상태에 따라 적당히 조절해야 한다. 또 너무 오랫동안 사용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간호사가 숫자 단위를 잘못 보고 본래 그녀의 체력에 비해 너무 많은 용량에 또 한 배를 더 투여했던 것이다. 그 약물을 주사하기 직전, 그녀는 자신의 운명이 곧 끝날 것만 같은 어떤 좋지 않은 예감이 있었다. 이에 그녀는 남편에게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한의사에게 데려가 주세요.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꼭 그분을 만나고 싶어요." 그녀의 남편이 그 말을 기억하고 있다가 그녀의 의식이 아직 남아 있을 때 그녀를 한의원으로 데려왔던 것이다. 이것은 그녀가 화학치료를 받은 지 이틀 후에 나타난 증상이었다. 

주사 직후 낸시는 바로 혼수상태에 빠졌으며 몸에서 고열(高熱)이 났고 이후 전신에서 핏물과 같은 것이 스며 나왔으며 손톱과 머리털도 빠졌다. 응급치료를 받은 후에 그녀는 의식이 돌아왔는데 다음은 그녀가 한 말이다. 

"약물주사를 맞은 후에 신체가 마치 불 속에서 얼음 속으로 들어간 것 같았어요. 선생님, 그것은 바로 지옥이었어요! 이제 저는 『성경(聖經)』에서 말한 지옥이 어떤 것인지 알아요. 저는 마치 지옥의 각종 고문들을 하나하나 두루 겪은 것 같아요. 먼저 불 위에서 태우는 고문을 받았는데 심지어 살갗이 타는 냄새를 맡을 정도였어요. 그리고 나서 얼음굴 속에 떨어졌는데 뼛속까지 시리고 온몸의 관절이 다 떨어져 나갈 것 같았어요. 그리고 나서 다시 불에 달군 철판 위에서 고문을 당했고……." 

나는 이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는데, 당시 나의 느낌을 뭐라고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제가 당신에게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요?" 내가 묻자, 
그녀는 뜻밖에도 "제게 가부좌를 가르쳐 주세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말에 큰 감동을 받았다. 한 생명이 이렇게 곤란한 상황에서도 이런 소망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진귀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가부좌마저도 똑바로 할 수 없을 것 같기에 나는 그녀에게 언제부터 시작할 것인지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즉시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경솔하게도 "생명연장을 위해서인가요?"라고 물었다. 

"아니요. 제 생명이 끝날 때 정말로 단 한번만이라도 평화롭고, 조화로우며 안정된 느낌과 또 다툼도 없고, 고통도 없는 그런 경지를 느껴보고 싶어요……." 
의사의 병치료
▒ 작가의 말: 낸시의 사례는 내가 실제 겪은 임상 사례이다. 그러나 다른 의안(醫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직도 치료를 진행 중인 사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례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 사례를 통해서 나는 사람이 병이 나서 치료하는 전반 과정을 지켜봐 왔으며, 이것은 우리에게 사람의 생명과 운명(運命)이 도대체 누구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일까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낸시의 화학치료는 일찌감치 끝냈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의 화학치료는 지금도 여전히 계속 진행 중이다. 가장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것은, 의사는 물론이거니와 낸시 본인도 도대체 언제쯤 치료가 끝날지 모른다는 점이다. 화학요법을 이용하여 암을 치료하는 과정 중에서 화학요법을 받은 시간의 길이는 환자의 건강에 지극히 큰 작용을 일으킨다. 심지어 환자의 남은 여생(餘生)의 길이마저도 결정할 정도이다. 현재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인데, 낸시는 아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른 어떤 요소가 작용을 일으키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낸시는 최근 6주에 걸쳐 3차례의 화학 치료를 받았다. 이 기간에 계속해서 의료사고가 발생했으며, 그녀는 연속으로 몇 명의 의사를 갈아치웠다. 매번 의사를 바꿀 때마다 낸시는 마치 학생을 가르치는 것처럼 자신의 병력, 과거력, 용약(用藥), 약의 양(量) 등을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새로운 의사에게 전해 주었다. 그 목적은 이렇게 해서라도 의료사고를 면해보려는 것이었다. 
생명의 기로(岐路)에 선 낸시는 진퇴양난의 형국이었다. 화학치료를 그만두자니 지금까지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요, 그렇다고 계속 치료를 하자니 후환이 두려웠다. 어떤 때 그녀는 우리 한의원을 찾아와 자기 마음속의 말들을 털어놓곤 했다. 
"선생님! 당신이 만약 저같은 처지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물론 당신은 영원히 저와 같은 지경에 이르지 않을 것이며 또한 영원히 지금 이 순간 제가 겪고 있는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것임을 알아요. 왜냐하면 당신은 제가 겪는 이런 극심한 통증을 이해하지 못할테니까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듣기만 했다. 
"모든 암환자들이 모두 저같이 이렇게 많은 시달림을 겪는 것은 아니겠지요? 저는 또 어떤 암환자들은 암세포가 목숨을 앗아가서 죽는 것이 아니라 의사의 과실로 죽는다는 것을 알아요. 잘못된 치료수단, 부정확한 치료 순서 등 모든 것이 가볍게 환자의 생명을 앗아감을 알아요. 어떤 환자들은 자신을 치료하는 의사에게 크게 실망해서 아예 병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고요……." 
나는 계속해서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지금의 의사들은 모두 의대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학생에 불과해요. 그들은 교과서에서 이론은 많이 배웠을지 몰라도 실제 임상지식은 아주 부족합니다. 더욱이 자기 주장이 강해서 환자들의 말은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며, 이런 혼탁한 사회에서 인간의 영혼을 오염시키는 금전욕(金錢慾)으로 인해 의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살아있는 사람을 죽이는 도구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믿음이 가요. 왜냐하면 당신은 아주 좋은 도덕표준이 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지금까지 그 어떤 의사도 "진(眞)?선(善)?인(忍)"을 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어요. 제가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당신도 그저 말로만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몇 년 동안 당신은 줄곧 이렇게 저를 알려주셨고 또 일깨워 주셨습니다. 사실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 세 글자를 알려주었답니다. 비록 저는 잘 하지 못했지만 제 마음속에는 당신이 말한 이 세 글자가 우주의 영원한 진리일 거라는 확고한 신뢰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왜 저만 이렇게 번거로운 일이 많은지는 분명히 모르겠어요. 저도 진(眞)?선(善)?인(忍)을 믿잖아요! 그런데 왜 당신은 그렇게 건강하고 저는 이 모양인지 뭔가 불공평하지 않나요? " 
이 말을 듣고 나는 웃음이 나왔다. 
"낸시! 당신이 비록 믿는다고는 하지만 이것에 따라 해본 적이 있나요? 당신은 입으로는 세 글자를 말하지만, 당신 마음속으로 진정하게 그것을 받아들였나요? 만약 당신이 정말로 진(眞)?선(善)?인(忍)을 믿고 또 그것에 따라 했다면 어떻게 의사들을 끊임없이 갈아 치울 수 있었겠어요?" 
나는 진지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내게 말했다. 
"만약 이번 악몽이 지나간다면, 저는 반드시 진지하게 이 마음을 수련하여 만신창이가 된 제 몸을 연마하겠어요. 선생님! 제게 아직도 기회가 있을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옥림(玉琳)
이교원 kw4773@epoch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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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정자] 행복의 습관

‘행복한 삶’은 누구나 소망하는 삶의 목표다. 행복 하면 우선 ‘조건’들이 연상된다. 부, 명예, 권력…. 이런 것들을 갖춰야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더 해보면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부나 명예, 권력을 가졌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고, 반대로 그런 것들이 부족하다고 해서 불행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행복은 많은 경우 ‘조건’이라기보다는 습관에서 온다. 오히려 삶을 사는 방법에 관한 문제다. 예를 들어 건강을 위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조깅을 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자. 그의 아침운동 습관은 ‘자동적’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별다른 고민이나 갈등 없이 벌떡 일어나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그가 만약 매번 깰 때마다 ‘내가 지금 일어날 것인가 더 잘 것인가’를 몇 분 동안 고민한다면, 그는 아직 아침운동을 습관으로 만들지는 못한 것이다.

“밝은 면을 보기. 순간을 음미하기, 용서를 실천하기, 자녀 · 배우자 · 동료들을 보다 관대하고 낙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 배우자에게 친절한 말 건네기, 낯선 사람에게 미소 짓기, 자신의 중요한 목표를 위해 노력하기….” 바로 이런 일상의 것들이 ‘행복 습관’의 소재들이다. 정말 이런 것들을 습관으로 만들 수 있다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습관도 반복과 연습, 그리고 실천으로 만들어진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결국 삶을 사는 방법이 달라져야 하고, 좋은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붉게 물든 산과 들이 아름답고, 낙엽 지는 모습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가을은 독서하기 좋고 명상하기에 제격. 헤르만 헷세의 잠언록을 펼쳐본다.

“행복은 어떻게(how)인 것이며, 무엇(what)이 아니다. 능력이지 목적은 아니다. 행복이란 사랑이다. 그 외에 어떠한 것도 아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것이다. 인간은 선을 행하는 한 누구나 행복에 이른다. 스스로 행복하고 마음속에서 조화를 찾는 한, 그러니까 사랑을 하는 한 사랑은 유일한 가르침 세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단 하나의 교훈이다. 예수도 부처도 공자도 그렇게 가르쳤다. 모든 인간에게 세상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의 가장 깊은 곳 그의 영혼, 그의 사랑하는 능력이다. 보리죽을 떠먹든 맛있는 빵을 먹든 누더기를 걸치든 보석을 휘감든 사랑하는 능력이 살아 있는 한 세상은 순수한 영혼의 화음을 울렸고 언제나 좋은 세상 옳은 세상이었다.”

하느님은 반딧불을 감사히 여기면 별빛을 주시고, 별빛을 감사하면 달빛을, 달빛을 감사하면 햇빛을 주신다고 했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다보면 전 우주가 나의 작은 가슴에 환히 비칠 것이다.
글/ 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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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 황동섭

아들아!
부르는 것만으로 힘이 되는 아들아!
이젠 네가 애비를 불러야 할 차례,
꼬옥 부르고 싶을 때 부르거라
부르지 않아도 늘 곁에서 너를 바라보아
목마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물은 목마른 자에게 향기를 흘리지
그렇다고 너무 서두르지 마라
자칫 그 향기를 놓쳐 길을 잃게 되리니
네 할배가 애비의 등에 업혀 당신의 전답을 돌아보며
재미없는 저 오솔길을 일러주었듯이
이 세상에서 제일 작은 애비의 등을
아낌없이 네게 주고 싶구나

시인 황동섭의 시 읽기

아들아, 초록 군단의 기세는 대단했다.
도대체 저 무서운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자기가 맡은 만큼만 햇볕을 쬐고 꼭 있어야 할 곳에서 서로에게 어깨를 내주며
견딘다고 떡갈나무가 말했다. 팥배나무가, 산딸나무가, 혼자 선 자작나무가 그랬듯이
그 밑에 홍자색 싸리 꽃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은 위대했고 가을은 엄숙하고 성스럽게 다가와 있다.

“사람들에게 다시 나눠주고자 합니다.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전적으로 옳은 길을 간다고 믿으며 네가 바라는 희망의 증거가 되길 바란다.
안정된 직장보다는 고난과 도전을 택한 바보 같은 네 결정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젊음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꿈꾸는 자에겐 어려운 고비가 아무것도 아니다.
시련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라 하지 않던?
이제 스펙과의 싸움을 넘어 이종 격투기 같은 링에 올랐으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그 과정은 말도 못하게 힘들겠지만 네 열망에 따라 무한한 세계로 마음껏 날개를 펼쳐서
아름다운 너의 비행을 즐기거라.

애기똥풀이나 여뀌풀처럼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저들도
나름의 소중한 삶을 즐기며 또한 하루라도 딴전을 피우지 않음으로써 꽃을 피워 빛낼 수 있다.
하찮은 일이라도 누구의 시선에 상관없이 제 일을 실천하는 것이 살아가는 지혜이며
이 사회를 지키는 힘이라고 믿는다. 현대의 영웅은 이처럼 어마어마한 것이 아니라 뒤에서
묵묵히 자신에게 성실한 자들이 아닐까라고 믿게 되었다.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것처럼 지금의 나를 냉철히 바라보고 반성하며 주어진 길을 곱게 걷고 싶다.
아들을 철석같이 믿는 아빠로부터

황동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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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풍경] 135개 첨탑이 하늘 향해 손 모은 곳 ‘밀라노대성당’


밀라노에 여행 갔다 하면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밀라노대성당. 주요 관광지 부근인 지하철 1, 3호선 두오모(Duomo) 역에 내리면,  광장 100m 앞에 대성당이 시선을 압도한다. 유럽 옛 도시들은 대성당 광장을 중심으로 장이 섰기 때문에 그곳이 도심이었다. 자연스레 대성당을 중심으로 밀라노 명소가 몰려있기 때문에, 밀라노대성당이 밀라노 관광 시작점이 됐다.

 

135개 첨탑이 땅에서 나온 듯 하늘로 치솟았다. 높이 157m, 너비 92m. ‘밀라노대성당’은 500년 전 이곳 사람들의 천국 열망을 반영한 듯하다. 1386년부터 무려 500년을 지은 곳, 밀라노대성당은 건축가들이 무한한 상상력으로 쓴 불멸의 시편이다.

 

트렌드를 주도한 도시

 

북부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주도(州都)인 밀라노는 문화의 도시로 불린다. 세계 3대 오페라극장 중 하나인 라스칼라 극장을 비롯해, 유럽 여행객이 꼭 들르는 명품 거리가 있는 곳이다.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이자 이탈리아 상공업 중심지인 밀라노가 ‘트렌드를 주도’한 역사를 걸은 것은 2000년 전부터 확인된다. 313년 로마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발표한 ‘밀라노 칙령’이다. 이후부터 로마는 기독교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고 빼앗은 교회 재산을 반환할 것을 선포하는 등 초기 기독교의 명예를 회복시켰다. 이를 계기로 기독교는 서양 문화에 깊이 뿌리박힌다.

 

135개 첨탑 ‘땅에서 솟은 듯’

 

밀라노대성당 지붕 위에서 볼 수 있는 조각상은 성경 속 인물이나 밀라노 공국 명인들이다. 장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조각상들은 성모상 주위에 옹립해있다. 첨탑 사이사이로 보이는 밀라노 전경이 아름답다.

 

밀라노대성당에 가면 꼭 해봐야 할 게 있다. 바로 지붕에 올라가는 것이다. 하늘로 솟은 첨탑, 그와 한 몸인 조각상 2245점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밀라노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고딕식 교회건축이지만, 대리석 조각의 섬세함은 규모 이상으로 압도적이다. 흰 대리석으로 만든 135개 첨탑과 2245점 조각상이 우아하고도 화려하다. 14세기 이탈리아 고딕 건축이지만, 프랑스와 독일의 대성당에 뒤질세라 이탈리아 외에 독일과 프랑스 건축가를 참가시켰고, 여타 이탈리아 건축과 다른 독특한 외관이 됐다. 밀라노 영주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의 의견에 따라 대주교 안토니오 디 사루초가 짓기 시작한 이 건물은 이탈리아 성당 건축 중에 알프스 이북 고딕 스타일이 가장 짙다.

 

밀라노대성당의 현지 이름은 ‘두오모 디 밀라노(Duomo di Milano)’다. 두오모는 종교 용어로, 천주교에서 주교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는 성당을 일컫는 말이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이탈리아 대형 성당 중에 두오모가 많다.

 

밀라노대성당에 가면 꼭 해봐야 할 게 있다. 바로 지붕에 올라가는 것이다. 하늘로 솟은 첨탑, 그와 한 몸인 조각상 2245점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조각상은 성경 속 인물이나 밀라노 공국 명인들이다. 장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조각상들은 성모상 주위에 옹립해있다.

 

성당 안은 좀 어두웠다. 52개 거대한 원기둥이 하늘로 치솟은 가운데 어슴푸레한 촛불이 스테인드글라스를 비춰 화려하다. 대형 그림들 중에는 르네상스 대가의 손에서 나온 것들이 상당수다.

 

성당을 나와 정면에 있는 5개 청동문을 보니 성당과 밀라노의 역사, 성모마리아의 생애, 그리고 밀라노칙령이 새겨져있다.

 

마지막으로 성당 전경을 눈여겨본다. 올라도 가보고 전체를 또 보니 ‘톰 소여의 모험’ 작가 마크 트웨인이 ‘대리석으로 쓴 시’라고 감탄한 것이 이해가 간다. 이 성당의 아름다움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미켈란젤로의 도시 로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도시 밀라노’라는 말이 유전된다. 다빈치가 그만큼 밀라노에 많은 흔적을 남겼다는 얘기다. 밀라노대성당 북측으로 300m만 가면 세계 3대 오페라극장 중 하나인 ‘라스칼라 극장’이 있다. 바로 그곳 광장에 ‘LEONARDO’라고 쓰인 다빈치 동상이 우뚝 서있다.

 

밀라노대성당 내부. 52개 거대한 원기둥이 하늘로 치솟은 가운데 어슴푸레한 촛불이 스테인드글라스를 비춰 화려하다. 대형 그림들 중에는 르네상스 대가의 손에서 나온 것들이 상당수다.

 

밀라노대성당 가는 방법

 

밀라노대성당은 밀라노에 여행 갔다 하면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된다. 주요 관광지 부근인 지하철 1, 3호선 두오모(Duomo) 역에 내리면,  광장 100m 앞에 대성당이 시선을 압도한다. 유럽 옛 도시들은 대성당 광장을 중심으로 장이 섰기 때문에 그곳이 도심이었다. 자연스레 대성당을 중심으로 밀라노 명소가 몰려있기 때문에, 밀라노대성당이 밀라노 관광 시작점이 됐다. 

 

왕잉 기자, 사진=SU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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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法輪功)으로 잘 알려진 法輪大法(파룬따파)는 리훙쯔(李洪志)선생께서 창시하신 고층차의 불가(佛家)수련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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