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글/ 청위

[밍후이왕] 지금까지도 파룬궁을 잘 알지 못하는 중국인은 많고, 여전히 중국의 대중매체는 중공의 거짓, 모함에 일조하고 있다. 파룬궁은 도대체 무엇인가? 왜 아직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확고하게 파룬궁을 수련하는가? 심지어 중공이 광적으로 박해하는 중에도 여전히 파룬궁 수련을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놀라운 현상은 사람들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2017년 12월 25일, 파룬따파 밍후이왕의 보도에는 두 파룬궁 수련생의 이야기가 있는데 그들은 모두 중공의 박해 이후에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보기로 하자.

“파룬궁 수련을 하여 건강을 찾은 뤄밍춘 3개월 수감”이란 문장에서 보도한 뤄밍춘(罗明春)여사 일가는 쓰촨 량산주 시창성 안에서 찐빵, 만두 등을 만들어 파는 장사를 했다. 1972년에 출생한 그녀는 15살에 우울증에 걸렸고 30살 때 신우신염, 메니에르 증후군에 걸렸다. 몸은 아프고 장사마저 잘 안 되어 살기가 아주 어려웠다. 고난 속에서 헤맬 때, 2008년에 뤄밍춘은 한 파룬궁수련생을 만났다. 그녀는 자신도 온몸에 병투성이였으나 파룬궁을 수련하고 모든 병이 다 나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뤄밍춘도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으며, 얼마 안 되어 모든 병이 기적과도 같이 다 나았다. 그녀 병이 다 나은 것을 보고 그녀 부모도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그녀 모친의 신염, 급성 인후염도 나았고, 부친의 위병, 위벽천궁, 신염도 다 나았다. 온 집안은 웃음꽃이 피었고 장사도 잘 되었다.

“지린 바이청시 여 교원과 모친 납치, 가택 수색당해”에서 보도한 리양버(李杨波)는 지린성 바이청시 철로 제1초등학교 교원이다. 1999년 12월 그녀는 병원에서 재생불량성 빈혈로 진단을 받았다. 여러 병원의 치료를 거쳤으나 호전되지 않았고 몸은 몹시 나빠졌다. 그녀의 모친은 파룬궁을 수련하는데 그녀에게 파룬궁을 수련하기를 여러 번 권했다. “얘야, 파룬궁을 연마해라. 일전 한 푼 들이지 않고 병을 뗄 수 있는데 너는 왜 믿지 않냐? 엄마가 널 속이겠니?” 리양버가 말했다. “엄마, 그렇게 좋으면 엄마나 연마하세요, 나는 교육받은 사람이어서 미신을 믿지 않아요, 게다가 뉴스를 보세요, 사람이 분신자살 하는 건 뭐예요.” 모친이 말했다. “바보야 믿지 말마라, 그건 모함하는 거야. 파룬궁이 1992년부터 전해져 1999년까지는 전국 각지에서 모두 찬양했지만, 분신자살은 한 사람도 없었어? 왜 1999년 7월 20일 장쩌민 무리가 파룬궁을 박해하라고 명령을 내린 후 분신자살이 나타났겠느냐? 파룬궁은 사람에게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공법이다. 텔레비전에서 하는 말을 믿지 마라, 그들은 국민을 속여 진상을 알지 못하게 하고 파룬궁을 증오하게 하여 나중에는 국민과 국민이 투쟁하게 하려는 거야, 결국엔 해를 입는 것은 국민이다.”

모친은 파룬궁을 수련함으로 당연히 파룬궁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데 딸을 속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모친이 얼마나 입이 닳게 말해도 그녀는 듣지 않았다.

2003년, 리양버의 몸은 더 나빠져 밥 한 끼를 먹는데도 세 번은 쉬어야 했다. 온몸이 무력하고 어깨가 늘 시큰거리고 얼굴은 혈색이란 없고, 몹시 고통스러웠다. 2005년에 이르러 그녀는 자신이 이젠 생명의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느꼈다. 현대 의학이 그녀에게는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시험 삼아 해보자는 심리를 품고 파룬궁을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다. 기적이 나타났다. 20일의 연공을 거쳐 신체는 건강을 회복하여 온몸에 기운이 솟았고 얼굴엔 홍조가 어렸으며,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리양버처럼 혈육이 파룬궁을 수련하면서 어떻게 권해도 믿지 않는 사람은 정말로 드물다. 그들이 파룬궁을 믿지 않는 것은 많게는 중공의 거짓말을 믿은 것 때문이다. 더 깊게는 그들에게는 한 가지 우려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 파룬궁을 인정해주면 파룬궁을 수련하는 가족이 더욱 확고하게 권할까 두려운 것이다. 누군들 안정된 생활을 누리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하지만 중공의 탄압이 이렇게 잔혹한데 자기 가족은 파룬궁에 이렇듯 확고하니 그냥 이렇게 견지하다가 중공의 마수가 가족에게 뻗칠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줄곧 파룬궁을 인정하지는 않는 것이다.

같은 달 23일, 밍후이왕에는 또 “광둥 러창 우수교원 수감, 열 살 딸 엄마 구출에 나서다”라는 보도가 실렸다. 이 보도에 실린 파룬궁 수련생 차오리핑(曹丽萍)은 리양버와 비슷한 상황이다. 차오리핑은 남편이 법원에 불법기소 당하자 법관에게 편지를 썼다. 그녀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2004년 나는 선전 뤄후구에 출근했습니다. 10월의 어느 날 오후 4시경, 나는 자라탕 두 사발을 마시고 잠시 후부터 배가 아파 급히 화장실에 갔습니다. 변기 안에 피가 가득했고 배가 찌르듯 몹시 아팠습니다. 머리가 무겁고 다리가 휘청거려 온몸은 무기력했습니다. 곁에는 아무도 없고 병원에 갈 힘조차 없었습니다. 나는 의식적으로 이는 자라탕 중독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곧 죽게 되리라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려움을 당했을 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라고 알려 주던 9글자가 생각났습니다. 평소에 이 9글자를 의심하던 심리가 있었지만, 살고 싶은 마음에 속으로 온 밤을 염했더니 이튿날 아침에 기적으로 나아서 출근했습니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면 나는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2010년, 나는 광서장족자치구 북해시에 있었습니다. 6월 24일, 급성심부전 때문에 배 안에는 아직도 태독이 있어 주치의 4명이 48시간 내 곁을 떠나지 않았고, 그 중의 우 의사는 내가 아마도 후사를 준비해야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때 병원 간호사는 모두 나에게 관심을 기울였고 나는 죽은 사람처럼 침대에 누워있었습니다. 깨어난 후에야 알았지만, 그때 나는 사흘째였고, 귀가에는 남편이 염하는 파룬따파하오, 쩐산런하오 라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남편은 아침에 여기로 달려왔는데 내가 눈을 떴을 때는 밝은 하늘을 볼 수 없고 겨우 어둠침침한 방안만 보였습니다. 흐릿한 가운데 남편의 몸 그림자를 보고 “왔어요!”라고 말했고 의사들은 이 목소리를 듣고 마침내 안도의 숨을 쉬었습니다. 24시간 눈을 붙이지 못한 남편은 마침내 한시름을 놓았습니다.”

“일찍이 텔레비전의 보도는 나를 뒷걸음치게 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보도한 부면적인 내용은 내 신변의 친인이 수련하는 파룬궁과는 천양지차였습니다. 호기심에 나는 파룬궁이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를 알아볼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남편에게 ‘당신의 책을 내가 좀 볼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책은 대법을 파괴하는 경찰이 집에 뛰어들어 빼앗아 갔습니다. 어느덧 2012년이 되었습니다. 나는 곳곳으로 수소문하던 끝에 ‘전법륜’책 한 권을 얻게 됐고, 3일 만에 단숨에 다 읽었습니다. 읽고 난 후의 첫 번째 생각은 ‘사람은 왜 이렇게 얼떨떨한가!’였습니다. 자신이 명백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무엇 때문에 스스로 탐구하지 못하는가? 남이 말하는 대로 주관 없이 따랐는가! 나는 자신의 저능함에 괴로웠습니다.”

“파룬따파는 나의 마음을 활짝 열어준 동시에 눈에는 대법 책에서 말한 상태가 나타났습니다. 눈에서 많은 눈곱이 나왔습니다. 나는 이것이 대법에서 말한 것처럼 몸을 조정하는 것임을 알고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과연 며칠 후부터 그런 나쁜 물질이 적게 나오더니 약 일주일 되자 눈은 밝은 하늘을 볼 수 있었고, 파룬궁의 5장 공법의 연마를 통해 몸은 뚜렷한 개변을 가져 왔습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5년 동안, 나는 어떠한 약물도 쓰지 않았지만, 정신 상태는 아주 좋습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면 나는 파룬궁 수련자들이 왜 파룬궁을 이렇듯 열애하는가를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원래 이 책은 병을 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사람의 영혼을 구할 수 있습니다. 박해가 이렇듯 심각해도 수련자들이 포기하지 않는지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차오리핑은 편지를 아주 명백하게 썼다. 어떻게 믿지 않던 데로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게 됐는지에 대한 그녀의 깨달음은 아주 명확했다. 하지만 이런 편지가 법원장의 손에 넘어갔을 때 원장은 편지를 넘겨준 보안에게 한바탕 욕을 했다. 이는 사람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차오리핑이 자신의 경력을 써낸 것은 사람들이 파룬궁을 정확히 대함으로써 죄를 짓지 말라고 권유해 준 것이 아닌가? 파룬궁이 그녀에게 위험을 제거해 주었는데 아직도 파룬궁을 이렇게 대할 수 있겠는가? 자기 일생에 아무 일도 없으리라고 누가 보증할 수 있는가? 만일 원장이 생명 위험에 봉착했을 때, 피할 수 없는 재난이 있을 때 그가 당신에게 재난을 피할 방법을 앞당겨 알려 준 게 아닌가? 사람이 어쩌면 이렇듯 양지가 없단 말인가? 이것이야말로 중공의 거짓날조만 믿고 중공의 파룬궁 박해에 동조하는 중공 패거리의 비애인 것이다.

사실 그들처럼 이렇게 잔혹한 박해 속에서 파룬궁 수련을 선택한 사람이 아직도 아주 많다. 단지 그들 혹은 그들 가족의 박해를 피하게 하려고 밍후이왕에는 이런 실명 보도가 없는 것이다. 지금 박해 당하는 사람에 대해서만 우리는 비로소 그들의 실명과 경력을 모았을 뿐이다. 파룬궁에 대하여 아직도 정확한 인식이 없는 사람은 정말이지 잔혹한 박해 속에서 파룬궁 수련을 선택한 이런 사람에 대하여 요해해 봐야 할 것이다. 그들의 사상 전변 과정 및 수련 후의 신체가 수익을 본 상황을 보면, 그들의 경력은 당신에게 어쩌면 정말로 조금의 깨우침이라도 있을 것이다.

원문발표: 2018년 1월 4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4/3591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