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망

글/ 송명(宋明)

【정견망】

중국의 수많은 명산에는 ‘일선천(一線天)’이란 특이한 경관이 존재한다. 쉽게 말해 양쪽으로 절벽이 있고 가운데 좁은 틈이 있으면 일선(一線)과 같은 하늘만 보이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수련계에서는 흔히 천기(天機)가 아득해서 오직 한 가닥의 희망만 남아 있는 것을 형용할 때 사용한다. 자고로 도를 구하는 사람은 소털처럼 많았지만 도를 얻은 사람은 봉황의 털이나 기린의 뿔처럼 극소수였으니 다시 말해 수련의 어려움을 형용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수련의 어려움은 우선적으로 법을 얻기 어려운 것으로 표현된다. 소위 “진짜 전수 한 마디에 가짜 전수는 만권의 책(真傳一句話,假傳萬卷書)”이란 말이 있다. 도장(道藏)이나 대장경(大藏經)에는 얼마나 많은 경서가 있는가? 그 중 어느 구절이 대도(大道)인가? 어느 구절이 진법(真法)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백발이 될 때까지 가난하게 살면서도 단 한 가지 방법도 생각해내지 못한다. 《서유기》에서는 당승(唐僧)의 서천취경(西天取經)을 말하면서 구구81난이 있다고 하는데 그래도 이것은 정법문(正法門) 수련이다.

하지만 정법을 스쳐 지나가버리면 오히려 회한만이 남게 된다. 예를 들어 팔선(八仙) 중에 당나라 때 도를 얻은 한상(漢相)자는 사실 동한(東漢)의 비장방(費長房)이 신선이 될 인연을 잃어버린 후 오랫동안 뜻을 버리지 않다가 마침내 대도(大道)로 돌아온 것이다. 그가 만약 기로에 떨어져 ‘야호선(野狐禪)’을 닦았다면 심지어 회한을 품을 기회마저도 없었을 런지 모른다.

수련의 두 번째 어려움은 수련의 표준이 엄격해서 두 차례 잘못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수많은 신화와 전설 속에서 한 차례 고험을 넘기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한 후 평생 후회한 사례들 역시 적지 않다.

세 번째 어려움은 바로 일세(一世)에 정과(正果)를 성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시 당승을 이야기하자면 10세(世)의 수행을 거쳐서야만 비로소 불과(佛果)를 증득할 수 있었다.

네 번째 어려움은 윤회의 고통으로 수련의 기연을 찾기 힘든 것이다. 왜냐하면 일세에 수련성취하지 못하면 윤회전생(輪迴轉生)해야 하는데 만약 사람 몸을 얻지 못한다면 정법을 수련하기 어렵다. 설사 어렵게 사람 몸을 얻었다 해도 전생(轉生) 중에 기억이 봉폐되고 머리가 씻기고 나면 또 종종 홍진(紅塵) 속에서 본성을 잃기 쉽고, 이를 통해 업력이 너무 커져서 몸을 봉폐해버리면 다시 수련할 기연을 잃을 수 있다. 소위 “사람 몸을 얻기 어렵고 중토(中土)에서 태어나기 힘들며 정법(正法)을 만나기 힘드니 이 3가지를 모두 얻을 수 있다면 더 큰 행운이 없다(人身難得,中土難生,正法難遇,全此三者,幸莫大焉)”는 말은 이후 수련자들이 경계로 삼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고로 비록 수련은 한 가닥 천기(天機)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껏 이때문에 도를 구하고 도를 지향하는 사람의 마음이 단절된 적은 없었다. 《팔선득도전(八仙得道傳)》 첫 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선은 본래 속인이 되는 것으로 단지 속인의 뜻이 굳세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다.”(神仙們本是凡人做,只怕凡人心不堅) 또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은 중국인들이 성현(聖賢)의 도를 추구하면서 한 맹서로 대를 이어가며 전승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역사 속에서 불교 선종(禪宗)의 2조 혜가(慧可)가 자신의 팔을 잘라 법을 구한 이야기나 밀종(密宗) 백교(白敎)의 밀라레빠 존자가 일세(一世)에 고생스레 수련해 마침내 불과(佛果)를 성취한 이야기에서 큰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속세 깊은 곳에 떨어져
돌아갈 길 모르고
천백 년을 구르다
다행히 사존의 보도(普度)를 만나
구도 받았네 구도 받았네
절대 다시는 기연을 잃지 마시오

落入紅塵深處
迷失不知歸途
輾轉千百年
幸遇師尊普度
得度,得度
切莫機緣再誤

(《여몽령(如夢令)·득도(得度)》)

이 노래는 한 파룬궁 수련자가 도를 듣고 법을 얻은 후 내심 깊은 곳에서 표현한 마음의 소리다. 한 수련인이 무쇠 신발바닥이 닳을 정도로 도를 찾다가 실망과 절망을 거치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후에야 마침내 정법을 얻은 기쁨을 노래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수많은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들마다 각기 도를 듣고 법을 얻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존재하는데 비록 인연은 각기 다를지라도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사부님의 자비하신 구도에 대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와 은혜를 표현한다.

역사적으로 도가(道家)는 수진(修真)을 강조하는데 진정한 수련은 모두 사부가 도제를 선발한 것으로, 당신이 수련하려고 생각해도 사부가 당신이 자격이 있는지 또는 능력이 되는지 여부를 보아야 한다.

불가(佛家)에서는 선(善)을 닦고 널리 제도함을 강조하는데 석가모니는 고인도에서 이미 2500여 년 전에 열반했다. 하지만 그가 전한 불법(佛法)은 이미 말법(末法)에 들어갔고 말법시기의 승려들은 자신을 제도하는 것조차 어려운데 누가 와서 사람을 구한단말인가? 또 어떻게 널리 제도하는가? 세상 어디에 널리 제도하는 정법(正法)이 있는가? 대체 어느 때라야 즉신성불(卽身成佛)할 수 있는 정법이 있을 수 있는가? 이런 끊임없는 호소와 기대 속에서 역사는 눈 깜짝할 사이에 2천년이 지나갔다.

“드넓은 하늘 문이 만고(萬古)에 열리니 몇이나 돌아가고 몇이나 왔는가?(蕩蕩天門萬古開,幾人歸去幾人來)”

이 구절은 수련의 한 가닥 천기가 역사의 긴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부침하면서, 신불(神佛)의 배치 하에서, 수련인이 위아래로 추구하고 모색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세인들에게 신불을 인식하고 수련을 인식하며 수련의 서로 다른 형식과 다양한 표준을 인식할 수 있는 문화를 다져주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가 기다려왔던 대법이 전해지던 그 날, 이 한 가닥의 천기는 더 이상 한 가닥의 천기가 아니게 되었고, 예부터 지금까지 최초로 진정하게 사람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도록 남겨준 한부의 사다리인 《전법륜(轉法輪)》이 되었다.

(계속)

원문위치: http://big5.zhengjian.org/node/1184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