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망

글/ 유여(劉如)


1. 만년에 가부좌하고 도를 닦다

고경성은 《이시진전》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내가 어릴 때 선생에 관한 일화를 들은 적이 있는데 부모님께 효성스럽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었으며 또 덕행이 아주 깊으셨다. 만년에는 증조큰할아버지를 따라 노닐면서 배웠는데 책을 읽으면 해가 뜨면 시작해서 해가 질 때가 되어서야 휴식하셨다. 밤에는 정좌(靜坐)하고 도(道)를 닦으셨다. 때문에 어려서부터 자신을 신선으로 자처한 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물론 이시진이 남들이 모르는 상황에서, 부친이 꿈에 본 신선(역주: 철괴리)으로부터 의술을 전수받았는지, 또한 그가 어릴 때부터 신선으로부터 가부좌와 수도(修道)의 가르침을 받았지만 만년에 들어와서야 사람들에게 도술(道術)을 지닌 것이 발견되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본인만이 알 수 있을 뿐이다.

2. 책을 써서 신선의 의술을 남기려 하다

하지만 이시진은 《본초강목(本草綱目)》외에도 《기경팔맥고(奇經八脈考)》와 《빈호맥학(瀕湖脈學)》 등 경맥(經脈)에 관해 연구한 여러 권의 책을 남겼다. 고대에 수련계(修煉界)에서는 늘 언급되어왔지만 일반 의사들이 육안으로 볼 수 없었던 기경팔맥(奇經八脈)을 논술하면서 그는 의사가 만약 이 부분의 의술을 모른다면 진정으로 병의 이치를 알고 병 치료를 할 수 없다고 보았다.

때문에 그는 《기경팔맥고》에서 의사가 되거나 신선을 수련하려는 자는 반드시 기경팔맥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의사가 이것을 모르면 병의 기전을 탐구할 수 없고 신선이 이것을 모르면 화로(火爐)와 정(鼎)을 안치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단락에서 그는 한 가지 천기(天機)를 드러냈는데 그것은 바로 고대의 의술은 원래 수도자(修道者)에게 유래한 것으로 본래 일체였다. 다만 수련 경계(境界)의 차이에 따라 도(道)를 모르는 사람은 오직 속인 층차의 일반 의술에 머물러 심층의 병리(病理)를 장악한 신의(神醫)가 될 수 없었을 뿐이다.

인체수련은 속인의 경계를 초월할 수 없기에 기경팔맥의 진상을 볼 수 없으며 이 부분에 존재하는 다른 공간의 경맥을 볼 수 없어 인체의 신비를 장악할 수 없다. 때문에 의사가 도를 닦지 않으면 진정한 지식[真知]을 알기 어렵고 병리(病理)를 명확히 탐구할 수 없다. 또 수도하는 사람이라도 안정설로(安鼎設爐)와 연단(煉丹)의 원리와 진법(眞法)을 알기 어렵다. 그러니 일반인이 진기(眞機)를 얻지 못하면서 제멋대로 단(丹)을 연마하고 단을 복용한다면 속인은 이 로 인해 기로(岐路)에 잘못 빠지거나 중독되어 몹시 위험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경팔맥은 대체 어찌 된 일인가? 그는 《빈호맥학》의 한 단락에서 북송의 도인 장자양(張紫陽)이 기경팔맥에 관해 설명한 것을 인용했다.

​“자양팔맥경에 기록된 경맥은 의가들의 설명과는 좀 다르다. 하지만 ‘내경수도(內景隧道)’는 오직 반관자(反觀者) 만이 밝게 관찰할 수 있는 것으로 그 말에는 분명코 잘못이 없다.”

이시진은 이 단락에서 신선 수련자가 도를 얻은 후 관찰한 기경팔맥과 일반 의사가 인지하는 것이 왜 다른가하는 비밀을 설명하면서 수도(修道)하는 사람은 다른 공간의 눈을 통해, 다시 말해 도를 닦은 후 열린 천목(天目)을 통해(마치 스캐너처럼) 직접 자신의 경맥을 반관(反觀)하고 밝게 관찰할 수 있다고 했다.

천목의 층차가 다르면 보는 것 역시 다르니 일반인의 육안으로 어찌 볼 수 있겠는가? 때문에 온갖 설이 분분하고 역대 의가들 사이에 정해진 결론이 없었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으로 장자양의 주장이 옳다고 인정했다. 이것은 그가 이미 수련을 통해 기경팔맥의 진실한 모습을 직접 봤음을 입증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책들은 대부분 실전(失傳)되었고 고층(高層)의 의술 역시 자연스레 실전되었다. 아마 인간세간을 초월한 학문과 기술이라 보통의 덕행(德行)을 지닌 속인에게 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그가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속인의 층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본초강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대한 저서는 세계적으로 ‘고대의학의 백과전서’로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그속에 담긴 방대한 의학지식만으로도 후세인들의 찬사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이시진이 당시 후인들에게 남기려 했던 것일지 모른다. 이 거대한 저서를 완성한 후에 다시 말해 그의 생애에서 자신의 사명을 완성한 후에 그는 신선이 되어 떠나갔다(仙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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