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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견망

작자/ 대륙제자 경주

【정견망】

필자의 수련일기 중에서 몇 편을 골라 자신의 수련경력으로 “진정하게 고층차로 사람을 이끌다”, “사회에 책임지고 수련생에 책임진다” 에 대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이 진실하고 허구가 아님을 견증하고자 한다. 오직 수련자가 세심히 관찰하기만 하면 대법의 오묘함은 다 그 속에 나타난다.

견증 1: “사부가 제자를 찾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매우 운이 좋았다. 사부님께서 망망대해 중 ‘제자’를 찾느라 고생하고 애쓰셨음을 깊이 느낀다. 1983년 나는 막 대학시험을 봤으나 떨어져 휴학하고 집에서 쉬는 중이었다.

이 1년간 아마 서너 차례 같은 꿈을 꾸었다. 내가 어느 군대에 가서 잡지 아니면 어떤 책 한권을 보는 꿈이었다. 하지만 물론 그때는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기 전이었고 <전법륜>도 나오기 전이었으며 무슨 책인지도 몰랐다. 나는 이상하게 느꼈으나 식구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가족들은 기독교를 믿었다.

1988년 도시에서 직장을 구했다. 형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산 넘고 물 건너 도착했을 때 산비탈에서 군대 막사를 보았는데 꿈에서 본 것과 똑같았다. 당시 우리는 피곤해서 잠시 쉬면서 이 부대의 정문을 보았다. 나는 정말 들어가서 서가에 그런 잡지나 책이 있는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형에게 말하지 않았고 마음속에만 묻어두었다.

1998년이 되어 우연한 기회에 한 친척이 파룬궁을 연마한다면서 <전법륜>이란 책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마음이 크게 진동했다. 즉시 그에게 책을 좀 빌려달라고 했다. 그는 나를 독실한 기독교도로 알았기 때문에 책을 가져오지 않았고 사흘 후 내가 직접 가서 가져왔다. 이때부터 수련의 길이 열렸다. 나중에 비로소 내가 본 그 잡지는 기공잡지이며 표지는 사부님께서 앉아서 연공하는 사진이 있었고 그 책은 바로 <전법륜>이었다.

견증 2: <전법륜>은 구절마다 진실하며 진법이다

1998년 4월 12일 <전법륜>을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로 중시하지 않았는데 내가 젊고 몸에 병이 없었기에 주로 그 속에 있는 이론과 어떤 이치를 말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소설처럼 생각하고 아이가 숙제하는 것을 지켜볼 때 옆에서 보았다. 책을 보니 거기서 말하는 이치는 이전에 듣지 못한 것이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은 매우 논리적이었고 이론과 논리가 빈틈이 없었다. 내 머릿속에 의문이 나타날 때는 그 다음 구절이 해석해주었다. 당시 나는 이 책이 매우 기이하며 마치 나를 위해 쓴 것 같았고 스승님께서 그 자리에서 의문에 해답해주시는 것 같았다. 나는 매우 기뻤다. 제 3강을 보았을 때 ‘오장 공법을 한꺼번에 전부 다 배운다’는 부분을 읽었다. 또 동작이 있나? 나는 즉각 그 친척을 찾아가 연공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것이 4월 15일, 즉 책을 본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견증 3: 사부님의 법신이 바로 사부이며 살아계신다.<정성주해> 중에서 사부님은 제자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법신을 볼 때면 또 하나의 완정하고 독립적이며 확실하고도 확실한 개체의 생명이다. 사실 간단히 말하면, 나의 법신은 곧바로 나다.”

1998년 4월 20일. 그것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꿈이다. 아직 책을 다 읽지 않았을 때다. 공법도 몇 개 동작만 배웠고 며칠만 연공했다.

이날 밤 꿈에서 시장에 가서 새 한 마리를 사는데 가게 주인은 나에게 깃털을 제거해주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다 깃털을 제거해주는데 나에게 해주지 않아서 나는 무엇 때문인지 물었다? 그의 태도는 더욱 좋지 않아 원하면 가져가고 싫으면 그만두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화가 났다. 당신 말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사람을 찾아 당신 좌판 진열대를 뒤집어 놓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자 그는 더욱 못되게 굴었으며 손으로 나를 밀쳐 나는 거의 쓰러질 뻔 했다. 이때 내가 돌연 마음을 바꿔 생각했다. 나는 연공인인데 마땅히 그에게 감사드려야지. 이런 생각이 언뜻 나오자 사부님의 법신이 나타났다. 금빛 찬란한 태양 같은 둥근 원 속에 사부님의 법신이 나타났다. 사부님은 가사를 입고 연화반 위에 가부좌하고 두 손을 합장하고 가벼운 미소를 띄고 계셨다. 약 5,6초간 지속 되다가 채색 유리가 파쇄되는 것처럼 사라지셨다. 이 몇초 간 사부님의 미소는 내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속인이 이해할 수 없는 이치를 알게 해주셨다. 사부님의 법신은 살아 있고 내가 본 것은 사부님의 사진이 아니라 진실한 법신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경문을 보고서야 비로소 사부님의 법신이 바로 사부님 본인임을 알았다. 정말 현묘하고 오묘하고도 수승하며 장엄하다.

견증 4: 천목이 열려 책의 전체 과정에 다른 공간의 경치는 속인경치보다 더욱 뚜렷하고 밝음을 보다.

1998년 4월 21일, 하늘에 가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5시 반 정각에 연공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고 나는 아마 비가 오니까 사람들이 안오는구나 생각했다. 내가 막 단체 연공에 참가했기 때문에 서로 잘 알지 못하고 그들이 다른 곳에 연공하러 간 것임을 몰랐다.

그래서 혼자서 나무 아래서 2장 공법을 연마했다. 내가 ‘푸첸빠오룬’을 연마할 때 양미간의 살이 단단히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안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그 힘은 매우 컸다. 나는 처음에 좀 겁이 났는데 2강을 보았으므로 사부님께서 천목을 열어주시는 것임을 알았다. 나는 책의 요구대로 움직이지 않고 그저 묵묵히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대법의 불가사의한 초상적인 힘을 느꼈다. 제 1강에서 파룬을 말했을 때 친척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파룬을 누가 넣어주느냐, 사부님이 여기 계시지 않는데. 친척은 그저 물어보지 말고 읽어나가면 알게 될 것이라고만 말했다.

살이 안으로 파고 든 후 나는 새해에 폭죽을 터뜨리는 것처럼 한가닥 강한 빛이 하늘을 향해 발사되는 것을 보았다. 그 속도는 매우 빨랐으며 꼭대기에 도달하자 꽃이 피었고 방출된 빛줄기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폭죽처럼 눈이 현란했다.

그날부터 나의 천목은 속인이 보지 못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매일 연공하면 책에서 말한 것처럼 어떤 때는 말을 타고 밖으로 달리며 어떤 때는 차를 타고 달리는데 늘 끝에 다다르지 못했고 양쪽에 산과 물을 보았으며, 길의 양쪽에 전신주도 보였다.

나중에 어느 날 밤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데 막 눈을 떴을 때 나는 무서워서 머리를 아래로 묻었다. 커다란 눈을 보았는데 처음 겪는 일이라 특히 두려웠다. 나중에 공부를 많이 하자 이 눈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일어나거나 평소 눈을 감았다 뜨면 그 순간 둥그런 빛이 매우 밝게 보였고 나도 느낌이 좋았다,

나중에 천목은 줄줄이 연결된 파룬을 보았다. 이런 파룬은 대략 손가락 끝만 했는데 매우 투명하고 무색이며 중간에 卍자 부호도 투명했다. 마치 <홍음>에서 사부님께서 그리신 대 도인의 손에 있는 그 파룬 같았다. 어떤 때는 바탕이 붉은 색이며 중간 만자부호는 투명한 파룬이었다.

견증 5: 신체 정화는 확실하다

1998년 4월 25일 밤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또 그리 아프지 않더니 설사를 하고 토했다. 십분간 괴로웠다. 온 밤 내내 잠이 들지 못했고 아내는 걱정이 되어 병원 가야 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 나는 이것은 신체 정화이니 괜찮다고 했다. 토하고 설사하는 밤에 나는 이전에 내가 이전에 나쁜 일을 했던 것 예를 들어 누구에게 거짓말했거나 괴롭혔거나 아이였을 때 성숙하지 못한 일이 다 뒤집혀 나왔다. 하나하나 똑똑히 눈앞에 전개 되어 나는 잘못을 승인했고 이것은 신체정화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심령의 정화도 하는 것임을 알았다.

마치 책에서 말하는 것과 같았다. “가장 낮은 층차에서 수련할 때에는 하나의 과정이 있다. 바로 당신의 신체를 완전하게 정화해 주어, 사상 속에 있는 모든 좋지 못한 것들, 신체 주위에 있는 업력장(業力場)과 신체를 건강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를 전부 다 청리(淸理)해 내보낸다. 청리하지 않는다면, 이런 하나의 혼탁한 신체, 거무칙칙한 신체와 하나의 더러운 사상을 가지고 어떻게 고층차 수련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가장 맹렬한 신체 청리는 바로 이날 밤이었으며 나중에 계속 이런 설사 형식으로 신체 청리가 있었다. 때로는 연공장에서 때로는 단체 법학습에서 때로는 집에 있을 때였다.

견증 6: 숙명통 공능은 존재한다

<전법륜>에서 말한다. “층차를 끊임없이 제고함에 따라, 숙명통공능은 자연히 나올 것이며 장래 수련 중에서 이런 정황을 만날 수 있다.”

수련한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계속해서 일부 과거의 일을 알게 되었다. 이런 것은 꿈에서 나타났는데 어떤 것은 비교적 상세하고 어떤 것은 모호했다. 특히 꿈에 시의 구절이나 문자가 나타났을 때 깨어난 후 전부를 기억하지 못했고 다만 대개의 뜻만 기억했다. 하지만 꿈에 나타난 인물은 현실 중의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이런 인연 관계를 알아도 소용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도 없다. 다만 자기가 누구와의 과거의 관계를 알뿐이다. 왜 속인 중에서 가깝게 나타나는지 왜 늘 충돌이 일어나는지 등등.

예를 들어 1999년 박해가 시작했을 때 정부의 한 간부가 나와 담화하며 나의 일을 해주고 나를 보호하겠다고 했다. 그날 밤 꿈을 꾸었는데 그와 나는 이전에 동료였고 당시에도 그는 나의 상급자였다.

견증 7: 스승이 음성으로 점화하는 것은 입체 음성이다.

“어떤 사람은 나의 법신을 보았다고 하지만 당신과 말한 것이 아니다. 그가 내보낸 의념은 입체 음향을 갖고 있어 당신이 듣기에는 마치 그가 말하는 것과 같다.” <전법륜>

1998년 6월 20일 새벽 3시였다. 꿈에 스승님께서 오신 것을 보았는데 단번에 사라지셨다. 이때 광풍이 일어났고 땅에서 돌 모래가 날았다. 마치 강한 태풍이 습격한 것 같았다. 이때 사부님께서 내게 많은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다만 한마디 말만 내 머리에 들어왔다. 그것은 바로 “당신은 반드시 여러 사람과 함께 앉아야 한다.” 나는 말했다. “스승님 점화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승님, <전법륜>에서 저는 아직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는데 예를 들어 모래알속에 삼천대천세계가 있다는.....” 그러나 사부님의 대답은 들을 수 없었고 휙휙하는 바람소리만 들렸다.

깨어난 후 생각했다. 나는 매일 사람들과 함께 연공하는데 왜 사부님은 반드시 여러 사람과 함께 앉아야 한다고 하셨을까? 아. 이건 며칠 전 소장이 단체 법학습에 참가하라고 했는데 나는 참가하지 않았다. 나는 교육수준이 높아 혼자 배워도 된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사부님께서 단체 학습에 참가하라는 것이었구나.

그날부터 시작해서 나는 단체 학습 시간에 참가했다.

견증 8: 세계관이 변하자 신체가 껍질을 벗은 것 같다

그날 오후 2시 경 구체적인 시간을 잊어버렸는데 일기에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일기는 주로 꿈을 적는데 한동안은 기억하는 것이 집착이라고 생각하여 시간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때는 전법륜을 아직 한번 다 읽지 않았을 때였다. 정오에 휴식하고 있는데 제 8강을 보았다. 누가 연공하면 그가 공을 얻는다와 주천이 매우 이치에 맞다고 생각되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주천은 아직 다 보지 않았다. 그래서 보니 “우리 많은 사람은 이 강당에서 나간 다음, 당신이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텐데, 보증코 당신의 세계관마저 전변(轉變)이 생길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장래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알 것이며, 더는 그렇게 얼떨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것인데, 보증코 이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心性(씬씽)은 이미 따라 올라온 것이다.”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오토바이를 타고 길을 가며 생각했다. 그렇구나. 이전처럼 흐리멍덩하게 살 수 없지 나는 진지하게 법을 공부하고 수련해야겠다. 이때 갑자기 나의 신체가 마치 껍질을 벗는 것처럼 느낌이 매우 강렬했고 이 껍질은 머리에서 발까지 벗겨졌다. 단번에 신체가 가뿐해졌다. 또 특별한 변화가 있었는데 눈이 단번에 맑아졌으며 온 하늘이 더 맑은 것 같았다. 다른 변화는 과거의 그런 더러운 말 거친 말과 욕하는 말을 일거에 반복하지 않게 되었다.

한번 동료와 이야기 나누는데 그들은 속된 말을 늘 했으므로 무의식중에 그런 말을 따라 부화뇌동했다. 이때 이 말이 나의 두뇌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느꼈다.

그 저속한 말이 내게서 멀리 떠난 후부터 동료는 나와 함께 있기를 좋아했다. 이따금 일하는 중에도 못된 말투 때문에 작업을 완성하기 힘든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욕하거나 더러운 말을 하지 않았다. 일하는 중에 사부님의 경고를 기억했다. “일처리 중의 어투, 선한 마음, 도리(道理)를 더하면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으나 명령은 영원히 할 수 없다! ” <청성>

견증 9: “수련은 예부터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주장하는데, 당신이 만약 이 한 문에서 진정하게 수련[眞修]하려면 오직 이 한 문의 경(經)만 보아야 한다.” <전법륜>

수련 전에 우리 온 가족은 주말이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1988년 나는 신기한 일이 나타난 것을 직접 겪었다. 내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느님께 기도하여 기적이 일어났는데 나는 좋은 일이라고 느꼈다.

<전법륜>에 여러 차례 불이법문의 문제를 말했다. 나도 반드시 선택을 해야 했다. 그날 나는 예수 상에 대해 합장하고 말했다. “예수님 당신은 매우 좋은 신인 줄 압니다. 저의 몸에도 당신의 신의 법력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현재 속인 중에서 사람을 제도하는 신을 만났고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으니 용서를 바랍니다.” 그 후 나는 예수의 상을 떼 내었고 <성경>과 함께 형에게 주었다.

속인 공간에서 이렇게 하자 꿈에서 계속 이 문제를 고험했다. 여러 번 <전법륜>과 <성경>을 펼쳐놓고 택하게 했다.

나중에 1999년 초 어느 단체 법공부 중 벽에 걸린 사부님의 법신 사진에서 많은 불, 도, 신, 보살이 나타났다. 제일 먼저 나타난 것은 예수였고 2,3초 간격으로 하나씩 바뀌었는데 속도가 매우 빠르고도 똑똑했다. 대각자는 너무 많았다. 그날 나는 매우 격동하고 감동했다. 내가 기독교를 떠났는데 오히려 내가 처음 본 신은 예수였다. 사부님의 법력과 정법자의 풍모는 탄복할 만했다.

나는 그날 사부님의 법은 한 점도 틀린 것이 없으며 큰소리를 치거나 허황한 소리를 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전법륜> 제 5강에 사부님의 사진이나 책으로 불광을 개광하는 문제를 말했다. “30초면 곧 문제가 해결된다.”고 했는데 사실 30초도 필요 없고 3초면 된다. 사부님의 말씀은 늘 여지를 남긴다. “나 이 사람은 한 가지 습관이 있다. 나에게 한 장(丈)이 있으면 나는 한 자[尺]라고 말하는데, 당신은 내가 허풍을 떤다고 해도 다 좋다. 사실 이것은 조금만 말했을 뿐이며, 더욱 높고 깊은 대법(大法)은 층차가 너무나도 차이 나므로, 나는 전혀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말해 줄 수 없다.” <전법륜>

사람마다 법에 입문할 때 한두 가지 혹은 더 많은 장애를 만나는데 나도 마찬가지다. 처음 <전법륜>을 읽을 때 제 6강 연공초마에서 색마에 대해 읽을 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욕(慾)과 색(色),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의 집착심에 속하며 이런 것들을 마땅히 모두 제거해야 한다.” “일부 사람들은 그것을 아주 중하게 보는데 우리는 연공인(煉功人)으로서 그것을 아주 담담하게 보아야 한다.”

나는 바로 애정을 중요하게 보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보고 나는 주저했다. 내가 수련할 수 있는가, 만일 이 문을 수련하면 부부의 감정과 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는가.

이런 의문이 막 솟아나자 사부님은 바로 다음의 말에서 나의 의혹을 풀어주셨다.

“그러므로 이런 일들을 당신 역시 그것을 너무 중하게 보지 말아야 하며, 당신이 과분하게 걱정한다면 역시 집착에 속한다. 부부간에는 색의 문제가 없지만 욕망이 있는데, 당신이 그것을 담담하게 보고 심리적 평형을 이루면 된다.” 특히 그 한 구절이었다. “당신이 과분하게 걱정한다면 역시 집착에 속한다.” 그렇다 우리는 중하게 볼 수 없고 담담하게 놓으면 된다. 걱정하는 것도 집착이다.

나도 색관에서 잘 지나가지 못했다. 세 번째가 되어 내가 지킬 수 있음을 느꼈고 1998년 색의 고험이 6차례나 있었다.

<전법륜>에서 관정을 말했는데 나도 몇 차례 직접 겪었다. 대다수는 연공할 때 관정이 있었는데 특히 제 2장 공법 포륜을 할 때 비교적 여러 번 나타났다. 관정의 상태는 사부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 갑자기 한가닥 뜨거운 흐름이 정수리에서 신체 아래로 운행했다. 어떤 때는 불완전했고 한번은 가부좌하고 있을 때 관정이 다리에서 정수리를 향해 관(灌)했다. 어떤 때는 한번만이 아니었고 연속 두 번, 세 번도 있었다. 매 차례 7,8 초 정도 길었다. 한번은 매우 특별했는데 점심 휴식 시간에 자리에 누워 쉬고 있었는데 아직 잠이 들기 전에 관정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누워서 관정한 것이 아니라 신체가 20도 정도 기울어져 들렸다. (머리가 침대에서 뜨고 다리는 침대에 놓여있었음) 전반 신체가 일어나 앉은 것이 아니라 잠자는 것처럼 뻣뻣했는데 이렇게 관했다.

그때 사부님에 대한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속인이 보기에는 이렇게 하는 사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혼자 공부한 사람으로서 사부님을 뵌 적도, 학습반에 참가한 적도 없고 학비도 한 푼도 안냈지만 사부님께서 신체를 정화해주셨다. 게다가 파룬을 넣어주시고 천목을 열어주고 관정해주시고 윤회의 기억을 열어주시며 속인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지 못할 문제에서 이런 내재적인 인연관계를 보여주셨다. 또 전혀 알지 못하는 공과 수련에 필요한 일체 물질을 연화해주시니 세상에 이런 사부님이 또 어디 있겠는가? 또 어느 사부가 이렇게 할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전법륜>에서 말한 “진정으로 고층차 상으로 사람을 이끌다” 가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그러므로 천목이 열려도 수련하기 어려우며 心性(씬씽)을 파악하기는 더욱 어렵다고 한다.” 라고 하신 것이 확실히 이와 같다.

처음 꿈에서의 고험은 사부님 법신을 본지 얼마 안 되어 마가 나타났다. 이것도 상생상극의 원리에 따라 조성된 것이며 내가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꿈에서 어느 여자가 유창한 영어로 설법하는데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아주 오래 했다. 말한 것이 무엇인지 똑똑하지 않은데 그녀의 표준 영어에 감탄했다. 이런 염두가 나왔을 때 그녀가 형상을 드러냈다. 등 뒤에 나에게 연공 동작을 가르치는 화면이 나타났다. 나는 그녀를 따라 흉내를 내기 시작했는데 잠시 생각하니 옳지 않았다. 이건 오장 공법이 아닌데. 이런 일념이 번득 스치자 그녀는 사라졌다. 그 후 그녀는 중국어로 “연마를 잘했군”라고 말했다. 깨난 후 이것이 마의 교란임을 알았다.

저령(低靈)의 것은 누추한데 대법 수련을 하는 사람은 그것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그것도 감히 대법수련자를 교란하지 않는다. 1998년 단체 연공할 때에 나는 일부 저령의 것들을 보았다. 그것은 공원에서 속인이 태우는 향, 종이 따위를 태우는 흙더미 속에 있었다. 그것은 향을 꽂아 놓은 곳에서 튀어나왔고 단번에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났다. 키는 보통사람보다 좀 작았다. 머리는 길고 더러운데 가슴 앞까지 늘어뜨려져 있었다. 얼굴도 추했고 주름살이 깊게 패였으며 피부가 시커멨다. 몸에는 다 떨어진 검은 옷을 걸쳤고 얼른 보면 거지보다 더 꾀죄죄했다.

그것은 그곳에서 나온 후 줄곧 달려가서 내 옆을 지나면서 곁눈질로 나를 보았다. 나도 움직이지 않고 사부님께서 법에서 말한 이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감히 대법수련자를 건드리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조용히 보고만 있었다. 서로 교란하지 않았다.

사실 그 공원은 우리 연공장과 어느 정도 떨어져 있었다. 나도 그것이 왜 내 곁으로 왔는지 모른다. 단지 전에 우리 세 가족이 공원에 가서 연마할 때(그때는 아직 대법을 수련하기 전이었다) 아이가 향을 피우는 곳에 가기에 멀리 가지 말라고 말한 적이 있을 뿐이다. 그 후 99년 연공할 때 그것이 어느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98년 내 기억 중에 두 가지 잊지 못할 일이 있다. 하나는 인근 마을에서 열린 심득교류회 참가한 것이다. 우리 어느 동수가 필름 카메라로 교류하던 수련생들의 사진을 찍었다. 인화하여 나온 사진을 보니 교류하던 수련생의 가슴 앞에 둥그런 백색의 빛이 있었다. 어떤 것은 가슴에서 정수리까지 컸다. 그 동수는 가장 둥근 원이 있는 사진 한 장을 내게 주었고 나는 줄곧 간직하고 있다. 이것이 파룬의 기묘한 작용이다. 이것이 다른 공간의 현상이 물질 공간에 나타난 진실한 사진이다. 실증과학 각도에서는 영원히 해석할 수 없다. 현실 공간에 없는 것이 오히려 현실 공간 중으로 빛에 의해 반영될 수 있는가? 실물 없이 그림자가 있을 수 있는가? 유감인 것은 2000년 다른 동수가 진상을 한다고 가져간 후 잃어버렸다.

두 번째 일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전법륜>의 글자가 심층 공간에서 불도신의 형상이라는 것을 견증했다. 마지막으로는 사부님의 법신이었다.

수련 후 하나의 현상이 나타났는데 잠을 적게 자도 오히려 힘이 넘친다. 이 때문에 한동안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나는 일어나 <전법륜>을 베껴 쓰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시간만 나면 책을 베껴 썼다. 한번은 내가 책을 베끼는데 손이 시큰해서 더 내려갈 수 없었다. 머리를 들어 내가 한참 쓰고 있던 <전법륜>의 그 페이지를 보니 전부 가부좌하고 있는 승려들이 두 손을 제인 한 모습이었다. 나는 격동했는데 2,3 초만에 사라졌다.

또 한 번은 밤에 잠들기 전이었다. 휴대폰으로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듣고 있었다. 갑자기 천목으로 하늘에 많은 부처들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 사각형으로 가지런히 줄을 맞추었는데 역시 가부좌하고 제인을 하고 있었다. 나는 사각형의 사선 대각선 방향으로 보았기에 매우 가지런하고 엄숙하게 보였다. 그때 나는 다른 공간의 불도신이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있는 것임을 알았다. 나중에 이 일을 보도소장에게 말했더니 그녀는 법을 존경하라고 사부님이 나를 점화하신 것이라고 했다.

앞서 든 몇 가지 예들은 주로 1998년 초 사부님의 위대함과 대법의 현묘함을 견증한 경험이었다. 그것도 당시 내 층차에서 감수한 그 층차 그 한 층차의 불법(佛法)이 체현된 장관의 일부일 뿐이다. 사실 불법무변이라, 법리는 <전법륜>에서 수련 중 만나는 각종 정황을 책에 천명해놓았다. 내가 이런 경험을 쓰는 이유는 주로 동수들에게 거울이 되고 속인이 대법의 정심하고 위대하며 불가사의한 내포를 느끼게 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또 사존께서 어떻게 제자의 수련을 이끄시는지, 어떻게 진정으로 제자를 위해 책임지고 사회에 대해 책임지시는지 알게 하기 위해서이며 대법을 중도에 포기하고 떠난 사람들이 다시 수련의 신심을 불러일으켜 만고에 다시 오지 않고 신선조차 얻고자 해도 얻지 못하는 대법과 스쳐 지나가 평생 후회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함이다.

되돌아보면 1998, 1999년에서 2015 년까지 나의 수련은 감성적으로 법을 인식하는데 머물러 있었고 진정으로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않았고 법에서 수련하지 않았다. 이 역시 내가 1999년 고험에서 떨어진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1999년은 수련의 이정표이자 전환점이었다. 희비가 교차했고 원만할 수 있는가 하는 고험 중에 각종 심태, 각종 수련 상태가 빠짐없이 폭로되어 나왔다. 매 수련자는 스스로 자신의 수련이 어떤지 원만 표준에 도달했는지 마음속으로 자명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원신이 착실히 수련하는 정황에 대한 전면적인 검열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사람마음도 하늘로 가져갈 수 없다.

아래에 나의 이 1년간 수련의 기본 정황을 여실히 기록한다. 어떤 인식은 법상에 있지 않으니 동수들의 지적을 바란다.

이 해에 나의 천목은 아주 똑똑했다. 매일 대법의 행복에 빠져 수련하는 중에 홍법, 학법, 법을 베껴 쓰고, 연공했으며 친척과 동료들도 모두 대법의 복음을 들었다. 어떤 사람은 수련으로 들어왔다. 설사가 나며 신체 청리하는 일은 늘 나타났고 자기의 몸이 가볍고 정력이 충만했다. 업무능력도 뛰어나 어떤 때는 직장환경이 법을 공부하고 홍법하는 장소로 변했다. 비할데 없이 행복과 행운을 느꼈다. 이 단계에서 나는 여전히 신체의 변화와 대법의 위력과 신기를 느꼈으며 사존을 한번도 뵙지 못한 것이 일생의 유감이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눈을 뜨니 벽에 대야만한 크기의 구역이 밝은 것을 보았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보았는데 그 구역에 아주 작고 작은 벌레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 그때 나는 사부님께서 법에서 말씀하신 대로 사람의 신체는 미시적인 하에서 모래알 같은 것임을 알았고 내가 본 그 벽의 작은 부분이 꿈틀거리는 벌레는 바로 분자가 활동하는 것이었다. 그것들도 살아있었다. 사부님이 말씀하신 법은 조금도 허황하지 않았고 다만 자기가 그 층차까지 수련하지 못해 몰랐을 뿐이었다.

나중에 나는 벽에 손바닥만한 거미, 바퀴, 게 등이 기어다니는 것을 보았는데 모두 손바닥 만했다. 그 후 천천히 담담히 벽속으로 사라졌다. 처음에는 내가 가서 그것을 때렸는데 때릴 수 없었다, 나중에 내가 본 것이 다른 공간임을 알았다.

우리 시의 한 대학에서 한차례 7일간의 합숙 법공부 반을 조직했다. 보도소장이 나더러 참가하라고 했다. 나는 학교 다니는 것처럼 누가 와서 설법한다고 생각하여 매우 기뻐하며 명단을 올렸다. 내가 기록이 빠르니 가능한 한 받아 적어서 보여주겠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하지만 대학에 가보니 일백여 명이 왔는데 조를 나누어 <전법륜>을 읽었고 아침에 단체 연공을 했다. 저녁에는 조를 나누어 책을 읽거나 아니면 각자의 체험을 이야기했다.

나는 실망했다. 기왕 왔으니 단체 법공부도 괜찮았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귀감이 되었다. 나는 말을 거의 안했는데 법리를 잘 몰랐기 때문이었고 오성이 더욱 따라 올라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 교사가 있었는데 그의 오성이 아주 좋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사부님께서 수인하는 사진 아래 두 개의 인감이 무슨 뜻인가 하고 사람들에게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나도 그것에 유의하지 않았다. 그는 나중에 말했다. 그는 그 정방형의 인감은 제자더러 정정 당당하게 수련하라는 것이며 그 발바닥 같은 도장은 제자들에게 착실하게 수련하라고 한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동수의 오성에 탄복했다. 나는 어떻게 깨닫는지 몰랐고 무엇을 깨달음이라고 하는지 몰랐다. 자기는 너무 뒤떨어져 있고 반드시 따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에 단체 교류할 때는 성(省) 보도소에서 사람들이 와서 각 조를 안내했다. 우리 조는 20여 명이었고 조장은 여자였는데 그녀는 각자 체험을 이야기하라고 했다.

나는 원래 발언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나더러 말해보라고 해서 꿈에 색관을 넘긴 일을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즉시 나더러 너무 상세히 말하지 말라고 제지하며 비판했다. 그때 나는 기분이 나빴다, 당신들이 말을 하게 해놓고 내가 사실대로 말하니 또 싫어하는구나. 그날 밤 기숙사에서 몇 명이 함께 있었는데 원래 서로 모르던 사이였다. 그들은 모두 노인이었으며 나만 젊었다. 그들은 내가 방금 발언한 것을 듣고 어떻게 법을 얻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간단히 내가 법을 얻은 과정을 말해주었다.

그 중 한 노동수(나에게 둥근 빛이 있는 사진을 보내준 동수)도 천목이 열렸는데 내말을 듣고 말했다. “내가 본 것을 좀 말하려는데 당신들은 마음에 두지 마세요.” 그는 내 옆에 있는 동수를 가리키며 그의 공기둥이 좀 짧으며 천장 높이 정도라고 했다. 그리고 나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당신은 꽤 괜찮은데 잘 수련하세요, 공기둥이 상당히 높아요. 2000년 후 나는 줄곧 그를 찾으려 했으나 소식을 듣지 못했다. 내 옆에 있던 동수는 현재 병마로 고생하고 있다.

한번은 단체 법공부 할 때 어느 노부인 물컵을 그녀의 손자가 깨뜨렸다. 그녀는 이후 물컵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그녀는 교류 중에 말하기를 법공부하는데 물컵이 필요 없고 물을 마실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물컵을 가지고 오지 않으며 목이 마르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그때 나는 매우 감동되었다. 나는 내가 지식이 있으니 법을 다른 사람보다 더 잘 배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오성은 교육 수준이 낮은 할머니보다 낮았던 것이다.

나중에 소장이 몇차례 나더러 시내 각 연공장의 매주 법공부 교류회에 참가하라고 했다. 한번은 우리가 법공부 후 교류할 때 나는 <전법륜> 표지의 파룬이 일어서서 춤을 추고 또 떨어지고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을 보았다. 매우 기묘했는데 마치 여자 어린이가 자기도 모르게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아마 에너지 장이 강하니 파룬이 활기를 띠는 것 같았다.

4.25가 일어난 후 어느 법공부 교류상에서 어느 대학 연공장의 여대생이 참가했다. 그녀들이 도로 옆에서 연공하고 홍법하다가 그곳 파출소에게 제지당했으며 파출로소로 끌려가 심문 받은 일이 있다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사람들은 이 일에 관해 토론했다. 나는 조용히 들었다. 몇차례 교류회에서 특별히 이번 차례에 나는 일부분 동수의 쟁투심이 강한 것을 들었다. 다른 사람 특히 속인이 우리가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제지하려는 것 같았다. 대법을 수련하니 좀 높은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자리에서 많은 사람이 파출소 공안국에 편지를 쓰고 방문을 하자고 제기하는 것을 보았다. 또 사람들은 근거 없이 여대생이 대법에 먹칠하는 뜻이 있다고 질책했다.

소장은 사람들의 발언을 다 듣고 나의 의견을 물었다. 아울러 사람들에게 나는 연공장 책임자는 아니고 임시로 참가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때 파출소에서 한 처리가 법률 규정에 위반한 것은 없다고 했다. 반대로 우리가 일을 할 때 주위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길거리에서 길에서 단체 연공하고 행진하는 것은 법률이 허용하지 않는 것이며 비록 양옆에서 연공 홍법을 하는 것도 안 된다. 사람들이 와서 쳐다보면 도로 교통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는 상방도 하지 말고 편지도 보내지 말자, 우리가 잘못한 것이지 저쪽이 잘못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앞으로 교훈을 얻으면 된다. 이 일은 지나가게 하고 법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필경 그들은 한번 기록해놓았을 뿐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하지 않았지 않느냐. 그들은 나의 건의에 동의했으며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6월 1일 직장에서 긴급회의가 열려 파룬궁 문제를 처리하는 데 대한 중앙의 의견을 전달했다. 공산당원이나 기관간부들은 파룬궁을 연마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머리가 띵해졌다. 첫 반응은 당의 결정이 잘못이라는 것이었다. 그날 밤 꿈을 꾸었는데 체육 위원회에서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들에게 회의를 개최하라고 했다. 나도 참가했는데 약 20명이었다. 사람마다 두 장의 자료를 나누어 주었으며 모모 공을 소개했다. 나는 자료를 둘둘 말았다. 어떤 사람은 보았고 어떤 사람은 버렸다. 모임을 주재하는 사람은 자료를 읽어보라고 했는데 나는 회의장을 나가서 자료를 버렸다.

속으로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지켜야 하니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돌아갔을 때 회의는 이미 끝나 있었다. 사람들은 떠났고 나는 입구로 가다가 25세 정도 된 체육 위원회 여직원을 만났다. 그녀는 찻잔을 씻고 있었다. 내가 가서 당신 파룬궁을 연마해보세요, 그래도 파룬궁이 좋아요,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라고 하며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해요. 그녀는 자기가 부체공을 연마한다고 했다. 나는 집착심을 버리고 심성을 제고하면 층차가 제고된다고 했다. 그녀는 좋다고 했다. 나는 집에 돌아가 <전법륜>을 주겠다고 했더니 그녀는 내일 달라고 했다, 나는 아니요, 오늘 주겠다고 했다.

처음에 나는 정부가 일시적으로 잘못한 것이며 재빨리 바로잡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직장 상사에게 여전히 파룬궁을 연마하겠노라고 했다.

매일 나는 여전히 시간이 되면 연공장에 가서 연공했으며 아내는 저녁에 연마했다. 7월 21일 밤 아내가 연공하고 돌아왔는데 소장이 쪽지 하나를 주었다면서 가져왔다. 내가 보니 내일 정부에서 파룬궁에 대해 대대적으로 수색 체포를 하니 책을 숨기고 도시를 떠나라는 것이었다. 그때 친구가 우리집에 손님으로 와있었는데 정말 그녀가 좀 빨리 가주었으면 했다. 매우 긴장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가 어떻게 하다 보니 그때 이미 거의 11시가 되었다. 나는 모든 대법 서적을 여행 배낭 속에 넣었다. 그녀가 막 떠나자마자 즉시 책을 장모님 집에 보내고 사무실로 돌아와 대법서적을 숨겼다. 아내는 소장이 빨리 도망가라는데 어떻게 해요 하고 물었다? 나는 도망가지 않고 집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날 밤 오랜 기다림 끝에 가장 긴 밤, 불면의 밤, 걱정하는 밤을 보냈다. 공안국 인원이 와서 문을 두드려 사람을 잡아가기를 기다렸다.

부지불각 중에 연속 세 개의 꿈을 꾸었다. 모두 자기를 잡으러 온 사람을 어떻게 응대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나의 상급자가 설명하게 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내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어 난관을 넘기려고 하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자기가 직접 파룬궁 연마를 부인하는 것이었다.

깨어난 후 나는 관을 넘기지 못한 것을 확인했다. 그때는 이것이 원만할 수 있는 고험인지를 알지 못했다. 세 개의 꿈 속에서 성경에서 말한 예수가 수난을 받을 때 베드로가 세 차례나 주(예수)를 부인하는 경험과 거의 일치했다. 사부님은 꿈이 비록 수련은 아니지만 수련이 착실한지 아닌지 고험한다고 하셨다. 짧은 몇 개월간의 꿈에, 홍법을 하여 파룬궁을 배우라고 하는 것과 파룬궁을 부인하는 것을 다 꾸었으니 차이가 얼마나 큰가. 비록 꿈에 공안국 직원을 속여 관을 넘기려고 하는 성분이 있었지만 그것도 안 된다. 수련은 엄숙하다. 조금도 대충할 수 없고 더욱이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는 것을 허용하지 못한다. 실패했고 철저한 실패였다.

이때부터 수련의 다른 고통스런 과정으로 들어갔다. 수련 환경을 잃었고 신경문도 없었다. 정부의 압력과 하늘 땅을 뒤덮는 악독한 공격 하에서 나는 반복해서 생각했다. 정부의 결정이 옳은지 반복하여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배운 이 법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 바른지 바르지 않는지? 리훙쯔(李洪志)는 어떠한 사람인지? 이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중상한 사악한 세력, 그것이 한 말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 매 수련생은 모두 이런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많든 적든 당신들 모두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또 당신들에게 한 차례 생각할 기회를 준 것이다.” <도항 - 북미 오대호 법회 설법> 확실히 이렇다. 같이 한번씩 사고했고 할 때마다 굳건해졌다. 무엇 때문에 발생할 수 있었는가? 무엇 때문에 발생해야 했는가? 나는 줄곧 답안을 찾고 있었다.

나는 평소 맡은 일에 책임지고 공명을 구하지 않으며 이익을 도모하지 않았다. 특히 집을 분배하거나 간부로 뽑히는 일에 동료나 상사가 수련자의 박대한 흉금을 이해하도록 했고 게다가 줄곧 직장의 우수 모범사원으로 선정되어 사람들의 평판이 좋았다. 때문에 파룬궁 이 일에서 그리 큰 상해를 조성하진 않았다.

나는 정직 당했다. 그래도 매일 반드시 시간에 맞춰 사무실에 가야 했다. 업무는 주지 않았지만 반성하고 반성문을 써서 보고해야 했다. 직장에서 전적으로 교육 팀을 만들어 매주 나의 상황을 상급에 보고했다. 동료들이 나를 두려워했고 상사도 나를 멀리했다. 나는 이렇게 고독하게 무료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법공부, 법 베껴 쓰기, 연공은 집에서 매일 진행했고 담담히 일체를 내려놓고 심성을 지켰다. “마음에 진선인을 품고 자비로 주위 일체를 대한다”를 일과 생활의 준칙으로 삼았다.

비록 고험에서 관을 넘기지 못했지만 사부님은 제자에 대해 늘 한결같으셨다. 이 못난 제자를 버리지 않으셨다. 나의 천목은 여전히 또렷이 분별할 수 있었다. 그때 눈을 뜨면 한 줄의 파룬만 보이는 게 아니라 온 하늘에 빽빽히 가득 찬 파룬을 보았다. 어떤 때는 검은 색 바닥을 보면 더 뚜렷해졌다. 이것으로 사부님께서 정말 수련생을 제자로 삼아 이끈다는 것을 보기 충분하다. 이때 나는 <전법륜>을 8번 베껴 썼고 다른 대법서적도 문답을 제외하고 다 한번씩 썼다.

말할 것이 있는데 한번은 박해가 발생한 지 얼마 안 되어 꿈에 또 사부님을 뵈었다. 그것은 고향의 어느 관방(官房 고대 지방관원의 가족이 머무는 곳)이었는데 앞뒤로 두 개의 문이 있었다. 사부님은 흰 셔츠에 짙은 색 바지를 입고 성큼성큼 나를 향해 걸어오셨다. 관방의 한쪽은 주민들의 주택인데 그들의 문이 다 열려 있었다. 입구에 사람이 서 있었는데 그중 한 노년 부녀는 우리 연공장의 사람이었다. 그녀는 제 3장 공법을 연마하고 있었다. 사부님이 내 앞에 5미터도 안 되었을 때 걸으면서 말씀하셨다. 처음에 나는 사부님인 줄 몰랐는데 나와 어깨를 스칠 무렵 나는 사부님의 한마디 말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몇 명이 원만할 수 있는가?” 나는 깜짝 놀랐다. 이는 사부님이 아니신가? 하고 “사부님”을 외쳤다. 사부님은 돌아보지 않으셨고 계속 앞으로 가셨다. 나는 사부님에게서 7,8 미터 떨어진 상태에서 몸을 돌려 다시 “사부님”, “사부님, 저는 당신 신변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사부님은 이미 문 입구로 나가버렸다. 관방의 밖에는 큰 대포가 꽝꽝 울리고 있었고 탱크가 줄을 지어 들어왔는데 마치 전쟁터에 진공하는 것 같이 포화가 하늘에 닿았다.

하지만 사부님은 여전히 씩씩하게 앞으로 걸어가셨고 전혀 이런 것을 눈에 담아 두지 않으셨다. 나는 즉시 지름길로 달려가 사부님을 따라 잡고 싶었다. 그리고 깨어났다. 반성해보니 사부님의 정법의 걸음을 따라잡지 못했다. “몇 명이 원만할 수 있는가?” 그렇다, 자기는 원만에서 아주 멀었고 법리에 똑똑하지 못하고 심성이 높지 않다.

“의지 확고하지 못하면
고비는 산과 같나니
어이 속세를 벗어나랴” <홍음2>-끊다

2000년 이후의 수련은 복잡하고 곡절이 많았다. 만일 사부님의 이끌음이 없고 법에서 법을 인식하며 진정으로 수련하지 않았다면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을 걷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잘못하면 구세력의 계략에 떨어지고 구세력이 설치한 함정에 빠진다. 그래서 <전법륜>에서 경계했다. “고층차의 법을 반드시 투철히 배워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가를 알게 하며, 다섯 가지 공법을 한꺼번에 전부 배우게 한다. 장래에 당신은 상당히 높은 층차, 당신이 생각지도 못한 그러한 고층차에 도달할 수 있으며, 정과(正果)를 얻기는 문제가 없다.” 확실히 이와 같다. 만일 법을 투철히 배우지 않았더라면 쉽게 길을 잃었을 것이며 속임을 당했을 것이다.

아마 곧 잘못 걸어 심지어 수련에서 떠났을 것이며 지금까지의 공이 수포로 돌아갔을 것이다. 바로 이렇게 된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는다.’

나는 한때 수련을 포기하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아주 긴 시간 대략 5년(2000-2005) 동안 줄곧 미망에 빠져 배회했다. 답안을 찾아다녔으나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운 좋게 나는 여전히 하늘에 파룬이 총총이 박힌 것을 매일 보았고 <전법륜>의 글자가 모두 춘련(春联)을 쓸 때 금가루 묻힌 붓으로 글씨를 써서 마르지 않은 것처럼 반짝 반짝 빛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전법륜>을 들면 매우 친근감이 느껴졌고 법공부를 하면 번뇌를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기의 법공부가 착실하지 못해 게다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기가 한 갈래 굽은 길을 걸었다. 운 좋게 사부님이 끊임없는 점화를 하여 이같이 업력이 크고 오성이 차한 내가 아직 지금까지 수련할 수 있었다. 아래에는 내가 이 어려운 곡절의 과정과 사존의 인내심의 점화를 해주었는지 간략하게 말하겠다.

1. 음주에 대한 생각을 버리다

98년 대법을 수련한 후 나는 바로 술을 끊었다. 비록 많은 교제와 친구를 사귈 기회를 잃었지만 나는 속으로 수련보다 더 즐겁고 더 의미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그래서 동료나 상사가 술을 권해도 마시지 않았다. 2001년 새로 부임한 상사는 원래 사무실의 주임이었다. 환영 만찬회에서 나는 마침내 견디지 못하고 그들의 권유로 작은 잔으로 한잔 마셨다. 그 후 즉시 배가 뒤집히는 것 같이 토하고 또 토했는데 나오지도 않고 설사를 해도 잘 나오지 않아 무척 괴로웠다. 나는 화장실에서 사부님께 맹세를 했다. 오늘 이후에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이 사건 후 나도 담담히 잊었다. 이 단계에 나는 수련하다말다 하는 상태였고 책도 보고 연공도 했으나 착실히 수련하지 않았다. 느슨하게 되어 동료와 함께 섞여 카드도 치고 노래도 부르고 주식도 했다. 이 동안 밤에 꿈을 꾸었는데 대개는 내가 <전법륜>을 보다가 다른 사람에게 들키는 것이든가 아니면 연공하다 다른 사람에게 들켜 한무리의 사람들이 나를 잡으러 오는 것이었다.

게다가 뱀을 꿈에서 보고 나는 그것을 때렸다. 때린 후에도 그것이 또 있었다. 정말 무서웠다. 눈을 감으면 천목으로 늘 뱀 껍질을 보았다. 어떤 때는 매우 커서 벽돌만큼 컸고 여기저기 넓적하게 있었다.

2002년 음력 설날 전야 우리 온 가족이 슈퍼마켓에 가서 물건을 사는데 감주가 좋고 또 값이 싸서 두병을 들고 왔다. 이때 아이가 물었다. “술을 사게요?”(사부님의 점화였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계산을 마친 후 시장을 떠나려 하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하나의 정보가 들어왔다. ‘맹세-언약’ 그래서 아내에게 물었다. 내가 방금 ‘맹세언약’ 라는 정보를 들었는데 너무 뚜렷해서 무슨 뜻이지? 그녀도 이해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줄곧 고심했다. 그날 잠잘 때 아내에게 술이 싸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갑자기 깨우쳤다. 그렇구나. 이는 사부님에게 한 언약인데 어떻게 잊을 수 있는가? 나는 술을 형에게 주었고 이후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마음 씀이 고생스러움을 알 수 있고 진일보로 사부님께서 진정으로 제자를 이끄심을 알 수 있다.

2. 주식 투기심을 버리다

2000년 후 동료를 따라 함께 주식 투자를 했다. 매일 그들과 마찬가지로 근심하고 놀랐으며 심정은 주가에 따라 움직였다. 사부님이 주식 투자를 하지말라고 경고하셨음을 알았지만 나는 이미 유혹을 견디지 못했다. 그러다 이미 2008년이 되었다. 이 8년의 기간 집착심이 갈수록 강해졌다. 주식의 차트분석과 조작 방법을 연구했는데 결과는 망했다.

이 기간 꿈에서 늘 고향에 가서 물고기를 잡는 꿈을 꾸었다. 어떨 때는 새우를 잡았는데 매우 많이 잡았다. 물고기가 어찌 이렇게 많지 꿈에서 매우 기뻤다. 깨난 후 나는 사부님의 점화를 깨닫지 못했다. 주식투자는 어리석은‘愚蠢’ 행위였다. 나는 ‘물고기魚’를 ‘여분餘’ (魚와愚, 餘는 발음이 같음)로 알았고 줄곧 그것은 ‘해마다 풍요롭다는 뜻(年年有餘(’ 즉 좋은 일로 착각했다.

사부님은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계속 이런 물고기 잡는 방법으로 점화하셨다. 나는 여러 차례 꿈에서 고향의 밭으로 가서 물고기를 잡았는데 물고기만 잡은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손을 뻗어 잡을 때 물고기와 뱀이 동시에 잡혔고 나는 놀라 깼다. 비록 이랬지만 나는 여전히 사부님이 나더러 주식을 하지 말라는 것인지를 깨닫지 못했다.

어느 날 나는 손해를 견딜 수 없어 주식시장을 보면서 사부님께 부탁했다. 저의 주식이 좀 오르게 해주세요. 손해를 좀 덜 보고 팔수 있게요. 결과 그날의 종가는 더욱 나빠져 팔 수가 없었다. 그날 밤 꿈에 나는 큰 고기를 잡아 집으로 돌아와 물고기를 죽여 배를 갈라보니 뱃속에 또 한 마리 물고기가 들어 있었다. 깨어난 후 이것은 ‘魚中魚’ 바로 ‘愚中愚 - 어리석음 중의 어리석음’이며 내가 사부님께 부탁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다음날 나는 결심하고 주식을 깨끗이 다 팔아버렸더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또 사게 되었다. 주식이 오를 것이라는 말을 듣고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재차 뛰어들어 여전히 2008년 올림픽 개막 전날 꿈에서 내가 물고기를 잡았을 때 물고기가 갑자기 한 마리 큰 돼지머리로 변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이것이 사부님의 평가였는데 내가 돼지머리라는 뜻이었다. 다음날 나는 즉시 주식을 깨끗이 팔았다.

3. 사부님께서 재차 나타나 점화하심

이것은 내가 세 번째로 사부님을 꿈에서 뵌 것이다.(처음에는 법신이었다) 꿈에서 나는 날기 시작했고 날아서 어느 마을의 도로가에 도착했다. 그날은 대낮이었고 공기가 맑았다 우리 공간의 약 9시경으로 햇빛이 눈부시고 광선이 강했으나 뜨겁지는 않았다. 몇 명의 부녀자가 마을 앞 저수지에서 빨래를 하는데 나는 날아서 길에 내렸고 길에는 가로수가 없었다. 이때 사부님은 흰 셔츠를 입고 나타나셨는데 맞은편에 대략 몇 걸음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한손을 내미셨고 나도 사부님께 손을 뻗었다, 사부님과 악수를 하려고 하며 “사부님”하고 불렀다. 사부님은 대답하지 않았고 나와 사부님의 두 손이 닿으려는 순간 우리 사이에 벽이 하나 가로막았다. 대략 높이가 1미터였는데 나와 사부님을 갈라놓았고 우리의 두 손은 담을 넘어갔지만 악수하지는 못했다.

단지 사부님의 어깨와 머리만 볼 수 있었는데 사부님은 여전히 손을 담 넘어 뻗으셨다. 아, 나는 단번에 알았다. 사부님께서 나와 악수를 하시려는 게 아니라 나를 끌어당기려 하시는구나. 그런데 벽으로 가로막혀있으니 끌어당기시지 못하는구나. 이때 이쪽 벽의 전면에 검은색 팔걸이 의자(높은 신분을 나타내는 의자)가 나타났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사부님은 내가 안일심을 구하는 마음을 점화하시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직위를 구하는 마음인가?’ 사실 현실생활 중에 나는 관직을 그리 중하게 보지 않았고 수련인의 목표는 명확하다. 바로 도를 얻어 원만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상생활 중 무슨 관이라도 나에게는 그리 넘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박해가 발생한 후 나는 비록 가만히 잡히기를 기다리는 생각은 잘못이지만 나는 시종 한 가지 염두를 품고 있었다. 내가 감당해야할 것은 내가 감당하겠다. 내가 감당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나는 결코 승인하지 않는다.

4. 굽은 길을 걷다 여러번 사부님의 점화로 마침내 돌아가다

2000년 같은 연공장의 한 동수가 말했다. 그는 다른 동수가 있는 곳에 있을 때 본 사부님의 신경문을 보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초조했다. 그에게 얼른 가져오라고 하여 내가 복사를 하려 했는데 그는 그 동수가 못 가져 가게 하여 몇 단락만 베껴왔다. 그 문장을 xxx라고 부른다. 그때 사부님의 경문이 없었고 보도소가 모두 마비되었는데 어디서 온 경문인가. 그는 묻기를 <전법륜>의 시작하는 한글자와 끝나는 글자는 무엇인가요 하고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고 그는 ‘진수(真修)’라고 했다. 그가 전문을 다 가져오지 않아서 나는 그가 베껴 쓴 몇 단락만 보았는데 나 역시 마음에 두지 않았다. 나중에 명혜망에서 이것은 중공이 짜깁기 해낸 것으로 난법이라고 했다. 나도 보고 싶지 않았다.

2010년 후 나는 수련에 진보가 없다고 느꼈다. 법은 비록 매우 오래 배웠지만 99년 때와 같은 진보가 없었다. 인터넷에서 법을 찾다가 가짜 경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들의 채팅그룹에 가입했다. 그들의 수련체험을 들었다. 그들 대다수는 박해받은 노수련생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사부님의 학습반에서 사부님을 뵌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법을 매우 깊게 배웠으며 익숙했다. 다만 그들은 오성이 너무 특별했다. 좀 올바르지 않은 점도 있었다. 특히 인터넷의 일부 가짜 경문은 나로 하여금 더욱 이해할 수 없게 했다. 또 사부님의 안전이 걱정되었다.

나중에 그 무리 중에서 법공부와 깨달음이 좋은 한 동수가 있었다. 나와 교류할 때 매우 탄연했으며 그녀는 그런 것이 가짜라고 말하며 어떻게 구분하는지 알려주었다. <전법륜>의 법리를 가지고 시비를 분별하는 것이었다. <전법륜>과 모순되는 모든 것은 아마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전법륜>을 반대하는 모든 것은 가짜다. 법에는 거짓이 없고 사부님은 종래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이 기간 사부님은 꿈에서 여러 차례 나를 점오하셨다. 나의 오성이 너무 차해 마침내 이 동수의 도움 하에 사부님의 점화를 깨달았다.

그 중 몇 개의 꿈에서 나는 정사발(鄭士發)이라는 사람과 함께 강단에 있었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그때는 막 가짜 경문을 접했을 때였다. 나는 ‘鄭士發’을 ‘정식법(正式法)’로 이해하고 이 가짜 경문 등의 문장을 진정한 법으로 삼았다. 나중에야 사부님이 나더러 법실증(證實法 - 鄭士發과 발음이 비슷함)을 하라고 하신 것임을 알았다.

또 한번 꿈에서 나는 두연맹(杜連盟)이라는 사람과 함께 작업장에 참관했다. 이 작업장은 벽으로 둘러 싸여 있는데 막 입구에 들어서자 한 남자가 화로 곁에서 불을 피우며 약을 달이고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우리를 맞이하는 사람은 두 씨의 친구였는데 여자였다. 그녀는 막 만들어진 약을 들고 내 입에 갖다대려 했는데 입에 닿기도 전에 나는 그녀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마비되었고 신체가 힘이 쭉 빠졌다. 그녀는 말했다. “이 사람은 매우 민감하군” 나는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깨어난 후 나는 이런 난법의 글이 독약임을 인식했고 그들은 독을 제거하고 있는 것이었다. 두연맹(杜連盟)이라는 말은 이 말은 아마 사부님이 나더러 그들을 멀리하라는 것임을 깨달았다. ‘杜連盟은 그들과 연결을 두절하라는 뜻’ 나는 그들이 대법의 법리를 위반했다고 반박하며 기타 동수들에게 그들의 말을 믿지 말라고 하며 <전법륜>을 위주로 수련해야 성취하고 회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내가 굽은 길을 걸은 까닭은 자기 마음이 옳지 못하고 구하는 마음이 있으며 법공부가 착실치 않기 때문이다. 사실 사부님은 1997년 뉴욕 법회에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당신들이 비록 나 본인을 보지 못하여도, 사실 오로지 당신이 수련하기만 한다면 나는 바로 당신의 신변에 있다. 오로지 당신이 수련한다면 나는 능히 당신에 대하여 끝까지 책임질 뿐만 아니라 나는 시시각각 모두 당신을 지켜봐 주고 있다.” <미국에서의 설법-뉴욕에서의 설법>

또 도처에 법을 찾아다닐 필요 없다. 1996년 <시드니 법회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내가 사람에게 남겨놓을 법을 이미 전부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심지어 강의할 때 사람들이 녹음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무엇 때문인가? 많은 사람들, 그는 신기함을 추구하고 있다. 스승님께서 또 무엇을 이야기하셨다, 또 무엇을 이야기하셨다고 하며 그는 이런 것을 추구하고 착실하고도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는다. 내가 사람에게 수련하도록 준 것은 바로 『전법륜』이며 이 책은 계통적인 법이다.”

바로 자기의 마음 때문에 신기한 것을 추구하고 사부님의 법을 좀 많이 구하여 지름길을 걷고 싶어하는데 이는 모두 집착이며 자기가 굽은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너무나 차이가 나서 자칫하면 떨어져 나갈 뻔했다.

현재 적지 않은 이런 사람이 이 가짜 경문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나의 경험이 그들에게 경종을 울려 주고 계시가 될지 모르겠다.

교란을 배제하고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하는 유일한 방법을 바로 법공부를 잘하는 것이다. 법리 내재관계를 잘 장악하고(법은 원용불파이기 때문에) 현실 생활 중에 법으로 모든 것을 가늠하는 것이다. 사부님은 “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法은 正念을 확고하게 할 수 있다.” <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라고 하셨다.

소결 : 앞의 예로부터 우리는 <전법륜>과 사부님 설법의 진실성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법은 원용(圓容)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전체는 함께 관통된 것으로서, 당신이 그를 어떻게 보든지 모두 해석할 수 있다. 순서대로 보든, 뒤에서부터 보든, 중간부터 보든, 어떤 방법으로 이 대법을 어떻게 보든, 그는 모두 함께 통할 수 있고, 서로 모두 해석될 수 있는가 하면, 서로 연대적 작용을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대법의 원용불파(圓容不破)한 요소이다.”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나는, 내가 원치 않는 말은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한 것은 꼭 참말이어야 한다. 특히 이런 정황에서 내가 설법할 때에 내가 만약 참말을 하지 않고 여기에서 허황한 말을 하며, 과녁을 겨냥해 활을 쏘듯이 하지 못하고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한다면, 나는 바로 사법(邪法)을 전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은 그것으로 됐다. 이것이 정법자의 권능이기 때문이다. 미래 우주의 선택이며 미래우주의 수요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한 것은 모두 장차 역사 중에서 실현되며 내가 승낙한 소원도 장차 역사의 미래에 실현될 것이다.” <2003년 워싱턴 DC 법회설법>

“허망한 생각 다 떨쳐버리면 부처 수련 어렵지 않도다” <홍음>

우리 함께 착실히 수련하도록 노력하자.

이상은 개인 수련의 간단한 서술이니 부당한 곳은 지적을 바란다

(끝)

정견망

작자/ 대법제자
【정견망】

우리 고향 사람들은 전부 티베트 불교를 믿는다. 아버지의 한 친구는 수도(修道)에 관심이 많아 늘 부친과 함께 한 70대 수행자 할아버지 댁에 가서 도를 배우려 했다. 할아버지는 아주 온화해서 말할 때 너무 기뻐하거나 화를 내지도 않았다. 노인은 부친과 친구에게 말했다. “젊은이들, 자네들은 속세의 인연이 끝나지 않아 수행할 수 없다네.” 부친은 매번 노인의 집을 찾아갔고 돌아온 후 우리에게 노인에 관한 신기한 일을 말해주었다. 그때 나는 이미 십대였는데 지금까지도 노인에 대한 일을 생생히 기억한다.

노인은 재가(在家) 수행하는 사람이었는데 평소 생활이 아주 소박했다. 그의 명성을 흠모하던 사람들이 찾아와 병원에서도 치료하지 못하는 병을 고쳐달라고 하거나 혹은 어떤 예측을 묻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 노인은 도움을 준 후 누구에게도 재물을 요구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미안한 마음에 감사 표시로 물건을 보내면 노인은 매주 절에 가서 희사하곤 했다. 아래에 한두 가지 일을 함께 나눈다.

1. 영혼은 진실로 존재한다

사람이 영혼이 있느냐 없느냐는 수행하는 사람과 신앙이 있는 사람에게 말하면 논쟁이 필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무신론에 세뇌된 사람에게 영혼을 이야기하면 늘 미신이라고 웃는다. 한번은 어느 모친이 5살 정도 되는 아이를 안고 노인을 찾아왔다. 아이는 이미 혼수상태에 빠져있었는데 노인에게 고쳐달라고 부탁했다. 노인은 한번 보더니 말했다. “이 병은 내가 고칠 수 없습니다. 빨리 병원에 가서 수술하세요. 아이는 어디어디에 문제가 있는데 내가 두 시간 동안 아이의 영혼이 떠나지 않도록 유지하겠습니다.” 이렇게 그 아이는 얼른 병원으로 보내졌다. 의사가 보더니 구할 수 없다고 하며 수술해주지 않았다. 모친은 노인의 말을 의사에게 해주었고 병이 있는 위치를 정확히 말해주었다. 그곳은 신앙심이 깊은 지방이었기에 사람들은 영혼의 존재를 믿었다. 그래서 의사는 수술해주기로 대답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살릴 수 없었으나 아이는 살아나 완전히 건강을 회복했다.

또 한번은 한 군관이 다른 사람 소개로 노인을 찾아왔다. 그의 아내가 정신병에 걸렸는데 아무리 해도 치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인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했다. “당신이 빚을 진 게 있는데 갚지 않았군요. 빚을 갚으면 나을 것입니다.” 하지만 군관은 아무리 생각해도 누구에게 무엇을 빚졌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노인은 대략 2년 전의 삼림 속에서 있었던 일을 제시했다. 군관은 갑자기 깨달았다.

알고 보니 2년 전 훈련을 하다 삼림속에서 길을 잃었다. 이틀을 걸어도 삼림을 벗어날 수 없었다. 먹을 것과 마실 물도 없고 또 지쳐서 거의 죽을 것 같았다. 나중에 먼 곳에 불빛을 별견하고 그 빛을 따라가 보니 큰 나무를 발견했는데 그 나무는 잎이 담담한 빛을 발하는 것이었고 그 아래 그곳 백성이 올린 많은 음식물과 술이 있었다.

군관은 나무에 대고 절을 하며 나무의 신에게 이 곤경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하며 현재 춥고 배고프니 우선 아래의 바친 공양물을 먹고 나갈 수 있다면 나중에 두 배로 배상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그는 출로를 찾았는데 그 후 이 일을 잊고 지냈다. 나중에 그의 아내가 갑자기 정신이상 상태가 나타났으며 어떤 의사도 고칠 수 없었다. 이제 마침내 원인을 찾았는데 알고 보니 그가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갚지 않았기 때문에 남이 빚을 받으려 한 것이었다.

원인을 알고 난 그는 즉시 공양물을 가지고 그 나무 아래로 가서 돌려주었다. 돌아온 후 그 아내는 이미 정상이 되어 있었다. 만물은 다 영이 있고 원한이나 빚을 지면 다 찾는 사람이 있다. 선악에 보응이 있음은 변치 않는 진리다. 사람이 어떤 나쁜 일을 하거나 무엇을 빚졌다면 언젠가는 갚아야 한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이 만일 고치고 속죄하지 않으면 그 자신 외에 가족에게 재앙이 미친다. 현재 사람들은 보응이 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저주라고 착각한다. 사실 이것은 천리(天理)를 알려준 것이며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라는 것이다. 선악의 보응은 그림자처럼 따른다.

2. 고승 라마의 전세는 진실이다

한번은 부친이 돌아와 오늘 노인이 특히 기분이 좋다고 했다. 부친이 노인 댁에 갔는데 노인이 매우 즐거운 것을 보고 물었다. “오랫동안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본적이 없는데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십니까?” 노인은 사부를 만났다고 했다. 부친이 이상해서 물었다. 어르신이 이미 80대인데 사부님은 대체 몇 세십니까? 노인은 30세라고 했다. 알고 보니 노인이 매주 절에 가서 경을 읽었는데 그날도 갔었다. 그가 열심히 경을 읽고 있을 때 한 사람이 그의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제자야 내가 너를 찾았구나.” 그가 머리를 들어보니 어느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젊은이가 농담을 하는 줄 알고 말하거나 화를 내지 않고 계속 경을 읽었다.

그런데 젊은이가 또 그의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제자야, 내가 마침내 너를 찾았구나.” 그는 이번에 말했다. “젊은이, 나는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그 젊은이는 “자네는 누구누구지. 내가 자네 사부일세. 전세의 이름은 무엇 무엇이라네.” 노인은 깜짝 놀랐다. 젊은이는 전생에 어떻게 노인(당시 5살)을 제자로 받아들였는지 그 때 무슨 법문을 전했는지 오직 그들 사제만이 알 수 있는 어느 산속 바위에 무슨 글자를 새겨 놓았는지 등 자세한 일을 일일이 말해주었다. 마지막에 그는 말했다. “그때 내가 떠날 때 자네더러 절에서 수련하지 말라고 한 원인은 이후 무신론 공산당이 집권해 많은 수행인들을 죽일 것을 알고 난을 피하기 위해 집에서 수련하라고 한 것이라네. 내가 전세한 후 기억이 열려 전생의 일을 다 알았고 자네가 아직 세상에 살고 있음을 알고 자네를 찾아온 것일세.” 노인은 스승을 만나자 아이처럼 기뻐했다. 수도하는 사람에게 사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43348

정견망


수련중에 본 사부님 법리의 오묘한 실례 (1)


작자/ 대륙제자 경주

【정견망】

필자의 수련일기 중에서 몇 편을 골라 자신의 수련경력으로 “진정하게 고층차로 사람을 이끌다”, “사회에 책임지고 수련생에 책임진다” 에 대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이 진실하고 허구가 아님을 견증하고자 한다. 오직 수련자가 세심히 관찰하기만 하면 대법의 오묘함은 다 그 속에 나타난다.

견증 1: “사부가 제자를 찾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매우 운이 좋았다. 사부님께서 망망대해 중 ‘제자’를 찾느라 고생하고 애쓰셨음을 깊이 느낀다. 1983년 나는 막 대학시험을 봤으나 떨어져 휴학하고 집에서 쉬는 중이었다.

이 1년간 아마 서너 차례 같은 꿈을 꾸었다. 내가 어느 군대에 가서 잡지 아니면 어떤 책 한권을 보는 꿈이었다. 하지만 물론 그때는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기 전이었고 <전법륜>도 나오기 전이었으며 무슨 책인지도 몰랐다. 나는 이상하게 느꼈으나 식구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가족들은 기독교를 믿었다.

1988년 도시에서 직장을 구했다. 형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산 넘고 물 건너 도착했을 때 산비탈에서 군대 막사를 보았는데 꿈에서 본 것과 똑같았다. 당시 우리는 피곤해서 잠시 쉬면서 이 부대의 정문을 보았다. 나는 정말 들어가서 서가에 그런 잡지나 책이 있는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형에게 말하지 않았고 마음속에만 묻어두었다.

1998년이 되어 우연한 기회에 한 친척이 파룬궁을 연마한다면서 <전법륜>이란 책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마음이 크게 진동했다. 즉시 그에게 책을 좀 빌려달라고 했다. 그는 나를 독실한 기독교도로 알았기 때문에 책을 가져오지 않았고 사흘 후 내가 직접 가서 가져왔다. 이때부터 수련의 길이 열렸다. 나중에 비로소 내가 본 그 잡지는 기공잡지이며 표지는 사부님께서 앉아서 연공하는 사진이 있었고 그 책은 바로 <전법륜>이었다.

견증 2: <전법륜>은 구절마다 진실하며 진법이다

1998년 4월 12일 <전법륜>을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로 중시하지 않았는데 내가 젊고 몸에 병이 없었기에 주로 그 속에 있는 이론과 어떤 이치를 말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소설처럼 생각하고 아이가 숙제하는 것을 지켜볼 때 옆에서 보았다. 책을 보니 거기서 말하는 이치는 이전에 듣지 못한 것이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은 매우 논리적이었고 이론과 논리가 빈틈이 없었다. 내 머릿속에 의문이 나타날 때는 그 다음 구절이 해석해주었다. 당시 나는 이 책이 매우 기이하며 마치 나를 위해 쓴 것 같았고 스승님께서 그 자리에서 의문에 해답해주시는 것 같았다. 나는 매우 기뻤다. 제 3강을 보았을 때 ‘오장 공법을 한꺼번에 전부 다 배운다’는 부분을 읽었다. 또 동작이 있나? 나는 즉각 그 친척을 찾아가 연공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것이 4월 15일, 즉 책을 본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견증 3: 사부님의 법신이 바로 사부이며 살아계신다.<정성주해> 중에서 사부님은 제자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법신을 볼 때면 또 하나의 완정하고 독립적이며 확실하고도 확실한 개체의 생명이다. 사실 간단히 말하면, 나의 법신은 곧바로 나다.”

1998년 4월 20일. 그것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꿈이다. 아직 책을 다 읽지 않았을 때다. 공법도 몇 개 동작만 배웠고 며칠만 연공했다.

이날 밤 꿈에서 시장에 가서 새 한 마리를 사는데 가게 주인은 나에게 깃털을 제거해주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다 깃털을 제거해주는데 나에게 해주지 않아서 나는 무엇 때문인지 물었다? 그의 태도는 더욱 좋지 않아 원하면 가져가고 싫으면 그만두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화가 났다. 당신 말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사람을 찾아 당신 좌판 진열대를 뒤집어 놓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자 그는 더욱 못되게 굴었으며 손으로 나를 밀쳐 나는 거의 쓰러질 뻔 했다. 이때 내가 돌연 마음을 바꿔 생각했다. 나는 연공인인데 마땅히 그에게 감사드려야지. 이런 생각이 언뜻 나오자 사부님의 법신이 나타났다. 금빛 찬란한 태양 같은 둥근 원 속에 사부님의 법신이 나타났다. 사부님은 가사를 입고 연화반 위에 가부좌하고 두 손을 합장하고 가벼운 미소를 띄고 계셨다. 약 5,6초간 지속 되다가 채색 유리가 파쇄되는 것처럼 사라지셨다. 이 몇초 간 사부님의 미소는 내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속인이 이해할 수 없는 이치를 알게 해주셨다. 사부님의 법신은 살아 있고 내가 본 것은 사부님의 사진이 아니라 진실한 법신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경문을 보고서야 비로소 사부님의 법신이 바로 사부님 본인임을 알았다. 정말 현묘하고 오묘하고도 수승하며 장엄하다.

견증 4: 천목이 열려 책의 전체 과정에 다른 공간의 경치는 속인경치보다 더욱 뚜렷하고 밝음을 보다.

1998년 4월 21일, 하늘에 가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5시 반 정각에 연공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고 나는 아마 비가 오니까 사람들이 안오는구나 생각했다. 내가 막 단체 연공에 참가했기 때문에 서로 잘 알지 못하고 그들이 다른 곳에 연공하러 간 것임을 몰랐다.

그래서 혼자서 나무 아래서 2장 공법을 연마했다. 내가 ‘푸첸빠오룬’을 연마할 때 양미간의 살이 단단히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안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그 힘은 매우 컸다. 나는 처음에 좀 겁이 났는데 2강을 보았으므로 사부님께서 천목을 열어주시는 것임을 알았다. 나는 책의 요구대로 움직이지 않고 그저 묵묵히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대법의 불가사의한 초상적인 힘을 느꼈다. 제 1강에서 파룬을 말했을 때 친척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파룬을 누가 넣어주느냐, 사부님이 여기 계시지 않는데. 친척은 그저 물어보지 말고 읽어나가면 알게 될 것이라고만 말했다.

살이 안으로 파고 든 후 나는 새해에 폭죽을 터뜨리는 것처럼 한가닥 강한 빛이 하늘을 향해 발사되는 것을 보았다. 그 속도는 매우 빨랐으며 꼭대기에 도달하자 꽃이 피었고 방출된 빛줄기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폭죽처럼 눈이 현란했다.

그날부터 나의 천목은 속인이 보지 못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매일 연공하면 책에서 말한 것처럼 어떤 때는 말을 타고 밖으로 달리며 어떤 때는 차를 타고 달리는데 늘 끝에 다다르지 못했고 양쪽에 산과 물을 보았으며, 길의 양쪽에 전신주도 보였다.

나중에 어느 날 밤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데 막 눈을 떴을 때 나는 무서워서 머리를 아래로 묻었다. 커다란 눈을 보았는데 처음 겪는 일이라 특히 두려웠다. 나중에 공부를 많이 하자 이 눈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일어나거나 평소 눈을 감았다 뜨면 그 순간 둥그런 빛이 매우 밝게 보였고 나도 느낌이 좋았다,

나중에 천목은 줄줄이 연결된 파룬을 보았다. 이런 파룬은 대략 손가락 끝만 했는데 매우 투명하고 무색이며 중간에 卍자 부호도 투명했다. 마치 <홍음>에서 사부님께서 그리신 대 도인의 손에 있는 그 파룬 같았다. 어떤 때는 바탕이 붉은 색이며 중간 만자부호는 투명한 파룬이었다.

견증 5: 신체 정화는 확실하다

1998년 4월 25일 밤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또 그리 아프지 않더니 설사를 하고 토했다. 십분간 괴로웠다. 온 밤 내내 잠이 들지 못했고 아내는 걱정이 되어 병원 가야 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 나는 이것은 신체 정화이니 괜찮다고 했다. 토하고 설사하는 밤에 나는 이전에 내가 이전에 나쁜 일을 했던 것 예를 들어 누구에게 거짓말했거나 괴롭혔거나 아이였을 때 성숙하지 못한 일이 다 뒤집혀 나왔다. 하나하나 똑똑히 눈앞에 전개 되어 나는 잘못을 승인했고 이것은 신체정화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심령의 정화도 하는 것임을 알았다.

마치 책에서 말하는 것과 같았다. “가장 낮은 층차에서 수련할 때에는 하나의 과정이 있다. 바로 당신의 신체를 완전하게 정화해 주어, 사상 속에 있는 모든 좋지 못한 것들, 신체 주위에 있는 업력장(業力場)과 신체를 건강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를 전부 다 청리(淸理)해 내보낸다. 청리하지 않는다면, 이런 하나의 혼탁한 신체, 거무칙칙한 신체와 하나의 더러운 사상을 가지고 어떻게 고층차 수련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가장 맹렬한 신체 청리는 바로 이날 밤이었으며 나중에 계속 이런 설사 형식으로 신체 청리가 있었다. 때로는 연공장에서 때로는 단체 법학습에서 때로는 집에 있을 때였다.

(계속)


수련중에 본 사부님 법리의 오묘한 실례 (2)


작자/ 대륙제자 경주

【정견망】

견증 6: 숙명통 공능은 존재한다

<전법륜>에서 말한다. “층차를 끊임없이 제고함에 따라, 숙명통공능은 자연히 나올 것이며 장래 수련 중에서 이런 정황을 만날 수 있다.”

수련한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계속해서 일부 과거의 일을 알게 되었다. 이런 것은 꿈에서 나타났는데 어떤 것은 비교적 상세하고 어떤 것은 모호했다. 특히 꿈에 시의 구절이나 문자가 나타났을 때 깨어난 후 전부를 기억하지 못했고 다만 대개의 뜻만 기억했다. 하지만 꿈에 나타난 인물은 현실 중의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이런 인연 관계를 알아도 소용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도 없다. 다만 자기가 누구와의 과거의 관계를 알뿐이다. 왜 속인 중에서 가깝게 나타나는지 왜 늘 충돌이 일어나는지 등등.

예를 들어 1999년 박해가 시작했을 때 정부의 한 간부가 나와 담화하며 나의 일을 해주고 나를 보호하겠다고 했다. 그날 밤 꿈을 꾸었는데 그와 나는 이전에 동료였고 당시에도 그는 나의 상급자였다.

견증 7: 스승이 음성으로 점화하는 것은 입체 음성이다.

“어떤 사람은 나의 법신을 보았다고 하지만 당신과 말한 것이 아니다. 그가 내보낸 의념은 입체 음향을 갖고 있어 당신이 듣기에는 마치 그가 말하는 것과 같다.” <전법륜>

1998년 6월 20일 새벽 3시였다. 꿈에 스승님께서 오신 것을 보았는데 단번에 사라지셨다. 이때 광풍이 일어났고 땅에서 돌 모래가 날았다. 마치 강한 태풍이 습격한 것 같았다. 이때 사부님께서 내게 많은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다만 한마디 말만 내 머리에 들어왔다. 그것은 바로 “당신은 반드시 여러 사람과 함께 앉아야 한다.” 나는 말했다. “스승님 점화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승님, <전법륜>에서 저는 아직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는데 예를 들어 모래알속에 삼천대천세계가 있다는.....” 그러나 사부님의 대답은 들을 수 없었고 휙휙하는 바람소리만 들렸다.

깨어난 후 생각했다. 나는 매일 사람들과 함께 연공하는데 왜 사부님은 반드시 여러 사람과 함께 앉아야 한다고 하셨을까? 아. 이건 며칠 전 소장이 단체 법학습에 참가하라고 했는데 나는 참가하지 않았다. 나는 교육수준이 높아 혼자 배워도 된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사부님께서 단체 학습에 참가하라는 것이었구나.

그날부터 시작해서 나는 단체 학습 시간에 참가했다.

견증 8: 세계관이 변하자 신체가 껍질을 벗은 것 같다

그날 오후 2시 경 구체적인 시간을 잊어버렸는데 일기에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일기는 주로 꿈을 적는데 한동안은 기억하는 것이 집착이라고 생각하여 시간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때는 전법륜을 아직 한번 다 읽지 않았을 때였다. 정오에 휴식하고 있는데 제 8강을 보았다. 누가 연공하면 그가 공을 얻는다와 주천이 매우 이치에 맞다고 생각되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주천은 아직 다 보지 않았다. 그래서 보니 “우리 많은 사람은 이 강당에서 나간 다음, 당신이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텐데, 보증코 당신의 세계관마저 전변(轉變)이 생길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장래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알 것이며, 더는 그렇게 얼떨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것인데, 보증코 이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心性(씬씽)은 이미 따라 올라온 것이다.”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오토바이를 타고 길을 가며 생각했다. 그렇구나. 이전처럼 흐리멍덩하게 살 수 없지 나는 진지하게 법을 공부하고 수련해야겠다. 이때 갑자기 나의 신체가 마치 껍질을 벗는 것처럼 느낌이 매우 강렬했고 이 껍질은 머리에서 발까지 벗겨졌다. 단번에 신체가 가뿐해졌다. 또 특별한 변화가 있었는데 눈이 단번에 맑아졌으며 온 하늘이 더 맑은 것 같았다. 다른 변화는 과거의 그런 더러운 말 거친 말과 욕하는 말을 일거에 반복하지 않게 되었다.

한번 동료와 이야기 나누는데 그들은 속된 말을 늘 했으므로 무의식중에 그런 말을 따라 부화뇌동했다. 이때 이 말이 나의 두뇌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느꼈다.

그 저속한 말이 내게서 멀리 떠난 후부터 동료는 나와 함께 있기를 좋아했다. 이따금 일하는 중에도 못된 말투 때문에 작업을 완성하기 힘든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욕하거나 더러운 말을 하지 않았다. 일하는 중에 사부님의 경고를 기억했다. “일처리 중의 어투, 선한 마음, 도리(道理)를 더하면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으나 명령은 영원히 할 수 없다! ” <청성> 

견증 9: “수련은 예부터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주장하는데, 당신이 만약 이 한 문에서 진정하게 수련[眞修]하려면 오직 이 한 문의 경(經)만 보아야 한다.” <전법륜>

수련 전에 우리 온 가족은 주말이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1988년 나는 신기한 일이 나타난 것을 직접 겪었다. 내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느님께 기도하여 기적이 일어났는데 나는 좋은 일이라고 느꼈다.

<전법륜>에 여러 차례 불이법문의 문제를 말했다. 나도 반드시 선택을 해야 했다. 그날 나는 예수 상에 대해 합장하고 말했다. “예수님 당신은 매우 좋은 신인 줄 압니다. 저의 몸에도 당신의 신의 법력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현재 속인 중에서 사람을 제도하는 신을 만났고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으니 용서를 바랍니다.” 그 후 나는 예수의 상을 떼 내었고 <성경>과 함께 형에게 주었다.

속인 공간에서 이렇게 하자 꿈에서 계속 이 문제를 고험했다. 여러 번 <전법륜>과 <성경>을 펼쳐놓고 택하게 했다.

나중에 1999년 초 어느 단체 법공부 중 벽에 걸린 사부님의 법신 사진에서 많은 불, 도, 신, 보살이 나타났다. 제일 먼저 나타난 것은 예수였고 2,3초 간격으로 하나씩 바뀌었는데 속도가 매우 빠르고도 똑똑했다. 대각자는 너무 많았다. 그날 나는 매우 격동하고 감동했다. 내가 기독교를 떠났는데 오히려 내가 처음 본 신은 예수였다. 사부님의 법력과 정법자의 풍모는 탄복할 만했다.

나는 그날 사부님의 법은 한 점도 틀린 것이 없으며 큰소리를 치거나 허황한 소리를 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전법륜> 제 5강에 사부님의 사진이나 책으로 불광을 개광하는 문제를 말했다. “30초면 곧 문제가 해결된다.”고 했는데 사실 30초도 필요 없고 3초면 된다. 사부님의 말씀은 늘 여지를 남긴다. “나 이 사람은 한 가지 습관이 있다. 나에게 한 장(丈)이 있으면 나는 한 자[尺]라고 말하는데, 당신은 내가 허풍을 떤다고 해도 다 좋다. 사실 이것은 조금만 말했을 뿐이며, 더욱 높고 깊은 대법(大法)은 층차가 너무나도 차이 나므로, 나는 전혀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말해 줄 수 없다.” <전법륜>

(계속)


수련중에 본 사부님 법리의 오묘한 실례 (3)


작자/ 대륙제자 경주

【정견망】

사람마다 법에 입문할 때 한두 가지 혹은 더 많은 장애를 만나는데 나도 마찬가지다. 처음 <전법륜>을 읽을 때 제 6강 연공초마에서 색마에 대해 읽을 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욕(慾)과 색(色),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의 집착심에 속하며 이런 것들을 마땅히 모두 제거해야 한다.” “일부 사람들은 그것을 아주 중하게 보는데 우리는 연공인(煉功人)으로서 그것을 아주 담담하게 보아야 한다.”

나는 바로 애정을 중요하게 보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보고 나는 주저했다. 내가 수련할 수 있는가, 만일 이 문을 수련하면 부부의 감정과 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는가.

이런 의문이 막 솟아나자 사부님은 바로 다음의 말에서 나의 의혹을 풀어주셨다.

“그러므로 이런 일들을 당신 역시 그것을 너무 중하게 보지 말아야 하며, 당신이 과분하게 걱정한다면 역시 집착에 속한다. 부부간에는 색의 문제가 없지만 욕망이 있는데, 당신이 그것을 담담하게 보고 심리적 평형을 이루면 된다.” 특히 그 한 구절이었다. “당신이 과분하게 걱정한다면 역시 집착에 속한다.” 그렇다 우리는 중하게 볼 수 없고 담담하게 놓으면 된다. 걱정하는 것도 집착이다.

나도 색관에서 잘 지나가지 못했다. 세 번째가 되어 내가 지킬 수 있음을 느꼈고 1998년 색의 고험이 6차례나 있었다.

<전법륜>에서 관정을 말했는데 나도 몇 차례 직접 겪었다. 대다수는 연공할 때 관정이 있었는데 특히 제 2장 공법 포륜을 할 때 비교적 여러 번 나타났다. 관정의 상태는 사부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 갑자기 한가닥 뜨거운 흐름이 정수리에서 신체 아래로 운행했다. 어떤 때는 불완전했고 한번은 가부좌하고 있을 때 관정이 다리에서 정수리를 향해 관(灌)했다. 어떤 때는 한번만이 아니었고 연속 두 번, 세 번도 있었다. 매 차례 7,8 초 정도 길었다. 한번은 매우 특별했는데 점심 휴식 시간에 자리에 누워 쉬고 있었는데 아직 잠이 들기 전에 관정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누워서 관정한 것이 아니라 신체가 20도 정도 기울어져 들렸다. (머리가 침대에서 뜨고 다리는 침대에 놓여있었음) 전반 신체가 일어나 앉은 것이 아니라 잠자는 것처럼 뻣뻣했는데 이렇게 관했다.

그때 사부님에 대한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속인이 보기에는 이렇게 하는 사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혼자 공부한 사람으로서 사부님을 뵌 적도, 학습반에 참가한 적도 없고 학비도 한 푼도 안냈지만 사부님께서 신체를 정화해주셨다. 게다가 파룬을 넣어주시고 천목을 열어주고 관정해주시고 윤회의 기억을 열어주시며 속인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지 못할 문제에서 이런 내재적인 인연관계를 보여주셨다. 또 전혀 알지 못하는 공과 수련에 필요한 일체 물질을 연화해주시니 세상에 이런 사부님이 또 어디 있겠는가? 또 어느 사부가 이렇게 할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전법륜>에서 말한 “진정으로 고층차 상으로 사람을 이끌다” 가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그러므로 천목이 열려도 수련하기 어려우며 心性(씬씽)을 파악하기는 더욱 어렵다고 한다.” 라고 하신 것이 확실히 이와 같다.

처음 꿈에서의 고험은 사부님 법신을 본지 얼마 안 되어 마가 나타났다. 이것도 상생상극의 원리에 따라 조성된 것이며 내가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꿈에서 어느 여자가 유창한 영어로 설법하는데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아주 오래 했다. 말한 것이 무엇인지 똑똑하지 않은데 그녀의 표준 영어에 감탄했다. 이런 염두가 나왔을 때 그녀가 형상을 드러냈다. 등 뒤에 나에게 연공 동작을 가르치는 화면이 나타났다. 나는 그녀를 따라 흉내를 내기 시작했는데 잠시 생각하니 옳지 않았다. 이건 오장 공법이 아닌데. 이런 일념이 번득 스치자 그녀는 사라졌다. 그 후 그녀는 중국어로 “연마를 잘했군”라고 말했다. 깨난 후 이것이 마의 교란임을 알았다.

저령(低靈)의 것은 누추한데 대법 수련을 하는 사람은 그것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그것도 감히 대법수련자를 교란하지 않는다. 1998년 단체 연공할 때에 나는 일부 저령의 것들을 보았다. 그것은 공원에서 속인이 태우는 향, 종이 따위를 태우는 흙더미 속에 있었다. 그것은 향을 꽂아 놓은 곳에서 튀어나왔고 단번에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났다. 키는 보통사람보다 좀 작았다. 머리는 길고 더러운데 가슴 앞까지 늘어뜨려져 있었다. 얼굴도 추했고 주름살이 깊게 패였으며 피부가 시커멨다. 몸에는 다 떨어진 검은 옷을 걸쳤고 얼른 보면 거지보다 더 꾀죄죄했다.

그것은 그곳에서 나온 후 줄곧 달려가서 내 옆을 지나면서 곁눈질로 나를 보았다. 나도 움직이지 않고 사부님께서 법에서 말한 이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감히 대법수련자를 건드리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조용히 보고만 있었다. 서로 교란하지 않았다.

사실 그 공원은 우리 연공장과 어느 정도 떨어져 있었다. 나도 그것이 왜 내 곁으로 왔는지 모른다. 단지 전에 우리 세 가족이 공원에 가서 연마할 때(그때는 아직 대법을 수련하기 전이었다) 아이가 향을 피우는 곳에 가기에 멀리 가지 말라고 말한 적이 있을 뿐이다. 그 후 99년 연공할 때 그것이 어느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98년 내 기억 중에 두 가지 잊지 못할 일이 있다. 하나는 인근 마을에서 열린 심득교류회 참가한 것이다. 우리 어느 동수가 필름 카메라로 교류하던 수련생들의 사진을 찍었다. 인화하여 나온 사진을 보니 교류하던 수련생의 가슴 앞에 둥그런 백색의 빛이 있었다. 어떤 것은 가슴에서 정수리까지 컸다. 그 동수는 가장 둥근 원이 있는 사진 한 장을 내게 주었고 나는 줄곧 간직하고 있다. 이것이 파룬의 기묘한 작용이다. 이것이 다른 공간의 현상이 물질 공간에 나타난 진실한 사진이다. 실증과학 각도에서는 영원히 해석할 수 없다. 현실 공간에 없는 것이 오히려 현실 공간 중으로 빛에 의해 반영될 수 있는가? 실물 없이 그림자가 있을 수 있는가? 유감인 것은 2000년 다른 동수가 진상을 한다고 가져간 후 잃어버렸다.

두 번째 일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전법륜>의 글자가 심층 공간에서 불도신의 형상이라는 것을 견증했다. 마지막으로는 사부님의 법신이었다.

수련 후 하나의 현상이 나타났는데 잠을 적게 자도 오히려 힘이 넘친다. 이 때문에 한동안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나는 일어나 <전법륜>을 베껴 쓰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시간만 나면 책을 베껴 썼다. 한번은 내가 책을 베끼는데 손이 시큰해서 더 내려갈 수 없었다. 머리를 들어 내가 한참 쓰고 있던 <전법륜>의 그 페이지를 보니 전부 가부좌하고 있는 승려들이 두 손을 제인 한 모습이었다. 나는 격동했는데 2,3 초만에 사라졌다.

또 한 번은 밤에 잠들기 전이었다. 휴대폰으로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듣고 있었다. 갑자기 천목으로 하늘에 많은 부처들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 사각형으로 가지런히 줄을 맞추었는데 역시 가부좌하고 제인을 하고 있었다. 나는 사각형의 사선 대각선 방향으로 보았기에 매우 가지런하고 엄숙하게 보였다. 그때 나는 다른 공간의 불도신이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있는 것임을 알았다. 나중에 이 일을 보도소장에게 말했더니 그녀는 법을 존경하라고 사부님이 나를 점화하신 것이라고 했다.

(계속)


수련중에 본 사부님 법리의 오묘한 실례 (4)


작자/ 대륙제자 경주

【정견망】

앞서 든 몇 가지 예들은 주로 1998년 초 사부님의 위대함과 대법의 현묘함을 견증한 경험이었다. 그것도 당시 내 층차에서 감수한 그 층차 그 한 층차의 불법(佛法)이 체현된 장관의 일부일 뿐이다. 사실 불법무변이라, 법리는 <전법륜>에서 수련 중 만나는 각종 정황을 책에 천명해놓았다. 내가 이런 경험을 쓰는 이유는 주로 동수들에게 거울이 되고 속인이 대법의 정심하고 위대하며 불가사의한 내포를 느끼게 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또 사존께서 어떻게 제자의 수련을 이끄시는지, 어떻게 진정으로 제자를 위해 책임지고 사회에 대해 책임지시는지 알게 하기 위해서이며 대법을 중도에 포기하고 떠난 사람들이 다시 수련의 신심을 불러일으켜 만고에 다시 오지 않고 신선조차 얻고자 해도 얻지 못하는 대법과 스쳐 지나가 평생 후회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함이다.

되돌아보면 1998, 1999년에서 2015 년까지 나의 수련은 감성적으로 법을 인식하는데 머물러 있었고 진정으로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않았고 법에서 수련하지 않았다. 이 역시 내가 1999년 고험에서 떨어진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1999년은 수련의 이정표이자 전환점이었다. 희비가 교차했고 원만할 수 있는가 하는 고험 중에 각종 심태, 각종 수련 상태가 빠짐없이 폭로되어 나왔다. 매 수련자는 스스로 자신의 수련이 어떤지 원만 표준에 도달했는지 마음속으로 자명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원신이 착실히 수련하는 정황에 대한 전면적인 검열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사람마음도 하늘로 가져갈 수 없다.

아래에 나의 이 1년간 수련의 기본 정황을 여실히 기록한다. 어떤 인식은 법상에 있지 않으니 동수들의 지적을 바란다.

이 해에 나의 천목은 아주 똑똑했다. 매일 대법의 행복에 빠져 수련하는 중에 홍법, 학법, 법을 베껴 쓰고, 연공했으며 친척과 동료들도 모두 대법의 복음을 들었다. 어떤 사람은 수련으로 들어왔다. 설사가 나며 신체 청리하는 일은 늘 나타났고 자기의 몸이 가볍고 정력이 충만했다. 업무능력도 뛰어나 어떤 때는 직장환경이 법을 공부하고 홍법하는 장소로 변했다. 비할데 없이 행복과 행운을 느꼈다. 이 단계에서 나는 여전히 신체의 변화와 대법의 위력과 신기를 느꼈으며 사존을 한번도 뵙지 못한 것이 일생의 유감이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눈을 뜨니 벽에 대야만한 크기의 구역이 밝은 것을 보았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보았는데 그 구역에 아주 작고 작은 벌레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 그때 나는 사부님께서 법에서 말씀하신 대로 사람의 신체는 미시적인 하에서 모래알 같은 것임을 알았고 내가 본 그 벽의 작은 부분이 꿈틀거리는 벌레는 바로 분자가 활동하는 것이었다. 그것들도 살아있었다. 사부님이 말씀하신 법은 조금도 허황하지 않았고 다만 자기가 그 층차까지 수련하지 못해 몰랐을 뿐이었다.

나중에 나는 벽에 손바닥만한 거미, 바퀴, 게 등이 기어다니는 것을 보았는데 모두 손바닥 만했다. 그 후 천천히 담담히 벽속으로 사라졌다. 처음에는 내가 가서 그것을 때렸는데 때릴 수 없었다, 나중에 내가 본 것이 다른 공간임을 알았다.

우리 시의 한 대학에서 한차례 7일간의 합숙 법공부 반을 조직했다. 보도소장이 나더러 참가하라고 했다. 나는 학교 다니는 것처럼 누가 와서 설법한다고 생각하여 매우 기뻐하며 명단을 올렸다. 내가 기록이 빠르니 가능한 한 받아 적어서 보여주겠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하지만 대학에 가보니 일백여 명이 왔는데 조를 나누어 <전법륜>을 읽었고 아침에 단체 연공을 했다. 저녁에는 조를 나누어 책을 읽거나 아니면 각자의 체험을 이야기했다.

나는 실망했다. 기왕 왔으니 단체 법공부도 괜찮았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귀감이 되었다. 나는 말을 거의 안했는데 법리를 잘 몰랐기 때문이었고 오성이 더욱 따라 올라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 교사가 있었는데 그의 오성이 아주 좋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사부님께서 수인하는 사진 아래 두 개의 인감이 무슨 뜻인가 하고 사람들에게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나도 그것에 유의하지 않았다. 그는 나중에 말했다. 그는 그 정방형의 인감은 제자더러 정정 당당하게 수련하라는 것이며 그 발바닥 같은 도장은 제자들에게 착실하게 수련하라고 한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동수의 오성에 탄복했다. 나는 어떻게 깨닫는지 몰랐고 무엇을 깨달음이라고 하는지 몰랐다. 자기는 너무 뒤떨어져 있고 반드시 따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에 단체 교류할 때는 성(省) 보도소에서 사람들이 와서 각 조를 안내했다. 우리 조는 20여 명이었고 조장은 여자였는데 그녀는 각자 체험을 이야기하라고 했다.

나는 원래 발언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나더러 말해보라고 해서 꿈에 색관을 넘긴 일을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즉시 나더러 너무 상세히 말하지 말라고 제지하며 비판했다. 그때 나는 기분이 나빴다, 당신들이 말을 하게 해놓고 내가 사실대로 말하니 또 싫어하는구나. 그날 밤 기숙사에서 몇 명이 함께 있었는데 원래 서로 모르던 사이였다. 그들은 모두 노인이었으며 나만 젊었다. 그들은 내가 방금 발언한 것을 듣고 어떻게 법을 얻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간단히 내가 법을 얻은 과정을 말해주었다.

그 중 한 노동수(나에게 둥근 빛이 있는 사진을 보내준 동수)도 천목이 열렸는데 내말을 듣고 말했다. “내가 본 것을 좀 말하려는데 당신들은 마음에 두지 마세요.” 그는 내 옆에 있는 동수를 가리키며 그의 공기둥이 좀 짧으며 천장 높이 정도라고 했다. 그리고 나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당신은 꽤 괜찮은데 잘 수련하세요, 공기둥이 상당히 높아요. 2000년 후 나는 줄곧 그를 찾으려 했으나 소식을 듣지 못했다. 내 옆에 있던 동수는 현재 병마로 고생하고 있다.

한번은 단체 법공부 할 때 어느 노부인 물컵을 그녀의 손자가 깨뜨렸다. 그녀는 이후 물컵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그녀는 교류 중에 말하기를 법공부하는데 물컵이 필요 없고 물을 마실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물컵을 가지고 오지 않으며 목이 마르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그때 나는 매우 감동되었다. 나는 내가 지식이 있으니 법을 다른 사람보다 더 잘 배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오성은 교육 수준이 낮은 할머니보다 낮았던 것이다.

나중에 소장이 몇차례 나더러 시내 각 연공장의 매주 법공부 교류회에 참가하라고 했다. 한번은 우리가 법공부 후 교류할 때 나는 <전법륜> 표지의 파룬이 일어서서 춤을 추고 또 떨어지고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을 보았다. 매우 기묘했는데 마치 여자 어린이가 자기도 모르게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아마 에너지 장이 강하니 파룬이 활기를 띠는 것 같았다.

4.25가 일어난 후 어느 법공부 교류상에서 어느 대학 연공장의 여대생이 참가했다. 그녀들이 도로 옆에서 연공하고 홍법하다가 그곳 파출소에게 제지당했으며 파출로소로 끌려가 심문 받은 일이 있다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사람들은 이 일에 관해 토론했다. 나는 조용히 들었다. 몇차례 교류회에서 특별히 이번 차례에 나는 일부분 동수의 쟁투심이 강한 것을 들었다. 다른 사람 특히 속인이 우리가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제지하려는 것 같았다. 대법을 수련하니 좀 높은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자리에서 많은 사람이 파출소 공안국에 편지를 쓰고 방문을 하자고 제기하는 것을 보았다. 또 사람들은 근거 없이 여대생이 대법에 먹칠하는 뜻이 있다고 질책했다.

소장은 사람들의 발언을 다 듣고 나의 의견을 물었다. 아울러 사람들에게 나는 연공장 책임자는 아니고 임시로 참가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때 파출소에서 한 처리가 법률 규정에 위반한 것은 없다고 했다. 반대로 우리가 일을 할 때 주위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길거리에서 길에서 단체 연공하고 행진하는 것은 법률이 허용하지 않는 것이며 비록 양옆에서 연공 홍법을 하는 것도 안 된다. 사람들이 와서 쳐다보면 도로 교통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는 상방도 하지 말고 편지도 보내지 말자, 우리가 잘못한 것이지 저쪽이 잘못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앞으로 교훈을 얻으면 된다. 이 일은 지나가게 하고 법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필경 그들은 한번 기록해놓았을 뿐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하지 않았지 않느냐. 그들은 나의 건의에 동의했으며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6월 1일 직장에서 긴급회의가 열려 파룬궁 문제를 처리하는 데 대한 중앙의 의견을 전달했다. 공산당원이나 기관간부들은 파룬궁을 연마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머리가 띵해졌다. 첫 반응은 당의 결정이 잘못이라는 것이었다. 그날 밤 꿈을 꾸었는데 체육 위원회에서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들에게 회의를 개최하라고 했다. 나도 참가했는데 약 20명이었다. 사람마다 두 장의 자료를 나누어 주었으며 모모 공을 소개했다. 나는 자료를 둘둘 말았다. 어떤 사람은 보았고 어떤 사람은 버렸다. 모임을 주재하는 사람은 자료를 읽어보라고 했는데 나는 회의장을 나가서 자료를 버렸다.

속으로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지켜야 하니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돌아갔을 때 회의는 이미 끝나 있었다. 사람들은 떠났고 나는 입구로 가다가 25세 정도 된 체육 위원회 여직원을 만났다. 그녀는 찻잔을 씻고 있었다. 내가 가서 당신 파룬궁을 연마해보세요, 그래도 파룬궁이 좋아요,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라고 하며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해요. 그녀는 자기가 부체공을 연마한다고 했다. 나는 집착심을 버리고 심성을 제고하면 층차가 제고된다고 했다. 그녀는 좋다고 했다. 나는 집에 돌아가 <전법륜>을 주겠다고 했더니 그녀는 내일 달라고 했다, 나는 아니요, 오늘 주겠다고 했다.

처음에 나는 정부가 일시적으로 잘못한 것이며 재빨리 바로잡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직장 상사에게 여전히 파룬궁을 연마하겠노라고 했다.

매일 나는 여전히 시간이 되면 연공장에 가서 연공했으며 아내는 저녁에 연마했다. 7월 21일 밤 아내가 연공하고 돌아왔는데 소장이 쪽지 하나를 주었다면서 가져왔다. 내가 보니 내일 정부에서 파룬궁에 대해 대대적으로 수색 체포를 하니 책을 숨기고 도시를 떠나라는 것이었다. 그때 친구가 우리집에 손님으로 와있었는데 정말 그녀가 좀 빨리 가주었으면 했다. 매우 긴장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가 어떻게 하다 보니 그때 이미 거의 11시가 되었다. 나는 모든 대법 서적을 여행 배낭 속에 넣었다. 그녀가 막 떠나자마자 즉시 책을 장모님 집에 보내고 사무실로 돌아와 대법서적을 숨겼다. 아내는 소장이 빨리 도망가라는데 어떻게 해요 하고 물었다? 나는 도망가지 않고 집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날 밤 오랜 기다림 끝에 가장 긴 밤, 불면의 밤, 걱정하는 밤을 보냈다. 공안국 인원이 와서 문을 두드려 사람을 잡아가기를 기다렸다.

부지불각 중에 연속 세 개의 꿈을 꾸었다. 모두 자기를 잡으러 온 사람을 어떻게 응대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나의 상급자가 설명하게 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내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어 난관을 넘기려고 하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자기가 직접 파룬궁 연마를 부인하는 것이었다.

깨어난 후 나는 관을 넘기지 못한 것을 확인했다. 그때는 이것이 원만할 수 있는 고험인지를 알지 못했다. 세 개의 꿈 속에서 성경에서 말한 예수가 수난을 받을 때 베드로가 세 차례나 주(예수)를 부인하는 경험과 거의 일치했다. 사부님은 꿈이 비록 수련은 아니지만 수련이 착실한지 아닌지 고험한다고 하셨다. 짧은 몇 개월간의 꿈에, 홍법을 하여 파룬궁을 배우라고 하는 것과 파룬궁을 부인하는 것을 다 꾸었으니 차이가 얼마나 큰가. 비록 꿈에 공안국 직원을 속여 관을 넘기려고 하는 성분이 있었지만 그것도 안 된다. 수련은 엄숙하다. 조금도 대충할 수 없고 더욱이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는 것을 허용하지 못한다. 실패했고 철저한 실패였다.

이때부터 수련의 다른 고통스런 과정으로 들어갔다. 수련 환경을 잃었고 신경문도 없었다. 정부의 압력과 하늘 땅을 뒤덮는 악독한 공격 하에서 나는 반복해서 생각했다. 정부의 결정이 옳은지 반복하여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배운 이 법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 바른지 바르지 않는지? 리훙쯔(李洪志)는 어떠한 사람인지? 이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중상한 사악한 세력, 그것이 한 말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 매 수련생은 모두 이런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많든 적든 당신들 모두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또 당신들에게 한 차례 생각할 기회를 준 것이다.” <도항 - 북미 오대호 법회 설법> 확실히 이렇다. 같이 한번씩 사고했고 할 때마다 굳건해졌다. 무엇 때문에 발생할 수 있었는가? 무엇 때문에 발생해야 했는가? 나는 줄곧 답안을 찾고 있었다.

나는 평소 맡은 일에 책임지고 공명을 구하지 않으며 이익을 도모하지 않았다. 특히 집을 분배하거나 간부로 뽑히는 일에 동료나 상사가 수련자의 박대한 흉금을 이해하도록 했고 게다가 줄곧 직장의 우수 모범사원으로 선정되어 사람들의 평판이 좋았다. 때문에 파룬궁 이 일에서 그리 큰 상해를 조성하진 않았다.

나는 정직 당했다. 그래도 매일 반드시 시간에 맞춰 사무실에 가야 했다. 업무는 주지 않았지만 반성하고 반성문을 써서 보고해야 했다. 직장에서 전적으로 교육 팀을 만들어 매주 나의 상황을 상급에 보고했다. 동료들이 나를 두려워했고 상사도 나를 멀리했다. 나는 이렇게 고독하게 무료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법공부, 법 베껴 쓰기, 연공은 집에서 매일 진행했고 담담히 일체를 내려놓고 심성을 지켰다. “마음에 진선인을 품고 자비로 주위 일체를 대한다”를 일과 생활의 준칙으로 삼았다.

비록 고험에서 관을 넘기지 못했지만 사부님은 제자에 대해 늘 한결같으셨다. 이 못난 제자를 버리지 않으셨다. 나의 천목은 여전히 또렷이 분별할 수 있었다. 그때 눈을 뜨면 한 줄의 파룬만 보이는 게 아니라 온 하늘에 빽빽히 가득 찬 파룬을 보았다. 어떤 때는 검은 색 바닥을 보면 더 뚜렷해졌다. 이것으로 사부님께서 정말 수련생을 제자로 삼아 이끈다는 것을 보기 충분하다. 이때 나는 <전법륜>을 8번 베껴 썼고 다른 대법서적도 문답을 제외하고 다 한번씩 썼다.

말할 것이 있는데 한번은 박해가 발생한 지 얼마 안 되어 꿈에 또 사부님을 뵈었다. 그것은 고향의 어느 관방(官房 고대 지방관원의 가족이 머무는 곳)이었는데 앞뒤로 두 개의 문이 있었다. 사부님은 흰 셔츠에 짙은 색 바지를 입고 성큼성큼 나를 향해 걸어오셨다. 관방의 한쪽은 주민들의 주택인데 그들의 문이 다 열려 있었다. 입구에 사람이 서 있었는데 그중 한 노년 부녀는 우리 연공장의 사람이었다. 그녀는 제 3장 공법을 연마하고 있었다. 사부님이 내 앞에 5미터도 안 되었을 때 걸으면서 말씀하셨다. 처음에 나는 사부님인 줄 몰랐는데 나와 어깨를 스칠 무렵 나는 사부님의 한마디 말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몇 명이 원만할 수 있는가?” 나는 깜짝 놀랐다. 이는 사부님이 아니신가? 하고 “사부님”을 외쳤다. 사부님은 돌아보지 않으셨고 계속 앞으로 가셨다. 나는 사부님에게서 7,8 미터 떨어진 상태에서 몸을 돌려 다시 “사부님”, “사부님, 저는 당신 신변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사부님은 이미 문 입구로 나가버렸다. 관방의 밖에는 큰 대포가 꽝꽝 울리고 있었고 탱크가 줄을 지어 들어왔는데 마치 전쟁터에 진공하는 것 같이 포화가 하늘에 닿았다.

하지만 사부님은 여전히 씩씩하게 앞으로 걸어가셨고 전혀 이런 것을 눈에 담아 두지 않으셨다. 나는 즉시 지름길로 달려가 사부님을 따라 잡고 싶었다. 그리고 깨어났다. 반성해보니 사부님의 정법의 걸음을 따라잡지 못했다. “몇 명이 원만할 수 있는가?” 그렇다, 자기는 원만에서 아주 멀었고 법리에 똑똑하지 못하고 심성이 높지 않다.

“의지 확고하지 못하면

고비는 산과 같나니

어이 속세를 벗어나랴” <홍음2>-끊다

(계속)


수련중에 본 사부님 법리의 오묘한 실례 (5)


작자/ 대륙제자 경주

【정견망】

2000년 이후의 수련은 복잡하고 곡절이 많았다. 만일 사부님의 이끌음이 없고 법에서 법을 인식하며 진정으로 수련하지 않았다면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을 걷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잘못하면 구세력의 계략에 떨어지고 구세력이 설치한 함정에 빠진다. 그래서 <전법륜>에서 경계했다. “고층차의 법을 반드시 투철히 배워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가를 알게 하며, 다섯 가지 공법을 한꺼번에 전부 배우게 한다. 장래에 당신은 상당히 높은 층차, 당신이 생각지도 못한 그러한 고층차에 도달할 수 있으며, 정과(正果)를 얻기는 문제가 없다.” 확실히 이와 같다. 만일 법을 투철히 배우지 않았더라면 쉽게 길을 잃었을 것이며 속임을 당했을 것이다.

아마 곧 잘못 걸어 심지어 수련에서 떠났을 것이며 지금까지의 공이 수포로 돌아갔을 것이다. 바로 이렇게 된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는다.’

나는 한때 수련을 포기하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아주 긴 시간 대략 5년(2000-2005) 동안 줄곧 미망에 빠져 배회했다. 답안을 찾아다녔으나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운 좋게 나는 여전히 하늘에 파룬이 총총이 박힌 것을 매일 보았고 <전법륜>의 글자가 모두 춘련(春联)을 쓸 때 금가루 묻힌 붓으로 글씨를 써서 마르지 않은 것처럼 반짝 반짝 빛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전법륜>을 들면 매우 친근감이 느껴졌고 법공부를 하면 번뇌를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기의 법공부가 착실하지 못해 게다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기가 한 갈래 굽은 길을 걸었다. 운 좋게 사부님이 끊임없는 점화를 하여 이같이 업력이 크고 오성이 차한 내가 아직 지금까지 수련할 수 있었다. 아래에는 내가 이 어려운 곡절의 과정과 사존의 인내심의 점화를 해주었는지 간략하게 말하겠다.

1. 음주에 대한 생각을 버리다

98년 대법을 수련한 후 나는 바로 술을 끊었다. 비록 많은 교제와 친구를 사귈 기회를 잃었지만 나는 속으로 수련보다 더 즐겁고 더 의미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그래서 동료나 상사가 술을 권해도 마시지 않았다. 2001년 새로 부임한 상사는 원래 사무실의 주임이었다. 환영 만찬회에서 나는 마침내 견디지 못하고 그들의 권유로 작은 잔으로 한잔 마셨다. 그 후 즉시 배가 뒤집히는 것 같이 토하고 또 토했는데 나오지도 않고 설사를 해도 잘 나오지 않아 무척 괴로웠다. 나는 화장실에서 사부님께 맹세를 했다. 오늘 이후에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이 사건 후 나도 담담히 잊었다. 이 단계에 나는 수련하다말다 하는 상태였고 책도 보고 연공도 했으나 착실히 수련하지 않았다. 느슨하게 되어 동료와 함께 섞여 카드도 치고 노래도 부르고 주식도 했다. 이 동안 밤에 꿈을 꾸었는데 대개는 내가 <전법륜>을 보다가 다른 사람에게 들키는 것이든가 아니면 연공하다 다른 사람에게 들켜 한무리의 사람들이 나를 잡으러 오는 것이었다.

게다가 뱀을 꿈에서 보고 나는 그것을 때렸다. 때린 후에도 그것이 또 있었다. 정말 무서웠다. 눈을 감으면 천목으로 늘 뱀 껍질을 보았다. 어떤 때는 매우 커서 벽돌만큼 컸고 여기저기 넓적하게 있었다.

2002년 음력 설날 전야 우리 온 가족이 슈퍼마켓에 가서 물건을 사는데 감주가 좋고 또 값이 싸서 두병을 들고 왔다. 이때 아이가 물었다. “술을 사게요?”(사부님의 점화였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계산을 마친 후 시장을 떠나려 하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하나의 정보가 들어왔다. ‘맹세-언약’ 그래서 아내에게 물었다. 내가 방금 ‘맹세언약’ 라는 정보를 들었는데 너무 뚜렷해서 무슨 뜻이지? 그녀도 이해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줄곧 고심했다. 그날 잠잘 때 아내에게 술이 싸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갑자기 깨우쳤다. 그렇구나. 이는 사부님에게 한 언약인데 어떻게 잊을 수 있는가? 나는 술을 형에게 주었고 이후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마음 씀이 고생스러움을 알 수 있고 진일보로 사부님께서 진정으로 제자를 이끄심을 알 수 ㅎ 일로 착각했다.

사부님은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계속 이런 물고기 잡는 방법으로 점화하셨다. 나는 여러 차례 꿈에서 고향의 밭으로 가서 물고기를 잡았는데 물고기만 잡은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손을 뻗어 잡을 때 물고기와 뱀이 동시에 잡혔고 나는 놀라 깼다. 비록 이랬지만 나는 여전히 사부님이 나더러 주식을 하지 말라는 것인지를 깨닫지 못했다.

어느 날 나는 손해를 견딜 수 없어 주식시장을 보면서 사부님께 부탁했다. 저의 주식이 좀 오르게 해주세요. 손해를 좀 덜 보고 팔수 있게요. 결과 그날의 종가는 더욱 나빠져 팔 수가 없었다. 그날 밤 꿈에 나는 큰 고기를 잡아 집으로 돌아와 물고기를 죽여 배를 갈라보니 뱃속에 또 한 마리 물고기가 들어 있었다. 깨어난 후 이것은 ‘魚中魚’ 바로 ‘愚中愚 - 어리석음 중의 어리석음’이며 내가 사부님께 부탁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다음날 나는 결심하고 주식을 깨끗이 다 팔아버렸더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또 사게 되었다. 주식이 오를 것이라는 말을 듣고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재차 뛰어들어 여전히 2008년 올림픽 개막 전날 꿈에서 내가 물고기를 잡았을 때 물고기가 갑자기 한 마리 큰 돼지머리로 변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이것이 사부님의 평가였는데 내가 돼지머리라는 뜻이었다. 다음날 나는 즉시 주식을 깨끗이 팔았다.

3. 사부님께서 재차 나타나 점화하심

이것은 내가 세 번째로 사부님을 꿈에서 뵌 것이다.(처음에는 법신이었다) 꿈에서 나는 날기 시작했고 날아서 어느 마을의 도로가에 도착했다. 그날은 대낮이었고 공기가 맑았다 우리 공간의 약 9시경으로 햇빛이 눈부시고 광선이 강했으나 뜨겁지는 않았다. 몇 명의 부녀자가 마을 앞 저수지에서 빨래를 하는데 나는 날아서 길에 내렸고 길에는 가로수가 없었다. 이때 사부님은 흰 셔츠를 입고 나타나셨는데 맞은편에 대략 몇 걸음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한손을 내미셨고 나도 사부님께 손을 뻗었다, 사부님과 악수를 하려고 하며 “사부님”하고 불렀다. 사부님은 대답하지 않았고 나와 사부님의 두 손이 닿으려는 순간 우리 사이에 벽이 하나 가로막았다. 대략 높이가 1미터였는데 나와 사부님을 갈라놓았고 우리의 두 손은 담을 넘어갔지만 악수하지는 못했다.

단지 사부님의 어깨와 머리만 볼 수 있었는데 사부님은 여전히 손을 담 넘어 뻗으셨다. 아, 나는 단번에 알았다. 사부님께서 나와 악수를 하시려는 게 아니라 나를 끌어당기려 하시는구나. 그런데 벽으로 가로막혀있으니 끌어당기시지 못하는구나. 이때 이쪽 벽의 전면에 검은색 팔걸이 의자(높은 신분을 나타내는 의자)가 나타났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사부님은 내가 안일심을 구하는 마음을 점화하시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직위를 구하는 마음인가?’ 사실 현실생활 중에 나는 관직을 그리 중하게 보지 않았고 수련인의 목표는 명확하다. 바로 도를 얻어 원만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상생활 중 무슨 관이라도 나에게는 그리 넘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박해가 발생한 후 나는 비록 가만히 잡히기를 기다리는 생각은 잘못이지만 나는 시종 한 가지 염두를 품고 있었다. 내가 감당해야할 것은 내가 감당하겠다. 내가 감당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나는 결코 승인하지 않는다.

4. 굽은 길을 걷다 여러번 사부님의 점화로 마침내 돌아가다

2000년 같은 연공장의 한 동수가 말했다. 그는 다른 동수가 있는 곳에 있을 때 본 사부님의 신경문을 보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초조했다. 그에게 얼른 가져오라고 하여 내가 복사를 하려 했는데 그는 그 동수가 못 가져 가게 하여 몇 단락만 베껴왔다. 그 문장을 xxx라고 부른다. 그때 사부님의 경문이 없었고 보도소가 모두 마비되었는데 어디서 온 경문인가. 그는 묻기를 <전법륜>의 시작하는 한글자와 끝나는 글자는 무엇인가요 하고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고 그는 ‘진수(真修)’라고 했다. 그가 전문을 다 가져오지 않아서 나는 그가 베껴 쓴 몇 단락만 보았는데 나 역시 마음에 두지 않았다. 나중에 명혜망에서 이것은 중공이 짜깁기 해낸 것으로 난법이라고 했다. 나도 보고 싶지 않았다.

2010년 후 나는 수련에 진보가 없다고 느꼈다. 법은 비록 매우 오래 배웠지만 99년 때와 같은 진보가 없었다. 인터넷에서 법을 찾다가 가짜 경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들의 채팅그룹에 가입했다. 그들의 수련체험을 들었다. 그들 대다수는 박해받은 노수련생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사부님의 학습반에서 사부님을 뵌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법을 매우 깊게 배웠으며 익숙했다. 다만 그들은 오성이 너무 특별했다. 좀 올바르지 않은 점도 있었다. 특히 인터넷의 일부 가짜 경문은 나로 하여금 더욱 이해할 수 없게 했다. 또 사부님의 안전이 걱정되었다.

나중에 그 무리 중에서 법공부와 깨달음이 좋은 한 동수가 있었다. 나와 교류할 때 매우 탄연했으며 그녀는 그런 것이 가짜라고 말하며 어떻게 구분하는지 알려주었다. <전법륜>의 법리를 가지고 시비를 분별하는 것이었다. <전법륜>과 모순되는 모든 것은 아마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전법륜>을 반대하는 모든 것은 가짜다. 법에는 거짓이 없고 사부님은 종래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이 기간 사부님은 꿈에서 여러 차례 나를 점오하셨다. 나의 오성이 너무 차해 마침내 이 동수의 도움 하에 사부님의 점화를 깨달았다.

그 중 몇 개의 꿈에서 나는 정사발(鄭士發)이라는 사람과 함께 강단에 있었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그때는 막 가짜 경문을 접했을 때였다. 나는 ‘鄭士發’을 ‘정식법(正式法)’로 이해하고 이 가짜 경문 등의 문장을 진정한 법으로 삼았다. 나중에야 사부님이 나더러 법실증(證實法 - 鄭士發과 발음이 비슷함)을 하라고 하신 것임을 알았다.

또 한번 꿈에서 나는 두연맹(杜連盟)이라는 사람과 함께 작업장에 참관했다. 이 작업장은 벽으로 둘러 싸여 있는데 막 입구에 들어서자 한 남자가 화로 곁에서 불을 피우며 약을 달이고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우리를 맞이하는 사람은 두 씨의 친구였는데 여자였다. 그녀는 막 만들어진 약을 들고 내 입에 갖다대려 했는데 입에 닿기도 전에 나는 그녀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마비되었고 신체가 힘이 쭉 빠졌다. 그녀는 말했다. “이 사람은 매우 민감하군” 나는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깨어난 후 나는 이런 난법의 글이 독약임을 인식했고 그들은 독을 제거하고 있는 것이었다. 두연맹(杜連盟)이라는 말은 이 말은 아마 사부님이 나더러 그들을 멀리하라는 것임을 깨달았다. ‘杜連盟은 그들과 연결을 두절하라는 뜻’ 나는 그들이 대법의 법리를 위반했다고 반박하며 기타 동수들에게 그들의 말을 믿지 말라고 하며 <전법륜>을 위주로 수련해야 성취하고 회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내가 굽은 길을 걸은 까닭은 자기 마음이 옳지 못하고 구하는 마음이 있으며 법공부가 착실치 않기 때문이다. 사실 사부님은 1997년 뉴욕 법회에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당신들이 비록 나 본인을 보지 못하여도, 사실 오로지 당신이 수련하기만 한다면 나는 바로 당신의 신변에 있다. 오로지 당신이 수련한다면 나는 능히 당신에 대하여 끝까지 책임질 뿐만 아니라 나는 시시각각 모두 당신을 지켜봐 주고 있다.” <미국에서의 설법-뉴욕에서의 설법>

또 도처에 법을 찾아다닐 필요 없다. 1996년 <시드니 법회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내가 사람에게 남겨놓을 법을 이미 전부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심지어 강의할 때 사람들이 녹음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무엇 때문인가? 많은 사람들, 그는 신기함을 추구하고 있다. 스승님께서 또 무엇을 이야기하셨다, 또 무엇을 이야기하셨다고 하며 그는 이런 것을 추구하고 착실하고도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는다. 내가 사람에게 수련하도록 준 것은 바로 『전법륜』이며 이 책은 계통적인 법이다.”

바로 자기의 마음 때문에 신기한 것을 추구하고 사부님의 법을 좀 많이 구하여 지름길을 걷고 싶어하는데 이는 모두 집착이며 자기가 굽은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너무나 차이가 나서 자칫하면 떨어져 나갈 뻔했다.

현재 적지 않은 이런 사람이 이 가짜 경문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나의 경험이 그들에게 경종을 울려 주고 계시가 될지 모르겠다.

교란을 배제하고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하는 유일한 방법을 바로 법공부를 잘하는 것이다. 법리 내재관계를 잘 장악하고(법은 원용불파이기 때문에) 현실 생활 중에 법으로 모든 것을 가늠하는 것이다. 사부님은 “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法은 正念을 확고하게 할 수 있다.” <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라고 하셨다.

소결 : 앞의 예로부터 우리는 <전법륜>과 사부님 설법의 진실성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법은 원용(圓容)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전체는 함께 관통된 것으로서, 당신이 그를 어떻게 보든지 모두 해석할 수 있다. 순서대로 보든, 뒤에서부터 보든, 중간부터 보든, 어떤 방법으로 이 대법을 어떻게 보든, 그는 모두 함께 통할 수 있고, 서로 모두 해석될 수 있는가 하면, 서로 연대적 작용을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대법의 원용불파(圓容不破)한 요소이다.”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나는, 내가 원치 않는 말은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한 것은 꼭 참말이어야 한다. 특히 이런 정황에서 내가 설법할 때에 내가 만약 참말을 하지 않고 여기에서 허황한 말을 하며, 과녁을 겨냥해 활을 쏘듯이 하지 못하고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한다면, 나는 바로 사법(邪法)을 전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은 그것으로 됐다. 이것이 정법자의 권능이기 때문이다. 미래 우주의 선택이며 미래우주의 수요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한 것은 모두 장차 역사 중에서 실현되며 내가 승낙한 소원도 장차 역사의 미래에 실현될 것이다.” <2003년 워싱턴 DC 법회설법>

“허망한 생각 다 떨쳐버리면 부처 수련 어렵지 않도다” <홍음>

우리 함께 착실히 수련하도록 노력하자.

이상은 개인 수련의 간단한 서술이니 부당한 곳은 지적을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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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견망


작자/ 장춘대법제자 성련(聖蓮)

【정견망】

나는 조용히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평소 단체 법공부 때 교류 외에 사람들과 수련 중의 일을 말한 적은 거의 없다. 자기의 수련이 매우 평범하고 많은 경우에 잘 못했다고 느낀다. 올해 5월 대법을 수련한지 20주년이 된다. 지난 20년을 돌이켜보면 매우 감개스럽고 마음이 울렁거린다. 법을 얻은 전후의 경험과 감수를 사부님과 동수들에게 보고하며 파룬따파의 박대정심함과 사부님의 구도 은혜는 하늘같이 높음을 실증하고자 한다.

1. 구법의 길

1980년대 중국에서는 기공 열풍이 불었다. 사부님의 고향이며 파룬따파의 발상지인 장춘은 기공이 공원, 광장 뿐 아니라 많은 대학 교정까지 들어왔다. 당시 적지 않은 교수 대학생들도 분분이 연공행렬로 들어왔다. 나는 직업학교 교사였다. 비록 전에 기공을 연마한 적은 없지만 한번 ‘기공’이란 말을 듣자 곧 신기하다고 느껴 흥미가 생겼다. 단 당시 일과 가정의 부담이 가장 심할 때라 연공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기공 서적을 빌리거나 스스로 기공서를 사보았다. 다 본 후 기공에 문파가 많지만 책의 내용이 매우 유사했는데 모두 공리나 공법 그런 것들이었다. 나는 몸에 무슨 병이 없었고 또 시간이 부족해 연공에 참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줄곧 기공을 잊지 않았다.

1994년이 되자 나는 또 장모씨의 기공서를 보았다. 바쁜 와중에 그의 기공반에 한번 가보았는데 그것이 내가 기공활동에 처음 참가한 것이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아이의 몸이 좋지 않았다) 막 강당에 들어가 앉았다. 기공사가 별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아마 내가 안보는 사이에 그가 공을 내보냈을지도 모른다. 회의장에 많은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울고 웃고 고함지르기도 하고 자발공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기공서적에서 말한 적이 없는 공포스러운 장면을 깜짝 놀라 바라보았다. 비록 그 뜻은 몰랐지만 그곳의 기의 장이 바르지 않다고 느꼈고 환경이 건강하지 않은 것 같아서 아이를 데리고 나왔고 다시는 그 학습반에 가지 않았다.

같은 해 또 인근에서 ‘소림보건공’학습반에 참가했다. 이번에는 처음 연공을 배우자마자 벽곡을 했다. 왜 벽곡을 하는지 몰라 기공사에게 묻자 그는 나를 보고 놀라더니 칭찬과 격려를 해주었다. 나도 효과가 매우 좋다고 느꼈다. 나는 기뻐하며 가급적 벽곡시간을 늘리려 했다. 한번은 멀리 출장을 갔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30여 일간 벽곡을 했다. 돌아오는 도중에도 단지 물만 마셨고 과일도 먹지 않았다. 결국 몸이 아주 쇠약해졌으며 신체에도 나쁜 반응이 나왔다. 집에 돌아오자 가족들도 내가 연마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나는 마지못해 또 한 차례 기공을 포기했다.

기공을 접촉하기 전 나는 불경이 매우 고심하다는 말을 들었다. 기공을 내려놓은 나는 또 도서관에 가서 불경을 찾았다. 하지만 학교 도서관에는 불경이 없었다. 성(省)이나 시 도서관에는 반드시 있을 거라 생각해 휴가를 받으면 반드시 도서관에 가서 불경을 찾아 끝까지 탐구해보리라 마음먹었다. 기다리는 동안에 나는 몇 차례 꿈에 북방의 천상을 보았다. 땅에서 멀지 않은 곳에 회색의 절과 같은 건물이 몇 개 있었다. 한번은 내가 입구까지 가보았는데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보지 못했다. 그곳은 신비한 듯 했고 꿈처럼 혼이 이끌린 듯했으며 오래된 곳을 바라보았다.

1997년 5월 초 어느 날 우리 학교에 내가 잘 아는 선생님이 한분 있었다. 책 한권을 들고 나를 찾아와서는 “이 공을 연마해보세요!”라고 했다. 나는 표지도 보지 않고 “시간이 없어요.”라고 했다. 속으로는 여전히 불경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료는 “이 공이 당신에게 매우 적합할 겁니다. 일단 책부터 보세요.” 하면서 책을 내 품에 밀어 넣었다. 호의를 거절하지 못해 껍질을 보니 <전법륜>이었으며 무슨무슨 공이 아니었다. 이에 나는 책을 가지고 돌아왔다.

낮에는 시간이 없어서 잠잘 때 침대에 엎드려 책을 읽었다. 목차 중 ‘벽곡’이란 내용이 있는지 없는지 얼른 찾아보았다. 찾아서 단숨에 다 봤지만 좀 실망스러웠다. 여기서 말하는 벽곡은 층차와 무슨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와 보니 제 첫구절은 “진정으로 고층차로 사람을 이끌다” “그가 최고 근본적인 불법이다” ... “우리 파룬따파 이 한문은 우주의 최고 표준인 진·선·인을 동시에 수련하며 우리가 연마하는 공은 매우 크다.” ... 나는 매우 놀랐고 이것이 기공서인가? 아니면 내가 찾으려던 불경인가? 많이 생각하기도 전에 나는 얼른 이어서 보았다. 1강을 다보기도 전에 약 30페이지를 보았을 때 아랫배 피부가 덜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시 내의만 입고 있어서 느낌이 매우 뚜렷했다.

이어서 아랫배 이하 두 다리까지 쉬익하며 냉기가 나가기 시작했는데 왼쪽 다리가 가장 서늘했다. (왼쪽 다리 무릎 관절염이 있었는데 전에는 상관하지 않았다.) 다음 날 책을 준 사람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사부님께서 파룬을 넣어주신 것임을 알았다. 냉기는 사부님이 다리의 병기를 없애주신 것이었다. 3~4일 정도 지나자 냉기는 점점 사라졌다. 나는 전에 무겁던 왼쪽 다리가 오른쪽과 마찬가지로 가벼워진 것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격동한 나머지 나는 전에 갖고 있던 각종 기공서와 연공테이프를 다 불태우고 팔건 팔아 깨끗이 청리했다. 동료에게 부탁해 파룬궁의 모든 서적과 자료를 한보따리 구해왔다. 이때부터 나는 집에서 가까운 법공부 팀을 찾았다. 마침 장춘에서 거행되던 ‘이홍지 사부 전법 5주년 전람회’에 참가했다. 전람회 참관이 끝나자 나는 꿈에서 막 깬 것처럼 소원을 이루었다.

2. 사은 난망

법을 얻었을 때 나는 이미 20여 년을 가르쳤고 전적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외에 일부 기타 방면의 서적을 보았다. 수십 년간 받아들인 것은 문화혁명 이후 일련의 정치사상교육이었다.

그러나 내가 마음을 조용히 하고 진지하게 <전법륜>을 두 번 보았을 때 다년간 막스 레닌주의 모택동 사상에 주입받은 공산당문화, 편집적이고 굳어진 사상 방식이 내 머리 속에서 붕괴되기 시작했다. 유물주의 인생관, 세계관, 무신론 등이 철저히 뒤집혀졌고 나의 사상은 완전히 바뀐 것 같았다.

나는 자신을 영혼을 만드는 엔지니어라고 여겼는데 이제 보니 오랫동안 우물안 개구리였다. 손바닥만한 하늘만 보았는데 사부님의 큰 손이 나를 땅위로 이끌어 넓은 천지를 보게 하신 것이다. 운 좋게 나는 불경을 찾을 필요도 없었고 위대한 불법이 이미 내 앞에 나타나 있었다. 나는 격동했다. 비록 사부님을 뵙지는 못했지만 자비로운 사부님은 이미 내 손을 이끌어 나를 수련의 길로 인도하셨다.

당시 나는 매우 바빠서 법공부만 하고 두 달이 지난 후에야 연공을 시작했다. 법공부한지 겨우 며칠만에 나의 신체는 큰 변화가 있었다. 법공부 소조에서 전신에 윙윙 열이 나고 어떤 때는 더워서 앉아 있지 못하고 공부를 다 마치기 전에 나가야 했다. <파룬궁> 책에서 말한 ‘공이 나온’ 상태였다. 나중에 연공을 거의 두 달 배웠는데 이마에는 <전법륜>에서 말한 것처럼 “천목이 부어 매우 아프고 태양혈도 붓고 눈도 안으로 꺼지는데, 계속 그것이 밀고 나와서는” 이런 상태가 나타났다. 때로는 너무 부어서 뼈를 도려내는 듯 괴로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법의 위력과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를 깊이 체험했다. 아무리 아파도 묵묵히 이를 악물고 견뎠으며 그로부터 불법수련의 현묘한 과정을 누렸다.

이마가 붓고 아픈 후 한 갈래 밝고 아름다운 장면-눈앞에서 파룬이 도는 장면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머릿속에서 돌았는데 나중에는 바깥과 머리 주변에 작은 파룬이 끊임없이 돌았다. 흰색, 회색, 금색이 다 있었다. 한번은 내가 집에 침대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부분적으로 겹쳐진 세 개의 큰 파룬이 집안에서 돌았다, 직경이 거의 2미터나 되어 온 방을 가득 채웠다. 나는 격동하여 몸을 일으켜 앉았는데 몇초 만에 큰 파룬은 사라졌다. 이 신기한 장면에 나는 격동해마지 않았다. 일찍이 정견망에 이런 노래 가사가 있는 것을 보았다 “

“내가 처음 책에서 당신을 보았을 때 비로소 이 세계에서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지 알았습니다. 당신이 처음으로 내 눈 앞에서 돌기 시작했을 때 나는 비로소 우주에서 가장 신기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 눈 앞에서 도는 파룬은 대략 1, 2 시간 있다가 보이지 않았고 파룬의 형상은 내 마음 속에 깊이 박혀 있다. 나중에 내가 감옥에 감금된 동안에도 매번 그 신성한 파룬을 생각하면 전신에 수련에 대한 믿음과 힘이 배가 되었다.

반년간 수련한 후 식구들은 대법의 위력을 견증했다. 남편은 몇 년간 연마하던 다른 공을 포기하고 아들과 함께 동시에 대법 수련으로 들어왔다. 우리 3가족은 동수들이 소분대라고 부르는데 매일 단체 법공부와 연공에 참가했고 아이 몸도 갈수록 좋아졌다.

1998년 7월 26일 사부님께서 고향에 돌아오셔서 장춘 보도원을 위해 설법을 해주셨다. 당시 나는 법회에 참가하지 않아 알지 못했다. 대략 20여 일이 지나 우리 보도원이 사부님께서 돌아와 설법하셨다고 말해주었다. 그날 밤 우리 부부 둘은 매우 우울했으며 약속이나 한듯이 생각했다. ‘사부님 고향의 제자로서 우리는 매우 굽은 길을 걸었다. 이 좋은 공법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사부님께서 지척에 계셨는데 우리는 사부님을 만나볼 인연이 없었을까?’ 당시 누구도 왜 이 일 때문에 우리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알지 못했다.

우리의 심신이 기쁘고 수련의 아름다움을 잘 누리고 있을 때 1999년 7. 20 사악의 탄압이 시작되었다. 파룬따파의 발상지 장춘은 순식간에 검은 구름과 피비린내의 도시가 되어 버렸다. 우리는 청원, 편지, 상방 등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시작했다. 우리는 두 차례 북경에 가서 상방했으며 나중 한차례는 불법으로 잡혀 2년 노동교양을 받았다. 노교소 인원이 만원이었기 때문에 신체검사를 통해 신체가 좋지 않은 몇 사람을 석방했다. 나는 배신자가 6, 7일간 연속 잠을 안 재우는 포위 공격 중에도 몸에 조금도 불편함이 없었지만 의외로 ‘고혈압’이 나타나 석방되었다. 2년의 노교였지만 노교소에 2주간 머물렀다.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거대한 마난을 녹여 주신 것에 충심으로 감사드린다.

노교소에서 돌아 온 후 나는 또 대규모로 소업하는 과정이 시작됐다. 2001년 초 어느 날 밤 머리를 제외하고 전신이 변한 것 같았다. 두 팔에 혹이 생기고 척추에도 큰 혹이 생겼다. 둔부와 두 다리에 큰 물집이 생기고 두팔, 손바닥의 피부가 부풀어 꽃처럼 일어났다. 열 개 손가락의 살이 매일 밤에는 물처럼 흐물흐물해졌으며 매일 아침 다시 살로 변했다. 몇 달간 세수와 세발을 할 수 없었다. 거의 일년간 손바닥에 작은 물집이 연이어 줄줄이 생겼다. 더욱 신기한 것은 아침에 일어나면 배꼽 등 쏙 들어간 곳에 사탕 같이 끈적한 검은 물질이 나타났다. 바로 이 공간에 있어서 식구들이 직접 보았다. 나 자신도 암암리에 사부님이 나의 죄를 위해 소업해주는 신기한 함을 느낄 수 있었다.

대법의 보육하에 나는 근무 중에도 가급적 眞善忍(진선인)으로 자기를 단속했다. 90년대 말 나는 반주임의 일을 겸했다. 우리 학급은 대부분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형편이 곤란한 학생들이었다. 학생이 병이 날 때마다 나는 집에서 환자에게 좋은 반찬을 만들어 주었다. 또 우리 아이도 먹지 못한 과일을 아픈 학생에게 갖다 주었다. 어떤 학생은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 “선생님, 댁의 과일은 사오신 거예요?” 매 공휴일이나 경축일이면 학생들은 학급단위로 자비로 회식이나 만두 등을 싸온다. 이때마다 나는 학생들에게 상징적으로 몇 위안씩만 내게 하고 나머지는 내가 다 부담했다. 매번 전반 비용의 반 이상을 내가 부담했다.

평소 학생이 돈이 부족하면 빌리러 오는데 나는 거의 빌려준다. 졸업할 때 갚지 않는 아이가 있어도 나는 달라고 하지 않았다. 더욱이 학생이 졸업 전에 돈을 모아 기념품을 주임선생에게 주는데 기념품 가치는 해마다 올라간다. 고급 자전거, 명품시계 등 매 학생들은 많은 돈을 내놓아야 한다. 나는 수련 전에도 학생들의 선물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노트, 앨범 따위의 작은 것은 받았다. 수련 이후 나는 일찍이 학생 간부에게 통지했다. 나는 어떤 기념품도 받지 않는다. 기념을 하려면 그저 너희들의 졸업앨범에 말로만 남기라고 했다. 몇 년후 우리는 글자를 보면 얼굴을 본 것 같고 말을 남김으로서 서로 격려가 되는데 이것이 진정한 기념이라고 했다.

이렇게 하여 전반 학생들은 졸업 앨범을 들고 줄을 서서 말을 남기려 했다. 반마다 3,4위안짜리의 노트를 사서 사람마다 노트에 선생님께 대한 축복과 감격의 말을 썼고 자기 이름을 사인해서 내게 주었다. 나중에 어떤 반 학생이 물었다. “너희 담임은 왜 그래?” 우리 반 학생들은 “우리 선생님은 파룬궁을 연마하고 마음이 착해져서 줄곧 학생들을 생각하셔.”라고 대답했다. 유감인 것은 점점 탄압이 심해짐에 따라 강단에서 쫓겨나 더 이상 학생들과 만날 수 없었다.

20년의 수련의 길에서 나는 절실히 느꼈다. ‘속세의 이 망망한 사람들 중 사부님께서 나를 끌어내어 씻어 주시고 수련의 길로 이끌어주셨다. 온몸의 죄업을 없애주시고 겹겹의 마난을 풀어주셨으며 풍우 중에 한 정거장씩 보내주셨다. 호탕한 사부님 은혜에 나는 보답할 길이 없다. 오직 사부님을 바짝 따라 어떤 위험이든 돌파하고 정진하여 조사정법의 신성한 사명을 원만하게 완수하는 수밖에 없다.

파룬따파가 세상에 전해진 지 25년 파룬따파 제자는 모두 호탕한 사부님 은혜를 절실히 느낀다. 무수한 사실이 충분히 증명하다시피 파룬따파는 심령을 정화하는 그릇이며 담배, 술, 도박, 탐욕 등 일체 불량한 버릇과 더러운 사상을 제거할 수 있으며 어리석은 자를 지혜롭게 하고 위대한 각자로 변하게 할 수 있다.

파룬따파는 영단묘약이며 사람의 완고한 고질병을 없애 죽음의 문턱에서 삶을 맞이할 수 있게 하고 인간세상의 기적을 무수히 창조한다.

파룬따파는 인류 고금의 모든 학문을 초월한 최고의 과학이다. 가는 곳마다 감로수가 내리듯이 중생을 윤택하게 한다. 유유한 만세에 이같이 위대한 것은 오직 파룬따파 밖에 없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38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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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견망

연극 인생

작자/ 순진

【정견망】
서양 철학사에 사람에게는 3가지 궁극적 철학 명제가 있다고 한다. 바로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가는가? 왜 사는가? 이다. 지금 중국문화에는 이런 철학적 명제는 형이상학적인 우스갯소리로 여긴다. 아무도 진지하게 사고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필자의 생각은 이런 도피적인 태도는 자기 생명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중국 사람들이 이런 명제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사고하는가? 대부분 사람은 어떻게 분투하고 명리를 취하고 향락을 즐기는가 등이다. 이런 인생철학은 사람들이 ‘당장 살아야 한다’는 미명으로 여기는데 사실 생명의 진실을 도피하는 것이다.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인들도 이런 문제에 대해 사고하지 않았던 게 아니다. 옛 사람들은 생명이 끝난 후 어디로 돌아가는가 하는 데 아주 몰두하여 연구했다. 그래서 중국 고대에 연단(煉丹), 음양(陰陽), 신선수련과 같은 방법이 나타났다. 사실 모두 생명의 무한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연단과 신선수련은 말할 필요도 없이 불로장생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오히려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음양과 풍수는 훨씬 더 보편적이다. 고대인은 그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였다. 우선 자기가 사는 곳의 풍수를 따져 살아서는 높은 벼슬을 하고 귀하게 됨을 보장받으려 했다. 사후에도 풍수를 말했는데 생전의 공명과 이록이 사후에도 계속되기를 희망했다. 사료로 보면 고대인의 ‘부장(部將)’ 풍속을 알 수 있는데 그 부장품은 대부분 금은보화다. 더욱이 고대의 고관대작들은 묘지가 바로 보물을 넣은 장소였다. 또 바로 이 때문에 왕왕 이런 묘지들이 고고학자나 도굴꾼에 의해 도굴된다. 아마 묘지 주인은 생명이 너무 짧다고 여겨 이런 식으로 자기 생전의 명리를 가져가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종의 일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오히려 도굴을 유도하여 사후에도 안녕을 얻을 수 없었다.

이것은 하나의 이치를 알려준다. 사람이 일생동안 분투하고 추구하던 공명이록은 마치 뜬구름처럼 남지 못한다. 사람의 생명이 끝날 때 이런 것은 전혀 상관이 없다. 사람은 이런 취약한 생명이기에 올 때 빈손이며 갈 때 한줌의 재다. 아마 그때 사람은 이런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거나 생각해도 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예 생각지 않고 매일 그럭저럭 지냈을 것이다.

그러면 한사람의 인생의 궁극적 명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단 말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만일 사람이 수련에 들어서면 그는 곧 이 세 가지 명제에 대한 답을 알게 된다. 아울러 가장 귀한 것은 그는 세속을 초월한 일종 물질을 얻는데 바로 공이다.

“그런데 공(功)은 왜 이처럼 진귀한가? 왜냐하면 직접 당신의 元神(왠선) 몸에 갖고 있어, 태어날 때 갖고 올 수 있으며, 죽을 때 갖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德(더)가 직접 공으로 연화(演化)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당신이 얼마나 높게 수련했든 바로 당신의 이 德(더)가 연화된 것이 아닌가? 그것은 직접 공으로 연화될 수 있다. 사람의 층차 고저, 공력의 대소를 결정하는 공은 바로 이런 물질이 연화되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당신이 말해 보라. 그것이 진귀한가 진귀하지 않은가? 그것은 확실히 태어날 때 갖고 올 수 있으며, 죽을 때 갖고 갈 수 있다.” 《전법륜》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들은 더욱이 세속의 명리 중에 빠져있어서는 안 된다. 이런 것들은 설사 일생을 분투하더라도 마지막에는 허무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연극에서 어떤 배역을 연기하는 것과 같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쌓인 재산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오직 연극 중에서만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지위가 아무리 높을지라도 연극 속의 역할에 불과할 뿐이다. 연출자가 연극을 끝내버리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연극 배역과 같은 운명이라면 슬프지 않은가? 연극같은 인생을 위해 분투하다 자기가 연극을 벗어날 기회를 잃어버리면 이것이야말로 정말 헛된 일이 아닌가?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6893

정견망

한자는 살아있는 생명체


1. 한자는 하나의 생명체 : 한자에도 이합집산(離合集散)과 성주괴멸(成住壞滅)이 있다

고대에 도(道)라는 글자는 늘 덕(德)과 함께 사용되었다. 사람들은 늘 "도덕(道德)이 높다", "도덕이 낮다"라고 담론했으며 노자(老子)가 쓴 도가의 정화(精華) 오천자도 《도덕경(道德經)》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 도와 덕은 이미 제갈 길로 갈라졌다. 도(道)는 로(路)와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아져서 사람들은 곳곳에서 "도로(道路)가 길다"거나 "도로가 짧다"는 말을 듣는다. 한편 덕은 도에 수반하는 기회를 상실한 대신 공(功)과 함께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현대인들은 공덕(功德)을 쌓는 것은 좋아하지만 도덕을 말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성(成)․주(住)․괴(壞)․멸(滅)을 말해보자. 세계 삼대 고문자(古文字) 중 바빌로니아의 설형문자와 이집트의 상형문자(聖書의 글자체)는 일찍이 역사의 무대에서 널리 두각을 나타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벌써 박물관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유독 중국의 한자(漢字)만은 삼천여 년의 온갖 시련 속에서 우여곡절을 겪었음에도 지금에 와서 도리어 노익장을 과시하며 원기왕성하게 세계무대로 뻗어나가 광채를 발하고 있다.

2. 미묘(美妙)한 한자 : 고문자 중에서 한자만 살아남은 이유는 아름답고 오묘하며 탐색할 가치가 있기 때문

(1) 한자는 신이 전한 문자

"창힐(倉頡)이 문자를 만들자 하늘에서는 조(粟, 곡식의 일종)로 된 비가 내렸고 귀신들은 밤새 통곡했다."는 기록은 과학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단지 머나먼 전설로만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문화인류학적으로 본다면 전설의 배후에는 사실 종종 보다 많은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 창힐은 황제(黃帝)의 사관(史官)으로 4개의 눈을 가졌다고 전해지는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인물이다.

당시 그가 천상에서 이 문자를 가져왔을 때 상천(上天)에서는 기뻐하며 축복했으며 아울러 곡식을 비처럼 뿌려 축하했다. 그러나 요마귀괴(妖魔鬼怪)는 인류에게 문자가 있으면 지혜가 생기게 되어 더 이상 마음대로 우롱하고 조종할 수 없게 된 까닭에 이전처럼 살아가기가 어렵게 되어 연일 밤마다 머리를 감싸고 통곡을 했다.

사람들은 창힐의 이런 공헌에 감사하는 의미로 남북조(南北朝)시기이래로 "지성선사공자(至聖先師孔子)"와 더불어 최상의 공경을 드렸다. 역사상 한자는 또한 신성한 지위를 부여받았으며, 민간에서는 한자를 쓴 작은 종이조차도 함부로 버릴 수 없었다. 오늘날까지도 대만에서는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곳이 비교적 많은데, 한자를 쓴 종이를 공경하고 아낀다는 의미의 "경석자지(敬惜字紙)"를 표명하는 경자루(敬字樓)를 도처에서 볼 수 있다.

(2) 한자의 한 필(筆) 한 획(劃)에는 모두 그 내포가 있다

한자는 종종 곧바로 하나의 박물관이다. 서양의 모든 병음문자(역주: 발음기호를 사용하여 표기하는 표음문자를 말한다.)는 영어, 러시아어, 라틴어 등을 막론하고 문자는 단지 소리를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소리가 없다면 곧 아무런 의미도 없게된다.

그렇지만 한자는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표의문자(表意文字)로서 한자의 한 필 한 획에는 극히 풍부한 정보가 담겨져 있다. 가령 글자를 만든 당시의 사회발전상황, 경제활동, 문화사조 등등 많고 많은 조상들의 비밀이 모두 한자의 필획 속에 감춰져있는데, 진실로 조상들의 생활면모를 보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자에 들어가는 것은 바로 중화문화의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으며 그 속에 푹 빠져 돌아가는 것을 잊을 정도로 된다. 아래에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어떤 사람들은 중국전통문화에서는 여성을 기시(歧視)한다고 여긴다. 그들의 근거라면 매우 많은 좋지 않은 많은 글자들에 모두 女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가령 간사할 간(奸), 요사할 요(妖), 간사할 간(姦) 등등이다. 그러나 이는 일면만을 본 단편적인 견해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성(姓), 혼(婚), 인(姻)이라는 세 글자에도 역시 女가 들어있다. 그렇다면 이 세 글자에는 어떤 공통의 특징이 있는가? 우리가 사람들에게 통성명을 할 때 사용하는 "귀성(貴姓)"이란 말에서 성(姓)은 사람의 내력과 출신을 대표하는 것이다. 지금은 보통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까닭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왜 女를 부수로 하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또 혼인(婚姻)이란 인륜지대사인데 두 글자 중 어디에도 남자를 의미하는 것이 왜 없는지 궁금할 것이다.

역사상 전설에 의하면 상고(上古)시대에는 단지 어머니만을 알았고 아버지는 몰랐다고 한다. 이는 아주 이른 초기의 사회인데 중국의 한자는 바로 이 시기의 문화를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안(安), 호(好), 타(妥) 와 앞에서 제기한 간(奸), 요(妖), 간(姦) 등을 비교해보면 좋고 나쁨이 뒤섞여 마치 모순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한자 역시 변화가 있었다. 상(商)나라시기 갑골문에서는 단지 안(安), 호(好), 타(妥)만 있었지 간(奸), 요(妖), 간(姦) 등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 세 글자는 나중에 남성들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에 만들어진 글자이다.

가령 사람을 나타내는 인(人)이라는 글자는 해서(楷書)의 人이나 삼천년 전 갑골문의 이나 단지 두 획에 불과하며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갑골문을 보면 비교적 진실한 사람과 유사한데 두 손을 가슴 앞에 늘어뜨리고 허리를 구부린 모습이다. 이것은 삼천년 전 중국인들의 人에 대한 기본관점을 표현하고 있으며 또 중국인의 인생철학이기도 하다.

사람은 가장 복잡한 것으로 심지어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조차 차라리 귀신을 그리는 것은 쉬워도 사람을 그리기는 어렵다고 한탄한다. 대만 속담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먹는 쌀은 똑같지만 사람은 모두 다르다[一樣米養百樣人]." 인간세상은 확실히 복잡하지만 그러나 인생의 진정한 요체도 그렇게 복잡할 것인가? 사람이란 글자는 이렇게 간단하고 간단한 2획에 불과한데 인생 역시 그렇지 않을까? 아무리 복잡한 문제라도 허리를 굽히고 예의를 갖춘다면 간단하게 변하지 않겠는가? 이 간단한 2획으로부터 당신은 또 보다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어의 human이란 단어에서 당신은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심지어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해본다 해도 역시 무언가를 찾아내기는 아주 어렵다!

또 집 가(家)라는 글자를 예로 들어보자. "집집마다 본래 어려운 점이 있지만 집안의 나쁜 일을 밖에 알리는 것은 듣기 싫다.[家家有本難唸經,家醜外揚不好聽]"는 말이 있는 것처럼 집에 대해 공통의 인식을 얻기는 쉽지 않다!

갑골문 로부터 보자면 겉에 있는 는 집을 상징하고 안에 있는 는 돼지를 상징한다. 집에는 물론 방이 있어야만 따스함을 얻을 수 있는데 돼지 한 마리를 놓고 도대체 무엇을 한단 말인가? 집이란 본래 돼지우리란 말인가?

사실 그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가(家)란 농업사회에서 단지 먹고 자는 곳만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경제생산단위로서 생산력이 있어야 가도(家道)가 흥성할 수 있었다. 소나 말은 일년에 기껏해야 한 마리밖에는 생산할 수 없지만 돼지는 한번에 12마리까지 낳을 수 있고 일년에 2번이상도 번식 할 수 있다. 그러므로 家에 돼지가 있는 것은 단지 생산력이 왕성하다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대대손손 자손이 끊이지 않고 번성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3) 한자는 공간과 시간의 간격을 초월할 수 있다

한자는 안정성이 가장 뛰어난 언어로, 병음문자에서 럼 소리가 변함에 따라 그 문자도 끊임없이 변천되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현재 영국의 대학생들은 이미 3백 년 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보기가 아주 어려워졌지만 중국의 초등학생들은 천여 년 전의 당시(唐詩)를 지금도 낭송할 수 있다. 1911년 양계초(梁啟超)란 사상가가 일제치하의 대만에 와서 항일문학가 임헌당(林獻堂)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임헌당이 문화로 항일한다는 사상에서 적지 않은 계발을 받았다. 그들은 한 사람은 광동어(역주 : 중국 남부 광동지방의 방언으로 홍콩영화에 나오는 억양이 심한 중국어)를 말하고 한 사람은 대만어를 말했지만 둘 사이에는 아무런 간격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자로 필담(筆談)을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자의 이런 특색은 한자로 하여금 말은 통하지 않아도 글을 통해 간격을 없앨 수 있는 평화의 메신저가 되게 하였다.

(역주: 대만뿐만 아니라 한국이나 일본, 월남 등의 한자 문화권 지식인들은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필담을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마음껏 표출할 수 있었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아도 한자라는 공통의 표현수단을 통해 동양의 지식인들은 아무런 간격없이 상호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4) 한자는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한자는 다양한 시대에 다양한 서체(書體) 형식을 가지고 있다. 어떤 것은 태산처럼 장중하고, 어떤 것은 용이 날고 봉황이 춤추듯 한데, 더욱이 역대로 무수한 서예가들은 한자 서법을 만드는데 노력하여 이미 순수한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 일본에서는 서예를 존칭하여 서도(書道)라고 부른다.

(5) 한자는 무한한 보물을 간직한 보고

한자는 중화문화의 교량으로 박대정심(博大精深)한 오천년 문화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한자로 진입해야만 중화문화의 심오한 전당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곳에서 당신은 지성선사(至聖先師) 공자의 정성스런 가르침을 들을 수 있으며, 당신이 만약 신기한 것을 좋아한다면 "백마는 말이 아니다"라는 춘추시대의 백가쟁명을 들어볼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문학을 좋아한다면 굴원(屈原)의 고독도 누려볼 수 있고, 몇 만에 달하는 당시(唐詩)와 송사(宋詞) 중에서 당신의 마음에 쏙 드는 것을 찾아낼 수도 있다. 또 과학과 철학의 요소를 모두 지닌 중의학이나, 신비하고 또 사람을 매혹시키는 천문지식 등등 오늘날 보다 더 풍부한 것들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얻으려면 한자로 진입해야만 한다.

(6) 한자의 변천은 시대사조의 반영

한자는 상나라 시기 갑골문부터 시작하여 오늘날의 해서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으며 자형(字型)이나 필획(筆劃)에도 변화가 있었다. 어떤 것은 간단해졌고 어떤 것은 복잡해졌으며 어떤 것은 날씬해졌는데 곳곳에서 각 시대의 각기 다른 사조를 반영하고 있다.

가령 갑골문에서 주(周)나라의 금문(金文)에 이르면서 일부 글자체는 끊임없이 간단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복잡하고 대칭미를 갖도록 변모되었다. 가령 집(集)과 치(齒)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集 : 갑골문 금문

齒 : 갑골문 금문

이런 변화는 바로 문채(文采)와 예의를 중시하는 주나라 사람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진(秦)나라 시대에는 수레바퀴와 글자체를 통일하였다. 각국에서 독자적으로 사용하던 문자를 금지시키고 모두 진나라의 소전(小篆)체로 표준을 삼게 했다. 이는 바로 진나라의 중앙집권화와 통일사상을 반영한 것으로 효율을 중시하는 정신의 산물이다.

한편, 예서(隸書)의 출현은 진나라의 준엄한 형벌과 법률에서 나왔다. 법이 많아지면 범법자도 많아지기 마련이며 관리들이 관리하는 예졸(隸卒, 역주: 심부름꾼)이나 문서왕래도 빈번해지게 된다. 그러므로 보다 빠른 문서작성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예서이다.

한당(漢唐)시대에 이르면 중화문화는 충분히 발전하여 문치(文治)와 무공(武功)이 극성기를 이루었다. 사방에서 멀리로부터 조공을 바쳤으며 문학예술 및 과학기술 역시 최고봉에 올랐다. 이때 등장한 방정(方正)하고 온중(穩重)한 해서(楷書)는 바로 대국(大國)의 풍모를 체현한 것이다. 해서는 당대이후에 고정되어 지금까지 일천년을 이어왔다.

비록 속자(俗字)나 간자(簡字) 변체자(變體字) 등이 끊임없이 만들어졌고 비록 간화(簡化)가 조류이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해서는 실제로 간화를 극소화했다. 왜냐하면 3천여 년에 이르는 한자의 변화과정에서 고험은 이미 성숙되었고 진선진미(盡善盡美)에 근접했기 때문이다. "해(楷)"는 바로 단정하고 본보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이 때문에 해서를 또한 정서(正書)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해서를 더 간단히 한다면 곧 한자의 정화를 손상시키게 될 것이다.

3. 변이된 간체자

灭, 圣, 义, 卫와 같은 간체자(簡體字) 한자들을 볼 때면 늘 어딘가 불편하고 불안한 느낌을 준다. 어떤 사람들은 간체자는 중공이 처음으로 창조한 것으로 여긴다. 사실 갑골문 시대에도 간체자는 존재했으며 태평천국시대에도 일찍이 백여 개의 간체자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민국(民國) 24년에는 교육부에서 423개의 간체자를 공고한 적이 있다. 그러나 반년도 못가서 다시 폐지하였다. 민국 42년에는 고시원 부원장이 다시 대만에서 간체자를 추진한 적이 있으나 찬반논쟁 끝에 결국 시행하지 못했다. 오늘에 이르러서도 매 개인마다 혹은 많게 혹은 적게 일부 간체자를 이용하고 있다.

간체자는 글을 쓰는 속도가 빠르기는 하지만 한자(漢字)의 정신을 결핍하고 있기에 정체(正體)한자를 대체할 순 없다. 그러나 지금 중국대륙에서 통용되는 간체자는 기존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몇 가지 방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1) 중국대륙에서 간체자 통용의 목적은 한자의 소멸에 있다

몇 천 년 동안 한자의 변화과정에서 그것을 복잡하게 하든 간단하게 하든 막론하고, 그 목적은 모두 한자의 내포를 충실히 하고 사람들이 사용하는데 편리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이를 통해 더 나아가 한자를 널리 발전시키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중공 간체자의 최종 목적은 철저하게 한자를 소멸하고 병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1951년 모택동은 "문자개혁은 세계문자의 공동방향인 병음화로 나아가야 한다.", "병음화를 실현하기 전에 먼저 한자를 간단하게 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그러므로 중공의 간체자는 단지 한자를 소멸하기 이전 과도시기에 사용하는 대용품에 불과한 것이다.

(2) 한자를 소멸하려는 목적은 중화문화의 전승을 단절시키려는 것이다

문화(文化)는 한 민족의 영혼으로 중화문화의 박대정심함은 한자에 담겨져 수천년 동안 하나의 맥으로 서로 전해왔다. 만약 한자를 잃는다면 중화문화 역시 의탁할 곳을 잃어버리게 된다. 전통문화와 사상이 없는 백성들은 바로 통치자가 조종하고 우롱하기 쉬운 대상이 된다. 예전에 일본이 대만을 통치할 때 대만사람들에게는 한자학습을 금지시켰는데 심지어 성명마저도 모두 일본식으로 바꾸게 했다. 통치자의 목적이란 바로 한자의 소멸을 통해 대만사람들과 중화문화의 연계를 끊어버려 그들을 정신적으로 텅 비게 만든 후 최후에 대만사람들을 노예화 하려는 것이었다.

중공은 계획적으로 중국의 전통문화 중 아름다운 일체를 모두 "뒤떨어지고" "수구적"이며 "미신"이라고 왜곡하였다. 지성선사(至聖先師) 공자마저도 "허위적이고 교활한 정치 사기꾼"으로 추악하게 만들었다. 만약 백성들이 모두 한자를 사용한다면 직접 중화전통문화의 풍부한 내포를 보고 곧 중공의 거짓말을 꿰뚫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자를 소멸하는 것은 중화문화에 대한 백성들의 이해와 인정을 차단할 수 있다. 전통문화를 잃어버린 백성은 곧 통치 권력에 의해 조종당하고 노예화하기 쉽다.

(3) 현재 통용되는 간체자는 가장 괴상한 문자이다

세계적으로 문자에는 양대(兩大) 체계가 있다. 하나는 표의문자(表意文字)로 문자의 필획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인데, 한자는 바로 현존하는 세계 유일의 표의문자이다. 또 하나는 표음문자(表音文字)로서 여기에서 문자는 단지 소리를 대표하는 것에 불과하며 소리를 표현하는 의미만 있지 문자 자체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불어, 일어 등은 모든 병음문자는 다 마찬가지이다.

한자의 필획은 함의가 있는 것으로 의미와 발음을 모두 표시한다. 그러나 간체자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소리를 대표하지도 못하므로 그것은 한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병음문자도 아닌데 단지 아무런 내포도 없는 도형에 불과할 뿐이다.

살 "매(買)"의 간체자인 "买"를 살펴보기로 하자. 买의 윗부분은 갈고리가 있는 칼이고 아랫부분은 사람의 머리이다. 즉, 칼을 머리위에 놓았으니 이런 매매(賣買)는 지극히 무서운 것이다.

이런 글자에는 진정한 내포가 전혀 없으며 또한 소리와 연계되어 있지도 않다. 진정한 한자인 매(買)는 위에 있는 글자가 그물을 나타내며 아래에 있는 글자는 고대에 화폐로 사용되었던 조개 패(貝)이다. 이렇게 글자만 봐도 의미가 명백해지는데 바로 그물로 고기를 담듯이 돈을 가지고 물건을 산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買 의 진정한 의미이다!

여기서 또 하나 지킬 "위(衛)"를 살펴보자. 이 글자의 간체자는 "卫"인데 여기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소리와 연결되지도 않는다. 정체(正體) "衛"는 원래 중간의 口를 중심으로 사방에서 경계를 서며 지키고 수호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금문 를 보면 더 명확한데 성(口) 주위를 돌고 있는 발자국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4) 주객이 전도되어 시비를 가리지 못한다

간체자는 역사상 과거에도 줄곧 존재해왔었다. 비록 그것이 쓰기에는 편리하지만 육서(六書 역주: 전통적인 한자 조성방법으로 형성, 지사, 회의, 가차, 전주, 상형 등 6가지 방법으로 한자를 만드는 것을 의미)의 조자(造字)방법에는 부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전까지 간체자는 줄곧 작은 범위에서 사적인 문서에 사용되어왔을 뿐이다. 이 때문에 일부 간체자는 비록 이미 천년이상 사용되어 왔음에도 한자라는 대아(大雅)의 전당에는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지금 중공에서 대규모로 간체자를 정식문자로 만들고자 한다면 이는 곧 주객이 전도되어 시비를 가리지 못하는 것이 된다.

4. 현재 통용되는 중공 간체자에는 무엇을 반영되었나?

문자는 살아있는 생명체이므로 문자의 변화는 시대사조를 반영한다. 금문(金門)의 대칭미는 주(周)나라 시대 사람들이 예의와 문채를 중시함을 반영한다. 해서(楷書)의 방정(方正)함은 한당성세(漢唐盛世 역주: 중국 역사상 가장 흥성했던 한나라와 당나라 시기를 말한다. 참고로 중국 역사상 3대 흥성기는 한대 "문경의 치", 당대 "정관의 치", 청대 "강건성세"를 꼽는다.)의 정정당당한 국풍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중공의 간체자는 도대체 무엇을 반영하고 있는가? 여기에 대답하기 전에 몇 가지 간체자를 살펴보기로 하자!

(1) 義 (갑골문자:)

중국인들은 의(義)라는 이 글자를 가장 중시하는데, 친구사이에 의리를 강조하고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는 도원에서 결의하여 의(義)의 전형이 되었다. 장사를 하고 물건을 매매할 때에는 신의(信義)를 강조하고 의리를 위해서라면 물불도 가리지 않는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면 강개하여 의를 따르고 의리상 사절할 수 없다. 중국인은 왜 줄곧 이렇게 이 의(義)를 중시해왔을까? 왜냐하면 고인(古人)들이 글자를 만들 때 이미 이런 내포들을 모두 이 글자 속에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갑골문에서 보면 이다. 이 글자의 위에 있는 羊은 갑골문에서 보면 이다. 이 글자의 위에 있는 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간체자 "义"를 살펴보자. 우선 두 개의 사선은 큰 갈퀴를 이루고 있으며 가운데 있는 한 점마저도 비스듬하게 찍혀있다. 이 3획 가운데 어디에서 정의(正義)와 관련된 내용을 찾을 수 있는가?

(2) 聖( 갑골문자"")

聖이란 글자는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아주 높은 지위가 있는데 "지성(至聖)"으로 통하는 공자(孔子)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또 당대(唐代)의 유명한 시인 두보(杜甫)는 시성(詩聖)으로 불린다. 갑골문으로 보면 "은 귀가 아주 큰 사람을 의미한다. 귀가 크다는 것은 듣는 것이 명백하다는 의미이다. 물론 귀가 있으면 누구나 다 들을 수 있지만 어떤 일이건 아주 명백하게 듣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은 귀가 아주 큰 사람을 의미한다. 귀가 크다는 것은 듣는 것이 명백하다는 의미이다. 물론 귀가 있으면 누구나 다 들을 수 있지만 어떤 일이건 아주

이란 반드시 명백하게 듣고 똑똑하게 말하는 것을 포함하는데 바로 아주 높은 경지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聖의 간체자인 "圣"을 보자. 한자의 필획에는 그 함의가 있지만 이 글자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한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발음을 표시하는 병음도 아닌데 설마 聖人을 괴상한 사람이라는 괴인(怪人)으로 이해하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4) 엽(葉) (갑골문자"")

또 ""이라는 글자를 살펴 보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다.", "추풍낙엽"에 등장하는 이 글자는 문학작품 중에서나 아니면 갑골문에 있어서도 모두 아름다운 시적인 정취가 담겨 있다.

갑골문 은 위에 초(草)가 없는 모양으로 과일나무를 의미한다. 나무에는 3갈래의 아름다운 잎이 달려있다.(여기서 3은 많다는 의미).

그러나 간체자 "叶"를 보면 열개의 입이라는 의미로 변질된다. 한자에서 하나의 口는 말하는 입을 말하고 세 개의 口는 품(品)이 되어 인구가 많다는 의미로 쓰인다. 만약 口가 네 개 모이면 시끄러울 효(囂)가 된다. 열개의 口가 모이면 古가 되는데 이는 고대를 의미하며 10명의 입을 거쳐 전달되었다는 뜻으로 이미 10대를 전해 와서 아주 오래된 일임을 뜻한다. 한자에는 매 하나의 글자마다 이렇게 분명한 뜻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간체자 叶은 十口가 나뭇잎이 된다는 것인데 여기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가?

5. 간체자의 후유증

사회에서 만약 많은 사람들이 위조지폐를 사용한다면 전체 경제에 손해를 끼칠 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믿음도 파괴하게 될 것이다. 한 국가에 만약 여러 사람이 모두 거짓문자를 사용한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대륙의 고문자 전문가 탕란(唐蘭) 선생은 문화대혁명 후 홍콩중문대학에 와서 "전에는 할 말이 있어도 감히 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해야겠다. 한자는 당연히 간체화시키지 말아야한다."고 했다.

하지 말아야할 일을 하게 되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간체자 사용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그로 인한 후유증은 점점 더 분명해질 것이다. 그 중 몇 가지 문제만 말해보기로 하자.

(1) 바꾸고 또 바꾸고 어지럽히고 또 어지럽힘

안정성은 한자의 큰 특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직접 공자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고 이태백과 두보의 당시를 읊조릴 수 있으며 안진경의 기세 높은 서예를 감상할 수도 있다. 해서(楷書)는 당나라이후 정형화되어 오늘날까지 이미 천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간단하게 변한 글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해서는 이미 가장 정교하고 간단하게 된 글자이기 때문이다. 측천무후는 그 총명한 두뇌로 15년에 걸쳐 겨우 18개의 새로운 글자만을 만들었음에도 지금은 그녀의 이름만 남았을 뿐 그녀가 만든 글자는 남겨지지 않았다. 이로써 보건대 글자를 만들거나 바꾸는 것이 얼마나 엄중하며 쉽지 않은가 알 수 있다.

그러나 중공은 1956년 단번에 2235개의 간체자를 만들었는데 기존 육서의 조자(造字)법칙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이론도 없었고 한자의 신성(神聖)한 내포도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병음문자처럼 간편하지도 않다. 심지어 간체자 사이에도 모순이 발생하는데 다음에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 분(賁)이란 글자는 文으로 간단히 할 수 있으므로 墳을 坟으로 간단히 쓸 수 있지만 "분노할 분(憤)"은 "힘쓸 민(忞)"으로 쓸 수 없으며 "뿜을 분(噴)"도 "呅"로는 쓰지 않는다.

○ "붓 필(筆)"의 간체자는 "笔"이므로 "율(聿)"의 간체는 "毛"가 된다. 그러나 "律"을 "彳毛"로 쓰거나 "肆"를 "镸毛"로 쓰지는 않는다.

○ "닭 계(鷄)"의 간체자가 "鸡"라면 "奚"를 "又"로 쓸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러나 "溪"를 "汉"로 쓰거나 "谿"를 "又谷"로 쓰지는 않는다. 등등

이상 몇 가지 예에서 이 글자를 이렇게 바꿨다면 저 글자는 왜 이렇게 바꿀 수 없는가? 간체자 조자의 근본원칙은 도대체 무엇인가? 정말이지 모든 백성들이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최후에 사람들이 문득 크게 깨달은 것은 바로 "하고 싶은 대로 자기 멋대로"라는 것이다. 백성들은 이 조자(造字)원리를 알고 난 후 갑자기 저것도 바꿀 수 있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에 사농공상(士農工商) 전 국민이 조자운동을 벌여 현대판 창힐이 도처에 널려났고 이렇게 여러 사람이 모두 한자개정에 참여하였다.

가령 "부러워할 선(羨)"은 본래 먹음직한 양고기를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아 부러워 군침을 흘린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침을 흘리기 때문에 삼수(三水)의 세 점이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간체자에서는 임의로 세 점을 2점인 "羡"이나 한 점인 "로 바꿨다. 글자가 이렇게 혼란스러워지자 어떤 사람들은 아예 정체(正體)한자를 사용하여 자신의 문화수준이 높음을 과시하였다.

그러므로 현재 중국 거리의 간판이나 편지는 정체(正體)한자로 쓴 것도 있고 법으로 정한 간체자를 쓴 경우도 있으며 사회에서 통용되는 간체자를 쓰거나 사사로이 만든 간체자를 쓰는 경우도 다 있어서 그야말로 백가쟁명(百家爭鳴)이다. 민간에서 바꾸고 정부에서 바꿨는데, 1956년~1986년까지 삼십년 동안 중국 정부에서는 이미 5차례에 걸쳐 큰 개정을 했고 작은 개정은 부지기수이다.

(2) 텅비고 텅빈 거짓말

위조지폐는 경제에 해악을 끼칠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사이의 신뢰마저도 파괴한다. 한자가 박대정심한 내포를 잃고 간화되어 일종 텅 빈 부호로 변해버리자 이 텅 빈 부호는 통치자의 기호와 정치적인 필요에 따라서 임의로 서로 다른 내용을 뒤집어 씌웠다. 그러므로 간체자는 이미 거짓의 텅 빈 문자로 되었으며 통치자의 세뇌도구로 전락했다.

가령 나아갈 진(進)을 보자. 원래 금문 에서는 의미가 아주 명백하다. 오른쪽에 한 마리 새가 날아오르고 있다.

중공은 늘 대만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도리어 수백 기의 미사일로 호시탐탐 대만을 노리고 있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이것은 이치에 어긋난 이지러진 사랑이지만 그러나 중공에 대해 말한다면 순리이자 법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랑 애(愛)"란 글자에서 "心"을 빼버렸기 때문이다. (역주: 간체자 "爱"는 번체자 "愛"에서 가운데 "心"을 뺀 모양이다.)

중공의 조자는 이렇게 거짓으로 날조된 것으로 내포마저도 거짓이다. 위에서 행하자 아래에서 따른 결과 중국 대륙의 전 국민들이 거짓을 만들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일찍이 국가부주석을 지낸던 임표(林彪)는 감개무량하게 다음과 같은 속내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큰일을 이룰 수 없다." 이렇게 중공은 이미 세계 최대의 거짓 국가로 변했다.

대기원시보 2005년 5월 23일 보도에 의하면 중국국가통계국장 이덕수(李德水)가"전국적으로 허위보고, 속임수보고, 위조, 통계자료를 뜯어고친 것이 60%에 달한다. 2004년 전국통계조사 중에서 발견한 것만 해도 호북성 한천시(湖北省漢川市)의 일인당 소득이 수십 배나 부풀려진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이것이 과장이긴 하지만 중공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리 심한 편은 아니다.

중공의 가장 심한 거짓날조는 바로 1958년에 있었던 대약진 운동이었다.

대약진은 원래 모택동의 "10년 안에 영국을 추월하고 15년 안에 미국을 추월한다."는 한마디 말에서 출발했다. 누가 알았으랴! 이 광인(狂人)의 한 마디 말이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거짓말들을 만들었을줄.

"공업생산" 분야에서는 어떻게 "대약진"을 했는가? 강철생산량을 날로 늘리기 위해 부족한 것은 창살이고 밥솥이고 가리지 않고 뜯어서 목표량을 채워야했다.

"농업생산"은 어떻게 "대약진"을 했는가? 거짓을 조작해서 허위로 보고해 달성하였다. 만약 이웃 현에서 식량을 한 배 증산했는데 당신이 달성하지 못하면 사사로이 식량을 착복한 것으로 간주되어 결국 허위보고 경쟁이 벌어졌다. 중앙정부에서는 아예 허위보고 된 수량대로 곡식을 징발하여 결국 농민들은 내년에 씨 뿌릴 종자마저 빼앗겨야했다. 다음해와 그 다음해에 전국적으로 풍년을 축하하며 한 무당 만근을 생산해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면서 모택동 주석의 위대한 역량을 찬양하는 소리가 높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굶어죽은 농민들은 산과 계곡을 가득 메웠다. 자고이래 천부의 곡창지대라고 여겨졌던 사천성의 성도 평원마저도 화를 면할 수 없었다.

나중에 3년간 대약진 기간에 대륙에서 굶어죽은 백성의 숫자는 약 3500만 명이상으로 조사되었다. 중국 역사상 물난리, 가뭄, 천재(天災) 중 큰 것을 합하면 약 203차례가 있었지만 그 총 사망자 수는 2991만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단지 모택동의 한 마디 거짓말에 의해 필경 수천만 명의 귀한 목숨을 잃어야했으니 진실로 인간세상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2005년 3월 미국무역대표부에서 제출한 연례무역보고서에서는 특별히 미국의 대외무역 중 가장 큰 두통거리인 중국대륙의 해적판과 짝퉁의 성행에 대해 강조하였다. "이는 중국 정부는 전혀 해적판에 대한 효과적인 단속을 통해 지적재산권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낸다."

대만에서 중국 대륙으로 친척방문을 개방하자마자 대륙의 유명한 술들이 대만 각 거리마다 넘쳐났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대만사람들이 술을 마시지 않아서 라기 보다는 원래 이런 명주(名酒)들의 90%이상이 모두 짝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짓문자를 사용하여 정통의 우수한 문화의 전승을 차단한 후유증이 이미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6. 결론 : 위기이자 전기(轉機)

창힐이 한자를 만든 이래 중국에서는 비록 끊임없는 왕조의 교체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외래문화는 나중에 모두 중화문화에 동화되었다. 이런 역사과정은 내포를 풍부하게 했으며 또한 무량한 내포과 조화를 완정하게 표현하였다.

그러나 중공의 집권에 이르러 공산당의 "무신론"과 "투쟁문화", "인간성을 희생하여 당성을 배양한다"는 교조는 중화문화의 "경천애인(敬天愛人)", "천인합일(天人合一)", 윤리를 중시하는 사상과 완전히 배치되었다.

중공은 인민들의 사상을 통일하기위하여 반드시 전통문화를 제거해야 했으며 한자를 소멸하는 것은 전통문화를 소멸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국가역량을 총 동원하여 간체자를 추진하고 더 나아가 병음화하여 철저하게 한자를 소멸시키려고 했다. 한자는 전에 없었던 미증유의 위기에 직면하였다.

비록 현재 간체자를 사용하는 사람의 수가 다수이긴 하지만 그들이 모두 좋아서 사용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정체(正體)한자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륙학계에서는 이미 점차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바로 오직 정체(正體)한자만이 학술연구의 요구에 부합된다는 것이다.

2004년 북경에서 열린 제3차 한문역사자료연구회에서 문학과 역사 전문가 허일민(許逸民)은 정중하게 "한문역사자료의 기본적인 학술요구는 바로 번체자이다."라고 제출하였다. 진정한 학술은 순수하고 바른 한자로 실려질 것을 요구하며 정체한자를 다시 널리 알리는 것은 필연적인 추세이다.

정체한자는 역사상 각종 고험을 겪으면서 그 활발한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현재 그 생명력은 어디로 갔는가? 2006년 미국에서는 장차 2400개의 고등학교에서 대학 중문학 예비수료과정을 개설할 예정인데 번체자와 간체자를 병행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하나의 전기이다. 전 세계에서 한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모두 정체한자의 아름다움과 내포 및 그것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도록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5/6/28/328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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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견망

漢字의 수수께끼: 덕(德)과 업(業)

작자:우한런(武漢仁)

역대로 전해진 《노자(老子)》(즉, 《도덕경》)는 《도경(道經)》이 앞에 있고 《덕경(德經)》이 뒤에 있다. 그러나 1973년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에서 출토된 백서 《노자》 갑본과 을본에는 이와 반대로 모두 《덕경》이 《도경》앞에 위치한다. 다시 말해 도덕경(道德經)이 아니라 《덕도경(德道經)》이라고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덕(德)이 도(道)보다 앞에 나오는가? 역대로 《노자》에 주석을 단 학자들은 노자의 진정한 전수를 얻지 못했고 심지어 수련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덕과 도의 관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때문에 《덕경》과 《도경》의 위치가 뒤바뀐 것이다. 노자는 《덕경》을 앞에 놓고 《도경》을 뒤에 놓았으니 이는 "덕"이 "도"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덕"이 "도"의 기초가 되며 수련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공자는 《논어(論語)》에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강조하고 "중용(中庸)의 도"를 강조했으며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비는 아비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역시 "인(仁)"을 자기 학설의 중심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인"이란 무엇인가? 이는 바로 중국인(한자문화권을 포함)들이 마땅히 구비해야 할 "덕"이다.


덕(德)


설문해자에 나오는 덕에 대한 설명


석가모니부처는 49년간 법(法)을 전했고 지금까지 만권에 달하는 《대장경》이 남아 있는데 그는 대체 무엇을 말했는가? 그는 "계정혜(戒定慧)"를 말했다. 석가모니는 만년에 이르러 자신이 열반한 후에는 마땅히 계율을 스승으로 삼으라고 했다. 이는 모두 인도인(후대의 동남아시아 불교신도들을 포함)들이 마땅히 갖춰야 할 "덕"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선지자 소크라테스(기원전 470-399년)는 도덕이란 한 사람의 지위, 등급, 재산이나 명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도덕적인 승화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본성을 찾는 것에 달렸다고 했다. 이는 《설문해자》에서 말하는 "덕이란 올라감이다(德,升也)."와 통하며 현재 파룬궁 수련생들이 말하는 "안으로 수련하고(向內修)", "반본귀진(返本歸眞)"한다는 말과도 아주 유사하다!

예수는 《신약전서》에서 한마음 한뜻으로 완전히 하느님을 믿는 상태에 도달해야 하며 남을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유태인(나중에 서양 각국의 백인 기독교신자들을 포함)들이 마땅히 갖춰야 할 "덕"이었다.


한자 업(業)


고문(古文) 업(業)


설문해자에 나오는 업에 대한 설명



이처럼 동방과 서방, 도가(道家)와 불가(佛家)를 막론하고 표면적인 설명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사실 대각자, 성인과 선지자들의 견해는 대체로 유사하다. 노자, 공자, 석가모니, 소크라테스와 예수는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사람에게는 "덕"이 아주 중요하다고 했다. 특히 수련인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이는 인류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적인 도덕규범이며 속인이 반본귀진하여 좋은 사람이 되는 기초이자 수련인이 법을 얻고(혹은 도를 얻고) 수련하며 공이 자라올라 원만에 이르는 기초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덕이란 글자에는 대체 어떤 함의가 담겨 있을까?

덕[德, 恴, 悳, 惪(德의 우변, 十四一心)]에 대해 《설문해자》에서는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덕은 올라간다는 것이다. 彳은 의미부분이고 惪은 발음부분이다.(德,升也. 從彳, 惪聲)"

여기서 덕이 올라간다고 풀이한 것은 무슨 의미일까? 덕이란 사람의 도덕이기 때문에 사람이 심성(心性)이 위로 승화되면 덕이 고층차로 올라가는데 덕이란 바로 수련자가 수련에 정진하는 것이다. 때문에 덕이란 글자는 "척(彳)"을 부수로 한다. 척(彳)이란 사람의 하지에서 고관절과 정강이, 발이 서로 연결된 것을 그린 것으로 사람이 천천히 걷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덕이란 빨리 뛰거나 도약하는 것이 아니고 평지에서 산보하는 것도 아니며 제자리에서 답보하는 것도 아니며 한걸음 한걸음씩 천천히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속인에 대해 말하자면 덕은 사람의 능력이나 행복을 결정하며 윤회의 방향과 층차를 결정한다. 때문에 무언가를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덕이 있어야 하며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어야 하고 버림이 있어야 하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수련자에 대해 말하자면 덕은 수련의 난이도와 공(功)의 높이 및 도달할 수 있는 층차와 과위(果位)를 결정한다.

한편, 《설문해자》에서는 득(得)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득(得)이란 길을 가다가 얻은 것이 있다는 뜻이다. 彳은 의미부분이고 㝵는 소리부분이다. 䙷는 고문인데 彳을 생략했다(得,行有所得也,從彳,㝵聲. 䙷, 古文,省彳."

이 득(得)이란 글자는 또한 덕(德)과 통하는데 덕이 없으면 얻음이 없고 덕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다. 때문에 "㝵"과 "䙷"도 모두 덕과 통한다.

속인에 대해 말하자면 덕이 없으면 복(福)이 없으며 수련인에 대해 말하자면 덕이 없으면 수련해도 위로 올라갈 수 없다. 왜냐하면 수련이란 덕을 공(功)으로 연화(演化)시키는 것인데 당신에게 덕이 없다면 전화시킬 공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심성(心性, 심성이란 덕을 포함한다)은 수련자가 층차를 제고하고 높은 공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관건적인 것이다.

그럼 업(業)이란 무엇인가? 《설문해자》에서는 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업이란 큰 널빤지를 말한다. 여기에 종이나 북 등 악기를 매단다. 널빤지를 톱니처럼 깎아서 그것에 흰 칠을 해서 사용하는데 톱니모양이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본뜬 것이다.


착(丵)과 건(巾)은 모두 의미부분이다. 巾은 널빤지를 그린 것이다. 은 고문이다.


여기서 보다시피 업이란 글자는 원래 종과 북을 장식하던 나무판에 불과하다. 때문에 이 글자는 한자에 그리 깊은 뜻이 없다. 지금 이 업력(業力), 업을 짓는다(造業)에서 말하는 업의 함의는 사실 범어 "카르마(羯磨 Karma)"에서 온 것이다.

불교에서는 삼계(三界) 내의 생명은 육도(六道) 중에서 생사를 윤회한다고 하는데 이는 업이 결정하는 것이다. 업에는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업이란 악업을 지칭한다. 업에는 신업(身業), 구업(口業)과 의업(意業) 등 3가지가 있다. 이 "업"이란 다시 말해 "인과응보"의 의미이다. 불교가 동방으로 전해진 이후 업이란 글자의 내포가 아주 깊어졌다. 물론 중국 고대 문헌 중에도 인과응보와 유사한 말이 존재했다.

가령 노자는 "도로 군주를 보좌하는 사람은 천하에 무력을 앞세우지 않으니 그 일은 대가를 치르게 된다(以道佐人主者,不以兵強天下,其事好還)"(《노장》제30장)라고 했다.

이것이 천도호환(天道好還)이란 고사성어가 생긴 연원이다.

노자는 또 "하늘의 도는 친함이 없으니 늘 선한 사람과 함께 하네(天道無親,常與善人)"《노장》제79장)라고도 했다.

덕(德)과 업(業)은 서로 상반되는 것으로 수련 중에서 아주 중요한 대응 개념이다. 위에서 우리는 이미 "덕이란 올라가는 것(德,升也)"임을 알았다. 그렇다면 "업이란 내려가는 것(業,降也)"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속인은 덕과 업이 일종의 정신적인 것으로만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는 단지 일종의 이데올로기 방면의 개념이 아니며 진실한 물질적 존재이며 물질의 장(場)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이 세계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여러 층의 물질공간이 존재한다. 우리 신체 주변의 특정한 물질 공간 중에는 일종 백색물질장(白色物質場)이 존재하는데(애석하게도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 이 장이 바로 덕이다. 동시에 또 일종 흑색물질장(역시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바로 업이다.

덕과 업 두 가지 물질은 일정한 조건 하에서 서로 전화(轉化)될 수 있으며 또 부모나 조상으로부터 계승되거나 자손에게 전해질 수도 있다. 이것들은 신체 주위에서 자라나는데 당신의 주원신(主元神)을 따라 윤회전생한다.

사람이 좋은 일을 하거나 얻어맞거나 혹은 욕을 먹거나 고통을 겪고 시달림을 겪으면 덕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곧 백색물질장이 증가하는데 바로 "덕"을 쌓은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흑색물질장이 감소한 것으로 "업"을 없앤 것이다.

반대로 사람이 나쁜 일을 저지르고 사람을 때리거나 욕하며 남을 기만하거나 살생하면 곧 업을 짓고 업력을 얻게 된다. 이렇게 되면 흑색물질장이 증가한다. 바꿔 말하자면 백색물질장이 감소한 것으로 덕을 손상하고 덕을 잃은 것이다.

업을 지으면 장차 재앙을 초래하고 시달림을 겪게 되는데 금생에 업을 갚는 것을 "현세현보(現世現報)"라 하며 여러 세(世)가 지난 후 갚는 것을 "격세보응(隔世報應)"이라 한다. 우리가 이쪽에서 돈을 사용하는 것처럼 다른 공간에서 교환할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 바로 덕이다. 돈이 없으면 물건을 살 수 없듯이 덕이 없으면 좋은 것을 얻을 수 없다.

만약 당신의 덕이 크다면 당신의 복도 크기에 당신은 큰 벼슬을 하거나 큰 부자가 될 수 있고 땅이나 집을 소유할 수 있으며 부부간에 화목하고 자손이 번창하며 무병장수 할 수 있다. 뜻하는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고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덕으로 교환해 오는 것이다.

당신에게 덕이 있기 때문에 고층차로 되돌아 올라갈 가능성이 있을 수 있으며 때문에 "덕이란 올라가는 것"이라고 풀이한 것이다.

반대로 당신이 만약 덕이 작다면 도처에 번거로움이 많을 것이며 장애가 큰데 무슨 일을 하든 모두 곤란을 겪는다. 당신은 돈을 벌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 겪게 된다. 만약 당신의 업력이 크고 덕이 더욱 작다면 무슨 일을 하든 모두 당신의 뜻과 어그러질 것이며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어쩌면 밥을 빌어먹는 것조차 어려울지 모른다.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교환할 덕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의 업력이 너무나 커서 덕이 전혀 없다면 심지어 더는 육도윤회를 할 자격조차 취소되는 무생지문(無生之門)에 떨어질지 모른다. 이렇게 되면 소나 말로도 윤회할 수 없으며 최후에 형신전멸(形神全滅)되어 철저히 훼멸된다. 당신의 업력이 크고 덕이 없다면 곧 저층차로 추락할 가능성이 큰데 때문에 "업이란 내려가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아마 어떤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들 중에 아주 나쁘고 인색하며 덕을 많이 잃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나보다 덕이 적지 않은가! 라고 질문할 것이다. 당신은 아마 하늘이 당신에 대해 특별히 불공평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사실 일부 돈이 많은 사람들은 아주 좋지 못하지만 그는 전생에 많은 덕을 쌓았기 때문에 금생에 당신보다 나을 수 있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덕이 없으면서도 기어이 얻으려 하는데 남을 곤경에 빠뜨린다. 그는 훔치고 강탈하며 기만하거나 심지어 살인방화까지도 저지르는데 좋지 않은 수단을 써서 억지로 돈을 얻으려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덕이 모두 소진되어 오히려 적자가 되는데 다시 말해 업을 짓는 것이다. 이 얼마나 나쁜가!

표면적으로 보자면 그는 잠시 당신보다 낫고 당신보다 부유하며 으스대면서 허풍을 떨지 모르지만 당신은 그가 이후에 어떤 처지에 떨어질지 모른다. 나쁜 짓을 저질러 몸을 망치고 명성에 금이 가며 감옥에 들어가거나 가족들에게 연루되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업의 빚(業債)은 도망치려 해도 도망칠 수 없으며 숨으려 해도 숨을 수 없는 법이다. 빠르건 늦건 빚은 모두 갚아야 하며 금생에 갚지 못하면 내세에 갚아야 하는데 내세에는 아마 더 운이 나쁠 것이다.

당신에게 덕이 있다면 설사 금생에 얻지 못한다 해도 내세에 얻을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표면적인 현상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이 우주 중에는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며 얻으려면 잃어야 한다는 이치가 있는데 당신이 잃지 않으면 강제로 잃게 한다."(《전법륜》)

인류사회는 본래 미혹 중에 있으나 우주의 법리는 영원히 공평한 것이다. 덕은 올라가고 업은 내려가며 인과에 보응이 있다는 것은 한 치의 착오도 없는 확실한 진리이다. 당신이 만약 올라가려 한다면 당신은 마땅히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덕을 쌓아야 한다. 당신이 만약 나쁜 일을 많이 한다면 곧 아래로 추락하며 업을 많이 짓게 될 것이다. 당신이 만약 심지어 형신전멸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멋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그럼 당신은 무생지문에 들어갈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주 경건하고 늘 교회를 찾아가 기도하고 예배하거나, 사찰에 가서 예불하며 공덕상자에 돈을 넣는다. 하지만 당신이 덕은 올라가고 업은 내려간다는 이 이치를 모른다면 당신이 낸 돈은 헛된 것일지 모른다. 또 어떤 사람은 한편으로는 온갖 나쁜 짓을 다 저지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헌금을 하고 신의 보호를 구한다. 이를 통해 심리적인 안정을 얻으려 하는 것이겠지만 신이 어찌 이런 사람을 보호할 수 있겠는가? 신은 사람의 마음을 보는 것으로 바로 당신의 심성을 본다. 다시 말해 당신의 덕과 업이 얼마나 되는가에 근거해 당신의 승강부침(升降沉浮)과 생사존멸(生死存滅)을 결정한다.

설마 석가모니나 예수가 권세와 이익을 쫓아 "사찰(또는 교회) 문은 활짝 열려 있지만 돈이 없으면 들어오지 말라!"고 할 리가 있는가? 그들이 사람이 낸 돈의 액수에 따라 그에게 복을 내려주겠는가? 설마 염라대왕이 돈을 밝히며 뒷거래를 하면서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에게 함부로 수명을 연장해 줄 수 있겠는가? 당신은 정말 돈이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고 여기는가? 이런 것들은 모두 불가능한 것이다.

때문에 관건적인 문제는 여전히 자신의 내심 깊은 곳으로부터 좋게 변하고 본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덕과 업이란 이런 중대한 일을 잘해야 하는바 표면적이고 형식적인 일에 달린 것이 아니다.

발표시간:2005년 8월 3일

정견망: http://www.zhengjian.or.kr/zhengjian/bbs/board.php?bo_table=god&wr_id=99&page=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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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견망


신화이야기: 위타(韋陀)의 좌상

작자: 대법제자 고풍(古風) 정리

위타(韋陀)는 호법 천신(護法天神 법을 수호하는 하늘의 신)이므로 그의 조각은 서 있는 입상이다. 좌상은 겨우 몇 개만 있는데 모두 그가 “삼보(三寶)”를 호위한 공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히 만든 것이다.

북경 서산 대각사(大覺寺)에 위타의 좌상이 하나 있다. 전설에 따르면 청나라 때 대각사에서 계단(戒壇 계를 주는 의식을 주는 단)을 지을 때 매우 큰 곤란을 만났다. 대들보가 너무 무거워 사람들이 힘을 아무리 써도 전당의 꼭대기에 올려놓을 수 없었다. 단을 건설하는 것을 책임 진 노승은 시름에 잠겨 하루도 편히 잠을 잘 수 없었다.

다음날 해가 뜰 무렵 노승은 홀연 어느 어린 동자승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아! 누가 우리를 위해 저 큰 들보를 올려놓았을까?”

노스님이 얼른 달려가 보니 대들보가 잘 올려져 있었고 어느 무사 복장을 한 대장이 옆에서 땀을 닦고 있었다. 노승이 눈을 똑바로 뜨고 보니 그는 바로 위타라는 천신이었다. 스님은 얼른 앉아서 좀 쉬시라고 하며 오체투지로 그를 향해 엎드려 예를 올렸다. 이 전설에 따라 대각사에서는 위타의 좌상을 조각했는데 바로 이 호법신이 대들보를 올린 후 앉아서 쉬고 있는 모습이었다.

산서성(山西省) 태원시(太原市)의 백운사(白雲寺)에도 위타의 좌상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기근이 들었을 때 스님들이 나가서 탁발해야 했는데 절 내에서는 걷기 불편한 노승만 몇 명 남아 있었다. 그 날 사원에는 쌀이 한톨도 없었다. 노승들이 거의 다 죽어갈 무렵 어떤 사람이 남쪽에 양식을 다섯 수레나 보내주었다. 수레를 모는 사람이 말했다.

“우리 집 아가씨가 반신불수가 되었는데 백약이 무효이며 늘 누워 지냈습니다. 얼마 전 백운사의 한 젊은 스님이 우리 집에 동냥을 와서는 주인 어른께 양식을 희사하기를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집 아가씨가 병이 든 것을 알고 약방문을 하나 지어주어 소저가 그 약을 먹고 병이 나았습니다. 당신들의 은덕에 감사드리기 위해 우리 주인께서 여기에 양식을 보내는 것입니다.”

노승들은 매우 놀라 물었다. “그 젊은 화상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이때 그 수레를 몰던 사람이 위타천신의 상을 보더니 손으로 가리키며 “바로 이 분입니다!”고 했다. 스님들은 위타 천신상 앞으로 꿇어 엎드려 두 손을 모으고 위타천신에게 생명을 구해준 은혜를 감사드렸다. 이 다섯 수레의 양식은 백운사의 스님의 목숨뿐 아니라 부근의 주민들도 아사를 면하게 해주었다.

기근이 지나간 후 사람들은 자금을 모아 위타상을 조각을 만들었다. 그들은 위타천신이 일년 내내 서서 지내는 것이 너무 고생스럽다고 여겨 앉은 좌상을 만들었다.

신은 사람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큰 난이 나타날 때면 신은 늘 방법을 생각해 사람을 구한다. 하지만 신이 사람을 구하는 것도 사람의 심성(心性)을 보아야 한다. 만일 사람이 신을 모독하면 신에 구도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에 신은 곧 상관하지 않는다. 자연히 다른 신이 그를 처리할 것이다.


오늘 날 많은 사람은 신에 대해 함부로 말하며 농담을 하는데 이미 신에 의해 구도받을 자격이 없다. 대법은 자비로와 다시 한번 기회를 주지만, 사람들의 대법에 대한 태도와 대법제자에 대한 태도를 본다.


원문 http://zhengjian.or.kr/zhengjian/bbs/board.php?bo_table=god&wr_id=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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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法輪功)으로 잘 알려진 法輪大法(파룬따파)는 리훙쯔(李洪志)선생께서 창시하신 고층차의 불가(佛家)수련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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