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찬란한 5천년 신전문화의 천고영웅인물 연구팀
3. 삼교를 총괄하는 대도(大道)
장삼풍의 《대도론(大道論)》은 약 5천자로 높고 깊은 경지를 평이한 언어로 대도의 근원을 설명하고 당시 세간의 유석도(儒釋道)를 초월한 보다 높은 우주관을 명백히 논술했다. 또 천지 사이에서 물질을 생기게 하는 근본원인과 생명의 기원에 대해 논술하고 미혹의 나루를 건너는 방법을 명시했다. 진실로 장삼풍이 말한 것과 같으니 “내 말이 비록 통속적이긴 하지만 의리는 가장 아름다우며 소위 진실하여 헛됨이 없다.”
그는 《대도론‧상편》에서 천지만물을 생기게 하는 것이 ‘도’라며 종지를 분명히 했다.
“무릇 도(道)란 하늘을 낳고, 땅을 낳고, 사람을 낳고, 만물을 낳는 것을 통괄함을 이른다. 음양(陰陽)과 동정(動靜)의 기틀을 머금고 조화(造化)현미(玄微)의 이치를 갖추고 있으며 무극을 통어하고 태극을 낳는다. 무극은 무명(無名)이니 무명이 천지의 시작이다. 태극은 유명(有名)이니 유명은 만물의 어머니다. 무명에서 말미암아 유명이 나오면 하늘을 낳고, 땅을 낳고, 사람을 낳으며 만물을 낳는다.”(夫道者,統生天、生地、生人、生物而名,含陰陽動靜之機,具造化玄微之理,統無極,生太極。無極爲無名,無名者,天地之始;太極爲有名,有名者,萬物之母。因無名而有名,則天生、地生、人生、物生矣。)
여기서 장삼풍이 논술한 대도는 유불도(儒佛道)의 공통적인 근원으로 보다 높은 대도(大道)・대법(大法)이다.
“나 역시 재주는 없지만 일찍이 제자백가를 두루 읽고 삼교의 이치를 종합해 삼교가 모두 이 하나의 도임을 알았다. 유가가 이 도를 떠나면 유(儒)가 될 수 없고 불가가 이 도를 떠나면 부처가 될 수 없으며 선가도 이 도를 떠나면 신선이 될 수 없다. 선가는 특별히 도문(道門)이라 일컫기에 더욱이 도로 자임한다.”(予也不才,竊嘗學覽百家,理綜三教,並知三教之同此一道也。儒離此道不成儒,佛離此道不成佛,仙離此道不成仙,而仙家特稱爲道門,是更以道自任也.)
장삼풍은 당시에 보다 높은 이 도를 널리 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대도론(大道論)은 사람들의 시야경계를 넓혀주었고 나중에 창세주께서 우주대법(宇宙大法)・대도(大道)를 널리 전하기 위한 기초를 다져주었다. 이 대도(大道) 아래에서 유불도(儒佛道) 삼자는 단지 각가(各家)의 장점을 펼친 것에 불과하다.
“유가는 도를 행하여 그 시대를 구하고, 불가는 도를 깨닫고 세상을 깨우치며, 선가는 도를 간직하고 사람을 제도한다.”(儒也者,行通濟時者也;佛也者,悟道覺世者也;仙也者,藏道度人者也.)
“각각 나름의 오묘한 이치를 강론하고 합하여 좋은 점을 강론하면 될 뿐인데 말로 시비를 논할 필요가 무엇인가? 무릇 도란 궁리진성(窮理盡性)하여 명(命)에 이르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공자는 드물게 말씀하신 내용에 감췄고 선가는 드러내어 말했지만 비유로 말했다. 글자 모양은 다양하고 도의(道義)가 미묘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를 따름이다.”(各講各的妙處,合講合的好處,何必口舌是非哉!夫道者,無非窮理盡性以至於命而已矣。孔子隱諸罕言,仙家暢言之,喻言之。字樣多而道義微,故人不知耳。)
또 유석도(儒釋道) 삼교는 모두 태극음양의 법리를 뛰어넘지 못했다.
“한번 음이 되고 한번 양이 되는 것을 도(道)라고 하며 수도(修道)란 이 음양의 도를 닦는 것이다. 일음(一陰)일양(一陽) 일성(一性)일명(一命)에 불과하다. 《중용》에서는 ‘수도(修道)를 일러 가르침(敎)이라 했다.’ 삼교의 성인은 모두 이 도를 근본으로 그 가르침을 세웠다. 이 도는 성(性)에 근본하고 명(命)에 바탕을 두었다.”(一陰一陽之謂道,修道者修此陰陽之道也。一陰一陽,一性一命而已矣。《中庸》雲:‘修道之謂教。’三教聖人,皆本此道以立其教也。此道原於性、本於命。)
이를 통해 장삼풍은 소위 불도 사이의 논쟁이란 한낱 말다툼에 불과하며 전혀 불필요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각각의 수련법문은 모두 보다 높은 같은 뿌리의 대도(大道)에서 내원해 각각의 수련법문으로 내려간 것이다.
4. 사람몸의 생성
사람의 생명은 우주공간 중에서 생겨나는데 도가에서는 성명쌍수(性命雙修)를 말한다.
그렇다면 성명이란 무엇인가?
장삼풍은 이렇게 말한다.
“부모님이 낳기 전에 하나의 태허(太虛)가 심원한 근원적 이치[穆]에 깃드는데 이것이 무극(無極)의 때다. 무극은 음(陰)이 고요한데 음이 고요하면 양(陽)도 고요하다. 부모가 생명을 베풀기 시작할 때 한 가닥 영기(靈氣)가 태속에 들어가니 이는 태극의 때다. 태극은 양(陽)이 움직이는데 양이 움직이면 음도 움직인다. 이로부터 음양이 서로 밀치고 강유(剛柔)가 서로 마찰하며 팔괘가 서로 출렁여 건도(乾道)는 남자가 되고 곤도(坤道)는 여자가 된다.
그러므로 남녀가 서로 교접하는 처음에 남자의 정(精)과 여자의 혈(血)이 뒤섞여 한 물건이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인신(人身)의 근본이다. 뒤이어 아버지의 정(精)은 신(腎)에 저장되고 어머니의 혈(血)은 심(心)에 저장되어 심과 신의 맥이 이어져 어머니의 호흡에 따라 열 달이 되면 완전한 형태를 이루어 모태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이때 성(性)은 식(識)이 없는 것에 뒤섞여 있으며 또 무극으로 그 신(神)을 잠복케 한다. 명(命)은 생명 있는 것에 의지하면서 또 태극으로 그 기(氣)를 자라게 한다. 기맥(氣脈)이 고요해져 안으로 원신(元神)이 쌓임을 일러 진성(眞性)이라 하고 생각(神思)이 고요한 가운데 원기(元氣)가 자람을 일러 진명(眞命)이라 한다. 혼돈한 상태의 아기 몸이 바로 소위 말하는 천성(天性)천명(天命)이다.”(《대도론(大道論)》)
5. 수신치국(修身治國)과 성인의 도
황제, 요, 순, 우가 중화 자손들에게 신기원을 개창한 이래 도가문화는 중국에서 줄곧 주축이 되어 왔다. 2천년 후 노자는 《도덕경》 5천자를 남겼고 공자는 옛 성인들이 세상을 다스리고 행동을 닦은 핵심을 정리해 후인들로부터 유가(儒家)로 불렸다. 사람들은 수도(修道)는 청정과 무위를 근본으로 속세를 떠나 은일(隱逸)하는 반면 유가는 세간에 들어가 민생을 관리하고 정치하는 것으로 오인했고 일부 유생들이 불도(佛道) 수련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비방하는 현상이 생겨나기도 했다.
당나라의 한유(韓愈 한퇴지)와 송나라의 주희(朱熹 주자), 이들의 학설은 세간에서 아주 큰 영향력을 지닌다. 장삼풍은 세인들이 오해하는 지점을 분명히 관찰해 인자하게 선을 권고했다.
“당송(唐宋) 이래 한유(韓愈)와 주희(朱熹) 두 현인이 이씨(二氏 역주: 석가와 노자)를 극력 물리치자 여러 대유(大儒)들이 이에 화답했고 많은 소유(少儒)들은 그 찌꺼기를 얻어 끝에 붙으려 했다. 하지만 필경 무엇을 물리친단 말인가? 오히려 세존의 웃음거리가 되고 노자를 길게 탄식하게 했다.”(唐、宋以來,乃有韓、朱二賢,力辟二氏,諸大儒和之,群小儒拾其唾餘,以求附尾,究竟辟著何處?反令世尊含笑,太上長歎。)
주희는 어려서부터 유가와 도가 서적 읽기를 좋아했지만 끝내 진정한 도(道)를 만나지 못했고 불도(佛道)의 기치를 든 소도(小道)와 요승(妖僧)들에게 미혹되었다. 만년에 주희의 학식이 두루 넓어진 후 다시 《주역참동계》를 읽고 깨달음이 많아진 후에야 “선도(仙道)에서 흥미진진한 재미를 보고 있다.”고 했다. 반면 그런 소유(小儒)의 무리들은 쓸데없이 허풍을 떠는 데 불과할 뿐 진정으로 밝은 식견이 없다.
“한유와 주희가 이씨(二氏 불가와 도가)를 배척했지만 배척한 것은 불가도 도가도 아닌 어중간한 자들이며 진정으로 불도(佛道)를 배우는 자를 배척한 게 아니다.”
“또 한유의 집안에 한상자란 신선이 있어 유배 가던 한유가 남관에서 눈 속에 길을 잃었을 때 나타나 길을 인도해준 적이 있으니 아마 오래 전부터 그가 비범한 사람임을 알았을 것이다. 주자는 소년시절 일찍이 불가와 도가에 출입한 적이 있다. 거기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잘못된 이씨(二氏) 무리들의 미혹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도가는) 허무하고 황당하며 (불가는) 공적(空寂)하고 아득하다고 의심했을 뿐이다. 하지만 만년에는 학문이 넓어지자 《참동계(參同契)》를 애독했고 아울러 ‘《참동(參同)》의 책들은 본래 《주역(易)》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고 대체로 역을 빌려 나아가고 물러나며 행하고 머무는 절후를 가탁했을 뿐이다.’라고 했다. 또 다른 이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요즈음은 길을 다닐 때 다른 책은 지니지 않고 《참동계》만을 숙독하는데 선도(仙道)에 흥미진진한 재미가 있다.’고 했다.”(《대도론》)
“무릇 황제와 노자가 전한 것 역시 정심(正心), 수신(修身),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이치이니 어찌 이단이라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아 진정(真精)과 진신(真神)을 그 가운데 모은다면 대재(大才 큰 재주)와 대덕(大德 큰 덕)이 그 속에서 나올 것이다.”(《대도론》)
장삼풍은 ‘황로의 선도(仙道)’와 유가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이치가 둘이 아니며 사실은 불교가 동방에 전해지기 전 중토의 선성(先聖)들이 하신 것이라고 했다. 소위 “수도는 수신을 중시한다(修道以修身爲大)”고 하는데 ‘수신(修身)’의 근본문제에서 유가는 고층차에 이르면 도가로 귀속된다.
장삼풍은 사람마다 제갈량(諸葛亮)에게 탄복하는 것을 예로 들어 “제갈량은 남양(南陽)에서 편안히 누워 도를 이루고 세상에 머물다 유비의 촉(蜀)나라를 보좌해 위(魏)나라를 정벌했다. 벼슬길에 나서 백성을 편안히 했으며 임금에 대한 인의(仁義)의 마음은 만세의 귀감이 되었다!”고 했다.
또 유가에서 높이 떠받드는 ‘대장부(大丈夫)’의 이상적 인격에 대해 장삼풍은 “천지처럼 오래 존재하고 해와 달처럼 밝게 비추는 이것이 바로 대장부의 본분(與天地同久,日月同明,此正大丈夫分內事也)”이며 “형(形)과 신(神)이 오묘함을 갖추고 도와 더불어 진(眞)에 합일하는 이것이 대장부가 공을 이루고 이름을 날릴 때이다.(形神俱妙,與道合真。此大丈夫功成名遂之時也)”라고 말했다.
그는 진정한 유가의 ‘대장부’라면 마땅히 생명의 경지가 있어야 함을 명확히 밝혀 명나라 및 후세의 유생들에게 수신(修身)이란 한 가닥 광명한 대도를 알려주었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4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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