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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지성

여동빈은 세상에서 백여 세까지 지내다가 무창 황학루 3층 누각 위에서 신선이 되어 올라갔다고 한다. 신선이 된 후 여동빈은 걸핏하면 인간 세상에 나타났다고 한다. 역대로 그가 인간 세상에 와서 놀다가 세상과 사람을 제도한 전설이 너무 많아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중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다.

宋 경력 4년(1044년), 등자경은 중앙 정치무대에서 쫓겨나 파릉군 태수가 되었다. 부임한 다음 해 그가 다스리던 파릉군은 정치를 잘하여 백 가지 폐단이 바로 서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이때 등자경은 당나라 때 연국공 장열(張說)이 세웠던 악양루가 낡아 보수를 하였다. 악양루 보수가 끝난 날 큰 잔치를 열어 연회가 막 시작되려고 하는데 등자경은 문득 이름만 적힌 명첩 하나를 받았다. 그 위에는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고 다만 ‘화주(華州)도사가 삼가 문후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등태수는 사람을 보내 그 도사를 악양루 위로 올라오게 하였다. 얼굴을 보니 긴 수염이 가슴까지 드리웠고 등 뒤에는 장검을 메고 있는데 그 모습이 청수하고 기이한 도사였다. 도사는 누각 위로 올라와 등태수와 마주하여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아 호쾌하게 술을 마시고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좌중을 압도하였다. 악양루 중창 경축연에 참석한 사람들은 술에 취한 후 각자 붓을 들고 시와 글을 짓기 시작했다. 화주도사 또한 붓을 들어 다음과 같이 시를 지었다.

화주도사 :

朝游東海暮蒼梧   조유동해모창오
袖裏靑蛇膽氣粗   수리청사담기조
三醉岳陽人不識   삼취악양인불식
郞吟飛過洞庭湖   랑음비과동정호

아침에 동해에서 놀다가 저물어 창오군(광서성)으로 간다
소매 속 들어있는 단검(푸른 뱀)은 담력과 기력이 더욱 호쾌하다
악양루에서 크게 세 번 취했으나 사람들은 내가 여동빈인 것을 모르는데
낭랑히 시를 읊으면서 동정호를 날아서 지나갔다

등자경 : “ 화주도사의 시가 범상치 않다. 화공은 어디 있느냐? 즉시 화주도사의 취한 모습을 급히 그리거라. 화주도사께 감히 존함을 듣고자 하옵니다.”

화주도사 : “성은 ‘여’요 이름은 ‘암’이라고 하오.”

그 말을 마치고 큰 소리로 웃으면서 작별을 고하고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등자경과 그 자리에 있던 문사들은 이때서야 비로소 그 도사가 당나라 때의 유명한 도사 여동빈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일화를 기리기 위해 이 악양루 우측에는 삼취정(三醉亭)이 세워져 있다. 이 삼취정은 청나라 건륭 40년(1775년)에 세워졌고, 그곳에는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는 모양의 여동빈 상과 그가 쓴 시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앞에서 나온 詩 ‘수리청사담기조’(袖裏靑蛇膽氣粗:소매 속 들어있는 단검(푸른 뱀)은 담력과 기력이 더욱 호쾌하다)에서 청사(靑蛇)와 관련하여 고사가 전해져 온다. 일찍이 파릉현(현재 악양) 성 남쪽 백학산에는 큰 호수가 두 개 있었는데, 그 호수 가운데 이무기가 있어 민간에 피해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던 여동빈이 법술로 이무기를 다스려 단검으로 만들어 항상 소매 속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남송 때 비릉시에는 점을 잘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머리에는 푸른 두건을 메고 몸에는 누런 도복을 입고 있었다. 스스로 지명(知名)선생이라 하였다. 비릉군 태수 호도는 지명선생이 점을 기가 막히게 잘 친다는 소문을 듣고, 지명선생을 청해서 점을 쳤다.

지명선생 : “당신의 수명은 매우 길고, 곧 당신의 관직에 변동이 있다. 변동 시기는 청명절 전 5일 또는 청명 후 7일이다.”

고을 태수 호도는 청명 5일 전에 과연 그가 자리를 바꾸어 형문군 태수로 간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청명 후 7일이 되자 정식으로 이동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호도는 지명선생의 신기막측한 점술에 탄복하여 사람을 보내 그를 찾았으나 이미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호도는 후에 형문군 태수가 된 후 친구한테 남경의 석각에 새겨진 여동빈 상을 탁본한 그림을 받았다. 지명선생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 이때서야 지명(知名) 두 글자 중에는 지(知)자에 ‘口’, 명(名)자에 ‘口’가 있어 두 구(口)자를 합한즉 ‘여(呂)’자가 아닌가? 호도는 그가 친히 겪은 이 일을 자기 문집에 남겨 놓았다.

여동빈이 하루는 구름 따라 북방으로 갔다. 하루는 거지 한 명이 길바닥에서 굶주려 아사 직전까지 간 것을 보았다. 이미 거의 숨이 끊어질 듯하였다. 불쌍한 중생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여동빈은 법술을 사용해서 거지를 구해냈다.

여동빈 : “자, 내가 여기 돌을 금으로 만들어 줄테니 이걸로 살아가도록 하게나.”
뜻밖에 황금을 얻은 거지는 기쁘기 그지없었지만, 곧 그 거지는 욕심이 발동하여 떼를 썼다,

거지 : “차라리 도와줄거면 돌을 황금으로 만드는 손을 주쇼.”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인간의 욕심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니!

또 한번은 여동빈이 기름장사로 변신하여 기름을 팔면서 악양에 갔다. 기름을 사는 사람들마다 더 달라고 요구했다. 다만 한 노파만 기름을 사면서 더 달라고 하지 않았다. 여동빈은 그녀가 신선공부를 할 만하다고 생각하고 제도하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가서 한 줌의 쌀을 우물 속에 던져 넣었다.

여동빈 : “당신은 이 우물물을 팔면 부자가 될 것이네.”

그 노파는 여동빈이 간 후 우물속의 물이 전부 미주(美酒)로 변한 것을 알았다. 그 노파는 우물속의 술을 팔아 일년 후에 부자가 되었다. 그 후 어느 날 여동빈은 그 노파 집에 갔는데 마침 노파가 없고 그녀의 아들이 집에 있었다.

여동빈 : “당신들 집은 지난 일년 동안 술을 팔아 부자가 되었는데, 느낌이 어떠한가?”

노파의 아들 : “좋기는 좋은데 단지 돼지 먹일 술 찌꺼기가 없어서 힘들다.”

여동빈 : “( 탄식하면서) 정령 인심이 탐욕스러워 부끄러움도 모르는구나.”

그는 손을 들어 우물 속의 쌀을 거두어 들이곤 고개를 흔들며 갔다. 노파가 외출에서 돌아와서야 우물속의 술이 모두 물로 변한 것을 알았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가?
인간들에게 실망하면서 여동빈은 구름처럼 천지(天地)를 내 집으로 삼아 운유(雲遊)하였다 한다.

중생들이여, 시간을 아껴 수행하라
여동빈은 중생들이 명리재색(名利財色)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헛되이 죽음으로 가는 것을 경계한 듯,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겨 후학을 경계하게 하였다.

순양여조시(純陽呂祖詩)

人身難得道難明 인신난득도난명
塑此人心訪道根 진차인심방도근
此身不向今生度 차신불향금생도
再等何時度此身 재등하신도차신

순양자 여동빈 조사가 이르시기를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도 밝히기도 어려워라
사람마음 따라 도의 뿌리를 찾나니
이 몸을 이 생애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려 이 몸을 제도하리요

이 인간의 몸 받기가 정녕 어려운데 중생들이여, 정법을 만나 수행을 통해 윤회의 사슬을 벗어나시라! 간절히 희망하면서 신선 여동빈 편을 마칩니다.

희망지성

노인 : “노란 조밥이 아직 익지도 않았는데 꿈이 끝났네. 자네 오십 년 부귀영화도 절정까지 갔다가 이렇게 끝나지 않았는가?”

여동빈은 본래 도를 향한 마음이 있었는데, 단지 지난 10년간 어려운 고난이 있었고 그 고난에 대한 소득이 없어서 불만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생생하게 꿈속에서 점화(點火)되었고, 갑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깨닫게 되자 세상에 미련을 버리고 수도하고자 결심하였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운방(雲房)선인 종리권에게 절하고 스승으로 모셨다.

노인 : “천부적인 너의 좋은 자질을 보건대 세상을 제도하는 선(仙)술을 닦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오욕칠정에 물든 인간의 마음을 제거하기가 어려워 신선이 되기는 어렵다. 너의 공행(功行)을 다 채우지 않아서 설사 신선이 되는 신선술을 배웠다 하더라도 실제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다. 그러니 내가 너에게 쇠를 금으로 만들고, 납을 은으로 만드는 황백술(黃白術)을 전수하는 것보다 못하다. 너는 이 황백술로 세상을 제도하고 사람을 이롭게 하라. 삼천 가지 공덕이 차고 팔백 가지 선행을 마치고 나면 내가 다시 와서, 그때, 너를 제도하겠다.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사제의 예가 끝난 후 선인 종리권은 여동빈의 손을 끌고서 장안교외로 갔다. 그곳에서 순간적으로 공간이동을 하여 종남(終南)산 학정(鶴頂)봉 위의 동굴 밖에 도착했다. 동굴에 들어가니 햇빛이 비추어 들어오는데 포근하기가 봄날과 같았다.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이 큰 반석 위에 마주앉아 원화주(元和酒)를 석잔 마시고 있는데, 비취빛 저고리에 붉은 바지를 입은 사람이 구름을 밟고 기이한 향기를 풍기면서 하늘로부터 내려와 선인 종리권에게 봉래산 천지회 모임에 같이 가자고 초대한다.

종리권은 수련서인 현결(玄訣)을 남겨놓고, 자주색 구름을 타고 하늘 저 멀리로 사라졌다. 며칠이 지난 후 종리권이 동굴로 되돌아 왔을 때 여동빈은 스승이 남겨놓고 간 현결(玄訣)을 숙독해서 경지가 전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스승과 함께 수행하고 있는 동안 청계선인 정사원과 태화선인 시호부가 선인 종리권을 만나러 왔다. 여동빈은 두 분의 선인에게 절을 하고 가르침을 받았다. 그 당시 때는 바야흐로 봄이라 새들이 다투어 울고 시절이 호시절이라 선인 종리권은 흥에 겨워 시를 읊조렸다.

春氣塞空花露滴   춘기색공화로적
朝陽拍海岳雲歸   조양박해악운귀
봄기운이 공중에 가득하고 꽃에 이슬이 맺혀 떨어지는데
아침 해가 바다에서 솟아오르니 산 구름이 흩어지더라

노인 : “ 이 시를 동굴 입구에 새겨 놓아라. 나는 하늘의 옥황상제를 배알하러 가려고 한다. 너는 이 동굴에서 오래 머물 필요는 없다. 십 년 후 동정호 악양루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말을 마치고 영보부법(靈寶符法)이라는 도가 비전의 수련서를 주고, 삼원삼보(三元三寶)에 관한 설법을 하였다. 설법을 마치자 두 명의 천사가 금첩(황금으로 만든 초대장)을 받들고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이어서 하늘에서 봉황과 난새가 출현하고 선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선인 종리권은 두 천사와 함께 천천히 하늘로 날아올라 사라져갔다.

스승 종리권이 떠난 후 여동빈은 동굴에서 몇 년을 머물렀다. 수련을 한 동굴이 거대한 암석 가운데 있어 여동빈은 동굴을 집으로 삼았다. 그래서 이름을 경(瓊)에서 암(岩)으로 고치고 자(字)를 동빈(洞賓: 동굴속의 손님)이라 하였다. 또 동빈은 이곳에서 도가의 진전(眞傳)을 모두 얻었고, 수도하여 몸속에 음의 기운(塵陰)을 모두 몰아내었으며, 순양(純陽: 순수한 양의 기운)만 몸에 남아 도호를 순양자(純陽子)라고 하였다.

종남산 학정봉 동굴을 나온 후 동빈은 누런 모자에 도사복장을 하고 호(號)를 회도인(回道人)이라 바꾸었다. 회(回)자는 크고 작은 두 개의 口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암암리에 여(呂)자로 姓이 여(呂씨, 여동빈)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때부터 동빈은 흘러가는 구름처럼 천하를 노닐면서 사해를 집으로 삼았다. 스승 종리권과 만날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동빈은 동정호로 갔다. 악양루에 올라 10년만에 스승 종리권과 해후하였다. 종리권은 동빈을 데리고 자기의 스승 고죽진군(苦竹眞君)을 알현하였다. 고죽진군은 동빈에게 도가의 비전인 일월교병지법(日月交幷之法)을 전수하였다.

그 후 동빈은 스승과 사조와 헤어진 후 양자강 하류 지역에 있는 천하명산 여산(廬山)에 놀러갔다가 화룡진인(火龍眞人)을 만나 수련하게 되었다. 이 여산이야말로 일찍이 마조대사가 예언한 우여즉거(遇廬則居:여를 만나면 머문다)가 아닌가?

동빈은 여산에서 화룡진인에게서 천둔검법(天遁劍法)의 진수를 배웠다. 이때부터 동빈이 강호상에 노닐 때 항상 몸에 보검을 차고 다녔다. 선인 여동빈은 이 칼로 수많은 요마(妖魔)를 제거하고 허다한 공덕을 쌓았으므로 항상 등에 칼을 찬 모습으로 신선도(神仙圖)에 등장한다.

하루는 여동빈이 구름을 따라 노니면서 무창 황룡산으로 갔다. 멀리서 바라보니 산중 절위에 자주색 구름이 가득 덮여 있어 이인(異人)이 있음을 알고 문득 절 안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 이름을 떨치던 유명한 황룡선사가 마침 법당에서 설법을 시작하려는 중이었다.

여동빈도 설법을 듣기 위해 사람 무리들 속에 묻혀 함께 법당으로 들어갔다.

황룡선사 : “오늘 여기에 법을 훔치려는 사람이 있는데, 이 늙은 중은 설법을 하지 않겠다.”

여동빈은 곧 자기를 가리키는 것을 알고 군중 속에서 나와 예를 취하면서 말하였다.

여동빈 : “화상에게 묻겠습니다.

一粒粟中藏世界   일립속중장세계
半升金當內煮山川   반승당내자산천

한알의 조 알갱이 속에 세계가 감춰져 있고
반 되 들이 솥으로 산천을 삶는다는 이 한 마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황룡선사 : “하하하. 원래 당신은 시체 같은 죽지 않은 귀신이구나!”

여동빈 : “화상은 내가 늙어도 죽지 않는 것을 조롱하지 말라. 나의 호주머니 안에는 장생불사의 약이 있는데 어찌하면 좋겠는가?”

황룡선사 :  

饒究經得八萬劫   요니경득팔만겁
難免一朝落空亡   난면일조락공망

당신이 설사 팔만 겁을 지내왔더라도
하루아침에 공망에 떨어지는 것을 면할 수 없다.

여동빈은 황룡선사가 기지와 총명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 황룡선사의 법력이 얼마나 고명한가를 시험해 보고 싶어서 등에 차고 있는 보검을 꺼내면서 말하였다.

여동빈 : “이 검은 내가 휴대하고 다니는 신령한 보검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능히 되는데 검을 칼집에서 나오라고 하면 곧 빠져 나오고, 칼집에 들어가라고 하면 곧 들어간다. 선사께서는 능히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황룡선사 : “(웃으며)비록 영물이지만 그것이 도력 있는 사람의 명령을 들어야 가능할 것 같은데, 당신이 먼저 한번 시험해 보시오.”

여동빈은 보검한테 칼집에서 나오라고 외치자 그 검은 칼집에서 스스로 나와 은빛을 뿌리며 절 대웅전 기둥으로 날아가 검 끝이 똑바로 나무로 깎은 용의 눈에 박혔다.

황룡선사가 가볍게 웃으면서 오른손을 들어 올리면서 가운데 손가락으로 기둥에 박힌 보검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황룡선사 : “내가 보건대 네가 이 검을 능히 칼집에서 끄집어낼 수는 있으나 다시 꼽을 수는 없다.”

여동빈 : “(큰소리로 웃으면서) 칼집으로 들어가라.”

그러나 보검은 기둥에 박힌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검은 여동빈이 여산에서 검술을 배우고 하산한 후 줄곧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대로 할 수 있어서 신령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제 더는 주인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여동빈이 그 황룡선사의 도와 법이 높고 깊음에 탄복하고 그 자리에서 절하여 사과하면서 불법을 가르쳐 줄 것을 청하였다. 황룡선사는 여동빈의 마음이 진심과 성의가 있음을 알아보았다.

황룡선사 : “당신은 이미 반 되들이 솥으로 산천을 삶고 또 어떻게 한 알의 조 알 속에 세계를 감출 수 있는가를 듣지 않았는가? 내가 말한다면, 그 뜻은 즉 먼저 마음속에 아무런 물건(욕심)이 없어야만 능히 삼라만상을 둘러싸 안을 수 있다.”

여동빈은 황룡선사의 깊은 뜻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오도송을 지었다.

棄却瓢囊擊碎琴  기각표낭격쇄금
從今不戀汞中金  종금불연홍중금
自從一見黃龍後  자종일견황룡후
始覺當年錯用心  시각당년착용심

하나있는 표주박 주머니도 버리고, 거문고도 깨뜨려 버렸다.
이제부터 불사약(금단)에 더는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네
이제 황룡선사를 한번 만나본 후
비로소 그 당시 마음 잘못 쓴 것을 깨달았다네

여동빈은 낭랑히 오도송을 읊으면서 황룡선사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고 표연히 떠나갔다.

희망지성



[SOH]  

팔선열전[八仙列傳]에 들어가며......

팔선은 중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기행(奇行)과 속세를 초월한 것으로 알려진 8명의 신선으로 여동빈ㆍ장과로ㆍ철괴리ㆍ한상자ㆍ종리권ㆍ조국구ㆍ남채화ㆍ하선고(女神仙)를 말한다.

이들은 당나라와 송나라 문헌에 나타나다가 원나라 때부터 팔선으로 정리된 듯하며, 중국의 소설, 희곡, 회화, 건축 등 여러 분야에 나타나고 민간에 널리 유전되어 오는 수많은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이제 이들 팔선의 출생 비화, 수도 과정, 부명재색(富名財色)을 초월한 행위, 신통 자재한 인생항로, 시공을 초월한 기행(奇行)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八仙列傳] 제 1화 (상)  여동빈(呂洞賓)편



팔선도 그림에 여동빈(呂洞賓)은 당나라 때 사람으로 종리권의 제자로 등에 칼을 차고 손에는 불자(佛子)를 들고 있다.  



     자영(自詠)   스스로 읊노라

獨上高樓望八都  독상고루망팔도  
墨雲散盡月輪孤  묵운산진월륜고  
茫茫宇宙人無數  망망우주인무수  
幾個男兒是丈夫  기개남아시장부  

홀로 높은 누각에 올라 팔방을 바라보니
검은 구름 흩어지고 둥근 달만 중천에 외롭게 떠있다.
망망한 우주에 사람은 많고도 많은데
사내대장부라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당나라 시대, 어느 날 동정호에 달이 휘영청 뜬 밤, 여동빈이 홀로 악양루에 올라 시를 읊으니,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한한 우주공간까지 이어지는 기개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그 당시 황소(黃巢)의 난으로 세상이 뒤숭숭할 때였기에 혹자들은 이 시에서 여동빈이 황소의 난을 평정할 사람 하나 없는 현실을 탄식한 것으로도 해석한다.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개가 여동빈을 보고 짖다니, 좋은 사람을 몰라본다”(狗咬呂洞濱, 不識好人心)고 할 정도로 여동빈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여동빈은 당나라 덕종 정원(貞元) 12년(797년) 4월 14일에 출생했다고 한다.
그의 모친이 여동빈을 낳을 때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고 자주색 구름이 하늘을 덮었으며, 한 마리 선학(仙鶴)이 하늘에서 날아 내려와 침상으로 날아들다가 돌연 사라졌다고 한다.

여동빈의 본명은 경(琼)이고, 자(字)는 백옥(伯玉)이며 또 다른 이름은 소선(紹先)이다.

출가 이후에는 이름을 암(岩)으로 고쳤고, 자는 동빈(洞賓)이다. 그는 당나라 후대, 관서 하중부 낙현사람이다. 현재 지명은 산서성 영락현이며, 그곳에 그가 태어난 것을 기념해서 만수궁(萬壽宮)을 세웠다.

여동빈은 태어나면서부터 관상이 보통 사람과는 달랐다고 한다.  양쪽 눈썹이 길고 비스듬히 구레나룻과 이어졌고, 봉황의 눈매에 광채가 나며, 코는 높고 단정하며 왼쪽 눈썹과 왼쪽 눈 아래 검은 점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부친은 이렇게 기이한 조짐을 갖고 태어난 이 아이를 매우 총애하였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교롭게도 불교 선종 6조 혜능대사의 손(孫)제자인 마조화상이 그의 집을 방문했다.

동빈의 부친 : “마조 대사님! 강보에 싸인 이 아이의 앞날이 어떨는지 한 번 봐주시겠소이까?”

마조대사 : “음. 이 아이의 운명은 풍모가 맑고 기이하며, 골상 또한 평범하지 않으니, 풍진을 벗어난 뛰어난 인물이다. 아이가 성장한 후 우여즉거(遇廬則居, 여를 만나면 머물고)하고, 우종즉고(遇鍾則叩, 종을 만나면 두드려라)하라. 이 여덟 자를 평생 꼭 기억하라.”

여기에서 마조도사에 대해 잠시 알아보자

*마조 도일(馬祖 道一) : 당나라때 승려로 750년 전후로 활약하였으며 속성은 마(馬)씨, 통칭 마조도일, 사천성 출신으로 19세 때 출가하여 선종 6조 혜능 문하의 남악 회양(南岳 懷讓)의 법을 이었다. 강서성 홍주를 중심으로 교화하였기 때문에 그 일파를 홍주종(洪州宗)이라고도 한다. 널리 알려진 문하생이 백장, 대매, 남천 등이며 남악의 종풍이 일시에 융성하였으며, 후일 임제종(臨濟宗)으로 발전하였다.
  
마조 천하라하여 마조의 선풍이 온 세상을 덮었으며, 일상생활 속에서 선(禪)을 실천하는 새로운 선종이 이 무렵 시작되었다고 한다. *

여동빈은 어린 시절 남달리 총명해 하루에 글자 만 자를 암송하고 말이 입에서 나오면 문장이 되었다고 한다. 성장 후, 신장은 8척 2촌에 목덜미는 기다랗고 이마는 넓었으며, 봉황의 눈과 광채가 나는 눈썹에 행동은 당당했다고 한다. 성격은 소박하였으나 말주변이 없었으며, 언사가 능숙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성년이 되어 김씨를 아내로 맞아 자녀 넷을 두었고, 당나라 무종(회창) 연간에 여동빈은 두 차례나 장안에 가서 과거를 보았으나 두 번 다 낙방하였다고 한다.

여동빈이 두 번째로 장안에 가서 과거에 응시하였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46세였다. 과거에 낙방하고 낙심한 가슴속에 쌓인 울적한 그 심정은 보지 않아도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오후 울적한 마음을 풀기 위해 발길이 가는 대로 걷다가 어느 작은 술집에 들어가 자작하면서 홀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심정은 마치 바람 따라 거리를 떠도는 가을 낙엽처럼 의지할 바 없이 쓸쓸하였다. 바로 그때, 술집으로 긴 수염에 빼어난 눈썹, 안색이 붉으레하게 빛나는 도사복장을 한 노인이 들어와 여동빈의 맞은편 빈자리에 앉았다. 세간의 다툼이 없는 듯 사리사욕이 없고, 온화함이 넘치는 듯한 그 노인의 풍모는 여동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坐臥常携酒一壺   좌와상휴주일호  
不敎雙眼識皇都   불교쌍안식황도  
乾坤許大無名姓   건곤허대무명성  
疏散人間一丈夫   소산인간일장부  

앉으나 누우나 언제나 한 호로의 술을 가지고 다녔고
두 눈으로는 황도(세상일)의 일을 모르도록 했다네
하늘과 땅은 이렇게 큰데 성도 이름도 없이
한낱 인간세상을 떠도는 한 사내일 뿐일세.

술잔을 돌리며 서로의 심사를 한마디씩 토로한 후, 풍채 좋은 노인은 돌연 시심이 크게 일어난 듯, 즉석에서 시를 읊으며 붓을 들어 술집 벽 위에 써내려 갔다. 여동빈은 시를 음미해 보고는 노인의 시풍이 표일하고 호방함을 깊이 찬탄하고는 두 손을 맞잡고 가슴까지 올려 절을 하고난 후 노인에게 물었다.

여동빈 : “비록 하늘과 땅이 이렇게 큰데 성도 이름도 없다고 하였지만, 후배인 저로서는 도장께서도 칭호가 있을 것 같아 묻사옵니다. 도장의 성명 삼자를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노인 : “허허허. 나의 성은 종리(鍾離)이고 이름은 권(權)이요.”

여동빈 : ‘아니, ‘종리(鍾離)’라면, 옛날 부모님이 늘 말씀하셨던 ‘마조(馬祖)선사의 예언’ “우여즉거(遇廬則居)하고 우종즉고(遇鍾則叩)하라” (廬를 만나면 머물고, 鍾을 만나면 두드려라)가 아니던가!‘

여동빈은 지금 내 앞에 앉은 이 기이한 노인이 내가 마땅히 두드려야 하는 종(鍾)이라는 예언이 적중한 사실을 알곤 순간 멍하니 있게 되었다.

노인 : “자, 우리 술 한잔합시다. 자네도 시 한 수 짓는 게 어떠한가?”

生在儒家遇太平   생재유가우태평  
懸纓垂帶布衣輕  현영수대포의경  
誰能世上爭名利   수능세상쟁명리  
欲侍玉皇歸上淸   욕시옥황귀상청  

유가 집안에 태어나 태평시대를 만났건만
갓 끈을 걸어두고 허리띠를 벗어 놓았으니 삼베옷이 가볍다
(벼슬하지 않은 포의를 비유)
누가 세상과 더불어 명예와 이익을 다투겠는가?
옥황상제를 모시러 상청경으로 되돌아갈까 한다.

노인 : “흐음, 자네의 시는 말일세. 하하하하”
“공자는 이미 도를 향하는 마음이 있는데, 나를 따라 세상을 버리고 입산하지 않겠소?”

여동빈 : “(머리를 흔들며) 집안에 아내와 자식을 생각하니 아무래도 속세를 떠나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노인 : “음, 그렇단 말이지! 그대와 나는 곧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니, 지금은 우선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내일 당신은 여기 적혀 있는 이 여관의 주소로 나를 찾아오시게.”

종리권과 헤어진 다음 날, 여동빈은 종리권이 준 주소를 들고 장안 근처 여관으로 찾아갔다. 마침 때가 정오여서 선인 종리권은 마침 방안에서 작은 화롯불을 피워놓고 부채질을 하면서 노란 조밥을 짓고 있었다. 서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여동빈은 갑자기 졸음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노인 : “자네는 이미 피곤에 지쳐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니 저기 내 침상에 올라가 조금 자게나. 내게는 작은 베개가 있는데, 이름을 여의침(如意枕)이라고 하네, 자네는 여의침을 베고 자면서, 여의몽(如意夢)이나 한번 꾸게나.”

여동빈이 여의침을 베고 눕자마자 몽롱해지더니 하염없이 잠속으로 곯아떨어져 꿈꾸었다. 여동빈은 젊어서 장안에 가서 진사시험을 보았다. 과거에서 장원급제하여 한림학사가 되었다. 그 후 권문세가의 여자를 아내로 맞아 장가들고, 자식도 여럿 낳았다. 인간 세상의 부귀영화가 한몸에 모이듯이 출세 가도를 달렸다. 평생의 소원을 크게 이루었다고 기뻐하였다. 바야흐로 만사가 순조로워 인생의 최고조를 만난 듯 득의양양할 때, 재앙이 하늘에서 내려오듯이 홀연 다른 당파의 모함에 걸려들었다. 천자의 노여움이 하늘을 찔러, 감찰기관으로 하여금 죄를 다스리게 하여 재산을 전부 몰수하였고, 아내와 자식들도 다 흩어졌으며, 그 자신도 재판을 받아 강제로 멀고 먼 변방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그 자신 혈혈단신, 그 고초는 이루 형언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 인생의 무상함을 크게 탄식하다가 홀연 꿈에서 깨어났다.

여동빈 :  ‘그 수십 년의 인생살이에서 부귀영화가 정녕 한바탕 꿈에 불과하다는 것인가? 인생은 한낱 꿈이란 말인가?’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니, 낮잠에 들기 전처럼 선인 종리권이 지금까지도 화롯가에 쭈그리고 앉아 노란 조밥을 짓고 있었는데 그 조밥은 아직 익지도 않았다.

인생의 무상함을 탄식하다가 홀연 꿈에서 깨어난  여동빈!
다음 시간에는 어떤 일이 생길지 기대해주세요.



희망지성

[SOH] 인생에 단(段)이 있다면 나는 몇 단 쯤 될까?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나는 고수인가, 아니면 하수인가?

산에는 고저(高低)가 있고 물에는 심천(深淺)이 있으며, 힘에는 강약(强弱)이 있고 재주에는 장단(長短)이 있다. 같은 사람이라고 능력까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희비와 승패가 있는 것이 인생살이이니 고수와 하수의 차이가 없을 리 없다. 정치9단, 경제9단이라는 표현이 흔히 쓰이듯이 분야마다 누구나 인정하는 빼어난 고수들이 존재한다.

중국 송(宋)나라 때 학자 장의(張擬)가 지은 바둑경전 《기경(棋經)》은 초단에서 9단까지의 아홉 품계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 수졸 (守拙・초단)= 졸렬하나마 스스로를 지킬 줄 안다.

□ 약우 (若愚・2단)= 어리석어 보이지만 나름대로 움직인다.

□ 투력 (鬪力・3단)= 힘이 붙어 비로소 싸울 만하다.

□ 소교 (小巧・4단)= 약간이나마 기교를 부릴 줄 안다.

□ 용지 (用智・5단)= 힘과 기교뿐 아니라 지혜도 쓸 줄 안다.

□ 통유 (通幽・6단)= 바둑의 그윽한 경지를 엿보게 됐다.

□ 구체 (具體・7단)= 두루 갖추어 바둑의 요체를 터득했다.

□ 좌조 (坐照・8단)= 앉아서도 모든 변화를 훤히 내다본다.

□ 입신 (入神・9단)= 승부를 초탈해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기경》은 말한다. “고수는 교만함이 없고, 하수는 겁이 없다.” 고수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지만, 하수는 하늘 높은 줄을 모른다. 그래서 고수는 하수인 양 실력을 감추지만, 하수는 고수인 양 자신을 드러낸다.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장자》 추수(秋水)편은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를 모르고, 여름 매미는 눈과 얼음을 모른다”고 가르친다.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하수들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아는 자는 말이 없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知者不言 言者不知)”라고 일깨운다. 고수는 자신이 모른다고 생각하고, 하수는 자신이 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수는 교만함이 없고, 하수는 겁이 없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야말로 하수들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참 용사는 힘을 자랑하지 않고, 참 부자는 재산을 자랑하지 않으며, 진짜 지혜로운 자는 지혜를 자랑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고수는 감추고 하수는 뽐낸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 안자(晏子)와 마부의 일화도 그런 고수와 하수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안자는 관중(管仲)과 비견되는 뛰어난 재상으로 정직하고 근면하여 백성들의 신망이 높았다. 하지만 겸손하게 처신하여 길거리의 낡은 집에서 살며 헌 가마와 작은 수레를 타고 다녔다.

아내는 비단옷을 입지 않았으며 식사는 반찬 하나에 국 한 그릇이 전부였다. 안자는 키가 작고 볼 품 없었지만 지혜와 담력은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그의 비범함을 보여주는 일화 가운데 이런 게 있다. 안자가 사신이 되어 초나라로 갔을 때의 일이다.

초나라 왕이 키 작은 그를 조롱하고자 성문 대신에 개구멍으로 들어오게 했다. 이에 안자가 호통을 쳤다. “개들의 나라나 개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초나라는 개 나라란 말인가!”

이런 안자에게는 키가 훤칠하고 용모가 번듯한 마부가 있었다. 마부는 안자의 수레를 끌며 자기가 재상이라도 된 양 몹시 의기양양해 했다. 어느 날 이를 본 마부의 아내가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며 이렇게 말했다.

“안자는 키가 6척도 안되지만 제후들 사이에 명성이 자자합니다. 그런데도 무척 겸손합니다. 당신은 키가 8척인 장부이면서도 기껏해야 안자의 말이나 몹니다. 그런데도 만족스러워서 거만한 태도까지 취합니다. 저는 그런 졸장부의 아내로 살기는 싫습니다.”

이 말에 크게 반성한 마부는 겸손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달라진 것을 본 안자는 그를 천거해 대부(大夫)로 입신시켜 주었다.

안자와 마부의 일화에서 보듯이 고수는 자신을 낮추고, 하수는 자신을 높인다. 고수의 눈에는 자신의 부족함이 들어오지만 하수의 눈에는 자신의 잘난 점만 보이기 때문이다.

고수는 자신이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하수는 자신이 안다고 생각한다. 위기구품으로 표현되는 고수와 하수의 차이도 여기에서부터 비롯된다.

인생이라는 승부에서 고수가 되려면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한다. 노자는 자신을 아는 사람은 현명하며(自知者明),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강하다(自勝者强)고 가르친다. 자기를 아는 것이 승리의 첫걸음이다. 《여씨춘추》 계춘기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그러므로 남을 이기려는 자는 반드시 먼저 자신을 이겨야 하고,

남을 논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자신을 논해야 하며,

남을 알려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한다.”

그대는 스스로를 몇 단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는 자는 떠들지 않고, 떠드는 자는 알지 못하는 법이다. 노자 말을 잣대로 삼아 자신을 한번 재어보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자랑이라 여겼던 것들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입신(入神)으로 향해 가는 길고 보람찬 여정은 시작된다.

/ 이코리아뉴스


디지털뉴스팀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희망지성


[SOH] 어느 날 한 거지가 사찰 안으로 느릿느릿 걸어들어 오더니 부처님께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고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부처님, 저는 당신이 가장 부럽습니다. 하루 종일 넓은 불당(佛堂) 위에 앉아만 계셔도 수많은 신도들이 스스로 찾아와 향불이며 음식을 바치니까요. 하지만 저는 매일 사람들의 욕을 먹을 뿐만 아니라 또 배고픔을 참고 견뎌야 하니 이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막 이 말을 마치자 부처님이 모습을 드러내셨다!

속에 불만이 가득하고 끊임없이 불평하는 거지를 보신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세간의 모든 것에는 다 인과(因果)가 있느니라. 네가 기왕 내가 부럽다고 하니 그럼 우리 둘이 하루만 신분을 바꿔서 네가 부처가 되고 내가 거지가 되어보자.”

거지가 보기에 이는 너무 좋은 일이라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부처님은 그에게 바로 응답하는 대신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네가 부처가 된 하루 동안 그 어떤 신도가 방문하더라도 네가 그 어떤 것을 보고 들을지라도 절대 끼어들지 말아야 한다.”

탁자 위에 있는 공양물을 본 거지는 이미 참지 못하고 빨리 부처님더러 떠나시라고 했다. 부처님이 막 떠나시자 거지는 곧 공양 탁자에 앉아 배불리 먹고는 막 몸을 좀 움직이려고 했다. 이때 화려한 옷을 차려 입은 한 원외(員外)가 들어왔다.

원외는 예물을 바치고 향을 올리고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좀 있으면 제 나이 벌써 50인데 슬하에 아직 자식이 없습니다. 부디 부처님께서 제게 아들을 하나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거지가 막 입을 열려다가 부처님이 떠나기 전에 하신 그 어떤 일에도 끼어들지 말라는 당부가 생각나 가까스로 참았다.

원외가 기도를 마치고 나갈 때 그만 몸에 차고 있던 돈주머니가 공양 탁자 옆에 떨어졌다. 원외가 문을 나가자마자 곧 소박한 차림의 한 서생이 들어왔는데 얼핏 봐도 가난해 보였다.

서생은 땅에 무릎을 꿇고 잇따라 절을 올리며 말했다.

“부처님 한 달 후 서울에 가서 시험을 봐야 합니다. 10년간 어렵게 공부했으니 부처님 보우하사 이번 시험에 합격하게 해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절을 하려고 고개를 숙일 때 원외가 떨어뜨린 돈주머니가 눈에 띄었다. 서생은 이는 부처님이 영험해서 자신이 서울에 갈 때 여비가 없는 것을 아시고 특별히 하사하신 것이라 여겼다. 이에 급히 부처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 후 돈주머니를 들고는 총총히 떠났다.

이어서 세 번째로 복을 구하러 온 사람은 어부였다. 이번에 어로를 위해 바다로 나가는 까닭에 부처님께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바로 이때 원외가 돌아와서는 돈주머니를 찾았다. 당시 사찰 안에 오직 어부 한사람뿐인 것을 본 원외는 그가 돈을 가져갔다면서 고집을 부렸다.

두 사람이 반나절을 다투다 원외가 기어코 어부를 관아로 끌고가려 했다. 이때 거지가 더 이상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는 원외에게 나타나 말했다.

“네 돈주머니는 어부가 아니라 서생이 가져갔느니라.”

결국 원외는 서생이 있는 곳에 가서 돈주머니를 찾고 어부를 놓아주었다. 거지는 속으로 자신이 좋은 일을 했다고 여기며 득의양양해 했다. 이때 부처님이 돌아와 그에게 애초 약속을 어기고 사람의 일에 끼어들었으니 생생세세 소나 말로 태어나고 사람으로 전생할 수 없는 징벌을 내리셨다.

거지는 자신은 잘못한 일이 없다며 승복하지 않았다. 부처님은 그가 진심으로 승복하게 하고자 거지를 데리고 미래로 데려갔다. 미래의 서생은 비록 돈주머니를 원외에게 돌려주긴 했지만 도둑이란 죄명을 썼고 앞길을 완전히 망쳤다.

서생의 앞길을 훼손한 원외 역시 자신에게 재앙을 초래했다. 아들을 구하고자 빌었지만 실현할 수 없었고 줄곧 혼자 외롭게 늙어갔으며 가업도 쇠퇴해져 계승할 사람이 없었다.

셋 중 가장 비참한 것은 어부였다. 거지가 당시 개입해 그의 무고함을 입증했지만 이튿날 예정대로 바다에 나갔다가 폭풍을 만나 바다에서 죽는 바람에 시신조차 보존하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거지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어부는 관아에 잡혀가 이번 폭풍이란 큰 겁난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 사람의 미래를 직접 목격한 거지는 자책하며 고개를 떨궜다.

부처님이 그에게 말했다.

“세간의 일체는 모두 인과가 있으니 아주 작은 일이라도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때로는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것이 오히려 가장 좋은 것이다.” / 正見網


편집부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희망지성


희망지성

 

[SOH] 선(善)은 인류가 가진 천성의 하나로 본능이나 관념과는 다르다. 선량한 사람은 알지 못하는 사람이나 동물이 고통을 겪는 것을 볼 때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며 심지어 눈물까지 흘린다. 이러한 과정은 사고와 판단을 거치지 않는다. 선은 사람의 기본적 천성 중 하나이기 때문에 사람은 대부분 많든 적든 어느 정도의 선량함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 ‘이해관계’가 발생할 때, 이 선량함은 흔히 뒷전으로 밀린다. 만약 자신의 적(敵)이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본다면 동정을 느끼기보다 ‘고소함’이나 ‘통쾌함’을 느끼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왜 선량함이 작용하지 못할까? 그것의 원인은 사람의 사욕(私慾)에 있다. 사욕은 이해관계에서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챙기게 한다. 이 사욕이 극단적으로 팽창하면 선량한 천성은 아주 작아져, 자신을 막는 사람에게 노기충천하게 되며 육친조차도 알아보지 못한다.


속담에 “사람이 성현이 아닌데 어찌 과오가 없겠는가?”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해 성현은 ‘과오’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만약 어디서나 선한 의념을 일관적으로 견지한다면 시간이 갈수록 그 선량한 일면은 매우 강해져, 명리나 사욕이 그의 판단과 행위를 좌우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인은 고상한 덕을 겸비한 사람을 군자라고 부른다. 군자는 성현의 책을 필독해야 하는 데 그것은 성현이 군자보다 높은 층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현보다 더 높은 경지도 존재할까? 있다면 어떤 상태일까? 만약 사람의 마음에 사욕이 완전히 없고 선척적인 본성만 존재한다면 선(善)과 사(私)의 모순이 없어진다. 이런 경지를 도가에서는 ‘반본귀진’이라고 하며, 불가에서는 ‘집착이 없다’고 한다. 다른 말로 도가는 ‘진인, 불가는 ’부처‘라고 부른다.


일부 사람들은 과학과 신(神), 불(佛)을 대립적인 개념으로 여긴다. 하지만 과학은 근본적으로 신이 존재하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과학은 실증의 방식이기 때문에 실증을 거치지 못한 현상 등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실험을 통하여 가짜가 증명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선 부인하지 않는다. 과학과 유신론의 구별은 사물에 대한 인식 방법이고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한 문제에서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신을 믿는 사람은 과학적인 검증이나 어떤 증거 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서양의 많은 과학자들은 종교 신앙자로서 과학적인 방법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 했는데, 그 내용들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러므로 과학으로 신, 불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완전한 논리적인 착오이다.


사람들은 천성을 잃은 자를 ‘짐승’, 보통사람을 “속인”, 선을 쌓고 덕행이 좋은 사람을 “성인”, “반본귀진”, 집착심이 없는 사람을 “불·도·신”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각각의 층차를 구분하는 것은 ‘마음(心)’인 바, 관건은 어떻게 덕(德)을 쌓고 마음을 닦는가 하는 것이다.


고금중외의 정통 종교, 예를 들면 불교, 도교, 기독교 등은 모두 사람들이 마음을 닦고 도덕을 중시하며 생명의 층차를 승화할 것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화하면서 종교는 사람들에 대한 구속력을 잃게 됐다.


이전의 장엄과 신성은 없어지고 수련의 전당이 유람승지로, 사교(社交) 장소를 변했으며, 수련을 가르치는 신, 불은 어느 때부터인가 강압적으로 사람에게 복을 가져다 주어야 하는 입장이 됐다. 사람들이 신, 불을 찾는 것은 복과 보호를 빌고 자신의 사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으로, 신, 불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과 정반대가 되었다.


현대인들은 법률을 인간의 행위를 단속하는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과학이 인류를 더욱 편안하고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면서, 도덕은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폐물이 됐다. 법률은 더 이상  사람의 마음을 구속하지 못하며 과학기술 또한 여전히 양날의 칼이다.


탐욕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의 본성을 잃어버리게 했고 원한은 그들로 하여금 미쳐 날뛰게 하고 있다. 아무리 법률의 재제가 엄격하더리도, 아무리 더러운 일이라 하더라도 많은 돈만 내걸기만 하면 곧 가서 하려고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마약을 피우는 사람이 있으면 마약장사를 하는 사람이 있고 살인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곧 청부살인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요즘의 사람들은 필요한 일체를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


과학은 양날의 칼이다. 인류의 삶을 보다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는 힘도 주었기 때문이다. 현재 인류는 지구를 백번 이상 파괴할 수 있는 양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에도 다양한 종류의 신식 대규모 살상 핵무기가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으며 여기에 컴퓨터의 기술까지 결합되어, 인류의 생존은 이미 스위치 단추의 통제 하에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과학이 발달 할수록 사람에 대한 도덕에 대한 요구 조건이 더 높아진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아마 믿지도 않을 것이다. 과거에는 몇 명의 악인이 나쁜 짓을 해도 인류에 큰 영향이 없었으나 지금은 몇 사람의 작용만으로도 인류에게 큰 재난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과학 기술은 또 국력이 약한 국가에게도 전 지구를 훼멸시킬 수 있게 하는 무서운 위력을 지니게 했다. 오늘날 각국의 팽팽한 이익 충돌은 전 세계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종족간의 모순, 지역적인 충돌, 테러조직의 활동들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인류가 덕을 중시하지 않으면 결국 과학으로 인해 파멸될 것이다.


과학은 줄곧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도덕’에 대한 사람들의 중시는 날로 쇠퇴하고 있다. 과학기술과 도덕의 이 같은 장기적인 양극 분열은 인류의 생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인류에게 비극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해법은 인류의 도덕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것이지 법률이나 기타 방법 및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류 역사상 오늘날과 같이 ‘도덕 수준의 전체적인 제고’가 요구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현재 인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인류 문명의 초기에 나타난 석가모니, 노자, 예수 등은 각자의 자비로서 덕을 수행하는 진리를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인류의 자아 단속이 보편적으로 내려간 오늘, 누군가가 수천만 사람들의 도덕 수준을 제고 할 수만 있다면 그는 사실상 사람들을 물과 불에서 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중생을 제도 하고 있는 것이다. (자료: 明慧網)



곽제연 기자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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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잠재능력으로 불리는 신비한 ‘인체부양’


▲ 다른 불가사의한 현상과 똑같이 '인체 부양'도 현재까지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SOH]그동안 전설에서는 어떠한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땅에서 떠오를 수 있는 등의 인류의 비범한 능력에 대해 전해져 왔다. 역사 기록과 최근의 사례에 따르면 부양자는 마치 지구 인력을 극복하고 자신의 몸을 천천히 부양할 수 있는 비범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대 심리학자들도 이러한 부양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 아직 밝혀 내지 못했다. 요가 수행자의 힌두교 선정 대사로 불리는 사람들도 부양을 할 수 있다.

1986년 미국 워싱턴에서 유가 수행자의 비행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공개적으로 진행되었다.

약 20명의 요가 수행자들이 겨루었고, 그들은 최소 60센티미터에서 최대 1미터까지 떠올랐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에서 온 승려들도 가볍게 몸을 떠올릴 수 있다고 한다. 현재 과학자들은 인간의 몸이 어떻게 지구 인력을 벗어나 공중으로 떠오를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 인체 부양술에 대한 연구

인도 물리학자 싱거와제바 박사는 인체 부양술에 대해 수년 동안 조사와 연구를 진행해 왔고, 실제로 부양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 왔다. 여기서 그가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세간 생활과는 단절한 채, 깊은 산속에 은닉하여 살고 있었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은 현대 사회와는 완전히 달랐고, 그들이 말하는 공중부양을 하는 방법은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싱거와제바 박사는 물리 탐지기로 미세한 것까지 탐색해 보았지만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다.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이것은 신비한 신화 같았고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싱거와제바 박사는 “인도 군사학가는 이 인체 부양술을 군사적으로 사용하려 했지만, 그것은 불가사의한 환상에 불과했다. 이 수수께끼를 풀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인류의 과학기술이 인체 내에 잠재된 특수한 기능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것을 풀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체 공중부양 사용을 원했던 인도의 군사학가는 공중 부양이 가능한 초인 군부대를 만들 수 있다면 탱크, 폭탄, 지뢰로부터의 공격에서 자유롭고, 언제든지 적의 기지를 공격 할 수 있어 군사 비용을 대폭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인도의 여러 학자들은 현재까지도 "많은 과학자들이 어떻게 공중부양을 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정확히 밝히지 못했으므로 이런 가설은 실현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4가지의 에너지 중력과 자기력, 두 종류의 핵에너지 외에 '다섯 번째 에너지'가 존재한다고 가설을 세울 수밖에 없다. 이 다섯 번째 에너지는 어떻게 인체에서 발생되는 것일까? 또한 어떻게 인체를 공중에 띄울 수 있었을까? 이것은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만약 인체부양이 정말로 존재 한다면 물리학 법칙은 철저히 뒤바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인체부양을 하는 사람은 외부의 힘이나 도구를 사용해 떠오르거나, 마술 같은 기법으로 사람들에게 환각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사례

인도 북부의 나미뤄얼이라는 외진 시골마을에는 60살이 넘은 바자 미첼이라는 노인이 있다. 그는 40년 동안 요가를 수행하여, 산 위에서 마치 신선과 같이 공중 부양을 할 수 있었다.

미국 물리학자 카라이만쓰 교수는 인도에서 몇 년간 거주 하면서 이 “초인”을 만나보기로 결심했다. 그와 함께한 사람은 인도의 저명한 생물학자 싱거미빠얼과 인체형 기능학자 레만얼 그리고 미국 <과학과 생활>잡지의 기자 등이었다. 나미뤄얼 마을은 굉장히 멀고 가는 길이 험해 차 대신 말을 타야 했고, 또 10일 정도를 걸어야 도착 할 수 있었다. 그곳은 세상과 거의 단절된 곳이었다.

카라이만쓰 교수 일행은 이곳에 도착한 후 바자 미첼 노인을 만났다. 이 노인은 길고 짙은 은색 머리와 수염을 기르고 있었으며, 짙은 눈썹 아래에 예리한 눈을 하고 있어 위엄 있는 철학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카라이만쓰 교수가 노인에게 그의 '초인'적인 능력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승낙했다.

그 노인은 교수 일행이 도착한 둘째 날 아침 태양이 떠오르는 시간에 자신이 거주하는 모옥에서 공중 부양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약속한 날 아침, 카라이만쓰 교수 일행은 사진기와 각종 탐측기를 가지고 노인의 모옥 앞에 모였다. 바자 미첼은 가부좌를 하고 깔개 위에 앉아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사람들의 눈빛, 카메라의 렌즈, 각종 탐측기는 노인의 몸을 향하고 있었다. 약 2~3분 후 노인의 몸은 서서히 위로 떠올랐고, 약 10미터 정도 올라갔을 때 그는 가부좌 자세를 바꿔 두 팔을 내리 뻗었는데, 이것은 마치 새가 비상하려는 동작처럼 보였다. 공중으로 떠 있는 노인의 모습은 무아지경에 빠진 것 같아 보였다.

이 같은 광경에 사람들은 매우 놀랐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약 30분 정도 공중에 떠 있던 미첼 노인은 몸이 조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수평 자세로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카메라는 당시 그의 모든 동작을 촬영했다. 현장에 있던 과학자들은 미첼 노인이 땅으로 내려온 후 그의 몸이 솜사탕처럼 부드러워진 것을 발견했다. 미첼 노인이 공중으로 뜰 때, 탐색기는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류를 탐지했다. 80 킬로그램이 넘는 사람을 뜨게 하려면 굉장히 큰 힘이 필요하다. 과학자들은 이 같은 기류와 에너지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미국 잡지 <과학과 생활> 편집인 스미스는 실제로 존재하는 ‘초인’을 만난 후, 마치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던 것처럼 마음이 굉장히 들떴다. 스미스는 바자 미첼에게 거금을 제안하면서 미국 공연에 초대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첼 노인은 정중히 사양하며 “나는 경건한 힌두교 신자로 요가를 수련한지 40년이 되었다. 산림에서의 조용한 생활로 돈과 명예에 대한 욕심은 이미 오래전에 없어졌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이 그에게 공중부양술을 어떻게 익혔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그것은 엄격한 정신 훈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육체적인 훈련은 더욱 힘들다. 정신이 고도로 집중돼야 인체 내 잠재된 거대한 ‘마력’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그의 대답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인체 내에 잠재 되어 있는 ‘마력’이 도대체 무엇일까? 어떻게 물리학상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깰 수 있었던 것일까?

인체 공중 부양에 대해 카라이만쓰 교수와 인도의 몇몇 과학자들은 인도의 고서인 <불경>에서 이러한 기록을 발견하였다. 2천 년 전에 불교의 승려들은 마음껏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었다. 그들이 날 때 볼 수 있는 경관을 거대 그림으로 표현했다. 인도 고고학자들은 한 거대한 석고조각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2천 년 전 인도의 갠지스강 부근의 만달 평원의 경관이었다. 굉장히 높은 곳에서 바라본 조감이었다. 또한 당시에는 비행기도 없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 고도의 제작을 할 수 있었던 걸까? 과학자들은 인도 고서인 <불경>중의 기록을 신화로 보았는데, 지금 그들이 실제로 인체부양을 본 이상 그것이 사실에 근거한 기록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 인체부양에 관한 기록

1910년 영국의 탐험가 피터는 미얀마 북부의 산림을 탐험했다. 당시 그는 깊은 산 속의 절에서 수행 중인 한 노승을 알게 됐다. 이 노승은 매일 아침 절 앞에서 좌선을 했는데, 가부좌한 자세로 10분 간 있은 후, 천천히 위로 부양했다. 그 후 공중을 한 바퀴 돈 후 천천히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피터는 이 광경에 너무 놀라 사진기로 노승이 공중부양 하는 모든 각도를 카메라에 담았고, 귀국 후 잡지 <가디언>에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 일부 과학자들은 그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부인에 대해 피터는 자신의 사진은 진실이며, "사진을 찍을 당시 자신의 상태도 아주 정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또 "그 노승은 피터에게 보여주기 위해 공중 부양한 것이 아니고 자신이 우연히 본 것이기 떄문에 어떠한 속임수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1912년 프랑스의 탐험가 올런아니는 네팔과 티벳 경계로 있는 히말라야산 일대를 조사했다. 당시 티벳 라마가 그를 안내했는데, 그 라마는 길을 걸을 때 마치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히말라야 산맥의 일대는 눈이 깊게 쌓여 있어 올런아니가 앞으로 내딛을수록 발은 눈에 파묻혀 걷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하지만 이 라마는 걸을 때 발에 눈이 묻지 않았고 굉장히 가볍게 걸었다.

올런아니가 가장 놀랐던 것은 라마가 그를 데리고 협곡을 지날 때였다. 이 협곡은 200미터 정도로 깊고, 100미터 정도로 넓었다. 이곳은 걷기에 매우 위험한 지형이었기 때문에 이곳을 통과하려면 최소 반나절의 시간이 필요했다. 올런아니가 그곳을 통과할지에 대해 잠시 고민중 일 때, 라마는 그를 업으면서 "잠시 눈을 감고 있으라"고 말했다. 올런아니가 자신이 공중을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눈을 뜨자 라마가 그를 업고 공중을 날고 있었다. 그들은 불과 몇 분 만에 협곡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는 황량한 설산에 이처럼 놀라운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

올러아니는 프랑스로 돌아간 후, 라마가 공중에 떠있던 사진과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파리일보>에 실었다. 하지만 많은 독자들이 이것을 믿지 않았으며, "‘천일야화’와 같은 허구의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인체 부양과 관련된 기록 중 가장 유명한 것은 40년 동안 인체 부양을 공연한 기록을 가진 ‘흄’의 사례이다. 그가 최대 24m까지 부양했는데, 그는 이 같은 능력으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초인’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 종교와는 무관한 것일까?

인체 부양에 성공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종교에 깊은 신앙심이 있거나 수행주의나 심령주의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관련된 사람은 다음과 같다.

흄: 영국영매 (심령주의자), 공중부양술과 예언능력이 있었다.

세인트조지프 : 이탈리아 기독교 신자, 매우 격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 종교적으로 극도의 흥분을 느끼면 공중부양 할 수 있었다.

아이웨이 : 스페인의 성녀, 공중부양을 했지만 스스로 통제하진 못했다. 예지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신비의 티벳인 : 정확한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이 사람은 티벳의 수련자로, 당시 티벳에서 비버를 연구하던 프랑스 탐험가 노니의 부인에 의해 발견됐다. 이 남성은 옷을 전혀 걸치지 않았으며, 몸이 부양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온 몸에 무거운 족쇄를 매달았다.

샤바야 푸라파 : 인도의 요가수행 승려. 1936년 6월 6일 Illustrated London News는 푸라파의 공중 부양 사진을 실은 바 있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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